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Azure Wind


인류 최후의 보루였던 세미라미스 왕국은
세계를 향한 원정을 개시한지 5 일 만에 종언을 고하였고,
기계로 몸을 바꾼 인류의 운명 역시 세미라미스 왕국과 함께 하였다.
그리고 세미라미스 왕국과 졸리아트의 후예들이 남긴 기억들은
역사의 저편으로 바람에 조용히 흩날려 갔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 후, 세계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루시페르가 사라진 다음 날,
보라색 기운이 사라진 새벽 하늘 아래에서
라르니온 중부 계곡 사이에 있는
수많은 병기들의 파편이 곳곳에 흩어진 황야로
길다란 짐칸을 가진 낡고 작은 트럭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늙고 초췌해진 노인은 어린 소년을 트럭에 함께 태운 채로
금속 덩어리들이 모인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트럭이 병기들 사이에 위치하게 되자,
트럭에서 내린 후에 짐칸으로 금속 덩어리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노인의 일을 도와주고 있던 소년이 물었다.
"할아버지, 이것들은 본래 뭐였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서,
예전부터 곳곳에 많은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음을 알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소년에게
계곡 사이에는 유별나게 많이 흩어져 있고, 어디 가 보니,
커다란 덩어리도 떨어져 있다는 말도 하였다.
그 후, 노인은 소년에게 일단 적당히 금속 덩어리들을 주워 가자고
말을 하고서 계속 금속 덩어리들을 실었다.
그리고, 금속 덩어리들로 어느 정도 트럭의 짐칸이 채워지자
소년과 함께 다시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로 떠났다.

세니티스 남부의 마을 교외에서는 눈으로 덮여 있는
무덤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무덤의 앞에는 석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무덤 주변으로 한 유목민, 북극의 정령, 두 불의 정령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석비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JUN-A'.
한 동안 묘를 바라보던 이들 중, 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붉은 지팡이를 든
불의 정령이 말하였다.
"이제서야 무덤을 차리게 되었네요."
그러자 긴 푸른 머리카락과 머리 장식을 가진 정령이 답하였다.
"예,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분의 혼이 하늘로 돌아가게 되었으니까요."
그 때, 유목민이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얼마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언급을 하였는데, 그 때, 머리 장식을 가진 정령이 그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있었던 일은 반드시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 속에 기억되어야 할 거야. 하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재앙이 지금의
세계에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때, 긴 머리카락을 가진 불의 정령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윤아라는 분의 딸은 어떻게 되었지요?"
그 물음에 유목민은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언급을 대답으로써 하였다.



  루시페르가 완전히 사라진 후, 수많은 나날들이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뜨거워지는 때도 다가오고, 수풀들은 한창 짙어진 때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나날 속에서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사냥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물건을 사고 팔기도 하면서 분주히 나날을 보냈다.
  루시에나가 건네었던 생명의 빛들 중 남은 하나는 요정의 숲, 그 한 곳에 꽂아 놓았다. 요정의 숲에서 온 것을 요정의 숲으로 되돌리기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발라가 살았던 마을에 가서 아발라로부터 새로운 지팡이 하나를 건네 받았고, 지금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와 똑같이 생겼는데, 가지는 느낌은 왠지 모르게 다르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여러 일을 행하며, 나날을 보내는 동안 사건에 대한 기억도 점차 잊혀져 갔으며, 그로 인한 슬픔도 서서히 마음 속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에나가 떠난 빈 흔적은 그와 함께 하였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그로 인한 그리움의 감정을 언제나 새롭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고 있었으며,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쓰라림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루시에나가 없었을 때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냥한 고기를 파는 일을 마치고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 때에 나는 집의 등불이 밝아져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나는 놀라면서 집의 현관문으로 다가가 곧바로 다급히 문을 열어 집의 안에 누가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루시에나가 소매가 없으며 치맛단이 긴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현관 너머에 나타나자마자 놀라면서 현관을 향해 다가갔으나, 잠시 후, 그 모습이 사라지고, 현관 너머에 위치한 거실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나고 있을 따름이었다.
  "역시 환영이었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대를 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환상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기대였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가 돌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전에 내가 등을 미처 끄지 않은 채, 급히 밖에 나갔음을 상기하면서 그로 인해 등불이 켜진 채, 집이 어둠을 비추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나를 놀라게 한 이는 다급히 밖에 나갔던 나 자신이었음을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록 나의 실수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지만, 등불이 켜진 모습을 보면서 떠올린 환영을 본 일은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이와 함께 하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고, 그 추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이전에 비해 우울해진 표정을 짓는 채,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울한 기분을 풀기 위해서라도 빨리 잠들기로 마음을 먹고, 침실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지만, 그러면서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잠시 후,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한 가지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루시에나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와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내가 언젠가 루시에나가 돌아왔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그 소망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이 나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루시에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차분히 그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그리고 여러 생각에 잠기고 있다가, 서서히 피곤해지면서 창가를 향해 돌아누우며 조용히 잠들어 갔다.


The End


<- Final Act - 4 Go to th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