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비가 오더니만, 다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였다. 어제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세찬 바람으로 인해 날씨도 영향을 받은 모양.
  "이 시기만 지나면 이제 온전히 날씨가 따뜻해지는 것 맞지?"
  그래서일까, 주변 일대에서는 이러한 목소리 역시 들려오고 있다. 아무래도 4 월이다 보니, 이제 봄이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봄은 이미 왔고, 겨울 기운이 물러나려 하면서 그냥 물러나지 못해, 차가운 바람을 불게 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찬 바람 때문인지, 아직 봄 기운을 나 역시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기는 하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를 이루는 나무들마다 노란 꽃을 피우고 있으며, 마을 곳곳에 위치한 몇몇 나무들 위에도 노란색을 띠는 작은 꽃송이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만큼,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 나무들이 잎사귀 무성했던 때가 얼마 전 같은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몇 개월 즈음 전에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던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 인근의 나무들은 한결 같이 선명한 초록빛을 띠는 잎사귀들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 잎사귀들이 투명한 푸른빛을 띠는 하늘의 색과 대조 혹은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니, 그 풍경을 통해 청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렸을 당시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반년 전 즈음, 그 때의 일이 금방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니, 어느새 나에게도 시간의 간격을 체감하지 못할 때가 오기는 한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이웃집에 살고 있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 주니,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게 되어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하네, 오늘따라 문득 그 때 그림을 그리면서 보았던 풍경이 바로 떠올랐었어. 그러면서 나무들을 바라보는데, 그 때의 일이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거야."
  "네가 이 풍경으로 그림을 그렸을 때는 대략 6 개월 즈음 전이었잖아."
  "그런데도 그래." 이후, 나는 그의 물음에 그렇게 답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서 나는 잠시 울타리를 따라 길을 걸으면서 왼편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그 아이에게 물었다.
  "남쪽의 아르나이(Arnej) 는 제법 많이 따뜻해져서, 금방 꽃이 피어났다고 하는데, 같이 그 곳으로 갈래, 꽃 구경이라도 하기 위해?"
  "아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하지만 그 아이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며칠 지나면 마을에도 꽃이 필 텐데, 굳이 먼 길까지 가면서 꽃 구경을 할 이유가 있겠냐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기사 그러할 만도 한 것이, 이 마을 일대는 산악 지역이라서 한 번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산등성이 일대의 산길을 거치며 하나의 장관이 펼쳐지기 때문으로, 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면 굳이 어디를 가지 않더라도 봄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기는 했다.
  그래도 나는 보다 빨리 꽃 구경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 중에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래서 혹시 그 아이가 그런 사람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한 번 물어보았을 따름이었다.

  "셀레아." 이후, 나는 그 아이의 부름에 바로 응하고서, 그에 이어 그에게 왜 부르냐고 물었고, 이어서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그 아이가 바로 나에게 묻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꽃이 피면 그림 그리기 위해 나갈 거야?"
  "한 번 즈음은 나가 봐야지, 가을 풍경을 그렸으니, 여름 아니 봄 풍경도 그려봐야 하지 않겠어?"
  이에 그는 바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나에게 다시 물으니, 봄이나 가을 풍경은 그리면서 왜 여름이나 겨울 풍경은 그리려 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건네려 하는 것이었다.
  "여름이나 겨울은 풍경을 그리기에 뭔가 재미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여름에는 항상 초록색 이외에는 보이지 않고, 겨울에는 항상 갈색 아니면 하얀색만 보이니까, 그리는 재미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대충 잘 짐작했어, 사실 그래서 그 때에는 그림을 안 그리는 거야."
  그가 하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라서 그 물음에 나는 대략 그러하다는 식으로 답을 하고, 그러면서 그에게 봄에는 연둣빛과 더불어 꽃잎들의 분홍빛, 노란빛, 파란빛이 조화를 이루고, 가을에는 노란빛, 붉은빛, 갈색이 소나무, 전나무 등의 초록색과 어우러지며 화려한 풍경을 만들어 내기에 그림 그리는 재미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이어서 그에게 건네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