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5-1. Secret of the Lost World : 2


  길목의 한 지점, 건물과 건물 사이의 길 한 가운데 즈음에 자리잡고 있던 검은 로브 차림의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기 전, 나는 길목 입구에 서 있던 카리나를 향해 잠시 고개를 돌리고서 에오르 린, 리아 자매에게 아직은 접근하지 말고, 우선은 현장에서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 달라 부탁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카리나의 알았다는 답을 들으며, 검은 로브 차림의 누군가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나아가기 시작했다.
  길목 한 가운데의 그 누군가에게 접근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되, 평상시처럼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조금이라도 특이한 행동을 하면 도주할 수도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거리가 좁혀지는 동안에도 로브 차림의 누군가는 그저 길 위에 조용히 서 있으려 할 뿐, 달리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건물과 건물 사이의 길목을 따라 나아가 누군가의 바로 앞에 이르렀을 무렵, 로브 차림의 누군가 주변 일대의 상공에 팔면체 상을 이루는 소형 기계 병기 8 개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그 기계 병기들이 정면의 눈을 드러내며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려 한 나를 향해 붉은 광선을 발사하려 하였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누군가의 바로 앞에 다가올 즈음에 다가온 개체들을 보며, 눈앞에서 그를 놓치게 생겼다고 생각하고서, 그에 이어 누가 어떻게 내가 길목 한 지점에서 로브 차림의 누군가를 만날 것임을 알아차리며 훼방을 놓는지 알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혹시 병기들을 보낸 케레브 전사 혹은 마법사가 있으면 그는 일단 가만 놓아두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눈앞에서 목표를 놓치게 생긴 것에 대해서는 분하다고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우선은 갑자기 나타나 나를 공격하려 하는 개체들을 먼저 격추시키는 것이 우선시 될 일이었으니, 당연하게도 피격을 받아 위험해지면 누군가를 만나거나 하는 일에 의미가 없어질 노릇이었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붉은 광선을 발사하는 개체를 격추시키기 위해 주로 곡선을 그리는 하얀 빛 줄기들을 이용했지만, 멈춰 있는 개체를 격추시키기 위해 유리 결정들을 발사하기도 했다. 유리 결정들로 격추된 비행체의 수는 둘로 나머지는 빛 줄기로 격추시켰다.
  그렇게 간신히 돌발적으로 생겨난 병기들의 습격 상황을 겨우 수습하는 동안에도 케레브 족의 로브 차림을 한 누군가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그저 조용히 바로 앞에서 닥쳐오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더니, 병기들이 모두 격추되고, 내가 주변 상황들을 빛의 마법을 이용해 정리해 나아갈 즈음, 조용히 나를 향해 접근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어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나아가더니, 나의 바로 앞에 이르자마자 그 발걸음을 멈추었다.
  대략 두 발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한 동안 말 없이, 서로를 마주한 채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는 말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고, 이에 나는 그가 내가 무언가 말을-아무래도 '당신은 누군가' 라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건네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리라 여기고서, 그런 그의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기로 하고, 그저 조용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려 하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한 동안 두 발자국 사이 거리에서 아무런 말 없이, 나는 눈앞의 누군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었으며, 반대편의 누군가 역시 그러하였다. 그렇게 한 동안 정적이 이어지고 있는 도중, 나에게는 낯설기만 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군. 그 도시의 교외에서 처음 보았건만, 이제서야 기회를 마련하게 되다니.

  목소리가 들린 방향은 확실히 로브를 입은 누군가 쪽이었으며, 메마른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메마른 목소리가 내는 어조가 기계적인 느낌이 강해 변조되었음을 들으면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에도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그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로부터 메마른 느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말을 걸 생각이 없는가 보군. 나를 시험하려고 하기라도 하나, 그렇지 않으면 알량한 자존심을 걸고 기싸움이라도 하려고 하나, 그것도 아니면 말을 걸지 말라고 지령이라도 받은 것인가."
  "......." 그 질문에도 나는 어떠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계속 그를 지켜보면서 그가 하는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한 번 그로부터 이전과 같은 메마른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래,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한 발 물러나 주지, 나도 당신과 기 싸움이나 할 입장이나 상황은 아니니까 말이지."
  그리고서 그는 우선 자신에 대해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자신은 케레브 족이 아니며, 케레브 족의 외인 부대에 소속되어 있다고 한다. 외인 부대원들은 전신을 가면과 장갑 등으로 가리는 것으로써 외부에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며, 자신은 그 원칙을 따르는 것을 겸하여, 자신의 신분을 감출 필요가 있어서 일부러라도 자신의 외모를 감추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덧붙여서 그는 자원해서 케레브 족의 외인 부대로 들어섰다고.

  아르데이스 성계를 떠난 이후, 곳곳에서의 전투로 수많은 구성원들을 잃고, 이 행성계에서 벌어진 전투를 비롯한 각종 사건들에 의해 수많은 구성원들을 잃어버린 케레브 족은 당장에 부족해진 전투 요원들을 충당하기 위해 외부 종족들을 갖가지 조건들을 이용해 끌어들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서 영입된 요원들을 모아 케레브 전사단이 구성한 집단이 외인 부대라고 한다. 부대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케레브 족은 타락과 악행으로 그 악명이 높아서 돈벌이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용병들도 해당 집단의 영입을 꺼려하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몰락해가는 여건까지 있어서 외인 출신 전투원 영입 및 관리가 잘 될 리가 없었기에 부대 구성원의 수는 무척 적었고, 대다수가 정보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였다.
  케레브 족의 몰락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이 행성계에서의 수많은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앟았지만 어머니 아르셀이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케레브 족의 수장인 포레 느와흐가 어머니에 의해 쓰러졌다-, 어머니가 있었기에 사악한 종족이 몰락할 수 있었음에 대해 다시금 어머니에 대해 감사하였다, 어머니가 자랑스러웠음은 물론이었다.

  "...... 나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고, 그로 인해 외인 부대에 자원했지, 그렇게 해서라도 케레브 족 틈새에 있을 필요가 있어."
  그리고서 그는 구원해야 할 사람이 있으며, 그 역시 케레브 족 외인 부대에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세간에 알려진 대로, 케레브 족이 용병으로서 외인 부대에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며, 그가 외인 부대원으로 있게 되었음에는 좋지 못한 사유가 하나 있음을 밝혔다.
  "...... 자신의 의지에 의하지 아니하고, 정신 조작 술법을 이용해 케레브 마법사들이 그를 외인 부대원으로 삼았다. 그들은 비록 과거에 비해 쇠하였다고는 하나, 엄연히 마법사들이고, 정신 및 기억 조작에 대한 어두운 지식과 기술은 선대 이래로 줄곧 전승되어 왔으니, 해당 기술을 응용할 수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리라 볼 수 있지 않겠나."
  이후, 그 누군가는 그 자는 자신의 동료로서 고대 도시 내부의 거점에 케레브 전사단의 일원으로서 이르렀으며, 내가 그와 만났을 그 당시에는 도시의 중앙 구역 거점-궁전이라 칭해지는 건물- 주변 일대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 그 자의 처소에 대해 밝히고서, 이어서 그 자를 만난 이후, 자신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혹은 자신과 연락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그 자와 마주했던 곳을 알려줄 것을 부탁하였으니, 내가 알린 바를 통해 그 자가 있었던 곳을 찾아내기 위함이라 그 이유를 말했다.
  "...... 이제 그대에게 연락의 수단을 주도록 하겠다, 조작법은 그대가 아는 그대로일지도 모르겠군."
  그리고서 그는 은색을 띠며 한 부분에 붉은 보석이 박힌 팔찌를 건네었으니, 그것이 케레브 족 특유의 통신 수단이었던 모양이다-내가 사용하던/사용하는 통신 수단은 은색 팔찌의 한 부분에 각지게 조각된 파란 결정이 박혀 있어서 구분이 된다-. 누군가가 금속 장갑으로 덮힌 오른손으로 건넨 팔찌를 왼손으로 받고서, 나는 오른손으로 그 팔찌를 왼팔의 손목에 보석이 손등 근처에 오도록 찼다. 그렇게 내가 자신과의 통신 수단을 마련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 누군가는 이제 자신에게는 한 곳에 계속 머무를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서,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말한 이후에 길목의 안쪽으로 걸어 나아가며, 나에게서 멀어지고, 눈앞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 자에 대해서는 나도 지켜봐서 알겠어,"
  그리고 내가 길목의 입구로 돌아가려 할 무렵, 길목 입구 근처에 서 있던 카리나가 나를 맞이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자에 대해 자신이 들은 바대로 말하려 하니, 그는 케레브 족이 아닌 이들로 구성된 '외인 부대' 혹은 용병이며, 자신과 같이 용병으로서 케레브 전투단에 소속된 이를 찾으려 하고 있으며, 그는 자원해서 용병단에 들어선 것이 아닌, 세뇌 혹은 정신 조작 등을 통해 들어선 것이라 그를 구원하기 위해 일부러 전투단에 용병으로서 들어선 것 같다고 말한 이후에 이렇게 물었다.
  "아르사나, 제대로 알아본 것 맞지?"
  자신이 그간 있었던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들었는지 여부를 묻는 그 질문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해 주고서, 잘 들었다고 한 마디 덧붙이기도 했다. 그 때, 나에티아나 역시 날갯짓을 하며, 카리나의 바로 뒤쪽 상공으로 나아가서 나에게 말했다.
  "아르사나 님, 카리나 님, 어서 여기를 나가셔야 해요, 아무래도 여기가 그들에게 발각된 것 같아요!"
  그리고서 조금 더 있으면 그 무리가 다가올 수도 있으니, 어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대화를 그만둔 이후에 나에티아나에게 알았다고 답하고, 이어서 카리나에게 남은 이야기는 길을 나아가면서 하고, 어서 일대에서 나가자고 청한 이후에 다시 시가지의 중앙로로 나아가고서, 건너편에 자리잡은 다리 쪽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길 근처에 위치하고 있던 린, 리아 자매가 간만에 다시 일행 3 명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다리 근방의 지대에는 높은 건물이 없었고, 건물 위를 올라 다닐 이유가 없었기에 다시 지표면 위로 내려와 지표면 위의 길을 따라 나아가고 있던 일행과 함께 하려 했을 것이겠지만, 그 이외에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있었다.
- 이후로는 한 동안 카리나를 중심으로 나와 나에티아나가 우측에, 린, 리아 자매가 좌측에 위치하며 나란히 나아가고 있었다. 다만, 나에티아나는 날아다니고 있었기에 수시로 위치가 변했다.

  "한 가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일행에 합류하고서 린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말한 이후에 자신이 자동 포대의 제어 기능을 제거하려 하는 도중에 찾아낸 것임을 밝히며, 자신이 입은 바지의 왼쪽 주머니에서 자신이 얻었다는 물건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린이 주머니에서 꺼내 오른 손바닥에 올린 물건, 그것은 손바닥 크기보다도 약간 작은 판이었으며, 판 아래의 테두리 바로 아래에는 마치 벌레의 다리와도 같은 짧은 금속 다리들이 달려 있었으니, 그 외견은 확실히 주로 옛 시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기계 장치의 '두뇌' 에 해당되는 "집적 회로 소자(Olosfyantr'-i)" 의 모습이었다. 판 자체는 작은 물건이기는 했지만, 집적 회로 소자로서는 상당히 큰 크기였다, 일반적인 소자 크기의 수 배 정도에 이를 정도. 그 물건이 원래 어떤 물건이었는지를 알아보고서 확인 차, 린에게 그러한 물건이 맞냐고 물어보니, 역시 그렇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물건은 흔히 알려진 그 옛 문명의 유산과는 사뭇 다른 일면이 있기도 해요, 외형은 비슷해 보이더라도."
  "무슨 말이에요, 그것이?" 그 말에 나에티아나가 잠시 린에게 다가오고서, 의아해 하면서 무슨 말이냐고 물음을 건네었고, 이 물음에 린은 말한 대로임을 밝히고서 그 외견은 회로판(Antr'pan) 을 축소시킨 모습 그 자체라 할 수 있지만, 내부 구조가 종래의 회로판과 다른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후, 린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잠시 동안이나마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고도 남았다. 본래 집적 회로 소자는 외곽 부분에 유리 상자에 포함된 초소형 기판이 전선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회로판은 그렇게 전선을 통해 연결되는 초소형 기판이 다른 것도 아닌 뇌세포들을 유리질화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이러한 집적 회로를 구성할 때마다 하나 이상의 생명체에게서 뇌를 적출, 뇌세포들을 압축 및 가공해서 기판을 구성해서 뇌세포가 포함한 기억 요소들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인간의 뇌를 인간에게서 빼내어, 기계의 구성 성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지요!?"
  그 무렵, 놀라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로 나에티아나가 묻자, 리아가 그렇다고 답을 하였고, 이어서 이렇게 인간의 뇌를 가공해 만든 집적 회로 혹은 일명 '생체 신경 회로' 라 칭해지는 회로 소자를 활용한 자동 병기들을 케레브 전투단이 다수 소지하고 있음을 이어 밝혔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런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은......?"
  "그렇지는 않아요." 이후, 내가 미심쩍어 하면서 리아에게 물었다, 기술이든 마법이든 모든 면에서 몰락해 버린 케레브 족이 타락으로 인해 잔학해졌다지만, 뇌를 적출해 소자에 주입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으로 그 물음에 리아는 그렇지 않으며, 누군가로부터 공수 받은 물품이며, 그 누군가와는 모종의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언급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일행의 발걸음은 다리에 접근하고 있었으며, 다리 위의 곳곳에 케레브 전사들이 마련해 놓았을 거점들이 놓여 있었다. 다리마다 3 개씩 놓인 거점들, 각 거점은 가시 구조물에 둘러싸인 하나의 진지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며, 각 진지마다 하나씩 총포를 든 케레브 전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 자체는 멀리서도 타격을 가할 수 있었으므로 내가 나서서 곡선을 그리는 빛 줄기가 하나씩 전사를 추적해 나아가도록 하는 것으로써 이들을 제거하였다.
  눈앞에는 3 개의 다리가 보이고 있었으며, 당시 내가 서 있던 그 건너편에 있던 중앙의 다리, 그리고 좌우의 다리들은 각자 상당히 긴 간격을 두고 있었다. 좌우의 다리들에도 3 개씩 거점이 있었으며, 각 거점에 총포를 든 전사들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그 거점들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그들이 자신들이 위치한 곳과 상당히 거리를 두는 일대를 저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볼 필요를 느꼈고, 그러면서 미끼가 될 만한 무언가를 마련하려 하였다.
  "미끼로는 무엇을 쓰려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마자 카리나가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답을 하지 않고, 다리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 나의 바로 앞에 감빛 기운이 끓어오르는 마법진을 하나 마련하였다, 그 마법진에서 감빛 기운으로 이루어진 인간형 괴물체 하나를 불러와서 그 괴물체가 다리를 건너도록 하였던 것으로 만약에 그 개체를 케레브 전사들이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고, 저격이 가능하다면 다리 건너편에서 저격을 하려 할 것이라 예상하였던 것이었다.
  감빛 기운을 끌어와 그것을 이용해 하나의 개체를 만들었다. 해당 개체는 중앙의 다리를 건너면서 가운데, 그리고 좌측과 우측에 위치한 다리 위 거점들에 자리잡은 전사들의 저격 대상이 될 수 있을지, 그 여부를 확인해 줄 것이었다.
  이후, 개체가 다리를 건너가려 하는 순간, 다리의 첫 거점에 위치한 전사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총포를 바로 들어, 그 포구가 개체를 향하도록 하였다. 포신의 길이가 상당히 길어, 그 특성 상, 전사가 들고 있는 것은 저격이나 강한 한 발의 타격을 위한 것임이 틀림 없어 보였으나, 그럼에도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사는 개체를 겨누는 총포를 통해 포격을 개시, 그와 동시에 붉은 광탄들이 잇달아 개체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어둠의 힘을 품은 핏빛 광탄들은 마치 짧은 바늘 혹은 칼날과 같은 형태를 이루며 감빛 개체의 몸에 박혀 갔으나, 비슷한 힘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그 피해는 일단은 개체가 충분히 견디어 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러는 동안 왼편, 오른편 먼 곳의 다리에서는 거점에 위치한 전사들 역시 자신들의 총포를 가운데 다리를 지나가려 하는 개체를 향해 겨누었으며, 이후, 각 다리의 거점에 위치한 전사의 포신에서부터 붉은 빛 줄기가 하나씩 발사되어 개체를 타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개체는 가운데 다리를 지나가는 동안 3 방향에서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이들이 들고 있는 총포는 원거리 포격 뿐만이 아니라, 근거리 내의 연속 사격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총포의 몸체에 위치한 특성 변경 기능을 통해 포격 및 사격의 특성을 변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각 다리의 3 개 거점에 자리잡은 전사들이 이러한 무기를 들고 있음을 알게 된 이상, 가운데 다리로의 접근은 매우 위험한 행위일 수밖에 없음은 틀림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두 2 방향으로 흩어져 좌측과 우측의 다리로 나아가고 가운데 쪽은 일단 비워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운데는 내가 갈게." 개체가 집중 타격을 받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카리나 역시 전사들이 들고 있는 무기의 특성이 어떠한지를 대략 판단한 듯해 보였고, 그러면서 나에게 가운데로의 직진은 위험하고, 일행은 가운데 다리를 대신해 왼편 그리고 오른편의 다리로 나아가도록 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였고, 일단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가운데로 나아가겠다고 말했고, 그에 이어 카리나에게 다리를 건너가려 하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케레브 족 사람으로 변장해서 가운데 다리 쪽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고 그들의 행동을 묶어둘 테니까, 그 동안 카리나 등이 다른 방향에서 케레브 족 전사들을 돌파해서 나아가면 될 거야."
  그러면서 카리나에게 우선은 좌측 혹은 우측 다리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먼저 나아간 이후에 기회를 노려 신호를 보낼 테니, 신호가 오면 그 때에 움직여 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에 카리나는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중앙, 카리나와 나에티아나는 우측, 그리고 린과 리아 자매는 좌측 다리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건의한 바대로, 내가 먼저 다리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감빛 기운을 불러왔다, 그 기운이 케레브 족 전사들에게 동족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었다.



  "누구냐, 너는? 처음 보는 녀석인데." 자신과 다른 종족이 진입하려 하면, 말 없이 사격부터 하는 이들이었으나, 동족이 접근해 오자 바로 신원 확인을 시도하려 하였다, 동족이라도 믿을 수 없다는 의미였던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나는 바로 이렇게 답을 하였다.
  "상황 보고 없이 다급히 다가와서 죄송합니다. 저는 금사 지대 동쪽 숲에서 온 사람입니다, 제가 사는 곳이 엘베 족 애송이들에게 습격을 받아 일대가 궤멸당했고, 저만 겨우 살아남아 빠져 나왔습니다!"
  동쪽 숲에서 케레브 족의 근거지가 엘베 족 자매에게 습격을 당해 일대가 궤멸하면서 혼자 살아남아 왔음을 밝히는 것으로 신상을 묻는 질문에 답을 하였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전사는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랬던가...... 녀석들에게 당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고, 거점이 파괴당한 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든, 다 가능해 보이기는 하는군."
  그리고서, 용무가 있으면 어서 나아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알겠다고 답을 하고서, 바로 그에게 물었다, 그 자매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비대에 들어서려 하는데,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물으려 하였던 것.
  "경비대가 되기 전에 우선 전사단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어, 전사단에서 특별한 심사를 통해 자질을 인정 받아야만 수도 경비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이 물음에 전사는 바로 그렇게 답을 하고서, 어서 들어가라고 말한 이후에 자신은 경비 임무를 수행하느라고, 잡담해 줄 시간은 없다고 말한 이후에 어서 나아가지 않으면 불법 침입자로 간주하겠다고 위협적인 발언을 하였다. 그러자 나는 알겠다고 말한 후에 지나가려 하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
  "예, 예, 알겠습니다, 그 대신으로 뒤쪽 요원 분들께는 그간 있어온 일에 대한 미담 한 마디 건네 드리지요."
  이후, 나는 바로 건너편, 다리 중앙에 자리잡은 거점에 위치한 케레브 족 전사에게 다가갔다. 이후, 전사는 나와 마주하더니, 나를 부르는 손짓을 하였다. 오른손을 내밀고,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손을 안으로 굽히는 동작, 그 동작은 가까이 오라는 뜻을 갖고 있어서 바로 그에게 다가가 보려 하였다.
  접근해 오자마자 전사는 내 모습을 잠깐 보더니, 나를 향해 오른손, 그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니, 이는 필경 뭔가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돈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상관 없다고 해도, 결국에는 돈, 아니면 황금이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던 자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동작을 취하더니, 팔짱을 끼고 고개를 자신의 왼쪽 방향으로 갸웃거리기 시작하였다, 돈을 주지 않은 내가 탐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바로 나의 멱살을 잡더니, 뒤쪽의 거점으로 나를 거칠게 끌고 나아갔다. 그러더니, 거점의 전사 앞으로 다가가서 나를 거칠게 잡아 던졌고, 이에 나는 길바닥 위에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 때, 그런 나의 귀에서 어떤 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무슨 일이야, 이거, 이 녀석, 동족 아닌가!?"
  "흐어, 이 새X 봐라." 그 때, 다른 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그 당시 나를 거칠게 끌고 왔던 그 전사의 목소릴일 것임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이후, 그 때, 처음으로 말을 건 전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으니, 이전에 나를 끌고 온 일에 대해 그는 마땅치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듯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동족인데, 뭐라도 된 것처럼 마구 끌고 다니면 되나."
  "야, 이 새X 가 방금 전에 뭔 짓 한 줄 알아!?" 그러는 동안 나는 몸을 일으켜서 대화 도중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려 하였다. 케레브 족 전사들이 서로를 마주하며 말다툼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그런 나의 눈 앞에 보이고 있었던 것으로 왼쪽-다리의 건너편을 마주하는 쪽-의 전사가 나를 끌고 왔던 그 전사였다.
  "뭐, 별 특별한 짓거리 한 것도 없구먼, 괜히 법석이나 떨어서 우리 귀찮게 만들 생각이야!?"
  그 말과 말에서 드러나는 어투를 들어보니, 우측에 보이는 전사 역시 나에 대한 선의를 가지며 말다툼을 하는 것은 아니었음이 확실했다. 그저, 근방에 있는 이들이 사건을 일으켜서 생겨나는 일이 귀찮을 따름으로 그는 그런 귀찮음을 너무도 싫어해, 나를 끌고온 이와 말다툼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두 사람 중에서 실제로 같이 일을 하거나 하면 그래서 우측에 보였던 사람이 더욱 흉악한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별 거 있지! 이 새X 가 나한테 금화를 안 줬거든! 나 알 잖아, 동족이라도 돈을 주지 않으면 그냥 안 넘어가는 거! 난 어떻게든 내 앞으로 지나가는 모든 새X 들한테 돈을 받아야 해! 알잖아!!!"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자랑스럽구나' 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은 듯해 보였다. 거점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에는 별 말이 없고 과묵해 보일 줄만 알았는데, 돈이든 뭐든 건네주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 그렇게 본성을 표출하는 것도 우스워 보였지만, 그것 역시 일단 참으면서 두 사람의 거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 진짜 시끄럽네, 이 새X! 야, 그러다가 어디 끌려가고 싶어!? 아니면 그 엘베 족 녀석들에게 밥으로 넘겨 버릴까, 어!?"
  그러더니, 세 번째 거점의 전사는 바로 자신에게 다가온 전사를 위협하였고, 이에 두 번째 거점의 전사 역시 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 간에 싸움이 발생하면서 그로 인해 일대의 상황이 그 쪽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첫 번째 거점의 전사 역시 그들에게로 다가왔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두 번째 거점의 전사가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였다, 당당하게도 황금 주화를 건네지 않아서 그것을 두고 용서받지 못할 일 아니냐고 물으려 하는데, 세 번째 거점의 전사가 그저 시끄럽다고 하니까, 말다툼을 한 것이라고.
  "그랬냐? 그 새X, 결국 사고쳤구먼. 내 앞에서는 꾸물거리기나 하다가, 마지 못해 가면서 '좋은 말' 전해 주겠다고 X나 쪼개더니만."
  그리고서 세 번째 거점의 전사에게 나를 두고 내가 온전히 잘못한 것인데, 서로 싸우거나 할 일이 있냐고 물었고,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위험 징후를 느낀 이후에 바로 감빛 기운을 일으켰다.



  이후, 거점을 경비하고 있던 세 전사들이 서로 모여 있으면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거점의 전사가 이미 그들의 곁에서 사라졌을 나를 욕한 이후로 세 번째 거점의 전사가 그 첫 번째 거점의 전사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그들 만의 대화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이후, n 번째 거점의 전사 -> n 번째 전사로 칭함)
  "그 '좋은 말' 이라는 게, 뭔데? X바, 지가 뭐 그리 잘 났다고 XX 하고 자빠졌어, 정말로."
  3 번째 전사의 말이었다. 그 역시 1, 2 번째 전사와 마찬가지로 육체가 타락하면서 마음씨도 그에 못지 않게 더럽혀진 케레브 족 전사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3 번째 전사는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는 1, 2 번째 전사들에게 자신의 말을 이어 늘어 놓으려 하였다.
  "그런데, 에레브 족이라면 마땅히 전사들을 위해 바칠 돈을 상비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모르는 거야? X발!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면 그건 X바 저 혼자 잘나서 혼자 구석에 쳐 박혀 있던 X따 새X 이거나 아니면......."
  "에스피오나즈(Espionage, Espionazh) 겠지, 우리 에레브 족으로 위장한 새X."
  아무래도 케레브 족은 변장한 자와 첩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해 보였다-여담으로 에스피오나즈는 첩자를 의미하는 말로 일부 1 세대 엘베 족 중에서도 일부 만이 사용하는 말이었다-. 그런 발언을 한 이후, 1 번째 전사가 비웃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야, 어떤 멍청이가 시X 우리 에레브 전사단에게 겁머리도 없이 혼자 도전한다는 거야, 그게 가능해!?"

  그 이후로 한 동안 세 사람의 대화는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러는 동안 이런저런 중요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케레브 족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그들이 자신들이 점거한 일대를 어떻게 칭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중앙의 다리는 '중앙대로 다리', 좌, 우측의 다리는 '동쪽 길의 다리', '서쪽 길의 다리' 로 칭하고 있었으며, 시가지 유적의 중앙에 위치한 5 층 피라미드를 그들은 '왕궁' 이라 칭하고 있음을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대를 점거한 케레브 족 전사단은 하루에 3 번씩, 정기적으로 집회를 개최하며, 신전에서 개최하는 집회를 '신전 집회', 그리고 '왕궁' 에서 치러지는 집회를 '왕궁 집회' 라 칭한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왕궁 집회에서는 중앙 대로의 인원들이, 그리고 신전 집회는 시가지 구역의 모든 인원이 '빠짐 없이' (거점 경비를 위한 인원들도!)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왕궁 집회' 는 추가 집회가 있기도 한 모양으로, 일련의 집회들은 일종의 '종교 의식' 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그들의 수장은 무언가를 숭배하는 종교의 교주 역할 역시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거기 너희들! 근무지에서 벗어나서 모두 뭐하고 있나!?"
  그렇게 한 동안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무렵, 그들의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색을 띠는 갑주 차림을 하고 여기에 검은 망토를 둘러 입은 자로서, 머리에는 접시 모양의 검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특별한 신분의 인물임을 바로 알리고 있었다. 얼굴은 천으로 감싸고 있었으며, 눈만 드러내고 있었기에 그 얼굴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천 사이로 드러난 눈이 붉게 번뜩이고 있어서 그 외견에서 사악한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 자가 나타나자마자 그간 험담을 주고 받으려 하던 전사 3 명 모두 그 상태에서 다급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를 바라보며 셋이 가로로 나란히 서려 하였다. 3 번째 전사를 중심으로 1, 2 번째 전사가 각각 그의 좌측, 우측에 서려 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잠시 쉬는 시간이라서 그만......."
  "쉬는 시간!? 너희들에게 쉬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서 자신과 마주하고 있던 3 번째 전사의 오른 무릎을 자신의 왼발로 거세게 걷어 차면서 "형편 없는 자식들!" 이라 외친 이후에 그가 오른 무릎의 아픔을 견디고 있는 그 사이에 그들의 상관으로 추정되는 그 전사는 여전히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그들에게 곧바로 전달 사항이 있으니, 그 때까지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외치고서 다리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다리가 위치한 일대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공적인 장소에서 내는 목소리인 만큼, 이전보다는 확실히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부하들에 대한 짜증이 목소리에서 은연 중에 느껴지고 있었다 :

  전달 사항이 있다, 잘 듣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해라, 알겠나!? 잠시 후, 왕궁 구역에서 모든 케레브 족 전사, 마법사 및 평신도들을 위한 비정기 왕궁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전사단의 서약대로,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 집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거점 경비 요원들 모두 포함인 것은 그대들도 알고 있겠지? 이유를 막론하고 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시에는 상응하는 불이익이 있음 역시 명심하라, 이상!

  그러자 전사들은 집회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불이익이 너무도 두려웠는지 마지 못해, 다리를 떠나, 왕궁 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일련의 움직임은 좌, 우측의 다리에서도 드러나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다리를 비롯한 모든 거점에서 케레브 족 전사들이 사라져, 일대가 비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중앙의 다리 건너편 한 곳에서 붉은 불빛이 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공중의 한 곳에서 폭발했지만, 대다수의 케레브 전사들은 이를 그저 누군가의 장난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때를 같이 하여, 동쪽, 서쪽 다리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이 전사들이 거점을 비운 다리 일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 곧바로 다리를 지나갔으며, 좌, 우측 다리 일대에서 중앙 대로로 나아가려 하는 다리의 경비 요원들을 습격해 그들을 처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가운데 다리 쪽의 전사들은 곧바로 북쪽 길을 따라 왕궁 쪽으로 뛰어가려 하였으나, 이들 모두 감빛 웅덩이에서 나온 손에 하나씩 잡혀 웅덩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으며, 그들의 비명 소리가 일대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후, 해당 상황을 지켜본 어느 전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전의 그 집회 통보는 거짓이었으며, 그저 다리의 경비 요원들을 다리 건너편으로 끌어내려고 행한 얕은 술수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 술수에 의지해 침략자들이 다가왔지만, 술수에 의지해 왔을 뿐이며, 정면 상대를 행한 경험이 없을 것인 만큼, 그들이 정면에서 전사들과 맞서면 승산은 충분한 만큼, 이전에 행한 바대로 상황에 대응하면 금방 격퇴 혹은 격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전에 있었던 '제 1 성벽' 의 함락에 관여한 자들 아닌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일대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있었으며, 당시의 침략자들 역시 해당 전투로 인해 지쳤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하고서, 그들의 전투력이 아무리 강해도, 계속 싸울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하고서, 침략자 측에서도 그들을 대신해 새로운 요원들이 들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말을 건네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린과 리아 자매는 시가지의 서부 대로를, 그리고 카리나와 나에티아나는 계속 동부 대로를 따라 나아가 줄 것을 부탁하였고, 나는 혼자서 중앙 대로를 따라 나아가기로 하였다.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카리나의 물음에 나는 나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고 말하고서, 일단은 나만 믿어줄 것을 당부하였다.

  구 문명 위에 건립된 도시의 시가지였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유적지, 그 중심에는 5 층으로 구성된 거대한 피라미드가 자리잡고 있다. 당연하게도 신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7 층 피라미드에 비하면 작은 건축물이기는 했지만, 외형은 신전과 거의 같았고, 5 층 피라미드 역시 한 층의 높이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성인 신장-대략 1.6 ~ 1.8 메테르- 의 10 배 이상에 이르는 만큼, 건물로서는 보통 높이라 할 수 없었다. 승강구가 있지도 않았을 테니, 당시 사람들은 건물을 오를 때마다 산을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 건물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전망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타 건축물들을 압도하는 높이를 자랑했던 데다가, 도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던 만큼, 전망대로 쓰이기에는 안성 맞춤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신전 및 궁전으로 쓰이던 건물은 북쪽에 있기도 했고-심지어 더 높았다, 7 층에 이르는 해당 건물은 전체 높이가 150 메테르 이상에 이른다-. 본래 이 건물과 주변 일대에 자리잡은 건물들의 외벽은 은빛을 띠는 도료로 칠해져 있었으며, 성벽 안쪽에 자리잡은 신전의 외벽은 금빛을 띠는 도료로 칠해져 있어서 5 층 피라미드를 '백은의 거탑(Arjentin Zigurat)', 7 층 피라미드를 '황금의 성전(Awrain Templa)' 이라 칭하는 이들도 있고, 해당 명칭들 역시 피라미드들의 통칭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직 침략 통보가 없었던 탓인지 중앙 대로 일대는 비교적 평온했다. 물론 일반적인 케레브 족 사람들과 더불어 갑주와 투구 차림의 전사들, 그리고 로브를 입고 얼굴을 붕대로 감싼 마법사들과 그들에 비해 세련된 로브 차림을 하고 얼굴을 쇠 가면으로 감추고 있는 사제들이 돌아다니는 험악한 평온함이기는 했지만 평온하기는 평온했다.
  평시 상태였고, 나는 일단 케레브 족 전사들이 보기에는 남루한 검은 옷차림과 검은 반바지 차림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진 케레브 족 사람으로 보이고 있었던 만큼, 거리 일대를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었고, 케레브 족 전사들과도 자유롭게 말을 걸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어서 이를 통해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중 일부는 그들의 사회에서는 위험하기 이를데 없는 발언으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나를 으슥한 곳으로 불러 조용히 말하거나, 아니면 귓말로 이야기 하고는 했다, 전사단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이를 통해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주' 라 칭해지는 전사단의 수장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포레 느와흐의 부활을 다시 바라게 된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이들은 내가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 여긴 이후에 나에 대해 바로 마음을 놓고, 그간의 사항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차라리 외지인들이 대화하기에 마음이 편하며, 내지 사람들은 서로 간에 수장에 대한 불만 사항은 물론, 사소한 이야기조차 함부로 꺼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언제 이웃 사람이 자신이 건넨 말을 통해 자신을 고발하게 될 지 알 수 없으며, 고발이 된 이후, '선택 받은 자' 가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자가 되기에, 고발되어 수장에게 불려가는 것을 서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그들 중 몇은 나의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고, 내가 수장 그리고 그 휘하의 전사단, 마법사단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으리라 여기며,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수장이 가진 마법의 힘은 실로 '무섭다' 라고 말할 지경이라고.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가 5 층 피라미드를 지나, 그 너머, 신전으로 쓰였다고 하며, 케레브 족 역시 신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7 층을 이루는 거대 피라미드가 바로 보이는 길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본래는 황금의 성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황금빛 도료로 외벽이 칠해져 있었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여파인지 칠은 벗겨져 있었다. 다만, 높으면서도 지반의 넓이도 높이만큼 넓은 해당 건물의 위용이 옛 시대에 이 건물이 '위대한 건물' 로 여기어졌을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
  한 층의 높이가 대략 20 메테르 이상에 이르는 거대한 건물로 그 높이는 150 메테르에 이르니, 어지간한 동산보다 더 높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해당 건물의 정문은 특이하게도 7 층부에 있었으며, 계단을 통해 정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그 좌우로 경비 대원이 지키고 있어서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어 보였는데, 아무래도 그 내부에 교주가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해 보였으며, 문 너머로 들어간 '선택받은 자들' 의 모습이 다시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종교에서 숭앙되는 '어둠의 태양' 은 신앙에서 묘사된 바와 달리, 길한 존재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 피라미드를 향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을 그 무렵, 나의 왼편에서 누군가가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적으로 변조되어서 그러한지, 그 목소리의 본래 특성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목소리만 듣고 바로 알아낼 수는 없었다.
   "너는 그 동안 보지 못한 사람인 것 같군, 어디서 무엇을 하다 온 사람인가?"
  왼편 건물의 한 쪽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자로 검은 로브와 검은 가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 이로서, 허리에 장검 한 자루를 차고 있었다. 이전에 만난 이와 인상은 비슷했지만-눈의 번뜩이는 색마저 비슷했다-, 체형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었고, 무엇보다 변조되기는 했지만 목소리의 차이가 나름 있었기에 이전에 만났던 그와는 다른 이일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러면서 이전에 내가 만났던 자가 언급한 '구원하려 하는 자' 가 혹시 그 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고 있었다. 여타 케레브 족 사람들과는 외견 면에서 차이가 있고, 용병이었을 것인 만큼, 내가 케레브 족과 이질적인 존재임을 알아보고, 나를 공격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조마조마하고 있었으며, 특히 '보지 못한 사람' 이라는 말에는 다소 놀라기도 했다.
  "뭘 그리 놀라나, 여기로 들어오는 사람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인 걸, 너도 딱히 달라 보이지는 않아, 그러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그 자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 여기었지만, 그 자의 눈에도 내 모습이 케레브 족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인지, 나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한 그의 말에 나는 '금사 지대' 근거지의 생존자임을 밝혔다. 그러자 그 쪽에 실제로 케레브 족의 작은 근거지가 있었지만, 결국 엘베 족 자매에 의해 궤멸당한 바 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 엘베 족 자매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케레브 족 근거지를 토벌하러 다니는 일이 일대에도 알려졌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교주' 도 무척 경계하고 있어, 자신의 계획에서 가장 치명적인 위협 요소라 할 수 있거든."
  그리고서 그는 그런 그들의 파괴적인 공세 속에서도 용케도 잘 살아남은 것 같다고 말했으며, 그 목소리가 다소 밝은 느낌을 주고 있어서 그 자에게는 나에 대한 적의가 확실히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후, 그는 나에게 그 자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혹시 관련된 소식은 없느냐고 나에게 물었지만, 이에 나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을 하였다.
  "하기사, 그 쪽은 관계자에게 물어보는 편이 속 편해."
  그리고서 그는 내가 누구인지 혹시 궁금하지 않느냐고 묻는 듯이 말하고서, 이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나마 해 주겠다고 말했다. 우선 이름을 밝히는데, 자신의 이름을 '시구르드(Sigurd)' 라 하였으며, 계약에 의거해 케레브 수장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용병으로서, 자신은 '교주' 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이전에 만난 자의 말에 따르면 세뇌에 의해 용병이 되었다고 하였다, 아마도 그렇다면, 그는 세뇌되면서 자신이 계약에 의해 그를 따르고 있다고 믿고 있을 따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의 근거지에서 그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나요?"
  "그 분께서 그렇게 명하셨기에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의 뜻에는 따르지 않아."
  이후, 나는 바로 그 자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일단 그는 진심으로 전사단의 수장이자 '교주' 인 자에 대해 탐탁치 않다고 여기고 있으며, 그의 행보에 있어 석연치 않은 일면에 내 앞에 있는 자가 뭔가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이 그 이유였다.
  "저 앞에 있는 피라미드가 무엇인 것으로 알고 있나?" 대답을 하기 전, 우선 그 자는 나에게 묻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서 '교주' 는 그 피라미드를 '대 신전' 이라 칭하고, '위대한 어둠의 태양' 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 스스로 말하고 있음을 밝힌 이후에 사람들 대다수는 그 곳에 대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 보신 적이 있어요?"
  "물론, 당연하겠지만, 합법적으로 들어가 본 것은 아니야. 교주의 허락 하에 들어가면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할 테니 말야. 사실, 신전의 지상 부분은 특별히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아. 아니, 어쩌면 이 유적지 자체가 그렇게 의미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르지. 나도 처음에는 이 유적지가 고대 인류의 도시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어, 하지만 저 신전 내부를 들어가 보고 나서 모든 것을 깨달았지, 너도 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내가 말하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내가 건네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한 이후, 그 자는 건물에서 벗어나 신전 쪽을 향해 서 있으면서 교주에 대해 말하길, 뒤로 참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라 칭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을 참 대단한 사람인 양 포장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드러내놓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나의 심리를 궤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나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주' 에 대해 알고 싶은 사항이 생기기라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나는 돌려 말하는 것을 참 싫어하니까.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잘 들어, 저 신전, 아니 이 유적 전체는 껍데기에 불과해,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돌 무더기들은 이 곳이 감추고 있는 진짜 옛 시대의 잔재를 감추는 그 덮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어. 신전의 1 층에 자리잡은 제단 아래에는 지하를 향하는 통로가 있고, 그 내부 깊은 곳에 '중심부' 가 자리잡고 있지, 이 중시부가 이 '고대의 유적' 이 감추고 있는 '옛 시대의 진짜 모습', 그 중심부와 직결되는 통로다, 그 중심부에 교주가 말한 '어둠의 태양' 이 자리잡고 있어."
  이후, 그는 남은 것은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다가, 나를 향해 돌아서고서, 나에게 교주는 집회를 행할 때, 두 가지 중요한 주문을 왼다고 말하고서, 이 주문을 외는 것으로서 자기 동족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더 나아가 동족을 신전 내부의 '어둠' 속으로 빠뜨린다고 말한 이후에 그 주문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말했다.
  "첫 번째는 '엣 룩스 인 테네브리스 루쳇, 베네디카무스 솔렘(Et Lux in Tenebris Lucet, Benedicamus Solem :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니, 태양 님을 찬양할지라)' 이며, 이것은 케레브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주문으로 집회 시기가 되면 이 주문을 통해 대중을 홀려 자신의 성전 안으로 들여보내게 되지. 그리고 두 번째 주문은 약간 길고, 이것은 그대에게는 익숙한 언어는 아닐 게야, 잘 들어 두게나."

터리키 아스트
터리키 아스트 체넌 누라스트
사란점 하메 베 터리키 바르마이 가르단드
사란점 머 베 터리키 버즈 화힘 가쉬트
터리키 보조르과르
베 가저예 쇼머 머 제슴 우 루 호드 러 에러에 화힘 더드
아크눈 고드랏 호드 러 비더르 코니드
터 도녀 아즈 고드라 투 에저트 쇼머 베타르사드

Tāriki ast,
Tāriki ast, chenān, nur ast.
Saranjām, hame be tāriki barmay gardand,
Saranjām, mā be tāriki bāz khwahim gasht.
Tāriki bozorgwar,
Be ghazā-ye shomā, mā jesm u ru khod rā erā-e khwahim dād.
Aknun, qodrat khod rā bidār konid,
Tā donyā az qodrat u -ezzāt shomā betarsad. (*)

  당시에는 너무나 생소했던 말, 그 자는 그 말을 전한 후, 다시 신전 쪽을 향해 돌아선 이후로 그 말은 교주가 주문으로서만 익힌 언어이며, 케레브 족 사람들이 쉽게 그 뜻을 알아보지 못하기 위해 일부러 이러한 언어를 주문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음을 밝혔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바는 여기까지다, 더 아는 바가 있다면, 너에게 전해주고 싶기는 하겠다만, 나도 더 이상 아는 바가 없어서 말이다."
  그리고서 그는 이토록 교주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레 느와흐의 명령에 의해 자신은 그를 따르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고서, 붉게 빛나는 눈을 격렬히 번뜩이려 하면서 나에게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물론 명령이기도 해,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어. 결국 그들 역시 에레브 족이고, 수장과 그 휘하가 몰락하는 순간, 우리 에레브 족은 사실상 이 행성계에서 더 살아남을 곳이 없게 돼. 따라서 좋든 싫든 에레브 족은 '교주' 와 그 세력권에 의탁할 수밖에 없어, 한 마디로, 존재는 현재로서는 우리 에레브 족에게는 '필요악' 이라는 것이다, 알겠나?"
  그러면서 그는 나의 남루하기 이를데 없는 옷차림을 한차례 훑어본 이후에 이야기를 이어갔다 :
  "내가 너에게 '교주' 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너는 '교주' 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존재로 보이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기 때문이지. 너도 들은 바 있을 거야, '교주' 가 가진 '어둠의 힘' 에 관해서 말야. 현재, 이 곳의 케레브 족 전사들 그리고 용병들 중에서 그 힘을 이겨낼 만한 이들은 없어, 너도 그렇겠다만. 그렇다고 해도, 만의 하나에 해당되는 가능성을 대비해, 경고 한 마디를 건네지, 내가 '교주' 를 따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케레브 족을 위해서지, '교주' 에 충성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며, 따라서 만약에 '교주' 와 그 세력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리고서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칼집에서 꺼내, 오른손에 들고, 그 칼끝이 나를 향하도록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때에는 이 칼날이 네 목을 치는 모습을 보게 될 거다, 알겠나!?"
  위협적인 발언으로 경고성 발언을 마친 후, 그는 손에 든 검을 다시 칼집에 끼워 넣고,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하지만, 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믿는다." 라는 한 마디 말을 건네면서 나를 지나쳐 '왕궁' 이라 칭해진 5 층 피라미드 쪽으로 나아갔다.

  이후, 나는 그가 기대어 서 있던 건물 근처의 기둥에 조용히 앉았다. 처음에는 두 번째 주문을 외울 방법을 생각했지만, 곧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여기었다, 교주를 만나, 교주가 그 주문을 외도록 하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교주를 만날 수 있다면, 그를 충동질할 수 있다면, 일대 케레브 족의 일망타진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이전에 만난 그 자의 발언들,

너는 교주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존재로 보이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기 때문이지.
내가 '교주' 를 따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케레브 족을 위해서지.
하지만, 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믿는다.

을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리에 없었던 그를 향해 "안 됐어, 이 사람아." 라고 조용히 혼잣말을 건넨 이후에 다시 일어나서는 바로 신전 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교주' 라 칭해지는 케레브 족의 수장을 만나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의 '우리 에레브 족' 이라 말했던 것, 그리고 이전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계약에 의거해' 용병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서로 앞뒤가 맞지 않다고 여기었고, 그가 첫 번째로 만난 자가 그에 대해 언급한 바대로, 세뇌를 당해 용병 행세를 하고 있음이 전자를 통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유적지에서 만난 정체 불명의 두 사람의 정체에 관해서도 의문을 품어보게 되었다.
  그렇게 신전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나는 십자로 건너편 좌측 한 곳에 감빛 기운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떤 그 생소한 마력 덩어리를 보며, 대체 무슨 덩어리일까 싶은 생각에 그 덩어리를 만지려 하는 순간, 그 기운이 하얗게 깜박거리기를 반복하기 시작하더니, 어딘가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2147 년 12 월 11 일, 오늘의 소식입니다, LBC 바이러스 감염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 세계 감염자 수는 136 만 5 천 여명에 이르고, 사망자 수는 무려 2 만 7 천.......

  뭔가의 소식을 알리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 이후, 덩어리가 격렬히 깜박이면서 거친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어서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차례 여성의 목소리와 거친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2161 년 9 월 23 일, 오늘의 소식입니다, YRS 바이러스의 감염자 수는 전 세계에 걸쳐.......
2184 년 10 월 28 일, 오늘의 소식입니다, DVR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에 팬데믹(Pandemic, Paendëmik) 이 경보가 내려졌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거친 소리가 들린 이후, 이번에는 어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들려온 목소리는 다소 늙은 티가 나는 듯한 장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레오나드(Leonard), 네가 하는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언제까지 인류는 이러한 사태가 있을 때마다 그저 인공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야 하느냐고 말했고,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몸의 내부를 인공화, 기계화하여 감염 요인을 없애버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도 말했지. 그래, 그것도 '유기체' 의 한계 속에서 고통 받는 인류에게 있어서 구원의 가능성 중 하나일 것임은 분명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유전자 조작이나 내장 및 골격의 기계화는 인류는 자연의 영역에서 보다 멀어지게 하는 행위일 것이라고. 또한, 신체가 기계화가 된다면, 만약에 인류를 구성하는 기계 장치가 내부의 전산 장치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다면, 그것에 대한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니?
  그러면서 늘 생각해 왔어, 현재의 유기체로서 인류가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말한 대로, '실험실의 흰 쥐' 와 같은 숙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그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존의 '유기체' 를 버려야만 한다면, 차라리 자연에 보다 가까운 존재가 그 몸을 구성하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그렇군요. 장(Jang?) 교수님, 사실, 저는 두려웠습니다, 장 교수님의 뜻대로 '빛' 이 생명의 근원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의미로 '신' 에 대한 도전이 되는 것은 아니겠냐고, 빛으로 만들어진 생명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천사(Angel, Anjel) 라든지, 아니면......


  "이것이 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와도 같은 이야기. 당장에 케레브 족 수장을 만나러 가는 나에게 있어서 이런 이야기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당최 그것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구체가 더 이상 깜박이지 않자, 다시 그것을 본래 위치에 올려 놓았다. 이후, 그 나는 잠시 근처에서 지켜보며 케레브 족 사람들 중 누가 가져갈 것인지를 보려 하였으나,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 구체의 존재를 케레브 족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듯해 보였고, 어쩌면 구체에서 들려온 목소리 역시 나의 귓가에서만 들려왔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잠시 구체를 지켜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할 즈음, 그런 나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목소리로 이전에 유적의 길목 한 구석에서 만났던 바로 그 정체 불명의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아아, 누군지 알겠군, 이전에 만났던 그 사람이지? 참 뻔뻔하기 이를데 없군.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버젓이 케레브 족 사회에서 한 바탕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인지."
  아무래도 그 사람의 눈에는 내가 본래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검은 기운에 둘러싸인 나의 본래 모습으로 보였을 것으로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보인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로브와 가면으로 몸을 감추고 있는 그 존재가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반갑다, 한창 급하게 어딘가로 가고 있는 모양인가 본데, 아마도 신전이겠지, 신전에서 누구를 만나기를 원하나?"
  그리고서 그는 자기 생각으로는 내가 '교주' 라 칭해지기도 하는 케레브 족 수장을 만나려 할 것 같다고 말한 이후에 대체 교주를 만나서 무엇을 할 생각인지에 대해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교주를 만나서 내가 할 일을 두고 자신이 뭔가 판단을 내릴 필요가 생겼던 모양.
  그러한 그의 물음에 나는 바로 내가 생각했던 바를 그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교주' 라 칭해지는 케레브 족의 수장을 만나고, 현 상황을 이용해 그의 충동을 이끌고, 이를 통해 그 수장이 유적지 내부의 모든 케레브 족 사람들을 끌어 모으도록 할 생각이 있음을 밝히고 있었다. 행여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음으로, 해당 이야기는 최대한 조용히, 그 존재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를 내며 전하려 하였다.
  "간단히 말해, 그 '교주' 가 집회를 시행하도록 할 생각인가 보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존재는 나에게 내 생각에 대해 바로 물음을 건네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이후, 나는 그와 동행을 시도, 그에게 신전 구역으로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그러면서 그에게 우선 신전 근처까지 같이 가도록 할 것을 요구하니, 이러한 나의 요구에 그 존재는 "좋다." 라고 답을 하고서 나와 동행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그 존재가 나의 좌측 곁에 이르면서 이후, 나는 길의 좌측을 따라 그와 나란히 동행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너와 같은 존재와 이렇게 동행을 하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군, 이러한 동행을 자주 해 본 적이 있나?"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그 자는 어떠한 대답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신전 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나의 눈앞 풍경은 여러 건물들로 둘러싸인 큰 길에서 분수가 자리잡은-하지만 유적지라 그러한지 가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거대한 원형 광장 구역, 그리고 다시 건물들로 둘러싸인 길목으로 계속 변해가고 있었으며, 같아 보이는 구역이라도 조금씩 다른 특성이 나타나고 있었기에, 본래 도시 구역의 모습이 생각 외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동행을 이어가는 동안 그 자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혹시 '그 자' 를 만나본 적이 있나?"
  이 물음에 나는 그 자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목소리가 사뭇 다른 이를 만났다고 말하고서 그는 자신에 대해 '교주' 를 따르지 않고, 계약에 의거해 케레브 족 전체의 수장인 '포레 느와흐' 를 따르고 있을 뿐으로 다만, 그의 명령에 의해 '교주' 를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였고, 그러면서 '교주' 의 수상한 행위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해 주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 자에게 혹시 이전에 만난 자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자, 그 자가 바로 답했다.
  "어느 정도는, 교주가 집회를 개최할 시의 주문과 사람을 신전 안으로 들여보낼 때의 주문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
  길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역시 '교주' 의 행위와 신전 내부의 실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던 모양. 그렇게 문답을 하고 난 이후, 나는 이전에 만난 자에 대해 자신은 용병으로서 계약을 통해 케레브 족을 따르게 되었다고 말했으면서 헤어지면서는 나에게 케레브 족에게 위험을 불러오는 행위를 가하면 그 어떤 행위를 하든 간에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을 해서 마치 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그 자가 케레브 족의 세뇌를 거쳤을 것이라 여기었음은 그 때였지."
  그리고서 그 자에 대해서는 이번의 일이 끝나고 나면 더 이야기를 할 것임을 밝히고서, 해당 사항에 대해서는 일단 뒤로 미루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면서 발걸음을 계속 옮기니 어느덧 신전 그리고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직까지는 평시 상황이었으므로 성벽의 문은 개방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이 성벽 주변 일대를 오가는 모습이 간간히 보였다. 다만, 성벽 내부는 신전 구역으로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었는지, 성벽 내부를 오가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었다.
  "이제 교주를 만나,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군, 그렇지 않나?"
  신전 바로 앞의 성벽, 그 앞의 광장에 이르러 잠시 멈추는 순간, 그 자가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후, 그 자는 가만히 성벽을 바라보더니, 나를 앞질러 나아가서는 나에게 성벽 이후로는 자신에게 맡길 것을 권했다. 그리고서 그 자와 자신을 비롯한 용병들은 정보 요원으로서 케레브 족의 수장, '교주' 의 측근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래서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교주' 의 영역인 신전 구역을 자유로이 출입하고 그에게 의견을 타진할 수도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난 이후, 나는 잠시 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가 그 이후에 주변 일대를 둘러보기 시작햇다. 광장 구역이라고 했지만, 성벽이 위치한 그 주변 일대가 아닌 좌측의 길목에는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 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은 문이 열려 있기도 했다. 아마도 저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을 것임이 틀림 없었고, 그래서 그 내부로 들어가면 일단은 숨을 수 있어 보였다. 그래서 앞장서 나아가려 하는 그에게 이렇게 제안을 하였다.
  "아니,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저기 저 왼편의 열린 문 보이나? 그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이러한 나의 제안에 그 자는 잠시 나를 의심하는 듯해 보였으나, 이후, 그는 마지 못한 듯, 그 열린 문을 향해 나를 따라 나아갔다. 그가 나를 따라 나아가는 동안 내가 앞장서 나아가고, 그 자가 그런 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그 동안 그가 나에게 무슨 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소 불안해 했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보거나 할 수는 없었으니, 그가 나를 두고 내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었고, 그래서 협력을 해 주지 않을 수 있다고 여기었음이 그 이유였다.
  해당 건물은 창 하나 없었다, 창이 있기는 하였으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창 부분이 바위로 막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문 너머는 칠흑처럼 어두웠으며, 문 너머의 빛에 의지해 그 내부를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내부는 공허했지만, 허름하지는 않았다. 그저 텅 빈 공간이었을 뿐으로, 다만, 좌측의 내벽 한 곳에 문 하나가 자리잡고 있어서 건물이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문은 좌측으로 열려 있었으니, 문은 -입구 방향 기준-좌측 부분에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일단 같이 들어가자." 공간 내부를 확인하고 나서 나는 바로 건물 내부로 나아가 젖혀진 문 안쪽으로 들어갔으며, 그 이후로 그 역시 따라 들어가도록 하였다. 이후, 나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나를 따라 들어온 그 자를 향해 돌아서서 그에게 물었다.
  "등불 역할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순찰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둠 속에서 앞길을 밝힐 수 있는 수단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라 여기며, 건넨 물음, 그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바로 자신의 오른 주머니를 오른손으로 뒤지더니 그 손에서 무언가를 보였다. 마치, 광검(Vicasabr') 의 자루처럼 보이는 도구로 그 자는 그 한 쪽 끝이 나를 향하도록 하더니, 자루의 한 부분을 엄지 손가락으로 눌렀고,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해 하얀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하였다. 광검의 자루처럼 생긴 것은 다름 아닌 손전등(Sonlampa) 으로서, 그 전등의 빛이 다가오는 순간 잠시, 눈이 부셨지만, 곧 적응되었다.
  "그렇군." 이에 나는 예상대로라 생각하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서 그에게 제안을 하였다, 조금 심각한 제안일 수도 있으므로 제안을 듣고 나면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 여부를 확실히 해 주길 바란다고 다소 엄포를 놓는 듯이 말하기도. 이에 그 자가 대체 무슨 제안이기에 그러하느냐고 묻자, 내가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대신해 말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어, 그리고 벗은 옷을 나에게 넘겨."
  "그 옷을 입은 생각인 것인가."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자는 내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바로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옷을 벗어서 넘기면, 나 역시 옷을 입으면서 내가 입었던 옷을 넘기도록 하겠음을 밝히고서 우선 그가 옷을 넘길 필요가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손에 도구를 든 채, 팔짱을 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서는 나에게 말했다.
  "손전등은 넘기지 않겠어, 어둠 속에서 눈 앞을 볼 필요는 있으니."
  이에 나는 좋다고 답을 하였고, 그제서야 안심을 했는지, 그는 손전등을 오른손에 든 채, 왼손으로 문고리를 돌려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는 옷을 벗어줄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서, 입은 옷을 보니, 체격이 맞지 않을 것임은 확실해 보였음을 그 이유로 밝혔다. 어차피 입지도 않을, 아니 못할 옷을 받아줄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옷은 확실히 건네주겠음을 밝히고서, 그 이후에 열린 방문을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았다.
   이후, 잠시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보아, 그가 정말로 옷을 벗고 있었음이 틀림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당연하겠으나, 그 의도는 장난 겸 구경이었다-,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자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기어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살짝 열리면서 그와 동시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맨 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맨 손에는 대충 접힌 로브와 가면이 놓여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보자마자 두 손으로 로브와 가면을 받아 들었다. 그 이후, 나는 우선 가면을 바깥 쪽이 바닥을 향하도록 내려놓고, 로브를 입고, 두건을 내려쓴 이후에 바닥에 내려놓은 가면을 써서 얼굴을 감추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좌측 벽면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니, 내가 옷을 건네 받았음을 확인하자마자 재빨리 문을 닫고, 문도 걸어 잠갔을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가 옷을 벗은 이후로는 그에게서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 대신 내 목소리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변조되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로브 혹은 가면에 음성 변조를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

  그렇게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사제복 차림-일반적인 로브와 다른 외견의 로브와 가면-을 한 케레브 족 사람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하는 그는 분명 건물 안으로는 두 사람이 들어갔는데, 나가는 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고 말하고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 자는......." 이후, 나는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그에게 말하려 하였다.
  "그 자는 술법으로 케레브 족으로 위장한 아르사나였습니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자마자 그는 바로 건물 안쪽으로 도망쳤고, 문을 잠갔습니다. 보통 위험 인물이 아닌 관계로 일단은 전사단 그리고 사제단의 여러 사람들이 제압을 위해 나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탕이 달라진 이상, 변조된 목소리라 하더라도 목소리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케레브 족 사제는 이러한 목소리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그는 바로 나에게 알았다고 답을 하고서, 하나의 말을 알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교주님으로부터 전할 말씀이 있다. 최근, 시가지의 서부, 동부 구역이 잇따라 함락되고, 엘베 족과 마녀 집단이 신전의 성벽 동부와 서부에 이르렀으며, 그 위기로 인한 비상 집회가 개최될 예정이 있다. 케레브 전 주민이 빠짐 없이 참석할 예정이며, 사전에 '교주' 께서 측근의 사제들 그리고 순찰대원들에게 건의 사항을 받는다고 하니, 건의하고 싶은 바가 있으면 '교주' 님을 만나러 가 볼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이에 나는 바로 알았다고 답을 하였고, 이후, 케레브 족 사제는 다시 신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변장을 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신전으로 나아가 집회 준비를 위해 나섰던 모양으로 나는 그가 떠나자마자 그를 따라 나서는 듯이 큰 길로 돌아갔다가 그대로 멈춰, 그가 나의 시선에서 한참 멀어져 보이지 않을 정도에 이르자 천천히 앞길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이전에 찾았던 감빛 구체와 같은 나만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려 하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그 때, 어딘가에서-아마도 내 오른팔의 팔찌였을 것이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르사나 님,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그간 들려오지 않았던 소르나(Sorna) 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서 나에 대한 걱정이 드러나고 있었던 모양으로, 유적지를 향했을 나의 행보에 대해 혹시나 싶은 생각에 내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물음을 건네지 않았나 싶었다.
  "지금 길 위에 있어, 신전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야."
  이 당시에 나는 어디에 음성 변조 장치가 있는지 파악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가면을 쓴 채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하였다. 당연하게도 소르나에게는 변조된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것이고, 그래서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소르나는 바로 당황하며 물었다.
  "누구시지요? 어째서 그것을......!"
  그가 오해하고 있음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우선 가면을 왼손으로 살짝 들어내며,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바로 내 본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르나 역시 마음을 놓은 듯, 다시 밝게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다행이네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 당신이었네요. 변장하신 것이지요?"
  소르나는 변조된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케레브 족의 전사로 변장했으리라 짐작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음을 건네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내 소재와 내 상태를 확인시키고 난 이후, 나는 다시 가면을 쓰고 변조된 목소리를 내며 신전으로 나아가며 교주를 만나러 가는 길임을 밝히고서, 그에 이어 교주로 하여금 그가 신전 내부로 케레브 족 전체를 끌어 들이도록 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어 밝혔다. 그리고,
  "이전에 케레브 족 용병으로부터 유적 그리고 신전 내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유적으로 자리잡은 고대 도시 전체가 실은 옛 문명의 실체를 위한 '덮개' 에 불과하고, 북쪽에 위치한 신전 내부, 그 안쪽은 옛 문명의 흔적, 그 중심부로서, 그 중심에는 '교주' 가 말하는 '어둠의 태양' 이 자리잡고 있다는 거야. '교주' 는 그 '어둠의 태양' 을 신으로 받들고 있으며, 집회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서 케레브 족 사람을 한 명씩 신전 내부로 '어둠의 태양' 을 영접하도록 들이지만 들어간 이들의 모습을 그 이후로는 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아요, 그 신전의 안쪽에 관해서는 저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아마 어렸을 적에 아르사나 님도 들어보셨을 텐데."
  "내가?"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야기 도중에 소르나가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그런 그에게 물었다. 그 동안 나는 길의 왼편, 그 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의 우측 외벽 부근에 서 있으면서 그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목소리를 작게 내고 있었으니, 행여 들킬 우려가 있었음이 그 이유.
  "아르셀 님께서 그러하셨어요, 예전에 저에게 가르침을 주실 때, 아르사나 님께도 그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으셨다고 하셨어요."
  어머니께서 그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그 이야기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감히 나 혹은 소르나에게 거짓말을 하셨을 것 같지는 않았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그 이후로 이런저런 일들을 거치면서 내 기억에서 없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이제는 저 하늘의 존재들만이 알 일이겠지. 그래서 나는 그에게 어머니께서 하나야스의 유적 내 신전 건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간략하게 알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조금 있다가 제가 당신께 선물 하나를 보내 드릴게요, 그 선물을 열어보시면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대답을 대신해 소르나는 나에게 선물 하나를 보내줄 것이며, 그 선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고, 그 이후로 더 이상 그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작전 수행 중이었고, 그래서 발각이 우려될 수 있는 상황 하에서 함부로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으려 한 모양으로 나 역시 그것을 의식해 어머니 그리고 그의 대화 내용에 대해 간단히 알려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가 어떤 선물을 보내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나의 바로 앞쪽 바닥에 하얗게 빛을 발하는 구체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나는 구체를 주워서 오른손에 올리는 순간, 그 빛이 환한 빛을 주변 일대로 퍼뜨리며 사라지더니, 이어서 어딘가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미시의 유적은 고대 도시가 아니라고요? 그것이 무슨 말씀.......
  다소 놀랄만한 말이었나 보네, 이제 시작일 뿐인데. 하미시의 장대한 고대 유적은 그 자체도 오래된 유적지이기는 하지만, 도시라고 할 수는 없어, 그야말로 도시의 모습을 가장한 구조물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고대 도시일 수는 없다는 말이란다.
  그 유적지는 어떻게 보더라도 도시의 시가지 모습을 하고 있잖아요, 왕궁 그리고 신전으로 추정되는 구조물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 유적지는 어떠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좋은 질문이야. 하미시 산의 유적지, 이 세상이 새로이 시작될 때부터 산에 자리잡고 있던 유적지는 사실, 그 아래에 잠든 과거의 도시를 매장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묘소(Mausolea)' 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란다. 그리고 시가지는 옛 도시의 '석관' 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지.
  그렇다면 진정한 고대 도시는 시가지 아래 지하에 자리잡고 있을...... 그것보다 묘소라고요? 그렇다면...... 그 유적지를 만든 이는 옛 도시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래, 일종의 봉인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 신전은 그렇게 시가지라는 이름의 거대한 '석관' 에 봉인된 진정 고대 도시로 들어서기 위한 거대한 통로라 할 수 있는 구조물이라 할 수 있어.

  처음 들려온 어린 소녀의 목소리는 소르나였을 것이다, 그와 어머니가 하미시 산의 유적지, 당시의 일행이 위치하고 있었을 그 유적지에 관한 대화로서, 당연하게도 두 번째로 들려온 젊은 여성의 목소리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소르나(로 추정되는 소녀) 에게 유적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거리를 나아가면서 마주했던 그 자에게 들은 바대로, 유적지는 진짜 옛 도시가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다만, 그 자는 단지 지하의 실체를 모른 채, 유적지를 '덮개' 라 칭했고, 어머니께서는 소르나에게 그 아래에 옛 도시가 있고, 고대의 유적지는 그 도시를 봉인하기 위한 일종의 석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나름 자세히 말해주고 있었다는 차이 정도는 있었다.

  그렇다면 유적지를 건립한 이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옛 도시를 덮으려 했을까요, 옛 도시에서는 드러나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있기라도 했나요?
  그것도 좋은 질문이란다, 신전 바로 아래 쪽, 그 깊은 바닥에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어. 본래는 아마도 도시 내에 설치된 인공 연못이었겠지. ...... 그 인공 연못이었을 거대한 못에서부터 거대한 어둠의 힘이 감지되고 있었어, 그 아래에 강대하고 위험한 어둠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거야.
  거대한 어둠이라고요? 어둠의 힘이 자리잡고 있는 연못이라면....... 아르데이스 성계 엘베 족의 영역에 자리잡은 나무 앞 연못과도 같은 것이려나요.
  어쩌면 그러하겠지, 생성 과정도 비슷할 거야, 엘베 족의 영역에 있는 '생명의 연못' 은 나무 앞 연못에 생명의 힘이 응집하면서 빛과 생명의 힘이 깃든 깨끗한 샘이 된 것이고, 그 유적지는 부패한 물에 어둠의 힘이 응집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어둠 덩어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그 연못으로 거대한 어둠의 힘이.......

  이후, 어린 소르나의 목소리가 질문을 막 건네려 할 즈음, 이전에도 들려왔던 그 날카롭고 거친 소리가 반복되더니, 이어서 이번에는 어떤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물음을 건네는 듯한 목소리였다.

엄마, 오늘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나야스라는 곳에 있는 어~엄청 큰 피라미드에 들어가면, 커~다란 괴물이 있어서 그 괴물한테 잡아 먹힌대요~.
그래? 세상에~ 그렇다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위험하겠구나~. 그렇다면, 그 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저도 잘 몰라요. 그런데, 그 괴물은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고, 사람을 잡아먹을 때마다 몸이 커져서 더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으려 한대요.

  "이것은 내 목소리인데!?"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름 아닌 어린 시절 내 목소리였다. 어린 시절의 내가 어머니께 마을의 아이들에게서 들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을 당시의 대화였겠지만, 나의 기억에는 그 당시에는 없었던 이야기였다. 그 짧은 대화 이후, 다시 한 번 거친 소리가 이어지다가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어머니의 대화로서, 이번에는 어머니의 목소리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늘, 어제 네가 해 주었던 그 무서운 이야기를 나도 들었단다, 생각 외로 엄청 무서운 괴물이란다. 사람을 잡아 먹으며 몸이 커지며 괴물은 더 많은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깨어나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간대, 그렇게 되면 하늘은 어둠으로 물들고, 무서운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게 된단다.
  그렇다면, 맞서 싸워야죠!
  하지만 괴물이 깨어나면 엄청나게 무서운 모습을 보이게 된대요, 자신이 잡아먹은 사람들의 해골을 보여줘서 살려달라 소리치게 만든대, 괴물은 잡아먹힌 영혼들을 괴롭히며 살라달라고 소리치게 만들면서 자신과 싸우려 하는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면서 잡아먹으려 하는 거래요. 이렇게 무서운 괴물이 깨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신전에 사람들이 들어가면 안 돼요!
  그렇지, 착하다, 우리 아기~. 그런데, 있잖아, 내 아기를 가만히 보니까 말야, 너는 자라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엄마보다도~ 할머니보다도~ 더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서 그 괴물을 물리치고, 괴물의 몸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줄 수 있을 거란다.
  엄마, 정말이에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엄마만큼은 내 딸이 그런 용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어린 나를 격려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 더 이상 대화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쩌면 삶을 이어가면서 잊혀졌을 기억, 그 기억을 끄집어 낸 대화를 듣고 나며, 나는 신전 내부의 실체, 그리고 케레브 족의 수장인 '교주' 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신전 내부에는 거대한 '어둠의 힘' 이라 칭해지는 '괴물' 이 잠들고 있고, '교주' 는 자신의 사람들을 '괴물' 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으며, '괴물' 을 깨우는 것으로써 재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교주' 가 남은 케레브 족 전원을 '괴물' 의 제물로 바쳐 '괴물' 을 깨우는 일로서, 그렇게 된 이상 나는 '괴물' 과 맞서야 했다. 본의 아니게 동료들은 물론, 세상의 사람들까지 큰 일에 휘말리게 할 수 있었기에,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서는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땅 속 깊은 곳에 숨은 존재를 언제까지 땅 밑에 묻어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언젠가, 누군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끄집어 내어 일소해야만 했다. 아마도 내가 아니면 이 세상의 다른 누군가가, 혹은 내 후대의 누군가가 해야할 일이었다.
  '내가 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에게 미루는 것과 같아. 그것만큼은 있어서는 안 돼.'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일을 남에게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줄곧 받아왔고, 나 역시 그것을 원치 않았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한다는 생각,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두려 하였고,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그간 4 곳의 괴물들과 맞서서 결국 이겨내 왔음을 떠올렸다. 그들 모두 일대에서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으로 어쩌면 피라미드에 숨은 그 존재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시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려 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과 내 마음 속에서 그간 잘 해 왔고, 이번에도 같을 것이라는 전망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어 마음 속에 자리잡도록 하려 하였다.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타나면 나타나 보라지.'
  그러면서 나는 다시금 발걸음을 크게 일으켜 가능한 빨리 신전을 향해 나아가려 하였다. 앞 일에 대한 우려와 기대감이 신전을 에워싸는 성문에 접근해 가는 나의 마음을 오가는 동안 성문 앞을 지키는 케레브 전사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용무로 이 곳으로 오셨습니까."
  "교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 분께 간곡히 전해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내 외견을 보면서 정말로 나를 교주의 측근으로 여기고 있었는지, 아니면 교주의 측근 경비대라 그러하였는지, 그 케레브 전사는 생각 외로 정중한 어조로 나를 대했고, 이러한 그에게 나는 교주를 만나러 왔다고 화답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있을 일에 대한 우려로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 경비는 더 이상 나에게 물음을 건네거나 하지 않고, 곧바로 나에게 통보하였다 :
  "좋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 통보와 함께 양 옆의 경비대 전사들 모두가 좌우로 물러나면서 길을 비켜주니, 이에 나는 다른 말 없이 그들을 지나치고 문을 통과해서 신전 구역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드디어 그 거대한 신전을 눈앞에 마주할 수 있는 곳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두 번째 성벽을 지나 들어온 구역, 해당 구역에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분명히 그 모습을 드러날 정도로 거대한, 도시 유적에서 가장 큰 유적지인 7 층 피라미드가 자리잡은 곳으로서, 그 높은 피라미드가 중심이 되는 구역이었다. 거대 피라미드를 향해 이어진 길의 구역 입구 쪽 양 옆 부근에는 마치 회랑에서처럼 기둥들이 나란한 대열을 이루면서 자리잡고 있었다. 그 끝 부근에 피라미드가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구역은 피라미드를 향하는 거대한 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하나씩 반원형 광장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각 광장마다 중심에 하나씩 거대한 기둥이 자리잡고 있어서 광장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정면에는 거대한 계단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해당 계단은 중앙 즈음에 위치한 작은 공간을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5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어 보였던 계단의 좌측과 우측에는 한 명씩 경비대 전사가 창을 든 채 나란히 서 있었으며, 중간 부분의 공간에도 좌우마다 3 명씩 나란히 케레브 경비대 전사가 창을 들고 서 있으면서 삼엄한 경비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계단의 끝 너머에 위치한 문은 피라미드의 최상층부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본래는 황금색으로 칠해진 건물임을 알리기 위함인지, 그 정문만큼은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역 내부에는 케레브 족 사제들 그리고 경비대 소속 전사들만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집회 시간이 아니어서 그러한지, 그들은 기둥의 사이마다 한 명씩 서 있는 경비대 전사들과 피라미드의 계단을 지키고 있는 경비대 전사들, 그리고 계단 바로 앞에 자리잡은 몇 명의 사제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자유로이 행동하고 있었다. 한 지점에 머무르는 이들, 광장 일대를 오가는 이들의 모습과 더불어 구역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내가 만나고자 했던 이는 '교주' 로서 케레브 족의 수장이기도 한 인물,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분명 보통 케레브 족 사람들과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며, 길을 따라 나아가 피라미드의 바로 앞에 이르려 하면서 그 모습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피라미드의 계단 바로 앞에 머무르는 사제들 사이로 거대한 뿔이 양 옆에 달린 것처럼 생긴 거대한 모자-혹은 투구-를 쓴 검푸른 로브 복장을 갖춘 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를 케레브 족 사제들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들과는 너무도 다른 체격으로 인해 금방 외견이 드러나고 있었다.

  입가를 제외한 머리의 대부분을 감싸며 양 옆에 뿔이 달린 듯한 형상을 갖춘 검은 투구를 쓰고, 검푸른 로브 위에 검은 흉갑과 견갑을 갖춰 입고, 양 팔에는 완갑을 끼고 있는 자로서, 신장부터 2 메타르가 넘어가는 체구의 크기부터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리고 있었으며, 투구 아래로 드러난 입가의 험악한 모습 역시 일반적인 케레브 족과는 달라 보여서 어쩌면 케레브 족이 아닌 누군가가 케레브 족의 영도자 혹은 교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오른손에 자신의 체격만큼이나 길다란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으며, 그 끝에는 거대한 검은 기운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검은 기운 덩어리처럼 보였으나,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구슬이 드러났다, 구슬에 검은 기운을 가득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험악한 외관과 달리 그는 차분히 자신을 에워싸고 있었을 사제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만 보고 있자면, 민담 등에서 등장하는 사교도들과 그 교주처럼 광기 어린 면모만 보이지 않으며, 상당히 이성적인 인물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계단 앞에 사제들과 교주가 자기들만의 토의를 하고 있던 그 때, 교주가 고개를 들더니, 사제들을 바라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용병 요원 중 하나가 짐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노라, 그 요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자 사제들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서, 바로 피라미드가 자리잡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길을 따라 나아가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들 부근에 서 있으면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만큼, 그 사제가 나를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사제가 나와 마주하자마자 나는 바로 눈치껏 교주를 중심으로 사제 무리가 모여있는 그 일대를 향해 나아가려 하였고, 이에 사제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더니, 그런 나를 이끌고 교주의 바로 앞에 이르렀다.
  "전 에레브 인의 지도자이시자 위대하신 '어둠의 태양' 을 받드시는 친애하시는 교주님이시여, 이 몸, 감히 교주님을 만나 뵙습니다."
  이후, 나는 거대한 체구를 갖춘 교주의 바로 앞에 이른 이후에 허리를 숙이며 깍듯이 예를 보냈다. 그 이후, 나의 앞에서 "고개를 들라!" 라고 무겁게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내 곁에 서 있던 사제로부터 "고개를 드시오!" 라고 나지막히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리니, 이에 나는 바로 고개를 들고 교주 혹은 수장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체격의 차이가 있다보니-교주는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훨씬 컸다-, 자연스럽게 나는 교주를 올려다 보고, 교주는 나의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런 구도는 교주에게는 결코 낯선 광경은 아니었을 것이니, 용병들과 마주할 때마다 늘 같은 구도로 마주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용병이여, 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짐에게 간곡히 전하고자 하는 바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에레브 아니, 케레브 족의 군주로 칭하고 있을 교주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부터 들려왔던 상당히 중후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천박하고 사악한 느낌을 주었던 여타 케레브 족 전사들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분명 정중함과 위엄이 느껴져야 할 목소리였으나, 사람들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사악한 존재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추악한 목적을 가지는  그의 그런 목소리가 그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고 있었다.
  "숨김 없이 말하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짐 앞에서 모두 털어 놓아라,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아니 되며, 만약 그대의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짐은 이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 교주에게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포를 놓고 있는 만큼, 확실히 이전보다는 위압감이 있고,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그의 부하라면 그 누구라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을 그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전하는 명령에 나는 바로 이렇게 화답하였다.
  "송구하옵니다만, 이제 교주님을 비롯한 신전의 여러분들 모두께 그 때가 왔음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미 들은 바 있도다, 도시의 서부와 동부 주요 거점은 행성계의 마녀들, 그리고 엘베 족 전사들에 의해 함락되었고, 여러 거점들이 함락되면서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목숨을 잃었고, 거점들을 잃으면서 그 무리는 성벽 근처에 머무르며, 호시탐탐 성벽을 함락시키고 신전을 점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더구나. 우리가 비상 집회를 개최함은 이러한 시국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함인 것이고!"
  때가 되었음을 알리려 한다는 나의 말에 교주가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도시의 서부와 동부에서 발생하는 행성계의 마녀들 그리고 엘베 족 전사들의 진공에 수많은 거점들이 함락되면서 그로 인해 수많은 동포들이 목숨을 잃고, 강력한 병기들 대다수가 소실되었으며, 그들의 가공할 힘이 성벽 부근에 도사리며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었으며, 사태의 심각한 전개 양상에 수차례 사제들 간의 비밀 집회를 개최하여 향후의 대책 방안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큰 진전이 없는 채로 비상 시국을 맞이하고 있다고 이어 말하기도 하였다.
  "때가 되었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때란 말인가!?"
  이어 교주가 건네는 물음, 그 물음에 나는 그 화답으로써 바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

  그들에 의해 자행된 도시 구역의 성벽 함락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옵니다. 수많은 우리 전사들과 비행 병기들에 의해 든든히 지켜졌던 성벽, 그 성벽은 결국 어찌되었습니까. 그들의 수는 매우 적으나, 그들의 힘과 기지는 우리의 수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사옵니다, 이 신전 구역의 성벽도 보다 많은 마법사들과 사제들의 비호 하에 지켜지겠습니다만, 종내는 도시 구역의 성벽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 성벽 뒤에 숨어있다 한들, 우리 모두는 결국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힘과 기지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 하나! 그들의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거대한 힘을 깨워내야 합니다! 우리의 신전 아래에 잠들고 있을 거대한 힘, 그리고 깨어나면 세상 모든 것을 뒤덮고도 남을 거대한 어둠의 힘, 우리가 제물을 바침으로써 조금씩 배양해 나아가고 있던 바로 그 힘입니다!

  "설마....... '어둠의 태양' 이라 일컬어지는 신전 내부의 힘을 말함인가!?"
  그러자, 이전까지는 근엄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던 교주로부터 경악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했기 때문일 것으로, 투구 아래에 드러난 입가의 표정은 변치 않았으나, 나의 이야기에 교주를 비롯한 사제들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퍼져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어둠의 태양' 이 이제 깨어날 수 있도록, 대량의 정기를 즉시 공급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신지는 이미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간의 의식을 통해 교주님과 사제 여러분들께서는 정기적으로 '어둠의 태양' 이 깨어나기 위한 정기를 양식으로서 공급해 오셨으니까요."
  "그렇게 했다만....... 용병이여, 그대가 말하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는 하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주님께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믿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 힘이 아니면 그들로부터 교주님 스스로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고. 어쩌면 교주님, 이번 일은 교주님의 염원이셨던 영원한 어둠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대의를 얻으신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 거대한 힘이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세상에 얼마나 큰 위협을 가할 수 있을지, 스스로의 눈으로 지켜보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서 나는 차분히 목소리를 이어가며, 교주를 향한 말을 이어갔다.
  "그릇에 물이 조금씩 채워지든, 한꺼번에 물이 쏟아져 그릇을 채우게 되든, 물에 그릇이 채워진다는 같은 결과가 나타나 듯이, 통상의 시간대로 몇 명씩 제물로 바치시든,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시든, 결과는 단 하나입니다, '어둠의 태양' 이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으로 과정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를 통해 모두가 염원하는 '확고한 미래' 가 보장될 수 있다면 거침 없이 시행하셔야 함이 옳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이후, 나는 조금 언성을 높여, 교주를 다그치는 듯이 말했다.
  "적들의 손아귀는 점차 우리를 옥죄오려 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머뭇거리고 있기만 하면 '확고한 미래' 는 찾아오지 않겠지요. 지금이라도 교주님의 빠른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얼마나 희생되든, 상관 없을 것입니다, 종족의 부흥은 '확고한 미래' 가 보장되는 그 때에 생각하셔도 될 일입니다."
  그렇게 그를 향한 발언을 마치고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교주의 바로 앞에 계속 서 있으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교주로부터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용병이여, 그대의 말이 옳다. 아니, 나와 사제들이 비밀 집회를 통해 추후 대책을 어떻게 논의하든, 애초에 우리들의 방향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어, 그대 용병의 지금 발언은 그것에 대한 확신을 일으켰을 뿐."
  그리고서 사제들을 향해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앞길은 분명해졌다, 이 중대한 시국에서 내가....... 우리가 할 일은 이 곳의 모든 에레브 인들이 '확고한 미래' 를 위해 같은 사명을 이행해 나아가는 것. 이제 이를 위한 집회를 개최하겠노라. 모든 이들이 '어둠의 태양' 을 일깨울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게 하겠노라."
  "그렇다면 이제 저는 물러나도 괜찮겠습니까?" 이후,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교주는 물러나도 좋다고 답하고서, 그에 이어 진정한 어둠의 힘을 목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서, 그 역할을 내가 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에게 드러내니, 이에 나는 "알겠습니다." 라고 화답하고서 정중히 예를 갖춰 인사를 한 이후에 "물러납니다." 라고 말하고서, 다시 교주 그리고 사제들에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고서 다시 허리를 들고 그들에게서 돌아서서 조심스럽게 신전 구역을 떠나려 하였다.
  이제 마지막 과정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러웠다, 행여 방심하다가 정체가 탄로나기라도 하면 곤란했으므로. 이러한 움직임은 내가 신전 구역과 도시 구역의 경계에 해당되는 성벽의 성문을 지나, 내가 그 용병의 옷을 받아서 입었던 그 건물에 이를 때까지 계속 되었다. 하지만 건물 앞에 이르렀어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니, 이러한 나의 모습을 수상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건물 부근에 머무르면서 신전 부근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려 하고 있었다.

(*) :
어둠이 있으라,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으며,
결국 모든 것은 어둠으로 돌아가나니,
결국 우리 역시 어둠으로 돌아가나이다.
위대한 어둠이시여,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그대의 양식으로서 바칠 것이니,
이제 그대의 힘을 깨우시어
세상이 그대의 힘과 권세를 두려워하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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