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부터 구름이 낮게 깔리고, 오늘 아침에 이르러서는 회색을 띠기 시작하면서 하늘을 어둡게 하더니 마침내 비가 쏟아졌다. 이 비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하늘의 노성과도 같은 울림과
함께 하늘이 반짝이면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우뢰 소리에 잠이 깬 나는 곧바로 이부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이부자리 건너편에 위치한 책상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다음에 그 바로
앞에 있는 벽에 달려있는 창가를 통해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자그마한 물방울들이 전하는 차가움을 느끼며 하늘에서 세찬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마침, 하얀색인 듯 하면서도 엷은 푸른색인 듯 하기도 한 빛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그러더니 무언가 거대한 것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무너질
만한 거대한 존재가 없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분노한 하늘의 외침이라고 여길 수 있을만한 큰 소리........
웅장하면서도 무서운 소리. 그 소리가 들려오는 동안에는 불안함의 느낌을 항상 접하고는 한다.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번개 때문이기도 하다. 오히려
번개가 더욱 주요한 원인이 된다. 물론 소리가 워낙 크게 울려퍼지다보니 그로 인하여 놀라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소리보다는 확실히 번개가 더욱 불안하게 한다. 소리는 한 번 들으면
끝이지만 번개는 자칫해서 맞기라도 하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발생하는 번개, 이는 간단한 주문을 통해 마법으로 불러올 수 있는 번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존재이다. 무섭다고
여기지 않는 일이 이상할 수밖에.
다행이라고 여기어야 할까, 이후에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려왔지만 이전의 무시무시한 소리는 한 동안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두워진 하늘 아래에 있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마을 거리 위에 굵은 비가 내리고 빗방울이 돌로 만들어진 길과 풀밭을 때리며 잔잔한 소리를 울려퍼지게 하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채,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밖으로 나아간 다음에 거실로 나아가서 내가 바라보던 창가의 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벽의 오른편에 위치한
커다란 창문으로 나아가 그 곳에 서 있으면서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려 하였다.
굵은 비가 내리고 있는 마을 한 가운데를 비롯한 마을의 여러 모습이 보였다. 아무도 없고 하늘도 어두웠던지라 무척 쓸쓸한 광경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마음이 울적해지더니
이어서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기만 하고 있던 여러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우울한 기억들이 분명하게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산길을 여행하고 있다가 우연하게 마주친 어느 남자의 모습을 보았을 때가 있었다. 매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채, 구슬픈 목소리로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였던 남자, 한
쪽 다리가 없어서 마음대로 걷지 못하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며 잠시 멈칫하였지만 때마침 먹을 것이 없었던 관계로 그 때, 나는 그에게 무엇도 해 주지 못한 채, 그의 곁을 떠나야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지 않은 일에 대해 후회하면서 괴로워하였다. 그 괴로움은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모습을 두고 그가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였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간신히 그에 대한 기억을 잊으려 할 때까지 나의 마음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그 기억이 거의 사라지려
할 때가 되자 다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 다음에 시선을 아래로 하여 창 바깥의 아래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창가 근처에 자라난 초록색 풀 위로 빗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잎을 향해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 때문인지 풀은 평소 때보다는 약간 아래로 눌려있는 듯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여느 때보다 비가 많이 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비가 그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두웠던 하늘도 다시 잠시나마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밖으로 나가도 괜찮겠다싶어서 간단하게 나갈 준비를 한 다음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집 바깥으로 나온 몇몇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잠시 보고 있다가 곧바로 계속 비를 맞고 있던 창가 근처의 큰 풀을 향해 나아간 다음에 그 모습을 보려 하였다.
여러 투명한 구슬들이 풀의 큰 잎들 위에 맺혀 있었다. 그 주변의 풀들에도 투명하고 작은 방울들이 머무르고 있으면서 풀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두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있는 채,
그러한 풀들의 바라보면서 밝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비가 그친 뒤의 풀들이 보이는 아름다움을 풀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면서 느끼려 하였다.
그 때 갑자기 하늘 위에서 거인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고 그 위로 빛이 번쩍인 후에 이어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를 두고 다시 비가 오겠다는 우려를 하였는지 밖으로 나갔던 이들 모두가 집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급히 집의 대문으로 향한 다음에 그 안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가고 방의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 마을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려 할 즈음에 다시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폭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소 때보다 약간 많이 내리는 정도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예감이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며 어둡게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로 이어졌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