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4-2. Sleeping Beauty : 1


  이전까지의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던 공주는 그러나, 카리나의 그 말은 알아듣는 듯해 보였다-다만, 카리나가 하는 말을 듣고서,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 공주는 바로 카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이렇게 물음을 건네었다 :
  "G'j+ j+r'rl cacaogiühe yi gipngotkhaji kagirohascing+sciyətnayo? (그저 저를 차차오기위헤 이 기픈곳하지 카기로하신거시엿나요?)"
  자신을 찾아오기 위해 왔느냐는 그 물음에 카리나가 그렇다고 답을 하자마자, 공주는 잠시 나를 비롯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시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그는 자신이 누워있던 그 캅쉴라의 내부에서 일어나려 하면서 부탁의 말을 건네었다. 카리나와 의사가 통한다고 여기었는지, 그에게 말을 건네었고, 그 때만큼은 카리나와 건네었던 방식대로 말하고 있었다 :
  "같이 가요,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Go with me, I want to know what happend to here)"
  "그렇다면, 같이 가는 것이지요? (Then, you are going to go with me, don't you?)"
  이에 카리나는 이렇게 묻고서, 공주가 그렇다고 답을 하자, 바로 알겠다고 답을 하고서, 동행할 수 있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그리고서, 그를 두 손으로 안으려 하였다, 이에 세니아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묻자, 카리나는 그 답으로써 오랫동안 동면에 들어가 있었던 만큼, 움직이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어서 그렇다고 말한 이후에 한 동안은 자신이 안고 있겠음을 밝혔다. 그 때, 공주가 그런 카리나에게 부탁하였다.
  "괜찮아요, 저를 걸어가게 해 주세요. (I'm all right, Let me go on foot)"
  이에 카리나는 바로 알았다고 답을 하면서 그를 조심스럽게 내리려 하였고, 이후, 공주는 프레도와 더불어 3 명의 일행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가장 힘이 없는 이인 것으로 보였고, 따라서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을 시에는 다른 4 명의 일행이 그를 둘러싸는 등의 방식을 통해 그를 지키려 하였다-뒤에서 습격이 가해질 수도 있었기에-. 지하의 내부 공간은 장치의 특성 변동으로 인하여 더 이상 병기들이 출몰하지 않았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고, 그래서 나 그리고 카리나의 곁에서 동행할 수 있게 하였다.
  "카리나와는 의사 소통이 가능해 보이시는 듯하네요."
  "그래, 자신들의 모국어로는 안 되지만 말야."
  이후, 하얗게 빛나는 팔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소르나의 목소리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일단은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다행히도 카리나는 브리태나라는 말을 잘 하는 만큼, 그 말을 이용해 의사를 주고 받으면 되지 않을까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공주 역시 그 말이 모국어도 아닌 듯해 보이는 만큼, 한계는 있지 않을까 싶다는 내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알았어요, 필요할 것 같으면 다시 연락할게요."
  그러자 소르나의 목소리는 그런 나의 말에 그렇게 화답을 하고서, 그간 이어가고 있던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통신이 이어지는 동안, 카리나가 공주에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으나, 공주는 딱히 놀라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후의 이야기를 언급해 보자하면, 주변 구역에 놓인 캅쉴라들에 잠들어 있을 고대인들을 깨우는 것에 대해서는 세니아가 자신이 샤르기스 시청으로 가서 시청의 유적 관리 관계자들에게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지하 유적은 엄연히 샤르기스라는 도시의 관계자들에 의해 관리되는 곳으로서, 외지인들이 함부로 다루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시청 측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온 만큼, 시청 측의 원칙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다른 고대인들을 깨우고 데리고 갈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주된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드디어 바라던 일을 이루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구먼."
  이후, 프레도는 나에게 소원을 이루어서 참 다행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써 드러내었고, 이에 나는 활짝 웃으며 참 다행이라고 화답하였다. 이후, 프레도는 자신의 옛 동료-스카즈 포함-들에게 위험 구역으로 알려진 지하 구역을 탐사한 일과 더불어, 그 깊은 아래에서 발견한 이에 대해 말을 전해주고 싶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연락은 잘 하시고 계시지요, 옛 동료 분들과."
  "몇몇과는 되고 있다만……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해 보겠어."
  이후, 프레도는 자신은 지상으로 올라가려 한다고 말하고서, 베르쉬카(Vershka) 찻집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일을 마치고 나면 그 쪽으로 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일행이 지하 2 층의 통로로 나아가기 위해 이용했던 8 개의 길목이 자리잡은 구역에 이르자마자 작별 인사와 더불어, 일을 마치고 나면 앞서 언급했던 곳으로 와 달라는 부탁의 말을 다시 전한 이후에 혼자 일행의 곁을 떠났다, 더 이상 병기들이 출몰하는 징후가 없었던 만큼, 안심하고 길을 떠날 수 있겠다고 여기었을 것이었다.
  떠나기 직전, 나는 '프레드 바야흐(Fred Bayakh)' 라는 이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프레도는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프레드와 프레도는 이름만 비슷할 뿐, 다른 인물이었다-. 다만, 그는 하나야스(Khanayas) 에서 잠자코 있는 것인지 그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을 밝히면서 기회가 되면 하나야스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라면 필경 나를 무척 반길 것이라 장담하기도 하였다.

  프레도가 떠난 이후, 세니아의 어디로 가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다시 그 당시의 식당 구역으로 가자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 일대에서 나만 갔던 곳이 있음을 밝히고서, 모종의 이유가 있기도 했고,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더 탐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간 있었던 일로 인하여 탐사가 가능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었던 것. 그러는 그 때, 공주가 카리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
  "어디로 가시려 하나요? (Where are you going?)"
  이후, 카리나가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아르사나에게 아직 더 가 볼 곳이 있음을 밝힌 이후에 이전에 탐험대가 들어왔을 무렵에 탐험대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 하나 있음을 밝히고서 그 곳으로 가려 하고 있음을 밝힌 이후에 8 개 통로가 이어진 구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탑이 바로 그 곳으로서, 내가 4 층까지 올라갔지만 그 이후로 더 올라가지는 못했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었다.
  이 당시, 카리나는 공주가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자연스레 말하고 있었고, 공주는 다행히도 카리나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있었지만 의사 소통에는 한계가 있어 보임은 틀림 없었다, 의사 소통은 당장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고 해도, 공주가 모국어스럽게 그 말을 습득하고 있는 듯해 보이지 않은 이상, 그 한계는 명백했다. 하지만 공주의 모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르나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식당 구역에 이르렀을 때에도 카리나는 브리태나로 식당 구역에 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과거에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구역이었다는 것과 내가 가담했던 탐험대가 중간 거점으로 활용했던 곳임을 간단히 말하고서, 그 위로는 상점들로 둘러싸인 통로가 있으며, 그 통로를 따라 나아가면 또 다른 구역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야기도 이어하고 있었다.
  "원래 여기는 식당이었다.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네요(Originally, this is the cafeteria, you say that)."
  "그렇지요(Certainly)." 이에 카리나는 바로 그렇다는 의미의 화답을 하였다. 그가 보기에도 공주가 다소 이상의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있어 보였는지, 통역이 가능한 사람과 연락을 시도해 보고 있으며, 연락이 되면 모국어로 말해도 좋으니, 그 때까지만은 참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후, 일행은 식당 구역에 잠시 자리를 잡기로 하고, 그 한 가운데에 위치한 푸른 유리로 이루어진 탁자에 모여 앉기로 하였다. 그 식탁은 4 개의 의자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그래서 4 명의 일행 모두 앉을 수 있었다. 북쪽 방향을 기준으로 우선 공주가 앉도록 하니, 그는 뒤쪽 의자에 앉았고, 이어서 내가 좌측 의자에, 그리고 세니아와 카리나가 좌측 그리고 우측에 앉게 되었다.
  "슈라일의 그 마녀라는 분께서는 고대어에 아주 정통하셨던 모양이야."
  "항간에는 공용어 문자를 마녀들이 고안하는 데에 나름 공헌을 한 사람으로 여러 고대어에 정통한 이가 있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 분이실지도."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세니티아 말' 이라 칭해지기도 하는 은하 공용어의 창안과도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서, 고대어에 정통한 이가 있었음을 밝히고서, 혹시 그 마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말을 이어 건네기도 하였다. 그리고서 소르나가 그 마녀를 만나고, 이런저런 고대어를 습득한 시기는 가마일 산 천문대에 오기 전의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라 그에 대해 아는 바를 밝히기도 하였다.
  "천문대를 떠난 이후에는 그를 만난 적은 없었겠지."
  "아마도. 그 마녀 분을 만날 정황이 있거나 하지도 않았으니."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동안에는 공주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러할만도 한 것이, 그 동안 공주가 대화에 끼어들만한 정황이 있지도 않았거니와, 그간 일행은 모국어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 말을 공주가 알아들을 수 있기가 만무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무렵, 팔찌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그에 이어 소르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통역 역할을 다시 해야할 필요가 생긴 것 같아요, 그렇지요?"
  "알고 있었네." 이후, 그 목소리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가 나를 대신하여 답을 하였고, 그에 이어 그는 공주에게 모국어로 말을 이어가도 좋다는 말을 건네고서, 통역 역할자와의 연락이 닿았음을 이어 밝히기도 하였다.
  "K'r+tamyən, k'bunkwa jikjəp daehwar'rl y-+garlsudo itng+scijiyo? (크러타면, 크분콰 직접 대화를 이어갈수도 잇는거시지요)"
  "물론이에요 (Murlonieyo)" 이에 소르나의 목소리가 나와 카리나를 대신해 화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한 동안은 통역자 역할을 맡기 위해 계속 일행과의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음을 밝히기도.

  이후, 공주가 이름을 말해달라 하였다. 이에 나부터 이름을 한 번씩 순서대로 밝히고서, 새로 태어난 행성계의 거주민들임을 이어 밝혔다. 그 이후, 세니아가 이 일대를 '고대 유적' 으로 여기는 이들이 생길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이후, 공주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에 대해 알려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 부탁에 세니아가 답을 하였으니, 그 대답은 수 천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이에 공주는 그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제 이름을 말해 보세요, 공주님."
  공주는 소르나가 알려준 '공주님' 이라는 말에 공주는 바로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이전에는 공주라 칭해진 적은 없었던 모양으로, 소르나 역시 그 당시의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르나는 어린 시절에 스승이었던 슈라일의 늙은 마녀로부터 샤르기스의 지하 유적에 잠든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고 한다. 마녀의 이야기에 의하면 샤르기스의 지하 유적은 본래 고대 문명 도시의 지하 시설이었을 것으로서, 어떠한 사유에 의해 공주를 비롯한 고대인들이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시설이 고대 도시 곳곳에 있었겠으나, 그간 시간이 지나면서 고대 문명의 대다수가 사멸해가는 와중에 살아남은 시설은 샤르기스의 지하 고대 유적이 된 시설 이외에는 없는 듯해 보인다고.
  마녀의 발언에 의하면 지하 유적에는 30 여명의 고대인들이 잠들어 있었다고 하다만, 그 중에서 제대로 깨어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다만, '공주' 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특별히 보호를 받고 있었으며, 그래서 수 천년의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무난히 깨어날 수 있으리라 마녀는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늙은 마녀는 그를 '공주' 로 칭한 바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사유에 의해 슈라일과 샤하르(Shahar), 그리고 샤르기스(Shargis) 등지에 퍼져, 그로 인해 알 수 있을만한 이들은 알게 된 것 같다고.
  확실히, 늙은 마녀의 추측은 옳았다. '공주' 가 잠들었던 캅쉴라는 여타 고대인들이 잠든 캅쉴라와 다른 방식으로 놓여 있었으며, 외관을 보기만 해서는 잘 알 수는 없었다만, 필경 특수한 방식으로 해당 캅쉴라가 관리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들고 있었다.
  "이 곳에는 당신 이외에 다른 고대인들도 잠들어 있나요?"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공주는 잘 모르겠다고 답을 하였다, 캅쉴라 안에 잠들게 되었을 무렵, 자신은 그 지하 시설에 있지 않았다고 하니, 사람들이 잠들기 시작할 무렵에 옮겨졌던 모양. 자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사람이 잠들지 않은, 비어있는 캅쉴라도 있었던 모양으로 이에 대해서는 지하 시설 관리에 관계된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들은 바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설 내에 비어있는 캅쉴라도 있을 수 있겠네요."
  그 다음으로 이어진 카리나의 질문 이후로 공주의 그러할 것 같다는 의미의 대답이 들려오고 있었다.

  잠시 동안의 휴식 이후로, 공주를 포함한 일행은 내가 이끄는 대로, 식당 건너편에 자리잡은 길목을 거쳐, 그 너머에 자리잡은 넓은 구역에 이르렀다. 여전히 바닥과 내벽에서는 내가 처음 들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형상을 그리면서 빛을 발하며, 일대의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이 구역을 둘러보면서 공주는 여러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표정을 통해 대략 알 수 있어 보였다.
- 그 동안, 카리나는 참으로 쓸데 없이, 공주의 가슴 부분에 시선을 한 번씩 집중하고 있었으며, 그러다가 공주의 옷차림을 보기도 하면서 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한데 뒤섞인 듯해 보이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여기가 어떤 곳이었을지 짐작이 되나요?"
  구역의 중앙, 가장 넓은 구역에 이르렀을 무렵, 세니아가 바로 옆에 있던 공주에게 물었고-그 당시, 나는 앞서 있었고, 그 뒤를 세니아와 공주 그리고 카리나가 따르고 있었다-, 이 물음에 공주는 낯설지 않은 곳으로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음에 대해 다소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이어 말하기도 하였다.
  그가 언급한 바에 의하면, 해당 구역은 본래 옷 가게를 비롯한 수많은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본래 해당 시설은 이색 상점 구역으로서, 지하 열차역과 연계되어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8 개 길목과 이어진 구역에서 8 개 길목 중 하나를 찾아간다면, 지하 열차역이 있었을 곳으로 갈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갈 곳을 탐사하고 나면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그 곳의 탐사는 이후의 일로 미루기로 하였다.
  8 개 길목 중에서 북쪽 길목은 본래 시설 구역이기는 하였으나, 지하 구역의 쓰임새가 변경되면서 더욱 중요한 성격을 가지는 시설 구역으로서 다시 건설되었으며, 해당 구역의 완성 이후, 지하 구역은 더 이상 상점 구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남은 상점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상점 구역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다만, 시설이 완성될 무렵에는 문명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쇠망 직전 상태였고, 그래서 남은 상점이 얼마 없기도 했다고.
  구역 너머의 탑으로 나아갈 무렵, 세니아가 다시 한 번 공주에게 물었다, 본래 공주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질문. 그 질문에 공주는 새로운 세상에도 학교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한 때,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학교의 학생이었다고 답을 하자, 바로 미소를 띠면서 학교의 학생이었다고 답을 하였다.
  "Amado potong'y scidäe täənatamyen, py+ngb+man saram'ro sarasrljido morgetneyo. (아마도 포통의 시데에 테어나타면, 평버만 사라므로 사라슬지도 모르겟네요)"   "평범한 시대에 태어났다면,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세요."
  이후, 소르나의 목소리가 나에게 그의 말을 해석해서 들려주었고, 이후, 나는 소르나에게 그러다가 어찌하여 지하 유적의 캅쉴라 안에 잠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카리나의 그 옷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공주는 나의 '캅쉴라' 라는 말에 살짝 당황한 것처럼 보였으나, 곧 침착해지면서 자신이 지하 시설에 오게 된 사연은 길 가는 도중에 간단히 이야기하기에는 다소-아마도 아주 복잡했을 것이다- 복잡하다고 말을 건네고서,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음을 밝혔고, 이에 나는 나중에 이야기하라고 말한 이후에 탐험을 마치고 나면, 그 때에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다만, 그 당시에 그가 언급한 바에 의하면 구 세계의 멸망 무렵에 있었던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잔느가 정말 그의 이름일지는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를 잔느라 칭하기도 하였던 만큼, 일단은 알려진 대로 그의 이름을 잔느로 칭하기로 하였다. 잔느가 공주가 아니라고는 하였으나, 일행 모두 한 동안은 그를 공주라 칭하고 있었다.

  탑의 시작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공간. 바닥 아래의 공동이 발하는 초록색 빛이 주변 일대의 벽면이나 바닥이 닿아 일대를 초록색 빛으로 물들이며, 주변의 파란 내벽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서, 한 번 일시적으로 탐험을 이어간 이후로 이번에 일행과 함께 본격적으로 다시 탐사를 이어가려 하였다. 내가 앞장서서 4 층까지 일단 올라가려 할 즈음, 바로 뒤따라 나아가던 카리나가 물었다.
  "여기서 병기와 다시 마주할 일이 생길까?"
  "그러할 리가."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그렇다고 화답했다. 그리고서 지상 위에서 나타나는 이들이라고 하지만, 근본은 유적 내부의 병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고, 따라서 유적 내부에서처럼 그 일대에서는 병기들이 출몰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 장담하는 말을 이어 건네기도.
  하지만, 계단을 따라 지하 구역을 지나, 1 층-3 번째 층- 영역에 돌입하는 순간, 위층의 계단에서부터 한 무리의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미 탑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의 수는 이전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병기 무리의 구성원 수와 거의 비슷하게 20 여. 이들은 길다란 총포나 장창, 혹은 도검을 손에 하나씩 들고 있었지만 아래 층에 누가 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신경을 쓰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직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어."
  그들이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자그마하게 목소리를 내며 카리나가 나와 세니아에게 이들이 나를 비롯한 바닥에 머무르는 이들의 존재를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렸고, 그러면서 그 틈을 노려 기습 타격을 가해, 그들을 제압하자고 제안의 말을 이어 건네기도 하였다.
  멀리서 타격을 가하려면 원거리 사격이 필요했갰지만, 상대의 수가 많고, 타격을 가하는 즉시, 주변 일대에 위협을 가할 수 있었던 만큼, 위험의 감수는 필수였다. 이번에는 불리한 위치에 있는 만큼, 원거리 타격을 가하는 순간, 어려운 싸움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볼 수 있었던 만큼, 타격을 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특히, 보호하는 사람이 있는 입장에서는-.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그러다가 감빛의 기운으로 적대하는 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음을 새삼스레 상기하면서 내가 나서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감빛의 기운으로 그들과 친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이할 수 있으니, 이를 통해 그들에게 잠입해 그들의 습격을 무력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앞 일에 대한 전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고려하지 않는가 봐."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고려하지는 않고 있음을 밝히고서 그들은 열 감지를 위한 장치를 갖고 있을 것인 만큼, 보이지 않는 것이 소용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답을 하였다.
  그 무렵, 세니아는 나의 말에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가, 내가 감빛 기운을 일으키면서 올라가려 하자, 그런 나에게 다가와서는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건네려 하였으니, 그것은 붉은 액체가 들은 병이었다.
  그 병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지는 이미 배운 바 있어서 알고 있었다, 휘발성이 강한 액체로서, 휘발되면 붉은 연기를 일으키며, 그 붉은 연기는 열기에 닿으면 즉시 폭발하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위험한 물질이라 상시 구매를 하거나 할 수 없지만, 세니아는 과거 학교에서 실험용으로 쓰이는 것을 몰래 가져와 갖고 있었다고 하며, 그 당시에 건넨 것은 몇 년 전에 숨겨왔던 물건이라 하였다.
  "효과가 있는 것은 확실해?"
  "물론, 몇 년 지난다고 그 효과가 바로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니까."
  그리고서 세니아가 건넨 물품을 받아들고서는 어둠의 기운을 일으킨 채로 계단 위를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3 번째 층-지상 1 층-에 올라서는 그 순간, 계단 쪽에서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정지! 15! 8! 7! 1! 다음을 말하라!"
  숫자에 관한 숨은 기호를 말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15 와 8, 7, 1 은 쉽게 식별이 가능했겠으나, 그 이후로는 쉽게 알기는 어려웠다, 6 이라고 답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의외로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들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었을 숫자 순서였을 터. 하지만 일단은 운에 맡기기로 하고, 다음 숫자를 말해보려 하였다. :

6.

  그러자, 대답이 왔다. 용무를 물었으니, 아무래도 내가 답했던 것이 정답이었던 모양. 이에 나는 순찰 중이었다고 답을 하였고, 이후로 나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만약에 운이 없어 통과를 하지 못하고 교전 상태가 발생했을 시에는 세니아가 건네었던 그 약병을 깨뜨리고 폭발을 유도할 생각이었으나, 굳이 그러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 그래서 약병을 잘 숨겨두고 병사의 따라오라는 명령을 따라 그를 따라 다른 병기 무리가 모여있는 곳으로 왔다.

  한편, 병기 무리는 4 번째 층-지상 2 층-의 한 지점을 거점 삼아 모여 있었다, 벽 한 구석의 상자들을 모아서 병기 창고로서 활용하기도 하고, 또 통로 가장자리의 난간에 일정 간격으로 병기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서 있으면서 경계 대열을 구축하기도 했다. 이들의 무기는 창이었으나, 그 끝에 포구 같은 것이 달려 있어서 해당 무기가 총포로서의 기능도 갖추고 있음을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알 수 있었다.
  "어째서지? 우리 군의 무기가 새삼스레 신기한가."
  "아닙니다, 그 상태를 잠시 보려 했을 뿐입니다."
  수상쩍어 보이는 듯한 행동을 한지라 바로 질문을 받았고, 이 질문에 잠시 지켜보려 했을 뿐이라 답을 하였다. 이에 그 병기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었는지 바로 평상시대로 나를 인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너도 알다시피, 일대의 부대원들이 괴멸당하는 사태가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 물음에 나는 바로 알고 있다고 답을 하였다. 이후, 나는 순찰 도중에 해당 소식을 들었으며, 그로부터 이 쪽으로 가능한 빠른 시기 내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았었음을 밝히고서, 그럼에도 해당 상황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보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어서 잠시 그 일대에 머무르다가 돌아왔다고 그 병기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보고를 할 수 있도록."
  이후, 그 병기는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있어야 이를 참고하여 이후,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시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보고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서, 나에게 그간의 상황에 대해 바로 보고를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나는 자세한 설명을 위해 그간의 상황을 나름 재현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하고서, 그래도 좋으냐고 물었다.
  "좋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라니, 허락하겠다."
  이에 나는 고맙다고 답을 하고서, 바로 그간의 상황에 대한 '설명' 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순찰중이던 부대원들이 어떤 '무리' 를 발견하였고, 수상한 '무리' 의 행동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우리의 행동에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부대원들이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자, 무리의 일원들은 곧바로-

  이후, 나는 숨겨두었던 병을 꺼내서 곧바로 바닥에 내던졌고, 이후, 병이 깨지고 흘러내린 액체가 휘발하면서 맹렬한 붉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황한 병기들 사이에서 나를 부르는 이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건, 이건…… 대체 뭔가!?"
  "그들이 이용했던 물질을 재현한 것입니다. 아무런 냄새도, 독성도 없습니다만, 화기에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이렇게 말입니다."
  이후, 나는 그들의 시야가 증기에 가려진 틈을 노려 바로 앞에 서 있던 병기의 무기를 빼앗았다. 자루 중앙 쪽에 돌출된 부분이 있었고, 그것이 격발 장치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포구가 천장을 향하도록 하면서 돌출된 부분을 세차게 눌렀다.

  그 순간, 불꽃이 터져 나오는 때를 같이 하여, 붉은 연기로 자욱한 일대가 거의 동시에 폭발, 일대가 격렬한 열기와 빛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나는 방호막을 급히나마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무사할 수 있었지만 급하게 만든 것이다보니, 폭발이 끝날 즈음에는 사라졌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나에게도 덮쳐온 폭발에서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폭풍이 걷히고, 열기와 빛이 사라질 무렵, 나는 감빛의 기운이 사라지도록 하고서, 빛의 기운을 대신 일으켰다. 그리고서 우측을 향해 돌아선 이후에 그 방향에서부터 달려오는 병기들을 빛의 결정, 그리고 불덩어리를 잇따라 발사해 가며 격파하였다,
  연기는 병기가 집결된 부분 전역에까지 이를 정도로 넓게 퍼졌고, 연기가 일어난 구역마다 폭발이 이어진 만큼, 대다수의 병기들이 폭발에 휩쓸렸다.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거점의 병기들 중 대다수는 폭발이 일어난 그 일대에 집결하고 있었던만큼, 그 지점에서만 폭발이 발생했어도 거의 대부분의 병기들이 사멸했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서 돌격해 온 이들은 이전에 사멸하고 남은 몇 안 되는 이들이었던 만큼, 그 일대에서 병기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일대에 얼마나 크게 폭발이 일어났는지, 유리 난간이 부서지고 바닥이 갈라질 지경에 이르고 있었으며, 그 일대에서는  병기의 흔적조차 발견되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아마도 나를 거점으로 이끌고 온 이 역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을 것임이 분명했다. 연기의 근원이었을 병은 여전히 바닥에 떨어져 깨진 채 남아 있었으며, 그 일대는 열기가 아직 남아 붉은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니아 그리고 카리나가 잔느 공주를 이끌고 온 때는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리고 난간까지 부서질 정도로 격렬한 폭발로 인해 병기들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은 일대의 모습을 보고 나서는 바로 깨어진 병과 그 병에서부터 일어난 불꽃을 잠시 보더니, 나를 향해 다시 돌아서서는 말했다 :
  "몇 년 지난다고 해서 효과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이후, 물어보니, 세니아에게 이런 병이 몇 개는 더 있으며, 나름 신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는 그냥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나, 위험하다고 세나로부터 면박을 몇 차례 받고 나서는 나름 신중히 보관하기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여기에만 병기들이 남아있거나 하지는 않겠지?"
  "당연하겠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바로 답을 하였다.

  이후, 4 번째 층, 2 층에 이르자마자 바로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부터 찾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들을 찾게 되었다. 확실히, 이전에는 있던 번개와 같은 모습을 보이던 장벽이 그 당시에는 없어져 있어서 그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아래 층에 있던 이들을 불러 올라와도 된다고 말하고서, 나를 따라 올라오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다른 말없이, 이후, 카리나, 세니아가 그런 나를 따라왔고, 다른 말없이 다음 층, 3 층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잔느 공주는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에 둘러싸인 채로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잔느 공주가 세 사람의 모습을 한 번씩 둘러보면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
  "S+roe dähan mid'mi kanghascinga bwayo. (서로에 대한 미드미 강하신가 봐요)"   이후, 한 동안 없던 소르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나를 비롯한 일행에 대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강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그런 일행의 모습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요, 저를 비롯해 여기 있는 이들 모두 20 년 넘게 서로 친했어요,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이렇게 오래토록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거예요. (Mata, naesa virosa -yojiye -üs moz 20 hai nemi saro gakhəta. -Yoy midim -üs zemn, wr' -yoysraly larily halsi gakhdya. - 마타, 나에사 비로사 요지예 위스 모즈 즈므리 하이 네미 사로 가허타. 요이 미딤 위스 제믄, 우르 요이스랄리 라릴리 할시 가흐댜)"
  이후, 소르나의 목소리가 그 말을 잔느 공주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통역을 해 주었고, 이에 잔느 공주가 놀라면서 일행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Yiscip ny+niyo? grətamy+n……. (이싶 녀니요? 그러타면) "
  처음에는 사뭇 놀란 듯해 보였으나, 바로 나를 비롯한 일행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납득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그 때, 카리나가 잔느 공주에게 왜 놀랐느냐고 물었으나, 잔느 공주는 바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을 할 따름으로 그 이상의 발언을 하지는 않았으니, 그 광경을 보며, 내가 카리나에게 너무 의식하지 않도록 하는 편이 좋겠다고 그에게 충고식으로 말을 전했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아요? (No -əni gof ihan? - 노 어니 고피한?)"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내색하지 않기 위함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서로 간에 직접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래저래 어렵다."
  "그렇지?" 이후, 앞장서 나아가는 동안 카리나로부터 잔느 공주와의 의사 소통 교환에 있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말이 들려왔고, 이어서 세니아로부터 그것에 대해 공감한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는 그것에 대해서는 샤르기스 시청 측에 문의를 해 봐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샤르기스 시청에서는 현 세계에 통용되는 말을 배우도록 할 것 같다는 말을 건네었다.
  "아무래도 그 쪽이 여러모로 편한 결정이기는 하니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잔느 공주만이 사용하는 그 특이한 말에 대한 연구를 원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들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면서 유적을 떠난 이후로, 한 동안은 잔느 공주와 만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앞 일에 대한 전망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갈 무렵, 잔느 공주에게서 카리나에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카리나는 대단치 않은 일이니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그 물음에 그렇게 답을 할 따름이었다.
  처음 동행을 시작할 즈음부터 탑을 막 오를 동안에는 잔느 공주가 무척 연약한 이일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끌어안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탑을 오르는 동안 알게된 바로 잔느 공주는 그렇게 연약한 이는 아니었다, 지상 8 층에 이를 즈음에는 갖은 전투로 인해 지친 일행보다 앞서 나아가기도 했을 정도. - 다만, 앞서 나아가는 동안에는 전투로 인해 일행은 지치기도 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공주께서는 이 위로 가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Imje, -yoy uiye garəta ihan? - 읨제 요이 위예 가러타 이한)"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없었다고 답을 하였다. 자신도 이 지하 유적-시설이라 칭했다고 한다-에 이러한 탑이 있을 줄은 몰랐음을 밝혔다.
  "Porre yi tab'i ilbuga en+jiro makye ißətago hasc+ciyo, grənde +təke j+r'rl guhan g+sci g' en+ji'i sangte'e y+nghyang'l julsu ißəsrl gayo? (포ㄹ레 이 타븨 일부가 에너지로 마켜 이써타고 하셔치요, 그런데 어터케 저를 구한 거시 그 에너지의 상테에 영향을 줄수 이써슬 가요)"
  탑의 일부가 기운으로 막혀 있지 않았느냐고 말하고서, 잔느 공주는 자신을 일행이 구한 것이 어떻게 탑에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를 알고 싶다는 의미의 물음을 건네었던 것. 물음이었지만 묻는 형식으로 말을 건네었을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말에 내가 바로 화답하였다.
  "그것을 알기 위해 저희들이 이렇게 나아가고 있는 거예요. (-Əc'l aryeij'l üha wrï -yoysraly gar hazij. (어츨 아례이즐 위하 우릐 요이스랄리 가르 하지즈)"
  이후, 소르나의 목소리가 내 말을 공주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내었고, 이에 잔느 공주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도 궁금하다고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써 응답을 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탑 위쪽을 잠시 바라보면서 그 꼭대기 위로 올라가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저도 도와드릴 수 있으면 해 볼게요."
  이후, 잔느 공주는 자신이 전투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일행 모두가 잔느 공주가 쓸데없이 다치는 것을 별로 원치 않았던지라 세니아는 그러한 그의 결정을 말렸다. 다만, 나는 그래도,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줘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이후에도 비행형 병기들을 비롯한 병기들의 습격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 때마다 나와 세니아가 앞장서서 이들을 격추시키는 데에 앞장을 섰다.
  그렇게 탑의 계단을 계속 오르는 동안 유리 벽면에 이런저런 글자들이 새겨진 광경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 중에는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도 많았으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도 적지 않았다. 앞장서 나아가면서 이 글자들이 새겨진 홈들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나아간 이후에 잔느 공주가 그 광경을 지나가는 모습을 잠시 보고 있을 무렵, 그는 유리벽에 새겨진 이런저런 낙서들을 알아보며 생각에 잠긴 듯해 보였다.
  "그 글자들을 알아보실 수 있나요?"
  이에 잔느 공주는 미소를 띠며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자신의 나라에서 사용하던 글자였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서 이러한 이야기가 있었음을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밝히기도 하였다 :
  먼 미래, 천 년이 지나고, 문명이 남긴 종이들은 사라지겠지만, 벽은 남을 것이고, 그 벽에 새겨진 글자들 역시 남을 것이다, 그래서 먼 미래의 사람들은 옛 문명의 사람들은 글자를 석판이나 유리에 새겼을 것이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친구들 사이에서 여기저기 퍼지고 있었다.

  "우리가 이 정도로 문명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만약 그들이 볼 수 있다면 어떠할지 궁금하네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니아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을 하였다. 아무래도 구 세계의 먼저 떠나간 이들에게 신 세계의 문명이 보란듯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   지상 3 층, 4 층을 오르면서-앞으로 층은 지상에서의 층계를 기준으로 표기한다- 점점 더 높은 층에 오를 때마다 주변 일대의 풍경은 점차 변화해 갔다. 드높은 탑을 마치 뱀처럼 휘감고 있는 구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으며, 탑 아래 지상의 풍경이 점차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탑을 오르는 동안 잠시 난간으로 나아가 그 너머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나의 눈앞으로 마치 눈의 막에 덮힌 듯해 보이는 새하얀 산자락과 추위로 인해 얼어붙어 길다란 얼음 조각처럼 보이는 계곡 냇물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더불어 내가 나아가는 그 높이로 한 무리 기러기들이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모습이 그런 나의 눈앞에 보였다.
  "+tən sedrieyo? (어턴 세드리에요?)"
  "기러기들이요. (Zhirjidr is. - 지르지드리스)"
  나는 행성의 말로 그 새들의 이름을 칭하였으며, 소르나 역시 그렇게 칭했다. 그 새들의 이름을 처음 들으면서 잔느 공주는 이에 대해 무척 생소히 여기고 있었지만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 자체는 무척 반가웠던 것 같았다. 당시 잔느 공주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철새들이 날아가는 광경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구 문명의 도시에서는 철새들이 날아들지 않았고, 도시 외곽 지역에서는 철새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는 하였으나, 그 기회를 마련하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어떤 문명이었을지에 대해 궁금하다는 생각도 들어."
  "이러한 문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나."
  이러한 대화를 들으며 카리나가 세니아에게 묻자, 세니아가 그러한 기회가 있을지 여부부터 잘 모르겠다고 답을 하였다. 그렇게 대화를 오갈 무렵, 앞장서 나아가던 기러기들 중 몇이 난데없이 피를 흘리며 추락하고, 이에 당황한 기러기들이 다른 대열로 이탈해 가고 있었다. 병기들의 습격이 해당 방향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 것. 그 당시, 일행은 지상 4 층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상 4 층으로 나아가는 순간, 병기들의 습격이 이어지기 시작, 계단을 오를 때, 길 위를 걸을 때를 가리지 않고, 탑 주변 일대의 공중에서부터 우선 비행 장치를 장착한 인간형 병기들부터 손에 든 총포와 어깨의 포구에서부터 포탄들을 발사하며, 일행에 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서부터 곡선을 그리며 대상을 추적하는 성질을 가지는 미사일들도 날아오고 있어 이들을 피해내거나 격추하는 데에도 정신을 집중해야만 할 필요가 생겼다.
  이후에는 공중에서는 비행기들이 날아와 포탄을 발사하기도 하였고, 용처럼 생긴 병기들이 불덩어리를 발사해 벽과 바닥에 이들이 부딪쳐 폭발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와 더불어 길 위로는 일행이 나아가는 그 앞쪽에서 인간형 병기들이 몰려오기 시작, 그들과 맞서는 것도 해야만 했다. 그 때도 이전과 같이 앞쪽은 내가 맡았고, 상공 일대는 세니아와 카리나가 맡았다.
  4 층에서 이어진 습격은 일행을 노린 것이었지만, 그 이후로 5 층에서 마주한 포탑과 포대들 그리고 그 무리에서부터 몰려오는 각종 지상 병기들-인간형, 전차형, 동물형 병기들-과 비행형 병기들은 단순히 앞장서 나아가는 일행만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서 오히려 위협이 더욱 컸다. 이들은 다름 아닌 아무런 힘도 없는 잔느 공주를 노리고 있었던 것.
  처음에는 인지를 잘 하지 못하였으나, 전방에서 몰려오는 병기들의 위협에서부터 잔느 공주를 피신시키기 위해 카리나가 4, 5 층 사이의 계단으로 내려가려 하다가, 추격해 오는 병기들의 습격과 맞서는 모습, 그리고 잠시 카리나가 잔느 공주와 떨어져 있을 무렵에 잔느 공주를 향해 미사일들이 집중적으로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나와 세니아가 미사일들을 격추시키고 있었음을 통해 대략 알아차렸으며, 이후로도 비행형 병기들이 숱하게 격추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느 공주를 마치 맹목적으로 노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포대의 포신들이 불을 뿜으며 폭발하는 불덩어리를 발사하고 있었으며, 포탑에서도 포물선을 그리며 불덩어리들을 발사, 이들이 지면에 닿자마자 크나큰 폭발을 일으키는 것으로써 일행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는데, 그 폭발 역시 주된 목표는 나와 카리나, 세니아가 아닌 잔느 공주였다. 힘 없는 이를 향한 무자비한 폭격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잔느 공주님을 노리는 것들이 맞지?"
  "확실해." 이후, 카리나가 다급히 잔느 공주를 데리고 나를 따라 5 층 위로 오르면서 묻자, 내가 그 모습을 보며 바로 답을 하였다. 이러한 광경이 당혹스러웠는지 카리나는 전례 없이 짜증을 내며 물었다.
  "아니, 이렇게 공격을 해 오는 이들도 있는데, 왜 공주님만을 노리는 거야, 마치 잔느 공주님 하나만 여기에 오는 듯이!"
  짐작되는 바는 있었다, 포레 느와흐인지, 그 부하들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고대의 유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잔느 공주를 없애려 하는 것. 어차피 가질 수 없다면 없애버리겠다는 심산으로 기계 병기들을 일대로 몰고 왔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 때, 그렇게 생각했던 나를 대신해서 세니아가 그런 카리나에게 이렇게 화답해주고 있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는 심산이야, 보나마나 아디르(Adir) 인가, 무엇인가가 샘을 내고,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거지!"
  그 역시 유례 없이 화를 내면서 말하고 있었다, 마치 당장에라도 그 무리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병기들은 점차 격추되어 갔고, 포대들 역시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길은 열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병기들의 습격은 이어졌고, 잔느 공주를 노리는 듯한 곡사 포격이 잇따라 이어졌다. 자신들을 노리는 공격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공주를 노리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았는지, 세니아의 행동은 여느 때보다도 더욱 과격하였다.
  "왜 이런 사람부터 먼저 치려고 하지? 만만해 보여서 그러나!?"
  세니아는 자신의 검, 그 날에서부터 불길을 일으키고서 앞쪽의 병기들부터 먼저 공격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불덩어리를 우선 발사하고, 폭발하는 와중에 검으로 잇따라 병기들의 갑주를 베어 파괴해 나아갔다. 덮쳐 오는 이들은 베어서 쓰러뜨리고, 더 나아가 병기들을 난간 아래로 던져버리기도. 특히, 세니아가 병기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으려 하였으니, 하나라도 있으면 잔느 공주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음이 그 이유였다고. 나 역시 빛의 기운으로 검을 생성해 그 검으로 병기들을 베어가며, 제거하려 하였다.
  세니아의 격투나 카리나가 방패로 밀쳐내면서 추락하는 병기들 중 일부는 비행형 병기에 의해 매달리면서 반격을 개시하기도 하였으나, 금방 격추되었다.

  그렇게 전투가 이어지는 그  와중에 병기들 중 하나가 손에 들고 있던 빛의 칼날을 생성하는 칼자루 하나가 떨어졌다. 나를 비롯한 일행은 이미 이러한 무기를 들고 있었기에 크게 흥미를 갖지는 않았으나, 잔느 공주는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 칼자루를 잡으려 하였다.
  "가져 보시게요? (Sayu haz ihan - 사유 하지한)"
  이에 잔느 공주는 잡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언제까지 보호받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말하고서, 자신도 싸움에 참가할 수 있다고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결정을 말릴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위험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을 드러낸 잔느 공주에게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줄 것을 간곡히 당부하기도 하였다.
  "너무 염려하시지는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에 잔느 공주는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자신 때문에 다른 세 사람이 더욱 여려운 지경에 놓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도검 사용 능력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몸을 지킬 의향이 있음을 상징하는 정도로 여기기로 하였다.
  이후로 층계를 오를 때마다 다른 유형의 적들이 계속 출몰해 갔으니, 6 층에서는 거대한 눈이 달린 인간형 병기들이 두 쌍의 다리가 장착된 전차형 병기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또한 거대한 삼각 날개처럼 생긴 병기들이 날아들어 미사일로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잔느 공주를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었기에 공주가 위협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신경을 있는대로 써야만 했다.
  이러한 병기들의 공세는 7 층에 이를 때까지 이어지다가 7 층에서 멈추었다. 지하의 2 층까지 더하면 9 개의 층계를 오른 이후로 이 시점에서 일행은 구름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만, 아직 가장 높은 영역에 이를 때까지는 여러 층을 남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당분간 공세가 이어지지 않고 있음에 대해 안도를 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르사나, 잔느 공주를 이렇게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으려나."
  전투 때문에 지친 카리나가 7 층 통로의 한 지점에 벽을 기대며 쉬고 있으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면 우선 잔느 공주가 샤르기스에 있도록 하고서, 두 사람 뿐이라도 좋으니, 남은 여정을 마치자고 제안을 한 이후에 사람의 안전과 관련된 일인데, 늦은 일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제 와서 공주의 안위에 대해 말하는 것도 우습기는 하였으나, 잔느 공주가 거듭되는 전투로 인해 위험에 계속 노출되도록 할 수는 없을 노릇이라는 생각이 슬슬 마음 속에서부터 떠오르고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정말로 유적에서의 모험은 일단 이 정도로 그치고, 기회를 잡아 다시 올 것을 제대로 생각해 보고 있었으나, 그 때, 잔느 공주가 난간 근처에서 난간을 잡고 서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려 하였다.
  그가 말한 바는 이러하였다, 자신이 깨어나면서 2 층의 기운 장막이 사라졌고, 유적에 남은 병기들은 자신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필경 자신과 관련되어 있으며, 어디에 있든 자신은 그러한 위협에서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마을에 간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마을만 위험해질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 그러면서 잔느 공주는 자신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디에서든 위협을 피할 수 없다면, 위협을 진심을 다해 지킬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의사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계속 함께 하겠다는 것이지요? (Yoəsraly mar y-'mily hamce -üsily laïn gac, -ənihan? - 요어스랄리 마르 이으밀리 함체 위실리 라읜 가츠, 어니한?)"
  "Ye, krəni, j+demune pogihagetdarago marajin'n mara juseyo. (예, 그러니, 저데무네 포기하겟다라고 마라지는 마라 주세요)"
  자신 때문에 포기하지는 말아달라는 당부. 그러한 그의 당부를 듣고서, 나는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가능한 잔느 공주를 가능한 이끌고 나아가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샤르기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전투 때문에 지쳤는지, 이번에는 잔느 공주가 앞장서 나아가기 시작하였으며, 다행히도 8 층 역시 병기들이 없었다만, 그 대신으로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이런저런 것들이 통로 곳곳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눈에 띄였던 것은 서재였다. 유리가 아닌 금속으로 만들어진 서재로서, 워낙 오래된 물건이라서 그러한지 외각 곳곳이 벗겨져 있었으며, 벗겨진 부분마다 심하게 녹이 스는 등으로 매우 낡은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겉면 곳곳에 종이로 만들어진 이런저런 표식들이 붙어 있었으며, 기호들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과거의 시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법한 그러한 모양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재 안에는 수많은 책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한결 같이 너무도 낡아 색이 바랠대로 바랜 책들, 그 책들이 자리잡은 모습을 가만 보다가 한 가운데의 한 책을 꺼내서 펼쳐보자마자 속이 검게 썩어버린 책장들의 모습이나 보이고 있었다. 부스러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 그 때, 우측에서 카리나의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르사나! 이 책, 부서지고 있어!!!"
  너무도 놀라고 당황하였음이 역력하기 이를데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급히 카리나의 모습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카리나가 들고 있던 검게 썩어버린 책장이 부스러져 먼지가 되는 모습을 보며 진심 놀라는 표정이 보이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 큰 눈이 더 커지고 있을 지경.
  "오래된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카리나는 오래된 책이 부스러지는 모습을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고, 그래서 물어보니, 그 광경은 정말 처음 보았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그가 나에게 묻기를, 이러한 광경을 나는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기록을 통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는 있었고, 삽화로도 그 광경을 보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보고, 그렇게 놀라지 않았던 것.
  세니아도 그 광경을 보았지만, 반응이 약간은 달랐다, 마치 책장이 부서져 가는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 잔느 공주는 그 광경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는지, 일행들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뿐, 다른 행동을 취하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책장에는 이외에도 기록에 이용했다는 각종 판자들을 비롯한 기계 장치들도 다수 쌓여 있었으나, 들고 다니기에는 여건이 충분치 않아 그 자리에 놓아두고 가야 했다. 잔느 공주도 이 물품들에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였으나, 그 역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가만 그 모습을 보니, 옷에 물건 같은 것을 넣어둘 수 있거나 할 수 없었다, 옷이 그저 몸을 감싸기만 하는 것이었으니.
  "이러한 기록 장치들에 관심이 있어요?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갖고 싶었을 따름이라고 답을 하고, 돌아올 수 없는 역사의 기념품으로서 갖고 싶었을 따름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기도.
  책들은 한결 같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로 쓰여진 것도 아니라서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어떻게 가늠하거나 할 수 없었다. 여기에 책이 책장 내용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기도 하였으니, 방법이 없었다. 다만, 온전한 책장의 글자들은 잔느 공주는 알아볼 수 있거나 할 수는 있었던 것 같지만, 어찌 관심을 가지거나 하기는 힘들었다.
  책장 건너편에는 여러 털옷을 비롯한 수많은 옷가지들이 있었고, 벽에 이런저런 그림들이 걸려 있기도 했다. 그들 중 일부였을 아름다운 여성들이 매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들을 보며, 그 시대의 미인상에 대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다. 확실히, 요즘의 단정하고 우아한 미인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도 분명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그 시대스러운 곳에 혹시라도 갈 수 있다면, 그림에서와 같은 옷차림을 해 보는 것에 대해 나름 진지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다.
  그 무렵,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의 뒤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고, 이에 놀라면서 뒤쪽을 향해 돌아서던 내가 난간 바깥쪽을 보니, 그 방향 일대에 위성처럼 생긴 기계 병기 무리가 공중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하단 끄트머리에 장착된 포구들이 일행을 향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들 역시 잔느 공주에게 집중되고 있었으며, 포구에서 발사되는 광탄들, 그리고 광선들 역시 그러하였다.
  "이 녀석들, 정말이지……!"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계속 잔느 공주를 집중적으로 노리면서 각자의 포구에서 형형색색을 띠는 광선들을 발사하기를 반복하니, 그야말로 짜증이 솟구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켜야 할 사람 앞에서 지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바로 처단해 나아갔다. 다행히도 이들은 내구력 등의 여러 면에서 전적으로 위협적이거나 하지는 않아서 바로 처단할 수 있었다.

  "이 그림들은 무엇을 그린 거예요?"
  이후, 뒤따라 온 카리나가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하였고, 이에 잔느 공주가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카리나를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이들은 그 시대에 널리 퍼졌던 노래들을 불렀던 이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이었으며, 자신 또래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 그들에 대해 말하기도 하였다.
  "같은 나이 대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성숙한 매력이 넘쳤던 그림 속의 여인들과 다소 앳된 일면이 있어 보였던 잔느 공주가 같은 나이대였다는 사실이 그렇게 크게 와닿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 여러번 그림의 여인들과 잔느 공주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는 하였다. 이에 세니아가 그런 그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었다.
  "그러할 수도 있지, 놀라워 하기는."
  이후, 그 일대를 지나서 10 번째 층, 지상 8 층의 길목을 걸어 가면서 내가 잔느 공주에게 물었다, 그들과 아는 사이였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잔느 공주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할 수 있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었으리라.
  "저러한 모습을 부러워한 적이 있나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답이 나왔다, 그렇다는 답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한 때는 그들과 같은 옷차림을 갖추어 볼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 여건으로 인해 쉽지는 않았고, 결국에는 그만두게 되었다고. 어떠한 여건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만, 여러모로 여유가 없었음은 틀림 없었던 것 같았다.
  잔느 공주가 말하기를, 자신이 살았던 일대는 한 때는 실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지하 유적의 유리 표면에서 보였던 것들은 그 당시의 화려했던 도시의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본래는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는 하였지만 일대가 지하 유적이 되고 난 이후로는 번영했던 도시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도록 장치의 형태가 변경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더 이상 도시가 옛 모습을 유지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도시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현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공중에 자판을 생성하고, 그 자판을 눌러, 공중에서 생성한 화면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는 광경에 대한 설명은 무척 흥미로웠다, 사람에 따라 웃기는 동작 같아 보일 수도 있기도 했을 것이고.
  화면이나 장치 등을 통해 가상의 세상을 체험할 수 있다는 문명도 특이해 보였다만, 뭔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선뜻 그러한 체험이 와닿지는 않았다는 것. 이에 잔느 공주는 환하게 웃으며, 별로 흥미로워 하거나 하지는 않아 보인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하였다.
  "본래 아주 감정 표현에 소극적인 분은 아니셨나 봐요."
  그 모습을 보며, 세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의외라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서, 자신도 본래는 나름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고 말하고서 설령 자신이 정말 공주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현재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라 자신에 대해 말하기도 하였다.
  10 층에 이르면서 일행은 구름 속에 있게 되었고, 시야가 가려지고 있기에 조심하면서 길을 걸어가도록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잔느 공주를 향한 카리나, 세니아의 질문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어떻게 지내시고 계셨나요?"
  이 물음에 대한 잔느 공주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

  잔느 공주는 그가 이전에도 말한 바대로, 평범한 여학생에 불과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외우주 행성 탐험단에 자원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이 올라왔고, 이어서 탐험단에 자원하는 이들은 장학생으로서 이들에게는 종합 학교(Araskola (아라스콜라) - University) 입학에 있어 특례가 주어진다고 하여, 부모에 의해 지원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100 여명의 학생들이 행성 탐험단에 지원하였고, 그 중에서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한 동안 연구실에서 생활하면서 우주 항공에 관한 지식, 그리고 우주선에서의 생활에 대한 나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그 와중에 그들은 나름의 호명(Sufaürim (수파위림) - Codename) 을 갖게 되었으며, 우주 탐험이 개시될 시점에서는 해당 이름으로 더 많이 챙해지게 되었다.
  잔느 공주는 수백만 광년에 해당되는 거리를 차원 이동을 통해 나아가려 하였으나, 그럼에도 오랜 시간의 소요가 필요하였기에 우주 탐험을 기획한 이들은 대원들의 장시간 수면이 필요하다고 여기었으며, 그리하여 장시간의 수면을 위한 동면 장치에 대원들이 잠들 것을 제안하였고, 그 제안에 따라 잔느 공주 역시 캅쉴라에서 잠들게 되었다.
  이 무렵, 잔느 공주를 비롯한 대원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사람들은 특수 기능이 내장된 복장을 착용하였으니, 그것이 잔느 공주가 그 당시에 입고 있던 그 옷이었다. 옷의 형태는 거의 같았지만, 색상까지 같지는 않아서 몇 종류의 색상이 주어지고 있었다고.
  "우주 여행을 할 줄 알았던 것이지요?"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조용히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옛 도시의 지하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으로 우주 여행은 애초에 없었다. 이들이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믿으며 잠들고 있는 동안, 그들은 행성의 세상이 변해가는 동안 지하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종합 학교 입학 특례 따위 의미란 없었던 것이었다.
  지하 유적 발견된 캅쉴라들은 이렇게 탐험단에 지원한 100 명의 학생들이 잠들어 있는 동면 침실이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잔느 공주만이 특별히 보호 받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시대 사람들이나 알만하겠지만 잔느 공주마저 모르고 있었으니, 알 방법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확실히 다른 세상에 온 것임은 확실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들이 원래 있던 세상과는 너무도 달라져 있으니까 말야, 그렇지 않아?"
  "그렇겠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동의의 뜻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세니아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해 가면서 그들을 지하 유적에 동면시킨 것에는 모종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고서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다.
  세니아의 생각은 이러하였다, 잠든 이들은 대다수가 10 ~ 20 여세 즈음 된 젊은이들로서, 당시의 행성 세계가 멸망해 가고 있었음에 주목하려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행성 탐험' 을 기획한 이는 언젠가 행성의 자연이 본래 모습을 되찾게 될 때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을 통해 잠든 이들이 깨어나게 되면 자연이 본래 모습을 되찾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그들을 유적에서 잠들게 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세상에서 남겨진 이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문명의 지식, 그리고 그들에게 남겨진 문명의 유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을 기원하며, 이렇게 잠들게 했다는 것이려나."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는 그러할 것이라 여긴다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서 세니아는 잔느 공주에게 바로 이렇게 물었다. :
  "그런데, 이렇게 오래토록 잠들어 있을 줄은 모르셨지요?"
  "예, 영원히 잠 속에만 있을 줄 알았다가, 이렇게 깨어나게 되었네요."
  답을 하는 잔느 공주에게서 어두운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으니, 공주에게서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걱정이 떠오르고 있었으리라는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지상의 도시 관계자 분들께서 어떻게든 그들을 깨어나게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러한 걱정에 나는 샤르기스의 관계자들이 잘 해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문득 어두운 생각이 하나 떠올랐으니, 이러하였다 : 행성의 유적은 오래 전에 포레 느와흐와 어둠의 무리에 의해 장악되고 있었으며, 잔느 공주가 잠든 캅쉴라를 제한 다른 캅쉴라들은 그들에 의해 변질을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잔느 공주의 캅쉴라는 특별한 곳에 안치되어 있었음을 감안하여 그들이 일단 놓아두려 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나친 생각 같다고 여기면서 공주를 지키며 탑을 오르는 일만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러는 동안 일행은 9 층-11 번째 층-을 지나, 10 층-12 번째 층-에 도달하고 있었다. 구름 위를 지나면서 이제 최상층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6 개 층계만 더 오르면 끝이었으므로, 탑의 층수는 16 개-지하까지 더하면 18 개-였음을 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무렵에 세니아가 물었다, 탑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행을 따라 나서는 것에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러하였다 :
  "-'Ymiga +pjin'n anayo. Bunmy+ng y+r+bundr'i yirn'n j+wado kwarry+ni ißrlg+tgatayo. (의미가 엎지는 아나요, 분명 여러분드릐 이른 저와도 콰ㄹ려니 이쓸것가타요)"
  의미가 없지는 않다, 우리의 일은 자신과도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다, 라는 답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미 직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옛 유적에서 벌어지는 일이 옛 문명의 어쩌면 마지막 생존자일지도 모르는 자신과 결코 무관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으리라는 것이었다.

  지상 10 층의 벽 곳곳에는 여러 탁자들이 놓여 있었고, 각 탁자에는 판자처럼 생긴 여러 물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판자의 윗면은 덮개라서 열 수 있었고, 열어보니 이전에 보았던 기계 장치들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는 기계 장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시대에 사용하였던 기계 장치의 일종이었던 모양으로 평상시에는 윗면을 덮개 삼아 안쪽을 덮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장치를 가동시키면 기계 장치에 수록된 것들을 열람할 수 있겠지?"
  그 덮개를 하나씩 열어보며 카리나가 기대감에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하지만 장치 작동을 하는 법을 몰랐던 그는 이것저것 눌러 보았지만 장치는 반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작동을 하지 않네, 고장 났으려나."
  "아마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같이 장치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답을 하였다. 세니아도 이것저것 뒤져보고 있었으며, 화면 부분에 금이 가거나 깨어진 장치도 발견하고 있었다.
  "이것들, 버려진 물품들 같아, 모종의 이유로 파손되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이렇게 놓여진 물건들이라는 거야."
  이후, 세니아는 화면이나 장치 제어부 등이 파손된 물품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한 정황을 통해 고장난 물품들이라는 추측을 내렸으며, 그러면서 장치에 수록된 정보를 열람하려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추측을 내렸다.
  "어떻게 할까, 기록 장치라도 떼내서 가져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는 그렇게 하는 편이 좋겠다고 답을 하고서, 그에 이어 그 일은 나중에 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뒤편에서 우측 곁에 있던 공주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 표정에서 가망이 없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기계 장치들에 가지는 일행의 기대에 대해 가망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였고, 그러면서 물었다.
  "기계 장치에 대해 생각하시고 계셨어요? (Semïtr' yejha syaneihta ihan? - 세믜트르 예즈하 샤네이타 이한)"
  하지만 공주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들은 과거의 장치들로서, 과거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해 왔던 물품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유적의 진실이나 옛 문명에 대해 알 수 있는 사항은 별로 없으리라고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다만, 과거의 버려진 물품들이 살아남은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음을 이어 밝혔다. - 이외에도 옛 문명의 복식을 갖춘 복장들도 다수 있었지만 현대의 옷차림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크게 흥미를 갖거나 할 이유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공주가 언급하는 문명의 도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척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쓰기만 하면 다른 세상의 모습을 눈으로 보여주는 안경과 해당 세상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라든지-현실 세상에서는 딱히 기능을 하지 않는 물품들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위치한 일대를 지도 형태로 그리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의 놀이판을 만든다던지, 잠들어 있는 사람의 의식을 또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물건 등이 있었다. 이러한 체험을 위해서는 특별한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으나, 그 시점에서 남아있는 물품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하였으며, 그 시대가 아니면 이해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을 것이라 여기어진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안경처럼 생긴 장치라면 남아있을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Es -ət kvarn'n sra, tum hamoi lam, 에스 얻 크바르는 스라, 툼 하모일람)"   그 때,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세니아가 공주에게 다가가서는 그렇게 말을 건네었으나, 공주는 모르는 일이라 화답할 뿐, 그것에 대해 달리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다. - 이 무렵, 카리나가 소르나의 목소리를 향해 통역해 주느라 힘들거나 귀찮지 않냐고 물었으나, 소르나의 목소리는 자신의 일이라 생각할 뿐, 딱히 귀찮거나 짜증날 일은 아니라고 화답을 해 주고 있었다.
  이외에 미사일, 각종 폭탄 종류로 추정되는 무기들이 아무렇게 널려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행 모두 사용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들 중 하나는 내가 안전 장치를 제거해서 바닥으로 내리 꽂는 듯이 던졌다. 오랫동안 낙하하고 있어 공중에서 폭파할 줄 알았지만 폭발하지는 않았다, 불발탄의 일종이었던 모양. 공주도 불발탄이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여기에 세니아가 바로 주의를 주었다.
  "폭발물은 바로 폭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것이 아니에요. (Bom-i ghot -əni taje rado, maymjeyonasihn gac is, 봄이 곳 어니 타제 라도, 마임제요나신 가치스)"
  그리고 폭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충격을 주어서 폭발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폭발 물질의 특성을 온전히 제거하지 않는 한,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충고하는 듯이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이후, 바닥에 떨어진 폭발물에 대해서는 자신이 알리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이후, 내가 그에게 내가 던진 것이라 말하겠느냐고 묻자, 세니아는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답을 하였다.
  이후, 길을 더 나아가다보니, 글이 적힌 종이 더미가 있었고, 묶여있지 않은 종이들은 모종의 주제를 가지는 글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 이 종이들은 엮이지 않은 문서였던 것으로, 해당 문서는 내가 아는 말로 적혀 있어서 어떻게든 읽어볼 수는 있었다.

VERA HISTORIA HAEC EST SCHEMA 'FVTVRO'
(Wera historia haik est skema futuro)

  "계획 '미래' 의 진실된 일화." 이 문구의 의미는 이러하였다. 어떤 계획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계획의 이름이 '미래(Futuro)' 였던 모양. 무슨 계획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보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열람을 이어가려 하였다,
  라테나(Latena) 어로 기록되어 있는 문서. 잔느 공주가 사용하는 말이 라테나 어는 아니었고, 이를 통해 잔느 공주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쉽게 열람할 수 없도록 함에 그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라테나 어는 언제나 그렇지만, 볼 때마다 낯설기 이를데 없었고, 그래서 열람에는 어려움이 있어 한 자리에 머무르며 문서를 보는 데에 꽤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그래서 그 광경을 보며, 카리나가 그런 나에게 무엇을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을 지경. 그러다가 본인도 그 문서를 열람하면서 머리가 아픈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런 나의 심정을 이해해 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Ad comamen de centi discipuli egit schema.
(Ad komamen de kenti diskipuli egit skema)

  100 명의 학생들이 지원하는 것으로써 계획은 시작되었다. 이 문구로 시작되는 문서는 100 여명이 야니라, 100 명이라 말하였음을 통해 딱 100 명을 지원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잔느 공주도 그 중 한 명이었을까, 거기까지는 아직은 알 수 없었다-다만, 참여한 인원은 탐사 이후에 명명된 이름으로 칭해지고 있었고, 그것을 늘 본명 삼고 있었으니, 그 이름이 언급될 가능성은 있었다-.
  첫 장의 내용을 대략 말하자면, 100 명의 학생들, 젊은이들이 지원하는 것으로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미래 진로 체험 학습을 시작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그리미래 진로 체험이라하여 젊은이들에게 직업 체험 기회를 주는 명분이 있었기에 쉽게 젊은이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1 년 간의 교육 이후에 젊은이들은 내가 잔느 공주로부터 들은 바대로, 다른 일 없이 바로 캅쉴라 안에 잠들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알고 있었던 바대로, 캅쉴라는 동면 장치였고, 동면되는 동안 신체 활동을 사실상 정지시키고 있었기에 100 명의 젊은이들은 수 천 년 간의 세월을 그렇게 견딜 수 있어왔던 것이었다. 계획을 추진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원을 이어간 젊은이들의 가족, 친구들은 물론, 그 후손들마저 사라진, 새로운 세상에서 신인류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계획. 하지만 계획을 추진한 이들의 일상 언어도 아닌 라테나 어로 기록된 문서는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었을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 요컨대, 계획의 저변에 자리잡은 그림자라든가, 추악한 일면을 감추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In vulgo, votum est, sed, conversum est.
(In wulgo, wotum est, sed, konwersum est)

  "역시나……." 내용을 해석하면서 이면이 존재한다는 문구를 발견하면서 나는 그러할 줄 알았다고 생각하며, 라테나 어를 어떻게든 읽어보려 하면서 계획의 이면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 알아보려 하였다.

Victimae sunt, ad unum.
(Wiktimai sunt, ad unum)

  내가 읽고 있던 문구 중 일부로서, '그저 희생양이었다, 단 하나를 위한' 이라는 뜻이었다. 그 문서에 의하면, 그들은 잔느 공주가 아는 바와 달리, 미래를 위해 잠든 것이 아니라 '희생양' 으로서 잠든 것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으리라는 것. 이외에 '제물', '처분' 등의 말도 있었지만 무엇이 제물이고, 무엇을 처분하는 것에 관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내거나 하지는 못했다.
  "설마……." 문서를 열람해 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잔느 공주가 곁에 있는 마당에 차마 함부로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리나가 그런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저 나중에 이야기하자고만 말을 할 뿐,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이 급한 일이었고,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고 있었기에 바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3 층, 지상 11 층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유리 벽면에 낙서가 새겨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하얗게 새겨진 글자였으나,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주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로 공주를 불렀다.
  "잔느 공주님, 잠시 제 곁에 와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Diya Jann' imje-a, shakhan na hidiye halsi ona ihan? - 디야 잔느 임제아, 샤한 나 히디예 할시 오나 이한)"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바로 응하여 나의 왼쪽 곁으로 왔고, 그러면서 내가 보고 있던 벽면에 새겨진 낙서글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그 낙서를 심각하게 바라보더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Pak Suhy+n paxa. Jega camy+haeten g' kyehoekwa kipi kwany+han saramieyo. (팍 수현 팍사. 제가 차며햇턴 그 켸회콰 키피 콰녀한 사라미에요)"
  "파크 수현…… 그런 사람이 있다고 했어, 이번 계획과 깊이 관여한 사람이라고 하네, 아무래도 잔느 공주도 관여했던 젊은이들을 미래를 위해 동면시킨다는 '미래' 계획의 중추 역할을 했던 사람인가 봐."
  그리고서 아무래도 파크가 성이고, 수현이 이름인 것 같다고 그 이름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 이름을 이 행성인 식으로 표현하자면 '수현 파크' 가 되는 것이다. 계획에서 참여자 정도에 불과했던 잔느 공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계획에 관하여 유명한 인사였던 모양.
  "어떤 사람이었나요, 참여자들도 잘 알 정도면……. (-Alma yi g' is, Es eridiayndr yesa shar arm……, 알마 이 그 이스, 에스 에리디아인드르 예사 샤르 아름)"
  잔느 공주의 말에 의하면 수현 파크라는 인물은 참여자들의 교육 기간 도중에 참여자들이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과학 및 수학 지식에 대한 강의를 담당해 왔으며, 계획에 필요한 장비품 및 기계 장치 개발 및 우주선 항해 경로 설정 등의 공학 및 기술 영역에서 큰 역할을 해 온 사람이었다고 한다. 과학, 공학 박사이면서도 복수개의 국어에도 능하여 여러 나라말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으며, 어학에도 소질이 있어서 소통 담당으로는 그만한 이가 없었다고 한다.
  '미래(잔느 공주는 이를 Mire(미레) 라 칭했다. 내가 보았던 문서 상에서는 푸투로(Futuro) 였던 것과는 달랐으니, 대외적으로 알려진 계획 명칭과 실제 계획 명칭이 완전히 달랐던 모양. 아무튼, 그 '미래' 계획에서 수현은 계획 시행 준비 기간 동안 늘 일에만 매진해 왔으며, 평상시에도, 심지어 휴일에도 일에 매진하고 있었으며, 늘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감히 말을 걸거나 할 여유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이 없고, 쌀쌀한 사람이었기에 참여자였던 젊은이들은 대개 그를 싫어했으나, 계획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없으면 계획이 아예 없다고 여기었을 정도였으니.
  "그런 파크 수현을 비난하는 내용이 쓰여진 낙서예요, 욕도 포함되어 있어요. 아마도 그 실체를 아시게 되면, 놀라실지도 몰라요."
  욕들 중에는 어머니를 추악한 존재로 칭하는 내용, 성교, 저주에 관한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 중 일부가 있었다고 한다. 잔느 공주가 말하길, 아무래도 그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이가 몰래 위로 올라가 칼날 같은 것으로 낙서를 해 놓았던 것 같다고 하였다.
  "하기사, 쌀쌀한, 박정한 사람이라면 그에 대해 욕을 할 수도 있겠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1 층에는 이러한 낙서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이외에 달리 볼 것은 없었다.

  지상 12, 13 층. 이제는 일반적으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은 곳이었고, 문명의 산물을 여기까지 올려놓을 이는 없었기에 문명의 산물이라든가, 물품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10 층에서 세니아가 문서들을 가져왔는지 종이들을 왼팔에 끼고 있었다. 종이들은 한 부분이 엮여 있었는데, 세니아가 종이를 들고 오려 하면서 이들을 근방에 있는 실로 묶었던 모양.
  문서를 들고 오는 동안 세니아가 이들을 차근히 읽어보려 하였다고 한다, 본인도 라테나 어를 잘 알 하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읽을 수는 있기에 어떤 내용인지는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현 파크' 라는 이름은 그 문서에도 거론되어 있었다고 하며, 그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는 잔느 공주가 말한 그대로임을 이어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밝히기도 하였다.
  "다만……." 이후, 문서의 내용을 이어 밝히려 하는 세니아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으니, 이를 통해 문서를 열람하면서 내가 예상했던대로 어두운 내용을 보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세니아에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를 내었다.
  문서의 첫 내용에 대해 세니아는 계획의 관계자 및 계획의 본래 목적 및 추진 계획에 관한 샹세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수현을 비롯한 인사들이 어떻게 계획을 추진해 왔으며, 그 진정한 목적에 관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 이하는 세니아가 의역을 통해 재구성한 문서의 내용이다.

  과정 이행은 잘 되었다. 마지막으로 진행되었던 탐사대로 선발된 인원들이 '미래의 우주 여행' 을 위한 동면에 들어가는 과정 역시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평범하기만 했던 젊은이들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며 잠들고, 그 과정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계획 관계자들은 시설 내부의 조정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수현이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수현은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며, 그의 주관 하에 시설의 모든 것들이 봉인되어 100 명의 젊은이들은 시설의 내부에서 안전히 잠들 수 있었다고. 이후, 수현은 미래 시대를 대비한 도시 보전을 위한 '계시록', 또는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 계획에도 참가하였으며, 도시 보전 계획을 무사히 성립시켰다.
  그러나, 그간 진행된 '미래', '아포칼립시스' 의 진행 과정에서 엄청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미래' 에서 그는 100 명의 젊은이들이 깨어날 시간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채로 시설을 봉인해 두었다. 계획 예정대로라면 그들이 깨어날 시기는 AD 2920 년. 그러나, 그는 시간 설정을 AD 9999 로 정해 놓고 있었다. 이는 치명적인 사항이었던 것이, 동면 시설은 AD 2920 년에 그들이 깨어날 것을 상정해 놓고, 구축되었기 때문으로 기한을 넘긴 상태에서 동면 시설의 유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동면 시설은 이미 봉인되어 작동하고 있었고, 접근은 불가능했다, 현 상태로는 동면 시설이 AD 2920 년에 작동을 멈추고, 사람들을 깨울 수 있도록 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여기었다.
  더 나아가, 수현은 계시록 계획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배치된 무인 기동 병기들의 인공지능을 설정할 때, 여타 관계자 몰래 '이후에 등장할 모든 존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도록' 설정되는 기능을 첨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문명의 흔적이 남을 곳마다 그렇게 설정되었기에, 누구든 문명의 잔해에 오는 이들이라면 해당 공격을 받을 위험이 생겨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이 수현과 관계자들의 재량에 계획을 맡긴 정부 관계자 몰래 진행되었음이 이후에 밝혀지게 되었다.
  이후, 수현의 행적을 조사하던 와중에 그의 기밀 문서가 발견되었다. 기밀 문서라고 하지만 대다수는 수현의 개인 일기에 가까운 내용으로서, 수현이 전공으로 수학하던 라틴(Latin) 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수현의 본색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실로 충격에 가까웠다.
  '미래' 계획은 일반인들에게는 희망의 계획이었으나, 그 실상은 달랐다(내가 일전에 보았던 'In vulgo, votum est, sed, conversum est' 가 바로 이 내용). 수현에게 있어서 100 명의 인원은 '하나' 를 위한 제물에 불과하였으며, 이들은 어찌되었든 간에 동면 이후에 영원한 잠에 빠져야 할 운명이었다. 동면이 깨어나는 기간을 일부러 9999 년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로 그 기한을 9999 년으로 정했으며, 그것에 대한 대비조차 하지 않은 것 역시 애당초 동면에 들어선 이들이 새로운 삶을 이어가도록 할 생각 자체가 없었음을 의미했다.
  그 '하나' 는 다름 아닌, '저주받을 생명이 없는 세상(MVNDVS SINE DAMNEBILES VITAE)'.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심지어는 미생물조차 없는 무기물만의 세상이 펼쳐지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오직 기계만이 생명을 얻을 자격이 있으며, 얼어붙은 이들이 얼음이 되어 기계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리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수현은 극단적인 인간, 생명 혐오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국가와 사회를,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이러한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를 이어갔으며, 인간, 더 나아가 모든 유기적 생명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러한 사상에 물든 채로 수현은 자신의 입지를 이용해 미래 인류의 계획에 전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어떻게 수현이 극단적인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기의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알 방밥이 없다.
  계시록 계획 기간 도중에 수현은 갑자기 사망하였다. 개발 기간 도중에 사고로 숨졌다는 설도 있고, 갑자기 폭주한 기동 병기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으나, 원인은 불명. 시신은 의외로 금방 발견되어 수습되었으나, 머리의 두개골 부분이 절단되었음이 밝혀졌다.

  이 모든 사항을 잔느 공주는 알아듣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라테나 어는 잔느 공주가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행히도 그 뜻을 명확히 알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후, 지상 14 층에 이를 무렵, 벽면에 여러 낙서들이 새겨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문구들로서 라테나 어로 쓰여 있었다.

OBTVLI CENTI. DAMNABILIA SVNT.
(Obtuli kenti, damnabilia sunt)
100 을 바쳤다, 그들은 저주 받았어.

NON POTEST ESSE IN FVTVRO.
(Non potest eße in futuro)
그들은 미래에 있을 수 없어.

MORTVA ESSET OPORTET IN RIGIDA LOCVLO.
(Mortua esset oportet in rigida lokulo)
그들은 얼어붙은 관에서 죽어 있어야 해.

PRO VERIFICAT PRAETERITA DAMNATA ILLIS.>
(Pro werifikat praiterita damnata illis)
그들의 저주받은 과거를 증명하기 위해.

FIAT, FIAT, SEMPER, SEMPER, SEMPER!
(Fiat, fiat, semper, semper, semper!)
그래, 그래,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이후, 조금 더 나아가서 보이는 낙서는 아래와 같은 문구들을 적어나가고 있었다.

NON EA SOLVM, SED ETIAM OMNIS HOMINES, ANIMALIA ET VITAE.
(Non ea solum, sed etiam omnis homines, animalia et witay)
그들 뿐만이 아니야, 모든 인간, 동물, 생명들 역시.

DAMNABILIA SVNT.
(Damnabilia sunt)
저주 받았지.

IN VNIVERSITAS, VITAE VANA SVNT.
(In uniwersitas, witay wana sunt)
이 우주에서 생명이란 의미가 없어.

ALGAE, INFIRMA, AVARA, VANE.
(Algay, infirma, awara, wane)
하찮고, 나약하고, 탐욕적이야, 쓸데 없이.

INOPIA VITAE. IN MVNDVS, SED LAPIDES, AVRAE ET CORPVSCVLA ESSE DEBENT.
(Inopia witai. In mundus, sed lapides, aurai et korpuscula eße debent)
생명은 쓸데 없어. 이 세상에는 오직 돌, 증기와 미립자들만이 있어야 해.

ET QVOD REGNAT MACHINAE.
(Et kwod regnat makinay)
그리고 그들을 기계들이 통치해야 한다.

EGO CEREBRVM ILLORVM EST.
(Ego kerebrum illorum est)
그들의 뇌가 바로 나다.

  "저주 일색이잖아, 완전히." 라테나 어를 읽을 수 있는 세니아가 그 모습을 보며, 한탄하는 듯이 말을 건네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각이 저주로 완전히 물들어 버렸다고 말하고서,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Damnatus es te. (담나투스 에스 테 - 저주받은 것은 당신이야)"
  그러는 사이, 벽면을 향해 미사일들이 날아오기 시작하였고, 이 공세를 발견하자마자 다급히 빛의 기운에서 곡선을 그리며 이들을 격추시켰다. 이후, 나는 비행기들이 기수에서부터 눈처럼 생긴 부분을 빛내면서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빛이 붉어서 마치 핏빛을 연상케했다. 기세는 맹렬했지만 그만큼의 힘은 없어서 금방 격추되었다.
  그 이후로 날개를 장착한 인간형 병기들이 오른팔에서 빛으로 칼날을 생성해서는 등에 장착된 동력 장치에 불을 뿜어내며 돌격해 오고 있었다. - 자세히 보니, 오른팔에는 손을 대신해 포구가 장착되어 있었으니, 그것이 포격 장치와 칼날 발생 장치를 겸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등에서는 십자 모양의 칼날이 장착된 부메랑을 던지고 있었으니, 이들의 격추를 카리나가 맡았다. 왼손으로 방패를 생성하고는 오른손에서 광탄을 생성해 그 광탄으로 부메랑들을 격추시키고 있었던 것. 이후, 내가 돌격을 이어간 이들의 칼날을 나의 칼날로 막아내고서 이들을 하나씩 베어내어 폭파시켰다.
  그 이후로도 구체 모양의 비행체들이 나타나기도 하는 등, 한 번 공격이 가해지기 시작하면 한 무리씩, 3 ~ 4 회 이상의 위협이 가해지는 것이 기본이 되고 있었다.
  "슬슬 꼭대기로 다가오니, 그 무리도 다급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 광경을 보며 세니아가 병기들의 움직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 이후로는 공세가 더욱 강해질 것임은 모두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에 이견은 없었다.
  "공주님, 앞으로는 더욱 위험할 거예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정말로 단단히 각오하시고 계시는 것이……."
  세니아가 잔느 공주에게 한 말이었다. 이러한 그의 말에 잔느 공주는 언제나 그렇듯이 염려하지 말라고 답을 하고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무엇도 원망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죽는다니, 그것이 무슨……." 이에 세니아가 놀라면서 말을 건네었으나, 잔느 공주는 그것에 대해서는 달리 언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나는 혹시 벽면의 낙서 내용을 알아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이는 단순한 추측이라 그것에 대해 확신은 하지 못했다.

  14 층의 계단 부근에도 낙서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필적이 한결 같아서 같은 사람에 의해 새겨진 것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들 역시 라테나 어로 기록되어 있었던 만큼, 나를 비롯한 이들은 그 문구들을 어떻게든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문구들은 아래와 같았다 :

VITAE SUNT SOLENT.
(Witay sunt solent)
생명이란 늘 그러하다.

ODIVNT, CERTANT, CAEDVNT, SANGVINANT INTER SOLENT.
(Odiunt, kertant, kaydunt, sangwinant inter solent)
늘 서로 증오하고, 싸우고, 죽이며, 피를 흘리지.

HOMINES APICES EST.
(Homines apikes est)
인류는 그 정점이지.

PRO HAEC, VNIVERSITAS DOLVIT.
(Pro hayk, uniwersitas doluit)
이런 이들을 위해, 만물은 고통 받았어.

ODIVNT FEMINAS MARES, ODIVNT MARES FEMINAE.
(Odiunt feminas mares, odiunt mares feminay)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증오하고,

ODIVNT IVNIORES SENIOR, ODIVNT SENIORES IVNIOR.
(Odiunt yunores senior, odiunt seniores yunior)
늙은이는 젊은이를, 젊은이는 늙은이를 증오하며,

CALCANT FORTES, IURA VANVM EST, SOLVM MAGNAM VIS.
(Kalkant fortes, yura wanum est, solum magnam wis)
강자는 짓밟고, 도리는 의미 없으니, 오직 힘만이 위대하다.

PRO HAEC, HISTORIA ITERABAT SE.
(Pro hayk, historia iterabat se)
이런 이들을 위해, 역사는 반복되었고,

PRO HAEC, VNIVERSITAS DOLVIT.
(Pro hayk, uniwersitas doluit)
이런 이들을 위해, 만물은 고통 받았어.

ABOMINATIONES VOS! RUERE DECENT VOS OMNES!
(Abominationes wos! ruere dekent wos omnes)
너희 혐오스러운 것들! 너희들은 모두 파멸해야 해!

CONCIDITE! PERITE! RVITE!
(Konkidite! perite! ruite!)
멸절하라! 멸망하라! 파멸하라!

EXPIRATE! VOS DAMNABILES!
(Expirate! wos damnabiles!)
사멸해 버려라, 너희 저주받을 것들아!

  이후로는 자그마하게 RVITE, PERITE 등의 파멸에 관한 단어만 반복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정신이 심하게 뒤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문구는 나 뿐만이 아니라, 잔느 공주도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 단어를 보면서 그 의미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던 모양. 그 필적을 보며, 잔느 공주는 그 필적의 실체를 발보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이에 세니아가 그런 그를 보며, 혹시 아는지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다.
  "공주님, 혹시 이 필체를 알고 계신가요!? (Imje, -yoy ß'kißïl halsi arye ihan? - 임제, 요이 쓰키씔 할시 아례 이한)"
  "…… Ye, arayo. (예, 아라요)"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분명히 알고 있음을 밝히고서, 그 필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바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말해 주었다.
  "Pak Suhy+niyeyo. (팍 수혀니예요)" 바로 수현 파크, 그 사람으로서, 일행 모두 수현 파크가 그런 낙서를 새겼을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는 하였는데, 그것을 잔느 공주가 확고히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Mw+nga isanghan saramirl g+scira sänggakeciman, ir+n saramirljur'n morlaßəyo. (뭔가 이상한 사라밀 거시라 셍가켓치만, 이런 사라밀주른 몰라써요)"
  뭔가 이상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저렇게-포악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는 말. 그 말을 하고서, 잔느 공주는 그에 이어, 뜻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누가 봐도 저주의 글일 것이라 말하고서, 계획 도중에 시간을 내서 탑 위로 올라가 이런 낙서를 했을 것이라 말한 이후에 아마도 세상 모두를 저주하고 있었을 것이라 대략 옳은 추측의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충격이 심했는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냉정하고, 쌀쌀하기는 해도, 자신의 계획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만 생각할 줄만 알았으리라 그 사람에 대해 잔느 공주는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그 실상은 그러한 그의 믿음과는 너무도 달라, 정은 이미 메말라버리고,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집착해 그 심성이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틀린 것이 그의 실상이었다고 여기게 된 것이었다.
  "그에 대한 더 많은 기록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있으면 얼마나 더 있겠니." 이후, 그의 진상에 대해 더 알았으면 하는 바람을 카리나가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세니아가 그런 그에게 쓸데없는 바람이라는 식으로 말하며, 말렸다. 그러는 동안 일행은 어느덧, 마지막 층의 바로 아래 층인 지상 15 층-17 층-에 도달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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