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나이(Arnej) 에 있는 세니(Senj) 공원의 한 곳에는 아르나이 문화관이 있고, 그 입구 바로 옆에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다. 누구나 연주할 수 있도록 놓인 그 피아노는 세니 공원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고요할 때, 가끔씩 피아노 소리를 울리며, 고요함을 달래고는 하였다.
  길을 가는 도중에 어떤 노인 분께서 세니 공원의 피아노로 연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척 아름다운 소리를 내던지라 그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피아노 연주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그의 과거에 대해 묻고 싶다는 생각에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막상 그의 곁으로 다가가 보려 하니, 계속 피아노 연주에 집중을 하시는 그 노인 분께 함부로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계속 피아노 연주를 하시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큰 실례일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 노인의 모습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기는 했다, 늘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루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로서 항상 세니 공원을 외로이 거닐며 피아노 앞에 앉지 않으면, 공원의 의자 한 곳에 앉아서 공원을 떠도는 참새와 까치 등에게 모이를 주고는 하였다. 생각해 보면, 대하는 데에 있어서 그렇게 부담되거나 하는 이는 아니었을 텐데, 당시 그 모습을 보면서 노인 분의 남루한 모습 사이로 보이는 웬지 모를 음산한 기운으로 인해 쉽게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세니 공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그 노인 분에 대해 아는 이들이 있는지 세니 공원을 드나드는 이들을 통해 수소문을 해 보려 하였지만 계속 수소문을 해 보아도 그 노인과 아는 사람을 직접 만나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는 노인 분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어쩌다가 공원에 사람이 드나드는 일이 없어 공원이 매우 한산할 때, 피아노 앞에 앉은 적이 있었다. 무엇을 연주해야 할 지를 몰라, 기억나는대로 음을 내고는 했었는데, 곁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해 주었고, 그로 인해 나는 피아노 연주를 이외에 몇 번 더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악보를 몇 구해보려 하였는데, 장서관 등에서 얻어온 것은 과거의 음악가들이 마련한 화려한 기교를 표현하는 것들이라 연주를 할 수 있을지부터 의심스럽기는 했으나, 일단 구할 수 있는 것들이 교육을 위한 교재가 아닌 한, 대개 그런 부류였으니, 일단 구해보기는 하였다.
  집에 피아노가 없다 보니,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곳은 세니 공원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위해 세니 공원에 가려 해도, 피아노에 앉을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이전에는 어떤 여성이 피아노에 앉아 있어서 그로 인해 피아노의 곁에서 물러나야만 했고, 그 다음 날에는 피아노에 막 다가가려 하는데, 어떤 연인이 피아노에 자리를 잡은 탓에 그저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문화관 일대가 비어 있어 피아노에 앉을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직후에 학교의 교사로 추정되는 이가 한 무리의 학생들을 데려왔다.

  "그래서 지금껏 피아노 연주를 못한 거야?"
  친구가 물었다. 별 수 있나, 기회가 없으니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그래서 기껏 마련해 놓은 피아노 악보가 결국 장식이 될 판이라고 말하는 것으로써 그 간의 신세를 한탄하였다. 그리고서 그 친구에게 피아노를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집 사정이 어떠한지 몰랐으니-. 하지만 그 친구의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고, 그래서 피아노를 빌려달라는 말을 한 나 자신이 바로 무안해짐을 느끼며 바로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언젠가 피아노를 마련하거나 할 수 있게 되면 그 때에 너도 불러올게."
  그러면서 피아노를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하고서, 곧바로 그 때가 언제가 될 지는 자신도 누구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그는 언젠가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가 있기는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려 하였다.

  그 날, 친구는 자면서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친구와 내가 서로 싸우다가 내가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한다는 그런 꿈이었던 것.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앞머리가 조금 아팠다고 한다, 꿈에 의한 충격이 머리를 짓눌렀던 모양. 그 꿈이 선명히 남았기에 그것이 계속 마음에 남기라도 했던 것 같아 보였다.
  "걱정할 일이라 생각하니?"
  이에 나는 그에 대해 크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고, 이어서 밝게 목소리를 내면서 그 일은 꿈 속에서의 일일 뿐이고, 그 특이한 일을 꿈 속에서 이미 겪었으니, 현실에서 겪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러한 일이 있을 리 없는 만큼, 현실에서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이어서 그에게 말을 해 주었다.
  조금은 터무니 없는 충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충고를 하면서도 불안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친구는 그 말에 대해 고맙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친구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이후, 나는 다시 세니 공원에 가서 그 노인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이번에도 그 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대해 계속 나와 동행하던 친구는 병으로 인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쉽사리 반박을 하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