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lphid 4th - 1. La Blua Ŝtormo : 3


  방파제 가장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루시언 노인이 건네었던 물음에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였다, 아와레에 들어설 무렵에 바다 먼 곳에서 구조물처럼 보이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그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고 답을 한 것이었다.
  "아마 여기서도 보일 게야, 여기서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 보시게."
  이후, 루시언 노인은 나에게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보라 하였고, 이 말에 나는 그 말대로 고개를 좌측으로, 아니 좌측 방향을 향해 돌아서서 바닷가 건너편, 잔잔히 물결치는 바다의 한 곳에 검게 보이는 구조물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는 아네샤의 눈에도 분명히 보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네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방파제 좌측 방향을 향해 돌아서고 있었으며, 나처럼 먼 바다 저편에 보이는 검은 구조물들을 보고 있었을 것이었다. 먼 곳에 있어서 자그마하게 보이기만 했던 구조물, 날씨가 흐리고 구름이 낮게 드리우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 구조물은 맑은 하늘 아래에서 그저 고요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게 물든 것처럼 보이는 외견은 이상하리만큼 불길하고, 또 불온해 보였다. 마치, 무언가 나쁜 일들이 사람들이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곳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
  "할아버지께서는 저 구조물의 모습을 늘 보시고 계셨겠지요?"
  한 동안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루시언 노인은 "그랬지." 라 답하였고, 이어서 고개를 좌측으로 돌려 구조물이 위치한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근해와 그 일대의 상공에서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있는 갈매기 너머의 불온한 하지만 조용한 구조물을 한 동안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나와 아네샤에게 물었다.
  "세니티아 성계에서 왔다고 말했었지?"
  이어서 내가 그렇다고 답을 하자, 루시언 노인은 다시 한 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우측 곁에 서 있던 아네샤가 나에게 술을 마실 수 있다면, 분명 수중에 술병이 있다면 술을 마시려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깊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그 고민이 구조물과 분명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여기면서. 그러면서 그가 딱히 무언가 구조물이라든가 자신의 심정에 대해 솔직히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다음날이 되면 구조물이 있는 곳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래야 하겠지, 분명 무언가 우리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결하는 순간이 와야 그 다음이 있을 거야."
  그 제안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그렇게 화답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루시언 노인은 다시 자신의 눈앞으로 시선을 향한 채,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바로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과거의 인류에게는 하나의 전설이 있었지. 호수에서 검을 얻은 어떤 군왕 그리고 그와 동고동락했던 여러 기사들의 이야기 말일세."

  루시언 노인은 본래 은하계 중심 부근에 있었다는 행성계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거주지는 행성계에서 가장 큰 대륙, 그 서방의 가장자리 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작은 섬은 본래 고대사의 주역이었던 제국의 영역이었으며, 제국이 몰락할 즈음에 건국된 왕국의 건국 역사에 관한 전설을 하나 갖고 있었다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섬에는 하나의 왕국이 있었고, 왕국에는 대대로 섬을 지켜온 기사의 일가에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전설의 주인공은 그 중에서 마지막 대의 왕으로서, 젊은 시절에 어떤 호수를 거닐다가 호수에서 전설의 검을 얻었다고 한다.
  검을 얻고난 이후, 검이 가진 신비로운 가호에 의해 왕은 왕국을 강하고 지혜롭게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왕의 능력에 감화되어 각지에서 기사들이 왕을 동경하며, 궁전으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모인 기사들의 수는 대략 20 여명 정도.
  당시 왕국은 초기 왕조 시대로서, 왕 역시 한 명의 기사로서 적들과 맞서 나아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궁중 질서 체계가 명확히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왕과 기사들 사이가 이후 시기보다도 훨씬 가까웠던 시절로서, 왕과 함께 하나의 식탁에서 토의와 식사를 하고, 왕과 함께 동락을 할 정도로 왕과 기사들 간의 강한 유대가 강했고, 이는 왕과 기사들이 이끄는 전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언제 침략이 이어질지 모르는 열악한 시절이기는 하였으나,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왕을 따르며 왕국을 지켜내려 하였다. 수많은 외침을 막아내고 백성들을 지켜낸 활약에 의해 왕과 기사단은 뭇 사람들의 존경을 이어 받았으며, 왕 역시 이러한 찬사에 보답하고자, 백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켜가는 겸손한 왕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였으니, 나라는 점차 부강해지고, 그간의 전란으로 인해 피폐했던 백성들의 삶 역시 보다 나아지게 되었다. 왕국 곳곳에서 왕과 기사들을 찬양하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신으로부터 하나의 과업을 행할 것을 명 받았다고 한다. 그 명은 바로 '신의 가호를 받은 보배' 로 알려진 '성스러운 잔(Calix)' 를 찾아 나서는 것. 잔을 찾아내는 것으로써 신이 신성한 권능으로써 왕국을 지켜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왕과 기사들 그리고 그들의 수하 전사들 모두가 성스러운 잔을 찾아나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 과정 속에서 야만족의 핍박이나 영주의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원하고, 군대를 일으켜 이웃 나라, 그리고 섬 건너편의 나라들을 향해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이 역시 처음에는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왕국은 이전까지는 언제나 적의 침입에 맞서야만 했던 입장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고난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왕이 원정과 정복 사업을 통해 자신들을 괴롭히던 무리를 몰아내는 것으로써 그 한을 풀어준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왕의 이러한 대외 정복 사업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했고, 그의 성스러운 잔을 찾기 위한 여정에 수많은 귀족 가문과 백성들이 열렬한 지원과 지지를 이어갔었다.
  그러나, 왕과 기사들, 그리고 왕국 전체가 신의 가호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만을 갖고 성스러운 잔을 찾아나서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왕국은 왕국 내부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한 문제점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거듭되는 무리한 원정으로 인한 과도한 지출은 왕국의 재정을 궁핍하게 만들었으며, 과도한 세금 지출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왕이 일으킨 기사 왕국의 번영은 영원한 것처럼 보였고, 왕궁은 점차 화려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 내부는 누적된 문제점들로 인해 곯아가고 있었으며, 사소한 사건 하나가 대형 사건을 폭발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까짓 잔이 뭐라고...... 신의 위업을 달성한다고 안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망가뜨리면 내가 신이라도 답답할 것 같아, 그렇지?"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네샤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 살림을 등한시한 왕과 기사들에 대한 핀잔을 가하는 듯한 말을 건네고, 이어서 나에게 그렇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게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왕이라 제 마음대로 나라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원정을 하고 싶었을 것 같지는 않아, 궁정에 그의 의사를 틀어버린 배후 인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왕이기 전에 기사였던 그에게 부족했던 국정을 맡으면서 말야."
  나는 왕의 무리한 원정과 그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는 현상에는 배후가 있었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왕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을 텐데, 신의 과업이라고 해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나라의 사정은 아랑곳않고 바깥 일에만 연연하지 않았으리라 여기었던 것. 그러면서도 이러한 일은 성스러운 잔을 찾으라는 사명을 내린 신이라도 원치 않을 것으로 여긴다고 말하고서, 이러한 점에서는 아네샤와 같은 생각이라고 이어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신은 분명 그 왕이 과업을 이어갈 수 없으면, 후대에라도 이루라는 의도 하에 그렇게 말했을 텐데...... 신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많을 것 아니겠니, 그 대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다급한 존재는 아닐 것 아냐, 그렇지?"
  "그렇지...... 바라는 바가 있으면 먼 훗날에라도, 바란 사람의 후대에라도 이루게 해 주는 존재가 바로 신이야."
  내가 건네는 물음에 아네샤가 바로 답했다. 그 누구도 이야기 속의 왕이 잘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네샤는 근본적으로 왕이 잘못했다고 여기고 있었고, 나는 왕에게 누군가 배후가 있었으리라 여기고 있었지만 왕이 현명하지 못했다는 점에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분명 무언가 사건이 터졌을 것 같아요, 나라를 다스려야 할 사람은 밖에만 나가 있고, 문제는 쌓여가고 있었으니."
  이후, 아네샤는 루시언 노인에게 다가가서 그렇게 물음을 건네면서 이야기를 이어갈 것을 부탁하였고, 이에 루시언 노인은 그 답으로써 결국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하고서, 그로 인해 하나의 왕조 시대가 끝나게 되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계속되는 원정으로 궁정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된 왕을 대신하여 국정은 왕자들 중 한 명으로 그의 친아들인 '왕자' 가 맡고 있었다. 그는 왕자이면서 기사단에 가담하였고, 어린 나이부터 원정을 나가느라 궁정에 자주 나가 있던 그를 오래토록 대신해 오고 있었으며, 왕의 무리한 원정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수많은 국정 문제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자신이 왕이 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늘 다짐하고 있었다. 그 역시 아버지로부터 애민 정신을 배워 그 정신을 이행하려 한 사람이었으며, 기사로서, 왕으로서 정당한 자격을 갖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갔었다.
  그러나, 왕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성배 탐색 및 원정을 위해 나가 있는 동안 궁정을 지키고 있던 친아들이 아닌 자신과 여정을 함께 해 오고 있던 기사이자 자신의 조카에게 왕좌를 물려줄 의사를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생각은 '왕자' 로 하여금 배신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더 나아가 배신감은 아버지에 대한 앙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오래토록 왕자가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을 앙심을 누군가가 이용하게 되었던 것이네요."
  "그렇지, 그의 가슴 속은 늘 불타고 있었을 게야,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오래토록 비워두고 있었던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마땅히 자신에게 돌아가야 했었을 왕좌를 대신 차지하게 된 자신의 형제에 대해. 사악한 자는 그런 왕자의 마음 속 불꽃에 이끌려 그에게 다가왔던 게지."
  "그런데, 왕국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왕자가 아닌 그의 형제를 왕은 대체 왜 후계자로 삼으려 한 거예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아네샤는 바로 왕은 그의 친아들인 왕자가 아닌 조카를 후계자로 내세우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친아들이 왕에게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었음이 그 이유. 이에 루시언 노인은 왕자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하겠다고 말하고서, 그 이야기가 해답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

  왕은 왕좌를 차지하자마자 왕국의 지체 있는 일가 출신 여성과 정식 결혼을 하였다. 여성은 왕국의 귀족들과 백성들 사이에서도 미인으로 정평이 있는 여성이었고, 왕국의 왕이면서도 왕국에서 명망 있는 기사이기도 했던 왕에게 있어서 가장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 결혼은 어디까지나 정략 결혼이었고, 왕은 왕후가 된 자신의 여인에게 깊은 애정을 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왕은 자식을 얻을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조카인 이를 후계자로 선정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는 도중, 그는 서부 지역을 순시하는 도중에 '호수의 일족' 에 속한 어느 여성과 만나서 그의 거처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후, 여성은 왕의 아이를 출산하였고, 이후, 여성은 그 어린 아들과 함께 왕궁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한 때 만났던 여인을 알아본 왕은 그가 자신의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여인과 그 아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하였으며, 자신에 의해 태어난 소년을 자신의 친아들로 여기었으니, 그가 바로 '왕자' 이다. 왕은 여인 역시 자신의 '제 2 왕후' 로 삼으려 하였으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여인은 왕의 그 제안을 거절하고서 왕궁을 떠났고,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왕은 왕자를 왕후의 아들로 입적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로 왕이 어쨌든, 자신의 친아들인 왕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실 왕후 출신이라는 뻔한 거짓말이 그의 측근이었던 기사들과 귀족들에게 통할 리 없었고, 평민 출신일지도 모르는 왕자를 왕궁의 귀족들은 어쨌든, 여타 귀공자들, 왕족과는 다르게 보고 있었다. 그를 왕위 계승자로 삼는 것은 여러 의미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던 왕은 그를 차마 왕위 계승자로서 내세울 수 없었으며, 그리하여 왕자가 궁에 들어온 이후에도 왕은 자신의 조카인 왕자를 계승자로 내세우는 방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 왕은 자신의 친아들이 왕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이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컸고,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지. 그래서 그에게 왕위 계승권을 함부로 줄 수 없었던 게야. 그 대신, 왕은 자신이 원정을 나가 있는 동안에는 왕 노릇이라도 해 보라고, 그 왕자에게 자신이 왕궁 밖에 있는 동안 국정을 다스리도록 하였을 터. 하지만 그것이 결국 왕자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왕권의 계승자로 여기었기에 나라를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자신이 계승자로 있을 수 없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되었겠지."
  "그렇다면, 왕자가 왕의 대행이 아니었다면, 왕국의 역사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었으려나요."
  이후, 아네샤가 루시언 노인에게 묻자,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답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애초에 후계자로 내세운 자신의 조카가 아닌 친아들을 왕궁에 남겨 자신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한 것부터 잘못된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그런데 그 말하는 어조가 마치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왕이 원정을 위해 섬을 떠나, 대륙에 나가 있는 동안 괴소문이 퍼져 나아가기 시작했다, 서부 지역 순시 중에 만났다는 '호수의 일족' 여성은 사실, 왕의 여동생이며, 그 아들은 왕의 여동생이 낳은 사생아라는 소문이었다. 당연히 거짓된 소문이었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왕자가 사생아라는 사실은 은연중에 왕궁 내부에 퍼져 있는 소문이었고, 사생아설을 부정한 왕은 왕자의 탄생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아서 이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이 고약한 소문이 퍼져 나아가기 시작할 무렵, 왕의 권한 대행이었던 왕자는 해당 소문에 대한 근원을 파악하려 하였지만, 애꿎은 사람들만 처형될 뿐, 근원 파악에는 결국 실패했다. 본래 왕에게는 그를 곁에서 보좌해 주던 현명한 학자도 있었고, 그가 왕궁에 있었다면 해당 소문의 근거를 찾아낼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학자는 왕의 원정이 시작될 무렵, 이미 그의 곁을 떠난 상태였다. 그 와중에 어떤 술사가 그에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정실 왕후라는 여인은 측근 기사 중 한 명과 불륜 관계에 있으며, 왕자가 이 사실을 발각해낼 것을 우려해 그를 왕궁에서 끌어내기 위해 이러한 소문을 퍼뜨렸다, 라고 왕자에게 말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서 불륜의 대상은 왕의 측근 기사들 중 하나로서, 측근 기사들은 동료의 잘못을 모른 척해 줄 것이고, 왕자가 왕궁에서 사라지더라도 후계자는 정해져 있으며, 그 역시 왕족이기에 왕위 계승에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알량한 믿음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고도 하고."

  이러한 술사의 이야기를 듣고 왕자는 크게 분노했으며, 왕자는 그 모든 것들이 내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정복 사업과 국정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것에만 연연하고 있는 국왕의 잘못된 태도에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국 왕자는 '마땅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잘못된 국정으로 피폐해진 왕국을 바로잡는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왕궁을 점거하고, 왕좌의 방으로 나아갔으며, 왕관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던 사제를 비롯한 왕궁 내에 있던 사람들의 목을 베어 죽이고 자신이 스스로 왕관을 쓰며, 왕국의 새로운 왕임을 선포했다.

  "대체 이 무슨 거동이란 말이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시오, 왕자님!?"
  "당연하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다."

  본래 새 왕은 왕자 시절에는 현명하고 강인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왕인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애민과 호국의 정신으로 무장한 굳센 왕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왕위 계승권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 관한 악소문들이 퍼져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그로 인해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그러한 어린 시절의 다짐을 내팽개치고 말았으니, 새 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추진한 일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의사에 반발한 궁정 내부의 사람들과 자신을 경멸하던 귀족 자제들을 대거 숙청한 것이었으며, 그 이후로도 백성들 중에서도 자신에 관한 소문을 퍼뜨렸다는 사람들을 마구 색출해서 잔혹하게 처형하고 나라의 곳곳에 감시자들을 보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대해 험담하는 모든 자들은 가차 없이 죽이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그 대상이 특정한 개인 및 단체에 한정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일가, 심지어는 마을 전체가 대상이 되기도 했다. 새 왕은 본보기로 자신의 어떤 정책에 반발한 어느 마을을 징벌의 대상으로 삼아 마을의 모든 것을 파괴, 약탈하고, 마을에서 살아있는 것들은 사람, 동물을 가리지 않고 몰살시킨 후에 해당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해 기록말살형에 처했으며, 그 이후로 이러한 사례를 들어 새 왕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은 무엇이든 징벌과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한다면, 자신 뿐만이 아닌 자신의 일족과 터전 모두가 세상에서 '삭제' 될 수 있음을 명백히 하는 등, 왕국의 모든 것들을 탄압과 학살로 다스리는 공포 정치에 빠져 들고 말았다.

  "그 당시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 불타는 거리 곳곳에 무참히 잘려 나간 사람들과 동물들의 머리가 마구 뒤섞인 채 쌓여 있었고, 길마다 목 없는 시체들이 즐비했으며, 건물마다 핏자국들이 없는 곳이 없었으니, 마치 식인귀들이 마을을 휩쓴 것 같았다고 했다네."

  이러한 이야기는 원정 중이던 왕에게도 닿았고, 결국 왕은 새 왕의 폭거를 막고자, 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왕국의 수도에 도달하자마자 왕은 새 왕, 아니 반역자의 진영을 향해 그의 모습에 대해 한 없는 안타까움을 표했으나, 반역자는 그러한 왕의 발언에 바로 반박을 하였다.

  "아들아,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들었노라.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어렸을 적에는 애민과 호국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던 이를 누가 그 지경으로 몰아 넣었느냐는 말이다!"
  "당신이란 작자가 그 동안 나라의 관심사를 바깥에만 몰아넣을 여력의 반이라도 내정과 백성 수호에 힘을 썼다면 나라 꼬라지가 이 꼬라지가 될 이유는 없었겠지! 애당초 네놈은 당신의 말에 뒈지라면 쳐 뒈질 나부랭이 새X 를 자신의 후계자랍시고 쳐 내세운 것부터 이미 글러 쳐먹은 놈이야!"

  그 '나부랭이' 는 다름 아닌 자신의 조카이자 왕위 계승자로 지정된 그 왕자였을 것이다. 공포 정치에 빠져 들다 못해, 왕궁의 모든 이들을 욕하고 저주하는 반역자의 태도를 보며, 왕은 자신의 아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여기고, 그를 반역자로서 토벌하기로 결심하였다. 반역자는 왕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그 머리통이 쳐 부서져도 잘난 너희 대가리를 모실지 보자' 라는 도발을 하면서 적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도끼로 목을 치는 것은 기본이요, 사지를 찢어 발기는 형태로 반역자는 왕의 부하를 죽였으며, 왕위 계승자였던 왕자 역시 전란 중에 반역자의 군세에 잡혀 산 채로 정수리가 도끼에 찍혀 죽었으며, 이후 반역자는 자신이 직접 그 '나부랭이' 시신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잔인하게 찢어발겨 그 형체를 왕에게 보여주는 것으로써 그를 잔혹하게 도발하였다.
  반역자는 잔혹한 기세로 왕을 밀어붙이려 하였지만, 그 역량은 왕과 여러 측근 기사들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역자는 왕의 군세에 밀리다 못해, 왕궁을 빼앗겼으며, 이후, 몇 남지 않은 잔당과 함께 왕궁 인근의 어느 산지에 요새를 차리고, 왕의 군세에 대항하다가 요새가 함락될 즈음, 포로가 되어 왕의 본영으로 끌려나오게 되었다.

  "오래토록 귀족들에게 멸시를 받고 있던 반역자는 권세와 명예 뿐만이 아닌 힘 역시 갈구하고 있었으며, 왕궁 내에 힘의 상징으로 여기어지는 무구가 있음을 알고, 그 무구를 찾아내려 하였다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왕궁의 무기고에서 해당 무기를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았고, 그러면서 그 검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떤 위협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하리라 믿고 있었지. 하지만, 막상 아버지와의 전면 대결에서 그가 손에 든 보검은 그러한 힘을 내지 않았어."
  "....... 실제로는 그저 평범한 기사의 도검에 불과했을 뿐, 그것이 이유겠지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루시언 노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애초에 왕의 보검 역시 전승에 의하면 호수의 일족이 지키고 있던 신비로운 검이라 하였지만, 그 실상은 그저 평범한 기사의 검으로, 수많은 업적과 위업을 남기며 왕의 명성이 드높아지자, 더불어 같이 명망을 얻으면서 그와 더불어 신비로운 전승도 얻게 되었을 따름이라 말했다, 그에 이어 반역자가 얻어낸 무구 역시 왕의 업적과 무공의 명성에 힘입어 같이 명망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왕은 전투 도중에 치명상을 입은 여파로 거동이 불편할 지경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의 배신자이자 공포 정치의 화신이 된 아들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기로 하였다. 결국 왕은 오래토록 자신의 보검으로 소지했던 도검을 대신해 자신이 원정 도중에 사용한 창으로 처형대의 기둥에 묶인 아들의 흉부를 직접 찔러 처형시켰다. 그러면서 왕은 아들이 이제라도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아들은 왕이 이전부터 소지하였던 도검이 아닌 창으로 자신을 찌르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저주의 말을 남기며 죽어갔다.

  "그래....... 그 '호수의 일족' 이 줬다는 잘나신 몸에 더러운 피를 묻히기는 싫었나 보지? 우히히히히...... 그런 주제에 아들을 위한다고? ....... 신들께서는 너희를 지켜보시고 계신다, 허황된 생각에 빠져 나라 일을 그르치는 놈들, 불륜을 낭만으로 착각하는 짐승 같은 놈들, 명예와 용기라는 겉포장만 요란한 구차한 놈들흐아아!!! 카마엘(Camael) 과 일만 이천 천사들의 잔혹한 심판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이히히히히..... 해해해해해........"

  '반역자' 의 어투를 재현하는 목소리에서 막대한 광기와 분노가 느껴지고 있었으며, 그가 했다는 말에서 마치 군주는 물론이고, 인간되기 마저 포기한 듯한 면모가 나타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그렇게 마구 비속어를 남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왕이 되고 사람들을 마구 처형하기 시작하면서 그간의 격식을 모두 내던져 버렸으며, 어투 역시 상스럽게 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어투를 재현하면서 루시언 노인은 왕의 아들은 처음부터 그런 이는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를 향한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와 그것에 의한 광기가 그의 모든 것, 심지어 인간성마저도 집어삼킨 결과임을 말하고 있었다, 불륜에 빠진 기사 역시 인간성을 그렇게 상실했지만, 만인을 잔혹하게 처형하려 한 왕의 아들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었다고.

  반란은 진압되었다. 그러나, 반란이 끝나고, 왕국에는 이전의 영화를 되찾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 때, 대륙 원정까지 이룰 수 있었던 그의 기사들과 기사단 그리고 군단에서 이제 남은 것은 적은 일부에 불과했고, 왕국의 신하, 귀족들 역시 난리 도중에 대다수가 사망했다. 평화로웠던 왕국은 황폐해졌으며, 갑작스레 찾아온 폭정과 전란에 지친 백성들 역시 각지로 흩어져 떠나, 진정 왕국에 소속된 백성들의 수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적어졌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은 왕도로 귀환한 왕을 환영하고, 왕이 왕궁으로 복귀하기를 소망했고, 그리하여 왕은 왕궁으로 돌아갔지만, 왕은 왕좌에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었으며, 왕은 궁전의 한 구석에 그저 홀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반란이 진압된 이후의 왕은 이전과 같은 용기와 결단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왕은 반역자로 규정한 자신의 친아들을 자신이 규정한 바에 따라 보검이 아닌 것으로 처형하려 하였지만, 이후,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친아들이었을 그를 자신의 보검이 아닌 뭇 전사들이 이용했을 것과 같은 장창으로 처형한 것에 대해, 그리고 전란 중에 자신의 조카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가슴이 저릴 정도로 비통한 후회를 하고 있어서 보검을 들며 늘 아들과 조카를 생각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왕은 더 이상 사람들이 이전에 알던 그 기사들의 왕이 아니었다.
  그렇게 왕궁의 한 구석에 칩거하기를 며칠, 왕은 결국 왕궁을 떠나, 다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본래 그는 홀로 떠나기를 원했으나, 존귀한 존재를 사람들은 홀로 떠나 보내기를 원치 않았고, 결국 그를 충실히 따르던 기사 한 명과 수행원 10 여 명만이 그를 따라 나섰다. 그가 입고 있던 갑주는 왕이 사람들로 하여금 버리도록 하였으며, 그 이후 그 행적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그 무구들이 버려지지 않았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모양.
  노왕은 하얀 옷차림만을 하고, 허리에 자신의 오랜 동반자였던 보검과 아들이 가져갔다가 반란 이후 자신이 되찾은 보검들만을 찬 채로 길을 나섰으며, 그는 이제 막 초로에 접어드는 나이였건만, 그간의 괴로움 때문인지 정정하였던 왕은 그 시점에서는 백발과 흰 수염이 성성한 노인처럼 변해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나와 아네샤 모두 노인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털이 희게 변한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그는 어느새 다시 낚싯대를 오른손에 들고 낚싯줄을 바닷물 아래에 드리우고 있었다. 다시 낚시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낚시의 성과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낚시는 그만하시는 것이 어때요, 미라 씨가 이 광경을 보면 할아버지를 혼내겠어요."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다시 한 번 손대 봤네, 성과가 좋았으면 좋겠건만, 그러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아쉽구먼."

  왕관마저 내버린 노왕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흡사 옛 시대, 왕을 보필하였던 학자의 모습 같다면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닮을 수 있음에 대해 말했다.
  모든 것을 내버린 노왕의 목적지를 그를 수행하는 사람들조차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가 그저 동쪽 방향을 향해서만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수많은 나날들을 그저 걷고 머무르기만을 반복하던 노왕의 여행은 그 도중에 검은 상복 차림을 한 어떤 여인의 초라한 거처에 이르고 있었다. 여인을 보자마자 그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서쪽 지대에서 만났던 '호수의 일족' 에 있던 여인으로 아들이 입궁하면서 그와 결별한 이래로 동쪽 지대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여인을 찾았던 서쪽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며, 그 역시 여인을 그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서쪽 지대에서 만났을 무렵,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미인이었던 그 여인,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미모도 점차 바래지고 있었던 여인을 왕 역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채로 만나면서 서로 간의 감회가 상당했을 것으로 여기어지지만, 그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당시 노왕은 여인을 처음 만난 이후, 사적인 대면을 할 때에는 그의 거처에 있었으며, 다른 이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알려진 노왕과 여인의 대화는 이들이 결별할 즈음에 있었다. 노왕은 자신의 보검, 그리고 아들이 가졌던 보검을 여인에게 건네려 할 즈음의 부탁으로, 노왕은 그 때, 여인에게 자신의 검들을 가져달라 부탁했으며, 그것이 한 쌍의 보검들을 노왕이 굳이 가져간 이유였다. 여인은 그 부탁을 듣고 심히 놀랐으며, 수행하던 이들 역시 심히 놀라고 있었다, 노왕은 자신은 이제 통치자로 있을 자격이 없으며, 그래서 왕의 상징이나 다를 바 없는 보검들을 가질 자격도 없다고 말했던 것으로 그 말에 수행하던 사람들 모두 술렁이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수행원들을 더욱 심란케 한 것은 다름 아니라, 노왕은 한 동안 과거의 자신을 대신할 왕이 나타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못할 '슬픈 시대' 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왕은 언젠가 세상을 평화롭게 할 현명한 군왕이 나타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그 날을 기다리며 굳세게 살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먼 훗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심란해진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할 왕이 도래하게 될 날이 올 걸세. 그 때가 되면, 그러한 자질이 있는 현명한 자가 왕이 되려 한다면, 내가 건네었던 이 보검들을 그 자에게 건네주게. 이 보검들이 그에게 신의 축복을 전해줄 것이야. 그리고, 누군가가 성배를 찾으라 말하면, 그 명령은 거짓이라 알려주게, 나라 일에서 백성들을 보살피고, 나라 살림을 굳건히 하는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전해주게."

  "...... 라고, 노왕은 부탁을 하였지, 그리고 모든 무구들을 떠나 보낸 이후, 왕은 뭐 하나 짚을 것이 있었으면 한다는 여인의 부탁에 따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면서 여인과 결별하고 다시 길을 나서려 하였지만, 여인은 그런 그를 따라 나서려 하였어, 이후, 헤어지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던 게야."

  왕의 마지막 발걸음은 동쪽 해안가, 작은 배 앞에서 멈췄다. 거기서 왕은 자신의 곁에 끝까지 남은 기사 한 명만을 데리고 작은 배를 타면서 그를 따라온 수행원들과 여인들, 그리고 소식을 듣고 해안가를 찾아온 아이들을 비롯한 여러 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였으니, 그 부탁은 아래와 같았다고 한다 :
  "이제 왔던 길을 따라 그대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부탁했던 바대로, 언젠가 도래할 좋은 시대를 기다리며,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주게나."

  "....... 마치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긴 이후, 그는 작은 배를 타고 서쪽 먼 바다를 향해 떠나갔지. 그리고 다음 날, 배는 돌아왔지만 왕은 돌아오지 않았어, 배에 탄 이는 직접 노를 저어가며 배를 움직였던 기사 단 한 명뿐이었던 게지.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 기사에게 왕이 그에게 무슨 말을 남겼느냐고 물었고, 이에 기사는 그 물음에 우선 옛 왕이 섬의 서부 해안 근처의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자리를 잡았음을 알렸고, 이후에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우선 '이제 그만 돌아가라' 라고 말한 이후에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자신을 더 이상 찾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라는 마지막 지시를 내렸음을 이어 알렸지. 이후, 사람들은 각자 있을 곳으로 해안가를 흩어지며 떠나갔고......."
  이후, 그는 '그렇게 한 명의 왕과 왕국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어느 전설의 왕 그리고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자 아네샤가 낚싯줄을 여전히 바닷물 아래에 드리우고 있던 노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께서는 이 곳이 그 당시, 왕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 곳일 것이라 생각하시고 계신가요?"
  이 물음에 루시언 노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그 때만큼은 확실히 답이 빨랐다.

  이후, 아네샤는 방파제의 좌측 가장자리 쪽으로 나아가서 팔짱을 낀 채로 멀리 보이는 수평선 쪽으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동안 먼 바다의 자그마하게 보이는 구조물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한창 이야기를 할 때처럼 낚싯대를 두 손으로 들고 낚시에 집중하고 있던 노인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아까 전까지의 그 이야기가 저 구조물과 무슨 연관을 가지는 거예요?"
  구조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전한 이후로 루시언 노인에게 아무 말이 없자, 구조물에 관한 고민을 말하려다 노인이 그것을 잊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물음을 건네려 하였던 모양. 이러한 물음에 루시언 노인이 아네샤가 있는 쪽으로 잠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 표정에서 당황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어, 그 표정에서 그의 아차 싶어하는 심정이 드러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이후, 그가 뭐라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 뒤쪽에서 어느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뭇 어른스러운 느낌을 주는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나도, 아네샤도 바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서서 목소리의 주인공, 그 모습을 보려 하였다.
  "할아범, 점심 식사 시간이에요, 이제 낚시는 그만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시죠, 미라가 말하는데, 낚시 잘 안 되시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루시언 노인에게 낚시는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여성의 목소리, 그 주인은 하얀 원피스 드레스, 그리고 분홍색 앞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젊은 여성으로 머리에 하얀 고양이 귀가 달려 있어서 고양이족 여성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가는 긴 머리카락은 하늘색을 띠고 있었으며, 얼굴 색은 무척 밝았고, 눈동자는 깊은 푸른색을 띠고 있는 미녀로서, 그가 입고 있던 하얀 원피스 드레스는 소매가 어깨만을 덮을 정도로 짧았고, 둥그런 목깃은 어깨 바로 근처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가는 물결치는 듯한 모양의 치맛단은 나팔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런 드레스 앞에 둘러 입은 앞치마, 치맛단이 허벅지 정도까지만 내려가는 앞치마는 분홍빛 바탕에 보다 밝은 분홍색을 띠는 고양이가 네 발을 높이 들어 날아가는 듯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보였으며, 맨발에 신겨진 신은 하얀 드레스와 대비되는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겉 부분이 하얗고, 안쪽은 분홍색인 길고 뾰족한 고양이 귀, 그리고 몸의 뒤에 달린 하얀 고양이 꼬리는 그가 하얀 고양이와 관련이 있는 여성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 여인은 자신의 곁, 좌측에 어린 소녀를 대동하고 있었다. 하늘색 긴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 그리고 하얀색의 소매 없는 셔츠와 분홍색 치마를 입은 모습은 확실히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모습으로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네샤도 바로 그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전에 일행과 동행하고 있던 어린 고양이족 소녀인 린나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린나와 동행하는 여인이 그의 어머니일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아네샤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
  "집에 가도 딱히 할 게 없어, 이런 일이라도 해야지 뭐......."
  이후, 낚싯줄을 다시 감아올리면서 루시언 노인은 여인의 물음에 답을 하였다. 그리고 여인이 주무시기라도 하라고 부탁하고서, 그간 밤새 낚시 하느라고 많이 피곤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동안 노인은 가져왔던 모든 장비들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인을 향해 돌아서서 그에게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이렇게 직접 찾아왔나."
  "린나가 말하더라고요, 푸른색 긴 머리카락을 가진 언니들이 할아버지와 같이 있다고. 린나도 그렇고, 집에 온 클라리스가 같이 식사를 했으면 한다고 해서, 불러 왔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추측대로 여인은 린나의 어머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행과 헤어지고, 린나는 모니카, 그리고 자신과 동행하던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으며, 여인은 린나의 어머니로서, 한 동안 바깥에서 놀러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이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 주려 하였던 것으로, 아직 서쪽 해안가에 루시언 노인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을 일행을 불러오기 위해 직접 여인이 나선 것이었다.
  "할아범께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또 그 이야기이겠죠, 남은 이야기는 제가 들은 바대로 해 드릴 테니까, 어서들 제 집으로 가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여인은 루시언 노인을 '할아범' 이라 칭하고 있었다. 여인은 어렸을 적부터 그를 그렇게 칭한 바 있으며, 자신이 어렸을 적에도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낚시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고 그에 대해 말한 바 있었으니, 그 이야기를 들으며, 루시언 노인은 오래 전부터 아와레에 머무르며, 낚시 등의 소일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여인은 루시언 노인에게 다시 한 번 낚시는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당부의 말을 건네고서, 남은 이야기는 나와 아네샤에게 들은 이야기를 보태가며 하겠음을 밝혔다.



  여인의 이름은 라니아(Lania) 로서, 학교 건너편의 작은 텃밭을 가진 집에서 딸인 린나와 단 둘이서 살고 있는 여성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손재주가 뛰어나고, 음식 대접을 워낙 정성스럽게 하는 것으로 마을에서는 정평이 난 인물로, 남들은 모르는 특별한 요리 방법을 대를 이어 전수 받고 있다고 하였다.
  어렸을 적부터 밖에서 밥을 먹거나, 특별한 식사가 있을 때에는 사람들에게 외지에서 쌀(Lath) 을 사와서 밥을 짓고, 밥과 더불어 각종 음식들을 사각 도시락 통(Haonkhinigize, Bento) 에 담아 대접하고는 했으며, 도시락 통에 음식을 담을 때에는 그 모습을 어린 딸에게도 직접 보여주고는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그가 직접 시작한 것은 아니며, 어렸을 적에 자신의 어머니도 그러한 일을 했으며, 자신은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도시락을 만드는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보고는 했었다고 한다. 대를 이어 하는 일로서, 그 방법이 어떻게 전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지는 못하고 있었던 모양.
  학교 건너편 집에 오자마자 라니아는 바로 주방으로 뛰어가듯 나아가면서 자신이 만들어 온 것을 보여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달라 부탁하였다. 그러는 동안 주방 건너편에 있는 사각 식탁에는 먼저 해안가를 떠났던 이들, 클라리스, 미라 그리고 린나의 친구인 모니카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클라리스와 미라는 좌우 방향으로 나란히 주방을 등지는 방향에 앉았으며, 모니카는 미라의 건너편에 앉아 있었으니, 이를 통해 나는 린나가 클라리스의 건너편에 앉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어서 와요, 이 자리에 앉아요." 식탁 근처로 일행이 접근해 오자마자 그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던 클라리스가 바로 일행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나와 아네샤에게 주어진 자리는 오른쪽 가장자리에 보이는 두 자리로 서로 마주보며 앉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주방을 마주하는 방향에는 내가,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아네샤가 앉게 되어, 현관을 등지는 방향을 기준으로 주방을 바라보는 방향에는 좌측부터 린나와 모니카 그리고 나,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클라리스와 미라 그리고 아네샤가 앉게 됐다.

  라니아가 준비한 도시락은 한 사람당 하나씩, 내가 받은 것은 좌측에은 적갈색을 띠는 연어(Salmon) 살, 새하얀 생선 구이 조각, 고등어 된장 조림, 계란 말이(Omlet), 시금치 조림 그리고 무 절임이, 그리고 우측에는 밥이 가득히 채워진 것으로, 건너편의 아네샤는 구성은 같았지만-좌측이 반찬이고 우측이 밥인 것은 일단 같았다-, 반찬 구성이 약간 달라서 대비가 됐다. 그와 더불어 몇몇은 반찬 구성에서 나와 아네샤에게는 없는 것도 있어서 라니아가 다양하게 준비했음을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린나, 평소에도 이렇게 먹니?"
  이후, 아네샤가 건너편에 앉은 린나에게 물음을 건네자, 린나를 대신해서 클라리스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는 클라리스와 미라의 도시락을 얼핏 살펴보니, 반찬 구성에서 생선 구이 조각을 대신해 배추 절임,고등어 조림을 대신해 닭고기 구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 우측 가장자리의 의자에 라니아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말했다.
  "클라리스, 미라 두 아가씨는 평소에도 채식을 많이 해서, 요청한 대로라면 전부 채소로 구성할 수 있었지만, 도시락은 모름지기 다양한 종류의 반찬을 넣어두는 것이 원칙이라 했고, 그런 점에 대해서는 두 아가씨들 모두 이해는 하고 있어요."
  이전 때와는 다른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이어가며 라니아는 맛있는지를 일행에게 물으려 했고, 이 물음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아네샤는 라니아에게 루시언 노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그는 바로 이렇게 답했다 :
  "정말 좋은 어르신이세요, 이제 정말 연로하실 텐데도 손녀들을 위해 이것저것 많이 해 주려 여전히 노력 많이 해 주시고, 마을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시기도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나 나서시려 하시는 분이시지요. 간혹 무리한 행동을 해서 손녀들하고, 뭇 사람들을 당황케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분께서 돌아가시기를 다들 원치 않으니시까, 이전처럼 부탁의 말을 드리기도 하고, 그러는 것일 따름이에요."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그런데 연세도 많으신데, 한 번씩 이런저런 이유로 무리하시려 하시니까, 그 모습을 보면 가끔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점만 제외하면 정말 좋은 할아버지예요."
  이어서 이전에는 장난 반, 핀잔 반의 모습을 루시언 노인에게 보였던 미라가 그의 주장에 거들자, 라니아가 그런 그를 보면서 한 마디 말했다.
  "저 아가씨도 참.......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할아버지를 뒤에서 끌어 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도 달리 말은 없으셨지만 가만히 지켜보니, 미소를 띠시고 계시더라고요,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런 아가씨의 모습이 무척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창 밝게 목소리를 내던 라니아는 루시언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생각이 났는지, 바로 이전까지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와 아네샤에게 물었다.
  "방금 전까지 루시언 할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죠?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던가요?"
  이러한 그의 물음에 딸인 린나 그리고 그 친구인 모니카도 자신의 건너편에 앉은 (친구) 어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러는 동안 두 소녀들의 머리 위에 달린 세모꼴 귀들의 모습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을 것이다.

  "바다 건너편의 구조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곧바로 어느 전설 속의 왕국과 그 왕국을 다스리던 어느 왕의 이야기를 하셨었어요, 이야기를 하시는 어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처럼 그 이야기를 이어 가시더라고요."
  그러자 린나 역시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듯이 바로 눈을 크게 뜨며 밝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 그 이야기, 저도 할아버지께 들은 적 있어요, 그 이야기......"
  그 때, 어머니인 라니아가 그 모습을 보더니, 오른손의 둘째 손가락을 입가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뜻을 전하였고, 그 이후로 린나와 모니카 모두 말을 멈추었다. 이후, 라니아는 활짝 웃으면서 나와 아네샤 등에게 그 이야기에 대해 말을 건네기 시작하였다.
  "방금 전에 들어보셨으면 아실 거예요, 그 이야기는 루시언 할아버지께서 마을 사람들에게 한 번씩은 해 주시는 일종의 그 분의 의례 같은 것이지요, 저도 어렸을 적, 린나 나이 만할 즈음에 그 이야기를 할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나요."
  "라니아 씨께서 어렸을 적에도 그 분께서는 할아버지이셨던 거예요?"
  그 때, 아네샤가 놀라면서 라니아에게 루시언 노인에 대한 물음을 건네자, 라니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을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아네샤는 조용히 나에게 루시언 노인에 대해 생각보다 나이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고서, 정황 상, 어쩌면 인간의 상식적인 나이보다 더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이어 말하기도 하였다. 그가 말한 바에 따르면 역사에 알려진 인간의 평균 연령은 대략 80 세로, 오래 살 수 있으면 100 ~ 120 세까지 살 수는 있다고 하였는데, 그 영역 혹은 그 너머에 노인이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그런 나이 대에 이른 사람 치고는 너무도 젊은 모습이라는 점도 신경이 쓰인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그 노인의 실체에 대해 다소 석연치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가 인류의 후손이며, 실제 인간처럼 삶을 이어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라니아도 고양이 요정인 관계로 굉장히 오래 산 사람이고, 그래서 기억에 착각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일단, 내가 줄임말로 감춰 둔 사항에 대해서는 일단은 가려둔다, 당장에 알려줄 수 있는 사항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나와 아네샤가 루시언 노인에 대해 귓말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라니아는 루시언 노인이 마치 의례라도 된 것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그 전설의 왕 이야기에 대해 한 번씩 이야기를 해 주는 심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아무래도 할아버지께서는 선조에게서 들은 위대한 이야기를 여기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 드리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구 인류의 유산으로서."
  그리고서 라니아는 자신도 구 인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구 인류의 유산을 실제로 접해본 것도 있지만, 그것들이 구 인류 유산의 전부는 아닐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서, 행성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 소녀, 여인들과 요정들은 인류가 남긴 것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만 알고 있을 뿐, 특히, 구 인류가 남긴 전설이나 민담은 거의 전승되지 않고 있으며, 나머지는 전해주는 사람이 없는 한, 영원히 잊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어쩌면 루시언 할아버지께서 남기시는 바가 구 인류의 유산을 조금이나마 알리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요, 그래서 그런 노력에 대해서는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라니아는 노인에 대해 그 이야기 이외에 아는 것은 전혀 없는 것 같아 보였다고 말하고서, 어찌하다가 그 전설의 왕 이야기만 듣고, 세상의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저 어두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서 라니아는 잠시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나와 아네샤의 모습을 한 번씩 둘러 보면서 나에게 루시언 노인은 왕의 이야기를 어떻게 했느냐고 묻고서, 이야기 속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린 적이 있느냐고 이어 묻기도 했다.
  "아니오, 구체적으로 이름 같은 것을 말씀하시지는 않았어요."
  이 물음에 나는 그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왕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는 이름이라든가, 구체적인 인물에 대한 사항들을 말하지는 않았음을 밝혔다. 다만, 인물들이 어떤 신분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하기는 했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러셨군요." 이에 라니아는 무언가 아는 바가 있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 부탁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우측 뒤편의 방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책 한 권을 두 손으로 안고 있으면서 다시 식탁의 자신이 앉은 의자로 돌아와 자리에 앉더니, 하얀색을 띠는  책의 표지를 위로 향하도록 하면서 책을 올려 놓았고, 이후, 클라리스가 라니아를 대신해 나와 아네샤에게 그 책에 대한 소개를 이어가려 하였다.
  "라니아 씨께서는 해당 서적에 대해 마을의 도서관에 위치한 책장들 중 하나에서 이 책을 발견하셨대요. 어느 왕의 전설에 관한 책으로,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께서 해 주신 전설 이야기와 일치하는 사항들이 많아서 흥미를 느끼고 자주 책을 빌려 보셨다가, 나중에는 도서관 측에서 책을 직접 라니아 씨께 선물로 주셨어요, 그래서 계속 라니아 씨께서 이 책을 가지실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는 동안 나는 라니아가 손에 올려놓은 그 책의 하얀 표지에 쓰인 검은 글자들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다행히도 일행이 읽을 수 있는 '라티나(Latina)' 문자로 쓰여 있어서 그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책의 겉 표지에 쓰인 문구는 아래와 같았다 :

  Les Histoires Légendaires de Saint Arthur le grand et les chevaliers de Camelotte.
  (레 이스똬흐 레장데흐 드 상 아흐뛰흐 르 그랑 에 레 쉬발리에 드 까믈롯)
  (위대한 성왕 아르튀르와 카멜롯 기사들의 전설적인 이야기)

  그 문구를 보자마자 나는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고 있었다, 세니티아 성계의 옛 문명 중에서도 대륙 서부 지역에서 전승되어 왔다고 알려진 이야기인 '아흐튀흐와 카멜롯의 기사들(Arthur et les Chevaliers de Camelotte, Artür glo Kamelotï Kavaliadr)' 로서, 해당 이야기는 나도 언젠가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전설의 성검이라 칭해지는 칼리부흐(Calibour, Kalibur) 라는 검을 가진 전설의 왕 아흐튀흐가 책사인 마법사 메를랑(Merlin, Merlã) 과 기사 베돠예(Bedoier, Bedwaye) 를 만난 이후, 자신의 일족인 고방(Gauvain, Govã) 과 호수 지역의 기사 랑슬로 뒤 락(Lancelot du Lac, Lãs'lo dü Lak) 를 비롯한 여러 기사들을 만나고, 카멜롯(Camélotte, Kamelot) 이라 칭해진 도시의 왕궁에 모인 왕과 기사들이 여러 모험을 이어가며 왕국과 백성들을 위한 여러 업적들을 남겨가는 이야기로 그 결말은 왕국 내의 내전을 수습하고, 내전을 일으킨 자신의 아들 메드로(Médraut, Medro) 를 죽인 왕 역시 부상을 치유하기 위해 아발롱(Avalon, Avalõ) 으로 떠나가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 '아흐튀흐와 기사들' 의 이야기 아냐?"
  아네샤 역시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바로 나에게 내가 그간 생각하고 있던 그것을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라니아는 자신이 들고 온 책의 책장을 하나씩 넘기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네샤와 나의 문답을 듣고 나서 나를 보더니, 조용히 미소를 띠며 나에게 이야기를 전하려 하였다.
  "해당 전설의 원류는 세니티아 성계인 만큼, 세니티아 성계에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고, 세니티아 출신인 여러분들 역시 아시는 분들 중 일부에 해당되겠지요. 혹시, 해당 전설에 등장한 이름들 중에 아는 이름들을 말씀드리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 당시에 알고 있던 해당 전설 속의 이름은 이러하였다 : 아흐튀흐, 메를랑, 베돠예, 카멜롯, 랑슬로, 고방, 귀네베흐(Guenevere, Güneverê), 가렛(Gareth, Garet), 가에리(Gaheries, Ga-ery), 메드로 그리고 아발롱. 그 이름을 듣자, 라니아는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말을 이어갔다.
  "대략, 제가 책 등에서 본 이름들과 같네요, 이름 표기 자체는 약간 다른 것 같지만요."
  그러면서 그가 나열한 이름들은 아래와 같았다 : 아흐튀흐, 메를랑, 브돠예, 카믈롯, 랑슬로, 고방, 귀네베흐, 가렛, 가에리, 므드로 그리고 아발롱. e 의 발음을 다르게 하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대략 비슷한 이름들이었다. 이외에 라니아는 모르간 (Morgane, Morgan) 정확히는 모르간 르 페(Morgane le Fay, Morgan l' Fe) 등의 여러 이름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해당 전설의 이야기 모음을 나름 열심히 읽어본 사람이지 않나 싶어 보였다.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도 전설을 이야기하실 때에는 인물의 이름이나 성격, 보검의 이름 등에 대해서는 직접 거론하시지는 않으셨어요,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하시고는 하셨지요. 그 이후, 저는 어른이 되고 나서 책을 도서관에서 보게 된 이래로, 책 이외에 전설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접해 보면서 할아버지께서 이야기하신 인물이 누구와 대비되는지를 직접 찾아보려 하였어요."
  그러면서 라니아가 언급한 이야기 속 인물들 및 무구들의 이름은 아래와 같았다 :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 책에서는 하지 않으신 이야기도 몇 있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하기 난감한 이야기들도 몇 있었어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그러면서 그는 린나 그리고 모니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식사를 다 한 린나와 모니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서 (친구) 어머니의 모습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아네샤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모니카에게 물었다.
  "모니카, 혹시 어머니께서 뭔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시기는 했었니?"
  "우응...... 그게......." 다소 애교스럽게 목소리를 내더니 모니카가 뭔가 기묘한 이야기가 그 전설 이야기 속에 있었다고 말하였고, 이어서 린나가 모니카의 말에 이어서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물음을 건넨 아네샤에게 설명해주려 하였다.
  "귀네베흐인가, 왕의 아내가 랑슬로랑 서로 사귀는 내용이 있대요!"
  아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이야기 책에서는 해당 이야기에서 '정실 왕비' 인 귀네베흐와 랑슬로가 서로 애정 행각을 가지는 것을 아름답고 로망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었지만, 친구들마다 해당 이야기를 보면서 다들 숙덕거리고는 했다, '저거 바람피는 것 아니야' 라고. 그러면서 처음에는 랑슬로를 욕하다가 그 다음에는 귀네베흐를 욕하다가 둘 다 욕하면서 비웃고는 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내린 결론이 무엇이냐면, 역시 둘 다 '나쁜 사람들' 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그렇게 표현했으니, 잘못 보면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져야 함이 옳고, 아흐튀흐는 바보라고 믿을 수도 있을 법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 아이들이라면. - 그래서 해당 이야기를 보는 아이들에게는 늘 주의를 주고는 하는데, '애정 행위도 올바르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라는 식으로 경고를 가한다.
  "그 때, 그랬잖아, 그에니브인지 그니에브인지,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둘 다 불태워 죽여야 한다고 했잖아. 그 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여기 애들만 없었어도......."
  그 이야기를 듣고서, 아네샤가 바로 나에게 과거 일을 떠올리며, 말을 건네자, 나는 바로 그런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때처럼 말하지 않아서였으며,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 당시에 자신이 어떠하였는지를 바로 말하지 않으려 하였던 것 같다.
  린나와 모니카는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바로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아닌 것이 아니라 린나의 어머니인 라니아가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바로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부터 했기 때문이며, 라니아는 린나, 모니카 등이 외견보다 훨씬 똑똑해서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결혼한 이후, 왕비가 기사와 연애를 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결혼은 '연애의 완성' 인 '가족' 을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지켜나가겠다는 소명 의식이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의 행위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가족' 그리고 '가족' 이 가져다 주는 행복, 더 나아가 행위를 이어간 이들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재앙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음을 말했다.
  "실제로 이야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이런저런 설이 있는데, 그 할아버지께서 하신 이야기, 그리고 제가 본 이야기에서는 귀네베흐의 애정 행위를 메드로가 비난하자, 귀네베흐는 메드로를 사생아로 비난하고, 이러한 모자 갈등이 왕국 내에 큰 혼란을 초래했으며, 더 나아가 메드로가 왕이 되자마자 귀네베흐 그리고 랑슬로의 신변이 위험해졌지요, 그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서 라니아는 왕은 여러 왕후를 비롯한 후비를 둘 수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나라' 라는 거대한 '가족' 을 무너뜨리는 일은 아니었으며, 아흐튀흐는 평생 귀네베흐만을 왕후로 삼고-루시언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의하면 2 명의 왕후를 둘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왕후로 삼으려 한 당사자가 거부했다-, 그 이상의 여자를 두는 일은 하지도 않았기에, 부하라는 사람이 정실 왕후와 바람을 피는 행위가 더더욱 용납되지 않았을 것으로 충분히 간주되고 남음이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루시언 할아버지께서는 그 랑슬로와 귀네베흐의 애정 행각에 대해, 메드로가 왕이 되고 난 시점에서는 더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었는데......."
  "그 시점에서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서 라니아는 랑슬로 그리고 귀네베흐라는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해 혹시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 듯이 말하고서, 이어서 그들의 운명에 관해 자신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바로 근처에 앉아 있던 나 그리고 아네샤에게 풀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린나와 모니카, 그리고 클라리스와 미라는 이미 들어봤을 것이라 밝히면서.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랑슬로와 귀네베흐는 메드로에 의해 추방당한 이후, 후환 제거의 명분으로 그들을 추격해 가는 메드로의 부하들을 피하기 위해 결국 서로 헤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헤어지면서 귀네베흐는 대륙의 어느 작은 반도에 자리잡은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으며, 여생을 보내면서 귀네베흐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랑슬로 그리고 아흐튀흐를 비롯한 기사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고 한다. 랑슬로는 그 행적이 불분명하다고 하지만, 아마도 각지를 떠돌며 어렵게 살다가 대륙 어느 지역에서 객사했을 것이란 이야기만 떠돌고 있다고.

  "그 이야기는 이 정도로만 할게요,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이야기 자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어요."
  이후, 라니아는 이야기 책을 덮고, 그 앞 표지가 위를 향하도록 책을 놓은 이후에 나와 아네샤를 보면서 어쩌다가 루시언 노인이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바다 건너 멀리 구조물이 보이지 않느냐고 말하더니, 이어서 그 전설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음을 밝혔다. 그러자, 라니아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셨군요." 라는 말을 우선 나와 아네샤에게 건네었다.
  "할아버지께서 그 이야기를 건네시는데,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저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낚시를 하시다가 낚시가 잘 안 된다고 하시더니만, 곁에 앉아있던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하셨었지요. 제가 보기에는 할아버지께서는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저런 사소한 일을 핑계거리로 만드시고 계신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하지만 라니아는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하고서, 이전보다 조금 더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선 그 구조물에 대해 바로 전날, 그러니까 어제지요, 그 때에 제가 들은 이야기를 소개해 보도록 할게요."
  그리고서 라니아는 요정으로부터 들었다는 서쪽 바다 건너편의 구조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바다 건너 먼 곳까지 여행했다는 어느 요정 아이로부터 들은 이야기로서, 그 이야기에 의하면 요정은 서쪽 바다 멀리 보이는 이상한 물체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가 그 실체를 파악하고 급히 돌아왔으며, 그 곳은 너무나 위험한 곳이고, 수많은 기계 병기들이 거점 곳곳마다 자리잡고 있으며, 비행형 병기들이 거점들마다 격납되어 있으며 출격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구조물은 사실은 기계 병기들이 집결한 군사 기지의 일종이었던 것이라고-그래서 라니아는 이후로 그 구조물을 군사 기지로 칭했으며, 나에게도 기지로 칭해줄 것을 요구했다-,
  활주로의 끝에는 거대한 병기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병기가 향하는 곳은 바다 건너편 먼 곳으로 그 너머로는 구름이 짙게 피어올랐고, 그 색 역시 불길하게 어두웠다고 한다, 어떻게 보더라도 너무도 위험한 곳이었음이 분명했으며, 그 요정 역시 어두운 색을 띠며 일어난 구름을 보며, 위험을 직감해 그 너머로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마력을 가졌다는 점 이외에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었을 요정에게는 군사 기지는 물론이고, 그 불길하기 이를데 없는 너머로 나아가는 것은 어쩌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 행위였을 것이다.
  "그 아이가 기지 너머의 구름을 발견하고, 그 구름의 바로 앞에서 돌아갈 무렵, 활주로의 한 곳에서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고 하네요, 온 몸에 검푸른 갑주를 두르고, 검푸른 갑주에서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이로, 손에는 날 색깔부터 새카만 검을 들고 있었으며, 여기에 그 날의 심지가 핏빛을 띠고 있으며, 날에서 핏방울 같은 것이 떨어지고 있어서 그 외견만 보더라도 흉악한 존재일 것임이 느껴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 험악한 외관의 기사는 모습을 드러낸 이후, 잠시 활주로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가, 다시 그 끝 쪽으로 나아간 이후에 원형 마법진을 통해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해요."
  학교가 위치한 그 서쪽 너머의 나무 위에서 집을 짓고 산다는 요정 소녀에게서 들은 이야기, 대장간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그 소녀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한 이후, 라니아는 그 다음으로 루시언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루시언 할아버지께서는 그 구조물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실 거예요, 세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는 딱히 관심을 가지시지는 않으셨던 분이셨으니. 다만, 구조물을 보시면서 무언가 느끼신 바가 있으셨던 모양으로 가끔씩 구조물을 보시면서 늘 혼잣말을 하시고는 하셨다네요."
  "무슨 혼잣말을 하셨던가요." 이에 아네샤가 바로 그에 대해 묻자, 그 답으로써 라니아는 루시언이 바다 건너편 먼 곳의 구조물을 바라보면서 했던 혼잣말에 대해 언급하고서, 그에 관련된 말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려 하였다 :
  "할아버지께서는 전설 속의 기사인 '랑슬로' 를 언급하시면서 여전히 귀네베흐라는 여인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말씀하셨지요. 아무래도 할아버지께서는 그 기지에 랑슬로가 있으며, 거기서 랑슬로가 귀네베흐를 부활시키기 위한 사악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보였어요."
  전설에 의하면 랑슬로는 귀네베흐와 결별한 이후, 그의 소식을 더 듣지는 못했으며, 귀네베흐의 이후 생사 여부, 그리고 그가 자신을 이후에도 생각하고 있었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인은 만약 랑슬로가 기지에서 살아 있다면, 그는 대륙 어딘가에서 객사한 이후, 누군가에 의해 부활해서 그 여파로 흉악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그가 귀네베흐의 부활을 기도하고 있다면, 이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귀네베흐의 부활을 바라고 있지만 실은 어떤 존재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에 대해 이어 언급하고 있었다.
  "...... 그러면서 아흐튀흐 대왕이 자신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대요, 랑슬로는 실은 매우 불행한 사람이며, 만약에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의 영혼을 구제해야 한다고."
  이후, 클라리스가 라니아를 대신해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루시언 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흐튀흐는 귀네베흐가 자신이 아닌 랑슬로를 택했고, 그로 인해 랑슬로는 귀네베흐와 더불어 자신을 버리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전혀 미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그에 대해 언급하고서, 메드로에 대한 왕의 생각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으리라 말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구조물을 바라보시며 늘 수심에 잠겨 계셨던 것은 그런 아흐튀흐 왕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누군가가 그 기지에 머무르고 있을 랑슬로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원은 고사하고 파멸 이외의 어떠한 미래도 보이지 않는 랑슬로에 대해 얼마나 그가 안타까워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시고 계셨기에 그러하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클라리스는 웬지 모르게 루시언 노인은 마치 아흐튀흐 왕의 심정을 마치 자신의 심정인 양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까지는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후, 이번에는 미라가 그 기지로는 자신도 나아갈 생각이 있으며, 거기서 하려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밝혔다.
  "거기서 할 일은 그 기지에 자리잡은 세력을 일소하는 것이 우선 목표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 요정 아이가 발견한 기사를 처단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가 전설의 기사 '랑슬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일 거예요, 억지로 부활해 살아있는 시신이 되면서 뒤틀려 버린 그를 구원하는 길은 결국에는 그에게 죽음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안식을 전해주는 것,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 기사를 요정이 그 활주로라는 곳에서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 곳이 근거지는 아니겠죠?"
  그 때, 린나가 건너편, 그 우측에 앉은 미라에게 기사의 소재지에 대해 활주로 혹은 기지 일대는 아닐 것 같다고 물음을 건네었고, 그 물음에 미라는 당연히 아닐 것이라 답을 한 이후에 그의 소재지에 대해 바로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아무래도, 요정이 두려워서 가지 못한 구름 안쪽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 안에 무언가 있고, 거기서 모종의 나쁜 일을 하고 있겠지, 루시언 할아버지께서 언급하신 행위이든 뭐든."
  그리고서 미라는 그가 루시언 노인이 말한 대로, 누군가를 위한 부활의 의식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어딘가에서 사람들을 끌어와 그들을 죽이는 행위를 거듭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 모종의 존재가 있을 것임은 거의 사실이라고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서, 미라는 건너편에 앉은 린나 그리고 모니카에게 시선을 향하면서 그들을 향해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르는 바다 건너편 어딘가에서 뭔가 나쁜 짓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그렇다면, 그 검은 기사는 어디에서 사람을 끌어와서 나쁜 짓을 한다는 거예요? 우리 마을도 그렇고, 이웃에서도 그것 때문에 잡힌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요."
  미라가 린나 그리고 모니카에게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바다 건너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리의 말을 건네자, 바로 모니카가 미라에게 물었다, 마을에서는 모종의 악행으로 인해 잡힌 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 그러자 미라에게서 "좋은 질문이야." 라는 말이 나왔고, 이어서 그에게 밝게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마침 그것에 대해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려 하였어."
  그리고서 미라는 건너편에 앉은 아이들을 향해 밝게 목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만약, 그 기사가 이 지역 일대의 사람들을 끌어와서 나쁜 짓을 하려 했다면, 분명 이 마을 사람들도 알게 됐을 거야. 하지만 이 곳은 물론, 세상의 어디에도 모종의 사건에 관한 실종자가 생겼다거나 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고 있잖아, 그렇지?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의 소식이라도 결국에는 여기에 닿게 되니까. 하지만 그러한 소식이 닿지 않았다는 것은, 이 지역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그 나쁜 기사가 희생자들을 끌어오려 하고 있다고 여기어도 괜찮겠지?"
  그리고서 그는 곧바로, 아이들 뿐만이 아닌 나와 아네샤 그리고 라니아에게도 시선을 향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
  "제 생각에는요, 그들이 마법이라는 것을 이용하고 있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마법의 개념이 존재하고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어요, 만약 루시언 할아버지 말대로, 그 기사가 랑슬로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그 수단이 마법이든 아니든 간에, 그 기사는 우리가 모르는 세상에서 희생자들을 끌어오려 하고 있을 거예요, 이 세니티아 행성권이 아닌 다른 행성계, 예를 들면 여기서 수만 광년 떨어진 모종의 장소에서 모종의 수단으로 사람들을 끌어오려 하고 있을 거예요."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거예요?"
  그러자 모니카가 놀라면서 그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그의 바로 건너편에 앉은 클라리스가 미라를 대신해 답을 하려 하였다. 우선 그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서, 너무 놀라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다소 어두워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의 머리에는 뇌가 있다고 린나는 엄마께 배웠죠, 학교에서도 가르침을 받았을 거예요. 그 뇌를....... 그 기지와 기지 건너편 어딘가의 어떤 이들은 그 두뇌를 기계에 이식하려 하고 있어요,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은 '인공 지능(Artificin Aryasima, Intelligenza Artificiale)' 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그들의 자유 행동은 사람만큼 자유롭지 못하고 한계가 커요, 그래서 기계의 성능에 사람의 두뇌를 이용하려는 나쁜 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병기들을 만들어서 침략하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이어 린나와 모니카가 놀라면서 건네는 물음-둘 모두 얼마나 놀랐던지 거의 동시에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클라리스는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이어서 이 곳 뿐만이 아닌 많은 성계들, 세니티아 성계권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행성계들의 사람들과 건물들, 동물, 식물들을 해칠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을 멈추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야." 이어서 미라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고서, 반드시 그런 음모를 더 이어가지 못하게 혼을 내 주겠다고 자신의 할 일에 대해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린나와 모니카에게 이어 말했다.
  "그들이 포악하다고 해도, 그들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우리가 그들을 박살내고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할 것이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얘들아, 언니들 믿고, 기다려줘야 해요, 알았지?"



  식사를 끝마치고, 항구의 한 곳에 위치한 대장간으로 가 볼 것을 권하는 라니아의 말에 따라, 그 대장간이 있다는 곳을 항구 구역으로 나아가 찾게 되었다. 그 때에는 나와 아네샤 뿐만이 아니라, 클라리스와 미라 그리고 린나와 모니카까지 따라 나서고 있었다. 린나와 모니카는 엄마가 나가도 된다고 말해서 클라리스와 미라를 따라 나서게 된 것으로 라니아가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를 전적으로 믿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대장간 위치를 아는 클라리스와 미라가 앞장 서고, 나와 아네샤가 그 뒤를 따라 나섰으며, 린나 그리고 모니카가 클라리스, 미라의 옆에서 동행하고 있었다.
  대장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항구 구역의 거리 서쪽에 있으며, 거리 입구 쪽에 자리잡은 폐 창고 건너편 건물이라 하였다. 폐 창고는 중앙 대로의 서쪽 부근에 있었으며, 얼핏 봐도 상당히 큰 건물이었다, 건물 너비만 하더라도 대략 50 메타르 가량은 될 정도. 그런 건물의 건너편에 자리잡은 작은 집이 바로 그가 클라리스가 언급한 그 대장간이었다.
  낡은 가게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대장간은 개방된 공간으로서, 빈 진열대 건너편, 건물 내부의 오른쪽 구석에 작은 아궁이가 자리잡고 있었고, 왼편의 탁자 위에는 용접기의 토치 부분과 모루, 망치가 놓여 있었으며, 그 뒤편의 바닥에는 토치와 선으로 연결된 용접기의 본체, 그리고 본체 가운데 부분에 톱날이 달린 커다란 절단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 안쪽에는 모니카와 비슷하게 검은 고양이 귀를 가진-그리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몸의 뒤쪽에 검은 꼬리가 달려 있었을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는 고양이 소녀가 자리잡고 있었으니, 그가 대장간의 주인이었을 것이다.
  목 근처 아래가 하얀 리본에 묶여 내려간 검은 머리카락과 검붉은 눈동자를 드러내는 고양이 소녀, 맨 가슴에 검은 붕대를 두르고, 그 위에 목깃 부분이 깊게 파여 흉부를 그대로 노출하는 하얀 러닝 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그 아래로는 허벅지는 물론, 허리의 작은 일부까지 드러내는 검은색의 아주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잔근육이 어깨에 붙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대장간 내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그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노출이 많은 옷에 상당히 크게 부푼 가슴을 붕대로만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 활동적이다 못해 강한 열정을 발산하는 듯한 인상이 있었으며, 그럼에도 고양이 귀를 가진 그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발랄한 소녀의 모습이라 묘한 매력을 전해주고 있었다.
  "어서 오라옹! 혹시 클라리스하고 미라 아니옹? 너무 보고 싶었다옹!"
  먼저 다가온 클라리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온 미라를 보자마자 바로 귀를 쫑긋 세우며, 반가움을 표하는 고양이 소녀, 좌우로 나란히 자신의 앞으로 오는 클라리스와 미라를 맞이해 주는 앳되면서 활발하기 이를데 없는 그 목소리에 클라리스가 환하게 미소를 띠며,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그런 고양이 소녀의 인사에 답례를 하였다.
  "반가워, 한 동안 집 근처만 돌아다니고 있다 보니, 그만 잘 나오지 못했지 뭐니?"
  고양이 소녀의 격한 반가움에 바로 클라리스가 이전과는 다른 다소 밝은 목소리로 답례를 했고, 이어서 미라 역시 그런 그를 보면서 자신도 한 동안 다른 곳에 있어서 잘 가 보지를 못했다고 말하고서, 바로 고양이 소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 그 동안 일은 잘 되고 있었어?"
  "그럭저럭 했다옹~." 그러자 바로 고양이 소녀는 밝게 목소리를 내며 답했다. 그리고서 바로 클라리스, 미라에게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고 물었고, 이에 미라가 대장간을 마을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고 말한 이후에 "그래? 누구냐옹?" 이라고 고양이 소녀가 묻자, 바로 자신을 따라 나선 나와 아네샤를 소개하고서, 바로 소개를 해 주었다.
  "세니티아 성계에서 오신 분들이야, 여기 앞장 서시는 분의 이름은 라르나, 그리고 뒤따라 오시는 분은 아네샤......."
  "바람의 정령들인가옹? 소문으로 정령들의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무척 신기하다옹~."
  그 때, 고양이 소녀는 나와 아네샤-당시 나는 왼편에, 아네샤는 오른편에 서 있었다-를 보더니, 이전 때처럼 귀를 쫑긋 세우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들이 무척 신기하게 보이고 있었던 것은 틀림 없어 보였다. 이후, 그는 귀를 세우고 있으면서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우선 "이리 오라옹~." 이라 말한 이후에 그의 바로 앞에 서 있던 클라리스가 왼편으로 비켜주면서 나와 아네샤가 그의 바로 앞에 이르자, 나와 아네샤를 한 번씩 바라보면서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내 소개부터 시작해 보겠다옹, 나는 이 남쪽 거리에서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는 고양이다옹, 이름은 리에타(Lieta) 라고 한다옹. 무구나 금속 제품 만들 일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오라옹~ 아, 철 같은 것 말고도 각종 마법 물질이나 금속이나 결정 같은 것도 다 취급하니까, 걱정 말고 찾아오라옹~."
  그는 자신의 이름을 리에타(Lieta) 로 소개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다 취급해 주는 대장장이이며, 돈은 확실히 받아두는 만큼, 돈 계산은 확실히 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바로 클라리스, 그리고 그가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보검을 발견하더니, 바로 나와 아네샤에게 환하게 미소를 띠며 물었다.
  "혹시, 클라리스가 허리에 차고 있는 보검에 대해 알고 싶냐옹?"
  "그 물건, 이전에 클라리스 씨가 할아버지의 보검이라고 소개한 물건......."
  그러자 리에타는 눈을 감고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그렇게 소개를 했냐옹?" 이라고 말하고서, 일단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클라리스가 일행에게 전한 이야기에 대해 언급을 하였다. 그러다가 잠깐 알리고 싶은 바가 있다고 말하면서 바로 나에게 이렇게 당부를 하였다.
  "경어 같은 거, 쓰지 마라옹~, 원래 나, 그런 거 별로 좋아하는 거 아니라옹~. 반말로 해도, 나쁜 생각 아니면 잘 받아주니까, 어지간하면 나와 대화할 때에는 평어체로 하라옹~."
  이에 대해 클라리스가 말하기를, 본래 리에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경어를 쓰거나 예의 갖추거나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으며, 평소에도 아무한테나 평어체로 대화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다, 고양이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일부러 '야옹' 소리를 내기도 한다고.
  "그 아이는 가끔 너무 고양이를 의식하기도 해요." 이에 미라가 바로 밝게 웃으면서 그런 클라리스의 말을 거들고 있었다.

  이후, 리에타의 이야기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루시언 노인이 인근의 무덤가 유적지를 정비하는 도중에 어느 무덤 자리에 튀어나온 나무 관을 발견해서 관에 들은 유해를 수습해서 다시 묻어주려 했었지만, 관에는 유해를 대신해 두 자리의 검과 하나의 창날만이 들어 있었다고 하였다. 이들 모두 심하게 녹이 슬어 있어서 무기의 가치는 거의 없다시피한 물건이었지만 버리기에 아까운 물건이라 집 한 곳에 놓아두고 있었는데, 그것을 클라리스가 발견해서 자기가 쓸만한 무기로 만들어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물으며 가져가려 하자, 바로 허락을 해 주었으니, 그렇게 클라리스는 낡은 무기들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낡기도 낡았지만, 쇠의 녹을 직접 만지면 여러모로 안 좋았던 만큼, 클라리스는 이 무구들을 리에타에게 맡겨 한 자루 검으로 만들어 달라 부탁했고, 그러면서 마력의 기운을 액화시킨 시약을 구해 와서 마력의 기운을 더해주기도 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고, 물론 그것은 검의 강도를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리에타는 나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미 그는 어딘가에서 미트릴로 (Mitrilo) 라는 은 계열 광석을 구해 온 상태였으며, 두 자리 검과 창날을 녹여 제련하는 과정에서 미트릴로 광석 역시 녹여서 쇳물에 섞은 합금으로 한 자루 검의 날을 형성하고, 동네 마녀에게 요청해 빛의 힘을 부여 받은 시약을 마지막 제련 과정에서 코팅의 목적으로써 형성된 날 위에 부어 날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결정 조각을 깎고 다듬어 검의 자루를 만들어서 날을 자루에 붙이니, 그렇게 검이 완성된 것이었다.
  세 자루 칼날의 금속이 재료로써 들어갔지만 도검과 날을 구성하는 것은 녹이 슨 금속들이었던 만큼, 재료로 쓰인 날들은 많은 불순물들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재처리 과정에서 얻은 쇳물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로 날을 길게 만드는 대신에 날의 폭을 희생해 가느다란 검이 되었다고. 이외에 자루를 깎다 말고 남은 결정 중 일부는 작게 깎아낸 이후에 색을 들여서 검의 자루와 날이 만나는 부분, 그리고 자루 끝을 꾸미는 장식용 보석으로 삼았다고 한다.
  "내가 가만히 봤는데, 클라리스가 가져온 물건들 모두 본래는 보검이라든지, 성검으로 칭해졌을 물건이었을 것 같았다옹, 그래서인지 클라리스는 제검에 신경을 써 달라고 특별히 당부를 했고, 나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해서 검의 날을 만드는 데에 특별히 신경을 써 주고, 자루 부분을 꾸미는 데에도 나름 공을 들였다옹."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리에타는 대장장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공을 들여 만든 물건이라 자신도 근래의 삶 속에서 만든 것들 중에서는 가장 공 들여 만든 것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밝혔다.

  "공정에 신경을 써 달라 클라리스가 세세하게 요청을 하기는 했지만, 공정 자체는 시약에 빛 기운을 가하기 위해 뛰어다닌 시간이 길어서 그렇지, 보검이라고 해도 결국 평범한 도검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옹, 물품들을 다시 녹여 도검의 날을 다시 생성하는 것 자체는 이미 수십 년을 넘게 해 온 일이라옹, 이제는 익숙하다옹~."
  그리고서 미라가 이야기를 이어가니, 클라리스가 리에타에게 의지해서 다시 만든 검이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인 루시언 노인이 가져다 준 낡은 보검에 의해 탄생한 물건으로 그로부터 도검들을 물려 받지 않았다면, 이들이 새로운 검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사실상 루시언 노인으로부터 물려 받은 보검이라 간주하는 면이 있음을 밝혔다, 리에타가 클라리스의 보검이 루시언 노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아, 맞다, 미라의 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냐옹?"
  그렇게 한창 클라리스가 소지했던 검에 대해 알려주더니, 리에타는 바로 미라의 검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겠다고 말하고서 귀를 몇 번 쫑긋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감이 왔다고 말한 이후에 나와 아네샤에 대해, 클라리스에게 있어서 하루 정도의 인연은 아닐 것 같다고 말해서 또 알려주겠음을 밝히더니, 이어서 미라에게 왼쪽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꺼내줄 것을 권했다. 이에 미라는 허리 왼쪽에 매달고 있던 검을 꺼내려 하였다, 자루부터 날 부분까지 전형적인 소검이었던 물건, 그 물건을 가만히 보더니, 리에타가 말을 이어갔다.
  "이 자루는 본래 장검의 자루였고, 어선에서 우연히 발견한 물건이다옹, 자루만 있었고, 날은 없었는데, 녹도 막 슬어 있었다옹."
  하지만 자루는 가드 부분이 훼손되었는지 아예 없었고, 너무 심하게 녹이 슬어 있어서 재사용이 불가능했기에 자루를 다시 녹여 쇳물로 만들고, 클라리스의 보검을 제조하다 남은 미트릴로 광석 중 일부를 녹여서 자루를 재형성한 후에 결정을 녹인 액체로 코팅을 하는 방식으로 자루를 다시 만들었다. 가드는 재형성 도중에 다시 만들었으며, 클라리스의 검과 같은 형태의 가드를 갖게 됐다. 이 후, 리에타는 자루 길이에 맞춰 바람의 힘을 가진 결정을 가공해서 소검의 날 형태를 만들고 자루에 결합해서 검을 완성했음을 밝히고서, 검에는 모종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검을 받은 이후, 미라가 부여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미라도 요정이고, 마법을 부리고, 날에 마법을 가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옹~."
  그 이후, 리에타가 검의 이름은 검을 받은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가 직접 붙였다고 말하자마자 클라리스가 보검의 하얗게 빛나는 날, 자루와 가까운 부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검 이름, 그리고 미라의 검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 하였다.
  "제 검의 이름은 '키아란타(Chiaranta, Kiaranta)', 그리고 미라의 검 이름은 '발리자르다(Balisarda, Balizarda)' 예요, 제 검은 제가 직접 명명했고, 미라의 검은 라니아 아주머니께서 이름을 붙이셨어요. 라니아 아주머니께서는 각종 전설이나 옛날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으셔서 검을 보시면서 그런 쪽의 이야기에서 이름을 가져오셨을 것 같아요."
  클라리스가 보여준 부분에는 수려한 필체로 'Chiaranta'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클라리스가 직접 새겼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검을 다시 허리 왼쪽에 매달린 자루에 꽂아 넣으면서 미라를 자신의 바로 뒤로 불러서는 검의 자루를 보여달라 청하니, 미라 역시 그렇게 해서 나와 아네샤에게 검의 자루를 보여주게 되었다. 미라는 검의 이름을 자루에 새겼는데, 필기체로 'Balisarda'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그 검의 이름을 바로 알려주고 있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아주머니께서 이름을 붙이신 것이라 참 소중한 물건이에요."
  그렇게 자루를 보여주고서 미라는 소검을 다시 허리 왼쪽의 자루에 꽂아 넣었다.

  그렇게 한참 도검과 그 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이후, 미라가 뒤편에서 린나 그리고 모니카와 놀아주고 있을 즈음, 나와 아네샤는 우측으로 물러나 있었다. 앞쪽에는 내가, 그 뒤에 아네샤가 서 있었으니, 클라리스가 리에타와 직접 대면하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학교 서쪽 너머 나무 위에 사는 요정과 만난 적 있어? 하늘색 옷을 입은 초록색 머리카락의 그 요정 아이, 실은 라니아 아주머니께서 요정이 대장간 주변을 자주 오간다고 해서 왔는데."
  "봤다옹, 이번에도 이 집에 놀러 왔었는데, 금방 다른 곳으로 갔다옹~ 얼마 전에 남서쪽 바다 먼 곳에 무슨 구조물 하나가 생겼는데, 그걸 보러 간 것 갔다옹~."
  그리고서 리에타는 항구 서쪽의 폐 창고 부근에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지붕 위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잘 살펴 보라고 조언을 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서 리에타는 바로 클라리스에게 요정 아이를 왜 찾으려 하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클라리스가 라니아로부터 그가 그 일대의 구조물이 위치한 곳을 방문했고, 관련된 이야기를 자신에게 해 주었다고 말했음을 밝힌 이후에 그로부터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를 바라고 있음을 말했다.
  "알았다옹.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한테도 그것에 대해 얘기해 달라옹~."
  리에타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그간 불길하기 이를데 없는 남서쪽 먼 바다의 구조물에 대해 알고 싶어하기는 했었던 모양. 그 부탁을 듣고서 클라리스는 린나, 모니카와 놀아주고 있던-그 동안 두 어린 아이 뛰어다니고 있었으며, 린나는 간혹 고양이처럼 뛰어다니기도 했다- 미라를 불러 같이 가자고 청하고, 앞장서서 서쪽 가장자리의 창고를 찾아 나아가려 하였다. 미라는 클라리스의 좌측 곁에서 동행하고 클라리스의 좌측 곁에 린나가, 미라의 우측 곁에 모니카가 클라리스, 미라의 손을 잡으며 같이 나아갔다. 나와 아네샤는 그런 4 사람의 뒤를 따라 나서며, 그들의 뒤를 따라 도시의 남쪽 해안 서쪽에 자리잡은 폐 창고를 향해 나아갔다.

  서쪽의 폐 창고, 대장간 건너편의 중앙 폐 창고와 거의 같은 크기의 건물로서, 정문은 해안을 등지는 방향에 자리잡고 있었다, 상당히 큰 대문이었다. 폐 창고 주변 일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리에타가 말한 대로, 어떤 작은 여자아이가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빛나는 한 쌍의 금색 날개가 등에 달려 있었으니, 이를 통해 그가 요정임을 알 수 있었으며, 클라리스가 말한 대로, 하늘색 옷과 초록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 소녀가 이전에 군사 기지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온 그 요정일 것임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소매가 어깨만 덮고 있으며, 짧은 치마의 단이 넓게 펼쳐진 하늘색 원피스 드레스를 갖춰 입은 이로서, 초록색 머리카락은 머리 위쪽의 한 부분을 리본으로 묶어 내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 지붕을 짚은 채, 먼 저편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금색 날개의 소녀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무척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걱정이 무척 많음을 알 수 있었으며, 먼 저편을 바라보며 그런 걱정 어린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지라, 그 모습을 보면서 먼 저편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걱정 거리를 잊고자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 바로 여길 수 있었다.
  "저기 저 아이가 그 요정 아이인가 봐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네샤가 클라리스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클라리스는 가만히 폐 창고의 지붕 위, 그리고 그 위에 올라 앉은 요정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그 인상을 확인하고서 바로 그에게 "맞아요, 저 아이예요." 라고 화답을 하였다.
  "올라가서 그를 만나볼까요, 지금이라도 날아서 갈 수 있는데."
  그 때, 린나가 클라리스 앞으로 다가가서는 자기는 지붕 위로 기어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였고, 이어서 모니카가 "보세요!!!" 라고 외치더니, 벽을 타고 기어오르려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미라가 당황하면서 바로 모니카에게 다가가,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어!" 라고 외치며 그를 창고 외벽에서 끌어내렸고, 이어서 클라리스가 린나 그리고 모니카의 모습을 둘러보려 하면서 요정 소녀가 지붕 아래로 내려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 무렵, 아래에서의 소란을 들었는지, 아니면 아래에서 들려온 클라리스, 미라의 목소리 때문인지, 요정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사뿐히 뛰어오르며 날갯짓을 시작하고, 이어서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정문 부근에 모여 있던 일행을 향해 날아 내려오려 하였다. 잠시 후, 요정은 일행이 모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 뒤쪽으로 나아갔고, 그 움직임을 발견하고 뒤쪽을 향해 돌아섰을 때, 나의 눈앞으로 요정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키가 린나보다 약간 더 큰 정도로서, 어린 소녀인 것으로 보이는 요정은 다소 높은 지점에 머무른 채로 두 팔을 양 옆으로 뻗고, 두 다리를 모은 채, 일행을 바라보며 서 있으려 하였다. 아이는 조용히 미소를 띠고 있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세니티아에서 오신 분들이시군요.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 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 분들께 내려가려 했었어요."
  그러다가 미라가 요정의 우측 앞에 이르자마자 그를 보더니, "보고 싶었어요." 라고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리고 클라리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바로 그 말에 반응한 듯이 클라리스가 요정의 우측, 미라의 뒤쪽으로 뛰어오면서 요정에게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그러자 요정은 두 사람을 '요정의 기사님들' 이라 칭하면서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것임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요정의 기사들', 요정이 클라리스와 미라를 지칭하는 호칭일 것이다. 요정이면서 전사로서 활약하고 있을 그들에 대한 경외의 의미를 담은 듯한 그 호칭을 듣자마자 내가 바로 물었다.
  "요정의 기사라는 호칭은 이 마을에서는 일반적인가요?"
  "아니오, 그 아이만의 호칭이에요." 이에 미라는 바로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하였다. 모르기는 해도, 요정이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를 '기사' 로 칭할만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하고 클라리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
  "그럼요." 이후, 미라가 건네는 물음에 요정은 당연하다는 의미의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혹시 남서쪽 바다의 군사 기지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미라가 그 물음에 바로 그렇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서 미라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요정이 바로 그 물음에 대해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라니아 아줌마를 만났어요, 라니아 아줌마께서 저에게 와 달라 요청을 하셨는데, 그러면서 그 기지에서 있었던 일을 밝혀 달라 하셨고, 이야기 드리는 것을 마친 이후에는 제가 두 분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시고서, 가능한 빨리 두 분을 꼭 만나야 한다고 당부까지 하셨었어요."
  "그랬구나." 그러자 미라가 바로 살짝 놀란 듯이 말하고서, 이어서 그 역시 라니아로부터 들은 부탁을 밝혔다 :
  "라니아 아줌마, 그러니까 린나 엄마께서 군사 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서는 네가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테니, 만나 봐야 할 것이라 하셨거든. 그러면서 처음에는 리에타 알지? 그 대장장이 언니가 있는 곳 근처에 있을 것이라 그 분께서 말씀하셔서 너를 만나려고 그 언니를 만나 보기도 했어."
  그리고서 그 군사 기지에서 있었던 일을 보다 자세히 알려달라 당부하였다. 그 와중에 일행은 그들로부터 요정의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리피(Lify) 가 그 이름이었다. 리피는 그의 왼편에 서 있었던 나를 비롯한 바람의 정령들은 물론, 자신과 클라리스도 그 군사 기지로 가려 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그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흉을 제거함으로써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고 그 사유를 말했다. 그 때, 나와 미라 사이를 끼어들며 린나가 밝게 목소리를 내며, "나도! 나도 갈 거야!!!" 라고 외치자, 리피가 당황하면서 물었다.
  "린나 아가씨, 정말 같이 가시려고요!?" 그러자 미라가 바로 린나를 말리면서 놀러가는 곳이 아니니, 함부로 가려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였다. 이에 리피는 조용히, 그리고 환하게 미소를 띠면서 린나 그리고 모니카에 대해 한 마디 말을 건네고 있었다.
  "무척 활발한 아가씨이세요, 변함 없이. 라니아 아줌마께서도 어렸을 적에는 그랬다고 하시던데."
  이후, 리피는 자신을 향해 모인 6 명을 향해 자신이 지난 날, 군사 기지가 있다는 그 먼 바다 일대, 그리고 그 곳에 나아갔을 때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제가 그 바다 건너편으로 나아간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 먼 바다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면서 작은 섬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면서 그 섬에 있는 것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했어요. 섬에 있을만한 것들, 야자라든지, 각종 과일들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요."

  리피는 바다 건너편에 있는 것이 무인도일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섬에 있는 야자를 비롯한 각종 과일들을 가져오면 마을에 있는 친구 요정들과 고양이 소녀들이 무척 좋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섬에 있는 각종 유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하지만 잔잔히 파도가 너울거리는 바다 한 가운데의 작은 섬과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기대하며 날갯짓을 했던 요정의 눈앞에 다가온 광경은 그런 기대와는 너무도 어긋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 너무도 무서운 것들이 바다 아래에 잠들어 있었어요, 기계 물고기들과 무서운 기계 바다뱀들이 바닷 속에 있었어요, 그리고 하늘 위에는 기계 새들이 떠돌고 있었지요. 그 너머에는 섬이 아니라 거대한 군사 기지가 있었고, 외벽에는 수많은 포들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어요."

  다행히도 그는 높이 날아다니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의 눈에 자신의 존재가 감지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무사히 '섬' 으로 보였던 기지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다만, 기지 내부 쪽으로 나아가면서도 혹시나 '기계 새' 들 그리고 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자신을 혹시 공격할까봐 긴장하면서 나아가야만 했다고 하였다.

  "기지 내부에는 중앙에 새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활주로가 있고, 길 옆으로 여러 시설들이 있었고, 시설들과 함께 길 위로 떠오르지 않은 여러 기계 새들이 잠들어 있었어요. 이 기계 새들이 깨어나서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기지의 크기에 비해 많은 새들이 잠들어 있었어요. 그들이 깨어나면, 기지를 떠나는 그 많은 새들에 의해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거예요. 그 '기계 새' 들, 기계로 만들어진 무서운 새들이 깨어나게 된다면, 그들은 육지를 찾아 육지의 모든 생물들을 죽이려 할 거예요, 어쩌면 아와레, 더 나아가 에즈리스(Ezris) 역시 무사하지 못하겠지요, 그 기계 괴물들이 요정들, 고양이 정령들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을 죽이고 불태우는 무서운 일을 일으킬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 무서운 괴물들이 마을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클라리스 그리고 내가 나섰으면 한다는 것이 네 바람인 것이지?"
  "맞아요." 이후, 미라가 건네는 물음에 리피가 차분히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활주로의 끝에는 거대한 기계 괴물 새(Maŝinroko, Tr'rok) 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너머는 어두운 색을 띠는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서 그 너머를 볼 수는 없었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 이후, 리피의 왼편에 나와 함께 있었던 아네샤가 리피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라니아 씨께서 리피 씨에 대해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리피 씨께서 기지에서 흉악한 갑주를 갖춰 입은 기사를 만나셨다고 하셨어요. 그 당시의 일에 대해 말씀드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에 리피는 "아아, 라니아 아주머니를 만나셨군요." 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예를 갖추는 목소리를 내며, 라니아가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자신이 기지 부근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가 직접 전하지 않고, 나를 통해 들었으면 하기를 원하는 바도 있었을 것인 만큼,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아마도 라니아 아주머니께서는 제가 구름 일대에 있다가 돌아갈 무렵에 기사를 만났다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새들의 활주로를 지나가서 구름 일대를 둘러보고 구름 너머를 보려 하다가 그 너머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려 할 즈음에 어느새 활주로 위에 기사가 나타나 있었어요."
  "그 기사는 어떤 모습을 갖췄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이후, 클라리스가 건네는 물음에 리피가 바로 답했다 :
  "검푸른색을 띠는 흉악한 느낌을 주는 갑주를 갖춰 입고 있었고, 손에는 검은 바탕에 핏빛을 띠는 무늬가 그려진 검을 들고 있었어요. 검은색을 띠는 날이 핏빛을 띠고 있었고, 또 그 날에서부터 핏방울이 흘러 내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활주로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는 활주로의 모든 길목을 지나다니며 주변 일대를 계속 둘러보다가 다시 그 커다란 기계 괴물 새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고, 그리고 핏빛 원형 마법진을 이용해 어딘가로 전이해서 사라졌지요. 그 이후에도 저는 기사가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아서 한 동안 지켜보고 있었지만, 기사는 제가 돌아갈 때까지 다시 나타나거나 하지 않았어요."
  기사가 다시 나타나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리피는 더 있으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 가능한 높이로, 그리고 빨리 비행하면서 아와레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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