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로아 (Jibroa).
가브릴리아 (Gabrilia) 지역의 남서단에 자리잡은 도시로 가브릴리아의 모든 도시들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이다. 중심 도시인 가브릴리스 (Gabrilis) 와는 거리가 제법 되어서, 바로 가브릴리스로 가려면 철도 등을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미르 (Hamir) 그리고, 그 동부 지역인 하야라 지구 (Chayara) 와 선상 교역을 이어가는 도시이지만, 근래에 사당에서 벌어진 괴물 출몰 사태로 인해 항로가 폐쇄되었다가,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는지, 항로가 재개방되기 시작했다. 가브릴리아가 7 개 지역 중에서는 가장 사람 수가 많은 편이라지만, 아무래도 중심 도시인 가브릴리스 (Gabrilis) 그리고 북단의 미하엘리스 (Michaelis) 와 가까운 항구인 제브라스 (Jebras) 등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한 편에 속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브릴리스, 제브라스 등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일 뿐, 그 도시 역시 나름 도시다운 면이 있는 곳이다.
지브로아 동쪽 교외 지대에 비행선이 착륙한 이후, 일행은 곧바로 걸어서, 중앙 지구에 위치한 시청으로 갔고, 그 곳으로 가서 시장 및 시청 관계자들에게 지브로아의 괴물 사태가 해결되었음을 알리려 하였다. 다만, 그 시점에서는 에오르 자매와 리 셀린, 예나 등이 먼저 와서 해당 사항을 알리고 있었던지라,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은 특별히 더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일까지 마치고 난 이후, 나는 시청으로부터 사례금을 어느 정도 챙겨 받고서, 시청을 나왔다. 이후, 일행은 비행선에서 하룻밤을 잔 이후에 아침이 되자마자, 가브릴리스로 바로 가겠다는 예나 그리고 일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에오르 자매, 리 셀린 등 그리고 일단 베라티사로 간다는 셀린, 리사 선생님과는 헤어지게 되었다. 다만, 아잘리, 프라에미엘 그리고 탐파, 사라는 일행에 남은 탓에 일행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숙박할 곳은 비행선으로 돌아가기 전, 카리나가 아는 사람 집이 있다면서 그 곳에서 하루 신세 지내다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앙 지구 106 호 집으로 시청 남쪽 부근에 자리잡은 광장 서쪽 인근에 있는 건물이었다. 카리나는 그 많은 일행을 식사는 밖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하루 정도 지내다 가겠다면서 그 집에서 하룻동안이나마 거주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은 가브릴리스로 가기로 했어." 카리나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기를, 가브릴리스에 괴물 사태로 연기되었던 행사를 2 일 후에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 했고, 그래서 행사 전날인 다음 날에 그 곳으로 가려 하였던 것 같다.
숙박하러 106 호 집으로 가기 전까지는 밖에 있기로 했지만, 일행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몇 명씩 흩어저 움직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선, 카리나, 세니아가 나에티아나와 함께 놀러 갈 곳이 많아 보였을 시내 서쪽 근방으로 가려 하였고, 프라에미엘이 탐파, 사라와 함께 해안가로 가기로 한 만큼, 나는 세나, 아잘리,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를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나는 아잘리 등과 함께 광장 부근의 상점가를 둘러보면서, 상점가에 어떤 곳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이러다,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나, 아잘리하고만 동행하면 어쩌나 싶었으나, 다행히도 잔느 공주는 세나를 따랐고, 세나가 나와 함께 하기를 청해서 그리하여 그 세 사람이 나와 아잘리를 따라 다니게 된 것이었다.
일행과 함께 하게 되면서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는 세나 그리고 프라에미엘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려 했었다. 틈만 나면 잔느 공주가 세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읽어야 할 책이나 배움 등에 관한 여러 조언을 그로부터 받고는 했었다. 그 때마다 세나는 귀찮아하지 않고, 가능한 대로, 그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려 했었던 것 같다. 다만, 괴물 사태 해결 이후로는 잔느 공주, 루이즈 모두 세나에게 무언가 물어보거나 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아무래도 '그 사건' 을 목도한 이래로 이런저런 복잡한 심경을 느꼈을 세나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나 씨, 이제는 괜찮지요?"
동행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될 무렵, 잔느 공주가 자신의 왼편 곁에 있었을 세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제는 괜찮아요." 라고 화답했다. 이후, 세나는 자신을 비롯한 이들과 동행하면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잔느 공주가 온화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힘든 때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때도 있으니, 괜찮아요."
그러더니, 세나에게 함께 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고서, 덕분에 세상에 대해 많은 것들을 즐겁게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지금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잔느 공주는 자신에게 물음을 건넨 세나를 의식하며 답했는데, 실제로 세나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여기고 있음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글을 쓰고 나니, 그 이외에 예나 역시 의식했을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오히려 폐가 될 따름이겠지만, 그럼에도 짜증 하나 없이 저희를 동료로 대해 주시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리고서, 그렇게 일행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말도 있었잖아, 옛날 말 (Ancientamal) 이라고 해야 하나?"
그 때, 내 곁에서 나와 동행하던 아잘리가 그 이야기에 대해 내게 이렇게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랬었지." 그 물음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다고 답했다. 이래저래 여러 말들을 익혔다고 했다만,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많다. 이전까지 들려왔던 옛날 말 (고대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고대보다 훨씬 전의 역사의 언어이므로 고대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름이라던가, 브리태나 어휘 등이 간간히 들려와서 그것을 통해 그 뜻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있기는 했으나, 들려온 말들 중 대다수는 그런 추측조차 불가능했던 것들이었다.
잔느 공주, 루이즈는 그런 말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그런 말을 하는 존재(들)과 의사 소통도 가능했던 이들이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일행이 처음 듣게 된 계기 역시 잔느 공주였다. 그런 그가 일행과 함께 하고, 때로는 괴물과 맞설 때에도 함께 하게 되는 것은 잔느 공주가 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행이 원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 만큼, 고대 언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이가 없었고, 그래서, 잔느 공주가 일행과 동행하지 않으려 해도, 그런 것을 종용하는 이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기 저 잔느 공주님하고 루이즈 씨, 두 분들이 그런 말을 아주 잘 쓰시는 분들이야,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주 귀중한 분들이지, 우리는 뭔 짓을 해도, 배울 수 없는 것을 갖고 계시니까."
"일종의 통역 담당인 거야?" 이후, 아잘리가 그렇게 묻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해야 하나." 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실제로 잔느 공주는 연수 등의 말을 통역해 준 적이 있기도 했으니, 그렇다고 쳐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더라도, 잔느 공주님을 데리고 있어야 할 때가 있고, 그 때에는 공주님을 잘 지켜 드려야만 하는 거지."
"그런데, 전에는 무슨 보호막 같은 것이 잔느 공주님하고 루이즈를 보호하고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물었고, 내가 그 물음에 "그랬지." 라 답했다. 실제로 잔느 공주, 루이즈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지, 무지갯빛의 보호막으로 보호받고 있었고, 그 보호막은 어떤 공격도 막아냈기에 두 사람은 보호막에 의지해 무사히 머무를 수 있었다. 그 보호막은 일행의 싸움이 끝날 즈음, 사라졌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게 된 거야? 누가 가호라도 해 준 거야?"
"거기 있던 혼들이 그 곳에서 살았던 인간들의 혼들이었어.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잔느 공주님, 루이즈와도 인연이 있었고. 그런 혼들이 잔느 공주님 그리고 루이즈를 알아보면서 살아남은 인간인 그들이라도 보호하려고 나름의 힘을 쓰려 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면, 정확한 이유는 너도 잘 모른다는 거지?"
"그렇지." 이후, 아잘리가 묻자, 내가 다시 답했다. 그리고, 혼들이 암만 마력을 쓸 수 있다고 해도, 잔느 공주, 루이즈 두 사람을 감쌀 수 있을 만한 구체를 온전히 마련할 수 있을 만한 힘을 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원래 그들은 마법과는 인연이 없었던지라, 그런 힘을 구현할 수 있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에 의한 우연의 소산 정도로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처음에는 광장 부근의 상점가들을 둘러보며,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상점가는 자리잡은 건물들 중 대다수가 물품, 의상 가게들이고, 그들 사이로 식당, 찻집이나 공예품 가게 등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전형적인 시내 상점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은행 (Banka, Bangka) 이나 병원 같은 시설의 모습도 시가지 곳곳에 보였고, 간혹, 서점, 인쇄소, 각종 공방들이 눈에 뜨일 때가 있었는데, 나는 전형적인 상점 건물보다는 인쇄소, 공방들을 더욱 마음에 들어했고, 그들의 모습을 더 오래 지켜보고는 했다.
"인쇄소나 공방에서 자주 일했었기 때문이었지?"
그것에 관한 혼잣말을 하는 것을 어떻게 들었는지, 아잘리가 내게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을 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친구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울 일도 없거니와, 그것이 또 나에 관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바로 답을 해 준 것. 아잘리는 예전부터 괴물 사냥꾼들이나 탐험가들을 자주 따라다녔다고 했었다.
상점가를 둘러보며 걷는 동안, 잔느 공주와 루이즈에게 세나가 거리에 있는 가게들에 대해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있었다. 서점을 지나는 동안에는 진열된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옷 가게를 지나는 동안에는 진열된 옷에 대해 알려주었으며, 식당을 지나면서 식당이 취급하는 음식들을 알려주는 등, 분주하게 이것저것 알려주려 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보니, 처음에는 나와 아잘리가 앞장서서 길을 갔으나, 이후로는 세나가 앞장서서 길을 가게 하려 하였다. 뭔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앞장서서 가는 편이 여러모로 유익했기 때문이었다. - 더 나아가, 나는 아잘리에게 잔느 공주, 루이즈처럼 세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가라고 하기도 했다.
"나도 배울 만큼 배웠다고! 적어도 저 아가씨들보다는 아는 게 많-"
"됐고, 너도 같이 다녀." 당연하게도 아잘리는 그런 내게 항의를 했으나, 나는 그런 항의를 무시해 버렸다. 아잘리는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고, 배울만큼 배운 만큼, 나름 자존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움의 깊이가 그렇게 깊다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성적부터 딱히 좋은 편이 아니었던 아잘리가 잔느 공주, 루이즈와 비교해서 유난한 수준이냐면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나를 따라 길을 걷는 동안, 잔느 공주, 루이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려 하였고, 그러면서 두 사람이 자신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려 하는 세나의 목소리를 꽤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소 때의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드러나고 있었다.
"아르산, 너도 학교에서는 저랬었어?"
"잘 모르겠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무렵, 아잘리가 내게 물었으나, 학교 생활하던 무렵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렇게 답을 했다. 아무래도 아잘리는 내가 학교 다닐 무렵에는 잔느 공주 등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고 여기었던 것 같다.
세나는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잔느 공주, 루이즈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려 하였고, 그 목소리에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도중에 한 번씩 아잘리가 세나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특정 옷의 유래라든가, 책에 수록된 이야기나 역사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장난삼아 하는 짓거리가 대다수였던 만큼, 그 때마다 내가 참견 좀 하지 말라고 그를 끌어내고는 했다.
나 역시, 세나를 따라 다니면서 찻집들을 살펴보려 하였다. 세나 등의 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 만한 찻집들을 살피려 했던 것. 그러나, 들러볼 만한 찻집을 발견하고 나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직접 가르쳐 주려 하지는 않았다. 때가 되면 세나 등에게 알려주려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세나가 열심히 두 사람에게 가르치는 데, 끼어들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을 가르치는 것에는 큰 재능이 없다고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여기고 있기도 했었다.
그 후, 대충 시내 일대를 둘러보고, 중앙 광장으로 돌아올 즈음, 내가 세나 등을 이끌고, 해변이 자리잡은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세나 등의 세 사람을 데리고 있는 채로, 이른 아침의 고요한 거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남쪽 길목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어느 십자로를 지나칠 무렵, 십자로 남쪽 근방의 길 오른편에서 어느 가게의 모습을 우연히 구경하게 되었다. 인형들이 비치된 가게들로 아직 개점할 때가 아니라, 가게의 문은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가게를 지나치려 할 즈음, 잔느 공주가 가게의 인형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 보였다.
"저 인형들이 갖고 싶으신 거예요?" 이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나가 묻자, 잔느 공주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고, 어렸을 적에 저렇게 생긴 인형들을 자주 보고는 했었다고 답했다. 인간 세상이 남아있을 시점에도 갖고 싶어하기는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련하지는 못했다는 말을 이어 건네기도 했었다.
"마법이나 연금술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어지간해야지, 저런 것은 안 돼." 그 대화를 듣고서, 아잘리가 묻자, 내가 바로 화답했다. 그러다, 인형을 만들 때 쓰일 수 있는 재료를 떠올리면서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재료라면 될 지도 모르긴 하겠는데." 그 후, 나는 고개를 돌려 잔느 공주 등에게 혹시 갖고 싶으냐고 물었으나, 그는 그 물음에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게 자신은 그 때의 어린 아이가 아니고, 그런 인형 하나에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답을 했다.
이후, 나는 거리에서 우연히 연금술사가 차렸을 것처럼 보이는 증류 공방 (Chliyrcë) 을 지나가게 되었다. 건물 자체는 작았고, 그래서 주변에 있던 옷 가게들 중심의 상가 건물이나 식료품 상점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기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뻔하다가, 건물의 유난한 외관을 자세히 보면서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그렇게 길을 지나가려 할 무렵, 내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느 공주의 목소리였다. 그는 늘, 세나에게만 질문을 했던지라, 이번에도 어련히 그러하겠지, 싶었는데, 내게 질문이 들어오자, 처음에는 당황했다.
"아르사나 님, 여기서도 독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증류 공방을 보면서 루이즈와 함께 알쿨 (Alkuhl) 이라든가, 술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 거리가 나왔는데, 세나가 차마 대답을 해 주지 못할 것 같아, 어둠의 세상에 발을 걸치고 있을 법한 내게 질문을 건넨 것 같았다. 그렇게 됐으니, 질문에 답을 해 주기로 하였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요 해요. 술이라면 있기는 한데, 거기서 나온 알쿨은 마법 공학자들이나 약사들의 시약이나 소독제, 소재 개발 자료 등으로 주로 소모되기에, 마실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 편이지요. 마시면 지력, 정신력에 해가 된다고 알려져서, 지력, 정신력이 생명 그 자체인 마법사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마시는 것은 금기일 거예요."
그리고, 이전에 지나친 공방에 대해서도 술을 만드는 곳이 아닌, 약이나 공학 소재 개발처일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루이즈가 그렇다면, 그런 재료로 마법사들은 무엇을 만드느냐고 묻자, 아잘리가 나를 대신해서 이렇게 대답을 했다.
"램프 용 연료나 소독약이라든지, 인조 옷감, 플라스티카 (Plastika) 등의 물질들을 제조하더라고요, 마법 학당 같은 제한적인 곳에서의 일이지만, 그런 재료들을 이용해 화약을 제조하는 경우도 있어요. 방금 전의 인형 가게에서 본 인형들의 재료인 솜털이나 천을 저런 알쿨 등의 재료를 이용해 합성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엘베 족이나 드벨파 족은 이런 알쿨 수용액에 약초나 열매 류 등을 넣어서 알쿨 음료 (Likœr) 로 활용한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사례는 못 봤네요."
그리고서, 그에게 순도 높은 알쿨을 제조하는 경우에는 대개 그런 용도로 쓰인다고 알고 있으면 된다고 이어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 때에는 그 정도로 끝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 달리, 이후로 루이즈로부터 이런 질문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사나 님, 마법사들이 약이나 물질을 제조할 때, 쓰는 소재로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저 옆의 잔느가 그것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던데."
아잘리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마법 공학에는 사람에게 위험한 괴악한 물질들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어서 그것에 대한 공포심, 경계감 등으로 인해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실상이 어떠하든, 나 역시 잔느 공주, 루이즈가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그것에 대한 답변을 하려 하였다.
"그런 거 없어요. 음식이나 물약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사람이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이고, 광물이나 딱 봐도 독성이 있을 것 같은 물질은 쓰지 않아요. 흔히 말하는 치료용 물약이란 것들 역시 물이나 과즙 혹은 약초 추출물 등에 치유 마법을 걸어놓아 마법 효과를 내는 정도이고, 소독약 류도 본 바탕이 알쿨인 것만 제외하면 다르지 않지요. 마법 공학을 통해 만들어지는 물질들의 주 기반 재료는 옥수수 (Gosuz) 나 사탕수수 (Sacerzeoni) 에서 추출한 알쿨 등의 물질이고, 염료나 도료의 재료로 광물을 쓰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예요, 인간 시대나 지금이나 해로운 물질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후, 그 답변에 거드는 듯이 아잘리가 이어 말했다.
"그 말 대로일 거예요, 녀석하고 제가 다닌 곳이 마법 학교는 아니지만, 녀석도 마법 학당들을 오가면서 넘겨 짚어 배운 것들이 꽤 있거든요, 괴물 사냥에 쓰일만한 화약 류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 하면서 그랬겠지만. 아무튼, 녀석이 배워서 저 한테도 알려준 것들 중에는 마법 공학 소재에 관한 것들도 꽤 있으니, 그 말은 믿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녀석하고 제가 어렸을 때, 본 온갖 잡학 사전에 언급된 희한한 재료들이 있었어요. 메르쿠리아 (Merkuria) 화합물이라든지. 그것들을 보면서 위험하다 싶은 것들이 많다고, 한결 같이 언급했었는데, 그런 물질들에 대한 생각은 다른 애들이나 어른들도 저희와 딱히 다르지 않더라고요."
이후, 잠시 길 한 곳에 자리잡은 벤치에 나란히 앉으려 할 즈음, 벤치의 한 가운데 (첫 번째는 내가, 두 번째에는 아잘리가 앉았다. 가슴도 큰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보니, 끼어있는 느낌이 있었다) 에 앉은 루이즈가 내게 루이즈가 물으려 하였으니, 이 세상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주된 방식에 관한 질문으로 서재에 수록된 책들이나 안쇄소 등의 모습을 보다가 불현듯 궁금해져서 질문을 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없지만, 타자기가 있어요. 자판의 버튼들을 눌러 신호를 보내면 타자기 위에 빛으로 상이 떠오르고, 그 상이 신호를 받아서 문자를 쓰는 방식이지요."
샤르기스 시청에서 마리아가 가져온 검은 휴대용 타자기, 그리고 하미르의 찻집에서 보았던 휴대용 타자기들을 떠올리며, 타자기에 대해 설명하려 하는데, 무슨 방식인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루이즈가 바로 알고 있다고 말을 건네고서, 그것에 대해 바로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조금 큰 책자 크기만한 휴대용 타자기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타자를 통해 글자 신호를 기기로 보내면, 타자기가 그 신호를 기억하고 있다가, 사용자가 글을 열람하고 싶어하거나, 인쇄를 하려 할 때마다, 빛의 상으로 글을 보여주거나, 인쇄 기기로 해당 신호를 보내서 기기가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찍어내어 종이 문서를 만들 수 있다고 했었다고 들었어요,"
더 나아가, 신호는 인위적으로 없애버리거나, 기기가 고장나지 않는 한,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더불어, 이전에 미냐에게 설명할 때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신호에는 규약이 있고, 타자기 제조자들은 해당 규약에 따라 신호를 글자로 변환해야 한다는 규칙, 그리고 타자기 내부에는 에너지 결정이 있으며, 결정은 많은 양의 신호를 저장할 수 있지만, 그 정도에는 한계가 있어서 한계에 부딪치면 오래된 것부터 순차적으로 없어진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예나 교수님께서 알려주셨나 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바로 알아차렸다.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는 예나와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러한 지식을 전수 받았을 것임이 분명했다.
"예나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묻자, 루이즈는 바로 그렇다고 화답하고서,
"그 분께서 기기를 본인께서 사용하시는 타자기를 직접 보여주시면서 알려주셨어요."
라고 이어 언급을 하였다. 이전의 마법 재료에 관한 질문 역시 예나가 이 세상에 쓰이는 마법 재료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기는 했지만, 잔느 공주가 그럼에도 걱정이 되어서 확인차에 질문한 것이었다고 했었다. 그러자 나는 그런 루이즈에게 "그랬었군요." 라 화답을 하고서, 조용히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예나 교수님, 두 분을 그냥 보호하는 정도만 하실 줄 알았는데, 꽤 많은 일을 하셨었구나.'
"저 두 분, 은근 아는 게 많으신 분들 같아."
"베라티사의 예나 교수님께도 많이 배우셨을 테니까." 아잘리의 물음에 내가 화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뭐 아쉬운 게 있냐고 물으니, 그로부터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말이지. 지금의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을 미인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이를 통해 미인들에게 호감을 조금씩 얻어가면서 가까워지는 것을 기대했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고 해야 할는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건네는 물음에 나는 비웃음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화답했다.
"참 아쉬운 일이었겠다, 그렇지?" 그리고서, 두 사람 모두 예나와 함께 있었을 텐데, 어떤 의미에서는 천만 다행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바로 옆에서 지켜봤을 루이즈가 조용히 웃음을 지었고, 잔느 공주 역시 그 대화를 들으면서 미소를 띠는 모습을 보였다.
"두 분, 많이 친하신가 봐요." 이후, 잔느 공주가 나와 아잘리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아잘리가 "그럼요." 라고 답하고서, 이렇게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저 애가 샤하르에 올 때부터 친했어요. 주니오인가, 그 아저씨하고 같이 왔다가, 이후, 학교도 다녔는데, 그 때 이후로 친해지게 된 거예요."
그리고, 잔느 공주의 처음부터 친했느냐는 물음에는 그렇지는 않았다고 답했다가, 이후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친해진 것이라 이어 말했다. 그 무렵에는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리사라는 무인에게 내가 사사를 받고, 그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모험을 떠나다 보니, 정말 친구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중등, 고등 교육 과정 때도 같은 학교에 있게 되었지요. 그 애 한테도 친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학교 내에서는 거의 다 정리하고, 나를 비롯한 소수만 남겼죠, 내가 그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예요. 처음에는 그냥 지나쳐 갈 인연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 오래 갈 것 같은 친구 사이가 된 거예요."
이후, 루이즈가 물었다,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했느냐고 물은 것. 그 물음에 내가 그를 대신해 답했다.
"그랬죠. 사실, 여자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그러는 경향이 있었다고 해야 할지. 저하고 같이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 보통 일들은 아니다 보니, 이야깃거리로는 참 좋았을 것이고, 여자아이들의 흥미를 사기에는 참 좋았을 것 같기는 해요. 경험담일 테니, 여자아이들에게 용감하고 강한 사람으로 여기어질 수도 있었겠죠."
"그랬는데, 막상 여자아이들은 내가 아니라, 저 아르산에게 더 많이 끌렸었어요. 그래서 아르산한테는 가까운 여자아이들, 여자들이 참 많았어요. 그들 중에 실제로 그한테 반한 이도 있었고."
"정말이에요?" 이후, 아잘리가 언급한 것에 대해, 루이즈가 놀라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아잘리는 정말이라고 답했다. 남자 행세할 때에도 여자아이들이 많이 좋아했고, 여자인게 밝혀진 이후에도 그랬다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지금은 안 그러하신 것 같은데."
"학교를 졸업하면서 정리해서 그래요." 아잘리가 답했다. 그리고, 주로 떠돌면서 괴물 사냥이나 하면서 지낼 텐데, 그런 이를 뒷바라지하면서 고생하는 거 따위 원치 않는다며, 자기를 찾아오지 말고, 더 좋은 사람 만나며 다니라고 했을 것이라 밝혔다. 실제로 졸업할 무렵에는 친구 관계는 모험가가 되겠다고 했던 아잘리 등을 제외하면 다 정리했고, 그 사유가 그가 말한 바 그대로였기에, 이어지는 나를 향한 사실 여부에 관한 질문에 그가 말한 바가 모두 사실이라 바로 인정하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생의 동반자는 누가 될 것 같아요?"
"아잘리겠죠." 그러자 내가 조용히 웃으면서 답했다. 가마일 산의 천문대에서 일하면서, 소르나와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마법 학자로서 살아가고 있을 그와 얼마나 삶이 잘 맞을지 몰라서 '좋은 친구' 정도로 남는 편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저 친구, 소꿉 친구가 있었다던데." 그 때, 아잘리가 말을 걸려 하였다. 예전에 소꿉 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잘리에게는 이미 지겨울 정도로 해 주어서 알 만큼은 알았을 테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꺼내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소꿉 친구요?" 그리고, 잔느 공주의 물음에 아잘리가 바로 그러하다고 답하고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했던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다 :
어릴 적에는 슈라일 교외 호숫가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고 있다가, 우연히 소리라는 아이를 만났으며, 한 번씩 자신의 옛 집을 찾아오며, 가끔은 집에서 자기도 했었다. 이후에 어머니가 소리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내가 슈라일을 떠나가고, 소리는 베라티사로 유학을 떠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늘 했던 이야기를 나름 재현해서 알려 준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잔느 공주가 바로 내게 그 소리라는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아잘리가 그런 나를 대신해서 답하기를, 나 역시 잘 알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베라티사의 마법 학당에서 마법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고 여기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소리는 이후, 어떤 부호의 자식과 결혼했을 것이라 밝혔는데......."
그러는 동안 잔느 공주, 루이즈 모두 가만히 아잘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이전에 건물들에 대한 세나의 설명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뭐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듣고 있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곧, 나륨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여기며, 그의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려 하였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거나 한 적은 없어요. 자기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것 같던데, 어딘가에서 들려온 소문을 믿은 것 같다고 말하기에는, 그 애가 그럴 애가 아닐 텐데, 이런 생각도 들고, 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이후, 루이즈가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에 대해 물었으나, 아잘리는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아잘리는 그 소꿉 친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 앞에서는 굳이 하고 싶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소꿉 친구는 저 애의 추억 거리, 그 정도일 것 같아 보여요. 그러고 보니, 소꿉 친구 모습이라고 알려진 게 있었는데...... 카리나 씨께서 보여주신 게 있더라고요. 소리의 어린 시절, 그리고 아르산의 어머니가 같이 그려진 초상화였는데."
그 역시 카리나를 통해 그 초상화를 볼 수 있었다고 했으며, 다소곳한 인상의 소녀, 그리고 당당한 인상의 소리가 같이 그려진 모습이었음을 밝혔다.
"아르산은 그 때, 잠들어 있어서 초상화 모델이 되거나 하지는 못했고, 소리의 친구였던 여자애가 대신 모델이 되어주었다고 했었지요, 그 여자애가 훗날 소르나가 되었던 것도 그 때 알았고. 베라티사의 마법 학자들 중에서 가장 동경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을 마치면서 아잘리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잘리는 베라티사의 미녀 학자로 알려졌던 소르나를 샤하르의 학교에서 학생으로 있던 시절에 우연히 목도하면서 그를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내가 그런 소르나와 인연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소꿉 친구 소리와의 인연 때문이 가능했던 일이라고 카리나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나를 상당히 부러워하기도 했었다고 밝혔다. 다만, 나는 소르나와 친한 친구 정도로 남으려 했기에, 아직 기회는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아잘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안,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기만 하고 있었다. 소꿉 친구와 맺어지지 못하는 일은 인간 사회에서도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것에 관해 잔느 공주, 루이즈에게 물으려 하였다.
"소꿉 친구라든가, 첫 사랑과 맺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음은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흔한 일이었죠." 그 물음에 루이즈가 답을 했다. 그러더니, 자신에게도 소꿉 친구들이 있었고, 첫 사랑도 있었는데, 결국 그 누구와도 맺어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곧 나와 아잘리에게 "그러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마도." 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 말대로, 그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되더라도, 결국 푸투로 계획에 발탁된 이후로는 그 누구와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그와 헤어졌을 이들은 모두 인류를 멸망시킨 재앙 앞에서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운명을 겪었을 테니,
"옆의 잔느는 부모를 잘 따르는 딸, 학교 생활, 학업에 충실한 학생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기는 했지만...... 그런 애한테도 첫 사랑은 있었던 것 같아요."
집과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을 잔느 공주에게도 첫 사랑은 있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남학생이었다고 하나, 그 남학생에게도 교제하던 여학생이 있었고, 그래서 그 남학생을 곁이 아닌 곳에서 바라볼 따름이었다고 했다. 이후, 잔느 공주, 루이즈는 물론, 그 남학생과 여학생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푸투로 계획에 차출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푸투로 계획이 끝나는 그 날까지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정도에서 자신만의 사랑을 마무리해야만 했었다고.
"그 남학생과 여학생, 결국에는...... 그렇게 됐겠지요?"
"그러하겠지요." 이후, 내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물음에 루이즈가 잔느 공주를 대신해서 내가 생각한 바대로 됐을 것이라 화답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서, 루이즈는 잔느 공주에 대해, 한 가지 후회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밝히고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그 때에는 그들에게 그런 운명이 닥쳐 올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고, 언제라도 그 남자를 향했을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때, 그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하는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더니,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쳤다.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러하겠지요, 이미 떠나갔을 그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운명이었을 이들이 우리가 모를 어딘가, 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 그 때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났을 누군가들이 있다면, 그들이 그 때와는 다른 멋진 삶을 살고 있기를 바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