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그치면서 상공 일대를 뒤덮고 있던 화염도 사라졌다. 여전히 탑의 상층부, 그 바닥의 곳곳에는 화염 폭풍의 흔적과도 같은 파란색 그리고 보라색을 띠는 잔 불꽃들이 남아있기는 하였으나, 상공의 차디찬 바람의 영향을 받아 조만간 사그라 들 것이었다. 상층부의 중심 구역에는 구조물이 감싸고 있던 감빛 기운의 덩어리, 그 폭발의 여파로 인하여 큰 상처 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커다란 구멍이 폭심지에 뚫려 있었던 것.
  상공의 모습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겠지만 상공을 뒤덮고 있는 감빛 기운의 근원이 사라지면서 감빛의 기운을 상공에 생성시키는 움직임이 없어졌다. 당장의 일은 아니겠지만 점차 감빛의 기운은 하늘 위에서 흩어져 가며, 하늘에서 점차 사라져 가게 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지표면에 자리잡고 있는 세상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겨난 모양으로, 감빛 기운의 덩어리가 남아있을 때에는 탑 아래 쪽에서 계속 울려 퍼지던 기계 병기들의 비행 및 구동하는 소리와 포대가 작동하는 소리가 그 덩어리의 폭발 이후로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으며, 그와 더불어 기계 병기들의 소리에 뒤섞여 들려오던 시체 괴물의 괴성 역시 어느새 상공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힘의 영향이 사라지면서 그로 인해 움직이던 모든 것들의 행동이 정지되어 버린 것이었을까.
  그렇게 재앙의 근원은 사라졌지만 아직 남아있는 것들은 적지 않았다, 감빛 기운은 여전히 도시와 그 주변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이로 인해 오염된 물과 공기의 완전한 정화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고 있었다. 그래도 근원이 없어졌기에 더 이상 나빠질 일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일단은 하나의 큰 일이 이렇게 해결되었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지상의 무나일 마을 서쪽에서부터 계속 울려 퍼지던 괴성의 근원이었을 시체 괴물들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으니, 그 일대의 괴성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것임을 기대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탑의 가장자리와 상공 그리고 여전히 연무에 감싸인 시가지 일대를 바라보고 있으면서 일을 해냈음에 대한 흐뭇함의 감정을 품으며 미소를 지었다.
  탑의 가장자리와 그 너머를 향해 서 있으면서 탑의 상층부에 뚫린 구멍의 바로 앞에서 방진을 마련했다, 비행 기계가 있어서 이를 통해 지표면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비행 기계를 조작할 수 없다보니, 이를 통해서는 내려갈 수 없었던 것. 우선 지표면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그 곳을 목표 삼아 전이를 시도하려 하였던 것이었다, 기왕 할 것이라면 지상의 무나일 마을 거리를 목표로 정하는 편이 좋다고 여기어질 수 있겠지만 소리가 끊겨 고요해진 거리의 모습을 한 번 구경해 보고 싶기는 했다.
  그렇게 방진을 통한 전이를 시도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밝은 느낌을 주지만 그와 더불어 상대를 깔보는 듯한 느낌까지도 드는 소녀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다급히 마법의 사용을 중지하고서 곧바로 그 동안 보고 있던 그 반대 방향을 향해 다급히 돌아서려 하였다, 나를 부른 그 목소리의 주인, 그 모습을 보기 위함이 그 이유였다.

  "주문 영창도 그만두고 나를 향해 돌아설 줄이야, 내 모습이 그렇게도 보고 싶었나 봐-."
  그 때, 나의 눈앞으로 검은 옷차림을 한 여성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긴 검은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핏빛을 띠는 눈동자를 품은 두 눈이 외견 상의 특징인 인물로서, 어깨 부분과 소매가 없어 수영복처럼 보이는 검은 레오타드와 다리의 허리 바로 아래까지를 감싸는 천 그리고 구두로 이루어진 옷차림이 유난히 눈에 띄고 있었다. 그 옷차림은 풍만하기 이를데 없는 가슴과 더불어 유려한 곡선을 드러내는 몸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기도 했으며, 아름답지만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과 더불어 악마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확실히 전해주고 있었다.
  폭발로 인해 생성된 거대한 구멍을 사이에 두고 굽 높은 구두가 바닥에 부딪치는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다가와 구멍의 가장자리에 이르고서 여성은 나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만족할만한 성과였어, 그 마력의 결정체 하나만으로도 도시 하나가 이렇게 될 줄이야."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며 여성이 말을 건네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전에 만났던 그 시체 괴물로부터 어떤 여성에 의해 괴물화한 사람들이 먹을 것을 탐하며 도심지로 들어서려 하였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괴물화된 인간의 의사를 알아듣는 이로서, 자신들의 협력자 노릇을 하고 있던 여성에 대한 기계 병기들의 발언을 상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여성이 이들로부터 언급된 여성일 것임을 확신하며 그에게 물었다.
  "도심지로 괴물화한 사람들을 끌어들인 이는 여기 계신 분이시겠지요."
  의외로 그는 이를 사실이라 바로 고백을 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기계 병기들에게 이들의 심리에 대해 알려, 기계 병기들이 시체 괴물들을 철저히 처단하도록 사주한 이 역시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꽤나 솔직하시군요, 그렇게까지 저에게 자신에 대해 가르쳐 주실 이유라도 있나요?"
  "내가 답을 하든 말든, 당신은 나에 대한 생각을 나름 정리해서 당신의 동료들에게 퍼뜨릴 것 아니겠니, 내가 당신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으면 내 의도가 어쨌든 그 의도에 대해 멋대로 생각해서 그에 대해 알리려 할 텐데, 나는 그게 싫은 거지."
  내가 건네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더니, 여성은 나를 가만히 보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밝게 목소리를 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물었다.
  "아아, 그러고보니...... 이 보라색 옷은 당신일 것 같아, 아르셀 베르티(Arsell Berti) 아니겠니."
  "유감스럽지만, 아니에요." 그 이름을 듣자마자 그가 나를 보며,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어서 알게 되었을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며, 바로 조롱하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에 차갑게 쏘아붙이는 듯이 답을 하였다.
  "그리고, 당신께서 저를 정말 그 분인 것으로 여기셨다면, 그런 저에게 어느 정도 예를 갖출 필요는 있지 않나요, 그 분께서는 당신의 어머니 즈음 되는 사람일 텐데."

  악마 여성이 언급했던 '아르셀 베르티' 는 어머니의 이름이다. 무나일 마을의 서부 지대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일을 하시며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시던 분이셨다. 푸른 지대의 도시인 '아자레스(Azares)' 출신으로서 간혹 아자레스에서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의상인 보라색 옷을 입으실 때도 있으셨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출장을 위해 붉은 바위 산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사고를 겪고, 그로 인해 돌아가셨다고.
  결혼 이후, 내가 태어날 무렵의 삶은 그러하였다고 하나, 과거에는 '아자레스(Azares) 의 성녀' 로 추앙받던 분이셨다, 이 행성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행성 '아르데이스(Ardejs)' 의 엘베 족 대마법사였으나,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타락해 행성을 위험에 몰아넣으려 하였던 남자 '쥘리앙(Julian)', 일명 '포헤 누아흐(Foret Noire)' 의 폭거에 포헤 누아흐를 물리친 이가 바로 어머니되시는 분인 아르셀이었던 것. 그래서 일설에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포헤 누아흐의 추종자들 중 잔당인 케레브(Cerreb) 무리의 일부의 작당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언급이 있기도 하나, 일단 나부터 사실로 믿고 있지는 않고 있다.
  세상을 두 번이나 구원한 성녀였던 분이 어머니이셨고, 어머니께서는 자신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으며, 나에게도 자랑스레 떠들지 말아줄 것을 늘 당부하셨기에 평상시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늘 숨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로 컸다.

  "알 바 아니지, 너와 같은 부류의 연배 같은 것."
  그리고서 그는 바로 광기를 드러내는 듯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와 더불어 그의 아름다웠던 모습 역시 비틀린 감정으로 인해 뒤틀려 가는 모습을 보이려 하였다.
  "게다가...... 그것말고도 예를 갖출 이유는 없지 않아? 내 아버지의 원수인데? 너 같으면,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가 어른이라면 그와 대면하였을 때, 어른으로서 예를 갖춰 대우를 해 줄 거야?"
  "필요하다면요." 이에 나는 바로 그렇게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아무리 그 자가 자신의 원수라고 하더라도, 그 자가 어른이라면 어른에 대한 대우는 어느 정도는 해야 함이 도리라고 어렸을 때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과거의 일까지 밝히려 함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음을 밝히며 그가 할 말을 잃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언급하지는 않았던 것이 그가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르셀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듯해 보였는데, 굳이 그런 그에게 그에 대해 가르쳐 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뭐,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러자 여성은 표정과 목소리에서 광기를 풀고, 왼손을 허리 즈음에 올리고서 그 말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내가 예상한 대로, 그런 나에 대해 그가 달리 할 말은 없었던 모양. 그리고서 그는 감빛을 띠는 기운의 덩어리-감빛 마력의 결정체-가 위치하고 있던 구멍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잠시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구멍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더니, 바로 나에게 시선을 향하며 자신이 그 기운 덩어리를 이용하려 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이번 일은 아버님의 명령에 따른 일이야, 비록 이전에 두 번, 그리고 최근에는 외지인에 의해 세 번까지 실패를 겪으시기는 했지만 아버님께서는 다시 삶을 되찾으셨고, 그 원대한 뜻을 포기하시지 않으셨다고. 그 뜻의 실현, 그 첫 단계로서 내가 이 감빛 마력으로 세상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어떻게 세상이 파멸하는지 그 모습을 관찰해 본 거야."
  그가 또 살아날 것 같다는 예감은 일찍이 그가 마력의 성소로 활용하던 성채의 폐허가 자리잡고 있던 감빛 호수가 위치한 그 상공에서 그의 단말마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차라리 좋은 일이 될 지도 몰라요, 그가 머무르고 있었을 호수에는 그에 의해 생성되었을 어둠의 기운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 기운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포헤 누아흐가 되살아나 일대에 동란을 일으켰겠지요, 당장에는 발견되지는 않겠지만, 분명 호수에 그러한 움직임이 있기는 할 것이니, 그 어둠의 기운을 근본부터 제거해, 이를 통해 그가 의지할 수 있는 바를 없애도록 하겠어요.

  그 감빛의 기운이 남아있기에 그 기운에 의지해 포헤 누아흐, 소녀의 '아버지' 는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의 존재가 몇 년 즈음 지나, 잊혀졌을 즈음에 결국 살아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형태의 또 다른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내가 그 진의를 알아내기 위해 말을 건네 보았다.
  "그런 계획, 빛의 생명체들 사이에서는 통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리고 감빛의 기운으로 빛의 세상을 어둠에 물들이는 계획은 이미 몇 번이나 저지당했을 텐데, 그에 대한 생각은 없었나 보지?"
  "이번 일이 정말, 이 곳을 대상으로 이루어질 일이라 생각했어? 어리석어라, 그에 대한 판단 정도는 할 줄 알고 있으리라 믿었건만. 아버님의 이번 계획은 이 행성이 대상이 되지 않아. 광활한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있고, 이들 중에는 인간이 살 수 있을만한 곳이 적지 않아. 이번 계획이 성공하게 된다면, 그 행성들의 사람들이 감빛 마력을 받을 대상이 될 거야, 이를 통해 타락한 사람들이 이 행성과 행성에 사는 모든 이들을 향해 나아가며 그들을 말살해 나아가겠지."
  그리고서 여성은 사악하게 미소를 지으며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라는 물음을 건네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나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도발에 넘어가는 일이라 여기고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한 동안 나로부터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던 여성은 나의 모습을 보며 싫증을 내기 시작했는지,
  "안 됐네, 이번의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나를 놀리는 것에 대해 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그러면서 그에 대해, 그 이후로 바로 물러나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짐짓 건넨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그가 그 동안 말했던 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 3 차례에 걸친 실패를 거치면서 포헤 누아흐는 이 행성계를 직접 어둠에 물들이는 것을 포기했지만, 빛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들의 세계인 주변 일대의 여타 행성계를 자신의 어둠 마법을 통해 타락시키고, 타락한 사람들의 힘을 빌려 행성계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목표는 이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영원히 따르는 저주받은 동물들과 마수들의 세상을 구축해, 그 지배자가 되는 것이었을 터.
  여성이 나를 동정하는 것인지, 한심하다고 여기는지 알 수 없는 그 말 한 마디를 건네자마자, 그의 몸에서부터 감빛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내가 예상한 대로, 여성은 그 힘을 이용해 탑의 상층부를 떠나려 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뭐, 좋아." 라는 말을 건네고서, 그에 이어, 자신은 이제 할 일을 마쳤으니, '아버지' 의 곁으로 가겠음을 알렸다. 그러다가 문득 더 하고 싶은 말이 생각이 나기라도 했는지, 여성은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나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
  "굳이 당신의 모습을 제가 기억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포헤 누아흐의 수하 중 한 명에 불과했을 그의 모습을 굳이 기억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기억할 이유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차갑게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자, 여성은 그런 내가 한심해 보였는지, 나에게 사악한 느낌을 주는 미소를 띠며 나지막히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기억하고 있어야 할 거야, 네 생각대로 행동하다가는 언젠가 후회할 일이 생겨나겠지."
  그리고서 그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이름 정도는 가르쳐 주겠노라고는 말을 건네었다. 그러더니, 감빛의 기운이 여성의 몸을 감싸고, 이어서 기운이 사라질 무렵, 커다란 날개를 가진 큰 물새 한 마리가 여성이 머무르던 곳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이후, 물새가 날개짓을 하며 탑 위의 상공을 날아오를 무렵, 여성의 목소리가 상공에서부터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아델(Adel), 그것이 바로 나의 이름이야."

  "아델이라....... 이런 이름을 말한다고 내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길 것 같다고 생각했다만, 어림 없지. 그래봤자, 그는 포헤 누아흐가 부리는 검은 물새 중 한 마리에 불과할 텐데."
  포헤 누아흐에 대해 들어본 이야기가 있었다, 일찍이 그는 '선구자 쥘리앙' 이라는 이름을 가지며, 수많은 에베르(Evere) 혹은 케레브(Cerreb) 라 칭해지는 엘베 족 출신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쥘리앙은 선구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의 영도자로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사상을 늘 생각의 바탕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감빛 마력에 중독되고 그 마력에 의해 영혼이 지배되면서, 그러한 그의 사상은 뒤틀려 가다가, 마침내 망실되고 말았다.
  그리고 망실된 생각의 빈 자리는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하려 하는 무자비하고 냉혹한 일면이 대신 차지했다. 과거, 마력의 성소로 삼은 성채의 폐허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 포헤 누아흐는 자신이 안위를 위해 자신의 수하들을 자신을 향해 돌격해 오는 빛의 검을 가진 자를 향해 주저없이 보냈으며, 이들이 빛의 검에 의해 처단당할 때에도 이들에 대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자신의 적을 저지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며, 이를 수행하지 못함은 어리석은 일이라 질책할 뿐이었다.
  무의미한 희생이 이어져 가면서 그의 수하 노릇을 하던 케레브 족은 점차 포헤 누아흐에게서 멀어져 갔으며, 케레브 족의 멸망 이후에도 살아남은 케레브 족 사람들은 더 이상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으며, 행성계를 떠나거나, 행성계에서 자신들의 거주지를 찾아나서기 위한 유랑에 들어서며 뿔뿔이 흩어져 갔다. 지금, 이들은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
  부활을 거듭할 때마다 타락에 찌들어갔을 그의 행보를 통해 추측하건대, 그의 이러한 파탄적인 일면에는 변화가 없었을 것이니, 자신의 친 딸도 아닌 '아델'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역시 포헤 누아흐에게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다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의 앞날이 암울하게 보였으며, 그로 인한 연민의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그에 대한 자비를 베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제 내려가자, 거리를 더 살펴본 이후에는 돌아가야 하니.'
  이후,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 주문의 영창을 개시, 방진을 통해 목표 지점인 탑의 입구 부근의 지면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주문의 영창은 문제 없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나는 탑 부근의 지면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더 이상 탑을 향해 돌아보지 않고, 바로 버려진 병기들의 잔해만 남은 금속제 성벽을 거쳐 도시의 거리를 다시 걸으려 하였다.
  검은 금속의 장벽을 바탕으로 구축된 성새는 그 외견은 여전히 건재하기는 하였으나, 장벽 내의 공격 시설과 장벽 내에 위치하고 있던 병기들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기동이 정지, 침묵하고만 있을 따름이었으며, 일부 병기들은 기동 정지 이후 쓰러지면서 그 충격으로 인해 파괴된 탓인지, 장벽 곳곳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장벽 바깥으로 시체 괴물들을 진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인간형 기계 병기들을 내보내려 한 탓인지 정문으로 추정되는 그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금속제 대문의 두께를 문 근처로 다가와서 보니, 1 데카 메테르(Deca-Meter) 에 이르고 있었다. 어지간한 포격으로도 쉽게 뚫릴 수 없는 대문이었던지라 정문을 비롯한 장벽의 문들 모두가 닫혀 있었다면 벽 너머로 나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저런 문이 계속 닫혀 있었다면.......'
  본래는 열었다가 닫기를 거듭했겠지만, 열려 있는 상태에서 기계 병기의 가동이 정지되면서 바로 그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장벽은 사실상 아무도 없는 곳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 그 열린 문을 통해 마치 유적이 된 성벽의 대문을 지나가듯, 편안히 장벽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대문 너머로는 여전히 짙게 피어나 있는 감빛 안개 속에서 푸른 불꽃에 타들어가는 괴물들의 시신과 폭발해서 불꽃과 연기를 분출하는 잔해만 남은 기계 병기들만이 거리에 즐비하듯, 널려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 하나 보이지 않는 폐허의 거리에는 그저 바람의 차디찬 기운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기계 병기와 시체 괴물들 간의 치열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을 장벽 근처의 한 구역을 지나치고 난 이후에는 감빛의 힘이 사라지면서 그와 더불어 생명까지 잃은 시체 괴물들의 흉측한 잔해들만이 거리 곳곳에 드문드문히 푸른 불길을 희미하게 일으키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 하나라도 건질 수 있으려나.'
  갑작스레 피어오른 감빛 기운으로 인해 사람들이 시체 괴물로 변이하고 감빛의 기운, 그 근원이 사라지면서 그 괴물들이 생명을 잃게 되니, 거리에 있는 수많은 사물들이 주인 없이 버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찾을 수 있다면 탈것은 내 것이 되는 만큼, 이를 이용해 바로 시가지를 벗어나 처음 우물 안쪽에서 떨어졌던 그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할 때, 이야기 책 같은 데 보면 무언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즈음에 그 물건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던데.'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라, 필요하다고 당장에 물건이 나올 리는 없었던 것은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는 차량의 잔해들 사이로 중심을 잃고 쓰러진 자전거들의 모습도 보였다. 대다수는 파손되어 있기는 했으나, 그 중에서 한 대는 그럭저럭 탑승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그것이라도 타서 이를 통해 길 위를 가로질러 보기로 하였다. 어차피 저격수는 기계이건, 괴물이건 모두 사라져 있으니 길을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을 필요도 있어 보였다.

  길을 가로질러 주택 구역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이전에 탑으로 가 보라고 조언을 하였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러나, 우연히 무너지다 만 담에서 발견했던 그 남자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이제 찾으려고 해도, 그 기억이 흐릿했던 탓에 그 행방을 알 수조차 없었다. 무너진 벽의 모습이나마 찾을 수 있었으면 다행이었건만, 돌아왔을 때, 벽은 이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서 그 자리를 알 수 없었다는 점도 있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반드시 만나볼 필요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를 찾으려 하는 시도는 그 정도로 그치고, 마을의 주택가 구역을 벗어나려 하였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곳임을 알고 있기는 하였으나, 혹시나 그 와중에 시체 괴물들 중 하나가 살아남아서 습격을 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음이 그 이유였다.
  주택가를 지나, 멈추어 버린 병기들의 모습만 보이는 다리를 거쳐, 시체 괴물들과 처음 마주하였던 그 마을 거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미 불길이 한 번 일어났다 사그라들은 듯해 보이던 그 거리로 오자마자 자전거를 멈추고서 우선 주변 일대를 둘러보고, 그에 이어 그 때 당시, 여러 시체 더미들 사이에서 시체를 뜯어먹는 잔인한 행각을 벌여온 시체 괴물들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거리에는 시체 더미가 불타는 흔적이었을 불길 위로 연기만 솟구칠 뿐, 도심지로 나아가겠다 하였던 그 괴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도심지로 나아갔다가 병기들의 표적이 되었겠지.'
  이에 대해서는 그저 그렇게 여기기만 할 뿐으로 더 이상 그들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음은 물론.

  그렇게 처음 괴물 무리와 마주했던 그 거리로 돌아오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무나일의 지하 깊은 곳에 인간들이 과거의 문명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마을이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며, 이 마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것. 불길의 흔적만 남은 폐허와 길목마다 피어오르는 불덩어리 사이를 지나다니며, 그에 대한 생각을 해 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시체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이 '과자 인간' 이라 여기던 이를 추격하던 그 현장이 있던 곳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발밑에서부터 빛을 발하는 방진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나는 빛이 나를 감싸는 듯한 광경이 눈앞에 들어오고 있음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면서 나는 나 자신이 이전에 떨어졌던 그 우물의 바로 앞에 누워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전이 마법에 우물 근처에 옮겨졌던 것. 바로 일어나서 옷을 잠깐 털고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높이 별들이 보이는 푸른빛의 무늬가 그려진 하늘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다행이다, 금방 깨어났네." 그 때, 우측의 어딘가에서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를 부르는 듯한 그 목소리에 바로 그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이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긴 소매 부분의 양끝이 나팔 모양을 이루며, 치맛단이 짧아 다리를 거의 드러내는 모습, 그리고 허리와 팔에 매여진 푸른 리본이 특징인 하늘색 의상과 머리에 쓴 큰 모자 그리고 하늘색 신이라는 옷차림을 구성하고 있는 이였다. 무릎 높이까지 내려가는 푸른색을 띠는 긴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
  "걱정했잖아, 네가 우물 아래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레테사(Retesa) 였다. 본명은 레테사 아르실(Retesa Arcil). 가마일(Gamael) 산 천문대에서 관측 일을 맡고 있는 이이다. 근래까지는 소르나 라지에스(Sorna Razies) 가 맡고 있다가, 그가 모종의 사연으로 인해 천문대를 떠나면서 레테사가 그를 대신해 천문대의 일을 맡게 된 것. 그래서 항시 천문대에 머무르느라, 마을로는 내려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내려온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을로 오면서 누군가를 통해 내가 우물 아래로 떨어졌음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런 레테사를 따라 마을의 중심 거리에 있는 시장 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의 이름은 무나일(Munael). 산 아래의 마을이라 칭해지기도 하는 곳으로서, 중앙의 시장 거리를 중심으로 여러 집들이 모여있는 거리 구역이라 칭할 수 있었다. 서쪽 교외에는 몇몇 농촌이 모여 있으며, 동쪽 교외는 '붉은 바위 구역' 이 자리잡고 있는 '붉은 바위의 산' 을 향하는 길이 있다.
  마을이 중심 구역인 시장 거리의 중앙, 그 북동쪽 한 길에는 박물관이 있다.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활자, 활판을 비롯한 인쇄 기술에 관한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서, 오래 전부터 이 곳과 인근 행성계의 활판 기술에 관한 물품들이 이 곳에 모여 전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 행성계는 인쇄술의 발명과는 거리가 먼 곳인지라-번화가라 칭할만한 곳이 없다-, 발명품의 대다수는 도시 문명이 번성하고 있는 이웃 행성계에서 가져온 물품들이다.
  중심가 북서쪽에는 집회소가 자리잡고 있다. 중대한 일이 생겼을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 그에 관한 토론을 하기 위해 마련된 곳으로서, 평상시에는 사람들의 쉼터로서 활용된다. 간혹 공연 행사가 있을 때에 이 집회소가 행사를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남서쪽에는 여관이 있으나, 이 곳이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닌지라 규모가 작음에도 들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여관에서 길 바로 건너편에 세나(Sena) 의 집이 있다. 천문대에 관한 일로 인해 한 동안 집을 비우고는 했다가, 소르나가 천문대를 떠나면서 굳이 머무르거나 할 필요가 없어져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다. 그 집에는 현재, 세니아(Senia), 카리나(Carina) 가 동거중이다.

  "어쩌다가 저 우물 아래로 내려가게 된 거야?"
  집회소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탁상에 그와 더불어 모여 앉았을 때, 나는 우선 레테사로부터 그러한 질문을 받았다. 왜 우물 아래로 내려가려 하였느냐는 것.
  "소문 듣지 않았어, 그 서쪽 교외에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던 것."
  "그래?" 레테사는 그 동안 천문 관측에 열중하고 있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무나일 마을 서쪽 구역에서 발생하고 있던 지하에서의 이상한 현상에 대한 소문을 듣거나 하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소르나라면 어떻게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라도 했었을 텐데. 그런 그의 부재가 아쉽게 다가오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그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서, 곧바로 그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한다는 사람들의 증언까지 들으며 그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네가 나서려 하였던 것이로구나."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이후, 그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바로 그러하다고 답을 하였다. 이후, 나는 그에게 우물 아래로 내려가려 하다가 갑자기 두레박의 줄이 끊기면서 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갔던 것이라고 그 때 있었던 일 중에서 내가 지하 세계로 떨어진 사유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레테사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치지는 않았으니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
  "그 세상에서 대체 무엇을 본 거야?"
  "그러니까......." 이후, 나는 그 동안 그 지하 세계에서 보게 된 것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하나씩 이야기를 해 주었다. 감빛 기운의 저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고, 그 이후에 되살아나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과자 인간으로 보이게 된 시체 괴물들부터 그 시체 괴물들로부터 도시를 지키려 하다가, 역시 저주로 인해 사람들을 말살하려 하는 이들로 전락해 간 기계 병기들에 대한 이야기에, 그 마을과 도시에 있으면서 일어났던 일까지. 그 일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그 지하 세계가 원래 어떠한 곳이었는지에 대해 바로 알아차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 곳은...... 셰올(Sheol) 이라 칭해지는 곳인가 보네."
  레테사가 말한 바에 의하면 이 행성계의 지반 아래에는 또 하나의 세계와 연결된 '문' 이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행성계가 멸망을 겪을 무렵에 지하 공간으로 숨어 들은 사람들이 지하 공간에 자리잡은 그 '문' 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의 이주를 시도해서 기존의 문명 생활을 이어갔다고 하며, 그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그 세상과 연결된 '문' 이 지하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하여, 그 세계를 고대어로 '지하 공간' 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셰올' 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 우물의 바닥이 셰올과 이어지는 '문' 이었을 것이고, 네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로 인해 모종의 이유로 인해 작동된 '문' 을 통해 그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그렇다면 내가 있던 곳은 우물과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겠네?"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레테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리고서 우물 안쪽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는 누군가에 의해 작동되고 있던 '문' 에서부터 들려오던 소리였을 것이라 추정하면서 '문' 의 작동 요인에 대해 '붉은 바위의 산' 동굴에서부터 이어진 지하 동굴을 통해 들어온 그 아델이라는 자에 의해 작동되었을 것이라 말한 이후에 아델 역시 스스로의 마력을 통해 문을 작동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고, 자신이 '아버지' 라 칭하는 그 포헤 누아흐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여긴다고 말을 이었다.

  그 우물의 깊은 바닥에 '셰올' 을 향하는 문이 자리잡게 된 이유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면, 그 문은 세계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빛의 생명체들이 지표면 위에 삶을 이어가기 시작하면서 이 문이 자리잡은 지하 공간을 향하는 굴을 봉쇄하려 하였다고. 그렇게 봉쇄된 채로 잊혀져가다가 그 일대에 지하수가 흐르기 시작하자, 물 공급을 위해 굴을 다시 열고, 일대에 우물을 마련하게 되면서 셰올을 향하는 문이 우물 바로 아래에 위치하게 된 것이라고.

  "그 문의 존재가 잊혀져서 일대에 우물이 생겨난 것이로구나."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그에 대해서는 앞으로 집회소에서의 주민 집회가 있을 때에 이야기를 해 볼 참이야. 이를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가 혹시라도 우연히 그 세계로 전이되어 돌아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후, 레테사는 그에 대한 건의를 할 의사를 바로 드러내었다. 그러는 동안 그 목소리에 다소 힘이 들어가 있었으니, 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었음을 그 목소리를 들으며 바로 알 수 있었다.
  "...... 아무튼, 포헤 누아흐, 그 자가 되살아나서는 또 난리를 일으키려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네."
  그리고서 그는 포헤 누아흐가 셰올에서 아델을 시켜 행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에 대해 내가 추측한 바와 거의 비슷한 바대로의 언급을 하였다. 주변 일대의 세계에 감빛의 기운을 퍼뜨리는 것에 관한 실험을 행하려 하였다는 것으로서, 그 실험의 결과에 대해 포헤 누아흐는 매우 만족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었다.
  "우선 자신이 활용할 병력의 주체인 기계 병기들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의 말살이라는 자신이 우선 목표하는 바를 충실히 잘 이행하고 있음이 그가 만족할 가장 큰 사항이고, 그 다음으로 이 행성계의 사람들을 이성을 잃은 시체 괴물들이 바로 희생양으로 삼도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다음으로 그를 만족시킬만한 사항이라 말할 수 있지."
  그리고서 그는 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말하면서, 그에 이어 그 시체 괴물들의 대다수는 자신이 괴물이 되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 그 실체를 바로 목도했던 나는 그에 대한 동감의 의사를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에게 어떻게 그 시체 괴물이 된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나도 실은 소르나로부터 감빛 기운에 영향을 받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알게 된 거야."
  그리고서 그는 아델은 붉은 바위의 산을 통해 지하 동굴로 내려가 문을 조작했을 것으로 여긴다는 말을 건넨 이후에 곧바로 그 붉은 바위의 산 동굴에 대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이 마을 지하에 굴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
  들어본 경험은 있었다. 이 마을의 지하에는 과거, 옛 문명의 사람들이 재난을 피해 지하 대피 공간으로 숨어들기 위한 통로를 마련한 그 흔적이 굴의 형태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마을의 집이나 시설의 지하와 이어진 경우도 있다고. 그 우물의 안쪽 역시 그렇게 생성된 지하 통로의 일부였던 모양.
  굴은 하나의 큰 미로를 이루고 있으며, 그 통로 중에는 붉은 바위의 산 동굴 지하 구역과 바로 이어진 곳도 있다고 한다. 그 통로를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산을 오르는 수고 없이 붉은 바위의 산 동굴로 진입해, 이를 통해 붉은 바위의 산에 있는 광산 지대로 들어설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 길을 잘 찾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기는 한데, 나는 지하 굴과 붉은 바위의 산 동굴이 이어지고 있음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을 분, 구체적인 통로의 구조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분명 아델은 산의 동굴을 통해 마을의 지하로 들어설 수 있다는 정보를 -아마도 외부로부터- 얻어, 이를 통해 마을 지하로의 진입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 아델이 셰올을 떠난 이후에는 셰올로의 문을 찾아내기 전에 숨어있었을 산의 동굴 내부로 돌아가지는 않았겠지만 포헤 누아흐의 수하 중 한 명이 산 내부에 머무르고 있었던 만큼, 산의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는 그 자에게 밝혀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수하가 들어섰다면, 포헤 누아흐가 그 수하의 행적을 통해 그가 숨어 있었을 산 내부에 대해 어느 정도 염탐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겠네."
  "그렇겠지." 이후, 그 추측을 바탕으로 건네는 물음에 레테사는 이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는 의미를 가지는 대답을 바로 건네고서, 그 수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통해 붉은 바위의 산 내부, 어쩌면 광산 내부에 모종의 사건을 일으키려 할 지도 모른다고 앞 일에 대한 추측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전망일 뿐일지도 몰라."
  그러나, 내가 추측한 바에 대해 레테사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는 추측일 뿐이고, 실제 그들의 행보는 추측한 바와 전혀 다를 수도 있음을 언급하였다, 일단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 붉은 바위의 산에서 발생할 것으로 여기고 미리 산으로 갔을 때, 사건이 그 동쪽 너머의 먼 곳에서 터져서 그 현장으로 다시 가 봐야 할 수도 있음에 대한 생각 역시 배제하기는 힘든 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선은 가만히 있도록 하자, 그러다가 사건이 터지는 곳이 생기면 빨리 그 곳으로 가 보도록 하자고."
  이후, 그는 포헤 누아흐가 되살아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이후부터 그와 관련된 동향을 천문대의 장치들을 통해 추적하고 있으며, 그 때에도 장치들은 계속 그 동향을 감시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들에 관한 불길한 동향이 생겼을 때, 자신이 바로 그 동향이 생겨난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겠음을 이어 밝혔다.

  "맞아, 너에게 주고픈 물품이 몇 개 있어."
  그렇게 한 동안 사건에 대한 대화가 오간 이후, 레테사는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바로 치마의 오른쪽 주머니를 오른손으로 뒤적이더니,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우선 이 상자부터 받아." 금실 무늬가 수놓인 그 작은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작은 원반이 솜에 감싸인 채 들어있었다. 원반은 8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 부분마다 하나씩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행성계에 있는 각 구역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북쪽 부분에 이 곳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어."
  그가 가리키는 문양에는 빛을 상징하는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우측에는 은하의 모습을 표현한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좌측에는 산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빛의 정령이 행성계에 내려온 이래로 만들어진 탑으로부터 빛의 기운을 이 원반이 받을 수 있어. 이 원반에 새겨진 문장 모두가 빛을 받았을 때에 거대한 힘이 일어난다고 하더라."
  그리고서 그는 이 구역에 있는 탑은 가마일 산의 정상에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라 물은 이후에-당연히, 알고 있다-, 사건의 해결을 하면서, 혹은 그 이후에도 그 탑을 비롯해 8 개 구역에 있는 탑의 빛을 원반의 문양이 받도록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를 통해 내가 몇 번이고 부활을 거듭하는 포헤 누아흐를 온전히 멸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기대한다면서. 그 물품을 건네 받은 후, 나는 은화 크기만한 그 작은 은 원반을 상자 안에 다시 담았고, 이후에 치마의 왼쪽 주머니 안에 그 작은 상자를 넣어 두었다.
  처음 본 사람이라면 그 짧은 치마의 주머니 안쪽을 잘 간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레테사는 나를 오랫동안 만나서 알고 있었고, 그런 치마 안에 물건을 넣어둔다고 쉽게 잃어버리거나 하는 모습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그런 나에 대한 우려의 말을 새삼스레 하지는 않았다.
  이후, 그는 왼쪽 주머니에서부터 또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어 나에게 건네었고, 이후 나는 바로 그 물건을 받아 오른손에 들었다. 그가 건넨 물건은 바로 자그마한 반지였다. 은 테두리에 푸른 보석 하나가 박힌 것으로서, 둥근 보석 안에는 유령의 형상을 가지는 하늘색 빛이 유영하듯, 맴돌고 있었다.
  "나도 비슷한 모양의 반지를 끼고 있어, 보여줄까."
  그리고서 그는 오른손을 손등이 위를 향하도록 펼쳐, 그 넷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음을 보였다, 그 반지는 테두리는 내가 받은 것과 같았으며, 박힌 보석의 색만 붉은색으로 달랐을 뿐이었다. 물론 보석의 종류만 다를 뿐이었을 터이다.
  "이 반지들은 보석에 내장된 힘을 통해 빛의 생명체들이 멀리서도 가까이에 있는 듯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을 갖고 있어. 일종의 통신 장치라 칭할 수 있지."
  그 반지의 특성에 대해 밝히고서 그는 자신과 내가 소지한 반지를 통해 천문대에 머무르고 있을 자신이 그에게 천문대에서부터 관측한 동향에 대해 알릴 수 있을 것임을 기대하는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와 같이 오른손의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서 나는 물품들을 건넨 레테사에게,
  "그 말대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건네려 하였고, 이에 레테사는 조금은 밝아진 느낌의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일단 여유 시간이 있으니까, 바로 가마일 산의 정상으로 같이 가도록 할까."
  대화를 마치면서 레테사가 건네는 그 권유에 응하여 나는 가마일 산을 향하는 산길을 그와 더불어 오르게 되었다, 은화 크기만한 그 작은 원반에 새겨진 빛의 문양이 빛을 발하는 모습을 하나라도 보고 싶었음이 그 이유였다.

  "천문대에 있던 이들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일단 세나는 세니아, 카리나와 더불어 집에 머무르고 있고, 나도 무나일에 있는 거처에서 나름 살고 있기는 하지. 요번에 세나 등은 인근 구역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해서 마을을 떠난 모양인데, 근래 들어 소식이 잘 없어."
  이후, 레테사는 한 동안 만나지 못했을 천문대를 떠났던 이들의 근황에 대해 물으려 하였고, 이에 나는 내가 아는 대로 그들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얼음 지대로 가겠노라고 이전에 네가 말한 바 있음은 기억하고 있지?"
  "당연하지!" 이후, 레테사는 나에게 이전에 얼음 지대로 나아가, 그 때에는 반드시 '얼음 공주' 의 구원을 행하겠노라 말한 적이 있음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내가 혹시나 그 때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 여부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으로, 그 때의 기억을 잊고 있지 않았고, 잊으려 하지도 않았던지라 바로 그러할 리 없다고 답을 하였다.
  "얼음 공주라 칭해진 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는 해."
  그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기는 하였으나, 필시 무척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이일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그 얼음 속에서 영원히 잠들게 놓아둘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당장의 일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그의 구원을 위해 나서겠노라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얼음 구역으로 갈 생각도 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포헤 누아흐 사건이 다시 일어났음과 그를 멸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빛의 힘을 얻기 위한 순례 여행에 나서게 된 것을 계기삼아 얼음 구역을 방문하면서 그 세계수 밑둥의 유적을 다시 들르기로 하였다.
  천문대에 있을 무렵, 나는 천문대에서 동거하고 있던 이들과도 같이 갈 것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으나, 그들이 항시 나를 위해 시간을 내 줄 이들도 아니었던 만큼, 나 혼자라도 나서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얼음 구역으로 나아가겠음을 레테사에게 밝히기도 하였다.
  "어차피 처음 갔을 때에도 그들과 같이 가거나 하지는 않았잖아."
  그러자 레테사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바로 웃음을 짓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라면 너의 소식을 듣고난 이후에는 바로 너의 곁으로 와 주겠지. 그들 역시 너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에 처한 이를 가만히 놓아둘 수는 없음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이들이잖아. 그들의 생각을 믿어보는 것은 어때?"
  "정말 와 주려나." 레테사의 그 말에 혼자 나서겠다는 생각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어쩌면 그들이 내 곁으로 와 줄 지도 모른다는 혹시나 싶은 기대감이 생겨났던 것. 하지만 큰 기대감은 갖지 않기로 하였다, 확신에 찬 기대를 했다가 행여 기대한 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로 인해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 레테사는 산길을 오르는 도중에 앞서 나아가던 나에게 다른 주제에 관하여 질문을 하려 하였다. 내가 무나일의 거처로 옮겨놓은 어머니의 유품에 관한 질문이었다.
  "어머니의 유품은 지금도 잘 갖고 있지?"
  "응." 이 물음에 나는 바로 그러하다고 답을 하였다. 그 물품이라면 금박으로 무늬를 넣은 상자 안에 잘 모셔두고 있다. 다만, 그 물품을 다루는 재능이 별로 없다보니, 그저 모셔두고 있기만 할 따름으로 기회가 되면 그 물품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법한 인물-카리나에게 물품을 맡길 생각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순례에 나서면서 부적 삼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때, 레테사가 그 어머니의 유품을 가지고 있어줄 것을 나에게 권하였으나, 이에 나는 바로 거절의 의사를 드러내었다. 내가 검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만, 아직은 그 '성검' 을 가질만한 자질이 있다고 여기어지지는 않았음이 그 이유였다.
  "그 '성검' 은 평상시에는 보통의 도검과 큰 차이는 없잖아. 자질이 없다고 들고 다니는 데에 무리할 일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을 텐데."
  "그래 보이기는 하지." 맞는 말임은 분명했고,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화답을 하였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어머니의 유품인 그 성검의 날은 푸른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감빛의 호수가 부근에서 자연 생성된 수정들을 제련하는 방식으로써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성검의 날을 벼려내고, 검의 형태를 만들어낸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아는 이는 지금도 없다고 한다.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다는 물건이었으니. 빛의 힘을 끌어내기 위한 검은 '생명의 수정' 이라 일컬어지는 빛나는 수정을 제련하는 것으로써 만들어지기는 하나, 그 성검은 여타의 검과는 다른 힘이 필요했고, 그로 인해 감빛의 호수가에 있는 수정을 토대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무슨 이유 때문이지는 모르겠으나, 그 도검은 어느 이상의 자질을 가지지 않는 자에게는 성검으로서의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평범한 도검이 될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필요할 때가 되면 도검을 빛으로써 만들어낼 수도 있는데, 평범한 도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물건을 부적으로라도 굳이 들고 다닐 이유가 없다고 여기며, 그 성검을 집에 놓아둔 것이었다.
  나로부터 대답을 들은 이후, 그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할 법도 해 보였건만, 레테사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었는지, 나에게 더 질문을 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일행의 발걸음은 가마일과 바로 이어진 산길 근처를 거쳐, 산봉우리와 바로 이어지고 있는 험한 길목을 향하고 있었다.
  산봉우리 부근에 이르니, 평지대에서는 평온했던 바람이 점차 거세어지며 조금은 추운 느낌도 들고 있었다. 그 세찬 바람에 치마도 마구 펄럭였으나, 그것에 신경을 써가며 산길을 오를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산길을 오르는 동안 레테사는 가벼운 옷차림을 한 나의 모습을 보며, 그에 관한 걱정이 들었는지, 그런 나를 보며 다급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춥거나 하지는 않아?"
  "별로." 바람이 거센 탓으로 다소 괴롭기는 하였으나, 춥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바로 답하였다.

  계단을 통해 이어진 길은 산에 있는 유일한 마을인 가마일(Gamael) 부근으로 이어졌다. 산봉우리에 위치한 탑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가마일을 지나칠 이유는 없었으나, 근래 들어 그 마을을 들르지 않았던 탓에 그 변화된 모습이 궁금했기에 이번 기회에 한 번 들러보는 것이 좋겠다싶어 레테사를 설득해 마을을 지나치기로 하였다.

  몇 년 전 무렵과 크게 달라진 바는 없었다. 무성히 이파리들을 키운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집들과 상가 건물들은 이전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상가에 있는 가게 건물들을 들러본 적은 없었지만 가게 주인들은 오랫동안 이 부근에 거주하며 한 번씩 친구들과 삼삼오오 방문해 오던 나를 알아볼 것만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상가 구역의 중심, 그 동쪽 길목의 인쇄소 건너편에 고동품 가게 하나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물건들을 취급한다는 곳으로서 주로 20 - 30 여년 전의 물품들을 볼 수 있다는 그 곳에는 의외로 문명의 산물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중심부에는 행성계의 중심에는 옛 문명의 소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이것저것 가져오고 있었던 모양. 가게를 들러 장사 상태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당장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쇄소 분은 잘 지내신대?"
  "응, 가게 사정은 예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고 말씀하시더라."
  인쇄소 부근에서 잠시 고동품 가게 구경을 하다가 인쇄소 곁을 지나치려 하면서 건네는 물음에 레테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답으로써 말했다. 그리고 활판이 고장나게 된다면 혹시 모르는 일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활판 기계가 고장나게 되어 가게 문을 닫게 되면 문서를 인쇄하기 위해 산길을 오르내리는 불편을 겪게 될 것에 대한 걱정을 그와 더불어 드러내기도 했다. 이해가 되기는 했다, 천문대를 떠나기 전, 레테사와 함께 인쇄소를 들렀을 때, 그 활판 기계가 삐걱이는 소리를 한 번씩 들었고, 그로 인한 걱정이 들기도 했었으니.
  상가 거리 북쪽 부근에 이르니, 어린 소녀들이 줄을 이용한 놀이를 즐기고 있는 광경이 보였고, 그 우측 부근에서는 술래잡기를 하거나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놀이터가 거리마다 하나씩 있던 무나일과 달리, 가마일은 놀이터가 없고, 거리가 대체로 한산하다보니 아이들은 놀이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고는 하였다.
  "레테사는 가마일 출신이니까, 이 광경이 낯설지는 않겠다, 그렇지?"
  "응, 나도 어렸을 때에는 저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뛰어놀고는 했었지. 산 위의 마을이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라 생각해."
  놀이터가 별로 없는 곳에서 태어났을 그는 어렸을 적에는 그 어린 소녀들처럼 뛰어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마을 출신의 소르나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싶어 그에 대해 물었더니, 레테사로부터 바로 이러한 답이 나왔다.
  "그 아이는 흔히 말하는 '우등생' 이라던가, 그런 아이였어, 놀 거리 찾아 뛰어노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구나, 하기사, 소르나가 직접 거론할 바는 아니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소르나는 자기 자신의 어렸을 적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레테사도 그로부터 직접 어렸을 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추억 거리가 별로 없었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라고. 다만, 자신은 학교에 있으면서 소르나에 관해 자주 이야기를 듣고는 하였는데, 자신이 학교에 있을 적에 우등생으로서 자주 이름이 거론되었음이 그 이유였다는 모양.
  "너는 그렇게 우등생이었던 적은 없었지?"
  "뭐, 있었나." 레테사의 질문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북쪽 길가의 의자에 잠시 앉아서 레테사에게 우측 곁에 앉을 것을 권했다, 앉아서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네가 무나일에서 학교에 다닐 적에는 어머니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었지?"
  "응,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즈음에 무나일로 왔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푸른 지대에서 학교에 다닐 적에는 어머니께서는 학교 성적을 가지고 나에게 뭐라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다, 그저 선한 마음을 잃지는 말아줄 것을 당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아직은 학업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중간 이상은 했었지, 학교 성적은."
  "응, 암만 그래도 바보 취급은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후, 자신이 건네는 물음에 대한 답을 듣자마자 레테사는 자신이 천문대에서 만났던 모든 이들이 그랬다고 답을 한 이후에 이들 중에 학교에 다닐 무렵에 정말 그렇게 형편없는 성적을 보인 이는 없었을 것이라 답을 하고서, 그럼에도 그 학교 성적을 두고, 그 미래를 예측할 시에 현재, 그들의 활동 상에 대한 예측을 한 이는 적지 않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성적만으로는 미래를 볼 수 없지 않겠니."
  이에 나는 미소를 띠며 그렇게 화답을 하였다. 일단 말은 그렇게 했다지만 정말 학교 성적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지는 않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늘 공부만 하다가 천문대에서 관측 담당으로서 큰 역할을 했던 소르나 같은 이가 있기도 했으니. 그 뒤를 이은 레테사는 그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 그도 그에 대해서는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였다.
  "어떡하겠니, 기반이 안 되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에 대한 언급을 하자, 레테사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답을 하고서, 노력이라도 열심히 해서, 그가 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관측 담당으로서 제 역할은 할 수 있도록 하겠노라는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애가 관측 담당할 때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었지?"
  "그랬었지, 너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그 곳에 머무르고 있었잖아."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레테사는 그러하다고 조용히 답을 하였다. 그리고 단순히 학업을 잘했음만이 그 이유는 아니었을 것임은 나도 알고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잠시 말없이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앉아있다가 잠시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가자." 라고 짧게 한 마디 말을 건네었다. 이후에 할 말은 당장에 할 수 있을만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
  조용한 오후의 마을 거리를 지나 북쪽의 대문을 거쳐 그 너머의 계단길을 오르기 시작할 무렵부터 레테사가 앞장서고 내가 그런 그를 뒤따라 나섰다. 계단 길을 오르는 것은 간만의 일이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산길 주변의 풍경은 낯설게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천문대를 떠나고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그 일대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들도 이 곳을 너처럼 기억하고 있을까."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계단을 걸어 오르고 있을 무렵, 레테사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 그들도 내가 했던 그 이상으로 이 산길을 자주 방문했던 만큼, 더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음이 그 근거가 되고 있었다.
  "세나는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왜 하필이면 그 애를 노골적으로 언급하니."
  이후, 레테사가 피식 웃으면서 건네는 물음에 나는 바로 당황하면서 답하였다. 천문대에서 동거하고 있을 무렵, 세나가 한 번씩 보여온 어설픈 일면을 알고 있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내 앞에서 너무 그를 언급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한 번은 그를 언급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가만히 보면 참 지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말야.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라' 의 좋은 예시인 것 같아."
  뒷담화하는 듯이 너무 언급하는 것 같았지만, 그가 그 동안 보인 바가 있었음은 분명했던 탓에 그 말에는 그저 공감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세나를 너무 바보취급만 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에게 지적인 일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지할 때에는 정말 진지하기도. 천문대에서 만난 이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어설퍼 보일 따름이었던 것.
  "세나는 검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바보같아서 괜찮거나 하지 않아?"
  "그렇기는 하지만......."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그를 다소 어설프다 여기고 있었을 레테사 역시 잘 반박하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래도 한 번은 그를 비롯해 천문대에 있던 이들을 만나보고 싶게 되었다고 말하고서, 문득 그리워졌다고 말하면서 나의 이야기가 그 계기가 되었음을 밝혔다.
  그리고서 그는 방금 전에 의자에 앉았을 때에 하지 못했던 말은 '소르나가 천문대에 있을 때가 좋았다' 였음을 밝혔다. 그 때에는 자존심 때문에 말할 수 없었는데, 이왕 그렇게 된 바에 말해 버리기로 한 것. 그에 비해 여러모로 모자람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에 못지 않은 사람이기를 원했고, 그래서 이전 때가 좋았다고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언젠가는 모두 천문대가 아니더라도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후, 레테사가 건네는 말에 나는 조용히 그의 발언에 대한 동감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어디서 만날지를 정한다면 어디가 좋겠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하였다.
  "푸른 지대의 그 호수가가 좋지 않을까."
  감빛 기운이 맴도는 곳으로서 산길 건너편에 성채의 폐허가 자리잡고 있는 호수. 이전의 역사가 있어서 불길한 곳으로 여기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푸른 지대에서는 그만큼 경치가 좋은 곳이 없으며, 또한 그 호수가 자리잡은 산길 저변에는 '생명의 근원' 이라 칭해지는 비석이 자리잡고 있다는 나름의 큰 의미가 그 곳에 주어져 있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그 호수가 부근에는 내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곳이 있다. 그 살았던 곳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아는 이들이 없다. 그 곳에 대해 알리고픈 생각도 있어서 그 푸른 지대에 모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 다만, 레테사의 생각은 달랐다. '황금의 대지' 중심부의 산악 지대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도 달리 반박을 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은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푸른 대지보다는 산악 지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았음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어느새 나와 레테사 모두 산봉우리에 자리잡은 탑 바로 앞에 이르게 되었다. 어지간한 거목의 높이만한, 나무처럼 생긴 탑의 마치 마법사의 지팡이 머리 부분처럼 생긴 꼭대기는 푸른 기운이 감도는 새하얀 빛으로 감싸여 있으면서 주변 일대로 환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근처에 올 때마다 늘 느끼는 바였지만 낮과 밤이 공존하는 맑은 하늘을 보이는 환한 날이었건만 그 근방은 유난히 밝아서 마치 태양의 바로 앞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늘 느끼는 바였지만 그 빛은 무척 밝았으나, 여타 행성계의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고 멀 수도 있는 '태양' 과 달리 오래 바라보아도 눈에 해가 가지 않고 눈이 괴롭지도 않았다. 멸망을 맞이했던 세상이 복원되었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정령이 내린 가호는 단순히 세상에 빛을 내린 것뿐만이 아니라 빛의 기운을 받은 사람들이 그 빛을 바로 앞에서 직접 볼 수 있도록 하며, 그 빛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감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야?"
  "내가 건네준 그 은제 원반, 잘 갖고 있지? 그 원반을 빛 근처에 올려 원반이 빛을 받도록 해야지."
  그리고서 레테사는 탑의 정남쪽 근처에 원형진이 있어서 그 방진을 통해 천천히 탑의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빛의 바로 앞으로 올라갈 수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탑의 정남쪽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는 그 진을 찾으려 하였다. 원형진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기에 이를 찾기 위해 레테사에게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모르겠으면 도움을 받음이 무엇을 하는 데에 있어서 기본이라면 기본이니까.
  "여기 있네, 예전에 누군가 새겨놓은 진."
  풀밭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던 원형진을 레테사는 바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찾아내었다. 소르나가 관측 담당일 때보다 훨씬 전의 먼 옛날-천문대가 건립될 무렵이라는 설도 있다, 그 때는 문명이 새로 건설될 무렵이라고-에 누군가가 탑 바로 앞의 암반에 새기고 그 진에 마력을 부여했다고 한다. 원래는 탑 주변은 암반의 모습만 보였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풀들이 자라나면서 바위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가려놓았기에 사전에 그 위치를 알아보지 않으면 바로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레테사가 알려준 위치에 이르러 풀밭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원형 문양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무성히 자라난 풀밭에 묻힌 듯한 그 원형 방진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테두리 부분에서부터 빛의 장막이 생성되면서 그와 함께 나 자신이 점차 빛을 향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치마 주머니 안에 넣어둔 작은 상자에서부터 은화처럼 생긴 작은 은제 원반을 꺼내었다, 원반이 빛을 받을 준비를 하기 위한 일이었다.
  얼핏 보면 주화와 구분이 되지 않아 보이는 그 작은 원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성계의 중심을 둘러싸는 듯이 배치된 8 개의 구역을 상징하는 듯한 문양이 그려져 있고, 첫째 세계인 빛의 세계 혹은 생명의 세계를 상징하는 빛의 문양과 사막과 고산 지대가 특징인 황금의 대지를 상징하는 태양의 문양을 잇는 듯한 바늘이 새겨져 있으며, 그 중심에 막대 하나가 자리잡은 모습이 마치 해시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일면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 해시계로 황금의 나라에 이런 유형의 물품들이 있었으려나. 황금의 대지로 가면 알아봐야 하겠다, 황금의 대지에서 출토된 물품이 그 바탕일 텐데.'
  어느덧 나는 탑의 꼭대기 부분에 위치한 빛의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원반이 빛을 받으면서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면서 그와 더불어 영롱한 느낌을 주는 소리와 함께 반즈음 투명한 하늘색 빛 줄기 하나가 그 원반에 닿았다. 그리고 소리와 더불어 빛 줄기도 희미해져가고, 빛 줄기가 사라질 무렵, 은제 원반 역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나 역시 천천히 지면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게 되었다.
  지면의 방진이 새겨진 부분으로 내려오게 되는 동안, 손바닥에 놓인 은제 원반의 모습을 잠시 보려 하였다. 그리고서 나는  탑에서부터 빛을 받은 이후, 그 은제 원반의 생명의 영역을 상징하는 듯한 빛 모양의 자그마한 문양이 하얗게 빛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큰 주화 크기만한 은제 원반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양은 아이의 손톱 크기만했으나, 산정의 탑에 자리잡은 빛은 정확히 자신을 상징하는 듯한 그 작은 문양의 홈을 빛으로 채워넣었고,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새삼스레 자그마한 부분이 빛으로 채워진 모습을 보며, 그 빛의 능력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다시 내려온 이후, 나는 은제 원반을 원형진 우측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던 레테사에게 보였고, 8 개의 작은 부분 중 하나의 문양이 빛으로 채워진 모습을 보며 밝게 목소리를 내어 "잘 됐네." 라고 한 마디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나에게 제안을 하니, 잠시 산정 부근에 머무르며 산 풍경을 감상하며 쉬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레테사와 함께 잠시 탑 부근의 절벽가에 앉아서 하늘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진 섬의 전경과 바다가 펼쳐진 그 풍경을 보게 되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 하나의 선을 그리는 그 한 가운데에 커다란 섬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행성계에서는 가장 큰 섬일지도 모르는 바다 먼 너머에 위치한 섬은 대부분이 암반을 거의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는 채로 자신을 둘러싸는 파도를 맞이하고 있었다. 암반 위로 초목이 자라난 부분이 있기도 하였으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검은 섬' 이라는 이명을 가지는 바위 섬의 모습은 오래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자주 보아왔었고, 그 바위 섬이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서 역시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전승을 통해 알려진 바 있기는 하였다. 오래 전 행성의 구 세계가 멸망한 이후에도 남은 도시의 잔해가 바위 밑에 묻혀있으며, 행성 곳곳에 보이는 옛 문명의 잔해는 그 바위 섬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옛 문명의 유물이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바위 섬 안에 남아있다하여 사람들은 그 섬을 '금단의 보물고' 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검은 섬'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들은 없었다. 검은 섬은 그 지표면부터 독기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서 기운이 약한 이들은 그로 인해 의식을 잃을 수 있고, 섬의 동굴 안쪽은 짙은 독기가 드리워져 있어서 이를 무리하게 뚫고 가려 했다가는 그 독기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음이 그 이유였다. 동굴 깊은 곳은 등불이 없으면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기도 하니,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붉은 바위의 산 출신의 난쟁이 족 모험가들이 그 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가 어둠 속에서 독기에 감염되었고 의식을 잃어가는 도중에 간신히 탈출했다가 해안 부근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그리고 이는 해안 부근의 유골들이 발견되는 것으로써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붉은 바위의 산 마을들의 난쟁이 부족들에서는 그 섬으로의 진입을 엄격히 금지한 바 있다-. 그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나는 레테사에게 그 난쟁이 부족민들의 사건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혹시 그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이야기? 무슨 이야기?" 그러자 레테사는 바로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검은 섬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잊었음을 깨닫고, 바로 그에게 검은 섬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렸다.
  그렇게 내가 '검은 섬' 에 관한 이야기임을 밝히자마자 레테사가 내가 묻고자 하는 바에 대해 바로 답을 하였다, 붉은 바위의 산 부족 마을에 우연히 이르렀다가 호외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그 마을에서는 주민의 사망을 오랫동안 알지 못해, 실종되어 어딘가에 살아있을 줄만 알고 있었다는데, 섬으로 들어선 그 다음날에 이미 사망했음이 알려지면서 한 동안 그로 인한 충격 속에 있었다는 모양.
  "그런데, 검은 섬에 독기가 드리워진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그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 아는 바는 없어."
  검은 섬의 독기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 있기는 하였으나, 8 개의 세계에 대해 이것저것 들어서 아는 바가 나름 있음을 자부하고 있던 나도 검은 섬의 독기 발생 원인에 대해서까지 알거나 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장기가 옛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하고 있을 지하 동굴 안쪽으로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음을 통해 그에 관한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는 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포헤 느와흐는 검은 섬에 대해 알고 있으려나."
  "분명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이 이야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물음을 건넨 이가 나일 것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음을 건넨 이는 레테사였다. 그 질문에 내가 즉답으로써 분명 그러할 것이라 확신을 하는 답을 그에게 해 주었다. 사실, 레테사는 오래토록 소르나의 보조 역할을 맡으면서 천문대를 떠나보거나 한 적은 없었고, 붉은 바위 산이나 푸른 지대 등에 이른 적은 더욱 없었다. 어쩌다가 소르나의 심부름 일을 맡으면서 붉은 바위의 산에 있는 마을에 이른 것이 가마일 산, 무나일을 떠난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을 정도. 소르나와 같은 수준의 통찰력이 있는 편도 아니어서 그래서 외부의 사정에 대해 알아보려 하면 자신을 찾아오는 이의 도움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기는 했을 것이다.
  "검은 장기가 인체에 해악을 가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그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겠지, 마력이 있겠다, 이미 몸은 어둠에 물들었겠다, 그런 것 정도는 그를 두렵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아."
  "그렇다면 그 자가 검은 섬으로 진입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
  "시도 자체는 막을 수 없을 거야, 분명."
  이에 나는 진입의 시도를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는 당장에는 푸른 지대와 감빛 마력에 집착을 할 것이고, 그래서 검은 섬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음을 밝힌 이후에 포헤 느와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감빛 기운에 중독되어 그 기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이유로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중독의 여파로 인해 사고 자체가 감빛 기운의 근원지인 감빛 호수가 중심이 되고 있어서 검은 섬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잘 인지를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검은 섬의 존재 자체를 아직 모를 수도 있다던가."
  "이제 와서 그에게 협력을 할만한 이가 없으니, 검은 섬에 대해 알릴 이가 없기도 했을 거야. 그렇지?"
  이후, 레테사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즉답을 하였다, 당연한 사항에 대한 대답이었던 만큼. 수차례의 패배를 거치면서 그를 위한 충고를 할 이들조차 이제 없어졌고, 그에 대한 신뢰 역시 없어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상황에서 세력을 구성하고 추종자들을 거느리려면 스스로 마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전의 '아델' 역시 그렇게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얻은 추종자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그 때, 한 무리의 하얀 물새들이 검은 섬 바로 위쪽의 상공을 거쳐 동쪽 방향-우측-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먼 방향에서 날고 있었던지라 잘 보이지 않기는 했으나, 그 중 앞서 나아가던 이는 왕관 비스무리한 것을 쓰고 있기는 하였다. 그 날아가던 모습을 보더니, 레테사가 바로 그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려 하는 듯했다.
  "저 새들은 고니 아니니?"
  "응." 그 새들은 분명 고니들이었고, 이들은 철새들이기에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날아가는 것을 두고 이상하게 여길 수는 없었다. 다만, 이들이 밤중에도 활동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상해 보였고, 그래서 고니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자마자 레테사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물새 같아 보여?"
  "......." 하지만 답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몰랐음이 그 이유. 고니 비스무리한 외형을 갖춘 물새의 일종으로 여길 따름. 애당초 머리 위에 왕관 비스무리한 것을 쓰고 있는 새가 보통 물새일 리가 없었다. 이후, 뒤따라 검은 섬 상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고니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레테사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바로 물었다.
  "그 아델이 너와 대치하면서 했던 말로 뭐가 있어?"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달라고 했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꽤나 어이 없음을 느낀 바 있었는데, 레테사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으로 그 말을 듣자마자 비웃음이 그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기억해 달라고 해서 잘도 기억해 줄 것이라 기대하겠다, '부하 1' 정도밖에 되지 않으면서 무슨."
  그러더니 그는 아델이 한 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바로 하얀 물새들에 시선을 향하면서 그에 대해 나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 물새들을 사냥하라면 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하고 싶지는 않아, 실상은 모르겠다만 이런 고귀해 보이는 물새들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 이에 레테사는 그저 그렇게 화답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자신도 그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음을 밝힌 이후에 이 물새들의 아름다움을 말하는데, 마치 '천사들이 내려보낸 이들' 이라 칭하기도. 이에 나는 "그 정도야?" 라고 미소를 띠며 묻는 듯이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이에 레테사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답을 기대하며 건넨 말은 아니었다, 레테사 역시 내가 그저 묻는 듯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었음을 알고는 있었던 것. 서로를 알게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굳이 물음을 건넬 이유가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나는 물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그가 갑자기 아델에 대한 언급을 한 이유, 그리고 그 고니처럼 생긴 물새를 사냥할 수 있다면 할 것이냐고 묻게 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델과 고니처럼 보이는 그 물새들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 여부가 궁금해졌던 것. 무언가 이유가 있어 보이지만, 이에 대해 바로 짐작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레테사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던 것.
  "웬지 아델이 새의 형태로 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와 나름 연관된 생각들이 떠올랐던 거야."
  그리고서 그는 자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그 감빛 호수에 근래 들어 고니처럼 생긴 그 물새들이 머무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음을 밝히고서 이들은 밤중에도 유난히 많은 활동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틀림 없이, 네가 감빛 지대에서 어머니와 함께 머무르고 있을 때에는 그 모습을 자주 보거나 할 수는 없었을 거야."
  이후, 그는 나에게 내가 어렸을 적에는 보이지 않았을 이들이라고 그들에 대한 추정을 하고서 정말 내가 감빛 지대에 있을 때에는 그 새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는지에 대한 물음을 건네었다.
  "고니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 고니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무나일 남부의 그 호수가 아니었니?"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고니처럼 생겼지만 고니와는 다른 일면이 있는 그 기이한 물새가 실제로는 포헤 느와흐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만들어낸 이들이라 레테사가 여기고 있으리라 추정을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그 추정에 관한 물음을 건네어, 레테사로부터의 답변을 들으려 하였다.
  레테사는 대략 그러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검은 새로 변할 수 있는 아델과 달리, 하얀색을 띠는 기이한 물새들인 그들은 포헤 느와흐의 감빛 마력에 의해 저주받은 이들로서, 그로 인해 새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그 레테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왕관을 쓴 이는 새들 중에서 왕으로 여기어지는 이이겠지?"
  "아마도......." 이 물음에 레테사는 바로 그렇게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원래 왕이었던 이가 저주로 인해 변이하면서 자신의 사람들과 더불어 무리지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들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드러내었다. 그리고서 그는 나에게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음을 건네었다.
  레테사의 그 추정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다면, 어렸을 적, 감빛 지대에 있을 무렵에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어떤 동화 속의 이야기였다. 왕이 마녀인 줄도 모르고 데려온 젊은 여성에 의해 왕자들이 저주로 인해 고니로 변이당하고 그로 인해 막내였던 공주가 이런저런 고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알고난 이후, 어머니께서는 감빛 호수에 나를 데리고 오시던 어느 날, 그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하셨다.

  만약에 밤을 맞이한 이 감빛 호수에 고니들이 나타난다면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임을 알아야 한단다. 혹시라도 그 고니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

  어렸을 적에는 그 말을 진지하게 믿고는 했었다. 그리고 빛의 힘을 다루는 법을 알아가면서 그 빛의 힘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저주에서 풀어주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갖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삶을 이어가는 동안, 그러한 어린 시절의 꿈은 어린 시절의 꿈일 뿐으로 여기었으며, 그러한 일이 있을 리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적어도 동화 속의 마왕과 같이 장난 삼아 공주 등에 저주를 내려 괴롭히는 어처구니 없는 면모를 가지는 악당은 없음을 알았던 것이었다. 마왕 행세를 했던 포헤 느와흐 역시 공주를 노리며 사악한 장난을 치거나 하는 모습만을 보이지는 않았었다.
  그랬으니, 레테사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웃음부터 나왔고, 그러면서 레테사에게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날 리가 있겠느냐고 정말로 생각하냐고 묻기도 했다.
  "만약, 그 새들이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할까, 엉겅퀴 옷이라도 입혀야 하려나."
  엉겅퀴 옷은 어린 시절의 그 이야기에서 공주가 엉겅퀴 줄기를 짜서 만든 옷으로서, 저주에 의해 새가 되어버린 자신의 일족 그리고 백성들의 저주를 풀어내기 위해 만들었던 옷이었다. 이 옷을 만들기 위해 공주는 손과 팔의 곳곳에 상처를 입는 고통을 끊임없는 듯이 감수해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고 이야기에 언급되어 있다. 고니 닮은 감빛 호수의 물새들이 실은 저주받은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문득 그 엉겅퀴 옷이 생각나서 그렇게 그에게 물음을 건네듯이 말했었다.
  "혹시 그런 이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말해봤던 거야."
  그러자 레테사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그런 추측을 해 보았음을 밝혔다. 그리고서 그는 적어도 그 물새들을 사냥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서, 딱히 이유가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이 나름의 이유라면 이유임을 나에게 밝혔다. 이후, 그는 내가 그 당부를 잊을까봐 다시 한 번 충고를 하는 듯한 어조로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나는 알았다고 답을 하고서 밝은 느낌을 주는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거나 하지는 마, 내가 그런 당부까지 잊으며 살겠니?"

  그 이후, 한 동안 산봉우리 부근의 절벽가에서 말없이 건너편의 바다 그리고 '검은 섬' 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레테사는 이제 천문대 일을 해야 한다면서 먼저 산길을 통해 내려가고, 나 혼자 산봉우리 부근에 남았다. 그렇게 레테사가 산 아래로 내려갈 그 때, 또 다시 고니 비슷하게 생긴 하얀 물새들이 서쪽에서부터 동쪽을 향해 바다를 가로질러 나아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까 그 새들의 인도를 받아가며 푸른 지대로 나아가고 있으려나.'
  그 새들의 무리에는 상당히 많은 새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으로, 왕관을 쓴 그 새는 새 무리의 지도자로서, 여타 새들을 인도하고, 그 인도 하에 한 무리씩 새들이 나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새 무리가 바다를 건너 푸른 지대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여기며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려 하였다.
  그러는 그 때, 왼팔에 차고 있던 은팔찌의 보석이 빛나기 시작하면서 그와 동시에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놀라 장치를 작동시켜보니, 이전에 들은 바 있던 어떤 남자가 다급히 외치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아르사나 양이 맞나!?"
  붉은 바위의 산에 자리잡고 있는 광산촌 아로테스(Arotes) 에 거주하는 이로서, 아로테스베르크(Arotesberg) 광산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난쟁이 족 남성의 목소리였다. 낯설지 않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통신 장치를 통해 전해져 오는 그 목소리에 밝게 목소리를 내며 응답하였다.
  "예, 맞아요, 오랜만에 연락하게 되네요."
  이 사람과는 천문대로 오기 전, 모험가로서 얼음 지대를 탐험할 무렵에 인연을 가졌다. 그 난쟁이 족 남성은 그 당시, 내가 속해 있던 고대 유적 탐사단의 일원으로서 참가하고 있었으며, 얼음 지대와 금사 지대를 거쳐 동부 협곡을 거쳐 바다에 이르는 것으로 고대 유적의 탐사를 마친 이후로 붉은 바위의 산으로 돌아갔으며, 다시 광부로서 일하다가 근래에 광산 관리인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붉은 바위의 산에 관한 전반적인 소식을 알리는 '로트 펠스(Rod Fels)' 소식지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난쟁이 광부 '막시(Maxie)' 는 간만에 통신을 통해서나마 연락이 가능해진 나에게 그 동안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연락조차 잘 하지 못하다가 연락이나마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음에 대한 반가움의 의사를 드러내지 않고, 바로 광산에서 일어난다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려 하고 있었다. 그 만큼 광산 안쪽의 상황이 다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괴물 출몰로 인해 폐광으로 지정된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에서의 사상 사고가 잇달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고 발생 구역에 몇 차례 조사대의 파견을 요청했고, 그로 인해 조사대들이 하나씩 광산 내부의 진입을 시도했으나, 지금껏 이들의 귀환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 조사가 장시간 동안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폐광 구역이 아닌 한,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닐 것인 만큼, 사고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막시의 증언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지에서 온 난쟁이 족 사람들은 그들의 수입을 위해 광산 내부의 진입을 시도했으며, 그에 의한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고, 그로 인해 광산 전체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끝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망 사고를 어떻게든 막아야 했음이 그 이유라고.
  "그러니까, 말이다. 아르사나, 자네가......."
  이후, 막시는 잠시 말을 하지 않다가, 그 이후에 나에게 광산 내부, 아니 광산 내부와 이어진 동굴 안쪽을 보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괴물의 근원은 광산이 아님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 당시 조사대의 주 구성원이 광부였음을 감안해 근원지로 향하는 길목을 바위로 막고, 그럼에도 근원지에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어서 일대를 폐쇄하는 것 이외의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네 혹시 무나일 마을에 머무르고 있나, 그 무나일 마을의 서부에 있는 우물이 그 광산과 통하는 동굴과 이어져 있다고 알고 있다. 우선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 주게."
  이렇게 요청을 하고서, 막시는 자세한 이야기는 동굴 내부에서 만나면서 할 것임을 알리며 연락을 마쳤다. 이후, 보석이 빛을 잃자마자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무나일 마을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다. 이전에 했던 대로, 무나일 마을의 서쪽에 있는 우물 지하와 이어진 지하 통로를 통해 붉은 바위 산 지하 동굴로 나아가려 하였던 것이었다.
  레테사에게는 딱히 통보를 하지 않았다, 굳이 통보를 하거나 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기었음이 그 이유. 하지만 혹시나 싶은 생각에 통신 장치를 통해 천문대 내부에 머무르고 있었을 레테사에게 나가겠음을 알리는 말은 전했다.

  다시 우물가로 돌아왔을 때, 두레박이 그 때처럼 다시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의 사고 이후, 사람들이 이를 발견하고 수리를 진행했던 모양. 그 두레박을 타고 다시 지하 동굴로의 진입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 방진이 작동되지 않기를 바라며 진입을 행했고, 이후 나는 무사히 동굴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동굴 내부는 일직선 상으로 길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외로이 이어진 길은 먼 저편에 자리잡은 거대한 바위굴로 이어졌다. 그 바위굴 입구를 빛으로 비추어보니,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이를 통해 그 바위굴이 붉은 바위의 산 내부 동굴로 들어서는 관문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