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 해의 여덟 번째 달도 지나갔다. 아직까지는 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전 날, 나는 바람을 맞으며 숲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숲으로 여행을 나갔다가 그 곳에서 밤을 보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숲에 있는 어느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는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가리는 나뭇가지와 이파리들 사이로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잠깐 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을 때가
되었다. 나의 바로 앞으로 빛을 발하는 자그마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눈앞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커다란 반딧불이의 일종인가 싶어서 놀랐다가 그가 나의 바로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 자세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빛 속에는 나비의 날개와
비슷하게 생긴 날개를 가지고 있는 작은 요정이 있었다. 하얀색의 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소매가 없는 하얀 옷과 무릎까지 내려가는 치마를 입고 있는 어린 소녀와 같은 요정은 밝게
미소를 짓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라? 요정들이잖아."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혼자서 말하였다. 그 때, 요정은 미소를 띠고 있는 채로 나의 곁을 지나가더니 나의 뒷편 어디론가를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리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래도 요정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궁금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나는 곧바로
그 요정이 가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혹시라도 요정의 나라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정은 계속 숲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숲 한 가운데에 위치한 개울에 이르더니 그 곳 근처에 있는 바위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쉬려 한다는 추측을 하였지만 그 추측과
다르게 요정은 그 곳에 계속 앉아있으려 하였으며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처럼 숲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그 곳에 머무르는 것은 아닌가하는
또 다른 추측을 하고서 그가 휴식을 행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리며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요정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요정을 향해 다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곁에 이른 다음에 두 무릎을 바닥에 대며 앉고서 요정의 옆모습으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요정은 여전히 밝은 표정을 짓고서 두 손을 얼굴 아래에 올리고 있는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다가 그 모습을 두고 단순히 밝지만은 않다고
여기게 되었다. 무슨 이유가 있기에 밝지만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채, 바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의문을 품을 순간에 요정은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숲의 어두운 저편을 향해
사라져갔다. 그 이후, 나는 요정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숲에서 돌아온 나는 마을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우연히 한 노래의 가사를 접하게 되었다. '떠돌이 요정의 노래', 요정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불행으로 인하여 나라를 잃고 혼자 살아남아 세상 곳곳을 떠도는 요정의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는 노래. 그 내용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전에 만났던 밝지만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던 요정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혼자서 말하였다.
"이전에 만났던 그 요정이......."
그 이후, 나는 그 때 요정에게 무언가 한 마디라도 말을 건네지 않은 일을 두고 후회를 하였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정말로 나라를 잃어버리고 떠도는 요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가능한 한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 때 내 앞에서 요정이 모습을 감춘 이후에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보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요정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을 향해
나아가 보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기를 바라는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요정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도서관의 책에서 보았던 노래 가사 그대로, 자신의 나라를 잃어버린 떠돌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