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카리나가 에이샤를 비롯한 세 아이들을 데리고 산정에서 내려가고, 나는 홀로 산정에 남아, 그 남쪽 가장자리 한 곳에 서 있으며 산 너머로 보이는 호수와 하늘의 모습으로 시선을 보냈다. 처음에는 서 있었지만 이후에는 발이 아파서 산정의 절벽가 한 곳에 앉았다. 엉덩이만 절벽가에 걸치는 정도였던지라 남들 보기에는 무척 위험해 보이기는 했겠지만 나는 절벽가에 늘 그렇게 앉아왔기에 그 정도는 나에게 있어서 위험한 것 정도도 아니었다.
발밑 너머로 호수와 그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성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성채와 호수가를 잇는 다리, 한 가운데가 감빛 마력의 폭주로 인해 생성된 괴물에 의해 끊긴 목재 다리의 모습이 보였다. 모든 사건이 끝난 이후, 그 일대는 그저 정적이 느껴질 정도로 고요해져 있었다, 그간 괴물체들의 습격을 비롯한 전투가 잇달아 발생했던 그 현장을 상상하기 힘들 수도 있을 지경.
그 광경을 보다 말고, 잠시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려 했을 뿐이었는데, 그 무렵, 나의 시선에 숲의 나무들에 둘러싸인 모래밭과 그 모래밭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통나무 집을 볼 수 있었다.
'저 통나무 집은.......'
낯선 위치에서 보였기에, 낯설지 않은 듯해 보였지만, 보이는 것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그 집은 다름 아닌 내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함께 나아갔던 늙은 마녀의 오두막집이 바로 그 집이었다.
늙은 마녀의 오두막. 집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지만, 집에 이르렀던 기억은 있다. 어머니께서는 오두막 집에서 노파와 대화를 하고, 그 시간에 나는 어머니께서 집에서 나오시기를 기다리며 모래밭에서 모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오두막의 노파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아는 바가 없으니, 그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었음이 그 이유였다. 오래 전부터 노파는 늘 집 안에서만 머무르고 있었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보니,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내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지내오고 어떤 심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어머니라면 그에 대해 아는 바를 갖고 계셨겠지만 이제 와서 그 아는 것에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그 노파의 집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어딘가에서부터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의 소리로 그 소리는 성채 부근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고니 닮은 물새들이잖아.'
성채 부근의 상공에서 한 무리의 새하얀 물새들이 성채 건너편의 호수가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의 영도자 역할을 하는 이는 이전에도 보았던 그 왕관을 쓴 물새로서, 그 많은 물새들이 그의 비행을 마냥 따라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내가 앉은 그 방향으로서, 이들은 호수가의 한 곳에 마치 이끌려 가는 듯이 비행을 이어가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옛 거주지로 가고 있잖아, 그 빛에 이끌려 가고 있으려나.'
그 광경을 보며,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남기신 빛의 생물 '스파라' 들의 빛에 이끌려 그 빛을 좇아가려 하였던 것. 하지만 물새들은 그 빛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은 알아차리거나 하지는 못한 듯해 보였다. 그렇게 물새들이 왕관을 쓴 한 마리의 뜻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광경을 보며, 나는 그 왕관을 쓴 물새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본래, 저 새는 어떤 존재였으려나, 저 모습을 보니, 문득 궁금해지네.'
한편, 물새들의 무리 비행은 성채 남쪽에 자리잡은 어머니의 옛 오두막 부근에 당도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어머니의 오두막과 그 부근의 풀밭에 정착하지 않고, 그 엎쪽의 수면 위에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오두막 부근은 아직 사람들이 오가는지라 함부로 정착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들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아래에 동굴이 있으며, 그 동굴 너머로 호수를 향하는 수로가 펼쳐져 있었는데, 이를 피난처로 이용하는 경우가 예전에도 몇 있었다고 한다, 근래에 있었던 '포헤 느와흐' 의 침략 당시에도 그 수로를 이용해 케레브 족의 탄압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물새들이 그 수로를 숨은 거처로 이용하려 하였으리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수로는 어머니의 오두막, 그 부근의 동굴을 통해 들어설 수 있다고 하였다. 근 시간 내에 그 동굴을 통해 수로로 들어선다면 물새 무리와 마주할 수도 있어 보였으니, 어쩌면 그 곳에서 물새들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그와 더불어 만약, 그들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이 본래 어떤 이들이었는지도 알 수 있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주에 대해 그들은 아는 바가 있을까,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들이 자신들의 저주를 사멸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황 상, 모른다고 봐야 하겠지만 그들의 진실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고, 그래서 그 추측이 옳다고 마냥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이후, 물새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되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하르에 있는 아잘리의 집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저주받은 물새들을 만나보겠음을 알리면서 그가 저주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그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였던 것.
"호수가 산정에 포헤 느와흐가 숨어 있었다고."
도시의 중앙 광장 동쪽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아잘리의 집으로 돌아가 그의 집에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을 때, 그로부터 들려온 질문이었다. 아잘리는 나와 카리나가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포헤 느와흐가 그렇게 패전을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틀린 야망은 여전해 보인다고 말하고서,
"어떤 식으로든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하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그래서 천문대 측 사람들이 그것을 목적으로 자신에게 일을 사주한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서 포헤 느와흐와 그가 남긴 환수가 사라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 의해 저주받은 자들로 추정되는 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음을 밝히고서 그들은 호수가의 옛집 바로 아래에 있는 수로로 이어지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도 이어 밝혔다.
"동굴이라면 슈라일의 호수와 이어진 그 수로 동굴을 의미하겠지."
그리고서 그가 건네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의미로써 답하였고, 그러자 아잘리는 평상시에도 그들이 자주 그 일대를 거처로 활용하고 있었을 것이며, 그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을 만나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음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러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는 아닐 거야."
이 물음에 나는 그렇게 화답을 하고서,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거처에 무작정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한 이후에 그들의 무리를 찾아내는 것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찾아올 기회를 찾아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밝혔다.
"그 부근에는 아르셀, 그러니까 네 어머니의 옛 거처가 있지?"
그러자, 아잘리는 바로 어머니의 옛 거처에 관한 물음을 건네었고, 그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대답을 대신하자 아잘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생각대로 그들이 나타난다면, 그 거처 부근이 될 것임을 밝히고서, 그 곳으로 가 볼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나는 아잘리 역시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해 보고 싶었지만 아잘리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 말까지는 하지 않고, 그의 참가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들어보려 하였지만 그 의사에 대한 말은 들리지 않았다.
"혹시, 이러한 저주에 대한 이야기 중에 아는 바가 있어?"
저주받은 자들에게 가해진 속박은 과거에는 '대마법사' 라 칭해졌던 흉악한 마법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단순히 빛의 힘만을 이용해서는 제거될 수 있을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인 만큼, 무언가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시 아잘리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그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다.
"이런 이야기라면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한데......."
그러면서 아잘리는 나에게 자신이 과거에 들어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 이야기를 나에게 알리려 하였다.
어떤 세계의 어떤 왕국, 그 왕국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왕국에는 공주의 미모를 동경한 사령술사가 있어서 그에게 청혼을 했지만 그의 사악한 심성을 알고 있던 공주는 그의 청혼이 올 때마다 거절했다. 급기야 사령술사는 왕에게 공주와의 청혼을 강요하며 위협을 가했으나, 왕은 그의 요청을 듣지 않았고, 사령술사는 분노하면서 왕을 비롯한 왕국의 백성들에게 저주를 가해, 그들이 물새로서 살도록 만들어 버렸다.
어둠의 저주를 받은 왕국을 떠난 공주는 사람들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각지를 전전하다가 어떤 주술사로부터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맞는 옷을 엉겅퀴 줄기로 자아내서 만드는 것.
그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옷을 엉겅퀴 줄기로 자아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터무니 없다고 여길 수 있었고, 실제로 주술사는 공주에게 터무니 없는 제안을 한 것이 틀림 없었으니, 주술사는 공주의 순수한 본성을 이용해 그를 속여, 누가 보더라도 수상해 보일 짓을 행하도록 하여, 마녀로서 처형당할 처지에 놓이도록 하였던 것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공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에 의해 마녀로 지목당해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처형당하기 직전에 공주를 한 무리의 물새들이 둘러싸고, 공주는 그런 물새들에게 자신이 만들었던 옷을 던져 보냈다.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식물로 이루어진, 그래서 입기만 해도 상처투성이가 될 법한 그 옷을 입은 새들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다가 각자가 입고 있던 옷이 소멸하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왕국에 내려진 저주가 풀리면서 동물로 살아갔던 사람들 모두 인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 사람들로부터 구전되어 오던 것을 들어서 알게 된 이야기야."
이야기를 마치며, 아잘리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전래되어 왔는지를 밝혔다. 다만, 그 이야기가 어떻게 전래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아는 바가 없었는지 이야기를 해 주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주받은 자들을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저주에 속박되는 것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하고, 괴로운 그들의 삶과 함께할 수 있다면, 비록 거짓된 방법을 이용하더라도 속박받는 이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것이 이야기가 내세우고자 하는 바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에서처럼 나는 그들과 당장 함께하고 있지 않고 있잖아,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도 못 되고."
"그렇지......" 이후, 내가 건네는 말에 아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을 하였다. 그 때, 나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카리나가 바로 앞에 앉은 아잘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그렇다면 좋은 방법으로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그 질문에 아잘리는 우선 세간에 들려온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것을 소개하려 하였다.
"그들을 데려가서 연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어요."
그리고서 아잘리는 카리나에게 '저주받은 물새들' 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들의 존재를 가만히 두고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는 늘 있어 왔음을 밝히고서 통상적인 방법으로 저주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들의 육신에 서린 저주를 연구하는 것으로써 저주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음을 밝혔다.
이전에도 그들을 포획해서라도 저주를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간 비인도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하여 관련된 건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저주를 풀 수 없음이 밝혀지면서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 다만, 그 연구가 저주와 그것을 유발하는 타락한 기운의 정화에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자체에 대해서는 명확한 의견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튼, 아르사나, 내 생각은 말야, 네가 그들을 만나보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들의 진실된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의 저주가 어떠한 괴로움을 유발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저주의 정화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지."
그리고서 아잘리는 나무의 빛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 빛을 통해 그들의 저주를 정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드러내고서, 나에게 그 능력의 활용 가능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 가마일 산 천문대 소속이었던 이들 중에 '빛의 제어' 라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이는 소르나(Sorna)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가마일 산 천문대를 맡게 된 레테사(Retesa) 정도. 가마일 산에 있는 레테사는 사정상 어렵고, 소르나는 만나는 것 자체부터 어려운 실정이다보니, 안 될 노릇이었다.
"나는 그런 능력까지는 갖추지를 못해서......"
"아쉽네, 네 잠재 능력 정도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되기는 하는데......"
이후, 내가 건네는 답에 아잘리는 바로 아쉬움의 감정을 드러내면서 화답을 하였다. 그 때, 카리나가 아잘리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건네려 하였다.
"아르사나는 이전에도 빛을 제어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이로 주목받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가마일 산의 마을에서 제가 들은 이야기일 따름이고, 그는 직접 들어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러자 아잘리는 마치 자신의 자랑이라도 된 듯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역시, 능력자는 어디를 가든 인정을 받는다니까요." 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그 후, 카리나는 나에게 언제 즈음 그런 능력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한 적이 없던 나는 명확히 대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떻게든 가능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 무렵, 아잘리가 나를 보며 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드러내는 발언을 전하고 있었다.
아잘리의 의견대로, 나는 다시 슈라일 인근의 호수가로 나아가기로 하고, 바로 북쪽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길을 나아가는 동안, 나는 길의 좌측-서쪽- 가장자리의 길목을 따라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겨가는 동안 나의 우측 근방에서 동행하고 있던 카리나가 문득 이전에 호수가에서 만났던 아이들-에이샤, 카티야-이 생각났는지,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들이 생각나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다시 만난다면 생각이 날지도 모른다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했던 카리나에게 이렇게 되물어 보았다 :
"너는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되지 않겠어? 너를 두고 내려가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이후, 카리나는 나를 놓아두고 에이샤 등과 함께 동굴의 길을 통해 산을 내려가고 있던 도중에 있었던 대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동굴에서 카티야가 그 물새들이 정말 사람이었다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고 싶다고 의사를 드러내었고, 이에 카리나는 에이샤 등에게 자신이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고 대답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나타나는 곳을 나와 네가 알려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이지?"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바로 그러하다고 답을 하고서, 슈라일 마을에 오면 그들과 마주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겨가며, 샤하르 북쪽 교외를 지나, 슈라일 인근의 숲길에 이르렀을 무렵, 나의 눈앞으로 보이는 길목 한 곳의 나무 근방에 엘베 족 자매가 머무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두색 옷차림을 갖춘 쌍둥이 자매로서, 이들 중 왼편에 머무르는 한 명이 사람의 키만한 거대한 총포를 들고 있어서 그 모습을 통해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린은 앉아 있었으며, 리아는 그 바로 우측에서 총포의 포구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은 채, 앉아 있었다.
"저 분들은 엘베 족 자매, 에오르 린과 리아 자매잖아."
그 모습을 알아보자마자 곁에서 동행하고 있던 카리나가 그들이 누구인지를 바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근처의 나무에 기대어 서 있거나 앉아 있으면서 쉬고 있었던 모양으로 숲길을 나아가는 도중이었으리라 여기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질문을 해 보았다.
"린, 리아 씨이지요? 어디 가시고 계셨는지......"
"이 근방 일대를 돌고 있었어요, 성 밖에 있는 케레브 족 잔당을 추적하기 위함이지요. 성채가 함락되면서 악행을 기도하였던 케레브 족은 사라졌지만 성채 바깥으로 나아간 이들이 있어서 그들에 의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최근에 케레브 족 잔당 한 명을 붙잡아 전이 장치를 통해 아르데이스에 보낸 적이 있어요, 슈라일 마을에 무언가 일을 꾸밀 계획을 갖고 있었대요."
"슈라일 마을에 폭탄을 숨겨놓는다는지......"
이후, 카리나가 물음을 건네자, 린이 그 답으로써 식수원으로 활용되는 저수지가 근방에 있다는데, 그 저수지를 암흑의 기운으로 오염시키려 하였음을 밝혔다. 그의 품에 독액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담긴 병이 발견되었는데, 그 병을 빼앗아 독액의 실체를 확인해 본 결과, 암흑의 기운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본래는 기체 상태로 떠도는 암흑의 기운을 액화시킨 물건이었다고 한다.
그 암흑의 기운이라함은 접촉한 사람의 신체 구조를 변질시켜, 이전에 내가 지하 통로 너머의 이계에서 목도하였던 그 시체 괴물로 만들 수 있는 기운이었다고 한다. 인간을 비롯한 통상적인 생물은 시체 괴물로 변이되지만 빛 혹은 감빛 기운으로 이루어진 생물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알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실험이 필요했다고, 그 케레브 족 잔당은 말했다고 한다.
"무척이나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만큼, 샤하리아가 아닌 아르데이스의 엘베 족 사람들이 직접 처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어 그 쪽으로 보냈어요. 그 이후에 같은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하여 지속적으로 조사를 하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 린과 리아 자매는 계속 샤하리아와 샤르기아 그리고 그 너머에 위치하고 있는 금사 지대, '하나야스(Khanajas)' 일대에 비열한 의도를 갖고 소위, 암약을 시도하는 케레브 족 잔당 및 포헤 느와흐의 추종자들을 색출하려 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당분간은 샤하리아 일대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고 이어서 자신들의 앞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렇다면, 당분간 저희들과 동행하거나 하지는 못하시겠네요."
그러자 리아가 나와 카리나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되었음을 밝힌 이후에 그래도 공통의 목표-포헤 느와흐라 칭해지는 인물의 제거-가 있는 만큼, 동행할 기회는 언제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드러내었다.
이후, 린이 나와 카리나에게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간 마음먹은 바대로, 슈라일 북쪽 인근의 호수가로 나아가려 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물새들이 호수가에 모여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음을 이어 밝혔다. 그러자 리아가 나를 보더니, 차분히 목소리를 내면서 조심해 줄 것을 당부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조심하는 것이 좋아요, 그 일대에 어둠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제보가 있었어요."
"어둠의 기운이오?" 이에 카리나가 놀라면서 리아에게 어둠의 기운에 대해 물으려 하자, 리아가 답을 하니, 슈라일의 찻집에 머무르는 도중에 찻집의 손님으로 있던 마을 사람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에 대한 소문이 현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음을 밝힌 이후에 소문이 그렇게 퍼지고 있었음에는 그러할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이어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린, 리아 자매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 우리도 그 일대를 나아가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할 거야."
이후, 카리나가 주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의 발언을 길을 재촉하려는 나에게 하였다. 그 말을 들으며, 나 역시 앞 일에 대한 각오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북쪽 너머에 자리잡고 있을 슈라일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슈라일에 도착했을 무렵, 날은 많이 어둑해져 있었고, 거리에는 사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찻집 내부를 잠깐 들여다보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으면서 각자의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깐 찻집에 머무를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보다는 그러다가 그 이후로 언제 어머니의 옛 집을 들를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어머니의 집으로 빨리 가 보기로 하고, 찻집을 지나 북쪽을 향하는 길을 따라 나아가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이 조용한 분위기의 찻집도 언제 다시 들를 수 있을지 모르는데......"
카리나는 그 찻집이 가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 허나, 그러하였던 그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었는지, 그저 나를 따라 나아가기를 이어가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나중에 여기서의 여행을 마쳤을 때, 너는 잠깐 여기에 남아 있으면 되는데......"
이후, 내가 샤하리아에 남아 있을 것을 권해 보았지만 그 말에 카리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슈라일 북쪽 인근의 호수가에 이르자마자 왼편-서쪽- 길목을 따라 나아가며, 그 길목 한 곳에 자리잡은 어머니의 옛 집 부근에 이르렀다. 호수의 동쪽 길목 너머로는 숲길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산까지 이어지는 그 길목의 한 곳에 그 마법사 노파의 집이 자리잡고 있다. 그 길목 너머는 아직 갈 이유가 없었기에 그 너머를 향할 생각은 없었다.
여느 때도 그러하였겠으나, 어머니의 옛 집 일대는 고요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저 스파라라 칭해지는 하얀 빛을 발하는 작은 새들이 옛 집 인근의 오두막 일대를 떠돌며 어둑해진 주변 일대를 환하게 비추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무 오두막집 부근에는 3 명의 어린 소녀들이 나란히 모여 앉아 있었으며, 이들은 호수가의 수면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가의 수면에 무언가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며 우선 그들에게 다가가 보기로 하였다.
"이들은...... 그 때에 만났던 그 아이들이잖아."
그들과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갔을 무렵, 그들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 때 만났던 에이샤, 카티야였다, 하얀 원피스 차림을 한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로서, 목에 금색 목걸이를 건 아이가 에이샤, 하얀 셔츠에 푸른 멜빵 치마 차림을 한 아이가 카티야.
이외에 이들의 앞에 이전에는 보지 못한 여자아이가 그들의 바로 우측에 앉아 있었으니, 감빛 머리카락을 묶어 내린 이로서, 소매 없는 하얀 블라우스와 푸른색, 청록색 체크 무늬 치마 차림을 한 아이였다. 카리나가 말한 대로, 그 하얀 물새들이 한밤중에 호수가로 오는 줄 알고 집 부근에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어라? 이전에 오셨던 그 분들이시잖아요."
그들의 곁으로 오자마자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샤의 목소리였다.
카리나가 말한 바대로, 에이샤 등은 물새들이 밤중에 일대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 이야기대로 그들이 나타나 줄 것을 기대하며 호수가에 나와 있었다고 한다. 이전부터 같이 지내던 친구 아이를 데려와서 그 일대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그렇게 호수가로 나아가는 동안, 성채 부근에서 날아온 물새들이 그 집 아래로 숨어드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호수가에서 그들이 밖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네, 그렇지?"
"예, 그런데 이 즈음 되면 시간이 되었을 텐데도 그들이 호수가로 나타나는 모습은 보이지 않네요."
그렇게 나와 만나게 된 이후, 이전에 예기된 대로, 풀밭 부근의 바위가에 앉은 나에게 다가온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들로부터 호수가로 숨어든 물새들이 다시 날갯짓하며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처음 본 아이의 이름을 카티야가 알려주니, 그 아이의 이름은 이전에도 거론된 바 있던 테이라(Teira) 였다. 에이샤, 카티야와 오래 전부터 함께 놀러다니며 친해진 사이로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를 느끼며 물새 구경을 위해 나서게 되었다고. 당시의 대화에 의하면 테이라는 그 무렵에 잠을 잘 생각은 아예 포기했다고.
하지만 물새들이 호수가 아래의 동굴에서 나올 조짐은 없었고, 그래서 마냥 호수가에 멍하니 서 있으며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카리나는 잠시 다른 곳 일대를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였으며, 아이들은 풀밭에서 잠깐 놀고 있겠다하였다, 그래서 내가 계속 호수가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놀고 있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저렇게 놀 수 있는 시간이 없었지, 나에게는......'
집이 마을과 거리를 두고 있는 외딴 곳에 있다보니,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어도 그들과 함께 놀러다니거나 할 시간은 쉬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러하다보니 어렸을 적에는 혼자 숲길을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동굴 안에 들어가는 등으로 시간을 보낼 때도 많았었다.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함께 이것저것 해 볼 시간을 가진 것은 이후, 샤하르에 있는 학당에 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머니께서 성채가 보이는 호수가 일대에 거주하기 시작한 때는 2 번째로 포헤 느와흐를 격멸한 이후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무슨 이유로 도시를 떠나, 근방의 슈라일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호수가에 나와 단 둘이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샤하르에 있을 즈음에 관련된 소문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포헤 느와흐의 성채가 함락되고, 그 군세가 사라진 이후에도 케레브 족의 잔당은 상존하고 있으며, 그들에 의해 어둠의 군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하여, 그들을 관찰하기 위해 호수가에 일부러 거처를 마련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외딴 곳에 거주하면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좋았던 점이 있었다면 성채가 보이는 이 호수가, 그리고 그 주변 일대의 수풀 및 산정의 아름다운 풍경과 늘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감빛을 띠는 호수와 하늘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풍경과 숲과 초목의 초목들 그리고 무지개색을 띠며 빛나는 꽃들 모두가 너무도 좋았었다.
그렇다고, 그 일대에서의 삶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고, 한 때는 어머니와 나를 제외하면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의 삶을 지루하다 여긴 적도 있었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샤하르에 거주하면서 사정으로 인해 슈라일의 호수가로 갈 기회가 없어지면서 그 곳에서의 삶에서 지루함을 느낀 적이 있었음에 후회하기도 했었다, 처음 샤하르에 이주했을 때에는 언제든 그 일대로 다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슈라일 일대에 거주하는 것이 부럽다는 사람이 있었다. 샤하르의 문화 회관 서부 근방의 어느 찻집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으며, 모종의 좋지 않은 일들을 겪은 탓인지 초췌한 인상의 노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노인은 샤하리아의 슈라일 일대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꾸미는 것이 자신의 소망이었음을 밝히고서 틈만 나면 호수가에 있으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여기었음이 그 이유였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이고, 들르는 사람들도 변하였겠으나, 그 일대의 풍경만큼은 여전했다. 풀밭에 피어나는 들꽃들의 모습조차 내가 어렸을 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풍경을 길가 건너편의 호수와 성채의 풍경과 더불어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어머니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왜 이 곳으로 이주하셨는지 이제는 알 것만 같아.'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머니께서 왜 호수가로 이주해 살려 하셨는지, 그 심정을 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 성채를 향하면서 호수가를 향하며,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고 싶어서였을 것이라 여기었다, 그 때의 내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있을지를 보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려 나의 뒤쪽을 바라보려 하는 그 때, 그간 열심히 뛰어놀던 아이들이 어머니의 옛 집인 나무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모습이 그런 나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밖에서 이런저런 놀이를 즐기면서 물새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밖에서 할 놀거리도 더 이상 없어서 집 안에 있으면서 그들을 기다리려 하였던 모양.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 나의 우측에서 카리나가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간 멍하니 앉아서 뭐하고 있느냐는 말이었다. 이 말에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답을 하고서, 그간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뭐......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으면서 여기로 오는 사람이 있나 살펴보고 있었어, 그러다가 샤르기스(Sar-Gis) 에 있다는 세니아에게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문의 전화도 해 보고."
"그래......?" 밤도 다 깊었는데 일부러 호수가로 찾아오려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그 생각을 바로 드러내려 하지는 않았다, 정말 이 밤중에 밤 경치를 구경한다고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앉은 바위 오른편으로 온 카리나와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고 있던 그 때, 카리나가 뒤쪽에서 무언가 발견한 것이 있었는지, 그가 나를 불러, 뒤쪽에 누군가 풀밭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르사나! 저기를 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풀밭으로 오고 있어!"
"그래?"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그간 앉아있던 바위에서 다급히 일어나, 하얀 옷의 여인이 나타났다는 그 풀밭 일대를 향해 돌아서려 하였다, 모종의 예감이 바로 들고 있었다.
그 때, 나의 눈앞으로 그간 보이지 않던, 샤하리아 지방의 여인들이 갖추는 복장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법한 옷차림을 갖춘 어떤 여인이 사뿐히 발걸음을 옮기며 풀밭 한 가운데로 오고 있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창백해 보일 정도로 얼굴색이 하얀 이로서, 검은 머리카락을 묶어 올리고, 눈가와 입술에 화장을 가하였으며, 어깨 부분이 없고, 치맛단이 짧은 하얀 드레스 차림을 하고, 두 다리의 허벅지 바로 위쪽까지를 하얀 천으로 감싸고, 두 발을 하얀 구두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화사해 보이는 옷차림에 머리에는 은빛 왕관까지 쓰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보는 누구라도 고귀한 신분을 가진 여성일 것이라 간주할 수 있어 보였다. 나 역시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어느 나라의 공주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여긴 바 있었다.
'저 왕관은 분명 호수가에서 보았던 그 물새의 그것 아닌가.'
그러다가 그 머리 위에 여인이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 왕관을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그 때 보았던 그 물새의 왕관과 대략 흡사해 보였다-당시, 나는 물새의 왕관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 모습을 분명히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와의 만남이 저주받은 물새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인이 집 근처의 풀밭에 이르고서, 마치 춤을 추려는 듯이 두 팔을 양 어깨 너비로 벌리기 시작하는 것과 그 때를 같이 하여, 호수 뒤편의 산에서부터 날아온 보라색 빛을 발하는 기운이 풀밭 위로 날아오더니, 여인이 위치한 그 풀밭 위에 머무르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그 빛에서부터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간 들어본 적이 없는 고풍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이었다. 음악을 이루는 악기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인은 발걸음을 사뿐히 옮기면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유적지에서 보았을 법한 여신의 조각상과도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우아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전설 속의 여신이 된 것처럼. 보랏빛 기운에서부터 울려퍼지는 음악과 함께 여인이 춤을 추는 광경은 나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광경으로서, 그 광경을 나는 그저 넋을 잃은 채로 바라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이런 춤은 이전에도 본 적이 없어.'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에는 늘 호수가의 작은 집에 있었기에 그러하였으나, 그 이후, 도시-샤하르, 샤르기스 등-로 나아갔을 때에도 저런 옛 시대스러운 우아한 춤을 목도한 적이 없었다, 다만, 옛 시대에는 고상한 계층의 취향에 맞는 음악과 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역사 교육 등을 통해 알게 되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가무를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에 딱히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아잘리도 대략 그러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춤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풀밭에서 멍하니 서 있는 채로 여인의 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좌측에서 카리나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무슨 일인가 싶었던 모양.
"아르사나, 거기서 뭐해? 그냥 멍하니 서 있으면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거야?"
그 당시의 나는 그저 몰입하며 여인의 춤을 구경하고 있었기에 카리나가 그냥 부르는 데에도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부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렇게 놀란 채로 고개를 돌리자, 카리나가 그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면서 그런 나에 대해 말했다.
"...... 평소답지 않은데. 정말로 집중하며 보고 있었구나."
그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이에 카리나는 자신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한 이후에 그에 이어, 자신에게도 낯선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하고서,
"그래도 저 아름다운 춤을 넋을 잃어가며 바라보는 사람은 너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대체 어떤 매력이 너를 매료시켰다는 거야?"
라고 묻더니, 이어서 아이들도 불러볼 것인지를 물었다. 딱히 이상할 것은 아니라서 집으로 가 보려 하는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 목소리를 같이 들은 카리나가 나를 부르면서 말했다.
"...... 저 목소리, 너를 부르는 것 같은데?"
그 이후, 카리나는 자신이 대신 집으로 가 보겠음을 밝히고서 여인을 만나보라고 권했고, 이어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있는 일 같지 않다고 여인과의 만남에 대해 말을 건네었다. 그리하여 카리나는 집 안에 머무르고 있을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어머니의 옛 집으로 나아가고, 나는 카리나가 권한 바대로, 춤을 추고 있던 여인을 향해 다가가 보았다.
한편, 음악의 소리도 멈추고, 그간 빛을 발하던 보랏빛 기운도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그간 마치 전설 속에서의 '음악 여신' 과도 같이 춤을 추고 있던 여인은 어느새 춤을 멈추고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나를 향해 다소곳이 서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그간 제 모습을 보고 계셨었나 보네요."
나의 모습을 보며, 여인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간 춤에 열중하고 있기만 한 줄 알았건만,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아주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 이런 그의 물음에 나는 바로 솔직히 답을 하였다.
"예, 너무도 아름답게 춤을 추시고 계시기에......."
"저의 춤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나 봐요."
나의 그 솔직한 대답에 여인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묻는 듯한 말을 건네더니, 이어서 잠시 자신이 서 있는 그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동료는 어디에 있느냐고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나 이외에 동료가 한 명-카리나- 더 있었음 역시 알아차리고는 있었던 것. 이 물음에 나는 곧 집 안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것임을 밝히고서,
"모두 같이 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있나요?"
라고 여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당연하다고 화답을 하고서, 자신의 춤이 나를 매료시킬 수 있었다면, 앞으로 보여질 것은 그 곳에 있던 모든 이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것이라 말을 이어갔다. 이 무렵, 카리나가 집 안에 있던 3 명의 아이들-에이샤, 카티야 그리고 테이라-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여인과 대면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아이들보다 먼저 나의 좌측 곁으로 나아가서는 나에게 그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물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여기서 들려온 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으신 분이셔."
"그래?" 이후, 카리나는 여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여인의 외모 혹은 몸매에 이끌린 것은 아니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바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무척 당혹스러운 질문에 그렇게 답을 하자, 카리나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으며, 여인의 요정과도 같은 옷차림과 매혹적인 외견을 보는 나는 분명 그러하였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하고서, 그러하지 않았다니, 의외였다고 말을 더 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인지에 대해서는 살짝 의심이 들었던 모양.
"언니! 언니가 혹시 호수가에 있던 그......"
그 때, 카티야가 여인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으나, 여인은 그저 활짝 웃음을 지을 뿐, 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와 카리나는 이들의 좌측 근방, 호수가에 머무르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카리나가 물었다.
"어찌 솔직히 대답을 할 수 있겠어?"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있어?"
그리고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본인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것을 건드리는 사항이지 않을까 싶다고 답을 하는 그 때, 그 카리나의 예상과 달리 여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카티야 그리고 여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온 테이라 그리고 에이샤에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
"그래요, 제가 그 때, 호수가에 있었던 물새들 중 하나예요."
그리고서, 여인은 물가에서 혹시 왕관을 쓴 새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어서 카티야가 봤다고 답을 하자, 여인은 자신이 바로 그 왕관을 쓴 물새임을 솔직하게 밝혔다.
'그래, 아이들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겠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그 광경에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후, 여인은 자신의 바로 앞에 모여든 아이들-에이샤, 카티야 그리고 테이라- 앞에서 밤마다 그 호수가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내고 있었노라고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서, 한 동안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숨어 있어야만 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여러분, 저와 함께 춤을 추지 않으실래요?"
이후, 여인은 두 팔을 벌리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자고 아이들에게 권하는 말을 건네었다, 밝히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그 이유였다고.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색을 띠는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니, 그 바람은 성채 쪽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이에 놀라며, 성채 쪽으로 돌아서보니, 이미 성채가 위치한 그 상공에 검붉은 구름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 구름에서부터 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 불길한 기운을 띠고 있는 그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여인이 가슴에서 통증을 느끼는 듯이 주저앉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을 감싸는 감빛 기운이 불꽃처럼 피어오르며 물새의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여인을 괴롭게 만드는 불길한 기운, 그 현상을 목도하며, 그 실체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포헤 느와흐였다.
"포헤 느와흐!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느냐!!!"
분명, 이전에 있었던 산정에서의 사건 이후로 포헤 느와흐는 성채와 호수 일대를 완전히 떠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호수가 일대를 떠난 듯한 행세를 하면서 실제로는 이렇게 호수가를 떠나지 않고, 구름의 형상을 이루면서 호수가에 머무르고 있던 물새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그러다가 물새들이 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여기었는지 바로 암흑의 기운을 일으켰으리라.
"내가 이대로 떠났으리라 여기며 안심하고 있었느냐! 참으로 한심하군, 베르티의 후손이여!"
그 때, 성채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그 암운이 핏빛으로 깜박이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확실히 이전에 들려왔던 그 사악한 목소리, 포헤 느와흐의 목소리였다.
"너의 행동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나의 마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을 감지했겠지."
그와 동시에 다시 한 번 바람이 구름에서부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 뿐만이 아니라, 핏빛 기운까지 느껴지는 흉악한 바람. 그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동시에 괴로워하던 여인은 갑자기 기운을 차린 듯이 일어나더니, 검붉은 기운에 감싸인 채로 난데 없이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때와 달리, 이번에는 그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형' 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서 너는 나를 떠나 보냈으리라 잘도 착각을 하더구나, 대를 잇는 착각이라니, 하하하."
비웃는 목소리와 함께 호수 건너편의 산에서부터 한 무리의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인들은 풀밭에서 이성을 잃고 춤에 열중하는 여인을 둘러싸며, 하나의 거대한, 새하얀 고리를 만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보라색 빛을 발하던 기운 역시 자주색으로 변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격렬한 음악이 그 기운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고통에 호소하며 울부짖는 듯한 불안정한 느낌의 음악이었다.
이러한 광경은 호수가에 서 있던 나와 카리나에게도 불길하게 다가왔으니, 그 불길한 기운에 집 근처로 도망간 아이들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들의 운명이 안타깝다면, 어디 한 번 이들을 구원해 봐라, 구원해 봐라!!! 멍청이들아!!! 겁쟁이들아!!! 하하하하하!!!!!"
한 시절에 '위대한 영도자' 로 여기어지던 그는 더 이상 그 위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졸렬하기 이를데 없는 광소를 터뜨려가며, 저주에 의해 자신의 의지에 관계 없이 춤을 추고 있을 여인들을 지켜보는 나를 비롯한 그 현장에 있던 5 명의 사람들을 향한 비웃음의 목소리를 내었다. 멍청이들이라면 자신의 마력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나와 카리나를, 그리고 겁쟁이라면 위험을 느끼고 물러났을 에이샤를 비롯한 아이들이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능력 면에서 온전히 그의 마력을 어찌하지 못하리라 여기고 있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 보려 하였다, 이를 위해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감싸는 빛의 방호막을 만들려 하였다, 적어도 그들의 의식을 계속 움직이려 하는 어둠의 기운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음이 그 이유였다.
이를 위해 거대한 '하얀 고리' 의 서쪽 근방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새하얀 빛의 기운을 일으키려 하자, 구름이 위치한 그 방향에서부터 다시 한 번 나를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그 목소리에 신경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 타락한 마법사의 행위는 주문을 위한 정신 집중을 방해하고 있을 따름임을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당시, 나는 가능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들이기로 하였다, 잘 되지는 않았고, 성공 이후에도 그 빛의 방호막이 여인들을 어둠에서 온전히 차단할 수 있음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여인의 몸 속에도 어둠의 기운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것이 일단 나에게는 최선이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주문을 사용하고, 그 이후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무렵, 산정의 나무 꼭대기에 위치한 빛에서부터 푸른 기운을 띠는 거대한 하얀 빛 기둥이 분출되기 시작하면서 그 광선이 성채 바로 위에 머무르는 검붉은 구름을 궤뚫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빛 기둥에 의해 관통당하자마자 검붉은 구름은 바로 폭음을 일으키면서 검붉은 기운을 주변 일대로 분출하는 형태로써 폭발, 그 이후, 검붉은 구름은 호수가의 상공에서 소멸해 갔다.
구름의 소멸과 더불어 흉악한 기운을 뿜어냈던 검은 바람 역시 멎었고, 처음 나타났던 여인 그리고 이후의 여인들 역시 간신히 평온해질 수 있었다. 왜 '간신히' 라는 말을 붙였느냐면, 당시의 상황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절체적인 상황이었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음에 대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있을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나무의 도움으로 어둠의 마법은 사라지고, 여인들에게 가해졌던 저주 역시 그와 동시에 사라졌던 것이었다.
"그 저주받은 마법사가 여인을 괴롭히는 것은 나무도 보다 못할 짓이었나 봐."
그러한 여인의 상태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리나가 호수가를 향해 돌아서면서 성채 주변의 하늘이 다시 감빛을 띠는 평온한 모습을 되찾으려 하는 광경을 보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였다, 내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얼마나 그가 추악했으면 세상을 관망하고 있어야 할 의무가 있는 나무마저 분노의 빛 줄기를 그 구름을 향해 쏘아 보낼까. 그 광경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풀밭에 모이게 된 여인은 대략 50 여명 즈음은 되어 보였다. 자세히 세어 보지는 않았다만, 학교의 2 ~ 3 개 학급 정도의 인원은 되어 보였다-당시 학급에 속한 인원은 30 여명 정도는 되었다-. 옛 집과 그 일대는 사람들이 원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었고, 그러하다보니 전례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 곳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적은 없었지?"
"그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같은 옷차림을 한 적도 없었고."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바람이 그쳤음을 알아차렸을 에이샤와 카티야 그리고 테이라가 다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저희들의 본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셨다고요."
괴로움에서 해방되었을 여인들이 풀밭의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며, 그들의 앞으로 다가온 에이샤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목소리로 그와 같은 모습인지는 몰랐다고 그들에 대해 말하였고, 이에 무리의 영도자 역할을 했을 법한 처음의 그 여인이 앞으로 다가와서는 에이샤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예, 언니들이 본래 어떤 이들인지 알고 싶어서요......"
이에 에이샤는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답을 하였다. 그리고 도시의 예술 회관 공연 등을 통해 군무를 본 적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와 같은 형태의 군무를 본 적은 없었다고 그들의 춤에 대해 말하고서, 도시의 문화 회관에서도 그와 같은 군무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음을 밝히고서-사실이다, 실제로 문화 회관이나 학당에서 그것과 같은 춤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지 못했고, 그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곳에서 그런 춤을 배워 왔는지에 대해 물음을 건네었다.
- 진심으로 그 춤에 대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잠깐 보고 기억하기에는 어려운 춤이기도 했고.
거기서 여인이 어떻게 답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 익힌 춤이 아니었으며, 모든 것을 잃고 저주받은 마법사의 노예와 같은 신세로 윤락해 버려,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자신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유희였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과 어떠한 인연도 없을 이 세상에서 저주받은 자들이 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하지만 여인들은 그것보다는 자신들에게 다가와 준 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였고, 그 요청을 거절하면서까지 알 필요까지 있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그것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풀기로 하였다.
감빛을 띠는 하늘 위에 머무르는 연두색 빛을 발하는 기운에 의해 울려퍼지는 음악에 따라 여인들의 화려한 군무가 이어지니, 그 아름다운 광경에 풀밭의 새들 역시 매료된 것처럼 보였다. 작은 스파라들이 고요하던 풀밭에 이어져 가는 화려한 움직임에 호응하면서 일제히 날개짓을 하기 시작, 그 아름다운 광경에 화려한 빛을 더해주고 있었다.
춤이 낯설었던 카리나는 그 여인들과 잘 어울려 주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다른 이들보다도 적극적으로 그들과 함께 해 주려 하였다, 암만 그들의 춤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기었던 것.
다행스러웠던 것은 아이들 역시 그들의 춤을 함께 할 수는 없어도,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무척 즐거운 듯해 보였으며, 여인들 역시 아이들이 서투르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무척 귀엽게 보였는지, 사랑스러운 이들로서 대해 주었다. 그래서 그 광경을 근방의 호수가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그 광경에 대해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하려 하였다, 사실 그들과 함께 하는 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는 나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와 같은 춤이 낯설고 어색한 카리나가 그런 나를 대신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니라 여기었음이 그 이유였다.
이 작은 무도회의 분위기가 잠깐 가라앉으려 할 즈음, 나는 풀밭을 벗어나, 다시 호수가의 바위로 돌아가 앉으려 하는데, 그 때, 왕관을 쓴 여인이 나의 곁으로 다가오려 하였다.
"당신께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영도자이시겠지요?"
"...... 그렇게 되었네요, 본래는 그런 자질 같은 것은 없었는데......"
여인이 그들의 영도자가 되도록 한 이는 다름 아닌 포헤 느와흐였다. 지혜로운 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힘 있는 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이로 보였음이 그 이유였다고. 그리고 그 결정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 '절대자' 인 포헤 느와흐의 마력을 그들 모두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름은 여러번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정작, 여인의 이름이 그것이었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를 못했다. 그의 이름은 '사리(Sari)'. 그 이름이 밝혀진 이상, 그 이후로 '사리' 로 칭한다. 사리는 이전부터 자신을 아는 존재들로부터 '사리 공주' 라는 칭호로 칭해지고 있었다고 하며, 포헤 느와흐를 괴멸시킨 아르셀-어머니- 역시 자신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이에 대해 말하자면, 어머니께서는 사리 공주에 대해 알고 계신 바가 없었다.
이후로, 사리 공주로부터 들려온 자신을 비롯한 외행성에서 온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물새들의 정체인 사람들이 전부 젊은 여인들인지에 대한 답이 그 이야기에 있었다.
사리 공주를 비롯한 여인들은 본래, 이 행성계와는 어떠한 인연을 가지지도 않은 이들이며, 이 행성계에 올 이유도, 수단도 없는 이들이었다. 본래 이들은 어느 행성계, 어느 나라에 소재하고 있는(있었을?) 예술 학교의 무용과 교사와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본래는 교사와 학생 간의 구분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저주받은 자로서 삶을 이어가는 등의 사정으로 인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고.
그가 예술 학교의 학생으로서 삶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자신을 비롯한 무용과 학생들이 무용과에 속한 교사들과 더불어 여행을 가게 되었다. 무용과의 전 교사 및 학생들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게 되는 여행이었고,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던 만큼, 이동은 비행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여행이 시작되었던 그 봄의 날 때만 하더라도 사리는 그저 앞으로 있을 즐거운 일에 대한 기대감 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도 난데 없이 발생한 사고와 함께 끝나게 되었으니, 비행기가 난데 없이 검붉은 구름에 휩싸이게 된 것이었다. 그와 같은 비구름을 이전에도 본 적이 없었거니와, 피를 연상케하는 검붉은 구름이 몰려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광경을 본 이는 사리만이 아니었고, 비행기 안의 모두가 불안감에 휩싸였으나, 비행기 조종사들조차도 이를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며, 구름은 새빨간 번개를 일으키며 맹렬한 폭풍을 일으켰고, 그 폭풍에 의해 비행기 전체가 격렬히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폭발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지경. 결국 조종사들은 승무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있는 비행기를 불시착시키기로 하고, 지면으로의 착륙을 감행하였다. 그러는 동안 창가 너머로 보이는 구름은 바람에 휩싸인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에 대해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하고,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무사하였다. 같이 타고 있던 학생, 교사들 모두가 무사함을 확인하자마자 사리는 주변 일대를 둘러보고 구조 신호를 위한 방법을 알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사리의 눈앞에 보였던 것은 평상시의 세상이 아니었다, 대지부터 초목까지 모든 것이 감빛으로 물든 세상과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푸른색을 띠고, 별들이 보이는 하늘, 산정에 자리잡은 빛에 의해 어둠이 비추어지는 세상이었다. 초목의 꽃과 열매는 무지개색을 띠며 빛나고, 주변 곳곳에 하얀 빛을 발하는 새와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나, 자신이 아는 세상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세계의 어느 지역으로 가면 그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을지를 알려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난생 처음 보는 세상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을 무렵,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승무원들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색과 검은 머리카락,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른 체격과 기괴하기 이를데 없던 얼굴 모습 그리고 '엘프(Elf)-엘베(Elwe) 를 의미했던 모양-' 를 연상케하는 긴 귀라는 외모상 특징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로서, 이들은 총기와 창검을 손에 들면서 사람들을 위협하였다.
이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외계 언어였음은 나중에 알았다-을 이어가며, 사리를 비롯한 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을 거칠게 먼 저편의 성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이후, 비행기의 잔해는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그 종족의 병사들이 사용할 무기의 제작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외계 종족이었음은 나중에 알게 되셨겠네요."
"그랬지요." 이야기 도중에 나의 곁으로 온 에이샤가 건네는 물음에 사리는 그저 조용히 답을 해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성에서 자신들을 '에베르(Evere)' 라 칭하였던 그들은 비행기에 있던 승무원 및 교사들 중에서 남성과 나이든 여성은 따로 불러 내었고, 학생들과 젊은 여성 승무원 및 교사들은 성의 현관에 남았다. 이후, 불려간 사람들은 병사들에 의해 현관 좌측의 어떤 곳으로 인도되었다. 이후, 그들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으며, 그들의 행방에 대해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젊은 여교사 및 승무원 그리고 학생들만 남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지시를 내렸다, 모인 사람들에게 성 밖으로 나가도록 할 것을 지시하였고, 그렇게 지시대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한 번 지시를 내렸다. 모든 소지품을 내놓고, 모든 옷을 벗으라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총과 창검으로 위협을 가하니, 사람들은 그저 그 명령에 따라 모든 물품과 옷을 내려놓고, 성밖의 풀밭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도 병사들은 잇달아 거친 어조로 외쳤으며, 직접 다가와 거칠게 몸을 만져가며 대열을 맞추기도 하였다. 내려놓은 옷가지와 물품은 병사들이 하나씩 수거해 갔으며, 역시 그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었다.
"수거해 간 물품들은 어떻게 했으려나."
"그들이 모아서 쓸모 있다고 여긴 것들은 자기들 것으로 삼고, 나머지는 버렸겠지, 딱히 버릴 곳이 없었던 만큼, 아마 그들의 암흑 불길 속으로 집어 던졌을 거야, 분명히."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답을 하였다. 그간 있어온 일화에 의하면 샤하리아를 점령하였을 때, 케레브 족 사람들은 샤하리아의 수많은 물품들을 약탈해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그들이 아닌 모든 존재들을 증오했지만,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탐내 왔다, 그들이라면 필경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난 이후, 일행을 감시하던 병사들이 떠나고, 그와 동시에 화려한 갑주와 제복 차림을 한 노인이 벌거벗은 몸밖에 남은 일행 앞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 에베르 족이라 칭해지는 종족인들로부터 '스승 율리아노스(Magister Julianos)' 로 칭해지며, 칭송받던 이. 그가 바로 타락한 종족의 수장 '포헤 느와흐' 로 칭해지는 그 사람이었다.
그 역시 여태껏 보았던 그 종족인들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말로 이런저런 발언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설을 하는 듯한 그 목소리는 정말 연설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바라는 말을 전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어조로 말하고 있어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리를 그저 혼란시킬 따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큰 문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으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알 수 없어서 그로 인한 불안감이 컸던 것.
이후, 그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주문 같은 말을 외기 시작하니, 그와 동시에 일행 모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난데 없는 현상에 여인들 모두 놀라고 있었지만, 목소리마저 막힌 그들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 이후로 성 위의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지고, 그와 동시에 호수에서부터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라 그들을 덮쳐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들의 몸이 검은 기운에 감싸이기 시작하고, 사리 자신 역시 눈앞이 감빛 기운에 의해 흐려지고 말았다.
눈앞의 감빛 기운이 사라졌을 때, 이미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사리의 주변으로 고니로 칭하기에는 너무도 큰 물새들이 울부짖고 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사리는 크게 놀라며 뭐라 말하려 했었지만 그런 자신에게서 들려오는 것은 새의 울음 소리였을 따름이었다.
사리라는 이름은 포헤 느와흐가 임의로 명명한 것이었으며, 본래는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포헤 느와흐는 그렇게 변이를 통해 탄생한 물새들을 불러 모아, 각자의 이름을 붙이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포헤 느와흐가 지어낸 치욕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새 이름을 붙이려 해도, 대안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던 것.
다행히도 밤이 되면 여인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신이 된 상태에서 새로 변이하였으나, 변이에서 풀려난 이후, 이들에게 옷차림이 생겼다, 그것이 그 당시의 치맛단 짧은 드레스와 다리를 감싸는 천 및 구두로 이루어진 옷차림으로서, 여인들이 새로 변이하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의 옷차림도 정해졌던 모양.
사리는 다른 옷을 입으려 했지만 그 때마다 몸에서 어두운 증기가 피어오르며 크나큰 고통을 느꼈으며, 오직 그 하얀 옷만이 고통을 주지 않았다고. 사리를 비롯한 여인들이 늘 그 하얀 옷을 유지했음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포헤 느와흐는 사리를 비롯한 여인들의 의식을 마력으로 움직이려 하였으며, 사리는 마법사의 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력을 가진 자에게 힘 없는 자들이 대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그는 교사였던 젊은 여인의 저항해도 소용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저항을 멈추었다.
"제가 무리를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었음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지요. 이후, 그 모습을 보면서 포헤 느와흐는 그런 저에 대해 감탄이라도 했는지, 저를 공주로 칭하기 시작했지요, '사리 공주' 라는 이름은 거기서 유래된 거예요."
이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세계의 생활에 적응하려 하였고, 그 일환으로 세계에서 통용되는 말-은하 공용어(Communus Lingua Galatica, Mirni Dabreoi Mal'ßɨ)
[1] 라 칭한다-를 익히려 노력했지만, 마땅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언어를 온전히 익힐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리는 그 행운아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니, 그러하지 않다면 공용어를 사용하는 나와 대화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
"무슨 생각?" 사리 공주를 비롯한 무리가 은하 공용어를 익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문득 엉뚱한 생각이라도 들었는지 카리나가 한 가지 생각이 들었음을 밝혔고, 이어서 내가 건네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
"그 포헤 느와흐가 여기 계신 분들을 물새로 변이시켰음에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었지."
카리나는 아마도 포헤 느와흐는 몇 차례의 패배와 더불어 죽음과 부활을 겪으면서 승리를 가져다주지도 못하는 자신의 동족을 점차 믿을 수 없게 되어갔고, 그러면서 자신의 마력을 통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존재들을 원하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외계의 그 무리를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그들을 자신의 마력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짐승들로 삼으려 하였을 것이라 하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였다, 그러할만도 할 것이, 포헤 느와흐가 어떻게 뜬금 없는 듯이 사리 공주를 비롯한 이들을 주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은하 공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도 못하고, 문자도 모르는 이들은 인간으로서 살 자격이 없다고 '멋대로' 단정을 짓고서, 그들을 동물로 삼으려 했겠지."
"이를 테면, 마구스 란 가츠을 아르미한(Magus lan gac'l armihan) 이나 노 다브러이 말르씔 어니 할시 마르(No Dabroei Mal'ßɨl eoni halsi mar) 라든지?"
[2]
"그렇지......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을 들이밀고서, 문자도 말도 모른다며 무작정 동물 취급을 했을 거야, 물론 그들을 이끌어 온 시점에서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겠지만 말야."
이후, 내가 은하 공용어의 예문을 말하면서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바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할 것이라고 답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리 공주가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무척 재미있는 가정을 하시고 계시네요."
말을 건네면서 사리 공주는 조용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리 공주의 입장에서도 카리나의 다소 터무니 없어 보이는 그 추측이 무척 재미있는 발언으로서 다가왔던 모양.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포헤 느와흐는 사리 공주의 모습을 보며, 은하 공용어로 "도라므리(Doram'ly)-잘못된 표현으로, 올바른 표현은 Doram'srayi (도라므스라이)-" 라 칭하며 그를 특별히 취급하였으며, 그러면서 그를 물새들의 공주로 칭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라므리' 라는 말을 어떤 모습을 보며 그렇게 칭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이후로, 저는 마법사란 동화 속의 존재들마냥 사악한 심성을 가지고, 사악한 술법을 사용하는 자들로 알아왔고, 그래서 늘 이 지역의 사람들과 마법사, 마녀들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살아왔어요. 저주받은 존재가 저주를 한다니...... 뭔가 웃기지 않아요?"
그 후로, 사리 공주는 미소를 유지하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마법사들을 원망하며 살아가던 그 때, 마법사의 근거지인 성채일대에서부터 불길이 치솟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성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마법사가 검은 옷과 하얀 갑주를 갖춘 소녀가 가진 하얀 빛을 발하는 칼날에 의해 흉부가 궤뚫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타락한 마법사를 멸한 그 소녀에 관해서는 이후에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샤하리아라 칭해지는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아가던 마녀의 일족으로서, 어둠과 더불어 빛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마녀였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마녀들로 이루어진 그 일족은 샤하리아 일대를 포헤 느와흐 일당이 점거하고 있을 때에 대항을 이어간 이들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이들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일대에 거주하는 마녀들을 직접 만나보기도 하면서 저를 비롯한 사람들은 비로소 마법사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던 거예요."
이후, 사리 공주는 마법사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아르셀을 만나보려 하였으나, 이미 그의 근거지는 빈 집이 되었으며, 아르셀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만 들려왔을 따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사리 공주는 크게 낙담하였다, 아르셀에 대하여 자신의 몸에 각인된 어둠의 근원을 몰아내 줄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었기에.
"그러다가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어요, 어쩌면 그 때의 아르셀 님과 무척 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나의 모습을 본 것은 그야말로 우연의 일이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어둠의 힘에 의해 움직이려 하는 자신을 구원하려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때의 그 소녀의 모습을 확실히 떠올릴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 그가 자신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남은 이야기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그 때 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사리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야기를 마치고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서 그들과의 춤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면서 바로 풀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아르사나 언니, 저희들도 그들 곁으로 가요."
"그렇게 할까." 이후, 나는 에이샤의 제안을 들으며, 바로 그들의 곁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카리나는 테이라 등과 더불어 음악과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군무를 풀밭의 근방에서 관람하고 있었다.
어느새, 음악의 흐름에 육신과 영혼을 맡기기라도 한 듯한 움직임은 그 한 가운데에 다시금 사리 공주를 품으며, 절정의 분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그것에 따라 매혹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하얀 '꽃들' 의 환희는 점차 보이는 느낌에 있어서 이전과 달라져 가는 듯해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의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기는 했으나, 여기에 무언가에 의한 '격정' 이 포함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인지 춤이 절정에 치닫는 순간, 카리나는 물론이요, 그들에게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을 에이샤, 카티야 그리고 테이라, 3 명의 여자아이들조차 그 군무가 행해지는 그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춤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있거나 하지는 않으나, 이런저런 춤, 군무를 학교에서 보아왔고, 그러면서 자연히 특정한 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 춤이 표현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확언 정도는 할 수 있다. 이런 나에게 보였던 그들이 표현하고 있는 바는 슬픔, 괴로움, 분노 그리고 저주, 그 모든 것들이 응어리진 듯한 무언가였다.
돌아갈 수 없는 땅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저주로 인해 고통받고 살아왔을까. 그 모든 감정이 그들의 군무 속에 오랫동안 응어리지고 있음이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그들의 군무 속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그간의 모든 시간이......'
호수가에서 멀찌감치 젊은 여인들이 풀밭 위로 그려내는 수많은 무늬가 움직여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와 같은 저주 속에서 평상시에는 새라든가 각종 동물로서 살아가다가, 밤이 될 때마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때, 어떤 심정일 것일까, 나는? 하루라도 빨리 그 삶에서 벗어나려 어떻게든 해 볼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그 삶을 언제 끝낼 수 있음에 대해 어떠한 장담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절망의 근원을 어찌할 수도 없다면? 이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삶을 하루도, 한 달도, 심지어 1 년조차도 아닌, 수많은 나날들을 견디어 왔을 것이다, 그것도 보통 인간의 수명보다 더욱 긴 세월이었을 100 여년을. 100 년이면 날자로 세기만 하더라도 36000 일이 넘는다, 절망이 체념으로 변하고, 그 체념이 쌓이고 쌓이다 못해, 괴로움을 덮고도 남을 만한 세월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고통을 덮어주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다가 이렇게 한 번씩 표출되는 것이었다.
사리 공주가 나에게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그 군무는 모든 것들을 타락한 자들에 의해 빼앗겼을 그들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유희였을 것이다. 낮에는 새의 모습으로 이곳저곳을 떠돌고, 밤에는 이렇게 춤을 추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는지. 처음부터 구원자따위는 바라고 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증오스러운 마법사들의 땅에 구원자는 없다고 누구나 생각했을 것임이 틀림 없었을 텐데......
음악이 가라앉고, 빛이 사라졌다. 그와 더불어 춤도 끝났고, 모든 것이 진정되었다. 춤에 열중하던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와 함께 에이샤 그리고 카티야가 사리 공주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요염하게 분칠한 하얀 옷차림의 여성들을 향해 다가가며 에이샤는 그와 같은 화려한 춤이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사리 공주가 직접 답하길, 자신은 굳이 그렇게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하였으며, 머나먼 어느 행성계에서 생성된 춤과 그 춤을 전수받은 사람들의 존재를 아는 정도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후, 사리 공주는 에이샤에게 부탁의 말을 건네니, 이러하였다.
"아르사나, 그 분을 제 곁으로 보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이에 카티야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와 함께 춤을 추고 싶다고 답을 하였으며, 그리고 그를 자신의 '왕자' 로 간주하고 싶다고 말하니, 그 말을 호수가에서 듣고 있던 카리나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우측 곁에 머무르고 있던 나에게 그에 대해 말했다.
"이런 옷차림을 한 왕자가 과연 세상에 있었나 싶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리나는 나를 조용히 사리 공주의 곁으로 밀어내려 하였다, 둘이 같이 있으면 은근히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느냐면서. 그러더니, 카리나는 나를 그렇게 사리 공주의 곁으로 보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만을 놓아두고 다시 호수가로 돌아갔다.
"잘 해 봐, 나는 여기서 구경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무슨 말이야!!!" 이에 나는 당황하면서 그를 불렀으나, 카리나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보내놓고 나면, 그 이후는 자신도 알 바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그들의 춤을 함께하게 된 이후, 모자가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고 여기며, 그간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는 카리나를 향해 던졌다. 그것이나마 받아달라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나의 생각에 카리나는 바로 호응을 해 주어, 모자는 받아두었다. 이후, 나는 잠시 사리 공주를 등지는 방향으로 돌아서고서 호수가에 모자를 두 손으로 들며 서 있던 카리나에게 부탁하였다.
"다 끝나면 돌려줘야 해, 알았지!?"
"그것은 걱정 마라고." 그러자 카리나는 바로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음을 드러내는 듯한 답을 하고서, 모자를 든 채로 호수가에 서 있으면서 근처의 바위가로 모여든 에이샤 등에게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곧, 저 언니하고, 그 하얀 옷 언니, 그 둘이 함께 춤을 추게 될 거야, 내 생각으로는 그 무대가 풀밭 위 공연의 절정일 것 같고, 그래서 이번 만큼은 꼭 보아주었으면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곧 절정의 무대가 펼쳐진다는 말에 아이들 모두 흥미를 느꼈는지, 근방의 바위를 찾아 앉아서-에이샤와 테이라는 카리나 우측의 큰 바위에, 그리고 카티야는 좌측의 작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하였다-, 나와 공주, 두 사람의 공연을 기대하는 듯이 눈앞의 광경을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여인들 역시 풀밭 주변 일대로 물러나 있으면서 풀밭에 서 있던 나와 공주를 둘러싸는 대형을 이루며 서 있으려 하였다.
그 때 따라, 어쩐지 유난히 하늘색이 맑았다. 호수가 위의 하늘에는 구름 하나 보이지 않았으며, 밤 시간의 어둠을 비추는 산정의 등대만이 환하게 빛을 비추고 있을 따름이었다.
"자아, 함께 춤을 춰요, 서투르다고 하셔도 좋아요."
사리 공주는 나의 두 손을 맡잡으려 하였다, 그에게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있었다, 포헤 느와흐가 그에게 향수 같은 것을 뿌려주기라도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모를 일이었다, 포헤 느와흐가 자신의 짐승들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리가 없다고 여기었기에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의외로운 일이라 여기고 있기도 했다.
춤이 서투르다 보니, 사리 공주가 춤을 주도해 갔다. 계속 이어가다 보면 익숙해질 법도 한다만-그간 보아왔던 춤들은 다 그러하였다-, 이것만큼은 신통치 못했다, 다리를 높이 혹은 곧게 뻗을 필요도 있고, 딱 맞춰 움직이는 것은 거의 필수였으며, 당장에 따라할 수 있을만한 것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따라해 보려 하니, 어설프게나마 뭔가 되기는 했다.
사실, 그들은 치마가 무척 짧았고, 나도 그러하였다보니, 다리를 뻗다 보면 치마 안쪽이 드러나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치마 안쪽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이상함이라든가, 그런 것을 잘 느끼거나 하지는 않고 있는 듯해 보였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러한 옷차림을 갖추며 살아왔기에 그러하였으리라,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이미 한 번 자신의 나신을 노출한 이후로 그 때를 연상하며 그 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팔을 계속 뻗으며 움직이다보니, 아픔이 느껴질 법도 했건만, 이상하게 그러한 아픔이 그 때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춤과 함께하는 음악에는 몸의 괴로움조차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마력이었을 것이다, 포헤 느와흐가 부여한 마력이었겠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이를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이상, 즐겁게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들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그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이어서 샤하리아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샤르기아로 나아갈 즈음에 그에 대한 다소 부질없는 생각에 잠겨본 적이 있었다, 마법사에 의해 이 세상에 오기 전, 무엇을 가졌었고, 무엇을 하며 지냈었을까. 잘 모르기는 해도, 그들이 살고 있었던 곳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리고 은하계 행성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의 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만한 것으로서, 포헤 느와흐는 문자-보나마나 은하계 공용 문자, 혹은 '세니티아 문자' 였을 것이다-와 언어를 모른다고 하여, 동물 취급했을 것임이 분명하나, 실제로는 높은 수준의 언어와 문자를 갖고 있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러할 것이다, 나, 그리고 이 행성계, 세니티아 성계 등의 마녀 일족들조차도 알지 못할 신비로운 무언가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 그들의 언어 생활은 어떠하였을 것일까, 선조들이 사용하던 에스페란타(Esperanta), 혹은 훨씬 과거에 사용되었던 라테나(Latena) 와 흡사했던 것일까. 누군가는 장난으로 브리태나(Britaena) 일지도 모른다고 하였으나, 나는 손사레치듯, 그러할 리 없다고 답했다, 브리태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과거부터 '마녀의 언어(Wikcay Mal-ssi)' 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러한 언어가 널리 쓰였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
-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마법서라든가, 마법 주문에 관한 문서들은 브리태나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고향은 어떤 곳이었을지, 그것에 대해서는 결국 알 수 없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음이 그 이유였다.
둘만의 춤이 끝나고, 다시 집 근처의 풀밭이 평화로워질 즈음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여인들 모두가 나에게 다가와서 감탄을 하기도 하였다, 나름 노력해 보기는 했지만 처음 하는 것이 익숙했을 리는 없고, 그래서 여러모로 너무나 어색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치 하늘의 요정이라도 된 양, 크게 칭찬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좋다는 데, 그것을 두고 정색하면 되겠어요? 언니도 좋아하면 되는 거예요."
너무나 당황해서 지극히 당연할 법한 질문을 나에게 다가와 준 카티야에게 하였고, 이에 카티야는 그저 환하게 미소를 띠며 그렇게 답을 해 주었다. 그러는 그 때, 난데 없이 어딘가에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난데 없이 휘몰아치는 세찬 바람, 이것은 그냥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이 검은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놀라면서 호수가 상공으로 돌아서 보니, 성채 쪽에서부터 바람에 무늬를 그리며 호수가 쪽으로 날아오는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는 그 때, 이번에는 사리 공주에게서부터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아...... 결국 이렇게 되었어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서 보니, 이미 사리 공주가 검은 바람이 그리는 검은 줄기 같은 것에 묶인 채로 성채가 위치한 그 너머를 향해 끌려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일 수밖에 없었다, 포헤 느와흐라 칭해지는 타락한 마법사, 바로 그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