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기계적으로 끊어지는 목소리를 내는 나렐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며, 바로 당황한 듯이 목소리를 내는 도로시아. 그 때, 크세비아가 들어줄 가치가 있겠느냐는 말을 그에게 전하고서, 그에 이어 나렐에게는 도로시아에게서 멀어지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그런 크세비아의 행동을 바로 말리는 도로시아.
  "멀어져, 바르코스의 앞잡이! 우리를 속인 자!!!"
  "아서, 얘! 암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나서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그의 행동을 저지한 이후, 곧바로 그에게 하나의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타이르면서 그를 자신의 오른쪽 어깨 위에 올려놓고 다시 나렐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려 하였다.
  "....... 이제 준비가 된 듯 하군,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짧게 이어질 것임을 도로시아 그리고 크세비아에게 알리면서 자신이 도로시아에게 남기고 싶었다는 '짤막한 이야기' 를 전하려 하면서, 그 이전에 자신이 이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두 명의 공주들이 그들 중 한 명과 인연이 깊었던 도로시아라는 이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말을 건네었다.
  "좋아요, 일단 들어보겠어요. 그 말을 믿을지의 여부는 이후에 결정하도록 할게요."
  이후, 무슨 말이 들려올 것인지를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는 모습을 보이는 도로시아. 그러자 나렐은 바로 고맙다는 화답에 이어 곧바로 공주들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당시, 첫째 공주는 사실상 생을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요새에 이른 나렐의 모습을 보며, 그가 인간의 편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인간의 편이 되었다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나렐이 할 수 있다고 답을 하자, 그는 조용히, 기계적으로 변하였던 목소리를 내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서, 그에 이어 자신이 부탁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에게 들려주려 하였다. :
-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왕가의 장녀였고, 그래서 힘든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항상 자신이 앞장서야만 했던 탓에 때로는 장녀로 태어난 자신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 당시의 일도 마찬가지여서, 그 대가로 국민들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나서려 하였던 것. 누구나 알 만한 사지로 가는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녀이기에 당연히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공주로서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거나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으며,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은 있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포기하면서 얻어야 했던 것이 있었기에 그 모두를 누리지 못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를 두고 후회를 하지 않는다, 미련 역시 가지지 않고 있다. 왕국의 높은 사람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토록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책임은 당연히 짊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모든 고통의 감수는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왕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받는 생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다만, 한 가지 후회된다는 생각을 하는 바가 있다면, 이는 이런 자신의 결단에 의한 희생으로 바르코스가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행한 실험을 토대로 왕국 전체에 재앙을 가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러하다보니, 이런 희생이 동생에게까지 가해진 것에 대해 왜 동생까지 왕궁에 들어가게 하였을 지에 대한 회한으로 이어져 자신을 항시 괴롭히고 있었다.
  한 때는 그 생각마저 정리되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렇게 기계가 되어갈 것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든 희망을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은 다시 인간으로서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계화되고 있었을 몸 역시 이전에 비해 가벼워지고 있었다. 무엇에 의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자신에게 가호를 내려 인간으로서의 생을 이어가도록 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인간으로서, 공주로서의 삶은 그 때에 끝이 난지 오래였기 때문. 이제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이상, 자신에게 남은 소원이라면 한 가지가 있을 뿐이었다. '꽃의 나라' 인 파라일라를 건설하면서 옛 선조가 가졌을 이상을 이어갈 수 있는 이가 나타나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 유일한 소망. 그 이상을 이어가는 이가 없다면, 파라일라와 같은 꽃으로 가득한 세상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이는 곧 파라일라를 위해 나섰던 모든 이들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을 이어가는 이는 반드시 인간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가급적이면 파라일라에 살고 있었던 이들이 그런 이상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할 따름이다.
  그리고 제단 위에 놓여 있던 첫째 공주의 곁에는 둘째 공주가 누워 있었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던 둘째 공주는 나렐과 마주치자마자 이제는 실험할 일도 없는데, 왜 찾아왔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나렐이 더 이상 그를 해칠 마음도 없으며, 바르코스에게서도 떠난 지 오래임을 밝히자, 안심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을 어찌하여 찾아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후, 나렐이 그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나 소망 같은 것이 있음을 밝히자, 이를 바르코스를 위해 이용하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
  더 이상 나의 삶과 행복에는 미련이 없는 상태이다. 그저 한 가지 소망만 가지고 있을 따름이며, 그 소망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면 하니, 내가 만났던 모든 소중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이들이 어디라도 좋으니, 반드시 살아남아 자신의 삶을 살아가 달라는 것일 따름. 자신이 언니의 뒤를 이어 금속 인간들에게 맡겨지며, 희생을 당한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서 나렐은 곧 자신이 맡게 되었던 바르코스의 왕에게 돌아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의 경위에 대해 밝히는 일을 하기 위해 나서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나렐이 바르코스의 편으로 다시 돌아섰음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니 그러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들은 오랫동안 요새 지하에 속박되어 있어서 바깥으로 나간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라도 믿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두 공주님들께서는 요새 지하에 그런 상태로 놓여 계신단 말이지요!?"
  "그렇다, 지금 너희들이 갈 곳에 그 두 공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이후, 크세비아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는 채로, 공주들이 비극을 겪었다는 사실은 이미 도로시아로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었으리라 믿는다는 말을 건네는 나렐. 이후, 도로시아는 그가 예상한 바대로, 크세비아로부터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언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 모습은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일그러진 기계의 모습이겠지요. 바르코스에게 가해진 실험으로 변이된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떠올리다 보면, 그들 역시 그렇게 변이 되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라는 말을 건네었고, 이에 나렐은 "그 모습을 직접 보기는 했나 보군." 이라고 그의 발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듯한 말을 바로 그에게 전하였다.

그에 이어, 이번에는 자신이 물음을 건네겠음을 알리고, 그에 이어 곧바로 이전에 비해 심각해진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묻고자 한 바에 대한 언급을 행하려 하였다.
  "나렐, 당신의 그 이야기는 언젠가 제가 공주님들을 만난 이후에 그 분들로부터 직접 들을 수도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굳이 당신께서 저에게 다가와서 당부를 하는 듯이 전하려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지요?"
  "예상하지는 못한 질문이었다. 이에 곧바로 그 질문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바로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나렐. 그러나 곧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에는 바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언급을 하고서 자신은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언급을 하고, 자신은 그저 누군가로부터 부탁 받은 일을 그대로 행하는 정도의 일만 행하였을 따름이기에,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이어서 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공주들이 나에게 전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라일라 인으로서 성계에 살아남은 이에게 공주가 전하고자 한 말이었다고 여길 수 있겠지."
  그리고 파라일라 인으로 살아남은 이들 중에 공주들의 말에 가장 깊이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이가 누구인지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에게 자신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곧바로 그 사람이야말로 공주들이 유언으로 남긴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언급이 이를 뒷받침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제 해야할 말은 끝났고, 더 이상 내가 네 곁에 있어줄 필요는 없겠지."
  이후, 그렇게 작별의 성격을 띠는 말을 전하고서 곧바로 자신이 다가왔던 문의 입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나렐. 그러다가 도로시아의 좌측 근처를 지나가려 하면서 마치 그를 스쳐 지나가려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마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깊은 생각에 잠기기라도 한 듯이 고개를 약간 아래로 숙인 도로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는 채로 말을 잇고 있었다.
  "다만, 이후에도 내가 너와 만날 일이라면 언제라도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이후로 이렇게 말을 주고 받는 정도의 인연이 다시 이어질 생각은 하지 않도록 하여라. 지금 이후로, 나는 너에게 아픈 기억을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마치 위협을 가하는 듯한 어투로 마지막 말을 건네고서 나렐은 그대로 도로시아를 지나쳐 문의 입구 너머로 나아가며, 나의 눈앞에서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문을 지나간 이후, 바로 도로시아의 곁에서 일어나더니, 이미 자리에 없는 그를 향해 돌아서며 분노를 폭발시키는 크세비아.
  "미안하다고 말해도 모자랄 형편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그 때, 도로시아가 "아서라, 얘." 라고 말하며, 이런 그를 저지한 이후에 끄를 향해 돌아서면서 그가 남겼던 말 중에는 정말 일리가 있는 말도 있다는 언급을 이어 하였다.
  "암만 그래도, 그가 건네었던 모든 형태의 발언이 잘못된 것은 아니야, 이 중에 엄연한 사실을 반영한 말도 분명히 존재해, 그 발언이 진심에서 나왔는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리고 그 자신도 자신을 납치한 바 있던 그가 접근해 와서 보였던 행동의 의도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공주들의 발언을 전하였으며, 그 발언이 실제 공주들의 발언으로서, 파라일라 인들 중에서 그들의 말을 가장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이를 위한 것이었다면, 중요하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뜻을 드러내려 하였다.
  "......." 이에 대해 무언가 말을 전하고 싶었을 법한 크세비아. 그러나 도로시아가 계속 다그쳤던 탓인지, 아니면 정말 그의 발언 중에는 납득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선뜻 도로시아의 생각에 대한 반박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정말, 나렐이라는 자가 전하였던 이야기가 공주님들께서 파라일라 인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까요."
  라고, 크세비아가 도로시아에게 물음을 건네자, 그 물음에 도로시아가 그의 차가운 목소리로 인해 실감나지 않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그가 전하였던 이야기는 공주들이 마지막으로 남겼을 소망의 간절함이 어느 정도는 느껴지고 있었다고 바로 화답을 하려 하였다.
  "...... 그렇다면 그가 언급하였다는 살아남은 파라일라 인들 중에서 공주님들의 말씀을 가장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일만한 이로 누가 있을지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정말 모르면서 묻는 거니." 그렇게 크세비아가 건네는 물음이 나름 웃겼는지, 나렐이 떠날 무렵에 우울함으로 인해 어두워진 그의 표정에 미소가 번져오고 있었다. 그렇게 미소를 지으면서 도로시아는 이전에 비해 약간이나마 밝아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잣말로서,
  "이 와중에도 그는 나를 잊지 않고 있었구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말을 건네고서, 크세비아에게 자신 같았으면 그런 일에 의한 고통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면서 소중했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가질 수는 있을지라도, 그들에 대한 생각을 마음 속에 간직하지는 못할 텐데, 그는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었다는 언급을 하면서,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고통을 견딜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이래 뵈도, 공주님이시잖아요, 한 나라의 왕이 되실 수도 있으신 분이시기도 하고. 그 정도의 일은 해내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서 그는 잠시 동안 말없이 가만히 도로시아와 함께 문 너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일행이 나아간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도로시아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자아, 이제 가요. 다른 일행 분들께서도 기다리고 계실 것 아니에요."
  "내가 그들에게 짐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까."
  이에 도로시아 역시 크세비아와 똑같이 일행이 나아간 방향을 향해 돌아서면서 밝게 미소를 지으며 화답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면서 통로에 위치하고 있던 나와의 거리를 점차 좁혀가고 있었다. 그 때, 크세비아가 바로 격려의 말을 전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로시아 님께서 일행의 짐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이후, 그는 그렇게 화답을 하고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전에 자신과 헤어진 나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겼는지, 바로 그에게 이런 부탁의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만났던 그 나렐이라는 이 있잖아."
  "예, 그 사람....... 무척 기분 나쁜 느낌을 전해주었어요, 유난히."
  "아무래도, 다시 적으로 돌아선 데다가, 나를 납치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강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사람이 다시 한 번 적대를 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리고서 그는 다시 그가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게 될 경우에는 마리아 에르세레즈가 자신에게 건네었던 물건이 있음을 밝힌 다음에 그 물건을 그에게 던지겠음을 밝혔다. 그리고서 그것에 관해 초소형 폭탄의 일종임을 밝히고서 그것이 폭발하면 어지간한 크기의 물체는 소멸한다는 언급을 한 이후에 그 정도 물건이라도 있으면 그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그에게 전하려 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이야기를 통해 크세비아와 나렐, 둘 중에 나렐에게 기울어졌다고 여기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나, 그래도 자신은 크세비아의 편임을 밝히고서, 이전의 행동은 크세비아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를 제지하기 위한 정도에 불과했을 따름이라는 언급을 이어 하였다. 그리고서, 이전보다 더욱 서둘러서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건넨 다음에 바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이제 나도 계속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겠구나.'
  그 모습을 보며, 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던 나 역시 통로 너머로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바로 일행이 나아갔던 방향을 향해 바로 돌아서면서 통로 너머에 위치하고 있을 공간을 향해 뛰쳐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 때 뒤에서 누구냐고 묻는 목소리-크세비아의 목소리였다-가 들려오고 있긴 했으나, 그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려 하지 않았으며, 그 목소리 역시 실제로 잘 들리지 않아 환청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통로의 끝에 위치한 문 앞에 이르자마자 바로 먼저 그 통로의 끝에 이르렀을 이-아무래도 루마나 라이마의 둘 중 하나였으리라-가 열어놓았다가 반 즈음 닫혔을 법한 문의 좌우 부분, 각 가장자리를 한 손에 하나씩 잡고, 문을 열어젖히며, 그 너머에 위치하고 있을 공간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의 눈앞으로 한 번 정도는 나타날 법한 광경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전에 지나쳤던 곳과 마찬가지로 원형을 이루는 공간. 기둥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의 중심에는 하늘색 빛을 발하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연못의 중앙에는 은색을 띠는 둥그런 발판이 위치하고, 그 발판의 중앙에는 테두리 모양새에 장식이 들어간 형태를 갖춘 네모난 관 모양을 이루는 대 하나가 있으며, 그 대 위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연못과 단이 놓여진 둥그런 발판 사이에는 네 방향에 하나씩 다리가 놓여져 있어서, 다리가 위치한 모습이 십자 형태를 이루도록 되어 있었다.
  단의 주변 좌측에는 라이마과 일린 그리고 샤리에나가, 그리고 우측에는 루마와 예즈라 그리고 리아레안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공간의 입구 근처에 이를 무렵, 샤리에나가 급히 나를 맞이하려 하면서 물었다.
  "이제껏 뭐하다가 이제 오셨어요,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로시아 양께서 무슨 일을 겪는지 보려고........"
  이에 나는 그렇게 화답을 한 이후에 지금껏 내가 도로시아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나마 설명해 주려 하였다. 그러자 샤리에나가 놀라면서 바로 그에게 물었다.
  "정말, 그 나렐이라는 이와 도로시아 양께서 계속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것이지요?"
  "예." 그 물음에 나는 바로 간단히 대답을 하고서 두 눈앞에 나타난 광경인 만큼, 사실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언급도 이어서 하고 있었다. 그러자 샤리에나는 무언가 깊이 생각해야 할 바가 있는지 다소 무거워진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알았어요." 라는 답을 한 이후에 그에 대해서는 일린 그리고 라이마와 잠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는 언급을 하며, 나의 곁에서 물러나려 하였다.
  그 이후, 다시 두 사람의 곁으로 돌아간 샤리에나는 한참 동안 무언가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러는 동안 이전까지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라이마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나의 귓가로 들려오기도 했다. 이런 광경을 잠시 바라본 이후, 나는 곧바로 공간의 안쪽 가장자리와 단 사이를 잇는 다리들 중 내가 방금 지나쳤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다리를 향해 먼저 다가가려 하였다.
  마치 관처럼 생긴 단, 그 단의 위에는 사람의 형상을 갖춘 두 다리와 두 팔을 모은 채, 누워 있었다. 하얀 붕대에 감겨 있는 그 형상은 가슴 부분이 둥글게 부풀어 있었고, 허리 부분이 잘록하여 그 모습을 보며, 여성의 형상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형상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리아 에르세레즈로부터 들었던 하나의 일화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그 때, 그 분께서 요새의 지하 어딘가에서 붕대에 감긴 사람의 형상을 본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지.'

  그 때, 저는 그 깊은 곳에서 놀랄만한 광경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신전의 제단이 위치하고 있을 법한 팔각형을 이루는 거대한 방의 한 곳에 하얀 붕대에 감긴 채, 두 팔이 벽에 달린 못에 묶인 사슬에 결박되어 있으면서 하나의 여체가 벽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 당시의 기억을 상기하며, 나는 그 여체의 모습을 나타낸 듯해 보이는 형상이 마리아가 보았던 형상으로서 본래는 그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의 내벽에 사슬에 의해 매달려 있다가 마리아에 의해 구조된 이후, 방치되어 있던 것을 바르코스 측이 옮겼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바로 할 수 있었다. 그런 추측을 하면서 나는 바로 그 붕대에 감긴 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었다.
  '이것이 마리아 에르세레즈가 보았다는 그 형상이겠구나.'
  이후, 내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다리의 중간 즈음에 이르렀을 때가 되어, 나는 두 눈을 통해, 그 형상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금속 덩어리가 아닌 금속으로만 이루어진 기계 장치로서, 인간의 형상을 묘사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반드시 각이 진 부분 등이 생겨나는 것이 그 때문. 특히나 바르코스에 의해 생성된 인간형 기계의 형상은 기계 골조나 갑주와 비슷한 형상이 대부분이기에 이런 각이 진 부분은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기계로 이루어진 형상이 붕대에 감겨 있다면 외형에는 반드시 각이 진 부분에 의해 돌출된 모양새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 붕대에 감긴 형상의 모습은 이런 나의 예상과 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보아왔던 바르코스에서 만들어진 여타 기계의 형상과 달리 그 외형에서 각이 졌을 법한 부분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니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치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붕대로 감싼 듯해 보이는 형상,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마리아 에르세레즈로부터 들려온 이전에 빛을 발하는 수정을 가슴에 박았다는 그의 이야기를 상기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수정이 기계의 형상에 변화를 주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이러한 이상, 그 기계의 형상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임은 분명했으니, 이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그 모습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하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붕대로 감겨진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여체를 닮은 형상,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붕대를 풀 수 있다면 그 변화된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그 형상으로 왼손을 뻗었다. 형상을 감은 그 붕대를 만지기 위한 일이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붕대를 뜯어내는 것으로서 그 형상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과정에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정적 전기 현상' 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마찰 전기' 라 칭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그 정적 전기 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현상은 전기 기운이 어느 정도 이상의 강한 극성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 현상에 의해 물질이 휘어지는 현상-물질은 원소 뿐만이 아니라 전기 기운도 같이 품고 있다. 이 전기 기운이 강한 극성을 가지는 전기 기운과 마주쳤을 때, 이에 반응하면서 물질의 흐름이 휘어지는 현상 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과 방전이 있다. 번개는 이 방전의 일종이며, 손에 닿았을 때, 갑자기 전신을 파고드는 고통이 가해지는 현상은 이 방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형상을 감은 붕대에 손을 대는 순간 일어난 현상은 '방전' 의 일종이었다. 갑자기 초록색을 띠는 빛이 덤불과 같은 형상을 이루며 주변 일대로 퍼지면서 나의 손에 대량의 전기 기운이 가해진 탓에 그로 인해 손가락 끝뿐만이 아니라 전신의 신경에 강한 기운이 가해지며, 나에게 고통을 가하였다.
  "아, 아앗!!!!" 순간적으로 일어난 그 고통에 나는 아픔과 놀라움을 어찌하지 못한 채, 다급히 왼손을 그 붕대에서 떼어내고, 그러면서 바로 발판 위에 두 무릎을 바닥에 대는 채, 주저앉고 말았다. 그 와중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놓친 것은 물론이었다.
  "유네아 님!"
  "유네아 님, 괜찮아요!?"
  그 때, 이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두 사람. 이들은 바로 이전까지 통로에 남아있던 도로시아 그리고 크세비아였다. 도로시아는 크세비아를 대동한 채, 손가락에서부터 다가온 고통으로 인해 주저앉은 나에게 급히 다가와 나의 바로 앞에 앉으면서 괜찮은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괜찮아요, 전기 기운에 의해 충격을 받았을 따름인 걸요."
  이후,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서 다시 붕대에 감긴 사람의 형상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붕대에 감긴 사람의 형상을 따라 전기의 기운이 흐르고 있으며,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의 기운이 나에게 닿자마자 바로 반응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바로 추측을 하였다. 그 무렵, 이런 나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는 나에게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는지, 도로시아와 크세비아 그리고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샤리에나와 라이마 역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내는 이는 다름 아닌 건너편 어딘가의 공간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르는 에레아였다. 그는 이전의 행동에 대한 조소의 뜻을 전하기라도 하려는지, 비웃음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고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그 이후, 내가 마련해 둔 함정에 바로 걸려드는 일까지 모두 기대에 부합되는 행동이었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구나.
  그리고 자신이 내가 원하는 대로, 올려둔 물건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느냐고 물은 다음에 본래 그 물건은 요새 지하 깊이 자리잡은 구역에 놓여 있었음을 밝힌 다음에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바르카디아의 지하 사당의 중심에 올려둔 것임을 밝히고 있었다. 단 위에 놓여진 그 형상은 그 도중에 설치되어 나와 같은 이를 이끌었을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게 무슨 의도로 마련된 장치인지 조금이라도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바로 간파할 수 있었을 텐데, 바로 형상을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 형상을 올려놓고 순순히 에레아가 가져가도록 놓아둘 턱이 있을 리 없음을 그 때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당했다,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건데.'
  그렇게 내가 실수를 하였다고 생각할 무렵, 이번에는 에레아의 목소리가 나에게 물음을 건네어, 혹시 그 앞에 있는 존재의 본 모습이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그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으니, 도로시아는 별 다른 수단 없이 매달아 놓기만 하여, 바로 구출할 수 있었던 반면에 제단에 놓여진 물체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로시아를 구출할 때에는 겪지 않은 어려움에 바로 놓이고 있었다, 그런 현상을 상기하며, 나는 도로시아를 붙잡으며 무엇을 추구하려 하였는지에 대해 알려 하였으나, 이래뵈도 한 무리의 실질적인 수장일 에레아가 쉽게 가르쳐 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일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바가 있었는지, 뒤쪽의 우측에 위치한 예즈라로부터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물의 접근은 제지하면서 이전까지 납치하고 있던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풀어주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위는 무슨 의미를 부여받고 있지? 그 사람은 그저 유네아 양을 비롯한 이들을 지하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는 건가."
  "그래, 그렇다. 도로시아의 납치는 그와의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유네아를 끌어들여, 나의 곁으로 인도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했지, 그리고 그 정도의 역할을 위해서만 활용되는 존재인 이상,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가할 이유도 없기에, 그대로 두었던 것이고."
  그리고 그에 이어, 이왕 드러난 이상, 소녀를 납치한 일에 관해 더욱 자세히 알려주도록 하겠다는 언급에 이어, 납치한 이에게 아무런 행위도 가하지 않았음은 납치된 변이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보다, 원래 모습 그대로 남고 있을 때에 사람이 더욱 절실히 그를 구하려 할 것이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그를 구하기 위해, 그가 위치하고 있을 법한 곳에 이르려 할 것이라는 판단에 의한 일이었음을 우선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그 이후, 그는 그에 이어지는 발언으로서, 이전에 자신이 일행을 향해 언급한 그대로, 도로시아를 납치한 일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여, 이제는 내가 자신이 위치한 곳, 그 근방에 이르렀으니 그 존재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으며, 그래서 내가 자신이 위치한 곳 근처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린 이후에는 '없는 존재' 로서 취급하고 있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제 알겠나, 그 일에 관해."
  그리고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건너편에 위치한 '중추의 옥좌' 를 향해 다가오기를 바란다는 언급을 하고서 바르코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물은 이후에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들려줄 수 있으나,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을 각오는 해 두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건너편에 위치한 전기 장막에 감싸인 것처럼 보이는 문의 모습에 변화가 발생, 문을 감싸는 전기 장막이 사라짐에 이어 문이 활짝 열리며, 그 너머로의 진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목소리는 그 공간에서는 다시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후, 그러한 에레아의 목소리에 대해 그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을 하고 있었을 법한 물음을 건네는 루마. 이에 리아레안이 그 답으로써,
  "저희들 모두를 쓰러뜨리고 자신에게 가해진 모든 저항을 바로 없앨 수 있다는 확신에 차고 있는 듯 해요."
  라고 추측의 발언을 드러낸 이후에 그 추측이 옳은지는 한 번 정면 대결을 해 봐야만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바로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일행은 바로 문 너머를 향해 출발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나,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음을 밝히고서 그에 이어지는 말을 건네는 예즈라.
  "하지만 저 앞에 위치한 이의 상태를 지켜보아야 할 이도 있어야 할 거예요, 혹시 전기 기운의 속박에 풀린 개체가 깨어나거나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 이외에 한 사람이 더 남았으면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서, 예즈라는 곧바로 자신이 위치한 발판 근처의 다리에 모인 일행에게 누가 남겠는지 누구나 좋으니 밝혀줄 것을 당부하는데, 그 때, 루마가 그런 예즈라에게 바로 다가와서는 두 무릎을 허벅지 한 가운데에 살포시 올려놓으며, 가볍게 허리를 굽히는 자세를 취하는 채로,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은 한 사람 정도가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굳이 두 사람이서 한 개체가 깨어나는지 여부를 지켜볼 필요까지는 없을 법 한데."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