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가면서 앞으로 다가올 백야 기간에 대한 대비를 위해 2 중으로 커튼을 마련하는 등의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2 월 3 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날은 루나렐 력으로 1 월 1 일이었으며, 그래서 내가 사는 곳인 세니티스(Senitis) 에서는 '루나렐 력의 창시 기념일' 을 맞이해, 거리에서 실시된 특별 판매 행사가 이루어진 광경 속에 있으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행사가 행사인 탓인지, 거리 곳곳에는 각지에서 만들어진 특산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래서 평소에는 자주 볼 수 없었던 물품이라든지 꿀이나 사탕수수를 끓여 만든 가루나 여러 종류의 빵들, 그리고 각종 비단을 비롯한 진귀한 옷감들의 모습을 마음껏 '구경이나마' 할 수 있었다.
  축제의 날이라 사람들이 분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외로움의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서, 그 날에는 리젤(Risel) 을 대동한 채, 그와 함께 가설된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장의 물품들과 그 물품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열심히 구경하려 하였다.
  루나렐 력은 달이 지구를 도는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한 달력으로서 그 공전 주기가 27 에서 28 일이나, 삭망 주기는 29 일에서 30 일 가량이기 때문에 루나렐 력의 1 달은 29 일 혹은 30 일이다. 그래서인지 통상적으로 쓰이는 솔라리스 력보다 1 년이 더 짧으며, 그런 연유로 인해 한 해가 13 월이 되는 경우가 있으며, 생일을 솔라리스 력으로 지정하는 것도 이러한 루나렐 력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루나렐 력의 1 월은 통상 2 월에 시작되는데, 이는 현재는 3 월인 1 월 중순에 새로운 달의 삭망 주기가 시작될 무렵을 루나렐 력 1 월 1 일로 지정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루나렐 력이 13 월을 두지 않았을 무렵의 일로, 그로 인해 루나렐 력이 개량되기 전까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루나렐 력이 계절과 맞지 않게 되면서 결국 루나렐 력이 개량될 무렵에는 그 1 월이 1 월 말에서 2 월 초에 위치하게 된 것이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달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데에 그것만큼 좋은 것이 또 없어서, 관측을 위해 잘 활용되며, 그래서인지 루나렐 력으로 1 월 1 일이 되면 '루나렐 력의 창시' 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진다-주로 루나렐 력을 활용하는 계절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는 사막 지역이나 극 인근 지역, 그리고 적도 지역에 이러한 행사가 있다-.

  추운 지역인 탓에 어류와 곡식류 그리고 우유와 '단풍 액' 을 제외하면 주식으로 삼을만한 물품이 없었던지라-그래서 식사는 항상 떡에 단풍 액을 발라먹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대륙 동남부에서 왔다는 각종 채소와 쌀로 만든 음식들, 그리고 '사탕수수' 라는 곡물로 만들어진 액을 보면서 무척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그러면서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했지만, 끝내 참아내고서 나에게 필요한 물품을 찾아내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리젤이 그토록 사기를 원했다는 돌 안에 불의 기운을 넣어놓아 붉게 빛을 발하며 열을 내는 장식품을 발견하였고, 이어서 내가 소지한 돈의 절반 이상을 건네어 그 장식품을 살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식사를 위해 마련한 돈의 일체가 없어진지라 그로 인해 한 식사를 걸러야 했지만, 그래도 리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물품을 구매한 이후, 라넬리스 일대에서 행해졌다는 놀이인 널뛰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리젤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 결국 시소판처럼 생긴 곳 중 하나에 리젤이 앉음으로써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리젤은 한 동안 잘 나가는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에 착지 지점을 잘못 정해, 땅바닥에 추락해 엉덩방아를 찧어버려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물론 본인은 상당히 아팠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엉덩이의 아픔을 겨우 견디어가며 걸어가는 리젤에게 그래도 머리가 부딪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건네고서, 그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그를 설득해, 그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앞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의 눈앞으로 여러 옷감들과 그 옷감들로 만든 옷들이 모습을 드러내 나를 유혹하였으나, 식사를 위해 가져온 돈 조차 이제 없는 마당에 그 물품까지 살 수는 없어서 구경만 하고 끝냈다.
  그러는 동안 시장은 1 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상품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로 북적이면서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분주한 모습 그 자체를 즐기며 밝은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흥미를 갖던 장식품 중 하나인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피아노 모양의 장식품 하나를 왼손에 들어 시장 거리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런 나의 눈앞으로 이번에는 작은 배를 이용한 놀이 기구의 모습을 보고 그 놀이 기구에 타는 어린 정령들의 모습에 시선을 기울여 얼마나 많은 어린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린 아이를 위한 활동이 뜸해질 무렵에 길을 떠나자고 말하면서 리젤을 곁에 두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저런 것에 타면 어느 정도 재미가 있으려나."
  그러자 리젤이 답으로써 그런 나의 말에 환상을 깨라는 듯이 말을 건네었다.
  "적어도 야라사에게는 재미없지 않을까, 이전에 급강하 체험을 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동안에 너는 거의 이성을 잃다시피 했잖아."
  "그랬었지." 물론 나는 어렸을 적에는 한 번 급강하를 잘못한 끝에 한 달 정도를 그 후유 증상에 의해 시달렸기 때문에 그 기억을 떠올리며 눈앞에 보이는 기구에 대한 흥미를 접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나는 리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며 행사 관련 구경을 계속해 나아갔고, 그러면서 행사에 초청된 악단 구경을 하다가, 악사가 악기 시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 기회를 얻어 악기 연주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지만-악기 연주에 전혀 자신이 없었다!-, 리젤이 나와 함께 하겠다고 나서면서 기회를 얻더니, 급기야는 나를 억지로 끌고 나와 악기 연주를 위해 나서도록 하면서 결국 악단과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악기 연주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플루트를 쥐었으나, 숨소리만 냈으며, 하르모니카로는 '강철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 나 내어 망웃음거리만 된 다음에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리젤을 내심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순간이기는 했다.
  그 이후, 나는 다음 루나렐 력 창시 기념 행사를 위해서라도 악기 연주를 하나라도 배우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리젤이 나를 끌고 와, 악기 연주를 시켜, 그로 인해 망신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