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의 이야기에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듣고 나서도 세니아는 딱히 놀라거나 당황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할 것 같았다는 듯이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세니아, 죽음의 기사에 대해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하지 않았었어?"
"들어봤지." 카리나의 당황하는 듯한 물음에 세니아는 두 팔을 팔짱을 끼는 듯이 탁자 위에 올린 채로 답했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은 어렸을 적에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로부터 아이들의 영혼을 빼앗는 '검은 악령들' 이라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었다고 말했다.
내가 그 '검은 악령들' 의 실체를 목도했던 때는 아주 어렸을 때였어. 마을 친구들과 함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돌아다니다가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고, 그 곳에서 숲의 그늘 사이를 몽둥이 하나를 들고 떠도는 어떤 검은 형체를 발견했던 거야. 그 형체를 보자마자 처음에는 영혼을 빼앗는 악령인 줄 알고 모두 겁을 먹었지만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었어. 그 쪽에서도 자신 그리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하자마자 갑자기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한 거야. 이후,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그 검은 '악령' 을 찾아가려 했지만 '악령' 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
마을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어리석지 않았어. '악령' 이라 칭해진 존재가 실은 아이들조차 두려워해서 도망가려 했고, 그래서 그들을 피해 숨어 들어가 그들이 찾지 못하게 되었음을 금방 알아차렸지. 나도 마찬가지였어. 그 후, 나는 '악령' 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된 거야.
이후, '악령' 은 오후에 숲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번에는 아이들이 먼저 달려들었어. 그 때, 내가 앞장섰던 것으로 기억 해. '악령' 은 도망치려 했지만 아이들에게 금방 따라잡혔고, 아이들은 각자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악령' 을 향해 던지고, 몽둥이로 '악령' 을 때리려 하면서 마을 쪽으로 그것을 끌어내려 했지. '악령' 은 나와 마주하면서 뭐라 말하고 있었고, 그 이후, 아이들에게 잡히면서도 뭐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 중 누구도 그 목소리의 의미를 알 수 없었어.
의기양양하게 '악령' 을 몰아서 마을 쪽으로 끌어내면서 세니아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은 전혀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은 이들이라고. 그리고 마을과 주변의 숲을 더렵힐 뿐인 잡귀들을 함께 물리치자고 청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단한 기대를 하고 돌아왔었네. 그래서, 마을에서는 어떻게 너를 맞이했어?"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이 그 때 일어났지." 이에 세니아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화답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돌아온 나를 맞이했던 것은 마을에 살고 있던 어떤 할머니의 호된 꾸짖음이었어. 어떻게 그 '사람' 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느냐고 호통을 치셨었지. 그 불호령과 같은 외침을 들으며, 나는 그 때, 너무도 놀랐어.
내가 너무도 놀랐던 것은 할머니의 불호령 같은 꾸지람 그 자체 때문이 아니야, 할머니께서 그를 '악령' 이 아닌, '시람' 혹은 '인간' 으로 칭하셨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나를 비롯한 아이들을 꾸짖으시려 하시는 할머니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나는 그 분께 차마 말도 안 된다고 외칠 수 없었고, 이후, 그의 그를 풀어달라는 외침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지.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그 일대를 떠났지만 나는 그에게서 물러나 그 자리를 떠나는 척하다가 발걸음을 멈춰 그 곳에서 할머니와 독대하는 '악령' 의 모습을 지켜보려 했었어.
할머니는 '악령' 을 마주하더니, 힘 없이 주저앉아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악령' 을 보며, 뭐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 때와 달리, 할머니가 '악령' 에게 건네는 목소리를 세니아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악령' 은 할머니를 보더니, 그를 향해 일어서려 했지만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 앉았으며, 그 모습을 보며 할머니께선 그의 앞에 앉아서 뭐라 중얼거리시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그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 같아 보였어.
그리고 '악령' 이 고개를 숙이고, 그와 함께 더욱 짙은 연기가 그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니, 할머니께선 그런 '악령' 의 두 손을 맞잡아 주기도 하셨어. 이후, '악령' 의 슬피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후, 할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악령' 은 다시 일어섰지. 그리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다시 마을 인근의 숲 속으로 사라져 갔어.
"....... 그것이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악령의 마지막 모습이야."
"그 악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어?"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었고, 얼굴을 천 같은 것으로 가리고 있었어. 그리고 검게 물든 제복에 검게 물든 바지 그리고 외투 등을 입고 있었지. 손에는 검게 물든 칼날 달린 총포 하나만 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여태껏 보아온 '악령' 들 중 대다수는 그들이었으며, 그런 외견을 한 이들이 '사신 기사' 혹은 '죽음의 기사' 라 칭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였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 총포는 원래 쇠로 만들어진 물건이었고, 그것으로 진지하게 타격하면 무서운 위력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미 삭을대로 삭은 물건이었고, 그 죽음의 기사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아예 부러져서 반토막이 난 채로 바닥에 떨어졌지.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바스라져 버렸고."
세니아는 그 이후 멀지 않은 때에 또 다시 '죽음의 기사' 와 마주했다. 마을에 살고 있던 할머니와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던 그 죽음의 기사와 비슷하게 검게 물든 옷을 입고 낡고 해진 검은 망토를 둘러쓴 이로 얼굴을 천으로 감싸고 있는 이였다. 손에는 몽둥이를 하나 들고 있었고, 그 몽둥이에는 거의 삭아 바스라지기 직전의 못 몇 개가 박혀 있었다.
예전에 본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어떤 세상에 살아있는 시체들이 갑자기 일어나는 재앙이 발생하고, 이에 못이 가득 박힌 몽둥이라든가, 쇠사슬이 박힌 금속관을 든 사람들이 나서서 그 괴물들의 습격에 대항해 나아간다는 이야기. 그 죽음의 기사가 들고 있던 몽둥이는 그 이야기에서 보았던 그 몽둥이와 무척 닮아 보였다.
이전의 그 악령이 사라진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직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야. 그 때에 나는 여행 중이었는데, 그 죽음의 기사가 나와 마주한 이후, 나는 그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있을 것 같아서 그와 함께 무나일 남쪽 해안으로 같이 가려 했었지. 그 죽음의 기사는 그런 나의 발걸음을 다른 말 없이 따라갔었어.
카리나가 만났던 죽음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내가 잠자리를 마련하고 잠들 때가 되면 숲 속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 나오지 않다가 새벽 즈음에 그가 잠에서 깨어 침구를 정리할 즈음에 천천히 내 앞으로 오곤 했었지.
그 죽음의 기사는 어린 세니아와 며칠 정도 여행을 이어갔었다고 했다. 그들이 두려워한다는 빛의 세상 위를 걷고 있었지만 다른 말 없이 자신을 계속 따르기만 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 죽음의 기사가 폭주했어!?"
"아니, 폭주했다고 해도, 그 때의 나 정도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어.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 간단하게 언급하지, 사건이 터졌다고 하겠어?"
이후, 카리나가 놀라면서 묻자, 세니아는 죽음의 기사가 폭주했을 가능성에 대해 바로 부정하는 답을 하였다.
길 위를 걷는 도중에 기계 병기 하나가 나와 죽음의 기사를 습격해 오기 시작했던 거야. 기계 병기는 처음에는 기능 정지된 채 서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죽음의 기사가 그 곁을 지나가려 할 무렵, 갑자기 눈을 붉게 번뜩이면서 나와 죽음의 기사를 향해 돌아섰지.
죽음의 기사는 나를 보더니, 그에게 뭐라 다급히 외치기 시작했어. 그 때, 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도망가라는 의미임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그 병기 앞에서는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 바로 눈을 번뜩이기 시작한 병기를 향해 두 손에서 기운을 모아 화염탄들을 발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병기에게 맞서려 했어.
어린 아이가 도망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달려든 탓일지도 모르겠어. 병기는 당황하는 듯이 움찔거리기만 하면서 내 마법 공격을 모조리 받아버렸고, 마지막 폭발과 함께 두부가 폭파되면서 쓰러지고 말았어. 나와 대결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야.
이후, 내가 거듭된 타격을 받고난 이후에 쓰러져서 팔과 다리만 겨우 움직이던 병기의 흉부에서 심장을 뜯어 내, 오른손에 든 채로 죽음의 기사에게 다가가자, 마치 피처럼 붉은 빛을 깜박이던 '심장' 을 보더니, 죽음의 기사는 다급히 그 '심장' 을 그의 오른손에서 채갔어.
이후, 죽음의 기사가 보인 행동을 보며, 세니아는 너무도 놀랐다고 말했다. 피처럼 붉게 빛나던 심장을 두 손으로 안고 그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세니아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바로 왜 그러느냐고 외쳤고, 그제서야 죽음의 기사는 그에게 그 이유를 답으로써 말해 주었다고 했다.
"....... 그 심장에 괴물들이 죽인 가족의 피가 있다고 했어."
그러자 세나가 놀라면서 세니아에게 정말 그 기계 심장에 피가 들어 있었느냐고 물었고, 이에 세니아는 그러할 리 없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피는 없었을 것이라 답했다. 그리고 죽음의 기사는 단순히 장치가 발하는 빛의 색깔을 보면서 그 기계 심장에 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 아닐까, 그 기계 녀석들이 플라즈마 발전의 재료로 활용했던 것 중에 그런 것도 있음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세나를 보면서 그 역시 이전에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세나는 "그렇지요." 라고 화답했고, 세니아 역시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이어 말했다. 이후, 카리나는 세니아에게 그 이후, 그 죽음의 기사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고, 이에 세니아가 이렇게 화답했다.
"그 사건이 아마 죽음의 기사와 같이 있었던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일 거야."
병기를 처치하고 나서는 나는 그 죽음의 기사를 해안가 쪽으로 피신시켰어. 적어도 해안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계 병기에 의해 그 죽음의 기사가 습격당할 경우는 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지. 다행히도 상처는 없었던 것 같아.
문제는 그 이후로 갑자기 그 기사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에 있었어.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서 검은 연기가 더욱 격렬히 피어오르는데,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의 몸에 불이라도 붙은 줄 알고, 다급히 다가가기도 했을 정도야. 죽음의 기사는 빛에 닿으면 몸이 급격히 사멸해 간다는 속설을 그 때에는 이미 들을만큼 많이 들어서 다급히 그늘진 곳으로 그를 피신시키려 했지. 때 마침 해안 한 곳에 반 즈음 무너진 폐가가 하나 있어서 그 곳에 있으면 괜찮을 거라 했었어.
하지만 기사는 들어가려 하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지, 이미 자신에게 때가 온 것 같다고. 그리고 그런 어두운 곳에 있는다고 해서 이제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내게 이렇게 부탁을 했어. 동쪽 너머의 바닷가로 가 달라는 것이었지. 그의 부탁에 폐가를 향하려 했던 나는 폐가를 대신해 그 반대편인 동쪽 방향으로 걸어 나아갔어. 그 너머에는 물에 잠기다 만 건물의 흔적들이 몇 보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
그렇게 그와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난 고문명의 흔적들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죽음의 기사는 결국 기운을 잃고 쓰러졌어. 이전에도 검은 연기가 격렬히 피어오르고 있어서 위험의 징조가 보였던지라 어느 정도 그것에 대해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운 일이 되었을 줄이야.
그를 치유할 방법은 없고, 그 역시 치료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여행은 포기하고 그 죽음의 기사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러 주기로 했어. 아무리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놓아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그 기사는 자신을 그냥 홀로 죽어가게 놓아두라고 했지만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어.
"그 죽음의 기사는 예전에 뭐하던 사람이었대?"
".......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 카리나의 물음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그런 연유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나를 보며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해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내가 깜박 졸기 직전, 해가 지려 할 즈음에 몸을 일으켜서 앉더니, 해안가의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 기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어.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괴물'에게 희생당했고, 그들의 피가 '괴물' 의 몸에 흐르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들의 피라도 되돌려 받으려고 '괴물' 에게 저항해 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그래서 바스라지는 몸을 이끌고 그저 절망 속에서 떠돌기만 하다가 내가 '괴물' 과의 싸움에서 그것을 파괴하는 광경을 보면서 희망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몸 상태가 나빠졌다고 했어.
그리고 기사는 이전에 내가 '괴물' 을 없애준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고마웠다고 했었어, 사실 '괴물' 은 내가 아니라 자신을 노렸고, 그래서 자신이 그 곁을 지나치려 할 즈음에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공격하려고 했었대. 그러면서 그는 고마운 일이 있으면 답례가 있어야 하겠지만, 자신에게는 답례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도 미안하다고 했어. 이후, 죽음의 기사는 이제 자신이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괴물' 들이 사라질 그 날에 대한 희망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내가 그 죽음의 기사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이야.
"그리고 내가 한밤중에 깨어났을 때, 기사의 모습은 이미 없었어.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소멸까지는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잠들고 있던 사이에 소멸했거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나간 것 같아."
"그 이후로 그 죽음의 기사를 다시 보지는 못했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후, 세니아는 어딘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죽음의 기사를 만난 아이들은 무인 혹은 성스러운 기사가 될 운명을 타고나게 된다는 이야기. 내가 이전에 소리로부터 들은 그 이야기로, 소리 역시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던 만큼, 항간에서 떠도는 속설을 소리와 마찬가지로 세니아 역시 우연한 계기로 들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르사나, 너도 그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은데...... 혹시 소리라는 사람이 알려준 거야?"
"응." 이후, 카리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속설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속설을 선뜻 믿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이어 말했다.
이렇게 잠시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예나는 이제 비행선을 움직여 일행을 따라가겠음을 밝혔다. 원래는 셀린, 에오르 자매를 데려가기 전에 루이즈는 물론, 잔느 공주를 비행선에 태우려 했지만 잔느 공주는 일행의 곁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고 해서 그는 계속 일행에 있도록 했으며, 그와 더불어 루이즈 역시 잔느 공주를 따라가겠다고 하면서 비행선에는 예나 혼자 타게 되었다.
이후, 자리를 정리하고 비행선을 가동할 준비를 하려 하면서 예나는 자신은 에오르 자매 그리고 셀린을 데리러 가기 위해 먼저 가겠음을 알렸다, 그들은 이미 하미르 동부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 하면서. 그러면서 그 무렵에 에오르 자매가 리 셀린도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음을 밝히고서, 조만간 그와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떠나기 전, 예나는 하미르 동부에서 만나자고 청하고서 공중에서도 다수의 병기가 몰려올 텐데, 에오르 자매 등의 글라이더들과 함께 그 무리와의 싸움에 직접 나서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 직접 맞서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세니아가 비행선에 포신을 숨겼을 법한 부분이 있으며, 지원 사격 정도는 할 수 있어 보인다고 말하고서, 그를 두고 예나가 비행선에게 에오르 자매의 모함 역할을 시키려 할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하기는 했다.
"우리도 슬슬 동쪽 방향으로 출발해야지." 이후, 카리나가 앞장서려 하면서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가자고 청했다. 이후, 내가 카리나를 뒤를 따라 나서기 시작하고, 세니아가 그런 나를 따라 나서면서 일대에 모여있던 이들 모두 하나둘씩 풀밭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하미르 동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루이즈가 들어오면서 일행은 이제 7 명-나, 카리나, 세니아, 세나, 나에티아나, 잔느 공주, 루이즈-
가브릴리아와 그 주변 일대를 오간 전적이 많았던 카리나가 앞장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하미르 동부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고 했다. 동부 중심지까지는 대략 2 킬로 메테르 정도 거리를 둔 곳이라 했으니, 반 시간 정도만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가면 동부 구역에 온전히 진입할 수 있었던 것.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카리나가 줄곧 앞장섰었잖아.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랬었지." 내가 건네는 말에 카리나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화답했다. 그리고서 자신과 세니아가 소르나 그리고 레테사의 요청을 먼저 받아 천문대로 들어왔었다고 말하고서 별을 관측하는 일에서는 자신은 소르나, 레테사의 보조 역할만 했었지만 다른 일은 자신이 늘 앞장서서 했었음을 밝혔다.
"주 업무에는 소르나와 레테사가, 그리고 이외의 일, 특히 힘 쓰는 일에는 나와 세니아가 주역으로 나서는 것으로 역할이 분담되었었어."
"그러다가 세나가 들어왔었지?" 이후, 세니아가 카리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그는 "그랬었지." 라고 화답했다. 그리고서 처음에는 천체 관측, 집안 일, 문서 정리, 더 나아가 바깥에서의 이런저런 일, 못하는 것이 없고, 또 전투 능력도 우수했던지라 내심 불안했었음을 밝혔다. 하지만 세나는 자기 자신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았고, 소르나, 레테사, 카리나, 세니아를 선배로 깍듯이 모셨기에 별 탈이 없었음을 밝혔다.
"웬지...... 예전에도 그와 같은 일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
"그랬었지." 이후, 세니아가 건네는 말에 카리나가 동감의 뜻을 드러내는 화답을 했다. 이후, 그는 당사자인 세나에게 누군가를 주인으로 모시거나 한 적이 있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런 일이 천성에 맞아서 그런 것이었을 뿐이라, 그 때, 그렇게 제가 대답드렸었지요."
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서로 친구가 된 것은 천사들인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까지 들어온 이후였다. 이들은 세나와 마찬가지로 먼저 온 이들을 선배로서 대우했으나, '선배' 들은 천사인 그들을 쉽게 후배로 대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결국 레테사가 서로 친구처럼 지내자고 정리해서 그렇게 됐다고 레테사 본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아르사나가 가장 늦게 들어온 것이었잖아."
"그랬었잖아. 근방의 나름 유명한 괴물 사냥꾼이라고 소르나가 데려 왔었지."
세니아의 나에 대한 평가는 대략 이러했다 : 이미 천문대의 정원은 넘칠대로 넘쳤고, 소르나가 무리해서 들여온 사람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여타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노력했던 그런 사람.
"이전에도 험한 데에서 구르고 다녔을 것 같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하긴 했었어. 궂은 일이나 험난한 전투에 앞장서 나서려 했던 것은 겨우겨우 찾아온 안정적인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던 것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 그런 일이 그에게는 익숙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 그랬었지."
이후, 그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말투도 은근 험한 편이어서 학업과는 다소 담을 쌓고 살아온 녀석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가 다녔던 학교라든가, 뜻밖의 곳에서 직업 체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었어. 라테나 어가 공용어인 수도원에서 직업 체험을 했었다고 했지. 게다가 나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었고. 거기서 소싯적에는 소위 '멋쟁이 학생' 으로 통한 적이 있었다고 했더라. 소르나가 그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세니아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왜 하지 않았어?"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그런 것을 내세울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친구들 자체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정리한 건에 대해서는 졸업 후에 자주 연락도 못할 처지의 사람들이면 미리 정리해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랬음을 밝혔다. 실제로 내가 정리하지 않은 마지막 친구인 아잘리는 같은 기숙사에 살았고, 내가 자주 다니는 곳에 거주하는 만큼, 자주 만날 수 있었기에 정리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원래는 아잘리와 함께 새 집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그랬었구나." 그러자 세니아는 다시 한 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새 알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나는 학생 시절 이후로는 괴물 사냥꾼 일을 하고 다녔는데, 그 험난한 일을 이어가게 될 사람을 멋 모르고 따라갔다가 그 사람의 뒷바라지를 하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불러오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괴물 사냥꾼 일을 하면 같이 지내는 사람 고르기도 쉽지 않을 거야, 동반자도 자주 큰 일을 겪을 테니까. 그 친구는 그런 일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그로부터 자신은 그러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고 답했다.
"가브릴리아로 가면 우선 프레미를 만나러 가 볼 거지?"
"그렇지." 이후, 한 동안 서로 말 없이 길을 걷다가 내가 앞장서 가던 카리나에게 묻자, 카리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프라에미엘에 대해 그는 정말로 간만에 만나보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이에 카리나는 그렇다고 화답한 이후에 프라에미엘 역시 일행을 반갑게 맞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브로아로 와 주면 좋기는 하겠지만."
"가브릴리스 등에서 일이 있으면 못 올 수도 있기는 해."
이후, 세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가 바로 답했다. 이후, 카리나는 프라에미엘에 대해 가브릴리스 등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브로아에 갔을 때, 아니면 적어도 가브릴리스에서 만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고 보니, 세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거야?"
한편, 세나는 나의 왼편 곁에서 말 없이 카리나가 앞장서는 일행의 발걸음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나를 부르는 카리나의 목소리에 나도 세나를 향해 잠시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그 동안 세나는 작은 그림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러자 세나는 바로 당황하면서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화답했다. 그러더니, 그는 시장에서 우연히 얻어온 그림을 보고 있었을 뿐이라고 다급히 말했다. 그 어조에서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림을 빼앗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억지로 그림을 내놓게 하려고 해도, 세나의 팔 힘이 보통이 아니라서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행여 무리했다가는 애꿎은 그림이나 찢어질 위험이 더 컸다-.
"지금은 안 되더라도 나중에 한 번 정도는 보여 줘." 이후, 내가 세나에게 요청을 했다. 그 그림이 어쩌면 세나는 물론,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물건 같아 보였음이 그 이유였다. 이후, 나는 바로 세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 알겠어요." 그 질문에 세나는 동의하고 있음을 대답으로써 드러내었다. 그 그림을 보여줄 의향은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세나에게 그 그림을 당장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고, 그에 이어, 남들 앞에서 함부로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서 그러느냐고 이어 물었다.
세나는 나의 질문에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후자 쪽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서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보여줄 만한 것은 아니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서 원한다면 개인적으로 불러서 보여주겠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개인만의 영역이 있기 마련이지."
그러자 세니아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서 카리나에게 궁금하더라도 일단은 참을 것을 말하고서, 언젠가는 세나가 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알게 될 때가 올 수도 있다고 이어 말했다. 그 무렵, 나에티아나가 세나에게 다가가서는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했다.
"그건 그렇고, 세나 님, 세나 님."
이후, 세나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나에티아나는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했다, 그가 소환할 수 있는 환수 4 종은 어떻게 데려오게 되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리고서 세나가 4 종의 환수를 소환해서 자신의 뜻대로 다루고 있음을 이미 여러 차례 지켜보고, 관련된 이야기도 들어보았지만 유난히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있음을 밝히고서, 그것이 그 환수들을 어떻게 소환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고 이어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4 종의 환수들을 언제부터 소환할 수 있게 되었느냐는 것이지요?"
"예." 이에 나에티아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세나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언젠가는 그것에 관한 질문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그것에 관해 질문을 하지 않아서 모든 이들이 뭔가 나름의 사연이 있겠거니, 하는 정도로 넘어간 줄로만 알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한 번 정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원소의 힘을 가진 환수들과의 계약. 저도 예전에 여러 이야기를 통해 그에 관해 본 적이 있었어요."
이후, 세나는 다시 눈을 뜨고서 '원소 계약 (Element adbi Spons ; Pactio cum Elemento)' 을 통해 환수들을 데려올 수 있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저도 그런 이야기 속에서 묘사된 바와 같은 전형적인 계약의 과정을 거쳐가며 영을 소환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물론 여러 이야기를 보아서 낯선 일들은 없으리라 여기었던 내 예상 밖의 일들이 여럿 있기는 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동안 가지지 못했던 힘을 가지는 것에 대한 감탄을 하기도 했었고, 그랬었어요."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한 미소를 띠는 세나의 모습을 나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세나가 진심 어린 기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후, 나에티아나는 그런 세나에게 바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환수의 일부가 갑옷이나 날개가 되는 것도 원래 환수가 가진 힘의 일종인가요?"
"그건 아냐." 그러자 내가 바로 답했다. 소르나, 레테사 등으로부터 이미 들은 바 있는 이야기로 원래 세나의 환수들에는 그런 능력이 없었으며, 세나가 환수들을 이용하는 그 능력은 세나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고 했다.
"세나가 스스로 만들어 낸 능력은 아니고, 소환사들이 갖출 수 있는 소양들 중 하나이기는 했어. 세나처럼 환수를 자신의 신체 일부로 활용한 사례야 이전부터 많았고."
이후, 나는 나에티아나에게 세나는 그 환수들에 대해 '4 대 원소의 환수' 들로서 자신은 '원소 계약' 을 통해 그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있을 뿐, 다른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음을 밝혔다. 딱히 근거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환수들의 외형-기사, 물뱀, 불꽃 그리고 새- 그리고 마치 전생에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 같은 세나와 환수들의 교감에 대해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확 와 닿고 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 알 방법은 없었는데, 무엇보다도 세나가 그것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부터 모호한 발언조차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 그 갑주 환수가 세나를 보호하는데, 마치 부모가 자식을 감싸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어."
그러자 카리나도 뭔가 있어 보인다는 나의 말에 대한 동감을 드러냈다. 환수들이 마치 부모나 가족이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확연히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왜 그러한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고.
레테사, 소르나라면 뭔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들 모두 일행 곁에는 없었기에,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하거나 할 수 있는 이는 없는 듯했다. 일행 중에서 가장 생각이 깊은 이가 세나였는데, 그부터 아는 것이 없으니. 다만, 세니아가 나를 보더니, 웬지 기억의 사당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뭔가 알 수 있는 바가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기는 했다.
곧 시가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이 시내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시내의 집들은 하미르 서부 거리의 집들보다 많이 낡아 보였지만 형형색색으로 칠해져 있었기에 그렇게 낡은 분위기를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다. 시가지의 분위기는 서부에 비하면 고요했지만 한편으로는 차분하고 평화로웠다. 샤하르에 있다가 슈라일로 왔을 때의 느낌이 대략 이것에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아르사나가 어렸을 때, 이런 분위기의 마을에서 살았다고 했었지?"
"비슷하기는 해." 마을에 먼저 진입하면서 카리나가 뒤따라 가던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카리나에게 하미르 동부에서는 가 볼 만한 곳은 아무래도 항구 쪽에 많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항구 쪽으로 가자고 청했다.
"좋아." 그러자 카리나는 환하게 웃으며 좋다고 답하고서 자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항구 쪽으로 가기로 했음을 밝힌 이후에 자신도 이전에 하미르 동부에 있으려면 항구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라는 충고를 들어본 것 같다는 말을 나에게 건네었었다.
"예나 씨께서도 이미 이 곳에 이르셨겠지? 그렇다면 조만간 다시 볼 수 있겠다. 그렇지 않아?"
"그것이야, 그 분의 마음가는 바에 의한 일이겠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그렇게 답했다. 그러는 동안 세나가 카리나의 바로 뒤까지 따라가면서 나와 카리나에게 항구에 이르면 일단 잠시 쉬기로 하자고 청했고, 이에 나는 그 청에 바로 응했다. 잠시 경치 구경을 하거나 아니면 항구 주변의 흥미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편안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행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시간대로 비교적 한적한 시간대였다. 바다에서 작업을 마치고 인부들이 돌아오고, 학생들이 수업을 마칠 때가 되면 다소 분주해지겠지만 그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카리나, 세니아는 항구 인근의 해변으로 가기로 했고, 세나는 나에티아나, 루이즈와 함께 시내 쪽으로 갔다. 카리나, 세니아는 해변가에서 운동을 하려고 했을 것이고, 세나는 그 두 사람을 데리고 시내 구경을 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 곁에는 잔느 공주만 남게 되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괴물에 의해 발생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항구의 선착장과 시장 일대를 돌아다니며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잔느 공주만을 대동한 채로 나는 우선 선착장으로 가서 그 곳에서 일을 한다는 사람을 만나보고, 그로부터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다.
하미르 동부의 선착장에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하미르 동부 쪽은 지브로아 근교의 바다와는 다소 거리가 있고, 하미르 동부의 어부들은 대개 근교에서 고기잡이를 하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다만, 더 먼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이들의 경우에는 괴물의 출현 이후로 지브로아 근교의 바다에서 격랑이 자주 일어나면서 그 일대로의 진입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에 지브로아 일대의 해역을 우회해 다른 해역으로 가도록 했다는 모양.
멀리 돌아가며 고기잡이 작업을 하면서 어선 운용을 위한 연료 소모가 늘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런 문제는 사실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고 한다. 문제는 괴물의 출현 이후로 그 여파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으며, 해파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구역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크나큰 변동이 없어서 몇몇 사람들의 우려 정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괴물의 영향을 받는 해역이 넓어지거나 하미르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기에 그것이 고기잡이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작지 않은 불안 요소가 되었다는 것.
"괴물의 영향으로 파고가 높아지고 격랑이 일어나기 시작한 영역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직까지는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지만......."
"언제까지 그것을 사소한 걱정거리로 놓아둘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눈앞에 닥쳐오는 재난이 될 가능성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내가 건네는 말에 어부가 답했다. 나는 아직까지는 깊이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미르 동부 그리고 지브로아 해역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가 나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학교이든, 다른 곳에서든 옛 인류가 맞이한 숱한 재난 역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사례를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고, 괴물들이 일으키는 큰 일들 중에서도 처음에는 사소한 사건들이 접수되는 것으로 시작된 사례들을 숱하게 지켜봐 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일이 무사히 평화로워질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그 어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일이 잘 되어 다시 고기잡이가 자유롭게 잘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그 때, 옆에서 어떤 어부가 "그러할 리 있겠어?"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적이 깨어나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데, 일상이 돌아오겠냐? 괴물에게 봐 달라고 싹싹 비는 짓이나 다를 바 없잖아!"
"난들 어떡하겠어!?" 이에 처음으로 나와 대화하던 어부가 반박했다. 그리고 자신도 괴물이 하는 짓이 마땅치 않고 그래서 괴물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괴물을 없애버릴 만한 용사가 세상에 있지도 않을 테니, 얌전히 물러나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 이어 외치고 있었다.
이후에도 두 어부들은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지만 이를 말리거나 할 수는 없어서 일단 조용히 물러나 주기로 했다. 어설프게 말리려 했다가 오히려 싸움에 말려들 수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이들의 논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 그 이상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싸움을 말리거나 하시지는 못하시나 봐요."
"그것은 제 영역이 아니라서요." 이후, 두 사람 곁에서 물러나는 나를 따르며 잔느 공주가 묻자, 내가 씁쓸하게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사람은 뭐든 잘 할 수 없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어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어떤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폭풍우를 일으키는 괴물을 사냥하러 간다고 말해 보았다. 그러자 그 상인은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그런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했다.
"괴물 사냥? 그 괴물을 사냥하러 간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러자 내가 답했다. 이에 그 사람은 혼자서 가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혼자는 아니고, 몇 명이서 같이 간다고 이어 말했다. 그러자 상인은 나를 보더니, 아무리 그래도 폭풍우를 일으키는 무서운 존재를 몇 명만 데리고 상대하러 가는 것은 용감한 행동인 것 같다고 말하고서, 다만, 주의할 사항이 있음을 알린 후에 그것에 대해 언급을 하기 시작했다.
"괴물은 자신이 지나가는 곳마다 폭풍우와 격랑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비바람으로 파괴한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도 결국 폭풍의 화신, 여느 바람이 그러하듯, 잠잠해질 때가 있기 마련이지요. 괴물을 노리려 하든, 그 때를 노리시면 될 거예요."
그러면서 그 상인은 나에게 괴물은 잠잠해질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고 말하고서, 그 모습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그렇다면 괴물은 언제 잠잠해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후, 내가 그렇게 물음을 건네 보았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서까지는 알 수 없다고 답을 할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어지간한 마법사들도 그것에 대한 예측은 어려워할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괴물이 잠잠해질 때가 있나 봐요." 그 상인과의 대화를 마칠 무렵, 나의 왼편에 있던 잔느 공주가 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런 때가 있기는 하겠지만 일정한 규칙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서 그 곳으로 가려면 며칠 이상은 대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서 그것에 대해서는 일행이 모두 모이면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거리를 조금 더 돌아다녀보자고 잔느 공주에게 청하고서는 남쪽의 내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시장의 남쪽으로는 상가 구역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이전에 여러 차례 들은 바대로, 하미르의 본 구역에 해당되는 서부 구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미르 동부 지대, 하야라 (Khayara) 지대라고도 하고, 예술가들의 거리라 칭해지기도 하는 곳으로 새로 지은, 현 시대의 양식대로 지어진 건물들이 대다수인 서부 구역과 달리 옛 문명이 남긴 건물들을 현 시대에 가깝게 개조한 건물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었으며, 폐허만 남은 건물들의 칙칙함을 해소하기 위해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건물의 외벽, 담장에 벽화가 그려진 건물들도 다수 보였다.
"공주님, 이런 벽화 거리를 구경해 보신 적 있으세요?"
"직접 구경해 본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살던 시절에도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러자 잔느 공주는 자신이 살던 문명 시대에도 이런 벽화 거리가 있었음을 밝혔다. 그는 주로 언덕 위 마을이나 시골 마을의 거리를 벽화로 꾸미는 경우가 많았음을 밝혔다. 자신이 들은 바로는 인적이 드문 시골의 한산함과 쓸쓸함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이렇게 벽화를 그려 집과 담을 꾸미는 경우가 몇 있었다는 모양. 도시에는 이런 벽화 거리가 많지 않았다고 했으니, 이에 대해 내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는 온갖 사람들이 오가면서 벽화가 훼손될 우려도 컸고, 또 거주민들간의 이해 관계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벽화 거리 조성이 어려웠을 것 같다고 말하자, 잔느 공주는 그런 나에게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런 것이지요." 라고 답을 하였다.
"아무튼, 이런 곳에 살 수 있으면 로맨틱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지 않아요?"
이후, 나는 서쪽의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우측 곁에서 동행하던 잔느 공주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빈 말이 아니라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소박한 거리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아르사나 님께서는 어때요?"
"저는 뭐......" 이후, 나를 향한 물음에 나는 이렇게 화답을 했다. 나도 바닷가의 풍경을 보며, 바닷가를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나는 고향인 샤하르에서 친구인 아잘리와 함께 살겠다고 결심한 바 있어서 그 쪽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아잘리나 내 생각이 변하면 모르겠지만, 고향인 샤하르의 풍경을 놓아두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 곳에서의 삶을 그렇게까지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한 것.
이후, 나는 어느 작은 가게 앞에 이르렀다가 그 정문 앞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가게 주인과 마주했고, 그가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못 보던 사람이라고 하면서 혹시 샤하르에서 온 사람 아니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예, 맞아요, 샤하르에서 왔어요."
푸른 색을 띠는 머리카락의 머리 뒤쪽 부분을 묶어 내린 젊은 여성으로 하얀 옷과 검은 긴 치마 그리고 앞치마 차림을 한 여성이었다. 이전에 나와 아잘리가 함께 살던 어느 기숙사의 관리인이었던 여성과 은근 닮은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군요. 범상치 않은 인상인 것 같은데, 여기로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 바다 너머, 지브로아 근교에 자리잡았다는 괴물을 격퇴하기 위해 왔어요. 그 괴물이 여기 있는 사람들의 어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괴물을 격퇴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요."
여성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러자 여성은 "그렇군요." 라는 답을 하고서 괴물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이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 이후, 여성은 나에게 괴물의 태동으로 인해 하미르 동부, 하야라 지대도 문제지만, 지브로아가 가장 큰 문제에 직면해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이전에도 괴물이 출몰했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지브로아로 나선 적이 있었대요. 괴물이 출몰하면서 지브로아 해역에서의 어업이 중단된 것은 물론, 지브로아 일대가 폐쇄되었고, 그로 인해 생업이 어려워진 지브로아 사람들이 용병들에게 괴물 격퇴를 의뢰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 때, 요청에 응한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무모해 보인다고 생각했었더랬죠. 다행스러운 것은 그 사람이 지브로아로 간다면서 무작정 배를 타고 떠난 이후로 정말로 괴물은 사라졌고, 이후에 지브로아 봉쇄도 바로 풀렸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나요?"
"...... 잘 모르겠네요." 그러자 여성은 바로 모르겠다고 답했다. 말투에서 무언가 숨기는 듯한 느낌이 있어 보였지만,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괘념치 않기로 했다. 그 때, 잔느 공주가 그런 나를 보더니, 바로 나에게 뭔가 걱정이 되는 듯한 목소리로 물음을 건네려 했다.
"아르사나 님, 왜 그러세요? 뭔가 의심하시는 것이라도?"
"아니요, 아무 것도......" 그러자 나는 바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다행히도 여성은 이러한 나의 심경 표현을 눈치채지는 못한 듯해 보였다. 아무튼, 그 이후, 여성은 이번에도 지브로아가 봉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고서 이후에도 괴물은 격퇴되겠지만, 이런 일이 앞으로 언제 또 다시 반복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전에 지브로아에서 괴물을 격퇴했다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분명 용병이나 괴물 사냥꾼을 자처한 사람이었을 것 같기는 하네요."
이후, 잔느 공주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괴물을 격퇴한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괴물의 존재가 잊혀지려 할 즈음에 또 나타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그에게 그 생각을 말한 다음에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괴물의 존재를 항상 잊지 않도록 하는 편이 당장에는 더 좋지 않을까요?"
"그렇기야 하겠지만...... 언제까지 이 일대 사람들이 괴물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에 내가 답했다. 이에 잔느 공주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요?" 라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당장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기는 하지만,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할 것이라 답했다. 이에 잔느 공주는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금방 감정이 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광장에 이르렀을 때, 나는 세나가 나에티아나, 루이즈와 함께 광장 중앙에 머무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잔느 공주가 루이즈와 만나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세나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이에 나는 혼자서 잠시 주변 일대를 둘러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광장 서쪽에 자리잡은 찻집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나는 그 찻집의 근처 바깥에 있는 탁상에 앉은 낯설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예나의 비행선 위에 있던 아이, 소리(Sori) 였다.
그의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미처 나를 눈치채지 못한 듯해서 그를 못 본 척 지나가려 했지만, 그 때, 그런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서 뭐하는 거야?" 라는 목소리였다. 이후, 내가 놀라면서 그를 향해 다가가자, 그는 어느새 나의 바로 뒤까지 다가와서는 방긋 웃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또 만나게 됐네." 그러더니, 소리는 찻집의 담장 근처에 기대어 서면서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했다.
"괴물을 영원히 없애버릴 수 있다고 큰 소리 쳤더라?" 그리고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리면서 장담했었느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거기까지는 딱히 생각하지 않고 답했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그 방법은 어떻게든 발견될 것이라 믿은 감도 있다. 그런 대답을 하고서 나는 나를 지켜보는 채, 가만히 서 있던 소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랬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하다니, 너답지 않아." 그러자 소리는 바로 나에게 이렇게 화답을 했다. 하지만 곧 그는 활짝 웃으면서 다행히도 괴물을 영원히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는 있다고 말했다. 이에 내가 괴물을 영원히 잠재우는 방법이 어떻게 나에게 있느냐고 물었지만, 소리는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네가 동료로 데리고 있는 사람들. 그들 중에 답이 있어. 그들이 만났던 죽음의 기사의 기억을 떠올려 봐. 해답의 열쇠는 거기에 있으니까.'
라는 말을 건네고서 다시 찻집의 왼편-남쪽 방향-으로 뛰어갔다. 이후, 내가 그 방향을 향해 돌아서 보았지만, 소리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이후, 나는 곧바로 세나 그리고 잔느 공주와 루이즈 그리고 나에티아나가 모인 곳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다가갈 무렵, 세나가 나를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르사나 씨, 방금 전에 뭐하고 계셨어요?"
"잠깐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러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세나에게 우연히 괴물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음을 알렸다. 그러자 세나가 눈을 크게 뜨면서 곧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 곁에 있는 이들, 그들이 만났던 죽음의 기사에 관한 기억, 그 기억에 답이 있다고 했었어."
"죽음의 기사라 하면 카리나 씨, 그리고 세니아 씨가 만났던 그들을 의미하겠지요?"
"맞아." 그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그 죽음의 기사들은 옛 문명 시대의 인간들로서, 과거에는 특정한 어떤 곳에서 특정한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세니아가 만났던 이의 원래 직업은 알 수 없지만, 카리나 쪽은 확실했다. 이전에도 들은 이야기에 언급되었던 어느 도시를 사수하던 군인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차이가 있었지만 두 죽음의 기사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만났던 이들, 어린 카리나 혹은 세니아를 생전의 자신과 인연이 있었던 존재로 간주했다는 것.
"죽음의 기사가 가진 기억에 답이 있다면...... 괴물은 본래는 그들과 관련이 있는 어떤 존재였다는 것이겠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세나가 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러하겠지." 라고 답했다. 그리고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괴물의 체내에 죽음의 기사와 관련이 있을 어떤 이 혹은 이들의 영혼이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괴물은 옛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영혼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에 세나가 조금 더 밝아진 목소리로 물으려 하였다. 괴물의 몸에 갇힌 영혼 혹은 영혼들에 닿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을 통해 괴물을 금방 약화시키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의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괴물이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괴물과의 싸움이 사실상 끝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문제다. 그 본질이 선량한 인간이었다 한들, 오랜 세월 동안 원념에 감싸여 있었을 것이다. 그 원념이 실체화된 악령으로서 괴물이 되고, 괴물이 오랫동안 삶을 이어가면서 그 본질은 괴물의 몸 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나를 비롯한 이들의 의지가 바로 닿지 않을 것이다. 그 의지에 닿을 때까지는 격렬한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세나의 말에 내가 화답했다.
그러는 동안 나를 비롯한 5 명의 발걸음은 광장의 한 가운데를 거쳐 광장의 해변과 맞닿은 지점에 이르고 있었다. 해변 바로 앞에는 돌 계단이 놓여 있어서 계단을 통해 모래밭으로 내려갈 수 있었는데, 일행은 그 계단의 우측 가장자리 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왼편에 루이즈와 세나, 오른편에 나에티아나와 잔느 공주가 앉았다.
"그 수많은 과정이란, 결국 싸움이겠지요?"
"그렇지." 나에티아나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상대는 넓은 일대에 폭풍우를 내릴 정도로 거대하고 강한 괴물인 만큼, 크나큰 시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서 그 시련을 거치며 괴물의 몸 속으로 파고들 수 있어야 그 영혼에 닿을 것이라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이어 말하기도 했다.
"...... 그렇다고 해도, 괴물을 물리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에는 하미시의 유적지에서 케레브 족 사람들을 잡아먹었다는 괴물 역시 파괴할 수 있었잖아요. 이제는 그 정도는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자 세나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고, 그러한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행이라고 말하고서,
"지난 번의 그 괴물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 것 같아." 라고 이어 그에게 말했다.
이후, 해변가를 돌아다니던 나에티아나가 해변에서 공을 가져와서는 같이 공놀이라도 하자고 청하고, 이에 세나가 좋다고 응한 다음에 둘이서 해변에서 배구를 개시하고, 그것을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가만히 구경하기 시작하면서 그들만의 배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한 동안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카리나, 세니아는 뭐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 해변의 다른 곳을 돌아보려 하였고, 그들이 배구 경기를 하는 그 동쪽 한 곳에 해변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로 카리나, 세니아가 나란히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리나, 세니아, 거기서 뭐해?"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들의 왼편 방향으로 다가가려 하면서 물었다. 그 묻는 목소리에 왼편에 서 있던 카리나가 나를 보더니, 바다를 바라보며 그냥 한 번 서 있었음을 밝혔다. 그 후, 세니아가 괴물에 대해 뭔가 들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일행이 한 곳에 모이는 그 때에 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꽤 중요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그 때 꼭 들려줘야 해."
라고 말을 건네었다. 이후, 세니아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음을 밝히고서, 나에게 카리나가 자신에게 있어서 낯설지 않은 누군가를 보았음을 말한 적이 있음을 알렸다, 카리나가 하미르에서 이전에 보았던 노인을 해변의 육지 쪽에 있는 상가에 있는 찻집에서 보았음을 자신에게 말한 바 있음을 알렸다는 것이었다.
하미르에서 내가 만난 결코 낯설지 않은 노인이라면 '알프레드 노인' 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그 찻집으로 곧바로 가 보겠다고 말하면서 육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카리나가 세니아를 이끌고 같이 가려 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그 할아버지께 들으려 하는 것 같아서 말야."
그들이 그렇게 나와 동행하겠음을 밝히자, 나는 그런 그들의 제안에 바로 응하고서 그들을 이끌고 해변 근처에 있는 찻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 무렵, 나의 우측 근처에 있던 세니아가 그 노인이 나에게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러할 리 없다고 답하고서 나와 카리나의 모습을 보고, 요청을 하면 뭔가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통나무집 같은 외관과 달리 세련된 듯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찻집, 하미르 동부, 하야라 지구의 여느 건물들처럼 고대 문명의 잔해를 보기 좋게 개수한 다음에 겉 부분에 통나무들을 붙여 만든 집이 하야라 해변에 있던 찻집의 정체였다. 남측의 벽면에 붙은 소파의 가장자리 부분 앞에 있는 소파가 알프레드 노인이 앉은 곳으로 나와 카리나, 세니아는 그 앞에 의자들을 모아서 앉았다. 카리나가 우측에 , 나는 가운데 그리고 세니아는 좌측에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재미난 할아버지이셔. 하미르의 성당 내 예배당에서 홀로 몰래 야한 책 보시다가......"
"그 이야기 좀 하지 말게!" 이후, 카리나가 세니아에게 그가 예배당에 있었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해 키득거리며 언급했고, 알프레도 노인이 이에 크게 당황하면서 하지 말라고 외치자, 카리나는 그제서야 이야기를 멈추었다. 이후, 나는 알프레드 노인에게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노인은 글라이더를 타고 지브로아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고 답했다. 최근에 지브로아 해역 인근에 괴물이 출몰한 여파로 강풍이 거세게 불어오니, 조심하라는 당부가 있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지브로아 쪽으로 가 보려 했었다고 말했다.
"그 때에는 바람이 잠잠해서 별 것 없을 줄만 알았었지, 뭐람. 그런데 막상 지브로아 인근에 가려고 하니, 강풍이 매섭게 불어닥쳤고, 바람은 글라이더를 크게 흔들었지. 일대가 고요해 보여서 일단 도전해 보겠다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겉으로 조용해 보인다고 그것이 평온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잊었다가 큰 일을 당할 뻔했었지. 그 때, 운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 즈음, 다른 세상에 가 있었을 것이야."
"그래도 크게 다치거나 하시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이에 세니아가 그에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하자, 알프레드 노인은 시원스럽게 한 번 웃더니, 세니아에게 "신의 가호 덕분이지!" 라고 화답하고서, 신이 아직 자신에게 삶을 허락해 주었고, 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이어 말했다. 그러자 나는 세니아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친 곳은 정말로 없어 보여서 다행이라고 말하자, 세니아도 그런 것 같다고 말하고서, 할아버지를 위해 뭔가 선물이라도 사 주자고 청하기도 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네. 자네들도 여행 다니면서 돈이 부족하지 않나? 마음만은 고맙게 받아들이마.'
그 때, 알프레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서로 간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 이에 나와 세니아 모두 한편으로는 고마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안함에 빠져서 잠시 얼굴을 붉혔다.
"지브로아에서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브로아는 이전에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네." 그러자 노인은 우선 지브로아에는 몇 번 여행한 적이 있었음을 우선 언급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지브로아는 작지만 그러면서도 조용하고 활발한 어항 도시였는데, 그 무렵에 갔던 지브로아는 침울하고 적막한 분위기라 그 때의 기억을 품고 있던 자신을 무척 우울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분명 괴물에 의한 봉쇄의 영향이겠지.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분위기가 적막할 수밖에 없었던 게야."
노인에게는 해안가의 마을이나 항구 도시를 들를 때의 법칙 같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날씨가 맑을 때에 가는 것'. 적어도 구름이 많지 않은 때를 골라서 간다는 것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 펼쳐진 푸른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음하는 바람에 의한 것으로 폭풍우 속의 지브로아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했고, 그것이 노인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항구, 시내는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떠나고서, 곧바로 기억의 사당 쪽으로 갔지. 기억의 사당도 폐쇄되었겠지만, 그 모습을 멀리서 보지 말라는 법은 없었을 테니까."
노인에 의하면 기억의 사당 출입로는 장애물들로 가로막혀 직접 진입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다만, 거대한 원통 모양의 사당에는 여러 출입구가 있어서 그 출입구를 통해 들어설 수 있으며, 출입이 차단된 곳은 산길로의 진입로 뿐이라 다른 출입구를 통해서는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기억의 사당은 원래는 옛 문명 시대에 세워진 원형의 건축물로 창문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했으며, 사당을 둘러싼 바다의 바닥에는 건축물들의 잔해와 도로의 흔적이 마치 그 곳에 도시가 있었던 것처럼 남아있었다고 했다. 노인에 의하면 이런 물에 잠긴 도시의 흔적은 행성계의 바다 여러 곳에서 발견되며, 사당을 비롯한 도시의 흔적 모두 옛 문명 시대의 건축 양식을 찾을 수 있는 만큼, 지금의 해역 중 일부는 원래 육지로서 옛 문명 시대의 문명 도시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으리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도시의 흔적은 '검은 섬' 주변에 많이 발견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닌데...... 아무튼, 그 다른 문들은 바다와 맞닿아 있어. 직접 이용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헤엄을 쳐서 들어가든가, 아니면 배를 이용해야 할 거야."
이후, 노인은 그 출입문들은 바다와 닿아 있으므로 직접 걸어서 갈 수는 없으며, 배를 이용하든가 헤엄을 쳐서 가야 함을 밝혔다. 해변에 맞닿은 곳인 만큼, 수심은 그렇게까지 깊지는 않겠지만 괴물이 출몰한 이후, 날뛰기 시작하면 바다가 격동하고 있을 것이니,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알겠어요." 이에 나는 바로 알겠다고 답했다. 이전 때보다 훨씬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서 답했으니, 일행은 배를 이용해 지브로아 인근으로 가기로 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정말 중요한 이야기 하나가 남았는데 말야. 이제부터는 잘 듣게나."
이후, 노인은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있음을 밝히고서 잘 들어줄 것을 부탁했고, 이에 나도 그의 이야기에 제대로 경청하려고 했다. 그 무렵, 카리나가 무슨 이야기이기에 그러하느냐고 질문을 하기도 했었지만 노인은 그것에 대해 직접 답하지는 않았다.
폭풍우를 부르는 괴물이 주로 기억의 사당 부근의 해역에 출몰한다는 이유로 사당이 폐쇄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인적이 끊겼어야 할 사당에는 어떤 한 사람이 자리잡고 있었지. 다른 출입문을 이용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 곳은 바다와 맞닿아 있어서 배가 없이는 이용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 사람이 보였을 무렵에는 사당의 주변 일대에는 배가 없었지.
"그렇다면, 산길을 어떻게든 뚫고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만해 보이지는 않았어." 이후, 세니아의 물음에 노인은 그러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고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서 그는 인근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던 사당을 오래 전부터 지켜 왔다는 어떤 사람에 의하면 괴물이 출몰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으며, 그렇다면 괴물이 출몰하고 사당이 봉쇄된 이후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했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사당에 있었다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었나요? 그리고 사당을 오랫동안 지켜왔다는 그 사람의 모습은 어땠나요?"
이후, 카리나가 노인에게 바로 질문을 했다. 사당에 있었다는 사람, 그리고 사당을 지켜왔다는 사람의 외견에 대해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 외견을 통해 어떤 사람인지 대략이나마 추측해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래...... 우선, 내가 직접 만났던 그 사당을 지켜왔다는 사람 말일세."
노인에 의하면 그 사람은 가브릴리아 사람은 아닌 듯해 보인다고 했었다. 델바 족에게도 없는 인상으로 그는 일단 그 사람이 케레브 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낡은 천으로 머리와 얼굴을 감싼 이로, 낡은 천을 망토삼아 두르고 있었고, 남루한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손과 발을 검은 장갑, 검은 부츠로 가리고 있어서 얼굴 모습은 고사하고, 맨 살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아 그가 원래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시야 확보를 위해서인지 얼굴을 감싸는 천에서 눈가 부분에는 약간의 틈이 나 있었으며, 검게 보이는 틈 사이로 두 눈이 하얗게 번뜩이고 있었다고 했다.
"여기까지 보면, 카리나, 세니아가 만났다는 그 '죽음의 기사' 와 닮은 일면이 있네요."
"그 애들도 그런 이들을 만난 적이 있었나 보군. 그래, 그런 존재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결코 낯선 상은 아닐 게야, 낡은 옷차림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만큼은 같을 테니."
내가 건네는 말에 노인은 바로 동의한다는 답을 하였다. 다만, 카리나, 세니아가 만났을 '죽음의 기사' 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난 이와 '죽음의 기사' 들에 대한 비교의 말을 건네려 하였다.
"그들은 옷가지까지 모두 검게 물들어 있어. 검지 않더라도 검은색에 가깝게 어두운 색을 띠고 있지. 이것에 대해서는 고대 문명의 잔해들을 뒤덮은 검은 물질의 영향 때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확실한 사항은 없다네. 하지만 그 자는 달랐어. 낡기는 했어도, 그 검은 옷의 무리보다는 비교적 양호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
그리고서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눈을 번뜩이는 모습만 보인다고 같은 인상은 아닐게야. 누구보다도 그 '죽음의 기사' 들을 보았다는 이들이 잘 알겠지.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런 인상의 존재는 아니었다네. 목소리도 은근 싸늘한 느낌을 주어서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되는 느낌을 분명히 했지. 확실치는 않지만, 내 직감 상으로는 꽤 위험한 사람 같아 보였고, 그래서 잠깐 대화를 나누고서는 바로 그의 곁을 떠나갔어. 아가씨들도 가능하면 그 자와 함부로 말을 섞거나 하지는 않는 편이 좋을 것이야."
"그렇다면...... 사당에 있던 사람은 어떤 모습이었던가요?"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노인은 생각에 잠긴 듯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서는 그 사람의 인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여자의 모습이었어. 잘은 모르겠다만, 일단 미인상이라 칭할만한 여자였지. 흑갈색의 긴 생머리....... 그래, 어깨까지 내려가는 머리카락을 가진 이였지. 노란 옷과 붉은 코트, 긴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 구두의 옷차림을 한 이로 자신이 그의 모습을 보았을 무렵에는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해 보였지만 먼 곳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지라 자세한 인상을 알 수는 없었어.
"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나요?"
"나도 가능한 가까이에서 그를 보고 싶었어. 어떻게든 저지선을 넘으려 했지만, 그 때마다 그 사람이 위험하다고 계속 말려서 어찌할 수는 없었지.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이겠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필경 그 정체를 드러낼 것이고, 그 정체를 알게 되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라 하기도 했어."
"경악스러운 정체라하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카리나가 물음을 건네려 했다. 그러자 노인을 대신해 세니아가 사당에 별 이유 없이 나타난 여성이고, 지킴이가 위험한 존재임을 몇 번이고 말리면서 알리지 않았느냐고 말하고서, 이어서 여인의 정체는 정말 위협적인 존재였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후, 카리나는 뭔가 말하려 했던 것 같지만, 끝내 말을 잇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추측한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일단 그 지킴이라는 남자는 여인과 적대적인 존재일 것임은 틀림 없어 보이네요."
"...... 그런 것 같으이." 이에 노인은 내가 건네는 추측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용히 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서 아무래도 그 남자는 '괴물' 과 적대적인 존재로서, 누군가 '괴물' 을 물리치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사당의 한 곳에 놓여 있었다는 고대의 표지판, 'I-V-X-V-I' 라 쓰인 표지판으로 알프레드 노인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다가 그 표지판을 문득 떠올리면서 노인이 이전부터 계속 언급했던 표지판을 사당의 한 곳에 서 있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정체일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 그리고 여인을 적대하는 듯한 노인이 만났던 남자가 과연 표지판의 존재를 아는지 여부를 그로부터 물으려 했다.
"혹시 I-V-X-V-I 라 쓰인 표지판을 그들은 보았을까요?"
"잘은 모르겠네." 그러자 노인이 바로 답했다. 그리고서 여인이 표지판을 보았는지는 (당연하게도) 잘 모르고, 남자 역시 그 표지판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나에게 그 표지판이 괴물 혹은 남자의 정체와 모종의 관련이 있을 수는 있다고 말하고서,
"그 의미를 주문으로서 외면 어쩌면 괴물이나 남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이야."
"분명, 그 여인이나 남자, 둘 중 하나는 분명 우리가 찾던 그 괴물이야."
이후, 나는 노인에게 세니아, 카리나를 데리고 잠시 밖에 나가 있겠음을 밝히고서 이후에 셋이 나란히 찻집 대문 앞에 자리잡은 난간 근처에 나란히 서 있으려 하였다. (내가 가운데, 왼편에 카리나, 오른편에 세니아가 서 있었다) 방금 전의 말은 그 무렵에 내가 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들 중 누군가는 괴물일 것임이 틀림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한 확신은 아니었다. 둘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그들 모두가 괴물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오른편 옆에 서 있던 세니아에게 물었다.
"세니아, 너는 둘 중에 누가 괴물일 것이라 생각해?"
"내가 봤을 때에는 둘 다 괴물 같아." 그러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서 형태는 다르겠지만, 이들 모두 괴물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고 말하고서, 다만, 여인과 그 남자가 서로 적대하는 관계 같다는 노인의 발언은 주목할만하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어쩌면, 둘 중 하나는 우리의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더 나아가, 카리나는 둘 중 하나의 편이 되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세니아가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적이 되는 것 아니겠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지." 라고 답했다.
"카리나, 그렇다면 누가 우리 편이 되어줄 것 같아?"
"......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 세니아가 물었고, 카리나가 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라면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가 궁금해졌던 모양. 하지만 나라도 다를 것은 없었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라고 해서 뭐 다른 게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서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어느 쪽도 너무나도 수상하고 위험해 보인다고. 나도 딱히 다르지는 않아."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이상, 정답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도 위험해 보이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 중 하나와도 협력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둘 모두를 적으로 상대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했다. 그들이 협력을 대가로 어떤 파멸을 선사할지 알 수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는 존재와 협력하게 되었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협력하는 척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그 의도대로 흘러갈지도 알 수 없을 노릇이라 함부로 시도할 일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 멀리서 지켜보셨다는 여인이 일단은 인상이 선해 보였지?"
"응."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답했고, 그런 대답에는 나도 동의했다. 그 때, 세니아가 노인이 지킴이를 자처한, 사당 근처의 남자와는 함부로 말을 섞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충고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답했다.
"일단은 그래야 할 것 같아.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
결국, 어느 편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에는 '역시, 가 봐야 알 것 같다' 라는 뻔한 결론만 내리고 말았던 것. 이런 결론을 내린 것에 모두 서로가 서로 탓을 했지만, 애초에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이 했던 논의 자체가 참 부질 없는 노릇이었던지라 서로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논의가 흐지부지 끝나고, 조금 더 밖에 있겠다고 하면서 해변가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을 즈음,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전혀 낯설지 않은 어떤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찻집의 담장 우측 근처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있어?"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전부터 계속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소리 (Sori) 였다. 내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마자 소리는 그런 나를 보더니, 그런 나에게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뭔가 중대한 일을 앞두고 결정해야 할 사항이 있나 봐, 그렇지?"
"너는 알 것 없어." 내가 툭 던지는 듯이 답했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소리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나에게 "숨길 것 없다고 했잖아."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자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나를 향해 다가가려 하더니, 두 손을 허리 위에 올리면서 말했다.
"숨기려고 해도 다 알아, 바닷가의 웬 괴물 녀석이 사람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 같고, 그들 중에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지?"
'다 알고 있었네.' 그러자 나는 한 숨을 쉬며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소리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맞지? 다 알고 있었다고."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나를 올려다 보며,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
"그 다음에는 짐짓 짜증내는 척하며 '그래, 그렇다고!' 라고 말하려 했지?"
"......!"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그저 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소리는 조용히 이죽거리며 웃었다. 그러더니 내가 찻집 근처의 벤치에 앉으려 하자, 그런 나의 왼쪽 곁에 앉으려 하면서 이전에 비해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괴물일 것 같아?"
"너는 둘 다 괴물일 것 같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내가 건네는 물음에 답을 하는 대신에 소리는 나에게 그렇게 되물으려 했다. 그리고 나에게 나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난 이후에 누가 괴물일 것인지 쉽게 정하지 못했을 것이라 하고서, 이는 내가 두 사람 모두 괴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음이 그 이유일 것이라 말했다.
"다른 고민할 것 없어! 느낀대로 판단하면 되는 거야."
"그렇다면, 누구와 협력할 것 없이, 이들 모두와 맞서야 한다는 것이지?"
"....... 그런 각오도 없이, 지브로아에 가려고 한 거야?" 이에 소리는 곧바로 그런 나에게 핀잔을 주는 듯이 물었다. 그러더니, 곧 그는 두 팔을 높이 올려, 머리 뒤쪽에 손을 올리더니, 밝게 표정을 지으면서 "그래도 참 너 답네."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둘 중 하나는 그래도 착한 사람일 거라고 믿은 거잖아. 그렇지?"
"그런 생각은 없었던 것은 아니야." 이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고, 이에 소리는 그저 '우후훗' 하는 웃음 소리만 낼 뿐, 다른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곧 그는 바다 건너편을 가만히 바라보며, 한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네가 생각한 대로, 둘 중 하나는 선한 존재일 거야. 아니, 선한 존재에게 가깝다고 해야 할까."
"둘 다 괴물일 텐데, 어떻게 그러할 수 있는 거야?" 이에 내가 의아해 하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소리는 두 팔을 내리고서, 이전에 자신이 말한 대로 그 두 사람은 모두 정체가 괴물일 것이고, 나는 그들 모두와 싸움을 이어가야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말한 다음에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근본까지 악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 것 같아?"
"뭐라고?" 이에 내가 놀라면서 묻자, 소리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런 직감이 들었어, 둘 중 하나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괴물의 본성에 감추어져 있지만, 다른 하나는 괴물 그 자체일 것이라고. 너는 그들 중 하나와 먼저 싸울 것이고, 다른 하나와는 나중에 싸우게 될 거야."
그러더니, 그는 이렇게 물었다.
"자아! 이제 질문할게. 둘 중 누구와 먼저 싸워야 할 것 같아?"
"선한 마음이 남은 자. 그 선한 마음이 남은 자를 구해주는 것이 우선이니까."
"잘 했어!" 그러자 소리는 환하게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서 그는 괴물의 몸 속에 있는 선한 마음이 구원받고 나면 그 괴물은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리라고 장담하는 듯이 말했다. 그 이후, 소리는 나를 보더니, 나에게 아직 의문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하더니, 환하게 미소를 띠며,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에게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질문을 하고서, 가만히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목소리를 내고, 그와 문답을 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을 품은 것이 있었다. 둘 모두 악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느냐에 관한 것. 그러면서 소리는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둘 다 악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어떡하려고?" 나의 우려와 달리, 소리는 자신은 자신의 추측이 옳다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괴물이 가진 '선한 면' 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이미 알아차렸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바로 말해줄 수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지금 말해줄 수 있겠어?"
"당연하지!" 그리고서 소리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답하고서, 이전에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자신들이 만났다는 '죽음의 기사' 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고서,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나에게 말해 주었다.
"카리나 씨 그리고 세나 씨는 꼭 데리가 가. 분명 너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거야."
그러더니, 그는 기지개를 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제 자신은 가야 하겠다고 말하더니, 이어서 나를 향해 잠시 돌아서고서는 어느 쪽에 선한 마음이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이미 답을 찾았을 것이라 말하더니, 이렇게 말을 건네며 나의 곁을 떠나려 하였다.
"너의 직감을 믿어. 적어도 이번만큼은 너의 직감이 무조건 옳을 거야."
"방금 전에 혼자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그 무렵, 등 뒤에서 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렵, 이미 소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나는 바로 당황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돌아섰고, 그 이후에 그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소르나의 목소리가 나에게 뭔가 조언을 전해 주었어."
라고 둘러댔다. 이전부터 한 번씩 소르나의 목소리가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었던 것을 의식하며 건넨 말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여자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가는 이상해졌다고 카리나 등이 생각할까봐 그랬던 것.
"그랬었구나. 그래, 통신을 통해 소르나가 무슨 이야기를 전해 주었는데?"
다행히도 카리나는 나의 말을 바로 믿어주었다. 그리고서 소르나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었느냐고 물음을 건네었고,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였다.
"우리가 만나게 될 두 존재, 모두 괴물일 것이라 이야기를 해 주었어. 기억의 사당 인근의 두 사람에게 모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느냐고 하더니, 그것은 괴물 때문일 것임이 분명하다고 나에게 말한 거야,"
"그 말은 곧, 우리는 두 괴물과 싸우게 되리라는 것이지?"
이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리고서 생각보다 험난한 싸움이 예상된 듯, 깊이 한 숨을 내쉬는 카리나에게 내가 이어서 소르나가 한 가지 알려준 것이 있음을 알리려 하였다. 무언가 나에게 말해준 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이후, 걱정 속에서도 흠칫 놀라며 카리나가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대답으로써 소르나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면서 소리가 내게 알려준 바를 대략 내 방식대로 요약해서 카리나에게 전해주려 하였다.
"괴물들이 모두 사악한 존재인 것은 아니리라는 거야. 둘 중 하나에게는 선한 마음이 남아있고, 그것을 구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어."
"선한 마음?" 그러자 카리나는 처음 내가 소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의아함의 반응을 바로 보였다, 괴물은 기계 문명의 사악한 산물이 변질된 것이라 믿고 있었던지라, 소르나가 나에게 해 주었다는 그 조언이 이상하게 들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르나라면 뭔가 깊은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말해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드러내고서, 나에게 이후에 그가 어떤 말을 건네었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화답을 했다.
"그러더니, 소르나는 '선한 마음' 은 카리나, 네가 이야기 해 준 그 '죽음의 기사' 와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있을 싸움에 너는 꼭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더라."
"그래?" 이에 카리나는 "다음 싸움에는 내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말이지?" 라고 내게 묻더니, 그 이후에 일단은 찻집으로 돌아가자고 청했다, 남은 이야기는 알프레드 노인 그리고 세니아와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그 두 사람 모두 원래는 괴물일 것이라고?"
나와 카리나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알프레드 노인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그들 모두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면, 그러할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이는 곧 그들이 비록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들의 내면에는 '괴물' 이라 칭할만한 존재가 숨어 있으며, 이들 모두 특정한 상황 하에서 괴물의 본 모습을 드러낼 것임이 틀림 없다고 그에게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그 두 존재 모두와 싸워야 하겠구나."
관련된 대화 이후에 노인은 조용히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서 걱정의 심정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고서 비록 나를 비롯한 이들이 하미시 은근 유적지의 지하에 숨어있던 어둠의 괴물을 물리치는 데에 큰 역할을 해냈다고 하지만, 그 때에는 그래도 괴물은 하나였다면서 두 괴물과 모두 맞서는 것은 나를 비롯한 이들에게 아주 가혹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나에게 자신의 우려를 전하려 하였다.
"가능하면, 두 괴물과 모두 맞설 생각은 하지 않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게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의 심정을 드러내는 노인의 우려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노인이 이전에 여인과 남자는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는 관계라 하지 않았느냐고 묻고서, 둘 중 하나에게는 선한 마음이 있을 것이고, 이를 이용하면 둘 중 하나의 싸움은 금방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어 노인에게 말했다.
"둘 중 하나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나?"
그 이야기에 알프레드 노인 역시 소리에게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나나, 내게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카리나처럼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고서, 어떻게 그것을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이어서 물음을 건네었다. 그러자 내가 그런 노인의 물음에 답했다.
"저도 어떤 이로부터 들은 말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그러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선한 마음이 남은 괴물과 맞서면서 그 선한 마음을 구출해내고, 이어서 사악한 마음만 가진 괴물과 맞서기로 한 거예요."
"그래도 두 괴물과 맞서게 되리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 않은가?"
"....... 괴물의 선한 마음이 구원 받으면, 그 괴물은 사라질 거예요. 어쩌면 저희 편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후, 노인이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이후, 노인은 나에게 다른 괴물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처음에는 선한 마음을 가진 괴물을 먼저 상대할 것이라고 말하고서, 그 동안 사람으로 위장한 다른 괴물의 편이 되는 듯한 행동을 취할 것임을 밝혔다.
"같은 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잘 구슬리면 그는 제가 다른 괴물을 상대하는 동안 저를 어찌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러자 노인은 "그러한가?" 라고 묻는 듯이 말하더니, 이어서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상당히 깊은 생각에 한 동안 잠겨 있는 듯해 보였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던 그는 결국 고개를 들고서 나에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나름의 생각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너희들은 그 괴물과 직접 싸우는 사람들일 테니 말이다.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잘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 그 이상 할 일은 없겠지. 그래, 이전에도 그러하였듯, 이번에도 아가씨들은 잘 해낼 게야. 그렇게 믿고 있도록 하겠네."
그러더니, 노인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둘 중 누가 선한 마음이 남은 괴물일 것 같나?"
노인과 헤어지면서 찻집에서 나간 이후, 나는 찻집 인근의 해안가에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와 함께 앉아 있었다-카리나를 중심으로 세니아가 왼편, 내가 오른편에 앉았다-. 고요하게 물결치는 파도와 더불어 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바다 먼 저편을 바라보면서 찻집 안팎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대화를 주고 받으려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실제로도 선한 마음이 남은 괴물일 것이라는 말이지?"
"응." 세니아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나는 당연하게도 괴물이 처음부터 선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지만 결국 그것이 드러날 때가 올 것이고, 이를 통해 괴물의 몸 속에 내재된 선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해내야 할 것이라 이어 말했다.
"그러한 때가 언제 올 것인지는....... 역시 때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것이려나."
"응." 이후, 카리나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그 후, 카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려 하면서 한 가지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 괴물을 상대하는 데에 내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어렸을 적에 만났다는 '죽음의 기사' 가 그 괴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모두 소리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와 관련이 있었다-이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었다.
"알프레드 할아버지께서 기억의 사당에서 보셨다는 그 여자에 대해서 우선 말해 볼게. 그들의 인상에 대해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묘사하셨었잖아, 그렇지?"
일단 미인상이라 칭할만한 여자였지. 흑갈색의 긴 생머리, 그래, 어깨까지 내려가는 머리카락을 가진 이였지. 노란 옷과 붉은 코트, 긴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 구두.......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확신할 수 있었던 거야?"
이후, 세니아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혹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그에 대해 고문명 시대의 외견을 갖춘 여인의 모습일 것이라 추측한 것이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답을 대신하였다.
"우선 흑갈색 머리카락부터 언급할게. 고문명 시대에서는 아주 흔한 머리카락 색깔이었어. 하지만, 적어도 이 행성계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찾기 힘들어졌지?" 그러자 카리나가 세니아를 대신해서 나에게 되물었고, 이에 나는 그렇다는 의사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 때, 세니아가 한 가지 떠오른 바가 하나 있었는지, 나에게 한 가지 사항을 언급하려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한 번 언급되었던 그 올리비아 사반 (Olivia Savan) 이라는 마도학자 있잖아, 그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이 흑갈색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 이후, 카리나가 묻자, 세니아는 그랬다고 답하고서, 세나도 알고 있다고 하니, 그를 만나보면 한 번 그것에 대해 물어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후에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아무튼, 그 할아버지의 복장 묘사를 들으면서 예전에 어머니의 방에서 몰래 본 책자에서 묘사된 고문명 시대의 의상이 떠올랐어. 그래서 그 여인은 고문명 시대를 알고, 그것에 익숙한 사람이었을 것, 더 나아가 원래는 고문명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을 것이라 여길 수 있었던 거야.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사당에서 보셨던 그 옷차림은 여인이 원래 입고 있었을 그런 옷차림이었겠지. 괴물에게 선한 인격이 남은 것은 모종의 이유로 여인의 영혼이 괴물에 깃들게 되거나, 여인의 영혼이 괴물로 환생하는 형태로 여인이 괴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서 나는 또 이렇게 그들에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 혹은 원래는 다른 사람이었다가 내가 이전에 언급한 바를 통해 괴물이 된 이후에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았을 어떤 여인의 모습으로 위장하려 한 것은 아닐까, 이런 추측도 해 봤어."
"그렇다면, 원래는 여인과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라는 거야?" 이에 카리나가 그렇게 물음을 건네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여인도 원래는 실존했던 사람이고, 괴물 역시 그 여인과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인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 그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렇지." 이에 세니아, 카리나 모두 나름 납득하고 있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여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의 모습을 온전히 기억하고, 그 모습을 갖추려면 여인을 오래토록 만나고, 그와 보통 이상의 인연을 가질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라 여기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르사나, 나는 후자 쪽이 조금 더 옳을 것 같다고 생각해."
이후, 세니아가 나에게 나의 추측들 중에서 두 번째 추측이 괴물의 정체에 보다 근접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노인의 언급한 여인의 묘사에 의하면 그는 원래 전투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아 보였다고 말하고서, 그와 인연이 있던 이들 중에 군인이나 전사가 있었고, 그것이 그의 영혼과 관련이 있을 괴물의 전투력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 하였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전투 기술이 없어 활용을 못 하면 그 힘 자체가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리고서 세니아는 여인은 괴물이 된 영혼과 밀접한 인연을 가진 존재였을 것이라 하고서,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서로 사랑하던.......?" 이에 카리나가 그렇게 묻자, 세니아는 그러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이제는 어느 정도 답이 나온 것 같다고 하고서 세니아가 카리나에게 이제 일어나서 세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 보자고 청했다.
"먼저 일어났으면 좋겠어. 우리가 다 모인 이상, 우리들의 '리더' 가 이제는 앞장서야지, 그렇지 않아?"
"그래, 그렇겠지." 이에 카리나는 바로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에 세니아와 나 역시 일어나서 카리나를 따라 다시 동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있는 해안가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내가 앞서 나아가는 카리나를 향해 말했다.
"어때? 오랜만에 다시 '리더' 라는 말을 들은 소감이?"
"그런 칭호, 이제는 너에게 물려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러자 카리나가 바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에서 내가 가장 많은 역할을 해 오지 않았느냐고 묻고서, 이전에도 궂은 일은 내가 다 맡아서 했고, 위험한 곳에는 꼭 내가 가지 않았느냐고 말한 이후에 '리더' 는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었다.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이에 내가 화답했다. 그리고서 그에게 말했다.
"리더는 원래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했었어. 나는 앞장설 줄만 알지, 사람들을 이끌거나 지켜주지는 못하는 편이야.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잖아. 또, 지난 번에도 여러 번 방패로 우리들을 지키는 역할을 해 왔었고. 이런저런 일에서 네가 지켜줘서 위험을 면한 적이 많아. 이번에 하미시 유적지에서 케레브 족과 싸움을 행할 때에도 너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를 비롯한 이들이 비교적 고생을 덜한 면이 있기도 해."
이후, 나는 카리나에게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천문대를 떠난 이후로, 이런저런 이유로 너희들과 만나려 하지 않았어. 늘 혼자 돌아다니고는 했었지. 이러한데, 어떻게 '리더' 가 될 수 있겠어."
카리나의 도움 덕에 비교적 고생을 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고대 유적 지하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괴물과의 싸움 도중에 카리나가 방패로 일행을 보호해줄 때와 그가 다쳐 잠시 물러나 있었을 때의 분위기 차이가 실제로 상당히 컸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나는 천문대에서 같이 지내던 이들과 자주 만날 수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리더' 로서의 의식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것에 대한 의식을 분명히 할 수 있으리라 여기었고, 그래서 그가 '리더' 로 계속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아르사나의 말이 맞기는 해, 결국 모두를 지켜주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 혹은 '지휘자' 의 위치에 가장 근접하기는 하지."
세니아가 말했다. 그리고서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나를 비롯한 이들의 '리더' 로 남아주기를 바란다고 청했고, 그런 그의 요청에 카리나는 알겠다고 화답하고서 그런 칭호가 자신에게 부담될 것이 있겠냐고 말하고서 그런 요청 정도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들 중에서 가마일 산 천문대 출신의 사람들 중에서 그 때의 추억에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사람은 나일지도 모르니까."
"그것은 그렇고, 소르나가 중요한 이야기를 아르사나에게 많이 해 준 것 같아, 덕분에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여러 지침이 생겼잖아. 그렇지?"
"그렇기는 하지." 이후, 카리나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묻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세나를 비롯한 이들이 선착장 부근에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세나는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바로 앞서 오는 카리나에게 "어서 와요!" 라고 외쳤고, 이에 카리나가 바로 세나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후, 세니아도 카리나를 따라 뛰어갔지만 나는 약간 발걸음을 빠르게 할 뿐, 그대로 걸음을 유지하며, 두 사람이 먼저 세나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그 동안 뭐하며 지내셨던 거예요?"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어. 근처에 있는 찻집에서 이전에 내가 만났던 그 할아버지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지."
세나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가 답했다. 그리고서 그는 곧바로 세나 등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을 했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가 그 동안 공원에서 나에티아나, 잔느 공주 그리고 주변을 지나다니는 이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주고 받다가, 이전에 에오르 자매 등으로부터 들었다는 중앙 154 번 구역에 있는 각종 유물들을 취급한다는 골동품 상점을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 광장에서 동쪽에 있는 거리에 있어요. 원하시면 제가 안내해 드릴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곧,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그 가게 사람이 '아르사나 2 세' 라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에게 꼭 데려오라고 청했으며, 그에게 전해주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고 그 이유를 말하기도 했었음을 밝혔다. 그 말인 즉, 나는 그 곳으로 꼭 가야만 한다는 것.
"알았어. 한 번 가 볼게. 세나, 같이 가자. 꼭 가야하는 곳인데, 거기서 헤매면 곤란하잖아."
"알았어요." 이에 세나는 활짝 웃으며 알았다고 답했고, 그리하여 나는 세나 등과 함께 그가 언급했던 골동품 상점으로 가 보기로 했다. 그와 더불어 잔느 공주, 루이즈가 나를 따라 나섰지만, 나에티아나는 세니아, 카리나 등과 함께 있겠다고 해서 같이 가지는 않았다. 세니아 등은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었다.
하미르 동부 혹은 하야라 지역의 중앙 154 번 구역. 그 구역은 하나의 작은 골동품 상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앙 광장 동부의 한 거리에 있었다. 그 일대에는 소품들을 파는 가게, 잡화점, 옷 가게 등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3 층 짜리 큰 건물로 여러 상점들 및 시설들이 자리잡은 곳이라 하였다. 세나에 의하면 사탕 공방, 제빵 공방 등이 1 층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견학할 수 있는 곳이라 했다. 154 번 구역은 바로 그 동쪽 옆에 있었다.
골동품 상점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관을 화려하게 꾸미고 있어서 다가가는 순간, 바로 눈에 띄었다. 마치 옛 시절의 장난감을 보는 듯한 건물의 외관을 보자마자 바로 그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으며, 이에 세나 그리고 잔느 공주 등이 뒤를 따라 나섰다.
"어서 오시게. 아가씨들." 그 가게 앞으로 다가가자마자 창문 안쪽에서 어떤 남성이 나를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 만났던 프레드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과 같은 드벨파 족이었던 남성으로 다소 짧은 검은 머리카락과 주황색 셔츠 그리고 갈색 바지 차림을 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꽤 선한 인상을 가진 듯해 보였던 그 중년 남성은 가게에 접근한 나를 보자마자 바로 나를 알아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아가씨가 아르사나 2 세라는 이름을 가진 이인가?"
"제 이름을 어떻게......!?" 그가 묻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놀라면서 외쳤다. 아닌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내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내 모습을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나는 상점 주인을 만난 적이 없었고,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당황하며 그렇게 물었던 것.
"아아, 일전에 여기에 좀 머무르다가 가겠다던 애가 있었어. 그 애를 통해 알게 됐지."
그러자 상점 주인이 바로 답했다. 그리고서 누군가를 부르려 하는 듯이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예, 아저씨~ 금방 가요~" 그러자 뒤쪽에서 어떤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그 목소리에 흥미를 가지는 정도였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놀랐다. 이전부터 한 번씩 들려온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뒤쪽의 문이 열리면서 그 문을 통해 어떤 여자아이가 가게 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방에 있다가 가게 주인인 중년 남성의 부름을 듣고 바로 뛰어 들어온 듯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어린 아이는 이전부터 나의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내었던 그 여자아이였다. 감색의 짧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 그리고 특유의 옷차림-하얀색의 소매 없는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가는 상의와 짧은 치마-만 봐도 이제는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저 아이, 소리 (Sori) 잖아.'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바로 그 아이의 이름을 조용히 말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그 여자아이는 내가 이전부터 만나왔던 소리였다. 이전에도 계속 내 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번에도 나를 알아볼 것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소리는 바로 나의 곁에 다가가지 않고,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특유의 자세-뒷짐을 지고 허리를 약간 뒤로 굽힌 채, 오른 다리를 들어올리는 자세였다. 소리가 그런 자세를 은근 자주 취했었다-를 취하며 중년 남성에게 물었다.
"아저씨,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그러자 중년 남성은 가게의 창문 앞으로 돌아서더니, 그의 곁으로 다가가려 하는 소리에게 이렇게 알리려 했다.
"소리, 네가 말했던 그 사람이 왔다. 그 사람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었지?"
그러자 소리는 바로 그렇다고 화답하고서 바로 나에게 시선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중년 남성에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며, "맞아요." 라고 화답하고서, 이어서 자신의 옛 친구였던 사람이라고 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래, 그랬었지. 너의 옛 친구였었다고. 그건 그렇고, 저런 사람과 친구라니, 대단하구나. 나이 차이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저 사람과 친구가 되었나?"
"그것은 비밀이에요~" 그러자 소리가 바로 화답했다. 그러더니, 그는 창가에 서 있으면서 바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말했다. 그 부름에 나는 별 말 없이 응했다, 딱히 응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선물 하나 주고 싶어서 여기로 왔어, 네가 여기로 올 것 같아서."
"네가 여기로 올 줄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하지만 나의 질문에 소리는 어떻게 대답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그는 자신의 치마 오른쪽 주머니를 오른손으로 뒤적이더니, 이어서 오른손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푸른색을 띠는 상자로 겉면에는 소르나가 늘 갖고 다니는 지팡이의 형태-파란 빛을 내는 결정과 날개가 달려있는 지팡이이다-와 같은 형태의 엷은 푸른색 문양이 그려진 손바닥 크기만한 상자였다.
"자, 받아!" 소리의 목소리에 바로 응하고서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보석 상자와 같은 작은 상자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그 안에는.......
"이거, 예전에 내가 하고 다니던 목걸이잖아!"
어렸을 때, 소리가 나에게 건네었던 것과 같은 목걸이가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펜던트 부분이 추상화된 천사의 형상과 같은 목걸이로 어렸을 적에 소리가 나에게 선물했던 그것과 같은 종류였다-그 목걸이는 내가 슈라일을 떠날 즈음에 소리에게 돌려주었다. 소리가 걸치고 있던 목걸이가 바로 그것-. 펜던트 부분은 같았지만 줄은 원형보다 훨씬 길었다. 전반적으로 성장한 나의 체격에 맞추려 했을 것이다.
그 목걸이를 왼손으로 들어 보이는 나를 소리는 그저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목걸이의 모습을 한참 보고 있다가 목걸이를 선물해 준 소리에게 시선을 향하자마자 나를 향해 지긋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기 앞에서 목걸이를 걸쳐 보라는 것인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는지를 바로 짐작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서 상자를 창가에 올려 놓고, 목걸이를 두 손으로 잡은 이후에 곧바로 그것을 목에 걸쳤다. 펜던트 부분이 가슴 한 가운데 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는 동안 소리는 미소를 띠는 채로 가만히 지켜보더니, 내가 온전히 목걸이를 걸치고 두 손을 다시 내리자 조용히 웃음을 지었고, 그 때를 같이 해, 펜던트 부분이 희미하게 푸른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이 목걸이는 네 거야." 이후, 소리가 말했다. 그러더니, 이어서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네가 목걸이를 걸치는 동안 네가 머리에 쓰고 있는 머리띠의 결정 부분도 파랗게 빛을 발하고 있을 거야. 목걸이의 빛은 눈앞에 있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리는 역할을 하며, 머리띠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에는 그에 호응하는 빛을 발할 거야. 그 빛을 통해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지."
"예전 시대의 은 수저 같은 역할을 하는 물건일까요?" 그 때, 그 모습을 좌측 근처에서 지켜보던 세나가 물었고, 이 물음에 소리는 활짝 웃으며,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세나를 보더니 그에게 밝게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물음을 건네었다.
"언니 것도 만들어 드릴까요?"
"아니요, 제 것은 필요 없어요." 그러자 세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 요청을 거절했다. 그 이후, 나에티아나가 소리를 향해 다가가더니, 그에게 그런 물건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다고 말하고서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한 괴물들과 맞서게 될 텐데, 그 때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니 말씀대로, 괴물의 사악한 기운을 감지할 수는 있어도, 괴물이 어떻게 사악한지까지 알아내거나 하지는 못해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걸이를 걸치고 있는 이의 몫이겠지요."
이에 소리는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그리고서 나를 보더니, 나에티아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두 괴물과 맞서게 될 예정을 갖고 계시지요? 그런데, 그 정도라면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의 적인지를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자세히 알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그라면 그 적을 찾아내고, 괴물에게 묶인 영혼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러더니, 그는 나에티아나, 세나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던 잔느 공주, 루이즈에게 다른 것들은 궁금하지 않냐고 묻고서, 그것에 대해서는 가게 주인이 친절하게 알려줄 것임을 알리기도 했다.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와요! 재미난 것들이 많이 있어요!"
가게 내부는 의외로 제법 깔끔한 편에 속했다. 공간 자체는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그래도 수십 명 남짓 정도는 안에 들어갈 수 있어 보였다- 공간의 우측 가장자리에 서 있는 큰 장 그리고 정문 근처의 창가의 좌우 근처에 자리잡은 작은 장에는 종류 별로 여러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좌측 가장자리에는 긴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서적 류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놓아둔 것처럼 보였다.
공간의 한 가운데에는 작은 원형 탁상이 3 개 놓여 있었다. 역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세 사람 정도가 모여 앉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가게 주인인 중년 남성이 원래는 찻집 구실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를 개설했었으며, 탁상들은 그 흔적이라 했다.
"지금 이 곳은 찻집은 아닌 것 같네요."
"주인 아저씨께서 카페라든가 차를 만드는 재능이 없으시다고 하셨고, 또, 무엇보다 수없이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관련된 제품들을 판매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셔서 찻집 개설은 하지 않게 되셨대요. 그래도 여기로 오신 손님께 차 한 잔 정도는 해 주실 때가 있어요."
찻집이 아닌 것 같다는 나에티아나의 말에 중년 남성을 대신해 소리가 답을 했다. 그리고서 기왕 가게에 들어온 김에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말하고서 자신이 차를 한 잔씩 방문한 이들에게 대접해 주겠음을 가게 주인에게 알렸고, 이에 가게 주인이 그리 하라 하자, 그는 바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곳에 차 끓이는 도구가 있었던 모양.
그러는 동안 나는 우측 나무 장에 진열된 물품들을 하나씩 둘러보고 있었다. 각종 책자들부터 시작해서 고 문명의 기술이 낳은 여러 종류의 물품들이 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종이 상자들, 인형들, 그림책들에 옛 문명 기술이 만들어 낸 기기들과 주변 장치들, 기계들의 내부 장치들이었을 유물들이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유리나 도자기 제품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런 물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깨져서 원형 그대로 보존되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자들을 몇 둘러 보았다. 이들 중 대다수는 라테나 문자 (혹은 루마 문자) 로 쓰여진 것들이라 못 읽는 것은 아니었지만, 라테나 문자로 쓰여져 있지 않은 것도 있어서 그런 것들은 거의 대부분 읽을 수 없었다. 그런 책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는 동안 잔느 공주, 루이즈도 책자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 역시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게임판들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찻집에서 본 것들과 거의 유사해서 크게 흥미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잔느 공주, 루이즈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게임판의 모습을 상당히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녹차 가져왔어요~" 그 무렵, 방문 너머에서 소리가 찻잔 3 개가 놓인 큰 쟁반을 두 손으로 들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 뒤를 이어 어떤 어린 소녀가 찻잔 3 개가 놓인 큰 쟁반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양이 귀를 가진 긴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소녀로 머리카락에는 주황색을 띠는 부분과 검은색을 띠는 부분이 있었다. 짤막한 소매를 가진 하얀 셔츠와 무릎까지 내려가는 청바지 차림을 한 맨발의 소녀로 꽤 활발해 보이는 외견을 갖고 있었다.
"그래, 요 책상에다가 잔들을 올려 놓으렴." 두 소녀들이 쟁반을 들고 차례로 가게 내부 공간으로 다가오자마자 중년 남성은 알겠다고 말하고서 곧바로 책상 위에 잔들을 올려놓을 것을 부탁했고, 그리하여 소리부터 세 개의 잔을 하나씩 올려놓고, 이어서 고양이 소녀가 뒤따라 세 개의 잔을 하얀 원탁 위에 올려 놓았다. 이후, 두 소녀들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고양이 소녀의 이름은 탐파 (Tampa) 로 고양이 요정족의 근거지에서 무작정 이 행성계의 하야라로 왔다가 가게까지 오게 되었으며, 이후, 가게 주인의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가게 주인 그리고 가게로 들어온 5 명의 손님들이 한데 모여 앉아 한 잔씩 차를 마시게 되었다. - 당시의 자리 배치는 가게 주인을 중심으로 마주보는 자리에 내가 앉았고, 그 좌우에 나에티아나 그리고 잔느 공주가 앉았다. 그리고 나에티아나의 좌측에 세나가, 잔느 공주의 우측에는 루이즈가 앉았다.
나를 비롯한 일행 5 명에게 주어진 차는 녹색 차로 녹차를 가루로 갈아서 만든 차의 일종이었으며, 가게 주인의 차는 카페 가루를 이용해 만든 차였다.
가루 녹차 (Galuin Farïtteh, GFT) 보다는 주로 맛차 (Matca) 라 칭해지는 (그래서 이후로는 맛차라 칭한다) 종류의 차. 녹차를 가루로 만든 차는 자주 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소르나의 작업실에는 늘 비치되어 있었으며, 한 번씩 그 가루 녹차를 물에 타서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으며, 소르나가 한 잔씩 천문대에 있던 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내가 그 가루 녹차를 처음 마셨던 것은 소르나가 한 잔씩 그 차를 나누어 주었을 때로 따스한 차를 내 책상 위에 소르나가 직접 전해 주었었다. 그 이후, 천문대를 떠나면서 다시는 그런 차를 마시지 않았는데, 참 오랜만에 맛 보게 되었다.
- 소르나는 베라티사의 학당에 거주하면서 맛차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 차를 좋아하게 됐는지에 대해 소르나는 학우의 집에서 처음 마셔본 이래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아르사나 씨께서는 이런 차를 오랜만에 마셔보시는 것 같아요."
"응." 세나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리고서 그 전까지 맛차 류를 마시거나 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고 그 이유를 말했다. 차는 자주 마셨지만, 맛차 류를 취급하는 곳이 많지 않아 그렇게 된 것. 그랬는데, 실로 오랜만에 맛차를 다시 맛 보게 되었다, 그것도 어린 시절의 소리로부터.
"이런 맛차는 어디에서 가져오신 거예요? 그렇게 흔한 물건은 아니었을 텐데."
이후, 내가 가게 주인에게 묻자, 가게 주인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전에 보았던 그 검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가져온 것이라 화답했다.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그는 맛차가 들은 작은 유리병 몇 개가 들어있는 가방을 가게로 가져왔고, 그러면서 가게의 안방에 맛차라든가 과자라든가 여러 음식 류가 들어오게 되었음을 밝혔다.
"베라티사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더군. 틈만 나면 한 번씩 베라티사에서 그 애가 가져온다고 하는데, 그 동안 먹으면서 별 탈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어."
"그랬었군요." 그러자 내가 화답했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은 차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래저래 한 잔씩 먹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말하고서 상점 방문하는 이들에게 한 잔씩 대접해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 물론, 싫어하면 카페로 대체한다고 하지만 여태껏 방문한 이들 중에 맛차를 싫어하거나 한 이는 없었다고 했다.
"아가씨는 예전에 맛차를 자주 마셔본 적이 있나?"
"저 말이지요?" 가게 주인은 이후, 나에게 물음을 건네었고, 이 물음에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이전에 몇 차례 맛 본 적이 있었으며, 자신이 잘 알던 사람이 늘 갖고 있어서 그를 통해 먹어볼 수 있었음을 밝혔으며, 이어서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가게 되고 나서는 한 동안 먹어본 적이 없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과 어떻게 헤어지게 됐지?"
"베라티사에서 남은 학업에 매진하기 위해 떠나갔다고 해요. 딱히 다른 이유는 없었지요. 그 사람, 저와 상당히 가까웠기 때문에 저와 헤어지면서 많이 아쉬워 했었지요."
그 대답을 듣자 가게 주인의 표정에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가 말하기도 했다. 이에 나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러할 것 같다고 화답하고서, 그에게 딱히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네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그 사람도 네가 했던 만큼, 너를 좋아할 게다. 그리고 네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 역시 너를 그리워하고, 너를 다시 만나려 하겠지. 그렇다면 그와 다시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게야."
가게 주인의 말이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그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나름 기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베라티사로 여행을 가서 소르나를 어떻게든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차를 대충 마시고 날 무렵, 세나로부터 가게 주인에 대해 질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주인님께서는 언제 이 가게를 여시게 된 거예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답했다.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원래는 사무소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틈틈히 고대 유물들을 모아서 집에 두고 있다가, 문득 그렇게 얻어온 골동품들로 장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와 더불어 옛 문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취미 수준에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부터 여러 공공 기관의 관계자들까지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고, 그래서 예전 직장을 떠나 가게를 열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박물관, 도서관 측에 기증한 물품들도 있겠네요?"
이에 루이즈가 물었고, 그 물음에 가게 주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귀한 물품들이 몇 있었고, 그들을 하미르 역사 박물관 등지에 보낸 전적이 있음을 밝혔다. 그 이후로 그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가씨들, 혹시 이런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나?"
그리고서 그는 주머니에서 어떤 종이를 꺼내서 나를 비롯한 이들에게 보여주려 하였다. 다름 아닌 어떤 유물의 그림으로 금색을 띠는 화려한 도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십자가 형태의 도검의 자루 끝과 자루의 십자 가드에 보석이 박혀있기까지 했다.
"이런 물건을 어디에선가 얻어온 적이 있어. 원래는 검은 물질로 칠해져서 검게 물든 검인 줄 알았는데, 물질을 닦으면서 이런 금색 칼날이 드러난 것이지."
"날까지 순금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에요?" 이에 루이즈가 바로 놀라면서 묻자,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는 않아." 라고 답했다. 그에 의하면 칼날 부분은 도금되어 있었으며, 자루는 순금이었다고 했다. 아무튼, 그 보물은 하미르 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그래서 하미르 박물관에 가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실제로 그 실물을 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 이후, 잔느 공주가 루이즈에게 물었으나, 루이즈는 그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곧, 그는 세나의 모습을 보더니, 세나 등이 가진 도검에도 보석 같은 것이 박혀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루이즈의 물음에 대신해서 답했다.
"그것은 마력이 담긴 결정의 일종이에요. 그런 결정은 가공을 통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실제로 귀한 물건인 보석과는 격이 다르기는 하지요."
그 무렵, 현관문이 열리면서 어떤 사람이 들어왔다. 이전에 보았던 고양이 소녀 그리고 소리 즈음의 체격을 가진 소녀로 의상 부분이 감색을 띠는 가정부의 복장을 하고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쓴 감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소녀는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닫고나서 곧바로 가게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
"잠시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소녀가 공손히 인사를 하자, 가게 주인이 "그래, 수고했어." 라고 말했고, 이어서 소녀는 주방으로 가서 일을 마저 돌보겠음을 밝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내가 그 소녀에게 잠시 시선을 옮기다가 다시 가게 주인을 보면서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구인가요?"
"아아, 얼마 전에 이 가게로 들어온 애야, 제 발로 들어와서 봉급도 받지 않으며, 가게에서 일을 해 주고 있어. 그래서 아까 전에 보았던 그 고양이 여자애와 함께 가족으로 받아들였지. 밖에서 이런저런 일을 봐 주기도 하면서 집안에 도움을 주고 있지. 이름은 사라 (Sarah) 라고 해."
그리고서 가게 주인은 사라라는 소녀에 대해 탐파와 함께 가게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일 수도 있어서 가게 일에 관해 이것저것 조금씩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탐파도 그렇고 사라 역시 어린 아이들이고, 그 역시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가르치는 정도이지만 차근히 잘 가르쳐서 내가 떠나간 이후에도 가게가 유지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가게의 미래라 할 수 있는 분들이로군요."
"그런 거지. 사실, 그 아이들이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어. 나는 그냥 오래 머무르는 식객이지, 애초에 이 행성계의 종족도 아닌 걸, 뭐."
세나의 물음에 가게 주인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사라는 행성의 거주민-나와 같은 샤하리아 출신이라 했다-인 만큼, 행성에 자리잡은 가게의 주인으로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하기도. 그러면서도 사라는 성정이 정숙한 이로 활발한 분위기를 보여줘야 할 가게와는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어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줄 이로 탐파 역시 필요해서 그에 대한 가르침 역시 소홀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분 모두 가게 주인으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후, 세나의 물음에 가게 주인이 답했다.
그 이후로 가게 주인은 자신은 잠시 안방에 있겠음을 밝히고서 안방으로 들어갔으며, 그 대신으로 이전에 언급된 탐파 그리고 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이후, 탐파와 소리가 놀이를 하나 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리하여 판상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게임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게임 류에는 세나도 관심이 많았기에 세나는 바로 참가했으며, 루이즈와 나에티아나도 같이 참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탐파의 주도 하에 이런저런 게임을 해 보기 시작했다.
"이런 게임에는 별로 흥미를 갖고 계시지 않은신가 봐요."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 열심히 하는 이들도 있는데 굳이 저까지......."
이후, 가게 근처의 어느 건물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나의 우측 곁에 잔느 공주가 다가와서 물었고, 그 물음에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 이후, 잔느 공주는 나에게 혼자였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조용히 그랬다고 답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친구와 헤어진 이래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샤하리아에 있던 옛 학교 친구와도 아직은 가끔이나마 연락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는 해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 학교에 졸업하고 천문대에 들어가기 전, 천문대를 떠나고 난 이후...... 그 시간 동안에는 늘 홀로 살았지요."
대답을 하면서도 나에게서 조용히 쓴 웃음이 나왔다. 이런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늘 뭔가 틀어진 길을 걸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자조의 감정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방금 전의 소리 양, 어릴 적 친구 분이었다고 하셨죠?"
"예, 하지만 오래 전에 헤어졌어요. 지금은 저를 잊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 아이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그 소리 그 자신인지, 아니면 제 기억 속에 남은 소리의 사념이 실체화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지요."
이후, 나에티아나의 물음에 내가 조용히 답했다. 그 이후, 나에티아나는 뭔가 생각난 바가 있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아르사나 님을 찾아온 것이 아닌데." 라고 말하고서는 곧바로 치마의 오른쪽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나를 찾아온 이유를 알렸다.
"아르사나 님, 한 가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뭐지?" 나에티아나는 나에게 한 가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그것을 보여달라고 말해 보았다. 그러자 나에티아나는 곧바로 나에게 손바닥 크기만한 종이 하나를 건네 주었다. 얇은 종이로서 분명 종이였지만 내가 아는 종이와는 재질이 약간 다른 듯한 것이었다. 그 종이에는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나의 가족을 묘사한 흑백의 그림으로 상단에는 부모로 추정되는 성인 남녀가, 하단에는 자식들로 보이는 3 명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하단의 인물들 중 좌측의 인물은 남성, 우측의 인물은 여성인 듯해 보였다.
하단의 가운데에 그려진 이는 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가벼운 셔츠와 멜빵 바지를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외견만으로는 성별을 판별한 방법이 없었다 - 일반적으로는 남자아이라 할 수 있어 보였지만, 여자아이를 그렇게 꾸며도 그럴 듯한 모습이 나오기 때문 (소리를 처음 만났을 때, 짤막한 머리카락과 여자아이가 일반적으로 착용하는 복장을 갖추지 않았기에 처음 보았을 때, 남자로 여긴 적이 있었다). 멜빵 바지를 입은 어린이의 모습을 발견한 이후, 나는 한 동안 그 어린이의 모습에 시선을 기울이고 있었다. 복장 이외에는 별 것 없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린 아이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 무슨 그림이에요?" 내가 조용히 묻자, 나에티아나가 답했다, 어느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으로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라 했다. 비차그리 (Vicagri) 혹은 포토그라피아 (Fotografia) 의 일종으로 가족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낸 것. 다만, 외형은 온전히 묘사했지만 색깔은 온전히 묘사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유난히 한 사람의 모습에 시선을 계속 집중하시고 계신 것 같아요."
"...... 뭔가 생각난 것이 있어서......." 그러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서 나에티아나에게 세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잠깐 보고 오라고 청했고, 이에 나에티아나는 조용히 그런 나의 요청에 응하고서 가게 쪽으로 다가가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내 곁으로 다시 돌아와서 알렸다.
"지금 한참 게임에 열중하시고 있어서....... 아무래도 세나 님을 불러오는 것은 무리......."
"알겠어요." 그러자 나는 바로 그렇게 답했다. 내가 세나를 불러 무슨 분위기의 이야기를 할지 바로 알아차렸던 것. 그리고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느 공주에게 세나는 밤 늦은 시간에 내가 조용히 부르겠음을 알렸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나에티아나는 내가 무슨 이유로 세나를 부르려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이후에 세나 등이 행하는 게임을 구경하러 가겠음을 밝히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이에 나는 "알겠어요." 라고 답하며 그를 떠나 보내려 하였다.
"잠깐, 공주님, 그림은 가지고 가셔야지요!" 그러다가 곧, 나는 잔느 공주를 불러서 내가 손에 들고 있던 그림을 건네려 하였으나, 잔느 공주는 그런 나에게 그림은 내가 계속 갖고 있다가 세나를 만나면 그 때, 건네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에도 나는 계속 가게 근처의 벽에 기대어 서 있다가 발을 조금 쉬게 할 생각으로 잠시 앉아있으려 했다. 그러다가 곧, 나에티아나가 나에게 건네어서 세나에게 전해달라 부탁했던 그 그림을 두 손으로 들며 그 그림을 자세히 보려 하였다.
그림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어린 아이.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어 보였던 아이의 멜빵 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고는 했다. 다름 아닌 그 때,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세나가 떠올라.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 때, 내가 했던 혼잣말이었다. 그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 세나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던 것. 당시에 나는 그 아이가 세나와 닮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썩 닮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계속 세나의 모습을 자꾸 연상하고는 했었다.
그 무렵이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였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결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놀라면서 그간 보고 있던 그림을 왼쪽 주머니에 넣은 다음에 고개를 들고 나를 부른 이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감색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이로 엷은 하늘색을 띠는 소매 없는 상의와 짤막한 치마를 입었으며, 다리의 대부분을 감색 천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머리에는 하늘색 모자를 썼으며 오른손에 길다란 지팡이, 그 끝에 푸른색을 띠는 결정이 박히고 그 양 옆에 하얀 날개 모양 장식을 가진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던 소르나였다.
"소르나도 여기에 온 거야?" 그 모습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나며 그에게 되물었고, 이에 소르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게 됐다고 답하고서 원래는 프라에미엘을 만나려 했지만 배가 운행하지 못하게 되어 하야라 항구에 계속 머무르는 중임을 밝혔다.
"너라면 마법을 통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도 늘 마법에 의지하며 살 수는 없잖아." 내가 묻자, 소르나가 답했다. 그리고서 그는 잠시 가게 쪽을 살피더니, 다시 나를 보려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간 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보여달라고 한 것이었다.
"이거야." 그러자 나는 다른 말 없이, 주머니에서 그간 내가 보고 있던 그림을 보여 주고서, 나에티아나가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건네준 것이었다고 그 그림에 대해 알리고서 소르나에게 한 번 보겠느냐고 물었다.
소르나가 다른 말 없이, 나의 물음에 응하자 그에게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건넸고, 그러자 소르나는 지팡이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그 종이를 받아서는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가만히 보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소르나는 나에게 그 그림을 돌려주고서 조용히 말했다.
"이 그림, 본 적이 있어."
"그래?" 그리고 내가 정말이냐고 묻자, 소르나는 이전에는 세나가 갖고 있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언제 자신이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새 자신이 갖게 되었으며, 늘 소지하고 있으면서 그림 속의 사람들을 기억하려 했었음을 밝혔다.
"세나 씨의 말씀에 의하면 이 그림, 실제로 존재했던 어느 일가의 사람들이었대."
소르나는 세나로부터 그 그림 속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어느 가족의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을 밝혔다. 이후, 그는 나에티아나를 대신해 내 왼편 곁에 있으면서 지금의 지브로아 일대에 있던 어느 도시에 거주했던 이들이었다는 이야기도 이어서 들을 수 있었다고 나에게 알렸다.
"지브로아라......." 그 지역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행성의 운명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일상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런 사람들의 목숨을 노렸던 '괴물' 들과 그 '괴물' 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 학살, 그리고 재앙 이후에 나타난 옛 시대 사람의 사념이 실체화되었을 불행한 이들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나는 어쩌면 그 가족들 역시 그런 불행한 시대에서 어떻게든 삶을 이어갔을 그런 사람들 중 일부였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세나가 그 가족과 깊은 인연이 있어서 그 그림을 계속 갖고 있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것보다는......."
나는 그 가족들 역시 지금에 이르러 지브로아 인근 해역의 바닥에 가라앉았을 도시에서 삶을 이어가다가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라 여기었다. '괴물' 에 의해 희생되거나 아니면 '괴물' 의 앞잡이가 된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했을 것으로 여기었던 것. 그런 가족의 일화를 알게 되었기에 세나가 그 가족의 행복했던 시절을 묘사했을 그림을 계속 품고 있으면서 그들을 비롯한 희생자를 기리고 있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그러하였을 거야." 그러자 소르나가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어 답했다.
"세나 씨께서는 이번 일에 아마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실 거야. 비록 너에게 지금 바로 그것에 대해 말하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리고서 그는 이전에 자신이 그와 함께 있을 때에 이런 말을 들었음을 밝혔다.
그러더니, 그는 이전에 자신이 세나와 자신에게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세나 씨께서 나에게 그림을 보여주셨을 때의 일이야." 그러더니, 그는 세나가 자신에게 그림을 건넨 이후, 자신이 그 그림을 보고 있을 무렵, 한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환수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천문대에 오시기 전에 세나 씨께서 가브릴리아 일대를 돌아다니신 적이 있으셨다고 하더라. 너를 만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고 했었는데."
"그랬었나?" 내가 세나를 처음 만났다가 헤어졌을 때와 천문대에서 세나를 다시 만났을 때에는 상당히 긴 시간적 간극이 있었다. 무나일에서 나와 헤어진 이후, 세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무나일을 떠나 각지를 여행하며 지냈다고 하는데, 환수들은 그 도중에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소르나는 나에게 세나가 자신에게 내가 천문대에서 보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환수들을 어떻게 가브릴리아에서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갑주 형태의 환수는 처음부터 소환할 수 있었다고 했었지?"
"응. 그것을 소환할 수 있는 수단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대. 다만, 가브릴리아에 처음 왔을 시점에서는 환수에 영혼이 없어서 환수를 소환할 수 없었다고 해. 환수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소환사의 의지에 감응할 수 있는 영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들은 적 있어, 그 영혼이 없어서 소환을 하지 못했다고."
이후, 나는 한 가지 아는 바가 있어서 소르나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것에 대해 언급을 했고, 이에 소르나는 맞다고 화답했다. 원래는 영혼을 가진 병기의 일종이었는데, 자신이 모처에서 가져오면서 갑주의 주인인 영혼을 떼어놓은 채로 갑주를 가져간 탓에 갑주를 소환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갑주의 주인이 될 영혼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그러다가 가브릴리아에 오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렇게 갑주형 병기를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은...... 역시, 그 영혼을 찾았기 때문이겠지?"
이후, 내가 묻자, 소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그 이후로 세나는 물, 불, 대기의 환수를 찾아냈고, 그렇게 4 종의 환수를 거느리게 된 것이었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 도중에 내가 물었다.
"대지의 환수는 원래 모습은 아니지?"
"맞아." 그러자 소르나가 답했다. 원래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갑주의 특성과 맞는 영혼이라 하여 환수의 영혼을 세나가 갑주에 깃들게 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후, 나는 벽에서 떨어진 길의 한 곳에 서 있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고, 소르나는 그런 나와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도중에 소르나는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세나가 겪었다고 했다.
"세나 씨께서 환수와 만났을 때, 처음에는 환수의 본능에 의해 환수가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환수를 제압한 이후에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환수들이 세나 씨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대지, 대기 그리고 불과 물의 환수들을 거느리게 되었다고 했었어."
"한 번 전투 이후에 바로 환수가 따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했는데."
"맞아." 그러자 소르나가 답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환수를 한 번 제압했다고 해서 소환사가 환수를 온전히 거느리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힘으로 제압해서 억지로 따르게 하면, 한 번 패배를 겪은 환수는 그 이후에 복종하게 되지만 당장에는 진심으로 소환사를 추종하는 것은 아니며, 소환사가 약해질 기회를 노리기에 그런 환수를 계속 거느릴 수 있으려면 그런 환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배운 바 있으며, 그것은 어렵고, 때로는 위험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세나의 환수들은 한 번 패배를 겪고, 세나를 따르게 된 이후부터는 진심으로 세나를 따르고 있으며, 배반의 의사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한 가지 또 신기한 현상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예의 그림 있잖아. 원래는 아래쪽 가운데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제외하면 그 모습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대."
"그랬었어?" 이에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분명 내가 보았던 그림은 색이 없었을 뿐, 상태는 확실히 온전했고, 망가진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소르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의 심경을 알아냈는지, 나에게 "놀란 것 같네." 라고 말하더니, 자신도 세나가 갖고 있던 그림을 처음 보고, 그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듣자마자 많이 놀랐었다고 말했다.
소르나가 들은 세나의 이야기에 의하면 원래 그림은 하단 가운데의 어린 아이를 제외하면 검은 그을음 같은 것이 잔뜩 묻어 씻어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그림을 발견했을 때에는 어린 아이 주변에 무엇이 있었는지 드문드문 남은 흔적을 더듬으며 어떻게든 알아내려 한 적도 있었다고-사람의 흔적은 남았기에 형체들의 정체가 사람이었고, 그 형체들이 원래는 어린 아이의 가족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러다가 환수들을 하나씩 자신의 편이 되도록 할 때마다 한 부분씩 검은 그을음이 녹아내리며 그림의 원래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
"환수를 하나씩 자신의 편이 되도록 할 때마다 한 사람씩 본래 형상이 드러난 것이지?"
"맞아." 이후, 내가 묻자 소르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소르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그 이후에 나에게 다시 그림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가야 하겠다고 말하고서 남은 이야기는 세나를 만났을 때, 그 때에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나를 등지는 방향-동쪽 방향으로 일행이 그간 걸어가던 방향이자 가게를 지나쳐 가는 방향이었다-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 때, 발걸음을 옮기면서 작별 인사를 하려는 소르나를 내가 붙잡으려 하였다.
"잠깐, 그 전에 한 가지 할 일이 있어." 그리고서 나는 그에게 한 가지 해야할 일이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소르나는 정해진 시간 내로 가야할 곳이 있다면서 이미 꽤 시간이 지체된 상태임을 밝히고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급히 동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이후, 소르나는 이러한 작별 인사와 함께 동쪽의 먼 저편으로 떠나갔다.
"아르사나 씨, 거기서 뭐 하세요? 세나 씨께서 찾고 계세요."
그렇게 소르나를 떠나 보낼 무렵, 뒤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느 공주의 목소리였다. 내가 꽤 긴 시간 동안 밖에 나가있는 것에 세나 혹은 잔느 공주가 우려를 표하면서 나를 찾으려고 나왔던 모양.
"세나가...... 알았어요. 갈게요." 그러자 나는 다른 말 없이, 잔느 공주의 요청에 응해 그를 따라 다시 가게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렇게 잔느 공주를 따라 가게로 돌아가다가 가게의 입구에 이르렀을 즈음 내가 물었다. 지금 소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 그러자 잔느 공주가 잠시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나에게 뜻밖이라면 뜻밖이라 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소리 양은 잠깐 밖으로 나갔어요. 세나 씨와 루이즈가 경기를 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심심해져서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대요."
"그래요......?" 사실, 소르나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그와 함께 가게의 내부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리라는 아이가 가게에 일행과 같이 있음을 알리려 했던 것. 소르나 그리고 소리의 관계에 대해 의심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소르나가 급히 떠나버려서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후, 나 혼자서라도 소리의 모습을 보려고 했었는데, 소리의 모습이 기가 막힌 시점에서 보이지 않게 된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미심쩍은 사항이라면 몇 있기는 했었다. 예컨대, 이름의 유사성이라든가. 하지만 이름의 유사성 정도로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다, 라는 식의 판단은 결코 옳지 않다. 당장에 세나, 세니아라든가, 프레드, 알프레드 노인과 같은 이들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 이외에도 몇몇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다, 예컨대 소르나를 너무 잘 아는 듯한 태도라든지. 더 나아가, 소르나와 막 헤어진 상황에서 소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전부터 나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 공존하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의외로 큰 사항이라 생각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소리 그리고 소르나에 대해 더 이상 깊이 의심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내가 행여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현관문을 통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여전히 게임에 열중하는 세나 그리고 루이즈 등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당시 세나의 표정은 평상시와는 상당히 달랐지만, 이런 모습을 한 두 번 보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놀랄 거리는 아니었다. 얌전한 아가씨 같은 이였지만, 세나는 정말로 승부욕이 강했다. 배구를 비롯한 운동 경기를 할 때에도 그렇고, 이런 판상 게임을 할 때에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은연 중에 그런 기질을 상당히 잘 드러내고는 하였다. 이전에 샤트란즈 (Shatranj) 를 즐길 때에도 그랬다. 나와 대결할 때에는 이런 게임에는 재능이 없어 도저히 잘 할 수 없었던지라 손쉽게 이겨서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프라에미엘과의 경기에서는 짜증을 내고 있음을 얼굴에 드러낸 적이 있다.
"나에티아나 님으로부터 들었어요. 왕을 직접 쓰러뜨리는 게 왜 나쁜 것이냐고 물어보신 적 있으셨다고 했는데, 사실인가요?"
"맞아요, 사실이에요." 이후, 잔느 공주가 게임을 지켜보는 나의 왼편 곁으로 다가가서 묻자, 바로 그렇게 답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약간은 쓴 감정이 잠시나마 밀려왔다. 당시에 나는 샤흐의 규칙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지라-왕성 진입 (Le Roque) 정도만 겨우 알았고, 통행 도중 처치 (En Passant) 등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었다-, 세나를 이기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거의 이길 뻔하신 적도 있지 않았나요?"
"...... 그 때, 세나가 저에게 뭔가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 당했지요."
잔느 공주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일부러 패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왕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무승부가 났던 것. 정확한 사유는 샤트란즈의 규칙에 의하면 '교착에 의한 대의 상실 (L'Impasse)'.
"세나 님은 오래 전부터 이런 류의 게임을 해 본 것 같아요."
"그렇군요." 잔느 공주는 이후, 그에게 세나의 과거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나라고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와 인연을 맺은지는 얼마 되지는 않았고, 그가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제대로 지켜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음에도 그가 오랫동안 특정 게임을 즐기고, 게임에 대한 강한 승부욕과 자존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린 것이다. 샤트란즈라는 게임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생소하게 여기면서도 이후에는 어떤 게임인지 바로 알아차리는 모습도 보였기에, 이를 통해 그의 통찰력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 다만, 샤트란즈에 대해서는 그것은 고문명 시대에서부터 널리 알려졌던 만큼, 고문명 시대의 사람인 그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기는 했다.
세나가 즐겨하던 취미 활동은 내가 그를 처음 천문대에서 만났을 때에도 나름 익숙하게 잘 하던 것이고, 한 두 번 정도 해 본 수준이 아니었던지라 과거에도 그런 활동을 많이 해 봤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아마 그와 취미 활동을 같이 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 정도였지만.
- 그가 누군가와 취미 활동을 같이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사유가 있다면 샤트란즈에서 세나는 늘 하얀색을 고집했던 것으로 그 모습을 보며, 검은색을 늘 선택했던 이가 있었으리라 여긴 것이었으며, 그를 통해 세나가 과거에 했던 일이 샤트란즈에서 세나가 하얀색을 선택하는 것과 더불어 세나의 유난한 승부욕과도 관련이 있으리라 여기었었다.
게임에서 세나는 기어이 마지막에 루이즈와 대결했을 때, 이기면서 경기를 끝냈다-그 모습을 지켜보며, 탐파가 조용히 박수를 쳐 주었다- 탐파 그리고 사라에 의하면 이미 소리는 세나에게 몇 번씩이나 이겨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 이후 다른 무언가를 하다가 밖으로 나갔다는 모양.
그렇게 게임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할 무렵, 뒷문을 통해 소리가 다시 들어왔고, 탐파가 소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후, 소리는 탐파, 사라 등에게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또, 세나, 나에티아나 등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어서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런 소리의 모습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고 있었다.
게임을 마치고 일행이 언제까지 가게에 머무를 수는 없었던 만큼, 자리를 스스로 정리한 이후에-자리 정리에는 나도 나섰다- 밖으로 나갔다. 소리는 탐파, 사라와 함께 가게 주인의 곁에서 가게를 떠나가는 일행을 배웅해 주고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와 주기를 바랄게." 가게 주인이 그렇게 인사말을 건네자, 세나가 환하게 웃으며 그런 기회가 올 수 있기를 바라겠다고 말했다. 나 역시 가게 주인의 인사에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오도록 하겠음을 밝히고서 아이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 참, 소리가 그러더라, 너는 꼭 여기로 다시 올 거라고."
"그래요?" 가게 주인이 건네는 말에 나는 놀라면서 정말이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가게 주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내가 가게에 없을 즈음에 그로부터 그런 말이 나왔었다고. 그리고 정말로 오게 된다면 나 혹은 탐파, 사라에게 인사말 정도는 건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할게요." 그러자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답했고, 그 이후에 소리의 모습을 잠시 보고 난 이후에 가게 주인에게 내가 가게를 다시 방문했을 때, 소리의 모습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가게 주인 역시 그것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그 때만큼은 소리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묘하게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목걸이를 소리로부터 건네 받고 세나를 비롯한 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도 잠시나마 구경해 보고서 가게를 떠난 이후, 나를 비롯한 일행은 세나, 잔느 공주를 비롯한 일행에 이끌려 주변의 가게들을 둘러보고는 했다. 도중에 잔느 공주가 간식 거리를 원하는 모습을 보여, 세나가 간식 거리를 사 주기도 했다. 나는 딱히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다들 먹는 것에 나라고 빠질 수는 없었던지라 나도 한 개는 얻어 먹었다. 그 때 먹었던 것은 생선 모양의 빵으로 안에 크림이 가득 채워진 것이었다.
"혹시 이런 빵에 생선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냐고 생각하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요, 전혀." 그러자 나는 바로 그러한 적 없다고 답했다. 암만 슈라일 호수가에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았다고 해도, 한 번씩은 슈라일 등지에 놀러 갔었고, 그래서 알 것은 다 알았다. 그 정도 즈음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소리판을 취급하는 곳도 있었으며, 그 곳에서 음악을 잠시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 곳에서는 손바닥보다 약간 크고 여러 빛을 내며 반사하는 아름다운 원반들도 있었지만 여타 가게들에서 보았던 것들처럼 그 원반들은 그 곳에서도 장식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워낙 흔한 탓에 제법 저렴했지만 굳이 그 곳에서 그런 물건을 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가게들을 둘러보고 난 이후, 날이 저물 무렵, 나는 광장으로 돌아가자고 청했고, 그러면서 나에티아나, 카리나, 세니아 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말하면서 먼저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 광장으로 가고 있었으나, 세나가 광장으로 가자고 청하면서 다른 이들 모두 나를 따라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는 그 때, 나를 비롯한 일행을 따라오는 이들이 있었다. 탐파와 사라였다.
"사라는 대체 왜?" 그 때, 가정부 소녀인 사라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하고서 내가 놀라면서 일행에게 묻자, 탐파가 그런 나에게 이렇게 답했다.
"아저씨가 말하는데, 언니들 따라가도 좋다고 했어."
그리고서 탐파는 나를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가 말하길, 상점 주인이 탐파가 세나를 비롯한 이들을 따라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탐파로 하여금 일행을 따라가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상점 주인이 자신 역시 탐파 그리고 일행을 따라 나서면서 집 바깥 세상을 체험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탐파, 사라 등을 이끌고 다시 광장 쪽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때, 광장 부근을 오가고 있던 나에티아나가 나를 보더니, 날갯짓을 하면서 굉장의 서쪽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카리나, 세니아를 향해 나아가서는 뭔가를-아마도 나를 비롯해 동쪽 길목으로 갔던 이들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목소리를- 말하고 있었고, 이후, 세나가 앞장서서 광장 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이자마자 카리나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세나를 맞이했다.
"세나, 별 일 없었겠지?" 이에 세나는 "물론이지요." 라고 환하게 답을 했다. 그 후, 세나의 곁으로 탐파, 사라가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자마자 놀라면서 그 아이들이 누구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는 동쪽 거리에 있던 가게에서 만난 아이들임을 밝히고서 가게 주인의 요청에 따라 일행과 동행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그 후, 세니아가 카리나의 곁으로 다가오고, 그렇게 광장의 한 곳에서 다 모이게 된 이들 주변을 오가면서 탐파가 나를 비롯한 이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언니들, 언니들은 이제 뭐하실 거예요?"
그러자 세나는 탐파의 앞에 서서 오른손에 마력을 일으켜, 그것으로 구체를 생성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런 세나의 우측 곁에 서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려 하였다. 그가 무엇을 위해 공을 생성하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나, 너...... 애들한테는........" 그러자 세나는 나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이더니, "알겠어요." 라고 화답했다. 그 후, 내가 그로부터 마력으로 생성한 공을 가져가자, 세나는 곧 그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앉으면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함께 달리기부터 해 볼까?"
"좋아요!" 그러자 탐파가 바로 오른팔을 높이 들며 화답했다. 그리고서 사라에게 같이 달리기를 해 보겠냐고 물었지만, 사라는 오른손의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절의 의사였다. 사라는 어릴 때부터 가사 일에 전념했던 아이라 했으니, 종일 뛰어다니는 것은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닐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사라에게 다가간 이후에 그의 눈앞에 앉아서는
"우선 언니들이 어떻게 노는지 지켜봐 주지 않을래?"
라고 요청을 했고, 이에 사라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나를 따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나는 잠시 탐파를 데리고 해안가에 있겠음을 밝히면서 해안가 쪽으로 나아갔고, 이에 카리나가 알겠다고 답한 이후에 세나 그리고 탐파를 우선 떠나 보냈다.
- 그러는 동안, 나는 사라가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기대해 보았지만 사라는 그 동안에도 목소리 하나 내거나 하지 않았으니, 그런 사라의 행동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었다.
카리나는 세나가 생성하고 내가 들고 있던 공을 활용할 방법에 대해 한 동안 고민을 거듭했던 것 같다. 그 이후, 그는 잠시 동안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한데 모여 공차기 놀이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기둥을 두 지점에 생성해서 공이 기둥에 부딪치거나 기둥 뒤쪽으로 넘어가면 승부가 결정나는 형태의 놀이를 하자는 것. 공차기 놀이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관계로 일단 나는 카리나에게 해변 쪽으로 가자고 청했다.
그리하여 세나, 탐파를 제외한 일행이 모래 해변의 광장과 가까운 한 지점에 이르자마자 내가 기둥 두 개를 내가 생성해서 모래바닥의 서로 간의 간격이 대략 500 메테르 즈음 되는 두 지점에 놓고 서쪽 방향의 기둥을 나와 세니아가, 그리고 반대편의 기둥을 카리나, 나에티아나가 맡으면서 공차기 놀이를 하게 되었다. 잔느 공주, 루이즈는 사라와 함께 그런 나를 비롯한 4 사람을 지켜보는 역할을 맡았으며, 루이즈가 심판 및 점수를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면 시작할게요!" 루이즈의 외침과 함께 본격적인 공차기 놀이 아니 대결이 시작되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공이 기둥이 있는 쪽 너머로 나아가게 하면 점수를 얻는 방식. 다만, 공차기에 관한 놀이이므로, 어지간해서는 손으로 공을 잡아서는 안 되며, 너무 심하게 몸 싸움을 해서도 안 된다. 공격은 내가 먼저했다. 적어도 저들 중에는 내가 행동이 가장 빨랐다고 자신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세니아, 카리나와 정면에서 몸 싸움이 벌어지면 어찌될 지 몰랐다. 특히 카리나와 붙으면 일단 밀린다고 봐야 했기에 카리나는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를 썼었다.
공차기 놀이는 제법 오랫동안 했다. 서로가 서로의 기둥 쪽으로 공을 보내는 광경이 몇 번 반복되고, 꽤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한 사람이라도 지치면 그만두자고 청했고, 암묵적으로 나에티아나가 그만하자면 다들 그만하기로 했었다 (세 사람이 함께하면 몇 시간, 아니 하루 종일이라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티아나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아닌 것이 아니라, 나에티아나는 천사라지만 활동적인 편이었고, 신체 능력도 지속적으로 활 쏘기 훈련을 거듭하면서 가녀린 외관과 달리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물론 카리나, 세니아 등에 비하면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티,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하자고 말 해!"
카리나의 도발(?) 에도 나에티아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도 체력 단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으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놀이 아니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런 나에티아나에게 감탄하며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이 알아서 그만두었다.
"내티, 나는 네가 그런 이일 줄 생각도 못 했어."
경기를 대충 마치고, 4 사람은 광장으로 돌아가 한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분수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사라는 오른편에 앉은 내 곁에 앉았고, 잔느 공주, 루이즈는 해변에서 세나, 탐파를 맞이하려 하였다).그 중에서 왼편에 앉은 카리나가 나에티아나를 보며 그렇게 말을 건네었고, 그러자 나에티아나가 카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이제 알았느냐고 화답했다. 그리고서 다시 고개를 돌려 분수대 쪽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원래 모든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는 동안 하늘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미 서쪽 하늘의 끝에 도달한 태양은 그 아래로 들어가려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미르 동부, 하야라에 온 지도 꽤 시간이 지났음을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런 하늘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카리나, 세니아 등에게도 보이고 있었다.
"날이 저물고 있네, 그렇지?"
"응." 카리나가 묻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서 나에게 다음 날에는 지브로아 일대가 날이 맑을 것일지에 대해 세니아 등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답을 해 주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이들 중에서 답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으로, 카리나 역시 그렇게 기대는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 지브로아 일대가 날이 계속 흐린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이후, 카리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세니아가 그런 카리나에게 그렇다면 숙박은 어디에서 할 생각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예나의 비행선에서 신세를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그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계속 일행을 적극 도와주려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세니아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에 대해 뭔가 생각난 것이 있었는지 바로 오른편에 있던 나를 잠시 쳐다보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그 교수님께서는 아르사나를 아가씨라 칭했잖아,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이후, 세니아가 나에게 조용히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그것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기는 했지만, 그것마저 숨기려 했었다.
그 때, 사라가 잠시 나갔다가 내 곁으로 뛰어오더니, 바로 곁에 있었을 나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며 아무래도 사라가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인다고 여기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에 사라의 바로 앞에 앉아 그를 정면에서 바라보려 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사라, 무슨 일이니?"
'네 분이 오고 있어요.' 그러자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사라가 나에게 세나, 탐파 등이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와 함께 오고 있음을 알렸다. 그러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알았다고 화답하고서는 그를 맞이하러 가 봐야 하겠음을 알렸다.
- 그 무렵에 내가 가장 먼저 사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로서 상당히 여리지만 차분하고 때로는 싸늘함도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평상시에 말을 잘 하지 않아서인지 말 솜씨 자체는 조금 서투른 감도 있어 보였다.
"지금, 세나 등이 오고 있다고 하니까, 맞이하러 갈게." 이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서 카리나, 세니아에게 일어나서 광장으로 돌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러 가겠음을 알리고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해변 쪽으로 뛰어가려 하였다. 그 때, 카리나가 그런 나의 왼편 곁에 이르더니, 나보다 앞서 가려 하였다.
"잠깐! 나도 같이 갈 거야."
이후, 나는 카리나와 동행하면서 내가 있던 광장 일대로 돌아오는 세나와 탐파, 그리고 잔느 공주, 루이즈를 볼 수 있었다. 잔느 공주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나, 카리나를 보더니, 바로 세나, 탐파 등과 만나서 그들과 함께 있었음을 알렸고, 탐파가 무척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라서 같이 뛰어다니느라 조금 힘들었다고 말했다-말이 그렇지 꽤 힘들어 보였는데, 탐파가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았던 모양이다-. 잔느 공주처럼 세나 역시 조금 지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잔느 공주와 다르게 세나는 그렇게까지 지친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그럴 이도 아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두고 내숭이라 생각했었다.
그들과 마주한 이후, 카리나가 그들을 이끌고 광장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며, 나도 그런 그들을 따라 같이 광장 쪽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광장에 이르자마자 세나는 일행이 쓰던 자신이 마력으로 생성한 공을 찾더니, 그 공을 발견해서는 두 손으로 안았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그를 말리려 하였지만 나에티아나가 그와 함께 대결을 하겠다고 해서 그 대결을 일단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다른 이들은 주변 일대에서 두 사람이 대결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한참 동안 배구 대결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광장의 분수대 부근에 서 있으면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변을 둘러 보는데, 꽤 많은 이들이 모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료한 저녁 시간에 뜻하지 않게 재미난 구경 거리가 생겼고, 그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이 몰려온 것으로 보인다. 주로 아이들이 모였으며, 호기심 어린 눈길로 세나와 나에티아나가 배구로 대결을 펼치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 하지만 근처로 다가가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 같아도 함부로 접근하거나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공이 오가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 광경을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가만히 보고 있을 무렵, 나는 어느새 그 아이들 중에 낯설지 않은 인상의 여자아이가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짧은 감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하얀 옷의 여자아이, 이전에 보았던 그 아이가 틀림 없었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우측 근방에 서 있던 탐파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물었다, 소리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탐파, 혹시 소리는 집에 갔니?"
"집에 갔다옹~" 그러자 탐파가 답했다. 그리고 집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집에 간다고 해서 가게 주인이 보내줬다고 보다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나는 "그렇구나." 라고 답을 했다. 하지만 소리가 내 곁에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소리가 내가 있던 자리의 바로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또 보게 되었네." 소리가 나를 보더니 자그마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러더니,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음을 밝히고서 다 끝나고 나면 그 때 다시 내 곁으로 오겠음을 밝혔다. 그리고서 잔느 공주도 같이 오게 할 것이라 말하고서 그로부터 들어야 할 것이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는 소리가 또 무슨 꿍꿍이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으려 하는데, 그 무렵에 이미 소리는 내 곁을 떠나 있었다.
이후, 나는 탐파 그리고 사라가 있는 일대를 지나치려 하는데, 탐파가 그런 나의 왼팔을 손으로 붙잡았다. 이에 내가 놀라면서 왜 그러냐고 묻자, 탐파가 자신을 향해 돌아선 나를 올려다 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나와 같이 있자옹~."
그리하여 나는 탐파 그리고 사라의 곁에서 같이 경기를 구경하게 됐다. 나는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으며, 그러면서 사라를 끌어안고 내 앞에 앉도록 했다. 탐파는 그런 나의 우측 곁에 서 있으려 했다. 하지만 어린 고양이 소녀답다고 해야 할지, 내 주변 일대를 뛰어다니기도 했고, 분수대에 올라가려 하는 모습도 보여서 나를 긴장케 했다. 이후, 세니아가 그런 나를 보더니, 나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때의 미소는 평상시의 놀리는 듯한 미소가 전혀 아니었다. 내가 보이던 뜻밖의 모습에 대한 감탄의 미소였던 것 같다, 마치 '네가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어.'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좋은 어머니가 될 것 같아, 네 어머니처럼."
"그러할까?" 이에 나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기대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한 말이기는 해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카리나도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한 번씩 내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고 말하고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에이샤, 카티야 등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르기는 해도....... 너는 어머니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아."
"어머니? 내가?" 카리나가 나를 지켜보다가 건넨 말에 잠시 놀라면서 물었다. 이런 물음 자체가 나를 놀라게 했던 것도 있지만 다른 이도 아닌 카리나가 나에게 건넨 물음이라 더욱 놀라웠다. 카리나는 이런 말을 건넬 수 있을만한 사람 같지는 않았기에.
"뭐...... 그냥 그렇다고." 하지만 카리나는 더 이상 깊이 대답을 해 주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쪽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한 번씩 뭔가 번뜩이는 생각을 하고는 하지만, 그것을 깊이 이어가지 못하는 카리나다운 행동이기는 했다. 아마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 하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을 잘 보살필 수 있는 존재, 즉 어머니와 같은 이가 될 것 같다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할 만한 생각으로 그런 말을 건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거리에 꽤 흥미로운 구경 거리가 생겨서 그러한지, 제법 사람들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몰려 들었다. 그래봐야 10 여 명 정도이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을 법한 한적한 곳치고는 꽤 많은 편이 아닐까 싶기는 했다-다만, 이후에 인근에 거리 공연을 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 쪽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세나, 나에티아나는 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배구를 할 때에는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못했었지?"
"이전부터 그랬었어. 그러니, 공에 힘을 집중해서 날릴 때도 적지 않았지."
카리나의 물음에 그의 왼편 근처에 앉아있던 세니아가 눈을 감고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러자 카리나가 그런 세니아를 보더니, 세나의 공에 맞은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에 세니아는 그렇게 묻는 카리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도 맞은 적 있잖아." 카리나, 세니아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짓기만 하는 모습을 옆에서 잠시 바라본 이후, 다시 세나, 나에티아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보다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이는 두 사람을 서로 웃게 만들 수 있다, 세나가 날려보내는 공의 위력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한 동안 열심히 경기를 펼친 끝에 승부가 났다. 경기가 끝나갈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결정난 바 있었으니, 세나가 여러모로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세나가 경기에서 이기는 쪽으로 결정났다. 꽤 거칠게 경기를 이어가는가 했더니, 경기가 끝날 즈음에는 언제 서로를 향한 경쟁심에 매달렸느냐는 듯이 감정을 바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이후로 세나가 공을 들었다.
그 시점에서 사람들은 이후에 인근의 구역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고, 배구를 하는 이들 곁에는 거의 사람들이 남지 않게 되었다. 그 때, 나에티아나가 공을 든 세나를 보더니, 뜻밖의 제안을 그에게 건네려 하였다, 한 번 더 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아무래도 다시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 같으면 들어줄까 말까 잠시 고민할 것 같았는데, 세나는 그런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그들이 두 사람이 분수대 근처에서 다시 경기를 펼치고, 이제는 일행에 속한 이들-카리나, 잔느 공주 등-사라, 탐파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만 구경하고 있는 그 시점에서 나는 분수대 왼편의 한 곳에 소리가 여전히 뭔가를 바라보며-경기가 펼쳐지는 곳이 아니었다-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소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나에게 시선을 두거나 하지는 않았고, 괜히 말을 걸거나 할 필요는 없어 보여서 잠시 그 모습을 보고 난 이후에 두 사람이 다시 경기를 펼치는 광경에 다시 시선을 두려 하였다.
"가만 보면, 세나는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운동부터 시작해서 뭐든지."
그 때, 두 사람이 경기를 다시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카리나가 세나에 대해 뭔가 한 마디 말을 건네었고, 세니아 역시 그런 카리나의 말에 공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무엇이든 잘 하고, 또 열심히 했다는 것. 그 이후, 카리나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즈음, 세니아가 카리나의 왼편 곁에 와서 앉았고, 그 무렵에 카리나가 세니아에게 뭔가 말을 건네려 하였다. 세나에 대한 한 마디 말이었다.
"이전에 뭔가 중요한 일을 했던 것 같아."
"무슨 중요한 일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 그러자 카리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무슨 거리 공연을 하고 있는지 구경하려고 광장 우측의 한 곳에 자리잡은 거리 공연의 현장으로 다가가려 하였고, 그런 나를 탐파와 사라가 따라가려 하였다. 사라는 그래도 잔느 공주의 곁에 있으려 했다가 잔느 공주가 나를 따라가려 하자, 그런 잔느 공주를 따라가다가 탐파처럼 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잔느 공주는 앞서 가던 나의 몇 걸음 뒤에서 나를 따라갔다. 생각보다 탐파, 사라의 발걸음은 아주 빨랐다. 탐파는 묘족이라는 점을 감안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빠른 걸음걸이였다.
그런 두 아이들이 나의 곁으로 나아가자, 상대적으로 잔느 공주가 뒤쳐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잔느 공주는 몇 걸음 뒤에서 계속 따라가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금 늦게 도착할 따름이었다. 특유의 정숙한 걸음걸이와 함께 거리까지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서 어쩌면 잔느 공주는 걸음이 느려 뒤쳐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거리를 맞추며 걸어가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새 공연이 한창 이루어지는 현장에 도달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했지만 그래봐야 20 여명 정도. 도시에 100 여명이 몰리는 것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그 인파를 제치고 누가 공연을 하는지를 보려 하였고, 이후, 나의 눈앞으로 기타를 두 손으로 안은 채, 조용히 기타를 연주하는 어떤 연주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셔츠와 바지 차림을 한 검은 단발의 키 큰 엘베 족 여성으로 목소리도 제법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델바 (Delva) 족인가....... 델바 족 사람들 중에 저런 거리 공연을 이어가는 연주자들이 적지 않다고 하더라. 그런데, 엘베 족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더라.'
델바 족 :
머리카락이 검고 귀가 긴 이들은 과거에는 아르데이스의 주요 종족들 중 하나인 엘베 족의 분파인 델바 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델바 족은 엘베 족의 존재가 본격화되기 직전, 마법의 장막에 둘러싸인 '성역' 이라 칭해졌던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던 동족을 비판하며, 스스로 영역 밖으로 나간 이들을 칭하며, 이들의 거주지는 아르데이스 행성계의 지표면 곳곳에 흩어져 있으면서 수렵으로 삶을 이어가거나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며, 해안가에 마주한 이들은 어업으로 삶을 이어가기도 했었다고 한다. 거주지를 떠나 방랑하는 이들도 있어서 방랑 가수나 시인, 곡예단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엘베 족이 '성역' 을 폐지한 이래로 마나의 나무 씨앗을 뿌리며 행성을 정화시키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아르데이스의 초지대가 넓어지고 엘베 족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자연히 델바 족과의 교류가 많아졌고, 그것에 따라 엘베, 델바 족 간의 차이가 없어져 가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도 사실이지만 엘베 족들 중에서도 검은색을 비롯한 밝지 않은 색을 가진 머리카락, 피부를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았음이 알려지면서 애초에 구분의 의미가 거의 없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은 그들의 고유 영역에 거주하는 이들을 엘베 족으로, 그렇지 않은 이들을 델바 족이라 칭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그런 구분은 없어지게 될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여가수의 음악 연주를 바라보고 있을 무렵, 탐파, 사라가 그런 나의 왼편 곁으로 다가와 나와 함께 공연을 보고 있었다. 사라는 조용했지만 리듬에 맞춰 작게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였고, 탐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싫었는지 내 주변을 여기저기 오가기도 하고, 나의 등에 업히기도 했다. 생각보다 가볍기는 했지만 이미 내 키의 2/3 정도는 된 아이였던 만큼, 무게감이 없을 리는 없었고, 갑작스레 업히기까지 했으니, 제법 무게감이 느껴져서 나를 놀래켰다.
"내려가 줘라." 이미 업어줄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선 아이를 오래 업혀줄 수는 없었고, 그래서 내려가 달라고 말하니, 탐파가 다시 내려가기는 했다. 그 이후로 탐파는 나의 등에 업히지는 않았으나, 이후로 내 앞에 앉아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관찰하려 하였다.
그렇게 잠시 탐파와 아웅다웅하는 동안 나의 우측에 잔느 공주가 다가왔다. 그 이후, 탐파가 잔느 공주에게 업히고 잔느 공주가 그런 탐파를 업어주면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네요."
"처음에 하미르에서 공연 구경을 했으니까, 그런 것이겠지요?" 이후, 내가 묻자, 잔느 공주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는지 탐파가 그의 등에서 내려가고서 재빨리 잔느 공주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를 올려다 보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언니는 이런 공연을 자주 본 적이 없어?"
"저 분께서는 이제 막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시고 계신 것이니까."
그러자 내가 잔느 공주를 대신해서 답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세상에서 삶을 이어가다 보면 자주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탐파는 잔느 공주의 우측 곁으로 다가가 그를 향해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언니는 어떻게 이 곳으로 오게 된 거야?"
탐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질문이겠지만, 나와 잔느 공주에게는 다소 난감한 질문일 수 있었다. 잔느 공주는 다소 특이한 과정을 통해 이 세상의 지표면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그것을 이해하기에 탐파는 아직 어렸고, 또, 말해 주기도 복잡했다. 그래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암시를 약간 주는 방식으로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 주려 하였다.
"여기서 조금 먼 곳에 얼음 나라가 있었어. 저 분께서는 그 나라의 공주님이셨는데, 모종의 이유로 잠들게 되셨지. 그리고 먼 옛날에 있었던 그 얼음 나라가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잠자고 계셨다가 우연히 깨어나셔서 이 세상을 여행하시게 되셨단다. 그러면서 나를 비롯한 이들과 함께 하게 되신 것이고."
"그렇다면....... 언니는 공주님인 거야?" 그리고 내가 그 물음에 "그런 것이지." 라고 답을 하자마자 탐파는 다시 나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얼음 나라가 사라졌다면....... 그 나라는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얼음이 모두 녹아 사라진 거야?"
"그건 아냐." 그러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오히려 추위가 너무 강해져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돼, 얼음 나라를 떠나갔고, 공주만 남은 것이었다고 말했다-탐파는 아직 어린 아이였고, 이미 알 것은 다 아는 듯하기는 해도, 혹시 몰라서 '세상을 떠났다' 는 표현을 다소 우회했다-. 다행히도 탐파는 사람들이 얼음 나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 것 같다고 여기는 듯해 보였으나, 그런 나와 탐파의 모습을 바라보던 잔느 공주의 표정에서 잠깐이나마 어두운 모습이 보였다.
"탐파는 호기심이 참 많은 아이로구나." 이후, 잔느 공주는 싱글벙글 웃고 있던 탐파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을 걸려 하였고, 이에 탐파는 그런 잔느 공주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활짝 웃으며, "많이많이 그렇다고 해." 라고 답했다. 예쁘장한 외견 덕분인지 그 모습을 보며, 잔느 공주도 조용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서 잔느 공주에게 친구들이 얼마나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잔느 공주는 실상과 다르게 별로 많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함부로 이야기 해 줄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앞서 언급한 바대로 너무 복잡한 사연이 있었는데, 그것을 아직 어린 탐파 등에게 알려주기는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라는 것.
"탐파는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가게 주인 아저씨처럼 좋은 사람이 될 거야!"
이후, 잔느 공주가 건네는 물음에 탐파가 바로 그렇게 답했다. 가게 주인은 누가 보더라도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보니, 그를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그런 가게 주인처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나는 그것도 그에게는 참 좋은 일일 것이라 여기었다. 이후, 잔느 공주는 탐파에게 그의 가게를 물려받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열심히 배워서 아저씨가 있는 곳을 아저씨처럼 지키고 싶어!"
가게를 유지하는 것을 가게를 '지킨다' 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태생이 사냥과 싸움에 특화되어 있다는 묘족의 특성이 아닐까, 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 무렵, 사라가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다른 말없이 나의 왼편을 자신의 오른팔로 가리키려 하였다. 그러자 나는 "뭐가 있는 거야?" 라고 물으면서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서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 방향에 예나가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라는 예나가 나와 아는 사이임을 알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일행과 예나가 같이 있는 모습 자체를 보지 못했으니. 그럼에도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있다고 여기고, 나에게 만나볼 것을 청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예나는 나를 비롯한 이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는 않으며, 그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아직 말을 걸 때는 아닌 것 같아, 일단은 가만히 있자, 알았지?"
그러자 사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하고서 나의 곁에 서려 하였다. 그 때, 그런 사라의 모습을 보더니, 내가 그를 향해 이렇게 물어 보았다.
"업어 줄까?" 하지만 사라는 그런 나의 물음에 답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 때, 탐파가 사라의 우측 곁에 이르더니, 사라의 모습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의 바로 앞으로 다가가 나를 올려다 보면서 이렇게 말을 걸려 하였다.
"한 번 업어 줘. 아무래도 다리가 아픈 것 같지만 그것에 대해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평소의 탐파 같지 않은 제법 어른스러운 말에 나는 사라를 업어주기로 하고, 그를 두 손으로 안아서는 어깨 위에 올렸다. 사라도 탐파에 비해 가볍다고는 해도, 큰 차이 없이 제법 무거웠지만-그래봬도 내 키의 2/3 정도였다, 1/3 이 아니었다-, 그 정도 즈음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잠깐 하겠다고 했으니,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 있을 무렵, 예나가 그런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아이를 업어주는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낀 것인지, 감탄을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정부의 옷차림을 한 어린 소녀를 업고 있는 그를 향해 조용히 다가가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계셨네요. 두 분께서 배구하시는 곳에 계속 계실 줄 알았는데."
"다른 곳에도 가 보고 싶어서요." 그러자 나는 사라를 조용히 지면 위에 올려놓고서 대답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돌아선 이후에 나 역시 그를 그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답했다. 이에 예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러하셨군요." 라고 답을 하더니, 이어서 자신이 어떻게 공연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그간 동쪽의 해변가 근처에 있었어요. 계속 저 너머, 지브로아 해변 일대를 관찰하기 위한 일이었지요."
이후, 예나가 말하길, 그러다가 해변 근처의 마을에 뭔가 행사가 있는 것 같아서 잠시 그 쪽으로 다가가 본 것이라 하였다. 자신의 거점인 비행선에는 에오르 린, 리아 자매 그리고 리 셀린이 있음을 밝히고서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 쪽으로 와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지브로아 일대의 관찰은 에오르 자매 등이 하고 있는 거예요?"
"예." 그러자 예나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다시 그 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인데, 그들에게 계속 맡기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 여기었던 것.
"기왕이면 그 엘베 족 아가씨들께서 여기로 오시게 하면 안 되었을까요?"
그 때, 이전까지 가만히 있던 잔느 공주가 예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그에게 이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달리 대답을 못하는 예나에게 잔느 공주는 이런 공연은 그들이 더 보고 싶어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예나는 조용히 미안함의 말을 건네었다.
"그 점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이후, 예나의 목소리가 다시 변했다. 마치 질책을 가하는 듯했던 그 목소리가 다시 평상시의 온화한 목소리로 변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 것 같아요. 예나 교수님께도 분명, 이런 공연을 보고 싶을 때가 있었겠지요. 아무리 어른이라도 늘 여유 없이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이렇게 잠시나마 쉬고 싶어하는 심정은 이해가 가요."
그리고서 그는 예나를 보며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처음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놀랐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위해 계속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 같다는 이야기. 예나 교수님은 늘 여유롭고 편안하신 분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10 개 학위는 그래서 받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이에 예나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느낌이 묘하게 살짝 어두운 듯했다. 이후, 그는 공연이 펼쳐지는 모습을 향해 다시 돌아서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들은 10 개 학위를 수여받은 것에 무술 재능까지 있다는 저를 보며, 전지전능의 귀재라 칭하며, 감탄을 하고는 해요. 하지만 그들 중에서 무엇을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내달려야 했는지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
"....... 딱히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니었던 건가요?"
"그것은 아니에요." 잔느 공주의 물음에 예나가 답했다. 그리고서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이었고, 노력을 기울여서 그 지경에 이르기는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잔느 공주가 다시 예나를 향해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그러면....... 처음부터 이렇게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요?"
"......." 하지만 그 물음에 예나는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이후, 잔느 공주는 화제를 바꾸려 하였다, 샤르기스의 유적에서 발견된 이들의 명단에 '예나' 라는 이름이 있었음에 대한 것이었다. 잔느 공주는 그것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그 명단에 예나라는 이름이 있었어요. 알고 계시겠지요?"
"알아요." 그러자 예나가 바로 답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이라는 점이 딱히 놀랄 거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후, 예나는 잔느 공주에게 그 사람에 대해 이름은 '예나 강' 이라 했고, 잔느 공주의 옛 후배 학생이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맞아요, 그렇게 말씀드렸었죠." 이에 잔느 공주가 그렇게 화답했다. 그 이후, 이번에는 예나가 잔느 공주에게 물으려 하였다. 잔느 공주에게 자신이 그 '예나 강' 이라는 학생에 대해 그가 무엇이 되고 싶어했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음을 밝히고서 그것에 대해 알려줄 것을 부탁한 것이었다.
"그 예나라는 애 말이지요?" 이후, 잔느 공주는 곧바로 예나에게 그 '예나 강' 이라는 학생이 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리려 하였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대답을 듣자마자 가수가 되겠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아이돌 (Idol, Aydol) 이 되겠냐고 묻기도 했었지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되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 그랬었군요." 그러자 예나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시선이라도 잔느 공주를 향했던 예나가 잔느 공주를 향해 돌아보려 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 때만큼은 아무래도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이후, 예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자신의 거처에 있을 자매와의 연락이 닿았다고 말하고서, 곧 그들에게로 가야 한다면서 다급히 공연 현장을 떠나 해변가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뭐라 말을 걸려 하였지만 워낙 다급해 보여서 뭐라 말을 걸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갑자기 다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지만 그렇다고 다급히 떠나는 사람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고, 그리하여 그의 거처가 해변의 동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언젠가 그의 거처를 찾아 그를 만난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방금 전의 언니, 가 버렸네?"
"응, 갑자기 다급한 일이 생겼던 것 같아." 이후, 탐파가 나를 보면서 묻자,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중대한 일을 하시고 계신 와중에 잠깐 오셔서 그래.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 갑작스레 일어날 수 있게 마련이야. 그래서 쉬는 것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러면...... 맛있는 스테이크나 파인애플 샐러드 같은 것을 먹는 도중에 일이 생겨도 못 먹거나 할 수 있는 거야?"
"...... 그렇지." 탐파가 이후 건네는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가 경비대에 있을 무렵에 동료로 있었던 스테이크를 먹게 되어 좋아했던 사람이 있는데, 긴급 출동 사항이 생겨서 다 먹지도 못하고 뛰쳐나가야 했던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그 때, 사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지막하면서 여린 듯한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를 향해 공손히 돌아선 사라의 모습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그가 건네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무사히 돌아오기는 했어. 돌아오자마자 스테이크부터 찾더라. 스테이크는 다행히도 당시의 식당 아주머니께서 잘 보존해 주셔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됐든 무사히 먹을 수 있었어. 처음 먹을 때의 맛이 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때,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 줬지, 무사히 돌아온 것이 어디냐고."
이후, 나는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의 배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사라, 탐파 등에게 물었고, 그 쪽으로 한 번 가 보자고 청했다. 그리하여 사라, 탐파를 이끌고 다시 세나 등이 모여있을 곳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이번에도 잔느 공주는 나를 비롯한 세 사람과 약간 거리를 두고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 거리 간격이 벌어지거나 좁아지지 않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나와 나에티아나는 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기에 아이들도 가세해서 같이 하고 있었으니, 경기가 이전에 비해 더욱 활발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탐파 정도로 어렸지만 그럼에도 세나, 나에티아나 못지 않게 경기를 이어가려 하고 있었다.
"탐파는 저 아이들처럼 할 수 있어?" 그 광경을 보며, 내가 물었다. 그 아이들의 체격이 탐파 정도는 되었기에 탐파 역시 그들 못지 않은 운동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물음을 건네려 한 것이었다.
그렇게 묻기는 했지만 나는 탐파가 그렇다는 대답을 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못했다. 탐파 정도의 체격을 가진 아이들이 꼭 운동 능력도 저 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구나, 하면서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묘족인 만큼, 혹시나하는 기대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잠재울 정도는 못 되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를 다소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탐파는 이렇게 답했다.
"할 수 있어!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불러서 같이 해 보게 하고 싶어!"
"정말이야?" 이에 나는 놀라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탐파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후, 그는 앞에 있는 이들이 끝나고 나면 자신이 아이들을 불러서 같이 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심 안도를 했었는데, 혹시라도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다고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한 거냐고 물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그 대답을 들으며 사그라졌기 때문이었다.
"뭔가 걱정 같은 것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 때, 그런 나에게 어느새 나의 오른편 곁에 이른 잔느 공주가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일단 그랬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 솔직하게 밝히지는 않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저 불현듯 이전에 갖고 있던 고민 거리가 괜히 생각나서 괜히 걱정하고 있었던 것일 뿐이라 답했다. 그것을 잔느 공주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역시 그런 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는 마음을 놓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땅거미가 지기 직전까지 경기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래서 구경하는 이들도 이전에 비해 줄었지만 그래도 경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공을 주고 받다가 마침내 그 경기가 끝났다. 결과는 경기를 지켜보며,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세나가 이겼다. 하지만 나에티아나도 은근 분발을 해서 점수 차는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 동안 공을 주고 받느라 수고 많았어." 경기가 끝나고, 구경하던 사람들 그리고 경기에 참여한 아이들이 흩어져 돌아가는 동안 나는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의 앞으로 다가가서 수고했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쨌든, 상당한 시간을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공을 주고 받는 데에 들인 만큼, 일단 수고 많았다고 격려의 인사 정도는 해 주는 것이 예의였고, 그 예의를 보여준 것이었다.
날이 그렇게 덥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치열하게 공을 주고받으며 경기를 했었는지, 세나도 그렇고, 나에티아나까지 모두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거처를 마련해서라도 목욕을 하자고 말하고서 목욕을 위한 거처를 찾기 위해 나섰다. 그 때, 탐파가 내가 마을 거리를 향해 가는 모습을 보며, 어디로 가냐고 묻더니, 그 이유를 듣고 나서 나를 따라 나서기 시작했다. 자신도 같이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동행하는 탐파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미시 동쪽 항구 인근에 커다란 수영장이 있다는 것으로 유적지 한 가운데에 있던 벽돌로 둘러싸인 구덩이를 개수해 수영장으로 만들었으며, 겨울철이 아니면 상시 물을 채워놓는다고 한다. 근처에 몸을 씻기 위한 시설이 있다고도 하니, 그 곳을 이용하면 될 것이라고.
"그런 것은 어떻게 알았어?" 이후, 탐파에게 묻자, 탐파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어렸을 때, 거기로 자주 놀러가 본 적이 있어. 그래서 알았지~"
"그래?" 이후, 나는 직접 그 곳을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탐파는 맡겨 달라고 답하면서 앞장서서 마을 거리의 동쪽 길목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동쪽 길목은 탐파가 살고 있는 유물 가게가 자리잡은 골목길과 큰 길이 있는데, 당시의 탐파는 큰 길을 따라 뛰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 발로 뛰다가 나중에는 몸을 굽혀 팔과 다리로 고양이가 된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탐파는 그 때에 더욱 잘 뛰는 것 같았다.
그렇게 탐파가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하자, 나 역시 그런 그의 곁에서 뛰면서 그를 따라가려 하였다. 내가 달리는 모습에 탐파 역시 경쟁심이 생겼는지, 더욱 빨리 뛰려 하였다. 이전에 언급한 바대로 몸을 굽혀 마치 동물처럼 달리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내가 있던 하미시 혹은 하미르 동부 지역이라는 곳이 그렇게 큰 구역은 아니었다보니,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금방은 아니더라도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항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탐파가 도달한 곳은 마을의 교외 구역에 위치한 항구로서 작은 마을 구역이 근방에 위치한 소박한 어항으로 방파제와 등대가 자리잡은 그 너머의 절벽가 근처에 건물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과거의 유적처럼 보이는 그 건물이 먼 저편에 보이는 마을 구역의 한 곳에 이르자마자 탐파가 그 건물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그 건물 바로 앞에 수영장과 목욕 시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렸다. 그 이후, 그 건물을 자세히 보니, 거대한 연못이 하나 보이고 있었고, 그 근방에 작은 건물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것이 목욕 시설이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어떤 엘베 족 언니들이 여기서 목욕하는 것도 봤어."
"정말이야?" 그 이야기에 나는 바로 흥미를 느끼면서 그에게 정말이냐고 물었고, 이에 탐파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전부터 수영장이나 목욕 시설을 이용해 왔던 것 같다고 말하고서 잘하면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 그러면 그 곳에서 목욕을 하면 된다는 거지?"
이후, 내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탐파에게 그렇게 묻자, 탐파는 그러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서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고 청했다. 그리하여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방식으로 일행이 모여 있을 광장 쪽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탐파가 그런 나를 따라 나섰다. 탐파는 처음에는 걸었다가 이후에는 뛰어가기 시작했고, 이에 나 역시 뛰면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가능한 빨리 일행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다고.
"아르사나, 우리가 몸을 씻기에 괜찮을만한 곳을 찾았어?"
"탐파가 알려주더라, 이 마을의 동쪽 가장자리에 수영장이 하나 있고, 그 수영장 인근에 목욕 시설이 있대. 거기로 가면 될 것 같다고 하더라."
이후, 내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카리나가 나를 맞이하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서 나는 광장의 분수대 근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세나, 나에티아나 등을 불러서 어서 가작고 청하고서 이후의 일은 일단 씻고 나서 생각하자고 말했다.
"동쪽 가장자리라면 여기서는 꽤 오래 걸어야 하겠지요?" 그 때, 잔느 공주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구역 자체가 크지 않아 몇 분 정도 걸으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서, 탐파와 함께 먼저 이르렀던 하미시 동쪽 변두리의 어항 구역에 이를 수 있었다. 거기서 수영장까지 가려면 굽이진 항구의 길을 따라 또 걸어서 가야 했지만 길 자체가 그렇게 길지 않아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과거의 흔적만 남긴 채로 이끼가 자라나고 초목에 파묻힌 거대한 건물의 흔적 바로 앞에 굽이진 구름과 닮은 모양의 인공 연못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본래는 유적지의 일부였고, 그 곳 역시 이끼와 풀에 뒤덮혀 있었는데, 그것을 수영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수해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자주 물을 채우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다행히도 그 날은 운이 좋아 깨끗한 물이 채워진 수영장을 볼 수 있었다. 탐파에 의하면 물의 상태가 온전하면 목욕 시설도 온전히 쓸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일행은 수영장 인근에 있는 목욕 시설에서 목욕부터 하기로 했다. 수영장의 동쪽에 8 개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시설은 한 사람씩만 쓸 수 있기는 했지만, 시설 수가 많아 일행이-나, 카리나, 세니아, 세나, 나에티아나, 잔느 공주, 루이즈 그리고 탐파- 모두 이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일단 땀으로 젖은 몸을 시원한 물로 씻어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전에 비해 상쾌해짐을 느끼고 있었고, 다른 이들도 대략 그러하였던 것 같다.
인근의 수영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좋은 때라 수영도 하고 싶었지만 수영복이 구비된 것도 아니고, 시간도 늦은 탓에 수영은 하지 않기로 하였기에, 목욕을 마치고 난 이후, 일행은 다시 절벽가의 언덕길을 통해 마을 쪽으로 내려가려 하였지만, 나는 잠시 수영장의 모습을 둘러보고 있다가 오겠다고 하면서 그 곳에 남았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일행의 일원들이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리더 역할을 하는 카리나가 나를 향해 잠시 돌아서서는,
"언제라도 좋으니까, 꼭 내려 와~." 라고 당부의 말을 전한 이후에 먼저 내려간 이들을 따라 내려가려 하자, 나는 언덕길에서 돌아서서 다시 수영장으로 쓰이는 인공 연못을 향하기 시작했다.
연못을 비롯해 그 주변의 바닥까지 깨끗하게 정비된 듯해 보이는 수영장. 그 수영장에 있으면서 고개를 들어 수영장을 조용히 내려다 보는 어떤 건물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수영장과 같은 시기에 태어났을 법한, 수영장과 더불어 구 세계의 유산일 그 건물은 되살아나지 못한 채로 폐허가 되다 못해 이끼와 덩굴, 초목에 뒤덮인 채로 수영장 앞에 서 있었다.
'그간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서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
앞으로도 계속 어쩌면 영원히 그 신세를 지고 있어야 할 듯한 그 건물을 보며, 내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이 행성의 사람들은 구 세계 시대를 자신들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구 세계를 재현하는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는 않고 있다. 그나마도 한 때에는 '죄악의 시대' 라 칭하며 매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나마 요즘에는 그런 발언을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예전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바 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구 인류를 비방하는 이들은 이제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자연을 파괴하다 못해 자기 자신마저 자멸의 길로 내몰아 버린 구 인류에 대한 현 시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곳도 사실, 수영장과 그 주변 일대를 제외하면 초목에 삼켜진 폐허만 있을 뿐으로, 수영장도 원래는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놓여 있었으나,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재건, 개수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운예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운 좋게 되살아난 수영장과 그런 축복을 받지 못해 영원히 초목 속의 폐허로 남아있어야 할 것들을 둘러보며 마음 속에서 어떤 감정이 밀려왔다. 그 감정을 맛으로 표현하자면 그저 쓰다 못해 아린 맛이라 할 수 있을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목욕 이후에 입었던 옷을 다시 벗기 시작했다. 수영장의 남쪽 근방에 위치한 벤치에 머무르면서 머리카락을 묶은 리본을 푼 이후에 상의부터 벗고, 그 이후에 바지를 벗은 이후에 신발을 벗고서 벗은 모든 것들을 가지런히 벤치 위에 올려 놓고서 연못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연못가에 앉았다가 왼발부터 물 속에 담그기 시작했다.
어둠을 맞이하는 하늘 아래의 물은 다소 시렸다. 찬 물 목욕을 워낙 자주해서 그러한지, 견딜만은 했지만 물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차가움을 어찌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면 위에 내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새삼스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다른 사물들은 무거우면 물 속에 가라앉는데, 사람의 몸은 무게가 어떠하든 간에 떠 있을 수 있다니, 이렇게 신기한 일이 있을 수 있다 말인가! 처음 물 속에 들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나중에 배움을 이어가면서 알게 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잠시 물에서 걸어 보다가 곧바로 수영을 개시했다. 잘 할 수 있는 수영은 그렇게 많지 않기는 했지만, 아는 만큼, 헤엄쳐서 물을 가로지르려 하였다. 그러다가 연못의 반대편 끝에 도달하자마자 몸을 돌린 후에 오른발로 벽을 차면서 나아갔던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해 또 다른 방식으로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는 수영 방법이라는데, 처음 배울 때에는 어려워서 수영을 하면서 많이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에도, 아마 지금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한 번 그렇게 시작한 만큼, 끝까지 내 방식대로 수영을 이어가며, 내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편한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이었다.
다시 수영을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가자마자 고개를 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간 수면 안팎을 오가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제대로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 시선을 가린 앞머리를 오른손으로 치운 이후에 잠시 동안 물 속에 머무르려 하였다. 수영을 마친 이후에도 물 속에 머무르려 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 밖으로 나갈 즈음의 추위를 바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이전부터 계속 겪은 것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밖으로 나가려 할 즈음, 나의 바로 앞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 있었구나, 그 동안 찾고 있었어~."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구인지 바로 알아낼 수 있었고, 실제로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예상한 대로 소리가 내가 옷을 벗어 놓은 벤치 앞에 앉아 조용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수영 실력도 많이 늘었네." 그러더니, 이윽고 나를 보면서 수영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서 나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이, 그 당시 나는 옷을 다 벗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을 아무리 그래도 남 앞에서 함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물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은 것.
"뭘 그리 부끄러워 해? 우리는 늘 함께 했었잖아, 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소리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이에 소리는 다시 웃으면서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후훗, 여전하다니까~"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잠깐 물러나줄까?" 라고 묻더니, 이어서 내가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 시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가면서 나에게 잠깐만 시설 안으로 들어가 있겠다고 말하더니, 어서 나오라고 말하고서는 나에게 또, 이렇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나오면 나왔다고 나한테 말해 줘~"
그 이후, 소리가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나는 연못에서 나와서 대충 몸을 닦고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옷을 다시 입고 리본을 오른손에 든 채로 목욕 시설로 간 이후에 그 안에 숨어있을 소리에게 밖으로 나왔음을 알렸다.
"소리, 나 나왔어~" 그러자 소리는 시설의 왼쪽에서 3 번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니, 나에게 "벌써 나온 거야?" 라고 외치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그러더니, 몇 걸음 앞에서 뒷짐을 지면서-두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나하고 같이 있자~" 그리고서 당장에 내려갈 필요가 있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말하더니, 이왕이면 보다 흥미로운 것들도 연습해 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뒤로 향하고 있던 팔들을 앞으로 내밀면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꺼냈다. 하얀 셔츠 그리고 보라색 수영복이었다. 수영복의 색깔이 어떻게 보더라도 나를 의식한 것 같았는데, 어떻게 그 수영복을 가져왔느냐고 묻자, 집에 있던 것 중 하나를 가져온 것이라 말했다.
"일단 입어 봐. 잘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
그러면서 말하기를, 내 체형과 그나마 비슷한 것을 간신히 가져왔다고 했다. 그 말대로 맞지 않을 수 있기는 하겠지만, 나를 직접 데려와 고르게 한 것도 아니었으니, 수영복들이 몸에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서 그로부터 수영복과 셔츠를 받아서 목욕 시설로 들어가서 그 옷들로 갈아입고 난 이후에 다시 밖으로 나오려 하였다. 우선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하얀 셔츠를 입었다. 수영복은 어두운 보라색을 띠며 어깨 끈이 달린 원피스형 수영복이었으며, 셔츠는 하얀색을 띠는, 내가 입었던 것과 거의 같은 옷이었다. 셔츠가 하얀 데다가 얇다 보니, 어두운 색을 띠는 수영복이 비춰 보일 것 같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 하였다.
수영복과 셔츠 모두 완전히 내 체형과 맞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약간 작다는 정도를 감안하면 나름 괜찮았다. 당사자가 곁에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잘 맞는 것처럼 보이는 옷을 가져왔을 텐데, 그 정도면 잘 가져온 편이었다. 셔츠 역시 약간 크다는 점만 제외하면 괜찮았다.
그렇게 괜찮게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 어린 아이가 내 체형과 어느 정도 비슷한 크기의 옷을 그렇게 잘 가져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것. 소리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내 곁에 있지도 않았었다. 소르나의 도움이 있었을 법했겠지만 그에게 받을 수 있는 도움도 그렇게 충분치 않았을 텐데.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소리에게 물어본다고 마땅한 대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들으나마나 감으로 맞혔다고 말할 것 같았다-, 내게 딱히 나쁜 일인 것도 아니라서 그런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밖으로 나올 무렵, 소리는 크고 길쭉한 판자 하나를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높이만 하더라도 자기 키의 2/3 정도에 이르는 꽤 큰 판자로 그 판자를 들고 있다가 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마자 판자를 들면서 나에게 뛰어오려 하고 있었다.
"네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가져왔어. 이 판자는 폐허가 된 건물 근처에 있었는데, 많이 더럽혀져 있어서 네가 목욕하던 그 옆에서 씻어 놓았어."
그러더니, 그는 바닥에 나무 판자를 내려놓으면서 한 가지 재미난 것을 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서는 이어서 나에게 연습이 많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익숙해지면 아주 재미난 놀이가 되고, 또 앞으로의 일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파도타기를 하려는 것 아니야?" 소리가 바닥에 판자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소리가 나에게 '파도타기 (Surfing)' 를 시키려 할 것 같았고, 그것에 대해 물어보니, 소리는 바로 그렇다고 답하더니, 밝게 목소리를 내며 내게 말했다.
"아직 물 위에 판자를 띄운 것도 아닌데, 바로 맞혔네~"
"그 정도는 바로 알지, 이래봬도 아는 것은 많아." 그 말에 내가 그렇게 화답한 이후, 소리는 나를 보더니, 나에게 파도타기를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잠시 과거의 일을 되짚어 보고 나서 답을 했다.
"어렸을 때에 바퀴 달린 판자에 올라타서 길 위를 오간 적은 있어. 파도타기는 그것과 약간은 어느 정도는 비슷하겠지? 그런데, 파도타기는 해 본 적이 없어. 애초에 바다를 자주 오간 것도 아니라서."
"그러면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되겠네." 그러자 소리는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말하고서 곧바로 얼른 시작하자고 나에게 청했다.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전에 지금 여기서 내가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보여줄게."
그 이후, 소리는 우선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건네고서, 연못가로 다가갔다. 자신이 가져온 나무 판자를 연못가의 바닥 위에 올려놓더니, 다시 연못 쪽으로 돌아선 이후에 잠시 두 팔을 높이 들고 왼손과 오른손으로 오른팔, 왼팔을 잠시 주무르며 말했다.
"그러면 시작한다~ 잘 지켜보고 있어~" 그리고서 그는 나무 판자를 내려놓고, 그 위에 올라타면서 두 팔을 어깨 높이로 벌리고 두 다리를 약간 벌리면서 균형을 잡으려 하였다. 그런 일도 의외로 쉽지 않음은 분명해 보였지만, 소리 정도의 여자아이라면 그 커다란 판자 위에 올라타며 균형을 잡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소리는 판자 위에 올라탄 채, 내가 있는 곳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그 무렵에 그런 나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런 잔잔한 물결 위에서 어떻게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을 놓지 못하고 있을 즈음에 정말로 나의 눈앞에 잔잔하기만 하던 물이 너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잔잔한 물 위에서 어떻게 파도가 일어나? - 이렇게 물어보려 했었지?"
소리가 본격적으로 파도타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이렇게 묻는 듯이 말을 건네었다. 그러더니, 그는 다시 자신의 앞쪽을 바라보려 하면서 나에게 "곧 보여줄게~ 놀라운 광경이 펼쳐질 거야~" 라고 밝게 목소리를 내며 앞 일에 대한 장담을 드러내었다. 어린 소녀의 장담을 들으며, '대체 어떻게 파도를 일으키겠다고?' 라고 의문을 일으킬 시점에 갑자기 너울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너울이 마치 바다에서처럼 크게 일어나는 광경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즈음, 소리는 두 팔을 어깨 높이로 벌린 채로 너울치는 물결 위에 떠오른 판자 위에 올라탄 채로 파도 위에 올라서려 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판자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후, 파도가 내려앉고, 다시 일어날 즈음에 다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파도 위에 판자로 올라타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그 이후 물결이 이전처럼 잔잔해지자 판자를 두 손으로 안은 채, 두 다리로 헤엄을 치면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의 앞으로 돌아왔다.
내가 놀랐던 것은 저렇게 어린 아이가 파도를 탔기 때문은 아니다. 어촌 등지에서 어린 델바 족 소년, 소녀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을 몇 번 구경해 본지라 그 정도는 나를 놀라게 할 것은 아니었다. 나를 놀래켰던 것은 소리 정도의 여자아이가 잔잔하기만 할 물 위에서 파도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의 마법을 어린아이가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그 모습을 보며 크게 놀란 것이었다.
"방금 전에 파도 타는 모습을 보면서 너는...... 저런 어린 애가 어떻게 저런 마법을 사용하는 거지? - 이러면서 놀랐지?"
이후, 나에게 다가온 소리는 나에게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물었고, 이번에도 나는 딱히 부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부정하거나 할 수 없었다. 이후, 소리는 나에게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이며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어떻게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은 비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알려줄 날이 올 거야."
"아무튼, 이로써 내가 파도를 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이제 여기서 기초나마 좀 가르쳐 볼게."
이후, 소리는 나에게 파도를 타는 방법이라고 이것저것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세 잡는 요령부터 일일이 자신이 교정해 나갔다. 물론 나를 다그치는 목소리도 한 번씩 내면서.
"그렇게 자세 잡는 것은 아니지! 파도 앞에서 바로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 그렇게 해야 해! 그렇게 몸을 굽히면서 시선을 앞쪽으로!"
"그렇게 급하게 일어나면 안 되지! 천천히! 천천히 일어나야 해! 파도로 몸이 흔들리는데, 그렇게 빨리 일어날 수 있겠어?"
"잘 하고 있어, 천천히 일어나! 그렇게 해야 맞아."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세 연습을 하고 있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이전에 사람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자세를 교정하는 동안에 내가 그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소리, 너는 이전에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한 적이 있어?"
소리는 어린 아이들의 교사 노릇을 몇 번 해 보기는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고, 그러면서 자신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할 자격이 없어서 그랬다고 그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너라면 달라. 네가 배우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내 능력이 닿는대로 뭐든 가르쳐 보고 싶어!"
그리고서 그는 이런저런 말을 건네면서 나에게 파도타는 자세를 가르치고 또 물 위에서 나를 판자 위에 올라서도록 하기도 했다. 나 역시 올라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앉는 것도 가능했을 정도, 하지만 일어서는 것 자체는 쉽지 않았고, 일어서려 하자마자 판자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기도 했다.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은 차이가 많다. 동작이 많이 서투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애초에 해 보지 않은 것을 하겠다고 하니, 바로 제대로 되거나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세 잡을 때에는 끊임 없이 나를 다그쳤던 소리도 내가 물에 빠지기를 반복할 때에는 그런 나를 다그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하고 있다고 계속 격려의 말을 건네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연습했다고 생각해야 해.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다음을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고!"
처음 듣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공장에서 일할 때부터 학교에 있을 때까지 지겹도록 들은 말이고, 또, 나 자신도 체력 단련 등을 하는 동안 그런 생각을 되풀이하며 실패를 극복해 나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그런 말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늘 새롭게 들리고는 한다.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소리도 그 시점에서 처음부터 내가 물 위의 판자를 밟고 잘 설 수 있을 것이라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아 일단 몇 번 연습해 보고, 이후에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면 또 연습해 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신기한 것 같다. 안 될 것 같았는데, 연습을 하다 보니, 판자 위에 서거나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파도를 탈 수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소리는 처음 시작한지 하루는 커녕,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판자 위에 서거나 앉고, 또 판자 위에 올라선 채, 판자를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에 의의를 두려 한 것 같았다.
소리는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처음 파도타기를 배우기 시작한지 몇 시간 지났는데, 그 정도에 이르렀으면 상당히 재능이 있는 편이라 하였고, 그러면서 며칠 간 더 연습하면 실제 파도타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것으로 앞 일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소리, 애들을 가르칠 때에 늘 그렇게 했었어? 계속 해 봐야 늘어난다니, 뭐니 그런 말을 건네었잖아. 그런 식으로 했냐는 거야."
판자를 들고 물 밖으로 나온 이후, 내가 나의 왼편에 앉은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그 물음에 소리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잘 되면 잘 되는대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고,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시도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을 전해 준다고 이어 말했다.
"뭐든 해 봐야 요령이 늘 텐데, 그렇게 하려면 격려가 중요하거든. 실패한다고 다그쳐 봐, 그 이후로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시도를 하더라도 억지로 하게 돼, 불호령의 면피 수단으로서 말야. 그렇게 하면 요령이 늘겠냐는 거야. 너라면 훈련이나 체력 단련을 많이 해 봐서 그런 사례를 많이 봤을 거야, 그렇지?"
이후, 소리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딱히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닌 것이 아니라, 억지로 체력 훈련장에 끌려나와 불호령 속에서 억지로 훈련을 받는 이들을 몇 지켜봤었고-교육생으로서, 교관으로서 몇 번씩 지켜봤었다- 그런 이들을 보며, 소리가 말했던 바와 딱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늘 격려만 할 수는 없는 거 아냐?"
"그렇지. 가르치는 것과 너무 어긋나버리는데, 잘 한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그런 것은 너라면 나보다 훨씬 잘 알 것 같은데?"
그리고서 소리는 나에게 교관 일도 해 본 적이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나는 교관으로서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질문이었다. 다소 난처한 질문이기는 했지만 어린 소녀가 건네는 그 질문을 그 때 만큼은 솔직히 답하기로 했다.
"성실한 교관은 아니었어. 어차피 돈 때문에 했던 일이고, 그래서 애들을 잘 가르치거나 할 생각은 하지 않았어. '악마의 화신'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그리고서 그에게 그 때의 아이들과 혹시 마주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말하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쓴 웃음으로 오른쪽 입 꼬리가 약간 올라왔다. 그 이후, 소리의 "그랬었네." 라는 말에 "그랬지." 라고 답하고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워낙 험악하게 살아가던 때라....... 아이들에게 상냥해지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한 감도 있기는 해. 요령을 가르칠 때에는 험악하더라도 실습 때에는 방금 전의 너처럼 격려의 말도 건넬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런데, 나한테 이런 것을 가르치는 의미가 뭐야? 이런 것을 배운다고 해서, 내가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잖아.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런 쉽지도 않은 것을 가르치려 한 거야? 그것에 무슨 의의를 두거나 하고 있는 것은 아냐?"
"확실히 있지, 의의가." 그러자 소리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한 가지....... 시험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 너에 대해. 네가 앞으로 다가올 시련을 극복할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 계속해서 다가올 험난한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느냐에 관한 것이었어."
소리는 나에 대해 앞으로 지금 이상의 험난한 일들을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어 왔었고, 그래서 내게 생소할 만한 것 중에 마침 보이는 물에 관한 것을 해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려 하면서 말했다.
"이 만큼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파도타기 따위는 안 해도 돼."
자신에게 생소해하고 어려워할 것 같았던 것에 도전하면서 그렇게 노력할 수 있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은 더욱 잘 할 수 있고, 정점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할까?" 그러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화답했다. 그리고 두 손을 바닥에 올린 후에 고개를 들고 다리를 뻗으면서 하늘을 보다가 그대로 고개를 왼편으로 돌려 소리에게 물었다. 소리는 내가 어떤 사람까지 될 수 있느냐고 생각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소리는 그 물음에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앞쪽을 바라보는 채, 가만히 미소를 띨 뿐이었다.
"...... 사나, 하얀색이 무슨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
"하얀색?" 갑작스러운 질문에 바로 놀라면서 내가 묻자, 소리는 "응, 하얀색." 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색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자신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얀색은 대개 '깨끗함', '순수함' 을 상징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어. 그래서 어떤 색에도 물들지 않는 하얀 종이와 같이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음을 상징한다고 여기어지고 있어. 하지만 나는 뭔가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
물감은 색을 더하면 더할 수록 색이 어두워지고 검은색에 가까워지는 것은 알고 있지? 너도 물감으로 색 놀이를 해 봐서 알 거야. 물감 뿐만이 아니야, 색을 가진 것들의 색을 섞으면 그렇게 색이 어두워지고 검은색에 가까워지지. 그래서 검은색을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색이라 불러. 그래서 검은색을 세태에 물들대로 물든 존재를 상징한다고 여기는 이야기도 있어.
하지만 빛은 달라. 빛은 색을 더하면 더할 수록 색이 밝아지고 하얀색에 가까워져. 그래서 하얀색 역시 모든 것을 의미하는 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세상의 여러 시련과 험난한 일들을 겪으면서 보다 인격이 성장하고 순수한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져 간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소리가 나의 상징 색깔을 하얀색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아르사나 씨, 아직도 내려오시지 않으시는 거예요?"
그 때, 왼편에서 나를 부르는 세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은 탓에 걱정이 돼서 올라온 것 같았다. 그 때, 소리도 나에게 "친구가 부르고 있잖아, 어서 가 봐!" 라고 말했고, 이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산길 근처에 있던 세나를 향해 뛰어갔다.
"가게에서 보았던 여자아이가 있던데, 같이 놀고 계셨나 봐요."
"응, 그렇게 됐어." 그러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가져온 수영복하고 티셔츠를 입고 있다고 말하고서, 원래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내려가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내가 옷을 넣어둔 목욕 시설에서 원래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목걸이도 그 때 다시 걸쳤다-, 티셔츠와 수영복을 들고 소리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지만, 소리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리가 가져다 준 옷과 수영복을 왼팔에 안은 채로 세나의 곁으로 돌아갔다.
"지금 애들이 나를 계속 기다리고 있어?" 이후, 내가 묻자, 세나는 나를 찾는 목소리가 카리나, 세니아 등에게서 들려왔고, 그 전에 예나가 나를 찾고 있었음을 밝히니, 그 말이 들리자마자 어서 가 보겠다고 세나에게 말하고서 다급히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친구 분들보다 예나 교수님께서 찾고 계시다는 말에 바로 반응하신 것 같네요."
"그러할 수밖에. 그 애들은 당장에 내가 내려가지 않아도 깊이 걱정하지 않아. '뭐, 괜찮겠지.' 그 정도라고. 하지만 지금 예나 교수님의 경우는 달라, 뭔가 긴히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바로 그 분의 곁으로 가야 하는 거지."
세나가 물음을 건네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예나는 산길 아래에 있는 것이냐고 묻자, 세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고, 이어서 에오르 자매도 같이 와 있음을 밝힌 이후에 일행이 머무르고 있던 곳이 예나와 에오르 자매 일행의 거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을 알리기도 했다.
산길을 내려가, 해안가에 도착하자마자 세나의 인도를 받아가며 동쪽 방향으로 나아가니, 정말로 멀지 않은 곳에 예나의 비행선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나는 그 무렵, 녹색 계열의 옷차림을 한 에오르 자매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어서 하미시에서 헤어진 이래로 간만에 그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아르사나 씨께서 오셨어요!" 이후, 세나는 예나에게 내가 왔음을 알렸고, 이에 예나는 두 사람과의 대화를 멈추고, "알겠어요." 라고 화답한 다음에 두 사람과 멀어지면서 나에게로 다가가려 하였다.
하야라 근교에서 잠깐 본 이래로 다시 보지 못했던 비행선의 왼편 근처에 서 있으면서 예나와의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전에 있었던 일에 관한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두 손으로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 그리고 수영복을 들고 있었기에 그것에 관한 대화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방금 전까지 수영을 하시고 계셨던 것 같아요."
"예, 어떤 여자애가 저에게 파도타기라든가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해서."
예나의 물음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바로 답했다. 그러자 예나는 "그렇군요." 라고 말하고서, 나에게 누가 파도타기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느냐에 대해 물었다. 이에 나는 다른 생각 없이 동네에 사는 여자아이들 중 한 명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한 활발한 소녀였다고 밝히고서 이름을 '소리' 라 하였다고 이어 알리기도 했다.
예나는 소리라는 여자아이에 대해 잘 알거나 하지는 못하는 듯해 보였다. 다만, 내가 소리에 대해 어린 아이였지만 어른스러운 일면도 상당히 느껴졌고, 또, 내가 어린 시절에 함께 살았던 여자아이와 닮은 일면이 있다고 소개를 하는 동안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 혹은 존재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할 수 있을는지.
"그 소리라는 실제 인물은 지금 뭐하고 계신지 알고 계신가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제가 샤하르에 이주한 이후로 어머니의 유산을 일부 물려 받았고, 이후로 베라티사로 유학을 갔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예나는 뭔가 알 것 같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그에게 그를 혹시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물음에 예나는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답했고, 베라티사에서 교수 노릇을 하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학생들을 만나봤다고 했으며, 그 학생들 중 한 명일 것이라 그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학생들 중에 먼 옛날에 샤하리아의 슈라일 출신이라 하였던 이가 있었어요. 어렸을 적에 슈라일 호숫가에 살다가 모종의 계기로 유학 생활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실력 있는 마법사가 되는 것이 소망이라 했고,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학문 그 자체를 즐기고자 하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진리의 탐구' 를 위함이다, 라고 답을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진리의 탐구' 를 추구하기 위해 실력 있는 마법사가 되려고 한다 - 뭔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던지라,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웃음이 나왔다. 마법사로서 마력을 키우고 실력을 쌓는 데에 분명 뭔가 다른 목적이 있고, 그것을 숨기려고 그런 말을 했을 텐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급히 내놓은 대답 같았던 것.
"그런 소망이 진심에서 나왔다고 믿으실 수 있으셨나요?"
"저도 뭔가 이상한 말을 하는 것 같아서, 진심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학생이 그렇다고 말하는데, 어쩔 수 있나요."
예나는 내가 건네는 물음에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래도 이상한 소망을 내세운 것치고는 수업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해내고, 배움의 자세도 성실해서 크게 문제가 된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이례적인 사항이 있기는 했었다고 했다.
"지금은 떠났지만, 학당에 올리비아 사반 (Olivia Savan) 이라는 여교수가 있었어요. 그 여교수와 마주할 때마다 표정에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그를 지나쳐 갈 때마다 인상이 험악해지고는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마치 그를 증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던가."
"그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꽤 놀랐었다. 그 이유는 소르나와 관련되어 있었다.
소르나도 소리처럼 베라티사로 유학을 간 적이 있었고, 평소에는 온화하고 착실한 모습을 보였지만 올리비아 사반을 언급하면 표정에서 격렬한 분노가 드러날 정도였고, 그가 직접 '탐욕스러운 여인' 이라고 언급을 했을 정도였다. 서로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같은 곳으로 유학을 떠나서는 같은 사람에 대해 격한 분노를 표하고 있었으니, 그 정도의 접점을 가진 이들을 서로 다른 존재로 과연 여길 수 있나 싶었다. 서로 다른 이들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억지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음이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어떻게든 그 감정을 감추고 싶었지만 표정에서 드러났는지, 예나는 내가 놀랐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놀랐음을 바로 인정하고서 그처럼 올리비아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이가 있었음을 알렸다.
"그도 올리비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표정에서 분노를 드러내고는 했었어요."
"그랬었군요. 의외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분노를 사고 있었나 보네요."
이에 예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더니, 자신도 올리비아 사반 바메메이라는 교수에 대해서는 썩 좋은 시선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말하고서, 늘 온화한 인상을 가진 정숙한 여성 같아 보였지만 무엇인가를, 음산한 무언가를 숨기는 그런 느낌이 들고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와 더불어 학당에 재직할 시절에는 모종의 특수 연구를 위해 자주 출장을 나가고는 했는데, 출장 경로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아 수상한 느낌이 더욱 크게 들기도 했었다고.
"그렇다면 지금도 그 교수의 수상한 출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시고 계신가요?"
그러자 예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이전과는 어쩐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대화는 다시 소리에 대한 것으로 돌아갔다. 소리에 대해 예나는 착실하고 예의 바르며, 재능도 있는 학생이었지만 자신이 이전에 말했던 바대로 진심으로 진리 탐구를 위해 정진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장래 희망과 학업 간의 괴리가 심하고 그것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지만-아닌 것이 아니라 장래 희망이 학업 진로와 심하게 다른 경우에는 그러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장래 희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확언하는 듯이 말하고 있었던지라 그것에 대해 더 추궁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소리의 학업 진로에 대해 소리에게 직접 더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소리에게 괴이한 신념을 가지게 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버리지 않았으며, 그러면서 소리가 수업을 통해 자주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그에 대해 알아보려 하기도 했었지만 그 시도 역시 소리의 친구들이 소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 관계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엉뚱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리는 분명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듯해 보였고, 그 사람에 대해 물었지만, 누구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고귀한 사람을 동경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그로부터 들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데, 알려줄 수 없다라......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당시 나는 소리가 학당에 알려주어서는 안 되는 사람과 교제하려 하고 있다고 여기었다. 고귀한 사람이라 했으니, 귀족이라 칭해지는 집안 아니면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노리고 교제하고 있을 정도로 소리가 속물이 되었구나, 싶었지만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았다. 이미 소리는 나에게서 멀어진지 오래인 존재였고, 그런 이가 어떤 사람과 교제하든 이제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됐군요. 고귀한 사람이라면...... 일단 돈은 많은 사람이겠죠?"
이후, 내가 그렇게 물었으나, 예나는 뭔가 깊은 의미를 가진 듯한 미소를 지을 뿐, 달리 대답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들었다. 소리가 그렇게 속물이 되었다면, 왜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소리가 계속 나타나느냐는 것이었다. '나를 잊고, 뭔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면 내 앞에 나타날 수 없을 텐데,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그러면서 예나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예나 역시 그 현상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 대답 역시 뭔가 석연치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답을 하는 것에 대해 어찌할 수는 없었다.
"예나 교수님, 그 분께서 오신 거예요?"
"예, 그렇게 됐네요." 그 때, 예나의 오른편에서 다소 앳된 느낌을 주는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엘베 족 소녀 3 명이 나란히 예나의 근처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이전부터 보아왔던 그 에오르 자매로 연두색을 띠는 티셔츠와 녹색을 띠는 짧은 바지 그리고 녹색 허리띠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 사람은 다소 짧은 총포를 왼쪽 어깨에 매고, 한 사람은 길다란 총포를 접어서 왼손에 가방처럼 들고 있었다.
- 이전에는 에오르 자매의 곁에는 땅의 정령 셀린이 자리잡은 모습도 보였으나, 그 무렵에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뒤따르는 이는 처음 보는 듯한 이로 등 아래까지 내려가는 노란색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에오르 자매의 것과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예나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과 더불어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자, 그가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전에 찻집에서 보았던 에오르 자매와 서로 아는 사이였던 그 '리 셀린' 이었다. 이전에도 그에 대해서는 잠시 하미르의 찻집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후에 에오르 자매를 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런 그의 모습 자체는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에오르 자매를 따르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아! 저 분은 제가 찻집에서 일할 때 만났던 그 분이에요!"
그 때, 리 셀린에게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자신을 만나게 해 달라고 에오르 자매 그리고 예나에게 청했고, 그리하여 리 셀린이 나의 바로 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내 앞에 오자마자 활작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리 셀린이라고 해요! 오랜만이에요. 하미시의 찻집에서 처음 봤다가 이제 인사를 드리게 되었어요."
"예, 안녕하세요, 정식 인사는 저도 처음이네요." 그러자 나는 바로 그런 리 셀린의 인사에 바로 답례를 했다. 사실, 하미시의 찻집 레르마임 (Lermaym) 에서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 당시의 나는 리 셀린과는 대화를 한 기억이 거의 없었고, 에오르 자매와 친한 사이 정도로 그에 대해 알고 있었던지라, 그와 마주해서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게 된 것은 그 때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 셀린의 당시 모습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묘사를 하자면 에오르 자매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색감의 연노란색을 띠는 짧은 소매의 셔츠와 연록색을 띠는 짤막한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녹색 이파리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짤막한 치마의 좌측, 우측에 하나씩 틈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치마의 틈새 사이로 초록색을 띠며 허벅지 위쪽 높이에 이르는 짧은 속바지가 드러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녹색 어깨끈이 달린 팔뚝 길이만한 연녹색으로 도색된 총포를 매고 있었으며, 해당 총포는 일반적인 포신의 2 배 정도되는 두께에 그 끝에는 2 개의 총구가 장착되어 있었으니, 각 총구는 서로 다른 용도로 쓰이는 듯해 보였다.
찻집 레르마임에서와 달리 그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의 매우 활발한 인상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그 모습도 이전에 비해 훨씬 앳되어 보였다. 그런 앳된 인상과 달리, 우선 키부터 상당히 컸고, 가슴에서 허리, 허벅지, 다리에 이르기까지 굴곡이 선명한 체형을 보이고 있어, 비교적 가녀린 모습을 보이는 에오르 자매와는 대비되는 느낌이 있었다. 에오르 자매 역시 그처럼 소매 짧은 상의와 짤막한 연녹색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치마에 틈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그런 그의 외견을 두고, 그가 자신의 외견에 대한 자신감이 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얼굴 모습은 앳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덜렁이 같은 느낌도 있어서 그 모습을 보며, 선배라 칭하는 에오르 자매에게 이런저런 핀잔을 받은 적도 분명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미시 인근의 유적에서 사악한 병기를 물리치셨다고 들었어요. 그 이전에도 이런저런 사악한 기계 악마를 이 행성계에서 없애버리신 분이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지요. 뭔가 대단하신 분이 아닌가, 생각했었어요."
"그래요?" 그러자 나는 우선 그렇게 말을 건네고서, 이어서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었느냐고 물으니, 리 셀린이 바로 답했다.
"에오르 선배 분들을 비롯해 여러 분들께 들었어요." 이후, 그 대답에 나 역시 활짝 웃으면서 "그렇군요." 라고 말을 건네었다.
그 이후, 리 셀린이 예나의 우측 근처에 있으려 하는 에오르 자매의 곁으로 돌아가자마자 에오르 자매가 예나에게 뭔가를 알리려 하였다. 우선 린이 예나에게 알렸다.
"폭풍우의 상태는 여전한 것 같아요. 여전히 지브로아 남쪽 방향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그 쪽 방향으로의 해상 및 공중 진입이 쉽지 않은 상태예요."
"그렇다고 해도,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
이후, 두 번째로 예나에게 알린 리아가 예나에게 자신에게 가해질 위협이 남쪽에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네고서, 그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방안을 가능한 빨리 구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괴물이 폭풍우를 일으키는 방향을 돌릴 수 있다고? 어떻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와 리 셀린 모두 놀라면서 에오르 자매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하지만 예나는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었는지 평온하게 눈앞에 암운이 짙게 드리워진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괴물들의 이목이 집중시킬 수 있다면 폭풍우의 전개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예나가 말했다. 그 때에도 상당히 차분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만큼, 뭔가 아는 사항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암운에 감싸여 있을 지브로아 일대를 바라보고 있는 예나에게서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지브로아에 자리잡고 있는 괴물의 배후에 무언가 있을 거예요. 아마도 하미시의 고대 유적 등에 자리잡고 있었던 기계 병기와 같은 부류 혹은 관련이 있을 존재 혹은 존재들이겠지요. 그 배후에 직접 타격을 가할 수 있으면 배후와 관련이 있을 괴물 역시 그것에 반응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배후의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고, 또,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관건이겠네요."
그 이후, 내가 말했다. 배후라 칭해진 존재에 직접 타격을 가해 그 비호를 받는 괴물을 움직이게 하려고 해도, 그 배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생각을 예나 등에게 전하려 한 것이었다.
"그렇지요." 그 말에 예나는 우선 그렇게 화답하였다. 그리고 괴물이 위치한 그 북방 인근에 거대한 기운이 감지되어 이를 통해 배후 세력이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그래서 그 기운의 중심부로 진입하면 괴물의 배후에 있는 존재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배후의 전력이었다. 괴물이 가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전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괴물을 토벌하기 위한 수준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임은 기정 사실이었을 것이며, 괴물을 토벌하기 위해 나서는 이들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전력을 가진 이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엘베 족 분들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되셨나요?" 그 이후, 내가 물었다. 엘베 족 전사들, 에오르 린, 리아 자매와 리 셀린 등은 괴물 토벌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를 알려고 한 것이었다. 그들의 역할에 따라, 나를 비롯한 일행 전부 혹은 일부가 그 배후 세력의 공격에 나서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건넨 질문이었다.
"육로 쪽을 맡기로 했어요." 그러자 예나를 대신해 에오르 린이 답했다. 그리고서 일행이 지브로아 쪽으로 해로를 통해 나아갈 동안, 괴물이 수하들이 육로 쪽으로 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어서 그 쪽의 무리를 발견하고 격파한 이후에 괴물을 향한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될 즈음에 나를 비롯한 일행 측에 합류하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차가 오가는 철로 부근이 특히 위험한 만큼, 그 쪽을 중요시하기로 했어요."
이어서 에오르 리아가 말했다. 많은 병기들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셀린과 에오르 자매는 물론, 리 셀린 그리고 예나까지 전부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엘베 족과 예나 모두 배후의 존재를 공격하러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만약에 정말 필요하다면 제가 나서도록 할게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일행 중에 배후의 공격에 나설 이들을 정해 그들이 배후가 있을 곳으로 나가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엘베 족 자매와 리 셀린 그리고 예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배후의 존재는 공중에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 존재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글라이더가 필요하겠지만, 글라이더라면 나에티아나가 모아놓은 두루마리를 통해 소환할 수 있는 만큼, 그것을 이용하면 되었고, 무장의 부족함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으로 보충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내가 나서려 한 것은 괴물의 토벌 이상으로 중요할지 모르는 일을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떠넘기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세나, 카리나, 세니아, 나에티아나 정도면 괴물의 타도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도 했다.
"지금 바로 이용하실 수 있는 글라이더는 갖추고 계신 거예요?"
그러자 에오르 린이 걱정이 되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글라이더를 소환할 수 있는 두루마리를 동료가 갖고 있으며, 그 두루마리를 챙겨오면 된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에오르 리아가 물었다.
"아르사나 씨 혼자 나서는 것은 다소 무모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나설 이가 없으면 저 혼자라도 나서야죠." 그러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가브릴리아에 나와 친했던 사람-프라에미엘-이 있는 만큼, 그를 불러서 도움을 주도록 할 예정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에오르 린이 이어서 나에게 물었다.
"천문대에 베라티사의 마도학자라는 소르나 씨도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 분을 부르실 수 있나요? 이 곳에 계신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를 부를 수 있다면 부를 생각이지만, 큰 기대는 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 물음에 내가 화답했다. 만약에 와 준다면 내가 배후의 존재를 공격하러 나서는 것에 나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나와 한 번씩 마주하는 만큼, 나와 만날 수 있다면 바로 그에게 도움을 달라 요청할 수 있음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뜻밖의 상황에 있었고, 그래서 언제 그와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이런 상황에 맞춰 그에게 도움을 달라 요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안 될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는 편이었다.
이외에 나의 은사였던 리사 등도 있었지만, 그 역시 그 나름의 일을 하고 있었을 만큼, 내가 도와달라 요청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미르 동부, 하야라 일대에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만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후에 마을을 돌며, 그들을 수소문해 보기로 하고,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하겠음을 밝히며 대화를 정리하려 하였다.
"그건 그렇고, 셀린 씨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 거예요? 하미시에 있을 때까지 에오르 자매와 동행하고 계신 모습을 보았었는데."
"셀린 씨께서는 지금 비행선 내에서 소르나 씨와 연락을 하시고 계세요. 자신과 에오르 자매 그리고 저의 지브로아로의 진입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시는데, 조금 있으면 끝날 것 같아요."
이후, 내가 셀린의 행방에 대해 묻자, 예나가 그에 대해 소르나와 연락하고 있다고 답했다. 배후의 존재 그리고 일행이 지브로아로 나아갈 때, 해안에 있을 수 있는 육로의 위험에 대한 대비 등에 관해 셀린이 소르나와 잠시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던 모양으로 예나는 셀린에 대해 내가 자신을 찾아온 시점에서는 금방 끝날 것인 만큼, 조금만 기다리면 그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임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셀린의 행방보다 소르나의 행방을 더 알고 싶어했다. 하미르 동부, 하야라 일대에서 그가 대체 어떻게 다니고 있는지 조금의 실마리라도 찾으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나는 셀린으로부터 소르나의 행방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답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셀린은 지브로아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소르나의 행방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질 심적 여유를 갖지는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성계의 용사이자 성녀님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는 가끔씩 듣게 되어요."
이후, 나는 서쪽 근방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을 일행의 근처로 돌아가려 하면서 그런 나의 우측 곁에서 나와 동행하는 리 셀린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후, 리 셀린은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마법 기술을 익혀서 용병 일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올바른 용사의 길을 걸으셨던 어머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싶었어요. 자식이 부모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이유는 없잖아요."
그리고서 나는 리 셀린의 부모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리 셀린은 그런 나의 물음에 그렇게 잘 사는 집은 아니었다고 우선 그렇게 답하고 있었다.
"엘베 족 거주지에서 지낼 곳이 없어 델바 족 거주지들을 오가며 지냈었어요. 주로 해안가 쪽에. 아르데이스를 뒤덮은 재앙의 기운이 사라졌고, 그로부터 또 오랜 세월이 지났다지만 아르데이스 성계의 드벨파 족, 엘베 족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쉽게 떠나지 못했고, 엘베 족 사람들 중에서는 용감한 모험가가 아니면 주로 어떻게든 일거리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 영역 밖에서 생활하려 했었어요. 제 부모님들도 그런 분들 중 일부이셨지요."
리 셀린은 어렸을 때에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델바 족 근거지를 전전하면서 해안가에서 어업에 종사했으며, 자신 역시 아버지의 일을 해안가에서 거들고는 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바닷가재잡이에 늘 나서고는 했으며, 그래서 해안가에서 늘 바닷가재를 얻어서 먹고는 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겠네요. 제 고향인 샤하르에서는 엄청 귀한 식재료라서요."
"별로 부러울 일은 아니었어요." 그러자 리 셀린이 답했다. 그가 거주했던 대륙 동부 해안 일대는 바닷가재들이 많이 잡혔고, 너무 많이 잡힌 탓인지 일부는 갈려서 비료가 되기도 하고, 교정 시설의 죄수들에게 식량으로 나누어주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닷가재들은 여타 행성계, 특히 이 행성계에서는 귀한 식재료가 된다고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많이 신기했었어요. 어떻게하면 그 바닷가재가 귀한 재료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었고."
바닷가재만 먹는 일상에서 벗어나고팠던 리 셀린은 우연히 아르데이스 본토에서 온 모험가들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에오르 자매가 비로 그들로 자신이 선배라 칭하는 쌍둥이 자매와 만나게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 하였다. 이후, 에오르 자매는 리 셀린을 데리고 자신들의 고향인 엘베 족의 첫 근거지로 돌아왔고, 그 이후에 자신의 후배 경비대원으로 삼으면서 경비대원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고 했다.
"선배 분들께서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다는 것은 이후에 알았어요."
에오르 자매는 아주 어렸을 적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들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이어 아버지 역시 자신들이 어렸을 때, 일어난 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하면서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것.
"고아가 된 자매는 아버지의 동료이셨다는 분께서 키우셨고, 이후, 경비대원이 되신 이후에는 그 아버지의 옛 애인이셨던 현 족장님의 후원을 받게 되셨대요. 그래서 경비대원으로서 특별 대우를 받게 되셨는데, 그 여파가 저에게도 온 것이었지요."
이런저런 병기들을 에오르 자매가 다루게 된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세계에 닥쳐오는 위기에 앞장서서 나서는 선봉장의 역할과 더불어 옛 문명이 남긴 병기들의 재현을 비롯한 각종 병기들의 성능을 시험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으로 리 셀린 역시 그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고.
"특별 대우를 조건으로 중차대한 일을 맡게 된 셈이라 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요." 그러자 리 셀린은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병기들의 성능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제출하는 역할을 에오르 자매가 그 시기에 이르러서도 맡고 있음을 밝혔다. 그 무렵에 리 셀린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그는 모처에서 에오르 린의 기관포는 위력이 강화된 광선을 발사하는 성능을 갖고 있으며, 에오르 리아가 소지한 격멸포는 2 단 접이식으로 활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이후에 2 단 접이식 격멸포의 보급과 더불어 3 단 접이식 격멸포의 개발도 추진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 베라티사 학당에서도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베라티사 학당의 인간형 대형 병기의 시험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아직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그랬었군요." 리 셀린에 의하면 소환수로서의 인간형 대형 병기의 활용에 관한 실험이 베라티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 실험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고 했다.
"아르사나, 이제 오는 거야?" 그 무렵,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해변에서 총포를 들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가 내가 근처에 이르자마자 함께 나를 향해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 내가 그들이 서 있던 그 근처에 이르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카리나는 오른손에 소형 총포를 들고 있는 채로 물총포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세니아와 서로 마주하면서 물총포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카리나, 세니아는 이전과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카리나는 하얀 셔츠와 허벅지를 전부 드러내는 파란 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고, 세니아는 소매 없는 셔츠와 붉은 바지-치마 안쪽에 받쳐 입는 바지와 거의 비슷해 보이는 것으로 수영복이라 통상복으로 입는 것과는 재질이 약간 달랐다- 차림을 하고 있었다. 수영복이라고 가져온 것으로 세나가 집에서 소환해서 가져온 것으로 세나가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일행의 수영복을 한꺼번에 소환해서 가져왔으며, 바다에서의 시간을 다 보내고 나면 돌려보낼 것이라 했다.
"물총포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야?"
"응, 이런 곳에 오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아?"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가 답했다. 카리나는 오른손에 소형 총포를 들고 있었고, 카리나는 한 손 혹은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팔 길이의 2/3 정도 되는 길다란 총포를 사용하고 있었다. 세니아의 물총포는 두 손으로 잡으라고 만들어진 물건임이 틀림 없었지만, 세니아는 그런 물건을 카리나처럼 오른손으로만 잡고 있었다. 근처에는 수박도 하나 가져다 놓아서 두 사람이 어떻게든 나름 해변에서의 휴가 분위기를 내려 했음을 그 광경을 보며 알 수 있었다.
- 물총포는 예나의 비행선에 있었고, 수박은 근방의 가게에서 사 온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물총포 싸움은 그 동안 어떻게 하고 있었던 거야?"
"별 것 없어. 서로 마주 보면서 나름의 방법대로 물 줄기를 발사하면서 했었어."
이후, 내가 세니아에게 묻자, 세니아가 답을 하는 그 때, 세니아가 자신의 우측 방향으로 고개를 움직이다가 곧바로 돌아서려 하였다. 이후, 물 줄기가 자신의 오른쪽 뺨을 스쳐 지나갈 즈음에 오른손으로 물총포를 든 채, 물 줄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맞으면 아플 정도로 굵은 물 줄기가 빠른 속도로 발사되고, 이에 카리나는 투명하면서 연한 파란 빛으로 빛나는 방패를 생성해 그 물 줄기를 막아내면서 오른손의 소형 물총포에서 물 줄기를 발사하며 맞서고 있었다.
세니아는 카리나의 물 줄기를 피해가고 있었고, 카리나는 세니아의 물 줄기를 방패로 막아가며, 서로 대결하고 있었는데, 카리나는 세니아를 어떻게든 맞히려 하고 있었고, 세니아는 강한 물 줄기를 발사해 그의 방어 자세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꽤 흥미진진한 물총포 싸움이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역시 보려 하였기에 일단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려 하였다. 그 뒤쪽 근방으로 나아가 보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나는 리 셀린과 조금 더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러면서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리 셀린이 선배로 모시는 에오르 린, 리아 자매는 실제로도 리 셀린보다도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매와 리 셀린을 처음 본 사람들은 쉽사리 믿지 않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닌 것이 아니라, 리 셀린의 성숙한 외견 때문이라고. 앳된 모습을 보이는 두 자매보다 늘씬한 미녀인 리 셀린이 나이가 조금 더 많아도 경험 등으로 인해 에오르 자매의 후배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오르 린, 리아 자매를 선배로 받드는 리 셀린은 때로 그들을 언니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리 셀린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세나가 위치한 그 근방에 이르렀고, 그 곳에서 세나가 평상복 차림을 한 채, 파도치는 바닷물 근처에 두 다리를 세우는 자세로 앉아 있었으며, 그 옆에 사라, 나에티아나가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탐파가 세나의 왼편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는데, 그 탐파의 모습은 마치 잠드는 것처럼 보였다. 또, 이들 그리고 카리나와 세니아가 물총포 싸움을 하는 그 사이에는 잔느 공주와 루이즈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 하는 그 때, 잔느 공주가 나와 동행하던 리 셀린을 보더니, 바로 알아보는 모습을 보였다.
"이 분, 이전에 본 적이 있어요! 레르마임이라는 찻집에서 일하시고 계시던데."
"그 일 마치시고, 에오르 자매 분과 같이 다니시고 계세요. 그러다가 저와 잠깐 같이 다니게 된 것이고."
그러자 내가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에게 다가가면서 리 셀린을 대신해 답했다. 이후, 리 셀린은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의 바로 앞으로 다가갔고, 그 모습을 보더니, 그들 앞에서 조용히 인사말을 건네려 하였다.
"여기서는 처음 뵙게 되네요. 아르데이스의 리 셀린이라고 합니다."
"잔느라고 해요. 옆의 친구는 루이즈." 이후, 잔느 공주는 찻집에서도 훌륭한 미인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미인을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고 그에 대해 말하는데, 감탄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이에 리 셀린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잔느 공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너무 아름다우신 것 같아요. 잔느 씨라고 하셨나요, 공주라 칭해지시는 것 같은데, 실제 이유야 그렇지는 않겠지만 잔느 씨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칭호가 붙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네요."
"고마워요." 그러자 잔느 공주는 생긋 웃으면서 답했다. 이후, 리 셀린은 잔느 공주와 루이즈의 오른편 곁에 앉으려 하면서 그에게 이렇게 요청을 하려 하였다.
"저어....... 두 분 곁에 앉아 있어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와서 앉아요." 그러자 루이즈는 리 셀린에게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답했고, 그렇게 리 셀린은 두 젊은 여성들의 오른편 곁에 정식으로 앉게 되었다. 이들의 대화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가볍지는 않았는데, 리 셀린의 고향인 아르데이스 성계 그리고 그의 종족인 엘베 족에 대해 당사자인 리 셀린으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잔느 공주, 루이즈가 질문을 하고, 리 셀린이 대답을 해 주는 역할이었다. 리 셀린이 에오르 자매보다 후배인 만큼, 질문을 하는 역할을 주로 맡을 것이라는 생각과 대비되는 광경이었다.
리 셀린은 나에게 잠시 그들의 곁에 있도록 하겠음을 알리면서 나와 헤어졌고, 그 이후, 나는 어느새 탐파가 잠에서 깨어나 세나와 나에티아나와 함께 해변가에서 뛰어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네 사람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사라만 조용히 서 있을 따름으로 그는 내가 자신의 곁에 이르자마자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나에게 할 말이 있음을 알렸다.
"아르사나 님이시지요?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드릴 말? 그게 무엇인가요?" 그러자 사라는 공손히 목소리를 내어 셀린이 나를 찾고 있음을 알리고서, 그러하니, 그가 있다는 예나의 비행선 근방으로 가 볼 것을 부탁했다. 그 이후, 내가 알겠다고 답하고서 예나의 거처가 있는 근방으로 돌아가려 하자, 사라는 그런 나를 따라 나서려 하였다.
- 그 때가 사라의 목소리를 제대로 처음 들었을 때였다. 목소리 자체는 이전에도 몇 번 듣기는 했지만 나에게 제대로 말을 건네는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소리라는 분과 함께 계셨지요?"
"예."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사라는 "역시, 그러하셨군요."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그와 함께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는 소리가 파도타기를 난데 없이 가르쳐 주겠다고 하고서는 파도타기 요령을 이것저것 가르치려 했다고 답하고서, 이전에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이 있음을 알리기도 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었네요." 그러자 사라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나의 거처인 비행선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그 때, 비행선 근처에 서 있던 초록색 머리카락의 소녀, 셀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라가 나에게 조용히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소리라는 아가씨, 아르사나 님께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이더군요."
그 정도는 나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나의 어린 시절 옛 친구였던 소리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라의 소리에 대한 언급에 별로 당황하지 않으며, 옛 친구였으니, 그러한 것에 대해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시군요." 라는 말을 건네더니,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 하지만 소리 님은 아르사나 님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시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소리가 친구 이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선뜻 와닿지 않아 무슨 말이냐고 물었으나, 사라는 자신이 알 수 있는 것도 딱 그 정도일 뿐이라 답하더니, 나에게 소리에 대해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음을 알리면서 그것에 대해 언급하려 하더니,
"소르나 님이라는 분께서 이 거리에 있음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분과 소리 님의 행적이 겹친 적이 여태껏 한 번도 없었어요. 언젠가 소리 님이 어디 놀러간다고 갑자기 제 곁을 떠나시더니, 그 근방에 소르나 님께서 나타나신 적도 있어요. 그 분께 소리 님의 행방을 물어보자, 잘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 님이 다시 나타났어요. 이름도 서로 비슷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르사나 님, 혹시 소르나 님과는 어떤 사이인가요?"
"친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질문에 우선 그렇게 답했다.
"가마일 산의 천문대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에요. 원래는 천문대의 관리인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는 사람이기도 하고, 또, 온화하고 참하면서 묘하게 도도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가, 이런저런 계기가 생겨서 서로 친해지게 된 것이지요. 천문대에서 떠난 이후로는 직접 만나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편지나 원격 통신을 통해 서로 간의 근황을 물어보거나 하는 등으로 가끔씩은 대화를 주고 받고는 했었지요."
그리고서 나는 사라에게 소르나는 나를 만나고 싶지만 일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음을 수차례 드러냈음을 밝히고서 이번에 하미시에 이어 하야라에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나와 한 번씩 마주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천문대 동료들 역시 그를 만나게 하고 싶지만 소르나의 일이 일인지라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다고 소르나에 관한 나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러하셨군요." 그러자 사라가 말했다. 그 이후, 나는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사라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소르나 그리고 저와 마주하는 소리에 대해 뭔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계신 거예요?"
"예." 이에 사라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그것은 그저 자신의 생각일 따름이라 밝혔고, 그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니, 너무 그것에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신경이 쓰이는 발언들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결국 사라의 추측이겠지, 정도로 여기고, 일련의 사항들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소리 님은 지금 뭐하고 있대요?"
"베라티사의 학당에서 학자로 일하고 있다는데....... 어떤 고귀한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이후, 사라는 소리에 대해 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 동안 그에 대해 예나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 주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그에게 해 주었다. 하지만 사라는 그런 나의 이야기에 어떠한 표정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어쩐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라고 대답을 할 따름이었다.
이후, 사라는 나를 이끌고 예나의 거점인 비행선 그리고 비행선 앞 부분의 외벽 부근에 서 있던 셀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셔츠와 허벅지 위쪽까지 올라가는 짧은 치마를 입고, 두 종아리를 하얀 양말로 감싸고, 발을 초록 신발로 감싸고 있는 이로 종아리 높이까지 내려가는 초록색 긴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나의 시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사나 씨, 오랜만이에요."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셀린이 인사를 했고, 이에 나 역시 그런 그에게 답례를 해 주었다. 이후, 셀린은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뭔가 중요한 소식을 전해주려고 왔음을 밝히고서 그렇게 불길한 소식은 아닐 것임을 나에게 알렸다.
그러는 동안 사라는 조용히 다른 일행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탐파가 있는 세나의 곁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
"그 중요한 소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후, 내가 물음을 건네자, 셀린은 그 동안 세 방향에서 괴물을 공격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는데, 그 도중에 북쪽 상공에서 어떤 빛나는 글라이더 1 기가 지브로아 해안의 북쪽 상공 쪽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음을 소식으로서 알렸다.
"하얀 빛이라면 일단 괴물 혹은 기계 병기류는 아니겠네요."
"그렇지요." 이에 셀린은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답했다. 그리고서 적대적인 기계 병기들은 대체로 검은색을 띠는 반면에 하얀 빛을 띠고 있고, 기계 병기 군이 밀집한 쪽으로 공격해 들어가려 하고 있었던 만큼, 적어도 기계 병기 군을 적대하는 존재임은 틀림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의지를 가진 존재인지 여부를 아직까지는 알 수 없어 그와의 소통은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았다고 하지만 시도를 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고 추측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이외에는 북쪽 상공으로 나가는 이는 일단 없는 것이지요?"
"예, 아직은." 그러자 셀린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이후, 예나가 그 존재와 접촉해 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덤으로 예나는 그 존재를 일종의 '마법 생명체' 혹은 마법 도구에 혼이 깃들어 마치 전투 비행기처럼 행동하는 존재일 것으로 추측했었다고.
이후, 셀린은 바로 진지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한 가지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음을 알렸다. 발신자의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계 병기 군에서 보내온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하고서 그 메시지에 나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셀린이 나를 부른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닐까 했었다.
메시지의 원형은 전신 부호였으며, 전신 부호를 해석한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고 했다.
EAM APPELLE. VOLO PUGNARE. BERTIA. RIVALIS MEVS EST.
(그를 불러라. 싸우고 싶다. 베르티. 그는 호적수다)
"제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 메시지를 듣고 나서 나는 그 메시지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 때, 셀린이 나에게 기계 병기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거나 한 적은 없지 않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셀린은 뭔가 알 것 같다고 말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 이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아르셀 베르티라는 분께서 원인 불명의 이유로 돌아가신 것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서 단순한 소문일 따름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 어머니께서는 원인 불명의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암살된 것이며, 실제로는 포레 느와흐와 계약을 맺은 베라티사의 마법학자가 기계 군단의 편이 된 어떤 사람과 계약을 맺고 그 사람이 어머니를 암살하도록 했다는 그런 소문이었다.
"그런 소문이 있었어요?" 알 것은 다 알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이야기만큼은 이적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셀린의 알려주는 그 소문을 듣자마자 심히 놀라는 심정을 어찌하지 못했고, 셀린은 그런 나를 보더니,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아니라도 하셔도, 얼굴에 다 보여요."
"이전까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그래요."
이후, 셀린의 말에 나는 충격을 어떻게든 수습하려 하면서 답했다. 그리고서 그에게 단순한 소문일 뿐이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셀린은 자신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고,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소문이라는 것은 원래 사실이 아닌 거짓인 경우가 많으니, 너무 깊이 신경 쓰지 않도록 하는 편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있었다.
"베라티사의 학자였다가 여기, 샤하리아 학교의 교장이 되신 어떤 분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분에 대해서는 안 좋은 소문이 많이 돌더라고요.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 사람이라면 올리비아 사반 바메메이를 말함일 것이다. 이전에도 뭔가 뒤로 어두컴컴한 행각을 벌이고 있을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고 여기고, 자주 만나려 하지는 않았던 인물이고, 소르나는 아예 베라티사 학당에서 그 모습을 보거나 그에 대한 언급을 할 때마다 그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기도 했었다. 나의 경우에는 그가 기분 나쁜 사람일 것 정도로 여길 따름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온화한 모습을 보이는 소르나가 그에게 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서 사람들을 놀래키고는 했었다.
"원래 그와는 가까워질 생각 같은 것은 없으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안심하셔도 좋을 거예요."
이후, 그의 말에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 가지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 올리비아 사반이 어머니께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문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 기계 병기가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어머니께서 암살당하셨다는 이야기는 단순 소문이겠지만, 나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가 기계 병기군과 모종의 계약을 맺고, 어머니 혹은 나의 존재를 알린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것은 그렇고, 소르나와 연락을 하면서 그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후, 나는 화제를 바꾸어 그가 소르나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이전에 셀린이 소르나와 연락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서 그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했던 것. 그 질문에 셀린이 답했다.
"북쪽 상공에 있는 기계 병기군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어졌어요. 만약에 괴물이 자리잡은 지브로아에 있는 '기억의 성전' 에서 기계 병기들이 나타난다면, 필경 그 쪽에서 오는 이들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그랬군요." 그 이후로 그의 이야기는 한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북쪽에 자리잡은 병기군에 타격을 가하면 성전에 자리잡은 괴물 역시 그것에 신경을 쓸 것이고, 괴물의 세력 범위에도 영향이 가해질 것이라 했지요. 여기까지는 아마 아르사나 씨께서도 어떻게든 알아내셨을 것이라 생각해요."
이후, 셀린은 소르나에게서 들었다면서 또 한 가지의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려 하였다.
"이것은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소르나 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성전에 있다는 '괴물' 은 진짜 괴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요?" 사실, 이전에도 괴물로 추정되는 두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알프레드 노인을 통해 들은 바 있었다. 하나는 성전에 있다는 어떤 젊은 여성이었고, 또 하나는 그 부근에서 보았다는 기분 나쁜 인상의 어떤 남자였다. 이를 두고 누가 진짜인지에 대해 부질 없는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소르나는 성전에 있는 존재-젊은 여성의 모습을 한 존재-가 가짜일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말이 그렇지, 소르나는 아마 그 여성의 모습을 한 이를 가짜로 보았을 것이다. 적어도, 여성의 모습을 한 존재는 괴물의 영혼이 아닐 것이라 여긴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고 해도, 소르나가 잘못된 추측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 만큼, 그것에 대해 너무 확신하지 않고, 지브로아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실체를 목도해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저를 호적수로 여기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확실히 아는 바는 없지만, 그렇게 도발을 한 이후에 아르사나 씨께서 계신 곳으로 접근해 올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어요. 그래서 예나 씨께 부탁을 드려서 아르나사 씨께서 바로 운용할 수 있는 글라이더를 1 기 준비해 달라 요청했지요."
"글라이더요?" 이후, 내 물음에 셀린은 그렇다고 답하고서 그 위치는 예나에게 물어보면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비행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금방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글라이더가 배치된 곳에 대해 알리려 한 이후에 무장이 장착되어 있어서 무장의 준비 과정 없이 바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이어 밝히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나의 비행선 우측 근방에 이르자마자 날개의 양쪽 가장자리 하단에 포신들이 장착된 글라이더 1 기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글라이더의 곁에 에오르 자매가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이게 그 예나 씨께서 마련하신 글라이더인가 보네요."
"그렇지요." 내 물음에 나의 왼편에 보였던 에오르 린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리아가 언급한 바에 의하면 이후, 내가 글라이더를 타게 될 일이 생길 테니, 글라이더 1 기를 무장을 충분히 준비한 채로 가져오라는 당부를 했었다고 한다.
"셀린 씨께서 저를 도발하는 어떤 메시지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이후, 나는 셀린이 나를 도발하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받았었음을 알린 적이 있었음을 그들에게 밝혔고, 그러자 에오르 린은 "그런 일이 있었군요." 라는 화답을 하였다. 하지만 에오르 린은 나에게 그 존재가 금방 나를 찾으러 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해안 일대로 올 테니, 대비는 해 둘 것을 부탁했다. 이후, 리아가 나에게,
"수상한 존재가 포착되면 그 때에 아르사나 씨께 통신을 통해 그것에 대해 알리도록 할게요."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나와 통신을 하기 위한 술식을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적어도 에오르 자매는 나에게 위해를 줄 사람들은 아니었던 만큼, 그 술식을 바로 알려주었고, 그 답례로 에오르 자매는 린과 리아 순으로 자신들의 술식을 알려주니, 그리하여 나는 에오르 자매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과의 통신을 위한 술식을 주고 받은 이후에 다시 예나의 비행선이 위치한 곳을 거쳐 일행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려 할 즈음, 비행선 바로 앞에서 어느새, 평상복 차림을 다시 갖춘 카리나, 세니아가 모여서 어떤 책자를 살펴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카리나, 세니아, 여기서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아아." 그러자 우선 카리나가 나를 맞이하더니, 나에게 예나의 비행선 안에서 어떤 기계 장치를 발견했었음을 밝혔다. 이후, 그가 예나에게 관련 자료를 열람해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이에 예나가 흔쾌히 관련 자료로서 기계 장치에 관한 기록을 쓴 책자를 그에게 잠시 빌려주었다고 했다.
"기계 장치 내부에 기록 장치가 내장되어 있었다고 하더라. 손상된 물건이었고, 그래서 예나 씨께서 원래 무엇을 기록한 장치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저장 장치의 내부 구조를 분석하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너네들, 보면 알 수 있기는 해?" 책자를 빌려받은 것은 좋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카리나, 세니아 모두 그 기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여부로 그들도 천문대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공부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전투적 감각은 뛰어나도, 지식은 평범한 수준이라 전문 용어들이 가득할 예나의 기록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라고 해서 딱히 다를 것은 없었겠지만 그들보다는 내가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 정도는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에게도 기록을 열람해 보라고 요청하려 하기는 했었어."
이에 카리나가 그런 나에게 그렇게 화답하고서, 기록들을 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기록들에 쓰여진 내용을 정리할 수 있으려면 나나 세나 등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다고 생각해서 나 역시 기록을 열람해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했었다는 것.
"우리는 이미 볼 만큼 봐서, 아르사나, 우선 너에게 이 책을 줄게. 다 보고 나면 우리한테 다시 돌려 줘, 알았지?"
"걱정 마." 세니아의 부탁에 알겠다고 답하고서 그로부터 책자를 건네 받았다. 그리고서 책자를 펼쳐서 그들이 보고 있었다는 기록을 보려 하였다.
앞 부분에는 여러 도표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펜으로 거칠게 그려진 듯해 보이는 도표들은 어떤 개체의 구조를 도식화한 듯해 보였으며, 각 칸에 쓰여진 로마자들이 그 개체들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알리려 하는 듯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종의 용어들을 나타내는 듯한 로마자 집합들을 나는 그 동안 보거나 한 적은 없었기에 그 도표를 보기만 해서는 그 의미를 알거나 하기는 어려웠다.
'분명 고문명 시대의 문물에 관한 용어들일 텐데....... 카리나, 세니아도 여기서부터 난감해했겠네.'
그 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다만, 해석에 대한 답은 뒤쪽에 있을 것이라 여기면서 책장들을 마구 펼치며 책장의 뒤쪽을 보려 하였다. 중간 내용들을 살펴봤자 나도 잘 모르는 내용들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높아서 결론 부분이나 보자고 한 것.
하지만 기록의 마지막 부분 역시 숫자 집합들-2 자리 16 진수들-들로만 가득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 숫자들의 배열은 모종의 규칙을 띠고 있어 뭔가 의미를 가진 문구를 암호화한 것으로 여길 여지는 충분했지만, 그 규칙 자체를 알지 못하는 이상, 내가 이것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거나 할 여지는 없었다.
"이거 안 알려줬구나, 예나 교수님께서 자료 해석을 아직 끝내지 못하셨대. 자료 해석을 중단한 채로 놓아둔 것을 빌려주신 거야."
"그런 거였냐?"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책자 열람을 멈추고 책자를 덮었다. 그리고 괜히 책자에 기록된 숫자들을 보고 고민하던 것에 대해 괜히 그런 짓을 했구나 싶은 생각에 그런 사항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던 카리나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진작에 그런 것에 대해 알려주지 그랬어."
"너라면 뭐든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지."
그러자 카리나가 답했다. 그 이후, 그는 내가 돌려주는 책자를 다시 받고서 아무래도 예나 역시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고서, 이런 파손된 기록 장치들이 행성계 곳곳에 널려 있다는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었다고 말했다.
"예나 선생님과 에오르 자매 두 분의 대화에서 들은 이야기야."
그러더니, 이어서 에오르 자매 역시 고향인 아르데이스 성계에도 그런 장치들이 곳곳에 널려 있어서, 장치에 기록된 내용을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음을 밝히고서, 기록 장치에 대해서는 그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두 사람과의 만남을 마칠 무렵, 에오르 자매, 카리나, 세니아와 마주하고 있던 나의 곁에 머무르고 있던 셀린이 다시 나의 곁으로 돌아와 나와 함께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잔느 공주와 루이즈 그리고 리 셀린과 사라-사라는 어느새 그 쪽에 가 있었다-가 머무르는 곳 그리고 세나, 나에티아나 그리고 탐파 등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을 거느리시게 된 것 같아요."
"어찌하다 보니......." 그러자 내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들 중 다수는 천문대에서부터 인연을 가져온 이들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고, 그들 역시 동행하게 하다 보니, 일행의 수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 중에서 싸우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예." 이후, 셀린이 묻자,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서, 잔느 공주와 루이즈 등이 있음을 밝힌 다음에 탐파, 사라는 집으로 돌려 보내고, 루이즈는 예나의 비행선에 머무르도록 하거나, 아니면 탐파, 사라의 집으로 가게 해서 안전을 확보하도록 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잔느 공주님께서는 그렇다면......."
"그 분께서는 어떻게든 저를 따르실 것 같고, 또, 그 분께서 가지신 것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저희들이 앞으로 갈 곳으로 모시고 가려고 해요."
이후, 셀린의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이후, 셀린은 잔느 공주, 루이즈에 대해 모두 옛 문명 시대의 사람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서 그들이 가진 것이라면 옛 문명의 소산이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예나로부터 지브로아에 자리잡은 '괴물' 은 옛 문명과 관련이 있는 존재인 것으로 알고 있음을 말한 후에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
"옛 문명의 존재와 소통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시고 계신 것 같아요, 그렇지요?"
잔느 공주, 루이즈가 일행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옛 문명 시대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옛 문명 시대의 언어를 대부분 알거나 하지 못하고, 배울 수 있는 가능성도 거의 없는 이상, 그런 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옛 존재와의 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괴물' 이라 칭해지는 존재의 언어를 해석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두 사람의 도움이 더더욱 필요했다.
"일부 언어는 지금 문명에도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옛 영혼들이나 괴물이 그런 언어를 쓸 수 있으면 다행이고요."
이후, 셀린의 물음에 바로 답했다. 셀린이 말한 대로라면 참으로 다행이겠지만, 그런 상황을 늘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인류의 국제어로 알려졌던 에스페란토 (Esperanto) 를 익히고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브로아 북쪽 상공으로 누가 가게 될 것인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지요?"
"예, 아직이요." 이후, 내가 물음을 건네자, 그 물음에 셀린이 바로 답했다. 그 이후, 셀린은 예나는 일단 자신이 북쪽 상공으로 가고, 그와 더불어 갈 수 있는 이로 리사 데 마나 (Lisa de Mana) 라는 마녀와 연락해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리사라 하셨나요?"
"예, 이전에 샤하리아의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신 바 있지요. 혹시 그 분과 아는 사이예요?"
셀린은 나에게 리사라는 인물과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결코 낯설지 않았던 이름을 듣고 난 이후, 나는 셀린에게 어렸을 적, 학교에서 선생으로서 만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러 의미로 나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했다고 이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셨군요." 그러자 셀린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 이후, 셀린은 어렸을 적에 만났다면 초등교육 과정의 교사로 일했던 것 같다고 말한 후에 나에게 그가 마녀이자 마법 기사로서 활약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게 됐죠." 그러자 그렇게 답하고서, 그에게 초등교육 과정 이수 이후에도 그에게 사사를 받으며,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셀린은 다시 한 번 미소를 띠며, 그런 나에게 좋은 인연이 된 것 같다고 말한 다음에 그는 베라티사 등지를 비롯해 이 행성계의 하나야스 지방 등지에도 인망이 높아서 그가 나서는 일에 자원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많은 만큼, 그와의 연락이 닿아,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북쪽 상공 쪽에 대한 부담이 적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앞 일에 대한 전망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셀린의 전망을 듣자마자 나 역시 미소를 띠며, 화답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예나가 리사와 연락이 닿고, 리사가 그의 인망을 듣고 따르는 이들을 다수 데려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음이 그 이유. 그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그를 따르는 이들 역시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 정도 이상은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사람들이 리사와 함께 한다면 괴물이 위치한 지브로아 북쪽 상공에 대해서는 충분히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물론 리사가 예나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이후에 좋은 소식이 생기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만 가 봐야 해서요."
그 이후, 셀린은 에오르 자매의 곁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그렇게 셀린이 내 곁을 떠난 이후, 나는 홀로 세나, 탐파, 나에티아나가 있는 그 곁에 이르게 되었다.
세나의 곁으로 가려 하자마자 탐파가 활발히 뛰어오며, 그런 나를 맞이하려 하였다. 그런 그를 보자마자 그의 바로 앞에 앉아서 그를 안으며, 환하게 웃으며 잘 지냈느냐고 물었고, 이에 탐파는 잘 있었다고 답했다. 그 이후, 탐파가 나에티아나를 따라 공놀이를 하기 시작할 무렵, 바닷가에 조용히 앉아있던 세나를 향해 다가갔다. 세나 역시 내가 접근해 오자마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온화하게 미소를 띠며 말을 걸려 하였다.
"아르사나 씨, 제 곁에 앉아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이후, 내가 그의 오른편 곁에 앉아서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뻗으려 하자, 세나가 그런 나를 보더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소르나 씨, 보고 싶지 않아요?" 소르나를 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내가 아무래도 소르나와 유난히 친했다보니, 그런 질문이 나오게 된 것.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그의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소르나의 근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최근에 본 것은 베라티사의 어느 학당 내 기숙사에 있는 그 자신의 방에서 학업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이 전부였어요."
"그랬구나." 그러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서 세나에게 그것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느냐고 묻자, 세나는 자신이 아는 바는 그 정도라고 답했다. 이에 나는 알겠다고 화답하고, 그 모습을 보던 세나가 나에게 소르나에 대해 무언가 더 아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에 대해 우선 세나에게 털어놓기로 했다.
"사실...... 이전에 소르나를 만난 적이 있어. 우리 몰래 여기저기 다니고 있는 것 같더라. 그러다가 나와 몇 번 마주했었고. 아무래도 나 이외에는 자신이 이 행성계에 와서 돌아다니고 있음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고."
"정말이에요?" 이에 세나가 놀라는 반응을 보이더니, 이어서 이전에 보았던 그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마, 그의 모습을 흉내낸 인형이나 환수겠지." 이에 세나는 "역시, 그랬었네요." 라고 말했고, 이후, 나는 세나에게 언젠가는 내가 소르나를 만났던 사실을 밝히려 했었고, 어떻게든 천문대에 있던 이들이 소르나와 만날 수 있도록 할 생각이 있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세나가 왜 이적지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고 묻자,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탑처럼 높은데, 막상 하려니까, 잘 안 되더라고.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를 할 까봐, 우려스럽기도 했고."
"뭔가 부끄러운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 혹은 자신이 없어져 버려서, 실천에 옮기려니, 마음 같지 않더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세나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이에 세나는 조용히 웃으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서, 나에게 모두 함께 한 곳에서 지내던 동료들이었고, 또, 무슨 일이든 함께 했던 사람들 아니었느냐고 묻는 듯이 말하더니, 이어서 그런 옛 친구가 돌아오는 것을 카리나를 비롯한 나의 동료들 모두가 좋게 받아들여줄 수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다들 말이 없을 뿐이지, 소르나 씨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그의 행방이 걱정되는 것은 모두 한결 같거든요. 그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분명 카리나 씨, 세니아 씨도 아주 좋아해 줄 것이라 믿어요."
"정말이겠지?" 이에 내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묻자, 세나는 다시 미소를 띠며 "그럼요!" 라고 화답을 했다. 그 이후, 세나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그런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했다.
"그 동안 저도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소르나 씨하고 아르사나 씨,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소르나 씨께서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저에게 요청을 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던 거예요."
"나는 언젠가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어?"
그러자 세나는 소르나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소르나 자신이 나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래 숨기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소르나 씨는 비밀 연애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 이에 나는 조용히 웃음을 짓는 것으로 반응했다. 늘 지적이고 자상한 성녀 같은 모습이나 보일 줄 알았는데, 그런 이면에 다소 철없는 장난꾸러기 같은 일면이 있었을 줄이야. 언젠가 그런 장난질을 그만두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때에 세나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당분간은 그런 즐거움을 누리게 놓아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암만 그래도 당장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들이대면 소르나 씨도 실망할 것 같아요."
"그렇겠지? 나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어." 그러자 나는 나 역시 세나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답을 하였다.
이후, 한 동안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나에티아나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세나가 갖고 있던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나에티아나로부터 받아서 여전히 내가 갖고 있었는데, 세나를 만나자마자 그것을 돌려줘야 할 필요가 있음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
"아, 맞다! 세나, 잠깐만." 그리고서 나는 오른쪽 바지를 뒤져서 그 안에 넣어둔 그림 종이를 꺼내 세나에게 건네려 하였다.
"이거, 원래 네 것이었잖아, 그렇지?" 어떤 부부와 어린 소년, 소녀들로 구성된 가족들을 묘사한 그림 종이를 보자마자 세나는 그 종이를 두 손으로 건네 받고서는 "고마워요." 라고 화답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에게 굳이 돌려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고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고?"
"예." 이 물음에 세나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후, 그는 그 그림의 비밀은 자신이 아닌 나에티아나나 프라에미엘 혹은 내가 더 잘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아니, 이런 일은 너 자신이 해결해야지. 네 일이잖아, 내 일이 아니라."
"그렇기는 하지요." 그러자 세나는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그러더니, 그림 속의 가족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있는 곳에서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도 소르나처럼 다른 이들에게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가 보구나."
그렇게 세나에게 그림까지 돌려준 이후,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라가 가르쳐 주는 이런저런 놀이를 배우는 잔느 공주와 루이즈, 책 읽는 것도 포기하고, 예나의 비행선 위에 올라서려 하는 카리나, 세니아 등을 뒤로 하고서, 글라이더 앞에 접근하려 하였다.
글라이더 근처에는 리 셀린을 데려온 에오르 자매가 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데, 그 뒤쪽, 글라이더의 날개 위에 어떤 낯설지 않은 이가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색의 가벼운 옷차림, 소매 없는 셔츠와 짤막한 치마, 그리고 감색을 띠는 수영복으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짧은 감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다름 아닌 이전에도 몇 번 마주한 적이 있었던 그 소리였다. 소리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나에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나에게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라고 하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