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세차게 부는 아침에 마을 바로 아래의 계곡으로 나아갔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고, 단지 봄과 여름 사이에 맞이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을 계곡에서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시락도 준비하고서 마음을 가볍게 가지며 집을 나섰다.
  함께 간 이는 없었다. 나 혼자서 준비한 소풍이기에. 오래 지나지 않아서 계곡에 이른 다음에 그 곳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 가방을 오른편에 둔 다음에 앉았다. 간만에 드러난 선명한 빛깔을 띠는 하늘 위로 하얀 새들이 날개짓을 하며 어디론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후에는 시선을 내 주변으로 향하여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들과 그 바위 틈새에서 자라나고 있는 여러 풀들과 그 풀들 중 몇에서 태어난 작은 꽃들을 가만히 보려 하였다.
  "본래 식물은 햇빛과 물 그리고 토양의 조건이 잘 맞아야 자랄 수 있다고 하지. 하지만 저렇게 바위 틈새에서 자라나는 풀들도 있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일임에는 분명해. 그래서 이를 두고 요정의 가호를 받은 풀들이라 칭하기도 하고, 어떠한 경우에는 밤중에 이러한 풀들을 향해 요정이 생명의 빛을 전해준다는 이야기도 있어.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어 그러한 이야기는 사실로 분류되지 않고 있지."
  풀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서 그들에 대해 내가 아는 바를 혼자서 말하였다. 물론,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언급한 가설들을 사실로 믿지는 않는다. 스스로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정말 요정의 가호를 받으며 자라는 식물이 있을 줄은. 그래서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밤 중에 계곡의 풀들과 같은 존재를 찾아가서 정말 요정이 가호를 그들에게 내리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지금은 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그 일을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한참 동안 풀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번에는 왼편에 떨어진 작은 돌을 하나 주워서 내가 앉은 바위 아래를 흐르는 물을 향해 던졌다. 곧 돌은 수면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 모습을 감추고, 돌과 수면이 부딪친 일로 인해 여러 동심원들이 수면 위에 그려지고 커지다가 하나씩 사라져 갔다. 그 이후,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왼편 곁에 놓여진 돌을 하나 주워서 이를 물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이전에 보았던 광경과 거의 비슷한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 때 마침, 새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에 있는 동안에도 가끔 새의 울음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는 하나, 이렇게 숲에서 직접 듣는 일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새의 소리가 무척 반갑게 다가왔고, 울음 소리의 근원인 새가 잠시나마 나의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 소망과 다르게 새가 내 곁으로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한 번이라도 새가 소리를 내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그 후, 도시락을 든 채로 바위에서 물가로 내려와 물가에서 손을 씻고서 잠시 도시락을 든 채,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았다. 여느 때처럼 고요한 듯 하면서 역동적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 그 모습은 언제나처럼 활기차다는 느낌을 전해주었다. 활기차게 흐르는 물의 모습. 그 모습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기에 나는 분명 그에 관해 희망을 가지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사는 곳 주변 일대는 언제나 희망으로 넘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러한 생각의 구체적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강한 생명력에 관한 희망은 비단 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 들었던 새의 울음 소리와 계곡에 자라난 풀들의 선명한 초록색 역시 세계의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을만 했다. 그러할만도 한 것이, 내가 여태껏 접한 것들 모두가 활기찬 세상에서 접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활기가 강해야 물이 역동적으로 흐를 수 있고, 그 역동적인 물의 기운을 받은 식물이 활기차게 자라날 수 있으며, 그러한 식물들이 있어야 그 식물들이 받은 양분을 이어받은 동물이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 계곡에서는 그러한 존재들을 통해 세상의 활기를 느낄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분명 세상의 생명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리는 다른 수단을 분명히 찾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계곡에서 지내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다보니 어느새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날개를 펼치고 다시 바위 위로 올라서서 도시락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위해 마련한 빵과 치즈 조각을 하나씩 먹으며 남쪽 하늘 높은 곳으로 오른 태양에서부터 나타나는 찬란한 햇빛의 가호를 받는 나무 그리고 풀들의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