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미르타 혹은 미르사가 슬픈 사연을 안고 세상을 떠나갔을 처자들을 악령들로 변질시키는 사악한 행적을 가진 존재였음에도 미라가 그 이름을 이어받고, 그를 잊지 않으려 한 것에 대해, 사악하고 추악한 존재로 악명 높은 존재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것. 그러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은인과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미라는 어쩌다가 그런 사령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 그러자 리에타는 잠시 주변을 둘러 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혹시 미라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며, 미라가 있는 곳에서 직접 해 주면 안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추측을 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미라가 주변에 보이지 않음을 알고 슬슬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말하려 할 즈음, 갑자기 뒤쪽에서 미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리에타, 일거리가 들어왔다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
"주변에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자냐옹!!! 어떻게 여기로 소리 없이 올 수 있냐옹!?"
그러자 리에타는 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평상시의 말투로 소리치며 자신의 바로 뒤에 있던 미라를 향해 뛰쳐 나갔다. 그러자 미라는 리에타에게 일거리 들어왔으니까, 빨리 공방으로 가라고 말했고, 이에 리에타는 "알겠다옹~ 바로 가겠다옹~." 이라 말하고서 곧바로 공방 쪽으로 다급히 발걸음을 옮기었고, 미라가 그런 그를 따라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네샤와 함께 리에타의 공방으로 그들을 따라 가려 하였으니, 그들이 무엇을 만들려 하였는지 알고 싶어하였기 때문이었다.
공방에서는 리에타가 다급히 쇳덩어리 하나를 달구고 있었다. 항구에서 발견된 커다란 녹슨 사슬에서 떼낸 사슬 조각들 중 하나를 아궁이에 달구고 있었던 것. 그러는 동안 미라는 그런 리에타를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입구 쪽 창가에서는 하얀 원피스 드레스 차림을 한 연두색 긴 머리카락을 가진 루미 그리고 이전 때와 같이 블라우스 위에 하늘색 오버롤 원피스 차림을 한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냐가 리에타가 작업을 하고 미라가 이를 감독하는 듯이(?) 지켜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리에타는 자신이 달구어 낸 사슬 조각을 집게로 조심스레 들어 작업대 책상 위에 놓은 모루 위에 걸쳐놓고 모루에 걸친 그 조각을 망치로 두드려서 펼치고 있었다.
"날카롭게 만드는 것은 이제 기본이지?"
"물론이다옹~ 이 정도 즈음은 뭐 이제 기본이다옹~." 그러자 리에타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게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미라가 리에타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나 그리고 아네샤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는 것.
"듣고 있었냐옹!?" 그러자 리에타는 흠칫 놀라면서 미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지만, 미라는 그 물음에 잘 듣지는 못 했다고 답했다, 정말 잘 듣지는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심이 들었던 것이 뭔가를 숨기는 듯한 목소리로 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하든 아니든, 대화는 상관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리에타, 네가 그런 목소리 내는 것은 참 오랜만인 것 같아, 매일 같이 아옹~ 아옹~ 애옹~ 하고 있었는데 말야."
"한 번 정도는 그러할 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옹~?" 미라가 건네는 물음에 리에타가 바로 답했다. 그 이후, 미라는 나를 비롯한 일행이 공방 안에 있음을 확인하자마자 흠칫 놀라면서 벌써 들어와 있었느냐고 다소 놀란 듯한 목소리로 묻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리에타를 향해 돌아서면서 말했다.
"리에타의 원래 목소리를 들어보신 것 같아요, 평소에는 장난스럽게 아옹~ 아옹~ 애옹~ 소리를 내고 있어서 원래 목소리를 아는 애들이 많지 않아요. 원래는 상당히 조신한 느낌의 목소리인데."
그리고 더 나아가, 리에타의 옛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미라에 의하면 리에타는 원래는 그 때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이는 아니었고, 라니아 그리고 린나처럼 여성스러운 느낌의 드레스 같은 옷을 자주 입고는 했으며, 머리카락도 아주 길었다고 했다.
"그랬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갑자기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도 과감하게 입고 다니기 시작했지요."
"그 전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시나요?" 그러자 아네샤가 미라에게 물었지만 그 물음에 미라는 자신은 잘 모른다고 답하고서 클라리스, 라니아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리에타가 큰 쇠사슬의 일부를 떼어내 그것에서부터 칼날을 만들어내고 그 칼날을 집게로 들어 열처리를 하고 있던 리에타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작업을 거의 마치고 있던 그에게 물었다.
"아 참, 리에타, 혹시 네가 며칠 전에 유적지에서 가져왔다는 그 쇳덩이, 아직도 공방에 있어?"
"뒤뜰에 놓아두고 있다옹, 그런데 왜 그러냐옹?" 미라는 리에타가 이전에 유적지에서 가져온 쇳덩이가 있었다면서 그 쇳덩이를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리에타는 아직 놓아두고 있음을 밝히고서 왜 그러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미라는 곧바로 짜증스럽게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외쳤다.
"아니, 그 흉물을 없애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던 거야!?"
"물건 처리는 내 마음이다옹~ 뭐라 하지 말라옹~." 그러자 리에타가 남은 부분으로 칼날을 만들려 하면서 답했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그런 흉물로 만들어진 물건은 그것만으로도 흉물이 될 수 있다면서 괜한 짓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어 말하기도 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체 리에타가 무엇을 가져와서 놓아두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흉물로 칭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미라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대체 무슨 물건이기에 흉물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흉물이요?" 그러자 리에타가 나와 아네샤를 바라보면서 묻더니, 보여주러 가겠다면서 따라와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이에 나와 아네샤는 미라를 따라 공방의 뒤뜰로 가게 되었다. 그 때, 루미와 미냐가 그런 미라를 따라 나서고 있었고, 이어 루미가 미라에게 물었다.
"리에타가 아직 그 방주인가 뭔가를 치우지 않고 있었던 거야?"
"응." 이에 미라가 그렇다고 답하고서 아무래도 리에타에게 그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할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고 답하고 있었다.
공방의 뒤쪽 풀밭의 한 곳에 표면 전체가 붉게 녹이 슬어버린 커다란 금속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리에타에 의하면 원래 상자의 상단에는 기계 장치가 있었지만 떨어져 나간 듯하다고. 상자에 가장 먼저 다가간 이는 미냐였다. 그는 상자의 모습을 보더니, 뒤따라 상자에 다가가던 미라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리에타가 '방주 (Arkeo, Arka)' 라 칭했던 물건이잖아, 동물들을 먼 곳으로 떠나 보낸다는 방주."
"맞아." 그러자 미라가 바로 답했다. 그러는 동안 나와 아네샤 역시 상자의 오른쪽 근처로 다가가서 상자의 내부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버려지고 방치된 듯해 보이는 상자는 표면부터 내부까지 완전히 녹이 슬어 형체를 제외한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어 있었다. 이 물건의 용도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잘 알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리에타와 미라가 흉물이라 칭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별로 좋은 용도로 쓰이지는 않았음은 확실해 보였다.
"리에타가 이 상자를 저와 클라리스 등에게 보여주면서 '방주' 라 칭했어요. 그래서 불길하게 생긴 이 상자를 왜 '방주' 라 칭했냐고 묻자, 오래 전부터 묘족들에게 전승된 이야기가 있다면서 '간택되지 못한 이들은 간택된다 (Tiuj kiuj ne estas elektitaj, estos elektitaj)' 라는 말이 있었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길을 떠돌다가 혹은 집에서 버려져서 '동물들의 감옥 (Prizono de Animaloj)' 에 갇힌 동물들 중에서 간택받지 못한 이들은 '방주 (La Arkeo)' 에 간택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미라는 말했다, 왜 묘족들이 그것을 방주로 칭했느냐면, 이러한 상자들이 세상에 의해 버려진 동물들을 '망자들의 세상' 으로 보내왔기 때문이라고 리에타가 말했다고. 그리고서 리에타는 '동물들의 감옥' 에 수감된 죄 없는 동물들은 대개 방주를 통해 망자들의 세상으로 떠나가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 미라, 라니아 아줌마께서는 아시고 계셔?"
"잘 모르겠어, 이에 관해서는 라니아 아주머니께서는 어떤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더라."
이후, 루미가 상자에 관해 물음을 건네자 미라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리에타는 북쪽 교외의 먼 곳의 초원을 거닐다가 우연히 발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어서 파 보았더니, 이런 물건이 나왔다고 말했으며, 방주의 특성 상, 썩은 내가 날 것 같았는데, 이미 너무 오랫동안 흙 속에 묻혀 있다보니, 그런 냄새 대신에 흙내만 났다고 했다. 그리고서 미라는 이런 흉물을 리에타가 왜 지금까지 놓아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리에타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의하면 그 '흉물' 을 차후에 마을의 한 곳이라든지, 아니면 마을 교외의 한 곳에라도 놓아두어서 묘족 조상들의 비참한 역사를 소개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보인다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묘족의 선조들인 고양이들의 잔인한 역사를 소개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이런 흉물을 마을의 한 곳에 놓아둘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예."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미라는 그러할 것이라는 의미의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비록 인간의 모습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조상들이 고양이들이었음을 잊고 싶지 않고, 그러면서 자신의 선조들이었을 떠돌이 고양이들이 겪은 잔혹한 역사가 결코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하기도 했었다. 그 때,
"미라! 애들 데리고 또 어디서 알콩달콩하고 있냐옹~!?"
라는 외침과 함께 미라가 망치를 오른손에 들고 미라를 비롯한 요정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미라를 보더니, 그에게 물건을 다 만들어 놓았으니, 얼른 와 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이들이 그가 뒤뜰에 놓아둔 '(죽음의) 방주' 에 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방으로 요정들이 자신을 따라가는 동안 루미가 그를 보면서 말했다.
"망치를 들고 나오지 마, 무섭게 뭐하는 거야!?"
"다급히 나오느라 정신 없어서 그랬다옹~ 그리고 내가 언제 너희들을 망치로 때린 적 있냐옹~ 망치는 쇳덩이하고 괴물 때리라고 있는 거라옹~!"
그러자 리에타가 말했다. 그 이후, 리에타는 공방으로 들어온 미라를 비롯한 세 요정들에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식칼들의 날 부분을 보여주고, 매끈하게 변한 3 자루 식칼의 날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항구에 버려진 사슬의 한 부분을 가공시켜 만든 것임을 밝혔다. 이에 미냐가 리에타를 보면서 이 칼날들이 어디에 쓰일 것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요청한 사람들의 집에 배달 보낼 거라옹~ 그 중 하나는 서쪽 광장에서 제법 이름 알려진 식당에 갈 거라옹~"
그 후, 다시 항구로 돌아가보니, 이번에는 야누아와 클라리스 그리고 라니아가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야누아는 3 사람 중에서 왼편에 서 있었고, 클라리스는 그 오른쪽 옆에 앉아 있었으며, 라니아가 이들의 오른편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들은 한 동안 말 없이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근심도, 우려도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며,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곁에 도달한 이후에도 그들이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 가만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려 하였다.
"...... 이제는 괜찮은 것이지요, 두 사람?"
"응, 이제는 괜찮아." 한 동안 이어지는 정적을 깨며 클라리스가 라니아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라니아가 그렇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곧 그 때에 자신을 대했던 야누아 그리고 마르차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희 자매는 이 곳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찾기를 원했었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테고."
그리고서 아무리 그래도 그 어린 나이에 홀로 서기를 결심할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야누아가 말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부터 이미 결심했던 바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사느니 차라리 홀로 서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저지른 일이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어떻게 되셨는지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으셨던 것은......"
"지금 네 생각대로야." 이후, 야누아가 건네는 물음에 라니아가 그 생각대로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 때에는 모든 것이 너무 두려웠다고 말하고서, 그래서 야누아 등에게 그들의 어머니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가 너무 겁이 났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지, 그렇게 해도, 결국 너희들이 언제까지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야누아의 어머니라면 마을의 촌장으로 있었다는 그 사람이었을 것으로 내가 미냐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큰 딸인 야누아가 어렸을 때, 먼 곳으로 떠나간 이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는데, 실제로는 모종의 이유로 사망했던 것이었다, 라니아는 처음에는 그것에 대해 차마 마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 만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게 됐으며, 그래서 그것에 대해 발표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버렸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전에 그 사실을 언급했던 미냐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듯이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가 세상을 떠났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 이후, 그의 큰 딸과 둘째 딸이었던 야누아와 마르차는 라니아에게 다가가 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 했느냐고 거칠게 따지고 말싸움을 걸었다고 했다. 이후, 야누아, 마르차는 동생들을 이끌고 멀리 떠나가 버렸으며, 그래서 한 동안 라니아는 자매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과 말 싸움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때의 심정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라니아는 사실, 그들이 왜 그렇게 말 싸움을 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했다, 아니, 말 싸움을 하면서도 일부러 자신에게 그렇게 다가갔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했던 바대로 일부러 서운한 척을 했던 것이라고.
야누아 자매의 어머니는 여섯 아이들을 낳은 이후로 늘 몸이 좋지 않았고, 그런 어머니를 라니아가 자주 찾아와서 보살펴 주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라니아는 야누아 자매와도 가까워졌고, 야누아 자매는 라니아를 자신의 또 다른 어머니처럼 여기고는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상태가 매우 위독해졌다가 잠시 안정을 되찾았을 때, 야누아가 라니아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날따라 너무나 야누아를 비롯한 자매들이 너무도 보고 싶다고 해서 자신을 비롯한 자매들을 불러 모았다고, 그리고 자신에게 어머니는 늘 몸이 약해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했다고. 그리고 그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었다고 말했다, 늘 건강함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리고 과거의 라니아처럼 더 나아가 선한 사람들을 지키고, 악한 이들을 구해내는 이가 되어 달라고.
라니아는 임종 직전에 촌장이 자신의 딸들에게 부탁한 바를 그들로부터 전해 듣고서, 그는 그 때부터 이미 야누아, 마르차는 결심했던 것임을 알아차렸지만, 그들은 아직 너무 어렸고, 그래서 그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들을 맡아주려 했지만, 그들의 바랐던 바는 그 이상이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나는 네가 촌장의 직위를 이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촌장의 직위를 이어받으라고 했을 때에도, 그것만큼은 사양했어. 그리고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더욱 훌륭한 사람이 나오면 그 때에 결정할 테니, 그 때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여전히 촌장 대리에 머무르고 있어."
"괜찮아요, 촌장의 지위 같은 것은 이제 원하지 않아요. 그런 지위는 오히려 라니아 아줌마께 더 어울려요."
그러자 야누아가 라니아에게 그가 자신보다 촌장으로서 더욱 어울린다고 말하고서 촌장의 지위를 이어받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니아는 그런 그의 말에 이제 와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고서 이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 자격을 가질만한 사람을 찾았거든, 이제 어쩌면 곧, 그 사람은 자신이 차지해야 할 것을 차지할 날이 오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이후의 대화에 의하면 야누아 자매는 어머니의 바람을 듣고 난 이후부터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생각을 가진 듯해 보였다. 어머니처럼, 그리고 과거의 라니아처럼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요정들의 쉼터와도 같은 마을을 떠나 일부러 황야가 드넓은 먀미아를 주 활동 무대로 삼았다고 한다. 무술은 라니아가 야누아 자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용병 생활을 하면서 배워갔다고 하는데, 라니아는 4 자매 모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야, 율리아는 잘 있지?"
"잘 있어요, 지금 먀미아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이후, 라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야누아가 바로 답했다. 이후, 클라리스가 야누아에게 율리아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고, 공주님처럼 키우겠다고 말한지도 이제 오래됐다고 말하자, 야누아는 조용히 한 숨을 내쉬며 그런 물음에 답했다.
"공주님....... 같기는 해. 동화 속의 공주님 같지는 않다고 해도."
그리고 기본적인 마음씨까지 틀어진 것은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비롯한 언니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혼자 공주님처럼 살 수는 없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클라리스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희들의 평소 행실이 어떠한데, 그러면 얌전한 공주님처럼 살겠니? 바랄 것을 바라."
그리고 먀미아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고서, 그들을 만나는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야를 전에 만나본 적이 있었다고 말하고서 얌전한 모범생 유형의 친구라 싸움과는 담을 쌓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고, 더 나아가 4 자매 중에서는 가장 학업과 가까울 사람일 것이라 여기었는데, 어떤 무기를 사용하느냐고 질문하자마자 큼지막한 봉을 들고 와서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나서 너무 놀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가녀린 애가 어떻게 그런 큰 무기를 휘두르려면...... 아무래도 전투 이후에는 많이 피곤할 것 같아, 그렇지?"
"그 애는 유난히 그래." 이후, 클라리스가 건네는 물음에 야누아가 답했다. 마야는 전투 중에는 늘 양 팔에 마력을 집중한다고 한다, 큰 무기를 휘둘러야 하는 만큼, 마력이 양 팔의 큰 힘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그 여파로 전투가 끝나고 나면 유난히 피곤해 한다고 했다. 그러자 클라리스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그랬어?"
"그것을 원해서, 다른 이유가 있겠니." 그러자 야누아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자신도 굳이 대검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지만 그가 그것을 원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이어가는 분위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이런 분위기에 괜히 끼어들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그들의 곁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서부 광장 쪽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주변 일대를 둘러보면서 나를 따라 나아가던 아네샤에게 물었다.
"아네샤,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
그러자 그는 모처럼 전망 좋은 곳에 가 있자고 청했는데, 그래놓고 가겠다고 한 곳이 서부 광장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찻집이었다. 그 찻집은 이전에 들렀던 곳에 비하면 무척 작았지만 해변가를 마주하고 있어서 나름 운치가 있는 곳이기는 했다. 하지만 모처럼 둘이서 경치 구경하겠다고 간 곳이 찻집이라니, 그런 결정에 다소 서운하기는 했다.
"다른 곳은 생각해 본 적 없어?"
"마땅히 생각난 곳이 없어서 그만." 그러자 아네샤가 답했다. 하기사, 아네샤 등도 그 동안 찻집을 들른 적은 거의 없다시피하기는 했다, 이래저래 일거리가 많았고,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기는 했다. 그러다가 여행을 하면서 모처럼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찻집에 들르기로 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애들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아?"
입구 건너편 창가에 있는 탁상들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으면서 아네샤가 한 말이었다. 당시 아네샤는 녹차가 든 잔을 두 손으로 들고 있으면서 우유 잔을 앞두고 있는 나를 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다가 창가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던 그에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세미아나 리마라 중에 찻집을 좋아하는 애들이 있던가?"
"세미아는 좋아하는 편이야, 나와 자주 어울려서 찻집에 한 번씩 가고는 했었거든."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답했다. 이에 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네샤에게 그와 어울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 않냐고 묻자, 아네샤가 아니라고 답하는데, 얼핏 보더라도 표정에서 당황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어서 정말이냐는 의심을 할 수 있을 법했지만 실은 아네샤는 내가 추궁하는 듯이 물어보면 발끈하고는 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기에 실제로는 그를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미아가 차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하는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 카페보다는 차를 더 선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차에 우유 등을 타서 마시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조금씩 마시면서 창가 너머로 펼쳐진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만나는 경계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찻집에서 우유를 마실 때마다 늘 의식처럼 하는 일이 있었다.
- 우선 시럽과 가루 통들이 놓인 곳으로 잔을 들고 간다.
- 가루를 뿌린다, 뿌리는 가루는 기분에 따라 바뀌며, 주로 카카오 가루를 뿌린다,
- 카카오 가루를 뿌릴 때에는 색깔이 변할 수 있도록 손이 아프게 가루 통을 뿌린다.
- 시럽, 꿀을 약간 뿌린다.
- 이 모든 것을 계산대에서 가져온 나무 막대로 열심히 휘젓는다.
하지만 이전에 카페를 마신 것도 있어서 이번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고 우유만 마시기로 했다. 따스한 우유 특유의 맛이 좋았다, 희디 흰 잔에 담겨진 흰 우유를 마시면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 그 날따라 색달랐다. 아네샤는 세미아, 리마라가 곁에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아쉬움의 감정을 담아 혼잣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찻집에 와서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차를 마시면서 창가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서 나와 마주보며 앉은 아네샤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
"아네샤, 어렸을 때, 이야기 들어보았지? 하늘과 바다 그리고 지평선의 신화가 있었잖아."
"응, 어렸을 즈음에 한 번 들어본 것 같아." 그러자 아네샤가 즉시 답했다, 어렸을 즈음에 본 이야기,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에 관한 설화가 있었다. 세니티아의 하늘 창조 신화 (Senitiay Banal-üshymytholoyia) 로 알려진 이야기로 나중에는 책을 통해 본 기억이 있다.
태초에 빛이 있었습니다. 깊고도 깊은 어둠을 홀로 밝히며 태어난 빛은, 그리고 스스로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이는 바날 (Banal = 하늘) 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푸른색을 띠고 있던 바날은 유난히 높은 곳을 좋아해 높은 곳에 떠올라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스타나 (Stana = 땅) 였습니다. 빛이 태어난 어둠을 닮아 어두운 색을 띠고 있던 스타나는 자연스럽게 바날이 차지하지 않은 낮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날에게서 발라 (Vala = 바람) 이 태어나고, 바날과 발라가 후루 (Huru = 구름, 혹은 쿠루 (Kuru)) 를 낳았습니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했었잖아, 발라는 바날의 자식 아니냐고."
"이제 알잖아, 원래 신화가 다 그렇다는 것을."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말에 내가 답했다.
후루는 스타나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루는 스타나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바날과 발라가 후루가 스타나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에 후루는 스타나를 그리는 마음에 한 번씩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스타나에게 닿았습니다. 스타나는 이 눈물을 조금씩 모아 마침내 그것으로 여러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들의 이름은 갈람 (Galam = 강), 모도 (Modo = 호수) 였고, 갈람과 모도에게서 아름다운 바르다 (Barda = 바다 (혹은 바랄 (Baral)) 가 태어났습니다.
갈람과 모도는 바날의 아름다운 푸른색을 동경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어디든 나아갈 수 있는 바날의 아이들을 부러워 했습니다. 바날의 푸른색을 동경하며 그들은 자신들을 파랗게 물들였고, 그리하여 그들의 자식인 바르다는 바날의 색을 닮은 아름다운 푸른색을 띠며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갈람과 모도는 바르다가 바날과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바날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른 장벽이 그런 바르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결국 바르다는 바날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자손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바날에게 심통이 난 스타나 역시 바날이 자신을 만나지 못하도록 장벽을 쌓았고, 그리하여 한 형제였던 바날과 스타나는 영원히 서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스타나는 이후, 갈람과 모도에게서 자식들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바날 보란 듯이 수많은 아이들을 낳아 자신의 곁에 머무르도록 했습니다. 초록색을 띠는 풀 (Ful = 풀), 나므 (Namî = 나무) 의 일족들이 스타나의 몸을 아름답게 물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빛에게는 또 다른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비라 (Vyra = 불)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 스타나가 나므, 풀의 일족으로 자신들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자, 바날은 질세라 비라의 일족을 받아들여 자신의 몸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때로 그 일족들을 내려 보내, 스타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비라 일족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레르 (Ler = 열) 일족은 또 다른 생명들, 아니마 (Anima = 동물) 라 칭해지는 새로운 생물들이 세상에 도래하도록 하였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도 있고."
그 때, 어딘가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일행이 앉은 그 뒤쪽의 탁상에 이전에 대화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만 했던 클라리스가 고개를 돌려 나와 아네샤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왼편 곁에는 야누아가 앉아 있었으며, 이들의 건너편에는 라니아가 자신의 딸 즈음 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마주보고 있었다. 클라리스, 야누아는 바다 쪽을 바라보는 방향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라니아가 이들에게 바다가 잘 보이는 쪽의 자리에 앉도록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라니아는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었고, 야누아는 녹차를, 그리고 클라리스는 카페를 마시고 있었는데 의외로 우유가 없는 순수한 카페였다.
"흰 우유를 마시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게 돼요."
이후, 클라리스가 나 그리고 아네샤에게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이어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신화 속의 인물들이 무엇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하나씩 말하는데, 전부 다 알아차리고 있었다. 머나먼 세니티아 성계의 신화를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세계의 신화를 통해 알게 된 모양.
"클라리 (Clari, Klari), 우리에게도 그런 신화가 있던가?"
"우리에게는 없어." 이후, 야누아가 건네는 질문에 클라리스가 답했다. 그리고 이 곳의 요정들, 그리고 고양이 요정들은 이미 인간 세상이 무너진 그 위에 세워진 것으로 여기에 요정들은 이 행성계를 비롯한 여러 행성계에 거주하던 인간들의 후예라는 사실도 이미 알려지지 않았느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참 로맨틱하지 않네." 그러자 야누아가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며 말하고서는 간혹, 세니티아 정령들의 상상력이 부럽다고 이어 말했다.
그 후, 라니아가 야누아를 보면서 야누야에게 우유를 마시지 않느냐고 묻자, 야누아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잘 마시지는 않게 됐다고 답하고서는 오히려 자신이 라니아가 우유를 여전히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의외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율리아는 요즘에 우유 마시니?"
"잘 안 마셔요." 이후, 라니아가 야누아에게 묻자, 야누아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에는 우유를 못 찾아서 안달이었고, 그래서 그 때를 생각하며, 우유를 마시게 해 보았는데, 얼굴만 달아오를 뿐, 전혀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며, 많이 부끄러워하는가 봐, 율리아가."
"예, 그랬던 것 같아요, 실은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기는 한데."
이에 야누아가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답했다, 하지만 우유가 들어간 녹차 등은 잘 마신다고. 이에 클라리스가 율리아는 아직 어린애 아니냐고 묻자, 야누아가 그렇다고 하는데, 율리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클라리스가 야누아에게 율리아에 대해 그래도 예쁘장하게 잘 커서 다행이라고 말했고, 이에 야누아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지." 라고 화답을 하자, 이어 밝게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럼, 누구 동생인데......"
"라르나 씨, 아네샤 씨, 혹시 두 분께는 동생이 있나요?"
"동생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자매처럼 지내는 친구들이 몇 있어요, 아네샤는 그 친구들 중 한 명이에요. 이외에 두 명 더 있기는 한데, 그 애들은 여행에 참여를 하지 않았어요, 우리의 여행에 곧 동참하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언제 올 지는 저희들도 몰라요."
야누아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답했다. 이후, 클라리스가 나에게 그렇다면 누가 큰 언니 역할을 맡느냐고 묻자, 아네샤가 바로 나임을 밝혔다. 이에 클라리스는 야누아와 여러모로 비슷한 면이 많을 것 같다고 나에 대해 말했지만 나는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어디까지나 친구지, 친 자매는 아니고, 그래서 나 역시 야누아처럼 제대로 큰 언니 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 후, 이번에는 야누아가 나와 아네샤에게 물었다, 우유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좋아해요, 시원하게 배를 채우기에는 좋거든요. 우유는 가급적이면 그대로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이에 내가 답했고, 아네샤 역시 동의하는 의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네샤가 이어서 카카오를 이용해서 만든 초콜라타 (Cokolata)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우연히 입수해서 우유와 함께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이에 클라리스가 환하게 미소를 띠며 아네샤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제가 초콜라타를 하나 갖고 있는데, 아네샤 씨께 드릴까요?"
"초콜라타요?" 이에 아네샤는 바로 흥미가 돋은 듯이 그렇게 말하고서 하나 줄 것을 부탁했고, 이에 클라리스가 알겠다고 화답하며 무언가를 꺼내려 하는데, 야누아가 그런 클라리스의 오른팔을 왼 주먹으로 치면서 그런 그에게 말했다.
"너 그거 주려고 하는 거지?"
"뭘?" 그러자 클라리스가 물었고, 이에 야누아가 '카카오 100% (Kakao 100%)' 초콜라타를 주려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야누아는 이어서 클라리스에게 전에 동생들에게 초콜라타 준다고 해서 줬더니 그 맛에 당황하고, 심지어 독이 섞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애들을 보면서 실실 웃고 있지 않았느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너 진짜 너무한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들에게 장난치려고 가져온 것들을 손님 분들께 주려고 해?"
그리고 야누아는 클라리스에게 '넌 진짜 양심도 없어!' 라고 황당해 하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클라리스는 원래 초콜라타는 그런 맛이라 말하고서, 세니티아의 초콜라타들은 대개 단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그 곳에 사는 정령들이라면 그런 맛에 익숙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클라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머니에 들어있던 초콜라타들을 나와 아네샤에게 건네려 하였다.
"드세요, 맛있지는 않지만 좋은 거예요."
야누아가 말한 바대로, 그가 준 초콜라타를 감싸고 있던 종이 표지에는 100% 라는 문구가 크게 드러나 있으니, 그 표지를 보면서 무슨 맛인지 대강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사실, 세니티아 성계는 단 맛을 내는 물질이 많이 만들어지거나 하지 않아서 초콜라타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카카오의 순수한 맛을 그대로 반영하고는 하기에 세상 사람들이 흔히 아는 단 맛과는 전혀 관계 없는 매우 쓴 맛을 내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묘한 맛을 느끼고픈 이들이 있어서 찾는 이들이 있고, 나와 아네샤 역시 카페를 대신해 뜨겁게 데워진 우유에 한 조각씩 넣어서 먹고는 했기에 이런 맛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고마워요, 이런 것들이야, 세니티아에서는 흔하니까, 잘 먹을 수 있겠네요."
그래서 아네샤는 초콜라타를 받아들고 잘 받았다고 화답하고서 나와 함께 잘 나누어 먹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것 봐, 그들이라면 좋아할 수도 있다고 했지?"
"그래...... 졌다!" 이후, 클라리스는 야누아의 곁으로 돌아가면서 으스대는 듯이 말했고, 이에 야누아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곁으로 가서 야누아에게 클라리스가 한 번씩 그런 모습을 보이는 때가 있었냐고 물었고, 이에 야누아가 답했다.
"평소에는 잘 그러하지 않기는 하지요, 보이는 눈이 있으니까. 그런데, 실은 클라리는 마냥 상냥하거나 착한 아이만은 아니에요, 실은 엄청 짖궃고 장난기가 심한 애예요."
야누아가 밝히기를, 어렸을 적에는 '클라리' 라 칭해졌던 그는 장난기가 더욱 심했고, 말썽쟁이이기도 했다고 한다. 집에 있던 잼을 훔쳐 먹다가 걸려서 호되게 야단 맞은 적도 있고, 담벼락마다 의미 불명의 낙서를 하다가 크게 혼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수업 도중에 도망다닌 적도 있었고, 그리고 숲을 헤매다가 길을 잃어서 학교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이런 잔머리를 굴린 적도 있어요, 담벼락에 페인트 칠을 하는 벌을 받았었는데, 애들을 불러다가 페인트 칠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을 시켜서 칠해 보는 대신에 먹을 것을 건네 받고, 자기는 집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든지...... 일거리라고 잔뜩 건네 받은 전단지를 두루마리처럼 만들어서는 마법 학교에서 가져온 주문서라고 속여서 사람들에게 전부 나누어 준 적도 있었지요. 이런 애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얌전하고 온화한 애가 될 줄...... 알았는데, 한 번씩 저런 장난기를 발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근본은 잘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내 곁에서 하면 어떡해."
"너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이에 클라리스가 무안해 하면서 야누아에게 묻자, 야누아가 곧바로 그에게 들어보라고 하는 말이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시언 할아버지나 라니아는 그를 나쁜 애로 여기지는 않았고, 이런 어른들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그가 성장하고 나서는 그 말을 어느 정도는 믿게 됐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클라리스는 스스로 검술을 익히고 마법도 열심히 수련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그런 그를 보면서 마르차가 예전의 그답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때, 클라리스가 했던 말이...... 이 곳의 아이들, 그리고 어렸을 때 함께 했던 친구들을 자기 손으로 지키고 싶다는 말이었어요."
처음에는 그 말을 들으며, 야누아는 무척 어이 없어 했다고 한다, 친구가 아니라 장난질의 대상 아니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고. 그러다가 곧, 그는 클라리스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보다가 이런 말을 보았고, 그 때, 그에 대해 처음으로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그 아이들과 함께 장난치며 살고 싶어.
언제나 아이들이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장난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하려면, 우선 마을을 지키는 힘이 필요해, 그것이 나에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더욱 강해져야만 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서 강한 사람이 되고 말 거야.
"아주 어렸을 때의 일기 글의 일부였어요." 어린 아이다운 이야기에 대해 클라리스의 어렸을 적 일기글의 일부였다고 밝히고서 그는 거기서 클라리스가 마냥 짖궃지만은 않은 아이였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서, 라니아, 루시언 할아버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고 밝혔다.
"클라리스가 어렸을 적에 학교의 설문을 본 적이 있었어, 그 때 설문 중에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 에 관한 질문이 있었는데, 거기서 클라리스가 쓴 말이 이것이었지 :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 그것을 보고 나서 클라리스가 마냥 장난꾸러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이후, 라니아가 일행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어렸을 적에 짖궃은 장난을 치고 살았던 애들 중에 나이가 들고 나면 생각이 깊어지고 바른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말하고서 클라리스는 다행히도 그런 경우 중 하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어렸을 때에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나와 내 주변의 아이들 모두 다들 개구쟁이들이었다고 답했다. 언제나 놀고 싶고, 공부는 안 하고 싶어하던 그런 아이들이었다고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러할 것 같아 보였어요." 이에 라니아가 조용히 웃으면서 화답했다. 어렸을 때에는 개구쟁이, 반항아처럼 살던 이들이라도 그들의 앞날은 모르는 일이라고 화답하고서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고 무엇이 되는지는 결국 아이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 때, 문득 생각이 났었는지, 클라리스가 자신이 이전에 '예나 셀레니아 (Yena Selenia)' 라는 베라티사 (Beratisa) 성계의 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음을 밝힌 이후에 그가 자신의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음을 밝혔다 :
저도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열성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공부가 좋아서 하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요,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지요. 저도 한 때는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했고, 학습서보다는 신화나 설화 혹은 소설을 더 선호했던 사람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고대 시대보다도 더욱 먼 옛날, 선대 문명 시대에 대한 숱한 설화를 모은 책들을 재미있게 읽어보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 문명에 의해 탄생한 것들을 내 스스로 재현해 보고 싶다고.
그러면서 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리고 선대 문명 시대의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어떻게 말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알려면 그것에 관한 지식의 습득을 먼저 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상상이 상상으로만 끝나지 않고, 내 앞의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것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지요.
저는 참 사소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니었고, 정말로 많은 것들을 배워야 했었어요, 선대 문명의 언어부터 칼쿨루스 (Calculus) 라 칭해지는 어려운 학문까지,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했지요. 칼쿨루스는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학문으로 악명이 높지요? 저도 그 악명 때문에 정녕 이런 것까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나, 하며 괴로워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어쩌다 보니, 그것마저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있더군요. 이런 배움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이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라 칭하며, 저를 명사로 취급하고 있었지요. 딱히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꿈을 바라보며 꿈 길을 걸어가려 하다보니, 어느덧 그렇게 되었던 거예요.
이런 저를 어린 시절의 제가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미래의 저일 것이라 감히 생각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저 공상을 이것저것 펼쳐가고 있을 뿐인 아이가 학문으로 명망이 드높은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어떻게 감히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구보다도 제가 너무 공감을 했었어요, 만약에 제가 과거의 저를 만나게 되면 과거의 저는 제가 미래의 자신임을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면서 사람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이후, 클라리스는 이러한 말과 함께 이야기를 마쳤다. 그 때, 야누아가 클라리스를 보더니, 두 사람의 곁으로 가 보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이러한 제안에 그가 뭐라 답을 하려던 차에 내가 그들의 곁에 있도록 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클라리스, 야누아의 곁에 이르자마자 야누아가 멋쩍게 웃더니 클라리스에게 굳이 일어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 아네샤가 나를 향해 다가가더니 나의 오른편 곁에 있으려 했다.
"라르나! 이번에도 나를 혼자 두려고?"
이후, 한 동안 나와 아네샤가 서로 아웅다웅하는 광경을 보면서 클라리스, 야누아가 나와 아네샤가 앉아있던 탁자로 가게 되었다. 나와 아네샤가 창가를 바라보는 방향-건너편 창가를 향하는 방향으로 내가 왼편, 아네샤가 오른편에 앉았다-에, 그리고 클라리스, 야누아가 그 반대 방향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클라리스가 왼편, 야누아가 오른편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우측 곁에도 창문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찻집이 서쪽 해안과 워낙 가깝다 보니, 그 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먼 바다를 바라볼 수는 있었다.
클라리스는 일반 카페를, 그리고 야누아는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간만에 흰 우유를 마시는데, 여러모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이후, 나는 야누아에게 장난꾸러기로 살고 있던 클라리스를 보면서 그가 부러웠던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그로부터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
"처음에는 딱히 부럽지는 않았어요, 혼나는 일이 매일반인 그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떠한 책임도, 부담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클라리스가 무척 부러워지기 시작했었지요."
"큰 언니로서의 짐을 짊어질 일이 클라리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예......" 야누아는 한 때는 큰 언니로 살아가는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차라리 누군가의 동생이었다면, 아니, 막냇동생이었다면 그런 굴레에 있을 필요가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큰 언니이다보니, 주변의 기대와 그로 인한 부담이 너무도 컸음을 말하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저나 미라에게 이런저런 고충을 말하기도 했었는데, 동생들이 크고, 그들 역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그 부담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았다고 했어요. 동생들이 모두 기대한 바대로 크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다들 모두 무사히 잘 커서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었지요."
"그렇다면, 야누아 씨의 기대와 가장 멀었던 동생으로 누가 있나요?"
"율리아, 막냇동생이래요."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클라리스가 야누아를 대신해 즉시 답을 했다. 공주님 같지는 않더라도 얌전하고 착한 소녀로만 크기를 바랐는데, 어느새 가볍게 옷을 입고, 무기를 쥐면서 싸움터에 나서는 이가 되어버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율리아가 너와 함께 싸움터에 나서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
"...... 맞아, 싫지는 않아." 이후, 클라리스가 건네는 물음에 야누아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역시 언니들을 따라 치열하게 살아가고픈 열망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몰라볼 수는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율리아라는 이에 대한 약간의 아쉬운 감정이 있었는지 이렇게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클라리스."
"그래도 율리아가 너무 예쁘게 컸더라, 저런 동생이 있다는 것이 네가 참 부러워."
"마르차하고 마야는?" 그러자 야누아가 바로 이렇게 물었고, 이 물음에 클라리스가 조용히 웃으며 "그들도 좋지~." 라고 답하고서 "너희 자매들 중에 예쁘지 않은 애들이 있어?" 라고 이어 묻기도 했다. 이후,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마르차가 조금 수수한 것 같다고 클라리스가 말하자마자 야누아가 마르차를 불러와서는 머리카락을 푼 모습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아름답냐고 말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 애 단발 아니었지?"
"아니지, 처음에는 단발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했었는데, 머리카락이 자꾸 길어지니까, 아예 머리카락을 묶어 내리는 정도로 그쳐 버린지 오래야."
이후, 야누아는 나와 아네샤를 보면서 단 하루 동안이라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었고, 이에 내가 물었다, 언제 즈음 그런 날이 올 것 같냐고, 그러자 야누아는 이미 그런 날에 대한 바람은 포기한지 오래라 답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싸움터에 나서면서 한 동안은 같이 있게 될 텐데, 그 전까지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야누아가 클라리스에게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고,
"어렸을 때의 모습도 한 번 정도는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 싫어." 그러자 클라리스가 부끄러워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조용히 답했다.
찻잔을 비우고 창가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깨끗한 푸른색으로 물든 하늘과 짙은 청록색을 띠는 바다가 하나의 선을 경계로 서로 만나고 있었으며, 그 사이로 크고 작은 여러 바위 섬들이 머무르는 모습이 보였다. 각각의 섬들 위로는 나무들이 몇 그루씩 서 있으면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임을 알리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사람이 살 수 있는지와는 큰 관련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 보이기는 했다.
"라르나, 바닷가에 우리가 언제 놀러 갔었지?"
"최근에 갔었잖아, 루데스 (Ludes) 섬으로." 계속 내 곁에 앉아있던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3 년 전 즈음이었던가, 가을을 맞이한 어느 날에 루데스 일곱 섬들 중 몇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이어간 적이 있었는데, 아네샤가 혹시 내가 그 때의 기억에 관해 질문을 하려고 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 때를 잊었을 것 같아 보였어?" 이후, 나는 아네샤에게 그렇게 물었고, 이 물음에 아네샤는 혹시나 내가 그 때, 내가 아네샤 등과 함께 여행을 했을 때를 잊었을까봐 질문을 해 보았다고 말했다. 변명 같이 들리기도 했지만 딱히 나쁜 생각을 갖고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에 대해 뭐라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3 년 전 즈음, 나는 아네샤 그리고 세미아, 나리, 리마라 등과 함께 루데스 군도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다른 목적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바다가 보고 싶어서, 바다라는 드넓은 물에 둘러싸인 자연과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러한 풍경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렇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남쪽 섬에 있었다. 그 남쪽 섬은 무척 고요했지만 행성계의 역사에서 나름 중요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섬의 육지와 해안 그리고 인근 해역에서 수많은 고대 유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고, 이 유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이 건립되기도 했었다.
"나는 그 때, 가고 싶은 생각은 안 했는데."
"그러면 왜 따라 갔어?" 이후, 아네샤의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말에 내가 그렇다면 왜 나를 따라 갔었느냐고 되물었고, 이러한 나의 물음에 아네샤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혼자 있으면 허전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래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나를 따라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세미아가 그러더라, 여행지에서 늘 명랑하게 웃고 다닌다고."
"어쩌다가 여행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고."
이후, 나는 아네샤에게 여행을 하는 것에 후회는 없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아네샤는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어디 있든 자신은 늘 같이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 없냐고 묻자, 아네샤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이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알 수 있어, 적어도 너는 이상한 짓거리를 할 애는 아니라는 것 말야."
"그래?" 이러한 그의 물음에 내가 되묻는 듯이 말했지만 그런 나의 말에 아네샤는 화답을 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답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 아네샤는 박물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됐냐고 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즉시 이렇게 답했다.
"나리가 알려주어서 바로 알 수 있었어."
그리고 나리에 대해 사전에 섬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본 듯해 보였다고 말하고서 박물관이 남쪽 섬에 있음을 그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 알게 됐다고 말하고서, 그래놓고 나리는 정작 다른 이들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서 세미아 역시 사전에 박물관의 존재를 알아보았다고 알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 때, 박물관에서 본 것들로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있어?"
"기계 부품들 같은 것들이 많았잖아, 무슨 벌레처럼 생긴 부품도 있었고."
"집적 회로 (Olosfyantrî, OA 혹은 OYa) 를 말함이지?" 이후, 아네샤가 언급한 '벌레처럼 생긴 부품' 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내고서는 이렇게 되물었고, 이 물음에 아네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의미의 답을 했다. 이후, 아네샤는 그 부품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커다란 벌레 같아 보여서 징그러워했음을 밝히고서 기억나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잘 기억한다고 말하고서 조용히 있었음에도 징그러워하고 겁을 내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했다고 말하고서 이어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짐승들 앞에서도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던 애가 왜 그런 벌레 같이 생긴 것들을 보며 무서워했던 거야?"
"처음 보는 것들이라서."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것들이 기어다닐까봐 겁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아네샤는 그것 말고도 여러 기계 부품이나 유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신기해 보였다고 말하고서 나에게 그것들에 대해 박물관 측에서 이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작동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혹시 아는 바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나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었으며, 애초에 박물관에 물품을 기증한 사람들이 작동에 대해 '불가능 (=ënasiye)' 이라 확고히 언급했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이미 생각하기도 했었다.
"상자처럼 생긴 물건도 있었는데, 갖고 싶다고 말했었지?"
이후, 아네샤는 나에게 '상자처럼 생긴 물건' 을 언급하며, 갖고 싶지 않았느냐고 말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랬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갖고 있으면 이것저것 넣어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그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아네샤가 핀잔을 가하는 듯이,
"네 집에 상자에 넣어둘 정도로 물건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
라고 물었고, 이러한 그의 물음에 내가 혹시 모르는 일 아니냐고 답하고서 그렇지 않더라도 침대외 식탁 그리고 냉동고 외에 아무것도 없는 집에 상자 하나라도 있으면 나름 분위기 있어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상자를 보면서 탐내 보기도 했음을 밝히기도 했었다. 이어서 아네샤가 가질 수 없었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이러한 물음에 내가 그에게 이렇게 화답했다.
"박물관에 기증된 유물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니? 그냥 소망을 말해 본 것일 뿐이지."
"세미아하고 리마라가 빨리 와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후, 아네샤가 세미아, 리마라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자, 나 역시 나도 그렇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이제 찻집에서 시간을 잠시 보냈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자고 청했고, 이러한 청에 나는 바로 좋다고 답을 한 다음에 곧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클라리스가 말했다.
"어라? 두 분, 벌써 밖으로 나가시는 거예요?"
"예, 바로 다른 곳으로 가 보려고요." 이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잠시 찻집 내부의 주변 일대를 둘러보면서 찻집 밖으로 다시 나간 다음에 그 서쪽 너머의 해안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닷가의 고요한 풍경을 보면서 루데스 (Ludes) 군도에서 친구들끼리 섬 여행을 이어가던 시절을 계속 떠올릴 수 있었다. 너무나 좋았던 때, 막상 돌이켜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참 많았던 때이기는 했지만 아마도 일생에서 다시는 있을까, 말까하는 그런 때이다. 그 당시에 보고 있던 해안은 내가 루데스 서쪽 섬에서 보았던 그런 해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늘도, 바다도 그리고 그들과 대비되는 듯이 새하얗게 보이던 해안가의 돌바닥도 그 때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 새하얀 돌바닥 위로 햇빛을 받으며, 한 노인이 낚시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전에 만났던 루시언 노인으로 그는 아침 때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그 해안가에 앉아 낚시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전에도 그러하였지만 낚시를 할 때의 노인은 참 진중해 보였다. 하지만 노인에게 다시 다가가서 그 모습을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지켜보았을 때, 고개를 숙인 채, 바닷물에 시선을 두고 있는 듯한 그의 표정에서는 진중함보다 어두움이 더 짙게 느껴지고 있었다. 새하얀 빛을 받아 희망이 가득할 것만 같은 해안의 모습과 대비될 정도로 어두운 그 표정에서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한 깊은 시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 것 같아. 분명 라니아 씨라든가, 클라리스, 미라 씨 같은 분들과 함께 하시고 계실 텐데."
"그 분들이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분께 있는 것 같아."
루데스의 어느 섬에서 만난 이의 기억이 루시언 노인의 모습을 그 때, 다시 보면서 불현듯 떠올랐다. 날이 어두워질 때에만 해안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어떤 노인으로 그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섬에 노인이 살고 있음이 알려지지도 않았던 노인, 그 노인 역시 다른 이들로 대체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듯해 보였고, 그와 잠시 대화를 해 보기도 했었지만 나의 존재가 그의 공허함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당시 섬에 있던 물의 정령들 중 일부가 그 노인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노인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던 모양.
어쩌면 루시언 노인 역시 그 때 섬에서 만났던 그 노인과 같은 신세였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잃어버린, 어쩌면 지금 있는 이들로는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로 인한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의미 없는 낚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노인에게 다가가 보았다. 나와 아네샤가 근처에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루시언 노인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낚시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인은 조용히 낚싯대를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오늘은 오랫동안 낚시를 하시고 계신가 보네요."
그 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라의 목소리였다. 미라는 이번에는 긴 검은색-일부는 주황색으로 물든- 머리카락과 한 쪽-오른쪽-은 검은색, 다른 쪽은 주황색을 띠고 있는 고양이 귀를 가진 소녀, 하얀 블라우스와 감색 조끼, 감색을 띠며 허벅지 위로 올라가는 치맛단을 가진 짧은 치마 차림을 한 고양이 소녀, 키아라와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하늘색을 띠며 치맛단이 무릎까지 내려가며 소매가 없는 얇은 원피스 차림을 한 소녀, 미냐와 동행하고 있으면서 서쪽 해안에 이르고 있었다. 이들의 오른쪽 곁에는 초록색 긴 머리카락을 가진, 하늘색 원피스 차림을 한 요정 리피 (Lify) 가 날갯짓을 하며 떠 있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노인이 있던 곳과 약간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본래 북서쪽 해안을 향하고 있다가 일행을 보자마자 잠시 발걸음을 멈춘 듯해 보였다.
이후, 미라가 나와 아네샤에게 잠깐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그리하여 나는 미라 등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예전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셨을 것이라고요?"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미라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미라는 루시언 노인을 곁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그에게서 깊고도 깊은 무언가를 느꼈다고 말하고서 그것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채우려 해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한 무언가 같았다고 말하고서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그 때에는 그 공허한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후에 루시언 노인이 클라리스 그리고 자신에게 카믈로 (Camelot) 의 왕 아흐튀흐 (Arthur) 와 그를 따르던 기사들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모든 것을 잃은 왕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전설 속의 아흐튀흐 왕처럼 할아버지 역시 많은 것들을 예전에 잃어버리셨고, 그래서 결국 너무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고, 남겨진 것들마저 떠나 보낸 아흐튀흐 왕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실 수 있으셨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이후, 그는 조용히 낚시를 이어가기만 할 뿐이었을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동안 노인을 향해 잠시 돌아서서 그를 안타까워하는 듯이 바라보며 그에 대해 말했다.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셨을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대체 얼마나 많이 잃어야 마음 속에 그런 깊은 공허함이 남을 수 있는 것일지."
그리고서 그는 다시 해안길을 따라 북쪽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시언 노인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그를 집으로 불러와서 클라리스 그리고 라니아와 함께 알아낼 생각도 갖고 있다고 말하고서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언제까지 그런 문제를 할아버지의 것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으니까요."
깊은 슬픔과 한을 품고 망령이 되었다가 동족들을 잃고 떠돌던 자신을 구원해 주었던 라니아 그리고 클라리스라면 아흐튀흐 역시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하고서 어려움은 다소 있겠지만 잘 될 것이라 이어 말하니, 이를 통해 미라의 클라리스, 라니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다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나와 아네샤가 들었던 할아버지가 곧 멀리 여행을 떠날 것이라 밝혔던 바, 단순히 여행을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듯한 말을 건넨 것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전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미라, 혹시 클라리스, 라니아 아줌마 등이 너를 무도회로 초청하면 갈 거야?"
"무도회?" 이후, 화제가 바뀌어 미냐가 미라에게 클라리스, 라니아가 그를 무도회에 초청하면 가겠느냐 물었다. 이에 미라는 "가야지!" 라고 답하고서 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이어 말한 다음에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그에게 묻기도 했다.
"아니, 미라가 무도회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지만, 클라리스가 간다면 나도 가야지, 야누아나 마르차 같은 애들도 올 거 아냐?"
이에 키아라가 야누아, 마르차 등은 무도회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자, 미라는 마르차, 율리아라면 몰라도 야누아 그리고 그의 동생 중 하나인 마야라면 좋든, 싫든 상관 없이 친구들이 참여한다면 어디든 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서 그라면 예의 상으로도 와 주기는 할 것 같다고 그들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두 팔을 들어 손을 머리 뒤에 올리면서 이어 말했다.
"무도회든 뭐든 그런 모임도 한 번씩은 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을 한 이들 사이에 있으면 너무나 좋을 것 같아."
"네 모습에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그러자 키아라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화답했다. 그 이후, 이들은 북서쪽 해안의 모래밭 한 곳, 엘피, 리피가 잠시 머무르고 있던 보물 상자, 도시락처럼 생긴 전산 장치가 안에 들어있던 상자 근처에서 발걸음을 멈추는데, 이전에 상자 내부에서 그 장치를 보았을 리피가 상자 앞에 선 이들의 앞, 그러니까 상자 내부의 바로 위쪽으로 다가가서 북서쪽 해안가에서 우연히 자신이 친구 엘피와 함께 발견한 보물 상자임을 밝히고서 그 상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옛 문명의 전산 장치가 이 상자의 안쪽에 숨겨져 있었어요, 하지만 내부의 한 장치를 제외하면 파손이 너무 심했지만 내부의 장치 하나만큼은 충분히 복원될 수 있어 보였어요."
리피는 미라 등에게 내가 이전에 발견했던 상자 내부에 있던 것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서 꺼내 볼 것인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미라는 자신이 꺼내 보겠다면서 상자 앞으로 다가가서 상자 안에 내가 넣어둔 그 상자 모양의 장치를 왼손으로 꺼냈다.
"이것...... 자료 기록 장치의 일종인 것으로 알아."
그리고서 내부에 원반들에 신호의 모임이 기록되어 있어서 그 모임의 규칙적인 특성을 파악하면 그것이 무엇을 기록하려 하였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이전에 라니아 그리고 클라리스 등을 통해 들은 바 있음을 밝히고서 상자에 그 장치를 다시 넣어두며 말했다.
"마을로 돌아갈 즈음에 라니아 아줌마의 집으로 다시 가져갈 거야, 라니아 아줌마라면 이 장치에 기록된 바가 무엇인지 아시겠지."
나는 리에타, 라니아 등이라면 이 전산 장치에 대해 어느 정도나마 아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장치를 상자 안에 다시 넣어 두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라가 마을로 돌아갈 즈음에 장치를 라니아의 집으로 가져가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라니아가 정말 그 장치의 특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상자에서 멀어져 미냐, 키아라와 함께 해변의 다른 곳으로 가려 하는 미라에게 그를 따라 나서는 리피가 이렇게 물었다.
"다른 장치는 가져가시려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가져간다고 해도, 의미는 없을 거야, 너무 파손이 심해서 용도를 파악할 수 없어 보였어. 리에타라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지."
그 물음에 미라가 리에타를 언급하며 답했다. 그에게 회수되어 새로운 금속 제품의 원료가 되는 편이 낫겠다는 의미의 답이었을 것이다. 그 대답 이후, 미라는 키아라 그리고 미냐와 함께 해변의 한 곳에 나란히 앉아 있으려 하다가 근처에 있던 나와 아네샤를 부르려 했다.
"두 분도 이리 와요, 같이 시간을 보내다 가요."
이후, 나는 한 동안 미라와 리피 그리고 미냐와 함께 자리에 나란히 앉아 해변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에는 나와 아네샤 모두 자리에 앉아 미라, 미냐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처음 주제는 평상시에는 여유로울 때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는 것이었다.
"여가 시간에는...... 집에 있을 때에는 책을 읽고, 아니면 체력 단련 혹은 수련을 하고는 해요. 평소에는 집 주변 일대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지요."
나의 오른편 곁에 있던 미라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답했고, 그러자 나의 바로 옆에 앉은 미라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가 시간에도 바깥 생활을 중요시하는 편인 것 같다고 말하고서 곧바로 두 팔을 뒤로 젖히고, 두 손을 모래밭 위에 올린 채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저도 여가 시간은 체력 단련이나 검술 수련으로 시간을 보내요, 때로는 클라리스 등과 함께 검술 대련을 하기도 하고."
"검술 대련은 클라리스와 시간을 맞출 필요가 있겠지요?"
"그럼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클라리스가 당연하다고 답을 했다. 그러면서 클라리스는 자주 시간을 내 주고, 서로 간의 대련을 클라리스가 무엇보다 중요히 여기기에 검술 대련에 클라리스가 다른 이들이 자신을 대신하도록 하거나 대련에서 빠진 적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라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외에는 달리 하는 일이 있나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게임을 즐기는 시간을 갖기도 해요." 이 물음에 내가 머뭇거리며 잘 대답을 하지 못하는데, 그 때, 아네샤가 그런 나를 대신해서 서로 모여서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는 답을 하고서 이외에 찻집에 함께 들르거나 함께 교외 혹은 이웃 마을이나 도시로 놀러 나가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르나 씨께서 말을 못 하시고, 아네샤 씨께서 대신 말을 이어가시는 것으로 보아, 라르나 씨께서는 친구들간의 놀이나 모임에 적극적이지는 않으신 편 같은데......"
"맞아요." 이후, 미냐가 나에 대해 물음을 건네려 하자 아네샤가 맞다고 바로 화답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다른 일 없이 집 주변 일대를 오가기만 할 뿐이라고 말하고서 집 주변이라고 해도 이웃 마을이나 도시에 가기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늘 조용히 지내다가 오는데, 도중에 들판에서 체력 단련이나 마법 혹은 무기 수련을 하는 것 같다고 나에 대해 이어 말하기도 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면 주로 책을 읽을 곳을 찾기 위해 찻집에 가는 것이 아니면 들판을 돌아다니는데, 이를 두고 아네샤는 나에 대해 들판에는 무기, 마법 수련을 위해 가는 것 같다고 말하고서 자신이 나를 찾아와서 대련을 한 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달리 놀 거리를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고, 이후, 내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을 때, 참 재미 없게 산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음을 밝혔다.
"재미 없게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서운함을 느끼신 적은 없나요?"
그러자 미냐가 나에게 재미 없게 산다는 말에 대해 서운해 한 적이 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딱히 서운함을 느낀 적은 없다고 말한 이후에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그렇게 재미 있게 사는 편은 아니었던지라 아네샤의 그런 말에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아네샤 역시 정색하고 진지하게 말하지는 않았음을 알았기에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기도 했다.
"그 이후로 한 번씩은 아네샤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함께 재미있는 일을 해 보기도 했었지요. 아네샤가 흥미로운 곳, 재미 거리를 많이 알고 있었어요."
이후, 나는 아네샤를 잠깐 바라보고 미소를 띠는 채로 그에 대해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아네샤는 주로 여럿이 모여 앉아서 하는 게임들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같이 마법 수련을 하는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그런 아네샤를 보면서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놀 거리를 많이 즐기면서 마법 수련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그리고 꽤 진지한 의문이었다고 답을 하고서 그래서 그의 마법 능력에 대해 많은 걱정과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막상 사냥 등의 실전에 그가 나서는 모습을 보고, 그간 수련, 단련에 매진하던 나와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마법을 활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번씩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법 수련에 큰 영향을 끼치거나 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또 이런 수련이나 단련은 마음 먹기 달렸지, 얼마나 시간을 들여 하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라르나 씨께서는 낚시 해 보신 적 있어요?"
"낚시를 배우거나 하지는 못 해서 하지는 못 했네요." 이후, 미냐가 나와 아네샤에게 낚시를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해 본 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 친구들 중 일부-세미아와 리마라-는 낚시를 배워 본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작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고 이어 말하기도.
"낚시는 주로 루시언 할아버지께서 가르치시지요?"
"미라는 루시언 할아버지께 배우셨대요. 그리고 이전에는 라니아 아줌마께서 할아버지께 낚시 기술을 배우신 다음에 그것을 그대로 마을의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고 계시지요."
그리고 과거에는 루시언 노인이 낚시에 관해 요정들 그리고 고양이 소녀들에게 가르치고는 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루시언 노인은 오래 전부터 고기잡이 경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섬 살이를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고기잡이를 하느라 어느새 고기잡이가 많이 늘기는 했다고 말했다고 하며, 미라는 그 시점에서는 이미 그도 나이가 많아지고 낚시 기술을 전수 받은 이들이 많아지면서 낚시를 가르치는 일은 이제 안 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낚시 실력은 여전히 준수한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한창 낚시를 하실 때에는 같이 가는 이가 있었나요?"
"늘 혼자 가셨었어요."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미냐가 답했다. 그리고 요정들이나 고양이 소녀들이 같이 가자고 청한 적이 있었지만 그 요청이 있을 때마다 늘 거절하고 혼자 어선에 탔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선을 건조할 때, 그를 위한 작은 전용 어선을 따로 만들어주었다는 일화가 있기도 했다.
"그 배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그 배는 지금도 선착장에 잘 있어요, 이제 다른 이들의 배가 되었지만요. 그 배는 지금 다른 이들의 배가 된지 오래예요. 할아버지께서 이제는 해안에서만 낚시를 하시게 되었고, 그래서 배를 다른 이들에게 물려 주셨어요. 이제는 바다로 나가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었는데."
"그래요?" 이에 아네샤가 그렇게 묻자, 미냐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낚시를 그만두고 멀리 떠나가고 싶다는 말을 한 번씩은 하고는 했었음을 밝히기도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루시언 노인을 만났을 때, 그로부터 들었던 '언젠가는 클라리스, 미라의 곁을 떠나 멀리 떠나가겠다' 라는 말, 이제 클라리스도, 미라도 누구의 도움 없이 충분히 자립할 수 있으리라는 말이었다. 그 말들을 떠올리며 내가 미냐에게 미라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께 직접 듣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할아버지께서 언젠가는 떠나실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있었어요. 클라리스나 라니아 아줌마께서도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한 적은 없지만 클라리스, 라니아 아줌마라면 이미 충분히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자신 역시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는 하고 있다고 말하고서 아마도 그는 밤중, 아이들이 한창 잠들고 있을 때에 몰래 길을 떠나려 할 것이라 그의 행보에 대해 말을 건네고서 그가 떠날 것 같은 밤에는 잠들지 않고 그와 잠시나마 동행하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라리스 씨도 동행하도록 하시겠지요?"
"그렇게 하려고요, 말을 하지 않더라도 클라리스는 할아버지와 어떻게든 동행하려고 할 거예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미라가 바로 답을 했다. 그리고 클라리스를 비롯한 여러 마을 사람들의 은인이었던 만큼,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길을 떠나갈 노인에게 수많은 말들을 전해주고 싶다고 미소를 띠며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서 또 말했다.
"슬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고 해요, 아쉬워하고 슬퍼하면 그 분께서도 슬픔에 북받칠 테니."
그리고 숨기려고 해도 드러날 정도로 깊은 한을 품은 사람을 슬프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르나 씨, 아네샤 씨,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면 또 오실 수 있어요?"
"기회가 되면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려울 것 같아요."
이후, 미라가 나와 아네샤에게 다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음을 건네 보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어딘지도 모르는 곳이기도 해서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잊지는 않을 수 있겠지요?"
"저희도 잊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아네샤가 답했다. 나 역시 답은 하지 않았지만 성계를 떠나고, 모든 여행을 마치고 나면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미라는 이러한 아네샤의 대답에 딱히 아쉬워하거나 서운해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괜찮아요, 라르나 씨, 아네샤 씨, 두 분께서 제 곁을 떠나고 나면 아마 두 분을 잊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지나가는 인연치고 조금은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라고 말한 이후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물건을 들고 라니아에게 가 보려 한다고 말하고서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나와 아네샤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나도 좋다고 화답한 다음에 미라가 미냐와 함께 남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그들이 라니아의 집으로 곧바로 갈 것으로 여기며 그들과 일단 헤어지고 나서 날개를 펼치고 날갯짓을 하면서 마을의 거리 한 곳, 라니아의 집이 있는 곳으로 날아서 가려 하였다. 라니아의 집은 남쪽 교차로의 북쪽 길 너머에 있는 내냇물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편, 학교가 있는 그 동쪽 건너편의 뜰이 있는 집이었다. 그래서 우선은 큰 나무가 보이는 동쪽 근방의 교차로로 날아간 다음에 북쪽 너머, 냇물이 보이는 쪽으로 나아가고, 냇물을 찾으면 북동쪽 방향에 있는 뜰을 가진 집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고 보니, 클라리스 씨나 야누아 씨께서는 저녁에 먀미아 성계로 가실 것이라고 마녀 분께서 말씀하셨었지?"
"그랬지." 그 도중에 아네샤가 클라리스, 야누아 등이 언제 먀미아 성계로 저녁에 갈 것인지에 대한 마녀의 추측을 거론하고, 이에 나는 그랬었다고 화답을 한 이후에 한밤중 혹은 새벽 이른 시간 대에 그들이 아테다르마로 갈 것 같다고 그들에 대한 추측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저녁 즈음이면 그 쪽으로 가시려 하실까, 그 분들께서?"
"그것이야 그 분들 나름이겠지." 이후, 아네샤가 그 추측이 사실이 될지 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가 바로 그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하는 나름일 것이라 화답하고서, 그에 이어 어지간해서는 사실이 될 것 같아 보이기는 하다고 마녀의 추측에 대한 내 생각을 이어 말하기도 했다.
서쪽 해안에서 비행을 개시한 이후, 날갯짓을 하면서 마을 상공 위를 날면서 라니아의 집을 찾아갔을 무렵에는 이미 라니아 그리고 클라리스가 이전과는 다른 편한 복장, 베이지색-라니아-, 연두색-클라리스-을 띠는 셔츠와 연두색을 띠는 긴 치마 그리고 하얀 앞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서 집 근처의 뜰 서쪽 그리고 동쪽에서 채소들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멜빵 바지에 흙 먼지가 묻어 있어서 이전에는 조금이나마 힘든 일을 잠시나마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에 열중이시네, 이런 때에는 말을 걸거나 하지 못하겠다.'
클라리스는 밀짚 모자를 쓴 채로 과일 나무를 보살피고 있었다. 평온함 속에 즐거움이 묻어나는 듯한 미소에서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선뜻 들지 않고 있었다. 한창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만큼, 나는 라니아의 집 근처에서 아네샤와 함께 나란히 자리에 앉아서 라니아 그리고 클라리스가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였다.
"아줌마~ 재미있는 물건 하나 가져왔어요~ 한 번 봐 주세요~"
그 때, 미라, 미냐 그리고 리피가 라니아에게 다가오려 하였고, 이어서 미라가 라니아 그리고 클라리스에게 재미난 물건을 하나 가져왔다며 자신이 북서쪽 해안에서 입수해 온 기록 장치를 보여주려 하였지만 두 사람이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말을 잇거나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대신, 그는 근방의 나무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던 감빛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블라우스와 짧은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갖춘 피다 (Pida) 와 함께 놀고 있던 린나 그리고 모니카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장치를 보여주려 하면서 그에게 부탁을 하려 하였다.
"린나, 이것 한 번 보지 않을래?"
"미라 언니, 그게 뭐예요?" 그러자 린나가 놀다 말고 미라에게 다가가서 무엇을 가져왔느냐고 미라가 가져온 장치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미라는 그 답으로써 어머니라면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잘 알 것이라고 그 물품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면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그에게 물건을 전해주려 하다가 다른 생각이 들기라도 했는지 물건을 다시 받아들고서는 나무의 기둥에 걸터 앉은 채로 클라리스 그리고 라니아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려 하였다.
"라르나 언니, 아네샤 언니도 와 계셨네요."
"미라 씨께서 갖고 계신 물건이 어떠한 물건인지 간단한 답이라도 듣고 싶어서."
이후, 모니카가 나와 아네샤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로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미라가 손에 든 물건을 보지 않았느냐고 그에게 묻고서 그 물건의 용도를 린나의 어머니로부터 들으려 하고 있다고 미라의 행동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미라, 미냐도 와 있었네, 지금까지 라니아 아줌마 일 거들어 주느라고 라니아 아줌마 집에 있었어."
그 때, 클라리스가 일을 마치고 미라 그리고 미라의 오른편 곁에 서 있던 미냐에게 다가오면서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무엇을 손에 들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어서 그 물건을 자신에게 보여달라 청한 후에 미라로부터 물건을 받아들고서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라니아 역시 일을 마치고서 공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이제 일을 마치고 목욕한 다음에 옷을 갈아입으려 한다고. 그러면서 미라에게 조금 있다가 집으로 같이 들어와 보라고 청하기도 했다. 이에 미라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알겠다고 화답을 했다.
"라르나 씨, 아네샤 씨께서도 오셨네요,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것인지."
그러자 내가 이전에 모니카에게 해 주었던 바대로의 대답을 그에게 거의 그대로 들려 주었고, 이에 모니카는 미라가 또 신기한 물건을 가져온 것 같다고 말하고서 클라리스와 미라가 간혹 북쪽 교외에 갔다 오면서 이런저런 신기한 물건들을 가져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작 쓸모 있는 물건은 한 개도 없었지만요."
하지만 린나, 모니카 그리고 피다, 그 셋 중에서 클라리스, 미라가 가져오는 것들 중에 쓸모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었던 모양.
"미라, 우리도 집으로 갈까, 아니면 라니아 아줌마하고 클라리스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릴까."
"그냥 여기서 기다리자, 클라리스가 아쉬우면 밖으로 나오게 하겠지."
이후, 미냐가 미라에게 라니아의 집으로 들어갈 것인지를 묻자, 미라는 나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자고 청하고서 클라리스가 아쉬우면 밖으로 나올 것이라 그에 대해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 때, 곧바로 현관문이 열리면서 클라리스가 잠깐 밖으로 나오더니, 미라에게 "안으로 다 들어와!" 라고 외쳤다.
"너희들, 나하고 아줌마하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어디서 아줌마를 밖으로 끌어내려고! 너희들, 빨리 들어와!"
그 후, "뛰어 와!!!"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와 동시에 미라와 미냐 모두 부리나케 집의 현관문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린, 모니카는 그들이 집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리피가 뛰어가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그들에 대해 "저렇게 될 줄 알았어요." 라고 말했다. 이후, 리피는 클라리스가 어렸을 때에는 성미가 불꽃 같은 사람이었고, 그 기질이 아직 남아있는 편인데, 그 성질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이후, 나는 야누아로부터 클라리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하고서 한 때는 장난도 많이 치고, 화도 잘 내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그 성격에 변화가 왔던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하기도 했었다.
"그들의 일은 그 정도로 놓아두고, 함께 북쪽 교외로 가 볼까요."
이후, 리피는 나와 아네샤에게 북쪽 교외로 가 볼 것을 청했고, 이후, 리피는 동쪽 너머로 린나, 모니카 그리고 그들과 함께 놀고 있던 피다를 데리고 북쪽 교외로 앞서 나아가고, 나와 아네샤가 그런 그들을 따라 북쪽 길목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클라리스 씨께서 야누아 씨와 함께 정하셨대요, 해가 질 즈음에 먀미아 성계로 가겠다고."
그리고서 날이 어두워지면 병기들이 밖으로 나온다는 정보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그래서 밤중에 병기들이 아테다르마의 산악 기지 부근을 오갈 때에 그들을 습격해 처치하면서 산악 기지 내부로 돌진해 들어간다고 야누아를 비롯해 먀미아 성계에 있는 이들이 산악 요새의 공략 방향을 결정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다소 무모하기는 하지만...... 소수의 힘으로 대규모 전력을 상대하려면 한 번의 고난은 감수해야 하겠지요."
"그러게요." 피다가 건네는 말에 아네샤가 그러할 것이라는 의미의 화답을 했다. 이후, 리피는 바깥에서의 전력은 사령관에 해당되는 이들의 지휘 및 통제를 받는 병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개체가 파괴되면 그들 전부가 무력화된다고 하며, 병기들이 밖으로 나가면 기지 내부는 거의 비워지는 만큼, 내부 진입이 용이해질 것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 하고 있었다.
여러 거리와 건물들이 보이는 길을 거쳐 마을의 북쪽 경계를 지나 도달한 곳. 형체만 겨우 남아있는 건물들의 폐허 그리고 무너지다 만 건물들과 건물이 무너진 흔적이 무성한 풀밭, 무릎 높이까지 자라나는 기나긴 풀들까지 보이는 초원 사이로 흩어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초목은 건물 외곽 뿐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자라나고 있었으며, 건물 안쪽에서 자라난 작은 풀들이 작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문명 속에서 살아간 흔적은 이렇게 남아 있었지만 인간은 이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며, 문명의 자세한 모습 역시 남아있지 않았다. 이 유적에 묻힌 수많은 유물들 중 일부는 아와레 마을 사람들에 의해 수거되어 도서관 등에 전시되고 있을 것이고, 일부는 누군가의 집에 잠들어 있을 것이며, 나머지는 리에타 등에 의해 물건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아르나이 초원의 한 풍경 같아."
유적에 도달하자마자 아네샤는 날갯짓을 하면서 풀밭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건물들 사이를 날아다니고는 했으며, 나 역시 풀밭 사이에 자리잡은 건물들의 잔해 사이를 오가면서 건물들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려 하는데, 아네샤로부터 아르나이 초원의 한 풍경 같다는 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맞아, 아르나이에서도 이런 풍경을 한 번씩 볼 수 있지."
아르나이 초원, 그리고 그 남쪽의 다르시스 (Darsis) 숲 부근에 이와 같은 유적지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으며, 제법 규모 있는 시가지의 흔적이 남은 곳도 있었다. 외형이 온전히 남은 건물들도 있었고, 그 건물들 위로 올라가 본 적도 있었지만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을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구 세계가 멸망한 이후로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몇몇 건물들은 외형을 통해 어떤 건물들이었는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 그 건물들 중 대다수는 학교나 종교에 관한 건물들이었다.
"대성당처럼 보이던 건물 하나 있었지, 초원의 한 곳에."
옛 거리의 폐허 아니 흔적이나 다를 바 없던 무너지다 만 건물들 위를 오가다가 다시 풀밭 위로 내려오고서 꽃들이 가득 핀 풀밭 위에서 아네샤는 내가 자신의 바로 앞에 이르자마자 아르나이에서 대성당 건물을 본 적이 있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맞아, 네 말 대로 초원의 다르시스 숲 너머 남쪽의 풀밭 한 곳에 있었잖아."
그러자 내가 바로 답하고서 나무들 사이에 둘러싸인 풀밭의 한 곳에 성당의 유적이 있었음을 밝히고서 성당에 이르자마자 아네샤가 비를 피하기에 참 좋은 곳이라 말한 적도 있었다고 아네샤가 이전에 했던 말에 대해 언급을 했다. 아네샤는 그 때에 그가 했던 말 자체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밤이 되면 음침해지고 유령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다른 애들이 걱정을 하는데, 그 때, 이런 말이 나왔었지, 유령 따위가 뭐가 무섭겠냐고."
"그것은 네가 한 말이었어."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서 다른 것은 기억해도 그런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나에게 핀잔성의 말을 건네기도.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광경을 근처에서 리피와 피다가 린나, 모니카와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정겨운 광경인 것 같아, 그렇지 않아?"
"그렇지, 한 때에는 클라리스 씨, 야누아 씨, 마르차 씨도 저랬다던데."
리피의 그 말에 피다가 바로 리피에게 클라리스, 야누아 그리고 마르차가 아주 어렸을 때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리피가 그렇다고 답을 했다. 처음에는 리피, 피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말다툼을 멈추려 하면서 아네샤에게 알렸다.
"요정 분들께서 듣고 계셔, 적당히 하자!"
"다 듣고 계셨을 텐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그래봐야 소용 없다는 의미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어차피 다 드러난 것, 이제부터는 적어도 리피 등의 앞에서는 더욱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도 좋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안해졌는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다가 린나, 모니카 사이에 있던 리피, 피다에게 다가가서는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먀미아 성계로 가려면 전이의 수단 같은 것이 필요할 텐데, 그런 수단은 어떻게 마련되기로 예정되어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셨어요?"
"클라리스 씨께서 말씀하셨어요, 때가 되면 마법진이 이 일대의 상공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먀미아 성계를 향하는 마법진은 라니아 씨께서 미리 설치해 두셨대요."
아네샤의 물음에 리피가 답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클라리스, 미라, 야누아 자매 등도 올 것이라 말하고서 그 때에 마법진을 통해 먀미아 성계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리피, 피다가 아네샤에게 나와 아네샤 역시 먀미아 성계로 갈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이번에는 내가 아네샤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가서 아네샤를 대신해서 답했다.
"리피 씨께서는 들어보셨을 거예요, 먀미아 성계의 아테다르마 산악 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섬에 자리잡고 있던 그 사악한 병기와 같은 병기가 산악 지대를 장악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성계의 평화를 어둡게 하는 그런 이들을 없애야 한다고 여기고, 그 일에 나서기로 한 거예요."
"그러셨군요." 그러자 리피가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마법진이 생성되려면 아직 멀지 않았느냐고 묻고서, 때가 되면 다시 오기로 하고, 우선은 마을로 돌아갈 것을 청하니, 나 역시 알겠다고 화답을 한 다음에 아네샤 등과 함께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이러한 발걸음에 리피, 피다 그리고 린나, 모니카가 동행하고 있었다. 마을로 돌아가자마자 리피, 피다 그리고 린나와 모니카는 라니아의 집이 위치한 남부 구역으로 나아가고, 나와 아네샤는 북부 중심가에 머무르게 되면서 나는 린나, 모니카 일행과 헤어지게 되었다.
마을의 북부 중심가, 시골의 마을과 같은 분위기였던 남부 시가지와 달리 북부 시가지는 고향인 루샤트 (Lusyat) 와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심가를 따라 상가가 펼쳐져 있고, 그 주변 일대에 크고 작은 여러 집들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고양이 소녀들과 요정들이 길 위에 머무르거나 길을 오가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집들 사이로 보이는 벤치들 그리고 큰 가로수가에 위치한 나무 의자에 요정들이 앉아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활발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이야, 그렇지 않아?"
"루샤트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는 해도." 내가 건네는 말에 아네샤가 즉답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어디 가서 잠시 앉아있을 것인지를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잠깐이나마 앉아있어 보자고 화답했다. 그리하여 나는 북부 중앙로 서쪽 인근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나는 길 위를 지나는 여러 고양이 소녀들 그리고 요정들의 모습을 한 번씩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매 긴 블라우스와 짤막한 감색 치마 그리고 감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 레미스와 무척 닮은 이가 왼쪽의 귓가에 꽃 장식을 달고 있는 요정 소녀가 나와 아네샤가 앉은 근처의 길을 지나가다 나와 아네샤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 분께서는 이번에는 여기로 오셨네요, 돌아다니기에는 여러모로 심심한 곳인데."
레미스와 닮아 보였던 요정 소녀는 다름 아닌 레미스 본인이었다. 그는 아와레는 두 구역으로 구분이 되며, 북부 그리고 중앙 구역은 평범한 마을의 거주지 같은 곳이고, 상업 및 유락 시설은 남부 구역에 집중되어 있어서 도시에서 재미 거리를 찾기 위해 도시 사람들은 남부 구역에 주로 머무른다고 말하고서 다만, 북서쪽 구역에는 큰 호수가 하나 자리잡고 있으며, 그 호수 주변 일대의 경치가 나름 좋기는 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풍경도 계속 보다 보면 재미 없고, 심심해요~. 무릇 재미있게 지내고 싶으면 조금이라도 활발한 곳에서 카페라도 한 잔 마시면서 보내는 것이 최고지요~."
레미스는 잠깐 들렀다가 가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역시 활발한 곳에 있는 것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서 남쪽 구역에 있도록 하는 편이 좋다고 다시 한 번 말을 건네고서 나를 지나쳐 갔다. 그는 북부 구역의 도서관에 간다고 말하고서 남서쪽 구역의 대형 도서관에 비하면 작지만 나름 괜찮은 책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공간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하며,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자기 집-남서부 구역에 있다-에서 비교적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이용한다고.
"야누아를 만났어요, 날이 저물 즈음에 북쪽 교외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레미스는 내 곁을 떠나가면서 나와 아네샤에게 알려 주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그러할 것임을 충분히 알아차리고 있어서 크게 유의미한 정보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발걸음을 옮기어 다시 남부 구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한 동안 남서부 구역 일대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하나 있었으니, 남서부 구역의 남서쪽 가장자리 즈음에 자리잡은 어느 가게로 세니티아 성계권에서는 행성 내 지역마다 하나씩은 있다는 고문명 시대의 유물을 취급하는 골동품 상점이었다. 이 상점에는 여러 고문명 시대의 유물들이 입구 근처에 진열되어 있었으며, 비교적 가벼운 것들이 대다수였지만 진열대의 하단에 있는 상자처럼 생긴 것은 재질부터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굉장히 무거워 보였는데, 워낙 커서 눈에 너무나도 잘 띄었다.
"이 상자처럼 생긴 물건은 아르나이에도 있었지?"
"응, 그 때 보았던 골동품 상점에도 하단 즈음에 이런 무거운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어."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 대장장이들, 유리공이 아니면 사 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물건이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에 버거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런 골동품 상점마다 커다란 상자처럼 생긴 유물들이 늘 진열되어 있었지만 사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골동품 상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는 인형들이라든가 아니면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유리병들이었다. 이런 병들은 장식용으로는 참 보기 좋았고, 그래서 한 때는 나도 이러한 병들에 욕심을 냈던 적이 있다.
"사 가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 때, 진열대 안쪽에서 황갈빛 고양이 귀 그리고 주황색 긴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어린 고양이 소녀, 하얀 티셔츠와 무릎까지 내려가는 청바지 차림을 한 고양이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진열대 바깥 쪽에 있던 나에게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지 여부를 묻고 있었다.
"어떤 물건들이 인기가 많나요?"
"버로 앞에 보이는 것들 보이시나요? 그 작은 병들이 인기가 많아요."
이후, 아네샤가 고양이 소녀에게 묻자, 고양이 소녀는 답으로 진열대의 가장 위쪽에 자리잡은 작은 유리병들을 가리키면서 그 병들이 인기가 많다고 답한 다음에 그와 더불어 무지개색을 띠며 빛나는 원반들도 있는데, 그것들 역시 인기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기가 많다고 했지만 이런 유물들은 고문명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주로 사 가는데, 그런 사람들 자체가 별로 없어서 실제로는 많이 팔리지는 않는다고 유물들에 대한 언급을 했다.
"이런 병들의 원래 용도가 무엇인지는 알고 계세요?"
"잘 알지요, 이 안에 알코올 (Alcohol, Alko-ol, Alkuhl) 이 담겨져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고문명 시대의 인간들 중에는 보통 사람들이 아닌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하고서, 이상한 냄새와 맛을 내는 액체를 즐겨 마시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유리병들을 구경하는 나와 아네샤에게 놀랄만한 이야기로 들려준 듯해 보였지만, 이미 나와 아네샤 모두 이미 몇 번은 들어본 이야기라 그것에 대해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뜻 밖이네요, 여러모로 놀랄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전에 이미 몇 차례 들은 이야기라서 그래요." 그러자 나를 대신해 아네샤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해 하는 듯이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서 그 정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자신이 놀랄 줄 알았다면 생각이 다소 모자란 것 같다고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고양이 소녀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다소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역시...... 제 생각이 부족했나 보군요."
그러더니, 그는 나와 아네샤를 보더니, 나를 비롯한 두 사람이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를 전해 주겠음을 알렸다, 자신을 당황하게 만든 그 보상이라고. 그는 몇 가지,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는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고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먀미아 성계에 가신다고 하셨지요? 라니아 씨께서 두 바람의 정령인가 요정인가 하는 분들께서 먀미아로 가실 것 같다고 말씀하시던데."
직접 라니아, 클라리스나 야누아 등에게 먀미아로 가겠다고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그렇게 추측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래서 그들 중 일부가 상점을 방문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전했던 것 같다. 그런 말을 건네고서 그에 이어 일행의 목적에 관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세니티아의 옛 주인이었던 옛 인류의 흔적을 찾아가신다고 하시기에 말씀드리려고 해요, 그 곳은 옛 인류와는 전혀 관계 없는 곳이에요. 그럼에도 가시는 것은......"
"그 곳에 세상에 위협을 가하는 기계 군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화답했다. 그러자 고양이 소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역시 그렇군요." 라고 말하더니, 다시 차분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이면서 먀미아 성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려 하였다.
"먀미아 성계는 구 인류의 행보와는 전혀 관련이 없기에 구 인류의 흔적을 찾아가거나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구 인류와 아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닌 것이, 구 인류의 후예라 할 수 있는 루마 (Luma) 성계인들의 정령화한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루마 성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들은 바 있었다. 구 세니티아에서 이주한 인류의 거주지로 후일 재난을 피해 부유 대륙으로 이주해 인류의 주 무대가 부유 대륙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세간에 알려진 루마 혹은 루마 제국의 역사는 부유 대륙에서의 역사라 칭해도 상관 없다. 한 때는 인류의 문명을 계승한 찬란한 문명을 드높였던 곳이었으나 어느새 기계 군단에 의해 닥쳐온 재앙으로 인해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알려준 또 다른 정보로는 먀미아 성계에서 야누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먀미아 성계에서 용병단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실상은 대략 이러하였다고 한다.
"사실, 그 용병단은 그 구성원이 본인을 비롯한 신디 (Scindi) 4 자매 이외에는 아무도 없어요. 보조 요원들이 있기는 해도, 어린 아이들이라 작전 중에는 안전 지대로 피신하고 있을 뿐이고, 결국에는 4 자매의 동생들이라 언니들을 따라 다니는 아이들 정도일 따름이지요. 야누아가 다른 용병들을 기용하거나 할 생각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라서 용병단이라기보다는 그냥 자매들이 용병 집단처럼 행동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거예요."
그러면서 고양이 소녀는 중요할 것 같은 정보 하나를 이전보다 더욱 차분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전해 주었다.
"다만, 그 용병단 아닌 용병단이 중요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어요. 그 자매들의 전투 기술 및 무기를 다루는 기술은 한 때, 여러 행성계에서 맹위를 떨쳤던 '묘족 신성 기사단' 의 그것들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라니아 아줌마께서 틈나는 대로 그 자매들에게 전투 기술을 전수해 주셨던 것 같아요."
이외에 먀미아 성계의 무녀가 먀미아 성계는 먼 미래에 세상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는 정보를 전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고양이 소녀가 전한 바에 의하면,
"먀미아 성계는 사실 드넓은 대륙에 수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고, 잠재력은 인근 행성들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무녀 분의 말씀이 마냥 농담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 않더라도, 먀미아 성계의 가능성에 대해 베라티사를 비롯한 여러 행성계에서 주목을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전에 들은 바가 있기는 했다. 베라티사의 현인 예나 셀레니아라는 자 역시 이를 두고 '범상치 않은 행성' 이라 지칭할 정도였으니
이외에 그가 긴히 알려진 3 가지 정보가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고, 알려주는 것 자체가 위험한 정보라고 하면서 당시의 상점 고양이 소녀가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나 이외에 듣는 사람이 있을지 확인해 보기까지 할 정도로 비밀을 유지하려 애썼던 것으로 기억난다. 상점의 고양이 소녀는 처음의 3 개 정보를 알려주려 할 때에는 자신이 뭔가 특별한 정보라도 알려주려 하는 듯이 으스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차분하게 목소리를 냈으며, 목소리 크기 역시 이전 때에 비하면 무척 작았다.
- 그러할만도 한 것이, 이 3 가지 만큼은 한결 같이 지금 당장 밝히기에는 위험한 사항들이고, 그래서 먀미아 성계에 이르기 직전인 이 시점에서는 상점 고양이 소녀가 나중에 알려준 3 가지에 대해서는 일단은 말을 아끼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