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성의 모든 것을 파멸시켜 간 그 재앙이 끝난지도 이제 17 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정으로 뒤덮였던 성계였지만 성계를 위해 남아 준 이들과 성계를 위해 찾아와 준 이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도로시아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꽃의 요정, 크세비아의 초록빛 성계를 되찾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밤낮 없는 노력이 그 결실을 거두어, 마침내 성계는 초록빛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기반이 되는 암석층은 그대로 수정으로 남았지만 그 위의 표면에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생성되었음에 도로시아, 크세비아는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요정들 역시 크세비아와 도로시아를 중심으로 모여서 그들의 노력에 동참을 하였고, 이로써 세니티아 등지에서 찾아온 이들의 도움 없이도 도로시아는 성계의 초록빛을 되찾는 일에 나설 수 있게 되어, 재건을 개시한 지, 2 년 정도 지난 후에는 이들을 모두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는 날개를 가지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그 요정들은 금속 세포가 사라지면서 대지에 생성된 빛에서부터 태어난 이들로서, 희생되었던 영혼이 요정으로 변이한 모습. 근본 자체는 꽃의 요정과 달랐지만 그 기본적인 특성은 꽃의 요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고, 이러한 특성을 통해, 도로시아는 이들을 바로 받아들여 성계에 꽃을 피우는 일에 가담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태어난 이들을 도로시아는 다시금 '꽃의 요정' 이라 칭하였다. 꽃과 관련이 없었지만,
  꽃의 여왕, 그 후계자로 정해져 있던 도로시아는 성계의 수복을 위해 나서면서 여왕으로 간택이 되었고, 성계의 수복이 그 결실을 맺을 무렵, 그는 비로소 '꽃의 여왕' 임을 성계에 알리는 의식을 바탕으로 되살아난 꽃의 요정 집단의 여왕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드디어 일이 끝났구나, 크세비아."
  재앙 이후, 수복에 나서기를 십 여 년, 그 이후, 다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을 그 무렵, 성계의 한 곳에 울창히 번성한 숲의 중심에 자리잡은 거대한 나무의 바로 앞에 아름다운 소녀가 머무르고 있으면서 바로 앞에 위치한 바위에 앉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보다 어린 듯한 인상을 가지는 소녀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하늘색을 띠며 발목 근처까지 내려가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 위에는 하얀 꽃으로 이루어진 왕관을 쓰고 있었으며, 어깨 부분이 없고, 무릎까지 내려가는 치맛단이 마치 꽃잎과 같이 갈라진 모습을 보이며, 반즈음 투명한 하늘색 천으로 이루어진 드레스를 입고, 두 발을 하늘색 구두로 감싸고 있는 옷차림을 갖추고 있었으며, 깊은 푸른색을 띠는 눈동자로 자신의 눈앞, 그 먼 곳에 자리잡은 호수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온화함을 가득히 품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자애로운 일면을 나타내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런 그의 양 어깨에는 요정을 상징하는 날개인 3 쌍의 나비 날개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는 새하얀 날개가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이런 그의 모습은 그가 요정임을 바로 세상에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자리잡은 소녀는 긴 머리카락을 묶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을 묶은 띠의 한 곳을 리본처럼 매듭을 짓고 있었다. 역시 어깨 부분이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약간 투명한 옷차림을 구성하는 치맛단의 끝이 허벅지까지 전부 드러낼 정도로 짧았다. 맑은 빛을 머금은 듯한 면을 보이는 큰 눈동자를 가지는 그의 얼굴 표정에는 활발함이 여전히 가득해 보였다.
  하늘색으로 치장을 한 소녀. 그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새로이 태어난 성계의 구성원인 요정들의 수장으로서, 그 여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이였다. 그의 이름은 도로시아. 성계에 살아남은 이들 중 하나로서, 성계의 수복에 앞장섰던 이.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이는 크세비아로서, 성계에 살아남은 유일한 요정이었던 이였다. 이들은 성계의 수복이 끝나고, 더 시간이 지났을 무렵, 겨우 마련한 휴식의 시간 도중에 숲의 중심에 위치한 나무 근처에 자리잡은 연못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예, 그 재앙으로 여왕님께서도 많은 것을 잃으시기는 했지만......."
  "그렇지." 이에 도로시아는 조용히 눈을 감고, 오른손을 그 적당한 풍만함을 가지는 가슴 언저리에 올린 채,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중에는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이들도 있었어. 하지만 그런 이들을 잃은 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었고, 올바른 길을 찾아가려 하니, 어느새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된 것 같아."
  "많은 이들의 도움도 있었겠지요."
  "그래, 그 도움이 있었기에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러하니, 세니티아 등에서 찾아와, 잠시나마 도움을 준 이들에게는 항상 고마움을 표하고 있어. 그들이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대화가 이어진 후, 다시 조용히 눈을 감는 모습을 보이는 도로시아. 그 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크세비아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 채, 물었다.
  "여왕님, 혹시 시아란 공주를 그리워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 그렇지, 그 사건 이후, 가끔씩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이후, 크세비아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면서 도로시아는 다시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는 채, 온화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그리고 헛된 꿈이라 할지라도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하였다.
  "....... 여전하시네요,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시기도 하셨고, 세월도 이렇게 지나갔으니, 이제 포기하실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이고, 또 나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연이었어. 그러하니, 그 기억과 그리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거야."
  이후, 그 물음에 그렇게 화답을 하는 도로시아.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이전에는 없던 슬픔을 짓는 표정을 지으면서 조용히 말을 이으려 하였다.
  "....... 그리고, 이렇게 세월이 흐르게 되니, 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선명히 떠오르기도 해."
  그리고 그 그리움 때문인지 덧없는 희망이라도 가지면서 그로 인한 마음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려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있었다. 이에 크세비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측은히 바라보기만 할 뿐, 달리 말을 잇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실제로 말로 표현하는 일까지는 바로 행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좌측 인근의 숲길을 통해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천으로 온몸을 두르고 있는 이로서, 새하얀 얼굴과 두건 사이로 드러내는 금색을 띠는 긴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띄는 이였다. 그런 두 손에 새하얀 나리꽃을 안고 있던 그에게는 살의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저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보이는 표정을 조용히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2.
  도시를 주름잡던 '악마' 가 사라진지도 이제 1 년이 넘었다. 도시의 분위기에는 변화가 생겼으니, '악마' 가 사라지기 전보다도 더욱 활발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로저가 일하는 공장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이전에 없던 활기가 바로 느껴지는 모습을 보며, 로저는 그에 대해 만족하며 즐거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 로저는 자신의 집 안으로 이미 누군가가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직장 동료가 집에 들어오기라도 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 저예요. 보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는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전에 자신이 딸을 위해 마련해 주었던 새하얀 블라우스와 하늘색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허리에 하늘색을 띠는 리본을 두르고, 다리를 하늘빛을 띠는 투명한 스타킹으로 감싸고 있는 이로서, 발목 아래까지 내려가는 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며, 위에 푸른색을 띠는 거대한 리본이 자리잡은 모습을 보이는 머리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밝은 색을 띠는 얼굴의 두 곳에 자리잡은 눈동자 역시 깊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로저는 그가 자신의 딸, 주니아임을 바로 알아차렸고, 그러면서 바로 조용히, 감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그래, 주니아로구나." 라고.
  이후, 주니아라 칭해진 소녀는 바로 그를 향해 뛰어가더니, 바로 그의 두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로저는 그런 주니아의 가녀린 허리를 다른 말없이 조용히 두 팔로 끌어안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자신의 딸이 돌아왔음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기에 달리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3.
  야스모르 성계를 떠난 후, 예즈라는 동료들을 먼저 떠나보낸 이후에 여행 삼아 인근의 성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성계의 황야를 둘러싸는 계곡 위를 거닐면서 그는 먼 앞에 보이는 산등성이와 그 위로 보이는 유난히 강렬히 빛을 발하는 새하얀 태양의 빛을 품은 푸른 하늘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지도 이제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성계 외로의 여행이 유난히 많은 예즈라. 그리고 어느덧, 여행을 시작한지 나름 꽤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에 대한 감회가 새로울 만한 때가 그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로 조용히 하늘로 시선을 향하고 있으면서 무언가 깊은 생각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으니, 어두운 사념에 사로잡힌 채,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지는 않고 있었다, 그의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잡은 무언가가 있어서 그의 마음에 자리잡은 행복을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는 행복을 억누르는 감정을 차분히 다스리고 있었던 탓인지 불편한 심기를 내색하지는 않고 있었다, 불편한 심기의 근원이 된 일에 대해 이제는 지나간 추억 속의 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일까.
  하지만 그 평온도 잠시,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그에게 자주색 빛으로 이루어진 칼날을 들이대면서 그 역시 기척을 느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 채, 그 방향을 향해 돌아서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역시 그를 향해 돌아선 채로 왼쪽 주머니에서 그가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 검의 자루를 오른손에 들었다.
  검은색을 띠는 수도복의 형상을 이루는 천 옷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이로서, 그 키는 예즈라에 비해 현저히 작아, 얼핏 보아도 어린 아이의 모습임을 바로 짐작할 수 있는 듯해 보였으나, 그런 그의 두건 사이로 드러나는 밝은 색을 띠는 얼굴에 위치한 붉은 입술이 짓는 표정은 그의 차가운 일면을 바로 드러내고 있어서 그의 어린 면모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소매까지 풍성한 옷으로 모습을 감춘 채, 오른손에 붉은 빛으로 이루어진 날을 갖춘 검을 쥐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예즈라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전투 상황 시에도 온화한 목소리를 내는 그에게 있어서 의외의 면이라고 칭할만한 냉정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이들 간의 대화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별로 만날 생각은 없었다만,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기는 하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난 26 만 2573 시간 전 이래로, 이렇게 정면에서 마주치는 일은 처음이네.

  이후, 한참 동안 이들은 서로의 적대감을 드러내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마치 오래 전의 원수를 만나기라도 한 듯이. 그리고 대화가 끝날 무렵, 예즈라와 두건으로 모습을 감춘 이는 서로가 서로를 향해 칼 끝을 겨누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에 이어, 이전에 비해 더욱 심각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가 이들에게서 들려왔다.

앞으로의 만남, 기대하고 있으마. 지금의 그 감정, 그대로 나에게로 가져와 주려무나.
바라던 바다, 기대는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해 보지.

  이후, 이들은 서로의 검이 칼날을 감추도록 한 후, 검을 든 손을 내렸고, 이어서 검은 옷차림을 한 이는 자신이 나아갔던 길을 따라 그대로 예즈라의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어 갔다. 그 동안 예즈라는 검의 자루를 치마의 주머니에 넣은 채,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무렵, 그런 그를 향해 바람 하나가 다가와 그를 스쳐 지나가려 하였다. 그러면서 머리카락이 바람에 의해 조용히 흩날려 가고 있었다.

4.
  공간과 공간 사이. 기묘한 형상을 이루는 '공간의 틈새' 로서, 나타나는 과정부터 사라지는 과정까지 모든 과정이 불명인 사이 세계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자주빛 공간, 그 공간의 한 구석에 무언가가 조용히 떠돌고 있었다. 바로 은빛을 띠며 주인을 잃어 비어버린 갑주와 하얀 천 조각. 이들은 스스로 움직일 힘조차 가지지 않은 채, 공간의 흐름을 타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새로운 주인을 찾고자 하는 듯한 느낌을 보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있기는 하나, 그 흔들리는 기묘한 공간 안에 갇혀버린 이들이 인간의 손에 들어올 기회는 요원해 보였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