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Intermission 5 : 3


  내가 이상한 공간에 들어섰을 때와 같은 밤하늘이 빛이 사라졌을 때, 나의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등이 무언가에 기대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 때의 내 등은 바닥에 기대어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바로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나의 눈앞으로 이전까지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새벽을 맞이하는 하미시 (Hamisy) 거리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뭐였지?" 내가 다시 하미시로 돌아왔음을 인지하자마자 나온 말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어떤 이상한 세상에 있으면서 싸움을 치르다가 이렇게 갑작스레 돌아온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하늘 위의 공간 한 곳에 있는 어떤 길 위에 있었고, 그 길 부근에는 고대 도시의 유적 같은 것이 자리잡은 거대한 영역이 있었다. 이러한 영역에 기계 병기들이 닥쳐와 나 그리고 길 건너편에 있던 이를 위협하고 있기도 했다.
  참으로 뜬금 없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었지만 곧 한 가지 예감이 나의 마음 속을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그 동안 내가 그 때까지 지켜보았던 그 모든 것들을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될 때가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 있던 이가 그 때의 나와 옷차림은 달랐지만 나와 닮은 모습이었음을 상기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때 내가 보았던 이는.......'
  그 때, 한 가지 번뜩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고, 심지어 확신까지 들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말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분수대, 내가 서 있던 그 뒤쪽에서 멍하니 서 있던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르사나! 이 새벽 시간에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던 거야!?"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곧바로 분수대 쪽을 향해 돌아섰고, 그와 동시에 카리나와 세니아를 비롯한 숙소에서 숙박하고 있던 이들이 나의 바로 앞에 모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벽 일찍부터 숙박을 마치고 길을 나서려 하는데, 내가 보이지 않아 찾고 있었던 모양.
  "내티가 알려주었어, 그 동안 없어졌다가 분수대 부근에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대."
  "누워 있었다고?"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이상한 공간에서 돌아왔을 때,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나에티아나가 발견했다고 하니, 꽤나 오래 전부터 누워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으며, 그래서 나에티아나가 짐을 들고 나가기까지 했으니, 바로 하미시의 북쪽 경계로 가면 될 것 같았다.

  "사리 공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했지?"
  "했지." 이후, 나는 일행의 중간 즈음에 있던 카리나에게 다가가서 사리 공주에 대해 일행에게 알려주었는지 여부를 물었고, 그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일행으로 온 이들은 나의 말을 잘 믿어 주었으며, 일행을 속이려 했다는 말에 크게 자극을 받기도 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악의 세력에 잡혀 있다는 이가 그렇게 쉽게 아르사나 씨의 곁으로 왔다는 말에서부터 믿겨지지 않았어요, 애초에 수많은 동료들과 같이 있었다는데."
  그 이야기에 대해 세나가 한 말이었다. 애초에 세나는 내가 이전에 호수가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포레 느와흐' 라는 존재에 의해 붙잡혔다는 사리 공주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초에 그가 사리 공주일 것이라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동료들을 지옥 같...... 아니, 그 괴로운 곳에 두고 혼자 어디 있는지도 모를 아르사나 씨를 찾아왔다고 했잖아요, 말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세나의 말에 나도 동의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세나가 말한 바대로 내가 아는 사리 공주라면 동료들을 그냥 놓아둘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고서 카리나에게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알렸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가 답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세나가 알려주었어, 속아주는 척을 열심히 해 보겠대."
  답을 하면서 웃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마 그 때, 카리나는 앞으로 내 곁에 계속 모습을 드러낼 가짜 사리 공주를 속일 생각에 한편으로는 기대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기도 했었던 것 같아 보였다.
  "여기 애들은 가짜 사리 공주보다 네 말을 더 잘 믿을 거야, 지금까지 네가 믿을만한 행동을 자주 보였던 것도 있고, 애초에 행적부터 수상한 자를 믿는 것이 아니잖아, 그렇지?"
  이후, 세니아가 말했다. 그리고서 그런 가짜 때문에 동료들 간의 믿음이 갈라질 것에 대해 걱정했다면 그런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그리고 이후의 일은 그 '공주' 라는 자가 또 보이기 시작하면 그 때 생각하자고 말했고, 이후 나는 가짜 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그 정도에서 그치기로 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새벽을 맞이하는 문화 광장의 북쪽 길목에 보이는 상점들이 보이고 있었다. 나와 세나 등이 머무르고 있던 찻집, 일행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갔던 식당,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에게 줄 단어장을 구매하기 위해 갔던 서점을 향하는 길목이 하나씩 눈앞으로 다가갔다가 나의 곁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아 참, 그 단어장들 있지? 잔느 공주, 루이즈 씨께 드리려고 샀던 그 단어장들 있잖아."
  "그것들은 이미 잔느 공주님, 루이즈 씨께 이미 드렸어요."
  내가 단어장들에 대해 세나에게 묻자, 세나가 바로 답했다. 이후, 그는 이후부터 틈나는 대로 단어장에 있는 단어들을 공부하기로 했다고. 옛 브리태나나 세니티아 어나 자신들의 언어가 아니라 힘들기는 하겠지만 열심히 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었다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어?"
  "예." 이후, 나는 세나에게 혹시나 싶은 생각에 잔느 공주, 루이즈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자, 세나로부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여러 말들, 특히 라테나 어라는 어려운 말을 익혀서 수도원 생활까지 해 봤다는 나에 대해 너무도 부러워한다는 말을 했었다고.

  이후, 새벽을 맞이하는 고요한 길목을 따라 나아가는 도중에 흥미로운 대화가 또 나왔다.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에게서 그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어떤 후배 학생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예나' 였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잊고 있었다가 잔느 공주가 예나와 함께 지내면서 불현듯, 그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흥미가 돋아난 나는 곧바로 그들에게 다가가서는 그들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이름이 정말로 예나였었나요?"
  "예, 맞아요." 잔느 공주의 왼편 곁으로 다가가서 묻자, 곧바로 잔느 공주가 답했다. 그리고 성을 더하면 '예나 강 (Yena Gang 혹은 Yena Gã)' 이 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학교 1 년 후배로 선후배 간의 만남이 별로 없었던지라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거나 하지는 못 했지만 취미 활동 모임을 결성하면서 잔느 공주, 루이즈가 그와 한 팀을 맺게 되었고,그것이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었지요?"
  "그렇지요, 처음부터 친해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학교 밖에서도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내가 건네는 물음에 잔느 공주가 바로 답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나 역시 처음 천문대로 가면서 지금 일행인 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세나, 세니아, 카리나 그리고 소르나와 레테사에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까지. 사실, 이들 중에서 천문대로 가장 늦게 온 이는 연 단위로 늦게 온 천사들, 천사들을 제외하면 가장 늦게 들어온 이는 나였다. 이전 천문대 관리자로 있었던 이가 떠나간 이후에 조수로서 천문대에 들어왔던 소르나가 천문대 관리자가 되면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천문대에 남아 의기 투합하며 천문대를 이끌게 됐었다고 한다.
  당시의 나는 먹고 잘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들어왔지만 당시 세니아, 카리나 등의 모두를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개방적인 면모에 이끌렸고, 그렇게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로 친해진 것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기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잔느 공주, 루이즈 그리고 예나라 칭해진 이의 첫 만남 역시 그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나는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이전부터 인연이 있던 사이도 아니었음에도 그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친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선후배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천문대에서 자매처럼 친한 이들이 몇 있었어요, 예나가 바로 그런 그들 중 하나였지요."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어떤 취미 활동을 하셨었나요?"
  "저요?" 이에 잔느 공주는 천문학 동아리에 있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아버지가 과학자였고, 아무래도 과학과 가까운 동아리를 찾다보니, 천문학 동아리를 자연스럽게 찾게 된 것. 여기에 본인이 천문학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천문학 동아리에 들어간 것을 운명적이라 여기기도 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로 통하는 면이 있네요, 저희들도 천문대에 있었던 전적이 있거든요."
  잔느 공주가 천문학 동아리에 있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카리나가 새삼 반가움을 표하며 외쳤다. '천문학에 관한 모임' 이라는 서로 간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카리나는 당시에 내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가 천문대에 있던 이들임을 밝히기도 했었다. 그러자 루이즈가 일행의 수를 세어보더니-5 명-, 상당히 큰 천문대였던 것 같다고 말하자 세니아가 그런 질문에 바로 답했다.
  "아니오,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원래 정원이 3 명이었던가 그랬는데, 당시에 천문대 관리자가 너무 많은 이들을 받아들였던 거예요."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면서 더 이상 대원을 모집하지 않았으며, 그렇지 않아도 정원의 2 배 이상 모여 한 방을 2 ~ 3 명씩 이용하는 마당에 더 이상 인원을 받아들일 수 없었음이 그 이유였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해당 이야기는 소르나와 세나의 대화를 통해 나 역시 알게 된 바 있다.
  "천문대 활동은 어떠했어요?"
  "별의별 사람들이 들어온 곳이었지만 다들 별에 관심이 어느 정도는 있었고, 그래서 다들 열심히 활동했어요. 별의 움직임이라든지, 망원경 다루는 일이라든지..... 망원경을 들고 밤하늘의 모습을 관찰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었지요."
  이후, 루이즈가 천문대 활동에 관해 묻자, 카리나가 위와 같이 답했다. 그러자 루이즈가 바로 이렇게 이어 질문을 했다.
  "그런데, 당시 천문대 관리자 분께서 본래 정원보다 더 많은 수의 인원을 모집하려고 했었다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신 거예요?"
  "글쎄요......" 확실히 소르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수의 인원을 모집했고,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늘 있어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천문대에 들어오면서 소르나의 인원 모집도 끝이 났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카리나, 세니아, 나에티아나 등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으리라. 다만, 세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복잡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의미를 그 때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천문대에 들어온 이들이 각자 본래 하는 일이 있어서 그 일을 통해 생활비를 나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활비 부담이 크지 않기는 했었대요. 천문대 관리자 분께서 마음씨가 좋아서 들어온 이들 모두 금방 친해져서 천문대에 있을 때만큼은 누구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요. 여기 있는 애들에게 가장 좋았던 시절을 물을 때마다 나오는 답이 천문대에 있었을 때라고 할 정도예요."
  이후에 천문대 생활에 대해 세니아가 말했으며, 그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특히, 카리나, 세니아는 천문대를 떠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서로 만나며 지내는 사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문대 관리자 분과 가장 친하셨던 분이 누구신가요?"
  이후, 잔느 공주가 묻자, 내가 바로 앞장서 나아가던 세나를 지목하며 그라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일행의 발걸음은 시내의 돌바닥 길을 벗어나 초원 사이의 흙길에 이르고 있었으며, 흙길 너머의 언덕을 향하고 있었다. 하나야스의 탑으로 나아가는 길목은 북쪽 경계 너머에 있는 산길의 끝, 하나엘리스 (Hanaelis) 라는 이름을 가진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의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걸어서 가려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산길을 올라야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날 수 있는 탈것을 이용하면 보다 빨리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다.
  "마치 순례 여행하는 것 같아."
  길을 나아가는 동안 대열의 두 번째 즈음에 위치하고 있던 카리나가 자신이 걷고 있던 산길의 주변 일대를 둘러보면서 말했고, 이에 가장 앞장서 나아가던 세나가 "역시 그러하겠지요?" 라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바로 뒤에서 그들을 따라 걷고 있으면서 주변 일대를 가만히 둘러 보았다. 내가 길을 걷고 있던 오른편 너머로 드넓은 광야의 크나큰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고대 유적이 펼쳐진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아직 걸으실만 하지요?"
  "예, 아직 걸을만 해요." 그 무렵, 나의 뒤에 있던 세니아가 나와 함께 걷고 있던 루이즈, 잔느 공주에게 걸을만 하지 않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그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이렇게 물었다.
  "산등성이 자체는 그렇게 완만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길을 사람들이 걷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순례를 위한 길이니까." 그 물음에 앞장서 가던 세나가 잠시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그리고 과거에는 빛을 발하는 나무, 탑 혹은 등대를 순례하는 여행자들이 있었음을 밝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여행자들이 없어져서 순례 여행을 원하는 이들만이 세계 각지를 돌며 순례 여행을 한다고 하는데,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이 이러한 순례 여행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그런데, 여러분께서 이런 순례 여행을 하시는 데에 무슨 목적을 갖고 있나요?"
  이후, 일행을 향해 잔느 공주가 순례 여행의 목적에 관해 물음을 건네었고, 이 물음에 순례 여행을 시작했던 내가 답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서 잔느 공주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목적, 레테사의 요청을 받은 일로 내가 받은 은화처럼 생긴 8 개의 문양이 새겨진 은제 원반은 천문대에 남아 천문대 관리자가 된 레테사 (Retesa) 로부터 받은 것이다. 레테사는 그 원반을 건네면서 나에게 문양의 빛들을 모두 채워줄 것을 부탁하면서 8 개의 문양에 빛이 모두 채워지면 거대한 힘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8 개의 지역들이 둘러싸고 있는 '검은 섬' 에 대한 언급도 이어지고 있었으니, 이것이 8 개의 문양에 빛을 채워야 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으시겠지만, 저 너머의 바다에 검은 섬이 있어요. 빛의 등대가 있는 산 꼭대기에 있으시면 그 모습이 보일 거예요. 검은 기운이 떠돌아서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섬으로 알려져 있지요. 문양의 빛들이 모여서 생기는 '거대한 힘' 은 '검은 섬' 의 사악한 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힘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이후, 카리나가 '검은 섬' 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검은 섬' 은 행성계의 고대 문명, 고대 시대의 문명이 아니라 고대를 넘어선 더욱 먼 옛날, 초고대라고도 칭해지는 옛 문명 시대의 유산들이 다수 묻혀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잔느 공주님, 루이즈 씨 모두 옛 문명 시대의 분들이셨지요?"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산길을 오르는 동안 문득 생각이 났는지,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물었다, 천문학 동아리 활동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런데, 질문을 대하는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 모두 천문학 동아리 활동에 관해서는 좋은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망원경 없는 천문학 동아리 활동을 상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후, 루이즈로부터 들려온 그의 되묻는 목소리였다. 전혀 믿겨지지 않는 질문이 그에게서 나오고 있었고, 그 질문을 듣자마자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의아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동안 그런 일행에게서 들려온 그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학교에서의 동아리 활동은 지도 교사의 주관 하에 진행되었다. 동아리 활동의 대부분은 교실 내에서 지도 교사의 강의 하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지도 교사의 강의가 늘 흥미로울 수는 없었기에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잠드는 학생들이 곳곳에 보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잔느 공주, 루이즈 그리고 예나 등의 동아리는 실제로 천체 관측을 하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첫 학기에나 가능했지, 주변에서 가하는 학업에의 압박으로 동아리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지도 교사가 교체됐는데, 새로 들어온 지도 교사는 천문학은 물론 동아리 활동에도 관심이 없었고-애초에 천문학과도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동아리 지도 교사들이 이런 사람들로 교체되는 경우가 자신들의 학교에서는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하러 온 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회원들 간의 대화마저 단속시켰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아리 활동은 고사하고 동아리의 존재 자체가 명목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천문학 동아리 활동인가요?"
  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황당함을 느끼며 카리나가 건넨 물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 터무니 없는 유희극을 보는 듯이 멍하니 잔느 공주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놀란 이들도 있고-세나, 나에티아나-, 어처구니 없는 듯한 반응을 보인 이들-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나-도 있었지만 이들 모두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음은 분명해 보였다.
  "처음에야 천문학 동아리였지, 이후로는 그저......"
  "그냥 학업 동아리...... 아니, 동아리도 아니지, 가짜 동아리 (Gaz-Klubajisßï, Gaz-KJ) 도 아니야, 그것은. 동아리 활동한다고 모아 놓고서는 강제로 공부나 시키는데, 그게 무슨 동아리 활동이야? 애초에 그렇게 동아리들을 운영할 것이면 그냥 공부 시간을 갖게 하는 편이 나을 거야."
  이후, 카리나에 이어 세니아가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소속되었던 곳에 대한 말들을 이어갔다. 특히, 세니아의 어조가 다소 격앙되어 있어서 그 실태에 대해 크게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세나가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잔느 공주 등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동아리 활동다운 행동을 하셔서 천만 다행이기는 하네요."
  "...... 그렇지요." 그러자 잔느 공주를 대신해 루이즈가 답했다. 그리고 잔느 공주, 루이즈가 속해 있던 '푸투로 계획' 에 참여한 학생들 중 일부는 이렇게 어디를 가도 공부 밖에 보이지 않는 현실에 질려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파했던 이들이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루이즈는 그런 용기라도 가진 이들이 무척 부러웠음을 말하고서, 이어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 자신의 경우에는 어디를 가도 공부, 취미 활동한다고 간 곳에서도 공부, 공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벗어날 용기는 없었다고.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른이 되고 진학을 해서 지긋지긋한 학생의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었다고. 그러자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서던 세니아가 물었다.
  "진학이면 상급 학교 혹은 대학교 (Araskola, Universitaskola) 로 가는 것이었지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아도 어른으로 살 길은 충분히 있었을 텐데."
  그 물음에 루이즈가 씁쓸하게 목소리를 내며 답했다. 주변 사람들이, 학교의 사람들이, 가족들이 높은 학교로 진학할 것을 늘 종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 학교, 좋은 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이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학생들의 가족들은 그런 극단적인 사람들의 사고에 쉽게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었던 일, 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는데, 하지 못한 것들도 많았겠지요?"
  이후, 나에티아나가 그의 머리 위를 비행하고 있다가 루이즈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으며, 이제 와서 영원히 할 수 없게 된 것도 많다고 밝혔다. 그러자 그를 따라 가던 세니아가 안타까워 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루이즈 씨 같으면 다행이에요, 영원히 자신들이 잠든 이후의 세상을 보지도 못한 이들도 적지 않을 텐데......."
  "그렇지요......" 이에 루이즈가 씁쓸한 감정을 계속 드러내며 답했다.

  잔느 공주와 루이즈 그리고 예나 등은 푸투로 계획에서도 서로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천문학 동아리 소속에 있던 학생들 중 대다수가 어떤 식으로든 계획에 참가하고 있었음이 그 이유라고. 이외에도 천문대에서 인연을 맺은 수많은 이들과 푸투로 계획을 통해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고, 옛 천문학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있을 동안만큼은 해당 계획을 못마땅해 하고 있던 루이즈 역시 평화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무렵에 인연을 맺은 이들 중에는 여학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남학생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유난히 용감했던 남학생이 하나 있었고, 푸투로 계획에 모인 천문 동아리 회원들 중에서는 지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동아리 시절에는 잔느 공주가 동아리 회장 역할을 맡았고, 학업 성적도 평범했고, 운동 능력이 평균 이상 정도였을 뿐, 천문학과는 별 상관 없는 이라 일개 회원에 불과했던 그 남학생은 푸투로 계획 당시에는 당시에 모인 회원들 중에는 운동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판단력이 좋아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잔느 공주, 루이즈가 기억하는 이들로는 예나라는 이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신입생이었고, 예쁘장하고 청초한 느낌이 있는 앳된 외모에 활발하고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가정적인 면모까지 갖추고 있는 소녀였다. 이러한 면모 덕분에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아이돌 (Idola)' 로 통하는 소녀였으며, 잔느 공주, 루이즈 역시 그를 깊이 아끼니, 예나 역시 잔느 공주와 루이즈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의 일화 중에서 유난히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어요."
  모의 시험 중의 일이었다. 전투 능력에 관한 모의 시험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시험용 기계 병기가 갑자기 폭주를 일으켰고, 해당 병기가 예나를 붙잡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폭주를 일으키면서 시험용 병기는 살상용 광선과 광탄들을 발사하며 학생들을 위협해 갔는데, 그 때, 그 남학생이 시험용으로 운용되고 있던 비행 유니트 (Unit, Yunit, Unita) 들을 다수 가져와 그것들로 기계 병기를 제압하고 예나를 구출한 사건으로 해당 사건은 잔느 공주, 루이즈도 목도하고 있었으며, 해당 사건을 보면서 루이즈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음을 밝혔다.
  "해당 사건을 겪으면서 예나라는 분이 그 남자 분께 반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후, 세니아가 활짝 웃으면서 예나에 관한 물음을 건네자, 루이즈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랬었다고 답하고서 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 사실 이전에도 예나는 그를 '존경하는 선배 (Rînolin Ansu)' 로 여기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 자신이 그에게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선배' 를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그 아이에게는 참 안타까웠던 것이...... 그 사랑하는 선배에게는 이미 연인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이후, 루이즈의 말에 그 남학생의 연인이 누구였는지를 알고 싶어했던 세니아가 묻자, 루이즈는 자신의 우측 곁에서 자신과 동행하고 있던 잔느 공주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은 잔느 공주를 누구보다도 동경했었음을 밝히고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
  "예나와 저는 그 남학생을, 그리고 그 남학생은 잔느 공주를 따랐던 것이지요. 잔느 공주도 사실은 그 남학생에게 마음이 가고 있었던 것 같고. 달리 말할 것은 없고, 저와 예나는 그 남학생에 대해 터무니 없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그 남학생과 예나는...... 이후에는 어떻게 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후, 이번에는 세나가 루이즈 그리고 잔느 공주에게 잔느 공주가 사랑했었을 남학생 그리고 그를 존경하던 예나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딱히 기대하는 듯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들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을 건네려 하였을 것이었다.
  "동면 장치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로 가게 됐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자 잔느 공주가 세나에게 그렇게 되물었고, 이후, 세나가 그렇다고 답을 하자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세나가 언급했던 '남학생' 그리고 예나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남학생과 예나는 한 동안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 등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마지막 교육 당시에 참가자들의 조 편성에 큰 변화가 생겨났고, 그로 인해 천문학 동아리 소속이었던 이들은 각자 헤어지게 되었고, 이후, 동면에 들어설 때까지도 잔느 공주는 루이즈를 비롯한 친구, 동료들을 만날 수 없었으며, 그들의 사정 역시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코드 명 (Code Name, Kodayrim) 을 부여 받을 무렵에 옛 친구들의 코드 명을 들어볼 수는 있었다고 했다.
  가장 아끼는 후배였던 예나의 코드 명은 '셀레니아 (Selenia)' 였다. 학교에서 아이돌로 통하던 예나는 특유의 청초한 외견과 밝은 얼굴 색 때문에 '달의 요정'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지어진 코드 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잔느 공주가 마음에 들어했던 남학생과 친분이 있던 남학생들 중 하나로 잔느 공주 등과 같이 천문학 동아리 소속이었던 남학생의 코드 명은 '지크프리트 (Siegfried)' 였으니, 마치 왕자를 연상케하는 잘 생긴 외모에 용감하고 강인한 성격 덕분에 그러한 코드 명이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곧 그 이름은 '시구르드 (Sigurd)' 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시구르드는 이전에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지 않아?"
  그 무렵, 세니아가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하고서 이전에 고대 도시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음을 밝힌 이후에 세나가 소지하고 있던 도검을 가리키면서 그 도검에 대해 본래는 시구르드가 갖고 있던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도검일 것 같아 보였는데, 세나가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의외로 범상치 않은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더라."
  곧 부러질 것 같은 도검으로 고대 도시의 여정을 마칠 무렵에는 버릴 것도 염두해 두었던 장검이었으나, 세나의 손에 들어와 여태껏 그와 함께 하고 있었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시구르드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물건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렇듯, 시구르드는 나와 적으로 맞섰던 자의 이름이었고, 셀레니아는 베라티사의 예나가 가진 두 번째 이름이었기에 나에게는 결코 낯선 이름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여기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이름만 같을 뿐인 서로 다른 존재들을 몇 차례 본 경험에 의한 일이었다. 다만, 고대 도시에서 마주했던 시구르드의 경우에는 본래 푸투로 계획을 통해 잠들었다가 깨어난 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시구르드라는 이름을 가졌을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관성이 있어 보이기는 했다.

  "그 남학생 분의 코드 명은 끝내 알아내시지는 못하신 것이지요?"
  이후, 세나는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에게 잔느 공주가 마음에 들어하던 남학생의 코드 명은 끝내 알아내지 못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잔느 공주는 조용히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루이즈에 의하면 시구르드는 이미 깨어났음을 확인했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음을 밝혔다.
  "어쩌면...... 동면되어 있는 채로 영원히 깊은 잠에 빠진 이들 중 일부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리고서 루이즈는 침울해진 목소리로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드러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의 생각도 대략 비슷하기는 했다, 여전히 동면된 이들은 그대로 영원히 잠들었을 테니, 그 시점에서까지 깨어나지 못했다면 그렇게 생을 마감했을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을 노릇이었다.
  "혹시 이전에 깨어나셔서 이 세상 어딘가를 방황하고 계실지도......"
  그럼에도 나는 혹시나 그의 우울한 전망에 변화를 줄 생각에 한 번 그렇게 희망적인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해 보았지만 잔느 공주와 루이즈 모두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지는 않고 있었다. 다만, 이것은 이미 예견된 반응이었던 만큼, 내가 했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대해 딱히 섭섭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행의 발걸음은 도시의 북쪽 경계와 그 너머의 산길을 벗어나 산의 중턱 즈음에 이르고 있었다. 산길의 중간 즈음인 지점에는 산길을 오르는 이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니, 사람들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나무 벤치 4 개가 나란히 나무로 만들어진 지붕 아래에 놓여 있었다. 벤치를 보자마자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앞다투어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내가 가장자리 즈음에 앉고서 세나 그리고 루이즈, 잔느 공주가 가운데 즈음에 앉도록 했으며, 남은 자리에 세니아, 카리나가 앉도록 했다. 그 동안 비행을 이어가며 일행을 따라가고 있던 나에티아나는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 일행이 앉은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에서부터 나, 카리나, 세나, 잔느 공주, 루이즈, 세니아의 순으로 앉았다.   "이제 반 즈음 걸어갔으려나." 일행이 그렇게 자리에 앉자마자 나의 바로 옆에 앉은 카리나가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렇겠지." 라고 답했다. 이후, 카리나는 나에게 빛의 등대에서 발하는 빛으로 원반의 문양을 채우고 나면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바로 이렇게 답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그 때 생각해 봐야지."
  그리고 특별히 다른 일이 없으면 곧바로 가브릴리스 혹은 지브로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하미르 동부로 갈 생각이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이에 카리나가 나에게 특별한 일이라면 예컨대 어떤 일을 말하느냐고 물었지만 그 물음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답이 하나 정해져 있기는 했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혹시 그 알프레드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말하는 거야?"
  이후, 세니아가 나에게 묻자, 그것에는 "그러할 수도 있겠지." 라고 답을 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세니아가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무언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소르나 비슷한 애를 본 것 같은데......."
  그러다가 세니아가 카리나를 보면서 소르나를 언급하자마자 흠칫 놀라서 잠시 고개를 돌려 그 쪽으로 보았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런 세니아에게 "잘못 보았겠지." 라고 화답하고서 학업 때문에 정신 없을 그 애가 어떻게 오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하겠지." 이후, 조용히 한 숨을 내쉬면서 세니아가 이어 말했다.
  "천문대를 떠난 이후에 베라티사로 바로 갔었지, 아마? 그 이후로는 만나고 싶다고 말해도, 어디에도 연락도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기는 한지 궁금하네."
  이후, 카리나는 내가 소르나와 한 번씩 그 때의 여행 혹은 모험에 관한 연락을 주고 받기는 했었다고 말하고서 그렇다면 일행이 갈 곳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그 곳이 좋은 곳이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세니아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그러자 세나가 그런 카리나에게 잘 지내고 있기는 할 것이라 소르나에 대해 말하고서 그 동안 일행의 동량과도 같았던 이 아니었느냐고 그에 대해 말하고서 특별히 걱정될 일은 없을 것이라 이어 말해주기도 했다.
  "......." 그러는 동안 나는 그들의 대화를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 실상이 무엇인지, 그 '소르나' 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밝힐 때는 아니라 여기고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되겠지만 그것은 그 때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산을 오르는 동안 잔느 공주가 오른편 곁에서 동행하던 루이즈에게 옛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루이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 이라 답하는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들이 경치 좋은 곳으로 가면 했을 법한 일들을 언급하는데, 그것을 통해 옛 문명인들이 여행을 할 때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그들을 통해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휴대 전화기에 사진기 기능이 있었다는 것, 사진기로 편하게 사진을 찍었다는 것, 이런 기능을 통해 경치 사진을 찍고, 자신들의 모습이 포함된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 과거의 기록을 통해 이미 충분히 본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옛 문명인들을 통해 직접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스럽게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하게 와닿고 있었다.
  "요즘에도 초상화 그려주는 일은 쉽지 않지?"
  "응, 그래서 초상화 그려주면 나름 수고비를 많이 받고는 해."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답했다. 그리고서 그는 한 때, 자신도 그렇게 초상화를 그리면서 돈을 벌 생각도 했었지만 재능이 없어서 일찍 그 소망을 포기했음을 밝히고서 간혹 화가들이 밖에서 풍경화나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 구경하고는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모델이 되기도 했었다면서?"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다시 그렇다고 답하고서, 세니아는 그림, 사진에 모두 재능이 없어 그것들을 포기한 이후에 누군가의 사진을 위한 모델이 되면서 여러모로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음을 말했다. 그리고 사진기를 통해 손쉽게 풍경 사진들을, 자신들 혹은 다른 누군가의 사진들을 얻어냈다는 옛 문명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잠깐이나마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음을 카리나에게 말하기도 했었다.
  "너 말고 교내 잡지 모델이 된 애가 아르사나였지?"
  "응, 그냥 교내 인기 투표 1 위라서 강제로 그 일을 했던 너와 달리, 돈 벌려고 했었다고 하잖아. 어쨌든, 우리들 중에는 나와 아르사나 둘 뿐이었던 것으로 알아."
  그리고 세니아는 세나도 모델이 된 적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관련된 질문에 그는 그러한 적이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음을 밝히고서 그 당시에는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었다고 그 때의 일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아무래도 세나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소극적이니까."
  "그렇지. 세나가 아무래도 부끄러움이 많으니까." 세니아가 카리나에게 건네는 말에 내가 카리나를 대신해서 답했다, 세나가 자신을 드러내는 일 등에 대해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라 그에게 말해 주는데, 그 무렵에 나를 바라보면서 세나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복잡한 듯, 아닌 듯한 감정을 드러내는 듯한 미묘한 표정, 그런 표정을 짓고서 세나는 그런 나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 복잡한 감정을 표출하는 미소에는 나름 의미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너하고 소르나하고 소꿉 친구였다고 하던데."
  휴식을 마치고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일행이 산길의 도중 지점과 정상 지점의 중간 지점 즈음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그 무렵에 카리나가 나의 왼편 곁으로 오더니, 나에게 나와 소르나가 어떤 사이였는지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음을 밝히며 그것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이런 물음에 나는 헛소문을 들은 듯이, "소꿉 친구? 누가 그렇게 말해?" 라고 되물었고, 이러한 물음에 카리나는 잠시 당황하더니, 그런 나에게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일 뿐임을 밝히고서 너무 진지하게 신경쓰지는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 세나가 카리나에게 바로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실제로 소꿉 친구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어요."
  "하지만 본인이 잘 모르는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카리나는 내가 이전에 자신의 물음에 대해 화답한 바를 의식한 듯, 본인이 잘 모르는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의 말에 대한 답을 했다. 이후, 세니아는 조용히 미소를 띠더니,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사랑하거나 할 수도 있을 거야.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 예컨대 전생에 서로 사랑하는 남녀였다던가......."
  "갑자기 웬 뜬금 없는 말을 하고 있어?" 갑자기 뜬금 없이 말을 건네는 세니아에게 내가 바로 무슨 말을 하느냐는 식으로 물음을 건네었고, 그 물음에 세니아는 그냥 한 번 해 본 말일 뿐이라고 답하고서 만약에 소르나와 내가 소꿉 친구였다면 그런 사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말했다.
  "소꿉 친구라 해도 꼭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아." 이런 그의 말에 나는 소꿉 친구라고 꼭 연인이 되라는 법은 없다고 답했다. 이후, 뒤따라 오던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 이후, 잔느 공주가 나의 오른편으로 카리나를 대신해 다가오면서 물었다.
  "아르사나 님께는 소꿉 친구가 있었나요?"
  카리나가 앞장서 나아가던 세나의 곁으로 가고, 그 대신으로 잔느 공주와 루이즈가 다가온 이후에 잔느 공주가 건넨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있'었'다고 답하고서, 이어서 어린 시절에는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내가 도시로 오면서 헤어졌고, 그 이후로 다시 만난 적은 없다고 나의 소꿉 친구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루이즈는 그런 나의 말을 믿어주지는 않는 듯해 보였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의 무언가를 꺼내지는 않을 것 같았는지, 나를 추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비탈진 산길을 오르고 오르기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일행은 산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빛의 등대 끝에서 새하얗게 빛나며 어둠을 비추는 찬란한 빛의 모습이 하늘 높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빛의 등대라 칭해지는 나무처럼 생긴 구조물 아래에 있는 이는,
  "아가씨들,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예나였다. 북쪽 경계 부근에 자신의 배를 놓아두고 그 배 안에 잠들었을 것으로 산봉우리에 자리잡은 빛의 등대에도 관심이 있어서 먼저 올라갔던 모양. 뒷짐을 지고, 두 다리를 모은 채로 서 있으면서 활짝 웃으며 일행을 맞이하는 예나의 주변으로 미리 운동 삼아 올라왔을 몇몇 이들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언제 올라오셨어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잔느 공주가 서둘러 예나의 곁으로 뛰어가고 이어서 루이즈도 그런 잔느 공주를 따라 뛰어가면서 예나에게 묻자, 예나는 뒷짐을 지고 있던 두 팔을 공손히 앞으로 내밀면서 그 물음에 답했다.
  "새벽 즈음에 올라와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나와 세나가 그들을 따라 예나의 곁에 이르렀을 때, 예나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제 다섯 번째 빛을 찾아오신 것이지요? 빛으로 다가와 의식을 치를 준비를 해 주세요." 이후, 예나는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에게 옆으로 물러나 달라고 당부를 하고서 빛의 등대 우측 근처로 그들과 함께 물러났다. 그러는 동안 세나와 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나에티아나는 뒤쪽에서 내가 은제 원반에 빛을 끌어오는 과정을 지켜보려 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의 일 같네." 이 혼잣말과 함께 치마의 왼쪽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상자를 왼손으로 꺼내고서 오른손으로 왼손에 들고 있던 상자의 뚜껑을 열고 솜에 감싸인 은제 원반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의 손가락으로 뚜껑을 다시 닫아 상자를 주머니 안에 다시 넣어 둔 이후에 오른손에 원반을 쥐고 있는 채로 조용히 빛의 등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서 몇 걸음 앞에 이르자마자 고개를 들어 빛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빛을 향해 내밀고서 원반의 문양이 있는 면이 위를 향하도록 하면서 동전을 쥐고 있던 손바닥을 펼쳤다.
  그 이후, 이전까지 원반에 빛이 다가올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다섯 번째로 맞이하는 새하얀 빛에서부터 빛 줄기 하나가 생성되어 원반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빛이 은제 원반에 닿으며, 원반을 하얀 빛으로 뒤덮게 하고 있었다. 이미 빛은 원반에 닿아 원반에 스며들려 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계속 원반을 올린 손을 높이 올린 채로 문양에 빛이 완전히 채워질 때까지 계속 기다리려 하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빛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이자마자 재빨리 팔을 내리고-솔직히 팔이 조금 아팠다-, 손 위에 놓인 원반을 살펴 보니, 다섯 번째 문양, 산의 형상을 묘사한 문양을 하얀 빛이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일련의 의식을 끝내자마자 카리나가 재빨리 나의 오른편 곁으로 달려와서는 내가 손바닥에 올려놓은 은제 원반의 상태를 보고, 8 개의 문양들 중에서 원반 오른쪽의 3 개를 제외한 문양들이 새하얀 빛으로 채워진 모습을 보면서 의식이 끝났음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카리나 등이 의식의 종료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상자를 왼손으로 다시 꺼내, 왼손에 올린 주머니의 뚜껑을 손가락으로 열고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은제 원반을 다시 상자 안에 넣어두고 뚜껑을 닫아서는 왼쪽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이 상자는 6 번째 빛을 보게 되면 그야말로 '오랜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이제 내려가서, 하미르로 가는 거지?"
  "응, 기차를 타야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내려가기는 다소 아쉬웠고,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빛의 등대 주변 일대에 머무르면서 산의 경치를 구경하자고 말했고, 이러한 나의 말에 우측 뒤쪽에서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와 함께 내 뒷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예나가 나 그리고 카리나의 곁으로 다가오면서 "아주 좋아요." 라고 나의 결정에 대해 말을 건네더니, 이왕 올라온 김에 아침의 경치를 잠시 구경했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으로 하자고 나에게 부탁의 말을 건네었다.
  "그 말씀대로 모두, 잠시 머무르고 있다가 가요."

  그리하여 일행은 2 ~ 3 명씩 모여 있으면서 산봉우리 주변 일대에 있으면서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전부터 서로 친했던 카리나와 세니아는 산봉우리의 왼편에서 산봉우리 건너편의 경치를 구경하다가 자기들만의 구기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잔느 공주와 루이즈는 빛의 등대 앞에 앉아 있으면서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예나는 산에 흥미가 없었는지, 미리 산 중턱으로 내려갔고, 세나와 나에티아나는 아예 날개를 이용해서 주변 일대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등대의 뒤쪽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는데, 비록 사람들이 거의 보지 않는 뒤쪽이라고 해서 앞 부분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뒤쪽을 본다고 해서 큰 의미가 없기는 했지만-아무래도 등대 뒤쪽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그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래서 등대의 뒤쪽으로 가 보았다.
  예상대로 등대의 뒤쪽은 앞쪽과 크게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무언가가 등대의 나무결 사이에 끼어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등대의 중턱 즈음 될까, 내 어깨 높이 즈음 되는 어딘가에 빛나는 구슬 하나가 박혀 있어서 이것이 무엇인가 싶은 생각에 그 구슬을 왼손을 내밀어 빼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구슬에서 격렬한 빛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거부 반응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을까, 대체 뭔지 모를 이상한 반응에 나는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내가 건드리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원래 주인이 있다는 의미?'
  그 이상한 반응에 당황하며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서 다시 손을 내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 것인지. 아무튼, 자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빛의 구슬에는 주인이 따로 있을 것이고, 그 주인이 아니면 만질 수 없도록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며, 일단 구슬이 박혀 있던 등대의 뒤쪽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언젠가 구슬의 주인이 등대에서 구슬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생각에 담아둔 채로 다시 등대의 앞쪽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아르사나, 거기서 뭐하고 있었어?"
  "등대 뒤쪽으로 혼자 가고 있더라. 무슨 특이한 것이라도 찾았던 거야?"
  라고 묻는 세니아, 카리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등대 뒤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에게 접근해 왔던 모양. 그러자 나는 곧바로 등대 뒤쪽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차근히 알려 주었고, 세니아, 카리나는 그런 나의 말을 바로 믿어주는 듯해 보였다.
  "주인을 알아보는 물건이라니, 신기한데."
  "이런 물건이 있으면 잃어버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나의 설명에 카리나, 세니아가 이어서 자신들의 반응을 드러냈고, 이어서 카리나가 자신들을 향해 돌아서는 나의 오른쪽 어깨에 오른손을 걸치면서 유난히 활달하기 이를데 없는 목소리로 그 물건이란 것은 주인이 알아서 찾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서 나 그리고 세니아에게 "이제 내려가자!" 라고 말한 이후에 하미시의 아침 풍경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언급을 이어 갔다. 그러는 동안 비행을 이어가고 있던 세나, 나에티아나도 어느새 나와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의 근처에 머무르며 하산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의 일행 그리고 예나,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와 함께 다시 하산을 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미련이 생겼는지, 고개를 돌려 등대를 다시 보려 하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그런 나의 눈앞에 잠깐 보였다가 다급히 사라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 실체를 유일하게 보았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봐야 하겠다는 생각에 다시 등대 쪽으로 뛰어가려 하였다.
  "아르사나! 갑자기 왜 그래?"
  "등대 뒤쪽에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온 것 같아!"
  "등대 뒤쪽? 뭐 없던데, 아까, 구슬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았어?" 그러자 카리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대체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건네었지만 아랑곳 않고 나는 등대 쪽으로 뛰어가면서 카리나 등에게 외쳤다.
  "나는 있다가 하산할게! 먼저 내려가 있어!"
  등대 뒤쪽에 무언가 있음을 직감하자마자 나는 남아서 등대 뒤쪽을 보기로 하고 다른 이들에게 먼저 내려가 있을 것을 당부했고, 카리나는 나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에 대해 당황하면서 무언가 신경 쓰이는 바가 있는 듯이 나와 내가 서 있던 그 너머, 등대 쪽으로 시선을 향해 보기도 했지만 달리 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는지 결국 돌아서서 일행을 따라 산의 중턱 쪽을 향해 산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리나를 비롯한 일행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그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바로 등대 쪽으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었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등대 쪽으로 나아갔다가 등대에 몇 걸음 앞 지점에 이르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등대 뒤쪽으로 시선을 향해 보려 하였다.
  처음에는 살짝 보이기만 했던 머리카락이 더욱 잘 보이고 있었다. 간간히 산봉우리를 지나치는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산들거리는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머리카락의 모습이 보일 법하면 그것을 숨기기 위해 무언가를 해 봤을 법도 하건만-머리를 묶거나 하다 못해 머리카락을 붙잡으려 했을 것이다-, 뒤쪽에 있는 이는 숨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히려 등대 뒤에 있던 이가 마치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있음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신호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떤 사람이 그 쪽에 숨어있는 것일까, 하며 등대 뒤쪽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다. 다가가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신경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 하나 또 있었던 것이, 바로 등대 뒤쪽에 있던 그 빛나는 구슬, 그 구슬을 건드리려 하는 순간 격렬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고, 그래서 구슬에는 주인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구슬을 놓아두고 갔었다. 그 구슬을 상기하며 등대 뒤쪽에 있던 사람과 구슬에 모종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아가 구슬의 주인이 혹시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등대의 측면 쪽을 향해 돌아서면서 그 모습이 보였다. 나와 같은 감색을 띠는 긴 머리카락을 가지며, 얼굴색이 참 밝았던 사람으로 낯설지 않은 밝은 색의 민소매 셔츠와 허벅지까지 거의 다 드러내는 치마 그리고 감색을 띠며 종아리와 허벅지 대부분을 감싸는 양말 등으로 구성된 복장이라는 외견상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녀린 듯해 보이는 외견에 걸맞지 않게 가슴이 상당히 크게 발달해 있었으며, 허벅지도 상당히 굵어서 가느다란 허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바람이 등대 뒤쪽 일대를 지나치면서 그 등대 뒤쪽에 기대어 앉은 이의 긴 머리카락을 흔드는 동안 소녀는 조용히 바람을 쐬고 있으며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편안히 아침 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던 소녀를 보며 그가 그 때 보았던 빛나는 구슬의 주인인가, 라는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 소녀와 마주하면서 그것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바로 지워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등대 뒤쪽에 걸터 앉은 소녀의 모습은 결코 낯선 이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인지는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르나구나, 여기에는 대체 어떻게......'
  새벽에 마주했던 소르나가 어느새 산 위에 올라와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분명 일행이 등대 근처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소르나가 왔을 것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오고 있었는데, 일행이 떠나려 할 즈음에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소르나는 마녀이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공간 전이를 할 수 있었겠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등대 뒤쪽에 이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당장에 설명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등대 뒤쪽에 있던 빛나는 구슬에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쪽으로 기웃거리려 하는 순간,
  '흐앗!' 갑자기 왼쪽 다리에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픔과 놀람을 동시에 느끼면서 소리를 치고, 이어서 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왼손을 올린 소르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보시고도 모른 척 하시려 하셨지요?"
  소르나의 핀잔을 주는 듯한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보고도 모른 척을 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행한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해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니잖아."
  하지만 소르나는 그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다른 분들께서는 전부 내려가셨지요?" 이에 나는 그렇다고 답을 하면서 등대 뒤쪽을 향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이전까지 보이고 있던 빛나는 구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를 두고 소르나가 빛나는 구슬을 가져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빛나는 구슬의 주인이 맞는지, 그리고 빛나는 구슬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는데, 그 때, 계속 등대 뒤쪽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소르나의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나, 거기서 찾아보고 싶은 것이 있어?"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소르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뒷짐을 지며 -평상시에는 좀처럼 보이지도 않는- 생긋 웃는 모습을 보이는 소르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등대 뒤편에 빛나는 구슬이 있었음을 밝히고서 그 구슬을 혹시 본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소르나 역시 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차렸는지, 나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아아...... 사실, 그 구슬 말야."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띠는 모습을 보이는 채로 그 구슬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말했다.
  "그 구슬...... 사실, 나였어." 소르나는 사실 일행 그리고 예나보다도 먼저 산 위에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와 헤어지자마자 산봉우리의 등대 근처로 갔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나를 비롯한 일행이 등대에 이를 무렵에 일행의 눈에 띄지 않도록 구슬로 변신해서는 등대 뒤쪽에 붙었으니, 내가 발견했던 빛나는 구슬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구슬을 만지자마자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던 것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몸을 만지작거리는 것에 대한 반응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거부 반응의 세기 그리고 소르나가 품은 마력의 정도를 감안해 보면 구슬을 가져갈 수 있을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예나라면 가능했을까. 그러다가 일행이 전부 내려갈 조짐을 보이니, 더 이상 변신을 지속할 이유가 없어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모습을 보이며, 나에게 신호를 보냈으니, 그것이 내가 긴 머리카락이 등대 저편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본 이유였을 것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내려가면 어쩌려고 했어?"
  이후, 소르나가 등대 뒤쪽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고,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소르나의 오른편 옆에 앉아서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자, 소르나는 우선 "후훗." 이라고 한 번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나에게 이렇게 답을 하고 있었다.
  "너라면 반드시 내 곁으로 올 것이라 믿고 있었어."
  "어떻게?" 확신에 찬 듯한 소르나의 말에 그저 당황하면서 그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소르나는 자신이 머리카락을 드러냈을 때를 떠올려 보라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방금 전에 있었던 그 때를 상기하며 등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품어보기도 했다. 답은 바로 나왔다, 그러할 수 없다는 것. 나는 떠나기 전에 미련이 남는 곳이 있으면 떠나면서도 주변을 한 번 정도는 둘러보는 편으로 그 때도 그래서 등대를 한 번 이상은 어떻게든 돌아보았을 것임이 분명했다. 소르나는 그런 나의 면모를 알고 일행이 떠날 무렵에 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이런 나의 면모를 잘 기억하고 있는 소르나도 그랬지만, 그런 소르나를 알아보는 나도 어떤 의미에서는 기 막힐 사람인 것 같다.
- 왜 구슬로 변신했는지에 대해서까지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분명했음이 그 이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를 다시 보는 그 기분은 어때?"
  소르나는 거기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너무도 밝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나타나고 있었다. 소르나가 온화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이야 이전부터 자주 보아왔던 것이지만 이렇게 진심 어린 기쁨이 가득한 표정을 자주 보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그와 자주 같이 있었던 세나 앞에서도 이런 표정은 자주 짓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랬는데, 그는 천문대에서 나와 마주할 때만큼은 한 번씩 그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했으며, 그것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느라 나를 잊었을 것만 같았던 소르나가 나를 전혀 잊지 않았음을 알게 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그런데,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어? 갑자기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후, 소르나는 나에게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새벽에 어디서 어떻게 되었기에 갑자기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 때의 일에 관해 나에게 물으려 한 것. 그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새벽에 갑자기 어딘가로 소환되어 누군가의 요청을 들어주게 된 것. 그러면서 길을 따라 나아가다가 도중에 여러 적들과 맞서 싸운 일이 있기도 했었다. 그 도중에 내가 갑자기 없어졌을 텐데, 소르나가 아무래도 그 때의 일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일에 대해 나는 소르나에게 숨기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임을 직감했고, 그 때 있었던 일을 거짓 하나 드러내지 않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때의 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에게 질문을 건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나와 닮은 누군가의 요청을 내가 들어주는 것. 그리고 나 그리고 그 누군가가 동시에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일 것 같았지만 소르나는 그 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리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나에게 그 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같은 일을 다시 한 번 겪게 될 거야, 전혀 다른 입장이 되어서. 그 때를 예비하기 위한 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면 될 것 같아."
  그리고서 소르나는 나에게 당장의 일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겪게 될 일이라 말하고서 그 때 있었던 일을 늘 기억 속에 남겨두고 있어야 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소르나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으로 말미암아 볼 때, 나에게 아주 중요한지 아닐지는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 범상치 않은 일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다.

  "사나, 이제 곧 너도 내려가야 하잖아, 이대로 계속 있다 보면 다른 분들께서 너를 의심하실 거야."
  "그러하겠지?" 다시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려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소르나가 말했다. 이에 아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내려가기로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곁을 떠날 무렵, 소르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니?"
  "하미르, 그리고 동쪽 구역으로 가서 배를 타려고."
  그리고서 하미시에서 할 일이 있을 것 같지만 아마 거의 없을 테고, 그래서 곧바로 기차역으로 가게 될 것 같다고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소르나는 알겠다고 화답하고서 언젠가 다시 만나도록 하자고 나에게 청하기도 했다.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던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의심을 거두지 못하며 이렇게 물었는데, 그런 나의 물음에 소르나는 바로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이었다 :
  "어떻게든 네 곁에서 떠나지 않을 거야." 그 대답을 들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던 것은 사실. 하지만 새벽 때도 그렇고, 그 때도 그렇고, 한 번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 이상, 앞으로도 그와 마주할 일이 계속 생길 것임은 분명해 보였고, 그래서 일단 그가 자신이 했던 말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는 소르나와 헤어지고서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산 중턱의 쉼터로 나아갔다.

  산 중턱에서는 이미 일행이 나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머무르고 있었느냐는 카리나의 핀잔 섞인 말을 들으며 나는 그대로 일행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고, 그렇게 나의 5 번째 빛을 찾아가는 여행은 마무리를 맞이하게 되었다. 북쪽 경계를 지나치고서 루이즈는 예나와 함께 머무르게 되면서 일행과 헤어지고, 남은 잔느 공주를 데리고 일행이 북쪽 문화 광장 일대에 다시 이르렀을 때, 세니아가 그런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앞으로 가는 곳은 바다와 관련이 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바다에 관한 옷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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