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검은 하늘 위로 초록빛 회오리를 이루는 아름다운 오로라가 드리워진 날, 얼음으로 이루어진 대지 위로 한 무리의 펭귄들이 용감히 길을 걷고 있었다. 손마다 하나씩 총포를 든 무리, 그들은 아비샤와 그를 따르는 용사 펭귄들이었다. 이들은 새하얀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씩씩하게 노래 소리를 내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마치 승리에 대한 결의를 분연히 드러내려 하는 듯이.

-2-
  우주에 자리잡은 어느 도시. 그 도시의 밤거리. 그 번화가의 한 곳에 포니 테일 스타일로서, 머리 끝이 등까지 닿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한 소녀가 자리잡고 있었다. 하얀 원피스 수영복의 형상을 보이는 슈츠와 다리를 감싸는 하얀 스타킹, 그리고 하얀 부츠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슈츠 위에 청재킷을 걸친 이로서, 오른손에 든 총을 내리고 있는 소녀, 아브리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재킷 왼편의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검은 무전기를 왼손으로 들어 그 무전기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 다시 그것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좋아, 이 기회, 결코 놓칠 수 없지!"
  이에 그는 미소를 띠며 그렇게 말한 다음에 두 손으로 총을 들고, "간다!" 라고 외치며 자신의 왼편으로 뻗어나 있는 길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3-
  시장 거리 남동쪽의 한 거리. 그 낡은 집에서부터 두 사람이 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하였다. 왼쪽에는 소매가 없는 하얀 셔츠와 무릎 바로 아래까지 내려가는 청바지. 그리고 샌들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검은 눈동자를 가지며, 검은 머리카락을 포니 테일 상으로 묶은 소녀 쟈오링, 그리고 오른쪽에는 소매가 짧은 하얀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내려가는 자주색 긴 스커트를 입고, 두 손으로 책을 안고 있는 소녀로서 등까지 내려가는 검은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로서 쟈오링보다 키가 더 큰 소녀 즈란이 길을 걷는 모습을 보였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길을 걷고 있다가, 즈란이 쟈오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쟈오링, 이제 머지 않으면 '중추지에(中秋節, Zhongchujie)' 인데, 이번에 살 물건 있어?"
  "아니, 별로." 그 물음에 그는 그렇게 화답하고서 집에 남은 것으로 위에빙이라도 만들어서 먹으려 한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리고서 이전의 일로 배상금이 조금 컸는데, 그것을 조금 활용해 즈란을 위해 새 옷을 마련해 주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즈란이 그런 그에게 걱정스러워 하며 물었다.
  "쟈오링, 네 옷은 괜찮겠어!?"
  "아직은 입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못 입게 되면, 그 때 새로 사면 되는 거지, 뭐."
  이에 쟈오링은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낙천적인 목소리를 내어 답하였다. 그러자 즈란도 그런 쟈오링의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그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4-
  대륙 서쪽의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새파란 하늘 아래에 무지개 색을 띠는 꽃들이 피어난 나무들로 둘러싸인 위카들의 나라. 그 나라의 나무로 만들어진 한 집의 안에서는 하얀 옷차림을 한 루시아와 파렐리아가 원탁의 왼편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우측에 앉은 어린 소녀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감색을 띠며 등 아래까지 내려가는 머리카락,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며 옷의 테두리와 허리띠가 감색을 띠는 옷차림으로서, 상의의 소매가 팔목까지 내려가고, 치맛단이 무릎까지 내려가는 옷차림을 한 소녀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푸른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이로서, 소매가 없으며 치맛단이 발목까지 내려가고, 어깨 끈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는 어린 소녀. 각각 라이마(Laima) 와 일린(Ilrin) 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이 두 어린 소녀에게 두 자매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일린이 앳된 목소리를 내며 루시아에게 물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일인데, 왜 사람들이 그것을 나쁘게 봐요?"
  그러자 루시아가 온화한 목소리를 내며 그 물음에 화답하였다.
  "그 바탕에 사람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 믿는 것이 곧 진리이리라고 강하게 믿는 이들이 있어. 그러다가, 자신이 믿던 것과 다른 형태의 진실을 알게 되면, 그것을 애써 부정하려 하지. 그리고 힘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힘을 내세워 그 진실을 악마의 논리로 여기고, 진실을 밝힌 이를 악마의 화신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덮거나 입을 막아버려 자신이 믿는 바를 깨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라이마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그것은 잘못된 일 아니에요? 그런 이들은 대개 신을 믿는 이들일 텐데, 신이 정한 바를 멋대로 부정하고, 왜곡하면서 신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에 파렐리아가 바로 화답하고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밝은 목소리를 내어 하기 시작하였다.
  "명명백백한 절대적 진리가 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대한 하나의 가설이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도록 해야지. 하나의 현상에 대한 추측 자체는 결과가 진실과 다르더라도 거짓말이 될 수 없지만, 그것을 토대로 우기면 거짓말이 되는 것이지. 신도 인간의 자신이 살아가는 곳의 현상에 대해 그런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심히 불쾌해 하고 있을 거야."
  그 이후, 그에 이어서 루시아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사고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발견되는 진리의 '모습' 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란다. 그것은 더욱 깊어지는 탐구에 의해 반드시 분명히 밝혀질 수 있지. 그것을 하나의 신념 등과 결부시키면서 진리가 밝혀진 하나의 모습 자체를 진리로 여기고, 그것을 부정하는 어떤 행위도 용서치 않겠다고 말하는 행위는 사람들을 불행의 지경으로 내몰 수 있는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서라도, 반드시 자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5-
  아메리고스 대륙 서부 해안. 그 해안으로 두 명의 젊은이들이 주먹을 쥐고 두 손을 들며 환호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 회색 곰의 형상을 한 자로서, 푸른 멜빵 바지를 입고 있는 에즈라, 하얀 독수리의 형상을 한 자로서 털의 색과 비슷한 하얀 천으로 이루어진 원피스를 입고 오른손에 푸른 구슬을 든 인격체 타룬, 그리고 황갈색을 띠는 긴 소매를 가진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이로서, 암갈색 머리카락의 머리 아래쪽을 양갈래로 땋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오른손에 창을 쥔 중년 남성 전사, 민닌네와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가 파시리카(Pacirica) 바다인가!"
  "드디어 이른 거다, 대륙의 끝에!"
  그렇게 좌우에 선 젊은이들이 한 명씩 환호하며 외치는 동안 그 모습과 바다를 미소를 지으면서 팔짱을 끼고 있는 에즈라에게 민닌네와가 잠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캐서린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십니까?"
  "이야기는 들었소." 그 물음에 그렇게 답을 하는 에즈라. 그리고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러 갔을 따름이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민닌네와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러다가, 캐서린 양이 이대로 떠나기라도 한다면......."
  "상관없소." 그 물음에 그는 그렇게 답하고서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곁에 올 수 있으리라고 긍정적인 전망의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당장에는 나오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생기거나 나오게 되어 있다고 말하고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 때, 타룬이 밝은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이제, 서쪽 상로 개척은 완료했군요."
  "그렇소이다." 이에 에즈라는 그렇게 화답하고서 문제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상로로서, 그 경로가 개척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언급을 행하기도 하였다.

-6-
  사막의 날이 밝고, 사막 위에 세워진 푸른 돌로 이루어진 신전도 어느덧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원형 구조물 위에 원형 제단이 놓여져 있고, 그 주변에 둥근 기둥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그 위로 돔 하나가 자리잡는 모습까지 보이는 그 신전. 신전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난 아바르 족 전사, 키타파르는 잠시 신전의 바로 앞에 자리잡고 서 있으면서 자신의 눈앞에 태양이 떠오르며 어둠을 서서히 밝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후, 그 먼 저편에서부터 하나의 음성이 길게 이어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키타파르 역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리를 잡은 다음에 두 손을 위로 향하며 신을 향한 절을 하기 시작하였다.

-7-
  풀밭을 곁에 두는 어느 강가. 그 강가에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려 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목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건너편의 사람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머리카락의 색과 눈동자 색 모두 갈색을 띠고 있었으며, 모두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바지를 입고 있으며, 위쪽의 단추 두 개를 풀어 풍만한 가슴선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귀에 은색 귀걸이를 걸고 있었으나, 다른 사람은 다리를 전부 드러내는 미니 스커트를 입고, 왼쪽 허벅지 가운데에 검은 거들을 끼고 있었으며, 앞 부분이 푸른 보석으로 장식된 금색 머리띠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짧은 쪽이 키가 크고, 또 어른스러웠으며, 긴 쪽은 상당히 앳된 외모를 보이고 있었다.
  키가 큰 이의 이름은 캐서린, 그리고 키가 작은 소녀의 이름은 에이프릴. 전부 게이블린이라는 성을 쓰고 있었으며, 그 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성을 계승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구나, 에이프릴." 그 중 키가 큰 이가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을 걸었고, 에이프릴이 밝게 미소를 띠며 "저도 오랜만이에요, 캐서린 씨." 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제는 캐서린 씨라고 부르는 편이 더욱 편하네요."
  그러자 캐서린은 그런 에이프릴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할만도 하겠지." 라고 화답하였다. 그리고서 온화한 표정을 짓는 채,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이에 에이프릴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금색 반지를 꺼내 두 손으로 건네려 하였다. 앞쪽에 별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테두리에 MEDAL OF GLORY 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그 반지. 그 반지를 보며 그가 놀라며 물었다.
  "이것은......?" 그러자 에이프릴이 그런 그에게 밝게 목소리를 내어 이전의 네파리아 토벌을 성공적으로 행하여 2 번째 MOG 3 급 훈장을 받으며 같이 수여 받은 것임을 밝히고서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하였다.
  "캐서린 씨의 원수를 그 곳에서 완전히 갚았어요. 이제 캐서린 씨께서는 그로 인해 마음 고생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 훈장의 일부인 반지를 자신을 태어나게 한 것에 대한 대가로서, 주는 것임을 밝히고서 사양말고 받아줄 것을 그에게 부탁하였다. 이에 캐서린은 그런 에이프릴의 모습을 보면서 반지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서 자신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나서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은 만족한다는 언급도 하였다. 그리고 에이프릴이 다시 반지를 오른쪽 치마 주머니에 넣는 동안 그를 보며 말하였다.
  "이제 에이프릴도 많이 컸구나, 어느새 키로도 나를 따라잡을 것 같고, 5 년 즈음 시간이 지나면 나보다 키가 더 커질 듯해 보이기도 하네."
  그러는 동안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에이프릴. 그 후, 캐서린은 그런 에이프릴을 말 없이 끌어안았다. 그 이후, 그에게 온화한 목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대개 너 같은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간다는데, 너는 오히려 그런 나를 더욱 기억하고, 미워하지 않으려 하고 있음에 나는 감사하고 있단다. 게다가, 나는 너에게 젖 한 방울 전해주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도 그런 너를 피하고 싶지 않게 되었어."
  그리고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의 말을 건네었다.
  "훈장을 얼마나 받든, 모험을 해서 무엇을 손에 넣든 간에, 나는 상관하지 않아. 나는 네가 그저,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를 위해 무의미한 욕심은 더 이상 가지려 하지 말아."
  "캐서린 씨......." 이에 에이프릴이 우울해 하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의 이름을 부르려 하였다.

-8-
  푸른 하늘 아래로 떠도는 바람이 문서 보관실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서 그 창가에 놓여진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손을 차갑게 한다. 카페는 이미 식은 지 오래. 그 갈색을 띠는 차가운 액체로 채워진 손잡이 달린 하얀 잔을 들고 그 액체를 단숨에 들이킨 다음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는 동안 창가에서부터 한 합창 소리가 들려오며 그런 나의 마음을 끌리게 하고 있었다.
  전 날에 레미아를 방문한 합창단. 그 합창단은 틈마다 이 집 근처의 광장에 머무르며 노래 연습을 하는데, 그 목소리가 집 근처까지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것을 소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소리로 마음이 평안해지는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껏 정리해 놓은 문서들을 백지로 덮고 책으로 눌러놓을 무렵, -바람에 의해 종이가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다.- 나의 뒤로 한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 카페를 마련해 드릴까요?" 감색을 띠는 원피스 드레스 상을 이루는 참회복을 입고, 머리에 참회 두건을 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그는 레미아의 학교에서 나의 직속 비서가 되어 내 곁에 일하게 된 네파리아 혹은 라피엔이었다. 참회를 위해 대가 없이 일을 하며, 내 집에서 살아야 했던 이로 본래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지만, 그 족쇄는 내가 풀은 지 오래였다.
  "아니, 괜찮아. 이미 한 잔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이에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화답을 하고서, 창가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창가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저 노래 소리를 듣고 있어?" 이에 라피엔은 공손한 목소리로 "예." 라고 화답하였다. 그리고 그 노래 소리가 하늘의 소리를 연상케 하여, 두렵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내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아직도 과거의 악행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러는 거야?"
  "예,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이에 라피엔은 그렇게 화답하였다. 그러자 나는 그 심정은 이해한다고 말하고서 나도 같은 죄를 지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를 두고 괴로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그에게 말하기도 하였다.
  그 때, 갑자기 문이 세게 열리면서 리아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주인님 다 되셨네! 비서 하나 들어오니까, 기분이 좋아 어찌할 줄 모르겠지!?"
  그리고 나의 의자 곁으로 다가온 다음에 의자 뒤쪽의 오른 다리를 오른발로 걷어차고서 이에 내가 놀라며 그를 향해 돌아서려 하자, 나에게 외쳤다.
  "카스야가 문서 정리를 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니까, 학교로 당장 뛰어 가!"
  그 이후, 리아넬은 라피엔을 향해 돌아선 다음에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라피엔, 나도 오늘은 일이 있어서 이 집을 떠나 있어야 해. 그러니까, 집에 혼자 있는 동안 집 상태를 잘 유지하면서 지내고 있어 줘. 도둑 같은 것은 안 들어오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에 라피엔은 명심하겠다고 화답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문가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리아넬이 나를 향해 돌아서서 다시 외치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해, 빨리 안 가고!?"
  "알았어, 빨리 갈게!" 이에 나는 다급히 집을 떠나 학교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학교를 향해 서두르면서 카스야에 대한 걱정을 혼잣말로 드러내려 하였다.
  '그러고 보니, 카스야가 돌아오면서 보고서를 꽤 많이 썼었지? 그것을 혼자서 정리하려면 쉽지 않을 텐데.'
  한 번의 큰 모험을 마친지 이제 5 개월 가까이 지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일이 있을 때마다 학교에 불려가며 일을 봐 줘야 한다. 모험 한 일이 자랑이 될 수 없기는 하겠지만, 이제는 추억이고 다 지나간 일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하니, 그런 나의 현실에 적응하는 편이 낫다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9-
  아침을 맞이한 어느 광야의 폐허. 과거에는 황무지였다가, 한 번의 큰비가 내린 이후로 다시금 풀들이 무성히 자라난 그 폐허 위로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 분홍빛을 띠는 아름다운 꽃. 그 꽃은 밝게 떠오를 태양이 위치하게 될 곳을 향하고 있으면서 특유의 화사한 모습을 하늘 위로 보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폐허를 이루는 건물의 흔적들 위로 담쟁이덩굴들이 기어오르고 있었으며, 건물들 주변으로 작은 꽃들이 피어나고, 그 꽃들의 모습을 보며 금빛, 은빛을 띠는 나비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한 번의 재앙으로 인해 황폐해졌다가, 초록빛을 되찾는 세상에는 이제 망령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입은 상처도 서서히 치유되고, 대지는 다시금 생명의 힘을 되찾아 세상을 초록빛으로 다시 물들이고 있었다. 잔잔해진 바람은 그 위로 불어오며 풀들을 부드럽게 건드렸으며, 그 때마다 높이 자라난 풀들이 흔들리며 초록빛 물결을 바람따라 잔잔히 일으키고 있었다.
  그 봄바람이 끝나면, 여름의 폭풍이 다가와 풀잎들을 거세게 뒤흔들고,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풀들이 늙으며, 겨울의 눈바람이 그 자리를 하얀 눈들로 뒤덮을 것이다. 하지만 봄바람은 다시 불고, 그러면서 다시금 초록빛 세상이 돌아와 다시 자라난 풀들을 어루만지며 물결을 이루도록 할 것이다.
  문명과 어둠의 사념이 사라진 땅, 그 땅에는 자연의 질서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풀밭의 한 가운데에 자라난 분홍빛 꽃은 더욱 화사하게 피어나며 하늘의 높이 떠오르는 태양으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태양을 통해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듯이.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