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Intermission 5 : 6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소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에게 다가가려 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소리는 그런 나를 조용히 미소를 띠며 바라보려 할 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그의 몇 걸음 앞에 이르면서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탐파, 사라도 해변가에 와 있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아무래도, 우리와 같이 있으려고 한 모양인데."
  비슷한 나이대의 탐파, 사라도 해변가에 나와 있음을 알림으로써 그들과 함께 있도록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하려 했었다.
  "너와 함께 있는 게 나는 더 좋아서." 그러자 소리가 바로 밝게 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내가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올 무렵, 미소를 띠는 모습을 보이기만 하다가, 나에게 하나의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세나 씨로부터 어떤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 초상화를 건네 받았었나 봐?"
  "그건 어떻게 알았어?" 소리는 내가 세나가 그간 갖고 있던 어떤 옛 가족의 그림을 그로부터 건네 받았고, 이후에 돌려주려 한 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묻고 있었고, 당연스레 나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게 됐느냐고 묻게 되었다, 그가 그 광경을 직접 보았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 아는 수가 있어~." 그러자 소리는 히죽이면서 그런 나에게 답했고, 그리고 세나는 자신과 연이 있어 보이지 않은 어떤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 초상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서, 마치 자신의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 초상화처럼 취급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에 대해 이어 언급하기도 했다.
  "소르나가 나에게 알려 주었어, 소르나는 세나 씨와 엄청 친한 사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소리는 소르나가 세나 그리고 그가 소지한 그림에 대해 몇 가지 알려주어서 알게 되었음을 알리기도 했다.

  "...... 그것보다 한 가지 더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어. 네가 여기로 오기를 원했던 것은 사실 그 때문이야."
  "그래?" 이후, 내가 왔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음을 소리가 밝히자, 나는 바로 한 가지 의문 사항을 품으면서 그 의문 사항에 대해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만약에 그 바람대로 내가 오지 않으려 했다면 어떡하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네 곁으로 오기를 원했다면, 직접 부를 것이지, 안 오려면 어떡하려고?"
  "네가 나를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봐, 그렇게 너는 지금 이렇게 내 곁에 있잖아."
  이에 소리는 내가 자신의 곁에 있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하고서는, 자신이 앉아있던 글라이더의 몸체 위에 일어서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어서 자신이 등지고 있던 바다를 향해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자 나 역시 그런 그의 오른편 곁에 서 있으려 하면서 그와 함께 바다를 보려 하였다.
  "저 바다 너머에 있는 신전에 괴물이 도사리고 있고, 또, 그 괴물이 있는 곳 너머에 기계 병기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봤지?"
  "응, 이미 들어봤지." 소리의 물음에 나는 이미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미 몇 차례 들어본 사항으로 그것에 관한 논의도 있었음을 떠올렸다. 그러자 소리는 "여기까지는 잘 모르고 있을 거야."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건네려 하였다.
  "저 너머에 있는 괴물 그리고 기계 무리가 서로 친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어?"
  "그래?" 이전에 들은 정보는 그런 언급까지는 없었고, 괴물이 자리잡은 그 북쪽 너머에 기계 무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부였기에 소리가 알려주는 것들은 나에게 그저 생소한 이야기로 들릴 따름이었다.
  "그렇다니까." 그러자 소리는 바로 그렇다고 자신의 말이 옳음을 강조하려 하면서 서로가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서로 외부에서의 침입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어서 상호 간의 싸움을 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누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야?"
  "소르나가 알려주었어. 실은 소르나 뿐만이 아니라, 베라티사 학당의 리사 선생님도 같은 곳을 주시하시고 계셨대."
  "리사 선생님......이라고?" 이후, 놀라면서 묻는 나에게 소리는 그렇다는 화답 이후에 곧바로, 리사가 그 일대를 관찰하시면서 두 세력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실은 서로 성격이 다르며, 대립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고 소르나에게 알려주었던 것 같다고 나에게 알리려 하였다.
  "그래서...... 그 북쪽 기계 집단에서는 괴물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이를 위해 비행단을 하나 조직해서 비행 병기들을 보내 주기적으로 정찰을 하고는 했었대."
  그리고서 소리는 소르나 그리고 리사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로서, 이번에 기계 병기 무리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 비행 병기들을 새로 보냈음을 알렸다. 기존의 병기들과는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변형을 하는 비행 병기가 아니라고 했다.
  "이전까지 그 집단에서 비행기로서 보낸 이들은 가변형 병기들이었어. 새의 모양과 사람 닮은 모양으로 변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 그러다가 이번에 나오는 것들은 새의 형태를 닮은 형태만 유지하는 비행기로서 공중 전용으로 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빠르게 공격해 나아가는 능력을 시험해 보려고 만든 물건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그리고서 사람처럼 팔을 쓸 수도 있고, 사람처럼 칼을 휘두를 수 있으므로 접근해도 위험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한 가지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으니, 내가 그런 병기들과 마주할 가능성이 과연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병기들과 마주할 일이 과연 있을 거라 생각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하는 거야." 소리가 답했다. 이후, 소리는 병기들에 대한 설명을 바로 이어가려 하였다.

  그 녀석들이 새로 끌고온 것들은 일종의 시험기인 모양이야. 형식 코드 (Tipakoda, ßïkoda) 의 앞에 Y 가 붙어있으니, 시험기였겠지? 코드가 YIVM-012 (Ygrec'ivemme Douze) 였더라고. 얼마나 많은 시험기를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5 기가 있었대. 모두 같은 색이지만, 각자 다른 색으로 빛을 발하고, 무기에서 발하는 빛의 색도 그것에 따라 다르다고 해. 빛의 색은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그리고 보라색인 모양이야.
  부여된 색깔마다 서로 다른 인격을 갖고 있다고 했었어. 아무래도 서로 다른 인격이 기계에 입력되어 있던 것 같아. 그리고 동력원에 대한 정보 상에서는 '플라즈마 발전기 (Plasmanazartrî)' 의 일종이라 되어 있는데...... 그 실체는 이미 보아서 알 거야. 인격에 관한 정보의 근원도 분명 그러할 거라 생각해.

  소리는 동력원, 그리고 두뇌에 해당되는 처리 장치 (Haontrîmara - HTM, Haonafihazunita - HAU) 의 실체에 관해서는 소리는 더 언급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하미시의 고대 유적 아래에 있던 기계 괴물의 몸 속에서 보았던 장치 그리고 기계 괴물의 몸에서 나온 장치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 실체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굳이 소리에게서 더 이야기를 듣거나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 누구의 인격이 이식됐다는 이야기는 없었지?"
  "없었어." 소리가 답했다. 하지만 소리는 뭔가 짐작되는 바가 있었는지, 한 동안 말 없이 주변 일대를 두리번두리번 거리기만 하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려 하면서 뭔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었다.
  "소르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라, 예나 선생님이란 분께 들은 이야기라는데...... 혹시 들어볼 생각 있어? 조금 심각한 이야기라 지금 너에게 바로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소리를 만나거나 할 수도 없고, 소르나는 더더욱 그러할 테니, 지금 바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였다. 그 때가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전혀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바로 이야기를 해 볼게. 아까 말한 대로, 제법 심각한 이야기이니까, 마음 잘 잡고 있는 편이 좋을 거야."

  "예전, 그러니까, 고문명 시대에는 가수들, 무용수들이라든가 연주자들이 하나의 모임을 이루는 경우가 있었다는데, 혹시 알고 있었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소리는 한 가지 질문을 건네었다. 고문명 시대에는 가수, 무용수들이 여럿 모여 모임을 이루는 경우가 있었음을 밝히고서, 그런 경우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고 있었다. 어렴풋이 들어본 것 같기는 했지만, 깊이 관심을 가진 사항은 아니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부 자체가 잘 기억나지 않았기에, 이렇게 답했다.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잘 기억은 나지 않아."
  "그랬구나." 그러자 소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답을 하고서, 바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내가 말한 바대로 고문명 시대에는 그런 경우가 제법 있었던 것 같아. 홀로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러 소년, 소녀들이 모여서 하나의 모임을 결성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어.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모임은 그렇게 생겨난 모임들 중 하나야."

  "언제부터였을지,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것은 없어. 아는 것이라고는 한 가지 정도야. 현 인류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도 여러 가수, 가희 집단들이 생겨나서 암울해져 가는 시대에서 사람들의 즐거움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 그들이 좋든, 싫든, 그것은 상관 없이, 사람들을 노래와 춤으로 격려하는 역할을 그들이 해 왔었대."
  "그래야 했을 거야. '괴물' 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이래저래 삶은 힘들고,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힘들 테니, 가수, 가희들에게라도 의지하려 했겠지."
  소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략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가수, 가희 집단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집단에 대해서는 리사 선생님이라든가, 아잘리 등, 여러 사람들에게서 들을 만큼은 들었다. 그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신나는 음악과 춤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을 전시 상황 속 삶에서 그나마 기댈만한 희망들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괴물' 과의 전쟁 초기에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일상을 살 수 있었고, 가수, 가희 집단은 그래서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는 일을 할 수 있었어. 아마 그 가수들에 관계자들이라도 전시 상황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러하지 못했다는 말이지?"

  너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괴물' 과의 싸움에서 인간은 이기지 못했었지? 인간이 패배한 싸움이었던 만큼, 싸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에게 점차 불리해져 가고 있었어. 게다가 인간을 수호해야 할 입장이었을 인간 군단의 고위 관계자들조차 당장의 평안을 보장받기 위해 기계 군단 측으로 돌아서고, 인류의 장래를 책임진 전쟁에서 지역 경비를 전담해야 할 장병들이 본래 인류 수호를 책임져야 했던 기계 군단의 편에 돌아선 병기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극악한 상황이 이어질 지경에 이르렀지.
  그렇게 인류의 싸움이 절망으로 치달으면서 가수, 가희 집단은 일선에 선 장병들을 위해 활동하게 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전장에 투입되어 그들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면서 그들의 본업 역시 수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대.

  "그러다가 죽은 이들도 있었겠지? 많았을 것 같은데."
  "잘 알고 있네." 이후, 내가 묻자, 소리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이후, 소리는 자신이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음을 밝히고서, 아마 그렇게 전쟁터에서 허무하게 희생당하던 이들 중에서 그나마 운이 좋았던 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가수 집단이야, 가희 집단이야?"
  "...... 가희 집단이야, 6 명의 가희, 무용수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었대."

  어떻게 결성되었는지, 구성원이 무슨 출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는 알려져 있지 않아. 그들은 10 대 중후반의 소녀들이었고, 각자 하나의 색을 내세웠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어. 그들 모두 각자 다른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소녀들이었다고 하지만,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없어.
  인류의 전쟁이 극악한 상황에 치닫는 와중에 가희 집단 활동이 개시되었고, 그래서 구성원들은 예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전에 군사 훈련부터 받아야 했대. 그래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묵묵히 훈련을 받아들였고, 예능 활동도 이어갔다고 했어. 그들은 전투 상황에서도 나름 적응을 잘 했고,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에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대. 전쟁 말기에는 제대로 활동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가희 집단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야.
  너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 전쟁에서 인류는 승리하지 못했어. 그리고, 푸투로 계획에 선택받지 못한 이들 중에서 '괴물' 과 결탁한 일부 집단을 제외한 인류는 환경 악화로 점차 살 곳이 없어져 가는 행성의 지표면에서 '괴물' 들에게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나 맞이하고 있었어. '괴물' 과 변절자들의 만행에 저항하던 부대들은 하나둘씩 궤멸되어 사라지거나, 변절자의 편으로 돌아서면서 없어져가기 시작했어. 그 가희들이 소속된 군 부대 역시 마찬가지였지.

  "궤멸당하면서 사라진 거야?"
  "아니." 그러자 소리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버티지 못한 부대의 지휘관과 그 수하들이 항복을 선언해, 변절자의 편으로 돌아섰어. 가희들은 그리하여 변절자들 그리고 '괴물' 의 손에 떨어진 거야. 그 무렵에 살아남은 가희, 무용수는 5 명이었대. 한 명은 난전 중에 죽었다고 했어. 그 이후, 살아남은 5 명이 어떻게든 활동을 이어가다가 군단 자체가 항복하면서 변절자 집단에 신변이 인도되었던 거야."

  '괴물' 그리고 '괴물' 집단의 편으로 돌아선 변절자들과 처절하게 사투를 이어가던 그 부대가 어떻게 '괴물' 들에게 항복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고 있어. 전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졌음이 명백해지면서 부대장과 그 측근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했던 가희들이 이전에 전사한 소녀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도록 하려 하였고, 그래서 그들의 안위를 위해 변절자들에게 항복하기로 한 것이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지.

"우리는 괴물들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항복하는 것이다."

라고. 변절자들은 비록 기계의 뜻을 따른다고 하지만, 엄연히 인간들이고, 어차피 패색이 역력한 전투라면 죽거나 항복하는 길 밖에 없을 텐데, 가희들의 죽음을 목도하게 하고 싶지 않다면, 역시 항복하는 길 밖에 없고, 항복하자면 기계가 아닌 인간인 변절자에게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놀라는 심정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소리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소리는 "내가 말한 바대로야." 라고 답하고서, 자신은 그저 자신이 들은 바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 말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암만 같은 인간이라도 그네들이 어떤 이들이었는데...... 고작 그런 믿음 하나 갖고, 그들은 여자들과 자신의 부하들 그리고 자기 자신들마저 자신들을 어찌할지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 넘겼다는 거잖아!"
  가희들의 보호자 노릇했던 그 부대장과 관계자들이 정말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모르고 항복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가희들의 목숨을 내세우며 항복했다는 말에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 얼토당토 없는 명분들을 내세웠다만 실제 이유는 달랐을 것이다.
  "...... 결사항전하겠다면서 막상 죽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목숨 부지하려고 그랬겠구나, 그렇지? 가희들의 목숨도 팔아 넘기면서."
  "......" 소리는 거기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런 나의 말에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소리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서 나에게 그 가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해 줄 것인지에 대해 물었고, 그러면서 나 정도면 그들의 운명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리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나는 변절자들의 품에 넘어간 가희들의 운명이 어떠하였을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 관계자들이 원하는 대로 이용당하다가 가치가 없어진 이후에 '괴물' 들에게 넘어갔겠지, 그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바였다. 그리고 변절자들의 편으로 돌아선 부대원들의 운명 역시 가희들이 사라진 이후, 가희들처럼 '괴물' 들에게 끌려가며 '사라지게' 되었을 것임은 더 말할 것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하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리에게 묻자, 그는 바로 소르나가 이전에 관찰했던 것이 있음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다.
  "소르나 씨께서 말씀하셨어, 북쪽 상공 너머에 5 기의 전투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는데, 그들이 발하는 빛이 그 가희 집단의 구성원을 상징했다는 색깔-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보라색-과 거의 비슷했다는 거야."
  "그래?" 이후, 소리는 일대를 오가며 무리를 짓는 기계 병기들이 간혹 보이기는 했지만, 그런 다섯 색의 조합을 보여주는 집단은 없었다고 소르나가 자신에게 알렸으며, 그래서 이전에 리사 선생님, 그리고 자신이 알려주었던 이야기의 그 가희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알린 것이었다고 이어 말했다.
  "그들 중에서 붉은 개체가 있어. 정확히는 '붉게 빛나는' 개체이겠지만. 소르나가 알리기를, 그 개체가 유난히 전투적이면서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보인다고 했어. 기계 무리 사이의 대화에 의하면 하미시의 고대 유적 안에 도사리고 있던 기계 병기가 파괴되고 그것이 거느리던 무리가 궤멸당한 것에 유난히 흥미를 느끼고 있나 봐."
  그리고서 그는 이어 말했다.
  "그 개체는 기계 무리를 섬멸한 존재에 대한 호적수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어, 그 존재를 자신이 어떻게든 격파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의식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해야 할 지, 그런 것 같아."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셀린이 나에게 어떤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음을 알렸던 때였다. 그 때, 셀린은 수상한 발신자로부터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 메시지가 다름 아닌 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베르티, 그는 나의 호적수이며, 나는 그와 싸우기를 원한다 (Eam apelle, volo pugnare. Bertia. rivalis meus est)' 라는 뜻의 메시지. 그러면서 소리가 언급했던 그 개체와 발신자가 서로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나와 싸우기를 원하는 어떤 발신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었어, 다른 이로부터 전달받은 것이기는 했지만.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을 바로 거론하며, 나와 싸우려 한다는 뜻을 전했었지."
  "그랬었구나." 그러자 소리가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까 내가 말했던 그 붉은 개체가 너와 싸우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그 자일 가능성이 커. 그 지하의 거대 병기를 파괴한 존재에 대한 흥미를 느끼다가 우연히 그 자가 바로 너였음을 어떤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겠지."
  거기서 한 가지 알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그가 어떻게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느냐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를 처음 들었을 때에도 발신자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는 했었지만, 당장에 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건의 관계자로서, 적대 세력을 오래 관찰하고 있을 리사 선생님 그리고 소르나와 아는 사이였을 소리로부터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던 만큼, 그 기회만큼은 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개체는 어떻게 나를 알게 됐대?"
  "나도 잘 알지 못하기는 해." 소리는 우선 이렇게 답을 했다. 하지만 곧, 그는 한 가지 짐작되는 바가 있기는 하다면서 이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전에 고대 유적에서 살아남았다는 어떤 전사가 있었어. 고문명 시대의 인간이었다가 동면 이후에 모종의 목적으로 깨어나서 기계 무리의 편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자가 어떤 여학자를 찾아갔었어. 본래 베라티사의 학자였다가 변절해서는 기계 무리의 편이 된 사람이라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 그 사람이 너의 존재를 그 여학자에게 알렸어. 아무래도 그 여학자가 네 이름을 그렇게 알아내서는 그 개체에 알렸던 것 같아."
  그러면서 소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나도 이것에 대해서는 소르나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거야. 그것이 진실인지는 소르나만이 알고 있겠지. 나중에 소르나를 만나게 되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 봐."
  그리고 하늘을 잠시 바라보려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언급했던 그 비행기들이 날아드는가를 보려 했던 모양. 그렇게 한 동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더니, 그 비행기들이 날아들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바로 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북쪽 지방으로 간다는 리사 선생님, 너의 은사이셨지?"
  이후, 소리는 나에게 리사가 나의 은사 아니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전에는 내가 다녔던 학당에서 교사로 부임한 적도 있었고, 그 이후에는 모종의 이유로 내가 어렸을 적 다녔던 학교에 있다가 내가 그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베라티사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음을 말했다.
  "그랬구나." 그러자 소리가 그렇게 화답하고서, 자신이 알고 있던 바 그대로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느냐고 묻고 싶기도 했지만-분명 그 때에도 소르나로부터 들었다고 둘러댈 것임이 분명해 보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온전히 듣고나서 물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르나가 리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 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대. 아무래도 어머니에 이어, 딸까지 자기 제자가 되어 주었으니까. 참으로 우연한 만남이었대. 남자아이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아르데이스에서 왔다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고 했는데, 리사 선생님께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너임을 알아보셨나 봐."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리사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이전에는 어렸을 때의 모습만 보다가 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나를 본 것이었고, 그 무렵에 나는 아르데이스의 엘베, 드벨파족 남자아이들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드벨파 족 여인의 손자 같은 아이로 살고 있어서 그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나를 알아봐서 놀랬었다. 그가 나를 알아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가 당시 살던 집에 가정 방문으로 찾아왔을 때였고,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려주었었다.
  "너는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는 편이 너답다고 그 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언제였었지?"
  "할머니께서 집을 떠나신 이후. 그 이후로 머리카락을 깎아줄 사람이 없었고, 이발소 갈 형편이 못 되어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할 수 없었는데, 그 때에 리사 선생님께서 나를 보더니, 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는 편이 좋다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된 거야."
  "할머니께서는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하시기를 원하셨나 봐?"
  "아니, 딱히 할머니께서 딱히 그것을 원하거나 하지는 않으셨어. 다만, 그 당시에는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하려 하였기에, 이를 위해 할머니께 머리카락을 깎아달라 요청을 했었고, 할머니께서는 그런 나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내 머리카락을 깎아주셨던 거야."
  할머니는 리사 선생님의 가정 방문 이후, 1 년도 되지 않았을 때에 집안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집을 떠났고, 그 이후로 내가 할머니를 만난 적은 없었다. 할머니의 소식이 가끔 궁금해지기도 했었지만 할머니를 만날 여유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만날 기회를 마련하거나 할 수 없었다. 사실은 한 번 그를 만나려고 아르데이스 성계에 간 적도 있었지만 그의 소재지를 파악하거나 할 수는 없어서-그 누구도 할머니 거주지를 알려주거나 하지 않았다. 사실, 못했을 것이다-, 그를 만나거나 할 수 없었고, 그 이후로는 기회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할머니께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어. 다만, 가족 분들과 잘 지내고 계시기를 소망하고 있을 뿐이었지."
  "그랬었네." 이에 소리가 말했다. 그 표정을 보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혹시 그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혹시나 싶은 생각에 물었다. 그러자 소리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아르데이스의 에테르니폴리 (Eternipoli) 지구에 거주하시던 에멜라 (Emella) 할머니였을 거야. 아들 셋에 딸 둘, 며느리 셋을 두신 할머니로 한 때 요양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 행성계의 샤햐르에 맡겨졌고, 이후, 아들 일가의 사람들이 한 번씩 방문해서 부양하다가 모종의 일로 인해 방치되고 혼자 지내시고 계셨다더라. 소르나가 학업 차, 리사 선생님과 함께 에테르니폴리에서 지낼 당시에 알게 된 어르신들 중에 샤하르에 요양차 방문하셨던 분으로 현지의 소년과 함께 지냈다는 할머니는 그 분이 유일하셔서 바로 알 수 있었대."
  "현지의 소년이라면 나였겠지?"
  그러자 소리는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하지만 소르나는 그 '소년' 이 나였을 것임을 그 때에는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아르데이스에서 우연히 같이 살게 된 고아 소년이었을 것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에멜라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되셨대? 이미 돌아가셨겠지만......"
  "에테르니폴리의 요양소에 들어가신지 몇 년 만에 돌아가셨대. 소르나는 몇 년 후라고만 들었지만, 아무래도 1 년만에 세상을 떠나신 것 같다고 하더라."
  이후, 소리는 나에게 그의 장례는 그의 가족 일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그 와중에 장례를 치르는 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지 않았고, 이것이 그간 있었던 부양 문제라든가, 할머니의 유산 상속에 관한 갈등에 기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사례는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그렇게 낯설거나 충격적인 이야기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그 일이 하필이면 나의 또 다른 가족과도 같았던, 어쩌면 어머니만큼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 분이셨을 할머니에 관한 일이었다는 것. 어머니를 잃고, 소리와의 연락도 사실상 끊긴 이래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이가 더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하던 (*) 나에게 다시 누군가와 가족으로서 함께 살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이가 바로 할머니였다. 할머니 역시 그런 나를 소중한 사람처럼 여기셨고, 이대로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진짜 가족은 그의 자식들 그리고 자식들의 일가였던 만큼, 그들이 나보다도 할머니를 더욱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자식들과 그 일가는 할머니께서 살아계셨을 때에는 그를 무관심 속에 요양소에 보냈다가 그 분께서 세상을 떠나시니, 부양 문제니, 유산 상속 문제니하며 서로 다투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켠이 아리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나보다도 더욱 오랜 시간을 그 분과 함께 보냈을 이들이 겨우 몇 년 인연을 가진 어린아이보다도 그 분을 더욱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지.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할머니 묘소를 찾아가 봐야 하겠어."
  이후, 나는 소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에테르니폴리 인근 묘소에 있을 것 아니냐고 묻자, 소리는 그렇다는 대답 이후에 서쪽 인근의 납골당에 그의 유해가 모셔져 있음을 알렸다. 소르나가 1 년에 한 번씩 참배하러 간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래?" 그러자 나는 소리에게 그렇게 말한 이후에 이렇게 부탁을 했다.
  "혹시 소르나를 만난다면 이것이나 부탁해 봐, 그 에테르니폴리의 묘소가 어디에 있느냐고 말야."
  "그런 것은 직접 부탁하면 되잖아." 이에 소리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나는 소르나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 라고 답하고, 곧바로 그것에 이어 소리는 소르나를 자주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그래서 소리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라 말했다.
  "알겠어. 소르나에게 그것에 대해서는 꼭 말해달라 해 줄게."
  그러자 소리는 활짝 웃으면서 그렇게 화답을 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는 그간 올라타고 있던 글라이더의 기수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글라이더에서 뛰면서 나의 오른편 곁으로 오더니, 나에게 내가 그 글라이더를 한 번 탈 기회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당장은 아니겠지, 하지만 금방일 거야."
  "금방일 거라고?" 그리고 내가 묻자, 소리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전에 내가 말했었던, 가장 호전적인 성향을 가진 붉은 비행체 혹은 그 비행체에 장착될 인격 장치가 장착된 어떤 병기가 너를 도발하려 해변에 올 거야. 이전에 너를 호적수로 여긴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있고, 그래서 네가 머무르고 있다는 해변 일대를 무차별 공격해 오려고 하겠지. 네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그런 짓을 행하려 할 거야."
  "내가 덤비지 않으면 모두 다 죽어도 상관 없다 이거지? - 라는 것이지?"
  "그런 거야." 그 물음에 소리는 그렇다고 답하고서, 나에게 이렇게 제안을 하려 하였다.
  "기왕 그렇게 됐으니, 이렇게 해 보자는 거야, 만약에 너와 결투를 행하겠다고 해변으로 그 개체가 쳐들어 오면 그 개체가 바라는 바대로 그 개체와 맞서자는 것이지. 여기서 제대로 대응을 해 준다면, 적어도 그들이 네 앞에 얼씬거리거나 하지는 못할 거야."
  그 이후, 소리는 글라이더의 우측 옆의 모래 벌판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뭘 하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미처 듣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 그렇게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소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에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려 하였다.
  "그 개체는, 내 생각인데...... 조금 싸우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돌아갈 거야."
  "그러할 것이라 확신하는 거야?" 이후, 내가 묻자, 소리는 확신한다고 답하고서 이렇게 이어 말했다.
  "그 개체가 여기로 오는 것은 본래 정찰의 임무로서 오는 것이고, 정찰 임무를 맡았다면 모름지기 무사 귀환을 전제로 활동해야 하니까, 너와 맞서려고 해도, 그런 생각을 고려하면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아니, 그 전에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게 나에게 도발성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개체. 분명 호전적이고 호승심이 강하며, 내가 덤벼오지 않으면 내가 있는 그 일대를 무차별 공격하려는 의사까지 드러내는,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을 전혀 가리지 않는 인격이 구현된 병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리는 그 병기에는 고문명 시대에 활동하다가 '괴물' 의 편으로 돌아선 변절자 인간들에 의해 '괴물' 들에게 넘겨진 가희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 동력원 등에 쓰이고, 그 뇌는 두뇌에 해당되는 장치에 쓰였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내 짐작이겠지만, 가희는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을 것이고, 소리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리에게 그 비행체에 대해 우선 이렇게 질문을 해 보았다.
  "붉게 빛나는 개체라면...... 붉은색이 상징색이었던 그 가희와 관련이 있겠지?"
  소리는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다른 말없이 동의의 의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역시 내가 짐작한 대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어서 그에게 이렇게 질문을 해 보았다.
  "본래 가희는 그런 인격을 가진 이는 아니었겠지?"
  "당연하겠지." 그러자 소리는 바로 지극히 당연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가희는 원래 그런 호전적인 사람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다고 이어 말하고서, 그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애초에 그는 인간이었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냥꾼, 전사로 태어나지 않아, 그 '누구' 처럼 말야. 물론, 그런 사람처럼 변해갈 수는 있겠지만, 정상적인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것을 함부로 즐기거나 할 수는 없겠지, 그것도 원래 가희 생활을 하던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이것을 의미할 거야. 그 두뇌 성분에 모종의 사유로 인한 변질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기라도 한 거야?" 이후, 내가 묻자, 소리는 바로 그렇다고 답하고서 자신이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를 밝히려 하였다.
  "애초에 두뇌의 세포를 활용한 것이 아닌, 두뇌의 세포에 담긴 것들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이라는 것. 그러니까, 두뇌에서 정보, 그러니까 다타 (Data) 들만 추출해내서 기계 장치의 두뇌에 해당되는 장치에 각인했다면 그러할 수도 있다는 거야. 호전적인 성격이야 원래 인격에 잘 맞춰서 입력시키면 되는 것이고."
  그 이후, 소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는 사람들이 편안히 있을 밤중의 어느 때에 기습적으로 올 것임을 알리고서, 혼자 오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그 점도 고려해서 행동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서 동쪽 방향으로 뛰어가려 하다가 잠시 나를 향해 돌아서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참! 세나 씨와 만나서 같이 대화하려 한 것은 잊지 않았겠지? 혹시 모르니까, 알려줬어. 세나 씨도 잘 모르기는 해도, 뭔가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이더라. 꼭 만나주길 바랄게."
  "걱정 마,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러자 나는 그에게 그런 것에 대해서까지 걱정하지 말아달라는 식으로 답을 했고, 그 이후, 소리는 해변의 동쪽 먼 저편으로 뛰어가면서 나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시점까지는 보였으나, 그의 모습이 내 눈 앞에서 멀어진 이후, 세나가 있는 쪽으로 돌아서려 했다가, 잠시 소리가 뛰어가던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무렵, 세나는 왼손에 탐파 그리고 오른손에 사라의 손을 잡은 채로 예나의 비행선 좌측 근방에 있던 하얗게 빛나는 마법진을 이용해 탐파와 사라와 함께 어딘가로 가려 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아직 어린 아이였을 탐파, 사라를 그들의 집이었을 골동품 가게로 돌려보내려 한 것으로, 세나는 그 골동품 가게 정문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가 그 부근과 이어지는 마법진을 만들려 하였다고 한다. 이후, 세나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있던 탐파, 사라는 마법진에서 발하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세나는 그 이후, 일행이 잠자리를 찾기 위해 비행선 쪽으로 모일 즈음에 혼자 돌아왔다. 탐파, 사라는 마법진을 통해 가게로 돌아가도록 하고서, 혼자 마법진을 통해 다시 돌아온 듯해 보였다. 마법진은 그렇게 일을 끝냈지만, 세나는 그럼에도 마법진은 남겨 두었다. 탐파, 사라가 몇 번 정도는 지속적으로 마법진을 통해 해변과 가게 정문 부근을 오갈 수 있도록 하였던 것 같다.

  탐파, 사라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나섰던 세나를 제외한 일행은 한 동안 각자 나름의 시간을 갖고 있다가, 밤이 깊어지고, 세나가 마법진을 통해 해변으로 돌아올 때가 되자, 잠을 잘 곳을 찾기 위해 비행선이 있는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카리나가 일행을 대표해서 예나에게 천막을 요구했다-그 광경을 보면서 이전에도 카리나가 일행을 대표해 이런저런 일을 해 왔던 것을 떠올리고는 했다-. 아무래도 본래 쓰던 사람이었을 예나나 셀린, 그리고 에오르 자매 등의 수면에 방해되지 않을 필요가 있었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 때, 에오르 자매가 말하니, 나를 비롯한 일행이 비행선 안에서 잠들도록 하고, 자신은 리 셀린과 함께 밖에서 자겠음을 밝혔다. 셀린 역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면서 본래 비행선에 있던 이들은 모두 천막에서 자게 되고, 잠깐 신세를 지게 된 나를 비롯한 일행이 비행선 내부에 있게 되었다.
  "전부 밖에서 주무시겠다니, 무슨 말씀인가요?"
  "바깥 관측을 주기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이렇게 된 바에 밖에 나가기로 한 것이지요. 이전에도 교대로 자다가 관찰하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천막을 치고 밖에 있는 편이 편하기도 해요."
  이후, 카리나가 묻자, 에오르 린이 답했다. 그 무렵, 그런 에오르 린의 우측 곁에 리 셀린이 다가갔다.
  "그런 임무는 비행선 안에서 자고 있으면서 해도 되잖아요."
  "너를 보다 강하게 단련시킬 필요가 있기도 해서 그래." 그러자 에오르 린이 곧바로 리 셀린에게 답했다. 그리고 전사로 살고 싶다면,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더니, 이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여기 있을 동안에는 계속 밖에서 천막치고 잘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리 셀린은 다소 못마땅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지만, 에오르 린의 단호한 표정을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알겠어요." 라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그 광경을 바로 뒤에서 지켜보던 셀린에게 잔느 공주가 다가가서 물었다.
  "리 셀린 씨는 탐탁치 않아하시는 것 같아 보이네요."
  "그렇기는 해요." 이에 셀린이 바로 그러할 것임을 자신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 이후, 그는 에오르 린의 행동에 대해 틈나는 대로 리 셀린을 비롯한 후배들에게 야외 숙영 훈련을 시키는 것 같다고 말하고서, 리 셀린은 야외 숙영 훈련이 전사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기에, 그런 그의 지시를 받아주고 있지만, 때로는 에오르 자매의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기는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 번 정도는 비행선 안에서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으셔서 그러하시겠지요?"
  그리고 세니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묻자, 셀린은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이후, 그는 잔느 공주 등에게 그래서 리 셀린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주려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괜히 리 셀린이 에오르 자매에게 야단맞을 것이 우려되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하여 엘베 족 일행들은 비행선 안에 있던 천막을 통해 밖에서 자게 되었고, 나를 비롯한 일행이 비행선 안에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공간 자체는 좁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서로 모여 잘 수는 있었다. 비행선의 뒤쪽이었던 거주 공간은 엷은 주황색을 띠는 간단한 주방 공간과 침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침실 내부에는 청록색을 띠는 소파들, 그리고 그 위의 초록색을 띠는 받침대 위에 상아색을 띠는 천으로 감싸인 침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침대는 청록색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었다.
  소파들은 2 개로 입구 너머를 기준으로 좌측에 작은 소파, 우측에 큰 소파가 있었고, 그 사이에 빨간색을 띠는 네모난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왼쪽 소파에는 한 사람이, 오른쪽 소파에는 두 사람이 누워서 잘 수 있어 보였다.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일행 모두 위층은 잔느 공주, 루이즈 그리고 나에티아나가 이용하도록 하고, 나를 비롯한 일행은 소파를 이용하도록 하였고, 나를 비롯한 4 사람은 가위바위보 (Dola-Papir-Gawi) 로 소파에 잘 사람, 바닥에 잘 사람을 정하려 했고, 결과로 카리나와 내가 보 (Papir), 세니아와 세나가 바위 (Dola) 가 카리나와 나왔다. 그 이후, 첫 번째 경기에서는 졌던 세나, 세니아가 재경기, 세나가 가위 (Gawi), 세니아가 보 (Papir) 가 나오면서 결국 세니아는 바닥에서 자게 됐다.
  "안 됐다, 세니아, 네가 바닥 행이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내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세니아는 내가 바닥에서 잘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아르사나는 바닥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나라고 언제까지 바닥에서 자라는 법 있어?" 그러자 내가 화답했다. 그 이후, 다른 말 없이 소파에서 자게 된 나와 세나, 카리나가 다시 승부를 보게 됐다. 혼자 잘 사람을 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카리나, 세나, 나의 순으로 바위-가위-보가 나와 승부가 나지 않았고, 그 이후에 카리나가 혼자 바위, 남은 이들이 가위가 나오면서 카리나가 작은 소파에서 혼자서 그리고 나와 세나는 큰 소파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좋~겠다. 예쁜 애하고 함께 자는 거잖아, 그렇지?" 그 이후, 세니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고, 이에 나는 그런 그에게 이죽거리며 "부럽냐?" 라고 응수했다. 이에 세니아는 바로 이렇게 응수했다.
  "부럽지는 않아. 어차피 서로 친구 사이일 뿐인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누워버린 세니아를 보며, 카리나는 분명 부러운 게 맞는데,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을 뿐이라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알려 주었고, 나 역시 그런 그를 보면서 그에 대해 카리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나도 그러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곧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고, 그래서 카리나에게 내가 없는 동안에는 세니아가 소파 위에 올라가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카리나는 그런 나에게 알겠다고 답하고서 그런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돌아왔을 때, 세니아가 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쫓아 내야지, 자고 있으면 바닥으로 밀어낼 거야." 그 물음에 내가 답했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카리나는 조용히 히죽거리면서 그런 나에게 "참으로 너 답다." 라고 답했다. 그 이후, 카리나는 나를 보더니, 그런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르사나, 이번에는 어디 가려고?"
  "조금 먼 곳에." 대답을 하고서, 너무 멀리 가지는 않겠지만, 조금 멀리 돌아다녀 보고 싶다고 이어서 말했다. 그러자 카리나는 그런 나를 보더니, 나에게 가끔 일행과 떨어져 혼자 있으려 하는데, 마치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한 다음에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소리라는 여자애를 만나러 가는 거지?"
  그 물음에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 소리는 내가 원하는 때에 바로 만날 수 있는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홀로 있을 때마다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났을 뿐이지, 내가 의도적으로 그를 만나거나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아마 내가 그를 만나려고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타나지 않아서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홀로 어딘가에 있을 때마다 한 번씩 소리라는 여자아이가 나타났으니, 내게 그간 있었던 일을 알 수 있다면, 그의 존재를 충분히 언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카리나 역시 내가 그를 만나고 있음을 어떻게든 알아차렸을 것이고, 그래서 혹시나 싶은 생각에 물었던 모양이다.

  "그렇기는 해. 하지만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
  "좋은 시간 되기를 바랄게." 그러자 카리나가 그런 나에게 말했다. 말을 건네는 카리나의 표정에 미소가 가득했다. 다행히도 카리나는 소리에 대해 딱히 나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 듯해 보였다.

  내가 나가려 할 무렵, 세나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두 사람이 나가면 세니아가 넓은 자리를 다 차지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가기 전에 거처로 돌아오면 세니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세나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조용히 그가 나간 대로, 거처가 된 비행선을 나섰다.



  내가 밖으로 나간 것은 소리를 만나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미 이전에 나를 만났는데, 또 나를 만나려 올 것 같지 않았다. 세나가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그와 만나서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도 했고, 이전에 소리가 언급했던 그 전투 비행기가 나타날지도 모르니, 그 모습을 지켜보려 한 것도 있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비행선 근처의 천막에는 셀린 그리고 에오르 리아가 각자의 무구-지팡이 모양의 철퇴 그리고 길다란 총포-를 들고 서 있으면서 하늘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종의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괜히 끼어들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곁을 지나쳐, 오른편-동쪽-의 해변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둠에 잠긴 해변 너머로 밤을 맞이해 어두운 색을 띠는 바다 위로 펼쳐진, 별들이라는 빛나는 보석들이 곳곳에 박힌 검푸른 장막과도 같은 하늘이 서로 만나 선을 그리는 모습을 해변을 따라 걷는 도중에 한 번씩 보려 하면서 조용히 길을 걷고 있었다. 해변을 걸으면서 마냥 평온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변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가 파도가 급격히 해변 안쪽까지 밀려오려 하자, 다급히 모래밭 안쪽으로 피한 적도 있었고, 근처에서 폭음을 듣고, 근방의 어떤 이가 폭죽을 쏘아올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길을 걷는 동안, 하늘과 바다가 수평선을 이루고, 하늘 위로 별들이 떠 있는 풍경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변의 먼 저편에 있는 절벽의 모습도 가끔씩 보고는 했었는데, 바다 반대편의 폭죽을 쏘아올리는 광경에 시선을 쓰고 있다가, 그 일대를 지나치고, 다시 절벽가로 시선을 향할 무렵,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어떤 광경을 보게 되었다.
  "누구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놀라면서 그 쪽으로 시선을 향하는 순간, 나의 눈앞으로 멀리 있는 절벽 위에 서 있는 어떤 소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양갈래 머리카락을 한 소녀는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무릎까지 내려가는 치마로 이루어진 (내가 다녔던 학교의 공식 제복과 거의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절벽가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고 왼발을 뒤로 내미는 자체를 취하고 있었는데, 일단 내가 보기에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기 위한 자세처럼 보였다.
  '이런 여자아이가 있었던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소리처럼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의 일종일 것 같아서, 내가 저렇게 생긴 여자아이를 만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되짚으려 했지만, 저런 인상의 여자아이를 만난 기억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마주한 적이라면 있었겠지만, 우연의 일이었고, 그래서 기억에 담아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난 이는 분명 아닐 테고, 그렇다면 일단 나와 관련된 환상은 아닐 것 같은데......'
  혼잣말을 하면서 조용히 발걸음을 이어가려 하였다. 그 여자아이가 있는 곳으로 어떻게든 가기 위해서였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보려 하였지만, 꽤 멀리 있다보니, 좀처럼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고, 여자아이의 모습도 그렇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일행이 머무르는 곳과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그 비행선이 자그마하게 보일 정도였으니.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냐, 이렇게 다가간다고 그 여자아이의 곁에 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오늘은 그냥 포기할까.'
  일행의 처소와 멀리 떨어졌음을 확인한 이후, 여자아이에게 다가간다고 해서 그를 만날 수 있음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며, 결국 다시 일행의 처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기회라면 얼마든지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 그렇게 잠시 내가 멈춰 섰던 곳에서 머뭇거리다가 일행의 거처인 비행선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서려 하는 그 때,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
  '세나잖아. 그 소환수를 타고 있네.'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물의 힘을 가진 소환수' 의 거대한 머리 위에 올라탄 채, 그를 조종하는 세나의 모습이었다. 세나가 소환할 수 있는 소환수 중 하나로 '물의 소환수' 라 칭해지는 존재였다. 평소에 갑주 혹은 로봇의 형상을 한 '땅의 소환수' 그리고 새의 형상을 한 '바람의 소환수' 를 자주 소환해서 그것을 볼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분명 그가 소환할 수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당시, 세나는 감색을 띠는 수영복 위에 하얀 블라우스를 걸친 모습을 한 채로 소환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아무래도 물에 빠질 수도 있다 보니, 미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모양. 그 모습을 발견한 이후, 나는 세나가 소환수와 함께 바다 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한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해변으로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처음에는 앉아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모래밭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세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이후로 세나는 한참 바다 위를 돌아다니다가 해변 쪽으로 돌아왔다. 해변으로 돌아온 이후, 세나는 나에게 접근하지 않고, 곧바로 거처로 돌아갔다. 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수영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려 하였던 것 같았는데, 후자 쪽이 옳았던 모양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 평상복 차림의 세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후, 세나는 잠시 주변 일대를 둘러보다가 내가 자리를 잡고 앉은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나를 향해 다급히 다가갔다. 그리고 나의 왼편 곁에 서 있으려 하였다.

  "여기에...... 언제부터 계셨던 거예요?" 그러자 내가 답했다, 방금 전에 왔다고. 그러자 세나는 곧바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혹시 바다에서 자신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혼자 바다 위를 소환수와 함께 돌아다니는 모습을 다른 이들은 보거나 하지 않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 미처 보지는 못했어."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짓말이었지만, 때로는 이런 거짓말이 유용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그 당시 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일까봐 걱정했었는데."
  "그랬구나." 그러자 내가 조용히 답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당시에 세나가 보였던 모습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었다. 세나가 당시에 소환수에 타고 있을 때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평상시 온화하고 정적이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만 일단 밝힌다. 확실한 것은 그가 언제나 차분하고 정적인 모습만 보인다고 해서, 늘 그런 감정만 갖고 사는 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가 이전에 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제가 이전에 아르사나 씨께 건네었다가 돌려받았던 초상에 있던 가족......."
  세나는 나의 왼편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그림에 대한 언급을 하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 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소리가 나에게 상기시켜 준 것도 있어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알고 있어." 그렇게 답을 하자마자 세나는 활짝 웃으며 "기억하시고 계셨네요."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가족의 모습이 묘사된 그림을 치마 주머니에서 꺼내, 오른손에 들며, 나에게 보여주려 하였다. 하나의 가족, 부모와 아들, 딸 그리고 가운데의 막내 아이로 추정되는 다섯 명의 가족이 묘사된 그림, 그 그림을 다시 나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하나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이 그림, 제가 아르사나 씨의 거처에 처음 있다가 떠난 이후에 얻었어요, 길을 가다가 나의 앞에 바로 떨어져서 주워서 얻은 것이었는데, 가운데의 아이를 제외하면 모든 모습이 뭉개진 듯 흐려진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든 그 그림을 복원하고 싶어서 갖고 있었던 거예요."
  처음 세나와 마주했을 때에는 그런 그림을 갖고 있지는 않아 보였고, 천문대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에는 온전한 모습으로 소지하고 있었던 만큼, 그와 헤어진 후, 다시 만나기 전의 어느 때에 세나가 그 그림을 얻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는 있었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기였던 것 같다.
  세나의 소환수들은 한결 같이 세나를 진심으로 따르는 듯해 보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참 특이하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던 것이, 이전에 내가 들은 바대로, 원래는 힘으로 제압했다고 하지만, 그 이후로 모종의 계기로 인해 세나에게 감화되었기 때문인지, 그 이후로 그를 배반할 생각 없이,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동료로 같이 있을 시절에는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나, 너의 소환수들은 모험 도중에 하나씩 데려올 수 있었다고 말했었지?"
  "그랬었어요." 내 물음에 세나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띠며, 처음에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제압된 이후에는 곧바로는 아니더라도 결국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게 됐다고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실은 환수들은 처음 만났을 때에는...... 머리에 붉은 보석이 하나씩 박혀 있었어요, 불의 소환수는 이마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고, 바람의 소환수는 정수리 부분에, 그리고 이전에 나타났던 물의 소환수 같은 경우에는......."
  그 무렵, 해변 근처의 바닷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더니, 다시금 이전에 멀찌감치 보였던 그 물의 소환수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바다뱀과 같은 몸통 위로 새의 형상과 같은 얼굴 모습이 특징인 둥그런 머리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마의 한 곳에는 뿔이 자라나 있었는데, 그 뿔이 입의 날카로운 이빨들과 더불어 무기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바다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소환수는 새의 울음 소리 같은 기묘한 울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의 소환수는 미간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어요. 환수들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동안, 붉은 보석들이 격렬히 빛을 발하고 있었지요."
  세나에 의하면 그 붉은 보석들이 환수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 공격적인 성향도 없어졌으며, 그 이후로 자신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세뇌에서 풀려나 마치 눈 앞의 존재가 원래 주인인 것처럼' 자신을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 같았다고 한다.
  "세뇌가 풀리면서 너를 마치 원래 주인을 되찾은 것처럼 대했다, 라고 했지? 하지만 그 환수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너를 주인으로 정했을 것 같지는 않을 텐데, 너도 그 환수들의 존재를 처음부터 잘 알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니?"
  "그랬었어요." 그러자 세나가 답했다.
  그 이후,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땅의 소환수 역시 미간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그 보석을 빼내려 하는 순간, 머리가 환수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몸 전체가 붕괴했다고 한다. 붉은 보석이 몸에 깊숙히 박혀 있어 억지로 무리해서 떼어내려 했다가 그렇게 되어버렸으며, 자신이 신중하게 보석을 떼어낼 수 있었으면 환수의 몸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몸은 부서졌을 지언정, 영혼 자체는 남아 자신이 모처에서 데려온 갑주 형태의 환수를 그 영혼의 그릇으로 삼았으니, 그것이 지금 자신이 거느린 땅의 환수가 갑주의 형상을 갖게 된 연유였다고 했다.

  원래 그림은 하단 가운데의 어린 아이를 제외하면 검은 그을음 같은 것이 잔뜩 묻어 씻어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어. 그래서 세나 씨께서 처음 그림을 발견하셨을 때에는 어린 아이 주변에 무엇이 있었을지 드문드문 남은 흔적을 더듬으며 어떻게든 알아내려 한 적도 있었대, 사람의 흔적은 남았기에 형체들의 정체가 사람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그 형체들이 원래는 어린 아이의 가족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었다고 하시더라. 그러다가 환수들이 하나씩 자신의 편이 될 때마다 한 부분씩 검은 그을음이 녹아내리며 그림의 원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 이후, 세나 씨께서 천문대로 들어오시면서 온전한 그림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거야.

  "그 이후로 네가 가졌던 그림의 그을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며, 그림의 원래 모습, 가족의 모습이 묘사된 그림이 드러났다는 것이지?"
  "그것도 그랬었지요." 이 물음에도 세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목도하였을 때부터, 이미 세나는 환수들이 가족의 모습이 묘사된 그림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고 한다. 사실은 그 이상을 짐작할 수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그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그 생각이 옳다면, 어떻게 '그들' 이 환수의 몸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환수들의 몸에 붉은 보석을 박아넣은 이가 누구였는지 알아내고자 했고, 그러면서 환수들의 몸에서 나온 붉은 보석 4 개를 소지해 갖고 있었다고 했다.
  환수들을 거느리며, 4 개의 보석들을 얻어낸 이후, 세나는 곧바로 베라티사로 갔다. 베라티사의 마법사들이나 마도학자들이라면 보석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석들은 어떻게 됐어?"
  "그 보석들은 소르나 씨가 가져갔어요. 제가 소르나 씨를 처음 만난 것은 그 때의 일이었어요."

  세나는 4 개의 붉은 보석을 들고 처음에는 인근 마을의 보석상을 찾아가서 감정했고, 인조 보석으로 마법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에 베라티사로 갔다고 했다. 그리고 베라티사의 마법학당 일대를 돌며 보석의 소재에 대해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마땅한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학당 내에서 당시, 학당의 학생이었던 소르나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소르나는 학생도 아닌 이가 학당을 돌아다니고 있음에 의아해 하면서 그에게 접근했었고, 보석의 소재에 대해 다급히 물으려 했던 세나가 그에게 다가가서 보석에 대해 물으려 했던 것이 그와 소르나의 첫 만남이었다.

  "소르나 씨는 보석을 보자마자 뭔가 짐작되는 바가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청했었어요. 뭔가 듣거나, 아는 이야기가 있었겠지요. 교수들도 몰랐던 붉은 보석들의 실체에 대해 학생이 알고 있음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라, 보통 사람들에게는 의아할 일이었겠지만, 당시, 저는 어떻게든 그 보석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던지라, 그런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어요."
  이후, 자신의 집에 이르자마자 소르나는 거실의 탁자에 세나와 마주보며 앉아서 그가 건네었던 보석들을 올려놓으며 보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소르나 씨가 말했어요, 그 보석들은 인격체의 정신 혹은 영혼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마정석의 조각들이라고. 그 마정석은 원래는 무색 투명한 결정이었대요, 붉은색을 띠는 것은 마정석에 스며든 마력의 여파로 붉은색은 잔혹한 심성이 마력에 깃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보석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물었겠지?"
  "그렇지요."

  소르나는 세나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해 주었던 이야기에서 붉은 보석들은 자신이 여행 중에 마주했던 환수들의 머리에 박혀 있었고, 환수들의 머리에 보석이 빠지자마자 환수들이 자신의 뜻을 절대적으로 따르기 시작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또, 환수들이 자신의 편이 될 때마다 그림을 덮었던 그을음이 녹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에 제대로 주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나에게 그림의 그을음이 사라지는 순서가 환수와 관련이 있는지를 물으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의 그을음이 사라지는 순서는 어떻게 됐어? 특정 환수가 자신의 편이 될 때마다 그림의 특정 부분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던가, 그렇게 되기라도 했던 거야?"
  "그것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묻자, 세나는 자신도 확실히 아는 것은 없다는 답을 하였다. 확실한 것은 그림의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그림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땅의 환수가 자신의 편이 되어, 갑주 형상의 육신을 얻도록 했을 때, 그림의 왼쪽 윗 부분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이가 서 있던 부분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처음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대로 그림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었지만, 이후, 불의 환수가 자신의 편이 되었을 때에는 그런 추측과 달리, 그림 우측 하단의 딸로 추정되는 이가 앉은 부분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으며, 그 이후, 바람, 물의 환수가 자신의 편이 되었을 때에는 좌측의 하단에 있는 아들로 추정되는 이의 모습이 먼저 돌아오고, 이후에 마지막으로 우측 상단에 위치하고 있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의 모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환수와 그림에 묘사된 가족의 모습은 서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해 왔었어요."

  그런 대답을 하자마자, 소르나는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세나에게 그가 거느리고 있는 환수들은 어떤 영혼들이 땅, 물, 불 그리고 바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육신에 깃들면서 탄생된 것으로 환수를 거느리자마자 그림의 그을음 속에 감추어져 있던 가족의 모습이 그을음이 녹으면서 드러난 것은 환수들이 가족의 영혼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이는 모종의 이유로 세상을 떠난 일가족이 환수라 칭해진 몸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소르나는 세나에게 환수들이 붉은 보석의 제어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게 된 것은 원래 그림에서 그을음에 덮히지 않은 유일한 이인 어린이와 관련이 있으며, 적어도 환수의 몸에 깃든 부모와 아들 그리고 딸의 영혼이 세나를 보며 자신들의 가족이었을 어린이의 존재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 이후, 소르나 씨는 조금 더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우선 저를 떠나 보냈어요. 그리고 두 달 즈음 후에 다시 자신의 거처로 오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그 붉은 보석은 대체 누가 만든 거야?" 그 이야기 이후에 나는 붉은 보석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소르나는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물으려 했고, 이 물음에 그는 나에게 한 번 정도는 들어보았을 이름이라며, 한 사람의 이름을 소르나가 언급했음을 밝혔다.
  "올리비아 사반 바메메이. (Olivia Savan Vamemey) 당시에는 베라티사 학당의 교수였던 사람이었어요."
  "올리비아라면 베라티사 학당의 학자였다가, 이후에 샤르기아 학교의 교장이기도 했다는 그 사람이잖아."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대로 이야기를 했다. 한 때는 베라티사의 마법학당의 학자였던 이로, 평소에 늘 사람들에게 온화하고 다정했던 소르나가 유일하게 혐오의 감정으로 대했다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그런 감정을 가지려 했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맞아요, 그 사람." 그러자 세나는 바로 그 사람이 맞다고 답을 하더니, 그 보석을 올리비아가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소르나가 왜 그 사람을 증오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두 달 즈음 지난 후에 저는 베라티사에 있는 소르나 씨의 거처로 다시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를 만나서 붉은 보석 그리고 환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었지요. 그 두 달의 기간 동안 저는 보석은 몰라도, 환수에 대해 얼마나 알아냈는지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래서 정말 의외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대체 무슨 이야기였는데?" 의외의 이야기라고 하니,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싶었고, 그래서 세나에게 그것에 대해 기억나는대로 알려달라고 바로 부탁했다. 소르나는 자신과 친분이 있던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는데, 대체 얼마나 큰 비밀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조차 건네려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세나가 해 주었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세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전, 2 달 정도의 시간 동안, 가브릴리아 (Gabrilia) 로 간 이후에 지역의 중심지인 해안 도시 가브릴리스 (Gabrilis) 그리고 북부 해안의 마을인 지브로아 (Jibroa) 에 있으면서 도서관에서 가브릴리아 일대의 고문명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했고, 또, 도시,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고문명 시절에 관한 수소문을 해 보기도 하였다. 세나가 보였던 그림 속의 일가족은 지금은 지브로아 일대에 있던 도시에 있던 사람들일 것이라 여기었기 때문이었다. 베라티사의 장서고, 도서관들에도 고문명 시대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베라티사가 아닌 타 행성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수소문을 하는 도중, 어떤 찻집의 주인으로부터 한 가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으니, 소르나가 언급했던 일가족 5 명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부부 그리고 그들이 낳은 2 명의 아들과 1 명의 딸로 구성된 가족으로서, 고문명 시대의 종말 무렵, 도시가 '괴물' 들에 의해 멸망할 무렵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쳐야 했던 사람들이었다고 그들에 대해 우선 그렇게 언급을 했었다고 했다.
  본래 그들은 역사에 기록을 남길 여지도 없는 평범한 일가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인류에 점차 불리해지고, '괴물' 들의 위협이 그들의 도시에 닿기 시작하자, 그 일가족을 비롯한 평화롭게 살던 이들 역시 전쟁의 영향 속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10 대였던 장남은 소년병으로 징집되었고, 딸은 군수 공장에서 일하게 되어 부부는 어린 아들만 남긴 채, 집을 떠나간 아들 그리고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병사가 되고, 공장 직원이 됐다고 하지만, 어른 인력을 더 마련할 수 없어 그렇게 됐을 뿐, 그들의 아들, 딸 모두 10 대 초반의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고, 그래서 부부는 그런 그들을 자신들이 어린 아들과 함께 데려가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들과 딸들은 돌아오지 않고, '괴물' 들에 의한 도시 점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울려 퍼지자, 결국 부부는 어린 아들만큼은 안전한 곳에 있도록 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도시를 탈출하려는 일가에 어린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고 한다. 아직 어렸던 아들은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지만, 부부는 어떻게든 그를 자신들의 곁에서 떼어내, 도시를 떠나려 한 일가족의 품에 안기도록 하고서, 자신들의 곁을 떠나게 된 어린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그렇고, 네 엄마도 너와 함께 가고 싶지만, 아직 네 형과 누나가 돌아오지 않았거든. 우리는 너 뿐만이 아니라 엄연한 그들의 부모이고, 그들 역시 엄연한 우리의 자식이야. 부모는 모름지기 자식이 멀리 떠나갔을 때, 그들이 언젠가 돌아올 때를 위해 집에서 자식들을 기다릴 의무가 있어. 적어도 우리는 그 의무를 이행하는 부모로서 살아가려고 해."
  그런 아버지의 말에 이어, 어머니가 이어서 떠나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젠가 그들이 돌아오면 우리도 너를 찾아 갈게. 너를 데려갈 아저씨, 아줌마는 우리와 무척 친한 사이이고, 그래서 너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기다려 줄 거야.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돌아오면 아저씨가 너를 우리 곁으로 보낼 테니까, 걱정 말고, 아저씨와 함께 엄마, 아빠 그리고 형, 누나를 기다려 주고 있으렴."
  그리하여 어린 소년은 이웃집 일가족과 함께 도시를 떠나는 비행선을 탑승하러 해변가 근처의 공항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소년은 비행선에 탈 수 있었대?"
  "탈 수는 있었다는 모양이에요."

  이후, 소르나가 언급한 바에 의하면 아이와 함께 도시 탈출을 시도한 이웃집 일가는 기어이 비행선에 탑승해 도시를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 비행선 이륙 이후, 어느 시점에서 그 일가의 남자가 도시에 남은 아이의 부모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

"비행선은 무사히 이륙했어. 아이는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이것이 그들에 관한 마지막 기록이에요."
  "그 이후로, 그 이웃집 일가에 대해서도 어떤 이야기도 없었단 말이지?"
  그 물음에 세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 이후, 세나는 그 일가가 어떻게 됐는지, 소년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소르나가 알렸음을 밝혔다.
  소르나는 도시에 남은 아이의 부모에 대해, 어쩌면 그들은 전쟁터에 끌려간 아들과 딸은 이미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임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록 자식들을 지키지 못한 책임은 있다지만, 그렇다고 남은 아이의 목숨까지 버릴 수는 없는 만큼, 남은 아들이라도 안전한 곳에서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웃집 일가에 아들을 맡기고 속죄를 위해 죽음을 택하기로 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가 여행 도중에 마주했던 환수들은 실은 그림 속에 있던 일가족의 영혼이 땅과 물 그리고 불과 바람의 기운에 깃들었다가 행성계에 마력이 퍼지면서 해당 기운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갖게 된 존재였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보았던 그 환수들이 실은......"
  "생각하신 대로예요, '괴물' 들에 의해 희생당했을 그 일가의 환생이었던 것이지요."
  이후, 나는 그 동안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세나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러니까, 올리비아 사반, 그 학자는 그런 환수들을 붉은 보석을 이용해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면서 세나, 너를 해치려 했다는 말이지?"
  "저를 의도적으로 노린 것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환수들을 자신의 뜻대로 이용하려 한 것은 확실하겠지만요."
  그러면서 올리비아는 환수가 본래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그 환수들이 인간이 환생한 것이었음을 알고는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으며, 소르나 역시 그렇게 말한 바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소르나 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세상에는 원래 인간으로서 살아가다가 환수 등으로 환생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환수 등이라면....... 환수가 아닌 다른 이들로 환생한 이들도 있다는 거지?"
  이후, 내가 묻자, 세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완전히 죽지 못해서 어둠의 존재가 된 이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음을 말하니, 그 말을 듣자마자 불현듯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카리나, 세니아가 어렸을 적 만났던 '죽음의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 가 바로 그것이었다.
  "세나, 그 어둠의 존재라면 '죽음의 기사' 라 칭해졌던 이들을 말함이 아니야?"
  "맞을 거예요." 그러자 세나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곧바로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빛에 너무 취약해서 어두운 곳에서 그들만의 거주지를 만들어 숨어 살아야 했었다는 것도 들어보았을 것임을 말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세니아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마주했던 '죽음의 기사' 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있었으니, 기계 병기에게 갑자기 습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기계 병기가 노린 것은 세니아 자신이 아닌 바로 '죽음의 기사' 라 칭해진 연약한 어둠의 존재였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린 이후, 나는 세나에게 세니아가 어렸을 적에 기계 병기에게 습격을 받은 일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기억하고 있어요. 실제로는 그 병기가 세니아 씨를 노린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의 존재를 노렸다는 이야기였지요?"
  하지만 세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이 있다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환수로 환생한 것 자체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것에 있어요."
  이후, 내가 무슨 문제냐고 묻자, 세나는 과거에 이를 두고 옛 시대의 주역이었던 인간에 관한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이들이 생긴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르데이스의 1 세대 엘베 족, 엘베 족에게 아직은 인간의 면모가 많이 남아있던 시절의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자신들의 선조였을 구 문명 시대의 인간들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이들이었다는 것.
  "1 세대 엘베 족의 대마법사 3 인 중 하나였던 '쥘리앙 (Julian)' 혹은 '율리아누스 (Yulianus)' 는 아르데이스를 비롯한 여러 행성계에서 인간이 환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여럿 보았다고 했어요. 그 중에는 아마 환수들이나 어둠의 존재들도 있었겠지요. 그런 존재들을 목도하고 난 이후, 쥘리앙의 생각은 그 이전과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대요."

  인간의 환생으로 여기어진 환수들, 동식물들의 모습을 보고 난 쥘리앙의 생각은 그 이전과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동물들, 환수들이 자연 속에서 활기차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고, 또, 인간의 면모가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어둠의 존재들이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물건 하나 제대로 쥐지 못한 채로 그들만의 군락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이후, 쥘리앙은 그의 동료들이었던 두 마법사들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구 문명 시대부터 인간은 야수처럼 살아가는 삶을 미천한 것으로 인식하고, '인간적인 삶' 을 추구하려 애썼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이란 말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삶' 의 끝에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인간적인 삶의 추구, 그 끝에는 더럽혀진 자연과 멸망해가는 세계만이 있지 않았던가. 동물들은 인간이 추구했던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하기에 오히려 자연을 더럽히지 않고, 세계와 행성을 멸망시키는 사고를 하지 않고 있다. 만약, 세계가 인간이 아닌 동물들의 것이었다면 자연이, 세계가 비참하게 더럽혀지고 멸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은 결코 포악한 표현이 아니다. 인간이야말로 진정 포악한 자요, 악마이다. 본능대로 살아가는 동물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의 선택을 받은 자들로 자연을 버리고 타락한 인류는 보다 높은 존재들인 동물, 야수로의 진화를 거쳐야 하는 '명백한 운명' 에 처해 있다.


  동료들이었던 대마법사들은 대마법사 쥘리앙의 비틀어진 인간관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으나,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쥘리앙을 동정하고 있었다. 바깥 세상에서 충격적인 광경들을 얼마나 목도했다면,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느냐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다른 두 대마법사들은 쥘리앙의 사고 방식이 뒤틀렸다고 여기었으며, 그를 결코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런 두 마법사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쥘리앙은 그의 거주지에서 추방당하였다. 하지만 쥘리앙에게는 너무도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의 마법 능력을 동경하고 그를 존경해 온 자들로 그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그를 따라 엘베 족의 영역을 떠난 이들이었다. (그의 마법 실력은 3 인 중에서는 가장 높았던 것도 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인재들이 그를 따라 엘베 족의 영역에서 떠나버렸기 때문에, 쥘리앙의 행각은 이후에 있었던 기계 병기의 침공 때에 남은 두 마법사들이 전력 확보를 위해 고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그 자신 그리고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진화한 자들' 이라는 뜻의 에레브 (Erev) 로 칭한 이후, 그의 무리가 이 행성계에 자리잡은 어둠의 힘을 함부로 받아들이며, 그로 인해 몰락하고, 그 역시 포레 느와흐 (Foret Noire) 로 타락한 이후에도 그러한 그의 신념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율리아누스, 포레 느와흐는 동물들이야말로 진정 진화한 자들이고, 인간은 퇴화한 존재들이라 여기고 있단 말이지?"
  "지금은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세나는 바로 그러한 것 같다는 답을 하였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불현듯, 생각나는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사리 공주, 포레 느와흐에 의해 자신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고니가 되어버린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그 존재들을 떠올리며 내가 다시 물었다.
  "너도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그 사리 공주와 그의 동료들."
  "예, 카리나 씨 등으로부터 한 번씩 들었어요. 포레 느와흐라는 타락한 마법사가 사리 공주와 동료들을 비롯한 젊은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소지품들을 빼앗은 후에 전부 고니가 되도록 저주를 가해 버렸다, 그런 이야기였었지요?"
  "그랬었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카리나가 한 번씩 잊을만하면 이야기를 해 주었을 테니, 잊을래야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답 이후, 세나는 그 이야기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왜 그 마법사가 그 젊은 여자들에게 저주를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왜 하필이면 동물로, 고니로서 살도록 했는지에 대해. 아르사나 씨께서도 그것에 대해 납득할만한 추측을 제대로 하시지 못하셨을 것 같은데, 맞나요?"
  그리고, 내가 그 물음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세나는 이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물음에 대한 답은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은 듯해 보였다.
  "제 생각이지만, 포레 느와흐는 그 젊은 여성들에게 이 행성계는 인간에게 허락된 곳이 아니며, 인간보다 더 진화하고 우월한 종족들에게만 허락된 곳이라 말하고서, 그들에게 '진화' 를 선사해 주겠다면서 고니로서 살도록 했던 모양이에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겠지요."
  그러더니, 나름 포레 느와흐의 목소리를 흉내낸다면서 괴이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

  아쉬워 할 것 없다. 원래 인간은 미천한 존재야. 너희들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 이라니, 짐승의 마음씨 같은 말을 늘 귀에 박으며 살아왔겠지?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단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추악하고 포악한 존재란 말이다! 인류는 스스로 진화했다고 믿고 있었지만, 오오~ 천만에! 그들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한 존재들이야! 진화를 한 것들이 사소한 질병에도 죽을 듯이 몸서리치고, 도구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나는 너희들을 몹쓸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야!!! 너희들을 아름다운 존재로 진화시켜 준 것이지! 영원히 아름다운 고니의 모습으로 살도록 한 것인데, 이것을 어찌 저주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너희들에게 축복을 내려준 거야! 자연의 삶을 따르는 존재가 된다는 축복 말이지!!!

  "...... 그렇다면 분명 포레 느와흐와 그 무리를 두고 왜 인간의 모습으로 사느냐고 의문을 가진 이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세나가 나에게 물었다.
  "없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의문을 품으려 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죽이려 했을 거야, 뻔하지 뭐. 아니, 죽일 가치따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뭔 소리를 한들, 뭔 저항을 하든, 그들은 자기 입장에서는 너무도 비력하고 미천한 존재들이었을 테니까."
  그 물음에 내가 답했다. 포레 느와흐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목소리가 절로 격해지고 있었지만, 세나는 그런 나의 언동을 문제삼지는 않고 있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포레 느와흐는 내 어머니 그리고 내게 숙적이라 할 만한 존재로 여기어질 수 있었고, 그런 숙적에 대한 말을 하는데, 말투가 격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그가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내가 말투가 격해졌음을 자각하고 난 이후, 고개를 돌려 세나를 바라보았을 때, 세나는 그런 나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올리비아 사반 바메메이는 그 포레 느와흐를 깊이 따르고 있다고 들었어요. 인간이 동물로 진화해야 한다며, 다른 세계에서 끌고 온 젊은 여자들을 고니가 되도록 하기도 한 그 타락한 마법사와 사상을 같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편이 되어 그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은연 중에 취하고 있다고 했어요."
  "소르나로부터 들은 말이지?"
  "예." 이후, 내가 질문을 하자, 여의가 있겠냐는 듯이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 붉은 보석들을 다수 소지하고 있으며, 그 보석들을 이용해 이런저런 실험을 진행해 온 정황이 있다고 그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음을 밝혔다.
  "보석들이 육신을 조종하는 힘이 있다고 했지? 실험을 위해서는 마땅한 실험체들이 있어야 할 텐데."
  "당연히 확보를 여럿 했었을 거예요." 그러자 세나는 마땅히 그러할 것이라 답을 하였다. 그리고 소르나와 헤어진 이후, 자체적으로 올리비아의 행적을 조사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행성계 인근의 행성계인 루마 (Luma) 행성계 상공의 부유 대륙에서 수집한 오문쿨라 (-omunkula, homunculus) 들을 실험체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르나 씨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하지만 그 이후로, 세나는 차마 더 말할 수 없었는지, 이후에는 말을 아끼려 하였다. 그런 그를 보며, 대체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느냐고 따지려 했지만, 세나도 나름 고집이 있는 이이고, 그러할만한 사정이 있어서 더 말을 않고 있음이 확실해 보여, 더 따지거나 할 수는 없었다.
  "소르나의 말을 온전히 다 믿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이후, 내가 세나에게 말을 건네자, 세나는 그러했다고 말하고서, 그를 못 미덥거나, 의심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올리비아를 향한 적의가 너무 강해, 그에 대해 다소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 문제였음을 밝혔다.
  "...... 곧바로 말씀드리겠지만, 그 적의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것 때문에 부정확한 발언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세나가 밝힌 바에 의하면, 올리비아 그리고 그가 추종하던 포레 느와흐는 하나의 존재를 따르며, 그 존재에 충성하고 있는 이들이었다고 했다. '세피라 로타 (Sefira Rot)' 라 칭해진 존재로 그 이면에는 악의 인격인 '클리파 포타 (Klifa Pota)' 라는 존재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으며, 그 실상은 약간 달라서, 포레 느와흐 그리고 올리비아가 따르고 있는 이는 겉으로는 세피라 로타라 칭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겉 모습일 뿐이고, 실상은 클리파 포타였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그와 더불어, 인간이 동물로 진화해야 한다는 포레 느와흐의 사상 역시 클리파 포타에게서 유래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음을 밝혔다. '명백한 운명' 이라는 어구 역시 클리파 포타에게서 유래됐을 것이라 했다.

  클리파 포타에 대해 세나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그는 본래 이 행성계의 구 문명 시대에 문명 세계의 어느 국가에 거주하던 '인간' 으로서,  급격해져가는 환경 변화 속에서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태어난 인간이었다고 했다. 수없이 많은 기계 병기의 개발을 주도하고, 보행 병기들을 비롯한 병기들 그리고 행성간 비행을 할 수 있는 비행선들을 위한 신형 동력 기관 개발 그리고 동력원 개발에 나름 큰 역할을 행한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몰락해 가는 세계에서 인류를 지키기 위한 과업에 상당한 역할을 했던 그 자가 어찌하여 인류에 반하는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모종의 계기에 의해 그는 행성계의 새로운 세상에서는 인류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갖게 되었고, 본래는 유사시에 인류를 지키기 위해 개발 및 제조되었던 병기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인공 지능의 개편을 명분으로 인공 지능에 자신의 사상을 주입했다는 것이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개발된 병기들이 막상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인류의 적으로 돌아서서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힘이 된 것은 그것이 이유였다고 했다. 하지만 병기의 두뇌가 될 장치들 및 병기 제어를 위한 인공 지능 장치의 개발과 유지 보수에 관해서는 그 자가 모든 것을 맡고 있었으며, 이러한 실상을 그 자는 철저히 은폐해 대외에 알리지 않았기에, 그 진상을 아는 이들은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전부터 들려온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지브로아 일대의 해수면 아래에 잠긴 고대 유적은 본래 인간의 도시였고, '괴물' 들에 의해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던 곳으로 인류의 일원인 군단이 '괴물' 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는 것."
  이미 몇 차례 들은 바 있는 이야기였다. 카리나가 만났던 '죽음의 기사' 들 역시 '괴물' 들과의 싸움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병사 혹은 전사들 중 한 명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었기에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그 이야기는 이전에 내가 만났던 알프레드 할아버지를 통해서도 들은 적이 있고,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지."

  비단 알프레드 노인이 아니더라도 이 행성계를 비롯한 여러 성계에서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알프레드 노인은 용병 일을 했었고, 그러면서 세상을 배회하며 사람들을 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괴물' 이라 칭해지는 (기계 생명체들은 아예 '짐승', '마귀' 등으로 칭한다) 병기들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기계 병기들과 마주하기를 반복하면서 용병들 중 일부는 기계 병기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기계 병기의 유래와 더불어 '괴물' 에 관한 역사를 알게 된 이들도 있었을 터. 알프레드 노인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나도 기계 병기들과 맞선 경험이 있는 용병들 중 하나였고, 그들 중에서 대형 종과 맞서 처치한 경험도 몇 있다. 이런 병기들은 한결 같이 검거나 어두운 색을 띠고 있었고, 무작정 사람처럼 생긴 것들을 증오하는 듯이 공격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나타날 때마다 위험 경보를 울리고, 내외 출입을 통제하는 마을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창 용병 일을 할 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은 사항이었으나, 그 때가 되면서 그 '괴물' 들이 원래 무엇이었고,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알프레드 노인은 그 기계 병기들의 근본이라 할 만한 '괴물' 들은 원래 인류를 지키기 위해 투입된 무인기들이었으나, 어느 순간에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인류의 적이 되었고, 인간들을 학살하는 잔학한 존재들이 되면서 '괴물' 이라 칭해지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세나는 그 '괴물' 들이 인류의 적으로 돌변하게 된 '모종의 이유' 에 관한 언급을 하려 하고 있었다.
  "그 병기들이 돌변하여 '괴물' 들이 된 그 배후에 후세에 '클리파 포타' 로 칭해지게 될 존재가 있다는 것이지?"
  "그렇지요." 이 물음에 세나가 답했다. 그 이후, 세나는 인류는 클리파 포타로 칭해지게 될 이를 너무도 지나치게 믿고 있었고, 그래서 푸투로 계획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면서 병기 개발 및 제조 역시 그에게 맡긴 것이, 그런 참화를 불러온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한 가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전에도 몇 번 들은 이름으로, 잔느 공주를 구출할 무렵부터 한 번씩 거론되었던 이름인 '수현 파크 (Suhyan Pahk)' 였다. 푸투로 계획을 추진했다가 모종의 이유로 계획에 참여한 이들을 동사시키려 했던 자로 클리파 포타와도 모종의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이였다.
  그 수현 파크 그리고 클리파 포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으나, 그러하였다가는 너무 이야기가 쓸데 없는 방향으로 길어질 것 같아서 그만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지금껏 네가 알린 것들의 핵심은 환수들을 조종하는 붉은 보석을 만든 이는 올리비아이고, 클리파 포타를 숭배하는 포레 느와흐와 협력하면서 그 역시 클리파 포타를 따르고 있다, 그런 말인 것이지?"
  이에 세나는 "맞아요." 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심각해진 목소리로 한 가지 알고 있는 이상한 것이 있다면서 그것을 말하려 하였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어요. 올리비아 사반 바메메이라는 학자에 관한 사항이에요. 인간을 증오하고 인간을 비롯해 인간의 특성을 가진 이들을 배제하려는 세피라 로타, 그 실체인 클리파 포타를 따른다는 그의 실상이었던 것이지요, 과거에 관한 것들이에요."
  "그게 뭐가 어쨌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가 말한 바는 대략 이러하였다 : 올리비아 사반 바메메이는 과거에 슈라일 인근에 살았다는 것이었다. 슈라일 인근 호수에서 어떤 여인과 함께 살았으며, 그 여인을 '어머니 (에 해당되는 단어)' 라 불렀다고 했다. 그 여인은 행성계 최초의 마녀라 칭해진 이로서, 원래는 구 문명 시대의 주역이었을 인류의 유일한 후손이었으며, 행성계에 새로 태어난 인격체들에게 글자를 비롯한 여러 문물을 가르쳐 이들이 새로운 문명을 이루도록 한 장본인이었다. 올리비아는 그 여인의 딸로 현 시점에서 인류의 마지막 후손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이였던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후손이라 할 수 있을만한 자가 왜 인류를 비롯해 인류의 흔적마저 없애버리려 하는 존재를 따르려 하고 있다는 것 - 세나가 의아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여인의 행적에 대해 나는 왜 그런 짓거리를 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세나의 상식 선에서는 납득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붉은 돌로 환수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 하는 것도, 포레 느와흐를 지원하기 위함이겠지?"
  "....... 그렇지요." 세나가 답했다. 그리고 붉은 돌은 대상의 몸에 붙어 있어야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하고서, 그 돌이 몸에서 떨어지면 효력을 즉시 잃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당부의 말을 건네려 하였다.
  "모쪼록, 제가 드린 말,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것이 당장 중요한 사항은 아니겠지만, 포레 느와흐와 정면에서 맞서고 있는 이상, 그와 협력 관계에 있는 올리비아 사반과 맞설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그는 필시, 붉은 돌로 정신 조작을 가하면서 환수들을 비롯한 이런저런 것들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만큼, 그 말의 의미를 명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의 당부에 이렇게 화답했다.
  "알았어. 잘 기억해 두고 있도록 할게."

  이후로는 화제가 다시 세나의 환수들로 옮겨졌고, 질문을 내가 하게 되었다. 세나와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하면서 나는 두 가지 사항에 주목을 하려 하였다 :

  "세나, 환수들이 조종에서 풀려나자마자 너에게 복종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그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은 저를 그들의 가족, 그러니까, 그들이 떠나 보낸 막내 아이의 환생일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라고."
  내가 묻자, 세나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띠며, 환수들 역시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알 길은 없겠으나, 그들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직감으로 자신을 두고, 그들의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일단 내가 보기에는 세나는 자신이 원래 자신이 그 가족의 일원일 것이라 믿고 있지는 않은 듯해 보였다. 그러나, 비록 세나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도, 그 말이 이상하게 진심으로 들리지는 않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그 역시 환수들의 실체를 알아가면서 직감한 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짐작만으로 세나의 진심을 허투루 판단해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주제로 함께 대화를 해 보기로 했다. 간단한 화제였지만, 해당 화제에 관해서는 나름 긴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하나하나 중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나, 그 환수들이 원래는 가족이었고, 구성원 중에 가장 어린 아이를 떠나 보낸 이후에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이들이라고 했었지?"
  "그들의 아들과 딸 역시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돌아오지 않은 것도 있어요."
  확인차 건네는 물음에 세나가 바로 답했다. 그 말 대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이들은 가족들 중에서 부부였던 이들 뿐이었으며, 그 부부의 아들 그리고 딸은 전장으로 나간 이후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이후에 다른 이야기는 없었겠으나, 전쟁터에 동원한 여타 인간 청년,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부부는 그렇게 돌아오지 못할 이들을 기다린다며, 집에 남아, 마지막 남은 자식을 살던 곳을 떠날 수 있게 된 이들에게 맡기고, 속죄의 뜻으로 집에 남아 의연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그 과거를 알게 된 이후, 세나의 환수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해졌다고 한다. 사실, 세나는 원래 자신을 자발적으로 따르고 자신의 의사에 스스로 복종하는 의사를 드러낸 환수들에게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환수들은 소환사의 의사에 반드시 복종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조건에 따라 반항하기도 한다. 이러할진대, 환수들이 자신의 뜻에 다른 의사 없이 따라주니, 이렇게 고마운 일도 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를 알게 된 것을 통해 그들을 단순한 소환을 위한 존재 정도가 아닌 동료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을 비롯한 옛 문명의 말기, '괴물' 들에 의해 파멸되어가는 일상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일이기도 해서, 해당 건은 자신에게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그런 과거를 알게 해 준 계기 중 하나가 된 소르나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말도 있었다.

  죽음의 기사가 보인 행동을 보며, 세니아는 너무도 놀랐다고 말했다. 피처럼 붉게 빛나던 심장을 두 손으로 안고 그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세니아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바로 왜 그러느냐고 외쳤고, 그제서야 죽음의 기사는 그에게 그 이유를 답으로써 말해 주었다고 했다.
  "....... 그 심장에 괴물들이 죽인 가족의 피가 있다고 했어."

  "그렇게 죽어서 영혼이 환수로나마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가족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괴물' 들에 희생된 이들 중 대다수는 고문명의 멸망을 불러일으킨 기계 병기에 의해 잡혀간 이후, 그 몸이 깎이고, 잘리며,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더 나아가, 계속해서 고통 속에서 고문받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가족을 보호하고 인도하였던 이들, 자신의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했던 이들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선량한 영혼들이 기계들이 만들어낸 지옥 아닌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라 말한 이후에 그 일에 관해 자신의 바라는 바를 말하려 하였다.
  "지금도 지브로아의 괴물은 그 영혼들을 붙잡아두고 있어요. 그 영혼들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여기서 제가 하고자 하는 바예요."
  "그래?" 그러자 내가 되묻는 듯이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 화답하는 세나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려 하였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런 표정을 짓는 세나의 눈빛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세나를 처음 보았을 무렵에 그가 보였던 모습이었다.

  시종의 옷을 입은 이 (여인이라 할 수 있을지, 소녀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앳된 인상이라 소녀라 기억하고 있었다) 가운데 부분이 검고, 어떤 문구가 새겨진 양손검을 오른손으로 잡은 채, 오른손에 잡은 검으로는 괴물을 내려치고, 왼손에서는 칼날을 일으켜 괴물의 몸을 무참히 쥐어뜯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소녀는 광기 어린 외침을 이어가고 있기까지 해,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다.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현장에서 어떻게든 소녀의 광분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무력으로 소녀를 제압하려 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세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좋지만, 때로는 그것 때문에 너무 과격해지는 경우도 있어."
  그 소녀의 모습을 상기하며, 내가 말했다. 그 때 마주했던 그 소녀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때의 소녀에 비하면 얼마나 과격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정도는 다르기는 해도, 세나의 성정과 그 소녀의 성정에 비슷한 면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만 말해 두겠다.
  "노력해 볼게요." 그러자 세나가 말했다.
  "노력한다고 당장에 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내가 화답했다. 노력한다고 당장에 변하는 것이 얼마나 될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당장에는 잘 바뀌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장의 일일 따름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다가 문득, 또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재난 속에서 '괴물' 들이 다수 생겨나 그 지역 일대를 위협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제법 큰 규모의 부대가 그 근방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부대에 소속된 장갑 보병들이 도시에 들어오기 시작했지. 부대의 장갑 보병들은 원래 '괴물' 들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도시의 변방에 배치되어 있었어. 그 장갑 보병들이 도시로 쳐들어와 인간들의 거주지를 무분별하게 공격해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지.
  '괴물' 들의 침입은 신병이 탈출선을 타고 떠나갔을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어. 부대원들이 하나둘씩 허망하게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처절하게 싸움을 이어가려 했었지.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간부를 포함한 몇몇 부대원들과 함께 '괴물' 들의 근거지에 닿았지만 그 부대원들마저 죽고, 자신 역시 '괴물' 들의 압도적인 힘 앞에 목숨을 내놓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었어.
  그 때에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눈을 떴을 때에는 어떤 해변가 위에 있었다고 했었지. 어째서인지 그는 검게 타 버린 군복에 검게 변한 헬멧과 장갑을 끼고 있었고, 얼굴에는 방독면이 씌워져 있었다고 했어. 손에는 착검된 소총이 있었지만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심허게 훼손되었고, 애초에 탄이 없어 사실상 총포로써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어.

  이후, 내가 거듭된 타격을 받고난 이후에 쓰러져서 팔과 다리만 겨우 움직이던 병기의 흉부에서 심장을 뜯어 내, 오른손에 든 채로 죽음의 기사에게 다가가자, 마치 피처럼 붉은 빛을 깜박이던 '심장' 을 보더니, 죽음의 기사는 다급히 그 '심장' 을 그의 오른손에서 채갔어. 그 심장에 괴물들이 죽인 가족의 피가 있다고 했어.

  '괴물' 의 정체는 푸투로 계획의 관계자가 개발한 기계 병기들이었으며, 그 관계자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통해 군 관계자들에게 보다 많은 인간들을 학살하도록 하니, 더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면 할 수록 '선택받은 자' 로 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선택받은 자' 가 되면 재난을 피해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갈 우주선의 탑승 자격을 얻게 된다며 군 관계자들과 정치인들을 선동했었지.

  학살당한 민중의 시체들 그리고 포로가 된 사람들은 어느 거대 우주함에 끌려갔으며, 그 이후에 사라졌다고 하더구나.
  그렇군요. 만약에 인류의 보금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우주선을 푸투로 계획을 주관했던 사람이 실제로 건조했다고 하더라도, 그 동력원은 제가 언급했던 그 플라즈마 반응로였을 거예요. 그리고 그 반응로에서 전력을 생산할 플라즈마는 아마도.......
  그만하게.
  저도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하니, 잘 모르겠어요. 다만...... 말씀하신대로 '괴물' 이 그 시대 사람들의 영혼과 관련되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간 들었던 이들의 목소리, 내가 냈던 목소리가 하나씩 나의 마음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알프레드 노인과 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마지막에는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지나쳐 갔다. 그와 더불어 사람들을 저버리고 인류를 증오하게 된 기계 병기들의 편이 된 자들에 관한 이야기도 떠올렸으며,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상기할 수도 있었다.
  특히, 잔느 공주는 루이즈와 더불어 푸투로 계획이라는 인류의 미래를 짊어져야 했던 현수 파크가 진행한 계획의 이면에 숨은 잔혹한 실상의 희생자였고, 그의 사악한 계획에 의해 이용된 기계 병기들에 의해 잔인하게 희생된 이들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이였기에, 그에 관한 기억이 마음에 울리는 바는 더욱 컸다.

  집에 제가 갖고 있던 휴대 전화기가 도착했대요.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휴대 전화기로 제가 사진기로 마련한 사진들, 문구 전송기를 통해 제가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어구들, 제가 전화기에 기록해 두었던 저의 일기를 보면서 그제서야 저의 진심을 알게 되셨대요.
  그제서야 저는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를 저의 마음에서 용서를 했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기 그 전 날에.

  운다고 그들이 와 줄 것 같냐!? 그런 과거에 미련을 남겨 봐야 너희들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알아!? 그러니까, 당장 닥치고 과거는 몽땅 잊어버려! 너희들에게 다가올 미래에 집중하란 말이야, 알았어!? 지금 이후로 한 번이라도 우는 것들이 있으면 그대로 캡슐 안에서 동사시켜 버릴 테니까, 그리 알아!

  '...... 애들을 얼려 죽이려고 그렇게 윽박질렀던 거냐......'
  잔느 공주의 목소리를 떠올린 이후, 나는 또 하나의 기억을 되짚게 되었다.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캅쉴라 안에 잠들기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그가 냈던 목소리였다. 이전에도 그 때에 관한 이야기를 세나와 함께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으며, 그러면서 쉰스 (Scünsî) 라는 용어를 그에게 꺼낸 적이 있기도 했다.
  '그래놓고 거짓말까지.......'
  그리고, 예나에 의하면 그렇게 생매장에 가까운 짓거리를 해놓고는 푸투로 계획 관계자들은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그들이 무사히 동면 과정에 들어섰으며, 다른 행성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 거짓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 푸투로 계획이란 '찬란한' 계획으로 인해 시설 안에서는 학생들이 생매장당하고, 시설 밖에서는 기계 병기들에 의해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있었다. 이런 계획에 관계된 자들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그 자들에 관해서는 몇 번이고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할 때마다 새삼스레 분노가 밀려올 것만 같았다.
  '어미 씹할 놈의 새끼들......'
  그 때, 세나가 그런 나를 보더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느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흠칫 놀라며 뭔가 의문을 품는 듯한 세나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혹시나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미처 듣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아까 전에, 네가 너무 과격해질 때가 있다고 말했었지?"
  이후, 나는 다시 바다를 바라보려 하면서 세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는 그랬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그런 세나에게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일상에서는 과격함이란 문제가 많은 일이야. 폭력이라든가, 폭언이라든가, 욕설(저주) 이라든가....... 많은 이들에게 안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지, 보통 민폐가 아니라고. 그런데 말야, 세나...... 그러니까......."
  그리고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음에 만날 괴물도 분명, 그 푸투로 계획 그리고 수현 파크와 관련이 있을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예." 그러자 세나가 답했다. 그런 그의 표정을 얼핏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아차리고 있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한 짐작을 하거나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듯해 보였다.
  "어쨌든, 그 괴물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 몸뚱이의 모든 것은 물론, 영혼까지 자원으로 이용해 먹는 존재들임은 확실할 거야."
  그 이후,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가만히 앉아 있으려 하였다. 그리고 세나의 "말씀하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있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에게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 괴물을 끝장내는 것은 너에게 맡길게. 네가 원하는대로, 네가 마음 가는 대로 처분해 버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몰라서 묻는 거야?" 내가 건네는 말에 세나가 바로 물었다. 그 목소리에서 심히 당황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으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바로 그렇게 되묻는 듯이 화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조용히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너도 지브로아 일대의 과거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래저래 화가 많이 쌓였을 거야. 무엇보다도...... 나는 이렇게 생각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무참한 죄가 저질러졌고, 그 원흉이 있다면 원흉에게 마땅한 징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어갈 때마다 내려진 고통과 슬픔의 몫 만큼, 그 존재가 그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야, 그 몸이 부서지든 말든."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런 벌을 내릴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게 바로 너야."

  "웬지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이후, 세나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 속에 봉인해 두었던 또 다른 자신을 꺼내버리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냐고 물은 이후에 그런 나를 보면서 조용히 이렇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 때에도 아르사나 씨께서는 저를 보고 너무 심하다고 하셨어요. 그 모습을 다시 보시기를 원하시는 건가요?"
  "이번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러자 내가 답했다.

  처음에는 암만 상대가 괴물이나 악당이라도 그렇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한 처사라 생각했어. 응징이라도 과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런 응징을 반복하는 그 심성의 잔인함은 교정되어 마땅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아. 처음에는 모두 선량하고 순진했을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결국 모두 주변의 환경, 그러니까,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일을 일으키는 자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 어떤 사람이 선하게 되거나, 악하게 되는 것, 온화하게 되거나, 잔학하게 되는 것, 그리고 본래의 심성을 유지하거나 타락하는 것은 결국 여러 사람들 혹은 심지어 단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깨달았던 거야.
  잔학한 처벌이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알아. 그런 잔혹한 처벌이 반복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결코 진심으로 변하지 않아, 슬슬 눈치를 보며, 살아남을 궁리만 하고, 보복의 음모만 꾸미게 되지. 잔꾀와 요령이 난무하고, 복수에 미친 사람들이 판치는 교활한 세상이 되어버린다는 거야.
  이번의 경우는 그런 세상의 통념과는 조금은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을 거야, 자신의 탐욕으로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여버린 존재와 맞서게 된다는 것이잖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을 품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어. 아마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 때의 기억을 품으며, 그 존재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의 비원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 넋들의 여한을 누군가는 풀어줄 필요가 있어. 그간 벌여온 잔학한 짓거리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은 돌려주도록 해야 할 텐데, 그를 위한 잔학함이 필요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세나의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어디까지나,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야. 더 이상 그런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내 말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요?" 그러자 세나가 물었고, 이에 나는 조용히 그렇다고 답했다.

  "참으로 우습지, 그렇지 않아?" 이후, 나는 바다로 시선을 향한 채로 세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누군가의 무서운 일면을 경멸하고 기피하려 하면서, 때로는 그런 일면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느낄 수도 있다니 말야. 그런 면모를 경멸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쪽을 쳐다볼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마땅할 텐데 말이야."
  "사람들이 누구나 이상적으로 살아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세나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상적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도 세상 사람들 중에서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하잖아요. 세상의 선한 사람들이라 칭해지는 이들 중에 선하지 않은 짓을 저지르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하시지 말아요."
  말을 건네는 세나의 표정이 조금은 환해진 듯해 보였으며,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나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런 따뜻한 말을 한 번씩 해 주는 것에 고마울 때가 한 번씩 있어."

  그 이후, 세나는 나를 보더니, 온갖 궂은 일, 더러운 일을 내가 늘 도맡고는 했었음을 밝히고서, 왜 그러하였느냐고 묻고 싶었음을 밝혔다. 이유야 짐작이 된다고 하지만, 나에게도 대답을 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거기 있는 이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어둠과 가까웠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늘 착했다가 한 번 나쁜 짓을 저지른 이에게는 수없이 비난이 가해지지만, 나쁜 짓을 수없이 저지른 이가 나쁜 짓을 한 번 저지르면 그렇지는 않지. 밝음과 어둠도 마찬가지이겠지. 어둠과 거리가 있던 사람이 어둠에 가까운 일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둠에 가까운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 그런 짓하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잖아, 그렇지 않아?"
  이후, 나는 소르나가 직접 추천해서 천문대에 온 사람임을 밝히고서, 그런 사람으로서 능력 덕에 온 사람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짓이라도 해야 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말을 이어서 하였다.
  "그것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서 알고는 있었을 거야, 그렇지?"
  "그랬었지요. 소르나 씨도 아르사나 씨께서 분명 그런 생각으로 그러하셨을 것이라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후, 세나는 나를 보더니, 나에게 이전에 나에게 전달되었다는 전언, 그러니까, 어떤 기계 병기가 나에게 전하려 하였던 말의 진의를 믿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존재가 나에게 그런 말을 전하는 방식으로 도발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존재가 그 말대로 나를 공격해 올 것이라 자신은 믿지는 않음을 밝혔다.
  "그 존재가 자신의 뜻을 그렇게 말했다지만, 그는 결국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있을 뿐이에요. 기계 병기들 중에는 자체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는 개체들도 있다지만, 결국 상부의 명령을 우선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그 병기가 아르사나 씨와 대결하겠다고 생각을 해도, 명령을 우선시하는 기계 병기의 특성이 있는 이상, 그 뜻은 뒤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설령 대결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일은 아닐 것,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야, 그러할 것 같지 않아." 그러자 내가 답했다. 세나의 생각은 그러하였고, 기계 병기의 특성에 대해 내가 아는 바대로라면 병기들은 명령이 있다면 그 명령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그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 그 특성이 회로와 전선 단위로 각인되어 있고, 애초에 기계 병기들 원래부터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나도 그런 연유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
  그래서 그렇게 세나에게 말했다. 그 이후, 나는 세나에게 다른 이들은 예나의 비행선 안에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는 그렇다고 답한 후에 그 앞에 엘베 족 용사들이 천막을 치고 기거하고 있는데, 한 동안은 소란스러웠으나, 곧 조용해졌음을 알렸다.
  "그래?" 그러자 내가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세나." 하고, 그의 이름을 나지막히 부른 후에 이렇게 청했다.
  "세나, 네가 할 수 있는대로, 모든 환수들을 소환해서, 그 일대를 지키도록 해, 혹시라도 그 기계 녀석들이 그 일대를 쳐들어갈 수 있으니까 말야. 나를 도발하겠다고 거처라든가, 해변 일대 혹은 그 주변의 집들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그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달리 말할 때까지 그 곳에 환수들을 머무르도록 해 줘. 경우에 따라 해변으로 올 녀석을 추격하도록 해야 할 수도 있어."
  "추격이라고요?" 이후, 세나가 묻자, 나는 그렇다고 답하였다. 다만, 거점으로 돌아가려 하면 더 이상 쫓지 말라고 했다. 그 이후로는 특정 거점에 있을 윗 존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임이 그 이유라고.
  "아마 그 이후로는 그 녀석이 나와 마주할 일은 없을 거야."
  "아르사나 씨, 그 병기는 누구의 수하일 것이라 생각하세요?"
  그 이후, 세나가 나에게 물었으나, 그 물음에는 마땅히 답을 하지는 못했다. 어느 쪽의 수하인지에 대한 마땅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괴물 혹은 리사 선생님께서 추적하는 무리의 수하일 것이고, 어느 쪽이든 무리를 쫓아내는 과정 속에서 격퇴되거나 파괴될 것일 테니, 어느 쪽 수하인지는 사실 딱히 상관 없는 일이기는 했다.
  "아무튼, 나는 곧 글라이더를 탈 준비를 할 테니, 세나도 얼른 준비 해!"
  그리고서 나는 이전에 나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글라이더를 찾아가려 하면서 세나에게 그렇게 당부를 했고, 그 이후에 글라이더가 있는 곳으로 가능한 빠르게 걸어가려 하였다.



  그렇게 세나와 헤어지고, 글라이더가 자리잡은 곳으로 걸어가기 위해 해변의 서쪽 방향으로 계속 길을 걸어가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 글라이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라이더에 앞서, 어떤 작은 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름 아닌, 이전에도 보였던 소리였다.
  "이제 오는 거야?" 글라이더 앞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어서 와,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지금까지."
  '지금까지?' 분명히 그 전까지 소리는 해변에 있다가 떠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글라이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하였지만,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말 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보기로 했다.
  "그래, 여기로는 또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러자 글라이더 근처에 서 있던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글라이더의 몸체 위에 앉으면서 한 가지 알리는 말을 전하였다.
  "방금 전에 이드리사 (Idrissa) 라는 이름의 전투기가 북쪽 건너편, 그러니까 지브로아 인근의 상공을 출발하기 시작했어. 남쪽 방향으로 서둘러 가고 있더라. 전투기가 남쪽 건너편을 향하고 있다면 이쪽으로 오고 있음이 확실하겠지?"
  그리고 이어서 소르나로부터 들었다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소르나가 그러더라, 그 이드리사 (Idrissa) 혹은 이드리스 (Idrisse) 라 칭해지는 소형 전투기는 지브로아 남서쪽 해변에 있는 '기억의 사당' 에 자리잡은 괴물과 대립을 세우는 어떤 세력에 소속된 전투 병기로 해당 세력에 소속된 전투 비행단에 소속된 전투기라고 했어."
  이후,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에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전투 비행단에는 5 기의 이드리사들 (Idrisse) 이 있다고 했었어. 본래는 은회색 (Ferargent) 을 띠고 있지만 전시에는 각자 다른 색을 띠며 빛나도록 되어 있어. 본래는 붉게 빛나도록 설정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코드 명 (Kodayrim) 은 '레이나 (Reyna)' 라고 했어. 이외에 '프라야 (Fraya)', '미샤 (Misya)', '마치 (Maci)' 그리고 '시아 (Scia)' 라는 이름이 알려져 있어. 그것이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보라색에 대응된다는 모양이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붉은색에 해당되는 전투기의 인격이 나를 도발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를 도발한 이는 '라이나' 라는 이름을 가진 이였겠구나, 라고. 이들의 이름이 모두 여성인 것은 아마도 전투기들에 각인된 인격이 이전에 들은 바 있는 가희 5 인들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투기들이 붉은색, 푸른색을 비롯한 5 색 중 하나로 빛을 발하도록 하는 것도 그것과 관련된 일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전투기의 이름은 레이나라고 해도 상관 없겠지?"
  "그렇지." 그 물음에 소리가 답했다. 그 이후, 소리는 그 전투기에 대해 원래는 특정 세력 내의 전투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전투단의 수장에게 명령을 받고 있는 만큼, 그 명령을 우선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허락을 받아, 이 쪽으로 올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이드리사라는 전투기가 다가오는 것에 대해 알리려 하였다. 그리고 글라이더에서 뛰어 내리면서 금방 해안가로 올 것이니, 얼른 탈 준비를 해 줄 것을 나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금방 전투기가 다가올 수도 있다고 하니, 가능한 빠른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지면에 거치된 글라이더에 다가가서 그 글라이더로 다가가 탑승구를 착용하는 것으로 탑승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동체의 하단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기동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으로 글라이더는 작동을 개시, 그 이후, 나는 글라이더의 장치를 움직여 해변가 건너편을 향하도록 하였다.
  "이제는 금방 작동시키네." 그 광경을 보고, 소리가 웃는 목소리에 이어 말했다. 이에 나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지만, 그것에 대해 달리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소리는 나에게 북쪽 상공에 리사 선생님께서 기다리시고 계실 테니, 능력이 된다면 그를 만나러 가 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너는 너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잖아. 그런 이들을 걱정하지 않게 할 필요가 있을 거야. 너무 멀리 가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자 나는 "걱정 마~" 라고 답한 다음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조심할 수 있으니,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말하고서, 한 번 나서고 나면 금방 격퇴될 테니,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먼저 나가서 녀석을 찾아낸 다음에 영격하려고 해, 녀석은 분명 나를 우선 노릴 것이라, 해변 멀리서 나와 마주하면 녀석이 해변에 닿지는 않을 테니까 말야."
  그 이후, 나는 글라이더의 날개 하단에 장착된 장치를 조작하는 것으로 그 개체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이후, 글라이더는 천천히 북쪽 해안 쪽을 향해 전진하면서 지면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라이더가 지면에서 이륙을 개시, 해변과 멀리 떨어진 상공 저편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그 무렵, 그런 나에게서 소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심해서 비행하고 있어, 금방 나도 따라갈 테니까."
  "따라...... 간다고?" 비행 장치도 갖추지 않으면서 어떻게 따라가려 했다는 것인지. 소리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전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기계 병기를 찾아나서는 비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별들이 곳곳에 박힌 감빛 하늘 위를 글라이더에 의지해 비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라이더에 의지해 지면을 벗어난 이후, 기억의 사당이 위치한 일대 쪽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이드리사라 칭해진 전투기 군이 속한 집단이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그 일대를 향하고 있다 보면 나를 찾아 나서려 했다는 '레이나' 라는 이름의 이드리사를 찾아낼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한 동안은 붉은 빛은 커녕, 기계 병기의 형체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억의 사당' 일대가 어디인지는 그 일대가 어디인지는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지브로아 해변의 한 구석이 회색 암운으로 뒤덮혀 있었으니,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을 법한 암운 너머에 사당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고, 괴물은 필시 그 안에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점을 감안하며, 기억의 사당 쪽으로 글라이더를 움직이던 그 때, 그런 나의 왼팔에 찬 팔찌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던 만큼, 불길한 신호였을 것이다.
  '분명, 그 녀석이겠지.' 그 신호를 받자마자 나는 그 존재가 나에게 신호를 보냈을 것임을 직감하며 통신을 개시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통신을 개시하는 나의 귓가에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듣는 형태의 목소리였다.

  "Tandem venator ad venandum avem est. (드디어 사냥꾼이 새 잡이하러 나섰구나)"
  그리고 이어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Sed hoc nimis malum est, aliquantisper est ex quo ad te telegraphum misi, sed quod infernum faceres, tumultum facere conaris in maritimis et circum oppidis, sed non potuisti. (하지만 참 아쉽게 됐어, 전보를 보낸지 이미 꽤 시간이 지났건만,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나오지 않기에, 네가 쳐박혀 있었을 해안과 그 주변의 마을에 소동을 일으키려 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야)"

  만약 내가 조금 더 늦었더라면 그 존재는 해안 그리고 마을을 습격하려 나섰을 것임이 분명했다. 개체의 항로가 남쪽을 향하고 있었음을 통해 충분히 추측이 가능했는데, 그 발언은 그 근거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어쨌든, 그 존재는 이 해변 일대를 위협하는 적인 만큼, 격퇴 혹은 격파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만큼, 그 개체를 찾아내려 하였다.
  "Ubi lates? Petisti duellum, et exivit adversarius tuus, ut egredereris ad me! (어디 숨어 있나? 결투를 신청했고, 상대가 나와주었으니, 어서 기어나와야 할 게 아니냐!)"
  그렇게 외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구름이 드리워진 지브로아 부근에서 하나의 붉은 무언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붉은 연기를 뿜어내는 개체는 남쪽 방향, 내가 있는 쪽으로 한 동안 급히 다가가려 하다가 갑자기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 이후, 그 개체가 하얀 빛을 깜박이며, 어떤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Nunc te amo ut perficiam, sed tempus nondum est. Satis temporis opus est ad fovendum etiam iudicium? (생각 같아서는 지금 바로 너를 처리해 버리고 싶지만, 아직 때는 아니야. 너에게도 충분한 몸 풀기 시간이 필요하겠지?)"
  "Quid dicis? (무슨 말이지?)" 이후, 내가 그렇게 되물으려 할 즈음, 상공에서 한 무리의 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갑주 형태의 개체로 투구 안쪽이나 갑주의 테두리 부분, 그리고 갑주 사이로 드러난 관절부에 붉은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며, 손에 하나씩 무장을 들고 있는 개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등에 날개가 장착된 등짐 형태의 장치를 장착하고 있었으니, 그 장치를 통해 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Cum illis GAUDE!!! (잘들 놀고 있으라고!!!)

  그 이후, 이런 외침과 함께 통신이 강제로 끊기고, 인간형 병기들이 나를 향해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손에 들고 있는 무기에서 붉은 광선을 뿜어내며, 나를 위협해 오고 있었다. 글라이더를 움직이며 이리저리 피해 가면서 날개 하단에 장착된 총포를 통해 광선을 발사해 이들을 공격하려 하였다. 초록색 빛 줄기들이 총포의 포신에서부터 분출되어 병기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도 기동 병기인 이상, 회피 기동을 할 수는 있었다. 이들 역시 비행 장치를 구동하면서 빛 줄기들을 피해냈다. 이에 다시 총포에서 광탄들을 발사하면서 그와 함께 빛의 기운을 소환해서 그 빛의 기운을 통해 곡선을 그리며 유도하는 하얀 빛 줄기들을 방출하려 하였다.
  광탄들을 잘 피해내던 병기는 내가 소환한 빛의 기운이 방출한 곡선을 그리는 빛 줄기에 어깨 장갑, 흉부 등이 맞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돌격해 오던 병기는 그렇게 타격을 받고 폭발과 함께 장갑들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인 후에 왼팔의 방패로 추가 타격을 막으려 하였으나, 빛 줄기에 방패가 궤뚫렸으며, 이후에 총포 그리고 빛의 기운이 발사하는 빛 줄기들에 흉부가 궤뚫리면서 폭음과 함께 붉은 열기를 분출하며 부서져 갔다.
  뒤따르던 병기들의 수는 넷 정도 되었다. 이들은 앞서 돌격하며 사격하던 병기가 폭파되어 사라지자 접근을 통해 맞서려 하였는지, 각자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창, 도끼의 날의 끝에서 붉은 빛으로 칼날을 추가 생성하도록 하고서, 나를 향해 돌격해 오려 하였다. 이들의 돌격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빨랐고, 그들의 접근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들이 돌격해 올 것임은 그들이 자신의 무기에 날을 세우는 모습을 통해 이미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돌격을 대비한 수단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빛의 기운 대신에 감빛의 기운을 불러와 그 감빛의 기운에서 작은 화염탄들을 내가 있던 그 전방 일대에 흩뿌리도록 한 것이다. 다만, 그들의 돌격이 생각보다 빨라서 바로 다음 행동을 해야 했고, 그래서 생각한 대로, 화염탄을 치밀하게 뿌릴 수는 없었으며, 대충 화염탄들을 뿌린 후에 빛의 기운을 급히 소환하고서, 뒤로 물러나는 듯이 후퇴하며, 그들의 돌격을 기다리려 하였다.
  "그래?" 그러자 내가 되묻는 듯이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 화답하는 세나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려 하였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런 표정을 짓는 세나의 눈빛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세나를 처음 보았을 무렵에 그가 보였던 모습이었다.

  시종의 옷을 입은 이 (여인이라 할 수 있을지, 소녀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앳된 인상이라 소녀라 기억하고 있었다) 가운데 부분이 검고, 어떤 문구가 새겨진 양손검을 오른손으로 잡은 채, 오른손에 잡은 검으로는 괴물을 내려치고, 왼손에서는 칼날을 일으켜 괴물의 몸을 무참히 쥐어뜯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소녀는 광기 어린 외침을 이어가고 있기까지 해,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다.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현장에서 어떻게든 소녀의 광분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무력으로 소녀를 제압하려 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세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좋지만, 때로는 그것 때문에 너무 과격해지는 경우도 있어."
  그 소녀의 모습을 상기하며, 내가 말했다. 그 때 마주했던 그 소녀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때의 소녀에 비하면 얼마나 과격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정도는 다르기는 해도, 세나의 성정과 그 소녀의 성정에 비슷한 면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만 말해 두겠다.
  "노력해 볼게요." 그러자 세나가 말했다.
  "노력한다고 당장에 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내가 화답했다. 노력한다고 당장에 변하는 것이 얼마나 될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당장에는 잘 바뀌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장의 일일 따름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다가 문득, 또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재난 속에서 '괴물' 들이 다수 생겨나 그 지역 일대를 위협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제법 큰 규모의 부대가 그 근방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부대에 소속된 장갑 보병들이 도시에 들어오기 시작했지. 부대의 장갑 보병들은 원래 '괴물' 들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도시의 변방에 배치되어 있었어. 그 장갑 보병들이 도시로 쳐들어와 인간들의 거주지를 무분별하게 공격해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지.
  '괴물' 들의 침입은 신병이 탈출선을 타고 떠나갔을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어. 부대원들이 하나둘씩 허망하게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처절하게 싸움을 이어가려 했었지.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간부를 포함한 몇몇 부대원들과 함께 '괴물' 들의 근거지에 닿았지만 그 부대원들마저 죽고, 자신 역시 '괴물' 들의 압도적인 힘 앞에 목숨을 내놓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었어.
  그 때에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눈을 떴을 때에는 어떤 해변가 위에 있었다고 했었지. 어째서인지 그는 검게 타 버린 군복에 검게 변한 헬멧과 장갑을 끼고 있었고, 얼굴에는 방독면이 씌워져 있었다고 했어. 손에는 착검된 소총이 있었지만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심허게 훼손되었고, 애초에 탄이 없어 사실상 총포로써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어.

  이후, 내가 거듭된 타격을 받고난 이후에 쓰러져서 팔과 다리만 겨우 움직이던 병기의 흉부에서 심장을 뜯어 내, 오른손에 든 채로 죽음의 기사에게 다가가자, 마치 피처럼 붉은 빛을 깜박이던 '심장' 을 보더니, 죽음의 기사는 다급히 그 '심장' 을 그의 오른손에서 채갔어. 그 심장에 괴물들이 죽인 가족의 피가 있다고 했어.

  '괴물' 의 정체는 푸투로 계획의 관계자가 개발한 기계 병기들이었으며, 그 관계자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통해 군 관계자들에게 보다 많은 인간들을 학살하도록 하니, 더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면 할 수록 '선택받은 자' 로 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선택받은 자' 가 되면 재난을 피해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갈 우주선의 탑승 자격을 얻게 된다며 군 관계자들과 정치인들을 선동했었지.     학살당한 민중의 시체들 그리고 포로가 된 사람들은 어느 거대 우주함에 끌려갔으며, 그 이후에 사라졌다고 하더구나.
  그렇군요. 만약에 인류의 보금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우주선을 푸투로 계획을 주관했던 사람이 실제로 건조했다고 하더라도, 그 동력원은 제가 언급했던 그 플라즈마 반응로였을 거예요. 그리고 그 반응로에서 전력을 생산할 플라즈마는 아마도.......
  그만하게.

  저도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하니, 잘 모르겠어요. 다만...... 말씀하신대로 '괴물' 이 그 시대 사람들의 영혼과 관련되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간 들었던 이들의 목소리, 내가 냈던 목소리가 하나씩 나의 마음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알프레드 노인과 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마지막에는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지나쳐 갔다. 그와 더불어 사람들을 저버리고 인류를 증오하게 된 기계 병기들의 편이 된 자들에 관한 이야기도 떠올렸으며,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상기할 수도 있었다.
  특히, 잔느 공주는 루이즈와 더불어 푸투로 계획이라는 인류의 미래를 짊어져야 했던 현수 파크가 진행한 계획의 이면에 숨은 잔혹한 실상의 희생자였고, 그의 사악한 계획에 의해 이용된 기계 병기들에 의해 잔인하게 희생된 이들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이였기에, 그에 관한 기억이 마음에 울리는 바는 더욱 컸다.

  집에 제가 갖고 있던 휴대 전화기가 도착했대요.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휴대 전화기로 제가 사진기로 마련한 사진들, 문구 전송기를 통해 제가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어구들, 제가 전화기에 기록해 두었던 저의 일기를 보면서 그제서야 저의 진심을 알게 되셨대요.
  그제서야 저는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를 저의 마음에서 용서를 했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기 그 전 날에.

  운다고 그들이 와 줄 것 같냐!? 그런 과거에 미련을 남겨 봐야 너희들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알아!? 그러니까, 당장 닥치고 과거는 몽땅 잊어버려! 너희들에게 다가올 미래에 집중하란 말이야, 알았어!? 지금 이후로 한 번이라도 우는 것들이 있으면 그대로 캡슐 안에서 동사시켜 버릴 테니까, 그리 알아!

  '...... 애들을 얼려 죽이려고 그렇게 윽박질렀던 거냐......'
  잔느 공주의 목소리를 떠올린 이후, 나는 또 하나의 기억을 되짚게 되었다.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가 캅쉴라 안에 잠들기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그가 냈던 목소리였다. 이전에도 그 때에 관한 이야기를 세나와 함께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으며, 그러면서 쉰스 (Scünsî) 라는 용어를 그에게 꺼낸 적이 있기도 했다.
  '그래놓고 거짓말까지.......'
  그리고, 예나에 의하면 그렇게 생매장에 가까운 짓거리를 해놓고는 푸투로 계획 관계자들은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그들이 무사히 동면 과정에 들어섰으며, 다른 행성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 거짓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 푸투로 계획이란 '찬란한' 계획으로 인해 시설 안에서는 학생들이 생매장당하고, 시설 밖에서는 기계 병기들에 의해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있었다. 이런 계획에 관계된 자들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그 자들에 관해서는 몇 번이고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할 때마다 새삼스레 분노가 밀려올 것만 같았다.
  '어미 씹할 놈의 새끼들......'
  그 때, 세나가 그런 나를 보더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느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흠칫 놀라며 뭔가 의문을 품는 듯한 세나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혹시나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미처 듣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아까 전에, 네가 너무 과격해질 때가 있다고 말했었지?"
  이후, 나는 다시 바다를 바라보려 하면서 세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는 그랬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그런 세나에게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일상에서는 과격함이란 문제가 많은 일이야. 폭력이라든가, 폭언이라든가, 욕설(저주) 이라든가....... 많은 이들에게 안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지, 보통 민폐가 아니라고. 그런데 말야, 세나...... 그러니까......."
  그리고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음에 만날 괴물도 분명, 그 푸투로 계획 그리고 수현 파크와 관련이 있을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예." 그러자 세나가 답했다. 그런 그의 표정을 얼핏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아차리고 있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한 짐작을 하거나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듯해 보였다.
  "어쨌든, 그 괴물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 몸뚱이의 모든 것은 물론, 영혼까지 자원으로 이용해 먹는 존재들임은 확실할 거야."
  그 이후,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가만히 앉아 있으려 하였다. 그리고 세나의 "말씀하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있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에게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 괴물을 끝장내는 것은 너에게 맡길게. 네가 원하는대로, 네가 마음 가는 대로 처분해 버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몰라서 묻는 거야?" 내가 건네는 말에 세나가 바로 물었다. 그 목소리에서 심히 당황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으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바로 그렇게 되묻는 듯이 화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조용히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너도 지브로아 일대의 과거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래저래 화가 많이 쌓였을 거야. 무엇보다도...... 나는 이렇게 생각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무참한 죄가 저질러졌고, 그 원흉이 있다면 원흉에게 마땅한 징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어갈 때마다 내려진 고통과 슬픔의 몫 만큼, 그 존재가 그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야, 그 몸이 부서지든 말든."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런 벌을 내릴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게 바로 너야."

  "웬지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이후, 세나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 속에 봉인해 두었던 또 다른 자신을 꺼내버리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냐고 물은 이후에 그런 나를 보면서 조용히 이렇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 때에도 아르사나 씨께서는 저를 보고 너무 심하다고 하셨어요. 그 모습을 다시 보시기를 원하시는 건가요?"
  "이번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러자 내가 답했다.

  처음에는 암만 상대가 괴물이나 악당이라도 그렇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한 처사라 생각했어. 응징이라도 과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런 응징을 반복하는 그 심성의 잔인함은 교정되어 마땅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아. 처음에는 모두 선량하고 순진했을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결국 모두 주변의 환경, 그러니까,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일을 일으키는 자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 어떤 사람이 선하게 되거나, 악하게 되는 것, 온화하게 되거나, 잔학하게 되는 것, 그리고 본래의 심성을 유지하거나 타락하는 것은 결국 여러 사람들 혹은 심지어 단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깨달았던 거야.
  잔학한 처벌이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알아. 그런 잔혹한 처벌이 반복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결코 진심으로 변하지 않아, 슬슬 눈치를 보며, 살아남을 궁리만 하고, 보복의 음모만 꾸미게 되지. 잔꾀와 요령이 난무하고, 복수에 미친 사람들이 판치는 교활한 세상이 되어버린다는 거야.
  이번의 경우는 그런 세상의 통념과는 조금은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을 거야, 자신의 탐욕으로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여버린 존재와 맞서게 된다는 것이잖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을 품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어. 아마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 때의 기억을 품으며, 그 존재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의 비원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 넋들의 여한을 누군가는 풀어줄 필요가 있어. 그간 벌여온 잔학한 짓거리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은 돌려주도록 해야 할 텐데, 그를 위한 잔학함이 필요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세나의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어디까지나,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야. 더 이상 그런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내 말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요?" 그러자 세나가 물었고, 이에 나는 조용히 그렇다고 답했다.

  "참으로 우습지, 그렇지 않아?" 이후, 나는 바다로 시선을 향한 채로 세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누군가의 무서운 일면을 경멸하고 기피하려 하면서, 때로는 그런 일면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느낄 수도 있다니 말야. 그런 면모를 경멸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쪽을 쳐다볼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마땅할 텐데 말이야."
  "사람들이 누구나 이상적으로 살아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세나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상적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도 세상 사람들 중에서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하잖아요. 세상의 선한 사람들이라 칭해지는 이들 중에 선하지 않은 짓을 저지르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하시지 말아요."
  말을 건네는 세나의 표정이 조금은 환해진 듯해 보였으며,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나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런 따뜻한 말을 한 번씩 해 주는 것에 고마울 때가 한 번씩 있어."

  그 이후, 세나는 나를 보더니, 온갖 궂은 일, 더러운 일을 내가 늘 도맡고는 했었음을 밝히고서, 왜 그러하였느냐고 묻고 싶었음을 밝혔다. 이유야 짐작이 된다고 하지만, 나에게도 대답을 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거기 있는 이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어둠과 가까웠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늘 착했다가 한 번 나쁜 짓을 저지른 이에게는 수없이 비난이 가해지지만, 나쁜 짓을 수없이 저지른 이가 나쁜 짓을 한 번 저지르면 그렇지는 않지. 밝음과 어둠도 마찬가지이겠지. 어둠과 거리가 있던 사람이 어둠에 가까운 일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둠에 가까운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 그런 짓하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잖아, 그렇지 않아?"
  이후, 나는 소르나가 직접 추천해서 천문대에 온 사람임을 밝히고서, 그런 사람으로서 능력 덕에 온 사람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짓이라도 해야 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말을 이어서 하였다.
  "그것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서 알고는 있었을 거야, 그렇지?"
  "그랬었지요. 소르나 씨도 아르사나 씨께서 분명 그런 생각으로 그러하셨을 것이라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후, 세나는 나를 보더니, 나에게 이전에 나에게 전달되었다는 전언, 그러니까, 어떤 기계 병기가 나에게 전하려 하였던 말의 진의를 믿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존재가 나에게 그런 말을 전하는 방식으로 도발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존재가 그 말대로 나를 공격해 올 것이라 자신은 믿지는 않음을 밝혔다.
  "그 존재가 자신의 뜻을 그렇게 말했다지만, 그는 결국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있을 뿐이에요. 기계 병기들 중에는 자체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는 개체들도 있다지만, 결국 상부의 명령을 우선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그 병기가 아르사나 씨와 대결하겠다고 생각을 해도, 명령을 우선시하는 기계 병기의 특성이 있는 이상, 그 뜻은 뒤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설령 대결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일은 아닐 것,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야, 그러할 것 같지 않아." 그러자 내가 답했다. 세나의 생각은 그러하였고, 기계 병기의 특성에 대해 내가 아는 바대로라면 병기들은 명령이 있다면 그 명령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그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 그 특성이 회로와 전선 단위로 각인되어 있고, 애초에 기계 병기들 원래부터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나도 그런 연유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
  그래서 그렇게 세나에게 말했다. 그 이후, 나는 세나에게 다른 이들은 예나의 비행선 안에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는 그렇다고 답한 후에 그 앞에 엘베 족 용사들이 천막을 치고 기거하고 있는데, 한 동안은 소란스러웠으나, 곧 조용해졌음을 알렸다.
  "그래?" 그러자 내가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세나." 하고, 그의 이름을 나지막히 부른 후에 이렇게 청했다.
  "세나, 네가 할 수 있는대로, 모든 환수들을 소환해서, 그 일대를 지키도록 해, 혹시라도 그 기계 녀석들이 그 일대를 쳐들어갈 수 있으니까 말야. 나를 도발하겠다고 거처라든가, 해변 일대 혹은 그 주변의 집들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그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달리 말할 때까지 그 곳에 환수들을 머무르도록 해 줘. 경우에 따라 해변으로 올 녀석을 추격하도록 해야 할 수도 있어."
  "추격이라고요?" 이후, 세나가 묻자, 나는 그렇다고 답하였다. 다만, 거점으로 돌아가려 하면 더 이상 쫓지 말라고 했다. 그 이후로는 특정 거점에 있을 윗 존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임이 그 이유라고.
  "아마 그 이후로는 그 녀석이 나와 마주할 일은 없을 거야."
  "아르사나 씨, 그 병기는 누구의 수하일 것이라 생각하세요?"
  그 이후, 세나가 나에게 물었으나, 그 물음에는 마땅히 답을 하지는 못했다. 어느 쪽의 수하인지에 대한 마땅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괴물 혹은 리사 선생님께서 추적하는 무리의 수하일 것이고, 어느 쪽이든 무리를 쫓아내는 과정 속에서 격퇴되거나 파괴될 것일 테니, 어느 쪽 수하인지는 사실 딱히 상관 없는 일이기는 했다.
  "아무튼, 나는 곧 글라이더를 탈 준비를 할 테니, 세나도 얼른 준비 해!"
  그리고서 나는 이전에 나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글라이더를 찾아가려 하면서 세나에게 그렇게 당부를 했고, 그 이후에 글라이더가 있는 곳으로 가능한 빠르게 걸어가려 하였다.



  그렇게 세나와 헤어지고, 글라이더가 자리잡은 곳으로 걸어가기 위해 해변의 서쪽 방향으로 계속 길을 걸어가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 글라이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라이더에 앞서, 어떤 작은 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름 아닌, 이전에도 보였던 소리였다.
  "이제 오는 거야?" 글라이더 앞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어서 와,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지금까지."
  '지금까지?' 분명히 그 전까지 소리는 해변에 있다가 떠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글라이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하였지만,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말 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보기로 했다.
  "그래, 여기로는 또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러자 글라이더 근처에 서 있던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글라이더의 몸체 위에 앉으면서 한 가지 알리는 말을 전하였다.
  "방금 전에 이드리사 (Idrissa) 라는 이름의 전투기가 북쪽 건너편, 그러니까 지브로아 인근의 상공을 출발하기 시작했어. 남쪽 방향으로 서둘러 가고 있더라. 전투기가 남쪽 건너편을 향하고 있다면 이쪽으로 오고 있음이 확실하겠지?"
  그리고 이어서 소르나로부터 들었다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소르나가 그러더라, 그 이드리사 (Idrissa) 혹은 이드리스 (Idrisse) 라 칭해지는 소형 전투기는 지브로아 남서쪽 해변에 있는 '기억의 사당' 에 자리잡은 괴물과 대립을 세우는 어떤 세력에 소속된 전투 병기로 해당 세력에 소속된 전투 비행단에 소속된 전투기라고 했어."
  이후,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에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전투 비행단에는 5 기의 이드리사들 (Idrisse) 이 있다고 했었어. 본래는 은회색 (Ferargent) 을 띠고 있지만 전시에는 각자 다른 색을 띠며 빛나도록 되어 있어. 본래는 붉게 빛나도록 설정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코드 명 (Kodayrim) 은 '레이나 (Reyna)' 라고 했어. 이외에 '프라야 (Fraya)', '미샤 (Misya)', '마치 (Maci)' 그리고 '시아 (Scia)' 라는 이름이 알려져 있어. 그것이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보라색에 대응된다는 모양이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붉은색에 해당되는 전투기의 인격이 나를 도발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를 도발한 이는 '라이나' 라는 이름을 가진 이였겠구나, 라고. 이들의 이름이 모두 여성인 것은 아마도 전투기들에 각인된 인격이 이전에 들은 바 있는 가희 5 인들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투기들이 붉은색, 푸른색을 비롯한 5 색 중 하나로 빛을 발하도록 하는 것도 그것과 관련된 일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전투기의 이름은 레이나라고 해도 상관 없겠지?"
  "그렇지." 그 물음에 소리가 답했다. 그 이후, 소리는 그 전투기에 대해 원래는 특정 세력 내의 전투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전투단의 수장에게 명령을 받고 있는 만큼, 그 명령을 우선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허락을 받아, 이 쪽으로 올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이드리사라는 전투기가 다가오는 것에 대해 알리려 하였다. 그리고 글라이더에서 뛰어 내리면서 금방 해안가로 올 것이니, 얼른 탈 준비를 해 줄 것을 나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금방 전투기가 다가올 수도 있다고 하니, 가능한 빠른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지면에 거치된 글라이더에 다가가서 그 글라이더로 다가가 탑승구를 착용하는 것으로 탑승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동체의 하단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기동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으로 글라이더는 작동을 개시, 그 이후, 나는 글라이더의 장치를 움직여 해변가 건너편을 향하도록 하였다.
  "이제는 금방 작동시키네." 그 광경을 보고, 소리가 웃는 목소리에 이어 말했다. 이에 나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지만, 그것에 대해 달리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소리는 나에게 북쪽 상공에 리사 선생님께서 기다리시고 계실 테니, 능력이 된다면 그를 만나러 가 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너는 너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잖아. 그런 이들을 걱정하지 않게 할 필요가 있을 거야. 너무 멀리 가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자 나는 "걱정 마~" 라고 답한 다음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조심할 수 있으니,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말하고서, 한 번 나서고 나면 금방 격퇴될 테니,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먼저 나가서 녀석을 찾아낸 다음에 영격하려고 해, 녀석은 분명 나를 우선 노릴 것이라, 해변 멀리서 나와 마주하면 녀석이 해변에 닿지는 않을 테니까 말야."
  그 이후, 나는 글라이더의 날개 하단에 장착된 장치를 조작하는 것으로 그 개체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이후, 글라이더는 천천히 북쪽 해안 쪽을 향해 전진하면서 지면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라이더가 지면에서 이륙을 개시, 해변과 멀리 떨어진 상공 저편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그 무렵, 그런 나에게서 소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심해서 비행하고 있어, 금방 나도 따라갈 테니까."
  "따라...... 간다고?" 비행 장치도 갖추지 않으면서 어떻게 따라가려 했다는 것인지. 소리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전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기계 병기를 찾아나서는 비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별들이 곳곳에 박힌 감빛 하늘 위를 글라이더에 의지해 비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라이더에 의지해 지면을 벗어난 이후, 기억의 사당이 위치한 일대 쪽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이드리사라 칭해진 전투기 군이 속한 집단이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그 일대를 향하고 있다 보면 나를 찾아 나서려 했다는 '레이나' 라는 이름의 이드리사를 찾아낼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한 동안은 붉은 빛은 커녕, 기계 병기의 형체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억의 사당' 일대가 어디인지는 그 일대가 어디인지는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지브로아 해변의 한 구석이 회색 암운으로 뒤덮혀 있었으니,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을 법한 암운 너머에 사당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고, 괴물은 필시 그 안에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점을 감안하며, 기억의 사당 쪽으로 글라이더를 움직이던 그 때, 그런 나의 왼팔에 찬 팔찌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던 만큼, 불길한 신호였을 것이다.
  '분명, 그 녀석이겠지.' 그 신호를 받자마자 나는 그 존재가 나에게 신호를 보냈을 것임을 직감하며 통신을 개시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통신을 개시하는 나의 귓가에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듣는 형태의 목소리였다.

  "Tandem venator ad venandum avem est. (드디어 사냥꾼이 새 잡이하러 나섰구나)"   그리고 이어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Sed hoc nimis malum est, aliquantisper est ex quo ad te telegraphum misi, sed quod infernum faceres, tumultum facere conaris in maritimis et circum oppidis, sed non potuisti. (하지만 참 아쉽게 됐어, 전보를 보낸지 이미 꽤 시간이 지났건만,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나오지 않기에, 네가 쳐박혀 있었을 해안과 그 주변의 마을에 소동을 일으키려 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야)"   만약 내가 조금 더 늦었더라면 그 존재는 해안 그리고 마을을 습격하려 나섰을 것임이 분명했다. 개체의 항로가 남쪽을 향하고 있었음을 통해 충분히 추측이 가능했는데, 그 발언은 그 근거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어쨌든, 그 존재는 이 해변 일대를 위협하는 적인 만큼, 격퇴 혹은 격파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만큼, 그 개체를 찾아내려 하였다.
  "Ubi lates? Petisti duellum, et exivit adversarius tuus, ut egredereris ad me! (어디 숨어 있나? 결투를 신청했고, 상대가 나와주었으니, 어서 기어나와야 할 게 아니냐!)"
  그렇게 외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구름이 드리워진 지브로아 부근에서 하나의 붉은 무언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붉은 연기를 뿜어내는 개체는 남쪽 방향, 내가 있는 쪽으로 한 동안 급히 다가가려 하다가 갑자기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 이후, 그 개체가 하얀 빛을 깜박이며, 어떤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Nunc te amo ut perficiam, sed tempus nondum est. Satis temporis opus est ad fovendum etiam iudicium? (생각 같아서는 지금 바로 너를 처리해 버리고 싶지만, 아직 때는 아니야. 너에게도 충분한 몸 풀기 시간이 필요하겠지?)"
  "Quid dicis? (무슨 말이지?)" 이후, 내가 그렇게 되물으려 할 즈음, 상공에서 한 무리의 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갑주 형태의 개체로 투구 안쪽이나 갑주의 테두리 부분, 그리고 갑주 사이로 드러난 관절부에 붉은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며, 손에 하나씩 무장을 들고 있는 개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등에 날개가 장착된 등짐 형태의 장치를 장착하고 있었으니, 그 장치를 통해 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Cum illis GAUDE!!! (잘들 놀고 있으라고!!!)

  그 이후, 이런 외침과 함께 통신이 강제로 끊기고, 인간형 병기들이 나를 향해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손에 들고 있는 무기에서 붉은 광선을 뿜어내며, 나를 위협해 오고 있었다. 글라이더를 움직이며 이리저리 피해 가면서 날개 하단에 장착된 총포를 통해 광선을 발사해 이들을 공격하려 하였다. 초록색 빛 줄기들이 총포의 포신에서부터 분출되어 병기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도 기동 병기인 이상, 회피 기동을 할 수는 있었다. 이들 역시 비행 장치를 구동하면서 빛 줄기들을 피해냈다. 이에 다시 총포에서 광탄들을 발사하면서 그와 함께 빛의 기운을 소환해서 그 빛의 기운을 통해 곡선을 그리며 유도하는 하얀 빛 줄기들을 방출하려 하였다.
  광탄들을 잘 피해내던 병기는 내가 소환한 빛의 기운이 방출한 곡선을 그리는 빛 줄기에 어깨 장갑, 흉부 등이 맞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돌격해 오던 병기는 그렇게 타격을 받고 폭발과 함께 장갑들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인 후에 왼팔의 방패로 추가 타격을 막으려 하였으나, 빛 줄기에 방패가 궤뚫렸으며, 이후에 총포 그리고 빛의 기운이 발사하는 빛 줄기들에 흉부가 궤뚫리면서 폭음과 함께 붉은 열기를 분출하며 부서져 갔다.
  뒤따르던 병기들의 수는 넷 정도 되었다. 이들은 앞서 돌격하며 사격하던 병기가 폭파되어 사라지자 접근을 통해 맞서려 하였는지, 각자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창, 도끼의 날의 끝에서 붉은 빛으로 칼날을 추가 생성하도록 하고서, 나를 향해 돌격해 오려 하였다. 이들의 돌격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빨랐고, 그들의 접근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들이 돌격해 올 것임은 그들이 자신의 무기에 날을 세우는 모습을 통해 이미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돌격을 대비한 수단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빛의 기운 대신에 감빛의 기운을 불러와 그 감빛의 기운에서 작은 화염탄들을 내가 있던 그 전방 일대에 흩뿌리도록 한 것이다. 다만, 그들의 돌격이 생각보다 빨라서 바로 다음 행동을 해야 했고, 그래서 생각한 대로, 화염탄을 치밀하게 뿌릴 수는 없었으며, 대충 화염탄들을 뿌린 후에 빛의 기운을 급히 소환하고서, 뒤로 물러나는 듯이 후퇴하며, 그들의 돌격을 기다리려 하였다.
  작은 빛 가루처럼 보였을 화염 자탄들은 인간형 병기들이 접근하자마자 폭음을 터뜨리며, 노랗고 하얀 빛들을 퍼뜨리기 시작하니, 한 번 화염탄이 터지자마자 그 일대에 흩뿌려진 화염탄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면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폭음이 겹쳐 울리니, 그로 인해 먼 주변 일대까지 진동시킬 정도의 폭음이 일어났고, 병기들은 연쇄적으로 터지는 폭풍에 휩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이르렀다.
  "Non capit quod unum, qui stultus sunt!!! (저 까짓것 하나 잡지 못하고, 저 멍청한 것들!!!)"
  저편에서 분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폭발이 끝나고, 폭풍이 사라진 이후에 병기들의 모습이 사라졌고, 그 잔해들이 불길에 휩싸인 채,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니, 폭풍에 휩싸인 채로 그들인 궤멸되었음이 확실해 보였다.
  "Nunc, ut ex! Incutite eam! (자, 나가라! 저 자를 격추시켜!)"
  이후, 그 외침과 함께 가속하면서 한 무리의 전투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키 크기만한 다수의 소형 전투기들과 내 키의 1.5 배 즈음 되어 보이는 길이의 몇몇 전투정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돌격해 오고 있었다. 우선 전투정의 주포에서 주황색 빛 줄기가 발사되고-색깔 때문인지 불 줄기처럼 보였다-, 이어서 빠르게 돌진해 오는 소형 전투기들에서 미사일들이 다수 발사되어 나를 덮쳐 오는 것처럼 날아오기 시작했다.
  글라이더를 다급히 조작해, 지브로아 해변의 위쪽 방향, 상공 높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미사일들을 피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사일들은 곡선을 그리면서 그런 나를 추적해 오려 하였고, 그와 더불어 전투기들도 그런 나를 뒤쫓으려 하였다.
  상공 높은 쪽으로 상승하면서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며, 곡선을 그리는 빛 줄기들을 다수 발사하면서 나를 앞서 추적해 오는 미사일들을 우선 격추시키기로 하였다. 다수의 미사일들이 광선에 충돌해 폭발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와 함께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후,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고, 미사일들의 움직임이 주춤해졌을 무렵, 방향을 다시 돌려 지브로아 쪽으로 활강하는 듯이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잠시 주춤했던 미사일들과 전투정, 전투기들의 추격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하자마자 앞서 오는 미사일들을 격추시키고, 광탄들을 발사하는 전투기들을 이어서 광선들을 발사해 타격하고, 격추시키려 하였다. 그리고 앞서 빛 줄기들을 발사했던 전투정 앞에 이르러 그 기수를 거쳐, 주포 앞에 이르고서 빛의 기운으로 검을 생성해 그 검으로 주포와 선교를 베고 궤뚫어서 폭파시켰다.
  그 이후, 뒤따르는 전투정들을 향해 가려 하는 순간, 인간형 병기 몇이 나를 향해 다가와 그 길을 가로막으려 하였다. 포구 아래에 장착된 총포를 두 손에 들고 있으면서 돌격해 오는 인간형 병기들 중에서 앞서 오는 개체를 보자마자 날개에 장착된 총포들의 모든 포구에서 빛으로 칼날을 생성해 돌진하려 하였다. 그 칼날이 제법 위력을 내었는지, 병기의 총포와 포구를 궤뚫고, 동력원을 폭주시켜 폭파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앞서 오던 병기를 격파한 이후에 뒤따르는 이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격파하였다.

  그런 식으로 수십여 전투기들을 격추시키고, 3 척의 전투정, 10 여 인간형 병기들을 격파하고 난 이후에야 나는 붉은 연기를 일으키는 개체 앞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전투정, 인간형 병기들이 내가 위치한 좌측에서 계속 몰려오고 있었으나, 그들이 직접 내 쪽으로 오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무언가가 전투기들을 공격하면서 그 무리의 시선을 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근방에 나타난 비행체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보려 하였다.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창의 형상에 빛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큰 날개들이 달려 있었으며, 그 뒤쪽에 빛으로 이루어진 두 쌍의 작은 날개들이 달려 있어서 하나의 비행기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 비행체가 각 날개의 끝에서부터 곡선을 그리는 하얀 빛 줄기들을 전방 쪽으로 분출해 전투기들과 인간형 병기들을 궤뚫도록 함으로써 이들의 개체 수를 줄여 가고 있었던 것이다.

  붉게 빛나는 연기에 감싸인 비행체의 바로 앞으로 다가갈 무렵, 비행체 역시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하나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Cogitare debes, 'quid magnum de te?' quia justos tales homines confodies, es? Scire scire. Certe hic de conficiendo cogitas et ad somnum iam rediens, sed non, non omnia eveniunt ut vis. (그 따위 졸개들 수십을 격추시켰다고 설마 '너 따위가 별 것 있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지금 여기서 금방 끝내고 바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자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안 됐어, 그 바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야)"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비행체가 나의 앞까지 다가왔고, 동시에 눈앞에 계속 보이던 붉은 연기가 점차 걷히면서 연기에 감싸여 있던 비행체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행체는 은회색을 띠고 있었으니, 그 모습은 이전에 들은 바대로였다.

  비행체의 모습은 대략 이러하였다. 뿔 모양의 기수와 길고 가느다란 몸체 그리고 날카로운 꼬리로 이루어진 동체의 양 옆에 날카로운 칼날들을 덧붙인 부채 모양의 날개를 장착한 형태의 비행체로서 몸체의 어깨 즈음에 해당되는 부분에 팔처럼 생긴 것으로 끝 부분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포신으로 쓰일 법한 장치가 달려 있었다. 해당 장치의 각 가운데 부분에는 관절이 장착되어 있어서 팔처럼 움직일 수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날개의 각 끝 부분에는 광선 발사 장치로 추정되는 작은 장치들이 장착되어 있었고, 꼬리 부분에도 해당 장치가 장착되어 있어서 이를 통해 꼬리 부분에서도 광선을 발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기수 부분의 캐노피 (Kanopa) 부분은 붉은색 물질로 이루어진 창으로 덮혀 있었으며, 그 너머로 한 쌍의 붉은 빛이 깜박이고 있었으니, 마치 악마의 눈빛을 묘사하는 것 같았으며, 날카롭고 뾰족한 외견이 한편으로는 새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날벌레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무렵, 내 눈 앞에 보인 비행체를 두고, 그것이 바로 '이드리사 (Idrissa)' 라는 이름을 가진 개체인 것일까, 라고 생각할 즈음, 동체와 꼬리를 잇는 부분 주변에 빛으로 이루어진 노란 선이 고리를 생성하고 그와 더불어 붉은 광선들이 그 주변에 창들을 생성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빛의 선들이 그려낸 창의 개수는 넷으로 비행체의 좌우 주변에 2 개씩 생성되고 있었으니, 이를 두고 두 쌍의 창들을 소환해서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내가 짐작했던 바대로 비행체-이후로 이드리사라 칭한다-가 소환한 창들은 곧 몸체와 꼬리를 잇는 부분 주변에 생성된 고리와 함께 실체화되어 이드리사의 동체와 같은 색의 은회색을 띠는 창이 되었다. 하지만 창끝은 뾰족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하나씩 포구 같은 부분이 자리잡고 있어서 해당 부분을 통해 포격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니, 이를 통해 그 비행체와 적으로서 맞설 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를 대강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나와 어느 정도-대략 4 메테르 가량이었던 것 같다- 거리를 둔 상태에서 장치들을 소환한 이후, 이드리사는 천천히 후진하면서 창의 끝에 자리잡은 포구 부분이 붉게 빛을 발하도록 하더니, 그 이후, 내가 예상한 바대로, 각 포구에서 붉은 빛 줄기들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기나긴 빛 줄기들을 상하로 움직이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발사하니, 빛 줄기들이 마치 파도와 같은 대형을 이루며 나아갔다.
  "Iam me experiar facultatem tuam. (이제 내가 직접 너의 능력을 시험해 보겠노라)"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후, 빛 줄기들의 대열 사이에 있으면서 그 사이에 있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붉은 탄들을 피해가며, 글라이더의 총포 그리고 내가 소환한 빛의 기운으로 광선을 발사해, 이드리사에 타격을 가하는 동안 이어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Nolo te confundere me, operam tuam experiri, et......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최선을 다해 싸워 보라고, 그리고......)"
VIDE MORTEM GLORISAM PER MEEEEEEEEEEEEEEEEEEEEEE
ET DA MIHI SUMMAM LAETITIAAAAAAAAAAAAAAAAAAAAM!!!!
(나에 의한 영광스러운 죽음을 실현해애애애애애애애에에에에에에에
나에게 극상의 만족을 선사해 달란 말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Quam desperata voluntas....... Sed hoc tempus scies quod non semper abibit. (얼마나 절실한 소원이면...... 하지만 언제나 바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알려주지.)"
  그 목소리에 그렇게 나지막히 목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그 목소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드리사의 주변에 생성된 고리에 장착된 4 자루의 긴 창에서 포격이 중지되더니, 각각의 창들이 끝에서 자주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창들이 비행체의 상하 그리고 좌우 방향으로 뻗어나아가면서 비행체가 뒤로 움직이니, 앞으로 나아가면서 창을 휘두르기 위한 행동임을 바로 눈치채고서 피할 준비를 하려 하였다.
  그 이후, 비행체는 내가 있는 전방 쪽으로 돌격하면서 자신의 상하, 좌우 방향으로 움직였던 창들을 앞으로 휘두르려 하였다. 마치 나를 덮치려는 듯이 창을 휘두르는 창의 움직임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나는 그 위쪽 방향으로 글라이더를 움직여 창을 피해내면서 그 몸체를 금히 가속시켜 이드리사의 꼬리 쪽으로 다가가려 하였다. 기수를 돌려 이드리사의 꼬리를 치려 하기 위한 일이었다.
  이드리사의 꼬리를 지나치는 듯이 비행했다가 기수를 돌리는 순간, 눈앞으로 이드리사의 꼬리 주변에 있는 장치들이 자주색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을 지나치려 하는 나를 후미의 장치들로 공격하려 하였던 것 같았다.
  후미의 붉은 빛을 발하는 장치들이 자주색, 분홍색, 붉은색 광선들을 발사하고 있었다. 빛 줄기들은 곡선을 그리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한 번 곡선을 그리더니, 내가 있는 그 일대를 향해 직선을 그리며, 가속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빛 줄기들이 다가올 때마다 이리저리 글라이더를 움직여 피해 가면서 글라이더의 날개 아래에 장착된 총포를 통해 빛 줄기들을 발사하는 것으로 이드리사의 후미 부분에 타격을 가하려 했다.
  한 동안 타격을 계속 받던 이드리사는 이후, 다시 기수를 돌려 내가 있는 쪽을 향하기 시작했으며, 창들 그리고 기수의 끝 부분에서 빛을 발했고, 각각의 빛에서부터 몇 줄기의 보라색 번개 줄기들이 분출되어 내가 있는 일대를 향하였고, 그 때, 나는 그 틈새에 있으면서 비행체를 향한 타격을 이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이후, 이드리사는 내가 위치한 곳을 급속히 지나치려 하였다. 이드리사가 나를 스치듯 지나가면서 공기를 가르며 생겨난 바람이 나와 내가 탑승한 글라이더를 덮치고, 이에 글라이더가 왼쪽 방향으로 흔들리는 것을 다급히 조종을 이어가면서 간신히 수습한 이후에 다시 기수를 돌려 이드리사를 향하기 시작했다.

  "Audivi de te multum. Multae fabulae jucundae apud eos erant, sic recordatus sum, et iocum tibi dicere putavi. (너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지, 너에게 들려주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이후, 이드리사가 다시 창의 끝에서 빛 줄기들을 발사해 나를 공격해 나가는 동안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나에 대해 그 동안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나 자신도 몰랐던 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라, 그 말을 듣자마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러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Fabulae jucundae? Quid de inferno loqueris?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Ne sis impatiens, mox audies. (조급해 하지마, 곧 들려줄 거니까)" 그 때에 이드리사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그 이후, 그는 그 때 이후로는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음을 밝히고서, 그래서 방금 전까지의 어려운 말이 아닌 보다 쉬운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겠음을 밝히고 있었다.
  "Longum puto futurum esse, sic habeo tibi dicere apud facilius linguam.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보다 쉬운 말로 알려줘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Obiter miratus sum aliquid quod in eadem lingua commeas pro non intellegentia (그건 그렇고 좀 놀랐어, 그런 말로 대화를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기는 커녕, 같은 언어로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꼴이라니)"
  같은 언어로 대답을 해 준 것에 대해 여러모로 놀랐던 모양으로 그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으로, 상부로부터 주입받은 지식을 통해 그런 언어로 말을 걸고, 해당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하찮은 것' 의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려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지식과 더불어 참으로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사고 방식을 상부로부터 주입받은 모양.
  "Quare? Cur in hac lingua loqueris? Non confidis? (왜? 계속 이런 언어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지? 거기까지는 자신 없나?)"
  하찮기 이를데 없는 오만함에 한심함을 느끼며, 그렇게 도발했으나,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이드리사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몸체가 자리잡은 쪽에서부터 이전과는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Il s'agissait de ta mère. Bien sûr, je ne sais pas comment tu saurais comment ta mère est morte. Mais quoi que tu en saches, je suis sûr que c'est une histoire qui te surprend. (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지. 물론, 나는 네가 네 어머니가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됐는지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지는 알지 못해. 하지만 네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든, 이 이야기는 그런 너에게 놀랄만한 이야기임을 장담해 보지)"
  "Quelle histoire? (무슨 이야기지?)"
  "Je veux dire... on savait seulement que ta mère était morte subitement d'une mystérieuse maladie alors qu'elle était absente. Mais pas vraiment. tu sais, ta mère n'allait pas mourir si facilement. (그러니까..... 세간에서는 네 어머니가 외출 중에 의문의 병으로 급사했다고만 알려졌었지.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 너도 알고 있었을 거야, 네 어머니가 그렇게 쉽게 죽을 이는 아니었다는 걸 말야)"
  그렇기는 했다. 어머니께서는 직접 거론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주변 사람들마다 어머니에 관해 늘 훌륭한 용사이셨고, 강한 사람이셨다고 말하고는 했다. 심지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학교에서 알게 된 리사 선생님께서도 어머니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의 죽음이 의아하게 여기어졌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 것 같았다. 사람이 살고 죽고는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뭔가 내가 알지 못했던 요인에 의해 돌아가셨을 것이라 그렇게 믿게 되었고, 그 때에도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나와는 연식도 없고, 심지어 적이기까지 한 저 전투기가 나한테 어머니의 진실에 관해 말하겠다고 한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안다고, 어머니에 대해 이래저래 말할 수 있다는 것인지, 라 생각하니, 기가 막혀 이렇게 말했다.
  "Qu'est-ce que tu sais? (네가 뭘 안다고?)"
  "J'ai hérité du droit de tout savoir sur les gens. Il ne s'agit même pas de toi. (나는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 권리를 이어받았지. 너에 관한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야)"
  목소리가 답했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모두 밝히겠음을 말하고서,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이후에 말하겠음을 알리기까지 했다. 그 이후, 그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언급했던 바대로의 이야기였다.

  Comme je l'ai mentionné plus tôt, on sait que ta mère est décédée d'une maladie soudaine, mais ce n'est pas le cas, et certaines personnes ont dû le deviner. (앞서 말한 바대로, 네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몇몇 사람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거야)
  Alors? Cela signifie-t-il que ma mère a été assassinée?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살해당하시기라도 했다는 건가?)
  Oui! Elle a été tuée! Non loin de la grotte près du lac. (그렇지! 그 분께서는 살해당하셨어! 호숫가 근처에 있는 동굴과 멀지 않은 곳에서 말야)

  D'après ce que j'ai entendu, ta mère a croisé un homme près du lac. Il a tué votre mère après l'avoir trompée comme si elle était une vagabonde de passage.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네 어머니는 호숫가 근처에서 어떤 남자와 마주했다고 했었어. 그 남자는 지나가는 방랑 과객인 것처럼 네 어머니를 속인 후에 네 어머니를 죽였어)
  Je suis sûr que tu penses qu'il y a quelqu'un derrière tout ça. En effet, c'est évident. Ceux qui connaissent la vérité sur cette affaire pensent que s’il existe une bonne raison pour qu’il assassine un si grand homme, il doit y avoir quelqu’un derrière cela. (그 배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거야. 물론, 당연한 일이지. 그런 위인을 그 자가 암살할만한 마땅한 명분이 있으려면, 그 배후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고 사건의 진상을 알만한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Alors... tu sais qui est ce type et qui est derrière lui? (그렇다면..... 그 남자가 누구이고, 그 배후가 누구인지 너는 알고 있다는 말이지?)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그 음성의 소리가 답했다.

  C'est exact. La personne derrière cela voulait que ta mère meure, et à cette demande, l'homme a tué ta mère. (그렇지. 그 배후의 인물은 네 어머니가 죽기를 원했고, 그 요청에 따라 그 남자가 네 어머니를 죽인 거야)
  Et il voulait l'honneur d'être le héros du nouveau monde avec le personnage et d'autres qui voulaient faire partie du nouveau monde. Et il voulait être qualifié d'homme fort, et il voulait prouver qu'il était un homme fort en tuant une femme qui était vénérée comme la plus courageuse de ce monde. (그리고, 그 남자는 원했어, 새로운 세상의 일원이 되려 하는 그 인물을 비롯한 자들과 더불어 누리는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되는 영광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강자로 불려지기를 원했지, 이 세상에서 용사로 추앙받았던 여인을 죽이는 것으로써 자신이 강자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거야)


  그 무렵, 이전에 발사되었던 붉은 광선들이 내가 위치한 그 주변 일대에 빠르게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더니, 이어서 붉은 광선들의 궤적 그대로 붉은 번개 줄기들이 동시에 발사되었고, 그 번개 줄기 사이에 있었을 나에게 한 무리의 포탄들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기 시작하니,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것들이 추적하는 특성을 가진 것들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5 ~ 6 발씩 몇 차례 날아오던 포탄들을 빛의 기운에서 발사되는 빛 줄기로 격추시키는 것으로 제거해 간 이후, 비행체의 기수를 빛의 기운 그리고 나 자신이 직접 빛 줄기를 방출하면서 타격하려 하였다. 그 때, 빛 줄기들, 그리고 번개 줄기들을 발사하고 있던 장치들이 밝게 빛을 발하더니, 각각의 빛에서 빛의 흐름을 한 지점, 비행체의 기수 앞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기수 앞으로 모이는 빛은 이윽고 하나의 거대한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드리사라는 비행체가 무슨 일을 저지르려 하는지 바로 알아차리고, 우선 나부터 기운을 끌어모으고, 빛의 기운 역시 자신의 힘을 최대한 끌어모으게 하려 하였다. 그 무렵, 나의 바로 앞에서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Tu ne veux pas savoir qui se cache derrière l'homme qui a tué ta mère? (네 어머니를 죽인 자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아?)
  Je veux savoir, mais je ne veux pas avoir de toi. (알고 싶기는 해, 하지만 너에게 듣고 싶지는 않아)

  비행체는 나에게 어머니를 죽인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묻고 있었다. 하지만 적이 된 자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구차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그에게는 거절의 뜻을 밝혔다. 애초에 머지 않아 대결의 마지막에 치닫기도 할 테니, 더욱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Je m'en fiche si tu veux l'entendre ou non. Tu dois m'écouter. (듣고 싶든, 듣고 싶지 않든 상관 없어.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해)

  라고 말하며, 그는 바로 자기 마음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La veille de tuer ta mère, il a rencontré quelqu'un au même endroit. Elle portait une robe noire blonde, plutôt grande. Elle lui dit : "Je te laisse tuer la femme qui est l'ennemie de ton seigneur." Et Elle lui a demandé de garder son corps intact, autant qu'elle en avait besoin. Et elle m'a montré quelque chose. (그 남자가 네 어머니를 죽이기 전 날, 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 금발의 다소 키가 큰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었지. 그 사람이 남자에게 말했어, 주군의 원수가 된 여인을 죽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어. 그러면서 요구했지, 그 여인의 몸이 필요한 만큼, 그 몸이 온전하게는 해 달라는 것이었어. 그리고 뭔가를 하나 보여주었어)

  그러더니, 그는 그 '무언가' 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C'étaient des joyaux rouges. En tendant ces pierres précieuses rouges, dit la femme, elles ont été prises avec sa propre magie dans la décision. Et elle a ajouté qu'elle utilisait ces pierres précieuses pour s'approprier certains rendements. Ils ressemblent à des bêtes et des monstres, mais ils étaient autrefois des êtres humains et ils étaient tous des membres de la famille dans le passé. Quoi qu'il en soit, ils disaient qu'ils avaient un cœur humain et qu'ils pouvaient donc se l'approprier en utilisant la magie des pierres précieuses. (붉은 보석들이었어. 그 붉은 보석들을 내밀며, 여자가 말했지, 그 보석들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자신의 마력을 결정에 짜내 만든 것이었다고 말했어. 그리고 이어서 말했지, 그 보석들을 이용해 어떤 환수들을 자신의 수하로 만드는 것까지 해냈다고 말했어. 그 환수들은 짐승,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인간이었던 이들로 전생에는 모두 가족이었던 이들이었다고 하더라. 아무튼,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보석의 마력을 이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 거야)

  Puis, lui dit-elle très fièrement. Cela prouvera que non seulement les humains, mais aussi tout ce qui a un cœur humain, sont des clans faibles. Et elle a dit que ce serait une excellente occasion de réaliser la cause et l'idéal que son seigneur aurait mis en avant. (그러더니, 그 남자에게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더라. 그것으로써 인간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가진 것들은 모두 나약한 족속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의 주군이 내세웠을 대의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했어)
  Un monde d'animaux forts et respectueux de la nature, et non un esprit humain maladroit et faible, un monde d'animaux forts et respectueux de la nature, sans harmonie et coexistence médiocres, et un monde idéaliste dominé par la logique du pouvoir des chasseurs et les chassés et le monde où ceux qui sont dirigés par une légion de machines et dont l'intelligence nuit à l'ordre de la nature sont complètement anéantis. Elle a dit qu'elle pouvait réaliser les idéaux de son seigneur en réduisant ces personnalités à des outils pour des idéaux.  (어설프고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 아닌 강인하고 자연 친화적인 드높은 동물들의 세상, 어설픈 화합과 공존이 아닌 사냥하는 자와 사냥당하는 자들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상향이자 기계 군단에 의해 관리되어 자연의 질서를 해치는 지성을 가진 이들이 철저하게 말살되는 세상 말야. 자신은 그 인격체들을 이상향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남자의 주군이 가진 이상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

  어머니를 죽인 남자의 주군, 그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포레 느와흐 (Foret Noire) 였다. 어머니를 원수로 여기고 죽이려 하는 이가 섬기는 주군이라면 그 밖에 없을 것임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남자가 어머니를 죽일 때,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여성,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일전에 세나가 언급했던 그 올리비아 사반 (Olivia Savan) 일 것이다. 즉, 그의 말대로라면 올리비아 사반은 포레 느와흐와 영합했으며, 그와 더불어 어머니의 몸을 이용하기 위해 포레 느와흐의 원수인 어머니를 죽이려 한 남자를 이용하려 하였다는 것이었다. 남자 역시 포레 느와흐의 원수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강자임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포레 느와흐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귀족' 으로 살아가려 하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련의 이야기는 상당히 그럴 듯한 이야기였음은 분명했다. 그간 듣고, 지켜본 바에 의하면 소르나는 올리비아 사반을 유난히 증오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소르나가 올리비아 사반을 유난히 증오할만한 중요한 명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지금은 세나의 수하가 된 환수들의 몸에 올리비아 사반이 왜 붉은 보석을 박아 넣으려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기도 했다.
  그 이야기의 진의는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나와 적대하는 이 정도가 아닌, 나의 바로 앞에서 나에게 포격을 가하려 한 존재의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가 진정성을 갖고 나를 위한 발언을 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바로 앞에 있는 이의 목소리가 전한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마음 속에 걸리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어머니께서 원인 모를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고, 어머니의 무덤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당시의 나는 너무도 어렸고, 그래서 심적 충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장례식 참석을 시키지 않은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 이야기로 인해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들이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 왜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내가 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모든 것들이. 그 모든 것이 올리비아 사반의 음모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속 한 켠에 하나의 응어리처럼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었다. 적대자가 나에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전한 이야기라 이성적으로는 믿을 수 없었고, 믿어서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그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드리사의 기수 바로 앞으로 빛의 기운이 모여 생성된 구체가 마치 폭주라도 하려는 듯이 격렬히 빛을 발하게 되고, 그 직후, 그 구체에서 붉은 빛 줄기가 분출되려 하였다. 빛이 분출되려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 역시 빛의 기운 그리고 나 자신의 왼손에서 그간 끌어모은 빛의 기운을 모두 끌어내 빛 줄기를 발사, 그로써 이드리사가 분출하려 하는 붉은 빛 줄기를 막아내려 하였다. 손과 빛의 기운에서 방출된 빛을 끌어모아 빛 줄기를 생성하니, 그 하얀 빛 줄기는 다행히도 이드리사의 붉은 빛 줄기와 크기가 비슷해 그 붉은 빛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보였다.
  하얀 빛 줄기가 붉은 빛 줄기와 정면에서 서로 격돌해 노란 빛을 주변 일대로 격렬히 퍼뜨리기 시작했고, 빛의 충돌이 이어지면서 대기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내가 있는 쪽으로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빛의 충돌이 대기를 밀쳐내면서 그로 인해 격렬한 폭풍이 주변 일대로 발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빛이 대기를 주변 일대로 몰아내기를 거듭하면서 계속해서 대기가 진동했고, 그로 인해 내 몸도 계속해서 격렬히 떨렸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중대했던 만큼, 그런 몸의 떨림은 중요치 않았다.
  빛 줄기를 생성하기 위해 이미 많은 빛의 기운을 들였지만, 충돌이 이어지고 있었던 만큼, 계속 빛의 기운을 들여야만 했다. 충돌의 접점이 이드리사 쪽으로 밀려나도록 전방 쪽을 집중하면서 계속해서 빛의 기운을 그 방향으로 집중시키려 하였다. 이드리사가 얼마나 기운을 집중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폭발의 중심인 충돌의 접점이 점차 이드리사 쪽으로 밀려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폭발이 발생하는 구체가 점차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로 인해 생성된 구체가 이드리사의 몸체에 닿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이드리사의 모든 부분이 구체에 삼켜지게 되었다. 구체가 이드리사의 몸체를 삼키자마자 구체는 다시 한 번 크게 폭발하면서 대기가 다시 한 번 격렬히 진동하였다. 몇 차례의 진동파가 발생해 일대의 공기를 뒤흔들고 난 이후, 빛이 사라지고 폭풍이 걷히면서 폭발은 끝났다.

  폭발이 끝난 이후, 이드리사의 몸체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그 몸체에 장착된 장치가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장치에도 자체적으로 동력 기관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그 동력 기관이 폭주하면서 폭발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폭발이 거듭 이어지고, 장치가 폭파될 듯한 모습을 보일 무렵, 이드리사는 급격히 자신의 몸체를 내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자신에게 장착된 장치를 떨쳐내 버렸다. 이후, 장치는 본체에 장착된 창들이 하나씩 폭발로 인해 분리되어 불길에 휩싸인 채, 추락하는 동안-그 중 일부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몸체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동력 기관이 장착되어 있었을 몸체의 위쪽을 시작으로 여러 부분들이 폭발해 열기와 폭풍을 격렬히 분출하면서 파괴되어 사라졌다.
  폭발하는 장치를 떨쳐낸 이후, 이드리사는 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가 내가 다시 공격을 개시하려 하자, 뒤로 물러나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나는 곡선을 그리는 광선을 몇 차례 발사한 이후였으며, 그로 인해 몇 차례 타격을 받았다.

  Je suis sûr que tu ne m'écoutes pas, mais je peux te le dire. Croyez-le ou non, j'ai juste dit la vérité telle que j'étais. (적의 말이라고 너는 분명 내 말을 귀담아듣지는 않고 있을 거야.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어. 믿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진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말이야)

  이후, 기수를 돌리고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이드리사에게서 들려온 말이었다. 이후, 이드리사가 가속해 나에게서 멀어지려 하자,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바처럼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격추되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있었던 만큼, 그를 더 추격하지 않고, 돌아서기로 했다.

  잘 생각했어. 저 녀석은 당분간 여기로 오거나 하지는 못할 거야.

  소리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놀라면서 주변 일대를 둘러보려 하였지만 소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당황하던 나에게 소리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었다.
  "일단은 해변으로 돌아와. 나 역시 그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하여 나 역시 기수를 돌려 해변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일행이 머무르는 비행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 일행의 거처가 멀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와 더불어 상황이 종료되면서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우주선 근처에 앉으려 하는 세나의 모습이 보였다. 소리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그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놀래킬 것인 만큼, 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거나 하지는 않기로 하고 있었다.



  "결국 무사히 격퇴되었네요." 해변으로 돌아와 글라이더를 원래 위치에 올려놓으려 할 즈음, 세나가 그런 나에게 다가왔고,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렇게 됐어." 그 말에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그리고 별 일 있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묻자, 세나는 그 말 대로라고 답했고, 그의 공격이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자신을 비롯한 이들을 향해 공격이 가해지거나 하지는 않았음을 이어서 밝혔다. 이후, 내가 글라이더 근처의 해변을 바라보며 서 있으려 하자, 세나가 그런 나의 왼편 곁으로 다가와서는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비행체가 아르사나 씨를 주적으로 지목하게 된 것일까요?"
  "녀석들도 나름 정보를 얻었겠지." 그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자기들 수하의 케레브 족이나 병기들이 이 곳에서 많이 희생되었을 텐데, 그 중에서 유난히 중요한 병기들을 때려잡은 이가 그 중에는 있었을 것이고, 그들 나름의 그럴싸한 근거를 토대로 나를 중요 병기들을 때려잡은 자로 지목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이어 말했다.
  "그래서 호승심이 강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레이나가 나를 호적수로 지목했겠지."
  이어서 세나에게 레이나가 나를 호적수로 지목했던 것에 대해 그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이렇게 됐으니, 이제 괴물이 있는 쪽에서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아요."
  "그렇겠지?" 세나의 전망에 대해 나는 묻는 듯한 말에 이어서, 세나가 나에게 밝힌 추측대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제 머지 않아 우리도 괴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거야. 물론, 괴물이 일으키는 폭풍이 적어도 우리가 가는 방향 쪽에서는 걷혀야 할 거야.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괴물의 배후 세력을 쳐서 괴물의 시선을 돌릴 수 있어야 할 텐데."
  "하지만 그 쪽으로 갈 수 있을만한 이가 마땅히 없잖아요."
  "리사 선생님께서 그 쪽에 가 계신다고 이야기를 들었어."
  그러자 나는 바로 세나에게 리사 선생님께서 그 쪽에 있음을 알렸다. 처음에는 하야라 일대에 나를 도와줄 만한 이를 수소문해 찾아보려 하였지만, 소리로부터 리사 선생님께서 그 쪽에 가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일행을 도울만한 이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어 그만하기로 한 바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다.
  "소리 씨가 그것에 대해 알려주었나 보네요, 그렇지요?"
  "그랬지." 이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나의 물음에 화답한 이후에 자신도 소르나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알게 된 모양이라고 그로부터 들은 바를 말한 다음에 리사 선생님도 보통 사람은 아니니, 다소 안심이 되기는 했음을 밝혔다. 다만,
  "그 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누가 나서서 그 분을 도와드렸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 물론, 그 분께서는 마다하시겠지만 말야."
  "혹시 아르사나 씨께서 나서실 생각인가요?"
  그리고 세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 한다고 말하고서, 리사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달갑게 바라보시지는 않으시겠지만, 그 분께서 홀로 나서시는 것을 그냥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이어 말했다.

  이후, 세나는 한 동안 말 없이 내 곁에 서 있기만 하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나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소리 씨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 내가 답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다가도 갑자기 내 곁에 나타나고는 하니, 무슨 예상을 해도 빗나갈 것 같아서 그에 대해서는 어떤 예상도 하지 않고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이후, 세나는 당분간 소강 상태에 있을 테니, 자러 가겠다면서 거처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대로 해변에 남았다. 그리고 한 동안 글라이더 근처에 앉아있으려 할 때, 글라이더가 있는 쪽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여차하면 리사 선생님을 도와드리려 갈 수도 있다는 거지?"
  "응, 그 동안 어디에 있었어?"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다가도 갑자기 내 근처에 나타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날개 위에 앉아있던 소리를 향해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간 보이지 않았음에도 마치 내 곁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세나와 대화하면서 했던 말을 그대로 기억하는 듯이 물음을 건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알았으면 그만인 거지~"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한쪽-왼쪽- 눈을 감으며 미소 짓는 표정을 짓는 채로 가만히 나의 모습을 보더니, 그런 나에게 마치 내 사정을 궤뚫어보는 듯이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리사 선생님께서 홀로 나서시는 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지?"
  "어떻게 알았니?" 이후, 내가 되묻자, 소리는 소르나가 알려주었다고 (언제나처럼) 답했다. 대체 소르나와 얼마나 친하기에 그로부터 모든 정보를 그렇게 잘 받아올 수 있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심적 여유는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소르나가 자신에게 말한 바가 있으니, 때가 되면 리사 선생님을 도와줄 이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고, 그래서 나에게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었음을 이어 알렸다.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원래 하려고 했던 일에 나서 달라는 것이었어. 원래는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나서려 했었지?"
  "그렇지." 소리의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그 대답을 들으며, 소리는 그런 나에게 조용히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후, 소리는 조용히 날개에서 내렸다가 다시 바다 쪽을 바라보며 날개 위에 앉으려 했다. 그리고 두 팔을 뒤로 한 채, 두 손으로 날개의 윗면을 짚으면서 고개를 들어 건너편에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 동안 그는 바다와 하늘이 하나의 거대한 선을 그리고 그 위로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풍경을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런 그의 오른편 곁에 서 있으면서 그와 더불어 별들이 자리잡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동안 말 없이 하늘을 보고 있을 무렵, 왼편에서 소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저 하늘 위에서 기계 무리의 전투기들과 싸우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응." 이제 슬슬 뭔가 이야깃거리를 꺼내려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드리사라는 명칭을 가진 전투기와 맞서 싸웠음을 밝히고서, 그 전투기는 스스로를 '레이나' 라 칭해지는 인격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랬었구나." 그러자 소리는 그런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 목소리를 내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보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띠는 소리의 모습이 바로 보이고 있었다. 이후, 소리는 다시 바다 쪽으로 시선을 향하며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려 하고 있었다.
  "그 레이나가 너에게 말을 걸려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 지금은 세나 씨의 수하가 된 환수들의 몸에 박혀 있던 붉은 보석, 그리고 네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었지?"
  그러더니, 소리는 나에게 다소 심각해진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두 가지 모두 하나의 인물과 관여되어 있다고 하더라, 올리비아 사반이라는 여자 말이야."
  "그랬었지." 그러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소르나의 말을 온전히 다 믿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그렇게 됐어요. 제가 소르나 씨를 못 미덥거나, 의심해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소르나 씨의 올리비아를 향한 적의가 너무 강해, 그에 대해 다소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 문제였어요. 곧바로 말씀드리겠지만, 그 적의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것 때문에 부정확한 발언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이전부터 들은 바 있지만, 소르나의 올리비아 사반에 대한 적의는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올리비아 사반에 대해서는 세나 역시 소르나의 발언을 너무도 강한 적대심에 의거한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소리는 소르나와 친한 만큼, 그로부터 많은 것을 들었을 것이며, 올리비아 사반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 역시 소르나의 올리비아 사반에 대한 적대감이 강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나가 말한 바처럼 그로 인해 도를 넘은 판단을 했을 수도 있는데, 소리가 그런 소르나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을 것이 우려가 된 바 있었다.
  "소르나가 올리비아 사반에 대해 강한 적의를 갖고 있음은 알고 있지?"
  "알고 있어." 그러자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이전에 비해 더욱 심각해진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 대한 그의 말을 믿어." 역시나 소리는 소르나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감정적인 판단을 하고 있을 텐데, 그래도 믿으려 하는 것이냐고 묻자, 소리는 바로 그렇다고 답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되물었다.
  "세나 씨에게서 나온 말이지?"
  "응." 내가 답했다. 그러자 소리는 바다 쪽으로 시선을 향하면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 분은 그를 직접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니? 소르나는 이미 몇 번이고 그와 마주했었다고. 베라티사의 학당에 있을 때 뿐만이 아니야. 이전에도 그를 본 적이 있었대. 아주 어렸을 적, 성녀라 칭해졌던 여인의 장례식 때에 올리비아 사반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이 그 성녀와 지인이었다면서 너무도 어린 그의 딸을 대신해 자신이 장례를 주관하겠다고 했었어. 그 때, 소르나가 친분이 있는 사람도 뭣도 아니면서 왜 장례식을 주관하려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지."
  그러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딸이 너무도 어린 나이에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을 것을 우려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이도 올리비아 사반이었대. 그러고 보니, 너도 어머니의 장례식에 정신적 충격을 우려한다며 참석하지 못했었지?"
  성녀라 칭해진 이는 어머니이셨을 것이고, 그 딸은 바로 나였을 것이다. 이후, 나는 샤하르로 이주하였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내가 자의로 이주하지 않았어도 올리비아 사반에 의해 쫓겨났을 것이라 소리가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 남자가 네 어머니를 죽이기 전 날, 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 금발의 다소 키가 큰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었지. 그 사람이 남자에게 말했어, 주군의 원수가 된 여인을 죽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어. 그러면서 요구했지, 그 여인의 몸이 필요한 만큼, 그 몸이 온전하게는 해 달라는 것이었어. 그리고 뭔가를 하나 보여주었어.
  붉은 보석들이었어. 그 붉은 보석들을 내밀며, 여자가 말했지, 그 보석들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자신의 마력을 결정에 짜내 만든 것이었다고 말했어...... 아무튼,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보석의 마력을 이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 거야.
  그것으로써 인간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가진 것들은 모두 나약한 족속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의 주군이 내세웠을 대의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했어....... 그 인격체들을 이상향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남자의 주군이 가진 이상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

  소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레이나' 라는 인격을 가진 이드리사에게서 나온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나에게 어머니는 살해당하셨고, 어머니를 죽인 이는 어떤 남자였으며, 포레 느와흐의 부역자 노릇을 하게 된 올리비아 사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혹스러운 이야기였으나, 나의 적이 하는 이야기였던 만큼, 전적으로 그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는 않았는데, 소리에게서도 그 이야기를 떠올릴만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내가 소리에게 물었다.
  "레이나가 나에게 뭔가 이야기를 했어. 어머니를 어떤 남자가 죽였는데, 그 남자의 배후에 올리비아 사반이 있었고, 올리비아 사반은 남자에게 어머니의 몸을 요구한다고 청했다는 그런 이야기였어. 그 자에 의하면 붉은 보석으로 어머니의 몸을 이용하려 한다고 했었는데....... 소리,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어?"
  "적의 이야기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 그러자 소리가 물었고, 이어서 다시 물었다, 믿고 싶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인지에 대해. 이 물음에도 내가 답을 하지 않자, 소리는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은 채로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면서, 묻는 듯이 말을 건네었다.
  "저 바다 너머, 지브로아 인근에 있는 '기억의 사당' 에 자리잡은 괴물이 있다고 했지?"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북쪽에는 한 무리의 기계 세력이 있다고 했을 거야, 그리고 레이나라는 인격을 가진 이드리사는 북쪽에 있는 기계 무리 소속이었지? 레이나도 처음부터 네게 말해주었던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을 거야. 상부로부터 전송받은 정보를 구동을 하면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겠지, 그러면서 올리비아라든가, 포레 느와흐 등을 언급할 수 있었을 거야. 그렇다면, 그 기계 무리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게 됐을 것 같아?"
  그리고, 소리는 다시 눈을 뜨며 심각해진 목소리로 자문자답을 하는 듯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하려 하였다.
  "이전에 클리파 포타 (Klifa Pota) 라는 세력에 대해 들은 바 있지? 그 기계 무리가 그 클리파 포타의 수하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클리파 포타는 포레 느와흐를 하수인처럼 부리고 있고, 올리비아 사반이 포레 느와흐의 부역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 기계 무리 역시 그렇게 두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었겠지."
  그 이후, 그는 기계 무리와 괴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음을 밝히고서, 레이나가 나에게 포레 느와흐의 부역자 노릇을 한다는 올리비아 사반의 행적을 어떻게 고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이후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말했다.
  "레이나는 기계 무리의 뜻에 반항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소르나가 말했어, 오히려 기계 무리의 의사를 너에게 전하려고 그렇게 나선 것이었지. 너를 호적수로 칭하고, 자신에게 죽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도발한 것은 너를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라 했어."

  그 기계 무리는 베르티 가문의 후계자가 살아있고, 그 자에 의해 이 행성계의 곳곳에 뿌리내렸던 고대 도시 지하에 뿌리내렸던 기계 세력을 비롯한 여러 세력들이 무너진 사실을 이미 알아차린 듯해 보였어. 그리고 포레 느와흐는 가문의 숙적인 만큼, 언젠가 그의 분노가 그를 향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무리와 함께 했다가는 그 여파에 휘말릴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겠지. 그래서 포레 느와흐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올리비아 사반의 실태를 고발하는 것으로 그 분노를 피하려 했을 거야.
  너는 믿고 싶지 않았겠지만, 그들은 그런 이유가 있었으니,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발설하려 하였겠지.  그랬는데, 너에게 거짓을 말하려 했겠어? 거짓인 것이 드러나면 더욱 험하게 당할 텐데.

  "그러니까, 내가 자신들을 궤멸시킬지 모르니까,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이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 이후,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내가 묻자, 소리는 조용히 그렇게 답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암만 그래도 나는 일개 개인일 뿐이고, 상대는 규모가 어쨌든 하나의 집단일 텐데, 그 집단이 나 하나를 두려워해서 누군가를 보내, 그의 분노를 회피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 대로라면 내가 하나의 집단을 두려워하게 만들 정도의 사람이라는 거지?"
  "그렇게 보였다는 거야." 그러자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샤르기스에서 기계 병기를 처치했을 때에는 그들도 딱히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하고서, 이후에 고지대의 지하 유적지에 있었던 '괴물' 혹은 기계 병기는 물론, 그 추종자 세력까지 궤멸시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들도 두려워하기 시작했을 것이라 말했다.
  "너는 분명 동료들과 함께 해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네 생각이겠지, 상대방은 너 혼자서 그 모든 것을 해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게다가 그 성녀의 자손이라고 하니, 너를 두려워하며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거야."

  나를 도발해서 끌어들여서는 자신들은 나의 원수인 포레 느와흐 그리고 올리비아 사반과 별 관계 없음을 그들의 실태를 고발함으로써 알렸다, 라는 이야기. 그 터무니 없는 이야기보다도 더욱 나의 마음을 크게 울린 것은 그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르며, 이를 소리가 다시 확인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소리는 나와 한 때, 가까웠던 이였다, 그런 아이가 나에게 거짓을 말할 리가. 그렇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은 실제로는 살해당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사악한 야욕을 가진 이들에 의한 짓거리였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고, 더 나아가, 샤하르로 강제 이주까지 당할 수 있었다는 것 역시 올리비아 사반의 흉계에 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니, 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래야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소르나가 올리비아 사반에게만큼은 격렬한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음을 상기해 보았다. 그리고, 소리 역시 어렸을 때, 그가 올리비아 사반의 실상을 알아차리고 있었으며, 그러한 만큼, 그가 올리비아 사반에 대한 증오 어린 판단을 내리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고 당연하다는 식의 말을 한 것도 떠올렸다. 그런 실상을 알아차렸다면 소르나의 그 여인에 대한 증오의 심정도 납득이 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소르나가 어머니와 그렇게 깊은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나도 그와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기도 했고, 애초에 소리와 친분이 있다고 해서 쉽게 가까워질 수 있어 그렇게 된 것이었다. 어쩐지 소리가 가져야 할 감정을 소르나가 대신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소리, 그런 감정은 소르나가 아닌 네가 가져야 하는 것 아니었어? 소르나는 어머니와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러하였을 수도 있겠지."

  그러더니, 소리는 곧바로 글라이더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글라이더를 지나치려 하면서 나에게 자신은 곧 뭔가 일을 하러 나가야 함을 밝힌 이후에 그래서 당분간은 멀리 떠나 있게 될 것 같다고 이어서 말했다.
  "사나, 당분간 뭔가 중요한 일을 하러 가게 되었고, 그래서 멀리 떠나가게 되었어. 너를 비롯해 너의 일행과도 당분간 만나지도 못하게 될 거야."
  "그 중요한 일이라는 게 뭐야?" 이에 내가 그에게 물었지만, 소리는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때가 되면 다시 만날 때가 올 것이니, 그 때까지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가 되면 소르나도 너를 찾아오려 할 테니, 기대하고 있어도 좋을 거야~"
  그 이후, 그는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서, 곧 나를 부르는 이를 찾아가야 하기에, 가 봐야 함을 밝혔다. 그리고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다 말해 주겠음을 밝히고서 일행의 거처가 있는 그 서쪽 건너편을 향해 뛰어가며 나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그렇게 소리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무렵,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리나의 목소리였다.
  "아르사나, 이 시간까지 아직도 자지 않고 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 이후, 나는 팔짱을 낀 채,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는 카리나를 볼 수 있었다. 그 이후, 카리나는 나와 마주하자마자 나에게 묻더니, 그러더니,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방금 전에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소리라는 그 여자애가 이 부근에 있었던 거야?" 이후, 카리나가 물었고, 그 물음에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중요한 일이 생겼다면서 급히 떠나갔음을 알렸다. 그러자 카리나는 나에게 "그랬구나."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래서, 그 동안 그 애하고 어떻게 지냈었어?"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 그러니까......." 그간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거니와, 나 자신의 사정과 관련된 사항들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바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사항들이 몇 있었던 만큼, 그것들은 그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하였다.

  우선 들려준 것은 소르나가 어떻게 올리비아 사반이라는 여학자를 증오하게 되었느냐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르나가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올리비아 사반에게만은 증오 어린 발언을 했었다고 했는데,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리가 알려주었어, 소르나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려 했었대. 그러다가 올리비아 사반을 만났다는데, 장례식 때에 올리비아 사반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이 어머니와 아주 친한 사람이라 어린 나를 대신해 장례를 주관하게 되었다고 했었어. 그러자 소르나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갑자기 친한 척을 하고 와서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항의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저지를 해서 장례식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너도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었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카리나 역시 심각해진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카리나는 마침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고 하면서, 소르나로부터 자신도 올리비아 사반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음을 밝혔다.
  "올리비아가 너를 양녀로 삼으려 했다는 이야기였어. 물론 너는 떠나가 버렸고, 그것을 성사하지 못해 너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경악하게 되었다. 사람을 시켜 어머니를 죽여 놓고는 자신이 나의 또 다른 어머니가 되어주겠다고 뻔뻔하게 나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놓고 내가 떠나가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자, 오히려 앙심까지 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왜 앙심을 품었대, 나한테?" 그러자 카리나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알려 주었다.
  "자기 가문의 대를 이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거지. 그래봬도 자신은 고귀한 혈통의 자손이고, 그 혈통을 이어줄 사람이 어떻게든 필요했대. 성녀로부터 그 딸을 빼앗아 자신의 딸로 삼는 것으로 성녀의 가문을 이겨내고 자신의 가문을 빛낼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에 사로잡혔다는 거야."
  "대체 무슨 집안이기에 고귀한 혈통 운운한다는 거야?"
  하지만 카리나는 소르나는 거기까지는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대신으로 그는 소르나로부터 올리비아 사반을 미워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하나 있음을 알리고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려 하였다.
  "...... 네 어머니께서는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대, 실제로는 어떤 남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었고, 그 전에 그 남자는 호수가에서 올리비아 사반을 만나 그로부터 사주를 받았다고 했었지. 그러면서 몸만큼은 온전히 하라고 하면서 붉은 보석을 그 남자에게 보여주었대, 포레 느와흐 그리고 클리파 포트의 이상향을 위한 도구로 네 어머니를 이용하겠다고 말했다는 거야."
  레이나라는 인격을 가진 이드리사가 말해준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소리가 이야기해 준 바대로 그 이드리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소리도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어. 어머니께서는 실제로 살해당하셨다고, 올리비아 사반에 의해 사주받은 남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었다고. 그 이후, 어머니의 장례식 때에 자신이 주관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고 소르나가 자신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대."
  "그래놓고, 너를 양녀로 삼으려 한데다가 성사가 안 되니까, 너에게 앙심을 품기까지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카리나 역시 어이 없음의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리고 세니아가 들었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아무튼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일행에게 전부 알리도록 하겠음을 이어 알리려 하였다.

  이후, 카리나는 나에게 또 한 가지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서 더욱 중요한 이야기인 만큼, 내가 꼭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 말에 내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그러하느냐고 묻자, 카리나가 바로 이렇게 답했다.
  "바다 건너편, 지브로아의 해안에 자리잡은 사당, 그러니까 기억의 사당에 있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였어. 괴물 뿐만이 아니라, 기억의 사당에 자리잡고 있다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어."
  "그러고 보니, 알프레드 할아버지께서 기억의 사당에 어떤 여인 그리고 낡은 옷차림의 남자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지?"
  이후, 카리나는 나에게 이전에 알프레드 노인이 해변의 찻집에서 일행과 만났을 때에 했던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그 이야기에서 기억의 사당에 여자와 남자가 있었음을 거론했음을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기억하고 있지."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답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기억의 사당에서 맞서야 하는 적인 '괴물' 은 그 두 사람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전에 들은 이야기가 혹시 그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래." 카리나가 답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남자는 어렸을 적에 마주했던 '죽음의 기사' 와 닮았지만, 그럼에도 알프레드 노인이 그에 대해 무척 수상하고 위험한 사람처럼 여긴 것도 주목한 바 있었는데, 그 예상과 어느 정도 관련 있어 보이는 이야기도 들려왔었음을 알리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였기에...... 그것보다,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야?"
  대체 무슨 이야기였는지도 궁금했지만, 그것보다도 누구에게서 들려왔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고, 그래서 그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카리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일단 자신은 처음 본 사람이라하니, 아무래도 면식이 없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마땅히 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에 대해 카리나는 샤르기스에서 온 노인이라 하였고, 그러면서 감색의 긴 머리카락을 하고 보라색 옷을 입은 소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 소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자신이 이후에 했던 이야기에 대해 언급했음을 밝힌 바 있었음을 알렸다.
  샤르기스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이라면 분명 나였을 것이다. 이전에 샤르기스 거리를 혼자 걷고 있을 때, 우연히 어떤 노인과 마주했었고, 그 노인으로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도 했었다. 카리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그 노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마음 속에서부터 하나의 의문이 밀려오기 시작했으니, 내 앞에 있는 노인이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일, 그리고 그 당시의 어렸을 적, 나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하는 듯하다고 여기었으며, 그것이 마치 '어두운 과거' 에 대해 집착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자꾸 나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 그것도 좋지 않은 과거에 대해 물어보려 하느냐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었다.

  내가 오지랖이 심했던 것 같으이. 다만, 아르셀의 생애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사람들로부터 들었고, 그래서 과거의 일에 대해 그의 일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야. 아무튼, 더 이상은 자네에게 그것에 대해 더 물음을 건네지는 않겠네. 다만, 자네가 명심해야 할 바가 있을 테니, 그것만은 말해 주겠네 :   때로는 세상의 진실은 믿음을 배신하기도 하지, 자네도 필경 알 수 있을 게야.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던 말들을 이어갔던 노인으로 어머니에 대해 뭔가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나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 노인이었다. 그 노인이 여기로 와서 카리나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할아버지께서 무슨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러니까......." 그 대답으로 그렇게 내가 이전에 만났다는 노인이 들려준 것에 대한 카리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기억의 사당이라는 곳으로 가는 것 같다고 나에 대해 말씀하시더니, 그 곳에 가서 '괴물' 이라 칭해지는 이를 마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었어. 그리고 기억의 사당에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
  그렇다고 답하니까,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이 행성계에는 '죽음의 기사' 라 칭해지는 낡은 옷차림을 한 어둠의 존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그러시더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 '죽음의 기사' 는 적어도 이전 문명 시대에는 상상 속의 존재로서 죽음을 겪은 후에 되살아난 전사들의 통칭으로 악의 힘에 의해 되살아났기에 사악한 성향을 가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말야.
  이 행성계의 '죽음의 기사' 들은 모종의 힘에 의해 되살아난 전사들을 비롯한 인간이기는 하지만, 이전 문명의 통념과는 정반대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 몇몇 '죽음의 기사' 들, 그러니까 죽음에서 깨어난 이들은 이전 인류 문명의 통념에서 묘사된 죽음의 기사들과 거의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고.

  그에 의하면 그 노인은 이전에 지브로아에 간 적도 있었으며, 지브로아 남쪽 산길과 이어진 해변의 기억의 사당에 있으면서 어떤 두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알프레드 노인이 언급했던 여인 그리고 남루한 옷차림의 남성이었을 것이다-, 그 중 한 명은 현 문명 시대에는 있을 리 없는 옷차림과 외견을 갖추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죽음의 기사가 갖출만한 다 낡아버리고 검게 타 버린 옷차림을 한 이로 얼굴을 두건으로 감춘 탓에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초로의 남성 같았다고 했다.
  노인에 의하면 그 남성은 행성의 표면을 배회하는 다른 죽음의 기사들과 인상은 비슷해서 그들처럼 흉악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쉽게 다가갈 수 있어 보여, 조심스레 그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막상 그 남자 앞에 다가가니, 다른 죽음의 기사들에는 없었던 무언가를 느꼈으며, 그 때문에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두려워하기도 했었다고 했다.
  이 행성의 표면을 배회하는 죽음의 기사들은 원래는 죽은 이들로서 빛 속에 있으면 육신이 사멸해 가는 탓으로 원래 세상에 적응할 수 없어, 이전 생애에 대한 미련과 여한을 품을 수밖에 없기에 그들 중에는 그 여한으로 사념이 뒤틀리고 악에 물드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는 그런 죽음의 기사들과도 달랐다고 한다, 마치 하나의 악령이 죽음의 기사의 껍질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사념이 뒤틀려 악한 성향을 갖게 된 죽음의 기사들과는 전혀 다른 사악한 느낌으로 인해 어떻게든 그 남자와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해도, 그 남자에게 말을 붙일 수는 없었다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그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서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셨대."

  이후, 할아버지께서는 그에게 한 동안 사당 근처의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던 남자는 그 이후, 난데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억의 사당과 산길을 잇는 다리 부근으로 다가갔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그 때를 같이 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북쪽 너머의 상공에서 한 무리의 비행체들이 나타났다고 하더라.

  "기계 병기군에 속해있던 비행체들이었겠지?"
  카리나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바로 카리나에게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그랬을 거야." 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형 병기들의 두 눈이 깜박이고, 그와 함께 남자가 그 무리와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하니, 이를 통해 노인은 그 남자가 기계 무리와 한통속이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하셨지?"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의미의 답을 하였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남자는 기계 무리와 한 패이며, 그 실체는 기계 병기와 관련이 있는 존재였을 것임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노인은 계속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대. 그리고 그 남자가 기억의 사당 주변을 거닐 때마다 전투기들이 상공에서 그를 따라 다니고 있었는데, 그 남자를 따라다니는 것은 물론, 기억의 사당에 있던 여인을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여인은 남자와 서로 적이었다고 했었지?"
  "그랬지."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가 답했다. 그리고 남자든, 아니면 전투기를 비롯한 병기들이든 간에 여인을 마치 위험한 존재인 양 바라보고 있는 듯해 보였다고 노인이 알렸음을 밝혔다. 그러자 내가 팔짱을 끼며 이야기를 하던 카리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다니던 괴물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여인이 그 괴물일 것이란 말이지?"
  "그러할 거야." 카리나가 답했다. 하지만 그 적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무리는 클리파 포타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이들, 포레 느와흐 등과 한통속인 집단인 악의 집단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 악의 집단이 경계하고 있는 존재가 우리의 목표였던 그 괴물이란 말인 것이지.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 즉, 지브로아 일대에 폭풍이 일어난 사건의 원흉인 괴물을 단순한 악당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야."
  그리고 이어서 그가 말했다.
  "어쩌면, 괴물이 사건의 원흉이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괴물을 이용해 진짜 악당을 처치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몰라."
  지브로아 일대에서 일어나는 폭풍우의 원흉은 분명 괴물일 것이고, 나를 비롯한 일행은 분명 그 괴물을 처단해 폭풍우를 가라앉히고 바다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 일대에 온 것이었다. 그러할진대, 진짜 악이 숨어있었음이 밝혀졌고, 그 악을 응징하기 위해 괴물과 협력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얼핏 들으면 참으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간의 정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 말 자체가 그렇게 의아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괴물과의 접촉이 필요하겠지?" 내가 묻자, 카리나는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다만, 그는 기억의 사당에 있는 여인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 순간, 괴물이 깨어나 자신을 비롯한 일행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려 할 테니, 전투는 각오해야 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하겠지." 그러자 나는 그 뜻에 공감하는 의사를 드러냈다.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본래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사라진 이래로 자신과 마주하는 존재들은 기계 병기군을 비롯한 자신과 적인 존재들이었을 것인 만큼, 그런 괴물이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해치려 할 것임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또한, 본성이야 어쨌든, 적대 본능에 의해 파괴적인 행동을 취하는 괴물의 외면과 맞서야 하는 만큼, 그 외면을 제압해야 내면의 본성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일단은 괴물과 맞서도록 해야 하겠지만, 직접 처치하는 것보다는 공격을 취하는 부분을 무력화해 그 내면으로 파고들도록 해 보자."
  그리고서 이어 말했다. "지브로아에 진입하면 내가 우선 그 일대에 먼저 들어가 볼 거야. 그리고 그 남자와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괴물과 마주하면서 그들의 본심을 알아보려고 해."
  이에 카리나가 그 존재들이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의 뜻을 드러내자, 나는 걱정할 것 없다고 답하고서, 그들과 친해질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 있으니, 그들의 말 상대로서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임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폭풍우가 어떻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인데......."
  카리나가 말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폭풍우로 바다를 통해 지브로아로 접근하려면 배나 비행기가 필요할 텐데, 어느 쪽이든,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이상, 지브로아 쪽으로의 접근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괴물 그리고 기계 무리라는 두 세력의 대결을 이용해 괴물의 시선을 돌리려 하는 것인데, 리사 선생님이든, 누구든 그 역할을 해 주어야 괴물에 의해 일어난 폭풍우의 방향이 돌아설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 정 안 되면 내가 육로 쪽으로 갈까. 무리가 움직이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혼자 가면 의외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어. 게다가 나는 감빛 기운으로 그 악의 무리와 적대하지 않는 존재처럼 보일 수 있기도 하고."
  그러자 내가 정 안 되면 내가 육로 쪽으로 가겠다고 말하였으나, 카리나는 일단 기다려 보고, 새벽 시간 대를 기준으로 폭풍우의 상황이 변하지 않을 때에 다시 생각해 보자고 청했다.

  그렇게 카리나와의 대화를 마치고, 동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그 때, 카리나가 다시 나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소리라는 여자애와 잠시 같이 있었지?
  이후, 내가 소리라는 여자아이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는 말에 곧바로 카리나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내가 그의 앞에 이르자마자 카리나는 소리가 나에게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러 가겠다면서 서쪽으로 뛰어간 모습까지 보았음을 밝히고서, 그 광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르사나, 소리가 아까 말했던 '중요한 일' 이 무엇이라 생각해? 나는 그것이 유난히 신경이 쓰였어."
  나도 처음에는 카리나처럼 소리가 언급했던 '중요한 일' 에 대해 나름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소리는 마치 그것을 내가 당장에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인 양 어떤 답도 하지 않았기 떼문이었다. 그랬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비밀이래봐야 별 것 있겠냐' 라는 식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어린 아이가 아무나 알아서는 안 될 법한 무언가를 한다고 한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무슨 일을 하는지를 쉽게 알리지 않은 이상, 탐파, 사라의 집인 가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고 (만약 그 쪽의 일을 하러 나갔다면, 그것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렸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소르나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를 불렀을 텐데, 그래서 무슨 일인지 말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정도는 했다.
  "아는 사람의 일을 돌보러 갔겠지." 그래서 그의 물음에 나는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카리나는 무슨 예감이라도 들었는지, 그 정도의 일이 웬지 아닌 것 같다고서, 그의 모습이 계속 뇌리에 남고 있음을 이어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부탁의 말을 전했다.
  "혹시 모르니까, 아르사나, 서쪽 일대를 살펴봐 줘, 웬지 거기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
  아무래도 소리가 뛰어간 서쪽 방향에서 무언가 나타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부탁에 나는 알았다고 답하고서,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알리겠음을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동쪽이 아닌 서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상공을 가만히 응시하려 하였다. 해변에는 하나의 거대한 선을 그리는 바다와 여러 반짝이는 것들을 품은 하늘 그리고 그 주변에 자리잡은 검게 보이는 바위와 해변의 모습이 보일 따름으로 자정을 넘어 새벽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의 해변에서는 파도 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해변가 일대를 조용히 거닐다가 바다와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그 이후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는 조용히 너울치는 바다 그리고 하늘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사나, 당분간 뭔가 중요한 일을 하러 가게 되었고, 그래서 멀리 떠나가게 되었어. 너를 비롯해 너의 일행과도 당분간 만나지도 못하게 될 거야.

  '소르나가 무슨 이유로 그를 부른 것이려나.'
  혼자 해변가에 앉아있다보니, 소리가 나와 헤어지면서 남겼던 말이 다시 떠올랐고, 소르나가 모종의 사정을 소리를 부른 것 같다고 여기고 있었던 만큼, 그가 무슨 이유로 소리를 부르려 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소르나를 만나면 소리를 왜 부르려 하였는지에 대해 물어보려 하기도 했다. 그러는 그 때,
  "응? 저게 뭐야?" 해변의 상공 서쪽 먼 저편에서부터 무언가가 새하얀 빛을 발하면서 해변 쪽으로 날아오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였던 데다가,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어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분명 그 모습은 옛 문명 시대부터 보이기 시작했다는 전투기라 칭해지는 비행기의 일종이었다. 다만, 날개의 모습은 흔히 알려진 전투 비행기 혹은 전투기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서 주 날개, 부 날개 그리고 꼬리 날개까지 뒷면이 마치 새의 날개 비스무리하게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체도 가늘어서 마치 한 자루의 창에다가 날개를 달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전투기는 마치 혜성의 꼬리처럼 길다란 빛을 뿜어내며 지브로아 상공의 구름이 드리워진 그 상공 일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그 너머에 있을 자신의 사냥감을 찾아가려 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 너머에는 괴물이나 기계 병기 무리가 있다. 다만, 괴물의 경우에는 폭풍우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만큼, 그 전투기가 노렸을 것은 그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을 기계 병기 무리에 속해 있었을 기계 병기들이었을 것이다. 암만 그래도, 기계 병기 무리가 결코 만만한 이들은 아닐 텐데, 그 무리에서 병기들을 사냥하러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니,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창......?" 창에다가 날개를 달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전투기의 형상, 그 형상을 보자마자 내가 이전에 레이나와 대치하기 직전, 나에게 더 기계 병기들이 몰려오지 못하게 한 이가 있었음을 그 모습을 보며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그 개체 역시 창에 날개를 달아놓은 형상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유의 전투 능력으로 기계 병기들이 나에게 몰려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 때, 그랬었지. 그 녀석이 없었으면 나는 레이나 말고 계속해서 다른 기계 병기들과도 맞서고 있었을 거야."
  그 비행체에 관해서는 딱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 개체가 기계 병기 무리와 적대하는 존재로서, 나를 도우려 한 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기계 병기와 맞서는 같은 목적을 가졌기 떄문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나를 돕고 싶어서 나선 것인지 여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때의 비행체를 떠올리며, 전투기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였다. 그러면서 확실치는 않지만, 기계 병기 무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려 하는 그 전투기의 모습을 두고, 그 때의 비행체와 동일한 개체일 것이라 판단을 내리려 하였다-그 이후로 그 전투기를 당시에 보았던 비행체와 같은 존재로 보았던 만큼, 하얀 비행체로 적는다-.
  그러면서 비행체의 모습을 지켜보려 할 즈음, 비행체에 관한 한 가지 추측이 마음 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소리가 서쪽 방향으로 갔었지?"
  그 비행체가 서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을 상기하면서 그것을 통해,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전에 소리가 서쪽 방향으로 사라졌음을 떠올렸고, 그러면서 혹시 소리가 서쪽으로 떠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향의 상공에서 하얀 비행체가 나타난 것을 두고, 하얀 비행체가 소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비행체의 정체가 소리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었지만 단순한 망상 정도였다, 단순히 서로 관련 없는 두 가지 일이 우연히 연속적으로 발생한 것을 억지로 서로 엮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얀 비행체가 동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행체를 따라 해변의 동쪽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걸었지만 비행체가 북동쪽 건너편 상공으로 날아, 눈 앞에서 멀어지는 속도가 걸어서 쫓기에는 너무도 빨라서 결국에는 뛰어가게 되었다. 일행이 잠들고 있을 예나의 비행선 및 천막을 지나치고 그 동쪽 너머의 해변가에 이르면서도 계속 뛰다가, 비행선과 천막에서 한참 멀어진 지점에 이르자 숨이 차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괴물이 있는 쪽으로 마치 괴물을 잡으러 가되, 파도 때문에 괴물이 있는 곳으로 가지를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괴물을 토벌하겠다고 나서는 전사 같은 그 비행체를 보며, 잠시 해변가에 서 있으려 할 무렵, 먼 하늘의 저편에서 한 무리의 전투기들을 비롯한 기계 병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몇 무리씩 작은 무리를 이루어가며, 접근해 가던 병기들은 포탄 등을 발사해 가며, 그 비행체를 격추시키려 하였으나, 비행체는 이들의 공격을 피해내고, 빛 줄기들을 발사해가며, 오히려 무리를 이루는 병기들을 하나식 격추, 격파시키고 있었다.
  하얀 전투기가 그렇게 기계 병기들이었을 기계 병기들을 하나씩 격파시켜가고 있을 무렵, 북쪽 상공의 먼 저편에서 한 무리의 비행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 기의 비행체들로 전투기들로 보일 수밖에 없을 비행체들이 빠른 속도로 하얀 비행체가 자리잡은 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나의 대열-V 자와 닮은 대열이었다-을 이루는 5 기의 전투기들은 각자 다른 색을 띠는 빛으로 마치 혜성과 같은 긴 꼬리를 그리면서 대열을 이루며 하얀 비행체에게 다가오는데, 그 색이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보라색이었다.
  "이드리사들이로구나." 그 모습을 보며, 그렇게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이드리사의 시험형 (YIVM-012) 으로서, 전투기 형태를 유지하는 가변익 전투기의 일종이었다. 레이나는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며, 다가왔지만, 막상 내 앞에서는 부속 장치로 전투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얼마나 많은 시험기를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5 기가 있었대. 모두 같은 색이지만, 각자 다른 색으로 빛을 발하고, 무기에서 발하는 빛의 색도 그것에 따라 다르다고 해. 빛의 색은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그리고 보라색인 모양이야. 부여된 색깔마다 서로 다른 인격을 갖고 있다고 했었어. 아무래도 서로 다른 인격이 기계에 입력되어 있던 것 같아.

  결코 낯설지 않았던 그 색들은 기계 병기들의 무리가 5 기의 이드리사들에게 부여한 빛들의 색이었을 것이다. 색에 관해서는 리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면서 소리가 나에게 알려준 바 있었으니, 그와 더불어 각 색의 빛을 발하는 비행체마다 각자 다른 인격이 주어져 있으며, 이는 각 비행체의 내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바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 이드리사들 중 하나와 맞선 적이 있었으니, '레이나' 라는 이름을 가진 개체였다. 그 개체는 본래 은회색을 띠고 있었으며, 붉은 색 빛을 발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지만, 나와 맞설 즈음에는 그 특성이 온전히 준비되지 않았는지, 그 붉은 빛만큼은 발하지 않았고, 비행체의 성능 역시 원래 성능은 아니었으며, 자신에 장착된 추가 장치들에 의지해 나와 전투를 치르려 하였다. 아무래도 그 개체는 자신의 무리로 돌아간 이후, 원래 성능을 발휘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비행체를 격추시키라는 명령에 의해 앞장서 나가려 하였던 것 같았다.
  하얀 비행체에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간 이드리사들은 처음에는 하얀 비행체를 바로 지나치려 하는 듯하다가, 그것의 바로 뒤에서 다시 접근해가기 시작, 이후, 그들은 그것과 가까워지자, 그것의 바로 앞에 이른 붉은 빛의 이드리사, '레이나' 를 제외한 나머지는 주변 일대로 흩어지고, 레이나만이 그 하얀 개체의 근처에 남아서는 그 개체를 앞질러 그 개체의 바로 앞에 자신의 뒤를 드러내며 다가갔다. 잠시 그 비행체 앞에 멈추려 하였으니, 아무래도 그 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하려 하였던 것 같았다.

  대결은 레이나가 가속해 하얀 비행체를 앞질러 나아가면서 그 비행체를 향해 곡선을 그리는 붉은 광선들을 발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얀 비행체는 그 붉은 광선을 피해내면서 자신 역시 자신의 몸체에서 곡선을 그리는 하얀 빛 줄기들을 계속 발사해 가며, 레이나를 추격해 갔다. 그런 움직임을 보이면서 두 비행체들은 마치, 숙적과의 대결을 이어가려 하는 듯이, 지브로아 해안 일대의 상공을 반복해서 오가고 있었다.
  기계 병기 무리와 맞서고, 침입한 이를 막으려 하는 것 이외의 목적을 알 수 없는 전투. 먼 곳에서의 그 공중전을 그래도 계속 지켜보려 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피로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잠들지 못하고 있으면서 누적된 피로를 감당하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졸음을 참아가며, 상공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려 하였다.



아르사나,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그 이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 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름 아닌 여기로 왔을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소르나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화급히 놀라면서 잠에서 깨서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리고 나의 눈앞에 소르나가 지팡이를 두 손으로 안은 채, 나를 내려다 보면서 조용히 미소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당시에 소르나가 갖춘 옷차림은 오른손에 지팡이를 들고 엷은 하늘색을 띠는 소매 없는 상의와 짤막한 치마 그리고 다리의 대부분을 감싸는 감색 천으로 이루어진 옷차림 위에 하늘색 겉옷을 걸쳐 입고, 머리에는 하늘색 모자를 쓴 모습으로 가마일 산 천문대에 있을 무렵에 늘 갖춰 입던 옷차림이었다.
  소르나를 향해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곧바로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려 하였다. 눈앞에는 그간 내가 지켜보고 있었을 해변 그리고 바다의 모습 그리고 아직 새벽을 맞이하기 전의 밤하늘이 해수면과 수평선을 이루는 광경이 잠들기 전 때처럼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빛들도 하늘, 바다와 마찬가지로 잠들기 전처럼 변함 없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소르나, 여기로는 어쩌다가 오게 된 거야?"
  "그냥 별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쳤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야라 인근 해변에는 소르나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와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기대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그를 만나게 된 것이 뜻밖이고, 그래서 의아하게 여기어졌지만, 암만 그래도 늘 보지 못하는 사람을 다시 보게 되니, 반가웠고, 또 기뻤음은 어찌할 수 없기는 했다.
  "내 옆에 있지 않을래?" 이후, 소르나에게 옆에 와 달라 부탁했고, 소르나는 그런 내 부탁대로 나의 오른편 옆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나처럼 앉아있으려 하지는 않았다. 평상시 소르나라면 내 옆에 앉으려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으려 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바삐 갈 길이 있어서 그러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그의 행동에 대해 딱히 이상하다거나 하는 의문을 품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가 나의 오른편 옆에 서 있을 무렵, 나의 먼 저편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5 명의 아이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들로  다소 조숙해 보이는 그 여자아이들은 외견부터 서로 달랐고, 옷 색깔도 달랐지만, 입은 옷의 모습은 모두 같아, 마치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의 왼편에서 오른편 방향으로 뛰어가는데, 빨간색 옷의 아이가 앞장서 가고, 그 뒤를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보라색 옷을 입은 아이가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아이들이 나의 오른편으로 뛰어가자마자 그들을 뒤쫓는 듯한 어떤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셔츠와 파란색의 무릎까지 내려가는 바지 차림을 한 이로 머리카락이 짧아 얼핏 보면 소년처럼 보일 것 같았다. 감색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로 그는 다름 아닌 소리였다. 그는 등에 날개 장식을 달고 신발에도 날개 장식을 달고 있는 채로, 그는 여자아이들을 쫓고 있었다.
  '소리네. 저 여자아이들을 왜 쫓고 있는 거지? 그리고 아이들이 왜 색깔만 다른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거야? 무슨 자매들도 아니고.'

  의아하게 여긴 사항이 둘이었다. 왜 소리가 난데 없이 아이들을 뒤쫓으려 하였는지, 그리고 여자아이들이 왜 색깔만 다른 같은 옷을 입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깔은 내가 이전에 들은 바 있던 5 기의 이드리사들이 발하는 빛의 색과도 같았다.
  그 무렵, 오른편으로 뛰어가던 다섯 아이들과 소리가 다시 왼편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앞장서 뛰어가고, 그 뒤를 다섯 아이들이 뒤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잡으려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소리를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때, 소르나가 그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고, 그 묻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별 생각 안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소르나는 그런 내 속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하고서, 그런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방금 전의 여자아이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뭔가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그러더니, 나에게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이며, 그런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듯한 말을 건네었다.
  "그냥 아이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거야. 아르사나도 마을에 놀러갔을 때마다 한 번씩 아이들이 별 생각도 이유도 없이 마을의 골목 곳곳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잖아, 그렇지? 그런 행동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이후로 한 번씩 소리는 다섯 아이들과 그런 식으로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섯 아이들이 쫓고 쫓기는 모습은 보일 때마다 한 번씩 달라지고는 했다. 어쩔 떄에는 네 아이들이 흩어지고, 붉은 옷의 아이가 소리에게 쫓기는 모습을 보였고, 어떤 때에는 푸른 옷, 초록 옷의 아이가 소리를 뒤쫓고 나머지는 그 주변에 있었으며, 어떤 때에는 노란 옷, 보라색 옷의 아이들이 소리의 주변에서 그와 함께 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뛰어가는 동안에도 다섯 아이들은 조금씩 대형을 바꾸어가며, 자신들을 쫓아가는 소리에게서 멀어지거나, 자신들이 쫓는 소리를 향한 포위를 좁히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의 뛰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이들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 아이가 네가 말하던, 그 소리지?"
  "그래." 소르나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원래 다소 거친 아이였다고 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잃고, 숲과 산지를 떠돌았대, 그 부모도 친부모가 아니라 했고. 꽤 오랫동안 홀로 산야를 돌아다니며 야생아처럼 살았으니, 행동 방식도 거칠고, 예의도 다소 모자란 모습을 자주 보이고는 했었어."
  "그럼에도 그 아이가 좋았단 말이지?"
  그러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워낙 거칠고 무례해서 반 야생아와 다를 바 없는 아이이기는 했지만, 산야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생활력이 강했고, 모험심이 강해 집 주변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의 나에게 마을 바깥의 여러 세상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워낙 거친 생활에 익숙하기도 했고, 강한 기질이 있어 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 늘 소리와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은 있었어. 그는 강한 아이였고, 마을 바깥의 수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세상의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믿었어. 나는 그 아이에게 늘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래서, 소리는 그 때 뭐라고 했어?"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어. 그러면서 말했어, 그 동안 자신은 희망도 절망도 모르는 채로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고. 그러다가 나와 내 어머니를 만나면서 희망의 빛이라는 것을 찾았대. 그래서 그 빛을 결코 잃고 싶지 않다고 했어. 그러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늘 함께 하면서 나를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말해 주었어."
  "그랬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된 거네?"
  "그렇게 됐어." 이후, 소르나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답을 하면서도 나는 조용히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무렵, 소리는 붉은 옷의 아이와 맞서고 있었다. 남은 네 아이들은 소리가 기습을 해서 잡히기라도 했는지 보이지 않고, 그 아이들이 남긴 장신구를 붉은 옷의 아이가 걸치고 있었다. 이후, 붉은 옷의 아이는 장신구들을 걸친 채로 소리와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장신구란 장신구들은 다 떨어지고, 옷도 찢어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 몸싸움 와중에 여자아이로부터 이런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Accipe me nunc puellam nomine Sanam! (사나라는 여자애를 당장 데려 와!)"
  '사나......?' 그 이름을 듣자마자 우선 나부터 놀랐고, 이어서 소르나가 나에게 '사나' 라면 나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Tibi dixi. Non solum tu, sed quae hic attingere non merentur puellam.
(말했을 텐데. 너 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 그 아이에게 다가갈 자격이 없다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결국 붉은 옷의 아이를 소리가 제압해 버렸다. 이후, 붉은 옷의 아이는 옷이 다 찢어져버린 채로 내 왼편의 어딘가로 떠나가고, 이후, 소리는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오른편의 어딘가로 떠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소리 특유의 목소리와 더불어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숙한 소녀의 목소리가 어린 소녀의 목소리와 더불어 동시에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소리가 어떤 존재에게 빙의라도 된 것처럼.

  누군가에게 빙의된 듯이 소리에게서 또 다른 소녀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난 이후, 나는 소리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에 그를 뒤쫓기 위해 일어서려 하였다. 그런데, 그 때, 소르나가 있는 쪽에서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말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나, 그만 해. 그 아이에게도 그 아이 나름의 해야할 일이 있겠지, 그리고, 그 아이는 그 일을 통해, 네가 어렸을 때처럼, 너의 곁에 머무르며 너를 도와주려 하고 있을 거야."
  평소 같았더라면, 그렇게 말하는 소르나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곁에 들려온 목소리는 소르나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전까지는 분명 소르나의 목소리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이전처럼 나를 아르사나가 아닌 사나라 칭하고 있었다. 나를 애칭으로 칭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두 명이었다. 어머니 그리고 소리.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런 애칭을 가르쳐 주지 않았음이 이유였다.
  어린 시절 이후로 소리는 나에게서 멀어졌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소르나는 나를 아르사나라 칭하고 있으므로, (또, 이전부터 내 곁에 나타나고 있는 소리는 그 실체를 알 수 없었기에) 나를 사나라 칭할 수 있는 이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대체 누가 나를 사나라 칭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으며 바로 소르나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종의 정보를 통해 소리 혹은 어머니를 사칭하는 자일 것이라 여기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눈앞에 나타난 뜻밖의 존재를 보며,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힘을 느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 아이는 늘 너를 바라보고 있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그 아이에게 있어서......."
  눈앞에 보인 이는 나와 무척 닮은, 교복 차림의 소녀였다. 그 소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소리의 목소리에 이어 또 다시 당혹스러운 광경을 보고 놀람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을 나를 조용히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그 아이에게 있어서.......

(*) 샤르기스 인근의 유적에서 만난 탐사대 동료들도 있고, 학교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친한 사람들이었을 뿐, 가족의 역할을 하거나 할 수는 없었다, 탐사대 이후로 나는 할머니와 만나기 전에는 가족 하나 없이 늘 혼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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