Sylphid 4th - 2. Indaco e Sangue : 7


  "이제 슬슬 클라리스를 불러와야 하겠다옹~"
  한편, 한창 아궁이를 관찰하고 있던 리에타는 이제 때가 되었는지 클라리스를 부르겠다고 말하고서 정문 옆의 창가에서 자신의 작업을 관찰하고 있던 요정 소녀에게 클라리스를 불러오라고 청하더니, 이어서 막 뛰어가려 하던 요정 소녀에게 다급히 "자고 있으면 무조건 깨워! 빨리 와야 한다고 전해!!!" 라고 외쳤다. 빨리 와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급격히 높아져 있어서 그가 얼마나 다급해 하고 있는지를 그 목소리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무기를 만드는 데, 클라리스가 도와줄 필요가 있는 거예요?"
  이에 아네샤가 왜 클라리스가 무기를 제작하는데 참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해 리에타에게 물었고, 이에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던 리에타를 대신해서 그를 향한 아네샤의 물음에 그가 요청한 바에 대해 이렇게 답을 해 주었다.
  "아네샤는 평범한 무기를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야, 빛의 힘이라든가, 그런 힘을 가지는 무기를 만들려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클라리스가 가진 빛의 기운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이후, 아네샤가 되묻자, 내가 말했다. 이전에 그런 사례를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고.

  대장간에서 간혹 일반적이지 않은 무구를 만들어낼 때가 있다. 칼날에 부여되는 힘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자연 현상에 관한 힘일 수도 있고, 검을 잡는 자의 근력 등을 강화시키는 힘일 수도 있다. 빛을 강하게 일으키거나, 아니면 사악한 존재를 멸하는 힘이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성스러운 힘은 시약을 통해 부여하기 어려운지라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만큼, 쉽게 부여될 수 있는 힘은 아니다. 비슷한 특성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부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특성이 생겨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성스러운 힘' 이 부여되는 만큼, 아무렇게나 부여할 수 있는 그러한 힘이 아니기도 하며, 부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성스러운 힘의 부여가 이루어지는 검의 수량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리에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클라리스의 검은 성검은 되지 않더라도 성스러운 힘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이 부여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기성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클라리스에게 맞는 주문 제작을 하는 만큼, 그에게 잘 맞는 특성이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것은 자신의 영역 밖에 있는 일이라 클라리스 등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었다.

  "맞다옹~ 클라리스가 가지는 빛의 힘은 나에게는 무리다옹~ 내가 구현할 수 있는 힘이라면 적은 힘이라도 내가 줄 수 있겠지마옹~ 그런데 말이야옹~ 클라리스나 미라가 가진 요정의 힘은 나 같은 야옹이들이 어떻게 못 한다옹~ 그래서 요정의 힘이라든가, 빛의 힘을 가진 무기를 만들려 해도 요정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옹~"
  그리고서 곧 결정이 녹은 물을 꺼낼 텐데, 그 즈음에서 딱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서 클라리스, 미라의 집은 대장간에서 가깝기에 금방 와 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궁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리에타가 거푸집을 들고서 아궁이의 입 앞에 올려 놓았고, 이후, 결정이 녹아내린 물이 아궁이의 입에서 흘러나와 거푸집의 홈을 채우기 시작했다. 꽤 많은 덩어리가 들어간 듯해 보였지만 녹아내려 생긴 액체의 양은 거푸집을 채우는 정도였다. 새하얗게 빛나는 액체가 길다란 검 모양의 거푸집을 채우고서, 리에타는 왼손에서부터 냉기를 발산해 거푸집에 들어간 액체를 식히고, 이후, 액체가 굳자 리에타는 거푸집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쇠 집게를 들고 칼날의 뒷 부분을 잡은 이후에 아궁이 내부의 불길 속으로 칼날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하얗게 달아오른 칼날을 꺼내 책상 위에 거푸집 위에 올려놓고 책상 위에 있는 망치로 칼날을 망치질하기 시작했다.
  쇠가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그 동안 집 주인인 리에타는 일에 열중을 하고 있던지라 현관문 쪽으로 고개만 돌린 채,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문 바깥에서 "미라다." 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이어서 클라리스도 같이 데려왔음을 밝힌 이후에 문 열어도 되냐고 이어 물었다.
  "들어오라옹~ 지금 바빠서 문 열어줄 시간 없다옹~"
  "뭐 만들고 있는 거야? 알았어, 들어갈게~."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미라가 먼저 리에타의 작업실 내부로 들어서고, 이어서 클라리스 그리고 녹색 머리카락을 가지는 요정이 뒤를 이어 들어갔다. 이후, 클라리스가 바로 리에타를 향해 다가가 그 오른편 곁에 있으면서 물었다.
  "무슨 물건을 열심히 만들고 있기에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오는 거야?"
  "너에게 줄 물건을 만들려 하는 거야, 그런데 그냥 칼날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너에게 맞는 칼을 만드는 것이라서 너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어."
  그리고서 그는 클라리스에게 필요한 기운 같은 것이 있을 텐데, 그 기운을 칼날에 부여하는 작업은 자신은 할 수 없으니, 클라리스에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말 없이 망치질만을 반복하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클라리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혹시 할아버지를 데려올 생각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옹~."
  이에 클라리스는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하고서 급하게 리에타의 공방 밖으로 뛰쳐 나아갔다. 이에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리에타는 그가 나아가는 방향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그는 클라리스를 대신해 자신의 오른편 곁에 이르려 하는 미라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것이지?"
  그 물음에 미라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늘 서쪽 해안에서 낚시를 하고 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건물을 나섰고, 이에 리에타는 가능한 빨리 오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굳이 할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냐옹~?"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검의 후계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어서 그러할 거야."
  이후, 리에타가 미라에게 묻자, 미라가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그 검이 순수한 마력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금속이 포함된 검이라 마법적으로 한계가 많았다고 해도 클라리스에게는 애지중지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물건이었던 것은 틀림 없고, 그래서 새로 만드는 검에도 할아버지의 기운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기운이 담긴 검이라면 나중에라도 만들 수 있다옹~ 그런데 왜 굳이 지금......?"
  "......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이후, 리에타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라에게 묻자, 미라는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은 분명하다고 화답하고서 그를 기다리자고 청했다. 그러자 리에타는 알았다고 말한 이후에 다시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맞지?"
  "걱정 말라옹~" 그러는 동안 나는 그가 작업을 하고 있는 건너편으로 나아가, 그가 어떻게 칼날을 다듬고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가열되어 새하얗게 달아오르고 있던 덩어리는 어느덧 하얗게 빛나는 칼날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망치질을 거듭하면서 더욱 분명한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클라리스, 안 오냐옹? 얼른 와야 성스러운 힘이든 뭐든 부여를 해서 칼날 벼림을 완전히 마칠 텐데."
  "금방 오겠지, 너무 초조해 하지 마." 클라리스는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 꽤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클라리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노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리에타와 미라 그리고 같이 온 녹색 머리카락의 요정 소녀 역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다가 요정 소녀는 자신이 지붕 위로 올라가서 관찰해 보겠다고 말한 이후에 밖으로 나갔고, 그래서 일행과 리에타를 제외하면 공방에는 미라만 남아있게 되었다.
  "미라하고 클라리스는 옛날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것 같다옹~ 옛날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냐옹?"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야." 이후, 리에타가 그의 어릴 적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미라는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답변만을 할 따름이었다. 그 이후에 그 이야기는 정말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만한 사람에게만 해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라리스는 그런 사람이냐옹?"
  "그렇지." 미라는 클라리스에게는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말했고, 클라리스의 과거에 대해서도 그래서 들을 수 있었음을 밝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외지 출신이었다고 했다. 외지 출신으로 미라는 클라리스와 함께 마을에 왔으며, 그 이후로 마을에서 요정들, 그리고 고양이 여인들을 지키는 역할을 맡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습만 보더라도 저들이 여기서 시간 보내며 살 운명 같지는 않았다옹, 이런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 보다 험난한, 어둠 속의 세상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빛이 될 이들이고, 그래서 이 곳은 어쩌면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에게는 과분한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옹~"
  이후, 리에타가 미라 그리고 클라리스에 대해 말했다. 이들이 결코 범상한 운명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는 것으로 리에타는 만약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공방이고 뭐고 다 갈아 엎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어디 밖으로 나간다고....... 리에타, 너무 과한 바람 아니니?"
  미라가 바로 당황하면서 리에타에게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그러자 리에타는 "그렇다고 생각했을 뿐이라옹~"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은 어쩌면 클라리스, 미라와 함께 있으면서 그간 자신이 누리지 못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여실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후, 문이 열리면서 창가를 통해 날갯짓을 하며 녹색 머리카락의 요정이 클라리스가 돌아왔음을 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면서 클라리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이후, 그를 따라오던 노인이 어부의 옷차림을 한 채로 리에타의 작업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시냐옹? 지금 작업 중이다옹~"
  "그래, 알고 있다." 작업 중이라 인사도 간략히 할 수밖에 없다는 리에타의 말에 루시언 노인은 알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리에타가 망치질하는 물건을 가만히 보더니, 칼을 벼리는 중이냐고 물었고, 이에 리에타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클라리스는 이 칼날 역시 이전의 검과 같은 성스러운 무언가를 품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을 게다, 클라리스가 이번에 벼려지는 칼날에는 내가 가진 무언가가 포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었지."
  "역시......" 이후, 리에타는 칼날을 벼리는데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으나, 그 물음에 루시언 노인은 클라리스에게 내가 가진 것은 그 무엇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음을 밝혔다. 그러자 미라가 그간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리에타를 대신해서 물었다.
  "클라리스에게 그렇게 말한 것에 무슨 이유가 있었나요?"
  "그 애가 무언가를 하는데에 있어, 나에게 의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네."
  노인이 답했다. 노인은 지금 당장에는 자신이 클라리스와 함께 있다고 하지만 곧 그렇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자신은 클라리스의 곁을 어떤 식으로든 떠날 것이며, 그 이후로 자신은 그에게 어떤 것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서 클라리스는 이제 그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힘을 추구하고, 그것을 검에 깃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니, 굳이 자신이 그것을 위해 도움을 계속 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라리스에게 있어서 '성스러운 무구' 라는 것은 자신이 이전에 소지하고 있던 검의 원료가 되었던 '어느 전설의 왕' (아마도 아흐튀흐(Arthur)) 이 남긴 무구들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루시언 노인 역시 왕이 남긴 무구들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었고, 그래서 검이 성스러운 무구가 되기 위해서는 칼날이 벼리어지는 동안 자신의 의지 혹은 사념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 그러하였던 클라리스에게 루시언 노인이 언제나 그에게 의지할 수 없으며, 이미 클라리스는 성스러운 무구를 위한 사념이 칼날에 깃들게 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함으로써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리려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면 여기까지 굳이 오신 이유는......?"
  "그저 클라리스의 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고 싶었다네."
  이후, 미라가 다시 묻자, 루시언 노인은 그저 클라리스의 검이 리에타라는 소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늘 들어왔고, 그래서 어떻게 검이 만들어지는지를 한 번 정도는 보고 싶어하였던 것. 그러면서도 노인은 행여 자신의 존재가 부담스럽다면 밖으로 나가 주겠다고 리에타에게 말하기도 했다.
  "괜찮다옹~ 이래봬도 나도 프로다옹~ 어르신 한 명 있는 것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다옹~"
  그러자 리에타는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어떻게 검이 만들어지는지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아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이후, 미라는 리에타의 곁에서 물러났고, 그 대신으로 클라리스 그리고 루시언 노인이 리에타의 건너편으로 오려 하였으며, 클라리스는 루시언 노인에게 리에타의 건너편에서 검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게 하도록 하고서, 자신은 그의 왼편 곁에 있으면서 그와 리에타가 만들려 하는 검의 모습을 관찰하려 하였다.
  "클라리스, 보고 있냐옹?" 그렇게 한창 망치질에 열중이던 리에타는 이후, 칼날을 거푸집 위에 올려놓고 잠깐 쉬고 있으면서 클라리스에게 자신이 칼날을 다시 가열해서 가져오면 그가 원하는 기운을 칼날에 가해줄 것을 부탁했고, 이어서 그렇게 해서 그 기운에 검이 감싸이면 자신이 칼날을 다시 벼리기 시작해서 칼날이 온전히 빛의 기운을 품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노인은 이제 자신은 다 지켜봤다는 듯이 리에타의 건너편 자리를 떠나 밖으로 떠나가기 시작했고, 이에 클라리스가 그를 대신해 리에타의 건너편에 이르렀다.
  "곧 칼날을 달구어서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옹~ 신호를 보내면 그 때 시작하라옹~"
  "알겠다옹~" 그러자 클라리스가 장난스럽게 리에타의 말에 응답하고서 그가 칼날을 집게로 잡고 아궁이로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칼날이 다시 하얗게 달구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리에타가 책상 앞으로 돌아오자마자 클라리스는 주문의 영창을 행하면서 자신의 몸에서 빛의 기운이 생성되도록 하였다. 그 빛의 기운이 칼날이 깃들도록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그리고 리에타가 칼날의 끝이 클라리스를 향하기 시작하자 클라리스가 두 손에 머무르는 빛의 기운을 칼날에 흘려보내기 시작했고, 클라리스가 생성한 빛의 기운은 요정의 빛들과 같은 형태로 칼날을 둘러싸기 시작해 마침내 무지개색을 띠는 다수의 빛들이 거대한 회오리의 형태로 칼날을 둘러싸려 하였다.
  화려한 빛에 칼날이 감싸이는 것을 시작으로 리에타가 달구어진 칼날에 망치질을 하는 것으로 칼날을 다시 벼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회오리처럼 날을 둘러싸는 빛이 칼날에 스며들기 시작하여 칼날이 더욱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리에타가 칼날을 달구면 클라리스가 빛의 기운을 칼날에 깃들게 하고, 리에타가 칼날을 벼리기를 반복하면서 칼날은 보다 밝고 새하얀 빛을 띠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칼날이 벼리어지는 시간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갔고, 그래서 나와 아네샤 역시 밖으로 나가서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실제로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루도 만들어야 하지만, 클라리스가 부러진 검의 자루를 갖고 있었기에 그 자루를 사용하기로 해서 자루 제작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리에타가 클라리스, 미라와 더불어 칼날을 만드는 일에 전념을 하고 있는 동안 나와 아네샤는 밖으로 나온 이후에 곧바로 해안가에 자리잡은 선착장을 향해 나아갔다. 새벽을 넘어 동쪽 하늘 먼 저편에서 해가 떠오르는 아침 시간을 맞이하는 선착장 너머의 바다 먼 너머로 요정 족 혹은 고양이 족 사람들의 배들이 떠 다니고 있었다. 물고기들을 잡기 위해 나선 이들일 것으로 새벽 일찍부터 조업에 나서 계속 고기잡이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배 위에 타고 있었을 것이었다.
  "라르나는 배에 타 본 적이 있었다고 했지?"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우연의 일이기는 했지만, 배를 탄 적이 있었다. 아르나이(Arnay) 에 있다가 아르나이의 어부들이 고기잡이 하는 일을 돕게 되어 그들과 함께 새벽 일찍부터 고기잡이에 나섰던 것으로 그 당시에 나는 선상 낚시로 고기 잡는 일을 했었다. 물론 소질이 없었던 관계로 낚시 도중에 물고기를 잘 잡거나 하지는 못 했었다.
  "그래도 아주 못 잡은 것은 아니었지?"
  이후, 내가 건넨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적당히 물고기들을 잡기는 했었음을 밝히고서 그 중에는 큰 물고기도 몇 마리 있었음을 밝혔다. 꽤 많은 물고기들이 잡혔고, 그래서 수고비라고 몇 마리 물고기들을 받아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이들을 아르나이에서 아주 멀리 있는 엘젠 산맥으로 가져가야 했다는 것이었다. 장거리 수송이 필요했던 만큼, 냉기를 품은 상자에 물고기를 담기 전에 신경을 마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물고기들의 신경을 찌르는 작업이 이루어졌었다.
  "신경을 찔러 즉살을 시켜야 물고기들의 신선한 상태가 가능한 보존이 된다고 했었어."
  "아무래도 칼날로 물고기를 찌르는 일이었을 텐데...... 도중에 피 흘리는 광경이 보이기도...... 했었겠네, 그렇지?"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선혈이 보일 수밖에 없었던지라 그 광경에 눈을 질끈 감거나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있고, 피 흘리는 광경에 실신하는 이들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 진한 붉은색 액체의 흐름은 뭇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그 무언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의 정령(Undine) 들은 그런 풍경을 무서워 하지는 않았었지?"
  아네샤가 묻자, 내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런 광경을 무서워하면 바다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말이 그들에게서 들려오기도 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아직 어린 시절이기는 해도, 물의 정령들이 순수한 미녀들이라 칭할만한 외견을 갖고 있음과 달리 거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고, 그것이 때로는 잔혹한 광경을 보여줄 때가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광경을 보면서 많이 놀랐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정령들 중에서 가장 호전적인 이들이 가장 거친 이들을 두고 뭐라하는 격이라 다소 우스운 생각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즉살을 시키고 피를 빼내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 냉각 비법 처리된 상자에 생선들을 넣어서 엘젠 산맥에 있는 고향 마을에 가져갈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우리들이 그로 인해 그 귀한 생선들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
  "그렇지."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바람의 정령들도 생선을 아예 먹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해안가나 아르나이 일대에 사는 이들도 있었고, 산악 지대에 사는 이들도 강가에 사는 민물고기나 연어(Salmona) 류가 있었기에 생선 류가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람의 정령들 중 대다수는 산간 지역 등의 고지대에 살고 있었기에 바다 물고기와는 아무래도 인연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르나이 해안에서 잡아 온 물고기들은 귀한 식재료로 여기어진 것.
  "지금도 바다 물고기는 귀한 식재료 중 하나지?"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아네샤가 배에 탔을 때의 기분은 어떠하였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바닥이 자주 흔들리기도 했고, 물고기 잡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좋은 경험이기는 했다고 그 당시의 일에 대해 말하고서는 아네샤에게 여행을 마치고 나면 한 번 타 볼 것을 권했다.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너에게도 말야." 라고 말하면서.

  그 이후로 한 동안 나와 아네샤는 서로 나란히 서 있으면서 해안과 남쪽 하늘 정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며 하얗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네샤는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갑자기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뭔가 자랑스러운 것이 생겼을 때에 보일만한 자세로 그런 자세를 취할만한 일이 근래에는 없었던지라 그 광경을 보면서 내가 의아함을 느끼며 아네샤에게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나에게 돌아왔다.
  "아침이 밝아올 때가 되면 한 번 즈음은 이런 짓을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어렸을 적에는 아침에 하나둘씩 모여서 산 위에 올라가 태양을 바라보며 그런 자세를 한 번씩 짓는 이들이 있었다, 주로 무언가 보람된 일을 했을 때에 그것을 어딘가에라도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일로,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늘 아래 누군가는 인정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네샤는 그런 짓을 참 많이도 했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여기서 나는 어떠하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차마 부끄러워서 그런 행동까지는 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에는 이런 것을 참 많이도 했었지." 그러다가 다시 정상적으로 서면서 아네샤가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나름 멋쩍었는지 조용히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던 나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그럴만도 하지." 라고 화답을 했다.
  이후, 아네샤는 서 있기만 하는 것이 지루해졌는지 자리에 앉으려 하는데, 그 무렵, 나의 뒤쪽에서 앞쪽으로 날갯짓을 하며 어떤 요정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감색 머리카락을 가진 엘피(Elpy), 그리고 초록색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리피(Lify) 였다. 어깨 끈과 상의 부분 그리고 허리 바로 아래까지 내려가는 치맛단으로 구성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밀짚 모자를 쓴 엘피 그리고 해군 제복식의, 상의 부분은 하단이 짧아서 배꼽이 드러나고, 치맛단이 무척 짧은 옷차림을 하고서 접시 모양의 모자를 쓴 리피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이어서 감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드러내며 엘피가 나에게 물었다.
  "라르나 님, 여기서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냥.,.... 할 일이 없어서 멍하게 지내고 있어. 리에타 씨께서 클라리스 씨의 무기를 만들어주고 있는데, 그것을 마냥 기다리고 있어주기도 그렇고, 아침 시간이라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렇게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거야."
  그러자 엘피는 그렇다면 잠시 자신과 같이 가자고 청했고, 그러자 아네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엘피는 그런 아네샤의 바로 앞으로 날갯짓을 하며 다가와서는 잠시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아네샤를 설득하려 하였고,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요정들이 이상한 곳으로 그를 보내겠느냐고 말하면서 같이 가 보자고 청하니, 그리하여 나와 아네샤는 엘피 등의 인도를 받으며, 해안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착장이 위치한 남쪽 해안을 지나 그들은 서쪽 해안을 거쳐, 선착장에서 상당히 먼 곳인 북서쪽 해안에 이르고 있었다. 상당히 오래 걸어 갔다고 여기어질 수 있을 법도 하겠지만 지역 자체가 작아서 해안까지 가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 북서쪽 해안의 모래에 묻혀있던 보물 상자에 이상한 물건들이 숨겨져 있었어요, 태고 시대의 문물로 보이는데, 혹시 두 분께서는 아실지 몰라 이렇게 모셔오게 된 거예요."
  엘피와 리피는 보물 상자의 왼편 그리고 오른편 곁에 떠 있었으며, 이미 리피 그리고 엘피가 열어 보았는지, 상자가 약간 열려 있었다. 그렇다면 리피 그리고 엘피 모두 상자를 열어보기는 했겠지만 어떤 물건인지 모르고 함부로 건드리면 위험할 것 같아서 다시 닫아둔 것처럼 보였다. 엘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자 앞으로 다가가서 상자의 뚜껑을 바로 열어 보았다. 엘피, 리피의 예상과 다르게 상자 안에는 특별히 위험할만한 물건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바로 들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상자가 열리고, 그 내부를 살펴보니, 이미 불에 타고 부서진 후에 남은 형체들의 모습이 눈 안에 들어왔다. 위에 놓인 것은 네모나고 납작한 상자처럼 생긴 검은 금속 덩어리였고, 그 아래에는 상자 크기만한 네모난 상자 모양의 큰 금속 덩어리였다. 얼핏 봐서는 그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어 일단 상자에서 꺼내 보자는 생각에 금속 덩어리들 중에서 위에 놓인 작은 덩어리부터 두 손으로 들었다. 모양새를 보면서 예상했지만 상당히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생겨서 엘피, 리피가 무서워했을 수도 있겠네." 그리고 두 손으로 덩어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표면이 부서지고 깨진 물체는 불에 타다 남은 것이라서 그러한지, 온통 그을음이 져 있어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폭발하다 남은 지뢰(Mine) 그 중에서 폭발력이 아주 강력한 '대전차 지뢰 (Lajshariomine)' 의 일종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리피, 엘피가 상자 안에 들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행여 잘못 들어올리거나 만졌다가 그 덩어리가 폭발할 것을 걱정해 물체를 살펴보는 것을 두려워 했을 것이라 여길 수 있었다. 보다 용감하고 강한 나와 아네샤에게 덩어리들을 맡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지뢰처럼 보였지만, 곧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살펴 보다가 한쪽 옆면에 버튼 비스무리한 장치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그제서야 그 부서지다 만 금속 덩어리가 지뢰가 아닌 기계 장치의 일종이었음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장치를 내려놓고, 상자에 남은 큰 덩어리를 두 손으로 들어올려 보았다. 그 덩어리는 아주 거대했고, 게다가 상당히 무겁기까지 해서 한 손으로 들어올리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고, 두 손으로도 상당히 힘을 주어야 들어올릴 수 있었다. 이 물건 역시 이전의 기계 장치와 마찬가지로 옆면의 한 부분에 버튼들을 비롯한 여러 장치들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역시 기계 장치의 일종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라르나, 이렇게 생긴 장치는 이전에도 본 적이 있어. 너도 그 장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잖아."
  그렇게 내가 큰 장치를 들어올려서 상자 앞에 내려 놓았을 무렵,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네샤가 그 물건을 바로 알아보면서 그 물건을 본 적이 있었음을 밝히고서 나에게 그 장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의 일, 나와 아네샤, 세미아, 리마라 등이 어렸을 무렵의 일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고향 마을인 루샤트(Lusyat) 서쪽 부근의 산길에 상자 모양의 기계 덩어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래서 아네샤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리마라, 나리 등의 친구들을 데리고 서쪽 산길로 뛰어가서 그 물건을 보려고 했었다. 당시 아네샤는 거기서 내가 발견했던 검은 네모난 덩어리와 비슷하게 생긴 네모난 검은 덩어리를 발견했었다고 말했고, 그래서 당시에 집에 있었던 나를 비롯한 이들에게 신나게 뛰어와서는 그 물건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었다.
  "본래는 전산 장치(Semtrî) 의 일종이었다고 말했었지?"
  아네샤가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내가 아네샤에게 전산 장치의 일종이라 소개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장치의 바로 앞에 앉아서, 장치의 옆면을 내 앞에 오도록 장치를 세우고서 해당 장치의 부서지고 갈라진 외부 표면을 왼손으로 잡아서 뜯어낸 다음에 그 내부 장치를 바라보려 하였다.
  "그러니까, 본래는 고문명 시대에 있었던 전산 장치들 (Semtrîdrî) 의 일종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요." 이후, 리피가 상자 모양의 형체를 밖으로 꺼내는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장치의 내부를 뜯어보고 있던 나를 대신해 아네샤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딱히 위험하거나 한 장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해당 물품에 대해 언급하고서 장치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왜 이상한 물건이라 나에게 말했느냐고 묻자, 엘피가 리피를 대신해서 답하니, 검은 상자들처럼 보이는 모습에 마치 지뢰와 같은 위험한 폭발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발탄의 일종 같다고 여기어서 쉽게 건드리지 못했음을 밝혔다, 내가 예상했던 바와 상당히 일치하고 있는 바.
  전산 장치의 내부는 거의 대부분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부서진 장치들 중 하나에 포함된 금속 도시락처럼 생긴 장치는 다소 찌그러진 것을 제외하면 온전했다. 이 장치는 전산 장치의 자료 기록 장치 (Datalarisasehtrî) 였을 것이고, 기록판의 구조를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쓰였을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전산 장치들을 잠깐 관찰해 본 후, 나는 이 장치를 다시 상자에 넣어 두었으니, 내가 아니더라도 이후에 라니아나 리에타 등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라면 나보다 이 장치들을 더욱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물건들은 어떻게 할까요?"
  "리에타 님 같은 분께서 혹시 발견하신다면 어련히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리에타 님께서도 이런 물건이 단순한 고철이 아니라는 점은 인지하시고 계실 거야."
  리피의 물음에 엘피가 바로 답했다, 어렸을 적에 발견된 전산 장치 유물처럼 온전한 부분이 거의 없는 이상, 고철처럼 처리되기는 하겠지만 리에타도 이런 물건이 단순한 고철이 아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문득 생각난 바가 있었는지, 아네샤가 막 장치들을 다시 상자 안에 넣어둔 나에게 물었다.
  "그 때, 발견된 전산 장치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었지?"
  그 물음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그렇다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이후,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어렸을 적에 발견되었던 그 전산 장치의 내부는 물질이 녹다 만 흔적들이 곳곳에 드러나, 마치 썩어버린 것 같은 처참한 모습이었으며, 거의 모든 장치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건질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썩은 것처럼 보이는 내부의 녹다 만 물질들은 마법액으로 씻겨져 소멸했고, 남은 금속 외장은 대장장이들에게 넘겨졌다고 들었다.
  "대장장이들에게 넘겨졌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들 녹아서 식칼이나 농기구 등의 금속 소재로 재활용되었을 것이라 말했었지."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말에 그 현장에 있었던 나는 그 말대로였다고 화답했다. 그 무렵, 나는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차라리 그렇게 활용되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 아네샤는 내가 장치들을 다시 넣어둔 상자를 향해 다가가, 그 상자 내부를 잠깐 보려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발견된 전산 장치들은 왜 다들 검은색을 띠고 있는 거야? 본래는 모두 다 이런 색을 띠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들었어. 여기 상자의 장치들이나 그 때 산길에서 발견된 장치들은 부서지고 불에 타서 그을음 때문에 검게 변했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경우도 있어."
  "얼마 전에 조하르(Zohar) 성계의 고대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했었잖아."
  그런 소식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즈음의 일로 조하르 성계의 샤르기아(Shargia) 그리고 하나야스(Khanayas 혹은 Hanayas) 사이의 북쪽 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 고대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소식. 사실 발굴이라기보다는 섬 전체가 고대 유적이었고, 그것이 표면이 우연히 파헤쳐지면서 드러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고대 유적 내에는 수많은 고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서 발굴된 유물들의 대다수가 마치 검은 그을음이 생긴 것마냥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그을음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이후, 내가 아네샤와 함께 상자의 곁에서 다시 떠나려 할 즈음, 나를 따라오면서 리피가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랬었다고 답했다. 실제로는 오랜 세월 동안 모종의 이유로 인해 땅 속에 생성되어 땅을 검게 물들인 검은 기운에 의해 변질되어 그렇게 검게 변한 것이었다고. 유물들 중 대다수는 일상용품이었고, 나머지는 장식품이었겠지만 전부 검게 물들여 버려 형상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발굴된 물품들 중에는 인형들도 다수 있었지만 변질로 인해 본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고, 장신구들 역시 물질의 특성 자체가 변질되어 더 이상 장신구로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쪽 세상이나 다른 곳에서 발굴되는 고대 유물들도 그렇다면, 검게 물들어 있을까요?"
  "전부 그렇지는 않을 거야." 이후, 엘피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조하르 성계의 검게 물든 유물들은 행성계의 표면 아래 깊은 층이 검은 기운에 물들어 있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조하르 성계는 행성계가 정화되기 전에는 기원을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깃든 검은 물질에 의해 물들어 있었고 대부분의 유물들은 그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빛의 정령이 조하르 성계를 찾아왔을 때, 표면을 비롯한 행성의 대부분이 정령의 빛에 의해 정화되기는 했지만 행성계의 일부분에는 검은 물질이 남았다고 한다. 그 일부분은 8 개 지역에 의해 에워싸여 있었다는 '검은 섬 (Gamßîmï)' 라 칭해진 바위 섬 그리고 하나야스 (Khanayas) 의 고대 유적 지하 등이 있었다.

  "그 섬은 검은 섬이라 칭해졌던 바위 섬 부근에 있었으니, 검은 기운이 표층 아래에 남아있었을 수도 있었을 거야."
  그러는 동안 나는 섬의 북서쪽 해안을 떠나 서쪽 둘레길을 거쳐 남쪽 해안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이에 아네샤 그리고 엘피, 리피는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서쪽 해안가에 도달하면서 해안의 방파제 위에 앉아 낚시를 즐기던 노인 루시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노인은 낚싯대의 움직임 하나 보이지 않는 채로 고요히 홀로 앉아있기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모습은 그의 일상적인 모습이었겠지만 그 때만큼은 유난히 그의 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다가가 보았다. 이상하게 유난히 더욱 쓸쓸해 보였던 노인의 모습은 막상 그의 오른쪽 곁에 다가가서 그의 모습을 보니, 이전과는 딱히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때 내가 보았던 노인은 낚싯대를 손에 잡고 있기만 하고 있을 뿐, 낚시에는 딱히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낚시를 하고 있다면 대개 그 시선이 수면 쪽을 향하기 마련인데, 낚싯대를 손에 잡고 있으면서도 노인의 시선은 그저 바로 앞의 하늘과 수면을 향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할아버지, 낚시 안 하세요?"
  "아아, 아가씨들, 또 보게 되는구먼." 내가 다가와서 허리를 약간 굽혀 그에게 시선을 향하려 하면서 물음을 건네자,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뜻 밖에 누군가가 찾아온 것이 반가웠었는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의 표정이 약간 밝아져 있었으며, 미소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가 이후, 다시 바로 서려 하는 그 때,
  "그래, 북서쪽 해안에 있다가 오는 모양이로구먼."
  "어떻게 아셨어요?" 노인의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물음에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오른쪽 방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고 말하고서 그 방향은 북쪽이라 북쪽 방향에서부터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한다.

  "...... 클라리스의 새 성검은 잘 만들어지고 있던가."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무렵, 노인이 조용히 물었다. 이 물음에 나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으니, 리에타의 공방에서 칼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대략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었던 내가 어떻게 칼날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칼날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던지라 그렇게 화답하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러한 심리를 알았는지 노인은 어련히 잘 만들어지고 있기를 기대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 루시언 노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 아이에게는 그 아이에게 맞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겠지."
  이후, 루시언 노인은 남쪽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 너머의 먼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그 너머의 바다에 미련이라도 남아있는 것 같이. 그의 모습을 바로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면서 그에게 달리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짐작되는 바가 하나 있었다. 그가 어쩌면 남쪽 바다 너머의 섬에서 악행을 저지르다 죽은 랑슬로와 모종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그는 아흐튀흐 왕의 유산이었던 창과 검들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아흐튀흐 그리고 랑슬로와 연관이 있으리라는 추측이 마냥 터무니 없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그에게 품고 있는 의문이 하나 더 있었다. 리에타가 클라리스의 새로운 도검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노인이 말한 바에 관한 것이었다.

  그 애가 무언가를 하는데에 있어, 나에게 의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네. 지금 당장에는 내가 클라리스와 함께 있다고 하지만, 곧 그렇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자신은 그 아이의 곁을 어떤 식으로든 떠나게 될 게야. 그렇게 되면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떤 것도 주지 못하게 되겠지. 하지만 클라리스는 이제 그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힘을 추구하고, 그것을 검에 깃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니, 굳이 내가 그것을 위해 도움을 계속 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선은 그가 이전에 했던 말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음을 건네보기로 했다. 클라리스가 루시언 노인에게 더 의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관한 것으로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짐작되는 바가 있기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 짐작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고, 그것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시언 노인은 그러한 나의 질문에 쉽게 답을 내지 않았다, 마치 내가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지는 알겠지만 대답을 하지는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다시 그에게 질문을 하고 난 이후,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나에게 말했다.
  "...... 한 가지 약속을 한다면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지."
  그리고서 그것에 관해서는 클라리스와 미라는 물론, 마을의 다른 묘족 그리고 요정 아이들에게 어떤 발설도 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을 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이야기를 해 주겠음을 이어 밝혔다. 자신의 가족이라 할 수 있는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에게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면 보통 중대한 사항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어 보였다. 이에 리피가 대체 무슨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클라리스, 미라도 들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했지만 그 물음에 노인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약속 해 드릴게요. 그렇다면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이지요?"
  나와 아네샤는 물론, 리피와 엘피도 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클라리스, 미라조차도 그 이야기를 들어서는 안 되는지 궁금해 했고, 이에 아네샤가 약속 해 드릴테니, 무슨 이야기인지 해 달라고 리피에 이어 부탁하기도 하였지만 그 때에도 노인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정해." 이에 나는 아네샤, 리피에게 우선 진정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서, 그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을 했다. 나는 해당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곁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잘 타이를 테니,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하고 나서야 노인이 안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두, 내 옆으로 와 주게."
  그리하여 노인의 좌측 곁에 나를 비롯한 일행들이 한데 모였을 때, 노인으로부터 내가 요청한 바에 대한 대답으로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바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잠시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은 이후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곧 클라리스, 미라의 곁을 떠나, 멀리 떠나갈 생각이네."
  그리고 라니아 등에게는 미리 말한 바 있으며, 클라리스, 미라 정도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떠나간 빈 자리를 라니아와 그의 딸이 채워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어서 라니아에게 그것에 관한 당부를 몰래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 혹시 이런 이들이 있음을 알고 있나?" 외지인인 나와 아네샤가 아닌 리피, 엘피에게 건넨 물음으로 엘피는 짐작되는 바가 있었는지, 혹시 옛 촌장의 자식들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자 루시언 노인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알고 있군." 이라 말하고서는 외지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라니아 이전에 마을을 이끄는 촌주가 있었음을 밝히고서, 그 촌주가 마을을 떠난 이후, 라니아가 촌주 대리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촌장에게는 4 명의 딸이 있었다고 했다. 달의 이름을 모태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장녀는 '야누아(Ianua, Yanua)', 차녀는 '마르차(Marcia, Marca)', 셋째는 '마야(Maia, Maya)', 마지막으로 막내는 '율리아 (Iulia, Yulia)' 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루시언 노인은 이들 모두 외지에 살고 있는데, 그들이 돌아온다면, 아니 어쩌면 그들을 만날 수 있기라도 한다면 클라리스, 미라의 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클라리스, 미라는 그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엘피가 답했다, 두 사람은 그들을 만난 적이 없었을 것이라 말하고서, 라니아가 그들을 아주 어렸을 때에 본 적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음을 나와 아네샤에게 알리려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다.
  "행여 그들이 나의 소식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전해 주게, 나는 마을에서 멀리 떠나갔으며, 마을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아니라 라니아 그리고 클라리스 등에게 소식을 전해 달라고, 말이야."
  루시언 노인은 멀리 떠나갈 것이라 말했을 뿐이었지만 묘족과 요정 아이들에게 그것에 대해 어떤 발설도 하지 말아달라 당부한 것을 보면 단순히 멀리 떠난다라는 의미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클라리스, 미라 그리고 루시언 노인이 언급한 이들에게 언젠가 그것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생각하면서 알았다고 답했다. 이후, 루시언 노인은 자신은 한 동안 낚시를 이어가려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으면 마을로 돌아가 줄 것을 당부하였고, 그 당부에 나는 아네샤 그리고 같이 온 요정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에 이르렀을 무렵, 리에타의 공방, 그 정문 바로 앞에 리에타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클라리스, 미라와 한창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이미 작업은 끝난 모양으로 클라리스는 리에타가 새로 만들어 준 도검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으며, 리에타는 미라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 곁에는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던 미냐-이전과 달리 상의 부분에 소매가 없고, 무릎 부근까지 내려가는 나팔 모양 치맛단을 가진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연두색 긴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요정 소녀가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리에타 씨께서 작업을 그새 마치신 것 같네요."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리피가 리에타의 모습을 보면서 말했고, 이에 엘피가 리피를 보면서 리에타에 대해 보이기는 다소 장난스럽기는 해도 능력자는 능력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리피는 곧바로 리에타 그리고 클라리스가 있는 그 곁으로 날갯짓과 더불어 날개에서 작은 빛들을 흩뿌리면서 날아갔다. 이후, 리에타가 리피가 흩뿌린 빛 방울들을 발견하더니, 하늘 쪽으로 시선을 향하면서 리피, 엘피가 돌아왔음을 바로 앞에 있던 이들에게 알렸다.
  "리피, 엘피가 돌아왔다고?" 그러자 그간 말이 없던 클라리스가 칼집에 검을 넣어 놓고서 자신의 바로 뒤에 있던 리피 그리고 엘피를 향해 돌아서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리피가 클라리스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에게 검은 잘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클라리스는 칼집에 꽂아 두었던 검을 꺼내서 그 칼날의 모습을 엘피에게 보여주었다. 하얀 바탕에 푸른 기운이 서린 빛을 발하는 새하얀 칼날이 예리한 칼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리에타 씨께서 직접 성형하신 칼날이지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칼날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이후에 틀을 이용해 성형했대. 칼날이 상당히 예리하고 강도도 좋은 것 같아서 나름 마음에 들었어."
  리피가 건네는 물음에 클라리스가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답했다. 이후, 나와 아네샤를 비롯해 섬의 북쪽, 서쪽 해안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곁으로 오자마자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도 검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다. 리에타가 그와 같이 칼날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려 하였던 것 같았다.
  "리에타가 만들어낸 검이에요, 칼자루는 놓아 두고, 칼날만 다시 만들어서 완성시켰지요. 그 애가 틀부터 손수 다 만들었다고 하는데, 잘 만들어졌어요. 이 정도면 지금 바로 무기로 활용해도 괜찮을 정도예요."
  이후, 클라리스는 리에타의 실력은 믿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리에타가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공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으며, 리에타 역시 다른 사람의 물건들을 잘 만들어 준 경험이 있었고, 이전에도 낡은 검들을 바탕으로 클라리스의 검을 만들어 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리스의 검을 완전히 새 단계에서부터 만들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던지라 리에타 자신도 무척 긴장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했었다.
  "그리고 완성된 검이 좋은 성능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하더라고요, 원한다면 언제라도 다시 만들어 줄 테니, 언제나 요청만 해 달라고 말이에요."
  "그 말대로라옹~ 클라리스, 칼이 필요해질 때가 되면 언제라도 요청하라옹~"
  이에 리에타가 클라리스를 보더니, 언제라도 요청만 해 주면 칼날을 만들어 주겠음을 밝혔다. 처음이라 긴장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잘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미라가 리에타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내 검도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지?"
  "물론이다옹~ 말만 해 주면 만들어 주겠다옹~" 하지만 검을 이미 가진 상태에서 추가로 검을 만드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기도. 다만, 검이 여러 자루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하면 또 만들어 줄 수는 있을 것이란 말을 그에게 덧붙이기는 했다.
  "아무튼, 수고 많았어." 이후, 미라는 리에타에게 수고 많았다고 말하고서 나중에 클라리스와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가자고 청하였고, 이후, 그는 리에타와 함께 항구의 선착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같이 바다를 보면서 편안히 시간을 보내고자 하였던 모양. 하지만 클라리스는 검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고서는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자신은 라니아의 집으로 갈 것이라 말하고서, 린나, 모니카를 볼 겸, 리에타 등과 함께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고자 함이 그 이유임을 밝혔다.
  "클라리스 씨, 미라 씨, 혹시 따라가실 의향을 갖고 계신가요?"
  일단 라니아의 집까지는 따라가기로 했다. 클라리스와 라니아가 서로 어떤 대화를 이어갈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클라리스 그리고 그를 따라 나서려 한 미냐 그리고 요정 소녀와 함께 라니아의 집을 향하는 북쪽 길목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으며, 엘피, 리피도 날갯짓을 하며 클라리스를 따라 나아가려 하였다.

  대장간에서 처음 보았던 요정 소녀의 이름은 루미(Lumi) 로 성명은 루미 베르데아(Lumi Verdea) 였다. 우연히 리에타의 대장간에 들렀다가 클라리스가 새로 검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 것으로 동족이라 할 수 있는 클라리스, 미냐 등과 무척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나에게 클라리스를 따라가는 것에 대해 말한 바라면, 라니아의 이야기에 딱히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클라리스가 가는 곳이라 해서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라 하였다.
  그렇게 일행이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일행은 남쪽의 시내 그리고 그 시내 건너편에 위치한 학교 부근에 이르렀고, 학교 앞의 풀밭에서 요정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소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정문 방향에서 오른편에 위치한 구름 사다리, 상자들을 쌓아놓은 형태를 가지는 철골 놀이 기구들을 아이들이 이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 미끄럼틀도 있었으며, 이런 올랐다가 내려다닐 수 있는 기구들은 고양이 소녀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듯해 보였다. 놀이 기구에 올라탄 고양이 소녀들의 냐옹 냐앙하며 우는 소리가 학교 일대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놀이 기구들을 올라타는 것은 고양이 아이들이 많이 즐기는 것 같아요."
  "고양이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미냐와 루미에 의하면 본래는 놀이 기구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고양이 소녀들이 학교 수업 시간만 끝나고 나면 건물들을 올라다니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행여 있을 수 있는 건물의 피해를 막고자 고양이들의 올라다니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구들을 마을에서 만들기로 했고, 그리하여 학교의 뜰 한 곳에 놀이 기구들이 만들어졌다고.
  "요정 아이들은 잘 이용하지 않았던가요?"
  "요정 아이들 중에서도 올라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는 했지만 요정 아이들은 아주 어리지 않으면 날개를 통해 날아다닐 수 있었기에 굳이 이런 기구들을 올라다니며 노는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조금 크면 나무 위를 오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거나 하지요."
  이야기를 하는 미냐 역시 루미 등과 함께 나무 위를 오가는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클라리스, 미라 역시 어린 시절에는 어떤 놀이를 하며 지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클라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있었지만 미라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미라는 클라리스가 데리고 왔다고 하는데,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라고-그렇다고 해도 수십년 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하지만 미라를 어떻게 클라리스가 데려왔는지에 대해 클라리스는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하며, 그래서 클라리스에게 직접 그것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지만 클라리스 역시 조용히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이기만 할 뿐으로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 하였다.

  라니아는 집에 없었으며, 그 대신으로 그와 잘 아는 사람이라는 어떤 고양이 소녀가 남서쪽 거리의 교회로 쓰이는 큰 나무와 그리 멀지 않은 찻집을 찾아갔음을 밝히고서 린나, 모니카에 대해서는 그 큰 나무 근방에 있을 것이라 말하니, 이에 클라리스는 알았다고 말하고서 바로 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그 때, 그 고양이 소녀가 클라리스의 모습을 보더니, 그에게 이렇게 말하려 하였다.
  "클라리스라고 했지? 너는 그 분께서 계신 곳으로 가 봐,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자 클라리스는 의아해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묻고서, 어떤 사람이 자신을 찾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 고양이 소녀로부터는 어떤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클라리스는 조금은 다급히 서쪽의 광장-풀밭-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교회와 학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금방 찾아갈 수 있었고, 교회 부근에서 린나, 모니카가 함께 뛰어도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어디서 얻어왔을지 알 수 없는 공을 차고 다니며 풀밭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하얀 긴 머리카락을 가진 고양이 소녀가 분홍색 얇은 옷을 입고 뛰어다니고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다소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고양이 소녀가 검은 옷, 푸른 짧은 바지 차림을 한 채로 그와 같이 뛰고 있었으니, 그 모습은 확실히 이전에 라니아의 집에서 보았던 린나, 모니카의 모습과 닮았고, 그래서 그들이라면 라니아가 어디에 있는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소녀들이 잠깐 쉬는 틈을 이용해서 소녀들 중에서 모니카를 향해 다가간 이후에 그에게 물어보려 하였다.
  "혹시 린의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수 있겠어?"
  그러자 모니카가 바로 나를 향해 다가가더니, 나에게 나무 근방에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나무와 가까운 곳에 있는 찻집에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서 모니카는 나에게 엄마를 찾으려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답했다.
  "클라리스 씨의 요청인데, 잠시 라니아 씨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많이 갖고 계신가 봐."
  "그래요?" 그러자 모니카는 놀라면서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한 이후에 교회로 쓰이는 나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니 금방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기도 했다. 이에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서 다시 클라리스를 향해 다가가서 교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찻집이 있고, 그 곳에 라니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였고, 그리하여 클라리스가 앞장서고 그 뒤를 나와 아네샤 그리고 클라리스와 루미와 미냐가 따라가는 형태로 교회의 서쪽 부근을 거쳐, 그 근방에 있는 건물들 중에서 나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2 층 짜리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해당 건물 앞에 몇몇 탁상과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그 곳이 찻집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곳이 찻집임을 알아차리자마자 나는 건물 안에 라니아가 있을 것이라 여기며 그 건물에 다가가려 하였고, 나와 뜻을 같이 하였는지, 미냐와 클라리스 등도 그 건물 쪽을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라니아는 건물 내부의 그리 깊은 곳에 있지 않았다. 그와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짧은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긴 감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리고 머리의 왼쪽 부분-왼쪽 귀 부근-에 하얀 나리꽃 모양의 장식을 달고 있는 요정 소녀가 현관문 근처의 오른편에 있는 의자에 서로 마주보며 앉아서 모종의 대화를 주고 받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현관문을 바라보는 방향에 앉은 클라리스의 곁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클라리스가 앉은 방향을 기준으로 그의 왼편 곁에 앉은 이로 공손히 앉은 채로 요정 소녀 그리고 라니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감색을 띠는 고양이 귀와 더불어 감색을 띠는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이로 고양이 귀를 보자마자 나는 처음 보는 이라 야기면서 미냐 그리고 루미에게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미냐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요, 저 사람은 야누아 신디 (Yanua Scindi) 라고 해요, 이 마을의 촌주 혹은 촌장이라 할 수 있는 이의 딸들 중 한 명이지요. 촌장 혹은 촌주는 현재 이 마을에 있는 고양이 요정들 중에서 가장 많은 자식을 가진 이이지요. 그 촌장에게는 6 명의 딸이 있으며, 그 중 4 명은 장성해서 어린 2 명을 데리고 바깥 성계에 나가 있다고 했는데, 이제 한 명이 돌아온 듯하네요."
  "그렇다면, 저 야누아라는 이는 4 명 중에서 몇 번째 자식인가요?"
  "야누아는 촌장의 맏딸이에요."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미냐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클라리스와는 제법 잘 아는 사이였던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하고서 한 동안 원격으로 연락을 주고 받은 적도 있었다고 클라리스 그리고 야누아라 칭해진 이에 대해 언급하였다.   야누아 신디 (Yanua Scindi, Janua Scindi), 신디닌 야누아 (Şindi'nin Yanua) 나 신디노 야누아 (Scindino Yanua) 라 칭해지는 이로 오래 전에 마을을 떠나 다른 행성계에 정착해 자리잡고 있었다고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헤어져, 멀리 떠나갔다고 하는데, 그가 스스로 원해서 그리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자립해서, 촌장의 어린 자식들을 부양하며 살고 있었으며, 도중에 용병 노릇도 숱하게 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음을 미냐가 전했다.
  거칠고 험악한 생활을 오랫동안 행하였지만 그럼에도 자상하고 아름다운, 여성다운 미녀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음에 대해서는 미냐 등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험악한 세상살이를 버텨오면서 닥쳐오는 위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치운 사람으로 내면에는 거칠고 사나운 일면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미냐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모양. 클라리스는 물론, 미라, 리에타와도 무척 친해서 그들과는 터놓고 서로의 속 마음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클라리스 씨는 물론, 두 분께도 그렇게 위험한 사람은 아니라, 마음 놓고 다가가셔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미냐가 소개를 한 이후, 나는 조용히 찻집의 현관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이에 동료인 아네샤는 물론, 클라리스와 루미 역시 나의 뒤를 따라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야누아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던 미냐는 나와 아네샤, 루미를 따라 찻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미냐는 야누아 같은 이의 인상이 부담스럽기는 하니까." 이에 대해 클라리스가 말했다. 그와 더불어 엘피, 리피도 미냐와 마찬가지로 찻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혼자 있을 미냐가 심심하지 않도록 놀 거리를 제공해 주다가 필요해지면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이후, 일행은 그들과 너무 가깝지 않을 수 있도록 현관 왼편 근처의 자리에 모여 앉았으며, 주문은 그들과 마주한 이후에 하기로 했다, 금방 그들과 마주하게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무로 이루어진 내부 공간 안에 나무 탁자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으며, 천장 위로 노란 결정들로 이루어진 장식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마법 등을 켜서 조명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모양-, 공간의 왼편에는 계산대와 그 너머에 자리잡은 작업 공간이 있었다. 나무 탁자들 중에 사람이 이용하고 있는 곳은 드문드문 있었으며, 계산대 안에는 찻집 주인으로 추정되는 이가 계산대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돈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창가에도 탁자들이 하나씩 일정한 간격을 이루면서 놓여 있었으며, 내가 이전에 본 대로, 그들 중에서 현관문 바로 우측에 있는 탁자에는 흰 긴 머리카락과 흰 고양이 귀를 드러내고 분홍색의 소매 부분이 없고, 치맛단이 아주 긴 얇은 드레스 차림을 한 라니아 그리고 그 건너편에 앉은 요정 소녀 그리고 야누아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 여인이 앉아 있었다.
  "저 애의 이름은 레미스 (Lemis) 예요, 북방에 살고 있는 이이고, 야누아 등과도 나름 친해서 야누아가 이 곳으로 오면서 그와 만나자마자 동행하게 된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며, 클라리스는 요정 소녀의 이름을 언급하고서, 그가 야누아 자매와 나름 친한 사이임을 이어 밝혔다. 그러면서 야누아가 마을에 이른 후에 레미스란 이름의 요정 소녀와 만나면서 그와 동행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근처에서 본 야누아는 클라리스 그리고 레미스와 비슷한 나이 대의 소녀인 것처럼 보였다, 마을을 다스리는 고양이 여인의 장녀라 해서 성숙한 여인의 면모가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훨씬 앳된 소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 다만, 곁에 있는 레미스처럼 나름 성숙한 인상이었지만 앳된 면이 강한 레미스와 달리 다소 어른스러운 인상이었고, 이는 목깃 너머로 그 형태가 보일 정도로 큰 가슴에서도 그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주 짧은 검은 바지를 입고 있어서 양 다리를 거의 드러내고 있는 레미스와 달리 긴 스커트를 입고 있었지만 한 쪽-왼쪽- 부분이 깊게 트여 있어서 이를 통해 왼쪽 다리는 거의 온전히 드러나고 있었다 (오른쪽 부분은 이러한 틈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자세히 보니, 원래는 틈이 있었는데 막아놓은 듯해 보였다).
  '저런다고 라니아 아주머니께서 모르실 줄 알고.......' 그 무렵에 그 모습을 본 클라리스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당시에는 그것에 크게 신경을 쓰려 하지는 않았다.
  탁자를 둘러싸며 앉은 레미스와 야누아 그리고 라니아는 찻집의 카페 잔을 하나씩 갖고 있었는데, 모두 자기로 만들어진 머그 잔(Mugjanî) 이었다. 각각의 머그 잔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라니아의 것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고, 야누아, 레미스의 것들은 거품이 안쪽 면에 묻어 있어서 라니아는 우유가 없는 순수한 카페(Mayukafe), 그리고 야누아, 레미스는 우유가 들어간 카페 (Jeshkafe) 를 이용했을 것으로 간주할 수 있어 보였다.

  "이번에 먀미아 (Myamia) 성계의 먀미아 (Myamia) 로 간다고?"
  "예." 라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야누아가 공손히 대답을 했다. 그리고 먀미아의 부족이 기계 병기군의 위협 앞에 놓여 있는 만큼, 도우러 가는 것이 도리 (Moralità) 일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클라리스가 야누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이렇게 물었다.
  "그 쪽에도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이가 있다고 했었잖아."
  "아샤란 (Asjaran), 모린 (Morin) 같은 이들을 말하는 것 아니야?"
  이에 야누아가 아샤란, 모린이라는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요정 소녀는 미소를 띠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야누아는 그에게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그들 역시 먀미아 부족을 지킬 의지가 강하고 능력도 있는 이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전적으로 그 일을 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능한 도움이 될 사람들은 많을 수록 좋을 것이라 이어 말했다.
  "야누아가 말한 대로란다, 레미스." 이어서 라니아 역시 야누아의 말에 대한 동의를 드러내고, 이어서 도움이 될 사람들은 많을 수록 좋다고 말하고서, 라니아는 설령 그들 모두가 직접 기계 병기군의 근거지에 모두 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마을을 먀미아 부족 사람들과 함께 지켜내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먀미아에 이주한 지는 이제 꽤 되었지?"
  "그렇지, 막 이주해 왔을 때에는 어린 아이였던 세티아(Settia) 와 노바(Nova) 도 이제는 제법 컸으니까."
  레미스가 건네는 물음에 대한 야누아의 답을 통해 세티아, 노바라는 이름은 거기서 처음 들었는데, 아주 어린 아이였다가 이제는 제법 컸다는 이야기를 야누아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야누아를 비롯한 자매가 데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지 않을까, 했다. 이후, 야누아는 사람들 모두가 친절하고 따뜻해서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어려움을 겪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레미스가 다시 한 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잘 된 일이네, 더 어렸을 적에 먀미아 묘족 (Myamiay Naviyërey) 과 같이 지낸다고 했을 때에는 고충이 은근 많았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그러자 야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을 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목소리가 의미심장하게 들려왔으니, 아무래도 먀미 묘족이라 칭해지는 이들과 같이 있으면서 뭔가 나쁜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동족이라고 도움을 주려 했더니만, 그 지경이 되어서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미천한 족속의 도움따위 필요 없다고 콧대나 높이고 있으니."
  이후, 그는 먀미아 묘족이란 존재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 높아진 언성에서 해당 존재에 대한 미움이 드러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상종해서는 안 되는 그런 이들을 만나왔던 것 같다는 듯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라니아가 잠시 고개를 돌려 보더니, 나와 아네샤 그리고 클라리스를 비롯한 일행이 근처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더니,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는 달리 말하지 않고, 야누아 그리고 레미스에게 시선을 향한 채로 누군가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얘들아, 혹시 보고 있었니? 누군가 우리들 근처에 와 있어, 아무래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
  그렇게 라니아, 야누아 그리고 레미스가 일행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루미가 라니아에게 우선 주문부터 하겠음을 밝혔다. 그 때, 레미스가 자신과 가까운 쪽에 앉아있던 클라리스에게 웃으면서 바로 찾아오면 될 것을 왜 굳이 말 없이 지켜보고 있기만 했느냐고 묻자, 클라리스가 답했다.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는 도중에 무턱대로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대답을 하는 클라리스의 표정에서 무안함과 머쓱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후, 레미스는 클라리스에게 미라, 리에타는 뭐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그는 레미스에게 둘끼리 어딘가 좋은 곳으로 놀러 갔다고 답했고, 그러자 레미스는 리에타가 최근에 큰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휴식 삼아 미라와 함께 놀러간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하고서 클라리스에게 사실인지 여부를 묻자, 클라리스는 그런 것 같다고 그에게 화답했다. 이후, 찻집 주인인 밝은 갈색을 띠는 고양이 귀 한 쌍과 비슷한 색의 등까지 내려가는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하얀 천으로 머리를 두르고 분홍색 겉옷과 하얀 노란색을 띠는 긴 바지, 그리고 하얀 앞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소녀가 나를 비롯한 일행이 앉은 탁자로 다가가서 주문을 요청했다.
  여기서 나는 간단하게 우유 카페, 아네샤는 순수 카페, 클라리스는 따뜻한 우유, 루미는 유자차 (Citronateh, Citronteo) 로 주문을 했다. 엘피, 리피도 불러올 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당장에는 안 될 것 같았고, 나중에 엘피, 리피가 들어오면 그 때에 추가 주문을 하기로 했다.
  "주문한 차가 도착하면 그 때 네 곁으로 갈게~." 이후, 클라리스는 추가로 주문한 차가 도착하면 그 때 곁으로 오겠다고 레미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찻집 주인이 하나씩 차를 건네 주면서 클라리스가 우선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라니아가 앉은 그 옆으로 옮기고 찻잔의 손잡이를 잡으면서 찻잔을 왼손으로 들고 자리에 앉아서는 찻잔을 자신의 바로 앞에 놓아 두었다.

  "실로 오랜만이야, 클라리스, 나의 공주님. (Dum tre longa tempo ne vidas, Klaris, vatasino pime-dono)"
  이전까지 보이지 않던 미소까지 지어 보이면서 클라리스에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클라리스를 '공주' 라 칭한 야누아, 그를 보면서 클라리스는 그저 조용히 웃음을 짓기만 할 뿐, 달리 그에게 이전의 그 말에 대해 뭐라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후, 클라리스는 야누아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기로는 무슨 일로 오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기는....... 라니아 여왕님하고 공주님 보러 온 것이지, 뭐. 간만에 이렇게 보니까, 공주님도 좋지 않아?"
  "좋기는 하지." 야누아의 물음에 클라리스는 환하게 웃으며 좋다고 답을 했다. 이후, 야누아에게 클라리스는 듣고 있었다고 말하고서 먀미 묘족에게 이제는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기계 군단에게 짓밟힐대로 짓밟힌 종족이라고 말한 이후에 행성의 엄연한 주인들 중 하나인데, 그들이 멸족당하도록 놓아둘 수 없지 않겠느냐고 이어 묻기도 했다. 하지만 야누아는 그러한 클라리스의 말에 바로 어두운 표정을 지을 뿐, 그에게 어떤 대답도 들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 심정도 이해가 되기는 해, 어렸을 때, 동족 의식과 동정심에 의지해 기계들에게 핍박받고 죽어가는 동족의 일원들을 도와주겠다고 선뜻 나서서 도와주었는데,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나 같아도 그런 이들은 다시는 도와주지 않고, 멸망하는 모습을 그저 방관하려고 했을 것 같아."
  그 때, 라니아가 그런 야누아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듯이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의 일이었다고 말하는 라니아, 그 당시의 야누아는 인간으로 치면 14 세 정도였다고. 어려서부터 가족 부양을 위해 용병 일을 해야 했던 야누아는 먀미아 묘족 전사들이 한데 모여서 뭔가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았고, 이후에 먀미아 주민들을 통해 그들이 기계 병기들로부터 가족들을 구하고 마을 사람들을 해친 기계 병기들, 선조들의 이상향인 고양이 나라 (Nyako-kni) 를 파괴하고 더럽힌 기계 군단을 처치해 마을 사람들과 선조들의 원수를 갚으려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아 보수도 마다하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었다고 했으며,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동생인 마르차와 함께 그들과 함께 하려 했었다고 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동족이 핍박을 받는 모습에 감명을 받고, 동족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뜻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그들과 함께하려 했었대. 마야도 무척 어렸지만, 마르차, 마야 모두 자신들도 나서겠다고 해서....... 아직 어린 마야는 율리아 등을 보살피기 위해 남고, 마르차만 대동했다고 했었지."
  "그래서 전장에 나섰나요, 그 둘이서?"
  이후, 클라리스가 묻자, 레미스는 협곡 전투 때까지는 함께 했었다고 말하고서, 아직 어려서 많은 것이 부족해 큰 활약은 못 했지만, 나름 활약을 했고, 묘족들에게 나름 도움이 된 적도 많았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 전투 이후, 묘족 지도자가 야누아, 마르차가 '해방군 (Asvobozyno Iksa)' 에 가담했음을 알아차렸다고 말하고서, 문제는 그 때부터 발생했음을 밝혔다. 그 이후로는 라니아가 야누아를 대신해서 그의 행적에 대해 야누아, 마르차가 알려준 것이라며, 이야기를 했다.

  해방군의 지도자의 모습을 그 당시에도 야누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험악하고 덩치 큰 고양이 인간이었는데,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야누아, 마르차를 무척 못 마땅해 했었다고 한다. 고귀한 고양이 종족의 투쟁에서 '너무나도 미천한' 인간은 참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내세우며, 야누아와 마르차를 핍박했다.
  이에 야누아는 자신의 고양이 귀를 가리키면서 자신도 인간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선조들은 그들과 같은 고양이들로서, 그들과 근본은 같은 고양이 종족임을 강조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지도자와 간부들의 핍박만 오히려 더 거세질 뿐이었다. 인간을 비하하는 온갖 발언들이 그들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그 현장에서 발견된 빛 방울이 있었어요. 나중에 그 현장을 찾았는데, 거기서 발견된 것으로 그 빛 방울이 남긴 음성을 바탕으로 제가 라니아 아주머니께 말씀드린 거예요."
  이후, 야누아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밝히고서, 그 당시의 음성을 자신이 나름 재현해 보겠음을 밝혔다. 그의 가성으로는 남성들의 거친 목소리를 완연히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어투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대략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Sarera usyakuvo muzyobungara muzuvo jaslali suru tame, vatasira ghotakala nyakorano motomono deharu karyito tahkayino icigidivo hesperi kromta, muzurano haspavo satru koto nai kseli...... (그들은 집사를 자처하면서 스스로를 편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드높은 고양이들의 본성인 사냥과 투쟁의 본능을 억제하려 들었지, 스스로의 비천함을 깨닫지도 못한 주제에.....)
Kuci takede jotovavo dekiri haspala tirira, mizi naili muzuravo kire siri dekiri nai kutnala tirira, cira, ksarato mizivo kutnasaryu naili medeniyetivo dekiri nai dishimishila tirira..... (입으로만 말을 할 수 있는 천박한 종족, 물 없이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더러운 종족, 나무와 풀, 물을 더럽히지 않고 문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타락한 종족.....)

  이후, 야누아, 마르차는 지도자들의 명령에 따라 고양이 전사들에게 끌려가 그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감옥에 갇혔으며, 인간은 기계보다 더 사악한 존재라며, 다음 날이 되면 군단의 기지 공략은 접어 두고, 이들을 처형할 일정부터 마련하라는 지도부가 지시를 내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도부의 결정에 일부 고양이 전사들이 반발했다, 아무리 그래도 주적을 앞에 두고 사소한 적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었다. 이윽고 양보 없는 의견의 충돌은 상호 간의 내전으로 비화되었으며, 이 내전에 모든 고양이 전사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는데, 기계 군단과의 전투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괴성들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감옥을 관리하는 이들의 대부분 역시 전쟁에 가담했으며, 감옥의 관리는 사실상 중단되었고, 그리하여 야누아, 마르차는 그 틈을 타 대충 만들어진 방을 부수고 경비 대원을 죽이고 감옥을 빠져 나왔다. 그들이 몰래도 아닌 정문을 통해 감옥을 나갔으며, 그들이 도중에 감옥에 버려진 무기들을 주워서 나갔음에도 내전에 혈안이 된 전사들은 그들을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이런 어리석은 전사들의 진영에서 나가면서 마르차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로 '기계들한테 몽땅 머리나 찢겨져라! (Makinaraye mina atamaravo varirere!)' 라고 저주를 퍼부었으며, 야누아 역시 '당신들은 거기서 모두 죽어 마땅해!! (Cimirava sazide minaklosuraru kotoye atasiri!!)' 라고 저주를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누아, 마르차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한 그들이 한도 없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압도적인 적의 전력과 맞서는 상황 하에서 인간은 물론, 기계나 다른 동물 종족의 도움이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처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이들 앞에서 고양이 종족은 너무나도 오만했고, 어리석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소한 이유로 고양이 종족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자신들의 주적은 물론, 자신들이 붙잡은 이들을 잊어버리는 행동까지 취했으니, 그 무리가 기계 군단의 압도적인 전력에 의해 패배하고 소멸했다고 할지라도 그 실상을 알게 되면 그렇게 안타깝거나 놀랄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어?"
  "그 이후로는 잘 모르겠어, 아니, 그들 사정이야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지, 애초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이들을 미천하다고 죽이려 든 이들이었는데, 그들에게 대해 내가 진지하게 관심 가질 이유 있겠니?"
  이후, 레미스가 건네는 물음에 야누아는 그들에 대한 악감정을 품은 듯이 시큰둥한 느낌의 목소리를 내어 답하고서, 그 이후에 나중에 그들이 있던 곳에서는 그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음을 밝히고서 부질 없이 패배하고 모두 죽었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클라리스 역시 자업자득의 최후였을 것이라 말하고서 야누아, 마르차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야누아, 마르차가 살아남아 그들의 뜻을 이어가고, 그 종족의 유지에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렇고, 먀미아의 고양이 족 역시 자기들만의 나라를 갖고 있었다고 했었잖아, 그러다가 기계 군단이 행성계에 침입하면서 결국 전력의 차를 이겨내지 못하고 멸망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이후, 클라리스는 먀미아의 고양이 족에 대해 야누아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면서 야누아는 먀미아의 고양이 나라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였다.
  "그 나라에도 문제가 많기는 많았지만, 그래도 바스타체(Bastace) 인지 뭔지가 내세웠던 그 잘나신 '위대한 묘류의 제국 (Ghokila Kedicikino Mukadokni)' 보다야 사정이 많이 나았지. 그야말로 노묘들과 '아깽이들' 만 황무지에 남겨지면서 나라가 망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그리고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들도 확실히 잘 깨달았고, 그와 더불어 살아남은 아이들과 노묘들이 한 가족처럼 뭉치면서 적어도 그들의 시대에서는 내란, 내분 없이 착실하게 나라를 유지해 나아갔어."
  "그렇다면 기계 군단과 대응할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던 거야?"
  "아니, 그것만이 원인의 전부는 아니었어, 그 시점에서는 이미 나라는 쇠퇴하고 있었지. 당시의 아기 고양이들이 성묘가 되면서 옛 수도와 성지를 되찾기 위한 대원정을 시도하려 했다가 실패했었어. 그 대원정 이후에도 당장 나라가 쇠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무리한 대원정을 감행했다가 나라 군대 대부분과 더불어 전쟁에 들은 나랏돈까지 모두 사라지면서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지, 그 와중에 그 무자비한 기계 군단이 들이닥치면서 고양이 나라는 처참하게 멸망하고 말았던 거야."

  이후, 야누아는 고양이 나라의 묘족들은 이전처럼 어리석지 않아서 우주 전함, 전투정들을 재정에 무리가 가도록 대거 사 들여서 그들의 전력으로 활용했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을 전력들을 묘족들의 욕심에 의한 두 차례의 대원정으로 거의 대부분 잃은 것이 그 사악한 세력에 의한 허무한 멸망을 피하지 못한 원인이었음을 말한 이후에 묘족들은 전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기계 병기들과의 전투에서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그들의 압도적인 파괴 공격으로 묘족 전사들은 민중과 더불어 몰살을 면치 못했음을 이어 밝혔다.
  이어서 야누아는 먀미아 묘족의 나라에 대해서는 고양이 요정 족, 드벨파, 엘베 족 모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묘족 나라의 멸망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멸망의 주체가 세니티아 성계권 전체의 주적이라 할 수 있는 기계 군단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의 위협이 먀미아 성계에 어떻게든 부정적인 영향을 가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 기계 군단과 싸우기 위해 나서려는 것이지?"
  클라리스의 물음에 야누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답했다. 다만, 묘족을 돕는 것에 대해서는 먀미아 성계에는 묘족 이외에도 수인 족, 정령 족이 살고 있으며, 먀미아 성계에서 싸우려 함은 그들을 지키기 위함이지, 묘족을 지키는 것, 그리고 묘족 나라의 원수를 갚는 것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어린 시절에 묘족 전사들을 도우려 하다가 오히려 핍박받고 죽음까지 당할 뻔했음을 고려해 보면 그러할만도 하기는 했다.
  "기계 군단의 동향은 지금 어때?"
  "딱히 뭔가를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고 있어. 그래서 아직 여유는 있지만, 그래도 시간을 너무 지체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래서 언제라도 나설 수 있도록 준비를 이어가고 있어."
  클라리스가 다시 묻자, 야누아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클라리스에게 혹시 나설 의향이 있느냐고 묻고서, 있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클라리스는 요청만 하면 언제든지 와 주겠다고 말하고서 마을을 지키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강적들과도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할 텐데, 그 일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야누아, 보기보다 클라리스도 이런 쪽에는 적극적이란다, 이번 일에 반드시 도움을 줄 테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려무나."
  그러자 라니아가 환하게 웃으면서 야누아에게 말했고, 이에 야누아도 기대하고 있겠다고 말했다. 이후, 야누아는 클라리스에게 자리에 없던 미르타(Mirta 혹은 Myrtha) 를 언급하고서 그도 부를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클라리스는 그라면 반드시 올 것이라 말한 다음에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라면 어디든 가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한편, 나를 비롯한 일행과 레미스는 클라리스가 야누아 등과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먀미아 성계가 다음 목적지가 될 수 있겠다고 말하고서 다음 목적지는 그 곳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옆에 앉은 아네샤에게 밝히기도 했다.
  "기계 군단은 그들의 적이지만, 우리들의 적이기도 하니까, 그렇지?"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바람의 정령들은 예로부터 기계 군단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로서, 하늘 너머에서부터 다가올 기계 군단의 공세를 막기 위한 수호자 역할을 맡아 왔고, 그래서 '마녀의 탑' 이라 칭해지는 행성에서 가장 높은 탑의 소유 권한은 바람의 정령에게 주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예로부터 그러하였겠지만 나와 아네샤 등도 유사시에는 기계 군단의 위협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 기계 군단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늘 받고는 했다.
  실제로 이전에도 나를 비롯한 일행-세미아, 리마라 등이 있었다- 기계 군단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기계 생명체들의 근거지를 공격해 오던 기계 병기들로서 다행히 그 수는 많지 않아 금방 격퇴되었다. 그 무렵,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리마라가 기계 생명체에게 다가가서 기계 병기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고, 거기서 나는 그들이 기계 군단의 병기들과는 다른 이들로서,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이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기계 생명체 그리고 병기 군단의 일원들이 같은 뿌리를 가진 동족일 것이라 여기었던지라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그런 나를 다소 놀라게 하기도 했다. 기계 생명체들은 그 군단의 일원을 동족이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기계 생명체들은 그들을 동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들이 말한 바에 의하면 그 기계 군단에 소속된 기계 병기들은 완전한 기계가 아니라는 거야, 그들에게는 인간의 뇌가 장착되어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기계의 몸을 갖고 있고, 기계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그 사고는 결국 인간의 것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지."
  아네샤는 세미아, 리마라와 달리 당시 기계 생명체들을 습격한 기계들과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그 기계 생명체들이 기계 군단 소속의 기계들을 동족으로 취급하지 않았음에 대해 의아해 하면서 물음을 건네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물음에 나름 자세하게 답을 해 주었다.
  "그렇다면, 두뇌에 해당되는 장치의 특성에 따라 기계 생명체들은 동족 여부를 가린다는 거야?"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기보다는 특정 기계가 자신과 두뇌에 해당되는 장치의 특성이 달라도 그들은 특정 기계를 동족으로 여길 수 있었다고 해, 기계 특유의 사고 방식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은 그런 기계들과는 너무나 다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는 거야. 특히,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을 지나칠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고 했어."
  기계 생명체들의 변에 의하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한, 기계들은 인간과 생명체들을 적대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는 주변 상황이나 인간이 자신에게 행한 바를 토대로 적정 수준 이상의 충분한 기반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없이는 인간이나 생명체를 증오하지 못한다고. 현 시대에 태어난 기계 생명체들은 주변 존재들의 호의 속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그들을 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계 병기들은 모종의 이유로 인간이라는 옛 동족을 혐오하는 사고 방식을 가진 채로 기계 몸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별 근거도 없이 인간과 생명체들을 증오하며 살아가고, 자신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는 기계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뇌를 가진 기계 군단의 일원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 병기들을 기계 생명체들은 동족으로 취급하지 않는대."
  이들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닌 것이 아니라 검붉은색을 띠면 기계 군단 소속의 병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관행이 너무 오랫동안 이어져서 이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는데도 기계 군단은 구태여 이 습관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야누아와 클라리스 그리고 레미스는 건너편 탁자에서 앞으로 야누아가 나아갈 곳, 그리고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선 클라리스가 야누아에게 기계 군단의 근거지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기계 군단의 먀미아 성계 내 근거지는 어디에 있어?"
  "아테다르마 (Atedarma) 라는 곳이야." 그러자 야누아는 그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바로 답했다. 그리고 아테다르마라는 곳은 먀미아 성계의 대륙 중부에 위치한 대계곡으로 계곡 사이로 어지간한 강의 하류만큼이나 폭이 넓은 강이 흐르고 있는 곳임을 밝히기도 했다. 기계 군단의 요새는 먀미 (Myami) 강물의 북쪽 너머의 산 위에 위치하고 있다고.
  "그 곳에 일단 자리를 잡고, 그 일대의 하늘 아래에 요새를 구축해 놓고 있지만 이외의 특이한 동향은 나오지 않고 있어."
  "그렇다면, 그 기계 병기들은 아테다르마의 산악 지대에 요새를 차리고 그 곳에 머무르고 있기만 할 뿐이겠지. 그들의 지금 모습은 어떠한지에 대해 보거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어? 먀미아의 동부 지역으로의 침공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이후, 클라리스가 건네는 물음에 야누아는 침공의 조짐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답했다. 다만, 그들은 정체 불명의 검은 물질로 검은 구름을 생성해 요새와 그 주변 일대를 감싸고 있으며, 그 검은 구름 때문에 바깥에서는 요새의 모습을 보지 못하며, 검은 구름 때문에 그 모습을 보는 이들마다 불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두려움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고.
  "네가 오기 전, 남쪽 바다의 어느 섬이 검은 구름에 감싸여 있어서 섬의 모습을 구름 바깥에서는 볼 수 없었고, 불길한 분위기까지 뿜어냈었어. 그것도 같은 현상이려나."
  요새가 검은 구름에 감싸여 있어 바깥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말에 클라리스가 야누아에게 그가 오기 전에 남쪽 바다에 있던 섬이 검은 구름에 감싸여 있었고, 그로 인해 그 바깥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음을 알렸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야누아가 클라리스에게 물었다.
  "그 섬에 기계 병기들의 근거지가 있었지?"
  "맞아." 그 물음에 클라리스는 그렇다고 답했고, 이어서 그 남쪽 바다의 기계 병기들과 먀미아의 기계 병기들은 같은 방식으로 검은 구름을 생성해서 외부로부터 자신들의 근거지를 보이지 못하도록 하였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 검은 구름을 기계 병기들은 처음부터 생성하려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알고 있어?"
  "그 발상지가 바로 먀미아 성계야." 다음 클라리스의 물음에 야누아는 먀미아 성계가 그 발상지라 답했다. 이어서 라니아가 야누아를 대신해서 먀미아 성계의 대륙 중부의 광야를 가로지르는 강가에 고양이 나라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 준 바 있음을 밝혔다.
  "기억나요, 고양이 나라에서 쫓겨난 어린 고양이들과 노인들이 황무지를 벗어나 강가로 이동해 세운 나라로 처음에는 왕국이었다가 그 이후에 제국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셨지요."
  이에 라니아는 잘 기억하고 있다고 클라리스에게 말한 다음에 눈을 감고서 이전에 비해 진지해진 목소리로 아마 여기서는 처음 듣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 말한 이후에 클라리스가 언급했던 '고양이 나라' 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인간들이 사라진 땅에 고양이들이 들어서서 세웠던 '고양이 나라' 는 '바스타체 (Bastace)' 라는 욕심 가득했던 여왕이 즉위하면서 타락했고, 결국 외적의 침입에 힘 없이 멸망했지. 수도 '먀코 (Myako)' 는 불길에 휩싸였고,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모든 고양이들은 고양이들의 핍박과 폭력 속에서 신음하고 분노하던 드벨파 족, 기계 족에 의해 감옥 행성으로 끌려갔어. 하지만 노묘, 어린 고양이들은 용서 받았고, 그들은 먀미아라는 이름의 행성에 있는 황무지에 내버려졌어, 그 아이들이 세웠던 나라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운 것이 먀미아의 고양이 제국이지."

  바스타체의 제국보다는 훨씬 기강이 확립되고 강성해서 오래 이어진 제국이었지만 결국 이 제국도 멸망할 때를 맞이했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생명체를 무자비하게 대하는 강대한 기계 군단의 표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어. 기계 군단은 집착적으로 고양이 제국을 공격해 왔고, 그로 인해 황도 주변의 모든 도시들을 잃고 위기에 처하고 말았지. 여기서 제국의 고양이들은 당시에는 절망적으로 다급한 결단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몹쓸 짓을 하고 말았어.
  고양이 제국의 재상이었던 '탐욕스러운 니미츠 (Nimiĉu de Avideco, Oburto Naru Nimicu)' 는 구국의 결단이라면서 한 가지 전술을 제안했지, 하늘 위로 검은 물질을 뿌려 태양의 빛을 차단하겠다는 것이었지, 기계 병기들이 '고양이 나라' 를 멸망시킨 기계 병기들처럼 태양 빛과 열의 기운을 에너지 원으로 삼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의한 일이었어. 그래서 '검은 폭풍 (Krola Arasi)' 라는 이름의 검은 물질을 하늘 위로 흩뿌려 하늘의 태양을 가리고 어둠 속에서 에너지 원을 잃고 움직임이 주춤해졌을 기계 병기들을 공략해 나아가기로 했었지.

  "엘베 족과 기계 생명체의 병기들도 태양 에너지로만 구동하지 않았고, 해당 정보를 고양이 제국에서는 분명 입수를 했을 텐데, 그럼에도 그런 바보 같은 결단을 내렸다고요!?"
  그러자 경악하는 듯이 레미스가 물었고, 이 물음에 라니아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랬었단다." 라고 답했다. 자신은 여행 도중에 그 소식을 들었고, 그러면서 니미츠의 결단에 대해 '자신과 백성들이 다함께 극약을 먹고 죽자고 하는 짓' 이라 평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계 병기들은 아무렇지 않았지, 고유의 '플라즈마 발전기 (Plasmo-Generatoro, Plazma-Jeneratoro)' 와 '플라즈마 반응로 (Plasmorekatoro, Plazma-Reaktoro)' 를 보유하고 있던 기계 병기들에게 태양광 차단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기술력, 전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고양이 제국의 병사들과 병기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뿐이었던 거야. 결국 그들의 황도는 이런 기계 병기들에 의해 무참히 유린당하고, 수많은 고양이들이 학살당하거나 그들의 모선으로 끌려가고 말았어.

  "그런 멍청한 결단을 내린 니미츠는 어떻게 됐나요?"
  "처형됐대." 레미스의 물음에 클라리스가 대신 답했다. 니미츠의 어리석은 전쟁에 대해서는 클라리스도 이미 듣기는 했었다고 했다, 자세한 내막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따름이라고. 다만, 검은 물질에 의한 태양열 차단이라는 어리석은 수단을 활용하였던 것에 대해서는 이전까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런 기술이 쓸모가 있다고 여기며, 기계 병기들이 그 이후로는 자신들이 활용하게 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그러자 라니아가 답했다. 고양이 제국에서 하늘의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고 말하고서 분명 모종의 물질들을 이용해 만든 화합물의 일종이겠지만 그 제작 원리 등이 알려져 있지 않아 당시-지금도!-에도 미지의 물질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제작 원리가 계속 알려지지 않음에는 급히 제작한 것이고, 다시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해서 다량의 화합물을 제작하고나서는 제작 원리에 관한 모든 문서들이 폐기 처분되었을 수도 있고, 제국이 멸망하고 황도가 파괴되면서 관련 문서들이 소실되어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모양.
  "비잔티아의 불 (Bizantia Fajro) 도 아니고......"
  제작 원리가 알려지지 않은 물질이라는 점에서 클라리스는 '비잔티아의 불' 이라는 미지의 화염 물질을 연상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클라리스는 라니아에게 미지의 물질이라면 후세의 사람들 중에 재현을 시도하려는 이들이 있었을 법한데, 그러한 시도가 없었음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그런 시도가 없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렇게 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렇지. 무의미한 재앙을 일으킬 뿐이라 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
  그 물음에 라니아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답했다. 비잔티아의 불은 실제로 비잔티아라는 나라에 침입해 온 이들에게 재앙과 같은 힘을 발휘했고, 그러한 화력이 있었다면 기계 군단에도 나름 영향을 주었을 법하지만 그 암흑 물질은 결국에는 관리들의 오판에 의해 만들어져 '하늘만 가리는' 어이 없는 결과만 보여주었으니, 잊혀지고 묻혀도 할 말이 없는 존재이기는 했다.
  "기계들이 재현한 물질 역시 원래 물질과는 다르겠지요?"
  이후, 레미스가 물음을 건네자 라니아는 그렇다고 답했고, 그러면서 그들이 활용하는 것은 색을 띠는 연기일 뿐으로 원형과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창 대화를 이어가는 도중에 앉아있기가 지루해졌는지, 야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어서 클라리스가 그런 야누아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일행이 앉은 탁상에서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루미가 자신도 끼어들어 보겠다고 말하고서 밖으로 나갔고, 나 역시 이들의 근방에서 그들이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 보려 하니, 이에 아네샤가 나에게 말했다.
  "자리는 잘 맡아두고 있을게, 행여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야누아, 클라리스는 밖에서 요정 리피, 리지와 같이 놀고 있던 미냐를 발견했고, 이어서 미냐가 야누아를 발견하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에게 다가와 "오랜만이야....!" 라고 인사를 하였고, 이에 야누아는 미냐를 보면서 환하게 웃으며 답례의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면서 미냐에게 물었다.
  "미냐는 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어?"
  "그게...... 야누아와 같이 있으면 웬지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미냐는 야누아를 보면서 말을 잘 잇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소 날카로운 야누아의 인상이 미냐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모양. 이에 야누아는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그랬었구나." 라고 말했다. 그리고 찻집 왼편에 있는 나무 근처로 다가가, 그 곁의 벤치 한 구석에 앉았고, 이어서 클라리스가 그런 야누아의 왼편 곁에 앉았다. 그러는 동안 미냐는 나뭇가지에 걸린 그네에 앉았고, 이어서 루미가 그런 미냐의 왼편에 서 있으려 했다. 리피, 리지는 이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가 4 사람이 자리를 잡자 리지는 클라리스의 왼편 곁에, 그리고 리피는 루미의 곁에 머무르려 하였다.
  "야누아도 우리 같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할 텐데...... 인상이 조금 날카롭다보니, 미냐 같은 애들은 부담스럽기는 할 거야."
  이후, 루미가 클라리스에게 야누아에 대해 말하자, 클라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렸을 때부터 험난한 곳에서 살아간 흔적이 인상에 남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서 본인도 자신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특유의 인상 때문에 한계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빵 만드는 법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 야누아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아무래도 요리 같은 것은 스스로 할 필요가 있기는 하니까."
  이후, 루미가 미소를 띠면서 야누아에게 묻자, 그는 밝게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루미가 야누아의 치마 왼편을 가만히 보더니, 남은 쪽도 이제 터 놓고 있어도 좋다고 말했지만 야누아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이후, 한 동안 그들 사이에서 사적인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라 적지는 않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그 잡혀갔다는 고양이들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옛날에 먀미아에 있다가 기계 병기들에게 잡혀갔다는 그 고양이들 말이지?"
  이후, 미냐가 야누아에게 옛날에 먀미아에 살던 이들로 기계 병기들에 의해 잡혀갔을 고양이들에 대해 물었고, 이에 야누아는 그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리고서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자신이 라니아 등에게 들었다면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 2-6. Go to the Back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