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lphid 4th - 4. Green Plains, Dark Blood : 8


  세오프리마 (Seoprima). 엘베 족들의 말로 '첫 번째' 정도의 뜻을 갖고 있는 곳이다. 아르데이스라 칭해지게 된 행성계 인류가 진화해서 태어난 엘베 족의 첫 번째 거주지로서 그들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도시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 도시가 세상에 드러냈을 때에는 그들이 '세계수 (Weldtrew)' 라 칭해졌던 거목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과 나무들이 흩어진 군락의 모습을 보였다고 하나, 이후, 집들이 많아지고, 거리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나름 도시라 칭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엘베 족의 거의 유일한 '대도시' 라 칭할 수 있는 곳으로 대략 1 만 명 정도의 거주자들이 산다고 알려진 곳이다.
  "루샤트에는 몇 명 정도 산다고 했지?"
  도시에 접근할 무렵, 리마라가 내게 묻자, 아네샤가 나를 대신해서 답했다. 추산에 의하면 많아야 300 명 정도일 것이라 했다. 그 정도였으니, 만 명 거주지는 그야말로 큰 도시였던 것이다. 이후, 들은 바에 의하면 엘베 족 거주지 중에서 그토록 많은 거주자들이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저 세오프리마란 곳이 엘베 족 나라의 수도에 해당되는 곳이겠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하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사실상 수도라 할 수 있는 곳일 테고."
  이후, 리마라가 아네샤에게 다시 묻자, 그가 그렇게 화답했다. 그 무렵, 나는 세오프리마의 중심 구역 한 지점에 이른 이후에 그 곳에서 고도를 낮추려 하였고, 그에 따라, 나를 뒤따르던 아네샤 등 역시 나를 따라 고도를 낮추어, 중심 구역의 큰 나무가 위치한 그 북서쪽 풀밭의 한 곳에 이르려 하였다. 우선 앞장서 가던 내가 풀밭에 날개를 접으면서 착지했고, 이어서 아네샤를 비롯한 뒤따르던 이들 역시 차례로 착지하면서 일행은 그렇게 엘베 족의 거주지, 세오프리마의 중앙 구역에 이르게 되었다.



  도시는 중심에 자리잡은 정령의 거목 '(Dë Spiritis Greattrew)' 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중심의 거목을 둘러싸는 중심 구역 (Kernarea), 그리고 그 구역을 둘러싸는 일반 구역 (Gemainarea)' 이 도시의 핵심 구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수장인 족장의 거처는 거목의 남쪽 부근에 있다고 했다.
  세오프리마의 시가 구역은 도시라 하였으나, 시가지에는 건물보다는 나무들 (그것도 한 아름 이상 되는!) 의 모습이 더 많이, 자주 보였으며,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었을 나무들이 얼마나 높이 솟았는지, 고개를 높이 올려야 온전한 하늘의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거목들 사이마다 여러 2, 3 층 짜리에 이르는 정돈된 건물들의 모습이 보여, 시내의 도시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구역을 도시라 칭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거목들 사이에 보였던 여러 큰 건물들과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불빛 때문이었다.
  중앙 남부 구역의 한 가운데 즈음에는 광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광장에는 '세계수' 라 칭해지던 거목을 형성화한 듯한 황금 소조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거목을 축소한 것일 텐데, 그럼에도 도시에 자리잡은 어지간한 건물들보다 컸다. 중앙 남부 구역은 그 황금 소조상이 자리잡은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며, 길을 따라 구획이 나뉘어진 듯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중앙 구역은 도시의 근간이라 할 수 있었을 거목이 머지 않은 곳이었던 만큼, 북쪽 너머로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주변 일대를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보니, 그 모습이 잘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족장의 거처가 거목 부근에 있다고 하니, 족장의 거처가 있는 쪽으로 가야 그 면모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가지들마다 이파리들로 가득한, 하늘 높이 솟아난 큰 나무들은 하단에 수정으로 만들어진 장식들이 여럿 달려 있었으며, 나무들 근처에는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은색을 띠는, 상단에 외부가 수정으로 이루어진 등이 달린 길다란 기둥들이 자리잡고 있어, 그것들이 가로등 역할을 하는 듯해 보였다. 날이 흐린 탓인지, 가로등은 불빛을 발하지 않았으나, 나무들 사이의 수정 장식들은 금색, 하얀색을 띠며 빛을 발했다. 수정 장식들은 빛의 기운을 품고 있다가 조건에 따라 빛을 발하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한 낮에 도달한 만큼, 광장 그리고 그 주변 거리에서 여러 엘베 족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남성 엘베 족의 모습도 시내에서는 잘 볼 수 있었으며, 오히려 여성 엘베 족보다도 더 흔하게 볼 수 있어 보였다. 광장을 벗어나, 북쪽 길을 따라 나아가면서 나무들 사이에 자리잡은 시장에서 여러 물건들을 파는 엘베 족 상인들을 지나쳐 가는 동안 도시의 거주민이라 할 수 있을 엘베 족 사람들의 면모를 하나씩 지켜보려 하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엘베 족 사람들은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평범한 사람들 같아 보였으며, 외견도 예상 이상으로 다양했다. 그들의 조상이었을 인간만큼은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느낌의 복장을 갖추려 하고 있었으며, 홀로, 혹은 몇 명씩 무리를 지으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거나, 각자의 일을 하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깔도 마냥 노란색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피부색도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갈색 피부를 가진 이들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런 이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세간에 알려진 인식에서와 같은 노란색 머리카락에 밝은 피부 색을 가진 이들이 많기는 했으나, 그런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프로토엘베 (Protoelve) 라 칭해진 1 세대 엘베 족은 나름 인간과 닮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 시대 엘베 족의 주류인 3 세대에 이르러서는 그련 면모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장에 내가 시가지를 돌아다닐 때만 하더라도 여성 엘베 인들의 수가 많았고, 인간을 나름 닮았던 외모 역시 요정족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었던 것. 심지어 3 세대에 이르러서는 세계수라 칭해졌던 정령의 거목으로부터 정기를 받아 그것을 통해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세니티아 정령족이나 베라티사 마녀족의 이야기 같잖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리마라가 엘베 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세미아에게 물었다. 그러자 세미아는 "나도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다고 생각했어." 라고 화답하더니,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최근의 추세가 그래, 세대가 거듭될 수록, 인간처럼 번식해 오던 종족이 정령족, 마녀족들처럼 정기를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고, 그것에 따라 점차 요정화되어 간다고 했었어. 그것에 대해, 일부 마법사들이 엘베 족이 그간 누려왔을 '인류의 계승자' 자격 상실의 우려를 했다는 소식을 모처에서 들은 바 있기도 해."
  "인간과 계속 멀어지니까?" 이에 아네샤가 세미아에게 물었고, 그러자 세미아는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 들은 바에 의하면, 엘베 족의 머리카락 길이가 길어지고 있으며, 머리카락 재생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머리카락 길이가 길고, 재생 속도가 빠른 것은 정령족, 요정족의 특징으로 이련 면모가 없던 엘베 족은 조상들인 인류와 같이, 다양한 머리카락 길이를 보여줄 수 있었고, 이런 단발 양식은 요정족과는 다른 '인류의 계승자' 로서 엘베 족이 누린 긍지이기도 했다. 세간의 현상은 그런 긍지를 보여주기 어렵게 되어간다는 것으로, '인류의 후계자' 라는 엘베 족의 정체성에 관한 마법사들 혹은 마법 학자들의 주장은 이것에 기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네들도 나름 걱정 거리가 있기는 한가 보네." 내가 말했고, 세미아가 그런 내게 "그런 것 같아." 라고 화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보니, 엘베 족에는 마법사들이 많다고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후, 광장의 북쪽 상점가에 이를 무렵, 앞장서 가던 나의 등 뒤로 아네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마법의 가호를 받은 엘베 족은 그 덕분에 마법 문명이 발달하고, 마법사들이 곳곳에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어릴 적에 들었었다. 세미아, 아네샤, 리마라도 비슷한 시기에 들었을 테니, 이야기꾼이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아이들이 이야기꾼을 찾아서 모였기 때문이었고, 나를 비롯한 4 사람도 그런 아이들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엘베 족은 선천적으로 마법의 힘을 강하게 받아, 그로 인해 마법을 고도로 발전시킨 이들이라 하였고, 또, 인류의 계승자로 인류 문명의 재현을 시도하려 한 이들이라 하기도 하였다. 이들 모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 엘베 족에 관한 마법 문화를 발전시킨 이들, 옛 인류 문명을 재현한 이들이라는 기록이 공존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인류 기술 문명의 재현과 마법 문화의 발달이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순이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업을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의문이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 엘베 족의 실상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엘베 족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인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주류가 될 정도로 마법 문화가 발전한 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환상적인 마법 문명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광경일 것이다. 행여, 엘베 족 거주지를 방문하려 한다면, 그런 환상은 얌전히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고 보면, 베라티사 성계가 마법사, 마녀들의 세상이라지만, 그 곳의 모든 이들이 마법사가 주 직업인 것은 아니잖아, 대마법사는 아예 없다시피하고."
  세미아가 이후,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바대로, 베라티사는 성계권에서는 마법 문명이 가장 발달된 곳이라 하였으나, 막상, 마법사 일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편이며, 마법사를 지칭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다른 주업을 가지면서 부업으로 마법사, 마녀로서 살아간다고 했다. 상술된 이유로 인해 베라티사는 마법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보급된 곳이기도 하였으나, 막상 순수한 의미의 마법사는 오히려 성계 중에서도 가장 적으며, 대마법사란 존재는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전해진 바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의아하다 여기었으나, 이후로는 그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기었다. 마법이 대중화되면서 마법사란 직업이 가지는 존재 가치가 오히려 없어져 간 탓이었을 것이다. 이는 베라티사의 이야기이지만, 그 못지 않게 마법 문명이 발달된 엘베 족 세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빵집 근처를 지나쳐 갈 무렵, 빵집에 진열된 빵들의 모습을 보았다. 루샤트에 있는 빵집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빵들의 모습을 보더니, 아네샤, 리마라가 루샤트의 빵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 빵집에 대해서는 많은 추억이 있었는데, 나도 빵들을 보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무렵의 추억을 떠올렸고, 그 추억에 관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었다.
  "화려하게 치장된 빵이나 케이크 등의 풍경은 어디 가서 볼 수 있지?"
  "그런 걸 보려면, 드벨파 족 거주지에 가야 할 걸?" 이후, 아네샤가 두 손을 머리 뒤쪽에 올린 채 걸으면서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물으려 하자, 세미아가 바로 답했다. 이후, 빵집을 지나쳐 갈 무렵, 세미아가 밝힌 바에 의하면 드벨파 족 거주지는 세오프리마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서, 갈 의지만 있으면 바로 갈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한편, 가게들이 나란히 자리잡은 거리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그 중 일부는 나무 위에 올라가거나, 건물 위로 자라난 수풀에서 뛰어노는 모습도 보였다. 간혹 나무에서 밧줄을 잡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저 애들은 무서운 게 없나 봐." 그 모습을 보며, 리마라가 말하자, 그것을 두고 아네샤가 이렇게 말했다.
  "네 어린 시절과 비슷하지 뭐." 리마라에게는 그들과 비슷한 나이 대에 다소 낮은 절벽에서 뛰어내린 전적이 있었기에 나온 말이다. 이외에 일행 사이에서는 엘베 족 사람들에게는 어린 나이에 나무나 절벽 위를 기어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 기본 소양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이는 바람의 정령들도 비슷하긴 했으며, 절벽이나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바람의 정령들이 가지는 기본 소양이 되어간 것에 대한 대화가 이어 들려오기도 했다.
  "절벽을 무서워하지 마라, 떨어지면 날아오를 수 있으니까, 그런 말이었던가."
  그 대화 도중에 내가 했던 말이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거대한 나무의 밑둥이 보이는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그 왼편 근처에 2 층 집이 하나 있었고, 그 집을 나무들로 이루어진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었으니, 그 집을 보면서 그 집이 족장의 거처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보기도 했다.
  "그 쌍둥이 자매가 족장을 찾으러 간다고 했었지?"
  "그랬지." 내가 묻자, 아네샤가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정말 족장이 저기에 있을 것인지 물었으나, 세미아가 아마 집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답하고서, 높은 사람은 찾아갈 때마다 자기 집이나 집무실에 없는 경우가 많지 않았냐고 이어 묻기도 했다. 아네샤도 물음을 건넬 때의 표정을 보니, 딱히 기대를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에오르 쌍둥이 자매가 족장의 거처를 방문한다고 했으나, 족장의 거처로 여기어진 집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미아가 예상한 바대로, 족장이 집을 비워둔 것 같았다. 집을 비워두었다면, 분명, 그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그가 있을 곳이라면,
  "저 거목이 있는 곳이겠지." 아네샤가 말했다. 그러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함부로 접근하거나 하지는 못할 거야. 중요한 곳이라 경비원이 못 가게 하겠지."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행여 비행해서 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엘베 족이 설마, 거기까지 생각 못했을까, 방비책을 세워두었고, 그래서 비행으로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시공 이동으로도 안 될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시공 이동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근방에 쉴 곳이 있는지 알아보려 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그 후, 아네샤, 세미아에게 쉴 곳을 알아볼 것을 맡기려 하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근방에 쉴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 봐! 나는 저 너머로 한 번 가 볼 테니까!"
  혹시나, 싶은 생각에 거목 쪽 길에 자리잡고 있을 엘베 족 경비들에게 출입 여부에 대해 물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거목을 향하는 길은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너머로 문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예상한 바대로, 가까이 접근해 보니, 녹색 옷을 입은 경비대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거목을 향하는 한 지점의 좌우 근처에 한 명씩 서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전의 에오르 자매가 보였던 것과 비슷한 하얀 셔츠와 연두색 반바지 그리고 녹색 조끼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갖추고 각자의 오른쪽 어깨에 진녹색 멜빵 끈에 매인 하얀 총포를 매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이는 푸른색, 오른쪽에 보이는 이는 초록색 눈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 모두 짤막한 노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듯했으나, 자세히 보니, 머리 뒤로 묶어 내린 머리카락의 아래 쪽 부분이 보였다. 두 사람의 묶어 내린 머리카락 길이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내가 그들에게 접근해 올 무렵, 경비들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이후, 두 사람이 서로 뭔가를 속닥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를 보더니, 뭔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후, 내가 그들 앞에 이르자마자 두 사람 중에서 왼편에 서 있던 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려 하였다.
  "이전에 대삼림 (Dë Greatwald) 에 있으셨던 분이시죠? 린, 리아 (Lin, Lia) 가 이 안으로 들어간 후에 족장님께서 이번 주 중으로 여기로 오게 될 잠자리 날개를 가진 이들을 비롯한 대삼림에 있던 이들은 조건 없이 들여보내라 하셨어요."
  대삼림이라면 일행이 기계 병기들과 일전을 치르던 그 상공 아래의 숲을 의미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 숲 위의 상공에서 전투를 행했다는 것을 린, 리아 자매로부터 들어서 그들은 물론, 족장 역시 그것에 대해 알게 됐고, 그 덕에 족장의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모두 이 쪽으로 와!!!!" 이후, 나는 거목 인근에 있었을 이들을 찾아 다시 거목 근처의 구역에 이르렀고, 그러면서 아네샤 등을 찾으려고 소리를 쳤다. 소리라도 쳐서 그들을 불러오기 위함으로, 이후, 아네샤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나에게 뛰어오면서 물었다.
  "라르나,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난 거야?"
  그러자 나는 아네샤에게 출입 허가가 났음을 밝히고서, 나를 비롯한 대삼림에 있던 이들은 모두 출입 허가되어 있는 상태로서, 족장의 명령 하에 허가 조치가 내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아네샤가 리마라, 세미아까지 불러오고, 그리하여 내가 앞장서서 거목 쪽의 숲길을 따라 경비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였다.
  거목 부근의 경비들이 있던 곳에 이르자, 경비들은 바로 좌우로 물러나면서 길을 비켜주었고, 그리하여 나를 비롯한 4 사람은 그 너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대삼림이라면 우리가 있던 그 곳이지?"
  "맞아." 아네샤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리고 대삼림에 있던 이들 (클라리스, 미라, 야누아, 마야, 아샤란, 모린, 바르차) 모두 출입이 허가되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후, 리마라가 내게 그렇다면 다른 이들 역시 족장을 만나려 갔을 것 같다고 말했고, 이에 나는 당연히 그러하였을 것이라 답하였다.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줄 필요는 있었을 테니까."
  이후, 세미아가 리마라, 아네샤 등에게 말하기를, 족장 역시 그들을 만나기를 원했을 것이라 했다. 정말 그러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나라면 세미아가 말한 바대로, 그들의 모습을 궁금해 했을 것 같기는 했다. 그 후, 한 동안 이어진 길게 이어진 길 너머로 거대한 연못에 둘러싸인 거목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목 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으며, 왼쪽의 사람은 녹색 머리카락을, 오른쪽의 사람은 푸른색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들은 동료인 듯해 보였으니,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클라리스, 미라 씨야."
  "벌써 들어와 계셨네." 그 모습을 알아보자마자 내가 우선 그들이 누구인지 알렸고, 이에 아네샤가 바로 그들을 알아보면서 말했다. 그 시점에서 거목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고, 금방 거목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목은 가까이에 도달했을 때에는 눈 안으로 밑둥의 표면 그리고 그 표면 위에 자리잡은 덩굴 식물들과 이끼들만 보일 따름이었으며, 고개를 좀 높이 올려야 하늘을 가릴 정도로 뻗어난 가지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거목 그리고 거목을 둘러싸는 연못 주변으로는 하얀색, 노란색, 연두색 빛들이 떠돌면서 주변 일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그 덕분인지 나무 밑둥 부분은 그 위의 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밝았다. 막대한 생명의 힘을 뿜어내는 듯한 거목 주변은 선명한 초록빛 풀들이 자라나고, 선명한 색을 띠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으며, 덩굴 식물들 역시 꽃과 열매를 줄기마다 가득히 매달고 있었다.
  거목 앞에 도달하자마자 보였던 두 사람의 뒷 모습 앞에 이르자, 두 사람의 모습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였다. 이들은 거목을 올려다 보는 채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당장에 그들과 말을 걸 분위기는 아니라서 조용히 그들 근처를 지나쳐서 거목 일대를 돌아다녀 보려 하였다. 족장으로 추정되는 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들을 찾으려 하였는데, 그 때, 나의 왼편에서 누군가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네 분, 혹시 라르나 씨 일행이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만." 그러면서 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서려 하였고, 머지 않아, 클라리스가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로 내 앞으로 다가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클라리스는 내게 "다시 뵙게 되었네요." 라고 인사말을 건네었다.
  "예, 저도요." 내가 바로 답례했다. 그리고, 그와 미라에게 족장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냐고 묻자, 클라리스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 후, 아네샤가 내 왼편 곁으로 다가가서 클라리스에게 족장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그가 답했다.
  "방금 전에 잠깐 나갔다가 오신다고 해서 나가셨어요. 아마 두 아가씨들 깨우려 하시는 것 같았는데."
  "아가씨들이라면......" 아네샤가 말했다. '아가씨' 라면 딸을 의미할 것이다. 그 무렵에 족장의 두 딸이 잠들고 있어서 깨우려고 갔다는 것. 딸들이 근처에 잠들고 있다면, 분명 그 곳은 족장의 자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족장은 자신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
  "딸들을 깨우려고 집에 갔나 보네."
  이후, 리마라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처음에 족장의 거처로 보였던 집을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 때, 세미아가 족장이 집에 있을 것인지에 대해, 대개는 집을 비워 두고,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그래서 일행 모두 그 집을 굳이 방문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그 집 근처에 있었잖아!"
  이후, 리마라가 바로 세미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세미아 역시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집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리마라는 바로 자신이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 것에 대해 후회의 말을 하려 하였다.
  "그 집에 한 번 가 볼 걸!" 그러더니, 내게 왜 그 집에 들어갈 시도를 안 했느냐고 책망하는 목소리를 냈다.
  "나도 그리 될 줄 알았겠어?" 그러자, 세미아가 바로 반박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에는 세미아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리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엘베 족 족장은 으레 나무 근처에 있겠거니하면서 바로 거목 근처로 가려 했던 것.
  "참으로 사람 일은 예상대로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이후, 리마라는 조금 있으면 그들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그리하여 일행 모두 나무 근처에서 사람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무렵, 미라가 나와 리마라 등에게 다가오더니, 족장의 집 근처를 들르려 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그에게 방문할 생각도 있었으나, 높은 사람들은 낮 시간 대에는 자택에 없는 경우가 많음을 알아서 그냥 지나쳐 갔었다고, 그 때의 일에 대해 알렸다.
  "그랬었네요." 그러자, 미라가 그렇게 말했고, 이후, 클라리스를 불러서 일행이 위치한 바로 그 근처에 이르려 하면서 족장이 돌아올 때가 머지 않았음을 밝혔다. 미라에 의하면 족장은 꽤 오래 전에 거목 근처를 떠나 있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두 딸들을 깨워서 옷을 차려 입게 하고, 동행하려 하면서 꽤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우선, 리마라가 거목 근처에 자라난 풀들 근처로 다가가려 하였고, 이어서 아네샤가 그런 리마라를 따라 가려 하던 그 때, 오른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족장이 오고 있음을 알아차리자마자 바로 거목 쪽으로 다가간 두 사람에게 다급히 다가가 족장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서, 그들을 거목 근처의 풀밭으로 다시 데리고 왔다.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와 함께 거목의 동쪽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노란색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엘베 족 여성으로 엷은 연두색을 띠는 드레스 차림을 하고 있었다. 드레스는 치맛단이 발목 부근에 이르고, 소매 없이 어깨 끈이 달리고, 가슴 부분이 깊이 파여 있었으며, 가슴 부분이 깊이 파인 탓에 가슴 골이 바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두 손에는 장갑이 씌워져 있었으며, 그 길이는 팔목을 지나 어깨와 팔목 사이 한 가운데에 이를 정도로 길었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장신의 엘베 족 여인은 초록색을 띠는 두 초록빛 눈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얼굴색은 밝았다. 다소 어른스러우면서 온화한 인상의 젊은 여성으로 고귀하면서 아름답다고 여기기에 충분해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목에는 가슴 부근까지 늘어진 금색 끈 목걸이를 걸고 있었으며, 목걸이에는 초록색을 띠는 이파리 모양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 옷의 허리 부분에도 금색을 띠는 띠가 둘러져 있었으며, 그 띠에는 일정 간격을 이루며, 초록색을 띠며 빛나는 이파리 모양 장식들이 달려 있었다.
  다소 요염한 듯, 청순한 듯한 젊은 여성의 모습이라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족장의 젊은 인척이라 여기어질 수도 있어 보이는 그런 여성이었다.

  "세니티아에서 오신 분들이시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세미아가 바로 내게 무언으로 지시를 내리려 하였다. 높은 사람이 바로 앞에 온 만큼, 예를 올리라는 것이었다. 그 지시에 따라 내가 앞장서서 족장임이 확실해 보이는 그 엘베 족 젊은 여인에게 예를 갖추는 목소리로 이렇게 인사말을 건네려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족장님, 세니티아 성계의 주 대륙 동부, 엘젠 산맥 중부의 루샤트에서 온 라르나 벨테손입니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를 대표해서 인사드릴게요. (Gda -alma hazita, Chefya? Na Senitiay Pelastanï Seyßoch, Elzenï Seray Haonï Lusyatesa øüsin Larna Belteson is, øyoji mozîy afasarye nyaseahyala)"
  그러자,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네 사람에게 조용히 예를 올리려 하였다.
  "인사드립니다, 세오프리마 부족의 제 3 대 족장인 에오르 안 (Eor An) 이라고 합니다. (Vaz-du yi du? Ish am Eor An, Dë Drist Matriarch ov Stam Seoprimaishis)" 지난 아침에 벌어진 암흑 함대 (DarkFleht) 의 침공에 많은 분들께서 많은 수고를 해 주셨고, 특히, 위대한 인간 문명의 조상, 세니티아 (Senitia, Dë Great Forfathër ov Humanish Beawaken) 에서 오신 여러분들께서 우리 부족이 해낼 몫 이상으로 해내 주신 것에 대해 대삼림만큼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우리를 추켜세워도 되나?' 그 말을 들으면서 내심으로는 그런 생각이 나오기도 했으나, 차마 그것을 밖으로 내세우지는 못했다. 아무튼, 높으신 분께서 인사를 드렸으니, 나를 비롯한 일행 역시 답례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이렇게 답례의 말을 건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영광입니다, 족장님."
  "별 말씀을요." 그러더니, 마치 여왕과도 같은 면모를 갖춘 족장 안 (An) 은 거목의 정면 쪽으로 걸어가려 하였다. 반짝이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굽이 다소 높은 신을 신은 채로 거목을 향해 사뿐히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이 내 눈 앞을 지나가려 하였다. 아무래도 안은 그렇게 걸으면서 거목의 정면 쪽에 이르려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 그를 따라 나무의 정면 근처에 이르려 하였다. 그와 정면에서 대면하기 위한 일이었다.
  "이 곳은 여기, 세오프리마의 발상지이자 세오프리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존재로, 한 때는 세계수라 칭해지기도 했던 '마나의 나무 (Dë Manatrew)' 가 자리잡은 성소입니다. 이제는 행성계가 많이 정화되었고, 나무의 씨앗들이 행성계의 여러 곳에 퍼져 싹을 틔우며, 새로운 마나의 나무들을 키워가고 있지만, 저희 엘베 족이 험난했고, 가난했던 옛 시대에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식량을 선사하였고, 문명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준 은혜에 감사드리며, 저, 족장과 마법사들이 대를 이어가며, 나무를 보살피는 의무를 이행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세오프리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세오프리마는 저희 엘베 족의 고향이자 발상지에 해당되는 곳으로, 마나의 나무가 선사한 빛의 우산 (Dë Lichtumbrella) 이 고대의 대재앙에 의해 생겨난 죽음의 폭풍 (Deathstorm) 을 막아내자, 그것에 의지해 사람들이 모여들어, 작은 마을을 이루면서 태어나게 되었지요. 이러하였던 곳이 10 여 세기를 거치면서 어엿한 대도시가 되었답니다. 드넓은 숲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거처들이 자리잡은 큰 고장이 되었지요. 마나의 나무가 중심이 되는 중앙 구역 (Midistrahtzonë) 외에도 여러 아름답고, 명망 있는 곳들이 자리잡고 있지요. 여유가 되신다면 그 곳들 역시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세오프리마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서, 안은 두 손에 금색 빛을 일으키려 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니,
  "앞으로 여기서 드릴 말씀이 많겠군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오신 분들, 그리고 두 아이들이 함께 앉을 수 있어야 하기에 큰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겠지요."
  두 팔을 뻗어, 자신의 앞쪽으로 모으더니, 자신의 두 손바닥의 금색 빛에서 수많은 금색 빛 무리가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후, 그는 오른팔을 높이 들어 오른손에 생성된 빛들이 손바닥 위에 모이도록 하였다. 손바닥 위에 모인 빛은 이후, 그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의해 흩날리며, 그가 자리잡은 바로 앞에 모였다.
  그렇게 빛들이 안이 서 있던 그 바로 앞의 풀밭 앞에 이르자, 그 빛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그 이후로 믿겨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빛이 탁자의 형상을 생성하더니, 그 형상이 사라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탁상이 생성되는 것이었다. 탁상 위에는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기도 해서, 이런 음식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주문의 영창을 마치고서, 안은 다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로 일행에게 이렇게 말하려 하였다.
  "아침 무렵, 여러분들을 비롯한 용사님들에 의해 암흑 함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집에서 준비를 했었는데, 이제 여러분 앞에 보여드릴 때가 되었네요."
  식탁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채소들을 다듬어서 넣은 샐러드 류, 각종 과일들, 구운 견과류들, 그리고 거칠어 보이고, 안에는 견과류들이 들어있었을 빵들로 구성된, 어떤 의미에서는 전형적인 '엘베 족다운' 식단으로 구성된 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릇과 그릇들 사이로 잔이 있었으며, 중심에는 잔에 채워질 각종 음료들이 채워진 큰 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안에 의하면 그 모든 것들을 혼자서 차렸다고 했는데, 그 많은 것들을 혼자서 차렸다고 하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내가 안에게 물으려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을 족장님, 혼자서 준비하신 거예요?"
  "그렇답니다." 그러자, 안이 바로 화답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직접 하셨다고요?" 그 대답을 듣고서도, 선뜻 믿지 못했던 아네샤가 물었고, 이에 안이 이렇게 화답했다.
  "이 도시, 세계 드리워진 위기를 타개하신 분들을 대접하는 일이에요,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저 자신이 직접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함이 마땅하겠지요."
  이후, 안은 나무 앞에 마련된 식탁의 나무를 등지는 쪽, 그 한 가운데에 이르고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어서 앉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나부터 급히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하였다. 족장 안과 마주하는 의자에 앉는 이는 내가 되었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세미아, 아네샤가 종용한 탓에 내가 앉게 되었고, 세미아, 아네샤가 그 좌우에 앉게 되었다. 리마라는 아네샤의 우측에 앉았다. 한편, 클라리스, 미라는 안의 우측 옆에 앉으려 하였으니, 안과 가까운 쪽에 클라리스가 앉고, 미라가 그 우측 옆에 앉으려 하였다. 남은 두 자리는 비워 두었으니, 족장의 두 딸을 위한 자리였을 것이다.
  "따님들께서 오시려면 아직인지요?" 이후, 세미아가 안을 바라보면서 묻자, 안은 곧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새벽부터 족장님께서 이런 식사를 준비하셨다면, 분명 소리가 많이 들렸을 텐데, 따님들께서 깨거나 그러하시지는 않으셨던가요?"
  이후, 리마라가 묻자, 안은 그간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고 그들에 대해 답하면서도, 아침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니, 조금만 기다리면 올 것이라 하였다. 그러더니, 그들이 오면 바로 식사를 시작하자고 이어 청하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에오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잖아." 이후, 조용히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때, 아네샤가 내게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그랬던가?" 했다가, 머지 않아, '암흑 함대' 라 칭해진 그 함선 무리와의 싸움에서 처음 엘베 족 무리를 마주했을 때에 들려온 마녀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저 선봉대원들의 핵심은 이전 전쟁에서 에를랑 (Erlang) 이란 악마의 병기를 격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대마법사들의 쌍둥이 손녀들인 에오르 린 (Eor Lin) 과 에오르 리아 (Eor Lia) 자매로 총포 사격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괴물 사냥꾼이에요.

  "맞아, 린, 리아 자매가 있었지." 이후, 그들은 미라가 악령을 처단한 이후에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었다. 에오르가 성이었으니, 분명 족장과 인척 관계였을 것이다. 이들은 타락한 마법사가 나타났을 때, 그들과 대면하기도 했으며, 그들은 마법사를 '할아버지' 라 칭하고서, 자신들의 어머니가 그의 딸임을 알리기도 했다. 이후, 그들은 족장에게 사건에 대해 보고하러 떠났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족장에게 그 타락한 마법사에 관해 알렸을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세미아가 확실한 것은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내 상식대로라면, 어떻게든 그것에 대해 알렸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분명 있어 보였다. 그 가능성의 원인이 있다면, 아마도......

  그 무렵, 거목 오른편 숲길에서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짤막한 밝은 노란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들로 초록빛 드레스 차림을 하고, 머리에 초록빛 띠를 두른 모습을 보이며 족장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족장과 비슷하게 초록색 눈을 가진 두 소녀들은 어깨 부분이 없고, 가슴 부분의 가운데가 약간 파여 있으며, 테두리가 금빛을 띠는 상반신 부분과 발목까지 내려가며, 왼쪽 부분이 트인 길다란 치맛단을 드러내는 약간 짙은 녹색 드레스 차림을 하고, 머리에는 초록색 덩굴 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란색 꽃으로 장식된 머리띠를 두르고, 목에는 덩굴 줄기로 이루어진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치마 부분의 틈새를 통해 드러나는 다리는 엷은 녹색을 띠는 얇은 천으로 감싸여 있었고, 발은 녹색 신으로 감싸여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외모 역시 서로 닮았기에, 쌍둥이였음을 그 모습을 보며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치고는 그렇게 낯선 모습은 아니었는데, 그 의문은 아네샤의 목소리를 통해 바로 풀렸다.

  "저 분들, 린, 리아 자매잖아."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네샤가 나에게 말했고, 그 목소리를 듣고서, 식탁으로 다가오는 쌍둥이 자매를 보자마자 나 역시 그들이 에오르 자매와 닮아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쌍둥이 자매, 그것도 서로 너무 닮은 특성까지 꼭 닮은 자매가 세상에 둘 씩 있는 경우는 드물 테니, 저들은 분명 내가 이전에 보았던 그 에오르 자매와 동일한 인물들이었음이 틀림 없었다.
  아무튼, 족장의 두 딸이었을 그들은 어머니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사뿐히 발걸음을 옮기며 어머니가 앉은 그 곁으로 다가왔고, 이후, 자신들의 어머니 곁에 서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서 있으려 하였다.
  그러자, 세미아는 다른 일행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후,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 세미아가 지시한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족장의 오른편 옆에 앉아있던 클라리스, 미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족장의 두 딸들과 이전에 만나, 인사를 주고 받은 사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세니티아에서 오신 분들이란다, 인사드리렴." 이후, 족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두 딸들에게 예를 올릴 것을 말했고, 이후, 두 딸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리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세니티아에서 오신 여러분, 저희들은 에오르 린, 리아, 세오프리마 부족장인 에오르 안의 딸들입니다. (Shen tu yurn mehta, efërian from Senitia. Vi ams Eor Lin and Lia, dochtors von Eor An, dë Matriarch ov Seoprima)"
  그 이름을 듣자마자 다시금, 이전에 들었던 두 소녀의 이름을 다시 떠올렸고, 그러면서 눈 앞에 있던 드레스 차림의 소녀들이 이전의 그 사냥꾼스러운 복장을 갖춘 두 소녀들과 같은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족장의 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과 린, 리아 자매가 성이 같았음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 그와 더불어, 린, 리아 자매가 대마법사의 손녀였다는 이야기를 이전에 듣기도 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서로 인사를 건네고 있는 동안에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자기 소개를 할 즈음, 린 쪽에서는 왼쪽의 소녀만, 그리고 리아 쪽에서는 오른쪽의 소녀만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리려 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많이 비슷했지만, 미묘하게 달랐던 것 같다. 린 쪽이 다소 들뜬 느낌이었고, 리아 쪽이 조금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인사를 받았으니, 답례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세미아가 일행을 대표해서 답례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아가씨들. 저희는 세니티아의 루샤트에서 온 세미아 라린입니다, 제 옆에는 라르나 벨테손, 그 옆에는 아네샤 에르세비스 그리고, 그 옆에는 리마라 샤리엘이에요. (Mananye cavaz, ayajedrya, na Senitiay Lusyat fta øüsin Semia Larin is, glo, nai yopiye Larna Belteson, gai yopiye Anesha Ersevis, glo gai yopiye Limara Shariel is)"
  이렇게 서로 인사말을 한 이후에 쌍둥이 자매 그리고 일행 모두 자리에 앉았다. 그 무렵, 아네샤로부터 역시 그들이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예상한 바이기는 했으나, 당장 그것에 대해 대놓고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자아, 이제 식사를 시작하시지요." 이후, 안이 식사를 시작하자고 청했고, 그리하여 높은 사람인 안을 시작으로 다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을 제외하면 특별히 맛있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채소들은 너무나 신선했고, 과일들 역시 베어 물 때마다 달콤한 즙을 터뜨렸다. 호밀빵은 언제나처럼 특유의 거친 식감과 다소 시큼한 맛을 내었으나, 일상적인 맛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하지 않은 친숙한 맛이었고, 신선한 과일로 만들었다는 잼 (Mermelata) 류와 함께 먹으니, 나름 맛이 좋았다.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것들을 먹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렇지요." 식사 도중에 세미아가 안을 비롯한 자신의 건너편에 앉은 이들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클라리스가 안이나 린, 리아 자매를 대신해서 답했다. (그러는 동안 옆에 앉은 미라는 먹는 것에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대화를 듣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주변 일대는 물론, 도시 곳곳에서 이런 식으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이들이 많을 거예요. 저도 몇 번 초대를 받아서 요리를 옆의 미라와 함께 먹었었지요."
  "그 말씀대로, 이런 음식들을 먹어 볼 수 있는 곳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세미아가 환하게 웃으면서 화답했다. 그 때, 대화에 상관 없이 먹는 것에만 집중했던 미라가 먹는 것을 멈추더니, 나를 비롯한 일행 쪽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미아를 비롯한 일행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저희가 만족했던 곳들이 몇 있어요, 원하신다면, 그런 곳들을 알려드리고, 또 안내해 드릴게요."
  이후, 린이 언급한 바에 의하면 클라리스와 미라, 그리고 야누아 자매는 틈만 나면 아르데이스의 엘베 족 거주지에서 지냈고, 그 곳에서 며칠을 보낸 적도 있었다고 했다. 문명 생활은 드벨파 족 지하 도시 구역에서 더 수준 높게 누릴 수 있기는 했겠으나, 엘베 족 거주지에 늘 숲, 나무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곳들이 많아서 엘베 족 거주지들을 머무르는 곳으로 택했다고 했다. 그런 곳들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여러 식당들을 이용하거나 숙식을 하면서 엘베 족 특유의 식단에 많이 적응했었던 것 같다.
  아르데이스는 베라티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클라리스, 미라나 야누아 자매 등이 베라티사에서 접수받은 의뢰 수행 후, 의뢰 관련 처리를 하러 베라티사로 갔다가 휴양 삼아 오고는 했으며, 해마다 한 번 이상은 방문하는지라, 세오프리마 일대의 지리는 현지인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잘 아는 편이 되었다고 했다.
  "클라리스, 미라 씨의 경우에는 세오프리마에 대해 현지인 수준으로 알고 계세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후, 린이 미소를 띠면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클라리스, 미라에 대해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밤새도록 싸움을 이어간 탓에 배가 무척 고프기는 했으나, 허겁지겁 먹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귀한 일가 앞인데, 행동거지를 조심할 필요는 있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 그러고 있었다. 암만 그래도, 귀한 사람 앞에서는 눈치가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어머니, 저 분들 조심해서 드시려 하시는 것 같아요." 그 때, 린 쪽에서 안을 향해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안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구나." 라고 한 마디 말을 건넬 뿐, 달리 일행의 행동에 대해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으려 하였다.

  한참 식사를 이어가면서 식탁에 놓인 접시들 그리고 접시에 놓인 것들의 모습을 하나씩 둘려보려 하였다. 식탁에 놓인 음식의 양은 9 사람이 먹기에 많은 양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할 수 없기는 하였으나, 양 자체는 상당히 많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준비해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보일 정도. 그 모든 것을 안 혼자서 준비했다고 했는데, 다 먹으려면 꽤 시간이 걸려 보였을 것들을 지켜보자니, 새삼스레 그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을 족장님 혼자서 다 준비하셨다는데......." 이후, 내가 아네샤 등에게 그렇게 말을 건네려 할 즈음, 린에게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께서는 이런 식사는 늘 스스로 마련하세요, 물론, 큰 연회가 있거나 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혼자서 준비하시고도 남아요. 이번 것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셨을 거예요. 그나마,"
  그리고, 린에 이어, 리아가 그나마 야누아 자매 등은 식사에 참여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 새벽부터 시작해서 아침 즈음에 끝낼 수 있었음을 밝혔다.

  과연, 식사 자리에서 야누아, 마야 등은 자리에 없었고, 그래서 점심 식사 시간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이를 두고, 나도 그렇고, 아네샤 역시 야누아 등이 먼저 족장의 거처를 방문했다가, 바로 떠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지만, 그것에 대해 안 혹은 린, 리아 자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물어보려 하였다.
  "먼저 이 곳에 왔다가, 가신 것 같은데,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먼저 오신 것은 맞아요." 그러자 린이 화답했다. 이후, 린이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그 곳에 온 이는 야누아, 마야 뿐만이 아니었고, 그들의 자매인 마르차, 율리아도 있었고, 그들 모두가 사건에 대해 알리려, 족장인 안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가도록 하겠음을 알린 후에 곧바로, 도시의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야누아 씨, 마야 씨를 만났을 무렵, 야누아 씨께서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율리아 씨의 장난기를 그런 자리를 마련하셨을 어머니께서 감당하시지 못할 것 같다고, 그리고서, 자신들은 다른 곳에서 아침, 점심을 먹도록 할 테니, 자신들의 몫까지는 마련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대요. 그래서, 이 자리에 오시지 않으려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 이유가 진짜 이유는 아닐 거예요, 자신들 몫까지 마련하려 하시다가는, 어머니께서 너무 심한 부담을 느끼실 것 같아서,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셨겠지요."
  린에 이어, 리아가 말했다. 마르차, 율리아는 야누아, 마야와 달리 쾌활하고, 발랄한 면모를 갖고 있었고, 율리아는 여기에 과격한 면도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을 격식 있는 자리를 마련했을 안 등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고 야누아가 안에게 말을 건네었다지만, 린, 리아 자매에 의하면, 그것이 야누아의 진심은 아니었고, 실제로는 9 사람 몫도 버거울 텐데, 13 사람 몫을 혼자 마련하는 큰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다고 해서, 식사 자리에서 빠지려 했을 것임이 그런 말을 건네었을 진짜 의도였을 것이라 했다.
  "율리아 씨도 그런 자리에서는 함부로 행동하거나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 그렇겠지?"
  "당연하지, 언니 셋이 주의를 단단히 주려 할 텐데."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아네샤가 답했다. 그리고서, 아무리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13 사람 몫은 무리이지 않겠느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곧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어서 안 등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그간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분들께서는 여기 근방에 머무르시고 계실 텐데, 그렇다면, 여기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그의 물음에 린이 그러할 것이라 화답했다. 그 때, 리마라가 야누아 등은 고양이 종족인데, 포도 같은 것들을 먹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 나에게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클라리스가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하였다.
  "괜찮을 거예요, 그 분들께서는 고양이의 특징을 갖고 계시지만, 근본적으로 정령의 기운을 이어받으신 분들이라."

  이후, 식사를 거의 마칠 즈음,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대화의 시작은 안의 목소리였다. 안은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에게 들었음을 밝히고서, 그간 여러 행성계를 오가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 이후에 어떻게 그런 여행을 이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의 말을 건네려 하였던 것.
  "어떻게, 여러 행성계를 오가는 여행을 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엘젠 산맥에서 신호가 왔어요." 내가 답했다. 마녀의 탑에서 인류가 보냈을지도 모르는 신호가 잡혔는데, 그 신호의 근원이 인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어졌고, 또,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루아린의 요청이 있기도 했기에, 그 루아린의 바람을 이루기 위한 것도 있어서, 어떻게든 그 신호의 근원을 찾으려 하였고, 그리하여 '마녀' 라 칭한 존재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 곳을 찾아가려 하고 있었던 것.
  "그 신호가 인류의 행방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애가 있기도 해서, 그 소망을 이루는 목적도 겸해서, 그 근원을 찾아가려 한 것이었지요. 그 근원에 어쩌면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긴 거예요."
  그리고, 조금 뜸을 들이고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우연인지 아닌지, 계속 기계 무리와 맞서고 있지요. 길은 '마녀' 라 칭해지는 존재가 열고 있기는 한데, 왜 하필이면 기계 무리로 가득한 곳으로 우리가 보내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떤 우연에 의한 일인 것인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은 무언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며, 더불어 두 딸인 린, 리아 자매 역시 뭔가를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으려 하였다. 그러더니, 안이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이렇게 말하려 하였다.
  "그 마녀 분께서 보내시는 곳마다 기계 무리가 영향력을 펼치려 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여러 세계의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다 여러분들께서 마녀 분의 인도에 따라 기계 무리의 처소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셨고, 그 기계들을 처단하시는 것으로, 기계 무리의 해악과 영향력을 없애가고 계세요."
  그러더니,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그 마녀 분께서 의도하신 바는 아마도 그러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여러분을 인도하시면서, 여러분들께서 여러 행성계에 도사리고 있는 기계의 해악을 없애주실 수 있도록 경로를 설정하신 것은 아닌가, 싶어요. 여러분들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안에 의하면 '마녀' 는 세상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기계 세력을 몰아내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일행이 이를 수행하면서 인간의 흔적이 자리잡은 경로를 설정한 것 같다고 하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시커먼 기계들이 행성계에 침략해서 난리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나도 그런 녀석들이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으면 나쁜 짓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
  안이 언급한 '마녀' 의 의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내 옆에 앉았던 아네샤가 그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그런 아네샤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그런 일이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아네샤처럼 참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리 생각하면서, 일행이 기계 군단을 몰아내는 일을 잘 해 줄 것 같았는데, 마침 일행이 인간의 행방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도움을 주는 것과 함께 의뢰를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 마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세요?" 이후, 린이 물었으나, 일행 네 사람 모두 마녀에 대해서는 명확히 하는 바가 없었다. 처음에는 마녀의 탑에 기거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처음부터 그 말은 믿지 않았다, AR 5 세기 기준으로 마녀의 탑이 전망대 및 관측소 역할을 하게 된지는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었다. (거주 시설은 거의 대부분 철거됐다) 게다가 옥상에는 전자기파 발생 장치까지 장착되어 있으니, 높은 곳에 거주하면 그 영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세니티아 어디에서도 '마녀' 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었고, 그 모습을 아는 이조차 없었다. 다만, 여느 사람과 비슷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마법진을 열어 행성계 간 여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정도였다.
  "행성 외의 존재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후, 안이 묻자, 아네샤가 나를 대신해, 그러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안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곧, 다시 눈을 뜨고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만,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식사를 마치고서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때가 되면 여러분들을 다시 초청해서 이야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여러분들과 함께, 더욱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제가 아는 한에서 여러분들께서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을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나를 비롯한 일행은 거목 근처에 있는 족장의 별장을 거처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족장의 원래 거처보다도 훨씬 큰, 2 층을 이루는 집으로, 원래는 그야말로 '족장의 별장' 이었으나, 안은 해당 건물을 특별한 손님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비롯한 일행은 2 층의 방을 쓰게 되었다. 린에 의하면, 바람의 정령들이라면 높은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것 같아서 비교적 높은 곳인 2 층의 공간이 어울릴 것 같다, 해서 그렇게 정했고, 클라리스, 미라가 1 층에 지내기로 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방을 소개받은 이후로 거목의 동쪽 부근에 있는 하얀 건물을 찾아오면 된다는 린의 조언을 들으며, 거목 근처를 떠나갔다. 다른 곳을 둘러보기 위해 나가는 것이었다.

  한낮이 되면서 어느새 교차로 근처의 시장 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활발한 곳이 되어 있었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 길 위에서 놀기 바쁜 아이들이 거리를 오가는 모습이 곳곳에 보이고 있었다. 그 활발한 분위기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는지, 세미아, 아네샤 등 모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이들이 족장의 딸들이었을 줄이야." 그렇게 길을 오가던 그 때, 아네샤가 나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고, 그 말에 나 역시 동의한다는 의사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드러냈다. 이후, 리마라가 나를 비롯한 앞서 가던 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전에 린, 리아 두 자매가 대마법사의 손녀라고 했잖아. 그리고 족장이 그들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자신의 아버지께서 이런 꼴로 돌아다닌다는 것을 아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리마라의 말을 듣자마자 아르데이스 황야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린, 리아 자매가 대마법사의 육신을 뒤집어 쓴 악마에게 했던 말로, 자신들의 어머니가 대마법사의 딸이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내가 리마라에게 화답했다.
  "그랬겠지, 뭐." 사실, 안의 두 딸이 누구인지 알게 된 이래로 안이 이전에 마주했던 대마법사의 딸이었음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 그 시간에 차마 안에게 대마법사에 대해서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안의 아버지와 관련된 것인 만큼, 안에게는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이야깃거리였음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후에 안과 대면할 일이 생기는 만큼, 그 때에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기는 했다.
  "대마법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려나."
  "잘 모르기는 할 것 같아." 그 무렵, 뒤에서 리마라가 안에 대해 이전의 그 대마법사에 대해 알고 있을지에 대해 묻자, 아네샤가 잘 모르지 않겠느냐고 답하고서, 그것에 이어, 자신이 그렇게 대답을 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알리려 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대마법사에 대해 그런 운명에 처해졌다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 거야. 일반인들에게 말하는 것도 위험한 일일 텐데, 하물며 그 자식일 사람한테...... 이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 세미아, 너도 그렇지?"
  이후, 아네샤가 세미아에게 물었으나, 세미아는 마땅히 답을 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교차로를 지나, 남쪽 길을 따라 가는 동안 도시 구역을 뒤덮은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건물들의 모습이 주변 일대에 보였다. 개중에는 숲의 초목들에 묻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폐허가 된 건물들을 고쳐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이외에 도시를 품고 있었을 숲의 여러 곳에는 건물의 폐허로 보이는 무언가들이 간간히 보였다.
  "이런 무너진 건물들의 흔적이 이 곳에서도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아네샤가 말했다. 나 이상으로 건물의 폐허들을 많이 본 모양으로 아네샤에 의하면 수풀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것들도 꽤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무들 그리고 그 기반인 흙에 묻힌 것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있을 것 같다고 했으며, 그러면서 이러한 잔해들은 아르나이 (Arnay) 초지대 및 숲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여러모로 비슷해 보인다고 말학도 했다.
  "아르나이도 이런 폐허 건물들이 많았었지?" 내가 묻자, 리마라가 그러하다고 답하고서, 철거된 것도 몇 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이어 말했다. 그러더니, 리마라는 이전에 주 대륙의 동남쪽에 자리잡은 어느 해안 구역을 지나칠 일이 생겨서 잠시 지나가 보았고, 그 곳에서 수없이 많은, 폐허가 된 탑들이 모인 유적을 볼 수 있었다고 했으며, 이미 폐허가 되기는 했지만, 옛 도시의 모습이 그러한 형태로나마 보전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들이 얼마나 탑을 많이 지었으면...... 인간들은 가만 보면 탑 짓는 것을 참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러게." 이후, 리마라가 건네는 말에, 아네샤가 그렇게 화답했다.

  시냇물이 보이는 곳까지는 남쪽으로 계속 걸었으나, 이후로는 동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동쪽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는 동안,  길 주변에는 사람 크기의 반 정도 되는 작은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초록빛 이파리들을 드러내고,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꽃들이 피어나, 초록빛 가득한 숲에 여러 색을 더하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서 있던 측백나무들에 둘러싸인 길 위를 간간히몇몇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또, 시냇물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한 번씩 보였다.
  그 시냇물가 근처의 길을 지나다니는 동안 시냇물과 물가를 유심히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리마라였다. 어린 엘베 족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풍경을 보며, 불현듯 옛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달리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아네샤는 그런 그의 심정을 알고 싶어했던 것 같았고,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서 물어보려 하였다.
  "리마라,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 그러는 거야?"
  "응." 그러자 리마라가 바로 답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어릴 적에 그랬었음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자 아네샤가 그런 그에게 그렇다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바로 고향, 루샤트로 돌아가려 하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리마라는 그러하다고 답했다.
  "돌아가고 나면, 근처의 물가로 먼저 가 보고 싶어."
  "물가에서 뭘 할 건데?" 이후, 아네샤가 바로 리마라에게 묻자, 그는 알면서 일부러 묻는 거냐고 되묻는 듯이 화답했다. 다만, 짜증을 냈다고 보기에는 화가 없는 목소리라 장난스러운 질문에 장난스럽게 답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나니, 나 역시 마을 근방의 시냇가라든가, 폭포를 다시 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갈 길이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 보니, 단순한 희망 사항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영원히 희망 사항이 될 수도 있었던지라, 불현듯, 걱정이 들기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지?' 이후,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며칠 동안 외지의 하늘과 땅 사이에 별 생각 없이 있다가, 리마라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목소리에 밀려온 걱정이 그렇게 드러난 것.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나면, 늘 누군가가 듣고는 했었지만, 다행히는 이번에는 아무도 이런 나의 혼잣말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렇게 옛 생각을 하면서 시냇물가를 걷고 있던 그 때, 먼 앞에서 나무 근처에 서 있던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클라리스는 시냇가를 바라보며 서 있었으며, 미라가 그 앞에 역시, 시냇가를 보면서 앉아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자마자 바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으니, 그들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몇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멀리서도 나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 내가 접근해 오자마자 바로 나를 비롯한 일행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물가를 걷고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한 이후에 도시의 여러 곳을 한 번 둘러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이어 말했다.
  "저희들 역시 같은 이유로 물가를 오가고 있어요." 그러자 클라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이후, 그는 미라가 잠시 물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고 싶다고 해서 잠시 머무르고 있다고 말하고서, 조용히 앉아있던 미라를 바라보며, 그에 대해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어린 엘베 족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다가, 뭔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오늘 새벽에 그런 일이 있기도 했다 보니, 더더욱 사무치는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할만 했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망령이 되었다가, 결국 자신의 검, 그 일부가 되어버렸을 그 사람을 떠올렸고, 그는 미라와 어릴 때부터 인연이 있던 이였다보니,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러면서 여러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검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채-오른손으로 검을 잡고, 왼손으로 검의 날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마치 칼날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미라는 조용히 물가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쉽사리 말을 걸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어서 주저하고 있었다. 그 대신, 클라리스에게 미라의 그 당시 상태에 대해 알려달라 부탁했고, 이에 클라리스가 조용히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미라는 저 칼날을 소얀 (Soyan) 이란 여인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할만한 일이 벌어지기야 했지만."
  이후, 클라리스가 미라에 대해, 그것은 엄연한 무기라서, 늘 그러할 수는 없음을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하고서, 그러면서도 그처럼 대하고 싶어할 때가 생겨나는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우연히 엘베 족 사람들로부터 무기나 도구 등에 깃든 영을 실체화하는 술법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 그것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었다고 이어 밝히기도 했다.
  "영의 실체화를 통해 소얀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것이겠지요?"
  리마라가 묻자, 클라리스가 바로 그러할 것이라 화답했다.
  "영의 실체화가 불가능한 일이기만 하다면, 그 애도 그것에까지 관심을 가지려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고, 그것에 관한 사례가 존재하고 있으니,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어서 클라리스가 말했다. 그것이 마냥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고, 그래서 그 현상의 실현을 위한 '열쇠' 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었다고, 그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 애도 그 '열쇠' 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웬만한 이들에게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기는 해요."
  클라리스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미라가 자신의 검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클라리스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가자." 라고 같이 갈 것을 청했다. 이후에 그가 말하기를, 언제까지 강가에 머무르고 있을 수만는 없다고 했다. 그러다, 같이 있던 나를 비롯한 일행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나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라르나 씨 등께서도 와 계셨군요." 그리고서, 그는 나를 비롯한 일행 4 명에게 인사를 하려 하였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미소를 지으면서 리마라에게 간만에 편안한 여행 기분을 느끼려 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앞장서 가려 하던 클라리스를 따라 가려 하였다.
  "저희는 오늘은 여기, 세오프리마에 머무르려고 해요, 여기가 아무래도 울창한 숲을 비롯해,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보니,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기에 좋은 곳 같아서 그래요."
  그에 의하면 세오프리마에 야누아 등과 함께 있다가, 다음 날이 되면 다른 곳으로 가 보려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클라리스는 말하지 않았으나, 미라가 그를 대신해, 세오프리마 인근에 있는 드벨파 족 도시에 가 볼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에 대해 밝혔다.
  "지하 도시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어서 미라가 밝혔다. 이후, 클라리스는 저녁 즈음에 만나도록 하자고 청하고서, 일행의 행로와는 정 반대인 북쪽 방향으로 미라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어, 그로 인해 일행은 두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클라리스 등과 헤어지고 난 이후, 일행은 계속 강가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 때, 어딘가에서 일행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소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거기 계신 분들, 세니티아에서 오신 분들이시죠?" 그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그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뛰어가려 하였다. 앞길 오른편에 위치한 어느 엘베 족 소녀의 모습이 그런 나의 눈앞에 보였다. 소매가 없는, 무릎까지 내려가는 하얀 옷차림을 한,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금발의 소녀로 그는 두 손으로 인형을 안고 있으면서, 자신을 향해 돌아선 나를 비롯한 4 명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어제 숲 부근에서 큰 싸움이 있었대요. 거기서 각지의 많은 분들께서 우리를 도우러 오셨다고 하셨는데, 그 중에 세니티아에서 오신 분들도 있다고 했어요."
  "우리가 세니티아 인들임은 어떻게 알았니?" 이후, 리마라가 소녀에게 묻자, 하늘색 옷차림을 한 푸른 머리카락의 사람들이라면 세니티아에서 온 이들일 것이라 어른들이 알려 주었다고 답했다. 소녀에 의하면 시내 마을의 어른들은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이들은 필요에 따라 날개를 드러내고, 이를 펼칠 수도 있을 것이라 알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상당히 잘 알려주었네.' 그 때, 리마라의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에게 왼편 곁에 있던 아네샤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이후, 어린 엘베 족 소녀는 일행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리마라가 남쪽 강가로 간다고 답하더니, 이어서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남쪽 강가에 있고 싶어서 그렇다고 대답에 이어 가는 이유에 대해 알리기도 했다. 그러자, 어린 소녀가 말했다.
  "저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데, 같이 가시지 않을래요?"
  "좋아!" 어린 소녀의 제안에 리마라는 바로 좋다고 답하고서, 그를 동행시키려 하였다. 그리고 그를 따라 강변의 길을 걸으려 하였다.

  길 건너편에서는 강가를 따라 숲이 끊임 없이 펼쳐지고 있었고, 숲을 이루는 나무들 위로 빛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초록색, 연두색, 하얀색 빛들이 끊임 없이 나무에서 생성되어 나무 위를 떠돌며, 아름다운 빛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강 부근에는 풀밭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그 풀밭 사이로 몇 줄기의 길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를 몇몇 사람들이 혼자서, 혹은 여럿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풀은 허리 높이 이상으로 자라나 있어서 잘 하면 풀 사이로 숨을 수도 있어 보였다.
  "여기 수풀 사이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도 있었어요." 수풀을 바라보며 어린 소녀가 말했다. 이어서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숨바꼭질을 하려고 하면, 대개는 풀숲에 숨지만, 나무 위로 올라가는 이들도 있고, 산 근처라면 산에 올라가거나, 동굴에 들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건물 위로 올라가는 이들도 있어서 숨바꼭질을 시작하면 하루 종일 하게 된다고 했었다.
  "그러면, 강변이라든가, 도시 전체를 숨바꼭질 할 곳으로 삼는 거야?"
  리마라가 소녀에게 물었다. 고향인 루샤트라고 다를 것은 없겠지만, 루샤트는 마을 자체는 작아서, 마을에서 숨바꼭질하면 의외로 금방 끝난다. (마을 밖으로 나가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세오프리마는 구역 하나하나가 루샤트 크기 이상일 텐데, 이런 구역 전체를 돌아다니다가, 건물 사이라든가, 시설 등지에 숨어 다니고, 때로는 나무 위, 건물 위로도 올라간다면, 하루 종일하는 놀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암만 그래도, 어린 시절이라면 돌아다니는 곳이 한정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럴 때도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소녀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도시 전체를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다가,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을 발견할 때가 있기도 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렇다면, 그런 우연 때문에 숨어있다 술래에게 발각될 때도 있겠지?"
  이후, 리마라가 건네는 물음에 소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아네샤는 일행에게 그런 아이들 때문에 도시에 살면서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때로는 그런 숨바꼭질, 술래잡기를 하면서 도시 전체나 강변 일대를 뛰어다닌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전에 봤던 린, 리아 언니도 그런 숨바꼭질 놀이를 한 적이 있었대요."
  "그래?" 그러자, 아네샤가 소녀에게 물었고, 소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숨바꼭질 등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숨거나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고 했었다. 조금 커지게 되면 그런 장난은 대개 잘 안 하게 된다는 것 같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애들이 숨어 있겠다, 그렇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이후, 아네샤가 묻자, 소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걸어다니는 동안, 어느덧, 강 줄기가 우측 (서쪽 방향) 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이 멀리서 보일 즈음, 소녀 역시 먼 저편의 강 줄기를 보았는지, 그 너머에 강 줄기가 있음을 알렸고, 그것에 이어, 강 너머에 드벨파 족의 지하 도시로 갈 수 있는 동굴이 있다고 이어 밝혔다.
  "동굴이라고?" 흥미를 느낀 내가 묻자, 소녀는 그렇다고 답했고, 숲 사이의 수풀 한 가운데에 바위 무덤처럼 생긴 동굴이 하나 있으며, 그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를 볼 수 있다고 말했으며, 마치 옛 고대 문명이 자랑했던 빛의 도시 (Lichtspolis) 를 보는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화려하게 치장된 빵 같은 것들은 드벨파 족 지하 도시에서나 볼 수 있다고 했었지?"
  내가 주변의 이들에게 묻자, 세미아가 "그랬었지." 라고 화답했다. 이후, 나는 그에게 그 지하 도시에서 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전혀 부럽지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곧바로 말했으니, 이런 대답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 도시에 살면 파란 하늘을 늘 볼 수 없잖아요."
  "그랬구나." 그러자, 세미아가 바로 그에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소녀의 심정에 공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르데이스의 드벨파 족들이 건설했다는 지하 도시들은 세련된 건물들을 비롯한 화려한 문명의 산물들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였으나, 어두운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상공이 늘 어둡고, 때로는 금속 구조물들이 고스란히 드러날 때도 있다고 하였다. 푸른 하늘을 보여주는 구역도 있다고 하였으나, 빛으로 생성된 가상 화면에 가깝다보니, 진짜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했었다. 문명이 발달된 곳인 만큼, 무척 신기한 곳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오래 머무를 만한 곳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지하 구역에 산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답답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래에는 개방되어서 어느 종족이든 갈 수 있대요, 예전에는 드벨파 족 아니면 갈 수 없었대요."
  "그랬구나." 이에 세미아가 다시 알겠다고 답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엘베 족의 습격에 대한 방비를 하려고,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했었으나, 엘베 족을 비롯한 타 종족들과의 교류를 이어가면서, 그들과의 적대 감정이 옅어지면서 타 종족 출입 제한이 이전에 비해서는 완화됐다고 했었다.
  "주변 애들 중에 지하 도시로 가 보겠다는 애들은 있어?"
  "처음 지하 도시가 개방됐을 때에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실제로도 많이 출입했었지요."
  소녀가 밝힌 바에 의하면 항상 어두운 거리의 풍경을 신기하게 여기며, 드벨파 족의 지하 도시로 가려 한 이들이 상당 수 있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평상시에 늘 보는 풍경과는 다른 도시의 모습을 아이들이 많이 신기해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지만, 곧 거기 갔던 이들은 지상의 푸른 하늘과 초록빛 숲이 그립다며 돌아왔어요. 그 곳의 문물들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항상 어두운, 그리고 때로는 금속이 보이는 하늘과 삭막한 도시 분위기가 아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인류에게서 갈라진 종족이라 할 수 있었던 드벨파 족과 엘베 족은 오랜 기간 동안 갈등을 겪었다고 알고 있다. 의도 여부와 관계 없이, 엘베 족의 조상은 드벨파 족의 조상에 의해 버려졌고, 정령의 나무 없이는 절멸했을 것임이 분명했을 테니, 그로 인한 선조들의 원한이 후손들의 갈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드벨파 족은 지하로 숨어 든 이래로, 빛 없는 어둠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문명을 지켜내려 애썼고, 그것을 자신들의 긍지로 삼았다. 지상에서 문명 생활을 포기하고, 원시적인 삶을 살았던 엘베 족, 광야를 떠돌며 사냥의 삶을 이어간 델바 족들을 '야만인들' 이라 칭한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기했듯, 엘베/델바 족의 조상들이 드벨파 족과 갈라선 계기를 돌아보자면, 엘베 족 입장에서는 참 못난 소리인 것 역시 분명했고, 이러한 드벨파 족의 엘베 족에 대한 태도가 종족 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드벨파 족 사람들도 지상의 엘베 족과 함께 행성을 지키기 위한 지상 기지를 마련하면서, 덤으로 지상 거점들을 몇 확보하게 된 것을 계기로 엘베 족과의 협력을 늘렸고 (비록, 엘베 족, 델바 족을 그들 몰래 '야만인들' 이라 놀리기도 했다지만), 그와 더불어 그들의 지하 도시를 전면적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개방해 주기도 하였다.

  "전면적 개방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거야?" 이후, 아네샤가 묻자, 세미아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하 도시의 모든 구역을 개방하지 않고, 일부 구역들만 출입 허가를 해 줬대. 허가된 구역을 넘어서려 하면 무조건적으로 쫓아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더라."
  다만, 후술한 바처럼, 드벨파 족은 자신들의 고향인 지하 도시를 너무 소중히 여기려 하였고, 그래서 엘베 족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행하는 필요 이상의 행동에 지나칠 정도로 강경히 대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여행 이후에 기분이 나빠진 외부인들도 생겼고, 그 여파로 지하 도시 관광 분위기는 많이 사그라졌다고 한다. 엘베 족 사람들의 인공 구조물과 어둠으로 가득한 도시 분위기를 견뎌내지 못한 것도 한 몫 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일행은 강변의 남쪽 길목에 도달하고 있었으며, 강물의 흐름 그 너머로 우거진 숲을 배경 삼아, 넓은 수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수풀 사이 한 곳에 바위 굴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그 바위 굴이 지하 도시의 입구였던 것 같다.
  "원래는 저 바위 굴 입구를 비롯한 동굴 내부는 지하 통로로 개수되었지만 입구만은 그대로 놓아달라고 드벨파 족 사람들이 말했대요."
  "그랬구나." 수풀에 반 즈음 묻힌 굴의 입구를 보면서 소녀가 말했고, 오른쪽 옆에서 굴의 입구를 일행과 함께 보고 있던 내가 그렇게 화답했다. 소녀에 의하면 지하 도시로 진입할 수 있는 굴은 이외에도 8 곳 정도가 마련되어 있으나, 굴의 형태는 당시 내가 보고 있던 굴과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이런 굴을 오가는 것이 위험할 수 있어서 엘베 족 측에서 굴의 내부 구조를 개선하는 공사의 공동 진행을 제안했던 것으로, 처음부터 공사는 순조롭지 않았으며, 드벨파 족 사람들의 협의 거절로 처음에는 공사를 거의 진행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었다.
  "웬지 이랬을 것 같아, '다른 것은 몰라도, 동굴과 그 주변 만큼은 건드리지 말아달라' 라고."
  아네샤가 그것에 대해 말을 건네자, 내가 바로 "그랬겠지." 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연 속에 묻힌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도시를 마주하는 감성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라는 내용의 말을 이어 건네기도 하였다.
  "그래도, 결국 해 줬다니, 다행이기는 하네." 이후, 리마라가 말을 건네자, 아네샤는 바로, "그런 거지." 라고 답하고서, 다만, 입구를 비롯한 주변 일대는 그대로 놓아두라고 한 것을 보면, 드벨파 족 사람들은 그것을 전제 조건으로 공사를 허락해 주고,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요즘도 출입 제한 구역을 걸어두고, 그것을 넘어서면 무조건 쫓아내려나?"
  이후, 내가 조심스레 세미아에게 묻자, 세미아는 요즘도 그러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후, 아네샤는 엘베 족 사람들은 그런 제한 구역을 설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 드벨파 족도 그러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냐고 세미아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세미아를 대신해 이렇게 답했다.
  "거기는 안 돼! 그런 거겠지."
  엘베 족과의 협력을 통해 그들의 도움을 받고 싶기는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에 손 대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심성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문명의 유산 그리고 지하 도시에 공을 들이는 수준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 역시 그러했다. 특히, 공작품들을 다수 소유한 이들은 더더욱 그랬다고 한다. 어쩌면, 드벨파 족이 지하 도시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영역 곳곳에 그들이 남기고 만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도시의 모든 구역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 납득이 되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이후, 강가에 자리잡은 의자 근처로 다가가서 쉬려 하였다. 그 무렵, 소녀는 의자의 한 가운데에 앉으려 하였고, 아네샤가 그런 소녀의 오른쪽 옆에 앉으려 하였다. 그 무렵, 의자 뒤쪽에서 강 건너편을 보려 하던 나의 눈 앞으로 아직 푸르스름한 잿빛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 위로 초록색, 연두색, 청록색을 띠는 빛들이 나무에서 피어올라 주변 일대로 급속히 퍼져 가는 모습이 보이려 하였다. 그들은 꽤 멀리 날아가고 있었으며, 일부는 강을 건너 오기도 하였다.
  "나무 주변에만 모여있는 줄 알았는데, 제법 멀리 날아가네."
  그 빛들을 바라보던 아네샤가 말했고, 내가 바로 그런 그에게 "그런 것 같아." 라고 화답했다. 이후, 나는 엘베 족 소녀에게 그러한 빛들을 자주 보게 되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소녀는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환하게 미소를 띠며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저 빛들 중에 웃음을 띠는 모습이 보이는 것들도 있어요."
  "그러니?"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흥미를 드러내면서 물음을 건네려 하였고, 이에 소녀는 그러했다고 답했다.

  세니티아를 비롯한 여러 행성계의 광야, 숲, 초원, 바다 등 어디서든, 자그마한 빛들이 떠도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 빛들은 때로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 바닷길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숲으로 들어선 이들에게 숲을 빠져나가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여행자들에게 여러 크고 작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빛들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행성이 가진 마법 기운에 의해 생성된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새로운 설이 생겨나서, 그것이 정설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래 저 빛들은 행성계의 인간들이었다, 라는 것이지요?"
  대화 도중에 소녀가 세미아에게 물었고, 세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뜻을 전달하였다. 즉, 세미아에 의하면, 행성계를 떠도는 빛들은 아주 오래 전에 죽은 인간들의 혼이 변이한 것이었다고 한다. 옛 삶의 기억도, 삶의 의지도, 심지어 의식조차도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으나, 그럼에도 사념은 남아, 행성계의 자연을 떠돌거나, 때로는 행성의 거주민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나름의 의식을 갖게 되는 이들도 있을 거야, 아까 전에 여자애가 말했던 표정을 짓는 빛들은 그런 의식을 가지게 된 이들이겠지."
  그러더니, 그는 이어서, 빛의 형태로 보이는 이들 이외에도 행성계에는 보이지 않는 사념들이 많이 숨어 있을 것이라 했다. 행성계마다 인류는 오랫동안 역사를 이어갔고, 그 동안 많은 이들이 살다가 죽었으며, 그러면서 여러 사념들을 남겼음이 그 이유일 것이라고.
  "그 사념은 빛이 되기도 하지만, 마법 에너지로 형상화되기도 해. 빛들이 마법 에너지에 의해 태어난다고 여기어졌던 것도 그러한 사념의 특성과 관련이 있을 거야."
  그리고서, 세미아는 소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역에 따라, 극점도 아닌 곳에 극광이 생성되기도 하고, 초목의 색이 일반적인 초록색이 아닌, 다른 색을 띠는 곳이 생기기도 한다고 하며, 그 모두 사념에 의한 마법 에너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간 여행했던 곳을 떠올려 보았다. 세미아가 말한 바대로, 극점도 아닌데, 극광이 생긴 곳도 있었고, 푸른빛, 붉은빛 초목들이 자라나는 신기한 곳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행성에 생성된, '마력' 으로 지칭된 마법의 기운에 의한 일로 여기고는 했었는데, 실상은 약간 달랐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혼들이 마법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거예요?"
  "혼이라기보다는 혼들이 가진 의지와 사념이 마법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다, 라는 것이겠지."
  이어지는 소녀의 물음에 세미아가 그렇게 화답했다. 그리고, 일행의 고향을 비롯한 여러 행성계에서 때로 일반적인 상식 하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며, 이를 사람들이 '마법 현상' 이라 칭하고는 했었는데, 세미아에 의하면 혼이 된 인간의 의지에 의한 일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계속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의지에 의한 일일까?" 내가 묻자, 아네샤는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적어도 인간들 중 대다수는 근본이 악하지 않은 이들이라 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의지가 세상을 마법적인 현상으로나마 보다 밝은 방향으로 변해 가도록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은 결국 사라져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행성계였던 곳들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의지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른들로부터 들었어요. 지금은 평화로운 숲으로 가득한 대륙에서 먼 옛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세상에 더 존재해서는 안 되었던 물질로 만들어진 폭탄들이 하늘에서 지표면으로 떨어지며, 대지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빛을 바라보던 소녀가 말했다. 목소리를 내는 동안, 이전까지의 활발함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소녀에게서 울려 퍼졌다.
  "우리 고향도 그러했었지." 그러자, 세미아가 소녀에게 화답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예전의 세니티아에서도 인간은 존재했었다. 아니, 이 행성계에 존재했던 인류의 본 바탕이 있었던 곳은 지금의 세니티아 행성계 일대였다 (본래는 은하계의 아주 먼 곳이 고향이었고, 그 곳에서 여러 행성계로 인류가 떠나갔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적어도 이 행성계 일대에서는 인간의 발상지는 세니티아 행성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니티아를 시작으로 여러 행성계 (지금의 에르세치아, 가마로데, 베라티사, 테르티라, 아르데이스, 조하르, 먀미아 등) 로 진출한 인류 세계는 각각의 행성계에서 문명의 번영을 이루었었다.
  그러나, 인류 세계들의 번영에도 결국 종말이 찾아왔고, 이들의 몰락과 함께 재앙은 시작되었다. 이러한 몰락과 재앙은 재해와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파멸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다수의 인류 세계는 거듭되는 재해와 전쟁에 의한 파멸로 멸망해 버렸으며, 그 여파로 세계의 주인으로서 존재하던 인간은 사실상 멸종되는 운명에 처해졌던 것이다.

  옛 세니티아는 인간의 파멸을 바랐던 '인간' 대악마 엘 이시크리오스 (El Ishkîrioth, Chainabil) 란 존재에 의해 멸망했었다. 엘 이시크리오스는 기계 병기들로 전쟁을 일으켜, 인간들을 학살하고, 인간들을 마구 잡아들여, 그들의 뇌를 기계 병기에 이식하는 형태로 기계화하였으며, 마지막에는 대형 함선들을 질량 병기화하여 행성에 낙하시키니, 대성자 소마스 안 (Thomas An, Chaibari) 의 희생에 의해 가장 큰 병기가 저지되어 행성 파괴는 무산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병기들이 행성에 낙하하여, 인류 세계는 그렇게 끝장나고 만 것이었다.

  소녀에 의하면 인류 세계 멸망 당시에 궤도에서 1000 여 발의 폭탄들이 행성 전역의 지표면을 향해 낙하해 폭발했으며, 그로 인해 행성 전체가 황폐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는 지하에 격납되어 있었을 이런 폭탄들이 어떻게 행성의 궤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소녀는 말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현상의 내막까지 어린 소녀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엘베 인들은 소녀에게 거기까지는 알려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폭탄을 발사한 이가 암만 그래도, 그렇게 많은 폭탄을 발사하려 했을까?"
  이야기를 듣던 아네샤가 내게 그렇게 물으려 하였고, 그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폭탄 발사를 결의한 작자들도 그렇게 많은 폭탄들이 발사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겠지, 자칫하면 자멸이 될 수 있는 수를 함부로 썼겠냐고. 많이 발사했다고 해도, 대략 100 발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어. 그랬을 텐데, 모종의 이유로 폭탄 발사를 행하는 장치의 기능 이상이라든가, 폭주라든가, 그런 현상이 발발해서, 1000 발 이상의 폭탄들이 발사됐을 것 같아. 1000 발이 뭐야, 실제로는 수 천 발 이상이 발사됐을 거야. 최악의 경우, 10000 발도 날아왔을 걸?"
  "기능 이상이나 폭주가 일어났다면, 과연 다수의 폭탄들이 행성 전역에 흩어져서 낙하했을까? 목표로 설정된 곳이 있다면 그런 곳들에 집중됐을 것이고, 목표 설정 기능까지 잃어버렸다면, 아무렇게나 발사되어서 행성 전역에 고르게 낙하하거나 하지는 못했을 텐데."
  이후, 아네샤가 물었으나, 그 의문에까지 나는 어떻게 답을 하지 못했다. 이야기에 의하면 기계가 오작동을 해서 다량의 폭탄들을 무작위로 발사했다는데, 그 폭탄들이 행성 전역을 빠짐 없이 초토화시켰다고 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계들의 기능 오작동 및 오류 혹은 폭주 현상과는 사뭇 다른 현상이었고, 단순한 기능 오작동으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현상의 요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거나 하지 못했기에,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거나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분명, 폭주를 빙자한 무언가가 개입한 결과일 거야." 그 때, 세미아가 나와 아네샤에게 말했다. 그에 의하면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기계를 고의적으로 오작동시켜서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결과를 불러왔기에, 기능 오작동 혹은 폭주로 간주되었으리라는 것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불러올 수 있을 만한 이야깃거리였겠으나,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어린 소녀를 곁에 두고 할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그 즈음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후에 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고 싶어? 여기에 머무를 거야, 아니면 길을 더 갈 거야?"
  이후, 내가 소녀에게 묻자, 소녀가 답했다.
  "여기서 조금 더 머무르려고요." 소녀는 굽이진 강가의 풍경을 보려고 걸어왔었다고 했다. 원하는 풍경을 보게 됐으니, 그 곳에 잠시나마 머무르려 하였던 것. 그러자, 나부터 우선 길가에 앉으려 하였고, 이후에 소녀에게 옆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하여 나와 소녀가 나란히 앉은 곳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네샤와 리마라 그리고 우측에 세미아가 앉게 됐다.

  한편, 강 건너편에서는 계속해서 빛들이 나무에서 피어올랐고, 그 빛들이 주변 일대를 화려하게 꾸며가고 있었다. 이전보다도 더 많은 빛들이 강을 건너왔으며, 일행이 앉은 일대까지 처음 빛들을 발견했을 때보다도 더 많은 빛들이 흘러오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야, 그렇지?" 내가 묻자, 아네샤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늘 이런 풍경을 보며, 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 때, 리마라가 나와 아네샤에게, 루샤트 주변에도 가끔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에 내가 "그렇긴 하지." 라 화답했다.
  한편, 소녀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두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잠깐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이후,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려 하였다. 그 무렵, 한 무리의 작은 새 무리가 눈앞의 좌측에서 우측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너는 뭐가 되고 싶어?" 그렇게 한 동안 경치를 구경하고 있던 소녀에게 아네샤가 물었다. 불현듯, 소녀의 장래 희망에 대해 궁금해진 것 같았다. 그러자, 소녀가 바로 답했다.
  "용사가 되고 싶어요." 그러자, 소녀가 바로 답했다. 이후, 그가 말하기를, 이전에 에오르 린, 에오르 리아 자매를 만났다고 했다.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것이 그들의 일이라 자신에게 알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비대에서 실력을 쌓아서, 그들처럼 세계 각지에서 악을 물리치는 용사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었다.
  "경비대에 지원하려고?" 이에 아네샤가 다시 물었고, 소녀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에오르 린, 리아 자매는 경비대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후, 그들의 제자와 함께 특수 작전대를 구성,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소녀는 아무래도 에오르 자매의 제자가 된 이처럼 특수 작전대에서 활약하고 싶었던 것 같다.
  "쉽지는 않은 일일 텐데, 괜찮겠어?" 어떻게 생각해도, 보통의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세미아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일 것임을 밝히면서 걱정스러워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소녀는 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해 봐야 아는 것 아니겠느냐고 바로 답하려 하였다.
  "당찬 생각을 가진 아이네." 그런 그의 모습에 세미아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했다. 딱히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나와 아네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리마라가 나와 아네샤를 보더니, 이렇게 물음을 건네는 것이었다.
  "너네들도, 어릴 때, 저러하지 않았어?"
  그러더니, 나와 아네샤에 대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밝히기를, 어릴 적 나와 아네샤의 소망이 '우주의 모든 행성계를 날아보는 것' 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도, 아네샤는 기억하지 못한 듯해 보였으나, 나는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랬지, 쟤도 딱히 부정 안 하는 것 같네." 그러자, 세미아가 나를 보더니, 그랬음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소녀에게 나와 아네샤를 가리키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저 언니들도 어릴 때에는 너와 같은 장래 희망을 갖고 있었지. 그리고, 이렇게 여러 행성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지. 지금은 모종의 임무 때문에 여러 행성계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런 것 없이도 스스로 원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었어."
  그러더니, 이렇게 소녀에게 말해 주기도 했었다.
  "그런 경우도 있으니, 너도 언젠가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올 수 있을 거야, 에오르 린, 리아 두 자매 분과 함께 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뜻이 있다면 그 뜻을 향한 운명의 길 역시 열려 있겠지. 다만, 그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는지는 너에게 달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돼, 알았지?"
  "알겠어요." 그러자, 소녀는 조용히 웃으면서 답했다.



  "알리스 (Alis), 거기 있는 거야?" 그 무렵, 멀리서 또 다른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뒤쪽으로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살피려 하니, 그 방향에서 자신의 무릎까지 내려가는 긴 금색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작은 소녀가 일행 쪽으로 뛰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둣빛을 띠는 짧은 소매의 옷 위에 멜빵 끈이 달리고, 치맛단이 무릎까지 내려가는 초록색 겉옷 (이것을 점퍼 스커트 (Nemikiscima) 라 칭하기도 한다) 을 입은 소녀로, 앞머리 좌측의 머리카락에 초록색 십자 모양 핀을 꽂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였다. 소녀는 자신이 알리스라 칭한 소녀를 보자마자 바로 일행 쪽으로 뛰어왔으며, 그 모습을 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알리스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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