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로아 (Jibroa).
가브릴리아 (Gabrilia) 지역의 북서단에 자리잡은 도시로 가브릴리아의 모든 도시들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중심 도시인 가브릴리스 (Gabrilis) 와는 거리가 제법 되어서, 바로 가브릴리스로 가려면 철도 등을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미르 (Hamir) 그리고, 그 동부 지역인 하야라 지구 (Chayara) 와 선상 교역을 이어가는 도시이지만, 근래에 사당에서 벌어진 괴물 출몰 사태로 인해 항로가 폐쇄되었다가,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는지, 항로가 재개방되기 시작했다. 가브릴리아가 7 개 지역 중에서는 가장 사람 수가 많은 편이라지만, 아무래도 중심 도시인 가브릴리스 (Gabrilis) 그리고 동쪽 인근의, 미하엘리스 (Michaelis) 와 가까운 항구인 제브라스 (Jebras) 등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한 편에 속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브릴리스, 제브라스 등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일 뿐, 그 도시 역시 나름 도시다운 면이 있는 곳이다.
지브로아 동쪽 교외 지대에 비행선이 착륙한 이후, 일행은 곧바로 걸어서, 중앙 지구에 위치한 시청으로 갔고, 그 곳으로 가서 시장 및 시청 관계자들에게 지브로아의 괴물 사태가 해결되었음을 알리려 하였다. 다만, 그 시점에서는 에오르 자매와 리 셀린, 예나 등이 먼저 와서 해당 사항을 알리고 있었던지라,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은 특별히 더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일까지 마치고 난 이후, 나는 시청으로부터 사례금을 어느 정도 챙겨 받고서, 시청을 나왔다. 이후, 일행은 비행선에서 하룻밤을 잔 이후에 아침이 되자마자, 가브릴리스로 바로 가겠다는 예나 그리고 일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에오르 자매, 리 셀린 등 그리고 일단 베라티사로 간다는 셀린, 리사 선생님과는 헤어지게 되었다. 다만, 아잘리, 프라에미엘 그리고 탐파, 사라는 일행에 남은 탓에 일행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숙박할 곳은 비행선으로 돌아가기 전, 카리나가 아는 사람 집이 있다면서 그 곳에서 하루 신세 지내다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앙 지구 106 호 집으로 시청 남쪽 부근에 자리잡은 광장 서쪽 인근에 있는 건물이었다. 카리나는 그 많은 일행을 식사는 밖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하루 정도 지내다 가겠다면서 그 집에서 하룻동안이나마 거주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브릴리스로는 모레에 가기로 했어." 카리나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기를, 가브릴리스에 괴물 사태로 연기되었던 행사를 3 일 후에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 했고, 그래서 행사 전날인 2 일 후에 그 곳으로 가려 하였던 것 같다.
숙박하러 106 호 집으로 가기 전까지는 밖에 있기로 했지만, 일행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몇 명씩 흩어저 움직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선, 카리나, 세니아가 나에티아나와 함께 놀러 갈 곳이 많아 보였을 시내 서쪽 근방으로 가려 하였고, 프라에미엘이 탐파, 사라와 함께 해안가로 가기로 한 만큼, 나는 세나, 아잘리,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를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나는 아잘리 등과 함께 광장 부근의 상점가를 둘러보면서, 상점가에 어떤 곳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이러다,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나, 아잘리하고만 동행하면 어쩌나 싶었으나, 다행히도 잔느 공주는 세나를 따랐고, 세나가 나와 함께 하기를 청해서 그리하여 그 세 사람이 나와 아잘리를 따라 다니게 된 것이었다.
일행과 함께 하게 되면서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는 세나 그리고 프라에미엘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려 했었다. 틈만 나면 잔느 공주가 세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읽어야 할 책이나 배움 등에 관한 여러 조언을 그로부터 받고는 했었다. 그 때마다 세나는 귀찮아하지 않고, 가능한 대로, 그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려 했었던 것 같다. 다만, 괴물 사태 해결 이후로는 잔느 공주, 루이즈 모두 세나에게 무언가 물어보거나 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아무래도 '그 사건' 을 목도한 이래로 이런저런 복잡한 심경을 느꼈을 세나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나 씨, 이제는 괜찮지요?"
동행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될 무렵, 잔느 공주가 자신의 왼편 곁에 있었을 세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제는 괜찮아요." 라고 화답했다. 이후, 세나는 자신을 비롯한 이들과 동행하면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잔느 공주가 온화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힘든 때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때도 있으니, 괜찮아요."
그러더니, 세나에게 함께 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고서, 덕분에 세상에 대해 많은 것들을 즐겁게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지금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잔느 공주는 자신에게 물음을 건넨 세나를 의식하며 답했는데, 실제로 세나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여기고 있음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글을 쓰고 나니, 그 이외에 예나 역시 의식했을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오히려 폐가 될 따름이겠지만, 그럼에도 짜증 하나 없이 저희를 동료로 대해 주시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리고서, 그렇게 일행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말도 있었잖아, 옛날 말 (Ancientamal) 이라고 해야 하나?"
그 때, 내 곁에서 나와 동행하던 아잘리가 그 이야기에 대해 내게 이렇게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랬었지." 그 물음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다고 답했다. 이래저래 여러 말들을 익혔다고 했다만,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많다. 이전까지 들려왔던 옛날 말 (고대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고대보다 훨씬 전의 역사의 언어이므로 고대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름이라던가, 브리태나 어휘 등이 간간히 들려와서 그것을 통해 그 뜻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있기는 했으나, 들려온 말들 중 대다수는 그런 추측조차 불가능했던 것들이었다.
잔느 공주, 루이즈는 그런 말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그런 말을 하는 존재(들)과 의사 소통도 가능했던 이들이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일행이 처음 듣게 된 계기 역시 잔느 공주였다. 그런 그가 일행과 함께 하고, 때로는 괴물과 맞설 때에도 함께 하게 되는 것은 잔느 공주가 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행이 원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 만큼, 고대 언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이가 없었고, 그래서, 잔느 공주가 일행과 동행하지 않으려 해도, 그런 것을 종용하는 이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기 저 잔느 공주님하고 루이즈 씨, 두 분들이 그런 말을 아주 잘 쓰시는 분들이야,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주 귀중한 분들이지, 우리는 뭔 짓을 해도, 배울 수 없는 것을 갖고 계시니까."
"일종의 통역 담당인 거야?" 이후, 아잘리가 그렇게 묻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해야 하나." 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실제로 잔느 공주는 연수 등의 말을 통역해 준 적이 있기도 했으니, 그렇다고 쳐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더라도, 잔느 공주님을 데리고 있어야 할 때가 있고, 그 때에는 공주님을 잘 지켜 드려야만 하는 거지."
"그런데, 전에는 무슨 보호막 같은 것이 잔느 공주님하고 루이즈를 보호하고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물었고, 내가 그 물음에 "그랬지." 라 답했다. 실제로 잔느 공주, 루이즈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지, 무지갯빛의 보호막으로 보호받고 있었고, 그 보호막은 어떤 공격도 막아냈기에 두 사람은 보호막에 의지해 무사히 머무를 수 있었다. 그 보호막은 일행의 싸움이 끝날 즈음, 사라졌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게 된 거야? 누가 가호라도 해 준 거야?"
"거기 있던 혼들이 그 곳에서 살았던 인간들의 혼들이었어.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잔느 공주님, 루이즈와도 인연이 있었고. 그런 혼들이 잔느 공주님 그리고 루이즈를 알아보면서 살아남은 인간인 그들이라도 보호하려고 나름의 힘을 쓰려 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면, 정확한 이유는 너도 잘 모른다는 거지?"
"그렇지." 이후, 아잘리가 묻자, 내가 다시 답했다. 그리고, 혼들이 암만 마력을 쓸 수 있다고 해도, 잔느 공주, 루이즈 두 사람을 감쌀 수 있을 만한 구체를 온전히 마련할 수 있을 만한 힘을 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원래 그들은 마법과는 인연이 없었던지라, 그런 힘을 구현할 수 있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에 의한 우연의 소산 정도로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처음에는 광장 부근의 상점가들을 둘러보며,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상점가는 자리잡은 건물들 중 대다수가 물품, 의상 가게들이고, 그들 사이로 식당, 찻집이나 공예품 가게 등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전형적인 시내 상점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은행 (Banka, Bangka) 이나 병원 같은 시설의 모습도 시가지 곳곳에 보였고, 간혹, 서점, 인쇄소, 각종 공방들이 눈에 뜨일 때가 있었는데, 나는 전형적인 상점 건물보다는 인쇄소, 공방들을 더욱 마음에 들어했고, 그들의 모습을 더 오래 지켜보고는 했다.
"인쇄소나 공방에서 자주 일했었기 때문이었지?"
그것에 관한 혼잣말을 하는 것을 어떻게 들었는지, 아잘리가 내게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을 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친구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울 일도 없거니와, 그것이 또 나에 관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바로 답을 해 준 것. 아잘리는 예전부터 괴물 사냥꾼들이나 탐험가들을 자주 따라다녔다고 했었다.
상점가를 둘러보며 걷는 동안, 잔느 공주와 루이즈에게 세나가 거리에 있는 가게들에 대해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있었다. 서점을 지나는 동안에는 진열된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옷 가게를 지나는 동안에는 진열된 옷에 대해 알려주었으며, 식당을 지나면서 식당이 취급하는 음식들을 알려주는 등, 분주하게 이것저것 알려주려 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보니, 처음에는 나와 아잘리가 앞장서서 길을 갔으나, 이후로는 세나가 앞장서서 길을 가게 하려 하였다. 뭔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앞장서서 가는 편이 여러모로 유익했기 때문이었다. - 더 나아가, 나는 아잘리에게 잔느 공주, 루이즈처럼 세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가라고 하기도 했다.
"나도 배울 만큼 배웠다고! 적어도 저 아가씨들보다는 아는 게 많-"
"됐고, 너도 같이 다녀." 당연하게도 아잘리는 그런 내게 항의를 했으나, 나는 그런 항의를 무시해 버렸다. 아잘리는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고, 배울만큼 배운 만큼, 나름 자존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움의 깊이가 그렇게 깊다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성적부터 딱히 좋은 편이 아니었던 아잘리가 잔느 공주, 루이즈와 비교해서 유난한 수준이냐면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나를 따라 길을 걷는 동안, 잔느 공주, 루이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려 하였고, 그러면서 두 사람이 자신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려 하는 세나의 목소리를 꽤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소 때의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드러나고 있었다.
"아르산, 너도 학교에서는 저랬었어?"
"잘 모르겠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무렵, 아잘리가 내게 물었으나, 학교 생활하던 무렵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렇게 답을 했다. 아무래도 아잘리는 내가 학교 다닐 무렵에는 잔느 공주 등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고 여기었던 것 같다.
세나는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잔느 공주, 루이즈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려 하였고, 그 목소리에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도중에 한 번씩 아잘리가 세나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특정 옷의 유래라든가, 책에 수록된 이야기나 역사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장난삼아 하는 짓거리가 대다수였던 만큼, 그 때마다 내가 참견 좀 하지 말라고 그를 끌어내고는 했다.
나 역시, 세나를 따라 다니면서 찻집들을 살펴보려 하였다. 세나 등의 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 만한 찻집들을 살피려 했던 것. 그러나, 들러볼 만한 찻집을 발견하고 나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직접 가르쳐 주려 하지는 않았다. 때가 되면 세나 등에게 알려주려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세나가 열심히 두 사람에게 가르치는 데, 끼어들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을 가르치는 것에는 큰 재능이 없다고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여기고 있기도 했었다.
그 후, 대충 시내 일대를 둘러보고, 중앙 광장으로 돌아올 즈음, 내가 세나 등을 이끌고, 해변이 자리잡은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세나 등의 세 사람을 데리고 있는 채로, 이른 아침의 고요한 거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남쪽 길목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어느 십자로를 지나칠 무렵, 십자로 남쪽 근방의 길 오른편에서 어느 가게의 모습을 우연히 구경하게 되었다. 인형들이 비치된 가게들로 아직 개점할 때가 아니라, 가게의 문은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가게를 지나치려 할 즈음, 잔느 공주가 가게의 인형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 보였다.
"저 인형들이 갖고 싶으신 거예요?" 이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나가 묻자, 잔느 공주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고, 어렸을 적에 저렇게 생긴 인형들을 자주 보고는 했었다고 답했다. 인간 세상이 남아있을 시점에도 갖고 싶어하기는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련하지는 못했다는 말을 이어 건네기도 했었다.
"마법이나 연금술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어지간해야지, 저런 것은 안 돼." 그 대화를 듣고서, 아잘리가 묻자, 내가 바로 화답했다. 그러다, 인형을 만들 때 쓰일 수 있는 재료를 떠올리면서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재료라면 될 지도 모르긴 하겠는데." 그 후, 나는 고개를 돌려 잔느 공주 등에게 혹시 갖고 싶으냐고 물었으나, 그는 그 물음에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게 자신은 그 때의 어린 아이가 아니고, 그런 인형 하나에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답을 했다.
이후, 나는 거리에서 우연히 연금술사가 차렸을 것처럼 보이는 증류 공방 (Chliyrcë) 을 지나가게 되었다. 건물 자체는 작았고, 그래서 주변에 있던 옷 가게들 중심의 상가 건물이나 식료품 상점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기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뻔하다가, 건물의 유난한 외관을 자세히 보면서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그렇게 길을 지나가려 할 무렵, 내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느 공주의 목소리였다. 그는 늘, 세나에게만 질문을 했던지라, 이번에도 어련히 그러하겠지, 싶었는데, 내게 질문이 들어오자, 처음에는 당황했다.
"아르사나 님, 여기서도 독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증류 공방을 보면서 루이즈와 함께 알쿨 (Alkuhl) 이라든가, 술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 거리가 나왔는데, 세나가 차마 대답을 해 주지 못할 것 같아, 어둠의 세상에 발을 걸치고 있을 법한 내게 질문을 건넨 것 같았다. 그렇게 됐으니, 질문에 답을 해 주기로 하였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요 해요. 술이라면 있기는 한데, 거기서 나온 알쿨은 마법 공학자들이나 약사들의 시약이나 소독제, 소재 개발 자료 등으로 주로 소모되기에, 마실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 편이지요. 마시면 지력, 정신력에 해가 된다고 알려져서, 지력, 정신력이 생명 그 자체인 마법사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마시는 것은 금기일 거예요."
그리고, 이전에 지나친 공방에 대해서도 술을 만드는 곳이 아닌, 약이나 공학 소재 개발처일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루이즈가 그렇다면, 그런 재료로 마법사들은 무엇을 만드느냐고 묻자, 아잘리가 나를 대신해서 이렇게 대답을 했다.
"램프 용 연료나 소독약이라든지, 인조 옷감, 플라스티카 (Plastika) 등의 물질들을 제조하더라고요, 마법 학당 같은 제한적인 곳에서의 일이지만, 그런 재료들을 이용해 화약을 제조하는 경우도 있어요. 방금 전의 인형 가게에서 본 인형들의 재료인 솜털이나 천을 저런 알쿨 등의 재료를 이용해 합성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엘베 족이나 드벨파 족은 이런 알쿨 수용액에 약초나 열매 류 등을 넣어서 알쿨 음료 (Likœr) 로 활용한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사례는 못 봤네요."
그리고서, 그에게 순도 높은 알쿨을 제조하는 경우에는 대개 그런 용도로 쓰인다고 알고 있으면 된다고 이어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 때에는 그 정도로 끝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 달리, 이후로 루이즈로부터 이런 질문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사나 님, 마법사들이 약이나 물질을 제조할 때, 쓰는 소재로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저 옆의 잔느가 그것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던데."
아잘리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마법 공학에는 사람에게 위험한 괴악한 물질들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어서 그것에 대한 공포심, 경계감 등으로 인해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실상이 어떠하든, 나 역시 잔느 공주, 루이즈가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그것에 대한 답변을 하려 하였다.
"그런 거 없어요. 음식이나 물약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사람이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이고, 광물이나 딱 봐도 독성이 있을 것 같은 물질은 쓰지 않아요. 흔히 말하는 치료용 물약이란 것들 역시 물이나 과즙 혹은 약초 추출물 등에 치유 마법을 걸어놓아 마법 효과를 내는 정도이고, 소독약 류도 본 바탕이 알쿨인 것만 제외하면 다르지 않지요. 마법 공학을 통해 만들어지는 물질들의 주 기반 재료는 옥수수 (Gosuz) 나 사탕수수 (Sacerzeoni) 에서 추출한 알쿨 등의 물질이고, 염료나 도료의 재료로 광물을 쓰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예요, 인간 시대나 지금이나 해로운 물질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후, 그 답변에 거드는 듯이 아잘리가 이어 말했다.
"그 말 대로일 거예요, 녀석하고 제가 다닌 곳이 마법 학교는 아니지만, 녀석도 마법 학당들을 오가면서 넘겨 짚어 배운 것들이 꽤 있거든요, 괴물 사냥에 쓰일만한 화약 류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 하면서 그랬겠지만. 아무튼, 녀석이 배워서 저 한테도 알려준 것들 중에는 마법 공학 소재에 관한 것들도 꽤 있으니, 그 말은 믿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녀석하고 제가 어렸을 때, 본 온갖 잡학 사전에 언급된 희한한 재료들이 있었어요. 메르쿠리아 (Merkuria) 화합물이라든지. 그것들을 보면서 위험하다 싶은 것들이 많다고, 한결 같이 언급했었는데, 그런 물질들에 대한 생각은 다른 애들이나 어른들도 저희와 딱히 다르지 않더라고요."
이후, 잠시 길 한 곳에 자리잡은 벤치에 나란히 앉으려 할 즈음, 벤치의 한 가운데 (첫 번째는 내가, 두 번째에는 아잘리가 앉았다. 가슴도 큰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보니, 끼어있는 느낌이 있었다) 에 앉은 루이즈가 내게 루이즈가 물으려 하였으니, 이 세상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주된 방식에 관한 질문으로 서재에 수록된 책들이나 안쇄소 등의 모습을 보다가 불현듯 궁금해져서 질문을 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없지만, 타자기가 있어요. 자판의 버튼들을 눌러 신호를 보내면 타자기 위에 빛으로 상이 떠오르고, 그 상이 신호를 받아서 문자를 쓰는 방식이지요."
샤르기스 시청에서 마리아가 가져온 검은 휴대용 타자기, 그리고 하미르의 찻집에서 보았던 휴대용 타자기들을 떠올리며, 타자기에 대해 설명하려 하는데, 무슨 방식인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루이즈가 바로 알고 있다고 말을 건네고서, 그것에 대해 바로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조금 큰 책자 크기만한 휴대용 타자기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타자를 통해 글자 신호를 기기로 보내면, 타자기가 그 신호를 기억하고 있다가, 사용자가 글을 열람하고 싶어하거나, 인쇄를 하려 할 때마다, 빛의 상으로 글을 보여주거나, 인쇄 기기로 해당 신호를 보내서 기기가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찍어내어 종이 문서를 만들 수 있다고 했었다고 들었어요,"
더 나아가, 신호는 인위적으로 없애버리거나, 기기가 고장나지 않는 한,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더불어, 이전에 미냐에게 설명할 때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신호에는 규약이 있고, 타자기 제조자들은 해당 규약에 따라 신호를 글자로 변환해야 한다는 규칙, 그리고 타자기 내부에는 에너지 결정이 있으며, 결정은 많은 양의 신호를 저장할 수 있지만, 그 정도에는 한계가 있어서 한계에 부딪치면 오래된 것부터 순차적으로 없어진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예나 교수님께서 알려주셨나 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바로 알아차렸다.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는 예나와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러한 지식을 전수 받았을 것임이 분명했다.
"예나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묻자, 루이즈는 바로 그렇다고 화답하고서,
"그 분께서 기기를 본인께서 사용하시는 타자기를 직접 보여주시면서 알려주셨어요."
라고 이어 언급을 하였다. 이전의 마법 재료에 관한 질문 역시 예나가 이 세상에 쓰이는 마법 재료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기는 했지만, 잔느 공주가 그럼에도 걱정이 되어서 확인차에 질문한 것이었다고 했었다. 그러자 나는 그런 루이즈에게 "그랬었군요." 라 화답을 하고서, 조용히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예나 교수님, 두 분을 그냥 보호하는 정도만 하실 줄 알았는데, 꽤 많은 일을 하셨었구나.'
"저 두 분, 은근 아는 게 많으신 분들 같아."
"베라티사의 예나 교수님께도 많이 배우셨을 테니까." 아잘리의 물음에 내가 화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뭐 아쉬운 게 있냐고 물으니, 그로부터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말이지. 지금의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을 미인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이를 통해 미인들에게 호감을 조금씩 얻어가면서 가까워지는 것을 기대했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고 해야 할는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건네는 물음에 나는 비웃음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화답했다.
"참 아쉬운 일이었겠다, 그렇지?" 그리고서, 두 사람 모두 예나와 함께 있었을 텐데, 어떤 의미에서는 천만 다행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바로 옆에서 지켜봤을 루이즈가 조용히 웃음을 지었고, 잔느 공주 역시 그 대화를 들으면서 미소를 띠는 모습을 보였다.
"두 분, 많이 친하신가 봐요." 이후, 잔느 공주가 나와 아잘리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아잘리가 "그럼요." 라고 답하고서, 이렇게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저 애가 샤하르에 올 때부터 친했어요. 주니오인가, 그 아저씨하고 같이 왔다가, 이후, 학교도 다녔는데, 그 때 이후로 친해지게 된 거예요."
그리고, 잔느 공주의 처음부터 친했느냐는 물음에는 그렇지는 않았다고 답했다가, 이후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친해진 것이라 이어 말했다. 그 무렵에는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리사라는 무인에게 내가 사사를 받고, 그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모험을 떠나다 보니, 정말 친구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중등, 고등 교육 과정 때도 같은 학교에 있게 되었지요. 그 애 한테도 친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학교 내에서는 거의 다 정리하고, 나를 비롯한 소수만 남겼죠, 내가 그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예요. 처음에는 그냥 지나쳐 갈 인연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 오래 갈 것 같은 친구 사이가 된 거예요."
이후, 루이즈가 물었다,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했느냐고 물은 것. 그 물음에 내가 그를 대신해 답했다.
"그랬죠. 사실, 여자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그러는 경향이 있었다고 해야 할지. 저하고 같이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 보통 일들은 아니다 보니, 이야깃거리로는 참 좋았을 것이고, 여자아이들의 흥미를 사기에는 참 좋았을 것 같기는 해요. 경험담일 테니, 여자아이들에게 용감하고 강한 사람으로 여기어질 수도 있었겠죠."
"그랬는데, 막상 여자아이들은 내가 아니라, 저 아르산에게 더 많이 끌렸었어요. 그래서 아르산한테는 가까운 여자아이들, 여자들이 참 많았어요. 그들 중에 실제로 그한테 반한 이도 있었고."
"정말이에요?" 이후, 아잘리가 언급한 것에 대해, 루이즈가 놀라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아잘리는 정말이라고 답했다. 남자 행세할 때에도 여자아이들이 많이 좋아했고, 여자인게 밝혀진 이후에도 그랬다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지금은 안 그러하신 것 같은데."
"학교를 졸업하면서 정리해서 그래요." 아잘리가 답했다. 그리고, 주로 떠돌면서 괴물 사냥이나 하면서 지낼 텐데, 그런 이를 뒷바라지하면서 고생하는 거 따위 원치 않는다며, 자기를 찾아오지 말고, 더 좋은 사람 만나며 다니라고 했을 것이라 밝혔다. 실제로 졸업할 무렵에는 친구 관계는 모험가가 되겠다고 했던 아잘리 등을 제외하면 다 정리했고, 그 사유가 그가 말한 바 그대로였기에, 이어지는 나를 향한 사실 여부에 관한 질문에 그가 말한 바가 모두 사실이라 바로 인정하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생의 동반자는 누가 될 것 같아요?"
"아잘리겠죠." 그러자 내가 조용히 웃으면서 답했다. 가마일 산의 천문대에서 일하면서, 소르나와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마법 학자로서 살아가고 있을 그와 얼마나 삶이 잘 맞을지 몰라서 '좋은 친구' 정도로 남는 편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저 친구, 소꿉 친구가 있었다던데." 그 때, 아잘리가 말을 걸려 하였다. 예전에 소꿉 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잘리에게는 이미 지겨울 정도로 해 주어서 알 만큼은 알았을 테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꺼내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소꿉 친구요?" 그리고, 잔느 공주의 물음에 아잘리가 바로 그러하다고 답하고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했던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다 :
어릴 적에는 슈라일 교외 호숫가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고 있다가, 우연히 소리라는 아이를 만났으며, 한 번씩 자신의 옛 집을 찾아오며, 가끔은 집에서 자기도 했었다. 이후에 어머니가 소리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내가 슈라일을 떠나가고, 소리는 베라티사로 유학을 떠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늘 했던 이야기를 나름 재현해서 알려 준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잔느 공주가 바로 내게 그 소리라는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아잘리가 그런 나를 대신해서 답하기를, 나 역시 잘 알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베라티사의 마법 학당에서 마법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고 여기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소리는 이후, 어떤 부호의 자식과 결혼했을 것이라 밝혔는데......."
그러는 동안 잔느 공주, 루이즈 모두 가만히 아잘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이전에 건물들에 대한 세나의 설명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뭐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듣고 있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곧, 나륨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여기며, 그의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려 하였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거나 한 적은 없어요. 자기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것 같던데, 어딘가에서 들려온 소문을 믿은 것 같다고 말하기에는, 그 애가 그럴 애가 아닐 텐데, 이런 생각도 들고, 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이후, 루이즈가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에 대해 물었으나, 아잘리는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아잘리는 그 소꿉 친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 앞에서는 굳이 하고 싶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소꿉 친구는 저 애의 추억 거리, 그 정도일 것 같아 보여요. 그러고 보니, 소꿉 친구 모습이라고 알려진 게 있었는데...... 카리나 씨께서 보여주신 게 있더라고요. 소리의 어린 시절, 그리고 아르산의 어머니가 같이 그려진 초상화였는데."
그 역시 카리나를 통해 그 초상화를 볼 수 있었다고 했으며, 다소곳한 인상의 소녀, 그리고 당당한 인상의 소리가 같이 그려진 모습이었음을 밝혔다.
"아르산은 그 때, 잠들어 있어서 초상화 모델이 되거나 하지는 못했고, 소리의 친구였던 여자애가 대신 모델이 되어주었다고 했었지요, 그 여자애가 훗날 소르나가 되었던 것도 그 때 알았고. 베라티사의 마법 학자들 중에서 가장 동경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을 마치면서 아잘리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잘리는 베라티사의 미녀 학자로 알려졌던 소르나를 샤하르의 학교에서 학생으로 있던 시절에 우연히 목도하면서 그를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내가 그런 소르나와 인연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소꿉 친구 소리와의 인연 때문이 가능했던 일이라고 카리나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나를 상당히 부러워하기도 했었다고 밝혔다. 다만, 나는 소르나와 친한 친구 정도로 남으려 했기에, 아직 기회는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아잘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안,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기만 하고 있었다. 소꿉 친구와 맺어지지 못하는 일은 인간 사회에서도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것에 관해 잔느 공주, 루이즈에게 물으려 하였다.
"소꿉 친구라든가, 첫 사랑과 맺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음은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흔한 일이었죠." 그 물음에 루이즈가 답을 했다. 그러더니, 자신에게도 소꿉 친구들이 있었고, 첫 사랑도 있었는데, 결국 그 누구와도 맺어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곧 나와 아잘리에게 "그러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마도." 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 말대로, 그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되더라도, 결국 푸투로 계획에 발탁된 이후로는 그 누구와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그와 헤어졌을 이들은 모두 인류를 멸망시킨 재앙 앞에서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운명을 겪었을 테니,
"옆의 잔느는 부모를 잘 따르는 딸, 학교 생활, 학업에 충실한 학생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기는 했지만...... 그런 애한테도 첫 사랑은 있었던 것 같아요."
집과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을 잔느 공주에게도 첫 사랑은 있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남학생이었다고 하나, 그 남학생에게도 교제하던 여학생이 있었고, 그래서 그 남학생을 곁이 아닌 곳에서 바라볼 따름이었다고 했다. 이후, 잔느 공주, 루이즈는 물론, 그 남학생과 여학생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푸투로 계획에 차출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푸투로 계획이 끝나는 그 날까지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정도에서 자신만의 사랑을 마무리해야만 했었다고.
"그 남학생과 여학생, 결국에는...... 그렇게 됐겠지요?"
"그러하겠지요." 이후, 내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물음에 루이즈가 잔느 공주를 대신해서 내가 생각한 바대로 됐을 것이라 화답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서, 루이즈는 잔느 공주에 대해, 한 가지 후회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밝히고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그 때에는 그들에게 그런 운명이 닥쳐 올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고, 언제라도 그 남자를 향했을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때, 그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하는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더니,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쳤다.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러하겠지요, 이미 떠나갔을 그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운명이었을 이들이 우리가 모를 어딘가, 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 그 때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났을 누군가들이 있다면, 그들이 그 때와는 다른 멋진 삶을 살고 있기를 바라는 것."
한 동안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던 나를 비롯한 다섯 사람은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남쪽 길을 따라 해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쪽에 가까웠던 나와 아잘리가 앞장서게 되었고, 그 뒤를 잔느 공주, 루이즈 그리고 세나가 뒤따르게 되었으나, 이후, 아잘리가 손가락에서 자주색 실을 생성하려 하더니, 인근의 건물 쪽으로 실을 뻗어서 그 실에 의지해 건물의 지붕 쪽으로 올라갔고,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내가 머리카락 몇 가닥을 묶어 다발을 생성하고서, 그 끝의 갈고리를 통해 건물의 중간 즈음에 매달리려 하였다. 갈고리를 통해 건물의 높은 쪽으로 올라가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건물의 옥상에 이른 아잘리의 곁에 이를 수 있었다.
"난데 없이, 왜 건물 위로 올라가려 한 거야?" 내가 묻자, 아잘리는 그저 길을 걷기만 하려니 심심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어릴 때부터 괜히 심심해서 엉뚱한 곳으로 가려 했던, 참으로 그다운 답변이었다. 도로 내려가게 하고 싶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특별한 경험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를 데리고 건물 옥상을 타며 걸어가는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당연히, 도중에 건물의 끝에 몇 번씩 이르렀고, 그 때마다 아잘리는 실을 이용해 건너편 건물에 매달리는 식으로 건물의 옥상, 건물의 지붕 사이를 나아갔고, 나도 그와 비슷하게 건물 끝에서 넓이 뛰기를 한 다음에 건물 쪽으로 머리카락 다발을 뻗어내어, 갈고리로 건물 끝에 매달리려 하면서 (머리카락 다발은 늘이는 데에 제한이 있으니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런 그를 따라가려 하였다.
"그간 실 다루는 연습을 이런 식으로 해 왔다는 거지?" 내가 묻자, 아잘리는 그랬다고 답했다. 답을 하면서 어찌나 자랑스러워하던지, 미소를 짓는 그의 입가가 귀에 닿으려 하는 것만 같았다고 다소 과장을 보태어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도 건물 사이를 매달리는 것은 꽤 잘하는 것 같다?" 그러더니, 아잘리가 내게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이렇게 답했다.
"너를 따라하다 보니, 그렇게 됐지." 이후, 나는 우측에서 나와 동행하는 아잘리와 함께, 지붕 위를 걸어가려 하였고, 그러다가, 건물 아래로 보이는 자그마하게 보이는 세나 그리고 그를 따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내려다 보기도 하였다. 그 때, 아잘리가 그런 내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우리 곁에 보이는 익숙한 것들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면 달리 보일 때가 있잖아. 그것에 관한 경험은 때로는 좋은 재미 거리가 되어주는 것 같아."
아잘리는 이런 재미 거리를 늘 찾으려 하였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참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했다, 어린 아이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것들조차도. 어렸을 적, 아잘리는 모험가라는 꿈이 있다고 늘 말해 왔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을지를 늘 의심했었으나, 그의 삶을 돌아보면, 모험가는 그런 그에게 운명과도 같았던, 그런 존재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길 위의 세 사람이 어느 건물 앞에 멈추어 서자, 나와 아잘리도 잠깐 쉬기로 하고, 당시 머무르던 건물 위의 옥상에 나란히 앉았다. 건물의 건너편인 서쪽을 향하는 기준으로, 내가 왼편, 아잘리가 오른편에 앉았다.
"어렸을 때, 갔던 곳 중에서, 가장 위험했던 곳으로 당장 바로 뭐가 떠올라?" 잠깐 쉬려 하면서 내가 물었다.
"어느 행성계에 있던 정원 유적지." 아잘리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기억이 났다. 처음에는 '금지된 유적지' 라는 말에 아잘리가 혹해서 무작정 담을 넘어 들어가려 했었던 곳으로, 유적 탐험에 열을 올리던 그가 먼저 다가간 연못에서 난데 없이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놀랐던 아잘리의 표정은 지금 봐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후, 다른 놀이 기구에서도 시체들이 하나씩 발견되면서 심상치 않은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체가 발견된 곳은 모두 열 하나였다.
이후, 어느 건물 앞에서 경관의 일지가 발견됐고, 그 일지를 통해 유원지가 자리잡은 도시에 여성 실종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실종된 여성들은 모두 비슷한 나이대의 인물들로 각자 종사하는 일은 달라도, 지극히 평범한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이들 모두 시체로 발견된 것이었다.
"그 경관은 실종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했어. 그래서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여자들을 죽인 사람으로 의심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그 사람도 시체였지?" 내가 묻자, 아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지를 발견한 폐 건물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됐었다. 시체로 발견된 이들은 여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건 조사를 위해 나섰던 탐정부터 시작해서, 유적 탐사를 위해 나선 탐험가들 (모두 남자였다) 의 시체, 심지어 실종된 경관을 찾기 위해 나섰던 후배 남녀 경찰들 중에서 젊은 남자까지 총탄에 당한 시체로 발견됐었다.
"모두 칼에 찔리거나 총탄에 당해 죽은 채로 발견됐었어." 그 때를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그런데, 정원 뒷산 언덕에서 발견된 운동하다가 실종됐다는 여자의 시체는 그 정도가 아니었어. 난도질에 절단까지 당해 놓아서는......."
그 광경에 아잘리는 심한 공포를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소정령 간 통신을 통해 리사 선생님께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그 모든 것을 알렸고, 이후, 나와 아잘리는 유적지에서 나올 때까지 리사 선생님의 보호를 받았다. 리사 선생님께서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면 어린 아이라도 죽일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 곳인 만큼, 보호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내가 유적지에서 나올 때까지 나를 비롯한 이들을 보호하셨다.
나와 아잘리를 밖으로 보내신 이후, 리사 선생님께서는 유적지에 계속 남아 조사를 하셨다는데, 그러면서 범인의 옛 일기장이라든가, 범인과 그들의 친구가 묘사된 그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사소한 계기로 범인은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고,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가녀리고 힘이 약해,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부모가 학교 측, 그리고 경찰에게도 도움을 호소했지만, 학교와 경찰 역시 딱히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하셨다.
살해 당한 8 명의 여성들은 그를 괴롭힌 이들이었고, 그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그 사실을 잊었으나, 괴롭힘에 시달리며, 도움을 호소했던 소녀였을 그는 그 모든 것을 잊지 못한 채, 그들을 하나씩 살해해 갔으며, 그 와중에 무고한 남녀들, 자신의 선배 경찰들이었을 이들 역시 자신의 일에 방해거리가 된다는 이유로 처참히 죽이기도 하였다.
"애초에 경찰 역시 증오의 대상이었기에,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겠지."
"아마도......" 이후, 아잘리가 말을 건네자, 내가 그렇게 화답했다.
리사 선생님께서는 그 여자는 자신을 괴롭혔던 여자들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며,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도움의 호소를 무시했던 학교, 경찰 그리고 도시 관계자들 모두에게도 증오를 품고 있었을 테니, 그 당사자들 모두를 죽여버릴 생각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다가, 그의 모교였던 어느 학교에서 악마들이 습격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마자, 바로 그 여자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면서, 홀로 그 학교로 나서셨으며, 그 곳에서 여성들을 살해했던 여자와 마주했다고 하셨다.
망령이 깃든 총과 검으로 무장한 여경의 모습을 한 여자는 십자가에 매달린 자신이 살해한 여성들의 시체를 등지며 리사 선생님과 대결하려 하였고, 결국 시체들을 소생시키며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패배하고 말았다고 한다. 리사 선생님께서 내가 필요하다며 오라고 하셨을 때에는 리사 선생님께서 계셨을 학교 옥상의 문이 모종의 이유로 굳게 잠긴 이후였고 (자물쇠 잠금이 아니었다), 리사 선생님께서 지시한 대로 주문을 외자마자 마력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그 충격으로 아잘리와 함께 계단 아래로 튕겨나갔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것을 통해 그간 일어난 일의 흔적이나마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보였던 것이...... 웬 여자의 얼굴 가죽이 사라지다 만 검푸른 피가 이룬 웅덩이 위에 떠 있는 거였지?" 그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데, 리사 선생님 같은 뛰어난 마법 능력자 분께서 왜 주문을 너한테 영창해 달라고 요청하신 거야? 너 아니면 못 하는 그런 게 있기라도 한 거야?"
이후, 아잘리가 다시 물었다. 아무래도 리사 선생님 정도면 자신과 마주했던 괴물의 모든 것을 없애버릴 수 있는 강력한 주문을 영창해서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을 텐데, 그런 주문의 사용을 나에게 맡기려 하셨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답했다. 확실한 것은 그 주문 영창 이후, '괴물' 의 몸이 소멸했고, 그로 인해 리사 선생님을 가두어 놓았을 결계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리사 선생님에 의하면, 그 복수심으로 가득했던 여자는 리사 선생님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갑자기 몸에서 흐르는 검푸른 피가 터져 나오더니, 그 피가 괴물의 형상으로 변했고, 더 나아가 몸이 품은 마력까지 폭주하면서 결계를 이루었으니, 그로 인해 옥상의 문이 열리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고 했다. 피가 괴물의 형상을 생성하면서 여성의 본래 형상은 소멸했고, 폭주한 마력이 영혼까지 집어삼키고 말았던 것.
리사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어떻게든 그 괴물을 처치하려 하였으나, 내재된 마력의 한계로 여성을 집어삼킨 마력 괴물을 처치할 수 없게 되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하셨다. 내 마력과 자신의 마력을 더해 '어둠의 피' 를 그 몸에서 강제로 끌어내어 폭파시키려 하셨던 것.
"그로 인해 괴물의 몸을 구성하던 모든 어둠의 피가 그 몸에서 빠져나가 폭파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이미 어둠의 피와 폭주한 마력이 여성의 몸과 영혼 모두를 집어삼킨 상태였고, 어둠의 피 폭발로 인해 영혼까지 소멸당했다고 했었어."
"그러니까, 그 얼굴 가죽은 여성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는 거지?"
이후, 아잘리가 묻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그 얼굴 가죽의 눈가에는 검푸른 피가 묻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그의 사념에 서려 있었을 한 (Resent) 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네, 길 위의 그 분들도 들으셨으려나."
한 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어느새 많은 시간이 지나갔음을 자각했을 그 때, 아잘리가 내게 그렇게 물었고,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 사람의 모습을 보려 하였지만, 나와 아잘리의 목소리가 그 쪽까지 닿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제법 심각한 이야기들이 오갔던 만큼, 그래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온 것 같네요."
그 무렵, 아잘리의 오른편 (남쪽) 건너편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쪽에서 초록색을 띠는 옷차림을 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어깨에 멜빵 끈이 달려 있으며, 치맛단이 무릎 높이까지 내려가는 겉옷과 팔목 즈음의 길이를 가지는 폭 넓은 소매를 드러내는 연둣빛 옷을 입은 소녀로 허리에 손에 길다란 곡괭이 날처럼 생긴 갈고리가 매달려 있었다, 직접 무기로 쓸 일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겠으나, 호신용으로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소녀는 나와 아잘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다가, 내가 서 있는 쪽에 가까워지자,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중에 보니, 그 너머에 에오르 자매가 앉아있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았나 싶다)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던 셀린 (Selin) 이었다.
"옆에 앉아도 되지요?" 셀린이 묻자, 아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아잘리는 바로 자리에 앉았다. 이후, 셀린은 나와 아잘리에게 어릴 적에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아잘리가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유명한 사건이던가요?"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건이지요. 도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어요. 범인의 이름이 준 크리스틴 존슨 (June Christine Johnson, Juhn Kristin Jownsn) 이라서 준 크리스틴 사건이라 칭하기도 해요."
그 사건이 충격은 세 가지였지요.
- 첫 번째는 민중을 수호해야 할 경찰직에 종사했던 여경이 여러 젊은 여성들을 차례로 죽여간 살인자였고, 더 나아가, 어린 시절부터 경찰을 증오해 온 이였다는 것이었고,
- 두 번째는 사건의 피해자로 죽은 여성들은 원래부터 무고한 여성들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추악한 짓을 벌인,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행각을 벌여놓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온 이들이었다는 것이었으며,
- 세 번째는 사건의 종결이 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끝났다는 것이었지요.
"이후, 리사 씨께서는 홀로 현장에 계속 남아 조사를 개시했어요. 우선, 사건 종결 이후에 남겨진 얼굴 가죽과 검푸른 혈액 중 일부를 입수해서 다른 세계로 가져가셨지요. 그럼에도 많은 양의 혈액이 남았는데, 그 혈액은 리사 선생님께서 전부 없애버리시고, 일대를 정화하기까지 하고 나서야 현장을 떠나셨다고 하셨죠."
"그 때, 아르산, 너는 접근하지 말라고 했었지?" 그 무렵, 아잘리가 내게 물었고,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하다고 답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잘리는 접근해도 괜찮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 너무도 못 마땅하다고 여기었던 기억이 있다.
리사 씨께서는 그 표본들을 아르데이스 성계로 가져가려 하셨다고 했어요. 세오프레마에 거주 중인 엘베 족 마법 학자들에게 혈액의 연구를 맡긴 것이었는데, 그들 역시 혈액에 대한 연구를 꺼려하면서 어둠과 접점이 많았을 샤하르 (Shahar) 의 중앙 학교에 있는 학교장인 올리비아 사반 (Olivia Savan) 에게 맡겨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리사 씨께서는 올리비아 사반에게 연구를 맡기지 않고, 그 대신, 중앙 학교에 등록된 학생들의 혈액 정보 열람만을 요청하시더니, 이후에 혈액 표본을 가지고, 베라티사로 가셨었지요. 이후로, 그 혈액 표본의 행방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베라티사에서 폐기하신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은 거예요?"
"베라티사에서 리사 씨의 일지를 몰래 열람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이후, 아잘리가 건네는 물음에 셀린이 답했다.
그 이야기에서 다시 한 번 올리비아 사반이라는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리사 선생님께서는 샤하르 중앙 학교의 교장이었을 올리비아에게 연구를 맡겨 보라는 엘베 족 마법 학자들의 제안과 달리, 그의 실상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을 리사 선생님께서는 학교 학생들의 혈액 정보를 통해 검푸른 혈액의 특성을 연구하려 하셨을 것이고, 그 시점에서 뭔가 답을 찾으신 것 같았다. 그런 추측을 하고 있을 즈음, 남쪽 저편에 앉아 있던 엘베 족 자매의 목소리가 교대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린, 리아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있어서 구분할 수 있었다)
"리사 씨께서는 그 학생들 중 하나의 혈액의 특성이 준 크리스틴의 몸에 남은 혈액에서 발견됐음을 알아차리셨고, 학교장인 올리비아 사반이 그 혈액을 이용해 '어둠의 피' 를 개발해서 준 크리스틴과 같은 힘을 원하는 이들에게 투약시켰을 것으로, 이런 일이 이후에도 몇 번 더 있었다고 하셨지요. 그러니까, 준 크리스틴은 올리비아 사반의 실험 대상, 그 정도였던 거예요."
"이후에 어떤 독재자가 폭주해서 괴물로 변신한 사건이 있었다고 해요, 그 사건의 원흉도 '어둠의 피' 였다고 했지요, 아르사나 씨, 아잘리 씨, 두 분께서도 어린 시절에 겪어보셔서 아실 거예요."
그 사건이란 대략 이러하였다. 어떤 나라의 독재자인 늙은 남성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독재자의 거처를 몰래 잠입했다가 독재자와 마주했고, 그와 대결을 하던 도중, 갑자기 독재자가 힘의 폭주를 일으켜서 괴물로 변해 버린 것. 소위 '준 크리스틴 사건'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괴물이 뿜어내는 어둠의 피를 제어하는 주문을 다시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주문을 잊어버린 상태였고, 주문을 기억하고 있던 아잘리가 주문을 알려주어서 간신히 그 주문으로 어둠의 피를 괴물의 몸에서 몰아내어, 처단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독재자는 당연하게도 시신이 거의 남지 못했으며, 현장에는 피 웅덩이와 목만 남게 되었다.
이후, 리사 선생님께서 사건에 대해 관계자들에게 설명하셨는데, 이를 통해 그 나라는 아름다운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으나, 탐욕스러운 재상이 올리비아 사반과의 계약으로 얻은 어둠의 피를 통해 힘을 얻고, 여왕과 그 관계자들을 제압, 여왕을 처참히 죽여 버리고, 나라를 독차지해 버린 후에 여왕을 지지하던 백성들을 마구 학살하고, 독재 국가를 세운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 진실을 사람들이 잘 받아들였는지, 리사 선생님 그리고 나와 아잘리는 문책을 받지 않고, 나라를 떠날 수 있었지만, 리사 선생님께서는 이후, 나라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라 하시면서 그 나라의 운명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그 사람도 결국 올리비아 사반에게 이용당한 희생자였던 거네, 그렇지?"
"그런 셈이지." 이후, 아잘리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린 그리고 리아 자매는 이런 이야기를 베라티사의 어떤 여학자를 통해 들었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무엇이냐는 내 물음에 두 사람은 잠시 지나쳐 간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 그 사람의 이름 등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후, 린이 해 준 이야기에 의하면, 그렇게 어둠의 힘을 받아들인 사악한 통치자는 사라졌고, 나라는 원래 모습을 되찾지 못했으나, 이전보다는 올바른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왕을 그리워하던 이들은 나라 곳곳에 있었고, 여왕을 닮은 이를 찾으려 한 이들이 있어서 그런 이들에 의해 나라에 혼란이 가해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왕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여왕을 그리워했을 국민들은 그를 다시 여왕으로 모셨다. 일부 사람들은 여왕의 부활을 믿지 못했고, 또 일부는 여왕의 부활을 진지하게 믿었으나, 아무튼, 여왕은 몇 년 간,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리다가, 후계 통치자에게 통치권을 물려주고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그 사람, 진짜 여왕은 아니었을 거야." 이에 아잘리가 내게 말했고, 나 역시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왕의 모습을 모사한 환수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그런 존재가 여왕으로서 나라를 통치하다가, 몇 년 후에 사라진 것은 환수로서 생명을 다했음이 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린, 리아 역시 부활한 여왕이 진짜 여왕은 아니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린과 리아가 교대로 목소리를 내면서 어떤 소환사가 인간 형태의 환수를 소환, 여왕의 모습으로 꾸민 이후에 여왕으로서 혼란에 처했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했으리라고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분명, 그 나라의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고 계세요?"
이후, 아잘리가 그 사람에 대해 물음을 건네려 하였으나, 린도, 리아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 역시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
한편, 올리비아 사반은 또 다른 어둠의 피를 가지고 그 세상의 다른 나라로 가져갔으며, 그 이후, 그 나라에 어둠의 화신이 태어나, 그 나라의 수도를 거의 황폐화시킬 정도의 재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역시 본래는 인간이었으며, 강하고 부유하게 살기를 소망했던 어느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올리비아는 이전의 복수, 탐욕을 바랐던 이들에 비해 다소 소박했을 소망을 가진 이를 실험 대상으로 이용하고, 그와 더불어 그를 통해, 한 나라의 도시까지 파멸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어둠의 화신은 결국 그 나라의 수도였던 도시 전체를 황폐화시킨 이후, 여러 해가 지나고 나서야, 어떤 마법사에 의해 소멸되었다.
그렇게, 린, 리아 자매가 이야기를 마칠 무렵, 아잘리가 묻자, 나는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이후, 아잘리는 어둠의 화신을 제압한 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물었으나, 그 물음에 린, 리아 자매는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못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후, 셀린이 지붕을 타고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건물의 지붕 위를 건너 뛰기를 반복하면서 일행이 위치한 일대로 금방 다가왔다.
"지붕 위로 올라간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비슷한 일은 많이 겪어봤죠." 셀린이 자신의 왼편 곁에 앉아있던 아잘리에게 묻자, 그를 대신해 내가 답했다. 그리고, 거대한 괴물이나 기동 병기였던 것 등을 상대하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일 정도는 많이 해 봤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엘베 족 유격대원들이 비슷한 능력으로 산이나 벽을 타고 올라다니는 것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그것을 마법을 통해 재현했을 거예요."
이전에 에오르 자매가 그렇게 건물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아잘리가 실을 생성해 건물 등을 올라타는 모습 역시 그들의 능력과 많이 비슷하긴 했다. 이후, 나는 에오르 자매 역시 실을 이용한 벽이나 바위 올라타는 것을 많이 해 봤을 것 같다고 셀린에게 말했다.
"그런 능력을 어디에 자주 쓰던가요?" 이후, 셀린이 묻자, 내가 바로 이렇게 답했다.
"지붕 위 고양이 무리 퇴치일 거예요." 아잘리로부터 실제로 들은 기억을 떠올리며, 바로 답했다. 용병 일을 하면서 아잘리가 가장 많이 받은 의뢰가 고양이나 들개 관련 의뢰였고, 그 중에 지붕 위로 올라간 고양이 구조하기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었다고 한다.
"기계 괴물 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용병으로서 자주 했던 일은 잃어버린 물건 찾아주기나, 집 나간 동물 찾아주기, 못된 동물 퇴치 같은 것들이었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용병이라고 돌아다니는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이 그런 것들이라고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있기도 하네요."
그리고, 다른 일을 부업 삼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서,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 같은 경우에는 도서관 사서나 대서소, 인쇄소 일을 자주 했었고, 아잘리는 연금술 공방 등에서 제조 보조를 맡거나, 학교 강사 일을 하면서 지냈다고 했었지요. 아, 집 짓는 일에 나선 적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여러 일을 하면서 지냈지만, 저처럼 여러 곳을 전전한 것은 아니었고, 주로 샤하르 일대에서 일을 했다 보니, 샤햐르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내셨군요." 이야기를 마칠 무렵, 셀린이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다가, 아잘리에게 생활 수준은 어떠하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도 내가 대신해서 답을 했다.
"꽤 많이 벌어들인 것으로 알아요. 집을 사 들이겠다고 돈을 악착같이 벌어들인 것 같았지요. 원래는 모험가가 장래 희망이었고, 저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 동안은 모험에 열심이었다고 하던데, 언제부터였던가, 머무를 곳을 마련하자고 제게 말했고, 그 이후로 용병 일 등을 하며 지냈었지요."
"그렇다면, 아르사나 씨께서는 장래 희망이 있었나요?" 이후, 셀린은 내게 물었다. 나에게는 그런 장래 희망이 있었느냐는 물음이었다.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따지자면, 어떻게든 먹고 사는 것이었다고 할지." 그러자, 이번에는 아잘리가 나를 대신해서 답을 했다.
"녀석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법 그리고 검술이고, 그것을 통해 먹고 살려면 용병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어요. 학교 졸업 후에는 학위 취득 권유도 마다하고, 학교를 뛰쳐 나와서는 용병 생활을 하기 시작했었죠. 재능은 상당했고, 나름 명망도 쌓았던 것 같았죠. 그래서 소르나가 천문대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할 때, 특별히 데려가기도 했었고. 벌이는 시원찮았는데, 자기 생활할 수 있는 수준 정도만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그러더니, 나에 대해, 더 이어 말하기를, 평생을 여기저기 전전하며 보낼 것 같아 보였을 나를 만나서는 집을 마련하겠다고 결심했음을 밝히고서, 집을 마련하면 함께 거기서 살면서 때마다 어렸을 때처럼 여기저기 모험하면서 지내자고 제안하기도 했었음을 밝혔다.
"하지만, 녀석은 평생 떠돌면서 살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한 이유가 있나요?" 이후, 셀린이 묻자, 바로 이렇게 답을 하였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나름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아르산에게는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이 있어요. 슈라일 호숫가의 한 곳에 자리잡은 오두막집이지요. 집 주인인 그 어머님도 세상을 떠나시고, 아르산도 집을 나가면서 오래토록 빈 집이 되어 있는데, 언젠가는 그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늘 하고 있었죠. 지금도 그 결심을 버리지 않을 거예요."
사실, 아잘리는 몰랐겠지만, 같이 살 곳을 마련하자는 아잘리에게 그 집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 집은 오래토록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조금만 손을 봐 주면 당장에라도 살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곳을 아잘리가 좋아할 리 없음을 알았기에, 차마 그것에 대해 뭐라 말을 못한 것이었고, 그 때에도 그것에 대해서는 드러내놓고 밝히거나 하지는 못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그런 집에서 살게 되면, 아르산은 이제는 어머니도 없는 집에서 홀로 지낼 텐데, 외롭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아르산이 정말 그렇게 되면,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분명 있을 테고, 그러할 것 같을 때마다 그 집을 찾아가 보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요. 어찌 됐든, 머무를 곳이 생기면 적어도, 타지에서 객사할 걱정 같은 것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참으로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이후, 아잘리는 나와 셀린을 바라보면서 셀린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잘리에게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보였다.
그 대화가 끝날 무렵, 셀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주변 일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시 지붕 위에 고양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살펴보려 했었던 것.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지붕 위에는 새끼 고양이 하나 보이지 않았고, 잠깐 주변을 둘러보던 셀린은 곧, 에오르 자매가 있는 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렇게 지붕 위에 올라간 적이 이전에도 있었지?"
그렇게 셀린이 돌아갈 무렵, 아잘리가 내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그렇지." 라고 답했다. 어릴 적에 몰래 건물 위를 올라가지 않았느냐고 이어 되묻기도 했다.
샤하르 거리 일대를 돌아다니던 것도 시시해지기 시작했던 어느 날 늦은 저녁 무렵, 아잘리가 우연히 공사 현장의 사다리를 발견하고, 그 사다리 위로 올라가 보자고 했던 것. 주변에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서 몰래 올라가려 했었고, 그리하여 아잘리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주변 일대에 아무도 없었다 보니, 누군가에게 들키거나 하지 않고, 지붕 위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그 때에 그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니까."
그 때를 떠올리며, 내가 말을 건네자, 아잘리 역시 생각해 보면 참 기막힌 행운이었다고 화답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문제는 내려갈 때였다. 이전에 보였던 사다리는 어느새 사라졌고, (아마 치워졌을 것이다) 지붕 아래로 내려갈 수단이 마땅히 보이지 않아 곤혹을 치뤘었다. 더욱이 밤 시간이었던지라, 걱정이 더 컸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우리가 옥상 위에 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누군가가 옥상과 바닥을 잇는 실을 만들어 주었고, 그 덕에 실을 타고 간신히 지표면으로 다시 내려올 수 있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기에 실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가서 고맙다고 말하려 했었지만, 이미 그 사람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 사람 누구였는지 알 것 같아?"
"누군지 볼 수 없었잖아, 내려가는 것에 급급해서. 어두워서 주변 일대가 잘 보이지 않기도 했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알기 어렵다. 흔적도 없었고, 단서도 없기 때문이었다.
"꽤 오랫동안 올라와 있었던 것 같은데."
이후, 꽤 오랫동안 올라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잘리에게 내려가자고 청했고, 그리하여 아잘리가 손 끝에서 실을 바닥으로 뻗어냈고, 그리하여 그 실을 통해 아잘리부터 길 위로 내려가려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붕과 바닥을 잇는 실을 통해 아잘리가 길 위에 이를 무렵, 나 역시 아잘리에 이어, 그 실을 타고 내려갈 준비를 하려 하였다.
그렇게 내려가려 하기 전, 뭔가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잠깐 돌려보려 하니, 지붕 위에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을 무언가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였다. 어쩌다가 지붕 위로 올라갔을 듯해 보인 것으로, 새끼 고양이라면 어떻게든 데리고 내려갔겠지만, 보였던 것은 성묘였던 만큼, 스스로 내려갈 방법 정도는 터득했을 것이다. 그 고양이가 어쩐지 나를 계속 보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고양이가 신경이 쓰이기는 했으나, 당장에 중요한 사항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실 쪽을 보며, 길 위로 내려가려 하였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려, 고양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보려 하였으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소리의 그림자가 나를 보려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맥락 없이 나타났던지라, 당황하기도 하였으나, 이내, 납득을 할 수 있었다. 소리는 자신이 필요하면 언제든, 어떻게든 내 곁으로 오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아르산, 뭐하고 있어, 어서 내려오지 않고!?" 이후, 아잘리가 길 위에서 외치려 할 즈음, 한 동안 나를 바라보던 소리는 이후, 갑자기 나를 반대편으로 돌아서더니, 그 방향으로 뛰어가면서 내 앞에서 사라져 갔고, 그제서야 나 역시 아잘리가 내려갔던 대로, 길 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줄을 붙잡고, 급속히 하강하는 방식으로, 이전에 했던 것처럼, 바로 줄을 잡고 하강해 갔다.
"뭘 봤기에, 바로 내려오지 않고, 거기 있었던 거야?" 내가 길 바닥 위에 착지하고, 다시 일어서자마자, 아잘리가 그런 내게 다가와서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지붕 위에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고, 그 누군가의 모습이 신경 써서 잠깐 보려 했었음을 밝혔다.
"누구였는데?" 그리고, 그가 다시 묻자, 그에게 처음에는 고양이였다가, 이후,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나를 바라보았고, 그 이후에 지붕을 타고 어딘가로 사라져 갔다고 이어 답했다. 그러자, 아잘리는 자신이 머물렀던 지붕 쪽으로 돌아서서 지붕 위를 올려다 보려 하더니,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서려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내려가려 할 즈음에 그 뭔가가 보였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하자, "별 일도 다 있지." 라고 말하더니, 혹시 '소리'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의 어떻게 알았느냐는 물음에 그냥 그러할 것 같았다고 답하고서, 나에게 뜬금 없이 관심을 보일 만한 이로 그 이외에 누가 있겠냐고 이어 밝히기도 했다.
한편, 세나를 비롯한 세 사람은 이미 길 위의 먼 저편에 가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그 쪽을 향해 뛰어가려 하였다. 그 때, 그런 움직임을 알아차렸는지, 세나가 나와 아잘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왼팔을 높이 들며, 마치 이 쪽으로 오라고, 신호를 보내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쩌다가 옥상 쪽으로 올라가려 하신 거예요?" 세 사람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루이즈가 나와 아잘리에게 물었고, 아잘리가 그런 루이즈에게 잠깐 위로 올라가서 높은 곳에서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 보고 싶었을 따름이라고 그 이유에 대해 답을 하였다.
"그러다가, 엘베 족 쌍둥이하고 셀린 씨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어." 이후, 내가 세나에게 옥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혔으며, 그것에 이어, 셀린과 함께 잠깐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음을 알리고서, 그들 역시 같은 이유로 옥상 위로 올라가 있었던 것 같았다고, 그들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세나는 딱히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할 만도 했던 것이, 세나 역시 그렇게 높은 곳에서 아래의 세상을 내려다 보는 일을 몇 번은 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위험하기는 해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는 그런 일이지요." 세나가 말했다.
이전에도 몇 번씩 세나는 산 위로 올라가서, 절벽가나 산봉우리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고는 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거느린 환수들을 모두 소환해서 그들을 대동하기도 했었는데, 그 때마다 평상시의 어느 때보다도 더욱 만족스럽고, 기뻐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는 했었다.
"환수들에게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지."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가 말했다.
세나가 환수들을 대동하고 함께 산 위로 오르는 모습을 최근에 본 때는 그 때로부터 몇 년 전이었다. 아마 지금 즈음이면 수십년 전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 그는 샤하르 샤하르 남서쪽 먼 곳, 대륙의 남서쪽에 위치한 '검은 광야 (Gamzin Nyeonmaru)' 인근의 카르마이 (Karîmay) 산을 오르고 있었다. 검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우리 너머의 절벽가에 이르러서는 별빛 가득했던 하늘 아래로 드넓게 펼쳐져 있었을 고요한 산 아래의 대지를 환수들과 함께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샤하르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남서쪽에 검은 광야가 있어. 너도 한 번 본 적이 있을 거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아잘리에게 샤하리아 남서부의 검은 광야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다. 세나는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와 함께 앞서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하고, 내가 그런 세 사람을 따라 걸어 가면서 나와 동행하고 있었을 아잘리에게 세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무렵에는 태양이 지고 있었지, 땅거미가 내릴 즈음이었다고 해야 하나."
세나가 산길을 오르던 모습을 목격했던 것은 정말 우연의 일이었다. 당시의 나도 산봉우리 부근의 절벽가에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겨서 한 번 가 본 것으로, 그러다가 세나가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뒷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곤 했었다.
'저 애도 그 소문을 듣고 여기로 온 건가.'
산길을 걷는 동안 그는 오른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그 붉은 꽃은 무타빌리스 (Mutabilis) 의 일종으로 그가 참 좋아했던 꽃 중 하나였다. (세나가 좋아했던 꽃으로 미라빌리스 (Mirabilis), 무타빌리스 (Mutabilis) 그리고 연꽃, 장미 등이 있었다. 주로 붉은색, 분홍색 꽃들을 좋아했다) 또, 왼손에는 꽃다발을 하나 들고 있기도 했다. 한 손에는 꽃 한 송이, 한 손에는 꽃다발이었는데, 무슨 목적으로 그러하였는지는 그 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조용히 산길의 풀밭이 없는 부분을 따라 절벽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발걸음은 내가 예상했던 바대로, 절벽 위에서 끝났다. 절벽에 도달한 이후, 세나는 우선, 절벽가에 이르러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이후, 자신의 발 아래에 펼쳐져 있을 검은 광야 그리고 광야와 더불어 지평선을 그리고 있었을 감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 없이, 오른손을 하늘 쪽으로 내밀었다.
오른손에서 빛이 생성된 이후, 이어서 빛이 모여 생성된 구체가 하나씩 하나의 형상을 생성해 갔다. 처음에 생성된 하얀 빛에서는 갑옷을 입은 기사의 형상이, 이어서 생겨난 푸른 빛에서는 바다뱀의 형상이, 이윽고 생성된 붉은 빛 그리고 하늘색 빛에서는 새들이 생성되어 나타났다. 이윽고, 갑주의 형상은 세나의 뒤에 머무르려 하였고, 바다뱀의 형상은 그의 우측에 이르렀으며, 새들은 그의 머리 위를 돌아다녔다. 그 모습은 이전에도 본 경험이 적지 않아, 그 무렵에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환수들이었다.
"그 환수들은 자연의 네 가지 힘 (Semiy Nyechima) 이라 칭해지는 땅, 물, 바람 그리고 불 (Stan, Mia, Vala glo Vyra) 의 힘을 가진 환수들이지. 환수들의 형상은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대체로 갑주, 뱀, 새 그리고 불의 형상을 갖추고 있어. 세나가 처음 발견했을 때, 그런 모습이었다더라."
환수들을 그렇게 소환하고 나서, 세나는 한 동안 조용히 절벽가에 서 있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자신의 오른팔을 어깨 높이 위로 들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그가 손에 들고 있었을 무타빌리스에서 꽃을 가릴 정도로 밝은 빛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그 빛에서 이윽고, 수없이 많은 별빛들이 생성되어 하나의 대열을 이루면서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별빛은 처음에는 직선에 가까운 대열을 이루더니, 이윽고 뱀마냥 거대한 S (Sha) 모양의 대열을 이루는 등, 곡선을 그리며 흩어지면서 주변 일대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각각의 별빛은 실제 별처럼 밝았기에 그런 별들의 모임은 주변 일대를 낮 시간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둠을 환하게 비추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태양은 저물었지만, 태양의 빛은 여전히 서쪽 하늘 먼 저편에 남아 산자락 인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는 왼손으로는 꽃을 들고, 오른손에서 빛을 불러오면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자주 미소를 짓곤 했던 이였으나, 그런 평상시 모습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그런 미소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 환수가 어쩌면 그와 인연이 있었던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들긴 했어."
이야기를 마치고서 내가 아잘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잘리가 내게 그 환수들이 세나와 직접적인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서, 그것에 대해 알아보게 된 것은 이후의 일이었냐고 묻자,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하다고 답을 하고서,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에 대해 알고 나니, 세나가 그 때, 왜 그랬는지, 더더욱 이해가 될 것 같았어. 어쩌면 그의 생에 있어서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
"자신의 가족들에게, 평화로워진 세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지?"
잠깐 동안 세나는 그렇게 꽃에서 빛을 흩뿌리기 위해, 팔을 들고 있다가, 잠시 후, 꽃에서 빛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아무래도 그만두려 한 것 같다) 팔을 내리고, 흩뿌려진 빛이 산 너머로 흩어져 가는 광경을 조용히 보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갑주, 바다뱀 형상의 환수들은 조용히 그의 곁에서 함께 빛이 흩어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나가 절벽가에 서서 그 너머를 보는 동안, 나는 그의 뒤쪽 근처에 있으면서 그들 어깨 너머로 산 너머의 풍경을 보려 하였다. 그의 경치 구경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산길을 오르는 도중에 마주했다면 그와 같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때를 놓쳤다고 여기었었다.
"언제까지 거기 있었어?" 아잘리가 묻자, 나는 그가 산을 내려간 이후에도 한 동안 머물렀었음을 언급하는 답을 하였다. 그리고 세나가 내려갈 즈음에는 마법으로 주변 지형과 융합하는 형태로 숨어서 세나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했음을 밝히기까지 했다.
"그랬구나." 그러자, 아잘리가 바로 그렇게 말했다, 여러모로 착잡한 심정을 드러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할 만도 한 것이, 지형에 융합되는 형태로 숨어드는 마녀들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을 여럿 겪었음을 밝힌 전적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당한 것도 포함해서)
"마녀들 있는 곳에서는 혼자여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 그래서 있었지."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전에 학교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그것을 알려주자, 아잘리가 바로 삐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마녀' 에 해당되는 이이긴 했었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술법으로 숨거나 한 전적이 있기도 했고) 그렇게 말을 건네기는 했으나, 이내 곧,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반 즈음은 장난이라 금방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어릴 때부터 모험을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루이즈가 아잘리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아잘리를 대신해 그러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마을 거리를, 그 이후로는 교외를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리사 선생님께서 나와 함께 아잘리를 동행시키며, 여러 행성계, 성역을 여행하고는 하셨음을 밝히고서, 그 곳에서 모험에 해당되는 몇 가지 일들을 겪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처음에는 리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행을 했지만, 그 분의 도움이 필요 없어질 즈음에는 둘이서 같이 다니고는 했었지요. 이전에도 둘이서 같이 다닐 때도 있었고."
"위험을 즐기는 그런 성향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이후, 루이즈가 다시 한 번 아잘리에 대해 묻자, 그 물음에 곧바로 "그러한 면이 있었지요." 라 화답했다. 그렇게 대답을 하는 동안, 아잘리가 그런 나를 노려보려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이에 잔느 공주가 그런 아잘리의 모습을 보더니, 루이즈에게 뭔가 말을 건네려 하였다. 뭐라 말을 하는지는 제대로 들리기는 했으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던지라, 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이전의 싸움에서 계속 들려왔을 고대의 언어였을 것이다. 잔느 공주, 루이즈는 원래 고대인이었다보니, 그런 말을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로도 세나는 앞장서서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에게 가브릴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선 이야기했던 것이 고대 가브릴리스의 역사 그리고 도시의 탄생 설화 등의 옛날 이야기였고, 이어서 가브릴리스의 명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카리나가 이전부터 가브릴리스에 자주 오갔고, 그로부터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통해 두 사람에게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에 언급된 곳으로 지브로아의 도서관과 인근의 수도원, 기억의 사당과 이어지는 '기억의 언덕 (Sedes Memoriae)', 그리고 기억의 사당 남쪽, 가브릴리아 북쪽의 '빛의 언덕 (Sedes Lucis)' 을 거치면서 갈 수 있는 '가브릴리아 등대 (Gabriliay Vicacë, Pharos Gabriliae)', 가브릴리아의 번화가와 그 곳에 있는 찻집, 식당 등등, 그리고 동북부의 항구인 제브라스 (Jebras) 가 있었다. 그 중에는 나는 물론이고, 카리나도 잘 몰랐을 곳도 있었지만, 워낙 많은 곳들을 소개해서 그러한지, 빠르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무렵에도 잔느 공주, 루이즈는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마치 수업 시간의 학생들 (아니, 범생이들! - 아잘리 씀) 이 강사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 같았던지라, 그 모습을 보며, 불현듯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를 떠올리기도 했었다.
"너는 수업 시간 때마다 졸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나는 늘 그러할 것 같았냐?" 내가 건네는 말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그러더니, 자신도 수업 시간에는 늘 진지했음을 밝혔다. 그 말 대로였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다가 아잘리의 공책을 살펴본 적이 있었고, 책장마다 수업 내용에 관한 필적들로 가득 했었다. 그 책장만 보고 있으면 우등생이 따로 없겠다, 싶을 정도.
"거기서 깨달았지, 필기만 잘 한다고 공부 잘 하는 거 아니라고."
아잘리는 자신도 나름 열심히 했다고 말했으나, 그러할 리가. 아잘리는 수업 받을 때를 제외하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런 것치고는 나름 성적이 준수한 편이기는 했지만. 졸업 무렵의 성적표에 학생으로서 그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기는 했으나, 여기서는 다루지 못할 것 같다. (애초에 학업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기에 성적이 좋거나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학생들은 몰라도, 지도 교사들은 다 알고 있었겠지 - 라고 적어 놓았더라 - 아잘리 씀)
이후, 나를 비롯한 5 인의 발걸음은 시가지 너머 해변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고, 그 이후, 머지 않아 시가지의 가장자리에 있는 길을 지나, 그 길 너머의 모래밭에 이르게 되었다. 눈앞으로 구름이 갠 맑은 하늘 위로 높이 떠오른 새하얗게 빛나는 태양 그리고 밝은 색을 띠는 모래로 이루어진 땅이 보이고 있었다. 풀이 자라나거나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겠으나, 시가지의 길과 가까운 쪽에서는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모래가 깔린 표면 아래로 흙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풀이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러한지, 해변은 조용했다. 주변에 보이는 이들은 일행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을 정도였다. 동쪽 건너편에는 먼저 바닷가로 갔을 프라에미엘, 탐파, 사라도 바닷가에 있겠으나, 그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러한지, 그들의 모습은 잘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해변으로 가겠다는 이들도 있었지?" 해변에 도달할 무렵, 아잘리가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하려 하였다. 그러면서도, 동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한편, 잔느 공주와 루이즈는 바다 쪽으로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선명한 푸른색을 띠는 바닷물이 물결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려 하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쪽에서 세나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려 하고 있었는데, 잔느 공주 등에게 직접 다가가거나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들을 대신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세나 쪽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다.
"해변의 모습 자체가 너무 좋으신 것 같아요." 이후, 내가 그들에 대해 세나에게 물으려 하자, 그가 답했다. 그리고, 마치 그 때 보였던 것과 같은 평온한 해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처럼 보였다고 그들에 대해 이어 말하기도 하였다.
"처음은 아니었겠지." 내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에게 말했다.
"해변의 모습은 어릴 때부터 이미 보기는 했을 거야, 직접이든, 간접이든 말이야."
참으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는 고대 시대의 바이달 (Baidal, Baïdale) 이란 나라의 아이들로서 살아가면서 이미 해변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수단으로든 간에. 어쩌면 해변의 모습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 보였던 해변의 모습은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매우 각별했을 것이다. 그들의 삶에서 두 번 다시는 없었을지도, 어쩌면 살아서 다시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풍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삶에서 다시는 없었을 광경이었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까."
"살아서 다시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기도 하니까, 그런 것이겠죠?"
이후, 세나가 물었다. 물으면서, 그는 내가 생각했던 바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바로 그러할 수도 있을 것이라 답했다. 그러자, 세나는 나에게 그런 삶을 다시 가질 수 있게 해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할 수도 있다고 바로 답했다.
"그 분들께서 뭐라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었어?" 그리고, 내가 세나에게 그렇게 물었으나, 그 물음에 세나는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둘만 함께 있을 동안에는 그들의 모어로 대화를 했고, 그것은 고대의 언어였던 만큼, 맥락을 알 수 있는 수단 (고유 명사라든가) 없이는 이해하거나 할 수 없는 그런 범주의 언어였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세나와의 만남을 마치고 나서, 나는 아잘리만을 데리고, 동쪽 너머의 해변으로 걸어가려 하였다. 혼자 가도 될 것을 굳이 아잘리를 데리고 간 이유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 그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행하는 동안 아잘리는 내게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할만도 했던 것이, 내가 루이즈에게 건네었던 말 중에 사실이라고 말하기 난감한 무언가가 있기는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동안 걷고 있다가, 나의 왼편 옆에 있던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위험을 즐긴다고 하긴 했지만." 그러더니,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위험을 즐기는 건 너도 나 못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히려 나보다 더하지 않았냐?"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뜨끔하긴 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어릴 적 모험을 할 때마다, 나와 아잘리는 결코 드물지 않게 (아니, 툭하면 그랬지! - 아잘리 씀) 위험한 곳이나 악의 소굴에 발을 들이고는 했었다. 아잘리가 워낙 모험심이 강하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을 갖고 있다 보니, 아잘리의 지인들 중에는 그가 그런 모험을 주도했을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진실을 말하자면, 그 모든 시련과 험난한 모험들 중에서 악의 소굴과 관련된 것들 중 대다수는 내가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악의 소굴로 뛰어들려 하였고, 거기에 아잘리가 말려들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루이즈 씨께 그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나도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긴 했는데."
내가 뜨끔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잘리는 조용히 미소를 짓다가, 곧 그렇게 말하려 했었다. 아잘리가 나를 노려볼 즈음, 루이즈가 잔느 공주에게 자신의 모어로 뭐라 말하는 광경이 보였었는데, 그 무렵에 아잘리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충 알아차린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거지?" 내가 물었고, 아잘리는 "그랬지." 라 바로 답했다.
"그 분들께서도 알아차리신 것 같더라, 나도 너 못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야."
그리고, 씨익 웃으면서, 그것 때문에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음을 이어 밝혔다. 그러더니, 한 동안 조용히 해변가를 앞서 거닐려 하다가, 오른쪽 뒤에서 그를 따라 나서려 하던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물으려 하는 것이었다.
"그 때에는 주니오란 형을 만나면서 삶의 가치를 깨닫고, 할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아주 어릴 때처럼, '죽어서 어머니 곁으로 가겠다' 같은 생각 따위는 버린지 오래였을 텐데, 죽음을 무릅쓰는 짓을 대체 왜 하려 한 거야? 할머니께서 집에서 기다리실 거란 생각을 잊을 만한 무언가가 있던 거야?"
"그 꼴들을 보고 나니,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무언가를 참을 수 없게 되어서 그랬었지."
그랬었다. 나와 아잘리가 함께 들렀던 곳 중에 적지 않은 (아니, 꽤 많은 - 아잘리 씀) 곳들은 악인 (어둠의 미궁으로 사람들을 끌어와서 죽여버리기를 반복했던 광인, 고아들을 노예로 부려먹은 거짓 자선가, 산 제물을 바치려 한 거짓 종교의 광신자들, 세상을 이물질화하려 하였던 미친 과학자, 복수심에 미쳐 자신의 옛 친구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을 죽이려 한 광인 (일전에 언급된 준 크리스틴), 식재료에 독을 섞어 학살을 벌이려 한 음모가들 등등이 있었다) 이 도사리고 있었고, 심지어는 악인이 대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그런 세상도 있었다. (그 중에는 뜻 있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나라를 자신만의 왕국올 만든 이와 같은 작자들도 있었다) 그런 악인의 존재 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선인들이 그런 악인의 음모에 차마 대항하지 못했던 그런 광경을 내가 참지 못했던 것.
"다른 사람들이 나서지 못하면 나라도 나서겠다, 그런 거였지?"
이후, 아잘리가 묻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에게, 그에 대해, 나 못지 않게 그런 악에 대해 많이 분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그런 그의 물음에 아잘리는 반박을 하지 못했었다.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많이 분노했지만, 아잘리 역시 나 못지 않게, 아니 나 이상으로 격분하고는 했었다. 특히, 선인들이 차마 나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잘리는 나 이상의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고는 했었다. 다만, 아잘리는 그런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나서야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든 나가려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조금씩 방향을 정해 갔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것들을 용서 못 해!' - 그 광경들 중 하나를 보면서 아잘리가 했던 말이다. 어둠의 미궁 끝에서 광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혼령들을 보며, 그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기억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나는 용서 못 해!!!!' 이런 말 했던 거."
"하고 있지, 그런 미치광이 하나한테 그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싶으니, 화를 주체하기 어렵더라."
내가 묻자, 아잘리가 답했다. 그 무렵, 나는 광인의 무기고에서 총기 등을 훔쳐 갔고, 그것을 통해 광인을 제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그렇고, 아잘리도 그렇고 진즉에 총기 다루는 법을 배웠기에 그것을 통해 광인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많은 시간이 지났잖아, 그 떄와 같은 악당들을 보게 되면, 그 때처럼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물리치려 할 것 같아?"
"화는 덜 내겠지만......." 아잘리가 묻자, 바로 내가 답했다. 말을 다 잇지는 않았지만, 아잘리는 내가 대답하려 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래저래 떠들면서 해변의 모래밭을 해를 바라보며 걸어가고 나니, 가벼운 옷차림을 갖춘 세 사람이 해변에 머무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양이 귀를 가지고, 소매 짧은 하얀 상의만을 드러내는 어린 소녀와 역시 짧은 소매와 짤막한 치맛단을 드러내는 푸른 옷에 하얀 앞치마를 걸친 모습을 보이는 어린 소녀, 그리고 탐파와 비슷하게 하얀색을 띠는 짧은 소매와 허벅지를 드러낼 정도로 짧은 치맛단을 가진 상의, 허리에 두른 하늘색 띠를 보이고 있던 소녀, 내 기억이 맞다면, 그들은 탐파와 사라 그리고 프라에미엘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들 근처에 머무르고 있을 무렵, 사라는 프라에미엘과 함께 모래 성을 쌓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사라가 이것저것 쌓아주면 프라에미엘이 다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탐파는 고양이 귀를 높이 세우고 옷 뒤로 드러난 꼬리를 높이 세운 채로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뒷 모습만 보였으나, 드러난 꼬리와 귀의 형태를 통해 그가 즐겁게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그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무렵, 탐파가 자신의 근처에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는지, 바로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바로 나와 아잘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탐파가 나를 보더니, 해변의 동쪽 방향으로 걸어가려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같이 놀자." 어린 아이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해변을 따라 뛰어가려 하였다.
"그냥 이렇게 뛰어가면 되는 거야?" 그 때, 아잘리가 그런 탐파를 뒤쫓아가려 하면서 물었으나, 탐파는 대답 없이 그저 뛰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 역시 그런 두 사람을 따라 같이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두 사람을 따라 뛰어가려 하였다. 탐파가 먼저 뛰어가려 하였고, 그런 그를 아잘리와 내가 따랐다. 탐파가 먼저 뛰어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름 거리가 많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탐파를 바로 앞질러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가볍게 뛰어가며, 탐파를 앞질러 가지 않도록 하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아잘리는 탐파의 우측 옆에서 그를 따랐다가, 앞질렀다가 하기를 반복하며 그와 동행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닷가를 바라보며, 한 동안 열심히 뛰어가던 탐파는 이후, 프라에미엘 그리고 사라가 있는 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딱히 이유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한 번 뛰어가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그를 다른 말 없이 따라갈 따름이었다. 탐파는 의외로 빨리 프라에미엘 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그런 탐파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프라에미엘이 그 쪽으로 고개를 들더니, 오른손을 내밀며 그에게 인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탐파 양, 잠시 뛰어갔다가 온 거예요?"
"응!" 그러자, 탐파는 바로 프라에미엘 쪽으로 다가가려 하였고, 이후에 자신을 따라온 나를 비롯한 두 사람을 가리키며,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 멀리 있던 언니들이 이리로 왔어. 우리와 함께 놀고 싶은가 봐!"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그저 멋쩍게 웃기만 할 뿐, 달리 말을 건네거나 하지 못했다. 뭐라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잘리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서, 그 역시 탐파의 말에 어떻게 반박을 하거나 하지 못하고 있었다.
탐파와 함께 프라에미엘 그리고 사라가 있던 곳으로 왔을 무렵, 내 눈 앞으로 모래로 이루어진 여러 자그마한 구조물들이 보이고 있었다. 대개는 모래 언덕 같은 모습이었으나, 일부는 제법 그럴 듯한 탑 같은 모습이었고, 또 일부는 터널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작은 모래 구조물들 안쪽으로 제법 큰 성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제법 공을 들여 만든 것임은 틀림 없어 보였다. 이런 구조물들 사이로 모래로 만들어진 작은 눈사람 비스무리한 것들이 곳곳에 서 있어서 이들의 존재가 작은 구조물들과 함께 자그마한 모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만들고 있었구나."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프라에미엘과 사라가 쌓은 것들 앞에 앉아서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고, 이에 프라에미엘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지요." 라 화답했다. 그 때, 사라가 나를 향해 돌아 앉으려 하더니, 나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어떠한가요? 마음에 드시는지요?"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떠나, 정성을 크게 들였음은 틀림 없었던지라, 사라에게 "아주 잘 했어요." 라고 화답했고, 사라는 그제서야 얼굴에 드러난 긴장을 풀고 조용히 미소를 띠려 하였다. 그리고 아잘리가 나의 우측 곁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할 무렵, 사라를 보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을 둘이서 같이 만든 거예요?"
"예." 그러자, 사라가 나를 보면서 답했다. 답을 하면서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 때, 프라에미엘이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라 양이 그 모든 것을 다 생각해내고 만들었어요. 저는 옆에서 모래의 형태를 유지해 주기 위한 물을 주는 것을 비롯해, 거들어주기만 했었지요.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있었고, 그것들을 실현하려 했었던 것 같아요. 하나의 작은 세상을 꾸미고 싶었던 것 같았지요."
"그랬었구나, 그래서 이렇게......."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모래 구조물 사이마다 자리잡고 있던 작은 모래사람을 가리키며 프라에미엘에게 말하려 하였고, 그러자, 그는 나를 보며, 활짝 웃으면서 그래서 작은 사람을 만들려 하였던 것이라 내게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 이후, 사라가 있는 쪽으로 탐파가 돌아오더니, 그에게 말했다.
"이제 뭐할 거야? 혼자서 놀려 하니까, 심심해!" 그간 탐파는 혼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사라가 자신과 함께 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가 좀 처럼 오지 않다 보니, 심심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같이 있도록 할게요." 그러자 사라가 바로 탐파의 말에 응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다 쪽으로 잠깐 걸어가다가 자신을 따라오던 탐파에게 "혹시 공 필요하세요?" 라고 묻는 목소리를 내었고, 이어서 오른손에 보라색 기운을 일으키더니, 그 기운으로 보라색 빛의 공을 생성해서 그것을 두 손바닥 위에 올리려 하였다.
"들어 보세요." 이후, 사라는 탐파에게 조용히 공을 들어볼 것을 말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탐파는 바로, 공을 들려 하였다. 그리고 공은 잠시 후, 사라의 손을 벗어나, 탐파의 손에 들렸고, 이에 공을 들려 하였던 탐파 자신이 눈을 크게 뜨면서 놀라고 있었다.
"이제 이것을 갖고 공놀이를 하면 될 거예요." 그러는 동안 사라는 뒷짐을 진 채, 탐파를 보고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고, 이어서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려 하였다. 탐파 역시 떨떠름한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런 사라를 따라 걸어가려 하였고, 그리하여 바닷가에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며 사라가 마법으로 생성한 공을 갖고 공놀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라에미엘은 모래 구조물 근처에 조용히 앉아있으려 할 따름으로, 사라와 함께 만든 모래 구조물을 지키려 하였음이 그 이유였다.
"저런 것도 가능했었지, 마력으로." 사라가 탐파와 함께 공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왼쪽 옆에서 아잘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동안, 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아이들의 공놀이가 시작되자, 바로 그것에 대해 우선 그렇게 말하더니, 이어서 내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마법 학당에서는 흔한 광경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사실이야?"
"소르나가 그러던데,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대." 그러자, 내가 바로 답했다. 소르나는 소리와 마찬가지로 베라티사 마법 학당 출신이다보니, 그 쪽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래서 그 쪽에서는 마력으로 공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 소르나는 그것에 대해 과장된 속설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렇게 에너지 덩어리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일 것이라는 말이 있었어."
그리고, 내가 이어 말한 것은 이후에 다른 곳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나는 전투 쪽에 관심이 깊어서 그런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던지라, 손에 잡을 수 있는 에너지 덩어리에 관해서는 이야기만 들어봤을 따름이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는 것은, 저 사라라는 아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재능이 있는 아이라는 거겠지?"
"아마도." 내가 답했다. 그 때, 프라에미엘이 나와 아잘리를 보더니, 밝게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마음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일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면서 프라에미엘에게는 보다 쉽게 그런 것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마법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고, 그것에 대해 굳이 알려 하지는 않았다.
"뭘 해도 심심하다, 거리가 조용하니까."
"그래서, 아침에는 프래미와 함께 바닷가에 가자고 했잖아."
그 무렵, 먼 저편에서 두 사람이 떠드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와 프라에미엘 모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너머에서 세 사람이 프라에미엘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보라색,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그 위로 푸른 머리카락과 금색 날개를 드러내는 이가 두 사람 위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오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서쪽 거리에 머무르고 있었을 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나에티아나였다.
"많이 심심했나 보네, 셋이서 같이 놀자고 갔는데, 갈 데도 없고, 거리도 조용하다 보니."
그 광경을 보며, 내가 말했고, 프라에미엘 역시 나에티아나의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의 무료함을 달래는 데에 나에티아나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선은 그들을 받아주도록 하자고 청하고서, 바로 나에티아나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려 하니, 아잘리가 그런 프라에미엘을 대신해, 모래 구조물을 지키겠다며 그 근처에 서 있으려 하였다.
아잘리의 곁에 서 있으면서 나에티아나가 프라에미엘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려 하였다. 어느새, 나에티아나는 프라에미엘의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 그 그리고 그의 곁에 있었던 카리나, 세니아에게 많이 심심했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랬었지,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러자, 나에티아나를 대신해, 카리나가 답했다. 그러더니, 프라에미엘에게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프라에미엘은 사라와 함께 모래 성을 쌓고 있었다고 화답을 했다. 그 이후, 그는 카리나, 세니아에게 어떤 성을 만들었는지 보여주겠음을 밝히고서, 모래 성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려 하니, 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나에티아나가 그런 프라에미엘을 따라 오게 되면서 나와 아잘리가 있는 쪽으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게 그 모래 성인가 보네." 이후, 카리나가 사라가 프라에미엘과 함께 쌓았다는 모래 성의 바로 앞에 이르렀고, 그 이후에 모래 성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 감탄의 말을 건네었다. 세니아 역시 모래 성과 그 주변의 구조물들을 가만히 살펴 보더니, 손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프라에미엘에 대해 말하려 하였다.
"사라는 어디 갔니?" 이후, 세니아가 프라에미엘에게 묻자, 그는 곧바로 탐파와 함께 근처에서 공 놀이를 하고 있다고 알리고서, 탐파가 같이 공 놀이를 하자면서 그를 데리고 갔음을 이어 밝혔다. 그리고 오른편 먼 곳의 모래밭을 가리키며, 그 곳에서 뛰어놀고 있을 것이라 알리기도 했다.
"무슨 공 놀이를 하고 있으려나." 이후, 세니아가 흥미를 느끼고서, 바로 프라에미엘이 가리킨 곳으로 가려 하였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 역시 그를 따라 나서면서 그가 무엇을 보려 하는지, 같이 보려 하였다.
이후, 카리나는 탐파가 사라와 함께 공 놀이를 하는, 그 근처에 이르렀고, 내가 그런 그의 옆에서 그들의 공 놀이를 같이 지켜보려 하였다. 그 무렵,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해변 곳곳에 일행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해변의 모래 위를 걸어 다니거나, 해변가에 앉아있으려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서 탐파와 사라가 공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배구 놀이를 하고 있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카리나가 말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세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소녀들이 배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세나가 불현듯 생각났던 것 같다. 그 물음에 나는 세나에 대해,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와 함께 서쪽 근방의 해변에 있음을 알렸다.
"그렇구나." 그러더니, 카리나는 나중에 세나와 함께 배구를 해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에 안 맞을 자신은 있고?" 그러자, 나는 바로 그에게 이렇게 물었고, 이에 카리나는 안 맞으면 되지 않냐고 답했다. 어쩌다가 카리나가 세나의 공에 맞은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아팠다고 했었다. 원래 누구를 공격할 생각으로 공을 날리거나 하는 이가 아니기는 하지만, 스파이크를 하거나 할 때에는 유난히 강하게 공을 날리는 특성이 있다 보니,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그런데, 그 공은 어떻게 만들었대?" 이후, 카리나가 묻자, 내가 바로 답했다, 마력 덩어리를 실체화해서 공처럼 만들었다고 밝혔던 것. 그러자 카리나는 사라가 만든 것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사라에 대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아이일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그렇게 말하고서, 그 실체화는 어지간한 마법사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생각했던 것임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 이후, 카리나가 나도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묻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거기까지는 모르겠어."
그렇게 마력으로 만들어진 덩어리는 특정인들만 만질 수 있고, 다른 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변에서 놀려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수영복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잔느 공주님께서 그러시는데, 비행선에 수영복이 몇 벌 있다고 하시더라고."
모래 성 근처로 돌아가려 할 무렵, 카리나의 혼잣말에 나를 대신해 그의 곁으로 가려 한 세니아가 잔느 공주가 했던 말을 알렸다. 예나의 비행선에 수영복을 비롯해, 물놀이에 필요한 여러 물건들이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음을 밝혔던 것.
"해변에서 놀 생각하면 가져오는 건데." 그러자, 카리나가 아쉬움의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고, 그러자, 나에티아나가 예나의 비행선은 가브릴리스 근방에 머무르고 있을 텐데, 그 곳으로 가 보겠다고 말했고, 그러자, 카리나가 그런 나에티아나에게, 굳이 당장에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필요해지면 그 때, 알릴게. 그리고, 예나 씨께서 해변으로 놀러오실 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멀리 갈 필요 없을 거야."
"알겠어요." 그러자, 나에티아나가 바로 알겠다고 답했다. 그 무렵, 탐파가 나에티아나에게 같이 공 놀이를 하자고 요청했고, 그 요청에 나에티아나가 바로 응하여, 탐파, 사라와 함께 배구를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에티아나가 체격이 두 어린 아이들에 비하면 크다 보니, 나에티아나가 탐파, 사라와 맞서는 형태로 공 놀이를 하게 되었다.
"이럴 때,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데." 그 광경을 보면서 카리나가 말했고, 이에 세니아가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박이든, 뭐든 깰 수 있는 큰 거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깰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냐?" 그러자, 카리나가 깰 수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이어서 얼음 덩어리 하나 큰 것을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그는 바로 모래 성 근처에 있었던 나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부탁의 말을 건네려 하였다.
"아르사나,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얼음 덩어리 큰 것 하나 생성해 달라는 거지?" 이미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이렇게 되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냥 깨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얼음 덩어리를 소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소환된 덩어리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지속 시간도 길지 않기에, 소환하려면 바로 해야만 했다.
"얼음을 언제 즈음 깨 보고 싶어?"
"언제 깨 볼까......?" 그러자 세니아는 잠깐 생각에 잠기려 하였고, 나는 그런 세니아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대답이 나오고 나서, 행동을 취하려 하였음이 그 이유였다. 그 때, 카리나가 세니아의 등 뒤에서 당장에 할 일이 없으면 얼음이라도 깨자고 청했고, 그제서야 세니아가 답을 했다.
"지금 당장에 얼음이라도 깨 보자고 하네. 나도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로 마땅히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알았어." 그러자, 나는 바로 알겠다고 화답했고, 그 이후에 잠깐만 기다려 줄 것을 그에게 요청했다. 이후, 세니아가 카리나의 곁으로 돌아가서 내 모습을 지켜보려 할 즈음, 모래 밭에 원통형을 이루는 하늘색 빛을 발하는 역장을 생성했다. 생성된 물의 기운을 모으기 위한 '틀' 의 역할을 맡는 것이었다.
역장을 생성하자마자, 바로 물의 기운을 소환했고, 그 물의 기운을 떠올린 이후에 곧바로, 그것이 내 머리 크기의 3 배 가량에 이르는 거대한 물의 덩어리가 되도록 하였다. 그 이후, 역장의 힘으로 떠오른 물 덩어리를 두 손에서 방출하는 하얀 냉기로 얼리는 것으로 거대한 얼음 덩어리의 생성을 마쳤다. 완벽한 구체도 아니었고, 투명하지도 않았으나, 완벽한 얼음 덩어리 생성이 아니라, '깰 수 있는 것' 이 물체 생성의 목적이었던 만큼, 덩어리의 외견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렇게 덩어리 하나를 생성한 이후에, 곧바로 같은 방식으로 덩어리 하나를 더 소환하려 하였다. 같은 모습으로 덩어리를 생성하려 하였으나, 실제 생성된 것은 크기부터 원래보다 더욱 컸고, 세세한 외관에도 차이가 많았던 물건이었다. 아무튼, 이런 물건을 세 개 생성하고서, 역장을 거두었다. 그 이후, 나는 두 손에서 냉기를 불러왔으며, 얼음이 당장에 녹지 않도록, 냉기로 그 얼음을 감싸려 하기도 했다.
"준비 됐어." 얼음 생성을 마친 이후, 나는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에게 준비를 마쳤음을 알렸고, 이후, 카리나가 바로 얼음 덩어리를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그 때, 세 얼음 덩어리들을 향해 다가가려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세니아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그걸로 얼음을 깨려 하는 거야?" 당장에 카리나도 그렇고, 세니아에게도 마땅히 준비된 도구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얼음을 깰 수 있는 수단이라면, 두 사람 모두 갖고 있었다. 세니아가 카리나에게 건네려 한 물음에는 그러한 의미가 있었던 것.
"그렇지." 이후, 그 물음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그러더니, 모래 바닥에 놓인 얼음 덩어리들 중 하나의 앞에 앉더니,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먹을 쥔 손에서 주황색 기운이 일어나더니, 그 기운이 불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주황색 기운이 이글거리는 그 주먹을 뒤로 움직이더니, 곧바로 얼음 덩어리 쪽으로 뻗었다. 주먹이 얼음 표면에 격렬히 부딪쳐서 폭발했다.
폭음과 함께 불꽃이 터져나온 이후, 불꽃이 일어났던 자리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할 즈음, 얼음 덩어리가 갈라지고 깨어질 때 특유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기가 걷히자마자,그 광경을 지켜보던 내 눈 앞으로 세니아가 앉은 그 주변에 얼음 조각들이 주변 일대에 흩어져, 햇빛의 열기에 녹아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세니아는 자신의 머리 크기의 2 배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두 손으로 안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잠시 그 덩어리를 들고 있다가 바로 근처에 있던 카리나를 바라보더니, 외쳤다.
"카리나, 받아!" 그러면서 그는 카리나 쪽을 향해 얼음 덩어리를 있는 힘을 다해 던지려 하였고, 이에 카리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얼음 덩어리를 향해 오른발로 돌려차기를 가했다. 돌려차기를 할 때, 그의 발에서 하늘색 빛을 발하는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며, 카리나가 돌려차기를 할 때, 발을 감싸는 기운에 의해 궤적이 생성되면서 마치, 다리에서 생성된 빛의 칼날이 얼음 덩어리를 강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됐다. 그의 오른발이 얼음 덩어리의 왼쪽 표면을 강타하면서 충격에 의해 갈라지고 부서져 가면서 그 틈에 빛이 파고드는 모습을 보이는 얼음 덩어리를 밀어내려 하였다.
얼음이 깨어질 때,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유리보다는 다소 묵직한 느낌의 폭음이 울려 퍼졌고, 이후, 흩어져 가는 얼음 알갱이들 사이로 조각나는 얼음 덩어리들이 카리나의 왼쪽 방향으로 밀려나면서 흩어져 가는 광경이 보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얼음 덩어리 하나는 세니아가 깨게 되었으니, 마지막으로 남은 얼음 덩어리 앞에 앉아서 다홍색 기운을 일으키는 오른손으로 손날 치기를 가하는 방식으로 덩어리를 깨려 한 것. 이후, 폭음 그리고 하얀 연기의 분출에 이어, 거의 반으로 쪼개진 얼음 덩어리의 모습이 보이게 되었다. 깔끔하게 조각난 것은 아니라서, 자잘한 얼음 조각들이 주변 일대에 흩어지기도 했다.
"저들은 저렇게 뭔가를 깨는구나." 이후, 그 광경을 나와 함께 지켜보던 아잘리가 말했고, 그런 그의 말에 내가 "그렇지." 라고 답했다. 그 광경이 그리 낯설지 않음에 대해, 나는 천문대에서 함께 지낼 때부터 지켜봐 와서 그러하다고 그 이유를 언급했다.
내 기억 상으로 카리나, 세니아는 오래 전부터 서로 친했다고 했다. 가마일 산의 천문대에 사람을 모집할 때에도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종종 서로 만나서 동행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가까웠던 만큼, 무슨 일을 하든, 같이 할 때마다 서로 손발이 잘 맞는 행보를 보여 왔으며, 천문대를 떠난 이후에도 그러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고 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해변에 오면 커다란 멜론 (Came) 같은 것을 깨려고 했지만, 늘 그런 큰 열매 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얼음 덩어리를 생성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도움을 자주 받고는 했다. (간혹, 얼음이 아닌 돌 덩어리를 받아서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고) 처음에는 방망이 같은 도구로 깨다가, 마법이나 전투 능력을 익히면서 주먹이나 발로 깨는 경우도 많아졌던 것 같다. 서로가 던지는 덩어리를 깨는 것도 자주 했었는데,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로 애정 표현을 한 적도 있었을까?" 이후, 아잘리는 음흉하게 미소를 짓더니, 내게 그렇게 물었고, 그러자 내가 바로 그런 그에게 되물었다.
"누가 너한테 당장 나한테 애정 표현하라고 하면 안 할 거잖아." 그러자 아잘리는 나에게 어떤 답도 하지 못했고, 그러자 나는 그런 아잘리에게 "그런 거야." 라고 말한 이후에 나와 아잘리가 애정이 아닌 우정으로 함께 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렇게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해?" 이후, 내가 묻자, 아잘리는 딱히 필요치는 않다고 답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한 때, 아잘리가 이런저런 예쁜 여자아이들과 교제를 하던 모습을 떠올렸고, 그러면서 그가 듣지 못하도록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었다.
"한 때는 여러 애들한테 애정 공세를 잘 받았었는데......."
내 기억 상으로, 아잘리는 샤하르의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여러 소녀들의 동경을 받고는 했었다고 했다. 소싯적에 소년 행세를 하며, 모험을 즐겼고, 그러면서 신체 단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여러 소녀들과 교제를 했다지만, 일정 선을 넘지 않는 선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가볍게 시작해서, 가볍게 끝내는 애정 때문에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위험한 선을 넘지는 않으려 않았던 만큼, 나도 그런 그의 행동에 더 뭐라하지는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학교 졸업 후에는 나처럼 관계들을 모두 정리했고, 이후, 그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 보려 했던 것 같으나, 좋은 사람을 잘 만나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그것에 대해 내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나는 가볍게 사람들을 사귀기를 반복한 대가라고 농담삼아 웃으며 답한 바 있다.
"소리와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아직 있어?"
"이제는 뭐......"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묻자, 내가 바로 그렇게 답했다. 소리는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고, 아잘리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아잘리의 옛 일에 대해 떠들면서 아잘리 역시 새삼스레 그것에 대해 물어보려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너 같으면 그에게 뭐라 말하고 싶을 것 같아?" 이후, 나는 아잘리에게 그가 나였다면, 소리에게 뭐라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아잘리는 소리에게 '잘 지내' 정도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내게 화답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헤어진지 한 두 해 지난 것도 아니고, 거기서 더 뭐라 할 수 있겠냐."
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한편, 얼음들을 다 깬 카리나는 남은 얼음 조각들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고 있었고, 공놀이를 마친 탐파, 사라가 그런 카리나의 재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세니아는 그들이 모래밭 위에 놓아둔 공을 오른손에 들고 공을 튀어 올렸다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공 달라고 해 볼까?" 그 때, 아잘리가 내게 물었으나, 나는 뒤쪽에서 모래 성을 지키고 있다가, 나에티아나의 곁으로 가서는 그와 함께 해변 산책을 즐기고 있던 프라에미엘을 가리켰고, 그들 역시 공 놀이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한 이후에 공은 그들에게 맡기자고 말했다.
이후, 세니아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나에티아나에게 공을 건넨 이후에 나와 아잘리가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 하였고, 머지 않아, 내 곁으로 오게 되었다. 이후, 세니아는 나에게 모래 성 곁에 있느라, 지루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더니, 나에게 모래 성은 자신이 지키겠음을 알렸다. 그리하여 세니아가 모래 성 곁에 머무르고, 그제서야 나는 아잘리를 이끌고 모래 성 곁을 떠나, 사라, 탐파 그리고 카리나가 머무르는 곳으로 걸어가려 하였다. 사라, 탐파에게 이런저런 것을 보여주려 한 카리나의 모습을 그들과 함께 지켜보려 하였던 것.
한편, 카리나는 양팔을 벌린 채, 양손의 바닥 위에 얼음 조각들을 올려놓고,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얼음 조각들이 바람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얼음 조각들이 하늘색 빛을 발하면서 바람과 함께 하니, 하늘색 빛을 발하는 얼음 회오리가 양쪽 손바닥 위에 하나씩 놓이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사라와 탐파는 그런 재주를 부리는 카리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으며, 나와 아잘리 역시 그런 그들의 뒤에서 카리나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려 하였다. 그 무렵, 나의 오른편 옆에 서 있던 아잘리가 나에게 세니아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세니아 씨도 이런 거 잘 해?"
"할 수 있기는 할 거야, 그런데 왜?" 그 물음에 바로 답하고서, 그에게 왜 그런 것에 대해 묻는지에 대해 되묻자, 그는 나에게 두 사람이 얼음을 가지고 같이 공연을 하거나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화답했다. 이후, 나는 마력으로 만들어진 공을 나에티아나에게 넘기고 해변에 가만히 서 있던 세니아에게 카리나처럼 재주를 부리거나 할 수 있냐고 물었으나, 아쉽게도 세니아는 그런 것은 자주 해 보지 않았다고 답하고서, 카리나가 재주를 부리는 광경을 보며, 자신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해 보았으나,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렇구나." 이후, 나는 아잘리에게 바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 됐다, 저 애는 못 한다네." 그러니, 아잘리는 조용히 웃으면서 아쉽다고 조용히 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 카리나 역시 얼음 놀이를 끝내고, 사라, 탐파가 나, 아잘리와 동행하기 시작하자, 세니아와 함께 해변의 모래밭 한 곳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그 광경을 잠깐 보다가, 탐파, 사라를 이끌고 아잘리와 함께 나에티아나가 있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나에티아나와 프라에미엘이 공놀이를 하는 곳으로 다가가려 하다가, 잠깐 탐파, 사라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탐파는 내 앞으로 뛰어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라는 그런 탐파를 바라보면서 아잘리의 곁에서 조용히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정부 옷은 집안 일을 하면서 입는 것 같아." 그 무렵, 아잘리가 사라에게 그에게 말했고, 그 물음에 사라는 가정부 일이 본업은 아니라 답했다. 원래는 하야라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탐파도 같은 학교의 학생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역시 그렇구나, 그러면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이후, 아잘리가 다시 묻자, 사라는 아직 정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곧 그에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그런 그에게 이렇게 물으려 했다.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용히 '보나마나 탐파 아니겠어?' 라 말했다. 아잘리는 아무래도 그 사람이 자기였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딱 봐도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그를 사라가 지목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래서 조용히 그에게 '꿈 깨라' 라고 말하려 하기도 했다.
"......" 나는 탐파를 기대하며 조용히 그를 지켜보려 하였으나, 사라는 시간이 지나도 답을 하지 않았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아잘리는 당장에는 안 보이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차분히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웬 일이냐, '나였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지 않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뜻 밖으로 여기었으니, 그 어린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그런 질문을 했을 것이라 예상했음이 그 이유였다. 그러자, 아잘리가 그런 나에게 이렇게 화답했다.
"나라고 언제나 그렇지는 않아," 그러더니, 바로 화제를 바꾸어 내 눈 앞으로 탐파가 나에티아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저 공을 갖고, 간만에 시합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는 동안 탐파가 두 사람에게서 공을 받아오더니, 바로 나를 비롯한 3 사람이 있는 쪽으로 발랄하게 뛰어오려 하였다. 그리 먼 곳은 아니었는지, 금방 내 앞으로 오려 하였다.
"탐파, 저 두 천사들, 이제 공 놀이 안 한 대?"
"응." 그러자, 탐파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뒤쪽에 있는 이들에게 공을 가져다 주라고 나에게 부탁을 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잘 된 거 아냐?"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물었다. 같이 공 놀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겠냐는 것. 아잘리의 말 대로,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있기는 했지만, 굳이 내색하려 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속 마음을 아잘리가 드러낸 것 같아 보였다. 이후, 탐파는 나, 아잘리와 함께 배구를 하자고 청했고, 그리하여 셋이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탐파는 내 편이 되고, 아잘리는 혼자서 시합을 하게 된 것.
혼자서 둘을 상대하게 되었지만, 아잘리는 제법 잘 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 정도는 거뜬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고 여길 정도로 잘 하기도 했다. 그런 아잘리를 보면서 나 역시 의욕이 생겨났고, 그래서 한 동안 치열하게 경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다만, 본래는 탐파와 같이 놀아주겠다고 했었는데, 어느새, 경기가 나와 아잘리 간의 승부가 되어버려 탐파의 역할이 적어진 것은 문제였다.
이후로는 아잘리가 탐파와 공을 주고 받으면서 놀아주려 하였고, 나 역시 어설프게나마 탐파, 사라와 함께 공을 가지고 배구도 해 보고 (내가 혼자서 탐파, 사라와 상대하려 하였다), 공을 가지고 체조를 해 보기도 하는 등, (사라가 그런 체조를 잘 했다, 나는 해 본 적이 없고, 탐파도 마찬가지였던지라 어설펐다) 여러 놀이를 즐기려 하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 하였다.
그렇게, 한 동안 이런저런 놀이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즈음, 카리나, 세니아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카리나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네." 라 말했고, 이에 나는 "그렇지." 라고 답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아이들과의 놀이 시간을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카리나 등의 곁으로 돌아왔고, 이어서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도 나를 비롯한 일행의 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즈음이면 상점들이 문을 열 시간일 거예요. 시내로 돌아가 볼까요?"
이후, 프라에미엘이 카리나에게 물었고, 그런 그의 물음에 카리나가 "좋아, 그렇게 하자." 라고 답하면서 일행은 다시 시내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나는 아잘리와 함께 세나,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와 동행하면서 카리나, 세니아 등의 일행을 따르기로 했다. 너무 많이 한꺼번에 돌아다니면 여러모로 곤란했음이 그 이유. 하지만 그 때에는 처음 해안으로 갔을 때처럼 다섯 사람만 같이 가는 것이 아닌, 사라와 탐파가 동행하게 되었다. 사라가 탐파와 함께 나와 아잘리를 따라가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라하고 탐파는 어떻게 우리를 따라가려 한 거야? 방금 전까지 함께 했던 천사들하고 같이 있으면 될 텐데."
그렇게, 나와 아잘리를 따르려 하는 사라, 탐파의 모습을 보며, 아잘리가 물었다. 그러자, 사라가 바로 답하기를,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했으며, 탐파는 그런 사라를 따르기로 했을 뿐이라 말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잘리와 사라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아잘리에게 끌리기라도 한 거야?' 그 전에 아잘리가 사라에게 이렇게 질문을 건넨 적이 있었다,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라고. 그 질문에 사라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런 그의 모습과 아잘리를 지켜보면서, 나는 그에게 쓸데 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여긴 바 있었다. 그런데, 사라가 아잘리를 따르면서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답을 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아직 어린 사라가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아잘리를 보면서 정말로 무언가 느낀 바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세나 등이 있는 곳으로 가려 하였다. 그런데, 사라는 아잘리가 아니라, 나의 왼편 곁에 있으려 하였고, 그런 사라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잘리가 바로 나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는 것이었다.
"저 애가 너한테 이끌린 것은 아닐까?" 내가 물으려 하였던 것을 이름을 제외하고 거의 그대로 말하려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어서, 세나나 잔느 공주 역시 어쩌면, 나에게 이끌려서 나와 동행하려 하였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건 아니야." 그 말에는 즉시 화답했다. 내가 그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은, 내가 그들을 이끌고 가겠다고 한 것이었지, 그들이 내게 이끌려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들이 있는 곳은 그간 내가 있던 곳과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았다. 금방 세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바닷가에서 공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잔느 공주, 루이즈는 이전 때와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상의는 단추 몇 개만 잠그고, 아랫단은 묶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하의의 긴 치마 부분은 벗어서 한 쪽에 모아두고 있었으며, 세나는 멜빵 치마를 벗어서 하얀 셔츠, 속바지만 드러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세나는 머리 끝단을 나처럼 묶고 있었으며, 잔느 공주는 머리카락의 윗단을 묶고, 나머지를 내리고 있었으니, 나름 공 놀이를 하기 편하게 하려고 옷차림과 머리카락 등에 변화를 준 것 같았다.
세나의 옆에는 갑주 모양의 환수가 같이 있었다. 배구를 하면서 아무래도 혼자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고, 그래서 같이 할 사람을 두려 하였을 것이다. 나름 배구에 능했던 세나가 끼어 있었던 만큼, 그들이 하는 배구는 그간 나를 비롯한 일행이 하는 공 놀이 수준이 아니었고, 나름 진지한 경기 같아 보였다.
"그 말인 즉, 주변에 있다가 공에 맞으면 위험하다는 것이겠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잘리가 바로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답을 대신하였다. 이후로 아잘리는 사라, 탐파에게도 근처에 있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으니, 근처에 있다가 자칫하면 공에 맞을 수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나름 본격적인 경기를 하고 있었던 만큼, 세 사람 모두 격렬히 움직이고 있었다. 세나의 경우에는 이전에도 지켜본 바 있어서 그 정도의 움직임을 보일 것임은 이미 짐작해 알고 있었으나, 잔느 공주, 루이즈는 의외였다. 두 사람 모두 활동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이라, 체력 등, 여러 면에서 세나의 능력을 따라가기는 무리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운동 능력 등의 모든 면에서 세나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세나 씨도 그냥 가볍게 경기를 즐기려 했을 거야, 저기 두 사람 모두 운동과는 거리가 있었을 테니."
"그랬겠지." 아잘리의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이후, 나는 세나에 대해, 두 사람의 신체 능력을 실제로 경기를 해 보기 전에는 몰랐을 테니, 두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적당히 경기를 즐기려 했다가, 실제 능력을 알게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경기를 하기 시작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공이 네 사람 사이를 오가며, 경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의외로 세나가 일방적으로 득점을 하지 않고 있었으며, 서로가 득점 상황을 만들고 있었기에, 경기 상황은 팽팽히 이어지고 있었다. 세나가 더 이상 초심자를 배려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 정도였으니, 두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외로 경기에서 만나면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아잘리가 묻자, 내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시대적으로 운이 매우 나쁜 이들이었을 거야. 만약에 보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보다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겠지."
이후, 사라가 나와 아잘리에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삶을 이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않을까, 라고 묻는 듯이 말했고, 이어서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자, 아잘리가 사라에게 그렇다면, 보다 평화로운 곳에 있게 됐고, 또 지켜주는 이들도 있는 만큼, 적어도 큰 위험 없이 살 수는 있다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사라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 그 말 대로이겠지." 이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내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세나를 비롯한 세 사람 (그리고 환수) 의 모습을 지켜보려 하였다. 그 무렵, 나의 건너편에 있던 세나가 공을 건너편 바닥을 향해 세게 내리 꽂으려 하였고, 그 공의 움직임을 두 사람이 피하려 하면서 세나가 다시 득점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후, 나는 세 사람이 배구를 하는 그 측면에 위치하면서 세나 뿐만이 아니라, 잔느 공주, 루이즈의 모습도 같이 지켜보려 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이전까지의 차분하고 온화한 (그리고 다소 수동적인) -루이즈는 그래도 나름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본래는 더욱 그런 면모를 가졌겠지 by 아잘리- 모습과는 사뭇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기를 이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는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을 적극적인, 혹은 모종의 욕구에 의해 흥분을 느끼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특히, 루이즈가 그런 면을 더욱 강하게 보인 것 같았다. 잔느 공주는 성격 상, 그런 면을 드러내놓고 보이거나 하지는 못했을 듯하나,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밝은 표정이 그에게 보이고 있었다.
"저들도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나 보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잘리가 말했고, 이에 내가 이렇게 화답했다.
"이전에는 보통 인간처럼 살았다잖아. 그렇다면 그런 면도 있을 수 있겠지."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원래는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으로서 살았던 이들이었다. 여러 감정, 사념 등을 갖고 있었을 인간들 사이에 있었던 만큼, 그들 역시 나름 여러 감정을 갖고, 여러 사념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당장에는 지금 세상에서의 삶이 익숙치 않아, 다양한 감정 표현에 서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후의 삶이 익숙해지면, 여러 감정 표현을 하면서 진면모를 보여줄 때도 있을 것 같다' 라고 그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세 사람 (그리고 환수 하나는) 해변에서 (다소 지나차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에 몰입해 있었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곁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 때를 기다리려 하였다. 그들과 멀어지는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간 이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잘리, 너도 와서 앉아." 그리고서, 나는 아잘리에게 오른편 옆의 모래밭을 가리키며, 그 곳에 앉을 부탁했고, 이에 아잘리는 곧바로 내가 앉은 그 오른쪽 옆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처럼 앉거나 하지는 않고, 내 곁에 서서 경기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려 하였다. 한편, 사라는 나와 아잘리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아잘리의 우측 옆에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으려 하였다. 그런 사라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도 앉으라 하고 싶었지만, 가정부로서 바른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었을 그가 고집을 부릴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그렇게 서 있는 것이 그에게는 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렇게 서 있게 놓아두려 하였다.
경기가 이루어지는 광경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아잘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리고 앉은 채로 그의 모습을 올려다 보는데, 아잘리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물론, 표정은 평온히 경기를 지켜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표정 짓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은연 중에 씨익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자식이 결국.......'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잘리는 예쁜 여자아이들만 보면 유심히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짓는 광경을 보여왔고, 그러다, 나이를 먹고 몸이 성숙해져 가면서는 매혹적인 여성에도 몰래몰래 눈길을 보내곤 했고,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다가, 결국 참지 못해서는 다가가기도 했다. 어릴 때, 리사 선생님과 여행을 다닐 때에도 아름다운 여성이나 예쁜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거나 흐뭇해 할 때가 한 번 두 번이 아니었고, 그 때마다 내가 따가운 눈총을 보내거나, 핀잔을 주고는 했다.
- 다만, 저 아잘리가 갈 데까지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 여자아이들을 사귀거나 할 때에도 어느 선에서는 그치고는 했다. 리사 선생님의 연애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절제한 행각을 벌이거나 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의 영향을 받았던 것일 수도 있고, 본능적으로 그 이상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에게 크게 당할 것이 겁이 났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교제는 연애 수준에 이르지 않는 선에서 그치고, 그래서 교제 이후에도 별 탈은 없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별 문제 없이 여행이나 모험을 즐기며 산다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 진지하게 쳐다 봐?" 이후, 내가 고개를 돌린 채, 짐짓 핀잔을 주는 척 묻자, 아잘리가 나를 내려다 보더니, 경기를 보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경기가 아니라, 딴 걸 보고 있었겠지." 그러자, 내가 그에게 말했고, 진심이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아잘리는 다시 전방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멋쩍게 웃기만 하고 있었다.
"앉아."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조용히 앉으라고 말했고, 뭔가 직감한 것이 있었는지, 그런 나의 말에 바로 앉았다. 그렇게 앉더니, 아잘리는 조용히 웃으면서 내게 "알고 있었냐?" 라고 물었다.
"모를 것 같았냐?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그러자 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잔느 공주, 루이즈에 대해 옛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미인이었을 것이라 언급하고서, 아름다운 정령들이나 요정들마저 그렇게 드물지 않은 세상에서도 유난한 미인일 텐데, 옛 인류 세상에서는 오죽했겠느냐고 이어 묻기도 했다.
"...... 네 말이 맞긴 해." 다소 그런 발언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기는 해서, 바로 그 말이 맞다고 답을 해 주었다.
"공주란 칭호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거야." 나도 그렇고, 아잘리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그는 원래 공주가 아니었고, 그런 점은 이후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공주로 칭해진 것은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지켜보았고, 그것에 대해 소문을 퍼뜨린 탓일 것이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을까?" 그러자 내가 답했다. 역사서 편찬을 한다고, 세상을 줄곧 지켜보았을 엘베 족 마법사들이었을 것이라고.
"그랬겠지." 그러자, 아잘리가 바로 화답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여러 행성계에다가 '정예 모험가들을 위한 필독서' 라는 책을 퍼뜨리고, 평행 세계에서도 다른 제목으로 책을 유포하려 하면서 행성계 및 평행세계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려 했던 이들 아니었냐고.
"평행 세계 관측도 할 수 있는 이들인데, 행성계의 지하 유적 하나 관찰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겠지."
그러더니, 내게 말하기를, 잔느 공주가 잠든 모습을 관측한 이후로, 익명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공주가 잠든 유적지라고 대충 소문을 퍼뜨렸고, 그것이 샤르기스를 비롯한 그 주변 일대에 공주로 칭해진 원인이었을 것이다. 잠들어 버린 미녀하면 공주라는 그들 나름의 공식이 있었던 것 같다.
"엣날 동화에서 유래된 거잖아." 그리고 내 이야기에 아잘리가 말했다. 그러더니, 잠들어 버린 공주를 누군가는 구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라 말하고서, 이렇게 이어 말했다.
"그네들은 의외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 옛부터 전승 되어온 동화의 실현 같은 소박한 일에 관심이 많고, 자신들이 아닌 누군가가 그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았어."
참으로 엉뚱하면서도 괴이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이들이었다. 아무튼, 그로 인해 잔느는 공주란 칭호를 얻게 되었고, 본인도 그것에 대해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더 나아가, 그런 칭호를 갖게 된 것에 대해, 나름의 책임감도 갖게 된 것처럼 보였다.
"잘 됐네, 뭐."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잘리가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또 있었는지, 이어서 말했다. 처음에는 잔느 공주란 인물이 얌전하고 예의 바르지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인물처럼 보였지만, 이전의 일도 그렇고, 경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실제로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강한 기질의 사람이지만, 그것을 감추려 하고 있을 뿐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말에 나는 짐짓 의아해하는 척하면서 정말 그런 것 같냐고 물었고, 이런 내 물음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웬지 그러할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들어."
그 때 만큼은 아잘리 특유의 다소 경박한 느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상당히 진지한 느낌을 주는 소녀의 목소리가 그에게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무렵, 한창 배구를 이어가고 있던 이들의 경기가 끝났다. 이후, 세나가 공을 든 채로 앞장서서 두 사람을 이끌고 모래밭의 옷가지가 놓인 쪽으로 걸어가려 하였다. 경기를 끝냈기 때문인지, 세나, 잔느 공주 모두 머리카락을 풀었으나, 옷차림은 한창 공을 주고 받을 때, 그대로였다.
"보기 좋은 광경이야, 그렇지?" 그 때, 아잘리가 내게 이렇게 말했고, 이에 나 역시 "그렇긴 해." 라고 답했다. 머리카락부터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소녀들이 걸어오고 있는데, 보기 안 좋을 리가. 아잘리의 시선이 다소 음흉 (엉큼하다고 말하면 어디가 덧 나니 by 아잘리) 하긴 했어도, 그런 생각에 공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 그의 말에 뭐라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공을 내려놓고, 옷가지가 있는 쪽으로 가서 옷을 털고 원래대로 옷을 입었다. (공은 이후로 루이즈가 계속 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주변을 돌아보다가, 나와 아잘리 그리고 사라가 앉아있거나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고, 이어서 잔느 공주가 세나에게 뭐라 속삭인 이후에 세 사람 모두, 내가 앉은 그 왼편으로 다가왔다.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이후, 세나가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묻자,
"조금 전에 왔지." 내가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공손히 세나의 뒤에 자리를 잡을 무렵,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경기를 하는 모습은 잘 봤다고 말하고서, 여느 때처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 이어 말하기도 하였다. 이후, 세나는 내가 일어나는 때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고서, 내게 이렇게 물었다.
"다른 쪽으로 가신 분들 보러 가신 거죠?"
"그렇지." 이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앞장서서 해변을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걸어가려 하였고, 그런 나를 아잘리와 사라가 뒤따라 가려 하였다. 이후, 세나가 나의 왼편 곁에 이르고,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뒤따라 걸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동안, 나는 이전에 프라에미엘과 사라가 만들었던 모래 성 쪽으로 가려 하였다.
"모래 성이요?" 내가 모래 성에 대한 언급을 하자마자 세나가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너머에 프래미가 모래 성을 쌓았더라고. 사라하고 같이 만들었어." 그리고, 어느새 내 오른편 옆에 있던 사라에게 그렇지 않느냐고 묻자, 사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을 대신했다. 그 후, 나는 햇살이 비치는 파도가 그리는 하얀 선을 따라 걷기를 반복하며, 뒤따르는 세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 분들하고 배구 같이할 때, 힘들다고 안 하셨어?"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으시긴 했는데......" 그러자, 세나가 바로 답했다. 세나에 의하면 처음에는 자신도 그들이 배구 등의 격한 운동을 많이 한 경험이 없을 것 같아서 가볍게 즐기는 선에서 하려고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곧 루이즈가 내가 봐 주면서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진지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면 잔느 공주님은 어떻게 되느냐, 그랬고, 잔느 공주님은 그래서 제외시키려 했어요. 도전을 신청한 쪽은 루이즈 씨였고, 저도 오기가 생겨서 루이즈 씨를 전력으로 상대하려 했는데, 거기에 잔느 공주님께서 말려드시면 곤란했으니까요. 그런데, 잔느 공주님께서도 의외로 진지하게 하겠다고 하셨고......."
"그래서, 그런 경기가 나온 거지?" 이후, 내가 묻자, 세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들의 승부욕과 실력이 상상 이상이어서 자신도 경기를 하면서 너무도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신체 능력도 상당해서 처음에는 꽤 당황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와 집만을 오가며 늘 공부만 했을 이들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만 들렸으니, 그렇게 추측했다가 당황하는 것도 딱히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후, 나는 세나에게 물음을 건네기 전에 이렇게 말을 건네었고, 그러자, 세나가 바로 내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말을 건네려 할 것임을 알아차리고, 무엇에 대해 말하려 하는지에 대해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러자, 내가 바로 그에게 이렇게 묻는 말을 건네려 하였다.
"아잘리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었어, 잔느 공주님에 대해, 이래저래 수동적이고 온화한 모습만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꽤 강한 기질과 적극성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그 무렵, 아잘리가 당황과 짜증 섞인 듯한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왜 대놓고 꺼내느냐고 한 마디 말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세나에게 아잘리가 그들이 배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라고 말했다고, 이어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있었던, 세나는 물론, 잔느 공주, 루이즈 역시 놀라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다만, 루이즈는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 당황했을 뿐, 잔느 공주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딱히 놀라거나 당황하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으며, 잔느 공주 역시 어쩔 줄 몰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하셨군요." 그러자 세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고 바로 말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저도 웬지 그러할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더니,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라는 듯이 아잘리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동안 특유의 온화하고 차분한, 그리고 앳된 여성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앞서 나아가고 있었던 나와 아잘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이전에 그 괴물과 맞서려 할 때, 처음에 아르사나 님께서는 두 분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려 하셨어요. 두 분께서 위험한 상황에 몰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겠죠?"
"그랬지." 실은,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여기 글에는 적혀 있지 않으나, 아잘리가 나한테 '싸우는 능력도 없이 전장에 들어오려 하는 것을 보고 많이 황당했겠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고대의 언어를 제대로 알고, 또 고대인과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이는 그 사람 이외에는 없다고 여기었기에, 고대인과의 소통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었던 내가 어떻게든 가담시키려 하기는 했지만, 굳이 그런 위험한 전장에 뛰어들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아함을 느낀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보통의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인간들은, 그들의 후손이라 칭해지지만, 어릴 때부터 무기를 쥐고, 괴물과의 싸움을 불사하려는 경향이 있는 아르데이스의 엘베 (Elve) 족이나, 인간의 기질을 어느 정도 물려받기는 했지만, 자발적으로 싸움터에 나서는 경향이 있는 세니티아의 실페 (Sylfe), 거대한 기계 괴물을 사냥감으로 여기는 운디네 (Undine) 그리고 싸움과 사냥의 구분이 모호한 묘정족과는 분명히 다른 종족이었다.
인간은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뛰어난 기술력을 선보여, 자신들의 고향은 물론, 온 은하계에 문명의 씨앗을 뿌린 종족이라지만, 한편으로는 고통과 두려움에 민감해서 그것들을 유발하는 존재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 종족이었다. 그래서 종족의 일원인 인간은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를 유난히 여기었으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예를 익혀, 악을 물리친 이들을 '용사', '영웅' 이라 칭송한 바 있기도 했다. 잔느 공주는 기예를 익히거나 하지도 않았고, 외견은 다소 유난해 보이더라도, 성품은 보통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나 역시 여느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 세나는 그들을 보며, 보통 인간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잔느 공주님께서는 자신도 어떻게든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하셨었죠?"
"그러하셨지." 세나의 물음에 내가 또 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것을 두고 본성은 뭔가 다르겠구나, 했던 것이냐고 묻자 세나가 그렇다고 답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리고 자신들이 그간 알았던 대로, 순종적이고, 수동적이기만 한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모습을 여럿 보이기도 했었다고 그에 대해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것을 두고 우리처럼 적극적으로 싸우려 하시는 분이란 생각은 아직은 들지 않아요. 하지만 때로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이면이 있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루이즈는 잔느 공주에 대해 전혀 의아함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잔느 공주에 대해 뭔가 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보다도 훨씬 오래토록 그와 함께 있었을 테니, 그에 대해 더 아는 바가 많았겠지만, 그것에 대해 루이즈에게 묻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무튼, 덕분에 좋은 구경했다~" 이후, 아잘리가 잠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자세를 취하면서 세나 등에게 말했다. 그러자, 루이즈가 아잘리에게 나와 함께 경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아잘리는 높이 올렸던 두 팔을 내리면서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뭐." 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에 대해 모래 성 보이는 데까지는 가고 싶어 할 텐데, 그 때가 되면 한 번 말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구 같은 거 해 본 적 있지?"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곧바로 "자주 했지." 라고 답하고서, 세나도 그렇고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서 천문대에 있을 무렵에는 즐겨 했음을 밝혔다. 물론 나 역시 그런 류의 구기를 싫어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구기 류라면 이것저것 해 봤지, 테니스라든가, 타블라 테니스라든가."
그리고, 테니스나 타블라 테니스라면 아잘리도 자주 해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이에 아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지." 라고 답했다. 그리고, 주된 상대는 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가장 친한 사람과 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게 마련이라, 구기 류를 즐길 때에도 오래 전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나와 같이 했던 것. 낯선 사람과 같이 하면 감정 상할 일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일 텐데, 나에게는 그런 부담이 적기도 했다.
"정말로 테니스 같은 것도 많이 해 보셨어요?" 그 때, 루이즈가 내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랬다고 답했다. 그리고, 아잘리와 자주 함께 했음을 밝히고서, 학교 생활하다가 틈만 나면 구장에 가서 하고는 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 둘이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했다고, 학교 생활 당시의 일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루이즈라는 저 아가씨, 굉장히 흥미있어 하는 것 같더라." 그 때, 아잘리가 나에게 루이즈의 반응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조용히 미소가 나왔던 것이, 나와 아잘리가 경기를 하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간만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이후, 아잘리가 이어서 이런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런 경험, 오랜만이지 않아?" 그러할 만도 한 것이, 둘이서 경기를 할 때, 한 번씩 어린 학생들이 와서 구경을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몇 소녀들이 찾아와서 '너무 멋져요!' 등의 말을 건네기도 했었고, 그 때마다 아잘리가 그런 소녀들을 반갑게 맞이하곤 했었다. 나 역시 내심 반갑기는 했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아잘리는 그런 소녀들의 환심을 즐겁게 받아들였고, 이를 삶의 즐거운 일면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큰 흥미를 가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오랜만이긴 하다."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아잘리에게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밤 중에 시합을 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었고, 그러자, 아잘리가 그 와중에 구경하러 온 아가씨가 있지 않았냐고 물은 이후에 자신은 이름도 기억하고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옌니 (Yenny) 였었지." 내가 말했다. 이후, 그는 나를 깊이 선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서, 아무래도 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해서 밤 중에도 찾아온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러다가, 당시에 내가 했던 말이 있다고 언급을 하니, 이러하였다.
"그런 정신으로 공부를 하면, 안 되겠니? 보다 좋은 적을 거둘 수 있을 텐데. - 이랬었지. 그 때, 내가 참 매정하다고 한 마디 했었던 기억이 나."
지나치게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고, 그래서 짐짓 매정한 척 말을 건네었을 텐데, 아잘리가 이를 두고 아이가 상처 입겠다고 나에게 면박을 준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만사는 계속 나를 따라다녔고, 나를 향한 동경 역시 변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내가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옌니 역시 나름 철이 들었고, 이후로는 공방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아무튼, 루이즈와 잔느 공주가 나와 아잘리의 경기에 흥미를 깊이 느끼는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을 보면서 아잘리가 그 당시의 사만사를 비롯해 자신과 나를 동경했던 소녀들을 떠올렸던 것 같았다.
"아르사나 님, 아잘리 님에 대해 그들은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이후, 루이즈가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여타 소녀들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모종의 매력을 깊이 느낀 것 같다고 하였다. 나도, 아잘리도 마법 학교에서 보았던 몇몇 소녀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가녀린 면이 있는 그런 소녀들이었을 텐데, 아무래도 어릴 적에 소년 행세를 하며 지내고, 모험가로서, 사냥꾼으로서 살았던 경험에서 나온 기질이 알게 모르게 반영된 것 같아 보였다.
"게다가, 아르산은 학업 성적도 좋아서, 동경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 이상적인 여성 상에 대한 동경이랄지, 그런 것을 느낀 것 같아."
아잘리가 말했다. 이후, 잔느 공주가 물었다.
"그 무렵에도 단발이셨어요?" 그러자, 아잘리가 바로 "아니." 라고 답했다. 소녀들에게 동경을 받고, 할 시절이라면 고등학년 때였을 텐데, 이미 중등학년 말기 때에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고, 그래서 남자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답했다. - 여기에 나는 아잘리는 중등교육 초기 때부터 가슴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 마디 말을 덧붙였는데, 그 때, 아잘리가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짐짓 짜증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셨군요." 그러자, 잔느 공주가 바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런 아잘리에게 화답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했다, 자신이 세나와 함께 했던 것 이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아무래도 자신들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나 아잘리라면 더욱 격렬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았어. 한 번 해 볼게." 그러자, 아잘리가 바로 화답했다. 그러다, 실망하면 어쩔 거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당시의 나 역시 아잘리 못지 않은 도전 욕구를 갖고 있어서 그런 그의 뜻대로 하기로 했고, 그래서 다른 말 없이, 그의 뜻대로 시합을 해 보기로 하였다.
"학생들에게 칭송을 받을 정도면, 상당한 미인이라 여기어지셨겠어요."
"저기, 아르산은 그랬지." 이후, 잔느 공주가 다시 건네는 물음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가끔 녀석이 머리 뒤쪽에 묶은 리본을 풀고 머리카락을 흔들 때가 있었어, 지금도 머리카락이 충분히 기니까, 재현이 가능하겠지. 그렇게 머리카락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나도 내심 설레고는 했어.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내가 그 정도면 뭇 학생들은 어땠을 것 같아?"
그러더니, 나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학생 시절에는 돈을 번다고 그림 모델 일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다가, 한 번은 평소 때의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상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고 말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게 하나 있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천사의 날개 비스무리한 것을 어깨에 달고 있는 복장을 갖추고 있었지. 그러면서, 평소 때의 리본도 풀고,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머리에 꽃 장식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모델로 있을 때에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미소를 띠면서 꽃을 품은 채 앉아 있었는데, '그 청순함, 그 고귀함에 마음을 빼앗길 것만 같아.' 그랬었지. 그게 내 옆의 그 녀석이란 것을 알고 나서, 바로 정신 차렸지만."
그리고, 그 당시의 그림은 지금도 샤하르의 학교 박물관 내에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여력이 되면 한 번 찾아가서 볼 것을 권하면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다.
- 그러다가, 씩 웃더니, 모델 일 마치고 그런 화사한 옷차림과 화장을 한 채로 돈 부쳐 달라고 청하던 모습은 더더욱 잊지 못할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 그런 이야기는 왜 쓰는데. by 아잘리
그렇게 한창 대화가 이어질 무렵, 루이즈가 뭔가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한테 이렇게 묻기도 하였다..
"그런 것도 하셨었죠? 예컨대......"
"그런 거 안 했어요." 그러자 내가 답했고, 아잘리 역시 그랬을 것이라 답했다. (아마 옷을 걸치지 않은 채, 모델이 되는 것을 뜻했던 것 같다. 미술계에서는 모델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드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노출을 꺼리지 않는 편이기는 하지만, 함부로 나체를 드러내려 하지는 않고, 그러면 상당히 부끄러워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장은 아니지?" 그리고 내가 묻자,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내가 뭐, 너 옹호하려고 거짓말까지 해야 하냐? 내가 그럴 사람 아니란 건 너도 이미 잘 알 텐데."
"솔직한 분들이시군요." 그러자, 잔느 공주가 바로 웃으면서 나와 아잘리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배구를 같이 하다가 서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재미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아잘리는 서로 기분 상할 일이 있으면 나오기도 하겠지만, 당장에는 그 정도의 일은 없으니,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 그에게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모래 성이 보이는 근처에 이르렀다. 모래 성은 프라에미엘이 지키고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탐파가 나에티아나 그리고 카리나와 함께 공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후, 카리나에게 다가가서 물어 보니, 새로 공을 프라에미엘이 마련해 주었다고.
이후, 나는 카리나에게 아잘리와 함께 배구를 하게 됐음을 알리고서, 탐파, 나에티아나에게 잠시 모래 성 주변에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잔느 공주, 루이즈로부터 배구 시합을 아잘리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부탁을 받았음을 밝히고서, 이렇게 이어 말했다.
"오래 전에는 친구하고 배구 놀이도 하고 그랬는데, 간만에 한 번 해 봐야지."
"그래?" 그러자, 카리나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하더니, 바로 나에티아나 그리고 탐파를 불러 모래 성 쪽으로 가도록 하였다. 이후, 카리나가 나에티아나, 탐파와 함께 프라에미엘이 있는 근처로 오고, 나에티아나가 프라에미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내가 카리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경기가 시작될 것 같으면, 탐파하고 같이 구경하러 와도 될 거야. 그런데, 너무 근처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
"얼마나 격렬히 하려고 그래." 그러자, 카리나가 이렇게 답했다. 그 무렵, 나는 아잘리와 함께 놀이를 할 공간을 정하고, 루이즈로부터 공을 건네 받아서는 본격적인 시합 준비를 하려 하였다. 내가 공을 든 채, 나를 마주보며 선 아잘리에게 이렇게 외쳤다.
"아잘리, 공격은 내가 먼저 한다! 그 때처럼 하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임마." 그러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이후, 내가 오른손에 놓은 공을 왼손으로 쳐서 쏘아 보내는 것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려 했으나, 몇 번 서로 점수 얻기를 반복하다 보니, 승부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는지, 그 기세가 점차 격렬해지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치열하게 공을 주고 받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아잘리와 함께 시간을 보낼 떄가 많았다. 기숙사에서도 인접한 방을 썼고, 간혹 아잘리가 내 방으로 놀러올 때도 잦았으며, 뭘 하든, 아잘리와 함께 할 때가 많았다. 운동을 할 때에도 아잘리와 함께 하곤 했었는데, 둘 모두 승부욕이 나름 있는 편이다 보니, 편안하게 하던 경기가 어느새 격렬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에는 '가볍게 하자' 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후로는 그런 말은 안 하게 됐었다.
경기가 격렬해지면서 나나, 아잘리나, 한창 공을 주고 받을 때에는 공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게 됐고, 그래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며, 점수 판정이 나올 때에 잠깐 쉬면서 그 때나마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한편, 나와 아잘리가 한창 공 놀이에 열중하던 그 주변에서는 사라와 탐파가 바로 근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 뒤로 카리나, 세나,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간 아잘리와 함께 배구 등의 경기를 자주 했었지만,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주목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누가 누구를 응원하는지는 상관 없었다. 학생 시절 때에 경기를 할 때에도 그런 것은 알 바 아니란 듯이 경기에 열중했었는데, 그 때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어떤 때에는 높이 점프해서 공을 힘껏 던지기도 하였고, 가까이에서 공을 주고 받기까지 하였으며, 공이 워낙 거세게 날아다니다 보니, 그런 공을 주고 받으며 손이 아프기도 했지만, 견디어 가면서 경기를 이어갔었다.
"두 분, 이전에도 이런 경기를 자주 하셨다고 하셨는데." 휴식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잔느 공주로부터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이렇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에도 이렇게 경기를 하셨으려나요?" 이후, 세나가 그런 잔느 공주의 질문에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화답했으며, 그 이후로 두 사람 모두 승부욕이 강한 사람들인 것 같고, 승부욕이 강한 사람들은 가볍게 시작하다가도, 저렇게 격렬히 경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이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두 분 모두 오래 전부터 친구였다고 들었어요." 그 후, 잔느 공주로부터 이렇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세니아가 "그렇지요." 라고 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 (아무래도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말을 건네려 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가 잔느 공주로부터 이렇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카리나와 함께 공 놀이라든가, 경기를 이것저것 할 때가 있거든요, 저 정도까지는 안 하는 편이에요. 평소에도 저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서로 다툰 적이 있고, 그 때의 응어리를 저런 식으로 풀어간 적이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때, 직감했던 것 같았다. 아잘리가 나에게 어릴 적에 싸움을 걸었고, 그 때문에 서로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고, 그 때의 응어리가 남지 않은 것은 아니라, 공 놀이라든가, 경기를 통해 응어리를 풀려 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런 과거 행적이 있었음을 그 당시의 광경을 보며 알아차린 것처럼 보였던 것.
"그렇다면, 저 둘이 다툴 때가 있으리란 거야?" 이후, 카리나의 물음에 세니아가 이렇게 답했다.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 그러더니, 세니아가 이어 말하기를, 어릴 때, 한 번 크게 다투었을 것이고, 그 이후에 서로 화해를 하면서 어지간해서는 서로 갈라서지 않으려 하게 되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카리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너도 나와 싸운 적 있었잖아, 그렇지?"
"그랬지. 하찮은 일로 싸운 적이 있었는데, 경쟁심이랄지 그런 게 있어서 정말 격렬했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거 없는 이유였는데."
이후, 들린 바에 의하면 학업 성적 차 문제였던 것 같았다. 당시 학업 성적이 세니아 쪽이 조금 더 좋았고, 카리나가 그것을 두고, 세니아가 으스대는 것처럼 보여서 서로 싸웠다고 했다. 이후, 학교 선생으로부터 '학교 공부는 싸움이 아니고, 학업 성적은 전투력이 아니야!' 라고 크게 질타 당했고, 그로 인해 서로 반성과 화해를 하면서 가까워지게 됐다고 했다.
잠깐 쉬고 있을 때, 시작됐을 대화가 끝날 무렵, 다시 경기가 시작됐고, 이어지는 격렬한 경기 끝에 승부가 났다. 이긴 쪽은 나였다. 처음에는 아잘리가 잘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느 시점 이후로는 내가 계속 득점을 했고, 이를 아잘리가 만회하지 못해 내가 승리하게 된 것. 어쨌든, 첫 승부가 나면서 잠깐 쉬는 시간을 갖게 됐고, 그리하여 아잘리와 함께 자리에 앉아 쉬면서 잠깐 주변을 둘러보려 하였다. 세니아는 카리나와 함께 모래 성 쪽으로 갔으나, 사라, 탐파는 루이즈, 잔느 공주 그리고 세나와 함께 경기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쉬고 있으면서 나는 카리나, 세니아가 대화를 통해 드러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상기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조금 쉬고 난 이후에 내가 공을 들고 아잘리 쪽으로 보내는 것으로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전의 경기를 한 판으로 정하고, 최대 두 판까지 할 생각이었다. 그 때부터는 경기가 보다 격렬해졌으니, 아잘리가 어떻게든 이기려고, 몸을 더 격렬히 움직였고, 점프해서 공을 날리는 것까지 감행했기 때문이었다. 아잘리가 뛰어올라서 공을 날리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다 보니, 처음에는 그런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 뛰어올라서 급히 내려치는 공에 크게 당황하기도 했고, 때로는 공에 맞기도 했다. 어쩌다가 공이 모래밭에 충돌하는 모습도 봤는데, 충격파가 모래를 일으키는 광경도 보였다, 얼마나 거세게 공을 내던졌던 것인지. 게다가 일부는 내가 맞기도 했다. 쇠 몽둥이로 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질 지경으로 얼굴에 안 맞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되었으니, 나도 바로 강하게 대응하기로 했으며, 그래서 온갖 방법을 써 가며, 아잘리의 '공세' 에 반격하기로 했다. 한 손으로 받아냈다가 다른 손으로 아잘리에게 공을 거세게 내보내기도 했고, 그가 이전에 보였던 바처럼 높이 뛰어 오른 채로 공을 거세게 그를 향해 내던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몇 번 그를 놀라게 하려 하였고, 그에게 몇 번 공으로 실제로 '타격' 을 주기도 했다.
공이 모래밭을 강타하고, 실제로 맞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아잘리는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식의 경기가 재미있기라도 한 것인지, 씩 웃기도 했다.
"그런 게 즐거운 거냐? 이 자식!" 내가 묻자, 아잘리에게서 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한테 주먹으로 맞는 것보다는 낫지, 뭐!" 높이 뛰어오르면서 강타를 가하려 하던 때에 나온 말이었다. 그 때에는 동작이 커서 바로 피해냈다.
"원래 배구, 저렇게 하는 거 맞아요?" 그러던 그 때,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내가 아잘리의 공을 받아칠 즈음에 들렸다. 그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잘리를 향해 공을 날리는 힘을 잃어, 공을 이전보다 더욱 약하게 날리게 되었고, 아잘리 역시 충격을 받았는지, 더 행동을 취하지 못해, 정수리에 공을 맞은 이후에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따름이었다.
승부는 사실상 무승부였다. 어느새, 점수 세기도 잊어버린 마당에 점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도 못했고, 애초에 더 경기를 이어가지 못하게 된 만큼, 무승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후, 나의 앞으로 잔느 공주가 다가왔다. 그리고, 나와 아잘리를 한 번씩 보더니, 이렇게 말을 걸려 하였다.
"두 분께서 무슨 악연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더니,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이런 식으로 경기를 하시는 것은 별로 좋은 것은 아니에요. 특히, 아이들도 보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러시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보고 있다' 는 것을 잊으면서 했던 것은 사실이라, 그 말에 어떻게든 수긍을 해야 했고, 아잘리가 바로 잔느 공주에게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공을 들어서 잔느 공주 등에게 건네면서 다음부터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잔느 공주는 그 공을 갖고, 프라에미엘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으며, 이후, 공은 프라에미엘에 의해 사라졌다. 공의 할 일은 그렇게 끝난 것이다.
공을 프라에미엘에게 돌려주고 나서, 잔느 공주는 다시 일행의 곁으로 돌아왔다.
"두 분께서 이렇게 격렬하게 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후, 잔느 공주는 아잘리에게 이렇게 말을 걸더니, 이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아르사나 님과 함께 배구를 자주 하셨었나요?" 그러자, 아잘리는 어렸을 적에 나와 함께 공놀이를 자주 했고, 학교에 다닐 즈음에는 배구나 테니스, 탁상 테니스 등을 자주 했었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나름 오래했었고, 가끔 승부욕이 지나치면, 이전 때와 같이 할 때도 종종 있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 무렵, 프라에미엘, 카리나, 세니아 등과 함께 있던 나에티아나가 일행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알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일행 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세나가 바로 나에티아나에게 다가가서 물었고, 그 물음에 나에티아나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 보자는 요청을 프라에미엘이 전했음을 밝히고서, 준비가 됐으면 프라에미엘이 있는 쪽으로 와 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그는 나와 잔느 공주, 아잘리 등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프라에미엘 씨가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고 청했어요. 준비가 되면 그 쪽으로 와 달라고 하네요."
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 역시 딱히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놓아둔 것이 거의 없기도 해서, 바로 해변에 있던 이들을 인솔해서 카리나, 프라에미엘 등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에티아나에게 그 쪽으로 금방 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화답한 이후에 세나에게,
"세나, 어서 가자. 프래미는 이미 준비한 것 같던데, 기다리고 있겠다."
이렇게 말하고서, 곧바로 앞장서서 카리나, 프라에미엘이 보이는 곳으로 가려 하였다. 그렇게 내가 앞장을 서고, 세나가 잔느 공주, 루이즈 그리고 사라, 탐파를 인솔하면서 뒤따라 가는 동안, 아잘리가 그런 나의 왼편 곁으로 다가왔고, 이어서 나와 발걸음을 맞추면서 나와 동행하려 하였다.
"승부는 다 못 낸 것 같은데, 어떡할 거야?" 나에게 다가오자마자, 아잘리는 바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이렇게 답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건데,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 보이는 곳에서는 안 할 거다, 그렇게 알고 있어."
그리고, 그 대답에 이이서, 그렇게 과격하게 경기를 할 거면, 적어도 애들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고서, 그것 때문에 학교에서 몇 번씩이나 같이 혼난 적도 있는데, 그랬던 거, 벌써 잊어버렸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잘리는 멋쩍게 웃으며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방금 전에는 그걸 까먹은 듯이 행동했으면서."
"아무튼, 다음부터는 애들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마." 나도 다를 거 없지 않았느냐는 아잘리의 말에 뜨끔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갖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 싸움하기는 싫었고, 그래서 그렇게 화답했다. 아잘리는 내가 자신의 말에 뜨끔했음을 알아차린 듯, 씩 웃으면서 "알았어." 라고 화답했고, 그러더니, 바로 이렇게 말했다.
"남은 건 이후에 하기로 했다,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까먹지 마, 알았지?"
그 후, 나는 고개를 잠깐 뒤로 돌려, 세나가 있는 쪽을 보려 하였다. 세나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사라의 왼손을 잡으며, 그와 동행하고 있었으며, 탐파가 두 손으로 잔느 공주, 루이즈의 손을 잡은 채로 그와 동행하려 하였다. 탐파는 매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잔느 공주, 루이즈 역시 환하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탐파 양이 무척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세나가 말했고, 루이즈가 바로 그런 탐파에 대해 그러하다고 화답하는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귀엽지 않아?" 그 무렵, 아잘리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고, 나는 "그렇지." 라고 바로 간단히 화답했다. 그러더니, 그에게 "같이 있고 싶어?" 라고 물었고, 아잘리는 그런 나에게 그러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 그의 모습을 잠깐 보면서 그것이 농담이 아님을 바로 직감했다. 아니, 반 즈음은 농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넌 같이 있으면, 장난 칠 거면서." 그러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같은 소녀들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니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나, 루이즈 등은 정도는 다르기는 해도, 온화한 면이 있는 이들이고, 탐파와 같은 어린 소녀를 보살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이 예전부터 있었을 텐데, 아잘리와는 다를 수밖에. 아잘리라면 그 아이를 데리고 이런저런 이상한 장난을 치려 했을 것이 너무도 뻔해 보였다.
"너라면, 잘 보살필 수 있었겠냐?" 이에 아잘리가 바로 이렇게 되물었다. 다소 분하기는 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 답을 하지는 못했다. 나라면 아잘리와 달리, 어떻게든 어린 소녀를 잘 보살피려 했지만, 어릴 때부터 자상함과는 거리가 있는 짓거리들을 해 온 나였던 만큼, 나라고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우리 같은 애들이 누군가를 보살피는 데에 어울리기라도 하겠냐?"
이후, 아잘리에게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나중에 탐파가 자기들을 찾아오면 같이 놀아주기 위해 할 일이나 생각해 보자고 청했고, 이에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렵, 아잘리의 왼편 근처로 하나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탐파의 곁에 있던 루이즈였다. 루이즈는 아잘리를 보더니, 공손한 어조로 그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혹시 아르사나 님의 친구 분이신가요?"
"예...... 그렇죠." 그러자, 아잘리는 곧바로 떨떠름해진 채로 답했다. 세상 그 무엇 하나 두려울 것 없어 보였던, 심지어는 왕의 측근 같은 높은 사람 앞에서도 결코 기 죽지 않을 것만 같았던, '천둥벌거숭이' 아잘리가 그렇게 말을 더듬는 모습은 그 때 처음 본 것 같았다, 상대가 온화하고 공손하게 말을 했음에도.
"어릴 때부터 아주 친했죠." 이후, 아잘리는 멋쩍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더니, 루이즈에게 이렇게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고향 마을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같이 놀고는 했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여러 어른들 따라 세상의 여러 곳을 오가기도 했고. 그래서 그 동안 여러 재미난 일들을 많이 보긴 했지요."
아잘리는 루이즈 앞에서는 나름 공손하게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그가 잔느 공주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왜 그랬는지, 잘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 것만 같았다. 루이즈는 인간으로 치면 10 대 중, 후반의 소녀라 할 수 있었겠지만, 아잘리 (그리고 나) 보다도 키가 큰, 도도한 인상의 미녀였다. 그런 사람이 자기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 자신도 내심 당황했을 것이다. 나라면 어떠하였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잔느 공주님과는 오래 전부터 친구이셨던 것 같은데, 맞나요?" 이어서 아잘리가 루이즈에게 물었다. 그러자, 루이즈는 "그랬었죠." 라고 바로 답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잔느는 어느 과학자의 딸이라고 했었어요, 그 과학자 일가와는 많이 닮아 보이지는 않아서, 처음 봤을 때에는 정말 친 자식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하기도 했었지요. 그래도, 비록 남남이기는 했지만, 잔느의 모습은 어쩐지, 그렇게 낯설지 않았어요. 친 자매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친 자매 같았다고요!?" 그러자, 아잘리가 바로 그에게 그렇게 물었고, 이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의 모습이 은근 닮았다고 여기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러하기도 했었지요."
그 말을 건네는 루이즈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인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다만, 몇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은 있었다. 옛 인류 세상의 과학자 (아마도 현수 장 (Hyânsu Jang) 이었을 것이다) 일가의 자식으로 되어 있었지만, 친 자식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일가와 다른 면이 많았고, 더 나아가, 남남이었을 루이즈가 그를 자매 같다고 말했으니, 잔느 공주, 루이즈는 서로 모르더라도 나름의 인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길 여지도 있었다.
"내가 너를 보면서 친 자매 같다고 말한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이후, 아잘리는 바로 나에게 물었고, 내가 그 물음에 바로 답했다.
"갑자기 미쳤냐고 하겠지." 원래 나는 아잘리와 애정을 통해 인연을 맺거나 한 것도 아니었으며, -주먹 다짐의 인연이지 by 아잘리- 그래서 자매는 고사하고, 형제, 심지어는 숙적 관계라는 말에도 거부 반응을 드러내고는 했었다. 나는 아잘리에 대해 그냥 '좋은 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었으며, 아잘리 역시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곤 했다. 서로 친하게 지내려 한 것은 맞으나, '낯 간지러운' 칭호까지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웬지 루이즈는 잔느 공주를 보통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그래?" 이후, 아잘리는 나에게 바로, 루이즈에 대해 잔느 공주를 보통의 친구 정도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으며, 이어서 친구 이상의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잔느 공주에 대해 말할 때에는 다른 때와는 어투가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하더니,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루이즈가 주변 일대를 둘러보던 때에 잠시 목소리를 낮추더니, 나한테 이렇게 말하려 하였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그러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의자매라고?" 이에 내가 짐짓 당황한 척하며 묻자, 아잘리는 그런 것 같다고 답하고서,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루이즈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런 것 같다, 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어."
라고 이어 말했다. 아잘리는 주변의 특이한 것에 대해 언급을 할 때, 자신이 느낀 바를 중심으로 언급하는 감이 있었다. 근거를 아주 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근거를 마땅히 다 대지 못하고, 직감을 중심으로 무언가에 대해 추측할 때가 많았다는 것. 그 때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잔느 공주, 루이즈가 서로를 친구 이상으로 여기고 있음에 대한 마땅한 근거가 없기는 했지만, 그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르산, 너도 봤지? 보통의 친구는 늘 우리 같지만은 않겠지만, 그렇다고 루이즈가 잔느 공주를 대하는 것처럼 하는 경우는 더 없다는 것도 있어."
"그래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거로구나." 이에 나는 바로 아잘리가 왜 그런 추척을 했는지에 대해 바로 알아차렸고, 이에 아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로 떠들며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나에티아나를 불렀던 프라에미엘이 바로 곁에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프라에미엘은 내가 먼저 다가온 것을 보며, 바로 시내로 가자고 청했고, 이에 나는 알았다고 화답했다. 이후, 다시 모인 일행을 카리나가 인솔하며, 시내 남쪽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 즈음이면 문을 연 가게들이 많겠지?" 일행이 다시 시가지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내가 카리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그러할 것이라 화답했다. 처음 해변에 왔을 때로부터 꽤 시간이 지났으니, 어지간한 가게들은 문을 열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다시 돌아온 시가지는 확실히, 이전에 비하면 더욱 활발해져 있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었고, 거리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시가지로 돌아갈 즈음에는 일행은 서로 뭉쳐 다녔으나, 시가지로 돌아올 즈음에는 2 ~ 3 사람씩 흩어져서 걸으려 하였다. 한데 모여 있으면, 아무래도 눈에 확 띄어, 시선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가해질 수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나는 아잘리 그리고 사라, 탐파와 같이 다니게 되었다. 원래는 어린 아이들하고만 같이 다니려 하지는 않았으나,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
"그래도, 이런 어린 아이들과 함께 다닐 일이 그간 얼마나 있었냐? 좋은 경험이지."
아잘리가 말했다. 아잘리는 탐파, 사라 같은 어린 아이들이 자신과 동행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라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좋기는 했다. 탐파와 같은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나 역시 좋은 일이라 여기었기에. 다만, 세나, 카리나와 같은 나와 가까운 사람도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어찌하다보니, 그리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기는 했다.
"그러고 보면, 너도 애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
소녀들을 데리고 길을 걷는 나를 보면서 아잘리가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슈라일에서 카티야 (Katiya) 그리고 에이샤 (Eisha) 를 만난 적이 있음을 밝혔다.
"슈라일 호수가에 있다가 우연히 그 아이들이 놀러 다니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그 아이들이 나한테 오는 모습을 보았어. 내가 이전에 만난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가볍게 인사를 건네려 하는데, 나를 보더니, 같이 어울려 줄 수 있겠느냐고 나한테 말했어. 그러더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언니와 모험을 떠날 때가 있었다고 말하더라고."
"그게, 나였단 말이지?" 이에 내가 묻자, 아잘리는 그랬다고 답하고서, 바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사람이 누구였냐고 묻는데, 네 이름이 나오더라, 아르사나, 그게 네 본명이었지? 같이 호숫가 일대를 다니면서 호수의 '마왕' 도 만났었다고 했었어, 포레 느와흐라고 했던가. 네 어머니가 '성녀' 로서 물리쳐 버렸던 그 마왕을 너와 함께 대면하기도 했었다고 말했었어."
그랬었다. 카티야, 에이샤는 나와 함께 다니면서 마왕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던 포레 느와흐란 존재와 마주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에 의해 저주를 받게 된 사리 공주를 비롯한 불행한 여인들과도 만났었다. 그 때의 이야기를 아잘리와 만났을 때에 바로 했던 것 같았다.
"이야, 그 애들 대단하데, 마왕 앞에서 결코 기죽지 않았더라~."
이후, 아잘리는 나에게 카티야, 에이샤에 대해, 그들이 마왕이라 칭해진 포레 느와흐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알리고서, 포레 느와흐에게 나오라고 외치기도 했고, 겁쟁이처럼 숨어있지 말라고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하더니, 나에게 전부 사실이냐고 물었다.
"사실이지, 내가 옆에서 지켜봤는데." 이에 내가 바로 그렇게 답했다.
"용사가 될 소질이 있는 그런 아이들이었어, '누군가' 처럼 말이지."
"그 '누군가' 가 누군데?" 이에 아잘리가 묻자, 나는 조용히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누군지 몰라서 그래?" 라고 바로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달리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은 듯해 보였으나, 뜨끔한 듯한 표정을 짓는 것까지 차마 감추지는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마왕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아?"
"그랬겠지."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하나 있었는지, 나에게 한 가지를 언급하려 하였다. 바로, 어렸을 적에 리사 선생님과 함께 여행을 거듭하던 때로 여러 행성계들을 오가면서 많은 것들을 보았던 어린 시절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 때, 리사 선생님께서 각지의 서점에서 책자들을 마련해 오셨잖아, 군인, 모험가들의 필독서라고 가져온 책들."
"그랬었지." 아잘리의 말에 내가 바로 화답했다.
그 책자들은 나도 기억하고 있다, 아르데이스의 '아벨 드라케치드 (Abel Drakecid)' 라는 엘베 족 대마법사와 그 휘하 사람들이 내놓았다는 책들로 각 행성계의 면모를 관찰해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행성계의 특성에 맞춰 발간해서 행성계의 서점에 흩뿌린 책들로, 리사 선생님께서는 그런 책자들을 각지에서 수집하시고 계셨던 것. 왜 그런 책들을 수집하시려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책에는 행성계의 병사들, 시민들의 낙서 기록까지 반영되어 있었다. 심지어 세니티아, 루마 성계권의 사람들 (아르데이스, 알바레스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그 책자들을 보면서 나와 아잘리 역시 '낙서를 해도 되는 책이구나!' 하면서 마구 낙서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거기서 아잘리, 네가 낙서해 놓은 것을 봤는데, 그런 강대한 악당이나 높은 사람들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는 감탄할 만했더라."
아잘리가 당시에 책자에 적어놓은 것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세상의 '높으신 분들' 이 저지르는 부조리상에 대해 책자의 글로나마 그들에 대한 분노, 항거의 의사를 드러낸 바 있던 그런 아이였다. 리사 선생님께서도 다소 지나치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불의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 일면을 발견하시고서, 용사의 자질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랬던가." 그러더니, 아잘리는 바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욕을 했지, 너는 저주를 퍼부었고." 그러더니, 바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리사 선생님께서 용사의 자질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내가 아니라 너에 대한 것이었어. 어떤 악이 어떻게 위세를 떨치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는 기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너를 두고 하신 말이었지. 나에 대한 것은 아닌 것 같았어. 어렸을 때, 네가 겪은 일이 있기도 했고."
"무슨 일?" 이에 내가 묻자, 아잘리가 바로 되물었다.
"너한테는 결코 잊지 못한 일일 텐데, 그 나쁜 공장장 아저씨한테 항의한 일이었잖아."
그 이야기에 나는 어떻게 반박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 때에 대해서는 아잘리는 리사 선생님께도 들었고, 신문을 통해서도 본 바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했으나, 그것에 대해 리사 선생님께서 용사의 기질이 있음에 대해 아잘리가 아닌 나를 지목한 것은 그 때서야 알게 됐다.
"지금도 어린 나이에 그렇게 용감하게 행동할 애는 너 밖에 없을 거라 하시더라."
"지금은 그렇게 못할 것 같아." 이에 내가 이렇게 화답했다. 그리고 카티야, 에이샤에 대해 용사의 기질이 있어 보였다고 말하고서, 그들을 조금 더 눈여겨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아잘리는 "제자로 둘 생각이지?" 라고 말했고, 이에 나는 그렇다고 바로 화답했다. 그들이라면 나와 아잘리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이라 바로 장담할 수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애들 욕쟁이 될까 봐, 두렵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아잘리가 바로 말했다. 반 즈음 농담이긴 했지만, 걱정이 들기는 했던 것도 사실이겠지. 하지만, 내가 그들을 제자로 둘 즈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아잘리의 말을 조용히 웃어 넘기려 했다.
"언니, 저기 건물 위로 올라가도 돼요?" 그 때, 탐파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물었고, 이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런 그에게 답했다.
"떨어지면 위험해, 그러니까, 함부로 올라가려 하지는 마." 그리고서,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에, 그들에게 걱정 끼칠 일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타이르기도 했다. 탐파는 묘정족이고, 고양이의 기질이 있기에, 그런 말을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탐파는 의외로 그런 나의 타이름을 잘 받아들이고,
"알았어요." 라고 화답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높은 데로 올라가는 거, 한 번이라도 허락해 주실 거죠?"
"그래, 언젠가는." 그러자 내가 화답했다. 탐파가 어떻게 건물 위로 올라가려 하는지는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사라가 나의 우측 곁으로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탐파에 대한 말을 건네려 하였다.
"탐파 양은 나무라든가, 건물만 보면 위로 올라가고 싶어해요. 그러다, 간혹 그 열정이 지나쳐서 위험에 빠질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전에는 어떤 공방 건물 옥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가 잘 내려오지 못해, 저한테 도움을 청한 일도 있었어요. 그 이후로 한 동안 탐파 양이 어디 올라가려 할 때마다 그 밑에서 대기하고 있기도 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떨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리 했던 거지?" 내가 묻자, 사라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로 한 동안 낙하라든가 착지법에 관한 훈련을 제가 맡아서 했었어요."
뛰어 올라가는 법은 알았어도, 뛰어서 내려가는 법은 몰랐을 탐파에게 사라는 묘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건물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법을 자신이 직접 배우고, 탐파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에 탐파는 그런 가르침대로 잘 뛰어 내려가려 하였고, 이후에는 나름 제대로 배워서 사라의 걱정을 덜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역시, 함부로 건물 위로 올라가게 해서는 안 되겠죠?"
"그렇지," 내가 답했다. 그리고 사라에게 묘정족이 아님에도 어떻게든 배워서 묘정족의 기본 능력에 대해 알려주려 한 것은, 그에게 애정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사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애정이 없다면 거짓말로 받아들일 것 같아요." 라고 답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미래에는 함께 살아야 할 수도 있으니, 이렇게 도움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러하겠지." 이에 내가 답했다.
그렇게, 한 동안 길을 걷고 있을 무렵, 나의 눈앞에서 앞장서 갔던 이들이 길목 왼편의 찻집을 찾아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찻집 자체는 작아서, 일행 모두가 같이 있기는 힘들어 보였고, 그래서 앞장서 간 이들에게 다른 곳을 찾아가겠다는 의사를 드러내기 위해 그들 무리에게 다가가기로 하였다.
찻집에 찾아가려 한 이들은 세나,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 그리고 잔느 공주와 루이즈였다. 그들의 앞에 이르자마자 나는 일행을 인솔하는 역할을 맡은 프라에미엘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프래미, 나는 아잘리 등하고 다른 데 갈 거야. 아무래도 다 모여서 가려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
"알았어요." 그러자 프라에미엘은 좋다고 답했고, 이후, 나는 찻집을 지나, 서쪽 길목 너머의 건물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길 너머로 도자기 공방, 연금 공방, 인쇄소 등이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아잘리의 표정이 불길해져 갔다. 아무래도 아잘리는 내가 그런 데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공방이나 인쇄소에 갈 것 같아서 그래?"
"너는 만날 그런 데에만 관심이 있었잖아." 그러자 아잘리가 바로 투덜대는 듯이 답했다. 학생 시절의 방학 때에도 공방이나 도서관, 교회 등지에서 일하고는 했었는데, 그것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다만, 나도 이전에 힘들게 싸움을 벌이고 그랬던지라, 굳이 그 이후에도 공방에서 일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공방에 갈 생각은 있었다. 탐파, 사라에게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려면 그 곳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음이 그 이유였다. 그리하여 나는 길목의 한 가운데, 그 우측에 자리잡고 있었을 연금 공방에 가기로 하였다.
"아가씨들이 여기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지?" 공방의 정문을 열자마자 바로 대체로 하얗게 칠해진 듯해 보였던 공방 내부에 머무르고 있었을 드벨파 족 남자가 나를 맞이하며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이렇게 화답했다.
"아이들에게 뭔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그러자, 공방 주인인 남자는 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준비 과정이 필요할 테고, 입장료도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나는 바로 지갑을 뒤져서 2000 G 정도의 돈을 꺼냈고 (보상금을 받았기에 나름 충분한 돈이 있었다), 그 돈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요?"
"2000 G 정도로구먼, 반만 내 줘도 상관 없어." 그러자 공방 주인은 그 반인 1000 G 정도면 된다고 답했고, 그리하여 나는 그 중에서 1000 G 만 그 남자에게 건네었고, 돈을 건네 받은 남자는 "고마워." 라고 답한 이후에 자신은 곧 준비를 하러 갈 테니, 현관 왼편 (현관을 등지는 방향의 왼편이었다) 의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라. 좀 있다가 음료들이 한 잔씩 너희들에게 도착할 게야."
그리하여 나는 공방의 주인이 말한 바대로, 아잘리 그리고 탐파, 사라와 함께 공방 한 곳에 자리잡은 소파에 앉아서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소파 앞에는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공방을 방문한 손님 등이 그 탁자에 차를 올려놓고 마실 수 있도록 배치된 것 같았다."
공방의 소파에 앉자마자 나는 바로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공방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 하였다. 창가마다 하나씩 옛 문명의 산물들을 축소화한 것처럼 보이는 모형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하나의 공예품 혹은 실제 물건의 축소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내가 앉은 탁상의 한 구석에도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으며, 그 화분 역시 매끈한 표면 위에 세밀하게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그 아저씨에 의해 그려진 것이려나.'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조용히 혼자서 말했다. 그 때,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아잘리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했는데. 그러고 보면, 아르산, 너는 예전부터 그랬지, 이런 자그마한 공예품 같은 것들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더라."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창가 등에 놓인 물건들을 봤느냐고 묻더니, 고 문명의 산물들과 닮은 것들이 여기저기 보인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나도 봤어." 라고 화답하고서, 드벨파 인들이라면 인류 문명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산물들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과거를 떠올리려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언니, 드벨파가 뭐냐옹?" 그 때, 탐파가 아잘리를 보면서 물었고, 이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여기서 조금 멀리 떨어진, 아르데이스라는 행성이 고향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거야. 나무 밑둥이나 동굴 아래에 도시를 만들어서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 그런 습성이 과거의 설화에서나 언급되었던 '드베르그 (Dverg)' 와 닮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대."
"그러면, 왜 거기 사람들은 지하에서 사는 거야? 답답하지 않아?"
왜 드벨파 인들은 지하를 고향으로 삼으려 하는 것일까, 탐파는 무심결에 질문을 했겠지만, 사실, 간단하게 대답하기에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드벨파 인들이 지하 공간을 선호한다지만, 지상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드벨파 인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점은 물론, 더 나아가, 그들의 조상이 인류였다는 점까지 거론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항을 어린 탐파에게 아잘리가 어떻게 설명할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어떻게 말해 줄 것인지에 대해 기대가 되기도 했으니, 아잘리도 그렇게 머리가 단순하거나 한 이도 아니고, 엄연히 샤하르의 마법 학당을 졸업한 인재인 만큼, 어떻게 그 재능을 드러낼지를 보고 싶었던 것.
"그게 너 같은 아이한테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설명해 볼게. 궁금한 게 있으면 사라 등에게 물어봐도 좋을 거야."
그리고, 아잘리는 탐파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그가 궁금해 하던 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향은 여기서 조금 멀리 떨어진 아르데이스 (Ardeis) 라고 했어.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엘베 들, 그리고 드벨파 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이었지. 이 곳도 한 때는 여느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의 고향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아주 위험한 독기로 가득찬 황무지가 되어버렸지, 독기이지만 전염병처럼 전염도 되고, 전염성도 강하며, 전염되면 치료법이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런 독기로 가득한 곳이 되어버린 거야.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지하 공간을 개척해 그들의 도시와 마을을 건설해 살아가게 된 거야."
"전염되는 독이라고? 그런 독도 있어?"
"그랬다는 것 같아, 그 행성의 인류 세계를 멸망시킨 미사일들이 폭발한 여파로 그런 독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독기에 닿으면 살 수 없었기에, 독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지하로 숨어들었을 거야. 그런 이들이 지하 세계에 적응해서, 지하 공간에 도시를 세우고,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갔지. 하지만 그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성질을 바꾸어 가다보니, 독기와 질병에 대한 적응력은 강해졌지만, 예전 인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지. 그런 이들이 지금의 드벨파 인이라 칭해지는 거야."
"그리고, 지상에 남은 이들도 있겠죠, 그들이......"
"그들 중에서 '정령의 나무' 를 통해 독기를 피해갈 수 있었던 이들이 바로 엘베 인들이지. 나무가 발한 정령의 빛이 독기를 막아 주었고, 그 덕에 지상에서 어떻게든 살 수 있었지만, 그들 역시 빛의 여파로 예전의 인간들과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버린 거야. 마지막으로, 정령의 빛을 받지 못했던 지상에 남은 인간들 중 일부가 간신히 살아남아, 그 외견이 비틀려버린 구르 (Ghur) 인이 된 것이지."
이어서 사라가 건네는 물음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사라, 탐파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였다. 내 예상대로, 사라는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문제는 탐파였다. 평범한 어린 아이 같았을 탐파가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중요했던 것.
탐파는 '전염되는 독' 이란 말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긴, 아잘리도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이해를 하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같긴 했다. 다만, 독기를 피해 살아남은 인간의 후손이 드벨파였고, 그러하지 못한 이들 중 일부는 엘베가 되고, 나머지는 구르가 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때, 특유의 밝은 표정이 그에게서 보였다).
"그렇다면, 저 아저씨는 원래 인간의 후손이었고, 그래서 인간의 유산들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거예요?"
"잘 이해하고 있구나. 그렇지, 그래서 저런 모형도 만드시고, 그러하시겠지."
이에 아잘리는 바로 밝게 미소를 띠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창가에 있는 차량 등의 모형들을 보여주면서 그런 기억을 갖고 기억의 산물들을 만들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의 유산과 유산의 기억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하였다. 그 후, 탐파는 나와 아잘리에게 드벨파 사람들의 도시에는 가 보았느냐고 묻자,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한 번 정도는 가 봤지, 인간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궁금하면 그 쪽에 가 보라는 말이 있기도 했으니. 아르산, 그렇지?"
이후, 아잘리는 나에게 그렇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렇지." 라고 답했다. 실제로, 나는 아잘리 그리고 리사 선생님과 함께 드벨파 족의 도시에 있어본 적이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답할 수 있었던 것. (아주 어렸을 적에 드벨파 족의 도시에 있기도 했었지만, 그 기억을 굳이 꺼내려 하지는 않았다)
"너도 언젠가는 가 봐,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야." 이후, 아잘리는 활짝 웃으면서 탐파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나 보군," 그 무렵 공방의 주인이 흥미진진함의 감정을 드러내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나를 비롯한 4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그의 두 손에는 네 개의 잔이 든 넓은 접시가 쥐어져 있었으며, 그 접시를 든 채로 공방 주인은 조심스럽게 탁자 쪽으로 걸어왔다가 마침내 탁자 위에 허리를 굽히고, 접시를 조심스럽게 올려 놓았다.
"기다리고 있거라, 곧 재미있는 볼 거리를 마련해 오도록 하지."
찻잔을 올려두고서, 공방 주인은 곧바로, 나를 비롯한 4 명에게 그렇게 말을 건네고서, 다시 계산대 안 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 안에 자신의 공방이 있어서 그 안에서 작업을 하거나, 실험 등을 해 왔던 것 같았다. 그렇게 공방 주인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려 하는 동안,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려 하였다.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던 (공방 주인에 의하면 카페의 찌꺼기로 만든 것이라 하였다) 접시 위에 놓인 네 유리 잔에는 약간 녹색을 띠는 듯한 엷은 노란 색의 차가운 액체 (투명한 잔 위로 습기가 피어오른 듯한 모습이 보였다. 차가운 액체 (주로 찬 물) 가 유리 잔에 담길 때에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얼음이 잔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녹차라 칭해지는 음료로 이를 얼음을 이용해 차갑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입에 조금 머금어 보니, 얼음 덕분에 어느 정도 식혀지기는 했지만, 온기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느낌이 있었다. 따뜻한 녹차를 만든 후에 얼음으로 차갑게 식히려 한 것 같았다. 맛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탐파, 사라도 충분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보였고, 그래서 내가 탐파, 사라에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탐파, 사라도 한 번 마셔 보렴." 그러자, 탐파, 사라 모두 바로 잔을 받고, 마시기 시작했다. 탐파는 찬 음료여서 그러한지, 바로 마시려 하였고, 사라는 조금씩 마시면서 맛을 느끼려 하고 있었다. 그런 탐파와 사라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탐파는 '아주 시원했다' 정도로 평가할 것 같다고 예상했고, 사라의 경우에는 나름 진지하게 맛을 평가하려 할 것 같다고 예상하면서 그들이 차를 마시면서 느낀 맛에 대한 감상을 기다리려 하였다.
"맛은 어땠어?" 그리고 잠시 후, 아잘리가 탐파에게 묻자, 탐파가 바로 답했다.
"시원했다옹~" 그러면서 탐파는 환하게 웃는, 장난기 어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어서 사라 역시 차분한 미소를 띠며 "맛이 좋았어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서, 단순히 차가움, 시원함의 느낌으로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닌, 차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려 했다는 느낌이 있다고 차에 대해 이어 말하기도 했다.
"좋은 배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러더니, 사라는 이어서 그렇게 말하고서, 그러한 차맛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음을 알리고서, 공방에서 뭔가 배우려 한다면, 차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 할 것 같다고 이어서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내가 그런 그에게,
"공방 주인 아저씨의 주특기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좋은 배움을 얻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다. 그 무렵, 나는 녹차를 조금씩 마시다가 다 마신 이후에 찻잔을 접시 위에 올려놓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 앞쪽에 있는 것들을 향해 하나씩 다가가려 하였고, 그러는 동안 탐파가 그런 나를 따라 다니면서 나와 함께 공간 내부에 자리잡은 모형이나 창가 등등을 살펴보려 하였다.
창가에는 화분들과 더불어, 각종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방 주인이 만들었을 것 같은 모형들은 여러 형상을 가진 인형들부터 시작해서 비행기, 전차 등의 모형도 있었다. 그리고, 계산대 부근의 벽면에는 하나씩 장식장이 놓여 있었으며, 각 장식장에는 옛 시대의 차량이나 자전거 등의 모습을 형상화한 모형들 그리고 각종 기계 병기들의 모형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모형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형들은 나무를 깎아 만들어서 채색을 한 것들이 대다수였으나, 목재가 아닌 소재로 만든 것들도 몇 있었다.
그렇게 한창 탐파와 함께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다가, 내가 탐파와 반대편,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창가에 있게 됐을 무렵, 아잘리가 그런 내게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알쿨을 소재로 단단한 소재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려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즈음, 아잘리가 그런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드벨파 족들의 기술로, 엘베 족들도 인류 역사를 통해 배워서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과거 인류의 기술 중에 '소실' 된 기술로 알려진 '플라스티카 (Plastika)' 를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로 인류의 플라스티카와 여러모로 닮아서 인류가 만들어 낸 일부 모형 등을 재현할 때, 주로 쓰이는 기술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완전 소실된 것은 아니잖아, 드벨파고, 엘베고, 그 기술은 알고 있다면서?"
"안 쓰려 하는 거지, 일부를 제외하면. 그게 바로 알쿨을 이용해 이런 물질들을 개발하는 것일 테고."
아잘리가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러면서, 창가를 등지는 방향으로 돌아서서,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려 하니, 그는 소파의, 창가에 가까운 쪽 가장자리에 걸치는 듯이 앉아 있으면서 왼 다리를 두 손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이후, 나는 창가 근처의 벽에 기대고, 다리를 굽혀, 왼발을 벽에 댄 채로, 팔짱을 끼며 그와 대화를 시도하려 하였다.
드벨파, 엘베는 겉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해당 기술의 실체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다만, 원래의 플라스티카 제조 공정은 석유 (Petroleon) 라 칭해지는 물질을 가공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인류사에서 플라스티카를 비롯한 석유를 이용한 물질들의 대량 공급이 인류의 석유 의존도를 매우 높여, 그로 인한 여러 폐단들이 생겨났다는 평가가 내려졌고, 그것이, 엘베 족은 물론, 자연 수호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을 드벨파 족까지 석유를 이용한 플라스티카를 비롯한 물질 제조 기술을 핵 에너지 기술 이상으로 금기시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석유를 이용한 기술이 자연을 많이 망쳤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던 것으로 알아, 석유라는 것이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런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역들이 이를 이용해 전 세계의 인류를 위협하고, 그로 인해 인류가 그 폐해에 시달리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지. 드벨파, 엘베 사람들이 괜히 그런 한정된 자원을 이용하는 기술에 경계를 기울이려 하지는 않을 거야."
아잘리가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그런 그에게 말했다.
"그렇지. 대기 오염 등의 문제가 있었고, 처음에는 그것이 화제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특정 지역의 자원 독점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고, 대안 자원의 필요성이 그로 인해 대두했었어. 이외에도 일리온 가마 (Ilion Gama) 라든가, 외우주에서 발견되는 물질이라든가, 이런 물질 독점 문제가 인류사에서 분쟁, 위협의 원인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더라. 엘베 족 대마법사인 아벨 드라케치드 같은 이들이 그런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자원을 악용하는 일이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괜히 그런 주장이 나온 것은 아닐 거야."
"그런 그 영감도, 구체적인 방안까지는 어떻게 떠올리지 못한 거지?"
이어지는 그의 물음에 나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고서, 그 문제를 어떻게 그 혼자서 고민하고 있겠느냐고 그 대답에 이어지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 이후, 그것에 대해서는 뜻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같이 논의를 해 봐야 할 것이고, 그것은 주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거지?"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물음에 그렇게 답을 하기도 했다.
그 때, 한창 공방 곳곳을 구경하고 있던 탐파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려 하였고, 나는 바로 벽에서 떨어져 서려 하면서 그런 그를 맞이했다.
"잘 보고 왔어?" 내가 묻자, 탐파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에게 재미있는 게 많지 않았느냐고 묻자, 탐파는 바로 환하게 웃으며 "그랬다옹~" 이라고 답했다. 그러더니, 내게 나비 모양 장난감들은 갖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게 제일 갖고 싶었어?" 그 말에 내가 묻자, 탐파는 그랬다고 답하고서,
"실제로 날아갈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옹~"
실제로 그러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내심 아쉽기는 했던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소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던 것이, 공방의 주인이 공 들여 제작했을 고대 문물의 모형이라든가, 꽃병 보다 단순하게 (채색은 아니겠지만) 만들어졌을 나비 모형을 더 갖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아이다운 엉뚱하고 순수한 면 같아 보여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내 어린 시절에는 없었던 감정에 대한 동경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방 주인 아저씨께 달라고 해 볼까?"
내가 묻자, 그 물음에는 "필요 없다옹~" 이라 답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그 대신, 재미있는 거 보여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준비됐으니, 다들 착석해라~" 그 때, 게산대 건너편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내가 아잘리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지시하면서 탐파를 데리고 다급히 자리를 잡으려 하였다. 이전처럼 (계산대를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아잘리는 왼편, 나는 오른편 가장자리에 앉았고, 그 사이에 탐파, 사라가 나란히 앉는 식으로 앉았다. 사라는 그간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기에 특별히 자리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다.
공방 주인은 접시 하나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있었으며, 각각의 원통형 병에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로 채워져 있었겠지만, 진짜 물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물 안에 알 수 없는 어떤 물질로 채워 넣었을 것이다) 그 네 개의 병과 함께 공방 주인이 가져온 것이 있었으니, 구리로 만들어진 듯한 단순한 나무 모양의 모형이었다. 그 모형을 병 안에 넣으려 하는 것이었다.
"저 모형을 물 속에 넣어두는 거죠?" 탐파가 묻자, 공방 주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원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든 빠른 시기 내로 해낼 수 있도록 나름 장치를 마련해 두었지."
라고 말했다. 그 이후, 그는 구리 모형을 하나씩 병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각각의 병들은 구리 모형이 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바닥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탐파는 그 빛에 바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으니, 그 원리에 대해 어떻게든 알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어떤 원리로 저렇게 빛나는지 알고 싶은 것 같아." 아잘리가 말했고, 나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나 같아도 그러할 텐데." 라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병의 바닥 쪽에 시선을 두면서 그 빛이 어떤 원리로 생성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름 해 보려 하였다.
'분명 마법진이라든가, 문양이라든가, 그런 수단을 이용했겠네.' 그러다가 곧,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잔에 한정해서 시간을 가속하는 그런 마법이 작용했을 것이다. 다만, 공방 주인이 마법을 익혔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래서 자신이 아는 바대로 마법진, 문양을 새긴 잔을 만들어서 실험용이나 연출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마법진을 활용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구리로 만들어졌을 나무 모형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형의 표면에 회색을 띠는 가루 같은 것이 들러붙기 시작한 것으로, 그와 함께 투명하기만 했던 물의 색이 점차 푸르스름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잿빛 가루는 처음에는 모형의 표면을 마치 나뭇가지를 덮는 눈처럼 덮어가고 있었으나, 더 이상 덮을 표면이 없게 되자, 표면을 덮은 잿빛가루 표면에서 결정이 생성되기 시작해, 마치 눈의 결정처럼 뻗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형을 뒤덮은 잿빛 가루 위로 점차 날카로워 보이는 결정을 생성하는 하얀 가루가 겹겹히 쌓여 갔다.
"눈 쌓인 나뭇가지들이 저런 모습이었던가, 그랬지?" 그 광경을 앞에서 지켜보던 아잘리가 나에게 물었고, 그와 함께 모형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런 그의 질문에 그러하다고 바로 답했다. 그 이후, 아잘리는 구리 표면에 은빛, 하얀빛을 띠는 결정들이 급속히 생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잔 아래의 '마법진' 이 어떤 기능을 갖는지에 대한 추측을 하는 목소리를 냈다.
"급속 마법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인가 보네." 그러더니, 점차 파랗게 변해가는 액체 속의 구리 모형을 하얀 빛으로 꾸며가는 결정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저렇게 빨리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텐데, 아무래도 빠르게 결과물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저런 장치를 해 놓은 것 같아."
아잘리가 해당 실험이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수행되는 것이라 말하고서, 빠른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마법적 장치' 를 마련했을 것이라 추측하는 말을 건네니, 내가 그에게 "그러하겠지." 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으니, 그런 반응은 단 시간 내에 바로 나타나지 않으며, 언젠가 보았을 '눈이 쌓인 듯한 광경' 을 그러한 용액과 구리 모형으로 보여주려면 대충 3 시간 정도 들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완벽한 결과를 보겠다면서 하루 종일 지켜보거나 한 적도 있었지?"
"그랬지." 이후, 아잘리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그랬다고 답했다. 그렇게 문답이 이어지는 동안, 파랗게 변한 액체로 채워진 유리 잔 속의 모형에는 하얀 가루가 두껍게 쌓였으며, 그 표면에 생긴 바늘 끝 같은 모양새의 결정들이 공간 내부의 빛을 받아서는 이를 푸른 빛으로 난반사해 가며, 아름다운 빛을 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날카로웠겠지만, 실제로는 그냥 가루의 집합일 뿐이라 잘못 건드리면 바로 부서지고 흩어질 뿐이었던 만큼, 그대로는 들고 가거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잔들을 보여주면서, 공방 주인은 나를 비롯한 구경하고 있던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려 하였다.
"이대로 이 모형을 들고 가기는 참 난감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 과정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그러더니, 그는 몇 가지 손 동작을 취했고, 그러자마자, 잔 안쪽이 주황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각각의 잔 내부에서 열기가 생성되면서 잔 안쪽에서 하얀 증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이어서 잔 내부의 액체는 빠르게 증발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몇 초 즈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잔 내부를 채우고 있던 푸른 액체는 사라지고, 잔 내부에는 하얀 결정으로 뒤덮힌 구리 모형들만 남게 됐다. 이후, 공방 주인이 다시 손 동작을 취하니, 잔 안쪽은 노란색 빛을 발하게 됐고, 이어서 하얀 빛이 각각의 모형들을 덮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잔 내부에는 하얀 빛으로 뒤덮힌 결정 나무가 한 그루씩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
그렇게 나무들이 빛을 발하는 모습을 온전히 보이게 되자, 공방 주인은 4 개의 잔들 중에서 왼쪽에서 3 번째 잔에 있는 것을 오른손으로 들어, 그 모습을 구경하는 이들에게 보이려 하였다. 손으로 잡고, 흔들어도, 결정이 깨지거나 흩어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전의 효과를 통해 보인 빛이 결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주고 있었던 것 같다.
"자, 보십시오. 이제 어지간해서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나무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그 나무를 다시 잔 안에 넣어두더니,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잔들 중 하나에서 나무를 꺼내더니, 그 나무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고 있으면서 자신의 '실험' 을 구경하고 있던 탐파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나무를 잡은 두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꼬마 아가씨, 이 나무에 흥미가 가시죠?"
"그렇다옹~!" 그러자, 탐파는 활짝 웃으면서 곧바로 그 나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를 한 손으로 잡더니, 옆의 아이 (사라) 에게도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고, 그러자, 공방 주인은 알겠다고 화답한 이후에 곧바로 계산대 쪽으로 돌아가, 나무 한 그루를 다시 잡고서는 사라에게 가져다 주었다.
"아가씨께도 만족스러운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에 사라 역시 나무를 받아 들었다. 탐파와 달리,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받아 들었고, 이후, 오른손에 나무를 올리고 왼손에서 빛을 발하도록 하더니, 오른손에 올린 나무를 빛나는 구체로 감싸이도록 하였다. 무지개빛이 감도는 그 빛의 구체로 나무를 보호하려 한 것 같았다.
"탐파 님, 그 나무를 잠깐 제게 가져다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무슨 이유냐옹?" 그러자 탐파는 의아함의 감정을 드러내며, 사라에게 자신의 나무를 건네 주었고, 그러자 사라는 자신이 이전에 자신의 것에 했던 것처럼, 왼손에서 빛을 발하고, 그 빛으로 보호막을 생성해 나무를 감싸도록 하였다. 그렇게 나무가 보호막에 감싸이자, 사라는 비로소 그것을 탐파에게 돌려 주었다.
"나무 자체를 보호하기 위함이에요. 아무래도 이런저런 이유로 깨지기 쉬울 테니."
탐파가 보호막으로 감싸인 나무를 받을 무렵, 사라가 탐파를 비롯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을 이들에게 그런 보호막을 만들어 주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고, 이어서, 그 보호막은 손을 나무로부터 지켜주는 역할도 맡는다고 말하고서, 아무래도 결정을 이루는 물질은 금속일 테니, 손을 다치게 할 수 있어서 보호막을 생성, 결정에 손가락이 닿지 않도록 하려 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갖다 주거나 할 때, 저런 보호막 안에 넣어서 가져다 주는 경우가 있었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아잘리가 나에게 말했고, 나 역시 학당에 있었을 시절을 떠올리며, "그랬었지." 라고 답했다. 그리고, 주로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것들을 가져다 줄 때, 그런 수단을 많이 이용했음을 알리고서, 주로 부서지기 쉬운 것들이나 공예품을 선물할 때, 그런 방식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그마한 조각상들 같은 것들 말함이지?"
"그렇지, 특히, 자기 류로 만들어진 인형들은 쉽게 깨져서 그런 과정이 더더욱 필요했을 거야."
아잘리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그 이후, 그는 나에게 그런 공정을 재현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한 번 해 보겠음을 알렸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방 주인이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를 냈다. 탐파와 사라는 이미 물건을 받았으니, 나와 아잘리를 부르려 했을 것이다.
공방 주인이 부르자마자, 나부터 계산대 쪽으로 갔고, 이어서 아잘릭 그런 나를 따라 왔다. 그리고 계산대에서 공방 주인이 건네주는 나무를 하나씩 받아들고서, 곧바로 탐파, 사라가 앉은 곳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다가, 소파의 오른쪽 부근에 이를 무렵, 나는 그 반대편으로 가던 아잘리를 불러서 나를 봐 줄 것을 요청했고, 그 부름에 아잘리가 나를 향해 돌아섰을 때, 그에게 알렸다.
"이렇게 하려는 거야." 아잘리가 나를 보기 시작했을 때, 오른손에 나무를 올려놓고, 왼손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를 무지개색 빛을 발하는 구형 보호막으로 감싸고, 보호막을 물질화까지 한 이후에 소파 앞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잘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 봐, 그거." 그리고, 아잘리가 내가 말한 바대로, 나무를 자신의 두 손 바닥 위에 올려놓자, 오른손을 나무 근처에 두고, 손에서 빛을 발하도록 하였다. 그 빛이 나무에 보호막을 생성하도록 하고, 이어서 그 보호막을 물질화하는 것까지 하고 나서야, 손을 내렸다. 내가 손을 내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아잘리는 구체에 감싸이게 된 나무를 들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해도, 나름 부피가 있는데, 어떻게 하냐옹?" 그 때, 탐파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우선 내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것을 오른손에 들고서, 물건들을 나에게 가져올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탐파 그리고 아잘리로부터 나무들을 받게 되었다.
"내가 이것들을 106 호 집에 가져다 놓을게. 이후의 일은 집으로 가서 생각해 보자."
예나의 비행선에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행은 지브로아에 있고, 그 비행선은 가브릴리스 부근에 있을 것인 만큼, 아무래도 무리였을 것이고, 그래서, 일단은 일행이 숙박할 곳에 놓아두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을 내렸으며, 그 역할을 내가 하기로 한 것. 그 때, 여전히 나무를 두 손으로 안고 있었을 사라가 일어나서 나에게 요청했다.
"그 일은 제가 할게요."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그러자, 나는 아직 어렸을 사라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다소 걱정을 하면서 그에게 정말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사라는 할 수 있다고 말한 이후에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자기 혼자서 어떻게든 집을 찾아갈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겠으나, 그래도 아직 어린 사라가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지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없었기에, 내가 따라가기로 하고, 이를 사라, 탐파 등에게 알리기도 했다. 이런 말에 사라는 크게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내가 모아둔 나무들을 받아서 자기가 앉은 자리 앞의 식탁에 놓아두는 모습을 보였다.
"자아, 자아,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들 착석하시고, 기다려 주세요!"
그 무렵, 공방 주인이 나를 비롯한 4 사람에게 앉아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했고, 그 말이 들리자마자 아잘리가 바로 소파의 우측 가장자리에 앉으려 하면서 나에게 어서 앉을 것을 권했고, 그러자, 나는 이전에 앉은 바대로, 좌측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무슨 실험이려냐옹?" 이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탐파가 바로 옆에 있었을 내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름 재미난 실험이 있을 테니, 기대해 보라고 답했다. 사실, 나도 예상할 수 없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답을 해 주려 한 것. 그렇게 답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있던 잔들을 대신해, 8 개의 작은 물잔들을 가져왔다. 각각의 물잔들은 얼핏 보면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가장 왼쪽에 보였던 단 하나를 제외한 7 개의 물잔들은 바닥을 얇게 덮을 수 있을 정도의 하얀 가루들이 안에 들어 있었고, 그 가루들이 실험에서 보일 현상의 주체가 될 것 같아 보였다.
가루 하나 없던 왼쪽의 물잔들을 비롯한 8 개의 물잔들은 모두 바닥에 마법적 장치 같은 것은 없었고, 그래서 용액의 반응 자체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기에 굳이 가속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잔을 사용하려 한 것 같다고 잔의 모습에 대한 나름의 추측을 해 보기도 했다.
"다음 실험에서는 아주 간단하면서 아주 신기한 현상을 보여주게 될 것이랍니다~"
공방 주인이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짙은 푸른색으로 칠해진 듯한 약병 하나를 가져오더니, 그 약병에서 가장 왼쪽의 잔에 약병 안의 액체를 부으려 하였다. 액체는 주황색을 띠고 있었으며, 매우 투명했으나, 마치, 꽃차의 색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색을 띠는 그 투명한 액체의 색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판별할 수 있냐옹?" 그것에 대해 말을 한 것에 대해, 아잘리가 묻자, 내가 바로 답했다.
"먹을 수 없는 것은 색감도 그러할만한 느낌을 줘, 먹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는 해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나게 되어 있어."
그러는 동안 공방 주인은 그 액체에 대해 자신이 '미리 만들어 온 차' 임을 밝혔고, '차' 를 남은 잔에 적당량씩 부어 보겠음을 알렸다. 그러면서 그가 알리기를, 자신이 마련해 온 차는 그 누구도 마셔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했다. 그 때, 탐파가 공방 주인에게 혹시 마셔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공방 주인이 이렇게 답을 했다
"저도 마신 적은 없습니다. 몸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고 하니, 여러분도 혹시 이 차를 발견하시면 절대로 마시지는 않도록 하시기를 바랄게요~"
"그러면 왜 차라고 하시는 거야옹?" 이후, 탐파가 다시 묻자, 내가 공방 주인을 대신해서 "차 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임의로 그렇게 칭하시는 것일 거야." 라고 답을 대신했다. 아무리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문 때문에 진행을 계속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어, 내 선에서 어떻게든 답을 해 주려 한 것. 다행히도 공방 주인은 "질문이 들어왔지만, 어떻게 해결된 것 같군요." 라고 말하고서, 실험을 지속하려 하였고,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물잔을 채우는 '차' 를 남은 7 개의 물잔에 채우려 하였다.
가루가 바닥에 얇게 깔린 물잔을 '차' 가 채우려 하는 순간, 왼쪽의 잔부터 내부를 채운 물의 색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의 잔을 채운 용액은 가루에 닿자마자 루비를 연상케 하는 진홍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잔의 용액은 주황색, 귤색으로 변했으며,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잔의 용액은 연두색,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 잔에 들어간 용액이 가루에 닿자마자 사피르 (Safir) 를 연상케 할 정도의 진청색으로 물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실험은 마무리 됐다. 색이 변하지 않은 것은 네 번째 잔을 채운 용액 뿐이었다.
"보셨습니까?" 이후, 공방 주인이 '차' 가 채워진 용액이 들어있던 잔을 자신의 바로 앞에 올려놓고서 묻는 듯이 말했고, 이어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이렇게 말하려 하였다.
"이 차는 사실,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차' 가 아니에요. 차의 색을 띠고 있기에, 임의대로 그렇게 칭한 것일 뿐이지요."
"거 봐, 내 말이 맞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이전에 그런 언급을 했음을 의식하게 하는 말을 탐파에게 건네었다. 이후, 공방 주인이 밝히기를, 그 '차' 는 용액의 성질을 판별하기 위한 일종의 '시약' 으로 액체가 얼마나 강한 산기 (Thinßï) 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얼마나 강한 염기 (Salinßï) 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별할 수 있음을 알렸다.
"그렇다면, 새빨갛게 변하거나 파랗게 변한 물은 강한 산기나 염기를 가진 것, 그렇지 않냐옹?"
"그런 것이지요. 빨간 색은 강한 산기, 파란 색은 강한 염기를 상징한답니다."
공방 주인이 바로 화답했다. 그리고 강한 산기를 가진 액체는 여러 물질들을 부식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용액이나 물질 자체를 함부로 몸에 대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성질을 이용해 시약과 물질들로 무지개색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음을 밝히고서, 나를 비롯한 이들에게 물으려 하였다.
"그 모습을 한 번 제가 보여드리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