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Inter. 2-2


  이 행성계의 사람들에게 고대인들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이어가려 하는 기질이 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대 문명의 역사에 관한 지식의 기반이 탄탄하냐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고대 문명의 흔적은 한 번씩 해저나 지표면에서 발굴되는 유물 정도가 전부이고, 그나마도 내부 구조가 파손되지 않은 것이란 거의, 아니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현대의 박물관에 전시 및 시연되는 유물들은 현재의 방식으로 재구성된 것들이다. 그리고 유적들은 감빛 지대에 있는 '생명의 비석' 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봐야 한다. 기록 매체는 내부 구조 파손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어 고대인들의 기억에 관한 전승은 끊겼다고 봐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고대에 관한 지식은 구전을 통해 전래된 것일 따름.
  고대인들이 과오를 행하였고, 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도 좋다만, 어떻게 고대인들이 과오를 행하였고, 그로 인한 역사의 전개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아르데이스 성계이든, 여타 성계이든 행성계 사람들이 고대인들에 대한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에 대한 대화를 한 동안 이어가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카리나가 고대 도시 쪽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서 나에게 좋은 생각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려 하였다.
  "저 아래, 고대 도시로 내려가 보면 조금이나마 고대에 관한 지식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깊은 곳으로 안전히 내려갈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으려나."
  그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지하 2000 메테르 깊이 아래로 내려갈 안전한 방법은 전무하다시피한 상태이다. 내가 내려갔던 그 일대도 공간 전이를 통해 간 곳이며, 무나일 마을 서쪽의 우물 깊이는 대략 100 메테르 정도였다. 현 시점에서 행성계에서 마련 가능한 밧줄의 최대 길이는 1000 메테르는 고사하고, 500 메테르도 되지 못한다. 즉, 고대 도시로의 공간 전이를 할 수 있어여 내려갈 방법이 생길 텐데, 고대 도시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지표면' 보다 높은 곳으로의 공간 전이 장치를 마련했을 리는 없을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지하 깊은 곳의 고대 도시로 갈 수 있다면 고대 시대 그리고 고대인에 관한 지식을 어느 정도 확보는 할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어쩌면 그 고대 도시의 비밀 통로를 통해 '검은 섬' 이라 칭해지는 독기를 뿜어내는 섬으로의 진입 역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독기는 지표면에만 활성화되고 있다하니, 내부 진입을 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걱정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에 대한 대화를 이어간 이후, 카리나가 나에게 물었다.
  "그 검은 섬의 독기는 어떻게 생겨난 것이려나."
  "나도 그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사항이......."
  검은 섬의 독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에 관한 지식이 없었을 뿐더러, 그에 관한 이야기조차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나라고 해서 딱히 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니 고대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
  "아르사나, 여기에만 머무르고 있으려 하는 것은 아니잖아, 어서 할아버지와 함께 이 동굴을 나서야지."
  이후, 카리나가 먼저 떠나려 하면서 나에게 어서 가자고 청을 하였고, 그리하여 나도 그런 그를 따라 나서서, 동굴 건너편에서 쉬고 있었던 벤자드 노인의 곁에 이르렀다.

  "그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오더구나."
  나와 카리나가 고대 도시가 절벽 아래쪽의 지표면에 보이는 그 풍경 속에서 이어갔던 대화를 벤자드 노인 역시 듣고 있었던 모양으로 노인은 두 사람 간의 대화를 무척 흥미롭게 듣고 있었던 것 같아 보였다. 오르막길을 카리나가 먼저 오르고, 내가 그를 부축해 같이 오르려 하는 동안 그에게서 이전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고대인의 지식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였더라......."
  그 역시 고대인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모양이었으나, 당장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지 도중에 한 동안 말을 머뭇거리며 그 말을 잘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기어이 생각이 났는지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맞다! 마르코였지, 딘사르......."
  "설마, 그 조직에 속해있던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일까요."
  딘사르라고 하니, 곧바로 '그 조직' 을 상기하고 말았다, 그 일화라는 것이 딱히 그와 관련이 없었을 것이며, 사건을 직접 접하지도 않았을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는데, 그 사람이라면 오죽했을까. 그래서 그 조직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도 벤자드는 그런 나의 심기를 이해해 주려 하였다.
  "그렇지는 않아, 딘사르는 당시 예능인들이 그러하였듯이 이 분야, 저 분야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 바 있지. 물론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서였겠지만."
  그러면서 그는 처음에는 딘사르로부터 들은 그 지식에 관해 감탄을 한 바 있었으나, 나중에 알게 된 바로, 그가 알게 된 고대의 지식이라는 것은 실은 사람들 사이를 전전하고 있었던 소문에서 유래된 것이었다고 하며, 사람들 사이를 전전하는 소문이 지식이 되는 것은 당시의 예능인들 사이의 경향으로 자리잡은 바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 소문의 사실 여부는 현재까지도 불명인 것이, 고대에 관한 지식 자체가 없는 만큼, 고대에 관한 이야기 일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있을 리 만무했음이 그 사유이리라.
  산길을 오르는 동안에도 절벽 아래의 모습은 계속 보였고, 높은 곳에 이르러도 고대 도시의 모습은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다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이는 나와 카리나였고, 벤자드 노인은 그 모습을 잘 눈여겨 보지는 못했던 모양. 벤자드 노인의 오르막길 걸음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며 무언가 바닥에 짚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동굴 위 오르막길 한 곳에 누군가 놓아두고 간 듯해 보이는 낡은 철봉이 있어서 그 철봉을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녹이 슬대로 슬어 있어서 사람이 손으로 그냥 만지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기는 하였다-온전히 정화를 했다가는 망가질 테니-. 적어도 손에 녹이 묻지 않을 정도로 처리를 해 두기로 하였다.
  잠시 쉬자고 청을 하고서 나는 절벽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손에 든 철봉의 녹을 빛의 기운에서부터 생성되는 액체로 닦아내기 시작하였다. 녹이 슨 부분이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깊은 안쪽까지 녹이 스며든 탓에 이 녹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대략 녹을 닦아낸 이후에는 빛의 기운으로 막을 형성해 철봉의 표면을 감싸도록 하는 것으로써 처리를 마쳤다.
  '그래, 이 정도면 할아버지께서 만지실 수는 있겠지.'
  빛의 기운에 감싸이기는 했지만 어지간해서는 빛의 기운이 신체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벤자드 노인 그리고 카리나의 곁으로 돌아와서 노인에게 지팡이를 건네었다. 노인은 내가 두 손으로 건네는 지팡이를 받고서 다소 걱정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물었다.
  "이 지팡이는 다소 녹슨 물건이었을 텐데......."
  "만질 수는 있도록 처리는 대략 해 두었어요."
  이에 나는 바로 대략 처리는 해 두었으니, 만질 수는 있을 것이라 답을 하였고, 이후 벤자드 노인은 조심스레 두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철봉을 잡고 있다가 철봉을 잡고 있었을 손바닥을 한 동안 가만히 살펴보더니, 그 이후에도 계속 지팡이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껄끄러웠지만 그래도 다룰 수는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모양.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 걱정했다만 손에 녹이 묻지 않으니 다행이로구나, 다룰 수는 있어 보인다."
  그 지팡이에 대해 그렇게 말하고서 벤자드 노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걷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키, 그 반 이상은 되어보이는 그 길다란 철봉의 모습을 보며 그것에 의지하며 걸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모양. 이후, 우측 곁에 있으면서 그 노인과 동행하고 있던 나에게 카리나가 다가와서는 물었다.
  "절벽가에 있으면서 한 일이 그 철봉을 나름 수리해 보려 한 일이었구나."
  "그랬지." 이 물음에 나는 바로 그렇다는 의미의 답을 한 이후에 그에 이어 카리나에게 우연히 발견한 물건으로서 벤자드 노인에게는 유용할 것 같아 마련해 왔음을 밝혔다. 그리고서 카리나에게 본래는 어떤 사람이 동굴을 통해 산 위를 오르려 하다가 버려두고 간 물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철봉에 대해 이전에 추측했던 바를 밝혔을 때, 카리나가 그 철봉에 대한 물음을 나에게 건네려 하였다.
  "사고로 버려진 물건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섬뜩한 질문이었지만 그러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감정의 흔들림 없이 바로 답했다. 그리고서 그 대답의 근거를 바로 밝히니,
  "만약에 사고로 버려졌다면 이 근방에 흔적이 남았겠지."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할 사항이 하나 있었다면 그 당시, 내가 머무르고 있던 산은 붉은 바위의 산이고, 그 산의 바위 색은 꽤나 짙은 붉은색이라는 점이었다. 피와는 분명 다른 색이었겠지만 어두운 동굴 속에서 얼핏 보면 그 피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 무언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 그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벤자드 노인은 그에 대해 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대화를 이어가며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였고, 카리나도 그러하였지만 다행히도 문제는 그래서 없었다.
  오르막길은 정말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이후로 그 길의 대다수는 오르막길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 그래서 나도 그렇고, 카리나도 그렇고, 특히 벤자드는 많이 힘겨워하고 있었기에 꽤 자주 휴식을 취하면서 길을 올랐다. 새벽 일찍부터 출발했던 산행은 그래서 아침 늦은 시각 즈음에서야 평탄한 길목을 걷기 시작하면서 끝나게 되었으니, 그 길목 너머로 동굴 밖과 이어지는 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너머로 나아가면 그 탑으로 갈 수 있지요?"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일 게야."
  이후, 앞장서 나아가면서 카리나가 물음을 건네었고, 이 물음에 벤자드 노인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였다. 이후, 내가 철봉을 짚으며 발걸음을 옮겨가는 벤자드 노인과 함께 먼저 그 문을 지나고, 카리나가 그 뒤를 따라 나아가고 있었다.
  문을 통해 동굴을 나선 이후, 그 너머로 이어지는 산길 너머로 붉은 바위 산을 조각해서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나무의 모습이 보이고, 그 나무 위로 푸르스름한 기운을 띠는 새하얀 빛이 무지개색 빛을 발하고 있으면서 주변 일대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 나무의 빛이 이 일대에 있어서 태양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중에 오르막길이 있기는 하였으나,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편한 길목이었음은 틀림 없었다. 낮은 오르막길 정도는 벤자드 노인도 지팡이를 짚어가며 나름 가볍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산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앞장서 나아가던 카리나가 뒤따르던 벤자드 노인에게 물었다.
  "다시 예능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답을 하고서 벤자드 노인은 실제로 자신은 생애에 걸쳐 여러 차례 과거의 예능인과도 같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고, 그래서 한 때는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예능인으로서의 삶을 그리워하며 그 삶으로 돌아가려 시도를 한 바 있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한 자신의 실력은 그야말로 퇴화해 있었다, 나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연주는 이제 금사 지대의 거리 공연단 수준을 훨씬 밑돌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일의 당사자였던 이들과 같은 세대였던 내가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느냐면 딱히 그러하지는 않았다네, 오히려 나를 알아 보았던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기도 했었지,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어쩌다가 겨우 허락을 받아 할 수 있었던 거리 공연에서 한 때 나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사람을 만난 일이 있었다는 것이지."
  벤자드는 자신이 더 이상 예능인으로서 살 수 없었음에 대해, 더 이상 사람들을 음악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이가 되지 못하였음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예능인으로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던 것. 나무의 바로 앞에 이를 즈음, 그는 그 나무의 빛을 바라보려 하면서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한 때는 마르코가 참 원망스러웠어, 그 녀석으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고 생각해 버렸거든. 그런 일만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 늙고 나서는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더 이상 그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움과 원망이 한이 되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고. 그렇게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을 하고서 그는 산에서의 일을 마치고 나면 집으로 같이 가자고 권하는 말을 건네었다.
  "집에 가면 내가 소지한 원판들을 보여주도록 하마, 축음기도 갖고 있으니, 이를 통해 원판에 수록된 음악도 들려주지."

  이렇게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나의 발걸음은 붉은 바위의 산, 그 산봉우리들 중 하나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 나무에 도달하고 있었다. 나무에 도달하자마자 나는 그 바로 앞에 자리잡은, 문양이 새겨진 원반의 모습을 보고 바로 그 원반을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이전의 가마일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던 원반은 풀밭에 의해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 위였던지라 이번 원반은 그 곳에 비해서는 훨씬 잘 보였던 것.
  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원반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그 근처의 붉은 바위에 앉아서 우선 레테사로부터 받아서 가마일 산 정상을 떠난 이래로 한 동안 치마 주머니에 넣어두기만 했던 그 작은 상자를 꺼냈다. 표면을 금실로 수놓는 것으로써 꾸며낸 그 상자를 열고서 나는 그 안에 들어있던 은화 크기만한 원반을 꺼낸 이후에 상자는 다시 치마 왼쪽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그 작은 원반의 1/8 크기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에 그려진 작은 문양이 새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마일 산에서 처음 빛을 받았을 때처럼.
  은화와 거의 같은 크기를 가졌을 그 원반을 손에 쥐려 할 즈음, 내가 앉은 그 자리의 뒤쪽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리나의 목소리였다. 카리나는 무언가를 손에 만지작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나를 보며 그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
  "아르사나,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은 뭐니? 은화 같은데?"
  "레테사가 갖고 있었던 8 개의 문양이 새겨진 원반이야, 이 원반에는 8 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나무나 탑의 빛을 받을 때마다 원반의 그 세계에 대응되는 문양이 그 빛을 얻게 되는 모양인가 봐."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우선 그 원반이 어떠한 물건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해 주는 것으로써 답을 하고서, 그에 이어 이번 여행에 있어서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히려 하기도 하였다.
  "이 8 개의 문양 모두가 빛을 얻으면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대, 몇 번이고 부활을 거듭해 사람들에게 패악을 가하려 하는 포헤 느와흐를 완전히 사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그 힘을 통해 얻어내려 하고 있어. 그러면서 세계를 하나씩 돌며 그 세계의 탑 혹은 나무의 빛을 찾으려 하는 것이지."
  "네가 요청한 바를 이루어줄 수 있는 물건으로서, 레테사가 너에게 건넨 물건이라는 것이지?"
  "그렇지." 이후, 카리나는 그 물건이 어떠한 물건인지 대략 알아차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질문을 하였고, 이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의미의 답을 하였다. 이후, 카리나는 나의 바로 좌측 근방으로 다가가 뒷짐을 지고, 허리를 굽히면서 내가 왼손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던 그 은제 원반으로 유심히 시선을 향하려 하다가,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나무와 원반의 모습을 교차로 보려 하였고, 그 이후에 다시 나를 보려 하면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저 붉은 원반 위에 올라서야 나무의 빛을 은제 원반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카리나 역시 레테사나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소르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 혹은 탑 앞에 있는 커다란 원반 위에 그 작은 은제 원반을 손바닥에 올린 채 올라서면 커다란 원반의 마력이 깨어나 그 마력을 통해 나무 혹은 탑 위에서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빛 앞에 이르게 된다는 것까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내가 해 봐도 돼?" 이후, 카리나는 나에게 자신이 그 일을 해 보겠다고 요청을 했다.
  은제 원반에 빛을 받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 이가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역할을 맡는 이가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부터 없었으니. 그래서 카리나의 해 보고 싶다는 말에 혹시나 싶은 생각이 신경이 쓰이기는 했어도 나쁜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에 손바닥에 들고 있던 그 은제 원반을 카리나에게 넘기려 하면서 답했다.
  "좋아." 그러자 카리나는 내가 건네준 원반을 왼손으로 마치 동전을 받듯이 받고나서 이를 조심스럽게 들며 바로 앞에 보이는 나무를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저 은제 보구에 관해 생각난 바가 있다만, 혹시 그 물건이 아닌가."
  은제 원반을 건네준 후, 원반을 향해 다가가려 하는 카리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그 때, 벤자드 노인이 나의 우측으로 다가오면서 말을 건네려 하였다, 그는 나와 카리나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고 있었고, 그러면서 은제 원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신이 알게 되었을 어떤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하였을 것이다.
  "어떤 물건인가요."
  "태양의 성전이라 칭해지는 신전의 봉인된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말함이다."
  그리고서 벤자드 노인은 자신이 본 어떤 책의 삽화에서는 태양의 성전이라 칭해진 신전의 문을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자가 열기 위한 열쇠로서, 동화의 모습을 띠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음을 밝히고서 실제 동화는 아닐 테고, 은화나 금화의 모습일 텐데, 그와 비슷한 모습을 나와 카리나를 통해 보게 된 그 은화처럼 생긴 보구가 혹시 그 열쇠에 해당되는 물건이 아니냐고 나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쎄요...... 금사 지대의 태양 신전을 말함이라면, 금사 지대의 고문명은 의외로 마력이나 신비로운 힘과는 상관 없는 바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아마도 그 금화 혹은 은화처럼 생긴 열쇠도 홈에 그 열쇠를 맞춰서 돌리는 형식으로 문을 열었을 것이고,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괜찮겠지요."
  태양을 신으로 모시며 살았던 나라라지만 의외로 금사 지대의 고문명을 이루었던 민족은 신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옛 문명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마력을 비롯한 신비의 힘을 가지지 않았으니, 마력에 의지하는 장치를 설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설령 신을 믿고, 그들의 신비로운 힘을 믿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그 은제 원반에 새겨진 모든 문장들이 빛을 얻게 되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지만 신전의 열쇠 역할을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가. 내가 알게 된 바는 사실과는 많이 다른 셈이구먼. 흐음....... 그렇다면, 저 은제 보구는 내가 아는 바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활용되지 않겠나."
  "잘 모르겠지만, 그러하리라고 생각해요."
  이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그 때, 맑은 느낌의 소리가 들려왔고, 이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들고 카리나가 위치하고 있을 곳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카리나가 은제 원반을 들고 떠올라서 나무 위에 자리잡은 푸르스름한 빛으로부터 새하얀 빛이 은제 원반에 이르도록 하는 광경이 눈앞에 보이려 하고 있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곳에서 케이프와 머리카락이 빛에서부터 불어나오는 기운이 바람을 일으켜, 그로 인해 뒤쪽 방향을 향해 깃발같이 움직이는 그 모습은 여태까지 카리나를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카리나가 공중 한 곳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은으로 만들어진 보구에서부터 빛을 받고 있는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래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레테사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딱히 별 생각이 없었을 것 같아 보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후, 나와 벤자드가 가만히 그 모습을 한 동안 바라보고 있을 그 때, 빛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며 은제 원반을 들고 있던 카리나의 머리카락과 케이프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며 힘이 사라진 원반 쪽으로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동안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는 나를 향해 뛰어오며 그는 다시 은제 원반을 바위에 앉아있던 나에게 건네었다. 처음 빛을 받았던 그 문양 옆에 보이는 산 모양의 문양이 빛을 얻어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은제 원반을 건네받는 나의 눈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나무, 탑을 방문해 빛을 받는 의식을 행하려 하는가 보구먼."
  "그렇지요." 이후, 벤자드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을 한 이후에 그로부터 다시 은제 원반을 받아서 그것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상자를 꺼내, 그 원반을 다시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상자를 다시 치마 주머니 안에 넣어두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즈음, 벤자드가 카리나에게 제안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의 일을 마쳤으니, 이제 내려가 봐야 하지 않겠나. 동굴을 통하지 않고 마을로 갈 수 있는 산길이 있다네, 그 안내는 내가 직접 하도록 하지."
  사실 나는 산 위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붉은 바위 나무가 위치한 그 일대 건너편으로 보이는 감빛을 띠는 하늘 아래로 넓게 자리잡은, 붉은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지형 사이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주변의 어둠을 비추는 빛의 제단들의 모습이 어울리는 풍경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카리나는 벤자드를 따라 내려가고 싶어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직접 자신의 생각을 밝히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카리나를 보며 건네는 제안에 바로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그러하리라고 추측을 한 바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사나, 여기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어?"
  라고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생각한 바대로 카리나는 벤자드를 따라 내려갈 생각이 있었던 모양. 이런 그의 물음에 나는 바로 솔직히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있음을 밝혔고, 이에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구나." 라고 답을 한 이후에 그에 이어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
  "아르사나라면 분명 이 절경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여행 등을 하면서 동행한 일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카리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잘 기억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미련이 없지는 않아서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 였던 것 같다고 나에 대한 언급을 한 이후에, 봉우리 부근에 남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자신도 따르겠음을 밝히면서 벤자드 노인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에 벤자드 노인은 "그렇구먼." 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을 한 이후에 자신은 높은 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는 않다고 이유를 우선 밝히고서 산길을 내려가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서 그는 잠시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을 요청하면서 나무를 등지는, 하지만 동굴과 이어지는 길목과는 다른 방향-동굴 입구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왼쪽 앞-에 위치한 산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붉은 바위의 산에 자리잡은 산길이 하나로 모이는 곳인 만큼, 산봉우리와 이어진 산길은 여러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벤자드 노인이 향하고 있던 산길은 그의 발언에 의하면 산의 정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라 하며, 이 길목 아래로도 여러 갈림길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길을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일환으로 난쟁이 족 사람들이 갈림길마다 표지판을 세워두어 안전히 특정 위치로 갈 수 있도록 해 두었으니, 이를 통해 모두 아로테스베르크(Arotesberg) 일대로 내려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고 말했다.
  "너희들에 관해 잘 아는 바가 없기는 하다만, 너희들 정도라면 적어도 산길에 있는 동안에는 늘 무사하리라 믿는다. 그러면, 먼저 내려가 있도록 하마. 그 이후에 만나고 싶다면 카즈 라(Kaz Ra) 역 바로 앞으로 오도록 해라, 혹시라도 나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에는 너희들에게 집 구경도 시켜주마."
  이후, 혹시 다시 만나고 싶다면 일행이 잠든 곳이기도 했던 카즈 라 역 바로 앞으로 오도록 할 것을 부탁하는 말을 남기고서 먼저 산길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잘 내려가고 있는 듯해 보이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노인이었던 관계로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산길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내가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할아버지, 산길을 내려갈 때에는 사고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괜찮다, 이 산길, 한 두 번 걸은 것도 아니라네."
  조심해 줄 것에 대한 당부에 벤자드 노인은 붉은 바위의 산길은 틈나는 대로 자주 걸어온 길이고, 완만한 비탈길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산길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고 있지 않음을 알리면서 바로 내려가려 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후, 문득 생각난 바가 있었는지 그가 다시 일행이 바라보고 있는 산꼭대기 부근으로 다시 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는 나와 카리나가 서 있던 바로 그 앞에 당도하면서 한 가지 알리고자 하는 바가 있음을 말하려 하였다.
  "아가씨들에게 한 가지 알리고자 하는 바가 있다네, 들어주지 않겠나."
  그가 알리고자 한 바는 이러하였다, 붉은 바위의 산, 남쪽 산길의 아로테스 방향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나아가다 보면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볼 수 있으며, 그 길의 끝 너머에 작은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 사당은 난쟁이 족의 옛 유적으로서 아로테스베르크의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간이 신전으로서 존재한 곳이며, 사당 안쪽의 내벽에는 난쟁이 족의 선조들인 바위 민족의 모습을 형상화한 석상들과 더불어 세계의 구원자인 빛의 정령을 형상화한 부조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석상들과 부조가 참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그 이야기만 들었을 때에는 사당 방문에 대해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산을 구성하고 있었을 붉은 바위를 깎아 만들었을 석상과 부조의 모습을 직접 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석상의 모습을 보기 위해 굳이 외딴 산길을 지나, 사당을 들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음이 그 이유였다.
  그런 나를 흥미롭게 한 대목이 하나 있었으니, 그 신전의 지하를 향하는 문이 폐쇄되어 있으며, 그 문을 통해 들를 수 있는 신전 지하 구역의 통로는 금지된 구역으로 알려진 붉은 바위의 산 아래의 고대 도시를 향하는 비밀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흥미를 느끼기만 했을 뿐, 앞으로 할 일이 있었고, 이를 위해 붉은 바위의 산을 지나, 감빛 지대로 가야 했기에 사당을 들를 생각 자체는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이 되면 언젠가 들르도록 하지요, 지금은 할 일이 있어서......."
  라고 답을 하자, 노인은 그런 나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다시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와 카리나에게 몇 마디 말을 남겼다.
  "그래, 평상시에는 그 지하의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이를 너희들이 힘으로 밀어서 여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게다. 허나, 언젠가 고대 도시를 누군가가 방문할 필요가 생긴다면, 너희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러하다면 그런 너희들을 위해 난쟁이 족 사람들이 협력을 해 줄 수도 있겠지.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겠느냐."

  "그 신전에 무언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여."
  이후, 붉은 바위의 산 정상의 나무 부근에 위치한 바위로 돌아갔을 무렵, 바위에 앉아있던 카리나가 그 바로 좌측 곁에 서 있으면서 나무와 그 너머로 펼쳐진 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그에 대한 언급을 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서 그는 그 동안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산의 풍경을 대신하여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려 하면서 밝게 표정을 지으려 하며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께서는 한 번 들러보라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굳이 그 곳에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어."
  이에 나는 동감한다는 의사를 드러내고서 그에 이어, 화제를 바꾸는 말로써 근래에 어디에 갔었는지에 대해 묻는 말을 건네려 하였다. 그러자 카리나는 다시 나무가 자리잡은 그 너머로 펼쳐진 산악 지대와 산악 지대 곳곳에 마치 바위 지대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꽃처럼 위치하는 빛의 제단이 빛을 발하는 모습을 다시 바라보려 하면서 답하였다.
  "금사 지대에 갔었어, 세니아와 같이."
  가을 축제 구경을 위해 갔던 곳으로서, 그 곳에서 유난한 인연을 가진 적이 있어서 앞으로도 줄곧 기억하게 될 일 같다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인연이었는데?"
  "금빛 날개를 가진 천사였어, 처음에는 날개가 보이지 않아서 천사인 줄은 몰랐었는데,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즈음, 자신도 돌아갈 곳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날개를 펼치고, 머리 위의 고리를 보여서, 이를 통해 알 수 있었지."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천사의 이름은 '나이티아나(Naetiana)'. 은하계 중심에 위치한 궁수의 전당, 그 서부의 구역에 자리잡은 천사의 전당에 거주하는 이로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모종의 일로 인해 금사 지대에 이르렀다가, 그 곳에서 마을 축제 구경을 하면서 곳곳을 전전하는 도중에 카리나 등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나에 대해 혹시 알린 바 있어?"
  그에 대해서는 카리나는 달리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소르나에게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임은 분명했을 테니, 어둠을 관찰하는 자가 내려왔음은 행성계에 있어서 불길한 징조가 있으며, 이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바이기에 이는 소르나에게 반드시 알려서 그를 비롯한 천문대 사람들이라도 앞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를 그가 느꼈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 천사는 같이 있는 동안 너와 어떻게 지냈니?"
  "최근의 일이라 많이 기억나기는 해. 첫 인상은 무척 좋았어, 무척 발랄해 보였고, 여기저기 호기심도 참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그는 편하게 대할 수 있을 줄 알고, 도움을 청하러 간 거야, 어디 갈 곳이 생겼는데, 골목길의 복잡한 길목을 거쳐가야 할 필요가 있어서......."
  "현지인인 줄 알고, 도움을 청했었구나?"
  "그랬었지." 이후, 그의 말에 따르면 나이티아나는 당황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그 일대에 대한 정보를 찾아가면서까지 자신과 세니아가 찾고자 하는 곳을 찾아주었다고 한다. 다만, 길 가는 도중에 자신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 탓인지 온갖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길을 가고는 했었다고.
  "짜증이 나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속으로 말하지 싶기는 했었어. 그런데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도 길을 잘 찾아주려 하다가, 내가 가려 하였던 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자신이 인도한 곳이 맞는지 확인 여부도 해 주었고, 갈 때에는 길 찾느라 수고했다고 인사말도 해 주더라."
  이후, 카리나는 나이티아나에게 잘 모르면 모른다고 답을 하면 될 것을, 굳이 짜증까지 겪으면서 길을 알려주려 하였는가에 대해 물었고, 이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한다.
  "암만 그래도 저에게 다가오는 요청에 모른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어서 그랬어요."

  "요청에 대한 거부 자체를 잘 못하는 사람이었나 보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사람이기는 했다. 도움을 바라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응하고 나면 일을 수행하면서 불만이나 짜증을 있는대로 가하면서도 결국에는 당사자가 원하는 것은 다 해 주는 사람, 나이티아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카리나에게 그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그러자 카리나는 즉시 그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꽤나 밝게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보였던 모습은 네가 말했던 그대로였던 것 같아."

  이후에는 정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여행자 입장으로서 축제 구경이라는 같은 목적도 갖고 있다보니 서로 통하는 바가 있으리라 여기면서 세니아의 동의 하에 그는 나이티아나와 같이 축제 구경을 하게 되었다고. 그 이후로는 자신의 첫 인상대로 쾌활한 일면을 동행하는 동안 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호기심도 참 많아서 궁금하다고 여기는 곳은 반드시 가 보려 하기도 하였다고.
  "그 때에는 왜 그랬었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 같은데."
  "그 무렵에는 그 역시 골목길을 지나며 길을 찾으려 하였고, 빨리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여서 그랬대. 그랬는데 도중에 자신이 가는 바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길을 물었고, 방향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나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 동행하는 시간만큼 빨리 가려는 곳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으니까 답답해졌다고 말하더라고."
  "그 사람이 가는대로 가려 하였던 것은 그 때의 일로 미안해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으려나?"
  "그렇지."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답하였다. 그리고서 나이티아나가 자신이 천사임을 알린 이후로 자신을 놀라게 한 일이 하나 있었음을 밝히니, 그가 소르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해안 지대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찻집에서 그와 마주하게 되었고, 찻집에서 서로 대화를 하는 도중에 그로부터 이런저런 요청도 듣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그간 들은 바가 없었기에 그 소식을 들으며 나는 그가 해안 지대를 지나, 용암 지대 부근의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소르나가 그 천사를 만나서 요청한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알았으면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어서 바로 카리나에게 그에 대해 물으려 하였으나, 카리나는 그에 대해 괜찮은 답을 주거나 하지는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면,
  "소르나가 그에게 요청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대, 때가 되지 않는 한, 자신이 요청한 바를 이행하면서 그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어."
  "그 요청을 이행하느라고 소르나가 부탁한 바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것이로구나."
  "그런 셈이지."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서 미소를 띠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에게 그를 만나고 싶은지, 그 여부를 물으려 하였다.
  "응, 여행에 있어서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
  그리고서 또 하나의 이유를 밝히니, 소르나의 요청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나를 비롯한 천문대 사람들이나 행성의 사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으며, 그와 더불어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되고 나면 내가 행하는 여행에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그 이후로 잠시 동안은 카리나와 더불어 산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명하기 이를데 없는 하늘과 붉게 물든 바위산 사이의 상공 일대로 한 무리의 새들이 하나의 큰 대형을 이루고 있으면서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감빛 지대를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산의 모습을 응시하는 동안에 나의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역에 관해 특별한 소식 같은 것은 있었어?"
  "아니, 유난할만한 것은." 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즈음, 카리나로부터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 소리를 듣자마자 그에 대해 즉답을 하였다. 그 때를 같이 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 바람은 고요하게 소리를 내면서 산봉우리 일대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 바람이 산길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두 사람에게 서늘한 느낌을 바로 전해주고 있었다.
  "아르사나, 이제 내려갈까."
  "그래, 내려가자." 이후, 카리나의 내려가자는 제안에 바로 응하면서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벤자드 노인이 나아갔던 그 산길 부근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서 벤자드 노인이 내려간대로 산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을까지는 꽤 길을 걸어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험난한 길목이 있거나 하지는 않음이 위안이었다.

  이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여러 길목을 지나쳐 갔고, 도중에 빛의 제단을 지나칠 때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벤자드 노인이 말한 대로 갈림길을 마주할 때가 있어서 그 때마다 이정표를 참고로 했다. 길을 헤매는 사람들이 한 동안 많았었는지 갈림길마다 자리잡고 있던 이정표들은 아로테스 마을로 내려가는 방향을 반드시 알려주고는 했다.
  갈림길 중에는 샛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길목이 있었으며, 그 길목에는 이정표가 없었다. 왜 이정표가 없나하는 생각에 잠시 그 샛길 너머를 살펴보다가 그 샛길 너머로 계속 길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서 바로 돌아섰다. 그 때, 그런 나를 따라 오고 있던 카리나가 돌아서는 나를 보더니 물었다.
  "그 샛길로 나아가려 했었구나, 아까 전에는 굳이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잖아, 저 길 너머는."
  "얼마나 길게 이어지는지 보려 했었지."
  이 물음에 나는 바로 이렇게 답을 하고서 다시 갈림길목으로 돌아가서 곧바로 이전의 내려가는 길목을 따라 계속 내려가려 하였다. 이후로는 갈림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이후로는 계속 내려가기만 하면 아로테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바로 가질 수 있었다.

  길목은 저지대로 이어져 갔고, 그 저지대 너머의 절벽가를 따라 이어진 나무 다리를 지나면서 산길을 떠나 아로테스로 추정되는 마을의 입구에 이를 수 있었다. 일행이 들어온 방향은 북쪽으로서, 나와 카리나는 마을의 북쪽 부근과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내려온 것이었다.
  마을에 들어섰을 무렵은 짐작컨대 8 시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여전히 고요했으며, 길 위로는 사람 하나 지나가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을 중심가 부근에서처럼 북쪽 길목 부근에도 집집마다 검은 깃발이 게양되어 있었다. 지난 사고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간혹 마을의 남북 방향을 따라 나 있는 길을 지나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는 하였으나, 사람 한 두 명 길을 지난다고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지거나 할 리는 없었다.
  "벤자드 할아버지께서는 카즈 라 역에 머무르겠다고 말씀하셨었지?"
  "응, 카즈 라 역에나 가려고?"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이제 달리 갈 곳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으니, 이 물음에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말없이 그저 길을 걷고 있는 동안 카리나로부터 제안의 말이 들려왔다, 카즈 라 역에서 벤자드 노인과의 만남을 마치고서 바로 감빛 지대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런저런 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인데, 이왕이면 집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생각에 바로 동의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집을 둘러보는 일 정도는 해 보자는 생각을 드러낸 것. 그에 이어 바로 그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
  "혹시 모르잖아,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얻어갈 수 있을지."
  이렇게 설득을 하니, 카리나는 그런 나의 뜻에 바로 답을 하지는 않았으나, 딱히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써 나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카즈 라 역으로 나아가려 할 즈음, 카리나로부터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
  "감빛 지대에서는 무언가 흥겨울만한 일이 있으려나."
  "근래에는 그에 관한 소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못하다 보니, 잘 모르겠네. 아무튼, 근래의 이 무렵에는 무언가 행사가 있거나 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아."
  이에 나는 근래의 일을 바탕으로써 행사 등이 있을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그에게 해 주었다.

  마을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았기에 카즈 라 역에 도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전에 헤어졌던 벤자드 노인과의 만남 역시 금방 이루어졌다.
  역으로 오자마자 역무원으로부터 금방 열차가 들어오게 되니, 빨리 건너오라는 말을 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열차 도착 시각이 8 시 12 분이었고, 당시 시각이 8 시 15 분이었으니, 조금만 늦었으면 마을의 길 한 곳에 열차가 자리잡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열차가 들어올 때라서 그러한지, 역사에는 여러 난쟁이 족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벤자드 노인은 그들 사이의 한 가운데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와 카리나를 발견했는지 역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 들어오던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였다.
  "와 주었구먼, 아가씨들.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만."
  벤자드 노인의 기대하지는 않았었다는 말에 바로 뜨끔하는 모습을 보이던 카리나였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급 당황의 여파인지 말을 잇지 못하던 그를 보며 잠시 웃다가 바로 벤자드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이런저런 인연이 생겼는데, 집에 한 번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것이라 그를 설득했음을 밝혔다.
  달리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만, 무척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서 그는 바로 뒷문-그 문이 카즈 라 역의 정문이었다- 방향으로 발걸음을 잠시 옮기려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따라오시게나." 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고서 다시 앞으로 시선을 향해, 그 방향을 따라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달리 말하지 않고, 바로 노인을 따라 기차역 너머의 마을 거리에 이르게 되었다. 한산한 분위기의 마을 거리가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용한 마을 거리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거리의 우측 한 곳에서는 아이들이 사용할만한 도구들이 진열된 가게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가게의 앞에는 여러 작은 기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나일이나 가마일 그리고 감빛 지대에서는 보지 않았던 것들인지라 그 모습만큼은 확실히 생소했으며, 이는 카리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가씨들은 이 가게의 모습이 낯설 게야. 이 곳에 처음 왔던 나도 그랬었지."
  아로테스를 비롯한 난쟁이 족 마을에는 하나씩 소품들의 판매를 목적으로 한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한 소품들부터 각종 사무용 도구들까지 다양한 물품들을 취급하고 있으며, 가게 앞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도구들도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가게 앞에 이르다가 발견했던 작은 기계들이 바로 그 놀이 도구들이었던 모양.
  작은 기계들 중에는 공을 던질 수 있는 기계도 있고, 돌 받침대가 놓인 기계도 있었다. 그 기계 우측 곁에는 커다란 망치가 놓여 있었으니, 그 망치로 받침대를 치라고 있었던 모양. 우측에는 작은 망치가 놓인 기계가 하나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기계의 상단 표면은 몇 개의 구멍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구멍 안에는 나무 기둥을 깎아 만든 듯해 보이는 인형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그 구멍에서 인형이 튀어나오고, 이를 망치로 때리는 것이 놀이의 목적이었으라, 그 모습을 보며 바로 추측할 수 있었다.
  "아가씨, 그 놀이 도구에 관심이 있나?"
  "아니, 어떤 물건인지 한 번 그 모습을 보려고요."
  그 무렵, 뒤쪽에서 벤자드 노인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기계를 유심히 보고 있던 나를 두고, 그 기계에 관심이 있으리라 여기었던 모양으로 그러면서 나의 우측 근방으로 다가와서는 물음을 건네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게는 그렇게 보이기는 했다만, 실은 처음 보는 기계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 하였던 것. 이에 벤자드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랬구먼." 이라고 나의 말에 대한 화답을 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물었다.
  "어떤 기계인지 짐작은 할 수 있겠나."
  구멍과 그 안쪽, 그리고 망치를 보며 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있었고, 그에 이어 내가 짐작한 바대로 어떻게 쓰일 것인지에 대해 짐작한 바를 알렸다. 이에 벤자드 노인은 바로 바로 맞혔다고 답을 하고서 망치로 구멍 밖으로 나오려 하는 두더지들을 주어진 시간 내로 가능한 많이 때리면 되는 규칙을 가진 놀이 도구임을 밝혔다, 놀이가 시작되면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며, 그 소리가 들리는 동안 두더지 인형이 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 번 해 보겠나, 혹은 내가 해 볼 수도 있다네."
  "할아버지께서는 이 놀이를 즐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때,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카리나가 벤자드 노인의 바로 우측 근처로 다가와서 그 놀이를 즐겨 보았는지, 그 여부를 물었고, 이에 벤자드는 한 때는 틈만 나면 즐겨본 적도 있었다고 말하고서, 그 때에도 나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기분 좋게 목소리를 내며 말한 이후에 기계 앞으로 다가가서 망치를 오른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왼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그것을 기계의 하단 부분에 자리잡은 작은 틈 안에 그것을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흥겨운 노래 소리가 들리면서 구멍 안에 자리잡고 있던 나무 기둥으로 만든 두더지의 머리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인형 하나가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노인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노인은 손에 들고 있던 망치로 두더지의 머리를 바로 세게 내리쳤다.
  노래 소리가 들리는 동안 계속 나무 인형들이 튀어나왔고, 그 때마다 노인은 망치로 튀어나온 인형을 바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팔의 움직임이 상당히 빨랐기에, 노인의 그 손놀림과 망치 공격은 적당히 튀어나오는 나무 인형들을 모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 인형들은 빨리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2 - 3 개체들이 동시에 튀어나오면서 노인의 그 손놀림이 그 움직임을 따라잡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나무 인형 때린 회수가 나름 상당한 편이지 않나 싶었으며, 그래서 그 회수를 세어보았다는 카리나에게 몇 번인지를 묻자 바로 답을 하였다.
  "68 번 그 머리를 때리시더라."
  "자네들도 한 번 해 보겠나, 50 회 미만이면 벌칙이 가해진다."
  이후, 노래 소리가 그쳤을 때, 벤자드는 작동을 멈춘 기계의 표면 위에 망치를 내려놓은 이후에 나와 카리나에게 바로 그 놀이를 즐겨볼 것을 권하였고, 그와 더불어 놀이를 즐길 시에 때린 회수가 50 회 이하이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바로 경고의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카리나 역시 그 말이 농담일 줄은 바로 알아차리고 있어서 별로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러할 줄 알았다는 듯이 벤자드는 바로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그런 나와 카리나에게 말했다.
  "물론 농담일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놀이 기구가 그러할 리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서 한 번 연습해 두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 이후에 정말 50 회 미만으로 때리는 것에 대한 벌칙을 가하는 놀이 도구가 있을 줄 누가 알겠느냐고, 그에 이어 말을 건네려 하였다.
  "내가 먼저 해 볼게. 저희들이 한 번씩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주화는 갖고 계시지요?"
  "물론이라네." 이에 카리나가 먼저 해 보겠음을 밝히고서 그에 이어, 기계 앞으로 다가가서 망치를 들었다. 그 때, 그의 좌측 곁으로 다가가서 벤자드 노인이 주머니에서 꺼낸 은색 주화 하나를 꺼내어, 이전의 그 틈 안으로 들여 보냈다. 그러자마자 이전 때처럼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며 기계 한 가운데의 나무 인형이 튀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카리나의 두더지 모양 나무 인형을 때린 회수는 89 회에 이르렀다. 그에 이어, 나도 해 보았으며, 때린 회수는 91 회였다. 나도 그렇고, 카리나 역시 놀이 기구를 이용하면서 좋은 성과를 낸 편이었고-만점이 100 회였다-, 그 성과를 처음 즐기면서 냈던지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벤자드 노인은 나의 성과를 알아보자마자 바로 나와 카리나에 대한 감탄의 의사를 드러내며 밝게 목소리를 내었다.
  "참 잘들 하는구먼, 아가씨들. 이 동네에서는 이런 성과를 내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서 그는 마을에서 가장 잘한 사람의 성과가 때린 회수 79 회였음을 밝힌 이후에 80 회를 늘 넘기지 못해, 그에 대한 아까움을 기구를 이용할 때마다 가졌던 이임을 밝히고 있었다. 그 때, 가게 밖으로 난쟁이 족 중년 남성으로서 하얀 셔츠와 바지 차림을 한 이가 밖으로 나오고서 벤자드 노인에게 말을 걸려 하였다, 가게 안에 머무르다가 나오는 모습을 보며, 그가 그 가게의 주인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할아범, 두더지 잡기 기구 이용하는 모습은 간만에 보는구려!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요?"
  벤자드 노인이 기구를 이용한지 오래되었음은 중년 남성도 알고 있었던 모양으로 다시는 이용하지 않을 줄만 알았던 기구의 이용에 대해 무척 의아해하고 있었던 모양. 그런 그의 물음에 벤자드 노인은 바로 외지에서 온 이들과 동행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그들에게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놀이 기구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음이 그 이유임을 밝히고 있었다.
  "외지에서 온 아가씨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이런 물건들이 있음을 알려주려고 일부러 한 본 즐겨본 것일세, 그리고서 그 아가씨들도 한 번씩 해 보라 하였고 말이야."
  "그래서, 저 아가씨들도 해 봤답디까?"
  "물론, 열심히 잘 즐기더구나." 이에 벤자드 노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답을 하였다, 외지인에게 마을의 놀이 수단을 알린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꼈다고. 그리고서 노인은 가게 주인으로 추정되는 그 난쟁이 족 중년 남성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가게 사정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래, 가게 사정은 어떠한가? 요즘 괜찮나?"
  "언제나 그럭저럭입죠, 어르신. 딱히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만."
  그렇게 질문에 유쾌하게 목소리를 내어 답을 하고서, 중년 남성은 벤자드 노인에게 이제 집으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고, 이에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하다고 답을 한 이후에,
  "내가 달리 갈 곳이 어디 있겠나, 이 주변의 산길이 아니면 집이나 그 주변 일대이겠지."
  라는 말을 건넨 이후에 혹시 갈 만한 곳이 있다면 알려줄 것을 당부하였다. 하지만 당장에 딱히 생각나는 바가 없었는지 중년 남성은 그저 가만히 그의 모습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아저씨께서 이 가게의 주인이시지요?"
  그 때, 카리나가 그 중년 남성을 향해 다가가서 그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고, 이에 중년 남성은 바로 맞다고 답을 한 이후에 그 카리나 그리고 나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나를 비롯한 '외지인' 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가 있음을 밝히고서, 잠시 벤자드 노인의 모습을 보더니, 카리나에게 바로 물었다.
  "혹시, 저 할아범과 반드시 같이 가야만 할 필요가 있나?"
  "아니오, 반드시 같이 갈 필요는 없을 거예요, 산에서 동행할 때에도 할아버지께서 먼저 내려가시고, 저희들은 산봉우리에 잠시 머무른 적도 있어서......."
  "그래? 잘 됐구먼, 가게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겠나, 나와 같이?"
  이에 카리나는 벤자드의 집에 들르는 일이 더 우선되는 일임을 밝히고서,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테니, 만남을 가진 이후에 바로 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그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써 말을 건네었다. 이에 중년 남성은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알았다고 답을 하고서, 이렇게 당부를 하였다.
  "할아범 집을 들르고 나면 반드시 와 주게, 자네들이 꼭 알아야 하지 않나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말야."
  당부를 하면서 그는 나와 카리나가 반드시 알아야 할 듯한 사항이 있음을 밝히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카리나와 함께 벤자드 노인을 따라 그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예상한 바와 달리, 그의 집은 그 상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게 주인과 벤자드 노인이 서로 친했음은 그에 기인했을 것으로, 서로 이웃에 있다보니, 만날 기회라든지, 대화를 주고 받을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상점의 바로 옆집인 벤자드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집의 외관은 초라했으나, 현관문이 열린 그 너머는 온갖 책들이 자리잡은 거대한 책장 그리고 이전에 보았던 음악이 수록된 판-음반-들이 담겼다는 종이 상자들이 수록된 책장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거처를 겸한 그가 소장한 물품 보관소 역할도 하는 곳이었던 것.
  "...... 그 동안 모아두었던 옛 예능인들과 철학자들이 남겼던 음반들 및 그들에 의해 쓰여진 저서들이라네, 이제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었을 이들...... 원래 소유했던 것들도 있고, 근래에 다시 구한 것들도 있지. 다시 구한 것들은 입수 과정 자체가 험난했다네."
  욕실을 제외하면 하나의 공간만 있던 그의 집 안으로 들어서서 수많은 책장들과 서랍장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던 때에 나의 우측 곁에 머무르고 있던 벤자드 노인이 그 수많은 음반들 그리고 저서들을 소개하는 말을 건네었다. 그 때, 앞장서 있으면서 공간 한 곳에 자리잡은 책상 서랍의 서랍장을 열어보던 카리나가 노인을 향해 돌아서서는 물었다.
  "혹시 책이나 음반을 얻는 과정에서 위험한 일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나도 그러하였고, 카리나 역시 암거래상을 이용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행성계에서는 암거래상이 없다보니, 다른 행성계로 나아가서 얻은 물건들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으니, 카리나는 그런 생각을 반영한 듯한 질문을 하였던 것. 이에 벤자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을 하였다.
  "없었을 리가 있겠나, 아르데이스 행성계의 드벨파 족 사람들은 물론, 티롤 족 사람들까지 만나야 했으니 말이다."

  아르데이스 행성계 출신 사람들이 입수했던 것들을 사오는 형태로써 그는 이 행성계에서는 더 이상 얻을 수 없었을 음반, 서책들을 얻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그들의 음반, 서책은 모조리 폐기 처분 대상이 되었으며, 감빛 사람들에 의해 감빛 불꽃에 의해 불태워지고 파기되어 전부 소멸했고, 이 행성계에서 이들은 다시 얻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러한 음반, 서책을 다시 얻으려면 아르데이스나 나마르(Namar) 같은 타 행성계로 구매 등을 통해 반출된 것들을 얻어와야만 했다.
  그 예능인들은 역사에서 기록이 말소되었음은 물론, 이들의 음반, 서책은 모조리 폐기 처분되었으나, 타 행성계에서 얻어온 이들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데에 사람들은 크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제한할 수는 없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예능인들의 음악 등을 공적인 장소에서 활용하는 것과 이들에 대한 평가를 되돌리는 일만큼은 허용되지 않았으니, 그러한 일만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렇다면 몇몇 사람들이나 소수 집단을 대상으로 음악 전파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네요."
  "그러하기는 하다만, 이 역시 위험한 일이지, 대개의 사람들은 그 예능인들과 더불어 예능인들에게서 태어난 모든 것들을 금지된 존재로 여기고 있으며, 그 금지된 존재를 전파하는 시도를 좌시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도 있지. 당장이라면 모르겠다만 그 행위는 결국 그러한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게야."

  금지된 존재를 좌시하지 않는 이들에게 금지된 행위가 발각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대략 짐작이 가능했다. 그러한 금지된 존재에 대한 응징은 특히, 자신들과 같은 어둠의 기운을 품은 이들에게 농락을 당했던 감빛 지대의 사람들이 더욱 강하게 했다. 그들은 세상에 파란을 일으키는 이들에 대한 응징에 대해서는 거침 없었으며, 처벌을 매우 잔혹하게 수행했다.
  이러한 그들의 방식에 대한 우려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그들의 악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사람들이 악에 물든 사람들에 대한 본보기를 삼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실제로 '다스 에레보사' 라는 조직 가담자와 그 연루자들에 대한 잔혹한 응징은 그 대상이 세상에 파탄을 가할 수 있었던 이들이었던 만큼, 많은 지지를 받았었다.
  그런 연유로 벤자드 노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금지된 예능인들의 음악을 전파하지는 않고 있었다. 광산에서 음악을 전파하기는 했지만 어떤 음악인지는 알리지 않았다. 광산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딱히 관심을 갖지 않고 있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벤자드 노인이 아르데이스 성계에서 얻은 금지된 예능인들의 음반을 얻어서, 그에 대한 이의의 제기에 대한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 아르데이스의 티롤 족 사람들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인 고통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뚤어지고 포악해진 이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벤자드 노인이 만나야 했을 아르데이스의 암거래 상인들 중 대다수는 이러한 티롤 족 사람들이었고, 그들에 의한 여러 괴로움을 받았다고 한다, 목숨을 위협받은 적도 있었을 정도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 같아, 엘베 족 사람들이나 드벨파 족 사람들 중 올바른 심성을 가진 이들은 그런 암거래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테니."
  "그러하겠지." 암거래 상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난 이후, 카리나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하자, 바로 동의하는 뜻을 화답으로써 드러내고서 말했다.
  "그렇게 수모를 당할 수 있음에도 이들을 통해서라도 물건을 얻으려 하였음에 대해서는 그만큼 옛 추억의 물품을 되찾음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이후, 카리나가 책상 서랍의 음반들을 하나씩 둘러보고, 벤자드를 통해 음반에 수록되었을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 나는 거실의 책장에 수납된 수많은 음반들을 감싸는 표지들을 한 번씩 감상해 보고, 또 저서들을 둘러보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열람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았다, 가능한 빠른 시간 내로 감빛 지대로 가려 하였고, 그래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리나, 이제 가자." 그리고 현관문 근처에 이르러 카리나를 불러서 그가 내 우측 곁으로 오자, 정말 가려고 벤자드 노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그가 머무르고 있는 거실 쪽으로 다시 돌아서려 하였다.
  그렇게 거실을 향해 돌아서면서 거실에 자리잡은 수많은 음반, 그리고 저서들, 이제는 이름조차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물품들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 물품들에 대해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세상 사람들에 의해 공개되고 나면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 여기었음과 더불어 벤자드 노인이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걱정이 되었던 것. 그러면서 건넨 물음에 대하여 노인은 이렇게 답을 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 본 바는 없다네."

  벤자드 노인 역시 자신도 언젠가 세상을 떠날 날이 오고, 이제 늙은 이상, 그 날이 그렇게 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 그 날이 오고 난 이후에는 죽음의 위협까지 겪어가며 얻어온 그 모든 물품들이 재가 되어 사라질 수도 있음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어떠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거나 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많은 물건을 맡아주는 일이라면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서 전담할 수 있었겠지만, 그의 물품들은 그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화기, 화약보다도 더욱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물품들을 사후에 마을 사람들에게 아무렇게 떠맡길 수는 없었으며, 이외의 대책도 결국에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신의 사후에 있을 일에 대해서는 거의 체념한 상태라고.
  안쓰러웠지만 우리라고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금지된 물품들을 떠맡았다가는 자칫하면 나와 카리나 역시 이상한 일에 엮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벤자드 노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하였으니, 그저 앞날에 행운이 있었으면 한다는 말을 해 주는 것 정도가 나와 카리나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된 노인의 처소를 떠난 이후로 다시 카즈 라 역에 이르렀다. 때는 9 시 30 분. 다음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10 여 분 정도 남은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기차를 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그 때처럼 역사 내부의 의자들에 모여 앉아 있었다. 대다수는 난쟁이 족 사람들이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 듯해 보이는 감빛 지대 출신인 듯한 사람도 몇몇 자리잡고 있었다. 또, 뒤쪽 한 구석에는 입가를 검은 두건으로 가리고 있는 수수해 보이는 옷차림을 갖춘 여성 둘이 있었다. 유난히 음산해 보인 이들은 특유의 긴 귀가 있어서 이들의 선조가 엘베 족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어 보였다.
  "아르사나, 우리도 한 곳에 자리잡아서 앉자."
  "그래." 카리나의 요청에 바로 응하여 이상하게 사람들이 찾지 않은 차로와 가장 가까운 의자들 중 한 곳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좌측, 카리나는 우측.
  "이 중에서 감빛 지대로 가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겠지?"
  "그러하겠지, 대다수는 인근의 공장 지대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타는 사람들일 테니까."
  이 무렵, 바로 뒤쪽에서부터 어떤 노인의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향해 질문을 건네는 듯한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나의 눈앞으로 하얀 셔츠와 푸른 멜빵 바지 차림을 한 남성이 품에 가방을 안고 있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 대해 모종의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
  "어디 가나, 아가씨? 혹시 감빛 지대로 가려 하나?"
  "예, 할 일이 있어서 가려 하는 것인데......."
  "그렇구먼." 이에 그 남성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대답에 대해 말을 건네었다. 그러더니, 그는 곧바로 그의 모습을 보며 예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샤하리아(Saharia)' 라 칭해진 곳이지. 지금은 어떻게 칭해지고 있나, 궁금하군. 이 붉은 바위 산 역시 과거에는 '에우릴(Euril)' 산이라 칭해진 적이 있다고 하더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화들짝 놀랐다. 감빛 지대의 옛 이름이 '샤하리아' 였다는 이야기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었지만 감빛 지대에서조차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으리라 여기었던 것을 일꾼으로서 공장으로 출근하려 하는 난쟁이 족 남성에게 듣게 되자, 어떻게 알았는가 싶어 놀랐던 것.
  "알고 있었나?"
  "예, 예전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러자 그 남성은 다시 "그랬구먼." 이라고 화답을 하더니, 그에 이어, 과거에 나와 닮은 사람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고서, 감빛 지대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도움을 받아 감빛 지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음을 밝혔다.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었지만 이름도 그렇고, 외견조차 잊고 있다가 나의 모습을 보면서 외견이나마 기억은 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 세계의 8 개 지역은 한결같이 옛 사도들의 이름을 갖고 있었지. 세니티아 성계에서 왔다는 8 명의 사도들 말이야. 세니티아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칭해졌다고 하다만, 그 이름까지는 잘 모르겠더군. 아무튼, 한 번 알아보기라도 해 보거라,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게야."
  그리고서 그는 역사 바깥의 철로 부근으로 나아가서는 나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금방 오게 될 기차를 바로 앞에서 기다리기 위함이었을 것.

  그렇게 그 남성이 나의 곁을 떠난 이후로, 나는 뒤쪽 구석에 앉은 두 음침한 인상의 엘베 족처럼 보이는 여성 둘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서 나는 카리나에게 잠시 다른 곳에 있겠음을 밝히고서 역사의 정문 쪽으로 나아가는 척하면서 뒤쪽 구석에 앉은 여성들을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곳에서 지켜보려 하였다. 속삭이는 듯이 대화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들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들리기는 하였다.

- 이제 그 우민들, 정말 우리가 망한 줄 아는 가봐.
- 그러게, 우리 따위는 완전히 없어져서 잊고 살아도 되는 줄 알잖아.
- 역시, 민중이란 개, 돼지들이야. 사람 새끼들이라는 게 그 정도도 생각을 못해?
- 그러니 개 돼지 새끼들이지. 특히, 감빛 민족들이 정말 벌레 새끼들이야, 그 시퍼런 것들 있지?
- 맞아, 그 진성 우민 같은 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죽어 나갔어......
- 하지만 이제 됐어,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되는 거야.
- 그래, 본 때를 보여주자고. 우리가 멀쩡히 살아있었음을 보여주어야 해.

  대화를 들으며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그들은 케레브 족 사람들이 구성하였던 어둠의 군단, 그 잔당이었던 '다스 에레보사' 의 잔당 일당이었다, 감빛 지대 사람들을 '감빛 민족' 이라 칭하며 선동과 폭력을 통한 '어둠의 지배' 를 획책하였던 집단의 잔당 일원.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서, 집단이 토벌당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그들의 근본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더 나아가 이전에 처형당했던 동족 사람들의 영혼을 불러와 이들을 타인의 육신에 빙의시키려 한다는 위험한 일을 시도하려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 벌레 같은 것들 때문에 죽었던 우리들의 동포들을 되찾는....... 하지만 어떻게? 이미 그들의 육신은 불타고 없어져.......
- 가능해, 그 영혼을 그들의 육신에 강림시키는 것. 동포들은 현재 호수의 성채에 제물로 바친 동포들 중 한 명에 깃들어 있어. 이들을 풀어놓아 각각의 영혼들이 감빛 지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육신에 깃들도록 하면 되지 않아?
- 그렇구나. 하여간...... 여기는 뭐 특별한 거 없네, 각박한 동네 같으니라고.......
- 그러게.

  그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이 대화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었으니, 감빛 지대의 호수에 있는 포헤 느와흐의 근거지였던 성채의 폐허였다. 폐허는 그들을 비롯한 다스 에레보사의 잔당이 점거한 상태이며, 이들은 자신들의 동료였던 케레브 족 사람 중 한 명을 제물로 삼아 그 제물에 그 무렵에 처형당한 이들의 망령을 깃들게 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 망령들이 사람들의 육신에 깃들도록 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 이상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그들의 곁을 떠나, 카리나에게로 가려 하였다. 그러는 그 때, 갑자기 그 쪽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얌마! 너 이리 와 보라고!!!"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분명 그 케레브 족 여성이 내는 목소리였을 터. 괜히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카리나의 곁으로 돌아오려 하였다. 그 때,
  "너! 나에게 와 보라고 했지!?"
  라고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그들 중에서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 차림을 하고 모자와 검은 두건으로 머리와 입가를 가리고 있던 여성이 나에게 달려들려 하였다. 위협을 느끼면서 나는 바로 오른손에 하얀 빛의 기운을 깨웠다. 만약의 경우, 그 빛으로 그 여성을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 빛을 보자마자 여성은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너,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었지!?"
  카리나의 곁에서 대치를 하고 있는 동안, 여성은 손가락질을 하면서 나를 위협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겁을 먹었음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위협이라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대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하려 하는데, 그 때, 같이 있던 회색 옷차림을 하고 있던 여성이 다가오고 그와 함께 여성으로부터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엿듣고 있었냐고 묻고 있잖아, 이 벌레 새끼야!!!"
  그 때, 뒤따라 온 회색 옷차림의 여성이 더 볼 것도 없다고 말하고서 바로 때려눕히자고 말하며 달려들려 하자, 바로 검은 옷의 여성이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말리는 힘이 모자란 탓인지 바로 뿌리쳐졌고, 회색 옷차림의 여성은 나에게 바로 왼손을 들어 주먹을 휘두르려 하였다.
  이에 나는 바로 그 빛의 기운을 오른손으로 들어올리고 빛의 기운에서부터 광탄을 한 발 쏘아 보냈다. 그 광탄은 바로 여성을 스쳐 지나가서 그 뒤편의 벽에 닿아 사라졌다. 약한 기운이었기에 벽에 상처를 주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성은 이를 두고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주저앉아 버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하니, 두 눈을 떨고 있었으며, 입가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공포에 질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크게 당황했을 법한 두 사람이 차례로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자신들의 생각이 통하지 않으리라 여기었는지 바로 정문 방향으로 도망가듯이 빠져나가려 하였다. 그 때, 기차가 도착했지만 이들에게는 기차를 탈 생각은 없었던 모양. 이들에게서 짜증을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사람들에 대한 비난부터 하고 있었다.

- 아우, 짜증나. 이 개자식들!!! 그래, 안 탄다고 망할 것들아!!!
- 그러면 감빛 지대로는 어떻게 가!?
- 방법이 있겠지, 이 즈음 되면 아델 님께서 닥달하실 거야, 그 때 잘 간청해 보면 바로 보내주시겠지.

  여기서 또 알 수 있었다. 이들이 포헤 느와흐의 수하를 자칭하던 아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험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바로 알려주니 이들의 행보를 바로 눈치채고, 그에 맞는 대응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저 케레브 족 여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들었어?"
  "응." 이후, 나는 바로 그들이 했던 이야기에 대해 바로 알려주었다. 그 무렵, 기차가 도착했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차를 향해 다가기 시작하자, 바로 카리나에게 "일단 타자." 라고 말하며, 먼저 역사의 자리에서 일어났고, 카리나가 그런 나의 뒤를 이어 기차를 타기 위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는 너무 다급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지, 당분간은 이 곳을 떠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거야."
  이후, 카리나는 그들이 무언가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에 나는 그러할 가능성이 있을 수는 있어도 이전에도 보았던 바처럼 결국에는 무의미한 행동이 될 것인 만큼, 그러한 무모한 행동을 감히 시도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카리나는 알겠다고 화답을 하고서, 이어서 나에게 바로 다음 물음을 건네었다.
  "아델이 여기로 와서 그들의 현상을 눈치채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려나?"
  "...... 눈치는 금방 채겠지만, 그들의 요청은...... 뭐, 언젠가는 알아 주겠지."

  기차가 도착하는 광경을 보자마자 부리나케 움직인 탓인지 늦게 일어난 편이었던 일행은 비교적 빠르게 기차에 탈 수 있었다. 두 사람씩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중앙의 길을 사이에 두고 좌우 방향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사잇길로 난쟁이 족 사람들이 분주히 자리잡고 앉으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와 카리나가 앉은 대열은 3 번째 차의 중앙 쪽인 5 번째 대열, 그 중 좌측의 의자로서, 내가 창측, 그리고 카리나가 통로 측에 앉았다. 그렇게 서로 자리를 정하고 앉을 무렵, 뒤쪽과 앞쪽에 난쟁이 족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자리를 잡아서 앉고 자신들의 짐을 의자 위, 천장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선반에 올려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감빛 지대로 가려면 몇 시간 있으면 되려나."
  "저 분들 중에 혹시 아는 분이 계실지도 몰라."
  내가 하는 질문성의 혼잣말에 카리나가 바로 그렇게 전망을 하고서 이제 막 자리를 잡으려 하는 난쟁이 족 사람들 중 창가에 앉은 여성에게 관련된 질문을 시도하려 하였다.
  "아주머니, 혹시 감빛 지대에 대해 아시나요?"
  "감빛 지대라......."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리면서 우선 나의 물음에 반응하려 하였다. 내가 언급한 바에 대해 무언가 아는 바가 있어 보였고, 그래서 그의 대답에 관한 나름의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 곳에 대해서는 대충 아는 바가 있기는 해. 푸른 이파리들이 무성한 풀밭과 푸른 잎들을 늘 보이는 숲, 그리고 어둠을 비추는 무지개빛 꽃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간다고 하더라, 숲의 한 가운데에는 '생명의 발상지' 라 칭해지는 비석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는 신비로운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감빛 호수 역시 장관이라고 하고."
  다만, 그는 감빛 지대에 대해서는 이야기만 들어보았을 뿐, 실제로 가 본 적은 없다고 한다, 감빛 지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어떤 여성으로부터 이야기를 잘 들어서 알게 되었다고.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 열차로 감빛 지대로 가는 데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는지에 관한 것이었으나, 그래서야 그로부터는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내가 아는 바는 그 정도야. 아, 그 곳 사람들을 만나 보면 감빛 지대에 관한 여러 전설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고 하네, 그 곳에 관련한 전설들이 이것저것 있다는 모양이야."
  감빛 지대에 거주하는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같이 있으면서 듣고 있던 카리나는 나름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 그 이야기를 해 주고서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카리나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 주려 하였다.
  "아 참, 요즘 들어 감빛 지대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모양이야, 빛의 나무로 나아가는 산길 도중에 자리잡은 감빛 호수 위로 한 무리의 커다란 물새들이 밤마다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야기지. 그들을 금빛 왕관을 쓴 새하얀 물새가 이끈다고 하더라고. 무척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어."

  "아르사나, 혹시 왕관을 쓴 물새와 그를 따르는 무리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 있니?"
  "아니, 온갖 전설들이 오가고 있다는 감빛 지대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어."
  있을 리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한 가지 들은 이야기는 있었던 것이, 가마일 산의 탑 부근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즈음, 레테사와 함께 있는 도중에 산 건너편 먼 바다의 수면 위로 한 무리의 하얀 물새들이 헤엄쳐 지나가는 광경을 본 일이 있었다. 그 물새들 중 한 마리가 왕관을 쓰고 있었으며, 이를 두고 레테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토대로 나는 카리나에게 그 고니 닮은 물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 결국, 네 어머니를 원수로 여기었을 그와도 관련된 일이겠네. 그렇지?"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어머니인 아르셀에 의해 두 번이나 파멸을 맞이했던 포헤 느와흐의 이름이 언급되자, 카리나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그 이후에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대답을 대신하였다. 이후, 카리나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포헤 느와흐를 물리친다면 그의 마력이 없어지기에 그들의 저주도 풀리겠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 그가 행하려 하는 일이 하나의 사건으로 그칠 것은 아니라서. 너도 그에 대해 조사를 해 봤다면 어느 정도는 짐작해 봤을 거야."
  이에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답을 대신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자신이 포헤 느와흐에 대해 알아본 바가 있다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포헤 느와흐의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감빛 기운에 감싸인 검은 새들이 금사 지대에서부터 '검은 섬' 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고, 그와 더불어 검은 옷차림을 한 여자 한 명이 수상한 움직임을 하고 있기에 붙잡아서 그가 검은 섬 주변을 떠돌던 그 새들과 동료이며, 그들과 더불어 포헤 느와흐의 명령을 받아 '검은 섬' 과 더불어 그 인근의 부유섬들의 관찰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
  이를 통해 카리나는 포헤 느와흐가 '검은 섬' 이라 칭해지는 고대 문명의 잔재가 남은 독기 어린 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검은 섬' 안에 숨은 고대 문명을 향한 접근을 시도해 보려 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을 그에 관해 할 수 있었음을 밝혔다. 하지만 검은 섬의 치명적인 독기를 피해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는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검은 섬의 고대 문명을 통해 8 개의 세계를 제압하려는 생각이겠지?"
  "분명 그러할 거야. 그래서 그에 대한 경고를 소르나가 그 동안 해 왔을 것이고."
  대답을 통해 카리나는 그 역시 소르나로부터 연락을 받았음을 밝혔다, 더불어 거주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으나, 소르나는 아직 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답을 하였다고.
  카리나는 그에 대해 무척 답답했던 모양으로 거주지에 대해 그가 어떻게든 답을 해 주어야 그가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추측이라도 할 텐데, 그러하지도 않으니 그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 수 없어 그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고.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지만 기대했던 답은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화를 주고 받을 무렵, 열차는 이미 출발해서 철로를 따라 마을을 떠나, 그 너머의 산으로 둘러싸인 길을 지나고 있었다. 창가를 통해 내가 탑을 오르기 위해 이용했던 그 동굴의 모습이 보였다.
  그 곳을 지나, 기차는 산으로 둘러싸인 길목을 지나며, 어느 작은 마을에 당도하고 있었다. 그 마을의 한 가운데 즈음에 있을 법한 분위기부터 단촐해 보이는 역에 이르자마자 열차는 멈추고 열차의 문이 경보음과 함께 열렸다. 그리고 내리는 몇몇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와 더불어 역 주변 일대의 광경을 보려 하였다.
  철로 양 옆으로 꽃밭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꽃밭 사이로 바람 개비들이 바람의 흐름에 따라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바위와 흙 그리고 건물들의 모습이 주로 보이는 붉은 바위의 산에 위치한 곳에 자리잡은 이 초록색 무리는 산 일대의 붉은 광경에 익숙해지려는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전해주고 있었다.
  "역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그 광경을 보며 카리나가 바로 그 곳에 대해 나에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이에 나는 "그렇지." 라고 바로 화답을 하였으며, 이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거나 하지 않았음이 그 이유였다.
  잠시 동안 머무르던 기차는 바로 문이 닫히고서 출발, 그 이후로 건너편의 길목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 때, 멀어져 가는 그 마을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카리나가 물었다.
  "저 마을로는 열차가 하루에 몇 번 도착하려나."
  "모든 방향을 합쳐 하루에 10 번 정도 도착하는 것 같더구나."
  그 때, 바로 앞의 통로 측에 앉았던 난쟁이 족 남성이 카리나가 건네는 그 말에 바로 답을 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서 특정 방향을 향하는 열차라면 하루에 5 번 정도이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간혹 6 번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기는 하다는 말을 건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 열차는 17 시 즈음에 있다고.
  "이 마을을 지나치는 열차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당연하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앞 자리의 남성은 바로 그러하다고 답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기차는 묵묵히 길을 따라 나아가, 절벽가의 길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절벽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따라 나 있는 철로를 지나치고 있었지만 기차는 흔들림도, 불안한 움직임도 없이 평온히 자신이 갈 길을 따라 나아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열차가 그렇게 나아가는 동안 창가를 통해 그 주변을 지나쳐 가는 풍경을 둘러보려 하였다.
  "함부로 시선 돌리지 마라, 그러다가 질겁하겠다."
  앞 좌석의 난쟁이 족 남성이 농담삼아 말했지만 이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그 광경을 계속 보려 하였다. 붉은 산자락이 절벽 너머로 마치 끝이 없는 듯이 이어지는 모습이 감빛을 띠는 하늘 아래로 펼쳐지고 있었다. 빛이 자리잡은 탑과는 이제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늘은 여전히 밝았고, 탑의 빛은 태양의 빛처럼 먼 저편에서부터 환하게 빛을 발하며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하기사, 한낮에도 하늘이 어두운 광경을 보려면 두 세계의 경계 즈음은 되어야 하기는 한다.
  그러한 그 위로 마치 그 산의 색과 맞추려 하는 듯한 붉은 빛을 발하는 등을 밝히며 비행선 하나가 기차와 같은 방향을 따라 상공을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비행선에 달린 풍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와 비슷하게 물건을 무나일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무나일에서 만들어져서, 무나일 마을 혹은 그 인근에 거주하는 누군가에 의해 하늘 위를 움직이게 된 그러한 기계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천문대에서도 비행선을 자주 띄웠었다는데."
  "그랬었지, 상공 높은 곳의 관찰을 위해 소르나가 떠나간 이후로 라미(Llami) 언니가 자주 띄웠다고 하더라고. 소르나가 떠나간 이후, 천문대의 관측 담당에게 가해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관측 담당자의 역할을 어느 정도 맡아줄 수 있는 무인 비행선들의 제작 의뢰를 했고, 이를 통해 마련한 비행선들을 하루에 교대로 몇 차례씩 상공 위로 띄워올려서 관측 결과를 중앙 장치로 전해받고 있었다고, 세나가 말했었어."
  비행선을 보며 근래 들어 천문대에서 비행선을 띄워올리고는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고, 그러면서 카리나에게 묻자, 바로 세나를 언급하며 답을 하였다. 내가 아는 바로 세나는 천문대 소속이었던 이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천문대에 남았던 이로서, 카리나의 말에 의하면 세나가 남아있던 동안에는 그가 천문대의 근황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 주고는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나가 마지막으로 천문대에 남게 된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세나도 천문대를 떠났고, 그 이후로는 천문대의 소식을 자주 접하지는 못했다고.
  "마지막까지 지켜주었으면 했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라지만......."
  홀로 남았던 세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정든 곳이라지만 하나둘씩 사람들이 떠나간 그 빈 자리를 지켜보는 공허함을 암만 그라도 견디어내기는 힘들었으리라.
  "레테사는 책임자로서 사명이 있는 만큼, 머무르고 있어야 했을 것이고......."
  "그랬지, 나중에 들은 바로는 레테사는 천문대 안에 있을 때에는 3 층에만 머무르고, 2 층과 1 층의 방은 보려 하지도 않는다고 하더라."
  의식하지는 않고 있었다만, 그 역시 그러하였던 것 같다. 이러한 관측 담당자의 심리를 알아차리고 라미가 무언가 일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바로 이루어질지 여부는 알 수 없었으니, 그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는 일이니.
  "가마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라미 언니를 만나서 반드시 그에 대해 알려야 하겠어."
  "새 사람이 오면 그도 외로움을 덜 타겠지,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카리나는 내가 하는 말에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동조하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한편, 열차가 보이는 광경은 어느덧 절벽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거쳐, 산길 부근의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으며,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마을의 역에 도착했고, 그 때마다 몇몇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차가 마을들 사이를 지나는 동안, 붉은색을 띠는 나무들 그리고 그 나뭇가지에서 살아가는 바위보다도 붉은빛을 띠는 나뭇잎들과 풀잎들이 기차를 타는 사람들을 반겼다. 수풀 사이마다 꽃이 피어나 있어서 붉은 빛 혹은 보라색 빛을 발하며 빛을 주변 일대로 퍼뜨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니, 지금껏 붉은 바위의 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곳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이 붉은 나무와 수풀 그리고 화초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낯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 붉은 바위의 산에도 수풀과 화초가 없는 것은 아니야, 붉은 바위의 모습만 보이는 황량한 곳이 대다수이기는 하지만."
  눈앞을 지나쳐 가는 붉은빛 광경을 보는 동안 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다시 그의 모습을 보려 할 즈음, 그로부터 소르나와 함께 붉은 바위의 산, 그 산길을 걸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감빛 지대와 붉은 바위의 산 경계 즈음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산간 지대에서 붉은 바위의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수풀들이 가득한 숲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그로부터 10 여 분 즈음 후에 기차는 곳곳에 광산 지대가 자리잡고 있는 산간 지대로 들어섰고, 이후에 그 중심 지대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공장 도시의 한 가운데 즈음에 위치한 역에 정차하였다. 그 곳은 붉은 바위의 산에 위치한 광물 제련 공장 및 물품 제조 공장들이 위치한 공장 도시로서, 그 이름은 '에우릴(Euril)' 이라 하였으니, 역 이름도 도시 이름과 같은 '에우릴' 이었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바 있던 붉은 바위의 산, 그 원래 명칭이었다는 이름과 같았다.
  여러 난쟁이 족 사람들이 일터로 삼는 곳 부근에 있는 역이라 그러한지, 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난쟁이 족 사람들이 역에서 내릴 준비를 하였고, 이어서 기차가 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들은 대열을 이루면서 기차에서 내려, 인근의 거리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이외에 역 부근에 기차가 이를 즈음에 자리에서 일어난 이들 이외의 사람들 중에 역에 이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에서 떠난 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역 부근에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일어난 이들은 미리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열차에 남은 사람들은 이제 몇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너머의 지역이나 감빛 지대로 가려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앞자리에 타고 있던 난쟁이 족 사람들 역시 열차가 에우릴 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열차에서 내렸고, 그 이후로 공장 지대 부근의 마을에 이르려 하였다. 그 마을에 가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던 것일까.
  "한숨 자 두어도 괜찮아, 다음에는 밤을 새야 할 지도 모르니까."
  역에 도착하자마자 내리려 하는 난쟁이 족 사람들의 모습과 열차에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남았음을 확인했을 무렵, 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지루한 기차 여행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으니, 그 동안 자고 있어도 좋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자고 있으려 한 것이, 기차 여행을 하면서 이러한 일들을 몇 번은 겪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에도 한 동안 기차는 여러 마을을 오가며 산간 지대를 지나쳐 갔다고 한다. 나는 기차가 산에서 내려와 서부 지대를 감빛 지대의 중심 도시인 '샤하리아(Shaharia)' 에 위치한 역 '슈루엘(Suruel)' 에 이르렀을 때에 카리나가 깨워서 일어났으며, 그에 의하면 그 열차가 슈루엘 역에 도착했을 때는 에우릴 역에 도착했을 때로부터 1 시간 즈음 지난 이후였다고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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