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3. We are the Legion : 2


  검은 돌, 아마도 흑요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서, 나뭇가지와도 같은 형태를 표현하고 있을 지팡이를 손에 들고, 2 층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 공동 바로 위의 상공에 떠 있으면서 그 두건 달린 검은 옷과 바지 차림을 한 술사는 한 동안 가만히 나를 비롯해 자신의 바로 앞에 모여 서 있던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오른팔을 움직여 오른손에 쥐고 있던 감빛도 아닌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그 지팡이의 끝이 일행 중에서도 가운데 즈음에 서 있던 나를 향하도록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의 눈앞으로, 누구에게도 위험해 보이는 그 검은 기운이 마치 나를 비롯한 일행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 듯이 일렁이고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검은 두건의 그늘진 안쪽에서부터 두 눈이 붉게 번뜩이고 있었다.
  지팡이를 들어 일행-특히 나-을 도발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도발적인 말을 건네리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런 나의 예상과 달리, 그 술사는 눈만 번뜩이다가 그 눈의 모습마저 사라지게 하고서 곧바로 오른손에 든 지팡이가 자신보다 높은 곳을 향하도록 하고, 그에 이어 검은 지팡이의 위쪽 끝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 검은 기운은 주변 일대로 검은 번개 줄기와도 같이 발산되어 가고, 그 끝에는 검은 기운이 피어나며 주변 일대로 검은 기운을 발산하려 하였다. 그 영역들은 일행이 모인 일대 그 부근에도 몇 개 있어서 자연히 그에 대한 경계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공간의 상공 여러 곳에 검은 기운들이 피어나게 되자 술사는 두 팔을 높이 들면서 자신을 검은 구름과도 같은 기운으로 감싸려 하고, 이어서 광기 어린 웃음 소리를 내면서 검은 기운과 함께 사라져 갔다. 그 이후, 내 주변 곳곳에 위치한 검은 기운들이 터지면서 그 자리에서부터 검은 벌레들이 날아들어 내 주변 일대를 맴돌기 시작하였다, 벌레들의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벌레에 관한 소름끼쳤던 기억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 벌레들은 잠깐 동안의 비행 이후로 한 무리씩 하나의 대형을 이루며 2 층 중앙의 공동 바로 위쪽의 상공에 모이려 하였다. 그리고 대형을 이루고 있으면서 좌우로 움직이며 입에서부터 검은 포탄을 하나씩 발사하는 것으로써 일행에게 위협을 가하였으며, 그와 더불어 2 ~ 3 마리의 벌레들이 작은 무리를 이루면서 일행에게 접근해 오기도 하였다. 돌격하면서 이런저런 암흑탄을 발사하는 이들이 있었으며, 이들 중에는 엘리사 등을 정확히 노리는 이들도 있어서 그 조짐이 있을 때마다 주의를 주기도 하였다.
  벌레들은 빛의 기운을 통해 발사하는 광탄으로도 쉽게 소멸시킬 수 있어서 큰 위협은 아니었지만 그 수가 많았고, 검은 기운이 깨어날 때마다 더 많은 수의 개체들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여전히 그에 대한 긴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공간 일대에는 수십 여에 달하는 검은 기운들이 있었으며, 그 검은 기운들은 한 무리가 사라질 틈을 주지 않고, 계속 깨어나 검은 무리들을 불러오고 있었으니, 이러한 검은 무리들의 행동을 통해 술사의 한 가지 의도를 예측할 수는 있었다. 술사는 이 검은 무리를 이용해 일행의 자신을 추적하는 움직임을 저지하려 하였던 것이었다.
  다만, 이들 모두를 처치하지 않고 빠져나갈 여지는 있었다. 만약, 이 무리들이 특정한 이들을 쫓는 특성이 아닌, 눈에 보이는 자신과 닮지 않은 개체들을 쫓는 특성을 가진다면 이 특성을 역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그래서 당장은 아니지만 소강 상태가 올 즈음에 2 층의 출입문 너머로 보이는 문을 거쳐, 그 문 너머의 본성을 향하는 다리로 나아갈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강 상태가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들도 생물이었던 만큼, 활동의 한계가 있음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10 여 무리가 괴멸된 이후, 생물체들의 활동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일행에게 있어서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 이후, 나는 그간 생각해 두었던 바를 말하기 위해 우선 그 당시 우측 곁에 있던 엘리사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음을 밝히려 하였다.

  "엘리사 씨, 여기서 제안할 바가 하나 있어요."
  "제안이라...... 그것이 무엇인가요."
  엘리사에게 제안이 있음을 밝히자마자 그는 그 제안에 대해 물음을 건네려 하였고, 이 물음에 나는 그 답으로써, 바로 이전에 생각해 두었던 바를 밝히려 하였다.
  "지금과 같은 소강 상태를 노려, 검은 생물들의 포위를 뚫고 2 층 너머의 밖으로 나아가, 바깥 통로와 이어진 본성으로 돌입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생각을 실현해 보려 하고 있어요."
  이 무렵,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했던 모양인지, 나와 엘리사가 위치하고 있던, 그 좌측 부근의 약간 거리를 두는 지점에 머무르고 있던 리아가 나에게 다가와서는 무슨 말을 그렇게 주고 받는지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잘 됐네요, 같이 와서 들어봐요."
  이에 내가 바로 리아에게 같이 들을 필요가 있는 말이었음을 밝히고서 같이 대화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의 말을 건네자, 리아 역시 바로 흥미를 느끼며 나의 곁에서 엘리사와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였다.

  리아를 대상으로 성채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여, 당시 일행이 머무르고 있던 곳은 외성으로서, 케레브 족들이 주요 근거지로 삼고 있을 본성은 2 층 바깥의 통로를 통해 갈 수 있음을 밝히고서, 검은 생물들의 활동이 소강된 그 시점이 포위를 뚫고 탈출할 좋은 기회임을 그에게 알리려 하였다. 그리고,
  "린 씨에게 가서, 바로 그 쪽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자고 설득해 보세요, 아직 많은 개체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반드시 우리만을 노리는 특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없으며, 잘하면 바깥의 사람들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아직 남은 개체들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거론하며, 나는 리아가 린을 설득할 수 있도록 하기를 바라는 말을 건네고서 그에 이어, 그 소강 상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만큼, 가급적이면 서둘러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 소강 상태는 당장에라도 끝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빨리 일을 진행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다급한 일이라 알리니, 리아는 바로 자신이 있던 그 바닥에 서 있던 린에게 뛰어가서 그에게 그간 들었던 바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이에 린은 바로 그런 리아를 향해 돌아서서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그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러더니 그의 뜻을 받아들이려 하는 듯이, 린이 리아를 따라 나와 엘리사의 곁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설득이 되었나 보네요."
  그 모습을 보며 엘리사가 리아에게 물으니, 리아는 바로 그러하다고 답을 하고서, 린이 말하길, 자신에게 나름의 생각이 있으니, 린과 리아가 그 생각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나에게 요청을 해 줄 것을 리아에게 당부했음을 밝혔다.
  그들이 일행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준 다는 것에 대해 만류를 하거나 할 필요는 없어 보였고, 그래서 그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나와 엘리사는 먼저 통로를 빠져 나가고, 린과 리아는 통로 부근에 남기로 하였다. 일행이 공간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남아있을 기운들 그리고 검은 생물들의 처리를 그들이 맡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린이 어떻게 나의 뜻을 전한 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린은 처음부터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남은 검은 기운들의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 여기서 리아가 한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고, 린이 좋다고 받아들이면서 이를 통해 린과 리아가 나 그리고 엘리사와 행동을 같이하게 된 것이었다. 그 방안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금방 알게 되었다.

  소강 상태는 상당히 오래 가는 줄 알았지만, 린, 리아가 마지막으로 통로를 빠져나와, 외성 바깥의 다리로 나아갈 즈음, 갑작스럽게 검은 생물들이 2 층의 출입문 건너편에 위치한 문을 향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아직 남아있던 검은 기운들 역시 일제히 터지면서 검은 생물들을 방출하기 시작하였다. 대략 수백 마리의 검은 생물들이 외성 2 층 공간의 상공 일대를 뒤덮는 모습이 보였다.
  "리아! 그 문을 바로 막아버려!!!"
  리아가 문 밖으로 나와 외성과 본성을 잇는 다리로 나아갈 즈음, 린이 다급히 리아에게 지시를 내렸고, 이에 리아는 알았다고 답을 한 이후에 곧바로 문에다가 다급히 주문의 영창을 행하였다. 그 주문 영창 이후로 문에는 투명한 장막이 설치되어 그 앞길을 가로막았고, 그에 이어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생물들이 문 너머로 나아가려 하다가 장막에 부딪치는 광경이 잇달아 보이기 시작하니, 그 움직임이 얼마나 맹렬한지 부딪치는 소리가 바깥 너머에서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가만히 있는 줄만 알았는데...... 우리가 나갈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일까."
  "그러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 정도의 지능이 있었으면 장막에 수차례 머리를 부딪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그들이 휴식을 마칠 때와 우리가 빠져나갈 때가 우연히 일치한 거야."
  이후, 리아가 건네는 물음에 린이 바로 답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성 2 층과 본성 2 층을 잇는 다리의 곳곳에는 술사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케레브 족 전사들이 예리한 검은 날이 장착되어 있으며, 자루 역시 검은 돌로 이루어진 창을 들고 서 있으면서 자신들의 위치를 거점 삼아 그 거점을 막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옷차림부터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보면서 상당한 전력을 갖춘 이들일 것이라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이들과 대치를 거듭하다 보면 상처를 입을 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장막의 유지가 끝나, 검은 생물들이 혼전 속에서 일행과 그들을 한꺼번에 덮치는 사태가 야기될 가능성도 있었다.
  "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신 분, 계신가요?"
  전이 마법을 능히 활용할 수 있는 이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필요 없으면 말고, 이렇게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건네는 물음에 바로 답이 나왔다, 답을 한 이는 엘리사였다.
  "이전부터 주요 거점을 가기 위해 한 번씩 사용한 적이 있는데......"
  엘리사는 전이 마법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었음을 밝히고서 곧바로 그 마법으로 지상으로 갈 필요가 있다면 무엇인지 밝혀줄 것을 나에게 당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 대해서는 곧 아시게 될 거예요."
  그리고서 한 번 전이를 하고 나면 그 이후에 잠깐 동안은 방진을 치우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엘리사는 바로 알았다고 답을 하고서, 다리의 바로 앞에 서서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뒤쪽의 출입문 쪽을 향해 돌아서서, 리아가 급히 설치해 둔 장막의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검은 짐승들이 잇달아 부딪치기를 반복하는 그 장막은 이전에는 분명 하얀 빛을 띠고 있었으나, 시간이 조금 지난 이 시점에서 장막의 색은 붉게 변해 있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가능한 빨리......"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별로 없으리라 생각했어요."
  엘리사는 긴급 유형으로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전이 주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보니, 그 말을 듣고난 이래로 그저 그러한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의 효과로서 감색 빛을 발하는 방진이 생성되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엘리사가 방진을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우선 당부를 하였다.
  "자아! 아르사나 님, 어서 이 방진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우선 방진 안으로 들어서고, 그에 이어 린과 리아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사가 방진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우선 리아가 물었다.
  "이 방진은 어디로 가게 되나요?"
  "성 부근의 지상으로 가게 된다고 알고 계시면 될 거예요, 적교 바로 앞일 거예요."
  그러자 린이 바로 엘리사에게 기껏 올라가 놓고, 다시 그 곳으로 전이를 통해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이유가 있다고 답을 한 이후에,
  "방진을 마련한 이후에는 잠시 그 방진을 유지했다가 사라지도록 할 거예요."
  라고 앞으로 할 일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서 방진은 다시 만들 수 있고, 그 위치에 대한 인지는 확실히 하고 있으니, 앞 일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 이후, 눈앞 일대가 방진에서부터 솟아오른 감빛 기운으로 뒤덮히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감빛 기운이 사라지면서 일행이 다시 그 성문 앞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문 앞으로 일행이 방진을 통해 돌아온 이후에도 방진은 그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 방진을 통해 그 다리 부근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행이 모두 떠난 이후에도 그 방진이 잘 남아있음을 확인하자마자 방진의 바로 앞에 머무르고 있는 엘리사의 좌측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이 방진은 이후, 얼마나 더 지속되나요?"
  "아마, 1 분 즈음 후면 없어지게 될 거예요, 급히 마련한 물건인지라......"
  남은 시간은 1 분, 그 시간 내로 방진을 다시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지라, 내가 구상했던 바를 설명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어둠의 기운을 깨워서 그 기운으로 변장까지 한 이후에 방진의 한 가운데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 당시, 내가 감빛 기운으로 분장한 모습은 바로 케레브 족 전사의 모습으로 검은색을 띠는 다소 수수한 느낌을 주는 두건 달린 성내의 전사들이 주로 입는 옷이었다. 외견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는 없었으니, 그에 대한 감상을 할 여유가 달리 있거나 하지 않았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막 전이했을 시점에서 이미 장막은 열렸고, 공간에 갇혀있던 검은 벌레들은 밖으로 튀어나온지 오래였다. 이들은 밖으로 나왔지만 이전까지의 공격 대상은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였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공격 대상을 찾으려 하였고, 그러한 이들의 근방에 케레브 족 전사들이 있었다. 자연히 그들이 공격 대상이 된 것이었다.
  이들은 벌레 수준으로 행동했던지라 물리력 자체는 이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으나, 벌레들의 공격 수단은 그것들만은 아니었다, 검은 벌레들은 마탄을 발사하여 이들을 공격하려 하였고, 다리 전체에 걸쳐 이들의 폭격이 가해지며 케레브 족 전사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광경이 눈앞에 보였다.
  그 검은 벌레들은 케레브 족 전사들을 해치고 나면 바로 다음 공격 대상을 찾기 위해 본성 안으로 들어서서 곳곳을 누비려 하면서 여러 무리로 분리되어 흩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그래서 한데 뭉쳐 있는 그 때가 그들을 바로 일망타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더욱이 그들은 케레브 족 전사들에게 직접 피해를 주고 있었던 만큼, 그들을 격퇴하면 나는 그들을 도운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임 역시 분명했다.
  외성과 본성을 잇는 다리 부근을 떠도는 벌레들을 향해 다가가서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각 손에서부터 감빛 기운을 일으켰다. 그리고 번개를 방출하는 감빛 기운으로 이후, 상공 곳곳에 흩어져 있던 벌레들이 끌어 당겨지고, 곧 이들이 감빛을 띠는 구체 안에 가득히 모여있는 모습이 보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각 손끝마다 하나씩 감빛 칼날이 생성되도록 하고서 그 칼날들로써 한데 모인 그 벌레들을 마구 베어내는 것으로써 그들을 한꺼번에 공격하려 하였다. 그리고서, 그 벌레들이 검은 기운으로 변해 터지는 모습을 보이며 사멸한 이후에 나는 바로 그 무리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던 케레브 족 전사들을 향해 다급히 뛰어가려 하였다.

  난데 없이 검은 벌레 무리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전사들은 그들이 사라진 이후, 자신이 위치하고 있던 곳에 쓰러져 있었다. 심한 부상으로 보라색 피를 흘리는 이들의 모습과 손상 정도가 심해 날 혹은 자루가 부서진 전사들의 무기가 곳곳에 보였다. 그들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한 이후, 나는 바로 그들 중에서 가장 앞선 대열에 있던 이에게 다가가 보았다. 그리고 괜찮은지 여부를 묻고,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물음을 건네 보았다.
  다행히도 그는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그래서 그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로 앞에 적 무리가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그 이후에 외성의 문 너머에서부터 대량의 벌레들이 덮쳐오기 시작했다고. 그와 더불어 하나의 증언을 하니, 그 무리들 중 엘베 족 여성 한 명이 문에다가 주문을 거는 모습이 보였으며, 습격 이전부터 검은 벌레들이 문 앞에서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해 안달을 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그 광경을 보며 앞으로 있을 습격에 대비를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무리가 맹렬히 공세를 가할 줄은 몰랐다고.
  그들 역시 일행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으며, 벌레들의 습격이 일행에 의해 일어났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바로 앞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으니, 다리에 있던 이들 중 한 명 정도는 반드시 눈치를 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후, 일행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찌 되었는가. 발견했다면......"
  "그들은 성문 부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무리를 발견해 이미 처단을 행하고 급히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무리의 위치를 알려서, 상부에 보고할 것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 말에 나는 바로 '그 무리를 처단했다' 라는 답을 하고서, 그 사실과 더불어 다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보고를 상부에 행하고, 그와 더불어 부상을 입은 전사들의 긴급한 호송 및 경비대의 보강을 요청하겠음을 밝히는 발언을 하였다.
  "알았다...... 우리 모두 위급한 상태야...... 가급적 잘 말해주어라."
  이에 그 전사는 자신들의 위급함을 밝히고서, 자신들의 안전 확보를 요청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듯한 말을 건네었다. 그 이후, 나는 뒤쪽에 위치한 전사들의 상태를 한 번씩 살펴 보았고, 그러면서 그들의 부상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부상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나는 곧바로 내성 안으로 들어섰다.

  내성 2 층과 다리와 인접한 문 너머에는 방 하나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방의 문 안쪽에는 케레브 족 여성 전사들이 좌우에 한 명씩 자리잡고 있었다.
  "그 침입자 무리를 격퇴했다고 방금 전에 이야기를 들었어, 회장께 이 사실을 보고드리려 하는 것이지? 회장께서는 옥상의 제단에서 의식을 행하시고 계신다, 따라서 지금은 바쁘시니, 보고는 2 층 내부의 사령부에서 할 수 있도록. 사령부실은 저 방 건너편에 있는 복도에 이르면 바로 앞에 보일 것이다."
  좌측의 여성 전사가 나를 보더니, 보고 사항이 있으면 2 층의 사령부에 가서 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내가 그 여성 전사에게 부상자가 있음을 밝히니, 이번에는 우측의 여성 전사가 말했다.
  "그에 관해서는 사령부에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나? 바깥의 일은 관련 지시 사항이 있을 때까지는 그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라, 여태껏 그래왔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 동안 그렇게 믿어오지 않았나."
  케레브 족 사회에서는 여태껏 사령부의 지시가 있지 않은 한, 바깥 사정이 다급하더라도 그 쪽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그런 케레브 족의 일원, 그것도 케레브 족 사회에 충성하는 사람으로서 행세를 하고 있었던 만큼, 그에 대해 감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할 수는 없었다.

  이전에 만났던 여성 전사가 말한 대로, 다리와 인접한 방의 건너편에 위치한 문을 통해 그 방을 나서니, 그 너머의 복도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문의 건너편, 그리 멀지 않은 앞에 문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문을 케레브 족 여성 전사가 좌우에 한 명씩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특별한 표식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전사들이 한 명씩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문이 바로 사령부실의 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문을 향해 다가가려 할 즈음, 좌측의 한 곳에서부터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이봐, 너! 여태껏 보지 못한 모습인데?"
  잠깐 고개를 돌려보니, 내 부근을 지나치려 한 케레브 족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로브 차림을 하고, 두건과 붕대로 얼굴 모습을 감추고 있던 여성으로서 아무래도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이 사령부를 향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 모양. 하지만 달리 어찌할 바가 없었는지, 자기 일도 바빴는지, 좌측에서 우측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를 지나쳐 갈 따름이었다.
  사령실 부근에 이르자마자 잠시 지나왔던 그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복도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복도를 지켜보는 동안 몇몇 케레브 족 사람들이 2 ~ 3 명씩 모여 있으면서 좌측, 우측 방향으로 복도를 지나쳐 가고 있었으며, 그들 중 몇몇은 길을 지나치면서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일상적인 대화도 있었지만, 가볍게 넘겨 짚을 수 없는 대화도 있었으니, 거점의 케레브 족이 계획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 대화 중에 포함되어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 계획들 중에는 인근의 마을을 침략한다는 너무나 전형적인 계획도 있었지만-그 중에는 슈라일(Shurail) 도 있었을 것이다-, 심상치 않은 계획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금사 지대, 화산 지대에서 물, 공기를 오염시켜 케레브 족 이외에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려 하는 계획도 있었다. 요원들을 마을 내에 침투시켜서 공기나 물과 같은 일상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들을 오염시킨다는 계획으로, 실현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거점 내 케레브 족 사람들의 능력으로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에 가깝기는 하였으나, 가능성을 떠나, 성계 사회의 존속에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던 만큼, 실현 가능성을 떠나 좌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대화를 들으며, 사령실로 나아가는 도중에 어떤 케레브 족 여성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하였으나, 부르기만 할 뿐이었던지라 위협이라 느끼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의 부름을 무시하며 사령실의 문으로 나아갔다. 그 때, 그 여성으로부터 자신을 무시하느냐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험상궂은 인상의 케레브 족 남성이 화려하게 꾸며진 책상에 앉아서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온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나도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케레브 족 여성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기에 나에 대해 별로 의심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였다.
  거만한 자세로 앉은 그 남성은 나를 보더니, 바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고, 이에 성채에 침입한 외부인들이 있었음을 밝히고서 그들이 본성과 내성을 잇는 다리를 비롯한 곳곳의 전사들을 해쳤고, 그로 인해 우선 정말 부상을 당한 다리 위의 전사들부터 우선 치료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 그 침입자는 어찌 되었는가."
  "성 밖으로 도망간 것을 제가 추적해 격퇴했습니다, 당분간은 이 침입자들을 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후, 무기력한 목소리로 남성이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을 한 이후에 부상자들의 신속한 지원을 부탁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그러나, 사령실의 사무 요원으로 추정되는 그 남자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일 갖고 유난을 떨고 있다고 여기었는지, 이전과는 유난하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말을 건네었다.
  "그까짓...... 몇 명 다친 것이 그렇게도 대단한 일이 되기라도 하나."
  그리고서 그들은 그들이 알아서 부상 치료를 하든지, 죽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고서, 경비 담당자가 없어지면 새로 기용하면 된다고 말하고서 그러한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냐고 묻더니,
  "그 녀석들, 죽든 말든, 알아서들 하라고 해!"
  라는 말을 건넨 이후에 도움을 줄 사항 같은 것은 없다고 전하라는 말을 건네었다. 즉, 부상당한 전사들을 향해서는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 불만 있나." 그리고서 나지막히 목소리를 내며 물음을 건네는 남성. 이에 나는 달리 말을 건네지 않고, 그저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인사를 하고서 바로 들어왔던 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케레브 족에 관해서는 이적지부터 구성원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봤지만, 암만 못난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부상을 당한 자들에 대한 배려 정도는 해 주리라 생각했었던지라, 그들의 대응에 대해서는 예상 외라 여길 수 있었다, 나중에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그런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올 무렵, 이전의 그 케레브 족 여성이 다짜고짜 나의 바로 앞으로 들이닥쳤다. 검은 로브 차림을 한 여성으로서, 내 앞으로 다가오자마자 그는 시비를 거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내 말 안 들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방금 전에 사령부로 들어가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신과 마주해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지 않았나요."
  이 시비에 나는 바로 그렇게 화답을 하였으나, 여성은 그런 나의 발언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바로 "사령부?" 라고 말하더니, 그에 이어 신경질을 내며 물었다.
  "거기 가서 얼마나 시간 보내다가 오려 했어?"
  그리고서 나를 향해 검은 장갑으로 감싸인 주먹을 휘두르려 하는 그 때, 입구 쪽에 서 있던 여성 전사들이 그 여성을 다가와서 그를 제지하려 하였고, 한 동안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결국 그 여성은 나에 대한 위협을 결국 포기하고는 복도의 좌측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렇게 그 여성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여성 전사들 중 왼편에 보인 이가 문 앞으로 돌아가기 전, 나를 잠깐 보더니, 나에게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용무가 끝났으면 어서 나가라, 또 이런 실랑이 짓을 벌이거나 하지 말고."
  "예." 악인들의 거처인 만큼,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별 일 아닌 듯이 알겠다고 답을 하고서 바로 좌측 통로로 나아가는 것으로써 그 일대를 지나쳐 가려 하였다.

  입구 기준으로 복도 좌측의 문을 지나, 그 너머의 복도를 따라 나아가려 하면서 나는 3 층을 향하는 계단을 찾으려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건물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구역인 넓은 방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바닥과 기둥을 비롯한 모든 것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그 방은 좌측에 발코니가 위치하고 있어서 그 발코니를 통해 성채 너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감빛 하늘 아래로 펼쳐진 고요한 호수의 수면, 그리고 그 너머의 숲길과 산길 그리고 빛이 자리잡은 나무를 볼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전망을 가지는 곳이다.
  이 성채를 별장으로 활용하고 있던 포헤 느와흐가 쓰러지고, 그가 이끄는 케레브 족 세력이 멸망한 이래로 근방의 마을이 슈라일(Shurail) 에서 그 일대의 전망을 사람들이 앉아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이루는 대리석의 색에 어울리게 하얗게 칠한 의자 및 원탁들을 다수 마련해 곳곳에 배치했었다.
  케레브 족 사람들은 슈라일 마을에서 온 그 의자들이 배치된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해 보였고, 그래서 방에 들어서면서 의자에 앉아 담소를 주고 받는 케레브 족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이어지는 과거의 동족이었던 엘베, 델바 족 그리고 드벨파 족에 대한 비난과 폭언이 이어지는 곳에서 오래 머무르거나 할 수는 없었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아 재빨리 그 일대를 벗어나 3 층을 향하는 계단을 찾아 나서려 하였다. 그 때,
  "어~이! 거기 너! 나와 잠깐 함께 있어 보지~?"
  라고 나를 부르는 케레브 족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협박을 가하는 듯한 그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바로 그 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줄 생각 같은 것은 없었지만 성채의 3 층에 관한 대략의 정보를 누군가에게 들어볼 필요가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고 여기었던 것. 그래서 바로 그 목소리가 들린 원탁을 향해 다가가 보았다, 방의 한 가운데 바로 우측 근방이었다. 그 탁상 주변의 의자에는 케레브 족 여성 2 명과 남성 1 명이 모여 앉아 있으면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두 눈이 피와도 같은 붉은색을 띠며 번뜩이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나를 부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지겹도록 본 사람들과는 다른 인상을 가진 이들이라 한편으로는 낯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신기했음이 나를 부른 이유라고. 그런 그들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그들에게 3 층으로 가는 통로에 대해 물었으나, 그들은 그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야~ 저 년 건방진 것 봐라~. 야, 신입! 우리한테 왔으면 우선 우리한테 인사하고, 우리 얘기부터 들어주는 것이 예의 아니니? 그렇게 건방져서 어디......"
  그리고서 바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야, 잘 들어! 지금부터 닥치고 우리 말이나 들어, 너는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우리들 얘기 다 듣고 나서나 해!"
  내가 원하는 바에 대한 고려는 마음 속에 조금도 들어있지 않은, 낯선 사람들은 무조건 '신입' 이며, '신입' 은 '선배' 들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부조리한 위계 질서를 가득히 반영한 발언이었다. 힘을 추구하며 고향을 떠나, 스스로를 '에레브' 라 칭한 엘베 족의 후예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러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힘의 추구, 그 대가로서 선조들 이래로 그들은 타락의 여파를 겪어야 했고, 그로 인하여 이들은 영혼마저 어둠에 물들어 악한 사념을 우선 떠올리는 이들이 되었을 터이다. 엘베 족, 그리고 델바 족과 드벨파 족에게도 없는 부조리한 위계 질서가 케레브 족에게 있음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서 그들은 나를 자리에 앉히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그간 주고 받고 있던 대화에 관한 사항들을 나에게 다 쏟아버리려 했던 모양으로 이러한 케레브 인들의 언행에 대해 나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공감을 하지 못한다고 답을 하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던 만큼,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남성은 내가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을 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바로 정색을 하더니,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물었다.
  "이봐, 너, 지금 나를 속이려고 작정했냐!?"
  그리고서 나의 멱살을 잡더니 바로 왜 거짓말 하느냐고 외치는 것으로써 협박을 하였다, 그러더니 마치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소리를 치는데, 그 때, 내 건너편에 있던 여성이 바로 다그쳤다.
  "그만둬! 저런 애새끼 하나 잡는다고 뭐 우리가 달라지냐? 우리만 피곤해지지, 놔 두고, 쟤 소원이나 들어 줘!"
  그러자 남성은 바로 알았다는 듯이 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분기를 어찌할 수 없었는지 나를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그리고서는 마지못해 하고 있음을 역력히 드러내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3 층 계단은~ 저기, 저어기 보이지? 저 건너편에 가면 문이 있거든? 저 문을 열고 나가봐, 그 통로를 잘 가다 보면 찾을 수 있어, 알겠냐? 그리고~ 저 3 층으로는 올라갈 생각하지 마라, 주인님께서 오늘 특별 제례를 여시어, 신을 깨우려 하시니까 말야. 그 의식에 방해되어서는 안 된단 말야~ 만약에, 누가 거기 올라가서 의식이 취소됐다, 이런 말 나오면~ 무조건 네 책임이야, 응?"
  그리고서 "그 때는 죽여버린다, 진짜." 라고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서 그는 바로 나에게 다시 한 번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며 갈 것을 종용하려 하였다.
  "됐으니까, 얼른 가. 꺼져, 이 진따 새X야."
  그리하여 나는 3 층 계단에 관한 정보를 얻은 이후에 바로 그 남성이 가리킨 그들이 위치한 탁자 건너편, 입구 우측에 자리잡은 문을 통해 그 구역을 나서려 하였다, 그러는 그 때에 이전에 나를 위협하려 하였던 그 남성의 여성들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까지의 위협적인 목소리는 어디 가고, 실없이 웃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케레브 족들이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는 그 구역을 떠나고서 그 문 너머의 통로로 들어섰다. 휴식처만큼은 아니었지만 통로 일대에도 여러 사람들이 서 있었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제의가 행해진다는 3 층 공간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많은 휴식처가 더 좋았겠지만 그 곳에는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통로를 오가는 도중에 당시 내가 서 있던 부근의 한 곳에서부터 들려온 대화는 나에게 있어서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대화를 통해 들려주고 있었다. 붉은 바위의 산에 위치한 '카즈 라' 라는 역에서 케레브 족 여성들과 내가 마주했던 일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소문이 들려왔다고 한다, 어떤 케레브 족 여성들이 감빛 지대 출신으로 추정되는 소녀와 대치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거기서 나는 그 여성들이 소녀에게 맞은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리라 예상했지만 대화는 내가 예상했던 바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여성들은 '도시'-아무래도 성채를 그렇게 칭하는 모양-에 도착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그 소녀를 무자비하게 때려눕히는 것으로 '정의 구현' 을 했다고 밝혔던 것. 이에 사람들은 모두 그 여성들을 칭찬하며, '감빛 민족' 의 정체성 및 독립성을 부정하는 이들은 모두 '파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그 대화를 들은 이후, 나는 그에 개의치 않으면서 길을 계속 돌아다녔다. 3 층을 향하는 계단이 자리잡은 곳과 이어진 문은 이미 찾았지만 그냥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의식에 어울리는 예복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우선 3 층을 향해 나아가는 계단 반대편으로 나아가 보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출입문을 지나치게 되었으니, 반대편인 휴식처로 다시는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리하여 출입문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나는 이전에 나를 들여보냈던 그 경비대 전사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경비대 전사들 중에서 왼편에 보였던 이가 물었다.
  "바깥 전사들의 사정이 걱정이 되었나."
  "아니오, 딱히 그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저 오른편에서 볼 일이 있는지라......"
  "그렇군." 이에 전사는 그렇게만 화답을 할 뿐, 특별히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다, 특별히 문제될 일을 일으키거나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딱히 신경을 쓸 필요를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 그리하여 나는 바로 그 출입문 일대를 지나쳐서 3 층을 향하는 계단 반대편의 공간에 이를 수 있었다.

  계단이 위치한 그 일대의 반대편에 위치한 그 공간은 호수의 동쪽과 마주하고 있었던 만큼, 공간 가장자리의 난간 너머로는 그 일대의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그 난간 일대에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인상을 가지는 두 명의 여성들이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면서 들른 마을의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이어가고 있는 이야기였다.
  모르기는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들은 세상의 적이 된 이상, 세상이 그들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들을 비롯한 케레브 족 사람들은 이러한 실정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낯설지 않아 보이는 인상의 흉악한 여성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올린 바가 있었다. 이전 붉은 바위의 산에 있는 '카즈 라' 역에서 만났던 그 케레브 족 여성들과 무척 닮은 인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혹시...... 이름이 어찌되는지 아세요?"
  "데보라(Deborah). 옆의 애 이름은 자넬(Janel) 이라 해."
  그리고서 붉은 바위의 산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기분 나쁜 일을 겪었다고 말하고서,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카즈 라 역에서 감빛 민족으로 추정되는 여자애한테 습격을 당했어."
  이전에 들은 바대로였고, 그래서 나는 이들 무리, 데보라와 자넬이 그 당시 만났던 이들의 이름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당시 겪은 일에 대해 무척 화를 내고 있었으며, 자신을 '가격' 하였던 이 그리고 그 무리에 포함된 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증오를 품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대화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나는 그를 가격하지 않았으며, 위협 사격을 가했을 뿐이었다. 이들은 그 위협 사격에 바로 질겁을 하고 물러났으며, 그 이후로 여러 사람들의 질타를 받은 이후에 역을 떠났었다. 기차를 이용하지 않은 만큼, 그들에게는 그 날 이내로 감빛 지대로 정상적인 수단을 통해 오거나 하지는 못했을 텐데, 정말 아델에게 애걸이라도 해서 그의 도움을 받았던 모양.

  "멍청한 감빛 민족 계집애 같으니...... 감빛 민족이 복된 삶을 사는 것이 누구 덕인 줄 알고, 돼지 같은 난쟁이들 편이나 드는 거야."
  "그러게 말야, 복에 겨운 녀석 같으니라고. 너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데보라가 건네는 말에 나는 조용히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실제로 어떠한 생각을 하든, 그것은 상관 없었으니, 당시에 내가 보이고 있던 모습은 나의 진짜 모습은 아니었음이 이유였다. 그렇게 조용히 두 사람을 지켜보는 동안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으니, 이후, 데보라는 이전에 한 번 제대로 굴욕을 당했지만 '감빛 용사' 들과 자신들을 비롯한 '감빛 민족' 의 여군주 아델을 비롯한 '흑조' 들이 그를 비롯한 어리석은 자들에게 응징을 가할 것임을 기대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얼마나 위대한 일이라 생각하니, 너도 기대하고 있지?"
  라고 물었다. 그리고서 내가 실로 그러할 것이라 답을 하자, 자넬이 데보라를 대신하여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서, 자신들을 가격했던 그 사람 역시 응징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바로 드러내었다.
  이후로 그들은 세니티아 행성계의 정령들에 대해 천박하다고 비난을 가하는 한 편, 세니티아 성계의 마녀들을 '악마의 어둠' 을 받아들일줄 모르는 '멍청이들' 로 분류하면서 마법사가 추구해야 하는 바를 전혀 모르는 바보들이라 모욕을 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일이 바빠서 바로 가 봐야 한다고 말하고서, 바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바로 주변 일대의 사람들로부터 '의식' 을 위한 '예복' 에 관한 정보를 얻어보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알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는 흥미를 갖거나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내가 자신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의 의사를 들어주는 것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에게서 들려온 대화 중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만한 것이 몇 있었다.

1. 그들의 지도자는 자신을 '섭정' 이라 칭하고 있으며, '부재' 하고 있는 왕인 '파르사가모' 를 대신하는 존재임을 자청하고 있다는 것.
  이들 케레브 족의 잔당이 추구하는 바는 파르사가모의 부활로서, 지도자는 이미 파르사가모가 부활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그들의 지도자인 '섭정' 은 반 세기 전의 사태로 인하여 처형된 자들의 영혼이 깃들 육신을 찾아나서는 것. 이들은 현재 동족 한 명을 그 영혼 무리가 깃들 곳으로 삼고 있으며, 영혼들이 깨어남에 따라 그 상태도 가면 갈 수록 불안정화하고 있어 어서 그들의 '그릇' 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2. 케레브 족의 지도자는 '세피아 로사(Sefia Rotha)' 라는 자와 내통하고 있다.
  '세피아 로사' 는 세니티아 행성계 출신으로서 '마녀 일족' 이라 칭해지는 '마법의 정령' 이라 자칭하나, 사실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 존재에게는 막대한 지식과 마력이 있고, 지식 그리고 마력을 그로부터 얻기 위해, 그리고 포헤 느와흐가 그와 한 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 케레브 족의 지도자는 종족 전체를 팔아넘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몇몇 케레브 족 사람들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내가 당장 할 일에 큰 도움이 되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렇게 헛걸음만 반복하면서 다시 3 층을 향하는 문 부근으로 돌아갈 무렵,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어떤 벽 부근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앉은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나이 든 듯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는 케레브 족 여성으로서 범상치 않아 보였던 인상을 가지는 그 여성에게 다가가 그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혹시 제례를 위한 특별한 복식 같은 것이 있나요?"
  그러자 여성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정말 알고 싶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이에 여성은 나를 잠시 가만히 본 이후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며, "따라 와라." 라고 말을 건네며 자신이 앞장서서 건너편 근방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려 하였다.

  창가의 침실과 옷장이 자리잡은 방에 거주하고 있던 그 여성은 이전에 케레브 족의 사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서, 한 때는 '대군주 파르사가모' 의 측근으로서 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나에 대하여, 범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진다고 여기고 있었고, 그에 대해 그래서 잠시 당황하기도 하였으나, 그는 나에 대해 마력이 충만한 존재라 여기고 있을 뿐으로, 그 이외에 나에 대해 달리 생각하고 있는 바가 없었다.
  그는 나에 대하여 사제의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고 말한 이후에 조용히 한 숨을 내쉬면서 사제는 능력이 있다고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안타깝다는 의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서 여성은 바로 나에게 한 벌의 검은 옷과 검은 장갑 그리고 가면을 건네었다, 그것이 '에레브 족의 정식 사제복' 이라고. 그 사제복을 건네며 여성은 나에게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이것이 우리 에레브 족의 정식 사제복이다, 사제들은 제례를 수행할 때마다 이런 옷차림을 하지. 은퇴할 때에는 반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기서 그 원칙대로 행동하는 이들이 어디에 있겠나, 2 벌 마련했었고, 모두 내가 이 방에 갖고 있어, 이 옷은 그 2 벌 중 하나인 게야."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그 옷을 원한다면 줄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서 가지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내가 그렇다고 답을 하자 그는 바로 좋다고 답을 하고서 한 번 그 옷을 입어볼 것을 권하였다. 이에 나는 바로 알았다고 답을 하고서, 이에 여성은 옷과 장갑 그리고 가면을 건네고서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한 번 옷을 입어 보거라."
  그리하여 나는 입고 있던 검은 상의와 검은 반바지 위에 검은 망토를 걸쳐 입고서 손을 장갑으로 감춘 이후에 후드를 쓰고, 마지막으로 금속제 가면을 얼굴에 썼다. 이렇게 되니, 케레브 족이 아니더라도 알아볼 수 없어 보였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그 눈구멍을 통해 주변을 보려 하는 나에게 여성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의 오른손에 올려 주었다. 감빛 마력이 채워진 것처럼 보이는 보석이 은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몸체에 박힌 장신구였다.
  "이것이 사제의 증표다, 의식장에 진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 증표가 필요하지, 사제복이 위장하기 쉬운 탓에 사람들이 하도 사제복을 갖추어 입고 사제인 척 하며 의식장으로 오고는 해서 말야. 하지만 이 장신구는 아무에게나 보급이 되지 않아, 그래서 이 위장 진입자들 중에는 이 증표를 가진 이들은 별로 없고, 그래서 이 증표를 보여주면 바로 의식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게야."
  그 여성은 내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의식장 내부로 들어서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나에 대해 에레브 족-케레브 족-의 의식에 무척 관심이 많다고 여기며, 그런 나를 도와주고 싶었을 따름임을 밝혔다. 그리고서 한 마디 당부를 하니, 그 당부란 이러하였다.
  "의식이 모두 끝나면 이 곳으로 반드시 돌아와서 사제 복장과 증표를 돌려줘야 한다, 알겠나?"
  그리고서 여성 역시 복장을 갖추어서 동행하겠음을 밝히고서 자신이 복장을 갖추고 나면 그 때 같이 가자고 말하고서 이후에는 자신을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였다. 다만,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여성 역시 복장을 갖춘 이후에 나는 여성을 따라 밖으로 나섰고, 그 이후에 통로를 따라 나서면서 이전에 지나쳐 갔던 3 층과 이어져 있을 계단이 위치한 공간과 이어진 문 앞에 이를 수 있었다.
  사실, 그 시점에서 더 이상 케레브 족 여성으로 분장을 할 의미는 없었고, 그래서 술법에 의한 분장을 사제복을 입은 시점에서 풀어 버렸다. 그 시점에서 허벅지, 어깨, 팔의 맨살이 천에 확 닿기 시작해 이전과는 옷을 입은 느낌에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 때, 여성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라도 했는지 바로 나에게 옷이 이상해졌느냐고 묻더니, 바로 밝게 목소리를 내며 옷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기사, 그 옷도 이제 낡았으니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할 법해."
  그 이후로는 마력을 사용해야만 케레브 족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에 어지간하면 말을 하지 않으려 하였다, 한 번은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수상하게 여길 여지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요할 때에만 말을 건네기로 하였다.

  계단의 끝에 위치한 문을 여성이 열어서 먼저 들어가고, 그에 이어 내가 그를 따라 들어갔다. 문 너머로는 작은 방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건너편 끝에는 굳게 닫힌 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에는 케레브 족 전사들이 한 명씩 창을 쥐며 그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먼저 들어서게, 나는 따로 저들에게 이야기를 잘 해 줄 테니."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내가 저들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사제복의 왼쪽 주머니에 품어 둔 증표를 꺼내서 전사들에게 보였고, 이에 전사들이 창을 쥐고 있지 않은 손으로 바로 문을 열어 주었고, 이후 나는 오른쪽에 보인 전사가 창을 쥐고 있지 않은 오른손으로 들어가라는 듯한 지시를 내려, 바로 그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나와 달리, 여성은 들어가지 못하였다, 스승으로서 참관 자격으로 왔음을 밝혔으나, 케레브 족 전사들은 그런 여성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리하여 방 너머에 위치한 의식장으로는 나 혼자 들어서게 되었다.

  문을 지나 도달한 곳은 좌우측 벽면 부근에 한 줄로 나란히 촛대들이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나란히 세워져 있었으며, 각각의 촛대들은 끝마다 하나씩 감빛을 띠는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부분에는 좌우로 한 줄씩 사제들이 나란히 각자의 건너편을 향하며 서 있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입구 건너편에는 제단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제단의 가운데 쪽에는 사제복에 흉갑, 배갑, 견갑으로 이루어진 갑주 차림을 한 사람이 입구 쪽을 향해 서 있으면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서 있었고, 그 좌우에는 유난히 검은 사제복 차림을 한 이들이 소매로 두 손을 감추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좌측에 보이는 대열로 나아가 그 대열의 가장 뒤쪽에서 그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며 서 있으려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제들은 자신들의 의식에만 신경을 쓰려 하였고, 나의 존재에 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들어온 사람이니 크게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갑주를 입은 사람의 뒤편으로는 감빛을 띠는 거대한 원반이 번개를 잇달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좌우에는 계단이 있어서 그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오를 수 있었던 모양. 원반이 번개를 일으키며 맥동하고 있는 동안 그 사제가 모임에 있는 사제들을 향해 말을 건네었다.
  "이제 우리들의 신들이 깨어날 때가 되었다. 그들의 편견과 아집에 의해 희생된 뜻 있는 사람들이 이제 여기서! 부조리로 가득한 짐승만도 못한 것들의 세상을 혁파해, 선택받은 우리들의 세상을 창조해 나갈 것이리라! 이미 우리들의 왕이신 파르사가모 님께서는 이미 다시 부활하셨다, 그 분의 힘과 우리들의 의지는 곧 하나가 될 지어니! 이 모두가 새로운 신들의 탄생을 기뻐하기 위한 일 아니겠는가, 그 위대한 순간을 고대하도록 하여라!"
  그리고서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사제는 자신의 전언을 이어가려 하였다.
  "이 위대한 순간을 파르사가모 님께서도 곧 이 곳으로 오시어 보시게 될 것이요, 그 분께서도 우리들이 행하는 새로운 신의 탄생을 위한 의식에 매우 흡족해 하셨느니라! 위대한 그 분의 재래를 신의 탄생과 함께 경건히 영접할 지어다!"
  그러더기 잠시 후, 그 남자는 자신의 바로 앞에 모여 서 있는 사제들을 향해 서 있으면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자아, 이제 누가, 위대한 신의 탄생을 직접 목도하겠느냐."
  하지만 사제들 중에서 자원해서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남자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누구 한 명이라도 나서도록 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히고서 바로 오른팔을 내밀어 가장 뒤쪽 대열에 위치하고 있던 나를 지목하였다.
  "그대, 바로 그 위대한 존재를 영접하고 오라."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바로 목소리를 변조해서 답을 하고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좌측 대열의 뒤편을 거쳐 좌측의 문으로 나아가려 하는 그 떄에 그 남자가 바로 자신의 왼손으로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아직 처음이라서 잘 모르는 듯 하군, 이 쪽이라네."
  그리하여 나는 입구를 거쳐 우측 사제들의 대열, 그 뒤편의 환하게 불을 밝히는 양초가 놓인 촛대들의 대열 부근의 길을 따라 나아가며, 제단 우측의 문에 이르렀다. 그 때, 제사의 담당자였을 그 남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대가 바로 신들을 맞이할 선봉자이니라, 그 위대한 부활을 목도하고, 그 찬란한 모습을 우리게에 알리도록 하라."
  그리하여 나는 그 명령을 받아서 활짝 열린 문을 지나, 그 너머의 공간에 이르게 되었다. 그 너머로는 길게 이어진 계단이 있었으며, 그 계단 너머로 또 하나의 열린 문이 있었다, 층계 공간의 출입문으로서 그 문 너머로는 바깥 공간과 더불어 또 하나의 계단이 보이고 있었다. 그 계단이 바로 성채의 본성 최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그 제단을 향하는 길목임이 틀림 없어 보였다.

  출입문 건너편으로는 역시나, 바로 위쪽을 향하는 계단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감빛을 띠는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 아래로 보이는 하얀 계단. 좌우 방향에 나란한 대열을 이루며 자리잡고 있는, 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금빛 촛대들에 둘러싸인 계단을 따라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나아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슬슬 걱정이 되었다, 여전히 성채 부근의 지면에 머무르고 있을 일행, 그리고 마을 부근에 남은 카리나의 사정이 걱정이 되었던 것.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카리나 등과 연락을 할 수 없었으니, 자칫했다가는 신분 위장을 했음이 탄로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노릇도 이제 머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신들' 이라 칭해지는 영혼들이 빙의되어 있다는 그 자와 만난다면 모든 것은 끝날 수 있음은 분명했다, 그래서 차분한 발걸음을 유지하면서 조심스레 본성의 최상부를 향하는 계단을 오르려 하였다.

  계단의 끝, 그 너머로 하나의 넓은 공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케레브 족이 제의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을 그 공간의 한 가운데에는 돌로 만들었을 십자가 하나가 박혀 있었으며, 그 십자가에 케레브 족으로 추정되는 마른 남성이 두 팔을 벌린 채로 묶여 있었다. 흉부에 감빛을 띠는 커다란 쐐기돌 조각이 박힌 채로 묶인 그 남성은 그 고통 때문인지 고개를 좌우로 계속 흔들기를 반복하면서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위대한 신의 탄생에는 어울리는 모습 같지는 않았다.
  그 고통 때문인지 영혼 빙의의 영향 때문인지 머리카락마저 높이 솟아난 모습을 보이는 그 흉측한 외견의 남성 앞으로 다가갔을 때에도 남성은 그저 괴로워하기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보니, 감빛의 기운이 마치 연기처럼 그의 몸에서부터 피어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볼 무렵, 나는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혹시 올라오는 이가 없는지 알아보려 하였지만 아무도 나를 따라 올라오지 않았다, 그저 나를 '신들' 을 영접할 존재로 여기고 내가 그 신들을 영접하는 것을 기다리며, 기도를 이어가고 있었던 모양.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속박되어 있는 그 자에게 다가가려 하는 그 순간, 몸이 살짝 반응을 하기 시작하였다, 몸에 내재되어 있던 빛의 기운이 주변 일대로 퍼져가는 감빛 기운과 반응을 한 것이었다. 그 때, 그 남성이 위치하고 있던 그 부근에서부터 이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가 나의 귓가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러자 음울한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는, 케레브 족 남성이 결박된 그 십자가 부근에서부터 나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전까지의 그 울음 소리와 같은 목소리였다.

...... 나는 군단이다......

  군단, 이미 그 남성의 몸에 수많은 영혼들이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어서 목소리가 그러한 식으로 답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 영혼들이 자신을 '군단' 이라 칭하고 있었던 것.

...... 그 수가 많기에......

  어느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를 만난 성자가 그 몸에 타락한 영들이 자리잡고 있기에 그를 일깨우니, 그 영들이 자신을 '군단' 이라 칭했다는 이야기. 어머니로부터 들은 성자가 '군단' 을 사람의 몸에서 쫓아낸 이야기의 끝은 달리 깃들 곳을 찾지 못한 '군단' 을 성자가 우연히 발견한 야생 짐승 무리를 지목해 그들에게 깃들도록 하니, 이에 짐승들이 광기에 사로잡힌 채로 인근의 물가에 빠져서 익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고 한다.
  그 성자의 일화를 케레브 족은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재현된 것인지 그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당시 나의 눈앞에 보이는 현상은 당시 어머니로부터 들은 성자의 일화와 거의 일치하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남성에게서부터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우리에게는 이 몸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
나를 새로운 그릇으로 인도하라!

  이윽고, 또 다른 목소리들이 나의 귓가로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여러 망령들이 모여 하나의 영처럼 행동하고 있었기에 일어날 수 있었던 현상이었다. 그 현상을 통해 나는 그 가녀린 육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육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망령들이 가진 영력에 의해 그 저주받은 육신이 붕괴할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올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좋다, 그대가 머무를 새로운 '그릇' 을 마련해 주겠노라."
  그리고서 이 호수의 감빛 기운이 깨어나면서 수많은 부정한 생명들이 깨어났음을 알리고서 그 생명들을 망령들이 머무를 수 있는 '그릇' 들로 삼으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호수가 인근의 마을로 산길을 따라 내려가서 그 마을의 모든 생명을 학살하고, 그 생명을 새로운 '그릇' 으로 삼도록 하면 된다는 조언까지 해 주었다.
  "어떠한가, 그러하니 지금 바로 그 육신을 떠나라,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약속대로 모든 일을 해 주겠노라."
  그 때, 그 남성에게서부터 단말마와 같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그와 더불어 그 육신에서부터 탁한 푸른빛을 띠는 수많은 유체 덩어리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이전에 케레브 족 조직에 의해 제물로 바쳐진 케레브 족 남성에 깃든 수많은 망령이자, '군단' 이라 칭해지는 존재의 실체였던 모양.
  육신에서부터 빠져나온 타락한 영들은 육신의 머리 위쪽 부근에 모여 하나의 큰 덩어리를 이루다가 더 이상 육신에서부터 덩어리가 빠져나오지 않을 즈음, 수많은 얼굴들이 표면에서부터 생성되며 마치 수많은 머리들이 뭉친 형상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 그 머리들은 하나하나가 기괴하고 사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타락하여 파멸한 자들이 그들의 근원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었다.
  수많은 사악한 형상들이 모여 이루어진 괴물은 자신들의 그릇이었던 생기 잃은 육신이 결박이 풀려 십자가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 그 위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마치 나를 위협하는 듯이 검보라빛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괴물에게서부터 수많은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자신을 인도하라고 명령하는 목소리였다.

'그릇' 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보내라!

  이에 나는 바로 알았다고 답을 하고서 자신을 따라오라 명령을 내렸고, 그리하여 나는 그 수많은 사악한 영들이 모인 그 집합체를 대동하고서 제단 구역과 이어진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3 층의 제의를 위한 구역에 이르렀을 때, 사제들과 제사장은 의외의 상황이 다가온 듯이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신들' 에 의해 내가 돌아오지 못하리라 여긴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 눈치를 채기라도 했었나.'
  만약에 그들이 나를 동료로 계속 여기고 있었다면 돌아오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생환을 의아하게 받아들였고, 더욱이 '신들' 을 대동하고 있는 나에 대해 공포에 질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제사장이든 누구이든 나의 실체를 대략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나를 자신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인 '신들' 로 보내는 것으로써 그 힘에 의해 내가 죽는 것을 바라고 있었으리라. 내가 '신들' 을 인도하는 모습을 보고, 사제들이 공포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랬던 내가 실은 '신들' 의 영도자였다는 생각에 의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신들' 의 실체인 망령 집합체를 보면서 신의 모습에 대한 의아함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을 지나쳐가며 나는 본성과 외성 사이의 다리를 지나 외성을 거쳐 다시 성채 밖으로 나갔다. 성채 밖으로 나가자마자 케레브 족의 사제복 차림을 한 사람이 망령 집합체를 이끌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성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린, 리아 자매 그리고 엘리사가 바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아직 본심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그러다가 망령들이 자신을 해할 존재임을 간파하고 나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우선 망령들을 앞으로 보내고, 슬쩍 두 손으로 하얀 빛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린, 리아 자매가 바로 나임을 알아차리고 엘리사에게 이를 통보, 그리고 나와 망령들을 일단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케레브 족은 빛의 기운을 활용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변장을 풀지 않는 채로 망령들을 인도하며 조심스럽게 목제 다리를 따라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전의 괴물 습격으로 인해 파괴된 목제 다리의 중앙 구역에 이르렀을 때, 내가 먼저 그 감빛 호수의 한 지점에 이르렀던 망령들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자아, 호수로 뛰어들어라, 감빛 기운에 의해 깨어난 괴물들을 너희들을 육신으로 삼으라!"
  그 이후, 그 동안 함께 모여 뭉쳐있던 검은 혼들이 일제히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구심점을 잃은 듯이 흩어져가는 추악한 형상의 망령을 품은 검푸른 기운은 일제히 감빛 호수의 수면을 향해 상공에서부터 맹렬히 뛰어들어 갔다, 마치 자신들 중 하나를 맞이해 줄 난자를 찾아가는 정자들의 무리들과도 같이.
  이 검푸른 기운들은 감빛 호수의 수면과 그 색의 위화감이 없었기에 수면 아래로 뛰어들자마자 바로 흡수되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 망령들이 감빛 호수 안쪽에 아직 남은 어둠의 생명들을 찾아내 그들에 깃들 수 있었는지, 아직 망령들이 모두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때에 하나씩 물고기 인간을 비롯한 괴 생물들이 수면 위로 튀어올라 다리의 건너편, 그 너머를 향해 맹렬히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두 눈에서부터 광기를 피의 색과도 같은 붉은 빛을 내면서.
  대다수는 물고기 인간이었으나, 해골의 형상을 띠는 것도 있었고, 수상 식물을 몸 곳곳에 달고 있는 회색 덩어리 인간의 모습을 갖춘,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종류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두 손에 달린 손톱을 날카롭게 하고 있었으며, 무기를 든 이들은 그 무기의 날끝을 앞세워 가며 돌진하고 있었다. 이전에 마주했던 그 괴물들보다도 사납게 울부짖고 있던 그들의 기세만큼은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을 당장에라도 모두 죽여버릴 듯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이 다리를 통해 건너편의 호수가를 향해 호수를 가로질러 나아가고, 그렇게 망령들의 집합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 슬슬 사제복을 벗을 때가 되었댜고 생각하였다. 뒤따르려 하는 케레브 족 전사들이 있었겠지만 지금 즈음이면 린, 리아 자매나 엘리사가 그런 그들을 저지하고 제압해가고 있을 것이기에 그들의 추격에 대해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망령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빛의 기운을 두 손에서부터 일으켜 그 빛의 기운이 다리의 부서진 부분 그 아래의 수면에 띄워 올리려 하였다, 그 빛의 기운이 케레브 족에 의해 폭주하였을 감빛 기운을 진정시키고 그것이 사악한 성질을 다시는 갖지 못하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면서.
  이후, 나는 이전에 만났던 전직 사제였던 그 늙은 케레브 족 여성으로부터 받았던 사제복을 벗어버렸다, 우선 가면부터 벗은 이후에 두건을 내리고 그 이후에 사제복 전체를 벗어서 오른손에 잡은 이후에 다리 뒤편으로 날려 버렸다. 그렇게 사제복을 벗자마자 나는 다리의 부서진 부분, 그 건너편을 향해 물에 뛰어들어서 잠시 헤엄을 친 이후에 도달하는 행동으로써 건너갔다, 공중에 발을 딛어가며 점프하는 것으로는 그 건너편으로 도저히 건너갈 수 없어서 수영을 통해 건너가려 한 것. 엘리사의 사정이 걱정이 되기는 하였지만 그는 린, 리아 자매와 같이 있었으며, 린, 리아 자매가 마법을 통해 전이를 해서 호수 아래에 자리잡은 마을 슈라일에 그가 이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의 사정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수영을 통해 건너편에 이를 무렵, 나를 향해 작은 나무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엘리사가 타고 있었으며, 그가 노를 지어가며 그 배를 움직여 내가 위치한 그 일대로 오고 있었다.
  "아르사나 씨! 방금 전에 보고 있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그러면 배를 태워드릴 수 있었는데......"
  내가 다리의 부서진 구간에 이를 무렵에 이미 엘리사는 섬의 근방에 있던 배를 타고 근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나는 미처 보지 못했고, 그래서 헤엄으로 호수를 건너기를 강행했던 것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으면 굳이 옷이 물에 젖는 것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엘리사의 배를 타고 다리를 걷는 대신에 그 배에 의지하여 호수를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괴물들이 잠복해 있던 호수였던지라 호수를 가로지르는 동안 여러 괴물들이 한 두 마리씩 계속 습격해 왔고, 이에 내가 이들을 하나씩 처단하는 것으로써 습격을 저지해 갔다.

  그렇게 엘리사의 배를 통해 호수가로 돌아가려 할 무렵, 성 바깥, 적교 앞에서 처음 만나서 외성 내에서 처음 대면했던 그 사술사가 떠올랐다, 케레브 족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해가며 나를 비롯한 침입자들을 저지하려 하였던 이. 케레브 족 사람들 중에서도 유난한 편이었던, 그래서 본성 내부로 들어간 이후에 무슨 일을 꾸밀지 알 수 없었던 그 남자는 정작 성내로 들어왔을 때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엘리사 씨, 그 때의 그 남자, 기억하세요?"
  "예, 케레브 족 사람들의 정신 조종을 통해 저를 비롯한 일행을 막으려 했던......"
  이후, 나는 그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알렸고, 이에 엘리사는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성내로 '적들' 이 들어오지 않아 성 내부가 '평시 상태' 에 있었기에 굳이 나서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 그의 행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는 사이, 이미 엘리사의 배는 슈라일 부근의 호수가에 도달하고 있었다.
  산길을 바로 내려가지 않고, 산길 부근에서 상황을 보기로 하였다. 산길 곳곳에 자리잡은 경비대와 동행하고 있었을 카리나를 만나보는 것은 겸이었다. 그렇게 나는 엘리사가 경비대와 먼저 만날 수 있도록 그가 앞장서서 나아가도록 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 나서면서 주변 일대를 둘러보는 역할을 맡았다, 혹시 호수 밖으로 뛰쳐나온, 망령이 깃든 생명체들의 습격이 이어질 가능성에 나름 대비하기 위한 일이었다.

  호수 아래쪽 산길에 이르자마자 맹렬한 총성과 더불어 끔찍한 단말마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광탄들이 좌우의 수풀에서부터 물고기, 회색 덩어리, 박쥐 등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인간형 괴물들이 내달리려 한 산길을 향해 쏟아지며 괴물들의 몸에 박히고 있었다. 광탄의 폭풍 속에서 피를 뿜어내면서 괴악한 목소리와 함께 쓰러져 가는 괴물들의 모습이 산길 곳곳에 보였다. 회색 덩어리 괴물은 피가 터지다가 결국 몸 전체가 터지면서 피와 엉킨 덩어리가 되어 피와 함께 산길에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이기도 하였다.
  산길을 바로 내려가는 것은 당연히 위험했으니, 산길 좌측의 숲길을 통해 산 아래로 나아가 보려 하였으며, 그 산길의 곳곳에 위치한 나무 사이마다 마을의 경비대 사람들이 총과 석궁 등을 들며, 산길 아래로 내달리는 괴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총격에는 조준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당시의 경비대 사람들은 각자 손에 들고 있는 총으로 광탄을 그야말로 '난사' 하고 있었다. 그 난사로 인해 길을 내달려 가던 괴물들이 한 발 맞을 것을 몇 발씩 맞아가며 피가 터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
  그렇게 망령이 깃든 괴물들이 산길을 내려가다가 사살당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산길 오른편에서부터 낯설지 않은 외견을 가지는 이가 나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푸른색을 띠는 긴 머리카락을 드러내며, 하늘색 케이프와 하얀 의상 그리고 긴 치마를 드러내는 이로서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카리나였다. 나를 보자마자 바로 반갑게 나를 맞이하려 하였던 것. 이후, 카리나는 이전에 난데 없이 괴생물들이 출현했음을 밝혔다.
  "그 때, 촌장이신 그라티아 씨께서도 말씀하셨어, 언젠가 물고기 등의 수중 생물들의 모습을 갖춘 괴생물들이 마을을 향해 산길을 통해 달려들 것이라고. 그래서 정말 그러할까 싶어서 의심을 했었는데, 정말 그러한 일이 일어나네......"
  그리고서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이러한 순서대로 카리나와 헤어진 이후에 성채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그에게 말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을 하고서, 나는 그리하여 이성을 잃은 악령들이 괴물체들의 육신을 그릇 삼아서는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돌진해 왔던 것이었음을 밝혔다. 그러자 카리나가 다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계속 내달리다가 사살당하는 광경을 향해 다시 돌아서더니, 잠시 그 광경을 보다가 우측 곁에 있던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르사나, 그러니까, 성채에는 케레브 족 사람들이 '신들' 로 모시는 악령 집단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들이 저 괴물들의 육신에 빙의했다는 것이지? 그 역할을 네가 수행했던 것이고."
  이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답을 하였다. 이후에도 수많은 괴물들이 산길을 따라 내달리다가 사살되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악령들이 그 집합체에 머무르고 있었는지를 그 광경을 통해 바로 알 수 있어 보였다.

  "성채 내부의 케레브 족 사람들은 이 상황을 알고 있으려나."
  "아직 모르고 있을 거야, 그들은 '신들' 의 힘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으며, 그 영혼들이 마을 사람들에 빙의해 혼란을 자조할 가능성을 바라고 있었어. 그와 더불어 '파르사가모' 의 부활이 자신들을 구원하리라 믿고 있기도 했대."
  "자신들이 직접 저 아래의 마을 하나조차 어찌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망령들로부터 도움을 얻으려 한 것일 테고."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그 말이 옳음을 확신할 수 있다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케레브 족의 전사들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그들이 몰려오든, 사람들이 성채로 다가가든 간에 상관 없이 성채의 탈환은 가능할 것임을 전망하기도 하였다.
  "그렇구나...... 린, 리아 두 분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니?"
  "여전히 성채 부근에 머무르시고 계셔, 아직 케레브 족 사람들이 공세로 나서지 않고 있기는 한데...... 상황이 오면 두 분 모두 알아서 잘 대처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
  두 사람은 이미 여러 차례의 모험을 거친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해 보였고, 그래서 두 사람에 대해 딱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 생각을 카리나에게 전했다. 카리나 역시 두 사람에 대해서는 딱히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보지 못한 사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해졌고, 그래서 그들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된 것이라고.
  이후, 카리나가 전한 말에 따르면 그는 내가 성채에 있을 즈음에 경비대 사람들에게 성채에 '다스 에레보사' 의 잔당이 다수 남아있음을 이미 알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자신이 주도하여 경비대 사람들이 성채에 이르도록 할 생각이 있었다고. 그러면서 그는 성채 상황에 큰 변화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다리가 끊겼어, 이전에 괴물의 습격이 있어서......"
  이에 나는 우선 성채로의 접근 도중에 있었던 괴물의 습격으로 인해 다리가 끊겼음을 알렸으며, 성채로의 접근 도중에 산길로 내려오는 이들과 같은 괴물들의 습격이 이어졌다고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망령들이 다수의 괴물들에 빙의해 호수 밖으로 몰아냈다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괴물들이 호수에 숨어 있을 테니, 그에 대한 주의를 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카리나는 그리 놀라거나 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였다, 악령 깃든 괴물들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그 괴물들이 호수에서 유래된 이들임을 바로 알아차렸고, 그들의 근원인 호수에는 더 많은 괴물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라티아에게 호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려 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번 일은 모두가 집결해서 성채로 나아가며 해야할 일일 거야, 그러니까 우선은 린과 리아, 두 분을 만나서 슈라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줘. 그 사이, 나는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슈라일로 돌아가서 그라티아 촌장께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전하도록 할 테니까."
  그리하여 나는 엘리사와 함께 다시 성채를 향하는 호수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게 되었다. 배는 호수 가장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배를 통해 섬으로 건너가면 되었다, 여전히 괴물들의 습격은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 때마다 내가 빛의 기운으로 이들을 격추시켜가며 배의 노를 젓는 역할을 맡는 엘리사를 보호하려 하였다. 섬에 이를 즈음, 엘리사는 나무 다리의 진입 구간 바로 우측의 한 지점에 배를 놓아두고서 배에서 내렸다.

  다시 섬으로 나아갔을 무렵, 나는 린과 리아가 성채 앞에 머무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만, 변화가 컸던 쪽은 성채 쪽으로 적교는 여전히 내려져 있었지만 적교 위 성벽에 이전보다 많은 케레브 족 전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접근해 오면 바로 사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모양.
  "아르사나 씨, 돌아오셨네요."
  두 사람의 근처로 올 무렵, 총을 지팡이처럼 바닥에 짚고 있으면서 근방의 바위 위에 앉아있던 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서 그간의 상황에 대해 말하길, 사제로 분장했던 내가 떠나간 이후, 그 틈을 노린 나를 비롯한 자매가 습격하지 못하도록 케레브 족 전사들이 성채 입구부터 대비를 하기 시작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서, 바로 린에게 다가가 더 이야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은 악령들을 데리고 떠나간 사제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한 듯해 보인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바로 "그렇군요." 라고 화답을 하였다. 이후, 나는 호수 근처의 산길에서 카리나를 만났음을 밝히고서 그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알린 이후에 린과 리아가 산길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전언을 하였음을 밝혔다. 그리고,
  "마을의 경비대와 자신 그리고 두 분을 비롯한 마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성채를 향한 총 공격을 행하도록 할 생각인가 봐요."
  라고 그가 행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의도를 밝히자, 린이 그에 답하기를, 자신과 리아는 그들의 영향권 밖에 있으면서 그들을 계속 지켜볼 생각임을 밝힌 이후에 만약에 카리나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성채로 공격을 행할 시에는 자신들이 그에 바로 가담할 수 있도록 하겠노라는 생각을 밝히고서 그 생각을 카리나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든 이 곳에서 무사히 계실 수 있을 거예요, 두 분의 말씀을 믿고, 우선 카리나 씨 곁으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그 말을 듣자마자 엘리사가 바로 카리나의 곁으로 돌아가서 두 사람의 생각을 전하기로 하자고 말하면서 배로 돌아가려 하였고, 이에 나도 알았다고 답을 하고서 엘리사를 따라 그가 다리 부근에 놓아둔 배로 돌아가려 하는 그 순간,
  "아르사나 씨! 위험해요!!!"
  갑자기 다리 쪽에서부터 벌레들이 습격해 왔다, 엘리사의 다급함을 알리는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된 그 습격을 광탄을 난사해 벌레들을 격추시키는 것으로써 간신히 막아낸 이후, 나는 다리 쪽에 무언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바로 그 쪽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다리 건너편에는 다름 아닌 성채의 외성에서 마주쳤던 그 후드 달린 검은 옷 차림을 한 술사가 다리의 끊어진 부분 바로 위쪽에 떠 있으면서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는 검은 후드 안쪽에서부터 붉게 번뜩이는 두 눈의 모습이 보였다. 이후, 그는 다른 말도 없이 나무 바닥에 원형의 검은 기운을 퍼뜨리는 것으로써 공세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바닥에 검은 기운을 일으키는 것으로써 지면을 따라 나아가는 나의 움직임을 막으려 하면서 그와 더불어 그는 검은 창들이 잇따라 나의 머리 위로 떨어지도록 하였다. 검은 창들은 바닥에 낙하하자마자 바로 불길의 형상을 이루는 검은 기운으로 모습을 바꾸었으며, 이어 그 검은 기둥은 불기둥과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사라져 갔다.
  그 이후로도 술사는 조금 나아가다가 터져서 화망을 만들어 내는 검은 구체와 이전에 나를 향해 날아왔던 그 검은 창들을 날려보내며 나를 위협해 갔다, 마치 내가 자신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그 기세를 저지하려는 듯이.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검은 장막으로 감싸려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그 자신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이었던 모양.
  성채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에도 그러하였지만, 그가 나를 비롯한 일행과 맞서려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어떤 케레브 족 전사들보다도 나에게 공격적이었으니, 나를 정말 죽이려 할 기세로 일행과 맞선 이는 성채의 케레브 족 전사들 중에서는 그가 유일했다.
  다리의 지면을 따라 어둠의 파동이 잇달아 나를 향해 다가왔고, 몇 번 파동을 피해낸 이후에는 좌우로 피할 것을 예상한 듯이 그 좌우 방향으로 그 끝이 화살촉의 형상을 이루는 검은 선을 방출하기도 하여, 그 이후로는 파동을 건너뛰는 방식으로 피해내야만 했다.
  이러한 그의 공세에 대하여 나는 그가 날려보내는 벌레 형상의 개체들은 하얀 불꽃의 형상으로 태워 버리는 것으로써 대응해 갔고, 그가 호수에서 불러오는 괴물들은 하얀 결정으로 격추시켜 소멸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검은 기운들을 가능한 잘 피해 가려 하면서 빛으로 곡선을 그리면서 그의 장막이 사라지도록 하고, 그에 이어 그의 몸체가 곡선에 닿아 피해를 입도록 하는 것으로써 대응해 갔다.
  파동과 지면의 검은 기운 그리고 검은 선과 화살 등이 잇달아 보이는 치열한 공세를 간신히 면해 가며, 술사에게 반격을 가해, 빛의 기운으로 장막을 지우고, 피해를 가하기를 몇 번 반복해 간 끝에 결국, 술사에게서부터 하얀 기운이 폭발하는 광경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큰 고통을 느낀 듯이 추락해 가기 시작, 이윽고 그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것으로 끝이려나요."
  그 때, 뒤에서 지켜보던 엘리사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고, 이에 나는 그런 그에게 이렇게 답을 하였다.
  "아닐 것 같아요." 그 당시, 그가 가라앉은 수면 위로는 그가 입었던 후드 달린 검은 옷만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아마 그의 몸 자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다른 무언가로 변해 있었을 것이라고 그 모습을 보며 바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추측을 하기 무섭게 그가 남긴 옷자락이 사멸하면서 수면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검은 용으로 검은색만을 띠고 있는 그 거체는 두 눈만이 이전에 보였던 그 술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붉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 사악한 형상이 술사의 본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술사의 본성을 드러낸 존재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술사와 관련이 있는 존재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수면에서부터 솟아오르자마자 바로 입에서부터 숨결을 뿜어내기 시작, 숨결은 검은 연기와 같은 형상을 이루며 나와 엘리사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나야 잘 피하면 그만이라지만 문제는 엘리사였다. 그까지 나처럼 피해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고, 그래서 다급히 그를 향해 다가가 그를 끌어안으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그를 안은 채, 섬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뛰어든 그 여파로 나는 엘리사와 뒤엉킨 채로 다리의 진입구간 계단을 지나 섬의 지면까지 굴렀다. 다행스럽게도 무언가에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바로 내 머리 위를 불꽃 형상의 검은 기운이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위험했으리라.
  "엘리사 씨! 바로 성채 쪽의, 린 씨, 리아 씨께서 계신 곳으로 가 주세요!"
  이후, 나는 엘리사에게 린, 리아가 위치한 곳으로 가 줄 것을 부탁한 이후에 그가 떠나가고 있음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다리의 부서진 부분에 머무르고 있는 검은 용의 형상으로 다시 접근해 갔다. 그러는 동안 그 용은 다시 숨결을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내가 접근하자마자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기운을 숨결로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빛의 장막을 최대한 기운을 끌여들여가며 생성해, 그 장막이 검은 불길이 사라질 때까지 유지하려 하였다, 많은 기운이 소모되어 그 이후로 다른 능력을 활용 하는데에 애로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일은 생존의 문제였다, 그 검은 불길에 휩싸이지 않아야 다음에 무엇을 하든 할 수 있으리라 여기었던 것. 검은 불길은 하얀 빛으로 생성한 방패가 거의 사라질 즈음에서야 꺼졌다.
  갑작스레 나에게 분출된 그 검은 불길을 간신히 모면했을 때, 그 검은 용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하니, 그 모습을 보며 불길한 예감이 바로 들었고, 물로 뛰어들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적어도 감빛 호수의 물 속으로 뛰어들면 검은 기운이 닿을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이 옷, 마를 틈이 없네, 정말로......'
  성채에 이를 때에 한 번, 성채에서 마을로 돌아갈 때에 한 번, 그리고 이번에 또 한 번. 습기가 마를 즈음이 되면 또 물에 뛰어들 일이 생긴다, 이렇게 되니 옷은 이미 포기해 버렸다.
  잠시 후, 검은 용에서부터 검은 불덩어리 하나가 방출되었고, 그와 동시에 내가 서 있는 일대에 거대한 방진들이 바닥에 일정한 순서 없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는 방진들의 무리에 검은 불길이 닿자마자 바로 방진이 위치한 자리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날 것임을 바로 예측할 수 있었고, 바로 우측 근처의 수면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불덩이가 방진 무리가 위치한 그 한 가운데에 낙하, 그리고 불이 번지려 할 즈음에 폭음이 울려 퍼지는 것과 땔를 같이하여 검은 화염이 방진이 위치한 자리마다 터지며 화산의 열기처럼 분출해 갔다. 폭발과 더불어 파동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니, 주변 일대로 폭풍이 불어 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막대한 파괴의 힘이 바닥에 가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다리에는 어떠한 피해도 가해지지 않았다, 생명체에게만 피해를 줄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다리 위로 기어 올랐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검은 용은 상공 낮은 지점에 이르고 있으면서 다시 숨로 검은 화염을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화염은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기에 지근 거리에 있으면 바로 피할 수 있었다. 그것보다도, 올라탈 수 있으면 적어도 화염에 의한 위험은 확실히 피할 수 있었다. 날개가 지면에 닿을 즈음에 감빛 기운을 일으켜서 그 감빛 기운으로 양손의 손끝에 날카로운 감빛 갈고리를 생성하였다, 그 갈고리가 날개 그리고 용의 몸체에 박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날개의 팔 부분을 갈고리로 붙잡고, 용이 날아오르려 할 즈음에 손에 힘을 주어 날개에 매달렸다. 그 용은 이미 내가 매달려 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나를 떨어뜨리기 위한 날개짓을 격렬히 이어갔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감빛 갈고리로 날개의 팔을 꽉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개짓에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공중에 매달려 흔들리는 그네마냥 흔들리다가 한 번씩 날개와 수평을 이룰 때가 있었다, 그 때를 노려보기로 하였다. 그 때를 이용해 몸을 젖히면서 용의 등에 올라타기로 하였던 것. 세 번째로 몸이 용의 날개와 수평을 이룰 때에 다리부터 뒤쪽 방향으로 꺾어서 발이 용의 등에 닿도록 한 이후에 갈고리 손톱이 사라지도록 하면서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써 나 자신이 용의 등에 온전히 올라탈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도중에 용이 자기 자신을 뒤척여 미끄러졌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서 위험에 처하자, 나는 곧바로 용의 허리에 술법으로 급히 만들어낸 감빛 갈고리 손톱을 박아 추락을 간신히 막았다.
  다시 기어올라서 등에 앉은 이후에 감빛 기운을 감추고 다시 하얀 빛의 기운을 일으켜서 그 기운으로 검을 생성해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 검으로 용의 목을 있는 대로 내리치기를 반복하였다. 목을 내리치는 데에 다른 기술이란 필요 없었다, 망나니가 목을 치는 듯이 있는 힘을 가해 용의 목을 벨 기세로 목을 계속 내리쳤다. 용도 생물이다, 여타 생물마냥 목덜미가 급소일 것이라 여기고, 그 급소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으로써 생명을 끊어버리려 하였다.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용은 단말마스러운 외침과 함께 격렬히 몸부림을 쳤고, 이에 다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바로 빛의 기운을 감빛의 기운으로 바꾸고 손끝에서부터 갈고리 손톱을 일으켜, 그 손톱으로 목덜미를 붙잡았다가 진정되면 다시 올라타서 빛의 검으로 목을 내리치기를 반복해 갔다.

  그렇게 하얀 빛과 감빛 기운을 이용해 용의 목덜미 괴롭히기를 몇 번 반복했던 그 때, 유난히 용의 몸이 격렬히 뒤틀리기 시작하였고, 그 흔들림에 미처 대처를 하지 못한 나는 떨어지게 되었다. 사실, 그 유난한 격렬함으로 인해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떨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낙법을 시도, 그와 함께 감빛 바람이 바닥에 일어나도록 하였다, 그 바람이 일어나는 구간에 떨어지는 것으로써 추락의 충격을 막으려 하였던 것. 다행히도 나는 바람이 일어난 지대에 떨어졌고, 공중에 살짝 떴다가 바람이 사그라들 즈음에 바닥에 굴러서 무사히 바닥에 이를 수 있었다.
  숱하게 칼날로 내리친 여파로 인해 목에 하얀 금이 그어진 용은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허공 일대에 무의미하게 검은 화염을 토해내기만 하더니 이윽고 그 용은 내가 위치한 그 우측으로 날아가기 시작하니, 나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을 아예 포기해 버린 듯해 보였다. 그간 나를 위협해 왔던 술사였고, 또 용이었던 그 검은 존재가 향하는 곳은 자신의 적이었던 엘베 족 전사들도 아닌 바로 자신의 동족이었던 케레브 족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는 성채였다.
  '대체 왜 저기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지?'
  적들을 상대하다 말고 동족의 근거지를 향해 날아가는 용의 모습을 보며, 나는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의아함 가득한 표정을 지으려 하면서 그 광경을 보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용은 호수의 성채 바로 위쪽 상공에 이르더니 우선 성벽과 외성을 향해 숨결을 일으켜 검은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 성채의 적교 일대와 외성이 검은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용은 검은 불길에 휩싸인 외성을 지나, 본성에 이르러 본성의 상층부 역시 숨결로 일으킨 화염에 휩싸이도록 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검은 화염에 휩싸이도록 하고서 바로 내성의 바로 앞에 추락하니, 그 폭발로 인하여 내성의 하층부까지 검은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포헤 느와흐, 그리고 케레브 족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성채는 용으로 변신한 어떤 술사에 의해 내부의 케레브 족 사람들과 함께 암흑의 기운에 뒤덮이는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무 다리 하나 파괴하지 못한 화염은 건물 위에 일어나기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지만 생명체에게는 여타 화염만큼이나 위협적이었을 그 불길은 내부의 수많은 케레브 족 사람들을 사멸시키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내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저 용이 갑자기 왜 그런 행위를......"
  다급히 성채 쪽으로 다가가려 할 즈음, 나는 린과 리아 자매가 멍하니 성채를 뒤덮은 검은 불길을 바라보고만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린의 어처구니 없어하는 심정을 담은 멍한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는지, 리아가 바로 옆에서 성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린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었다.
  "혹시...... 그런 것이 아닐까, 저 아르사나 씨 한 명을 상대하는 것조차 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이후로 자신조차 못하는 일을 다른 이들은 해내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어차피 모두 죽게 될 것, 자신이 다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한 것인가. 모두 다 함께 저승에서 새로운 삶을 살자는 식으로......!?"
  리아가 하는 이야기를 린이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자신이 절망했다고 다른 사람들의 의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모두를 저승의 길동무로 삼는 경우가 어디에 있느냐고 외치는 목소리를 내었다. 린, 리아는 타락으로 일관한 친척 종족을 가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모두 다 죽일 생각을 갖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탈출한 이가 아닌한, 이 곳의 케레브 족 사람들은 다 죽었겠지?"
  "그러하겠지, 저 불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니. 그런데 저 불길, 참 이상하다, 사람은 닿는 즉시 바로 재도 남기지 않고 사멸시켜 버리는데, 건물이나 구조물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니......"
  그렇게 자매들이 멍하니 불바다 속에 놓인 성채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뒤쪽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의 우측 뒤편에서부터 엘리사가 다가오며 나에게 물었다.
  "이렇게 되면, 마을 분들을 굳이 당장에 부를 필요는 없겠어요."
  "아마도......" 이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두 사람을 불러서 호수 부근의 산길로 돌아가도록 하자고 청했다, 그리고 카리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우선 린과 리아를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이후의 이야기지만 성채의 검은 불길은 그 이후로 3 일 내내 탈 기세로 불타올랐다고 한다. 이 불길은 그라티아가 일으키는 빛의 비로 인해 점차 사그라들었고, 몇 시간 동안 내린 빛의 비로 인해 온전히 꺼졌다고 한다. 성 내부까지 검은 불길 속에 있었다지만 놀랍게도 성의 내부 구조물은 갑주를 제외하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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