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비구름이 사라지면서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언제부터 비가 내렸던가, 이래저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사실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꽤 오래 전부터 비가 왔다가 잠시 맑아지고 다시 비구름이 드리워져서 비가 내리는 나날이 반복되어 왔었다. 그래서 집에 함께 살던 이들이 밖에 잘 못 나가겠다면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들이 소원대로 밖에 나가 뛰어놀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 아이들은 아침이 되자마자 밖으로 나가고, 나는 홀로 집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방문자를 맞이해주는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뜨거워진 햇살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그 햇살을 계속 받고 있던 집 안의 나 역시 조금씩 더위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밖에 있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더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집에 가만히 있으면 그럴 수도 없어서 무언가 시원한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고, 머지 않은 시기에 그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
  물론, 마법의 힘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이전부터 그 일은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마음 속으로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한 조건에 따라 그 일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나를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거나 만들어보기로 마음을 먹고, 얼음 상자에 들어있는 얼음들을 그 안에 들어있던 자그마한 가죽 주머니와 함께 꺼냈다.
  내가 한 일은 비교적 간단하였다. 가죽 주머니에 얼음을 채워넣는 일이었던 것. 그렇게 가죽 주머니에 얼음을 채워넣은 다음에 그 주머니를 머리나 얼굴에 올려놓는 일을 통해 잠시 더위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그 주머니에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얼음이 녹아내리고 그렇게 녹은 물은 더 시간이 지나다보면 미지근해졌다. 미지근해진 물로는 사람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없어서 주머니의 효용성은 당연히 상실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얼음 상자 안에 다시 넣어놓았다가 밖으로 들여보내면 다시 사용할 수 있기는 하였으나, 그 일을 계속 하다보면 번거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다가 집에 있는 부채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부채를 빨리, 그리고 지속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때 마침, 마을 남쪽에 사는 시에나(Siena) 라는 아이가 커다란 나무 상자를 힘겹게 두 손으로 들고 있으면서 나를 찾아왔다. 그 상자를 보자마자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시에나가 바로 답하였다.
  "아스렐, 요즘 많이 더워졌지? 지속적으로 빠르게 부채를 회전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해서 가져왔어. 내부에 힘의 근원체가 있어서 그 근원체가 사라지는 2 년 후까지는 일단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 아스렐에게 많은 도움을 줄 거야."
  "고마워! 이런 물건을 나에게 주다니,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이러한 물건이 필요할 것을 알고 준 거야?"
  시에나가 건네주는 물건을 받고서 나는 한편으로는 고마움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 시에나가 내 사정을 알아차렸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러자 시에나가 그 물음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제 아스렐이 날씨가 더워진다고 나에게 이러한 물건이 필요하다고 말했었잖아. 그래서 이렇게 가져다 준 거야, 기억 안 나?"
  그 말을 듣고서야 기억할 수 있었다. 어제 날씨가 더워진다고 때마침 만난 시에나에게 물건이 필요하다가 알렸는데, 어제 조금 힘든 일을 하고 잠이 든 이후에 잊어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그의 물음에 답하였다.
  "아, 그랬었지! 어제 조금 정신 없이 보내서 잘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렇게 시에나로부터 물건을 받았다. 물건은 무리 없이 잘 동작하고 있으니, 이제 당분간은 집에 있으면서 더위에 크게 시달릴 일은 없을 듯해 보인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