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Intermission 3 : 2


  아침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빛이 창가를 통해 퍼져 나아가고 있음에 그 밝음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대략 이부자리를 정리하고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밖에 나와 중앙 공간 곳곳에 비치된 의자에 자리잡고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카리나가 숙박했던 곳은 마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마을 회관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숙박관으로서 내가 머물렀던 곳은 서쪽 방. 방문 부근에 비치된 2 층 침대를 카리나와 나누어 활용했다. 이 숙박관은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방을 공유하는 그 대신으로 저렴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서 마을로 돌아온 일행을 두고 그라티아는 그간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서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도 좋다고 말하였으나, 사양을 하고 그 대신에 인근의 숙박관을 숙박 장소로 정했던 것. 그 대신으로 그라티아는 나와 카리나에게 무료 숙박 이용권을 주어서 그 이용권을 토대로 돈없이 잠자리를 숙박관에서 마련할 수 있었던 것.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중앙 공간의 서쪽 방의 입구 기준으로 좌측 방향에 위치한 공용 욕실로 들어가서 간단히 씻기로 하였다. 머리카락 감기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를 대략 씻고 나서 대략 몸을 닦고, 옷을 갖추어 입고 나니, 꽤 시간이 지난 듯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옷은 그간의 전투로 인하여 심하게 젖었다만, 숙박관에서 세탁을 하고-속옷까지 다 젖은 탓에 그 당시에는 카리나가 빌려온 속옷 신세를 져야 했다- 탈수기를 이용해 대략 물기를 짜내고 나니, 다음날 아침이 되자 대충은 입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말랐었다.
  그렇게 씻기를 마치고 나서 욕실에서 이용했던 나와 카리나를 위한 것으로서 받았던 수건을 걸치며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잠옷 차림-끈 달린 치맛단 짧은 원피스-을 한 카리나가 그런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아르사나, 잘 잤어?"
  그의 인사말에 바로 나름 잘 잤다고 답례를 했다. 그러더니, 그는 내가 걸친 수건을 오른손으로 들고서 욕실로 들어서면서 언제 잤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었지만 이러한 그의 물음에 나는 21 시 즈음인 것 같다고 답을 할 뿐, 명확히 답을 하지 못했었다.

  실은, 그 당시 내가 잤던 시각은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 편이었다. 지난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숙박관에서 카리나가 마련해 준 침대-내가 1 층, 카리나는 2 층의 침대를 사용했다-에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누워 있으면서 잠시 멍하니 있으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자고 있었다. 이전에도 한 번 깬 적이 있었는데, 한참 날이 어두울 때로 아마 새벽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다시 자다가 아침에 바로 일어났던 것. 그렇게 카리나와 잠시 헤어지고서, 중앙 공간에 비치된 탁자에 앉으려 할 때에 그 쪽으로 다가오고 있던 소녀가 활짝 웃으면서 나를 보며 말했다.
  "상당히 일찍 일어나셨네요."
  이 숙박관에서 일을 하는 소녀이며, 근래에 숙박관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양갈래로 말아올린 감빛 머리카락과 둥그스름한 눈동자 등이 특징인 외양을 가지면서 검은색을 띠는 소맷단, 치맛단 모두 짧은 검은 복장을 갖추고, 하얀 얖치마를 그 복장 위에 두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로서, 이 숙박관에는 제복의 개념이 있거나 하지는 않으나, 그 소녀는 그 복장을 작업복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
  "바로 식사 대접을 해 드리도록 할게요."
  당시 시각은 6 시 45 분 즈음. 밖에서는 자전거를 탄 소녀가 소식지를 던지는 듯이 건물의 대문 앞으로 던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바로 볼 수 있는 광경으로서 간혹 창가 안으로 소식지가 날아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소식지가 다발일 경우에는 여러 장이 창 안쪽으로 흩어지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이번 소식지는 대문의 바로 앞으로 떨어졌는지, 대문에서부터 '툭' 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에 소녀가 바로 대문을 향해 뛰어서는 문을 열고, 그 소식지를 받아서는 다시 숙박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소식지를 보더니, 바로 놀람 반, 그리고 감탄 반의 표정을 지으면서 다급히 내가 앉은 쪽으로 소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식지에 이름이 있네요, '아르사나 베르티' 라고. 아르사나 씨 아닌가요?"
  그 물음에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숙박관 이용하는 데에 활용했던 무료 이용권을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촌장으로부터 얻은 것이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하였다.
  "역시...... 어쩐지 범상치 않은 인상이시더니."
  "어...... 범상치 않다고요?"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건네는 말에 나는 그저 당황하면서 그의 말에 대해 물음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이후, 소녀는 카리나가 욕실 밖으로 수건을 걸치고 나가서 다시 일행이 머물렀던 방 안으로 돌아가려 하자, 바로 욕실 건너편에 위치한 문 뒤편으로 나아갔다,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한 일이라고. 소식지는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 놓아두었다.
  이후, 나는 소녀가 놓아둔 소식지로 시선을 향해, 소식지에 쓰여진 것들을 읽어보려 하였다. 내가 보는 방향에서 뒤집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 소식지는 큰 글자로써 이러한 문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의 후예, 드디어 뿌리가 뽑히다.
- 잔당 세력 대다수 일소 및 발견된 생존자 3 명 체포. 케레브 세력 사실상 재기 불능.
- 해당 사건에 성녀 아르셀의 후손이 관여했다고.


  내 이름은 상단부의 머릿기사 아래의 기사글에 언급되어 있었다. '성녀 아르셀 베르티의 딸인 아르사나' 가 해당 문구. 이번 사건에 관여한 다스 에레보사의 잔당들에게 아르셀의 영혼이 심판을 내릴 것이라는 금사 지대 출신 예언자가 샤하르를 비롯한 샤하리아 지역 일대를 떠돌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관련 기사로 수록된 바 있었다.
  '내가 감빛 지대로 오기 전의 일이겠구나, 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호외로서 발표되었을 이 소식지에 쓰여진 기사글을 보며 바로 착잡함을 느끼고 있었다, 심란함의 감정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와 나의 기분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이 세상에서, 성녀 아르셀의 딸이로구나.'
  감빛 지대, 샤하리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그늘 아래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기사, 어머니는 감빛 지대가 타락한 종족에 의한 대대적인 침공을 받은 시점에서 타락한 종족의 수장을 처단하는 것으로써 종족 세력에 결정타를 가한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감빛 지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전설적인 인물이 된 바는 있었다만, 그래도 나도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의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 영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인물임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세상과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나의 바람을 이루어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사나, 왜 그래? 이렇게 날씨도 좋은 날에 왜 이리 시무룩해 있어?"
  그렇게 소식지를 보며, 생각에 잠기고 있을 그 때, 카리나가 밝게 목소리를 내며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보자마자 평소 때보다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난데없이 우울한 상념에 빠져 있으리라 여기면서 그에 대해 의아해 하며,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앉은 자리 바로 근방의 소식지를 보더니, 그 소식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소식지가 위치한 내가 앉은 그 건너편 의자에 앉아서 그 소식지를 두 손으로 들고 지면에 쓰여진 글을 보려 하였다.
  "아르셀 베르티의 딸 아르사나라...... 여전히 사람들이 성녀 아르셀을 기억해 주고 있구나."
  기사의 내용을 잠시 동안 가만히 바라보더니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카리나가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그러더니 소식지를 다시 탁상 위에 내려놓고서 나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면서 물었다.
  "별로 우울해 할만한 기사 같지는 않은데."
  카리나는 내가 그 소식지에 자신에 관한 어두운 내용이 적혀 있어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구나,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서 그는 바로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이러한 그의 물음에 바로 답을 하였다.
  "괜찮아, 별로 울적해지거나 할 일도 아닌데......"
  답을 하면서 나는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짓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서 그런 나의 말에 다행이라고 말하는 카리나에게 기사의 내용을 보며 자신이 원치 않았던 바가 있었음에 대한 생각이 들었을 따름임을 밝혔다.
  카리나는 기사의 내용 중에 내가 무엇을 보며 생각에 잠겼는지를 바로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서 바로 나에게 그것에 대해 너무 주눅들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묻는 듯이 말을 건네고, 이어서 성녀 아르셀의 뜻을 이어가는 사람이 나타난 것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언제까지 네가 아르셀의 딸로 있을 수는 있겠니, 언젠가는 사람들도 성녀 아르셀의 딸로서가 아닌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 너를 받아듩이�?될 때가 오게 되리라고 생각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간 나의 마음에 드리워지고 있었던 그늘이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 상태를 카리나 역시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 카리나는 바로 "이제 됐지?" 라고 묻더니, 바로 소식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소식지를 들고 근방의 의자로 다가가려 하였다.
  "이 소식지는 다른 자리로 옮겨 놓아야지, 우리가 이것을 더 보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후, 그는 그 소식지를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다가가려 하였던 그 의자 위에 올려놓은 이후에 이전에 앉았던 그 자리가 아닌 나의 좌측 근처에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후,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무렵, 욕실 건너편에 위치한 문이 열리더니, 잠시 후에 그 문 너머로부터 이전에 식사 제공을 하겠다는 소녀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두 그릇을 한 손에 하나씩 받쳐들고 있었으며, 각 접시 위로 소녀가 그간 준비했었을 음식이 놓여 있었다.
  카리나의 몫까지 소녀가 제공한 음식으로는 팬케익 한 장과 달걀 프라이 그리고 가느다란 소시지 구이 몇 개와 양배추 초절임이 들은 작은 종지 하나였다. 가느다란 소시지 튀...... 아니, 구이는 바탕이 작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손질에 신경을 써 주었던 것이 곳곳에 속까지 잘 익혀질 수 있도록 정교한 X 자 칼집을 내놓고 있었다. 소시지 구이는 기름을 얼마나 썼는지, 거의 튀김에 가까웠고, 팬케익은 당 가루에 단풍액까지 있는껏 뿌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무난히 잘 만든 편에 속해서 만족하며 먹을 수 있었다.
  "자아, 여러분 카페도 있어요."
  이후, 방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 소녀는 작은 접시를 하나씩 손에 받쳐 들면서 조심스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각 접시 위에는 자그마한 순백의 자기잔이 하나씩 놓여 있었으며, 각 잔 위로는 연기가 희미하게나마 피어오르고 있었다. 카페로서, 물 이외에는 다른 것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카페였다.
  "팬케익이 너무 달다고 느껴지실 때에 이 카페를 드시면 조금은 나을 거예요."
  식탁 위에 올려진 잔을 채운 고동색 액체는 담담한 쓴맛을 품으며 특유의 향을 피워올리니, 이것이 반 즈음 튀기다시피 한 기름진 소시지 구이의 그 맛을 개운케 해 주었던 양배추 초절임과 마찬가지로 담백한 팬케익 위에 뿌려진 단풍액과 당 가루의 달디 단 맛을 겪은 나에게 개운한 느낌을 전하고 있었다.
  "하루 숙박비에 이러한 아침 식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그렇다네." 이렇게 식사를 하는 도중에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을 하였으니, 그 답을 하면서 숙박관의 침실 마련을 하면서 입구 근처의 계산대에 있던 다른 직원으로부터 들은 바를 그대로 말해 주었다.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지?"
  아침 일찍 무렵에 식사로서 제공 받은 음식에 대해 카리나가 간단히 평을 하면서 그에 대한 공감 여부를 묻자, 그 당시에 팬케익 조각을 마저 먹고 있던 나는 그 물음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답을 하였다. 그렇게 10 여 분만에 다소 어설프지만 구실은 확실히 하고 있던 아침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접시는 각자 맡아서 처리하려 하였으나, 그 때에 소녀가 큰 접시와 그 위에 올려놓은 그릇, 잔들을 한 손에 하나씩 받아 들며 다급히 말했다.
  "이 일은 제가 맡아서 처리할게요!"
  식사를 마치고 욕실에 가서 이도 닦은 이후, 공용 식탁 근방, 중앙 공간의 가운데 문, 그 우측-입구 방향 기준으로-에 자리잡고 있던 큰 물통에 담겨진 물을 수도꼭지를 통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은색 잔에 받아서는 바로 마신 이후에 그것을 물통 위에 올려놓고서-이용하고 나면 그 위에 올려놓으라 하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카리나는 식탁 부근의 의자에 앉아서 어디선가에서 구해온 책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꽤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우측 곁에는 하얀색을 띠며 소매 없는 옷차림을 한 감빛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밀짚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로 조용히 잠들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을 지나, 다시 입구 왼편의 방으로 돌아가서는 잠자리를 대략 정리해 두었다. 나도 그렇고, 카리나 역시 그간 짐을 챙겨간 적이 없었기에 짐 정리를 위해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내 몫 그리고 카리나의 몫이었던 잠자리만 원래 상태에 가깝게 잘 정리해 놓고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때, 여전히 잠들어 있던 소녀 옆에 세상 편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던 카리나가 내가 나오는 모습을 보며, 그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카리나가 물었다.
  "그 동안 뭐하고 있었어?"
  "잠자리 정리." 이 물음에 내가 바로 답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곧 떠날 것임을 밝혔고, 샤하르로 가 보자고 청했다. 이번의 일로 인해 대충 지나치기만 했던 샤하르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도록 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샤하르로 가겠다고 했었지?"
  "응, 맞아, 기억하고 있었네."
  이후, 카리나는 문화 회관 바로 앞 건물에 이르렀을 무렵에 주고 받았던 문답을 상기하면서 물음을 건네었고, 이 물음에 그 당시의 문답을 떠올리며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하였고, 이어서 문화 회관에 있으면서 가고팠던 곳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문화 회관 부근에 이르면 찻집도 들러볼 거야."
  카리나는 그 삭막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내가 정말 가고 싶어하였던 곳이고, 또 시간적 여유도 있는 만큼, 그런 나의 바람을 들어주겠다는 의사를
  "그래, 가 보자. 막상 가 보면 나도 좋아할지도 모르겠네."
  라는 말을 건네는 것으로써 드러내었다. 그리고 환하게 미소를 띠며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면 잠들어도 괜찮냐고 묻자, 나는 바로 혼자 오지 않았다면 그래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화답을 하고, 이어서 카리나가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하는지 여부에 대해 묻자, 바로 그 곳이 어디인지를 기억하며 이렇게 답을 하였다.
  "문화 회관 뒷문 건너편이잖아."
  샤하르 중심가 서부에 자리잡은 문화 회관의 뒷문만 찾아갈 수 있으면 바로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기억해내기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 곳뿐만이 아니라 문화 회관 주변 일대에는 공연하는 곳도 많고, 들를만한 곳도 한 둘이 아니었기에 숙박관을 떠나게 되면 바로 샤하르로 가서 문화 회관부터 들를 생각을 잠들기 전부터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호수가의 풍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왔던 것이 있었으니, 호수와 성채 그리고 그 일대를 둘러싸는 산봉우리에서부터 빛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그 빛이 수면에 비추어지며 그 새하얀 빛이 주변 일대로 퍼져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나는 호수가에서 은거하시던 어머니와 더불어 늘 호수가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늘 그 풍경을 보아오고는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호수가를 떠나면서 다시는 보지 못했는데, 문득 그 아침 풍경이 그리워졌던 것.
  그 호수가의 아침 풍경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지금이라도 빨리 그 호수가로 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카리나에게 그 곳으로 가 볼 것을 요청하려 하였다. 그러자 카리나가 묻기를,
  "호수가에서 날이 밝는 풍경을 보고 싶어서지?"
  그리고서 그는 바로 얼른 가자고 말하고서 금방 아침이 오겠다고 말한 이후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에서 자신이 할 일이 따로 있지 않겠느냐고 물으면서 방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방 정리는 대충 해 놓았어."
  그 물음에 그렇게 답을 했지만 그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하며 카리나는 계속 나와 그가 머물렀던 그 방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내가 정리를 한 것이 못내 미더웠던 모양.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에게 먼저 밖에 나가 있겠음을 밝히면서 바로 밖을 향해 발걸음으로 옮기었다. 그러는 그 때, 소녀로부터 나를 향해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떠나시는 거예요? 아직 이른 때인데......"
  "일찍 떠날 일이 생겨서 그래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돌아서보니, 식탁 부근의 한 곳에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혹시나 싶은 생각에 불렀던 모양. 그러한 그의 질문에 대한 화답을 하고서 나는 곧 동료도 뒤따라 나갈 것임을 알렸고, 그러자 소녀는 잠시 내가 머물렀던 방을 향해 돌아서더니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서고서 환하게 미소를 띠며 인사말을 건네려 하였다.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봐요~."
  그리하여 나는 그 여성의 나를 보내는 인사말을 들으며 밖으로 나섰다. 어느새 때가 때인만큼 어느새 마을 저편에 보이는 산봉우리에 자리잡은 빛의 나무에서부터 빛이 환하게 비추어지기 시작하며 점차 날이 밝아오는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광경일는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샤하르로 이주하고, 그에 이어 가마일 산의 천문대에서 살게 되면서 감빛 지대를 떠난 이래로 이 수풀 너머의 마을을 들르거나 하지는 못했고, 사건 당시에는 인해 경치 구경의 여유가 없었으니 감빛 지대를 떠난 이래로 이 마을에서는 그 날 처음으로 제대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을을 떠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싶었으나, 아침을 맞이해 가는 마을의 풍경 자체는 막 이 마을을 떠날 무렵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집과 집들을 가로지르는 새하얀 벽돌길 주변 곳곳에 보이는 감빛 이파리로 채워진 새하얗게 빛나는 가지를 드러내는 나무들과 변두리 한 곳에 자리잡은 몇 개의 그네와 회전하는 놀이기구 그리고 미끄럼틀, 정글 짐 등으로 구성된 작은 놀이터 그리고 중심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음식점들과 가게들, 그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다만, 중심 거리의 동북부 구역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귀신의 저택' 으로 알려진 그 폐건물이 없어지고, 그 건물이 있던 자리에 작은 찻집이 생겼다는 차이는 있었다.
  '다행이다, 저 건물, 계속 방치되는 줄만 알았더니.'
  내가 어렸을 무렵에도 폐건물인 채로 방치되고 있었고, 떠날 때에도 같은 모습이었기에 마을에서 폐건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있어서 그 건물은 어떤 경우에도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어렸을 적에 중심 거리에서 본 것들 중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은 바로 저 폐건물이 되고 말았다.
  무서운 분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위험을 야기하기까지 할 수 있었던 '흉물' 그 자체였던지라 그 건물이 없어졌음에 대해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만, 그래도 오랫동안 보아왔던 만큼 그 건물에 나름 정이 들었던 사람으로서 그 정으로 인한 섭섭한 마음은 있지만 그 정도였다.

  평온하기 이를데 없는 거리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난 이들이 몇 있었으니,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히 길 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수풀길을 따라 마을을 나서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이들 중에서 깨어난 이들이 있어서 그들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마을 북쪽 길목의 수풀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먼 앞에 보였다.
  '저들도 호수가로 나아가려 하고 있으려나.'
  그 광경을 보며,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때, 카리나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그런 나의 뒤편에서 울려 퍼졌다.
  "아르사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는 내가 조금 더 나아가서 마을 중심가 쪽을 서성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숙박관 입구 부근에 가만히 서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내가 가만히 그 부근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카리나는 나와 자신이 머물렀던 침대의 정리를 마저 하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대략 정리해 두었던 이부자리를 다시 펴서 정리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있었어, 어차피 우리가 가면 그 쪽에서 다시 정리를 할 텐데."
  "그래도 최소한 성의 있게 정리하고 나갔음을 보일 필요는 있었을 테니까."
  지나치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드러내는 물음에 카리나는 바로 그렇게 화답을 하였다.

  그렇게 나와 카리나가 나란히 동행하며 길을 나아가고 있을 무렵, 숙박관을 막 나설 즈음에 보였던 호수를 향하는 산길을 향하고 있던 소녀들이 내가 위치한 먼 저편에서 산길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산길을 향하고 있던 그들을 보며, 나는 바로 저들을 향해 뛰어가려 하면서 먼 앞에 보이는 이들에게 다가가 볼 것을 청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묻는 카리나에게 그 답으로써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혹시 모르잖아, 나와 향하는 바가 같은 아이들일지."
  그리하여 나는 카리나를 대동하고 북쪽의 호수가를 향하는 산길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때 그 산길을 향해 뛰어가고 있던 그 아이들이 시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가능한 빨리 뛰려 하였으나, 그 소녀들도 한 번 제대로 뛰기 시작하니, 카리나 그리고 옛 동료였던 세나가 뛰는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도 상당히 빨리 나아가고 있었던데다가, 그들과의 거리가 거리였던지라 한 번 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의 비석' 이 보이는 그 숲길의 한 지점에 이를 무렵에 이들의 모습을 결국 놓치고 말았다.
  "이러할 것이면, 진작에 처음부터 걸어갈 것을 그랬어."
  "저렇게 빨리 뛰어갈 줄은 몰랐지......"
  그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바로 의욕이 떨어져버렸고, 그와 더불어 오르막길을 있는 힘을 다해 뛰던 나는 급격히 숨이 차올라 그 이후로는 한 동안 산길을 따라 걸어가기만 하였다. 카리나가 그들을 시야에 놓칠 것이라면 처음부터 걷는 편이 좋지 않았겠느냐고 물었고, 괜히 카리나까지 뛰게 만들었다고 여기며 그에 대해 미안해했던지라 나는 그저 변명한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전날에 발생했었던 그 사건의 무대였던 산길 위로는 그 전날까지 숱하게 남아있던 그 검은 핏자국들은 그 시점에서 이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핏자국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일대를 정리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경과가 늦을 뿐, 시체와 마찬가지로 사멸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는 했었던 모양.
  "이 사실을 그 당시 대원들이었던 분들 중에 아는 분은 없으시지?"
  "아마도......" 그 광경을 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숱하게 괴물들과의 대치를 경험해 본 나도 이 핏자국은 없어지지 않을 줄 알았었다. 그들 중에 잘 알 수 있을만한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잘 된 일일 거야, 하루 종일에 걸쳐 이 핏자국을 닦아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 아니겠어, 마을 분들은."
  "그렇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일행은 산길을 다 올라 어느덧 잠잠해진 호수가에 당도하고 있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몇 시간 즈음 지났을 때였을 것이다. 사건이 끝나자, 하루도 아닌 몇 시간 정도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호수 일대는 다시 고요해지고 있었다. 그라티아가 소환했던 배들 역시 어느덧 사라져서 호수가에는 성채를 바라보는 배 한 척만 남게 되었다. 검은 불길이 일어났던 성채 역시 이전 때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검은 불길은 생명체만 사멸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리는 이전에 있었던 그 괴물 습격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중간 부분이 끊겨 있었다. 그라티아의 발언에 의하면 조만간 복구하게 될 것이라니 당장은 아닐지라도 조만간 다리가 복구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빛의 나무가 자리잡은 산봉우리 위로 빛이 이미 환하게 주변 일대를 비추기 시작하며, 구름이 걷혀가며 흔적처럼 남은 감빛 조각 구름을 품은 하늘과 더불어 주변 일대까지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빛이 수많은 별들이 머무르는 하늘 일대와 산봉우리 그리고 이들이 내려다보고 있을 호수 일대까지 퍼져가니, 그렇게 아름다운 새벽의 풍경이 그 때에도 어김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네 옛집은 어디에 있어?"
  "이제 여기서 왼편으로 나아가면 보일 텐데......"
  호수가에 이르면서 카리나는 내가 나아가고자 했던 옛집의 위치를 물으려 하였고, 이 물음에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대로 산길과 호반길의 교차로에서 왼편의 길을 택해 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카리나는 그런 나를 따라, 나의 우측 곁에서 동행하며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아침을 맞이해 새하얀 빛이 환하게 비추어지는 그 풍경을 보려 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는 하겠다, 어떻게 어머니께서 너와 이런 곳에서 살겠다고 생각하셨니?"
  "아무래도 내가 태어나면서 보다 안온한 곳에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기를 원하셨을 테니까. 어머니도 사실 이런 곳 출신은 아니셨어, 샤하르 출신이셨지. 도시 사람이셨고, 도시의 삶이 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일부러 이 곳을 거주지 삼으셨던 거야."
  이후, 카리나가 호수가의 길목, 좌측의 감빛 이파리가 무성한 수풀을 바라보며 건네는 물음에 나는 그와의 동행을 이어가며 답을 하였다.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긴 목조 의자 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 호수가에는 걷다가 쉬고픈 사람들을 위한 이러한 의자가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하나씩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마을과 이어진 길목에서 좌측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가장 가까운 지점에 자리잡은 의자에 이르렀던 것. 내가 과거에 머무르던 집은 그 의자와 두 번째 의자 사이의 중간에 지금까지도 자리잡고 있다.
  그 의자를 지나고 나니, 그 건너편으로 작은 통나무 집의 모습이 보였다. 그 집의 모습만큼은 그 때에 이르러서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그 작은 통나무 집이었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그 이후로 내가 집을 떠난 이래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었지만 외형만큼은 온전해 보였다.
  "저 작은 통나무 집이 바로 그 집이지,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맞아, 바로 그 집이야." 그 집의 모습을 가리키며 건네는 물음에 바로 답을 하였다. 아침을 맞이한 산길 위로 새들의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주변 일대의 수풀에 머무르는 새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호수가 산길 좌측의 길 위로 한 번씩 고양이가 한 마리씩 숲길을 달리는 모습이, 그리고 길 우측의 수면에서는 물에 머무르는 감빛의 기운만큼 짙은 푸른색을 띠는 물새들이 우아하게 앉은 듯이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라티아에 의하면 성채에 사악한 기운이 머무르기 시작한 이래로 그 일대에서는 동물들의 모습은 고사하고, 새의 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일대에 퍼져가는 사악한 기운에 공포를 느낀 동물들이 호수로 다가가려 하지도 않았음이 그 이유라고. 카리나는 이를 두고 일전의 사건으로 인해 사악한 기운이 걷히면서 다시 동물들이 오게 되었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옛 집에 이를 무렵, 한 무리의 작은 새들-스파라(*1)-이 무리지어 그 집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하얀 스파라들은 감빛 지대에서만 발견되지만 그 감빛 지대에서조차 보기 드문 종으로서, 어머니께서 처소에 머무르기 시작하시면서 그 새들이 호수가에 위치한 옛 집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었다는데, 그 무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모양.
  그 새들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어머니의 집 부근에 머무르며, 그 집 주변 일대를 보금자리 삼아 이리저리 날아다니거나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스파라들은 천문대나 무나일 마을에서 주로 보이던 갈색 스파라들과 같지 않게 아름다운 울음 소리를 내고는 했으며, 감빛 지대 이외에는 살 수 없는데다가, 또 감빛 지대에서조차 잘 발견이 되지 않아 '환상의 스파라' 라 칭해지는 이들이었다. 그런 스파라들이 여전히 그 집 부근에서 머무르고 있었던 것.
  "그 새들이 어머니께서 머무르신 이후부터 머무르기 시작했고, 그 새들이 그 이후에도 떠나지 않았음은 어머니께서 이 집에 무언가 남겨두신 바가 있다는 것이겠지?"
  "아마도...... 그러하겠지."
  이 물음에 나는 바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였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어느새 집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으며, 새들의 모습도 그와 더불어 가까이에서 보이게 되었다. 그 새들의 시선에도 나와 카리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는지 그 새들 중 일부가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에 대해 딱히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거나 하지 않았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새들은 나의 주변 일대를 머무르면서 비행을 이어가고, 그들 중 한 마리는 나의 오른 어깨 위에 앉기도 했다.
  "다들 반갑나 보다, 집에서 살던 이가 오랜만에 와서."
  "그렇다면 그들이 나를 여전히 알아보고 있었다는 것이네."
  집을 떠나간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새들은 그랬던 나를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던 것. 집에 살던 이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집에 살던 이를 간만에 보는 것은 좋은 일이었던 모양. 그 새들 중 한 마리는 나의 어깨에 계속 앉아 있으려 하였고, 또 한 마리는 내 머리 위에 올라 앉으려 하여, 그 새들을 대동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카리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갈 무렵에 나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어머니의 옛 집으로 내가 살던 집이기도 한 그 오두막은 성녀로 추앙받고 있는 어머니의 처소였지만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그 존재를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내가 집을 떠난 이후로 그 누구도 살지 않는 집이 되었고, 여기에 그렇게 세간에 알려지지 않다보니, 관리도 잘 되고 있지 않았으나, 그래서 내부는 허름할 줄만 알았건만, 그 내부 역시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인 듯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곳은 그다지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아 보이던데......"
  집으로 들어오며 카리나가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나는 거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으며, 그 거실에서 놓인 책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커다란 책자로서 그 책의 지면은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채우고 있었지만 그 책이 무엇인지는 대략 알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오래 전부터 마법의 수련을 하신 적이 있으셨다고 하며, 한 번씩 그 책을 추억삼아 보시고는 하셨다고 한다, 그 생전의 흔적이 탁자 위에 고스란히 남겨지고 있었던 것.
  "집의 상태도 그렇고, 새들이 집 주변을 날아드는 것도 그렇고...... 이 집에 무언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딱히 그러하지는 않네."
  그러는 동안 카리나는 거실 우측에 위치하고 있던 식탁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집 주변의 어딘가에 무언가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던 모양. 그러다가 곧, 그는 집 밖으로 나가려 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있었어, 집으로 접근하는 순간, 약간이나마 따스한 무언가를 느낀 것 같아. 아르사나, 너도 느끼지 않았어?"
  집 밖으로 나가면서 건네는 물음에 나는 살짝 온기가 느껴진 듯하기는 했음을 밝혔다, 아닌 것이 아니라, 집에 접근하는 그 순간만큼은 실재하지는 않았을 무언가가 느껴지기는 했기 때문이었다, 온기 비스무리한 것으로서 막상 집에 접근할 즈음에는 하늘에서 내린 빛에 의한 온기일 것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바 있었다. 카리나는 그것이 새들을 유인하는 빛의 기운에 의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 카리나는 바로 집을 나섰지만 나는 그런 그를 따라 나서지 않고, 집 내부를 계속 둘러보려 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오랜만에 온 옛 집인데, 오자마자 바로 나가기에는 아쉬웠던 것. 여기에 그 때에 나가고 나면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그로 인해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의 내부는 그야말로 깨끗했으며, 거실 곳곳에 어머니와 함께 옛 집에 살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거실의 입구 방향에서 우측 방향에 위치한 주방의 한 구석에 자리잡은 냉장 창고도 저장된 것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분명 그것을 작동시킬만한 수단 자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집 내부는 늘 온화했으며, 특히 방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빛의 기운에 의한 일이라...... 내가 아는 바대로라면, 빛의 기운과 마력을 비롯한 힘에는 의지가 있지는 않을 텐데.'
  빛의 기운이라는 별칭을 가지는 하얀 빛의 기운, 어둠의 기운이라는 이명을 가지는 감빛의 기운을 비롯한 마력은 존재에 의해 생성되는 '에네르기(Energy : 에너지)' 의 일종으로서 이러한 '에네르기' 는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제어될 수는 있지만 자체적으로 의지를 가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어떤 학파가 주장한 '에네르기' 가 있다는 학설이 주장된 바 있으나, 비웃음 속에서 반박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에네르기' 만으로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이 집이 어떻게 그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도 방문하지 않은 이 집이 어떻게 그렇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의문을 품으며, 나는 조용히 내가 머무르고 있던 방으로 들어섰다, 입구 방향을 기준으로 거실에서 좌측 방향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난히 온화했던 그 방, 그 방에는 나의 어렸을 적,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침대 곁에 있던 어렸을 적에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과 어린 시절 이후에도 방을 꾸미기 위해 올려놓았던 각종 인형들 그리고 어렸을 적에 자주 보았던 책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원래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집을 나설 즈음에 그 방의 상태가 어떠하였는가, 그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바가 없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방 안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음은 분명히 기억난다. 그래서 그 방의 모습을 보며 내가 떠날 즈음에 방을 그렇게 정리해 두고 나갔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되짚다가 그로 인해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 방 안의 침대에 앉아 있다가 책을 보려 할 즈음, 밖에서부터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그 목소리가 창가의 건너편에서 들려오자마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바로 방을 나서고 이어서 집 밖으로 나와 그 창가의 건너편으로 나아가 보려 하였다.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나아가 보니, 카리나가 두 어린 소녀들과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내가 숙박관에서부터 모습이나마 보았던 바로 그 여자아이들로서 앞에 보이는 감빛을 띠는 다소 짤막한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비롯한 외관을 드러낸 이는 하얀색을 띠며 소매가 짧은 블라우스와 푸른색을 띠는 긴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그 뒤쪽에 보이는 긴 감빛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를 드러내며, 머리 위에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두르고 있던 이는 소매가 없으며 치맛단이 짧은 검은 원피스 차림을 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 모두 작은 어린 아이로서 무척 밝은 모습을 띠고 있었다.
  카리나는 그 두 여자아이들에게 그 일대에 빛의 기운이 있는 모습을 보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 역시 그 일대를 둘러보며 빛의 기운 같은 것이 있는지를 알아보려다가 답을 찾지 못하고 두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접근해 왔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 아이들은 카리나에게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않을 것 같아 보였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하였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카리나는 새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는 그 꽃을 앞에 두고 앉은 두 여자아이들을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서 그들에게 빛의 기운에 관한 물음을 건네고 있었다, 그 집 부근에 빛의 기운이 숨겨져 있는지 혹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지, 그 여부에 관한 물음을 건네려 하였던 것. 그러자 그들 중에서 하얀 블라우스 차림을 한 어린 소녀가 답했다.
  "아니오." 그리고서 바로 옆의 붉은 옷차림을 한 여자아이에게 그에 대해 물었으나, 그 역시 잘 몰랐는지 그저 고개를 젓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서 어떠한 답을 들을 수 없음을 직감했던 카리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그 때, 블라우스 차림을 한 여자아이가 카리나를 붙잡더니 바로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이 꽃, 한 번 보시지 않으실래요? 하얀 빛을 주변 일대로 발산하는 하얀 꽃이에요!"
  "그래......?" 그 꽃은 하얗게 빛을 발하는 것은 물론, 여자아이가 한 번 건드리자마자 작은 빛들을 생성해 그것들이 주변 일대로 흩어지도록 하고 있었다. 그 흩어진 빛들은 바로 주변 곳곳의 하늘을 향해 마치 단델라(Dandela) 꽃의 씨들처럼 혹은 풍선과도 같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빛들은 날아갈 때마다 점차 커지더니 이윽고 자신이 이른 상공의 한 곳에서 터져서 그 주변 일대로 빛을 흩뿌리며 이것이 반복되니 잠깐 동안이나마 감빛을 띠는 맑은 하늘을, 그 작은 일부나마 새하얀 별무리가 꾸미는 광경이 보였다. 이 작은 꽃 한 송이가 그 정도로 하늘을 꾸밀 수 있는데, 그 꽃들이 다수 모여 있다면 어떠할는지.
  "어때요? 신기하지 않아요?"
  "그래, 정말 신기해 보이네." 빛을 발하는 꽃들이라면 이전부터 무나일 마을, 가마일 산 일대에서 자주 보아왔던 카리나였으나, 그런 그에게도 그 꽃의 존재는 무척 신기해 보였다. 꽃과 그 꽃에서 발하는 빛을 한 번씩 흥미로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그 때, 붉은 옷차림을 한 여자아이가 바로 일어서더니, 블라우스 차림을 한 여자아이에게 주변 일대의 다른 곳 어딘가에 비슷한 꽃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말하면서 같이 찾아볼 것을 요청하고서, 그 여자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카리나에게 말했다.
  "이 주변에 그와 같은 새하얀 빛을 발산하는 꽃들이 많고, 빛의 요정들의 모습도 한 번씩 볼 수 있대요. 그래서 한 번씩 이 집 주변으로 놀러가고는 했었어요."
  그리고서 그에게 한 번 찾아보도록 해 줄 것을 권하였고, 그 화초에 흥미를 느꼈던 카리나는 바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이며 그 권유에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바로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그 말에 이어 화답을 하였다. 그 대답을 들은 이후에 블라우스 차림을 한 여자아이도 일어나려 하자, 붉은 옷차림을 한 여자아이는 인사말을 전하고서 자신을 따라 나선 그 여자아이와 함께 자신이 머무르던 그 너머에 보이는 푸른 나뭇잎과 파랗게 빛나는 꽃들의 모습을 보이는 숲을 향해 뛰어가려 하였다. 그러는 그 때,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카리나가 여자아이들을 다급히 부르려 하였다.
  "잠깐! 얘들아, 한 가지 너희들에게 물어봐도 될까."
  그러자 이전부터 카리나와 대화를 주고 받았던 그 붉은 옷차림의 여자아이가 그 부름에 응해 카리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카리나가 부름에 응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런 그에게 물었다.
  "저 집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어?"
  "그 집이라면...... 이 부근에 있는 그 오두막집이겠지요?"
  여자아이는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집 안에는 흥미로울만한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다만, 집 주변의 곳곳에는 수많은 장작 더미와 도끼 그리고 장작을 올려놓기 위한 나무 그루가 있어서 그 집에서는 장작 패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에 도전해 볼 생각을 한 번 정도는 해 봤다는 언급은 있었다. 이후, 카리나는 그에게 더 질문을 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가려 하는 사람을 계속 붙잡고 싶지는 않았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 여자아이를 떠나 보낸 이후, 카리나는 내가 밖으로 나왔음을 확인한 이후에 나를 향해 돌아섰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바로 그런 그를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이윽고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온 나에게 카리나가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어머니께서 장작을 패거나 하신 적이 있었어?"
  내 기억 상으로는 어머니께서 태울 거리를 직접 만드신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본래는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삶을 이어가셨던 분이셨다지만 나와 함께 집에 거주하실 즈음에는 적어도 나를 위해서라도 집의 온기를 더하기 위해 술법으로 하얀 빛의 기운을 일으켜서 그 기운에서 발하는 온기로서 집을 따뜻하게 만드셨었다. 그 기억을 되짚으며 나는 카리나에게 그 당시의 일화에 관한 이야기를 답으로써 전하였고, 이에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셨구나." 라는 말을 건네었다. 어머니께서는 집 안을 빛의 기운으로써 온화하게 하셨으며, 다른 수단을 활용하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비화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도끼로 장작을 패는 기술은 갖지 못하셨다는 것이었다,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술이 모자라서 장작 패기를 못하셨던 것. 어머니께서 장작 패기를 잘 하셨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카리나에게 이야기를 해 줄 생각은 없었으니, 어머니에 관하여 그런 치부까지 말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 쪽이 이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말 그 아이들이 말한대로 요정들이 살고 있을까."
  "이 곳에 살고 있을 적에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어. 밤마다 늘 숲의 한 곳에 모여 무언가를 하고 그랬었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도 본 적이 있었어."
  이 물음에 나는 바로 그들에 관한 언급을 하고서 아이들이 나아간 그 숲 속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답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밤이 되면 다시 와 보자고 제안을 하고서 아침에 갈 곳이 있지 않느냐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서 나는 집 부근의 수풀 지대를 벗어나 다시 호수가의 길을 따라 호수가와 마을을 잇는 산길을 향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곁에 머무르고 있던 새들은 여전히 나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 있었으며, 여기에 수풀 지대에 머무르는 동안 하얗게 빛나는 새 한 마리가 머리에 쓴 모자 위에 올라 앉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아 수풀 지대를 지나 산길로 나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 머리, 어깨에 올라앉아 있었다.
  "저 새들은 유난히 네가 정말 좋은가 보네."
  그 모습을 보며, 카리나가 환하게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에 나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으로 달리 그에게 반응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산길과 그 너머의 '생명의 기원' 이라 칭해지는 비석을 지나친 이후로 다시 마을에 이르니, 어느새 마을은 아침을 맞이하며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곳곳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고, 각자 향하는 곳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거리 곳곳에 보이고 있었다.
  "샤하르에 이르러서는 문화 회관부터 가보겠다고 했었지?"
  "그랬었지." 마을을 지나 다시 숲길을 따라 걸어가려 하는 그 때, 카리나로부터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 물음에 나는 "당연하지!" 라고 화답을 하고서 그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일들이 이것저것 있음을 밝혔다. 이후, 나는 앞장서서 숲길을 따라 나섰고, 카리나는 때로는 그런 나에게 뒤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나란히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면서 나와의 동행을 이어갔으며, 도중에 이런저런 사소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었다, 대화의 전개는 자주 지리멸렬해졌지만 나와 카리나 모두 그에 대해 상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걷는 도중의 지루함을 덜어줄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기에.

  그렇게 샤하르에 이르자마자 바로 중심 구역 내에 위치한 문화 회관 근방에 자리잡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빵집을 찾았다. 북쪽 길목을 따라 발걸음을 옮김에 따라 나와 카리나가 지나치는 풍경의 모습도 변두리 거리의 집들과 가게들 그리고 공원의 모습에서 중심가의 가게들과 각종 건축물의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던 변두리 거리와 달리, 중심가 일대는 아직 주 활동 시간대가 아니어서 그러한지-대개는 9 시 부터인데, 그 당시 시각은 8 시를 넘어선 정도였다- 사람의 수도 적었고, 거리 자체도 무척 고요했다.
  이러하다보니, 거리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면 대개는 빵집을 이용한다, 식당은 대개 아침 식사 이후 시간대에 개점을 하지만 빵집은 아침 일찍부터 개점을 하여, 그 시간 대에 갓 구워낸 따끈한 빵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빵집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그래서 그 빵집에 가서는 그 빵집에서 종이에 싸여진, 갓 구워져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커다란 초승달 빵을 한 덩이씩 얻을 수 있었다. 이 때, 일행은 유난히 큰 빵 덩어리를 얻을 수 있었으니, 그것에는 배고프다는 카리나의 설득이 큰 덩이를 얻는 데에 나름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거리를 따라 나아가면서 옛 신전을 연상케하는 고풍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는 새하얀 건축물인 문화 회관의 본관, 그 바로 앞에 이를 무렵, 우측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곳에 이르면서 자주 들어왔던 목소리로, 그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 이가 누구인지는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샤하르의 재난 담당 특수 요원, 엘리사였다.
  "간만에 다시 뵙게 되었네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목소리가 들려온 우측을 향해 돌아서서 말을 건 사람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내가 예상한 대로, 나를 부른 이는 엘리사였다.
  "간만이라고 해도...... 하루 만이 아니었던가요."
  간만에 보게 되었다는 말에 나를 대신해 나의 좌측 근처에 있던 카리나가 바로 그렇게 화답을 하고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냐고 그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그러자 엘리사가 답하길, 샤하르에서 나의 행적이 그간의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하여 그 공적에 맞는 포상을 주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 포상을 나와 동행하였던 자신이 샤하르의 관공서를 대표하여 지급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자, 받으세요, 앞으로 필요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반지가 들어있을 법한 분홍색을 띠는 작은 상자. 그 상자를 보자마자 바로 두 손으로 그 상자를 받들어 드는 것으로써 그가 샤하르 관공서 사람들을 대신해 준 상품을 건네 받았다. 이후, 엘리사는 바로 문화 회관의 우측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면서 다급히 작별 인사를 하고서 나를 비롯한 두 사람과 바로 헤어졌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이후에도 할 일이 주어져 있어서요. 앞으로도 좋은 시간 보내요, 두 분 모두."
  카리나는 그 보상을 딱히 마음에 들어한 것 같지는 않았다, 제법 큰 일을 해냈다고 여기어 상당량의 돈을 전해줄 것이라 여기었음이 그 이유. 하지만 나는 이러한 보상에 연연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런 카리나에게 나는 괜찮으니, 그에 대해 너무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로 당부의 말을 건네었다.
  이후에 왼손 가락지에 낀 그 반지는 은색을 띠는 금속-플라틴(Platin) 이라는 금속으로 추정되는 것이었다-제 고리에 하얗게 빛나는 보석이 박힌 것으로서 그 보석처럼 보였던 것은 실은 유리였고, 그 유리 안을 새하얀 빛을 발하는 기운이 채우고 있었던 마력의 반지로서 당장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쓸모 있을 곳이 있을 것임이 분명했던 물건이었다.

  그 당시 문화 회관은 오후에 공연이 있을 예정이었으며, 그 때 보았던 공연 정보는 아래와 같았다. :

- 자브렐(Jabrell) 파랑새 기악단 정기 연주회 개최. 공연 일자 : 4 월 21 일, 공연 시작 : 11 시 20 분. 장소 : 샤하르 중앙 문화 회관 본당 내 극장.
- 연극 '감빛의 달' 상연 안내 : 공연 일자 : 4 월 21 일 ~ 5 월 11 일. 시각 - 15 시 20 분. 장소 : 샤하르 중앙 문화 회관 별당 내 제 1 소극장.
- 샤하리아 대악단 연주회 : 정가극 '아르펠라(Arfella)' 모음곡. 공연 시작 : 20 시 정각. 장소 :  샤하르 중앙 문화 회관 본당 내 극장. 소년합창단 '아르세리아(Arseria)' 참가. 공연 일자 : 4 월 18 일 ~ 25 일.


  내가 회관 바로 앞의 안내문을 보았던 날은 4 월 14 일이었으니, 공연 기간은 아니었다. 다만, 공연에 관해 사전에 안내를 하는 것으로써 미리 사람들이 공연 자리를 맡아둘 수 있도록 하였다고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시점에서 그 문화 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된 이들은 막바지 연습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아르사나, 이 중에 관심 가질만한 것이 있어?"
  "있기는 한데...... 다시 이 곳으로 와서 공연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오전에 시행되는 정기 연주회나 밤에 개최되는 연주회에는 흥미가 있었다. 다만, 당장에 관람하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앞으로의 여행에 며칠이 소요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공연 관람을 위한 자리 마련을 하거나 하지는 않기로 하였다, 언제 방문할지 모르는 곳을 위한 공연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여기었던 것.
  그래서 공연 관람을 위한 자리 마련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다고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서 문화 회관 후문 건너편에 있다는 그 찻집에나 가도록 하자고 그에게 요청을 하였고, 이에 카리나는 특별한 이의 없이 나를 따라 나서서 문화 회관의 후문 쪽으로 나아갔다. 문화 회관은 평상시에는 폐쇄되어 있어 사람들의 출입이 있을 수 없었고, 그래서 문화 회관을 거치거나 할 수는 없었다.

  문화 회관 뒤편에는 바로 찻집이 자리잡은 건물의 모습이 보였다. 건물의 2 층 전역을 차지하고 있는 그 찻집은 이른 아침 시기이기는 하였으나, 일을 쉬는 상태는 아닌 듯이 곳곳에 위치한 등이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방 안은 워낙 어두워서 밝을 때에도 어두운 곳이었으니, 등을 밝히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는 했다.
  이후, 나와 카리나는 각자 하나씩 안고 있었던 그 초승달 빵을 찻집에 들러서 차와 함께 먹기로 하고, 건물로의 접근을 행하려 하였다, 빵집에서부터 문화 회관 후문 근처까지 나름 시간을 들여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빵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서 따스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찻집은 카페든, 홍차든 상관 없이 우유라든가, 다른 것을 섞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것만을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우유나 당 등을 섞게 되면 그 맛이 음료 본연의 맛과 거리가 멀어짐이 그 이유라고. 예로부터 순수하고 정통적인 맛을 추구해 온 집안에서 대대로 업을 이어가던 곳인 만큼,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그 찻집은 무척이나 엄격했다, 우유가 포함된 음료의 추가 요청이 잇따랐으나, 그 요청만큼은 언제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다만, 그러한 순수한 맛을 고집하는 대신에 인근 구역의 빵집에서 빵을 가져오는 것만큼은 허용해 주고 있어서 찻집을 들를 때, 점심 식사 겸 잠시 그 찻집에서 시간을 보낼 목적으로 각종 빵을 가져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가져올 수 있는 빵의 종류가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은 대개 간단하게 만들어진 아레나비코(Arenavico) 나 케이크 조각을 가져오고는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찻집은 키가 큰 여성이 운영하고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긴 치마로 구성된 옷차림을 한 이로서, 머리 뒤로 넘겨진 감빛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새빨간 입술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기나긴 신장과 더불어 어른스럽고 날카로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젊어 보였지만 그래도 인상만으로도 이미 그는 어머니보다도 한참 연세 있는 사람인 듯해 보였다.
  그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였으나, 나를 비롯한 두 사람을 손님으로서 맞이할 때에는 의외로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은근 장난기 있게 말을 건네는 모습도 보여, 실제로는 그렇게 까다롭거나 어려운 사람은 아닌 듯해 보였다. 두 사람이 가져온 빵을 보며, 그 온기를 느끼기라도 했는지, 신선해 보인다고 밝게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도. 나는 찻집의 창가가 보이는 자리를 찾았고, 이어서 나와 카리나가 잇달아 그 자리에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나는 입구에서 바라볼 때 왼편에, 그리고 카리나는 오른편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나와 카리나 모두 카페를 주문했고, 그 이후 찻집의 주인은 알겠다고 답을 하고서, 잠시만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다가 찻집의 정문이 열리고 어떤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문이 열린 방향으로 인사를 하더니, 바로 나를 비롯한 두 사람이 앉은 방향을 향해 돌아서서는 이렇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후로 당분간은 음악은 저 분께서 선택하신 것으로 정해지게 되니, 그 점 양해 부탁 드릴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떤 정중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 찻집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소 굳은 표정을 짓는 채로 찻집 안으로 들어서며 노인은 주문대와 그리 멀지 않은 탁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달리 말이 없었지만 여성은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린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바로 준비해 놓겠음을 알렸다.
  "우리 차례는 저 할아버지, 그 다음이겠네."
  "그러하겠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느긋하게 기다려 보자고 그에게 청했다. 그러는 도안 여성은 주문대 안쪽에 비치된 소리판 재생기 곁으로 다가가 그 부근에 놓여진 소리판들을 유심히 뒤적이더니, 그 중에서 하얀색을 띠는 어떤 판을 찾아서는 그 판을 재생기 위에 올려놓고서, 재생기를 작동시켰다.
  그와 함께 장엄한 듯, 격렬한 듯한 음악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악기들의 연주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음악을 이루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격심한 폭풍을 묘사했다고 알려진 그 협주곡에 대해 찻집 주인이 말하길, 그 노인이 찻집에 올 때마다 반드시 듣게 되는 음악이라 하였으며, 노인은 찻집을 처음 방문하기 시작하고, 수십여년 동안 늘 그 곳에서 그 음악을 듣고는 하였다, 그것이 그 노인이 가지는 인생의 즐김거리 중 하나라고.
  주문한 카페가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나를 위한 빵 조각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창가 너머로 보이는 시가지의 모습을 가만히 보려 하였다. 그 때, 그런 나를 향해 카리나가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유적 지대에 가서 하고픈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어?"
  다음 행선지는 이전에 만났던 난쟁이 족 전사 스카즈(Skaz) 를 비롯한 탐험대와 더불어 탐사를 위해 다녀간 적이 있었던 빙한 지대인 '샤르기아(Sar-Gia)' 에 위치한 옛 문명의 흔적을 품은 유적지였다. 눈의 나무 그 밑둥 부분에 자리잡은 곳으로서, 오랫동안 추위에 노출되었고, 그로 인해 곳곳이 얼어붙어 '얼음 궁전' 이라는 이명을 가진 곳이었다.
  그 당시, 나는 스카즈와 동행하면서 '얼음 궁전' 의 깊은 곳까지 들어선 바 있었으며, 그 무렵에는 다른 탐사 대원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접근 제한 구역' 으로 칭해진 그 안쪽으로 들어서려 한 바 있었다. 스카즈가 만류하였지만 유적에 관해 충만하였던 호기심 충족에 열성이었던 나는 그 만류를 듣지 않았고, 그래서 스카즈의 우려 속에 그 안으로 들어서며 유적의 중심부로 추정되는 그 안으로 들어섰던 것.
  그 무렵의 일로 기억나는 것은 그 내부는 마치 무덤과도 같이, 수많은 유리관들이 공간의 변두리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유리관은 모종의 생명체가 잠들고 있는 듯해 보였으나, 그 안쪽을 비추는 빛이 내부의 모습을 가리는 탓에 그 내부를 보거나 할 수는 없었으며, 그래서 어떤 생물이 그 중요한 시설 내부에 잠들고 있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유적 내부의 성격을 알아내는 것 자체가 한계가 많았으니, 유적 내부에 관한 정보는 기계 장치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는데, 그 기계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었음이 그 이유였다. 기록 장치가 그 안쪽에 마치 내장 기관처럼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기록 장치를 해석하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듯해 보였으나, 당시에는 기계 없이 기록 장치의 성격을 알아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적을 발견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유적 내부의 성격을 알아내지 못한 채로 탐사대는 샤르기아의 중심 도시인 샤르기스(Sar-Gis)의 집결지로 귀환, 샤르기아 탐사는 제한적인 성과만을 거둔 채로 종결되었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아르데이스 성계의 마법사들에 의해 고대 기록 장치의 해독법이 발표되고, 이를 통해 고대의 기록 장치는 신호의 유무를 '빛' 과 '그림자' 와 같은 형태로 기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발표에 의하면 고대의 기록 장치는 글자를 비롯한 사물에 관한 정보를 특정한 규칙에 의거하여 다수의 신호들로 변환, 그 신호를 기록하는 형태로 글자를 비롯한 사물을 기록하니, 신호가 있음을 '빛(L)' 으로, 그리고 신호가 없음을 '그림자(U)' 로 명시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빛과 그림자는 연산이 가능하나, 그 연산 규칙은 일반적인 숫자와 다른 것임도 밝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을 즈음, 카리나로부터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아르사나는 아르데이스 마법사들이 발표하였다는 '빛과 그림자의 연산법' 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이름을 들어본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적, 나는 그 연산법에 관해 나름 흥미를 갖고 있어서 그 연산법에 관한 정보를 찾아본 바 있었다. 연산자로는
가 있다. 이 '신호의 연산(Calculus Signum)' 이라 칭해지는 연산의 규칙에 관해서도 알고 있기는 하나, 그것에 관한 설명을 이 이야기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에 연산자에 관한 설명은 이 정도로 그치기로 한다.

  "이번에는 혼자서 가 볼 거야, 그 때는 나도 처음이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난쟁이 족 전사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 때와 많이 달라졌으니까 말야."
  "지금, 샤르기아의 그 유적지는 관광지로 지정된 곳이잖아."
  "진입 제한 시간 내에 들어가려고. 샤르기스 문화국 측에 요청을 하면 되지 않을까."
  이후, 카리나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샤르기스 측에서는 그 일대를 관광지로 지정했으며, 제한된 구역이나마 일반인들 역시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가 된 상태로서, 본래 문화국은 이 구역 일대를 진입 제한 구역으로 설정하고 자체적으로 조사를 행하려 하였으나, 이전에 파견된 탐사대와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그래서 위험하기만 할 뿐인 유적 지대 내부 탐사를 사실상 중단, 위험 구역을 제한 나머지를 관광 구역으로 설정하고서 그 사업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다만, 요청이 있다면 그 지역 내부의 탐사를 개인적으로나마 허가해 줄 의향은 문화국 측도 갖고 있는 모양으로 그래서 문화국 측에 바로 요청을 하면 아마 그들 역시 허락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나 정도 실력을 가진 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세니아가 그 유적 지대에 관심이 많다 하였는데."
  "세니아가?" 이후, 카리나는 세니아가 샤르기스 인근에 위치한 유적 지대에 유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빙한 지대의 중심 도시인 샤르기스로 가려 한다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음을 밝혔다. 그에 이어, 카리나는 곧 샤르기아의 중심지인 샤르기스로 가서 유적 탐사에 관해 사전에 해야할 일을 할 것이라고 그에 대한 언급을 이어가기도 했다.
  "어찌하다가 세니아가 샤르기스에 관심을 갖고 그 곳에 가려 하게 되었지? 아는 사람이 그 곳에 가게 되기라도 했나......?"
  이러한 나의 물음에 카리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를 잘 아는 나에게 있어서, 세니아가 샤르기아의 기계 문명 유적지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소식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옛날보다도 더 먼 옛날의 기계 문명에 대해 별 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에. 카리나는 그러하였던 그가 고대 유적지를 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하였으나, 그 사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모양으로 사실, 카리나 역시 세니아가 고대 유적지를 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자신이 알던 사람이 그와 동행했다가 소식을 전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근래에 세니아가 그 고대 유적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 역시 그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고.
  "그것에 대해서는 샤르기스에 머무르고 있을 세니아를 만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카리나 역시 사유에 관해서는 세니아를 직접 만나서 알아낼 것을 권할 따름이었다. 내가 아는 바로, 세니아는 무언가를 생각해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아끼는 경향이 있었다. 그 당시에 그가 보였던 그러한 면모 역시 그러한 그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듯해 보인다.
  "카리나도 이번 여행에 동행할 생각이 있어?"
  "네가 필요하다면." 이후, 나는 카리나에게 같이 갈 생각이 있는지, 그 여부에 대해 묻자, 카리나는 그에 대해서는 나에게 달렸음을 밝히고서 내가 원한다면 같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같이 가지 않을 시에는 어디로 갈 거니?"
  하지만 카리나는 같이 가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서 딱히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듯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에게 이번 빙한 지대로의 여행만큼은 같이 하도록 하자고 청했고, 그러자 카리나는 그렇다면 그 말대로 하겠다고 화답을 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간만에 세니아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고 밝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세니아, 그가 나름 신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었어, 인상 때문에 그러하려나, 아르사나, 너는 그 외양을 보기만 해도 그런 사람일 것이라 여길 수 있었는데."
  카리나는 세니아의 붉은 무늬를 띠는 옷차림과 밝은 인상 때문에 자기 생각을 거침 없이 드러내는 사람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이후에 보였던 다소 내성적인,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예상치 못한 성격 때문에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대해 의외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렇고...... 샤르기아 일대는 무척 추운 곳으로 알고 있는데, 괜찮을까."
  "나름 준비를 해 두기는 했을 거야."
  이후, 나는 바로 화제를 바꾸어 빙한 지대 샤르기아의 추위에 관한 언급을 하였고, 그 물음에 그에 대한 걱정을 내가 물음을 건네는 것으로써 드러내고 있을 것이라 여기었을 카리나가 바로 밝게 목소리를 내며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걱정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의 말을 답으로써 나에게 건네려 하였다.
  "세니아는 샤르기스의 어디에 거주하고 있으려나, 유적지에 가지 않는다면 어딘가에는 머무르고 있어야 할 것 아니겠니."
  "나름 생각해 둔 곳이 있기는 할 거야."
  이후, 내가 건넨 물음에 카리나가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이후에 세니아에게 연락을 해서, 그 거주지로 간 이후에 외투를 마련하기라도 하자고 청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음악이 끝나고,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가게 주인에게 노인이 다가가서 지페 몇 장을 건네자, 가게 주인은 바로 고맙다고 화답을 하였고, 이후 조용히 가게의 현관문을 조용히 나서는 그 노인을 떠나 보내려 하였다. 그러는 사이, 가게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더 들어왔고, 그들 중 한 사람의 요청이 생겨서, 그것에 의해 가게 주인이 바로 주문대 안쪽으로 들어가 음악판을 찾아 그 음악판을 이전의 음악이 끝나면서 가동을 정지시켜 놓았던 재생기에 올려놓고 그 재생기를 다시 가동시키는 광경이 보였다.
  이번에 들려오는 음악은 이전과는 다른 활기찬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 음악이 전해주려 하는 느낌 때문인지 찻집 내부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확연히 밝아지고 있었다. 들어온 이들 중에는 어린 외관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그 밝은 음악 때문인지 활기차게 대화를 주고 받는 이들도 있었다. 계속 찻집에 머무르고 있던 나와 카리나 역시 그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으니, 그래서 대화를 주고 받는 목소리도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샤하르에는 얼마나 오래 머무를 생각이야?"
  "16 시 즈음까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그렇게 화답을 한 이후, 저녁에는 다시 슈라일로 돌아가, 그 너머의 호수가를 향해서 그 산길을 통해 산봉우리 위로 오르려 한다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으로써 화답을 하고서, 그 산봉우리에 자리잡은 '빛의 나무' 에서 빛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그 목적에 대한 언급을 하고서 바로 주머니에서 그간 잘 간직하고 있던 작은 보석 상자 비스무리하게 생긴 금실이 수놓인 그 상자를 꺼냈다, 빛을 품을 수 있는 '은제 원반' 을 넣어두고 있는 그 작은 상자였다.
  "아, 이 상자, 본 적이 있어, 그 '은의 열쇠' 를 품고 있다는 그 상자잖아."
  레테사로부터 상자를 건네 받았음을 알리자마자 카리나는 그 상자가 어떤 상자인지 바로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들은 즉, 이전에 소르나가 그 상자를 들고 산길을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고. 카리나 역시 레테사로부터 그 상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 물품인지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천문대 관리인으로 지내는 '라미(Llami)' 로부터 들은 바 있으며, 8 개의 문장이 새겨진 그 원반은 '고대의 영역' 으로 들어서기 위한 열쇠 역할을 하는 물품이라고 그로부터 들었음을 알렸다, 내가 들은 바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이야기를 들었었구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건네는 말에 카리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하였고, 이어서 그 물품에 대하여 처음부터 레테사가 갖고 있지는 않았고, 때마다 소르나와 라미가 한 번씩 맡고는 했었음을 밝혔으며, 평상시에는 라미가 소지하고 있다가 소르나가 그 물품을 요구할 시에는 라미가 그 물품을 소르나에게 주고는 하였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아르사나가 원반이 필요하다고 여기어져서 라미가 레테사를 통해 너에게 그 원반을 주었을 거야."

  라미 루트(Llami Ruth). 어린 소녀와 같은 외관을 가지는 가마일 출신의 인물로서, 천문대 관리의 전반을 담당하는 이이다. 소르나, 레테사 등이 천문대로 들어올 무렵에 천문대로 왔으며, 여러 사람들이 머무르는 천문대의 식사부터 돈벌이까지 천문대의 전반적인 업무를 맡는 살림꾼인만큼, 천문대에서의 역할 자체는 주역이었던 소르나, 레테사 이상으로 컸다.
  천문대에서 중요한 물품이 들어오면 늘 그의 검증을 거치고는 하였으며, 고대 물품에 관한 지식은 소르나의 수준과 거의 동등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다, '신호의 계산' 과 같이 기계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는 소르나, 레테사를 능가한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라미가 신호 계산법에 대해 잘 알고 있댜는 이야기는 물어본 적이 없었지?"
  "응, 나도 그 당시에는 라미가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었어."
  언젠가 카리나를 만나, 그에게 라미에 관한 물음을 건네었을 때, 들려온 답이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지만 그에 대해서는 카리나도 잘 알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그 라미, 레테사를 통해 건네받은 그 원반을 상자에서 꺼내 탁상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써 카리나에게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카리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두 개의 문장이 하얗게 빛을 발하는 그 은화처럼 생긴 원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후, 나무 그리고 산 모양의 문양이 하얗게 빛을 발하는 그 은화처럼 생긴 원반을 보더니, 그 원반을 돌려 산처럼 생긴 문양의 시계 방향 옆에 위치하고 있는 비석 모양의 문장을 가리키면서 그 문양에 대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다음에는 저 문양이 빛을 발해야 하겠지?"
  "그렇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답을 하고서, 다시 한 번 카리나에게 그 때가 되면 바로 원반이 나무의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산 위로 올라가도록 하자고 청을 해 보았다.
  "좋아, 가 보지. 이 곳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러한 나의 요청에 카리나는 바로 좋다고 답을 하고서, 같이 갈 것을 약속하고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생겼음을 바로 알리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의 모습을 보면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지금 이후, 8 개 지역 순회를 마치기 전까지 포레 느와흐와 마주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반드시." 그러자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악연이 있는 사람의 후손이 자신을 저지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려 하지 않겠느냐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서,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전망을 하였다. 그러자 카리나가 그런 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대결로 이어지게 되려나."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 자신에게도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그 대결을 한다는 위험을 스스로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여기려 할 거야. 그는 어머니만큼, 나 역시 경계하고 있기는 하니까."
  "하는 일이라면...... 고대 유적 진입과 검은 섬의 힘을 깨우는 것이겠지?"
  대화를 마칠 무렵,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바로 그러하다고 답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그를 처치해, 그 힘을 깨우는 일을 저지하면 8 개 지역 순회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대 유적의 힘을 깨우는 것이 주 목적으로 삼는 만큼,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후, 찻잔을 비우고, 빵도 다 먹은 이후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여기면서 찻집을 나서기로 하였다. 찻집 주인인 여성에게 카리나가 다가가서 바로 지폐 몇 장을 건네었고, 거스름돈으로서 은화 몇 개를 받았고, 이후 돈을 지불해 준 카리나의 뒤를 따라 찻집을 나서고서 문화 회관 뒤편의 상점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 무렵, 상점 거리 한 곳에 자리잡은 작은 원형 광장을 둘러싸는 벽 안쪽의 의자에 앉은 두 소녀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듯했던 그 대화는 근방에서 자세히 들어보니, 나와 카리나에게 있어서 그냥 지나갈 수는 없어 보이는 화제를 품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눈앞으로 좌측에 하얀 민소매 옷과 짤막한 치마 차림을 한 머리카락 긴 소녀가 앉아 있었으며, 그 바로 옆에는 붉은색을 띠는 소매가 없고, 치맛단이 무릎 바로 위까지는 내려갈 법해 보이는 원피스 차림을 한 이로서, 머리카락이 짧고, 머리 위에 리본을 달아놓은 모습을 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어서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였었다, 먼저 말을 건 이는 왼쪽에 보이는 소녀.
  "이전에 사건이 일어났던 그 성채 있지?"
  "응, 그 검은 불꽃에 휩싸였다는 성채 말이지? 그 검은 불꽃이 이상한 성질을 갖고 있어서 그 불꽃에 휩싸인 케레브 족 잔당은 거의 다 죽었다는데, 성채 자체는 무사했다던데. 아무튼 그 성채 부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이후, 검은 불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우측의 소녀가 건네는 말에 좌측의 소녀가 바로 그렇다고 화답을 하더니, 그에 이어 성채가 아닌 성채가 위치한 호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야기인 즉, 밤마다 새햐안 물새들이 무리지어 호수 부근에 모이고는 하며, 이 무리는 특이하게도 힘센 이나 늙은이가 아닌 금빛 왕관을 쓴 작은 새가 있어서 그 새가 지도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어렸을 적부터 고니처럼 생긴 특이한 물새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머니를 통해 들은 바 있으며, 이전에도 레테사를 통해 물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 특이한 물새들을 잡으려 하는 이들도 있으려나."
  "불길한 새로 여기며 잡으려 한 이들도 있었던 것 같지만, 좋은 말은 듣지 못했었지. 그 아름답게 생긴 새를 왜 잡아서 목숨을 끊어 더 보지 못하게 하느냐는 거야."
  이후, 왼편에 자리잡은 소녀가 건네는 물음에 우측의 소녀가 답을 하였다. 그에 이어, 우측의 소녀가 한 가지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 물새 무리가 밤이 될 때마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좌측의 소녀는 별로 믿겨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드러냈으나, 그들 중에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이의 모습도 있다는 소문에 바로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였었다.

  샤하르에 머무를 무렵에 자주 들렀던 문구상으로 가서 물품을 몇 사려 하였다, 당시에 내가 사려 하였던 것은 필기구 한 자루로 카리나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게 된 것. 그 때, 도구상 주인이었던 여성 역시 나를 바로 알아보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 때에는 문화 회관 뒤편 거리의 도장 가게에서처럼 놀라지 않고 그의 반갑다는 의사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이후, 때마침 가게 주인인 여성의 점심 식사 시간이라 나는 카리나와 함께 그의 개인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작은 주방과도 같았던 여성의 방 한 가운데에는 원탁 하나가 놓여 있었으며, 나와 카리나는 그 원탁을 둘러싸는 의자들 중에 하나를 골라 앉을 수 있었다. 나와 카리나가 나란히 앉은 그 건너편에 여성이 앉았다.
  그 무렵, 중년 여성이 나를 보더니 바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해 보였으나, 범상치 않은 사람일 것 같아 보였다고, 그의 모습을 본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으니, 그는 오래 전부터 같은 곳에서 늘 한결같이 문구 가게를 운영하였으며, 어머니를 처음 본 지도 꽤 오래되었음을 밝혔다.
  "아르셀은 학업 문제로 이 곳에 머무르고는 하였고, 이래저래 문구를 살 일이 있어서 오래 전부터 내 가게를 들르고는 했었지, 꽤나 장난기 많은 아가씨였던 것으로 알고 있어."
  여성의 이름은 '마리(Mari)' 이며, 그가 말한대로 꽤 오래 전에 문화 회관 뒤쪽에 가게를 차려, 줄곧 운영을 해 오고 있는 사람이었다. 샤하르에 거주할 무렵에 그의 가게를 자주 이용했고, 단골 고객이었던 관계로 특별히 잘 대우해 주기도 하였다고. 어머니 역시 그로부터 단골 고객으로서 대접을 받았다고 하나, 그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 처음 들어보았다.
  어머니에 대한 언급을 하는 마리에게서 미소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무척 발랄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서 마리는 바로 차분하게 미소를 띠며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랬던 그 아가씨가 어느새 아이를 낳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오랜만에 다시 와서는 자기 딸을 데려오고, 그 딸이 장성해서 여기로 다시 왔지. 그 어렸던 딸이 장성해서 어머니를 대략 닮은 모습을 보이며, 오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많이 묘했었어.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구나, 늘 그렇게 생각해 왔었지."
  "아르사나는 아르셀 씨와 비교해서 어떠하였던가요."
  "더욱 진지하고 생각이 깊어 보였어, 이것저것 많이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인지 아는 것도 많았고."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여성이 바로 나에 대해 기억하고 있던 바를 밝히는 목소리를 내고서, 그에 이어 어머니 못지 않은 범상하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고 말하고서, 무언가 큰 일을 이 세상에서 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음을 밝혔다. 그러자 카리나가 바로 그런 그에게 물었다.
  "아르셀 씨께서 그런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었나요?"
  이에 마리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 당시의 나와 거의 비슷하게 반응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그러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그 당시, 그는 마법학교의 견습생이었고, 자신은 세상을 구하는 일에 관여하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마리는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나와 카리나에게 말했다.
  "누구도 처음부터 자신이 용사라든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던가 해서 용사가 될 수는 있을 거야. 네 어머니도 그런 계기를 통해 용사가 될 수 있을만한 사람이었지만...... 모르는 일이지. 그래도 이번에는 네가 용사로 알려지는 모습을 혹시나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그 말..... 믿어도 될까요."
  카리나는 마리의 발언에 대해 믿겨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내 생각도 그런 그와 그렇게 많은 차이를 갖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후, 마리의 이야기에 대해 카리나가 의문을 품으며 건네는 물음에 대한 마리의 답변이 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니, 그저 그렇다는 생각을 했을 따름이지. 그러하니, 그것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귀담아 들을 필요까지는 없을 게야."
  이후, 마리는 나의 모습을 보며, 한 동안 정들었던 사람을 간만에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다고 말하고서, 이렇게 고향에 왔으니, 어머니의 집으로 한 번 정도는 가 봐야 함이 옳지 않겠느냐고 권유의 말을 건네었고, 그에 이어 자신도 간만에 돌아온 나를 보며 무척 반가웠었는데, 어머니는 장성한 나를 보며, 얼마나 기뻐할 것이냐고 이어 물음을 건네기도 하였다.
  '이 분께서는 네 어머니께서 어찌 되셨는지를......'
  그 때, 어머니를 언급하는 마리의 모습을 보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카리나가 귓속말로 나에게 말을 건네자, 나는 바로 '아직 때가 아니야.' 라고 답을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마리는 어머니께서 오래 전에 돌아가셨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어머니 그리고 나에 대해 기분 좋게 마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기분을 함부로 깰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그래서 그에 대해 사실을 말하려 했던 카리나를 조용히 제지하려 하였던 것.
  "어머니를 만나고 나면, 그 때 네 어머니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해 주었는지를 나에게도 전해 주려무나."
  이후, 마리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어머니의 묘소는 어디에 있니?"
  "호수의 성채, 그 뒤쪽 건너편의 숲길 한 곳에 있어."
  물품 구매를 마치고, 필기구를 들며 가게 문을 나서는 카리나가 먼저 밖으로 나온 나에게 건네는 물음에 바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이후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묘소의 비밀에 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해서는 안 된다고 묘소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지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음을 밝혔다.
  "묘소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있겠니, 무슨 부장품 같은 것을 묻은 것도 아니고."
  이에 대해 카리나가 바로 의아함을 드러내며 묻자, 나는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고 답을 하였다. 실제로 그렇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으로 더 이상 알 수 있는 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무언가 그 묘소에 사람들이 함부로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 같은 것이 묻혀 있기에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생겼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을 건네기는 하였다.
  카리나는 비밀에 대해 흥미를 느낀 듯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무덤을 함부로 파거나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그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 여기도록 하겠음을 밝히고서 나에게 그 묘소도 가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나는 있다고 답을 하고서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 바로 그 곳도 가 보자고 청했다.
  그러는 동안 나와 카리나는 찻집 부근에 마차가 서 있고, 그 마차에서 손에 달린 실로 괴뢰를 움직이는 형태의 인형극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여러 사람들이 그 마차 앞에서 인형극을 구경하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옛 시절부터 전래되어 온 역사를 소재로 한 동화로서 감빛의 용을 빛의 용사가 나서서 물리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용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용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지 않았으니, 성채에서 보았던 그 용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의 깊게 인형 술사가 묘사하는 용과 용사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을 즈음, 카리나가 그런 나를 보며 물었다.
  "샤하리아 지방 일대의 일화에서 유래된 연극이라던데. 그 모습을 보며 무언가 생각난 바가 있었던 거야?"
  "이전 사건 당시에 내가 마지막으로 칠흑빛 용을 처단했었어, 성내에 술사로 변장해 있었는데...... 그 용의 모습이 저 인형극에서 보이는 용과 무척 닮아서 그래."
  "그랬구나." 이에 카리나는 조용히 그렇게 화답을 할 따름이었다. 이후, 나는 시장 거리를 벗어나 다시 문화 광장이라 칭해지는 문화 회관 사이의 광장으로 발걸음을 향하려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의 묘소에 관해 잠시 생각을 하였다, 비밀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외지 사람들에게서 들려온 호수 성채 뒤편의 묘소 내부의 묘실은 사실 비보를 숨기는 곳이라하는 소문 등...... 그간 들려왔던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문화 광장은 여느 때처럼 평화로웠으며, 그 공간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그 넓은 공간 내에 이르자마자 카리나가 나를 보면서 조용히 물음을 건네 보았다.
  "아르사나, 이제는 어디로 갈 생각이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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