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시에 이르자마자 바로 북쪽 경계 지대에 자리잡은 경비대 본부를 거치고, 바로 글라이더를 타고 유적지로 나아갔기에 본격적인 시가지 구경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그래서 시가지를 돌아다닐 때에는 하미시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던 나에티아나의 도움을 받기로 하여 그가 앞장서 나아가고, 일행이 그 뒤를 따라가는 형태로 시가지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하미시의 시가지는 수많은 건물들 사이로 길이 나 있는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거대한 미로와도 같아 보인다고 하였다. 그 중심에는 '중앙 광장' 이라 칭해지는 원형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으로서, 수많은 공연들이 개최되는 곳이며, 그와 더불어 마을에서 개최되는 행사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인 만큼, 그 주변 일대에는 도서관을 비롯해 여러 찻집, 식당, 옷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였다.
나에티아나에 의하면 일행이 우선 가야할 곳이었던 시장 거리는 광장의 서쪽 길을 따라 나아가다 보면 갈 수 있으며, 건물들 사이로 벼룩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벼룩 시장이 있는 길목에는 상가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였다. 옷 가게는 주로 1 층에 자리잡고 있다고. 나에티아나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옷 가게인 '후아나 로사 레야(Juana Rosa Rella, Huana Rosa Reya)' 의 가게는 광장의 서쪽 길목 시작 지점에서 3 번째 상가 건물 1 층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생각 외로 멀리 있는 곳은 아니었던 것.
그렇게 길을 찾아 나아가는 동안 루이즈는 일행 중에서 가장 뒤쪽에 있었던 카리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하였던 것 같았으나, 카리나를 비롯하여 일행이 많이 격려를 해 주고, 사람들이 의외로 시선을 많이 주지 않아 처음 마을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별 문제 없이 거리를 돌아다닐 수는 있었던 것 같았다.
레야의 가게 이름은 현관문 위의 간판에 적힌 대로 '엘 호예리아(EL JOYERIA : El Hoyeria)' 로 그 뜻은 '보석(Lamiya)'. 그 이름을 지은 경위에 대해 나에티아나가 가게 주인인 후아나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후아나는 비록 가게는 소박한 곳이라 할지라도 거리의 작은 보석과 같은 곳으로 여기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작고 경우에 따라 초라해 보일 수 있을지라도 보석 같은 소중한 일터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현관문 너머로 옷들이 포개어진 채 가득 쌓인 진열대, 그리고 스카프(Mokhcan) 들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옷들이 잘 개어진 채로 채워진 옷장들로 가득한 작은 방의 모습, 그리고 진열대 왼편에 초록색의 긴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은 어린 소녀가 공손히 손을 모은 채로 서 있었다. 연두색 털옷과 하얀색을 띠는 길다란 나팔형 치마를 입은 이로서 머리에는 하얀 두건을 두르고 있었고, 어깨에는 연두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등에는 아기 주머니를 매고 있었는데, 주머니 안에는 아기 인형이 들어 있었던 모양.
"Bienvenidas! (어서 오세요!) 무슨 옷을 찾으시나요?"
"일단 옷이 급하게 필요하신 분이 계셔서 사 드리려 하는 거예요."
호예리아에는 내가 먼저 들어갔고, 그래서 가게 주인 레야로 추정되는 소녀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이후, 나는 소녀에게 옷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 옷을 사 주려 하는 것이라 답했다, 그리고 나와 동행하는 이들 중에서 모종의 사유로 인해 옷을 잃어버린 탓에 옷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마침 좋은 옷 가게가 있다고 해서 들어오게 되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옷을 잃어버리신 분이요? 지금 대체 어떤 지경이시기에......."
이에 소녀는 눈을 크게 뜨면서 대체 어떤 상태에 놓여서 옷이 필요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물으려 하였고, 이 물음에 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녹색 천을 두르고 있던 여성, 루이즈에게 다가가 그에게 소녀의 앞에 있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루이즈는 다른 말 없이 가게의 점원으로 추정되는 소녀의 바로 앞에 이르러서는 "안녕하세요." 라고 공손히 인삿말을 건네었다.
"어서 오세요, 옷이 필요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이에 소녀는 활짝 웃으면서 루이즈를 올려다 보며 말했고, 이어서 루이즈의 몸을 감싸고 있던 초록빛 천을 바라보더니, 그 천에 대해 임시로 마련된 것 같아 보인다고 말하고서 현재 외관의 상태가 어떠한지 한 번 보겠음을 밝히자, 루이즈가 당황하면서 말했다.
"저, 정말 여기서 이 천을 벗겨도 괜찮겠어요?"
"옷 마춤을 위해서는 일단은 대상의 몸 상태라든가 키를 비롯한 체형을 살필 필요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후, 소녀는 루이즈의 몸을 감싸고 있던 천을 향해 두 팔을 내밀어서는 거칠게 천을 걷어내려 하였다. 작은 체구였지만 팔 힘은 그에 비해 강해서 루이즈의 초록빛 천을 한 번에 벗겨 버리고, 그와 함께 속옷만 걸치고 있던 루이즈의 실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다 누가 보겠어요......!" 천이 벗겨지자마자 루이즈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면서 외쳤다, 이전까지의 고요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격한 목소리였던지라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나를 비롯한 주변의 일행 모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녀 역시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짐짓 당황한 것처럼 보였으며,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물론, 루이즈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가게 내부로 따라 들어와서는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던 카리나,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까지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레야 씨,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니, 아니, 그게......." 그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나에티아나가 그 소녀를 점원이 아닌 가게 주인인 레야(Rella) 로 칭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티아나는 천사인 만큼,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하였기에 어지간해서는 그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이는 이가 레야일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었다. 나에티아나에 의하면 레야는 오래 전에 가게를 물려 받은 이로서, 줄곧 시장 거리의 3 번 건물에서 옷 가게의 주인으로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보기보다 재치 있고 재미있는 일면이 많은 사람이라고.
나에티아나는 소녀를 레야보다는 후아나(Juana, Huana) 나 로사(Rosa) 로 칭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그의 이름을 로사로 칭하도록 하겠다. 로사도 루이즈의 모습을 보면서 몹시 당황했는지 말을 잘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나에티아나가 묻자 로사가 바로 답하니, 그간 살아오면서 자신도 처음 본 체형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체형을 가진 이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가게로 그 정도의 몸매를 가진 이가 들어올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우선 가슴 크기부터가...... 저 정도면 낮아봐야 에프(F) 급이고, 게(G) 나 아체(H) 급
(*) 에 이를 수도 있어요. 이 정도면...... 굉장히 큰 옷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적절한 옷이 없는 것은 아니겠죠?"
이에 내가 걱정의 심정을 드러내며 물음을 건네려 하였고, 이에 로사는 옷이 진열된 탁상의 뒤쪽으로 걸어 나아가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화답하고서 그에게 좋은 옷이라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걷다 말고 잠시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자주 말씀드리겠지만, 여기에는 없는 옷이 없어요, 저 분에게 좋을만한 옷이라면 얼마든지 있다고요."
그러더니, 다시 옷이 진열된 탁상의 뒤쪽으로 나아가서는 그 일대의 옷들을 잠시 둘러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진열대의 우측 뒤쪽-입구에서 보는 방향 기준-의 한 곳에 이르렀을 때, 무언가 괜찮은 옷 종류를 찾았는지, 잠시 옷을 둘러보다가 루이즈를 향해 돌아서더니, 이렇게 그에게 부탁의 말을 건네려 하였다.
"파란색이라...... 아아! 여기 좋은 게 있네요. 크기가 맞는지를 일단 확인해 봐야 하니까, 잠시 저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기본적인 상의, 하의는 물론, 스카프에 모자까지 확실히 준비해서 잘 입으실 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이에 루이즈는 그런 로사를 따라 입구 뒤쪽 건너편에 자리잡은 문을 향해 나아갔고, 이후, 로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런 그를 따라 문의 안쪽으로 들어갔고, 이후, 로사는 다급히 문을 닫았다.
"아체(Hache) 가 8 번째 글자니까......."
이후, 가게 안으로 조금 더 나아간 카리나가 자신의 가슴 쪽을 두 손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자신은 아(A) 급이라 칭해진 적이 있었다고 말하고서 그것이 가슴 크기의 최저 등급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다음에 그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아체 급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 거야?"
나도 사실, 감이 잘 잡히지 않기는 했다. 근래에 본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가슴이 크다고 알려진 이의 등급이 F(에프) 혹은 V(에브) 로 6 번째 등급이었고, 기록 상으로는 G(게) 혹은 Z(제) 라는 7 번째 등급도 거의 드물게 보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상의 등급으로 칭해질만한 큰 가슴은 세니티아나 이 행성계에서는 거의 보기 드물며, 엘베 족들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지라, 아체 등급은 정말 다른 세상의 존재 같아 보였다.
"잘 모르기는 해도, 너나 나의 수준 이상인 것만큼은 알았으면 좋겠다."
- 여담으로 세나와 소르나는 E(에), 나에티아나는 B(베) 등급, 세니아, 카리나, 프라에미엘은 A(아) 등급이다. 나는 가슴의 크기에 별 관심이 없기는 했지만 내 기억 상으로 내 가슴 크기는 C(체)/G(게) 등급 정도였을 것이다.
방으로 들어간 이후, 로사와 루이즈는 한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으며, 나와 카리나 그리고 세나와 나에티아나는 가게의 좌측 그리고 우측 통로에서 그저 문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일행들이 그렇게 그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 카리나가 일행의 모습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그냥 잠시 밖에 나가 있을까,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이 실은 지루하잖아, 그렇지 않아?"
"그렇기는 하지만요......" 이에 세나가 안 되는 일 아니냐고 물으며, 카리나의 행동을 만류하려 하였지만 카리나는 듣지 않았다. 사실 나도 지루하기는 매한가지여서 그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나에티아나는 세나와 함께 가게 안에 남기로 해서 나와 카리나만 가게 밖으로 나가 있게 되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흐렸던 하늘은 다시 맑아져 있었다. 건물들마다 자리잡은 등불 그리고 건물들 사이마다 자리잡은 등불들이 노랗게 빛을 발해 어둠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으며, 또, 시장 사이의 길 그리고 그 길 너머의 거리에 나란히 서 있는 가로등들이 노랗게 빛을 발하면서 어둠 속의 거리를 노란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모든 가로등들이 노랗게 빛을 발하고 있어서 이를 통해 '황금의 거리' 를 재현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하나야스(Khanayas) 지역 일대가 '금사 지대(Loramorey Eri)' 라 칭해진 적이 있었지? 금사에서 금(Lora) 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함이려나."
"그러하겠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미소를 띠며 그렇다고 답했다. 하나야스의 이명으로 '금사 지대' 라는 명칭이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 금빛을 띠는 모래(Loraficaen More) 가 자리잡은 해안이 있음 혹은 금과 모래(Lorasoeia More) 의 고장을 의미하는 것. 하나야스의 하미시 지역은 과거에는 고대 유적, 황금빛 문명(Loraficay Civilizatia) 이 자리잡은 곳으로서 하미시 근방의 유적 지대는 그 황금빛 문명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거리의 가로등들이 노란 빛을 발하여 거리의 야경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것은 그 '황금빛 문명' 을 기념하기 위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야스가 '금과 모래의 지대' 임을 상기시키는 일면도 있는 것이다.
"잠깐 저 거리에 있어 볼까, 어차피 구름도 거의 걷혔잖아."
시장 거리의 진입로 부근에 카리나와 함께 있으면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황금빛을 띠는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나의 왼편 곁에 있던 카리나가 나에게 제안을 하는 듯이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좋다고 답을 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쎄한 느낌이 들어서 선뜻 좋다고 답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거야?"
"그게 아니라......." 카리나의 의아해 하는 듯한 물음에 나는 그 때에도 선뜻 답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카리나 역시 루이즈가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었으니, 그런 몸매의 옷을 맞추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라 여기고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러면서 당분간은 안심하고 거리의 진입로 부근에 있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광장까지는 어쩐지 나아가서는 안 될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나에게 떠오르는 이가 하나 있어서 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보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으면 광장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이유를 말할 수 있기는 할 테니까.
"카리나는 세니아가 언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세니아?" 카리나는 세니아의 사정에 대해 잘 알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가능한 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은 갖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후, 나는 금방 올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지 않느냐고 카리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어쩌면 내가 예상한 바대로)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아무래도 무나일 쪽에서 많은 일들이 있는 것 같아, 아니면 샤르기아에서 잔느 공주님을 만나러 갔을지도. 그렇게 일이 있게 되면 세니아는 아무래도 다른 일은 쉽게 손을 대지 못하게 되니까......."
"연락을 해도 당장에는 닿지 않겠지?"
"아마도......"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 필요한 일이 생기거나, 다급한 상황이 생기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통신을 통한 연락을 하지 않으려 하는 세니아의 성격 상, 연락을 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터. 그렇게 카리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루이즈가 옷을 갈아입고 나면 광장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카리나에게 청할 무렵, 카리나의 왼팔에 걸린 팔찌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세니아에게서 통신이 왔나?' 그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즈음, 카리나가 통신에 응하였고, 들린 목소리는 카리나의...... 것이 아닌 세나의 것이었다. 로사가 루이즈의 옷을 마련해서 입혀본 것 같으니, 가게로 빨리 돌아와 달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어쩐지 쎄한 느낌에 광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었는데, 그 예감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로사의 가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를 따라 나아가면서 카리나가 물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더 멀리 나아가면 어쩐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
그 무렵, 가게 안에서는 로사와 루이즈가 이미 안쪽의 방 밖으로 나와 있었으며, 루이즈는 로사가 맞추었을 옷을 입고 있었다. 파란색을 띠는 특유의 모자, 푸른색을 띠는 스카프와 감색을 띠는 털옷, 그리고 검은 바탕에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긴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 눈앞에 다시 나타난 루이즈의 옷차림은 대략 이러하였다. 파란 모자는 마치 머리를 큰 천으로 감싸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가운데 부분에는 여러 색들의 꽃들이 그려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고대보다 먼 옛날, 산악 민족의 전통 모자로 로사에 의하면 머리를 묶어 올린 이후에 머리에 모자를 쓰는 것이 전통 모자를 쓰는 방식이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생략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다만, 루이즈의 경우에는 머리카락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그것과 관계 없이 생략했다고 한다.
모자가 다소 특이한 구조를 띠고 있었는데, 마치 네모난 천을 머리 혹은 원통을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모자에는 턱끈이 달려 있어서 턱에 턱끈을 걸치는 것으로서 모자를 고정시킬 수 있었다. 루이즈의 그 모자도 색깔 등만 다를 뿐, 모양새는 같았다. 이렇게 챙이 넓은 모자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햇빛을 가로막을 수 있어서 양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산 이외에도 너무 밝거나 뜨거운 햇빛을 막기 위한 양산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이러한 양산은 평지대에서는 평상시에는 그렇게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햇빛에 더욱 강하게 노출될 수 있는 고산 지대라면 양산과 같은 햇빛을 막아주는 물품은 거의 필수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이 모자는 그러한 고산 지대에 걸맞는 물건이라 할 수 있겠다.
로사와 루이즈는 입구를 등지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편에 있었으며, 세나와 나에티아나는 건너편에 루이즈가 옷을 입은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루이즈는 처음에는 평범하게 서 있다가 로사가 양 팔을 양 옆으로 벌려 달라는 부탁에 그대로 양 팔을 벌리는 자세, 그리고 치마의 양 끝 부분을 한 손으로 살짝 들어올리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두 번째 자세 때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허리를 살짝 굽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자세는 당시 가게에 있던 나와 카리나, 세나 모두 한 번씩은 해 본 적이 있었다고-. 스카프부터 치마까지 체형 때문에 옷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 정도면 옷 크기도 잘 맞고, 본인에게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물론, 흉부 부분의 옷을 맞추는 것이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었겠지만 의외로 로사에게 있어서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어때요? 옷은 딱히 문제가 있거나 하지 않지요?"
"예, 괜찮아요." 이에 내가 바로 그렇게 답을 했고, 이에 로사는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옷인지라 옷을 만들고, 입히며 보여주는 과정에서 그 역시 나름의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부담을 그 한 마디 말에 떠나 보내면서 그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아 보이기도. 그렇게 부담감을 한 번에 마음 속에서 털어버렸을 로사는 이후, 루이즈가 내 곁으로 돌아올 무렵에 나와 카리나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두 분께서도 옷을 입어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이후로 로사는 다른 이들도 옷을 입어보기를 원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대상은 나와 카리나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세나, 나에티아나는 어쩐지 옷을 입어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더니, 그는 입구 근방에 있던 이들 중에서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잠깐 이리 와 보세요, 저희 옷이 충분히 잘 어울리시는 분 같아요."
"저요?" 로사가 우선 나부터 와 줄 것을 요청을 하자 나는 바로 당황하면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먼저 거기서 무언가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그러면서도 딱히 나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로사의 부탁을 따라 주기로 했다.
"우선 이것부터 입어 보세요."
로사가 우선 가져온 것은 루이즈가 입었던 것과 같은 겉옷으로 내가 입었던 것과 같은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제비꽃의 꽃잎에서 나온 색이라고. 그 겉옷을 입고 난 이후, 로사는 이어서 치마도 가져다 주었다. 감빛 바탕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그려진 화려한 무늬를 품은 나팔 모양의 치마로서 허리 둘레가 딱 내 허리 둘레만한 것이었다. 치마의 평균적인 허리 둘레 길이보다 다소 짧기는 했지만 그 정도면 통상적인 허리 둘레의 범위에 포함되기에 옷을 마련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고.
이후, 나는 로사가 요청한 대로 스카프도 둘러보고, 모자도 썼다. 모자는 나의 심상 색깔(ßïfica) 을 보라색(Fola) 으로 여기었기 때문인지, 모자, 털옷은 보라색이었고, 치마 역시 감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스카프는 하얀색에 가까운 밝은색을 띠고 있어서 보라색, 감색을 띠는 다른 옷차림과는 사뭇 대비되는 일면을 갖고 있기도 했다.
"손님께도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옷을 입히고 나서 보기에 참 마음에 들었는지 나의 모습을 보며 로사는 조용히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는 정말로 옷이 필요했던 사람에게 옷을 주는 일인 만큼 옷 값을 굳이 받지는 않겠음을 밝혔다. 옷 가게로 가면서 어떻게든 옷 값을 지불할 것을 각오했던지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더 이상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음에 대한 안도감과 더불어 왜 로사가 그렇게 힘들게 옷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려 하는데, 그 때, 로사가 나에게 말했다 :
"대신 한 가지 일을 해 주셨으면 해요. 이를 위해 이렇게 옷을 입혀드린 거예요."
"예?" 돈을 받는 대신으로 무언가 일을 해 달라, 로사가 원했던 바는 그것이었다. 물론 로사는 굳이 해 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가급적이면 그 일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으로 다소 미덥지는 않았지만 돈을 받는 대신이었던 만큼 로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옷을 입고 가게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보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카리나는 내가 로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겠음을 밝히는 그 때, 그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추측을 혼잣말로서 했다. 그러더니, 그는 나 혼자서 그 일을 맡게 될 것으로 여기고서는 나에게 밝게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내티 그리고 세나와 함께 밖에 있을게~."
그 순간, 로사는 가게 밖으로 나가려 하던 카리나의 모습을 보더니, 그 역시 불렀다.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외로울 수 있으니 동반자가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면서 그 역시 자신의 곁으로 오도록 하고서는 그 역시 스카프와 치마를 입혔다. 카리나는 나름 옷을 입고 있었던지라 털옷 만큼은 입히지 않았지만 치마는 덧 입도록 했다. 로사는 스카프가 중요하다면서 스카프를 어깨를 꽉 동여 매는 듯이 둘렀는데, 스카프의 왼쪽 어깨 부분에 인형이 튀어나왔다. 작은 인형으로 마치 아기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다.
"어떡하니, 나 혼자 수고할 것 같다고 생각했더니, 졸지에 애 엄마가 됐네."
나 혼자 일거리를 맡기고 도망갈 생각이었던 카리나가 하늘색 모자를 쓰고 스카프와 치마를 입으면서 아기 인형을 업은 모습까지 보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돌아서서는 그렇게 인형 아기의 엄마가 된 카리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게, 누군가 혼자에게 일 떠 넘기고 도망간다는 엉큼한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지~."
어떻게 생각해도 놀리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카리나는 이러한 나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놀리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으로 나에티아나와 세나 역시 카리나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저희들은 갈 게요~ 일 잘 하시다가 와요~."
이후, 세나는 나에티아나 그리고 옷을 제대로 입은 루이즈를 이끌고, 루이즈부터 밖으로 내보내면서 나와 카리나에게 작별의 인사말을 건네려 하였다, 두 사람이 가게 밖에서 모종의 일을 할 것으로 여기고 자신은 나에티아나 등과 함께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던 모양.
"세나는 왜? 너도 이 옷 한 번 입어 봐야지!"
하지만 아니 당연하게도 세나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루이즈를 우선 밖으로 보낸 이후에 나에티아나와 함께 가게 문을 나서려 하였다. 그러는 그 때, 로사가 세나와 나에티아나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거기 두 분, 두 분도 이리 와 보세요~."
나와 카리나가 시장의 진입로 부근에 있을 무렵, 세나는 나에티아나와 함께 루이즈의 옷 만들기를 막 마치고 루이즈에게 옷을 입히고 가게의 현관 쪽으로 나온 로사에게 다가가서 그가 옷 값을 받는 대신에 일행이 의상을 입고 무언가 일을 하기를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서는 그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온 두 사람과 다르게 가게 안에서 계속 기다려 준 자신과 나에티아나는 바로 가게를 나설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 로사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고, 그래서 세나는 자신과 나에티아나는 나와 카리나와 달리 로사가 의뢰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작 로사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후에 나와 카리나가 로사의 의상을 입어본 이후, 그런 그들 역시 나, 카리나와 다를 것 없이 옷을 입어보도록 한 것이었다.
"잠깐만요! 로사 씨! 이것은 약속이 다르잖아욧!"
"저도 사실은 두 분의 부탁을 들어드리기로 했습니다만, 옷을 입으신 남은 두 분의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서......"
나와 카리나가 언짢아하고 있으며, 아무래도 세나와 나에티아나까지는 나서야 그 심기가 풀릴 것 같아서 그랬다고 로사가 말하기는 하였지만 그러한 로사의 말을 세나는 믿어주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세나가 훗날 밝힌 바에 의하면 아무래도 로사는 들어주는 척하면서 일행 모두에게 옷을 입혀보려 했던 것 같다고. 나에티아나의 날개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오자마자 바로 날개를 감추었다, 날개가 있다고 우겨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던 모양.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세나의 스카프-은회색을 띠고 있었다-에도 아이 인형이 달려 있었다. 물론 카리나의 것에는 스카프의 왼쪽 어깨 부분에 달려 있었던 반면에 세나의 것은 오른쪽 어깨 부분에 달려 있었다는 차이가 있기는 했다. 그렇게 해서 네 사람 모두 같은 햇살가리개 모자와 스카프, 꽃 무늬 치마 차림을 하고서는 로사가 이끄는 대로 가게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 모자의 색은 나는 보라색, 카리나는 붉은색, 세나는 갈색, 그리고 나에티아나는 노란색이었다.
"여기서 얼마나 이렇게 있으면 되는 것이었지?"
"반 시간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어."
일행이 위치하고 있던 곳은 시장 거리의 갈림길 중에서 남쪽을 향하는 길모퉁이의 한 곳으로 갈림길은 진입로에서 다섯 번째 건물, 그 건너편에 있었으니, 세 번째 건물에 위치하고 있던 로사의 가게, '엘 호예리아' 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그래서 실제로 로사도 일거리가 없을 때에는 이 길목 일대를 돌아다니고는 했었다고 한다. 로사는 그 길목에 나를 비롯한 4 명의 일행이 30 분(= 반 시간) 동안 머무르도록 하였던 것으로 이후, 로사는 가게 일을 보기 위해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이 무렵, 벽에 달린 등불마다 발하는 노란 빛으로 인해 황금빛으로 물드는 거리에는 여러 사람들이 발걸음을 오가고 있었으며, 그 중 일부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나를 비롯한 일행을 발견하고서는 한 번씩 그 앞에 잠시 머무르다가 지나가고는 했으며, 그 때마다 가운데에 있던 세나, 나에티아나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한 번씩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드는 인사를 하거나 치마를 살짝 들고 허리를 굽히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나는 마침 세나, 카리나가 자세를 취해 주기도 했고, 어쩐지 부끄러워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르사나, 너는 세나나 내티처럼 자세를 취하지는 않는구나."
"응, 조금 부끄러워......" 카리나가 건네는 말에 내가 바로 답했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카리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더니, 그 정도로 부끄러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고서, 몸이 노출되는 옷을 입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카리나는 속옷 마냥 노출이 많은 옷을 입지 않는 한, 옷차림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한 적은 없었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입은 것이 노출이 많은 옷이 아니라도 부끄러울 수는 있잖아. 그건 그렇고, 카리나는 뭐 안 해? 부끄럽지 않다면서."
"...... 그냥 귀찮아서." 이에 카리나가 조용히 답했다. 그러는 동안 도시에 거주하고 있을 소녀들이 한 번씩 나를 비롯한 일행의 모습을 보고 반갑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고, 잠깐이나마 같이 있어주기도 했다. 다른 때에는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던 카리나가 그런 때 만큼은 자신들의 곁에 와 준 이들에게 다가가서 미소를 짓는 모습이라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할 때에는 별로 귀찮지 않은가 봐."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던 내가 그 광경에 대해 핀잔하는 듯이 말을 걸어 보았지만 카리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그 때, 길의 진입로에서 진입로를 드나드는 사람들 사이로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거리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과 케이프와 긴 치마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머리 뒤쪽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결코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아르사나, 저기를 봐, 저기."
"보고 있어." 그 무렵, 마침 사람들이 근처에 오고 있지 않아서 나름 여유 시간이 되었기에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카리나도 그 모습을 볼 것을 말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보고 있었고, 그래서 그 모습을 보라는 카리나의 말에 보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그 낯설지 않은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보면서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니아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큰 리본을 머리에 달고 있는 이는 그 이외에는 없어서 그렇게 처음에 다가올 무렵부터 세니아일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이가 정말 세니아였다.
"세니아잖아. 우연히 시장 거리를 들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세니아는 시장 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일대가 유명한 곳이다 보니, 한 번 정도는 들러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 그는 길의 가운데 부분을 따라 곧게 발걸음을 옮기어 가며 일행이 있는 그 근방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행과 가까워지면서 세니아의 모습이 더욱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보라색을 띠는 머리카락과 붉은 무늬가 그려진 하얀 옷차림, 그리고 붉은 무늬가 그려진 커다란 흰 리본은 확실히 다가오는 이가 세니아임을 알리고 있었다.
"잔느 공주님을 만나지는 못했나 봐."
"잔느 공주님께서 샤르기스를 들르셨다고 하더라도, 계속 샤르기스에서 중대한 일에 참여하시고 계실 테니, 아무래도 그 분을 만나는 것은 세니아 씨께는 힘든 일이겠지요."
당시, 세니아가 잔느 공주를 만나고 싶어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아는 바는 없었다, 이전에 언급한 바대로, 세니아는 성격 상, 연락을 잘 하지 않으려 하였던 만큼, 그는 다른 일행과 딱히 연락을 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연락이 없었던 만큼, 연락이 필요할 만큼 다급한 일을 겪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는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 이후로 일행이 자신들의 곁으로 다가오는 세니아에 대해 한 번씩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무렵, 어느새 세니아가 일행이 있는 그 근방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세니아는 자신이 나아가는 그 오른편에 모인 4 명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 이후 그대로 일행이 모인 그 너머로 나아가려 하였고, 세니아가 자신들을 알아보는 상황을 원치 않았던 모양인지 카리나는 그렇게 자신을 비롯한 일행을 지나쳐 가는 세니아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행을 지나쳐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세니아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나를 비롯한 4 인의 모습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다가 뭔가 알아차린 바가 있었는지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다시 오고 있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옆의 세나 등에게 이를 알리려 하였고, 이에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자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세나와 나에티아나는 춤을 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려 하였으며, 카리나는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이려 하였다. 나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이전에 세나, 나에티아나가 했던 것처럼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고 허리를 굽히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세니아로 추정되는 이가 일행이 있는 곳을 지나쳐 가거나 일행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 갈 길을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후, 카리나는 일행이 서 있는 일대를 향해 몇 걸음 더 나아가서 그 곳에 멈추어서 유심히 일행이 서 있는 그 일대를 바라보려 하였다. 또 고개를 몇 번 기웃거리기도 하였으니, 뭔가 알겠는데,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자세히 보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래도 저기에선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 같아."
"그런 것 같아, 이 즈음되면 어쩔 수 없으려나."
자세를 취하다 말고, 저편의 사람이 일행을 알아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건네는 말에 카리나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화답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걸어오면 일행을 확실하게 알아본 것이니,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때, 저편의 세니아로 추정되는 이가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카리나의 예상대로라면 이미 그는 일행을 알아보고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이니, 알아보지 못할 것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알아본 것 같아, 모르는 척은 그만 두자."
"어라? 세나잖아, 내티도 여기에 있네."
예상대로, 일행에게 접근해 온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세니아였다. 그는 일행에게 접근해 오자마자 바로 세나와 나에티아나를 알아보면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 그리고 카리나는 굳이 부르지 않았는데, 아마도 세나, 나에티아나가 있는 곳에는 당연히 나와 카리나도 있을 것이라 여기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그게...... 사정이 생겨서 그만."
세나, 나에티아나를 향한 세니아의 부름에 카리나가 대신 응했다. 그러자 세니아가 "그래?" 라고 되묻더니, 잠시 일행이 서 있는 일대를 둘러보다가 카리나를 보면서 하나야스 일대의 전통 의상 아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카리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그는 루이즈(Louise) 라는 이의 옷을 맞추기 위해 가게에 들러서 옷을 실제로 맞추기도 했었는데, 돈을 내는 대신에 가게 주인이 부탁할 것이 있다면서 전통 의상을 입게 하고서는 거리로 보냈다고 한다.
"돈은 받지 않아도 좋으니, 옷을 입은 모습을 거리에 보여달라, 라는 것 아니니?"
"그런 거지." 이후, 세니아가 웃음을 지으면서 묻자, 카리나는 나지막히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서 일행이 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기에 좋은 모델이 된 것 같다고 가게 주인, 로사(Rosa) 의 의도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에 세나는 "그래......" 라고 한 마디 말을 건넨 다음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카리나 그리고 나에티아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궁금한 것들이 참 많을 것 같아, 그렇지?"
"그렇지, 그간 헤어져 있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요청한 바를 모두 해 준다면, 샤르기아(Shargia) 에서 헤어진 이후부터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빠짐 없이 이야기 해 줄게. 물론, 내가 부탁한 바를 내가 원한 대로 잘 해 준다는 조건 하에서 말야, 하나라도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인 것은 알고 있지?"
"너, 설마......." 자신이 부탁한 바대로 행동해 준다, 라는 조건을 세니아는 참 악동스럽게 말하고 있었고, 그러한 그의 말투에 카리나는 바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지만, 딱히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의 말을 그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니?"
"흐음...... 여기를 떠나면 안 되는 것 같고....... 여기서 내가 들려주는 노래에 어울리는 춤을 추었으면 좋겠어."
그러더니, 세니아는 바로 긴 치마의 왼쪽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카리나는 바로 당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라고 말하고서 이어 뭔가 말하려 하는데, 그 때, 세니아가 씨익 웃으면서 이렇게 그에게 물었다.
"누가 보게 되면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그러더니, 세니아는 걱정하지 말라고 반 장난스럽게 말하더니, 이상한 노래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리코더 피리 (Jafiri) 였다. 통상의 피리보다 조금 더 길고 구멍의 간격이 좁아 여러 음계(=adr'sor, Oktav) 의 음을 낼 수 있는 피리로 그 피리를 두 손으로 들자마자 세니아는 일행이 서 있는 벽의 건너편 벽에 기대어 서고, 자신이 두 손으로 든 피리의 리드(Firide) 를 입에 대면서 피리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소리를 몇 번 내더니, 잠시 입에서 리드를 떼었다가 다시 입에 리드를 대고서 손가락으로 구멍들을 일정한 곡조에 따라 막아 가면서 음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잔잔하면서 밝은 곡조(Sorlukh, Melodia) 가 세니아가 두 손으로 든 피리를 통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다소 부끄럽기는 했지만 세나와 나에티아나부터 음악의 선율(Galak) 에 맞춰 나름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팔을 이용한 팔 동작에 몸을 흔드는 정도의 춤이 주가 되고, 가끔 빙글빙글 도는 형태의 간단한 춤이 부가되는 정도였지만-그 이상은 어떤 경우에도 할 수 없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좌우의 가장자리에 있던 나와 카리나는 두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작 위주의 춤을 추는 정도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았다.
세니아가 연주하고 있던 곡은 사실 가마일 산 천문대에 있던 소리판(Sorpan)-푸른색을 띠는 반투명의 소리판이었다- 에 수록된 곡으로 천문대에 있던 축음기를 통해 소르나, 레세타가 들려주던 음악 중 하나였다. 그 음악 이외에 몇 개의 곡이 소리판에 수록되어 있었는데, 세니아는 소리판에 수록된 곡들 중 하나를 리코더 피리를 통해 재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부끄럽거나 이상한 음악은 결코 아니었다. 세니아는 천문대에 있던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관악기(Valasortr') 들을 다룰 수 있었고, 그 악기들을 이용해 다양한 악곡을 들려주고는 했었는데, 그가 자주 연주하던 악곡 중 하나였다. 피리의 차분하면서도 아련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음색이 좋았던지라 세니아의 피리 소리는 일부로 요청해서 연주하도록 하지 않아도, 그가 연주할 때가 되면 들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때만큼은 평소 때와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춤을 추고 있다보니, 음악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나 갖고 있을 따름이었다.
처음 연주했던 곡은 비교적 짧은 음악이라 금방 끝이 나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그는 계속 음악 언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소리판에 수록된 곡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서 그 음악들을 전부 연주할 기세였던 모양. 다연하게도 건너편에 있던 남은 일행은 음악의 곡조에 맞춰 춤을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 시장 길목의 먼 저편, 서쪽 방향에서부터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다가오는 남성에게서 울려 퍼진 목소리로 결코 낯선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르사나 아닌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겐가."
그 남자는 다급히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일행들 중에서 가장 서쪽에 자리잡고 있던 나를 보더니, 나를 알아보고서는 나에게 다가오며 다시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춤을 추다 말고, 그를 보면서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됐다고 답했다.
"아르사나, 이제 그만들 하게, 무슨 사정이 생겨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
그 노인은 하미르(Hamir) 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알프레드(Alfred) 라는 이름의 노인으로 나와 오래 전부터 인연을 가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내 모습을 보더니, 뜻하지 않게 모종의 행사 진행에 참여하게 된 것 같다고 여긴 모양으로 나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말한 이후에 주변 일대를 둘러보면서 행사 주최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세니아의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고 그 때에 춤을 멈추고 현장을 보고 있던 일행들 중에서 세나가 3 번째 가게인 '엘 호예리아(El Joyeria)' 를 찾아가 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 부탁에 알프레드 노인은 바로 엘 호예리아의 현관문까지 다가가서 그 문을 열었고, 그 이후에 프레드가 그 문 너머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깐 시간이 지나고 전통 의상 차림을 한 루이즈와 로사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만 하시고, 가게 안으로 돌아오세요! 진작에 말씀하시지~ 진작에 끝내신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이후, 로사가 일행을 향해 다급히 다가오면서 가게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그는 20 ~ 30 분 정도 길 위에 있으면 될 것 같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일행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머무르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다급히 가게로 돌아와 달라고 다시 한 번 부탁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옷은 돌려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 입은 옷은 자신이 잘 세탁을 해서 다시 진열을 해 놓을 예정이라고. 이후, 가게에서 일행의 옷을 돌려받으며, 로사는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가게의 옷을 입은 모습을 잘 보여 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보면서 정말 좋은 모델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대에 잘 부응해 준 것 같아요."
로사는 일행이 길 위에 전통 의상을 입은 채로 이것저것 하는 동안 일행이 서 있는 근방을 한 번씩 기웃거리며 일행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일행의 모습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돈을 받을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정도라고. 그리하여 4 명의 일행은 로사에게 옷을 온전히 돌려주고, 전통 의상을 새롭게 입은 루이즈,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과 함께 가게를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가게를 나서는 동안 로사에게서 밝은 인사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오셔서 전통 의상 사러 와요~"
-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알프레드 노인이 옷 값을 치러줬다고 한다. 어쩐지 기분이 필요 이상으로 아주 좋은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니아 씨, 샤르기스를 들르신 적 있으세요?"
"들렀었어. 잔느 공주님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사정 때문에 가까이 있을 수 없다고 해도, 한 번 정도는 만나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더 물어보기 전에 결론부터 말할게, 만나지 못했어. 그 당시에는 샤르기스의 그 유적 지하에서 잠들고 있었던 캅쉴라(Kapsüla) 들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고, 잔느 공주님께서는 그 현장에서 참관을 이어가시고 계셨지. 캅쉴라 내부에 잠들고 있을 동료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과의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 잔느 공주님이셨어."
당시에는 지하 유적에서 발견된 수 많은 캅쉴라들을 지상으로 꺼내오는 일들이 있었던 모양으로 세니아의 이야기에 의하면 시청 관계자들로부터 그 캅쉴라 안의 사람들이 깨어나게 되면 잔느 공주의 동료들이었을 그들의 발언을 통해 푸투로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서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겨났다고 했으니, 정해진 절차대로 동면 장치들의 작동을 멈추게 하고, 캅쉴라 내부의 장치들이 동면 상태에서 정상 상태로 돌아오도록 했지만, 장치들의 내부 온도가 정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각 동면 장치들의 내부에 잠든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우려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유적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푸투로 계획의 작업을 주도하고 있던 인물인 수현 파크(Suhy+n Pahk) 라는 인물이 본래의 계획을 왜곡시키고 흐트러 놓으면서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본래는 이미 동면 과정이 끝나고 무사히 깨어났어야 했던 잔느 공주를 비롯한 100 명의 사람들이 제대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잔느 공주는 운 좋게 무사히 깨어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애초에 수현 파크는 계획을 망가뜨리면서 이들이 다시 깨어나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을 유적 조사를 위해 참여한 시청 직원들이 알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또 그들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들의 노력에 대해 어떻게 말하기 힘든 입장이었다. 다만, 나름 희망적인 이야기도 존재하고 있었으니, 세니아는 샤르기스에 있으면서 뜻 밖의 인물을 그 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베라티사(Beratisa) 의 마법사 예나(Jena, Yena) 를 샤르기스에서 만날 수 있었어."
"그 예나 씨를 말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이후, 카리나의 물음에 세니아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도 이전에 들은 바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 예나 다마나티엘(Jena Damanatiel, Yena Damanatiel). 베라티사(Beratisa) 라는 행성계 출신의 인물로 다양한 경험과 재능을 갖춘 마법 학자라고 한다. 여러 행성계를 전전하며, 행성계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 인물로서 세니티아 성계권의 마법 뿐만이 아니라 타 성계권의 마법들이나 마법 이외의 초자연적 능력에 관한 지식도 상당 수준 파악하고 있는 인물로 명성이 자자했고, 이러한 명성은 샤하르의 학교에서 학생으로 있을 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바였다.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학생 시절, 기숙사에서 아잘리(Azali) 와 함께 살던 때였다. 당시 아잘리는 기숙사의 방 안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유난히 흥미로운 기사를 본 듯 신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당시에 보고 있던 것은 신문 제 1 면에 실린 화제의 기사(Kotayliam) 으로 그 기사의 제목은 '지브라야 섬에서 발견된 고대 문명의 잔해, 그 비밀이 밝혀졌다 (Jibrayay sïmiye cahatdyita antikain civilizatï lamgigac, -ëti mole fandyita)' 로서, 예나 다마나티엘이 가브릴리아(Gabrilia) 북서부에 위치한 지브라야(Jibraya) 섬에서 발굴된 기계 잔해의 실체를 밝혀낸 것에 관한 기사였다.
기사에 의하면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녹슨 금속 덩어리에서 다마나티엘이 손바닥 크기만한 작은 판자(Sekhitabla) 를 꺼내 그 내부의 부속품들을 분석한 이후, 그 판자가 들어있던 잔해는 초고대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도시(Artifickolonia) 의 중핵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며, 작은 판자가 핵심 장치(ßiadsehtr' = ßiazehtr') 로서, 옛 문명 하에서는 그것을 전자 신호(Zrimasinya) 들이 머무르는 기계 장치라는 의미에서 기록 장치(ß'kitr') 라 칭해졌을 것이라 발표했다고 한다.
그것이 저장 장치의 일종이었음은 다마나티엘이 일정한 규칙을 가지는 신호들이 기록된 흔적이 판형 장치의 내부에 있던 원반형 장치들에 새겨져 있어서 이 신호 집합들을 분석하면서 알아냈다고 한다. 신문의 2 면에 그 신호의 실체에 관해 다마나티엘이 기록한 바를 전부 게시해 놓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게 장치 내부에 새겨진 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세세히 공개하면서 다마나티엘은 그것이 '활동하는 그림들(Umzegry, Umze-i)' 이 신호화된 유형(Sinyadyin Mni) 의 일종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던 것이 신문에 게시되었다. - 하지만 구체적인 신호의 정체에 관해 다마나티엘은 말을 아꼈는데, 그 이유에 관한 논란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후, 그는 장치에 있던 신호들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아잘리는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수업 도중에 그가 특별 수업의 형태로 강의실에 들어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음이 그 이유-당시 나는 다른 수업에 참여하고 있어서 그가 학교에서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아잘리가 본 다마나티엘의 모습은 온화하면서 진중한 일면이 있는 이지적인 인상의 여성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쾌함을 추구하려 하였고, 그러면서 다소 덜렁거리는 일면도 갖고 있는 듯해 보였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잘리에게 유명한 사람을 대하면서 심적 부담을 느낀 적이 없었느냐고 아잘리에게 물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고 답하면서 그 사람의 행실에 대해 매정하거나 차가운 인상의 사람은 아니었고, 본인도 다른 이들을 편하게 대하려 노력했고, 편하게 대해 달라 부탁하기도 했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 번 정도는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자신의 바람을 말하기도 했는데, 당시의 내 대답은 이러하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
"그러한 기회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해."
"나중에 알려진 사항으로, 그 기록 장치의 일부 부품들이 손상된 상태였다고 하더라. 다마나티엘 일행에 의해 발견됐을 당시, 부품의 외형은 그럭저럭 무사했는데, 내부 구조 분석 단계에서 내부가 모종의 사유로 인해 망가졌음이 확인된 것이었어."
"어떻게 망가졌기에 그래?"
"그게....... 내부 회로가 파손된 상태였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생물체로 비유를 하자면 외부에서 가해진 전기 충격으로 인한 치명적인 내상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어. 이러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파동을 '전격 맥동파(Zrimapuls, 즈리마풀스)', '제페(ZP)' 라 칭한다고 했어."
"그랬었구나."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답했다.
당시 일행은 시장 길목을 벗어난 이후, 갈 길이 달라진 알프레드 노인과 헤어지고서-광장 북쪽 인근의 식당으로 간다고 했다, 지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원형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원형 광장의 북쪽 근방에 위치한 어느 찻집 (Kafejib) 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가의 하얀 원탁들 중 하나를 앉을 곳으로 정해 여섯 사람이 탁자를 에워싸는 듯이 앉았으며, 나는 카리나와, 세나는 세니아와, 그리고 나에티아나는 루이즈와 마주보며 앉아 있었고, 나의 곁에는 세나와 나에티아나가, 그리고 건너편에 앉은 카리나의 곁에는 세니아, 루이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앉은 방향은 내가 앉은 방향이 찻집의 정면 창가를 향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밤중에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려 한 사람들이 많았던 탓인지 찻집 안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었다. 서로 모여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 간단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찻집 내부는 그야말로 붐비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일행은 찻집의 한 곳에 자리잡은 탁자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는 에페(EP ; -epe) 라고 하지요, '엘렉트리쿠스 풀수스(Electricus Pulsus)', '엘렉트로풀소(ElektroPulso)' 혹은 '엘렉트라풀스(ElektraPuls)' 의 약어일 거예요."
"에페(EP) 라면 한 번 들어본 것 같아." 이후, 나에티아나가 내가 언급한 것의 동의어가 있음을 말하자, 카리나가 바로 자신도 들어봐서 안다고 밝혔다. 제페(ZP) 보다는 에페(EP) 를 더 많이 들어보았다고. 기계 장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파동으로 기계 병기들을 주적으로 삼는 마녀들이나 바람의 정령들(Sylf)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많은 연구 및 관련 제품들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 결과로 세니티아의 엘젠 산맥(Elzenï Sera) 에 위치한 '마녀의 탑(Magijey Tupa)' 꼭대기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 그 전기파를 방출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아무튼, 다마나티엘에 관한 그 기사를 보면서 나도 그렇고, 내 친구도 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그를 한 번 정도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런데, 세니아, 어쩌다가 그를 만나게 된 거야?"
이후, 내가 세니아에게 어찌하여 다마나티엘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세니아가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잔느 공주님을 만나기 위한 시도를 해 보다가 실패한 이후로 나는 시청 근방의 찻집에서 마냥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 그런데 그 때, 시청 관계자들, 그러니까 샤르기스 지하 유적을 탐사하던 대원들 그리고 그들과 관계된 이들이 찻집으로 대거 들어왔었지. 아르사나하고 카리나는 기억나지? 그 마리아 씨."
"기억 나, 잔느 공주님을 모시고 유적 밖으로 나간 이후에 만나신 분이시잖아, 그렇지?"
세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가 바로 그 물음에 답을 하였다. 나 역시 딱히 대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세니아처럼 나 역시 마리아라는 인물의 존재는 그래도 기억은 하고 있었다. 다소 사무적인 듯해 보이기는 했어도 미인이었고, 또 천성이 좋은 사람이라서 딱히 싫어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휴대용 타자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타자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타자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잠깐이나마 들기도 했었고.
"샤르기스의 시청 직원들 및 일부 시민들로 구성된 탐사 대원들과 시청 및 외부 관계자들이 찻집에 모여 앉았는데, 그 중에 그 다마나티엘 씨께서 앉아 계셨지. 나는 그들이 모여 앉은 자리 근방의 의자에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자리를 떠나거나 옮기지는 않았었어. 그들이 찻집에서 보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싶어서 그랬었는데, 그 때, 다마나티엘 씨께서 나를 잠깐 보시더니, 잔을 들고 내 곁으로 오시는 것이었어."
왜 다마나티엘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려 했는지, 세니아는 그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 했고, 그래서 자신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을 그 사람이 자신의 바로 건너편에 앉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당황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바로 앞에 와서 그러한지 당황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설렘은 어찌할 수 없었다고.
"막상 나는 그 분이 건너편에 앉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당황하고 또 가슴이 설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어. 그래서 그저 너무 반갑다고, 영광이라고 말이 나오더라."
"정말 그랬었니? 너답지 않은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카리나가 물었고, 이 물음에 세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그렇다고 답을 했다. 그러면서 카리나에게 그 저명한 대마법사가 자신을 향해 직접 다가가서 자신의 바로 앞에 앉는 모습을 보라고 말하고서 그런 상황에서 다른 말이 나오겠느냐고 이어 물으니, 이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카리나는 그 이후로 더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반박을 하지 못하게 된 모양.
"하기는, 그렇겠네, 그 유명한 사람이 나를 지목해서 내 앞에 바로 앉는다니."
이후, 일행 사이에서 잠시 동안 자그마한 웃음 소리가 이어졌다. 그 이후, 잠깐 진정의 시간을 갖고서 세니아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후, 다마나티엘 씨께서는 내 건너편 의자에 앉더니, 무척 반갑다고 말했어, 나를 보면서 마치 자신이 오래 전부터 동경했던 사람의 흔적을 찾은 듯이 어린 아이처럼 환하게 미소를 짓고 계시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더 놀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 분께 여쭈어보기도 했었어."
대마법사 예나 다마나티엘은 세니아를 보면서 그에게 혹시 '아르사나 베르티 2 세 (Arsana Berti II)'
(*2) 의 지인 아니느냐고 묻고 있었다. 아르사나 베르티 2 세라면 나를 지칭하는 것, 따라서 다마나티엘은 세니아가 진작에 나와 친분이 있으며, 나와 친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대략 궤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니아는 다마나티엘이 자신과 만나면서 아르사나, 즉 나의 소재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었다. 그 물음에 세니아는 나의 소재지에 대해 하나야스(Khanayas) 일대로 갔으며, 하미르(Hamir) 를 거쳐 하미시(Hamisy) 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고 나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다마나티엘 씨께서 언젠가는 이 하미시로 올 수도 있겠다는 거네, 그렇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답했다. 그리고서 나를 보면서 다마나티엘이 나를 눈여겨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이후에 그와 만날 일에 대해 늘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지하 유적 탐사에서 그 분께서는 무슨 일을 맡고 계셨대?"
나는 다마나티엘이 왜 나를 주목하는지에 대한 것을 대신에 다마나티엘에게서 유적 발굴 상황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어보았는지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고, 이 물음에 세니아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 이후,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
"유적 내부의 캅쉴라들을 비롯한 여러 요소들의 조사를 맡고 있었대, 캅쉴라 내부에서 동면하고 있었을 사람들의 상태를 특히 상세히 살펴보려 하였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인명에 관한 조사였으니, 그러하였겠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물었다, 그렇게 발견된 캅쉴라 내부의 인간들이 동면 상태가 해제되어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하고서 그들의 상태에 대해 다마나티엘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으려 하였던 것. 그러한 나의 물음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너희들도 짐작하고 있는 바대로일 거야, 그들은 이미......"
'미래' 계획은 일반인들에게는 희망의 계획이었으나, 그 실상은 달랐다. 수현에게 있어서 100 명의 인원은 '하나' 를 위한 제물에 불과하였으며, 이들은 어찌되었든 간에 동면 이후에 영원한 잠에 빠져야 할 운명이었다. 동면이 깨어나는 기간을 일부러 9999 년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로 그 기한을 9999 년으로 정했으며, 그것에 대한 대비조차 하지 않은 것 역시 애당초 동면에 들어선 이들이 새로운 삶을 이어가도록 할 생각 자체가 없었음을 의미했다.
그 '하나' 는 다름 아닌, '저주받을 생명이 없는 세상(MVNDVS SINE DAMNEBILES VITAE)'.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심지어는 미생물조차 없는 무기물만의 세상이 펼쳐지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오직 기계만이 생명을 얻을 자격이 있으며, 얼어붙은 이들이 얼음이 되어 기계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리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수현은 극단적인 인간, 생명 혐오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국가와 사회를,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이러한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를 이어갔으며, 인간, 더 나아가 모든 유기적 생명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러한 사상에 물든 채로 수현은 자신의 입지를 이용해 미래 인류의 계획에 전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어떻게 수현이 극단적인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기의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알 방밥이 없다.
일찍이 샤르기스의 지하 유적에서 살펴본 바대로였다. 다마나티엘은 그들 모두 100 년 이상 이어진 과도한 냉동의 여파로 인해 생명 활동이 이미 오래 전에 정지된 상태였다고 했으며, 아직 공개적으로 발표된 바가 없기는 하였으나, 이미 그들 모두 동면 도중에 얼어 죽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공공연히 퍼져 있어서 탐사 대원들 중에서 캅쉴라 내부에서 발견된 인간들이 살아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상태라 하였다.
다마나티엘은 유적을 탐사하면서 이전에 일행이 발견했던 문제의 문서 내용을 보았었으며, 그래서 이미 동면에 들어갔던 인간들의 동사를 이미 예견했었지만, 너무 그 예견대로의 결과가 나와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사실 이전에 다마나티엘은 전산 장치에 등록되었던 동면에 들어갔던 100 명의 인간들에 관한 정보들을 알아본 상태였으며, 이들에 관한 사항들이 기재된 문서들 역시 이미 열람했었다고 한다. 아직 10 ~ 20 대 즈음에 해당되었을 청년들이 깨어날 수 있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기에 그들의 허무한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었다고.
"다마나티엘은 일찍이 유적 지하에 인류의 마지막 후예가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고, 그러면서 그들이 깨어나서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의 머나먼 미래에 인류의 후손들이 일구어낸 문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어. 그래서 그들이 깨어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더욱 안타까웠던 모양이야."
"그렇다고 해서, 캅쉴라 안의 인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닐 테고...... 이후, 다마나티엘 씨께서는 그 캅쉴라들을 어떻게 하시기로 결정을 내리셨대?"
이후, 카리나가 다시 물음을 건네자-아무래도 카리나가 세니아의 이야기를 문답을 통해 이어가는 역할을 맡기로 했던 모양이다-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그렇게 캅쉴라에 있던 인간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한 이후, 다마나티엘은 시청 직원들에게 말했대, 그 캅쉴라들의 처우를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그러면서 당분간은 캅쉴라들은 무인 지대에 격리될 필요가 있다는 말도 했었대."
"무슨 이유로?"
"그러니까...... 푸투로 계획을 주도했던 자는 이미 의도적으로 동면에 들어간 이들을 죽이려 했고, 이를 위해 동면 장치의 폭주 이외의 방법을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러니까, 동면 장치의 폭주로 현 시점의 인간들을 동사시키는 것은 물론, 이들을 발견할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서 그들의 체내에 그것을 주입했다는 거야."
후대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아마도 푸투로 계획을 주도했던 '수현 파크' 라는 이가 동면에 들어간 이들의 체내에 폭발성 물질이라든가, 아니면.......
"역병(Plaga) 을 일으킬 수 있는 위루스(Wirus) 의 일종을 심어 놓았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니겠니!?"
"맞아, 다마나티엘 씨께서는 그것을 심각히 우려하시고, 이들을 냉동 상태에 둔 채로 무인 지대에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 이후에도 사람들과의 접촉이 있을지 모르므로, 계속 냉동 상태에 두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셨던 거야. 이미 그들은 동사된 상태이지만 그 몸체에 숨겨진 것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더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
이미 캅쉴라에 잠든 이들은 동사한 상태이며, 그와 더불어 그 체내에 위험한 생체 물질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설이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히 퍼져 있다면 그들과 계속 가까이 지냈을 잔느 공주가 그 이야기를 모를 리 없다고 여기었고, 그래서 바로 세니아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잔느 공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고 계셔?"
"전혀 모르고 계신다고 하셨어, 다마나티엘 씨께서 그 모든 것을 적어도 잔느 공주 앞에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나 봐. 우리나 아니면 샤르기스 사람들과 달리 잔느 공주님께 그들은 동료들이잖아. 물론 그들이 다시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각오하시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몸 속에 위험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에 대해서는 정신적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고, 다마나티엘 씨께서도 그 점을 염려하시고 계셨어."
"하지만, 언젠가는 그 진실을 알게 되실 날도 오게 될 텐데."
"그래서 다마나티엘 씨께서는 잔느 공주님께 그 사실을 발설하는 것은 이후의 일로 미루기로 했대. 그 때가 언제인지는 그 분 자신도 아직 결정을 내리시지 못하신 것 같아."
이후, 내가 다시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그 말에 나는 그저 "그래......" 라고 말하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예나 다마나티엘이 왜 그런 식으로 나서려 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었던 것이,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내 어머니 혹은 주변 사람들이 죽은 것도 모자라 그 시신에 정체 불명의 생물체가 파고 들어 그로 인해 괴물로 변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막 듣고 나면, 그리고 그것을 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다면 그로 인한 괴로움을 어찌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위루스가 대체 어떤 특성을 갖고 있기에 그래? 굉장히 위험한 병을 안고 있는 거야?"
"......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어."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정령들은 어지간한 위루스 같은 위험한 생물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상에는 인간 이외에 수많은 생물들이 존재하며, 옛 인류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인간과 동물의 혼혈종들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에 그들의 위험을 고려할 필요는 분명히 존재했고, 그래서 이러한 존재들을 가능한 면에서 차단할 필요가 있었음은 분명했다. 다마나티엘이 그들의 시신에서 위루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면서 캅쉴라들을 가능한 행성계의 인적이 없는 곳으로 보내려 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위루스가 아니라 위험한 특성을 가진, 위루스와 닮은 생명체의 일종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할 수도 있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내가 아까 언급했던 '정체 불명의 생물체' 란 바로 그것으로 생물체의 체내에서는 위루스와 같은 형태로 잠입했다가 일정한 조건이 되면 생물체로서의 본성을 드러내어 생물체를 숙주로 삼으려 하는 기생 생물체의 일종을 의미했다. 그래서 위루스에 의해 병이 생기면 그것은 감염(Infektia, Boledri) 이라 칭하지만 그 기생 생물체에 의해 병이 생기고 더 나아가 생물적 특성이 변질되면 그것은 기생 (Poßesia, Momikaj) 이라 칭한다, 즉, 신체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 모처의 이야기에서는 기생 생물에 의해 숙주가 되면 신진 대사가 정지되는 그 대신에 근력이 크게 증가하는 괴이한 특성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것을 기생 혹은 숙주화라 칭한다는 것이다.
"...... 근력 강화가 생긴다면 단순한 위루스 수준이 아니잖아, 모종의 기생 생물 같은 것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내 말이. 그런 위험한 생체 병기가 동사한 몸 안에 있으리라는 것이지. 애초에 푸투로 계획이라는 것을 주도한 사람은 '수현 파크' 라는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그 자가 인류 시대 이후에 생겨날 후대 사람들의 말살까지 기도하고 있었다면, 그 자에 의해 무엇이 만들어지든, 이상한 일이라 할 수는 없을 거야."
이후, 세니아는 다소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 이후, 다마나티엘은 세니아에게 캅쉴라들이 발견된 이후, 캅쉴라들은 자신이 특별한 장소를 마련해 그 곳에 엄중히 관리하고 있으므로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다고 말했다. 자신이 마법을 통해 강제로 캅쉴라들을 자신에게 가능한 최저 온도 상태로 냉각시키고 있는 모양이라고.
"어느 정도로 낮은 온도에 놓아두고 있다는 거야?"
"그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어. 물론 나에게는 3 카 (K, Kelvin) 라고 답하셨지만, 애초에 농담이었을 거야, 그렇게 답하시면서 다소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내시더라고."
세니아의 다마나티엘에 관한 이야기는 그 즈음에서 마무리되었다. 이후, 카리나는 그렇게 해서 잔느 공주가 오려면 아직 한참 멀지 않았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세니아는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그 때, 그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루이즈가 바로 곁에 있던 세니아, 카리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지금 잔느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지요?"
"예." 이에 카리나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루이즈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 하면서 그에게 잔느와는 얼마나 친분이 있는지를 물었고, 그 물음에 루이즈는 잔느에 대해 학교에서 같은 교실에서 지내는 이로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고 답했다. 2 년 정도 같은 교실에서 지낸 사이였고, 그래서 서로 친한 사이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나와 아잘리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나는 아잘리를 기숙사에서 본 사이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교실에서는 그렇게 자주 보지는 않았었다-.
"푸투로 계획에는 어떻게 참여하시게 된 거예요?"
이후, 나에티아나가 바로 건너편 의자에 앉은 루이즈의 모습을 보면서 물음을 건네자, 루이즈는 교실 모임에서 잔느 등과 함께 선발되었을 따름이라고 답하고서 계획에 대해 알든 모르든, 계획이 좋든, 싫든 선발된 이들은 조건 없이 계획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교실 모임에 있었다는 것은 학교에 있었음을 의미할 텐데, 학교 수업은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었나요?"
"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참여하는 만큼, 학교 수업은 면제가 되었어요. 애초에 푸투로 계획이 시행될 무렵에는 세계가 1 년 안에 절체절명 상태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해서, 사실상 거의 모든 학교 수업이 중단되어 큰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요."
이후, 나에티아나가 재차 건네는 물음에 루이즈는 차분히 목소리를 내면서 답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선발된 새로운 모임에 소속되어 이전까지와의 친구들 중 대다수와 헤어지게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루이즈는 푸투로 계획에 소속된 것이 싫지는 않았으며, 푸투로 계획 참여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학교에서 사실상 수업을 전면 중단하는 등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세계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면서 그는 더더욱 푸투로 계획에 관한 교육 및 실습 그리고 준수 사항 학습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푸투로 계획에 선발된 학생들은 처음에는 집이나 연구소 근방의 기숙사를 오가면서 관련 과목의 학습에 임했지만, 푸투로 계획 시행 두 달 즈음 전부터는 연구소 내 시설을 떠날 수 없었으며 본격적인 우주선의 운항과 외계 행성에서의 생존 연습을 진행해 나아갔다고 한다. 우주선 내부에서의 코드 명(Code Name, Kodayrim) 이 부여된 것도 그 시점의 일이었다고. 루이즈는 자신에게 부여된 코드 네임이었다. 푸투로 계획에 선발된 이들이 연구소 내 시설에 종일 머무르기 시작한 시점에서 관계자들이 강당에 모인 그들에게 말한 적이 있었으니, 각자 마음에 드는 코드 네임을 신청해 달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단, 그것이 자신의 본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었다고.
루이즈가 본명이 아닐 것임은 이미 짐작하기는 했었고, 그래서 그러한 코드 네임을 지은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계기는 의외로 별 것 없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 당시의 루이즈는 어떻게 코드 네임을 지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상부에서 주어진대로 코드 네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잔느 역시 그렇게 상부에서 주어진 이름이라고. 자신은 늘 잔느 등과 함께 있었는데, 그래서 잔느를 비롯해 자신과 같이 있던 이들은 같은 형식으로 코드 네임이 부여되었다고 한다.
"잔느 공주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잔느가...... 잔느의 아버지가 푸투로 계획을 주도하고 있는 연구원들 중 한 명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요."
잔느 공주의 아버지, 현수 장 (Hyânsu Jang) 은 본래는 연구소 내의 여타 연구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 하였다. 조금 더 성실하고 올바른 사람이기는 했어도, 그것이 유난한 면모라고 말하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푸투로 계획을 주도했던 인물들에 비해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 인물들 중에서 수장이라 할 만한 사람은 수현 파크 (Suhyân Pahk) 라는 인물이 아니었느냐고 묻자, 루이즈는 그것은 맞다고 답하고서 잔느가 푸투로 계획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이름을 언급해서 그 이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다만, 루이즈는 그 이름을 말할 때, 성을 파크(Pahk) 라 하지 않고 바크(Bahk) 비스무리하게 발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파크(Pahk) 로 들은 것 같은데, 아무래로 잘못 들은 것 같다.
잔느 공주는 파크에 관해 그렇게 잘 알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루이즈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아버지인 장이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참가자들이 외부와 격리되어 있어서 직접 말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파크에 관해 비교적 아는 바가 많은 쪽은 루이즈로 그는 파크에 관한 온갖 나쁜 소문들을 들은 바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가 주도하는 계획이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 항상 염려하고 있었지만 단순한 참가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저 계획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셨던 것인가요?"
"...... 그래요." 이후, 이러한 사항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나에티아나가 묻자, 루이즈가 조용히 그렇다고 답했다. 게다가 '행성의 (인류 세계) 멸망' 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내부 일정이 촉박하게 진행되고 있었기에 계획을 주도하는 파크에게 악소문이 퍼진다고 한들, 이를 어찌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라 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괴담이나 소문 정도에 불과했을 거야, 이런 괴담을 갖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는 하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니아가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고, 이에 나에티아나, 카리나 그리고 세나 등 모두가 동의했고, 나 역시 동의했다. 특정한 인물이 괴담이 여기저기 퍼지고, 그로 인해 해당 인물이 안 좋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정보에 의해 퍼져 나아간 것일 수도 있으며, 사건과의 연관성이 깊지 않은 이들이 해당 정보가 사실인지 여부를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을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에 이러한 소문이나 의혹을 가지고 무작정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해 계획에 차질이 없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행성이 멸망한다고 했는데, 그 행성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 아니에요?"
"그렇지, 정확히는 행성 내의 구 문명 세계가 멸망한 것이지,"
이후, 나에티아나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그렇게 화답을 했다. 그리고 루이즈에게 잔느 공주와는 얼마나 같이 있었으냐고 묻자, 루이즈는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다가 우주선의 제작이 완료되고,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참가자들이 지하에 마련된 '동면 준비 시설' 로 갈 무럽에 헤어졌음을 밝혔다. 자신과 잔느 공주 뿐만이 아니라 계획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인원 편성이 재편되면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그간 함께했던 이들과 작별해야 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작별한 이후로 저는 동면 시설에 잠들게 되었어요. 동면 시설에서 잠들기 직전, 안내 방송에서 계획의 참가자들은 우주선에 들어가기 전에 전원 동면 상태에 들어서게 되며, 동면 캡슐(Kaepsyul)-캅쉴라와 동일어이며, 루이즈는 캅쉴라를 그렇게 칭했다-들이 모두 우주선 내부의 각자 정해진 위치에 놓였음이 확인될 경우, 우주선은 본격적인 기동을 개시, 행성계를 떠나 인류가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임을 통보했지요. 그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려고 했지만 안내 방송이 끝나자마자 동면이 개시 되어서 더 어떻게 생각하거나 할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면, 어쩌다가 이렇게 깨어나시게 된 거예요?"
이후, 카리나가 물음을 건네자 루이즈가 답했다, 갑자기 캅쉴라의 표면을 누군가가 강하게 두드리고 있었고, 이후, 표면이 열리면서 그 너머로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검은 옷을 입고 사악한 외견의 하얀 가면을 쓴 그들은 이윽고, 자신이 일어나자마자 자신을 어딘가로 끌고 나아갔다고 한다. 깨어났을 당시, 그가 있었던 곳은 '우주선' 처럼 보였던 내부 시설이 아닌 모든 것이 어두운 색을 띠는 어느 수풀 안이었으며, 그 곳에서 그 무리는 나에게 그들의 지도자라는 이를 찾아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포레 느와흐를 모시는 그 어둠의 무리에 있게 된 것이었군요."
"예." 이후, 나에티아나가 건네는 물음에 루이즈는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자신이 '시구르드' 와 함께 고대 유적지의 '교주' 와 함께 있게 된 것은 포레 느와흐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포레 느와흐의 세력은 계속 몰락해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있기 전에 '교주' 의 교단에 머무르고 있던 자신은 그러한 소식을 듣지 못한 채로 '교주' 의 직속 부하로 머무르고 있다가 우연히 행성계 내부의 '교주' 를 멸망시킬만한 이가 유적 내부로 들어온 모습을 보면서 때가 됐다고 여기며,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한 것이었다.
"우리를 발견하고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셨나 보네."
"그 동안에는 '교주' 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대항할 힘이 없어서 기다리기만 하시다가 이번에 기회를 잡으신 것이라 보면 될 것 같아."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답했다. 나도 세니아와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그간 어두운 로브와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주어진 능력과 일 정도로는 '교주' 그리고 그가 거느리는 교단의 힘을 직접 꺾을 수는 없었고, 그가 교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행성 내에 거주하는 그들을 몰아내고자 하는 힘의 도움을 필요로 했을 텐데, 당시 유적 내부로 들어왔던 일행이 그 좋은 힘이 되어주었으리라 여긴 것이었다.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다른 이들에게 푸투로 계획에 관해서는 당분간 루이즈에게 더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고 청했다, 애초에 그 역시 계획의 참가자에 불과했을 뿐으로 그가 아는 바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을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오히려 일행이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의 계획에 관해서는 잔느 공주 혹은 다마나티엘을 만나게 되면 그 때 이어가기로 하였다.다만, 한 가지 그에게 궁금했던 바가 있었으니, 카리나가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한 것이었다.
"혹시 시구르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신가요?"
어쩌면 그의 동료였을 시구르드에 관한 질문으로, 루이즈는 그 질문에 나름 친절하게 답을 해 주려 하였다. 루이즈에 의하면 시구르드는 코드 네임으로 코드 네임 형식이 달랐던 만큼, 자신도 그와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며, 마지막 동면의 순간 직전에도 마주한 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다만, 그가 푸투로 계획에 참여했던 동료들 중 한 명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것에 대한 묘한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었다고 하였다. 다른 동료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언제 깨어날지 기약이 없었기에 동료 한 명의 존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그렇다면, 시구르드는 루이즈 씨를 어떻게 대해 주었나요?"
이후, 내가 물음을 건네면서도 나는 시구르드가 루이즈를 잘 대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구르드는 세뇌를, 그것도 인간성을 거의 상실해 버린 포레 느와흐에 의해 세뇌되고 있었으니, 루이즈와는 생각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런 시구르드가 루이즈를 정답게 대하는 것은 물론, 루이즈와 가까운 사이가 될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시구르드는 저를 그저 남처럼 대했어요, 마치 나를 자신의 옛 동료로 여기지 않는 듯해 보였던 거예요."
처음에 루이즈는 시구르드의 이름을 들으며, 그는 자신의 옛 동료일 것임을 확신했고, 그래서 그를 다정하게 부르려 하였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기계적인 목소리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이 무슨 친구의 이름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고 면박을 줄 따름이었다. 그리고 포레 느와흐를 섬기는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인간적인 면모를 버려야 한다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 붙이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사적인 만남 중에는 뭔가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사적인 만남 자체가 없었어요." 나에티아나가 비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시구르드에 대해 사적인 만남 도중에는 뭔가 다른 면모를 보이거나 하지 않았겠느냐고 묻자, 루이즈는 시구르드는 자신과 사적인 만남 자체를 갖지 않았음을 밝혔다. 이후, 이어진 대답이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는 어떤 만남도 가지지 않았어요, 작전 등에서 지시를 내리거나 지시 사항을 상부로부터 전달 받고, 전달하는 것을 제외하면요."
그는 3 명의 동료들과는 어떠한 만남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동료들에게는 임무에 관한 사항들만을 전달하고 있었을 따름이었으며, 그래서 그와는 사적인 만남은 물론, 가면을 벗은 본 모습을 볼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시구르드는 세뇌당하고 있었지?"
이에 카리나가 나를 보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답했다. 그가 비록 세뇌를 당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포레 느와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자신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이외에 어둠의 수하로 있다가 교단으로 나아간 저의 동료들은 저와 시구르드 이외에도 2 명이 더 있었어요. 그들은 당시에는 다른 곳에 있어서 교단에는 없었어요. 아마도 교단이 몰락한 이후에는 포레 느와흐의 명령에 의해 자신의 근거지에 계속 남아있겠지요."
이후, 루이즈는 시구르드 이외에 자신의 동료로서 있었던 이들의 이름을 말했다. 그들의 이름은 칼락(Kalak) 그리고 벨리코(Beliko) 라 하였다고 한다. 그들 역시 푸투로 계획에 참여한 100 명의 동료들 중 일부였을 것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지만, 그들의 정체에 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아는 바는 없다고 하였다.
"푸투로 계획에 참여했던 이들이라고 확신을 할 수 없었음에는....... 시구르드와의 만남 때문이었겠지요, 역시."
"그 말씀대로예요, 나에티아나 님." 이후, 나에티아나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어서 루이즈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루이즈는 그렇다는 의미의 대답을 하였다. 아무래도 시구르드와의 만남이 루이즈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악몽(Trauma) 의 형태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과는 만남을 가진 적은 없지요?" 이후, 세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루이즈는 답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일행 모두 그들과의 만남 역시 자주 가지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때, 카리나가 세니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씩 웃으면서 그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그들 중에 루이즈 같은 이가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 아냐, 혹시?"
"아니, 딱히 그런 생각은......." 그 물음에 세니아가 답했다. 하지만 평온해 보이는 그 모습을 보더니, 세나가 내심 아쉬워하는 것을 어떻게든 감추려 한다고 놀리자 모두들 그를 보며 웃었다. 세니아는 부끄러움에 낯을 잠시 감추었지만 찻집 안에서 감히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이후,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자, 세나가 주변 일대를 둘러보더니, 건너편에 있는 세니아와 카리나를 보면서 물었다-세니아, 카리나를 보면서 물었지만, 물음을 건네는 대상은 루이즈를 제외한 책상에 앉아있던 모두였을 것이다-.
"이제 여기서 나가면 다음에는 무엇을 할 생각이세요?"
"우선은 세니아가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가야지, 날도 저물었으니, 이제 잘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니?"
그러자 다른 생각 없이 카리나가 답했다. 세니아가 머무르는 방에서 같이 신세를 지고 싶어했던 모양으로 나도 돈이 없는 만큼,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세나가 그런 카리나를 보면서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그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
"세니아 씨께서는 혼자 머무를만한 객실에 계시지 않으시나요? 그렇다면 저희 6 명이 같이 머무르며 자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숙박비를 아끼려면 어쩔 수 없기는 하잖아."
1 명이 자는 방에 6 명이 들어와 있으면 비좁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화답했다. 세니아 1 명이 머무르는 방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좁은 방은 아닐 것이고, 6 명이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루이즈 씨는 어떻게 하나요? 아무래도 그 분께서 저희들과 같이 자는 것은......"
"그렇기는 하다. 아무리 그래도 늘 같이 지내던 사람은 아니기는 하니까."
늘 같이 지내는 사람이 아니었던 루이즈와 어떻게 같이 잘 것인지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질문이 들어오고 나니,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루이즈 그리고 나를 비롯한 5 명이 어떻게 따로 잘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세니아를 보면서 나에티아나가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세니아 씨, 혹시 방에 침대가 2 개 있나요?"
"그럴리가 있겠니......" 그러자 카리나가 세니아를 대신해 세니아가 침대가 2 개 있는 방을 혼자 쓰기 위해 굳이 마련했겠느냐고 화답하고서 정 할 수 없으면 루이즈는 침대에서 자고, 4 명은 바닥에서 자자고 말하니, 바로 세나가 카리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남은 한 명은 어디에서 자면 되는 거예요?"
"내티, 그 애는 지붕 위에서 자면 돼, 아니면 나무 위라든지,"
그리고 카리나가 그렇게 답을 하자마자 내가 그를 보면서 핀잔하는 듯이 아무리 그래도 밖에서 자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청하고서 자금 여유가 되면 방 하나를 더 마련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여자들끼리인데 굳이 따로 잘 필요가 있겠나요?"
그 때, 루이즈가 나와 세나 등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물음을 건네듯이 말했고, 이어서 자신은 누구와 같이 자든 괜찮으니까, 그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아달라 당부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에 세나가 나를 보더니 다음 날에는 어디서 뭘 하려는 지에 대해 물었다.
"이제는 날도 저물었으니, 세니아 씨가 머무르는 곳에 가실 것이고, 그 다음 날에는 어디로 가실 거예요?"
"그러고 보니 갈 만한 곳으로 제가 알려드린 곳이 있어요, 안드레아라는 분의 고물상 말이에요."
이에 나를 대신해서 나에티아나가 안드레아 그리고 카를라가 일하는 곳인 고물상으로 가면 된다고 자신이 말한 적이 있었음을 밝힌 이후에 그 곳에서 앞으로 할 일이나 비행 도구 제작 등의 이후에 있을 일에 도움이 될 만한 많은 것들을 제공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 곳은 어디에 있어요?" 이후, 세나의 이어지는 질문에 나에티아나는 중앙 광장 구역의 동쪽에 있으며, 광장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경비대가 글라이더를 자주 이용하다보니, 글라이더 수요가 많고, 경우에 따라 일이 매우 바빠지기도 해서 때로는 만날 기회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날 수 있을지는 일단 내일 가서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세니아의 거처로 가자, 세니아, 어디로 가면 돼?"
이후, 카리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세니아의 거처로 가자고 청했고, 이에 세니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찻집의 바로 건너편 건물에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큰 방은 아닌데, 6 명이 들어가게 되는 만큼, 다소 비좁게 지낼 각오는 해 두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우리가 뭐 비좁은 생활을 한 번 두 번 해? 별로 놀랄 일도 아냐."
그러자 카리나가 걱정따위는 하지도 않았음을 드러내는 어투로 바로 화답했다. 그러는 동안 나를 비롯한 일행의 다른 이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후, 세나, 카리나가 먼저 찻집의 정문을 나섰다. 세니아는 일행의 일원들이 한 명씩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루이즈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루이즈 이전에 네 번째로 나갔고, 루이즈가 정문을 나서자마자 뒤따라 밖으로 나가고 있어서 이런 정황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니아의 거처가 일행이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다고 하니, 크게 부담 가지지 않고, 천천히 찻집의 건너편에 가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세니아가 방을 마련한 곳은 찻집의 바로 건너편에 있는 3 층짜리 건물로 화려한 건물들이 많은 건물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그렇게 눈에 잘 띄지는 않는 편인 건물이었다. 세니아는 2 층의 첫 번째 방-출입문에서 들어가는 방향 기준으로 왼편 바로 근처에 있다-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고 하였으며, 1 층에는 구내 식당이 있다고 하였다.
- 건물들이 자리잡은 길은 중앙 광장의 서쪽 길로서, 광장과 벼룩시장을 잇는 길이었다. 그 사이에는 길 주변의 여러 구역들과 길을 잇는 교차로들이 곳곳에 이어지고 있었다.
"아르사나 씨는 아침에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어요?"
"......." 세나의 물음에 나는 딱히 어떻게 대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주는 대로 먹고, 되는 대로 음식을 해 먹는 것에 익숙해진 삶을 살았던지라, 뭘 유난히 먹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진지하게 하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다만, 세니아는 샌드위치를 그렇게 먹고 싶어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 역시 샌드위치 하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대열의 중간 즈음에서 나의 오른편 곁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던 루이즈가 물었다.
"샌드위치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샌드위치라고 딱히 무슨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고...... 빵 하나에 삶은 계란 빻은 것을 바르고, 그 위에 치즈(Gudïjesh) 를 올려서 먹는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경우에 따라 다른 빵 위에 과일잼을 바르기도 하고, 계란을 대신해 간 고기, 두부, 간 생선 살 등을 얇게 뭉쳐서 구운 후에 빵 위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루이즈의 물음에 내가 일단 아는 대로 답했다. 내가 언급한 것들은 모두 그간 학교에서 식사로 주었던 것들의 일체이고, 나와 아잘리가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샌드위치의 종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해 보인다. 대답을 하고 난 이후, 나는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어서 루이즈에게 물었다.
"루이즈 씨, 루이즈 씨께서 살았던 시대에도 샌드위치라는 것이 있었나요?"
다소 웃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나는 샌드위치를 '샌드비츠(Saendvic)' 라고 칭했었다. 더 웃기는 일화로 베라티-세니티아어(Berati-Senitia-Malßï) 가 형성될 무렵에는 샌드위치라는 말이 알려질 무렵에는 그것을 '샌드위시(Saendwish)' 로 알아들어서 '모래' 와 '바람' 을 합성어인 줄 알고 샌드위치를 의미하는 단어로 '뫼레바레(Moerebare) - 베라티사어로 세니티아어로는 모레바레(Morebare)' 라는 말을 만들려 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동안 샌드위치를 의미하는 말로 모레바레 혹은 뫼레바레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다가, 샌드위치라는 말이 실제로는 합성어가 아니라 초고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의 이름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샌드위츠(Saendwic)' 혹은 '샌드비츠(Saendvic)' 등의 단어가 대신 활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루이즈는 태고 시대에도 샌드위치라는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거의 샌드위치는 그 때와는 조금 다르기는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에티아나가 현대의 사람들이 그 시대의 샌드위치를 접하면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으나, 루이즈도 그것에 대해서는 달리 대답을 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과거에는 어떤 재료가 세상에 있었던 거야? 조금은 알고 싶기는 한데......."
"굳이 알 필요가 있지 않거나,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일지도 몰라." 그 때, 카리나가 과거의 식재료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을 하고, 이에 세니아가 그것에 대해 루이즈가 말을 건네지 않음에 대해서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그에게 말했다.
"아르사나는 계란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어? 계란말이(Om'let) 만들 줄 알아?"
"계란말이는 거의 잘 못 해, 계란을 좋아해서 계란을 가지고 이것저것 많이 만들기는 했는데....... 그래도 그것만큼은 어렵더라."
이후, 문득 계란말이가 생각났던 모양인지 카리나가 나에게 계란말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간 내가 이런저런 계란 요리를 세나와 더불어 많이 해 주기는 했지만, 계란말이를 주로 해 주었던 세나와 달리, 나는 계란말이는 전혀 보여준 적이 없었고, 그간 나는 계란말이를 할 줄 아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계란말이를 잘 하지는 못하는 편임을 말한 것은 천문대에서 같이 지낸 이들에게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랬었구나, 어쩐지 세나와 달리 너는 계란말이는 전혀 해 준 적이 없었는데....... 그러할만한 이유가 있었네."
"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 그런데 계란말이는 갑자기 왜.......?"
그러자 세나가 카리나에게 환하게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있으니, 괜찮다고 말한 이후에 계란말이를 갑자기 찾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 온 만큼, 계란말이 같은 조금은 어려운 요리를 대접해 줘야 함이 옳지 않겠느냐고 그에게 답했고, 그 이후, 언젠가 조리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와 같은 특별한 요리를 그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이후에 세나에게 물었다.
"세나도 도와줄 거지?" 이에 세나는 당연하다고 화답했다. 일행이 어느덧 세니아의 거처가 있다는 3 층 건물 바로 앞에 이를 때였다.
하미시의 중앙광장구(Centraplazay Than'eri, C.Th.) 내 중앙광장 서로 (Centraplazay Hanïgil, CPH) 의 208 호 건물로 화려한 건물들이 많은 도시에서 그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라 하였던 건물의 통칭은 '다홍빛 건물(Vermilyajip, VJ)' 혹은 '208 번 건물' 정도였다. 그래서 나 역시 해당 건물을 208 번 건물로 칭하기로 했다.
세니아는 208 번 건물의 2 층, 201 호에 있으며, 입구에서 나가는 방향으로 왼편 근처에 있는 만큼,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건물 크기가 크지 않아서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방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괜찮아 보이는 침대 하나가 있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자기에는 너무 좁았고, 전반적으로 그렇게 좁은 방은 아니었지만 당시 일행의 경우처럼 6 사람이 한 번에 들어와 자기에는 여유롭지는 않은 방이었다. 무엇보다 욕실이 하나 뿐이다보니, 목욕을 대충 하더라도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했다.
"우선 목욕 순서부터 정해야 하지 않아?"
방에 들어오자마자 카리나가 한 말이었다. 아무튼, 순서는 그간 있었던 일의 공적을 생각해 정하기로 하였고, 그로 인해 5 명 중에서는 내가 먼저 샤워를 하게 됐다. 그 다음으로 세나, 카리나, 나에티아나 마지막으로 세니아의 순서로 정해졌으며, 많은 이들이 하나의 욕실을 이용하는 만큼, 목욕이 아닌 샤워 정도만 하기로 하였다. 루이즈는 일행에게 있어서 손님인 만큼, 예우가 필요하고, 그래서 그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중요했기에, 5 명의 순서를 정한 이후에 그 순서를 밝히고 언제 목욕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루이즈는 처음에는 나중에 목욕을 하기로 하였으나, 그 이후, 잠시 생각을 더 하더니, 가장 먼저 샤워를 하겠음을 밝혔으니, 나는 두 번째로 샤워를 하게 되었다.
루이즈가 목욕을 시작한 이후, 일행은 안쪽의 객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방에는 공간의 우측을 차지하는 침대 하나와 그 너머의 작은 원탁, 그리고 침대 건너편에 자리잡은 옷장이 자리잡고 있었고 문의 뒤쪽, 그리고 침대와 가까운 벽면에 옷걸이가 1, 2 개 걸려 있었다. 공간의 우측에 자리잡은 침대는 세 사람이 나란히 앉을 정도였기에 남은 이들은 다른 곳을 차지하기로 하였으며, 나에티아나가 원탁 위에 올라 앉았고, 나는 정문의 건너편에 자리잡은 창가에 기대어 서 있으려 하였다.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를 가리게 되었지만 일행 중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침대에는 일단 처음에는 문과 가까운 순으로 세나, 카리나, 세니아의 순으로 나란히 앉았다.
침대에 앉자마자 카리나는 바로 누웠으며, 그 이후에 몸을 굴려서 침대의 벽과 가까운 부분에 앞으로 엎어져 자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벌써 자느냐고 묻자, 카리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면 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새벽에 일어나서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었다.
"그러고보니 얘가 평소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던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는 해요." 이에 세니아가 평소에 카리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 하느냐고 묻자, 세나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 듯해 보인다고 답했다. 나도 뭐라 말하고 싶기는 했지만 근래의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잘 없어서 그에 대해 뭐라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애는 아르사나가 아니었나?"
"걔는 늘 일찍 일어났었잖아, 늦어도 7 시 즈음에는 일어나더라고."
이후,세니아와 카리나 사이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늘 늦어도 7 시에는 일어나고는 했었는데,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던 모양. 이후, 그들로부터 내가 잠이 없는 편인 것 같다는 말과 그렇게 잠이 없으면 나중에 건강이 나빠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는데, 이전부터 그들 사이에서 들려왔던 말인지라 그렇게 놀랄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창 대화를 이어가더니, 세니아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다시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 시간이면 루이즈가 샤워를 마치고 난 이후의 시간이고, 샤워 도중에 사고를 겪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상황을 확인하려고 가는 것이라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니었지만-나를 비롯한 일행 5 명 사이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닌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믿는 사이였으니.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런 식으로 샤워, 목욕을 누군가가 마칠 즈음에 무사 여부를 확인하러 가 보는 것이 일상의 일부였다- 세니아가 나서는 것이라 어쩐지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내가 세니아를 따라 나서기로 하였다.
루이즈가 사고를 겪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나선 세니아는 이후, 현관을 향하는 방향의 왼편에 있는 문을 향해 다가서서는 문틈 너머를 바라보려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 처음 세나가 천문대로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세나가 목욕하는 것을 문틈 너머로 어떻게든 보려 했던 세니아의 모습이었다. 세나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나머지 그 몸 마저도 어떻게든 보려 했던 세니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 이었던 것을 기억하며,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뭘 기대하면서 그렇게 보고 있어?"
"보고 있었던 거야?" 이에 세니아가 잠시 흠칫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바로 나를 향해 돌아서고서는 바로 나에게 보고 있었느냐고 묻는 목소리를 내었다. 이에 나는 그를 (그의 가슴 쪽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세나가 처음 목욕할 때와 많이 비슷한 모습이었어. 그 쪽이 아쉬운 것은 여전한가 보네."
멋쩍어졌는지 세니아는 그런 나의 말에 대해 잠시 말이 없다가 그 이후에 나에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딱히 기대하거나 하지는 않았어. 세나 같은 경우에는 '나도 어쩌면' 이런 심경을 느껴서 그렇게 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맞아. 하지만 루이즈 씨 정도...... 그것은 나도 그렇고, 우리 같은 이들에게 가능한 정도일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단순히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을 뿐이라는 것이지?" 이에 내가 바로 그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었고, 이에 세니아는 잠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나에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리고서 욕실의 문 앞에서 다시 객실 쪽으로 걸어 나아가면서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 에 반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이 아니겠냐고 묻는 듯이 말을 건네기도.
"그 아름다움을 대놓고 문을 열고 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에게는 너무 무례한 행동이잖아, 그러니까......."
"문을 열고 보는 거나, 몰래 보는 거나, 그게 그거지!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 거야? 세나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 볼 때도 그런 말을 하더니만, 내가 잊었을 것 같았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핀잔을 줘 버렸다. 세나가 목욕하는 광경을 세니아가 보고 있었을 때에도 그런 변명을 했었고, 그 때에도 어이가 없어서 핀잔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래서 세니아는 그 때의 일을 나는 아무래도 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그렇게 말을 건네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나에티아나 등은 정말로 그 때의 일을 기억하지는 않고 있었으니, 아마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있거나 하지는 않아서 그러하였을 것이다.
"나도 세니아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말 수도 적었고, 진지한 편인 데다가 침착했었는데, 아르사나, 너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이 조금은 변했잖아."
그 때의 일을 지켜보고 있었던 카리나는 내가 세니아를 데리고 돌아오자마자 킥킥대면서 나에게 말을 건넸고, 이어서 침대가 아닌 침대 건너편의 옷장에 기대어 서려 한-그 때, 나는 원탁 곁의 의자에 앉아 있으려 하였고, 나에티아나는 탁상 위에 있는 것이 심심했는지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니아를 보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잔느 공주님을 보살피겠다고 나선 것도 혹시 그 분의 그런 모습을 네 곁에 있도록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아냐......." 하지만 세니아가 아니라고 바로 화답을 하는 것에 카리나는 여기에 의심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세니아가 도럄한 여성의 모습을 동경하기는 해도, 연약한 자를 지키려 하는 마음을 무엇보다 우선하고 있음은 그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즈 씨께서도 방금 전 대화를 다 들으셨을 텐데,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별 것 있겠어, 같은 여자들끼리인데........" 이에 카리나가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는 화답을 했다. 그 때, 문이 열리면서 루이즈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밖으로 나오면서 루이즈는 스카프와 모자는 벗었지만 감색 털옷과 꽃무늬 치마는 그대로 입고 있었다. 잠옷으로서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객실에 있는 잠옷들이 그에게 맞을 리가 없어서 어떻게 하기도 곤란했다.
"그 때, 로사 씨의 가게에서 잠옷도 맞춰달라고 말씀 드릴 것을 그랬나."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잠옷을 입지 못하는 루이즈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말을 건네자, 나에티아나가 그 정도까지 했다면 루이즈 본인도 부담을 느꼈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루이즈 본인도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다음 차례는 너지?" 이후, 카리나가 나에게 물었고, 이에 나는 그렇다고 화답을 했다. 그리고 샤워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즈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래서 내가 현관문을 향해 다가가서 누구냐고 묻자, 바깥에서 낯설지 않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레도다, 여기로 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찾고 있었지. 옷차림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밖에 프레도(Fredo) 가 왔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나는 바로 문을 열어서 그 모습을 보려 하였다. 문에는 정말로 프레도가 서 있었고, 그 뒤로 셀린 그리고 에오르 자매의 모습이 보여서 모종의 목적으로 프레도가 자신의 거처로 나를 부르려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거처를 마련해 주겠네, 나 역시 개인적으로 너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도 하니 말일세."
이후, 프레도 노인은 내가 있는 그 너머를 잠시 엿보더니, 다시 나에게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다 모여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다 모인 것은 아니라고 능청스럽게 답했다. 이에 프레도는 조용히 헛웃음을 짓더니, 나 그리고 루이즈에게 나와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려고 했었던 모양으로 노인은 루이즈의 이름까지는 알지 못해서, 그를 '그 아이' 라 칭했다. 다만,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행성계의 여타 사람들과는 다를 것임을 직감할 수는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 날 하루 만큼은 친구들이 아닌 다른 이들과 함께 있게 되었음을 밝히고서 그들과 잠시 동안이나마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이런 일이 한 번 두 번 있는 것도 아니라 다들 너무 걱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세나, 나에티아나를 제외하면-. 루이즈는 떠나면서 밖에서 그간 걸치고 있었던 스카프를 다시 걸치고, 모자를 다시 쓴 이후에 나를 따라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일행은 나와 달리, 루이즈가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는 것으로 걱정의 의사를 드러내기는 했으니, 암만 나나 셀린 등의 믿을만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고 해도, 변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었다.
"네 친구들이 다 모이려면 몇 명이 더 있어야 하나?"
"2 명이요." 이후, 프레도가 나에게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이에 프레도는 그렇다면 방이 더욱 복잡해지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고 말하고서, 그 대신으로 여러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으니,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앞서 나아가던 에오르 자매 그리고 셀린에게 한 방에 최대 몇 명까지 같이 있은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셀린이 잠시 고개를 돌리면서 답했다.
"저는 응...... 5 명까지는 같이 있어본 적이 있어요, 작은 방에요."
셀린에 의하면 그는 몇 달 동안 5 명과 함께 작은 방에 동거하며 산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모종의 목적에 의해 그렇게 지내게 된 것이었으로 자신은 그 5 명 중에서 가장 어렸다고 한다. 가장 어렸기에 많은 보호를 받았다고. 생활 공간이 비좁아서 몇 명이 밖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에오르 린, 리아 자매의 경우에는 좁은 공간에서 몇 명이 같이 지내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집에 여러 명이 몇 달 간 같이 생활한 경우는 있었다고 하였다.
"그 중에서 저희들과 정말 오래 지낸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그러더니, 린이 리아와 더불어 가장 오래 지낸 사람이 있었음을 밝히고서, 평소에 그와 같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서 모든 기간을 더할 경우 가장 오래 지낸 것이 되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일 따름이라 이어 밝히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하미시의에서 일한다고 하기에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가 언급한 이의 이름은 '리 셀린(Li Selin)' 으로 엘베 족의 마을에서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이이며, 사냥이나 모험 등에 늘 자신들과 함께 나서고는 했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활기찬 성품을 가진 이로 차나 카페(Kafe) 혹은 제과류 제조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다고 하였는데, 하미시에 있으면서 찻집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언급을 이어가기도 했다.
"혹시 그 분이 일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아시고 계신가요?"
"중앙광장길 211 호 건물 '레르마임(Lermaym)' 이라는 곳에서 일한다는 답변이 들어왔다. 자세히는 그 찻집을 우연히 들렀다가 거기서 목격했다고 하며, 에오르 린, 리아 모두 그를 알아보며 반가워하기도 했었다고 그 때의 일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었다. 친구를 타지에서 보는 만큼, 무척 반가웠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이 되면 레르마임으로 오세요, 방금 전에 머무르셨던 곳에서 서쪽으로 나아가 큰 길 건너편으로 가면 바로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에 나는 알았다고 화답하고서 일행을 다시 만나면 꼭 그 곳으로 가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그 찻집에서는 특이한 종류의 카페를 주문할 수 있어서 이것저것을 특별히 주문해 볼 수 있다고 하였지만 그 대신으로 일반적인 카페를 마실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으니-일반적인 카페의 값은 35G 였는데, 특수 주문을 할 경우에는 55 ~ 60G 까지 오른다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상, 딱 한 잔만 그렇게 주문해 보겠음을 밝혔다.
"우연히 누군가의 친구와 또 그렇게 인연을 맺는다니, 세상이 참 좁기는 좁은가 보구나."
그간의 대화에 프레도 노인은 환하게 웃으면서 세상이 참 좁은 것 같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건네고 있었다.
거처는 중앙 광장 북방을 차지하고 있는 '산토 도라도 대성당 (Catedral de Santo Dorado, Santo Doradoy Kathedral)' 을 마주보는 광장의 남방 구역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찻집 '아르마스(Armas)' 의 서동쪽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2 층 건물로서, 프레도가 이용했다는 식당이 그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였다. 본래는 일반 가정집이지만 집 주인이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으면서 집의 1 층 공간을 프레도 노인에게 그 기간 동안 빌릴 수 있도록 하였다고 밝혔으며, 그의 도움으로 에오르 자매 그리고 셀린, 리 셀린과 함께 3 일 정도 머무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셀린에 의하면 이제 첫 날 째라고.
"그러니까 적어도 내일까지는 집에서 하루 종일 머물러도 좋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들 한 낮에는 집 밖의 여러 명소나 찻집에 머무르는 것 같다만."
이에 프레도 노인이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프레도 노인은 셀린에게 집을 넘겨준 이후로 집을 들른 적은 없었지만 사건의 해결이 이루어지고 내가 사건에 개입했음을 알고난 이후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으려고 자신의 거처와 제법 멀리 있는 그 집에 찾아왔다고 하였다.
- 프레도 노인의 거처는 하미시의 동부, 에르마네스(Hermanez, =ermanes) 길의 107 호 건물인 작은 집이라 하였으며, 프레도 노인이 거주하는 에르마네스 길 구역은 중앙구역으로부터 대략 1 킬로메테르 정도 거리를 두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프레도 노인이 셀린, 에오르 자매 등이 머무르도록 마련해 준 그 건물은 2 층에는 방이 하나 있고, 1 층에는 여러 방이 있으며, 그 중에서 1 층에 있는 두 개의 방은 현관을 등지는 방향을 기준으로 거실의 왼편에 있었다. 두 개의 방은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으며-방문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진입하는 방향 기준으로 일행이 사용하는 방은 오른편에 있었다. 원래는 그 방을 일행이 전부 사용해야 하겠지만 에오르 자매가 셀린이 그 방에 머무르도록 하고, 자신들은 거실에 머무르기로 하였다고 한다. 거실은 현관의 먼 너머에 있었으며, 현관 근처에는 식탁과 주방이 있었다. 집 주인은 프레도 노인에게 주방의 사용까지는 허락해 준 듯해 보였으나, 집에 지내는 이들은 식사 등을 할 때마다 밖에 나가 있었던 탓에 막상 주방이 조리 등을 위해 사용된 적은 없었던 모양.
욕실은 두 방들 사이의 벽 사이, 그 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크기가 작기는 했지만, 나름 갖출 수 있는 것은 다 갖추어져 있어서 사용하기에는 나름 무난해 보였다. 셀린, 에오르 자매는 이전에 이미 욕실에서 목욕을 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나와 루이즈가 순서대로 욕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프레도 할아버지, 혹시 아르사나 씨, 그리고 루이즈 씨와 지금 바로 대면하실 생각이신가요?"
"가급적이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당장에라도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야."
현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먼저 들어온 셀린이 뒤따라 집으로 들어오는 프레도 노인에게 물었고, 이에 그렇다는 의사를 전하는 답을 한 이후에 대화를 마치고 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임을 밝혔다. 셀린과 나 그리고 루이즈의 뒤를 따라 집으로 온 린이 거실의 오른편에 자리잡은 소파에 앉으려 하는 노인을 보면서 밤길 조심해 달라고 당부를 했고, 이에 노인은 "걱정 말게." 라고 화답하였다. 이후, 프레도 노인은 소파에 앉은 채로 나와 루이즈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나와 루이즈에게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우선 욕실에서 목욕부터 하게, 다들 많이 힘들지 않았나. 나는 여기서 느긋이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야, 나와 마주할 때가 되면 나에게 알려주게."
그렇게 해서 내가 욕실 안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게 되었다. 이미 루이즈는 목욕을 마치고 나온 이후였고, 그래서 내가 욕실 안으로 먼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미 목욕을 마쳤던 셀린과 에오르 자매는 간단히 샤워만 하기로 했다.
여관이나 숙소에 있을 때마다 몸을 씻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까지는 늘 샤워만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목욕을 한다고 욕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갖추었던 옷을 모두 벗고, 물이 채워진 네모난 욕조에 들어가 있으면서 멍하니 욕실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하얀 욕실의 천장 뿐이었겠지만 그 하얀 벽면을 바라보면서도 여러가지 일들이 나의 마음을 지나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우선 지하에서 우연히 발견한 괴물체들에 의해 폐허가 된 도시,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호수가에서 만난 공주와 소녀들, 숙적 포레 느와흐에 의해 저주를 받은 가련한 이들이 떠나가는 모습, 어렸을 때에는 가지 못했던 유적지 깊은 곳에서 만난 여인, 그리고 어둠 속에서 보았던 커다란 괴물처럼 보였던 기계 병기와 그 병기에 의해 희생되었을 이들의 흔적들, 그리고 고대 도시에서 만났던 뜻 밖의 사람까지. 레테사로부터 부탁받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일 텐데, 도중에 실로 여러 일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슈라일 호수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자주 나가서 뛰어놀던 곳으로 아주 어렸을 때에는 호수와 그 일대가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었다, 호수가 너머의 슈라일이란 마을을 알기 전까지는.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외로움이나 심심함을 느꼈던 기억은 없으며, 어머니께서도 어린 시절의 나와 함께 있으면서 외로움을 내색하셨던 적은 없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것이 감색과 하얀색으로만 이루어진 어쩌면 다소 단조로운 세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곳에서 그래도 나름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 그 어린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나에게서 어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손 놓아주세요! 이미 늦었어요, 이대로 계시다가는 당신께서도 끌어 당겨지시게 될 거예요!!!
그 다급히 외치는 목소리가 나의 마음 속에서 공명하는 듯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 어머니와 함께 살던 호수가, 그 일대에서 들려왔던 목소리, 포레 느와흐의 마법에 의해 어딘가로 일행과 함께 끌려 나아가던 사리 공주의 목소리였다. 본래는 다른 어느 세계에 있다가 포레 느와흐의 흉계에 의해 이 곳으로 끌려와 새가 되는 저주를 받은 이들로 사리 공주는 잔느 공주와 마찬가지로 본래는 공주가 아니었지만 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서 그를 멋대로 '공주' 로 칭하면서 공주가 된 것이었고, 사리가 공주가 되면서 의지할 곳 없었던 여인들이 자연히 그를 의지하게 되었던 것.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전승에서처럼 엉겅퀴 옷 같은 것을 자아내어 입힌다고 저주가 풀릴 리는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전승에서 저주 받은 왕국의 공주에게 주술사가 엉겅퀴 옷을 만들라 하였던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을 만들어 마녀로 몰리게 한다는 그 흉계가 목적이었지, 공주의 소원이었던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는 것 따위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전승에서 공주가 그런 흉계에 의해 자아낸 옷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데, 이야기에서처럼 나는 그들과 당장 함께하고 있지 않고 있잖아,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도 못 되고.
그렇지......
저주받은 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 하였던 공주의 진심이 결국 신에게 닿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며, 이는 공주가 일생을 왕국에서 왕국의 가족들과 함께 보냈고, 더 나아가 10 ~ 20 년 가량의 세월 동안 왕국을 지켜보며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씨를 가졌기에 가능했으리라.
'내게 그런 마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당장에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니 뭐니, 그런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마음씨를 가질 수 있는 이라면 아마도 그는 '용사' 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조건들 중 하나를 충족하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던 용사의 조건들로는 이러한 것들이 있었다.
- 어떤 강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힘
- 어떤 두려움도 이겨내는 강인함
- 나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
어머니께서는 이 모든 조건들을 갖출 수 있었기에 마녀임에도 불구하고 '용사' 라는 칭호를 얻으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것들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고 있었다. 힘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강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힘인지를 알 수 없었고,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고 있지도 않았으며, 애초에 나라와 세상을 위해 싸우기는 커녕, 마을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전에 유적 지하에서 '영원한 어둠' 이라 칭해졌던 병기와 전면 상대를 하고, 그 병기를 격파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주도해서 해낸 일도 아니었고, 또한 나 자신부터 그 어둠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그간 내가 가져왔던 모든 것들을 잃게 되기에 나선 것이었지, 무슨 '사명감' 따위에 의해 해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리 공주는 내가 자신을 비롯한 이들을 구원해 주리라 믿고 있는데.'
그런 사리 공주는 나에게 있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우연히 만난 인연에 불과했다. 아름다운 여인이기는 했지만, 잔느 공주와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깊이 좋아하거나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이미 샤하르에 있는 옛 친구가 있고, 천문대에서 만난 이들이 있는데, 인연에 더욱 욕심을 낼 이유는 없었고, 잔느 공주, 사리 공주와 같은 이들과 굳이 가까이 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헤어지면 그만, 잊어버리면 그만, 그런 존재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를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계시잖아요."
"소르나?" 그 때, 소르나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이전까지의 내 생각을 다 읽기라도 한 듯이 물음을 건네었고, 그 물음에 나는 짐짓 당황하면서도 그런 그의 목소리에 이렇게 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모든 질병은 치료가 되어야 한다고 하잖아, 저주도 마찬가지야, 저주를 치유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지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겠니."
"역시, 그러하겠지요?" 그러자 소르나의 목소리가 그렇게 말을 건네었지만 그 이후로 더 말을 잇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다른 주제로 물음을 건네려 하였으니, 잔느 공주 혹은 루이즈가 내가 사리 공주의 일에 마음을 두고 있음을 알았을 때, 그에게 어떻게 말을 해 줄 것이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잔느 공주님과 루이즈 씨께서도 알고 계시기는 하실 거야, 내게 있어서 사리 공주님도 그렇고, 잔느 공주님, 루이즈 씨도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지, 애정의 대상은 아니지 않아?"
"그러하겠지요." 이에 소르나는 그런 나의 말에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무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다가 이전보다 약간 가라앉은 듯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르사나 씨라면 그러하실 것이라 저도 믿고 있어요, 아르사나 씨의 마음에는 다른 이들보다 더욱 소중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이 있는 한, 아르사나 씨께서는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으시겠지요."
이러한 그의 말에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소르나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목욕은 잘 마쳤나?" 욕실에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거실에 머무르고 있던 프레도 노인이 나를 찾아와서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노인은 탁자 부근의 자리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해 보자고 청하고서 먼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 후, 노인은 거실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소파들 중에서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흔들 의자에 앉았고, 이후, 셀린이 소파의 흔들 의자와 먼 부분을 찾아서 앉았다. 그 다음으로 에오르 자매가 식탁에서 나무 의자들을 가져와 거실의 소파와 마주하는 부분에 두고, 그 의자들에 하나씩 앉아서 소파의 두 부분을 비워 놓았고, 그리하여 나와 루이즈가 소파의 두 부분을 나란히 차지해 앉을 수 있었다. 나는 흔들 의자와 가까운 쪽, 그리고 루이즈는 소파의 한 가운데 즈음에 앉았다.
"지난 전투에서 다들 무사히 마을로 돌아온 것 같아서 다행이다."
셀린, 에오르 자매 등의 일행과 나와 루이즈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을 동안에 흔들 의자에 앉아 마치 잠들어 있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프레도 노인이 내가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이후,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에 다시 고개를 들고서는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 영원한 어둠인가 무엇인가는 사라지고, 그와 함께 케레브 족의 교단도 힘을 잃었겠지. 허나, 아직 이 행성계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네."
"혹시 하미르(Hamir) 의 해안 한 곳의 벽에 쓰여진 낙서와 관련된 것인가요?"
'하미르 해안의 낙서......?' 노인의 말에 에오르 자매들 중 린-노인과 가까운 쪽에 앉은 이-이 그에게 바로 물었고, 그 물음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해안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해안 부근의 벽에 쓰여진 라테나 어로 쓰여진 그 낙서였다.
'그 낙서를 말함이 아니었나, 호크 탄퉁 파키토(Hok tantũ fakito) 라 쓰여져 있던 그 낙서....... 특별히 무슨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아 보였는데.'
"그 뜻을 몰라서 하미르의 성당 관계자 분께 여쭈어 보았고, 그래서 알았어요, '~ 를 조심해라 (Gewaere ov ~, ~'l sarfyala)' 라는 뜻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 이후, 성당 관계자 분께서는 그 뒤쪽에는 무언가를 지운 흔적이 있는데, 흔적만 간신히 남은 상태라 무어라 쓰여 있는지 알아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다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으셨어요, 가브릴리아(Gabrilia) 해역 인근에 무서운 괴물이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괴물에 의한 선박 피해가 잇따른 적이 있어서 혹시 그 괴물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한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괴물의 이름을 굳이 지우려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으시기는 하셨었어요."
린의 답변에 이어 그의 바로 곁에 앉아있던 리아가 노인에게 벽에 쓰여진 낙서에 관해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려 하였고, 그 이야기를 듣고난 이후,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랬었구먼." 이라고 한 마디 말을 건네더니, 그간 얼굴에 걸치기만 하고 있었던 안경을 바로 쓰고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물으려 하였다.
"그렇다면, 그 이름은 단순한 괴물의 이름은 아니겠구먼, 그렇지 않나?"
"그러할 것이라 생각해요." 이에 린이 바로 답했다. 하지만 그 이상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없었던 모양. 이후, 리아가 노인을 보더니, 화제를 살짝 바꾸려 하는 물음을 건네었다. 가브릴리아의 괴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줄 것을 그에게 요청을 한 것이었다.
"혹시, 가브릴리아의 괴물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브릴리아의 괴물이라...... 한 번씩 해역에 나타나 바닷사람들의 골치를 썩히던 녀석이라고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네, 내 친구들 중에서도 가브릴리아에서 어부로 일하는 녀석들이 좀 있기는 하니까 말야. 다만, 근래에는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하지는 못했었어. 그러다가 갑작스레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했다던 모양인가 봐."
오래 전부터 가브릴리아의 북쪽 해안 인근의 바다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물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었다고 하였다. 그 형상도, 이름도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어 그저 '가브릴라의 괴물' 이라 알려진 존재로서 그 괴물이 나타날 때마다 인근의 해안에까지 폭풍우가 몰아치고 그로 인해 배가 좌초하는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하며, 그래서 가브릴리아의 북쪽 해안에서는 폭풍우의 기세가 심상치 않으면 인근 해역에 배를 띄우지 않도록 조치가 취해진 적이 있기도 했다.
한 동안 괴물은 한 번씩 가브릴라아의 북쪽 해역에서 폭풍우를 일으키면서 맹위를 떨쳤지만, 어느 순간, 괴물은 그 모습을 감추었고, 그 이후로 그와 같은 폭풍우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이 괴물의 소행임이 알려진 것은 좌초한 배에 타고 있었던 어떤 이가 바다에서 거대한 괴물의 형상을 목격했다는 증언에서 비롯되었으며, 비슷한 증언들이 잇따르고 그 이후, 가브리스(Gabriys) 에서 직접 파견된 조사단 역시 괴물의 실체를 목격하면서 그 폭풍우가 괴물에 의해 일어났음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그 '괴물' 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후, 에오르 리아가 노인에게 물음을 건네자,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그것이 괴물인지 아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며, 다만 그 형상이 거대하고 재난을 일으키기 때문에 괴물로 칭해지고 있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목격된 괴물의 형상은 어쩌면 폭풍우 속에서 흐릿하게 그림자만 살짝 드러난 정도라는 것이겠네요?"
"아마도......" 이후, 루이즈가 건네는 물음에 에오르 린이 그러할 것이라는 의미를 전하는 듯한 답을 하였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직접 그 모습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노인에게 괴물이 특정한 어느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는 없었느냐고 물음을 건네었다. 그러자,
"공식적으로 그러한 이야기가 발표되거나 한 적은 없었다네."
라고 우선 노인은 이렇게 화답을 하고서, 가브리스의 관계자들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고 하지만 가브리스 관계자들이 목격한 괴물의 출몰은 단 한 번이었고, 그 이후로는 괴물이 출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괴물의 출몰에 관한 규칙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다만,
"현지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는 했지. 가브릴리아 북쪽 해안가에 있는 항구 소도시 지브로아(Jibroa) 의 서쪽 교외 부근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으며, 그 산의 산길은 예로부터 지브로아 주민들에 의해 특별히 여기어지는 길이라 하였지. '애도의 길 (Kondolay Gil, Via Elugentis)' 이라 칭해지는 산길로서 그 끝은 해안과 맞닿은 절벽이 있지. 그 절벽에는 예로부터 '기억의 절벽(Syanay Fyla, Rupes Memoriae)' 이라 칭해지며, 절벽의 끝 너머에는 '기억의 사당(Syanay Mosigos, Sedes Memoriae)' 이라 칭해지는 곳이 있지. 절벽과 사당은 다리를 통해 이어져 있어. 기억의 사당의 한쪽 끝에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이런저런 라테나 어 문구들이 기록되어 있지."
"그 인근에서 괴물이 주로 나왔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다고 하더구나, 왜 그 인근에서 괴물이 출몰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기억의 사당' 이라 칭해지는 인근에 자주 괴물이 출몰했다면 그러할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에오르 리아의 질문에 답을 하고서 알프레드 노인은 사당이 괴물과 모종의 관련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 추측을 하는 모습을 이어 보이기도 했다. 이후, 셀린이 현지인들로부터 사당과 괴물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었느냐고 묻자,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더구나. 그들 중에서도 왜 사당 부근에 괴물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나에게 그 이유를 되묻는 이들도 있었지."
"그렇군요." 이러한 대답에 셀린은 알겠다는 의미의 말을 건네고서, 현지인들에게조차 기억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오래된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서 그것에 관해서는 가브릴리아에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가브릴리아에 가는 방법을 알아야 할 텐데, 가브릴리아로 가는 방법으로......."
"육로와 수로가 있어요. 물론 이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저지대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이후, 에오르 린이 가브릴리아로 가는 방법에 대해 물으려 하자, 셀린이 바로 육로, 수로가 있으며, 일단 저지대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육로에는 하미르의 동쪽 대로에서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길로 걸어서 가려면 상당히 오래 걸어야 하는 길이라 하였고, 하미르 역에서 기차로 갈 수도 있으며, 기차로는 1 시간 정도 나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수로는 하미르의 동부 구역에 선착장이 있는데, 거기서 배를 빌려서 타시면 될 거예요. 동부 구역은 예술가들의 거리(Arsayndrï Gil, La Vojo de Artistoj) 이라 칭해지며, 하미르의 서부 구역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처음 가 보시면 여러모로 놀라실 수도 있을 거예요."
하미르의 동부 구역은 허름한 집들이 많은 곳으로 빛의 정령에 의해 하나야스 지역이 정화가 된 이후에도 그 일대에는 정화 이후에는 빈 터나 다를 바 없어진 서부 구역과 달리 수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었다고 하였으며, 동부 구역의 건물들은 그 남겨진 건물들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건물로 개장된 것들이 대부분이라 하였다. 옛 문명의 흔적이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었다는 의미. 그 지역 일대는 본래는 빈민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셀린은 나와 에오르 자매 등이 그 일대를 탐험해 줄 것을 권하면서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케레브 족을 이끄는 교주는 죽고, 그의 케레브 족 역시 교단과 함께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 행성에 숨겨진 병기가 파괴되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행성계에 아직 숨어있을 '어둠의 힘' 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하겠지요."
"그 어둠의 힘이 저를 비롯한 이들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지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에오르 린이 그렇다고 화답했다. 사건의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교주를 비롯한 교단에 속한 케레브 족 사람들을 거듭 살해하고 있었던 기계 병기 '포흐 르 네토이흐 (Fort le Nettoyeur)' 가 파괴되면서 아직 행성계에 남아있을 '어둠의 존재' 가 그것을 의식하여 일행을 노리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어둠의 존재가 포흐 르 네토이흐와 반드시 관련이 있다고 여길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아는 바로 어둠의 존재가 거느리는 어둠의 세력을 구성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기계 병기라 해요. 그들과 같은 유형의 병기 그리고 그 병기가 거느리고 있던 대다수의 병기들이 격추되어 파괴된 것에 대해 어둠의 존재는 언젠가는 알아차릴 것이고, 그것을 의식하는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이후, 에오르 리아가 린에 이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희들을 비롯한 일행이 그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철로를 이용하는 것은 같이 철도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 무척 위험할 거예요. 그래서 철로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육로 혹은 수로를 통해 길을 나아가자는 것인데, 린이 여기서 수로를 권장하는 거예요."
"강 줄기를 따라 나아가면 바로 가브리스의 중심가 일대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후, 린은 자신이 왜 수로로의 이동을 권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자 셀린이 수로를 이용하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배는 한 번이라도 공격 받으면 위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에오르 린은 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배가 어떻게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거예요. 일단 작은 배는 위험할 것이고, 큰 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서 큰 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과 리아에게 방법이 있으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건네기도. 이에 알프레드 노인이 하미르 동부의 선착장에서 큰 배를 빌리는 건에 관해서는 일행이 하미르로 다시 내려갔을 때, 그 때에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음을 밝히고서 나를 보더니, 잠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자네가 어쩌면 큰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자네는 선착장으로 반드시 갔으면 하는 바람이야."
"제가요?" 이에 내가 놀라면서 묻자, 알프레드 노인은 당연한 사항을 말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몰라도 그 쪽에 나에게는 기억에 없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렇게 해 보겠다는 화답을 알프레드 노인에게 건네었다.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친구 분들 곁으로 돌아가실 것이지요?"
"루이즈도 같이." 이후, 셀린이 물음을 건네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화답했다.
"친구 분들이 참 많으신 것 같아요."
"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네요." 셀린이 나를 보면서 건네는 말에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가마일 산 천문대라는 곳을 몰랐다면, 가지지 못했을 인연이었던 만큼, 우연이 나에게 전해준 어쩌면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기에 그렇게 대답을 하게 된 것이었다.
"친구 분들이 몇 분이셨지요? 제가 문틈에서 얼핏 본 바로는 4 명 정도이셨던 것으로-."
"4 명이지요." 문틈에서 대충 보면서 몇 명이었을지 어림 짐작해 본 것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그 수를 알아맞히고 있었다. 이후, 셀린은 그렇다면 거리를 돌아다닐 때에 루이즈를 포함해 6 명의 일행이 한 번에 돌아다니지 않겠느냐고 묻자, 나는 그렇다고 화답을 했고, 그 모습을 본 이후, 셀린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아무래도 저와 에오르 린, 리아 씨까지 더해서 9 명이 돌아다니는 것은 조금 그렇겠지요."
그러더니, 셀린은 나에 대해 동행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으로 여기었는데, 아쉽게 되었다고 말한 이후에 기회가 되면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혹시 기억의 사당에 관해 더 아시는 바는 있나요?"
"더 아는 바가 있거나 하지는 않네. 다만, 사당의 한 구석에 낡은 표지판 하나가 있었어. 그 표지판이 어쩌면 사당 사제들의 공용어가 라테나 어가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만.,.... 그 표지판에는 이러한 문자들이 쓰여 있었지."
I-V-X-V-I
"라테나 어를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어떻게 읽는지를 알고 있을 게야, 이(i), 우(u), 익스(ix), 우(u) 그리고 이(i) 의 순으로 읽지."
혹은 이(i), 부(vu), 익스(ix), 부(vu), 이(i). 문자들의 집합 같아 보이기도 하고, 숫자들의 집합 같아 보이는 이 조합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이 나왔으나,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해석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고 하였다 :
Ira Vana eX Vana Imagine
'공허한 환상에서의 공허한 분노 (Vanain imagiaesa vanain lernye)' 라는 뜻을 가진 어구로 정형화된 글자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휘갈겨 쓴 듯한 글자들이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이러한 글자를 표지판에 휘갈겨 써서 모종의 장소에 세워 두었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폐기 처분된 것이 지금의 사당 부근에서 발견된 모양.
"이라 바나 엑스 바나 이마지네 (Ira vana ex vana imajine) 라고 읽는 것 같네요, 허무한 (Vakain) 환상에서 허무한 분노, 이런 뜻이려나요."
"비슷해요, 공허한 (Vanain) 환상에서의 공허한 분노, 이런 뜻이지요, 사실 이것이나 저것이나, 큰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요."
에오르 리아가 문구에 대해 건네는 물음에 내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서 무언가 짐작된 바가 있었는지, 알프레드 노인에게 그 표지판이 혹시 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냐고 물었으나, 노인은 그렇다고 답하고서 전형적인 선대 인류 문명에서 볼 수 있었던 강철 표지판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표지판의 글자들 역시 고대의 인간이 쓴 것으로 보이더군."
이라고 표지판의 글씨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다. 이후, 에오르 린은 고대 인류의 시대, 어느 날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그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누군가가 분노의 감정을 담아 표지판에 그러한 글자를 써 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했고, 이에 알프레드 노인은 그러할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다만, 셀린과 에오르 자매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까지 선대 인류 문명 시대에 인간이 남긴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 그것이 기억의 사당 부근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괴물' 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혹은 유의미한 답을 아무도 말하지는 못했다. 사실 '괴물' 의 존재 자체에 대해 아는 이들이 그 중에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괴물' 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려 해도, 애초에 그 무렵의 셀린, 에오르 자매 등이 가졌을 '괴물' 에 관한 아직까지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고 있었기에, '괴물' 에 관한 유의미한 토론은 성립될 수 없었고, 토론 자체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무언가, 다른 주제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후, 셀린은 다른 것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고 알프레드 노인과 나 그리고 에오르 자매에게 청했고, 이에 프레드 노인은 각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으니, 이 즈음에서 한데 모여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 두고, 각자 원하는 곳에서 각자를 위한 이야기들을 이어가라고 말했다. 이후, 노인은 자신은 거실에 앉아 있을 테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에오르 자매와 루이즈 그리고 셀린은 집 안의 다른 곳으로 떠나갔지만 나는 노인의 곁에 남았다. 그래봬도 나의 옛 동료였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남은 것에 대해 노인이 나를 보면서 조용히 물었다.
"이제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가도 되건만, 왜 여기에 남았나?"
"할아버지와 같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있어서 그래요."
"그런가......" 그런 나의 말에 노인은 조용히 미소를 띠었다. 이후, 노인은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은 채로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다가 계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 마디 말을 건네었다.
"그래, 벌서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었구나. 너도 그 때에는 참 어렸고, 나도 그 때에 비하면 그래도 젊었지, 그 때에도 나는 이미 노인네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말야."
샤르기스의 지하 유적을 탐사해 그 곳의 고대 문명을 발견하겠다고 모두들 나설 때에는 모두 다 용감하고 젊었다고 말하는 알프레드 노인의 모습에서 묘한 미소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후, 그는 다른 동료들의 소식은 붉은 바위의 산에서 일하는 스카즈(Skaz), 그리고 붉은 바위의 산에서 작은 음식점 일을 하는 파를리(Farly) 를 제외하면 아직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서 나에게 다른 동료들의 사정에 관해 더 들은 이야기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묻기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스카즈와 용병으로 일하고 있던 알프레드는 우연히 만났고, 파를리에 관해서는 그 때 처음 들었을 정도라서 그들에 대해 더 이야기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샤하르의 학교에서 학업에 열중했고, 학교에서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느라 그 당시에 만났던 아저씨들, '형' 들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내가 스카즈를 기억하고 있음에 대해서는 알프레드 노인은 그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말하며 기뻐했고, 그러면서 나에게 물었다.
"스카즈에게는 여전히 '형' 이라고 칭했느냐, 예전에 스카즈가 너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형' 이라 칭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더구나."
"그랬었지요." 이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스카즈는 그런 나를 이전처럼 받아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알프레드 노인은 그들을 비롯한 당시에 대원들이었던 이들이라면 으레 그러할 것이라고 말하고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그들에게 나는 언제나 꼬마 막내 대원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막내 대원이 어느새 장성해서는 샤르기스 유적 내부로 들어가 그 내부에 있던 음험한 이들을 몰아내고 유적 내부의 탐사를 마칠 줄이야, 그 소식을 알았다면 당시의 대원들은 그런 네가 너무나 자랑스러울 게야. 그 누구도 못한 일을 해낸 것이 아니더냐."
그리고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나에게 앞으로 할 일이 있다면서 그것에 대해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당시의 대원들이었던 이들을 불러 모아서 회식이라도 해 보고 싶구나. 물론 주인공은 네가 되어야 하겠지, 네가 대원들의 숙원을 이룬 것이니까 말야. 어때? 그러한 잔치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나?"
그 순간, 나는 어느 풀밭에서 성대한 연회가 열리고, 연회가 열리는 곳에 있는 거대한 탁자의 중심 쪽에 내가 앉아 있으며, 이러한 나의 주변에 있는 자리들마다 어렸을 적 나와 탐사를 했던 이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연회의 석상에는 그간 먹어볼 수 없었던 수많은 진귀한 요리들이 있으며, 연회를 준비하는 이들은 예비된 진귀한 요리들을 나에게 우선 대접하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었을 요리들을 직접 맛 볼 수 있는 순간, 이러한 순간이 올 수 있지는 할까. 알프레드 노인이 말한 연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 그러한 순간이 올 수 있음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요리들을 접하게 되면 당황해서 어찌하지 못할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서 그간 그런 요리들을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알프레드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그렇구먼." 이라고 화답하고서 이러한 요리들이 처음인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나도 그런 요리는 처음이라네."
그래서 만약에 잔치를 열겠다고 하면 사전에 그간의 기록에만 남아있다는 요리들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해 봐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연회보다는 옛 동료들을 다시 만나고 나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음을 그에게 말했고, 이에 노인이 그것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라...... 그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그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알프레드 노인에게는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 여기서는 밝힐 수 없다. 다만, 그 당시에 알프레드 노인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해 했던 이야기는 대략적인 생각만을 말할 수 있었을 뿐으로,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해 주지 못했다는 것 정도는 밝히고 싶다. 그럼에도 노인은 나의 이상에 대해 무척이나 좋아했고, 연회를 여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생각한 바가 더욱 현실적이고,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이후에 언젠가 대원들이었던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내가 생각한 바대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도록 모두 도움을 주도록 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부 모일 수 있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그 당시의 대원들 모두가 다 모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인은 "그렇기는 하지." 라고 화답하면서도 그들에게도 탐사대 시절은 그들에게 있어서 나름 자랑스러운 추억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모이지는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호응해 주리라 믿고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내가 대원들을 가능한 찾아서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 볼 생각이야."
옛 대원들을 최대한 찾아서 그들에게 연락을 해 보겠다는 알프레드 노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크지 않았다. 말을 한 만큼, 의지가 있었음은 분명했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상당한 회의감이 느껴진 듯해 보였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옛 대원들은 더 이상 옛날의 그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알프레드 노인 역시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부터 그렇게 많이 변했는데, 그들이라고 변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붉은 바위의 산에서 스카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대원들은 모두 열정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루고 싶은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있었으며,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불타는 영혼' 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고 했다. 눈앞의 시련을 맞닥뜨린 이후에도 정말 모든 것이 두렵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는 조금 회의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의지력이 영혼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당시의 대원들은 변했다. 나부터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 가면서 변했고, 그들 역시 많은 변화를 거쳤을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은 예전의 모든 것이 두렵지 않을 그들이 아니었다. 많은 것들이 두려워지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 나도 어쩌면 그러한 이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의 대원들 중 상당수, 1/3 가량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으며, 또 일부는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해서 다시 외부 활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대원들을 불러모은다고 하더라도 내 곁으로 올 수 있는 이들은 당시의 대원들 중에서 반 가량 정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반 이하면 10 ~ 15 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10 여 명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30 여명에 이르는 이들 중에서 4 ~ 5 명 정도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을 이미 해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후, 알프레드 노인은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었고, 그렇게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정해진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방의 왼편에 자리잡은 침대에 셀린이 책을 두 손에 들고 있으면서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오르 자매와 루이즈는 이미 밖으로 나갔는지 방에는 없었다. 셀린은 내가 들어올 즈음에는 가만히 책에 집중하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고 있음을 의식한 듯이 책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얼마나 머무르실 생각이에요?"
셀린은 나에게 하미시에 얼마나 머무르고 있을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였고, 이 질문에 나는 우선 하루 정도는 하미시에서 지내다가 다음 날이 되면 하나야스의 고대 유적이 자리잡은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빛의 등대' -하나야스에 자리잡은 빛의 탑은 '등대' 라 칭해지고 있었다- 를 찾아가도록 할 것임을 밝혔다, 빛의 등대를 찾아간 이후에는 곧바로 하미르에 있다가 가브릴리아로 가려 하고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아침에는 중앙광장 서로의 여관에서 지내고 있을 이들과 만나고, 그 다음에는 에오르 자매의 친구 분께서 일하시는 곳으로 같이 가 봐야지요."
"그 레르마임(Lermaym) 말이지요?" 내가 에오르 자매의 친구가 일하는 찻집에 한 번 가 보겠음을 말하자 셀린이 바로 레르마임으로 가려 하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나는 셀린에게 다음 날에 하미시에서 특별한 일이 있거나 한지 그 여부를 묻자, 셀린이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내일 오후에 하미시에서 가장 행렬 행사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오전 시간에는 찻집에 계시다가 오후에는 행사 구경하러 거리로 나가 보시면 좋을 거예요."
그리고서 에오르 자매는 집으로 들어가서 잠시 쉬자마자 바로 하미시의 고대 유적 지대로 갔음을 밝히고서 아침 일찍 즈음이 되어서야 돌아올 것 같다고 말했다. 유적 일대에 아직 케레브 족 잔당이 남아 있어 그들을 포획하기 위해, 그리고 그 근방 일대로 도주한 케레브 족 일당들을 소탕하기 위해 나서려 한다고 에오르 자매가 직접 셀린에게 전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에오르 자매가 이 행성계에서 무슨 임무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와 내 일행이 전투를 행하는 곳에서는 늘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늘 곁에 없었던 이들로 나 그리고 나의 일행과 마주하지 않을 동안에는 나와는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을 것으로 무언가 모종의 임무를 갖고 활동하고 있었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들은 사항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케레브 족 소탕이 있겠지요. 우리도 그렇겠지만, 아르데이스 성계의 엘베 족, 델바 족 역시 케레브 족의 존재가 다른 행성에 있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셀린은 우선 에오르 자매가 이 행성계로 온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하고서 그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목적이 있음을 밝힌 이후에 그 목적에 의한 활동은 아직 나는 목격해 보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고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려 하였다.
"엘베 족의 신형 격멸포(Fushekanona) 를 시험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요."
"신형 격멸포 (Shaeyfushekanona) 라고요?"
격멸포 (Fushekanona, Burshtenkanon, Bursting Cannon) 라는 병기가 있다. 본래는 태고 시대에 인류에 의해 개발된 대형 총포의 일종으로 사람이 들고 다니는 형태는 그 길이가 1 메테르에서 2 메테르에 이르고, 병기에 장착하는 형태는 병기의 길이에 따라 다르지만 전투기 장착형 기준으로 최대 8 메테르에 이르는 대형 포의 일종이라고 한다. 길이가 긴 만큼, 포의 구경도 크고 발사되는 광선의 위력도 강력한 병기로 일격에 착탄지와 그 주변의 넓은 반경에 광역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병기라고.
다만, 원래의 격멸포 (Semifushekanona, Original Bursting Cannon) 는 당대의 포들과 비교해서 위력이 크지 않았는데, 강력한 타격보다는 보다 많은 인명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병기였기 때문이었다. 인류는 격멸포의 광선을 발사할 때, 구경을 크게 만들고, 그와 더불어 격멸포가 발사되는 광선의 착탄 이후에 큰 폭발을 일으키는 특성까지 부여하였는데, 폭발을 통한 더 많은 인명의 살상이 그 목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학살의 상징' 이라 칭해졌던 거포를 엘베 족 사람들이 아르데이스의 폐허에서 주워온 것을 엘베 족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을 이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목적은 케레브 족의 거점 타격은 물론, 언제 어떻게 침공을 이어갈지 알 수 없을 기계 병기들의 격멸인 모양이라고.
"그래서 에오르 자매가 가지고 다니는 격멸포는 어떤 성능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에오르 자매 두 분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길다란 길이와 에너지를 봉입한 카트리지를 소모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여기에 자체적으로 마나를 생성할 수 있는 수정을 장착해 일반 광선 발사도 겸할 수 있는 격멸포의 특성에 수정에서 생성된 마나 에너지를 충전해 카트리지 방식의 광선 포격에 준하는 위력을 내는 광선의 발사를 행할 수 있는 특성이 추가된 형태라 했어요."
일부 마나 광선총이 갖고 있는 특성을 그대로 채용한 것이라 하였다. 격멸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 카트리지를 소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는데, 해당 카트리지의 소모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하였지만 에오르 자매들 중에서 린에 의하면 새로운 광선 포격 방식은 기존의 카트리지 소모를 행하는 방식보다 큰 위력의 광선을 발사할 수 있지만 최대 위력을 위해 긴 충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를 개량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렇다면 요건만 되면 카트리지를 소모하는 것보다 더욱 큰 위력의 광선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셀린은 그렇다고 화답을 했다. 이후, 셀린은 격멸포를 장착할 수 있는 글라이더의 시험도 하고 있는 모양으로 글라이더는 아르데이스에서 제공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글라이더는 사용한 후에는 반드시 돌려줄 것이 명시되어서 있고, 행성계 내에서는 본래의 목적 이외의 사용이 엄금되어 있어서 이 행성계에서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 이유라면 대략 짐작이 되기는 했다. 글라이더 역시 시제형 (Cevßï, Prototype) 이고, 시제형은 기본 성능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성능이 안정적이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고를 일으킬지 알 수 없기에 제한된 장소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격멸포 역시 새로운 기능인 충전 발사는 시험 발사를 위해서만 행하며,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카트리지 사용 역시 만약의 경우를 위해 아껴두고 있어서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그럼에도 격멸포스러운 위력이 나온 것은 광선의 에너지 원인 수정의 성능이 좋았기 때문이었던 모양.
"기계 내부의 수정은 매우 높은 마나 발전 성능을 갖고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병기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두 분께서 말씀하신 적도 있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에오르 자매는 마나 수정을 지극히 아끼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그래서 에오르 자매와 다시 마주할 때, 정말로 마나 수정을 아끼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에오르 자매는 밤이 깊은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셀린은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해 잠이 들었다. 모두 잠이 든 이후,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이라도 읽기로 하고, 빛의 기운에 의지해 어둠을 비추면서 셀린이 읽던 책을 읽기로 하였다. 누군가 책을 펼쳐볼 것임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펼쳐져 있던 책장-125 번째 쪽이었다-의 한쪽 구석이 접혀 있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둔 채로 첫 장을 펼치고서 책을 처음부터 읽어 나아갔다.
셀린이 읽던 책은 하나야스의 역사와 하나야스의 양대 도시라 할 수 있는 하미르, 하미시 그리고 고대 유적 이야기가 1 부, 하미르, 하미시의 명소에 관한 이야기가 2 부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하미시의 명소들은 중앙광장의 산토 도라도 대성당과 중앙광장 서로에 있는 시장 거리-황금의 시장 거리라 칭해졌다- 하미시 동부 교외의 성채와 고대 유적 거리 그리고 동부의 문화 거리 등이 있었다. 이외에 명소로 거론되지 않기는 했지만 남부 교외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염전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인근 지대에 자리잡은 이들이 모여서 각자의 밭에서 소금을 만들면서 살고 있다는 모양.
'어디를 가 보자고 할까, 서부 시장 거리는 애들이 이제는 내켜하지는 않을 것 같고......'
책을 계속 펼쳐 보면서 나는 다음 날, 남부 거리의 찻집을 들른 이후에는 서부 시장 거리보다는 중앙 광장의 산토 도라도 성당이라든가, 아니면 동부 문화 거리 위주로 나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서부 문화 거리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을 이미 겪었던 만큼, 다시 가는 것을 원치 않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여기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는 하미르, 하미시에 자리잡은 수많은 식당과 찻집들, 옷 가게, 공구 가게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었으며, 대다수는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그리고 연혁이나 가게에 있었던 일화, 가게에 들어선 이들의 후일담 등을 수록하고 있었으며, 일부 유명한 명소들의 경우에는 해당 장소들에 관한 정보를 상당히 상세하게 기록하기도 하였다.
- 남부 거리의 레르마임(Lermaym) 에 관한 정보 역시 해당 부분 중 하나의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 곳이나 하미르를 처음 들르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유용한 책일 것 같아.'
셀린이 펼쳐 놓은 125 번째 장은 하미르의 명소 중 하나인 서부 문화의 거리에 관한 내용들 중 일부였다. 이 지역을 셀린이 들른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기는 했지만 일단은 해당 구역에 셀린 역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냥 잠들기 전에 125 번째 장을 펼쳐놓고 있었고, 그 이후에 계속 읽어보기 위해 책갈피를 마련한 것은 아닐까, 였던 것. 나중에는 그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하미르, 하미시의 명소들에 대한 소개 위주였던 책이었던지라 해당 지역의 역사에 관한 비밀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거나 하지는 않았으며, 하미시의 고대 유적에 관해서도 하미시의 고대 유적군에 있는 것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들 위주로 서술되어 있으며, 유적 내부의 비밀 등에 대해서는 기술되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해당 내용은 여행, 관광지 정보의 소개를 목적으로 출판된 책에 싣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위험한 내용들이었기에 서술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을 대략 읽어본 이후에 다시 125 번째 장을 펼쳐 놓고, 책을 침대 위에 올려 놓았다. 이후, 나는 셀린이 행여 잠에서 깰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에 그가 잠들어 있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거실 쪽으로 나올 무렵, 현관문 안으로 들어오는 이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아르사나 씨, 아직 집에 계시나요? 에오르 자매 분께서 아르사나 씨를 불러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세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루이즈였다. 하미시의 전통 의상과 모자를 쓴 채로 그는 현관 앞으로 다가오는 나에게 에오르 자매, 린과 리아가 나를 찾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알았다고 화답하고서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루이즈가 바로 답했다.
"중앙 광장 북쪽의 산토 도라도 성당 앞에 계세요."
"거기까지 가신 거예요?" 그들이 생각보다 멀리 갔음에 나는 흠칫 놀라면서도 그들의 곁으로 가겠음을 바로 밝혔고, 그리하여 나는 루이즈를 따라 산토 도라도 성당이 있는 북쪽 광장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나아가기 시작했다.
산토 도라도 성당(El Cathedralo de Santo Dorado, Santo Doradoy Kathedral) 혹은 산토 도라도 교회(La Iglesia de Santo Dorado, Santo Doradoy Eklesya) 라 칭해지는 건축물. 정문에 한 쌍의 종탑들을 시종처럼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정문이 맞이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바로 그 곳이다. 들어갈 수 있는 시간 대가 지났는지, 성당의 정면에 나란히 자리잡은 세 개의 성문-중앙의 것은 그 높이만 하더라도 사람 키의 2 ~ 3 배에 이를 정도로 컸다, 좌우의 성문은 사람 높이 정도-이 굳게 닫혀 성직 세상과 세속 세상을 가르고 있었다. 성벽 너머로는 원형 돔(Doma) 를 드러내는 거대한 예배당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정문과 예배당 사이에는 회랑과 광장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며, 예배당 주변에는 수도원 그리고 신부들이 기거하는 거주처가 있을 것이다.
거대한 성벽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광경을 보면서 그 내부는 얼마나 화려하고 거창할까, 그것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에는 무릇 정교한 공예 기술이 기반이 되는 화려한 예배당의 내부 모습과 창가를 형형색색으로 수놓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풍경이 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 때, 성당에 들를 때마다 그 화려한 내부를 보기 위해 예배당 안으로는 꼭 들어가고는 했다. 물론 수도원 내 예배당에는 그런 것은 없었지만.
에오르 자매는 성당의 정문 부근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멀리 있는 데다가 그들만의 고유어로 대화하고 있기도 해서 멀리서 잘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요청이 있었다고 했기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저기 오시고 계시네, 아르사나 씨, 여기예요~!!!"
그러다가 나와 루이즈가 접근해 오자마자 에오르 자매들 중에서 린-왼쪽으로 어깨에 거대한 총포를 메고 있지 않아 그렇게 추정했다-이 나와 루이즈를 향해 돌아서더니, 나를 향해 왼손을 높이 흔들며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렸고, 빨리 그 쪽으로 가야 하겠다는 생각에 그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루이즈도 뛰고 있었지만 나보다는 뛰는 것이 빠르지 않아 뒤쳐지고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는 못했다.
"루이즈 씨께서도 오셨네요, 루이즈 씨는 집에 계셔도 괜찮다고 말씀 드렸는데."
"세 분께서 같이 계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실 것인지가 궁금해서 말이에요."
그 대답에 나는 보이는 것보다는 나름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 지, 탐구심이라 해야 할 지, 그런 것이 센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린, 리아 자매 역시 "좋아요." 라고 답례를 해서 문제 없다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이후, 나는 성당 바로 앞의 계단 바로 앞에 앉았고, 루이즈에게 옆에 와서 앉으라고 청했지만 루이즈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에오르 린, 리아 자매도 서 있는데, 감히 앉거나 할 수는 없었던 모양. 이에 리아가 루이즈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내 옆에 앉아도 된다고 말했고, 그제서야 루이즈는 내 오른쪽 옆으로 가서 앉았다.
"여기로는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이후, 내가 에오르 자매에게 질문을 하자 린이 답했다. 다음 날 새벽이 되면 바로 들를 곳이라 하였다. 새벽에 에배를 보고 난 이후에는 바로 채비를 갖춰 북서쪽 해안 쪽으로 가려고 한다고. 그 목적이야 당연히 엘베 족이 개발한 신형 병기 시험일 것이다.
"이전에도 이렇게 시간이 되면 병기 성능을 시험하는 그런 일을 하셨었나요?"
이에 루이즈가 이전에도 같은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리아가 그렇다고 답했다. 위력 성능이 제대로 나오는지, 그리고 사용하면서 하자가 일어나고 있는지, 목표에 제대로 착탄이 되는지 등등을 실제로 사격 연습을 하면서 계속 시험해 본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병기들 및 탈 것들이 시험 개발되고 있어서 그것들의 성능 시험 역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자매들은 차세대 고성능 병기들의 시험을 담당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자주 시험에 나서고 있는데, 여기에 성계에서의 임무도 진행하고 있어서 너무 힘들 수 있다고 해서 병기 시험 요청 없이 한 동안 휴식 기간을 줄 수 있다고도 했어."
이에 린이 리아에게 휴식 기간이 다음 날부터 있을 수 있다는 말을 건네었다. 다만, 리아의 "정말일까?" 라고 건네는 물음에는 자신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린은 리아에게 만약에 휴식이 확정되면 바로 알려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면, 잠이 오질 않는다니까."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다 알 텐데......." 이후, 리아는 조용히 한 숨을 내쉬면서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고, 린은 한 숨 자고 나면 알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리아가 짜증이 난 듯이 린에게 목소리를 다소 높이며 말했다.
"나도 자고 싶어! 그런데 머리가 아파서 잠이 오질 않아......."
그리고서 린에게 그 역시 그런 적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린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바로 답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어투가 정직하게 대답을 할 때와는 묘하게 달랐던 것. 그것에 대해 따지고 싶기는 했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지는 않았고, 자매 역시 더 이상 린이 했던 말에 대해 더 왈가왈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여기서 잘까? 차라리 밖에 있으면 바람도 쐬면서 마음을 그나마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있을 것 같다' 라고 말하는 대신에 있을 것 같지 않냐고, 리아가 린에게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며 나름 확신할 수 있었다. 린과 리아의 성격 차이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리아가 겪은 일을 린 역시 겪어 보았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밤 바람이 여기는 좀 차요, 집에는 가셔야 할 텐데......"
"그래야 함이 옳기는 하지요." 이에 걱정이 되었는지 루이즈가 린, 리아를 향해 집에는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이에 린이 그래야 함은 옳다고 답을 했었다. 이후가 되어서야 린과 리아가 나에게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알리려 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몇 있었어요. 본래는 셀린 씨도 같이 오게 하고 싶었는데......."
나 혼자 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다면 굳이 셀린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묻자, 셀린은 그 시각에는 잠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굳이 부르지 않았다고 화답했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더니, 실제로는 별로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던 것. 물론 에오르 자매 역시 셀린 역시 깨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는 했었던 듯 했지만, 해당 이야기는 나중에 성당에서 셀린 씨께 따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굳이 더 잠이 들었을 이를 깨우려 하지는 않았다고. 해당 이야기는 셀린이라면 무척 흥미로워 할 것 같아서 그는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여기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아침 일찍 성당에 갈 때, 그 때 같이 듣도록 하지요."
그 때, 내가 에오르 자매에게 제안을 했고, "그렇게 할까요?" 라고 그 말에 린이 바로 되묻자, 그렇게 하는 편이 옳은 것 같다고 화답했다. 사실, 나도 에오르 자매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가 무척 궁금하기는 했었지만 굳이 지금 그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안 가요?" 이후, 내가 여전히 성당 정문 부근에 머무르고 있는 에오르 자매에게 묻자, 린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고 답하고서, 리아가 잠을 못 자겠다고 하니, 어찌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그와 더불어 기왕 그렇게 된 바에 밤새 성당 앞에 앉아 있으면서 도시의 야경을 계속 구경하고 있겠노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지루할 것 같지 않나요?" 이번에는 루이즈가 린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린은 지루할 것 같으면 앉아서 조금 잠들고 있다 보면 새벽 때가 되고, 성당 정문이 열리고, 그 때에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화답했다. 그러는 동안 리아는 루이즈의 바로 왼편 옆에 총포를 내려 놓으며 앉았다. 리아는 자신의 거대한 총포를 자신의 왼편 옆에 놓아두고 그 총포의 포신 부분을 왼손으로 잡고 있었다. 리아는 루이즈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
"이런 질문을 당장에 하기는 조금 그렇기는 한데....... 혹시 지금 이후로 가고 싶은 데가 있나요?"
"지금은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기는 하지만......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해요."
이에 리아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루이즈는 우선 자신의 동료들 중 대다수가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에 대해서는 나나 에오르 자매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고서, 그러면서도 시구르드 그리고 '교주' 밑에서 일하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동료들이 이 세상의 어딘가에는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는 말에 이어 그들을 찾아나서고 싶다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자신과 뜻을 함께 해 줄 사람들이 있다면 의지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자신을 선뜻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하기는 할 거예요, 어쩌면 너무 무모한 일이니까요."
모래밭에서 바늘 하나 찾아달라고 하는 일이다. 누구라도 선뜻 나서줄 이는 없을 것이고, 나 역시 그가 그런 바람을 갖는다고 해서 바로 도와주지는 못할 것 같기는 했다. 다만, 세니아가 그간 보호해주던 이가 있었고, 그가 다마나티엘 등과 함께 하미시로 혹시 오기라도 한다면 루이즈와 만날 기회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 레르마임이라고 했던가요, 이 중앙 구역의 남쪽에 있다는 찻집."
'예, 그래요." 이후, 루이즈가 건네는 물음에 리아가 그렇다고 답했고, 이어서 거기서 일하려 하는지에 대해 묻자, 일단 찻집을 찾아가 보고 그 때 생각해 보겠다고 화답했다. 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루이즈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찻집에서 일하실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루이즈는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푸투로 계획에 참여하기 전에 찻집에서 시간제 일 (Partajelukhyr, PJY) 을 한 적이 있었다고. 오랫동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돈 벌이가 되기는 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 동안 배운 것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다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배운 것들이 다 부질 없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찻집에서 일한 경험은 어찌 쓸모가 생겨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런 일이라도 배우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쩌면 되도 않는 용병 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거리의 정면을 바라보면서 찻집 일이 맞지 않으면 그 때부터는 아르데이스로 가서 용병 일을 알아볼 생각임을 밝혔다. 린, 리아와 같은 수준 높은 이는 못 되겠지만 먹고 살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그렇게 밝은 느낌이 아닌 자신의 신세를 자조하는 느낌이라 듣는 이들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만약에 아르데이스로 가신다면, 저희들과 같이 가요, 저희들이 어떻게든 좋은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할 테니."
그저 '교주' 의 공작원 노릇을 한 경험을 가지고 용병 일을 하겠다는 루이즈가 측은해 보였는지 린과 리아 모두 아르데이스로 간다면 같이 가자고 청하고서 그를 위한 좋은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아직은 험악한 괴수들이 곳곳에 서식해서 위험 지대가 있는 아르데이스에서 용병 일을 한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것. 이에 루이즈는 고맙다고 화답하고서 일단은 레르마임이란 찻집에 가 보고 찻집이 어떤 곳인지를 지켜보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말했다.
"꼭 그와 같은 곳에서 일하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고마워요." 그 말에 루이즈가 고맙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루이즈는 아까 말을 건네었던 나에게 여기저기서 일을 했던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주로 샤하르에 있으면서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고, 옷가게에서 옷을 나르는 일도 했고, 광산에 있기도 했었으며, 도서관에서 사서 노릇을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동료들 중에는 용접을 하거나 공사 일을 하거나 아니면 찻집에서 일한 이도 있다고 말했다. 전사라고 늘 사냥이나 용병 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애초에 나는 샤하르에 있을 때에는 학생 신분이었다-.
"도서관 사서를 하다가 그만두었을 때, 우연찮게 알아본 곳이 수도원이었어요, 슈라일 인근에 있다는 수도원."
"수도원에서 일하신 적도 있으셨다고요?" 루이즈가 놀라면서 묻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라테나 어 학습을 어느 정도 한 적이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해 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지원을 했었음을 밝혔다. 다만, 수도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수도원에서 도서 관리라든가, 청소 등의 잡일을 하고는 했었다는 것이었다. 잡무는 어디까지나 보조였고, 주로 하는 일은 도서 관리였다.
"그것이 라테나 어 수업에 큰 도움이 되었었나요?"
"....... 딱히 그렇지는 않았지만......" 이후, 루이즈가 건네는 물음에 조용히 답했다. 도서 관리를 하는 와중에 라테나 어 학습서를 보기도 했고, 라테나 어 서적을 읽어보기도 했었지만, 그것이 라테나 어 학습에 직큰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도원에는 성직자 한 분이 계셨어요, 아르데이스에서 오신 분임을 자처하셨던 분으로 그 분께서 라테나 어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었지요. 얼굴을 천으로 감추고 계셔서 인상은 험악했지만 그런 인상과 다르게 차분하고 온화하신 분이라 한 번 가까워지고 난 이후로는 틈나는 대로 그 분을 찾아 라테나 어에 관한 지식을 얻어가거나, 수도원의 종교 관습 그리고 태고 문명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신부의 이름은 '토마스(Tomas)' 라 하였으며-본명이 아니라 세례명이었을 것이다-, 고향에서는 대학교의 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수도원에서의 일로 인해 아르데이스를 떠나 수도원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마침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수도원에서 일하고 있다보니, 교수와 학생으로서 그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일을 마치기 얼마 전에 토마스는 수도원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때, 수도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나와 대화를 할 때에는 다른 수도사들에게는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도 다수 있었다고 하였다. 속내를 털어놓을 때가 나에게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간 자신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아르데이스에서의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왜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나는 그 이야기들을 다른 곳에서는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토마스 신부는 아르데이스 성계 출신으로 선조들은 과거에는 황야 지대에서 거주했었다고 하였다. 오래 전의 아르데이스에는 생명체에게 위협이 되는 물질들이 남은 황야 지대가 몇 있었는데, 그 황야 지대에 있는 괴 물질의 영향으로 선조들은 괴이한 얼굴 모습을 갖게 되었고, 그 여파가 괴 물질 그리고 황야 지대가 없어진 자신의 세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흉악한 외모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천을 얼굴에 두르고 얼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이후, 나는 토마스 신부의 천을 벗은 얼굴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선해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로는 연상할 수 없는 무서운 인상이라 그 모습을 보면서 크게 놀랐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토마스 신부는 성직자의 신분이라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지만 자신의 동족들은 드벨파, 엘베 종족 등에게 멸시와 미움을 받으며 여전히 자기들만의 거처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근래에는 엘베 족이 케레브 족에 이어 악의 세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 해당 종족들에게 다가가 선의를 베풀어주고 있지만 드벨파 족은 그러한 노력 하나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는 모양. 근래에 나는 아잘리로부터 토마스 신부는 드벨파 족의 거주지 부근에 있는 지상의 한 곳에 거처를 마련해 그 곳에서 저서 집필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좋은 분을 만나셔서 수도원 생활을 무난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도원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생활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시간 전례 (Liturgia Horarum, Jey Liturgia) 혹은 성무일도 (Officium Divinium, Divinain Hazyr) 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단 아침에는 '무조건'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아침 일찍이라는 것도 일반인들의 기준과 달라서 05 시, 즉 새벽 5 시 즈음에 당번 수도사가 '주님을 찬미할지라 (Benedicamus Domino)', 라 외치면 수도사들이 '감사합니다, 주님 (Gratias Domine)' 라 응답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평소와는 다른 생활 방식이라 처음에는 아침 시간마다 늘 졸림과 피곤함을 달며 살아야 했을 정도였다.
"5 시라고요? 군인들도 6 시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수도사들의 의무로 이런 것이 있어요, 누구보다도, 심지어 수탉보다도 일찍 일어나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음을, 주님의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
그 즈음에서 카리나나 세니아 등이 내 곁에 있었다면 수탉은 해가 떠오르고 나서 울 때도 있다는 말이 그들에게서 들려왔겠지만 그들이 곁에 없었기에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말이 들려오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않을 것 같았다. 루이즈는 수탉은 늘 새벽에 운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지, 내 말에 과연 그렇구나, 라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는 그 때, 3 명의 왼편 먼 옆에 있으면서 거리를 바라보던 린이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저희 집 근처에 수탉을 키우는 집이 있었어요. 그 수탉은 아침 해가 뜨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울더라고요."
"정말요?" 그 말에 루이즈가 놀라면서 린을 향해 물었고, 이 물음에 린이 루이즈를 향해 돌아서서는 그랬었다고 화답했다, 아침 일찍 고향 마을을 떠나 시내 중심부로 갈 일이 생겼었는데, 그 무렵에 어딘가에서 닭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어서 놀라서 그 쪽을 향해 돌아보니, 이웃집의 닭장에 있던 수탉이 힘차게 울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답변을 하는 린에 이어 리아도 자신도 본 풍경이라고 이어 말하고 있었다.
"그 때, 린이 저 수탉은 해가 뜨고 나서 울고 있다고 놀리고 있었어요."
라고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듯해 보였지만 그것에 대해 달리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린은 나를 보면서 나에게 자신들과 같은 광경을 본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산골 어느 마을에서 본 기억이 있기는 하네요."
슈라일 인근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 마을은 산중에 있었고, 근방에 작은 폭포도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래된 철로 위에 철로 자전거 (Caygilmarl) 역이 있어서-마을 남쪽 근교 200 메테르 거리 지점에 있었으며, 남쪽 1.5 킬로메테르 거리 지점에 역이 하나 더 있어서 두 역을 왕복할 수 있었다- 그 역을 찾아가는 도중에 갑자기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닭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 때는 해는 이미 뜨고 시각은 6 시 30 분 즈음이었는데, 그 즈음에서 닭이 울었던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난 이후에 그 동안 닭들은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울부짖는다는 속설을 믿지 않게 됐지요."
"그러셨군요." 이에 리아가 알겠다는 의미로 말을 건네었다. 이후, 리아는 나에게 마을에서 닭을 키우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고향 근교의 마을에서는 자주 보았다고 화답했고, 어린 시절에 지냈던 샤하르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이어 말했다.
"샤하르는 도시니까, 역시 그러하겠지요?"
이후, 리아가 물음을 건네자 나는 그렇다고 화답했다. 이후, 그는 마을에서 닭들은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대하느냐고 묻자, 리아가 답하기를, 자신의 고향 마을도 그렇고 엘베 족 대다수는 닭들이 태어나면 수컷은 일부를 제외하면 적당히 키운 후에 먹고, 암컷은 닭장 안에 계속 두도록 한다고 말했다, 암탉들이 낳는 알들이 주 식량이 되기 때문이라고. 닭을 잡은 이후에 고기는 고기대로 먹고, 뼈는 육수를 내는데 쓴다고.
"그래서 엘베 족 마을에서 고기하면 대개는 닭고기이지요. 어떻게 요리를 해도 괜찮은 요리들이 나와 주어서 사냥을 통해 힘겹게 마련해야 하는 여타 고기들에 비해 참으로 편리한 단백질 보급 수단이 되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하면서 리아는 조용히 입맛을 다시고 있었는데, 고향 혹은 다른 곳에서 먹었을 닭고기로 만든 어떤 요리가 문득 생각났던 모양. 그러는 동안 린은 리아의 근처로 다가와서는 성당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리아가 말을 마칠 무렵에 린이 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리아는 의외로 닭고기 수프(Dalkagugh) 를 참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딱히 맛있어 하는 편은 아닌데, 어디서든 흔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자주 찾아먹는 편이었지요."
"린도 자주 먹는 편이잖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남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를 해......."
그 때, 리아가 린을 잠시 바라보더니, 핀잔을 주는 듯이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일, 그것도 친 자매의 일인 양 이야기를 한다고 항의를 한 것이었다. 이에 린은 잠시 당황하기도 했었지만 곧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려 하였다.
"그러다가 빨간 닭고기 수프(Farindalkagugh) 가 있다고 해서 세간에 알려진 빨간 수프를 만드는 법대로 그 빨간 닭고기 수프를 만들어 먹기도 했었지요."
그 무렵에 구한 재료들로는 닭고기 살과 감자(Kartof), 당근(Karot), 비트(Beta), 샐러리(Salaria), 파슬리(Parselia), 레몬(Limon), 배추 그리고 각종 향신 재료들과 토마토(Tomato) 가 있었다. 이것들을 적절히 조리해서 붉은 닭고기 수프를 만들어서 먹었다고.
"맛은 어떠했나요?" 여러가지 재료들을 넣어 만든 닭고기 수프라고 하기에 그 맛이 무척 궁금해서 물으니, 린은 토마토를 끓여서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라고 말하고서 시큰한 맛은 약해지고 특유의 달큰한 맛이 더해져서 맛이 아주 좋아졌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맛이 좋아서 자신도 그렇고, 리아도 맛있게 잘 끓여 먹었음을 밝히고서 이후에는 토마토를 꽤 많이 마련해 와서는 약식 형태로 수프를 만들어서 먹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그것이 고대 이래로 알려진 '붉은 닭고기 수프' 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중에 그들이 듣기로는 그들이 알아낸 조리법은 보르쉬(Borsc) 혹은 보르쉬치(Borshc) 라는 수프의 조리법이라 하였으며, 이후, 두 사람은 흔히 말하는 '빨간 맛(Farinmats)' 은 그 보르쉬 혹은 보르쉬치가 내는 토마토 특유의 맛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제가 듣기로는 보르쉬에는 우유 같은 것을 넣어 먹기도 한다고 했는데......"
"거의 요구르트(Yoghurt) 상태나 다를 바 없는 신 우유 (Thinyjesh) 를 넣어서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프의 색이 엷어지고 특유의 '빨간 맛' 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게 먹는 법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이후, 내가 모처에서 들은 바대로 보르쉬의 먹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린에게 묻자, 리아가 그런 경우가 있으며, 특유의 '빨간 맛'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루이즈의 모습을 잠시 돌아보고 있었는데, 뭔가 못 마땅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바가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무슨 일이냐고 넌지시 물음을 건네 보았지만 그로부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 이외의 어떤 말도 나오지 않고 있어서 그로부터는 더 이상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잠시 닭에 관한 이야기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네. 흐름을 다시 바꾸어야 하겠네요."
이후, 나는 다시 수도원 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다고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수도원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새벽 5 시, 심하면 4 시 반 즈음일 거예요. 그 시점에서 주번 수도사가 '주님을 찬양하라!' 라고 외치면 수도사들이 일제히 '감사합니다, 주님' 이렇게 화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직 뭇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그런 때에 말이지요."
"못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없었어요, 적어도 제가 있는 동안에는 말이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세간에 알려진 수도사들의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니라서 평온하게 화답하며 일어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짜증을 내면서 대충 화답하며 일어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고 답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이러한 나의 말에 리아는 조용히 웃으며 화답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아무리 그들이 오랜 신앙 생활을 추구해 왔다고 하지만 그들도 사람일진대 늘 여건이 좋은 것도 아닐 테고, 그래서 그들 사이에 잠 기운을 어찌하지 못한 채 일어나면서 잠 깨우는 소리에 짜증나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음이 그 이유.
"그 이후로는 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수도사와 수련사들이 모두 자리에 앉으면 그 이후부터 원장의 지시 하에 따라 수도사들이 노래를 불러요. 예컨대 '도미네 라비아 메아 아페리에스 에토스 메움 안눈티아빗 라우뎀 투암 (Domine labia mea aperies et os meum annuntiabit laudem tuam)' 같은 노래들."
"방금 전의 어구는 무슨 뜻인가요?"
"주여,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 그러면 제 목소리가 당신의 찬미를 알리겠나이다 (Gomaya, nai yfslîl yerdala, tum nai sor gda üha lavdatîl arihla) 라는 뜻이에요. 아무튼 이런 찬송가를 부르고 난 이후에 또 시편의 노래를 부른 이후에 성서를 봉독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 시간에 조는 사람들 꼭 있지......."
"날이 밝은 때에도 수업 시간에는 한 두 사람씩은 꼭 졸게 마련인데, 하물며 새벽 이른 시간에, 잠이 덜 깬 사람들더러 공부를 하라고 하면 졸음이 쏟아지는 이들이 분명 있어."
그러자 리아와 린이 이어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졸다가 걸린 사람이 있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없었을 리가 없다. 당연히 있었다고 화답한 이후에 등을 들고 번을 도는 수도사가 한 번씩 일대를 둘러보며 조는 수도사들을 깨웠고, 다시 졸다가 걸리면 그 사람이 번을 돌아야 했음을 밝혔다.
"아르사나 씨께서 졸다가 발각되신 적이 있으셨나요?"
"저는 외부인으로 온 사람이라 그런 일에 상관할 필요가 없기는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낮에도 일하는데, 새벽에 깨우는 것이었음을 감안한 것이었지요."
이후, 린이 건네는 물음에 그렇게 화답했다. 이후, 나는 그렇게 잠시 동안의 봉독 시간이 끝나면 수도사들이 '주님께 (Te Deum | Gda, gomaye)' 라는 노래를 부르고, 이후에도 시편의 강독과 찬송가가 이어지고 있었음을 밝히고서 하루 일과의 시작은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인 듯해 보였다고 수도원의 아침 일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간 전례 상에서는 아침 기도, 1 시경, 3 시경, 6 시경, 9 시경, 저녁 기도, 찬사 기도 그리고 종무 기도가 있어서 각 시간마다 이렇게 예배를 교회에서 드려야 한다고 되어 있지요. 하지만 모든 때마다 그렇게 예배를 보거나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일부 시간에는 예배를 생략하거나 간소하게 치르는 경우가 보통이에요. 하지만 새벽의 아침 기도나 저녁의 저녁 기도는 예외 없이 치르지요."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가 수도사들에게는 그 만큼 중요한 사항이라 그러하겠지요?"
이후, 리아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그러면서 힘들었지만 나름 보람 있는 시간이었었다고 수도원에서 일을 했던 두 달 간의 시간에 대해 언급을 하고서 학업을 다시 하기 위해 수도원 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샤하르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 동안 수도원 사람들, 수도원에서 라테나 어 교습, 사서 정리 등의 이유로 만났던 수도사들은 물론 식사를 담당했던 이들과 수도원장까지 한 동안 나와 편지로 근황을 전달을 받은 적도 있었음을 밝혔다.
"아르사나 씨께서 그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됐나 봐요, 일을 마치고 수도원을 떠난 이후에도 근황을 편지로 주고 받으셨다니. 그 일을 언제까지 하셨나요?"
"몇 달 동안은 이어졌죠." 이후, 린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러한 연락이 끊긴 것은 수도원의 원장이 바뀌고 난 이후였다. 바깥 사람인 내가 수도원 사람들과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수도원장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는데, 당시의 수도원장이 떠나고, 새 수도원장이 부임하면서 수도원 내부의 일에 더욱 신경을 쓰고, 사사로운 연락은 줄이라고 지시를 내렸던 것. 그래서 수도원에서는 정말 필요한 사항이 아니면 나와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 이후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일이 없었던 만큼, 사실상 수도원과의 연락은 끊긴 것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라테나 어 학습은 물론이고, 수도원에서 구어로 통용되던 라치나(Latsina) 어 역시 많이 배울 수 있었지요. 이후, 학교에서 프랑키나(Frangkina) 어 수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 당시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셨군요." 이에 린과 리아 자매 모두 거의 동시에 말했다. 이후, 나는 린, 리아 자매에게 전사로서의 일 이외에 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린으로부터 답변이 바로 나왔다. 어렸을 적에는 리 셀린 (Li Selin) 과 그의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그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리 셀린을 따라 여러 일터를 전전하기도 했었음을 밝혔다.
"리 셀린은 빵(Pang) 이나 사탕(Yati) 류를 무척 좋아했었고, 과자나 사탕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공정을 직접 구경하고, 또 체험해 보고 싶었대요, 또 그 공정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아르데이스의 여러 찻집, 빵집 그리고 사탕 공방에서 셀린과 함께 일한 적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면, 헬더라스(Heldëas) 라는 도시의 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사탕 공방에서 일한 때가 있어요. 그 때가 사탕 공방에서 처음 일한 때였고, 그래서 당시에 처음 알게 된 일들이 여럿 있었거든요."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사탕의 재료는 당(Acera) 으로 당은 단 맛을 내는 식물에서 뽑아내거나, 아니면 보리(Ilbo) 의 싹을 가공해서 만들어낸다고 하며, 후자 쪽이 보다 자연적이라 아르데이스의 엘베 족들은 그 방법을 활용하려 한다고 하였다. 이외에 고대인들이 남겨 놓았던 설탕을 찾아내서 재가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렇게 구한 당을 가열한 후, 열에 의해 액화된 당을 판 위에 올려놓아 어느 정도 식으면 그것은 끈적해지면서 반죽할 수 있게 되는데, 사탕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반죽화한 당을 활용한다고 한다. 당을 반죽해서 원하는 형태로 성형한 이후에 식히면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완성해 간다는 것.
"당 덩어리는 식으면 딱딱하게 굳기 때문에 뜨거운 상태에서 반죽을 해야 하지요. 뜨거운 데다가 끈적하기까지 해서 덩어리를 주무르기 위해서는 장갑을 꼭 껴야 하지요."
"맨 손으로 만져본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린이 사탕을 제조하는 공정에 관해 간단히 설명을 한 이후에 그것에 덧붙여 장갑을 껴야 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내가 물었다. 그러자 리아가 우선 그 질문에 간단하게 답을 하였다.
"있었을지도 몰라요, 아마도." 그리고서 그는 당연히 화상을 입으며, 당의 특성 상 피부에 잘 달라 붙어서 그 피해의 형태는 끔찍하기에 이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당은 물에 아주 잘 녹기 때문에 물에 씻어버리면 그만이라지만 씻어내기 전의 고통이 어마어마한 만큼, 애초에 그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와 리아 그리고 셀린 모두 그 광경을 직접 보거나 하지는 않았지요, 공방에서 일하시던 분들의 이야기로나 들었을 따름이고, 공방 초창기 사람들도 그 참상을 직접 보거나 하지는 않은 전설(Legend) 에 가까운 일화였다네요."
다만, 린은 이전의 이야기 이후, 그 끔찍한 전설에 관하여 그러한 전설이 있었고, 당류의 성질에 관한 지식은 고대의 인간들이 남긴 유산을 통해 잘 알려진 바 있었기에, 사탕을 만드는 등으로 당류를 다루려 한 엘베 족 사람들이 뜨거운 당 덩어리를 다루면서 생길 수 있는 화상 위험 등에 대해 바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관련된 사고가 거의 없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린과 리아 그리고 셀린은 공방에서 여러 사탕들을 만들어 냈었지만, 당 덩어리를 주물러 공작품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방에는 1 년 남짓 정도 일했었는데, 그 정도 경력가지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셀린이 우선 힘들어서 그만두었고, 그 이후, 셀린이 그만두는 것으로 인해 일에 대한 의욕이 급격히 사라진 린과 리아가 동시에 일을 그만두면서 그 사탕 공방을 떠났다고 한다. 다만, 일이 힘들었을 뿐으로 공방 사람들과의 원한은 없었는지, 이후에 셀린이 공방을 들르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별 다른 원한 없이 만남을 가졌다고 그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공방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잖아, 일이 힘들어서 그렇지."
"그래서, 셀린이 그만둔다고 했을 때, 공방 분들께서 이해해 주시고 그 요청을 받아주셨잖아."
리아는 셀린이 공방 일을 그만둘 무렵에 그 곁에서 있었고, 그래서 셀린이 공방에서의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의 곁에서 그 대화를 들었다고 했었다. 당시의 셀린은 일을 무척 재미있어 했고, 일에 큰 의욕이 있어 보였으며, 그래서 공방 사람들이 일이 너무 힘들어 의욕이 급격히 떨어져버린 셀린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힘든 일이라서 공방에 오는 이들 중 다수는 1 년 이상 일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공방에 오는 이들은 대개 공방에서 선보이는 화려한 당 덩어리를 반죽하는 모습에 반해서 오지만, 그 일이 엄청나게 힘든 일임을 깨닫고, 떠난다는 것인데, 셀린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고 해요. 다만, 셀린은 워낙 의욕적으로 일을 해서 계속 공방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였음에 공방에 계셨던 분들께서 무척 아쉬워하신 것 같아요."
"린, 그 이후로 셀린이 일한 데가 어디였지?"
"그 이후로는 한 동안 집 근처의 밭에서 일했고, 리아하고 나 역시 거들었었잖아, 힘든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와 리아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해서 말야. 그 이후로 나와 리아가 삼림 경비대 (Waldwachers) 에 지원했을 무렵에는 찻집에서 몇 년간 일했었어. 사탕 공방에서 일할 때보다는 훨씬 편하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었어."
"이전에는 어머니와 함께 해안에서 가재 잡이도 했었다고 들었는데, 그 일보다 힘들었대?"
"그랬다니까." 이후, 자매의 대화에 의하면 리 셀린은 이후, 경비대에 지원을 했고, 시험에서 한 번에 합격해서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던 자매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었던 모양. 그 이후로 정식으로 삼림 경비대에서 자매를 따라 특수 요원 자격을 얻었는데, 하미시에 장기간 머무르고 있으면서 현지인들처럼 생활하겠다면서 찻집에서 일하게 된 모양.
"이번 일이 끝나면 불러올 생각이지?" 이후, 리아가 묻자, 린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셀린 자신도 오래 일할 것을 생각하지는 않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후, 나는 어떻게든 자야 하겠다는 생각에 계단에 앉은 채, 몸을 웅크리고 눈을 붙였다. 그 이후로 의식이 없어졌는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람 소리 때문에 깨어났을 무렵에는 어느덧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새벽 시간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성당 앞에서 날이 밝아오는 풍경을 보자하니, 수도원에서 일했던 시절의 음성이 곧 들려올 것만 같았다.
Benedicamus~ Domino~
Gratias~ Domine~
"아르사나 씨, 잘 주무셨어요?" 그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앞에 이른 루이즈가 나에게 아침 인사를 했고, 이에 내가 그럭저럭 잘 잤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린과 리아 자매를 찾으려 하였고, 나는 곧 이들이 성당의 정문 앞에서 성당의 경비원 앞에 다가가 대화를 이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무렵, 뒤쪽에서 나를 알아본 듯한 이들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보자마자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카리나의 목소리였다.
"아르사나,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자고 있었던 거야? 다른 집으로 가서 잘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할 만한 사정이 있었어."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바로 답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카리나, 세나, 나에티아나 그리고 일행의 짐을 매고 있던 세니아가 나의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으며, 특히 카리나는 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 일행의 짐은 그간 내가 맡고 있었지만 내가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하게 된 이후에는 나와 더불어 짐을 맡고 있었던 세니아가 맡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가려고 했던 거야?" 이후, 내가 묻자, 카리나는 그렇다고 답하고서 우선 하미시의 새벽 예배에 참가하겠다고 모두 나서서 성당으로 가게 되었음을 밝혔다. 이후, 내가 나에티아나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냐고 물었으나, 카리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다만, 두 번째 예배도 가야 한다면 분명 그것은 나에티아나가 시켜서 가는 것이리라고 말하기는 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잠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가 가게들이 문을 열 때가 되면 광장의 남쪽에 위치한 '레르마임(Lermaym)' 이라는 찻집을 들르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레르마임? 그 이름은 어떻게 듣게 되었는데?"
카리나가 레르마임이라는 이름을 언급한 것에 대해 나는 흠칫 놀라면서 물었다. 아닌 것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일행은 당시 하미시 거리는 사실상 그 무렵에 처음 들러보는 것이었고, 그래서 하미시의 주요 명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고사하고, 어디에 어떤 명소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기 때문이었다-물론 나도 포함이었다-. 레르마임이 그렇게 큰 가게인 것도 아니고, 현지 사람들만 아는 찻집이지 않았을까 싶었던지라, 어떻게 그 곳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찻집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라고 묻자, 카리나가 대답을 하려 할 즈음, 나에티아나가 날개를 펼치고서 카리나의 어깨 위로 올라와서는 자신이 밖에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한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 찻집의 이야기를 들었음을 밝혔다. 그와 더불어 최근에 엘베 족 출신 종업원이 들어왔는데, 보통 미녀가 아닌지라 들를 때마다 사람을 설레게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그 말에 가장 관심을 보인 이가...... 세니아였지?"
"맞아." 이후, 내가 건넨 물음에 카리나가 그렇다고 답하는데, 답을 하면서 잘 드러나지는 않아도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었다. 다행히도 당사자인 세니아는 카리나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 시각이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나에티아나가 날개를 접고, 일행이 나를 지나쳐 나의 앞쪽에 모여있으려 할 즈음, 루이즈가 일행이 모인 그 우측 곁으로 와서 묻자, 나를 대신해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이제 5 시 되기 5 분 전이라고. 그러면서 5 시 10 분 즈음에 성당 문이 열리고, 그래서 5 시 즈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 말이 끝날 무렵에 성당의 정문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하는데, 그 무리 중에 셀린이 끼어 있었다. 셀린은 이후, 나를 비롯한 일행이 모여 있는 광경을 보더니, 린과 리아가 있는 곳이 아닌 나를 비롯한 일행이 있는 그 근처로 다가가려 하였다.
"아르사나 씨와 루이즈 씨께서도 여기 계셨었네요." 이후, 셀린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이후, 셀린은 나를 보다가, 나의 우측 곁에 있던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 등의 일행들의 모습을 보더니, 환하게 미소를 띠면서 나와 세나 등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아르사나 씨, 이제 다른 분들과 합류하시게 되셨나 봐요."
"그렇게 되었네요." 이에 나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게 화답을 하고서 루이즈와 함께 카리나 등의 일행과 함께 성당의 정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셀린은 자신의 일행인 린, 리아 자매가 아닌 나와 루이즈 그리고 나의 일행과 동행하고 있었다. 린, 리아 자매라면 이미 성당의 정문 앞에 이르러서 나를 비롯한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것임이 그 이유라고.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면 갈 곳이 있음을 밝히고서 자신과 함께 있던 나와 루이즈는 알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레르마임이라는 곳으로 간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서 나는 세나, 카리나 등에게 하지만 예배 이후, 레르마임에 이르기 전까지는 동행하지 않을 것이라 셀린 등이 나에게 말했음을 밝히고서, 9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별로 좋은 풍경이 아니라 여기고 있음이 이유였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 애들 9 명이 한꺼번에 돌아다니는 것은 조금 그렇게 보이기는 하겠지."
이에 카리나는 그 말을 이해한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의 곁에 있으려 하는 세나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자신을 비롯한 일행과 계속 함께할 수 있을 테니, 그들과 함께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얼음 지대, 그리고 고대 도시에서의 전투 때에 직감할 수 있었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숨은 거대한 악의 기운과 맞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악의 세력과 정면에 맞서려 하시는 린, 리아 자매 분이라든가, 이런 분들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일행은 성당의 정문 앞에 이르게 되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린, 리아 자매도 있었다. 린, 리아 자매는 셀린이 일행들을 제치고 앞서 나아가 성당의 정문 앞에 이르자마자 환하게 미소를 띠며 셀린을 맞이하였다.
"잠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그러면 계속 여기에 계셨던 거예요?"
"그랬지요. 저도 그렇고, 리아도 잠이 오지를 않아서......."
"그랬었군요." 셀린이 건네는 물음에 린이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성당의 정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정문 너머로 들어서려 하자 린, 리아가 앞장서 성당의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들을 따라 셀린 그리고 나와 루이즈를 비롯한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아르사나 씨 등께서는 성당에 들어가신 경험을 가진 적이 있으셨나요?"
"아르사나 씨께서는 수도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으셨대요. 그래서 성당에는 자주 들어가셨을 거예요."
이에 세나가 루이즈에게 내가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성당 안으로 자주 들어갔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나 이외에는 다들 어렸을 때에는 성당에서 예배를 보고는 하였지만 어렸을 때 이후로는 각자 일이 바빠서 성당 예배를 볼 시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이후, 나에티아나가 이어 말하기를, 세나는 그래도 시간이 되면 성당에서 예배를 보려 하기는 했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루이즈에게 루이즈는 성당에 다녀본 적이 있느냐고 세나가 묻자, 루이즈로부터 이런 답이 들려왔다 :
"저는 성당이라는 곳을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잔느 공주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잔느 공주 역시 그러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는지, 바로 자신의 말문을 막았다. 그러자 세나가 걱정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루이즈에게 물었다.
"어쩐지 여기서는 말해서는 안 되는 그런 것이 있나 봐요."
이에 루이즈는 그렇다고 답하고서 그 이야기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하겠음을 이어 밝혔다. 남겨진 일이 있음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나 역시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다른 이들을 따라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성당의 내부로 들어서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비교적 큰 성당이라면 그 내부에는 이러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문을 넘어서면 눈앞에는 광장이나 뜰이 있기 마련이고, 그 광장이나 뜰 바로 앞에 예배당이 있다. 그리고 예배당 좌우에는 성당의 성직자들 그리고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수도원이나 그들이 이용하는 시설들, 학교나 장서고, 도서관들이 있다. 대형 수도원에 가끔 존재하는 금서 보관고 같은 곳은 성당에는 일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네모난 광장과 광장을 둘러싸는 회랑의 모습을 잠시 둘러보려 하였다. 아치(Arc) 형으로 이루어진 회랑은 고풍적인 느낌의 기둥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각 아치의 지붕 위마다 각기 다른 부조들이 새겨져 있었다. 광장의 아치들은 좌우로 14 개씩 있었으며, 14 개의 아치들은 하나씩 어떤 사람이 고난을 받으며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각 부조마다 위에는 번호가 적혀 있어서 부조들의 시간 순서를 알려주고 있었다.
"저 벽면에 새겨진 부조들은 성당에는 어떻게든 꼭 있었지요, 그것을 뭐라고 했던가......."
"십자가의 길 (Via Crucis [Via Krucis], Kruxnaru)" 세나가 광장 좌우의 14 개씩 자리잡은 아치 위의 부조들에 새겨진 광경들을 하나씩 둘러보다가 건네는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신의 성자가 사형 선고를 받고, 온갖 괴로움 속에서 죽어가는 광경을 간접적으로나마 목도하면서 이를 기억하며, 속죄와 구원을 생각하는 과정임을 밝혔다.
"사라코스티 (Sarakosti) 기간 동안, 그러니까 파스하 (Paskha)
(*3), 신의 성자가 부활하고 승천한 날 까지의 40 일 동안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14 개의 장소를 들르면서 각 장소에 묘사된 광경에 관한 묵상을 하는 것이 교회 (Eklesya) 에서 제정한 규칙이지."
"그렇군요. 저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한 번씩 지나다니며 위대한 성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곳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맞아. 성당마다 교회마다 받들어 모시는 위대한 성인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인 가장 무덤에서 부활했다는 일화가 있기 전에는 당연히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어떻게 그 성인이 죽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 성인은 어쩌다가 죽게 된 거예요?"
"십자가형 (Krucifixia) 라는 것이 있었어. 그것이......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의 고통스러운 형벌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손발이 못에 박혀 십자가에 매달린 성자를 묘사한 성상. 그 성상에 관한 이야기를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들려달라 한 적이 있었다. 수도원의 서책마다 성자가 죽을 때 십자가형의 고통을 감수했다는 이야기를 늘 볼 수 있었는데, 그 십자가형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달라 한 것이었다. 그 때, 이야기를 해 주었던 수도사로부터 들은 말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잔혹한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음이 그 이유라고.
"대체 뭐가 나오기에 잔혹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고 하셨던 거예요?"
그러자 내가 답했다, 피에 관한 묘사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잔혹한 묘사는 반드시 나오게 되기 때문이라 수도사가 말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인지는 들어보면 안다고 말했다. 그 때, 내가 상당히 어두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기에 그 말을 들으며 세나에게서 두려움의 감정이 표정에서 드러난 듯해보였다.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다.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 할 수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사람 비슷한 모습도 아니어서 보는 사람마다 질겁하고 고개를 돌렸다.
- 이사야 52 장 14 절
채찍은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형벌용 (Bayldets) 과 살상용 (Jukhdets) 이 그것으로 살상용 채찍의 경우에는 자루에다가 아주 강한 밧줄이나 쇠사슬을 매달고 여기에 그 끝에 추나 철퇴를 매달아 거의 도리깨(Dorikhe, 엘베 족은 Flayel 이라 칭한다) 에 가까운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었다. 십자가형에 쓰인 채찍은 원칙적으로는 형벌용을 사용하라 하였으나, 그 규칙을 지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고, 어차피 죽을 이들이라 때려 죽여도 상관 없다고 해서 살상용 채찍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었다.
살상용 채찍은 가죽을 30 ~ 50 가닥으로 땋은 다발이나 쇠사슬로 만들었으니-쇠사슬 채찍은 전투용이었지만 이런 채찍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채찍을 맞은 이들은 온 몸에 피멍을 넘어 살이 찢겨지기까지 하였으며, 성자의 경우에는 너무 많이 맞아 그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수준에 이르러 처벌을 구경하려는 구경꾼들마저 공포에 떨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고 하였다.
"혹자에 의하면 이런 형벌을 받은 사람은 피부가 너무 심하게 찢겨져서 혈관은 물론 내장, 골격까지 드러났었대."
"뭐라고요!?" 세나도 사냥이나 전투를 통해 이런 풍경을 아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다만, 그런 묘사를 뜻밖의 곳에서 들으면서 많이 놀라기는 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사형수를 망가뜨리고 나면 집행자들은 사형수에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성자 역시 그렇게 십자가를 짊어지며 형장으로 움직였으며, 성자는 채찍을 거듭 맞아 빈사 지경에 이르렀기에 고통스럽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했으며, 그래서 도중에 몇 번 쓰러지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십자가형 도중에 사형수가 쓰러지면 집행자들은 채찍으로 사형수를 쳐서 일어나도록 하기도 하였는데, 그렇게 고통을 거듭 받으며 성자는 불길에 휩싸인 듯한 고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형수가 십자가를 들고 사형장까지 오면 집행자들은 십자가를 바닥에 두고 사형수의 거의 모든 옷을 벗겨버린 이후에 사형수를 십자가에 눕혀서 손목과 발뒤꿈치에 못을 막아 십자가에 고정시킨 후에 십자가를 형장에 매달아 놓는다고 하였다. 그러한 고통을 받으며 성자는 죽음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본래의 법에 의하면 성자는 죽을 이유가 없었고, 현지의 관리 역시 그를 죽일 의도는 없었지만 종교인들이 계속 충동질했고, 형 집행자들 중에도 그를 불편히 여긴 이들이 있어서 결국 그렇게 처참히 죽고 말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지 관리들은 그가 무덤에 묻힐 수 있도록 해 주었고, 그리하여 성자는 무덤에 묻힐 수 있었대. 그리고 며칠 지난 이후에 무덤에서 부활하고 승천했다는 이야기야."
"성자가 죽은 이후에 무덤에서 부활하고 승천했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실제로는 있을 수 없고, 있을 리도 없는 이야기라 그것에 관해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해당되는 모든 이야기를 신화(Mythia) 나 전설(Legendia) 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해당 이야기는 세나도 잘 알고 있었고,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이후에 세나는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었기에-적어도 성당 안에서는- 잘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성당 안에서는 함부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었다. 다만, 그가 입었다는 수의에 관해서는 진실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성자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어가는 것을 두고 천국에서 뭐라하지는 않겠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니, 그런 사람들을 신과 천사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전부 다 알아볼 수는 없잖아. 그리고 애초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치고 악마를 몰아내는 거야! 애꿎은 인간들을 감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그렇게 성자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나에티아나-아무래도 나와 세나의 대화를 엿듣거나 하지는 못했는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도 꺼내지 않았다-가 날개를 펼치지도 않고, 다급히 나와 세나를 향해 뛰어와서는 예배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밝히고서 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 줄 것을 부탁했다.
"얘기 들었지? 어서 성당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이번 이야기는 적어도 내티에게는 절대로 꺼내지 마, 알았지?"
"알겠어요." 이후, 나는 나에티아나가 말하는 대로, 성당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그러면서 뒤따라 나아가는 세나에게 그간 이어갔던 대화에 대해서는 나에티아나에게는 절대로 발설하지 말 것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다른 이들은 이미 성당 안에 있었으며, 일행은 입구 기준으로 왼편의 회중석, 입구에서 10 번째-가운데 즈음- 대열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통로 쪽의 몇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와 세나를 위해 비워둔 곳이었던 것 같았다. 셀린과 린, 리아 자매는 입구에서 8 번째, 12 번째에 위치한 우측 회중석에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있었다. 셀린은 8 번째 회중석의 통로 쪽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린과 리아는 자매였기에 12 번째 회중석의 한 가운데 즈음에 서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런 자리에는 오랜만에 앉아보는 것 같아요."
회중석의 가운데 즈음에 앉은 세나가 바로 오른쪽 곁에 앉은 나에게 말했고, 그 말에 나는 나 역시 그러하다고 화답했다. 그리고서 수도원 생활을 할 때에 같이 지냈던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제 곧 예배가 시작될 거예요, 지금부터는 시끄럽게 떠들면 안 돼요."
이후, 세나는 주변에 앉은 다른 이들에게 시끄럽게 말하면 안 된다고 충고를 했고, 이에 세나의 왼편에 앉은 카리나가 '그 정도는 알아, 어린애도 아니고.' 라고 작게 목소리를 내며 화답을 했다. 이에 나도 공감을 했다, 물론 세나도 혹시나 싶은 생각에 충고를 한 것이겠지만 나를 비롯한 일행은 이미 알 만한 것들은 다 알 수 있는 그런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 당시의 회중석에는 왼편에서부터 나에티아나, 카리나, 세나, 나 그리고 세니아 그리고 루이즈의 순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시작 예식 이후로 경전의 강독 시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신부의 목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분위기는 지루함을 불러올 수 있을만한 여건을 제공해 줄 수 있기도 했다. 예배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카리나와 나에티아나는 금방 잠이 들고 있었고, 잠이 드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세나가 그들을 흔들어서 깨우고는 했었다. 반면에 회중석의 통로 쪽-우측-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루이즈는 거의 잠들지 않고 예배가 이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버려 둬, 지루한 것을 어찌하겠어, 게다가 일찍 일어나기까지 했을 텐데."
그러자 나는 세나에게 두 사람을 내버려 두라고 부탁했다, 예배당과 큰 인연도 없는 이들이 어떻게든 찾아오느라 애써 주었을 텐데, 졸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 게다가 그 곳은 수도원도 아니고 늘 깨어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역시 그러하겠지요." 이에 세나는 그 말이 옳다고 화답하였고, 그 이후로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를 깨우는 데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으려 하였다. 그 이후, 나는 오른쪽 옆의 건너편 자리에 앉은 루이즈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루이즈 씨께서는 처음으로 예배당에서 예배에 참여하시고 계실 텐데, 예배는 어때요?"
그 물음에 루이즈는 이른 새벽 시간에 왔고, 또 다소 지루하기는 해도, 중요한 시간인 만큼, 졸지 않고 잘 참아내려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그러하시군요." 라는 말을 건네고서 반대편에 앉은 카리나, 세니아를 가리키면서 굳이 그렇게 졸음을 참아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까지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이후, 나에티아나가 루이즈에게 잔느 공주가 곁에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루이즈는 그렇지만 그에게도 마땅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여러모로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그가 자신의 곁에 있을 때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다마나티엘 박사께서 잔느 공주님을 데리고 이 곳으로 오신다면 가망이 있기는 할 텐데."
그러자 나에티아나는 루이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처음에는 나에티아나가 가당히 않을 바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나에티아나는 의외로 나름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루이즈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바가 있었는지 루이즈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르사나 씨, 예배당에 들어갈 즈음에 카리나 씨와 세니아 씨의 대화를 통해 들었어요, 이전에 아르사나 씨께서는 공주 한 분을 구출하려 하신 적이 있으셨다고 하셨다고 했어요. 하지만 미처 구출하지 못하셨다고 하셨었는데."
"사리 공주님을 말하는 것이겠죠......." 루이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서 내가 그에게 직접 화답했다. 그리고 외지의 사람들이고, 이 곳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들이었는데, 포레 느와흐라는 사악한 마법사에 의해 잡혀 와서 저주를 받아 그 마법사의 노예와 다를 바 없어진 불행한 이들이라 그들에 대해 소개를 하였다. 이후, 나는 어쩌면 잔느 공주, 루이즈와 비슷한 세상 사람들일 수 있다고 말한 이후에 잔느 공주와 루이즈 등이라면 그들을 받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희망은 있는 거예요?"
이에 루이즈가 놀라면서 사리 공주를 비롯한 '저주 받은 이들' 이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묻자,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카리나가 화답했다,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그리고 애초에 그들이 온 세상의 3, 4 차원 상 좌표는 포레 느와흐가 확보해 놓고 있었겠지만, 원래 세상으로 그들을 돌려보낼 생각을 갖고 있었을 리 없을 포레 느와흐가 그것들을 그냥 놓아 두었을 리 없다고.
"그렇다면...... 그 분들께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것이겠지요?"
"맞아요, 시공 전이를 한다고 해도, 4 차원, 즉 시간 좌표와 3 차원, 즉 공간 좌표를 정확히 파악해야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시대에 이상한 곳으로 전이되기 마련이지요. 공간 전이만 잘못 되어도 자칫하면 그 분들께서 그 분들의 고향 성계로 돌아갈 수 없게 돼요."
"위험한 행성으로 갈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요." 이후, 루이즈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무작정 그들을 전이시키는 것은 그들을 위험한 곳에 버리는 격이라 말하고서, 그래서 그들을 마법사에게서 구출한다고 해도 그들을 원래 세상으로 보내거나 하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구출한 이후의 일이고, 우선은 그들을 마법사에게서 구원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 말한 후에 나 역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우선하고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나에게 물었다.
"아르사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당시에는 사리 공주 그리고 공주가 이끄는 무리를 원래 세상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을 갖거나 하지 않았다. 사리 공주를 구출하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그들을 자기 손아귀에 두려 하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이자, 집안의 숙적이라 할 수 있는 포레 느와흐의 처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두고 있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는 않았던 것. 그래서 세니아의 물음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했다.
"그래, 그것이 우선시되어야 함은 마땅하지."
"그런데, 아르사나 씨, 한 가지 질문이 있어요."
이후, 질문의 대상은 세니아에서 나에게로 옮겨졌다. 이후, 루이즈는 나에게 질문하기를, 잔느 공주가 사리 공주의 모습을 보면 혹시 질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는 것. 다소 엉뚱한 질문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여자가 여자 앞에서 질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나는 두 사람에 대해 구출하고 지켜야 할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 말하고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질투하거나 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세니아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난히 아르사나는 왕자나 공주들과의 인연이 많은 것 같아."
"딱히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자 내가 화답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내가 두 명의 공주들과 인연을 갖게 된 것을 두고 유난한 일 같다고 여기어서 한 말 같았던 모양. 이후, 세나가 나를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래도 공주 두 분과 인연을 가져서 좋다고 생각하시지요?"
안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하다 못해 혼인을 위해서라도 아름답게 꾸며지는 것이 공주라 했다. 한 나라, 집단의 보배라 할 수 있는 공주들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을 동시에 만난 것은 어머니, 할머니께서도 누리시지 못한 행운이었고, 그래서 신이 축복을 내려 얻은 행운이라 여기기도 했다. 혹시 수도원 생활을 나름 성실히 했음을 인정 받은 것이었을까, 아니, 그러할 리가. 아무튼, 실로 놀라운 행운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그렇다고 답했다.
"나 같은 행운을 누리는 것은 어머니, 할머니 대에도 없었던 일이니, 좋은 일이라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그리고 사리 공주는 곁에 없지만 언젠가는 한 번 정도는 만날 수 있도록 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카리나가 "정말이지?" 라고 물었고, 나는 그러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듯이 말했다. 카리나는 선뜻 (어쩌면 당연하게도) 믿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곧 "그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서 어쩌면 사리 공주 그리고 잔느 공주 일행이 실은 모두 같은 시대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잔느, 사리 두 공주들에 대해 말하기도 했었다.
"정말일까?" 나는 선뜻 믿지 않았기에 그런 세나의 말에 다소 의심이 들기도 했었지만 잔느 공주와 사리 공주가 살았던 세상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던지라 세나의 추측이 마냥 맹랑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한편, 예배당에서는 경전의 강독을 마치고 이어서 성가대의 합창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라테나 혹은 라치나 어 노래는 'Te Deum Laudamus (Wrî Gomal Lavdat,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는 곡으로 수도원에서 늘 들었던 노래 중 하나였다. 이 때에는 미사가 거의 끝날 때 같다고 여기어졌는지, 예배를 지루해했던 카리나, 세니아도 예배당에서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모두 노래에 집중하고 있어서 다른 대화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성가대 합창이 끝난 이후에는 성찬 예식이 이어졌고, 이후, 새로 세례를 받은 이들을 위한 세례식이 이어진 이후에 예배는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예배가 시작된지 대략 1 시간 반 정도 지난 이후로 새벽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아침 시간 대로 날이 밝아오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새벽 예배를 늘 하려고 하면 피곤할 것 같아."
"일상이 되면 피곤하지는 않겠지. 대신,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활 시간을 보내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해"
성당 내의 예배당에서 나가면서 세니아가 건네는 말에 카리나가 화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새벽 예배도 하고 밤새 일해야 할 사람이라면 아예 아침이나 오후 시간 대에 숙면을 취했다가 일어나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내가 해 준 이야기, 그것도 내 경험담이었는데!-. 그리고서 몇 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 뭘 할 것이냐고 묻자, 광장 동쪽에 문화의 거리가 있지 않았느냐고 말하고서 잠시 그 곳으로 가 볼 것을 청했다.
한편, 나는 사람들이 나가고 있는 동안 예배 시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색 유리 창들, 동쪽 방향인 오른편의 색 유리 창들을 가만히 둘러보고 있었다. 성당은 여러 색을 띠는 유리들을 짜 맞춰 성자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유리 조각품들은 햇빛을 받게 되면 여느 창들처럼 햇빛을 실어 보내겠지만 투명해서 새하얀 햇빛을 그대로 받는 창들과 달리 하나의 색을 띠고 있어서 햇빛이 자신의 색을 띠도록 한다. 이렇게 유리의 색에 물든 빛들이 모이면서 빛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벽 시간이 되면서 햇빛이 창가로부터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빛이 색 유리의 여러 색을 받아 형형색색의 빛 줄기들을 생성하는 그 광경을 잠시 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렵,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의 왼편으로 나에티아나 그리고 루이즈가 다가왔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마자 나는 그들을 데리고 예배당 밖으로 나가고 있었는데, 그 무렵, 루이즈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십자가형을 받은 성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생각난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자신이 살았던 세상의 먼 과거에는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음을 밝혔다. 이에 나에티아나는 "그러하였군요." 라고 화답을 하고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쩌면 그 성자와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그와 같은 분들께서도 선행과 정의를 위해 어떤 위협과 고통 속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며 노력하셨을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그 성자와 같은 이들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든지."
"그래서 인간을 무작정 사악하다고 비방하지 못하는 거야."
나에티아나의 말을 듣자마자 내가 바로 말했다.
과오에 의해 멸망한 종족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이들을 비롯한 선한 이들은 늘 존재했고, 그래서 인간이 오랫동안 세상의 주인으로 존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견해가 실존한다, 그러하지 않았다면 더욱 오래 전에 인간은 세상의 주역으로서 있을 자격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인간의 잘못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멸망할만한 종족이었는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생기는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다른 동물들이 지성을 얻으면 인간의 영역을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가설들이 있었지만 한결 같은 결론은 이러하였다 : 뭘 해도 인간을 완벽히 대신할 수 있는 종족은 없었으리라는 것이었다.
세니티아 행성계의 주역이 된 정령들, 아르데이스 행성계의 종족들 등이 인간의 역사를 학습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인간이 가지는 선한 면을 취하되, 악한 면을 반면교사 삼아 성계를 사는 이들이 그들보다 더욱 나은 이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성당의 정문 앞에 모였고, 이후, 나는 동쪽의 문화 광장 쪽으로 잠시 가 보자고 청했다. 이에 세니아, 카리나가 나의 결정에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본래는 두 사람끼리만 가려고 했었던 모양이다.
"대화 다 듣고 있었다." 불만이 있어 보였던 카리나, 세니아-일행의 우측 부근에 있었다-에게 다가가서 말했고, 이어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디를 둘이서만 가려고 했었던 거야?"
카리나와 세니아가 둘이서만 어디로 갔다가 여행 일정이 늦어질 수 있어서 그렇게 하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두 사람만 같이 어디를 가겠다고 하면 그들만의 여행에 빠져 아예 다른 이들의 곁에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아예 다른 이들이 같이 가도록 함으로써 그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함이 진짜 이유였다.
"그간 세니아 씨, 카리나 씨 두 분이서 같이 어디를 가면 다른 이들의 곁으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잖아요."
"하기는...... 그렇기는 했지." 이후, 세나가 카리나에게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이 아니지 않았느냐고 묻자, 카리나가 그렇기는 했었음을 인정했다. 카리나는 성당 예배를 마치고 일행이 사람들과 함께 나가는 틈을 타서 둘이서 같이 문화 광장 쪽으로 가 보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해서 카리나, 세니아 모두 다들 아쉬워 했고, 이에 세니아가 카리나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카리나가 "괜찮아." 라고 화답하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하미시의 문화 광장(Hamisyey Kulturaplaza, La Plaza Cultura de Hamisy) 은 하미시의 중앙 동부에 위치한 광장으로 수많은 문화 행사들이 열리는 도시의 문화 중심지라 칭해지는 곳이었다. 광장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대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가장자리의 8 방향마다 하나씩 큰 나무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으며, 나무마다 그 주변을 에워싸도록 작은 관목, 화초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때가 때였던지라 화초들이 형형색색, 다양한 모양새의 꽃들이 초록빛 이파리들을 키운 나무들을 화려하게 꾸며내고 있었다. 바닥은 회색의 매끈한 돌들로 가득해서 밤이 되면 나무들 사이에 자리잡은 가로등의 금색 빛을 받을 것이고, 중앙 광장에서처럼 광장의 모든 풍경이 금빛으로 뒤덮이게 할 것이었다.
"이 곳 사람들은 금빛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 그렇지?"
가로등의 모든 등이 금색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나의 왼쪽 곁에 있던 카리나가 물으니, 그를 따라가던 세니아가 그러할 것이라고 말하고서, 이후로 일행 중에서 앞서서 광장의 서쪽 진입로 쪽으로 걸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하나야스, 하미시는 예전에도 '황금의 수도 (Awray Sëvr)' 라는 칭호를 가질 정도로 금빛으로 유명한 곳이었어, 지금은 황금으로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먼 옛날 이 곳은 황금의 도시라 칭할 정도로 수많은 황금 그리고 황금 공예품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 하였지."
"황금이 많았다면...... 인근에 금광이 있었겠지?"
이후, 카리나가 묻자, 세니아는 그 시절에는 그랬었다고 답했지만 그 이후, 현 시점에서도 주변에 금광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셀린이 갖고 있던 하미르, 하미시 여행 안내서에 의하면 먼 옛날 하미시 북쪽 인근에는 수많은 금을 품은 금맥 (Awrazeni) 그리고 은맥 (Argentzeni) 이 있어서 광산에서 나오는 금과 은으로 나라가 부귀했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고 했다. 수많은 금제 은제 세공품들이 나라의 곳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먼 옛날, 아마도 다른 이름으로 칭해졌을 하나야스는 부귀한 문명이 자리잡은 풍요로운 나라였다.
그렇게 풍요롭게 고귀한 문명은 어느 날 갑자기 종말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문명의 산물이었던 건축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부서져 갔다. 문명의 기반이었던 금광의 위치는 잊혀졌지만 설령 발견된다고 해도 그 곳에 금이 얼마나 남았을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남아있는 금과 은을 캐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깊은 굴 속에 몰아 넣으며 고통스럽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통의 기록을 남기느니 잊혀진 금맥과 은맥은 잊혀진 채로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안내 책자에 있던 기록의 일부분이다. 하미르, 하미시는 더 이상 황금 도시의 문명을 구가하지 않고 있으며, 할 수도 없는 곳이지만 그 역사는 남아 있어서 그 기억을 도시를 황금빛으로 꾸미려 하면서 전승시키려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쪽 교외에는 고대 유적이 남아있고, 그것이 황금 도시의 유적으로 여기어지기도 하지만-해당 안내 책자에도 관련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건 그렇고, 그 고대 도시의 피라미드 혹은 지구라트의 석판들을 떼야 한다는 이야기는 했어?"
이후, 일행이 광장의 남서쪽 가장자리의 나무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내가 문득 대 피라미드 혹은 지구라트에서 발견된 인류에 대한 저주의 문구가 새겨져 있던 석판들의 모습, 그리고 그 석판들을 떼어내도록 경비대에게 알려야 하겠음을 카리나가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카리나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카리나도 그제서야 자신이 그런 일을 했었음을 상기할 수 있었는지, 흠칫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피라미드에 있을 때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기는 했었는데, 막상 전투를 끝내고 나서는 잊고 있었다고 말하고서 그래서 경비대에 그것에 대해 알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해야할 일을 잊은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카리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는 했다. 이후에 있었던 '영원한 어둠' 이라 칭해졌던 거대한 기계 괴물과 맞서면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그 이전에 하겠다고 했었던 일을 잊어버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여긴 것. 카리나가 아니라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들, 전투 이후에 피로를 겪는 와중에 그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한 동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교회 예배를 마치고 밖으로 나갈 때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중에 알려주면 되지. 하지만 가능하면 이 곳을 떠나기 전에 알려줘야 하겠지."
그러자 내가 하미시를 떠나기 전에 꼭 알리도록 해 달라고 당부를 했다. 전투 때에는 워낙 험난한 일들을 많았고, 그 이후에도 피로해서 잊을 수 있었겠지만 그 이후로 당분간은 정신 없거나 할 상황은 없을 테니, 알리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때, 세니아가 나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알려 주었어." 그리고서 자신도 대 피라미드에 구 인류를 저주하는 라테나 어 문구들, 그리고 '영원한 어둠' 을 소환하는 괴 언어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본 적이 있었으며, 그래서 유적을 찾아가자마자 상황을 수습하고 있던 경비대원들-그들로부터 대 피라미드와 소 피라미드의 1 층 바닥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에게 피라미드들의 1 층 바닥을 보수하고 대중에 피라미드를 공개하기 전에 석판들을 떼어내야 함을 건의했었다고 한다.
"전부 떼어내라고 했어, 개중에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문구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일반인들이 골라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인류를 모독하는 글이 대다수인 만큼 그냥 다 떼어내서 버리는 편이 나을 거야."
그러면서 라테나 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라테나어 관련 자료는 수도원이나 교회가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더 좋은 뜻을 가진 글들이 그 곳에 훨씬 많은 만큼, 굳이 석판을 유지할 이유가 없음을 밝히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르사나, 너도 수도원에 있으면서 그런 문서들을 많이 보아서 알고 있겠지?"
"그렇기는 하지." 이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몇몇 석판들은 남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기는 있었지만 세니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 일행은 남서쪽 나무 바로 앞의 나무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기로 하고서 나와 루이즈, 세니아 그리고 나에티아나는 벤치의 왼편에서부터 차례로 앉아있기로 했다. 세나 그리고 카리나는 중앙 광장 쪽으로 나아가서 무언가를 하려 하였다. 카리나가 공을 갖고 있었고, 그 공을 이용해 공 놀이를 할 생각이었던 모양. 이후, 카리나는 마력의 기운을 이용해 채를 만들어서 세나에게 그들 중 하나를 주었고, 이후, 세나와 카리나가 채로 공을 치는 놀이, '테네자(Teneza)' 를 즐기기 시작했다.
"저거 '테네자' 라고 했던가요."
"맞아." 이후, 나에티아나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했고, 바깥에서 공을 갖고 하기에는 가장 좋은 놀이 중 하나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본래는 손으로 공을 주고 받는 것이었다가 나중에 자루로 공을 주고 받는 형태가 된 놀이로 세나가 유난히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산 위의 풀밭에서 즐긴 적이 있기도 했다. 보이는 인상과 달리 세나가 의외로 이런 격렬한 운동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 그런 운동을 통해 땀을 빼는 일이 잦았었다. 이러한 운동 놀이를 카리나가 잘 받아 주었고, 그래서 탄자 등을 즐길 때에는 세나는 카리나와 늘 어울리고는 했다
"아르사나, 너도 세나와 함께 해 보지 않을래?"
"간만에?" 이후, 세니아가 나에게 제안을 하자, 내가 바로 되묻는 듯이 답했다. 그리고서 피곤하기는 하지만 세나와 함께 운동한지 꽤 오래된 일이었기에 오랜간만에 하는 일로서 그와 함께 테네자를 즐겨보기로 했다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테네자 경기의 승부가 났다. 나를 비롯한 일행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로 세나가 가볍게 카리나를 이겼다. 평소에도 테네자 연습을 많이 해서 경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었던 세나를 이전까지는 안 하고 있어서 경기 감각이 겨우 남아있던 카리나가 이길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후, 카리나는 내 곁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다른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대신해 세나의 곁에서 그와 같이 경기를 하려 하였다.
원래 팔과 다리를 잘 쓰던 이이고, 평소에도 연습을 많이 해 왔던지라 세나는 상당히 매섭게 공을 날리고는 했다. 세 번 경기를 하고 끝냈던 카리나와 달리 나는 6 번 그에게 도전을 해 왔지만 6 번 모두 내가 지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6 번 질 때까지 그리 오래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경기가 이루어지는 동안 시간은 지나가고, 해가 높이 뜨면서 사람들이 광장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수대 부근에서 공을 갖고 경기를 하는 모습을 아침 일찍 밖으로 나온 아이들이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곳곳에서 경기가 어떻게 되고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 질문 때문에 나에티아나가 아이들을 향해 다가가서 경기가 진행되어 가는 모습을 알려주기도 했다. 점수가 나올 때마다 나에티아나가 점수를 외치는 것으로써 아이들에게 승부가 어떻게 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도 해서 틈만 나면 '1/4 (Nyeban)', '1/2 (Ban)', '3/4 (Thïnyeban)' 이라 외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중에 정식으로 한 번 해 봐도 괜찮을 것 같아."
"2:2 로 말이지요?" 이후, 잠시 경기를 쉬고 있을 무렵에 내가 건네는 물음에 세나가 되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세나와 나를 비롯한 일행이 2 명씩 짝을 지어 경기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이에 세나는 좋은 제안이라 답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길 것이라 걱정은 안 되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이후, 내가 이렇게 물음을 건네자, 세나는 평소 때와 달리 활짝 웃으면서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에도 경기는 이어졌지만 결과는 이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내가 다 졌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모습을 근방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했지만, 루이즈 역시 해당 경기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카리나가 루이즈에게 그 경기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루이즈는 바로 비슷한 것을 알고 있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한 때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경기 대회가 개최된 적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다만, 그 경기의 이름은 '테네자' 가 아니었으며, 경기 규칙도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경기에서는 0 을 '러브(Love, Lâv)' 라고 했고, 그것에 대해 들은 사람들 모두 의아해하고 있었지만, 그 유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루이즈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 다만, 이후에 나에티아나가 말하길, 테네자에서 0 을 '알' 을 의미하는 르브(L'oeuf, Lêv) 라 칭한다고 했으며, 그 르브라는 말이 러브(Lâv) 와 조금은 비슷하게 들렸던지라 거기서 유래됐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짐작이 나름 들기도 했었다.
경기를 더 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찻집이나 가게들이 문을 열 시간 대가 되면서 '레르마임(Lermaym)' 이라 칭해지는 찻집을 찾아가기 위해 중앙 광장의 남쪽 구역을 향해 서쪽 진입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일행 중에서 가운데 대열에 있었으며, 그러면서 앞장서 나아가던 카리나가 세나에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즈음이면 그 찻집은 문을 열었겠지?"
"그러할 거예요, 그 찻집은 9 시 즈음에 문을 연다고 하더라고요."
카리나의 물음에 세나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면서 앞장서 나아가려 하였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행은 중앙 광장을 거쳐 그 남쪽 구역에 자리잡은 가게들, 찻집들 앞에 이르렀다. 중앙 광장 남쪽의 건물들에 주어지는 주소는 서쪽 방향에서부터 동쪽 방향으로 중앙광장길 101 호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앙광장길 211 호로서 남서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현관문 바로 위쪽에 하얗게 칠해진 나무 위에 'LERMAYM' 이라는 검은색의 작은 글씨로 가게 명이 쓰여 있어서 그 간판을 통해 그 건물이 일행이 찾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창가에 비치된 여러 크고 작은 인형들, 그리고 창가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장식품들로 가득한 공간의 모습에서 작지만 성의 있게 꾸며진 공간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건물 안쪽으로 점원들이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초록색의 조금 짧은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여서 가게 문이 열렸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러면서 나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청하고서 정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가게 안에는 이미 에오르 자매 그리고 셀린이 계산대 부근의 원탁 의자에 모여 앉아 있었으며-출입문을 등지는 방향에 셀린이 앉아 있었으며, 그 건너편에 에오르 린, 리아 자매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찻잔을 자신의 앞에 두고 있었다. 계산대 안에는 2 사람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에오르 자매와 비슷한 색깔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으며, 그 머리카락이 유난히 길어서 눈에 확 띄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라는 목소리와 함께 세 사람이 앉은 근방의 탁자에 자리를 잡았고, 탁자를 둘러싸는 형태로 앉았다. 나는 셀린 등의 일행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았고, 나의 양 옆에 루이즈, 세나가 앉았으며, 나의 건너편에는 카리나, 나에티아나 그리고 세니아가 나란히 앉았다. 그 무렵, 셀린이 나를 비롯한 일행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여러분들께서도 여기로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그러자 나 역시 인사를 응답했고, 이어서 나에티아나, 세나 등은 물론, 셀린과 꽤 오래 마주한 적이 있었던 루이즈 역시 인사를 하는 것으로써 답례를 했다. 서로 무척 반가워하면서 인사를 했지만 탁자를 합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 쪽으로 할 말이 있거나, 그 쪽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그 탁자로 일행 중 한 두 사람이 가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기는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계산대 밖으로 점원 한 명이 나가서 주문을 받으려 하였다, 이전에 눈여겨 보았던 그 긴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점원이었다.
"결정하시면 말씀하세요." 차림표(Menu 혹은 Menü) 를 두 팔로 안고 있으면서 다가온 점원은 나를 비롯한 일행의 바로 앞에 이르자마자 내려놓고서 나를 비롯한 일행이 주문을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림표에는 많은 항목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카페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일반적인 카페(Normakafe) 를 시작으로 우유가 들어간 카페 (Jeshkafe) 를 비롯해 몇몇 항목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다만, 최하단에는 맞춤형 카페 (Kustomakafe) 라는 것이 있어서 원하는 대로 카페를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있는 항목이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이 항목을 주문하면 일반 카페보다 20G 가량 비싼 55G 를 내야 했기에 1G 라도 아껴야 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일반 카페는 30G, 우유 카페 등은 35G 였다.
카페를 마시면서 서로 대화할 곳이 필요했던 일행에게 카페가 어떤 것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았고, 그래서 일행은 일반 카페, 우유 카페를 주문했다. 나는 우유 카페였으며, 카리나와 세나도 같은 항목이었다. 세니아는 일반 카페였으며, 루이즈 역시 의외로 일반 카페였다. 나에티아나는 초콜라타 (Cokolata) 로 주문을 했다. 아침부터 날이 후텁지근해지려 하던 참이라 다들 시원한 음료로 주문을 했고, 이에 점원은 알겠다고 말하고서 차림표를 다시 두 손으로 들어서 두 팔로 안았다.
"추가 주문 사항은 없으신 것이지요?"
"예, 없어요." 이후, 점원이 묻자, 세니아가 없다고 답했고, 이후에 점원은 잠시만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고서 두 팔로 차림표를 안은 채로 다시 계산대 안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금발의 점원의 돌아간 이후에도 세니아는 한 동안 그 점원의 모습으로 시선을 두려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에게 혹시 그 점원의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이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세니아는 딱히 대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부정하거나 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카락 색깔이 에오르 자매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아?"
이후, 세니아는 나에게 그 점원의 금빛 머리카락이 에오르 자매의 그것과 다소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하고서, 혹시 친족이거나 하지는 않은지 여부를 물었지만, 나는 친족은 아니겠지만 동족일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서 이전에 에오르 자매 등에게서 들은 바를 그를 비롯한 일행에게 전해주려 하였다.
"에오르 자매 그리고 셀린 씨와 같이 있을 때에 이 곳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들은 바 있어. 에오르 자매 분들께서 말씀하시길, 그 곳에 자신들과 무척 친한 사람이 일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다면 혹시 그 아까 전의 긴 머리카락을 가지신 분께서 그 분일 것일까."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아직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 긴 머리카락을 가진 점원은 긴 귀를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에오르 자매와 같은 엘베 족일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 긴 금발의 점원이 식판에 투명한 유리잔 다섯 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일행의 곁으로 다시 오고 있었다. 짙은 고동색을 띠는 투명한 음료 둘과 비슷한 색의 불투명한 음료 하나, 연한 갈색을 띠는 음료 셋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일행은 각에게 맞는 음료를 하나씩 골라서 가져갔고, 점원은 그 이후로 바로 식판을 왼쪽 겨드랑이에 낀 채로 다시 계산대 안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카페를 손에 들자마자 카리나는 마치 술을 들이키듯 카페를 한 번에 마셨다. 일행의 다른 이들도 마시는 속도는 각자 다르기는 했지만 금방 마셨다는 것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루이즈는 자신에게 주어진 카페를 조심스럽게 반 정도 마시고 나서 잔을 내려놓고 있었다.
"루이즈 씨께서는 한 번에 다 마시지 않으셨네요."
"원래는 그렇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해서요." 한 번에 카페를 모두 다 마시지 않은 루이즈의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며 카리나가 물었고, 이 물음에 루이즈가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배웠음을 밝혔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세나가 이어 말했다.
"저희들이야 시원하게 마시는 음료의 일종으로 여기고 있던지라 그렇게 마시는 것이지만, 카페를 조심스럽게 마시는 이들도 있어요.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아르사나 씨께서도 그렇게 아시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맞아." 이후, 세나가 사람마다 카페를 마시는 성향은 서로 다른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서 나에게 그렇게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 말이 맞다고 답했다. 사람마다, 직업마다 카페를 마시는 성향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수도원에서는 그 때처럼 커피를 마시면 무례하다고 여기었고, 그래서 수도원에서 생활할 때와 그 이후로 한 동안은 카페를 늘 조심스럽게 마시고는 했었다. 시원한 카페를 한 번에 들이마시는 습관이 생긴 것은 슈라일, 샤하르 등지에서 그렇게 마시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 이후였다.
"그건 그렇고, 루이즈 씨와 주변 분들께서는 카페를 뭐라 칭하시던가요?"
이후, 화제가 바뀌어 세나가 루이즈에게 루이즈 그리고 인간들은 카페를 뭐라 칭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세니아가 루이즈를 대신해 세나에게 답하기를 지역마다 사람들이 다르게 칭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페 혹은 커피(Kâfiy) 라 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Kâfiy) 라는 말을 혹시 들은 적이 있어?"
그 때, 세니아가 나를 보면서 그렇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이후에 샤하르의 학교에서 그런 말을 접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고대어를 배운 이들이 카페를 고대어로 커피라 칭했었더라,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어깨 너머에서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다. 다만, 카페를 커피로 칭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고대어를 배운 이들을 통해 그렇게 된 정황을 듣기는 했었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해 주지는 못했다.
카페이든, 커피이든, 레르마임에서 만들어 준 커피는 무난하게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카페의 맛을 잘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탄 내음이 나지는 않았고, 그것을 통해 맛에 문제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카페의 맛을 조금은 안다는 세니아는 나름 괜찮다고 말했었다.
그 무렵, 근처의 탁상에서 셀린과 대화를 주고 받던 에오르 린, 리아 자매에게 가게의 다른 점원이 다가왔다. 주 점원이었던 모양으로 연두색의 짧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정숙하고 다소 어른스러운 면도 갖춘 인상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는 에오르 린에게 다가가더니, 점원 중 한 명-아마도 그 머리카락이 긴 점원이었을 것이다-이 두 사람과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고서 가게의 후문 쪽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청했고, 이에 린은 조용히 알겠다고 답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어서 리아도 같이 일어났다. 이후, 두 사람은 정문의 건너편에 위치한 문을 향해 다가가더니, 그 문을 열고 그 바깥 쪽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뒤를 따라 나가보려 하였다. 린, 리아와 밖에 나가 있다는 점원이 서로 아는 사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린, 리아가 나갔던 그 문을 조심스레 열고 밖으로 나가서 그 바깥 쪽을 보려 하였다.
가게의 후문 너머로는 이전의 큰 길만큼은 아니지만 하나의 거리가 펼쳐져 있었으며, 거리 양 옆으로 크고 작은 가게들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도시에서 제법 유명할만한 식당도 몇 보였다. 거리를 둘러보다가 나는 문의 우측 너머에 에오르 린, 리아가 긴 머리카락을 가진 점원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때에는 에오르 린, 리아 자매와 같은 긴 귀를 드러내고 있어서 에오르 자매와 동족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직장에 있을 때에는 귀를 감추고 있었던 것이려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 엘베 족 사람들이 신분 위장 등을 위해 귀를 마법 등으로 변형시켜 감추는 경우를 몇 차례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점원 역시 같은 유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긴 귀를 감출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하미시 현지인들이 엘베 족이라고 차별을 가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왜 긴 귀를 굳이 감추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신 병기의 실험을 겸해서 그 분들의 여정과 같은 길을 걷고 계신 것이네요."
"그렇지." 점원으로부터 묻는 말이 들려왔고, 이어서 리아가 답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 대화에서 '그 분들' 이라면 아무래도 나를 비롯한 일행이었을 것이고, 일행의 여정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일행과 관련된 행보를 걷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목적이야 어쨌든 간에. 이후, 점원으로부터 다시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포레 느와흐는 외계에서 사람들을 납치해서는 애완 동물들로 삼고 있다면서요?"
"잘 알고 있네." 그러자 이번에도 리아가 잘 알고 있다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 어느 세계의 무용 학원 소속 인간들이 탑승한 비행기를 통째로 납치해서는 탑승한 이들 중에서 남자들, 그리고 나이 든 여성들은 따로 불러 도살해서는 피와 뼈를 취하고 젊고 어린 여자들을 따로 끌어내서 저주를 가해 동물로 변이시켰음을 밝히고서 그 의아한 행보에 대해서는 그들을 애완 동물 및 충실한 졸개로 부리려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을 애완 동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적어도 포레 느와흐는 그런 면에서는 양심은 있었지, 하지만 그들을 애완 동물로 삼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어, 그것이 너도 알고 있는 그런 방법이야."
이후, 린은 포레 느와흐의 부활에 대해서는 고향에 알리지는 않고,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라고 말하고서 어떻게든 그와 그의 부하들을 가능한 처단해서 그들이 이 행성계를 비롯한 여러 행성계는 물론 고향 행성에까지 패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할 생각임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특히 포레 느와흐의 처단은 동족을 배신한 배신자의 말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어."
그러면서 린은 둘 만으로는 힘들 수 있겠지만 다행히도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는 이들도 있으며, 협조해 주는 이들도 있는 만큼,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니,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지만, 원한다면 얼마든지 내 곁으로 와도 괜찮아."
그러다가 린은 잠시 주변 일대를 둘러보면서 누군가의 기척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더니, 곧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어서 점원 그리고 리아에게 말했다.
"아, 여기 그 당사자 분께서 와 계신 것 같아, 그 분께서도 포레 느와흐의 세력과 맞닿아 계시고, 또 그의 병기들을 하나 둘씩 처치하시고 계시지. 그 분의 어머님께서 포레 느와흐를 한 번 처치하셨다고 들은 적이 있어."
사전에 나의 가족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기는 했었던 모양이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사람인 만큼,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고, 그것에 대해 이런저런 조사를 시도해 보았던 모양. 이후, 린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불러 자신들의 곁에 와 달라고 당부의 말을 건네었다.
"아르사나 씨, 이리 와요, 소개드릴 사람이 있어요."
그 요청에 나는 바로 린, 리아 자매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는 동안 이전에도 보았던 긴 머리카락의 여성 점원이 에오르 자매를 향해 다가오는 나의 바로 앞에 이르려 하였다. 그리고 내가 에오르 자매의 근처에 이르자마자 여성 점원이 나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고서 이어 자신을 소개하는 인사말을 건네려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르데이스의 엘프 경비대원, 리 셀린 (Li Selin de waldcehper Elveish von Ardeis) 이라고 해요. 종족의 원수 포레 느와흐 (Fore N'wach) 를 처치한 용사의 자손을 이렇게 마주하심을 진실된 영광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냥 평소대로, '리 셀린' 입니다, (Ish heißë Li Selin) 라고 하지......" 그 무렵, 뒤쪽에서 리아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 공손한 어조는 그의 본심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린, 리아가 알고 있는 그의 진면모는 그 때와는 다를 수 있으니,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성계의 악을 멸한 용사의 후손을 직접 만나면서 위축이 된 것 같아, 평소에는 저런 애가 결코 아닌데....... (Se is swyc an ger NEFËR)."
그 무렵에 리아가 린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눈 앞에 있던 이의 이름은 리 셀린 (Li Selin) 으로 원래는 엘베 족 경비대 소속으로 에오르 린, 리아 자매에게 있어서 후배 대원이라 할 수 있는 이였다. 리 셀린에 대해서는 에오르 자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 어렸을 때부터 같이 어울려 왔었고, 또 같이 일터에서 일한 적이 있기도 했었던 이로서 그가 사탕 공방의 일에 적응하지 못해 떠나자 에오르 자매 역시 그를 따라 바로 공방을 떠났을 정도로 서로 친한 사이였다.
"그 이름은 이전에 들은 적이 있어요, 에오르 자매 분들께서 몇 번씩 언급을 하신 적이 있으셔서."
그러자 리 셀린은 조용히 미소를 짓기만 할 뿐, 목소리로 대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떻게든 자신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리 셀린이라 칭해진 이는 내심 기쁘기는 했던 것 같았다. 이후, 리아가 리 셀린에게 물러나 있으라고 말하고, 그 말대로 리 셀린이 뒤로 물러나자마자 그를 대신해 나의 앞에 이르고서 말했다.
"이전에 셀린이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용사의 후손이 하미시에 온 것 같다고. 그와 더불어 혹시라도 그 사람이 이 찻집에 왔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말한 적도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그 사람이 찾아오면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했나요?"
이후, 내가 물음을 건네자 린이 리아를 대신해서 답했다, 강한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으로 나 같은 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그에게 하나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내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린이 다시 답했다.
"...... 예전에 고문서에서 본 것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대의 강자들은 카페를 먹을 때에도 특별한 방식으로 먹었다고 하던데...... 그것이......"
고대에는 이러한 카페도 있었다고 한다, 카페 가루를 일정량 잔에 넣고, 물과 당을 약간 섞은 후에 숟가락으로 저어서 만드는 카페로 만드는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고 한다, 짙은 고동색을 띠는 그 혼합물이 옅은 색의 끈적한 거품이 날 때까지 맹렬한 속도로 혼합물을 저어내는 것으로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끈적이는 거품 액체가 될 때까지 맹렬한 속도로 젓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거품을 만드는 것 정도는 거품 기계 정도로 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러자 내가 린에게 물었고, 린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자신도 리 셀린에게 거품 기계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으나, 리 셀린은 강자라면 손으로 거품기를 휘저으며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진정한 강자라면 그 정도의 일은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화답했다고 한다. 린, 리아 자매도 거품기를 잡고 큰 그릇에 카페 가루와 물을 섞어서 거품기를 휘저어가며 그런 카페를 만들어 보려 했었지만 상당히 힘들었지만 일단 성공하기는 했음을 밝혔다.
"몇 번 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문서들마다 제 각기 달랐대요, 400 번도 있고, 1000 번도 있고, 5000 번......"
"10000 번도 있었어." 그 때, 리아가 린에게 귀띰하는 듯이 말했고, 이에 린은 알았다는 듯이 반응하면서 10000 번 저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음을 밝혔다. 이렇게 서로 제각기 만드는 방법이 다르게 나왔다는 것은 뭔가 통일된 공식적인 방법 자체가 없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이러한 제조법 역시 통상적인 카페 제조법 역시 아니었을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오르 자매에게 통상적인 카페 제조법은 아닌 것 같다고 묻자, 바로 이러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손에 무리가 많이 가는 일이고, 통상보다 많은 양의 카페를 먹게 되는 만큼, 이래저래 문제가 많은 제조법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일이라 해서 한 때에 이러한 카페 제조법이 성행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랬었군요." 아마도 그 제조법이 오래 성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제조법을 어떻게 리 셀린이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기는 하다만, 그가 요청한 사항인 만큼, 한 번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에게 강함을 보여준다면 그가 나를 비롯한 일행을 더 잘 따라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슬쩍 들기도 했다.
"좋아요, 한 번 해 보도록 하지요."
이후, 나는 한 번 해 보겠다는 의사를 말로써 드러내었고, 그 이후에 나는 먼저 내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겠음을 밝히고서 후문을 통해 다시 찻집의 내부로 들어갔다. 이후, 나는 다른 일행이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오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게 원래 앉아있던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을 해 보게 되었어."
그리고서 긴 머리카락의 점원은 에오르 자매와 잘 아는 사람으로 이름은 '리 셀린' 임을 밝힌 이후에 나를 비롯한 일행과 행동을 같이 하고 있는 에오르 자매와 여러모로 친한 사람임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본래 엘베 족으로 찻집에서 일할 때를 비롯한 몇몇 상황에서 긴 귀를 감추는 능력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리 셀린의 요청이 있었다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혔다, 카페 가루에 물을 섞고 그 혼합물을 최대 10000 번 가량 거품기로 흔들듯이 휘저어 섞어서 만드는 카페가 있는데, 그 카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10000 번씩이나!? 그렇게 많이 저을 필요가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카리나가 경악하는 듯이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고, 이어서 세니아가 나에 대해 진심 어린 걱정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내며 "이유야 그렇다치고, 힘들지 않겠어?" 라고 묻자, 나는 "일단 해 봐야지, 뭐." 라고 답했다. 그리고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답하고서 너무 무리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이후에 그것에 대해서는 에오르 자매나 리 셀린 모두 이해해 줄 것이라 말하면서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세니아를 안심시키려 했다.
"카페 혼합물을 엄청난 횟수로 저어 섞어서 만드는 카페에 대해서라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해요."
그 때, 세나가 나를 보면서 그런 종류의 카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음을 밝혔고, 이에 카리나, 나에티아나 모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고대 시대에 있었던 엄청난 존재에 대한 소문을 듣기라도 한 것 처럼.
"그런 카페가 실제로 있기는 있었군요." 나에티아나가 말했다. 나에티아나 역시 지상 세계를, 하미르, 하미시 일대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오랜 시간 동안 거품기, 수저로 카페 혼합물을 저어 만들어내는 카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모양. 한편, 루이즈는 선뜻 믿겨지지 않는 듯한 특이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딱히 놀라워 하지 않는 채로 나를 비롯한 일행의 이야기에 가만히귀를 기울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잠시 후, 리 셀린이 귀를 감춘 채로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돌아오고, 이어서 에오르 린, 리아 자매 역시 다시 찻집 안으로 돌아오고 나서 바로 자신이 앉았던 곳 근방으로 갔다가 곧바로 나를 향해 다가가서 말했다.
"조금 있으면 리 셀린이 요청을 해 올 거예요, 그 때에 시작하시면 될 거예요."
이에 나는 알겠다고 화답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이러한 나를 보며, 나에티아나가 나를 따라가려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리 셀린이 에오르 자매 그리고 셀린이 앉은 탁상 위에 문제의 재료들을 가져왔다. 에스프레소 (Espresso) 잔의 1/3 가량을 채우고 있는 카페 가루와 또 다른 에스프레소 잔의 1/3 가량을 채우고 있는 물, 그리고 큰 잔과 우유가 담긴 병 그리고 거품기가 놓인 쟁반이었다. 쟁반에 있는 재료와 도구를 가지고 문제의 카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건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셀린이 앉은 그 건너편의 빈 의자에 앉아서 문제의 재료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그것 중에서 카페 가루가 든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서는 잔에 담긴 카페 가루 전부를 큰 잔 안에 쏟아 부었고, 이어서 또 다른 에스프레소 잔의 물을 그 안에 넣었다. 물은 적당히 따뜻해서 카페 가루가 잘 섞일 수 있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잔의 손잡이를 붙잡고-손잡이가 있는 잔을 가져다 준 것이 잔을 안정적으로 꽉 잡고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안배였던 것으로 보인다-,
왼손으로 잔의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 거품기를 잡은 이후에 거품기로 잔의 안쪽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최대 10000 번 가량을 가능한 팔이 아프지 않게 휘젓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힘을 주고 저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힘을 주지 않고 천천히 휘저으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바로 오른편 옆에 앉은 에오르 자매와 셀린은 물론, 리 셀린과 나에티아나 그리고 심지어는 찻집의 선배 점원과 세나, 세니아 등까지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잘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내가 그간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특이한 카페를 만들어 보려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나가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일단 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란 흰자로 '므랑게(Merangue, Mêrange)' 라는 크림 비스무리한 것을 만드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고 해당 공정에 대해 말해 보기도 했다.
그 무렵, 나를 탁상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루이즈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의 왼편 옆으로 조용히 다가가더니, 나의 왼편 곁에서 내가 카페 가루와 물로 므랑게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계속 빠르게 저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거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어요."
"뭐라고요?" 그러자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모두가 놀랐고, 그래서 세니아가 루이즈에게 사실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이에 루이즈는 사실이라고 말하고서 자신이 예전에 이러한 카페를 만드는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계속 힘차게 휘저어서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 이후에 계속 빨리 휘저어야 한다고 나에게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얼마나 빨리 휘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말을 건네지 못했고-정해진 규칙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거품기를 휘저어야 했다. 이렇게 힘을 들이는 것이야 검 같은 무기를 휘두르면서 얼마든지 들이고는 했지만, 적어도 내가 장담하건대, 몇 분 넘게 검을 빨리 휘두르기를 반복한 적은 적어도 내 기억 상에서는 없었다, 팔에 지속적으로 힘이 가해지면서 아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요? 정말?"
점차 카페 물이 찐득해지는 듯한 느낌이 오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팔이 상당히 아파왔다, 아린다고 할 수 있을는지. 오른팔이 아려오면 왼팔로, 왼팔이 아리면, 그간 쉬고 있었을 오른팔로 교체해 가며 거품기를 휘저었지만 그 팔의 아픔은 잠깐 쉬는 것으로 해결될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한참을 쉬고 있어야 풀릴 수 있을 만한 것을 임시 방편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두 팔이 모두 아파서 잠시 쉬어야만 했다.
"내가 해 볼게, 휘젓기만 하면 되는 것이잖아." 그 때, 카리나가 나를 보더니, 비켜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나는 잘 됐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리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니, 이에 카리나가 자리에 앉아서 거품기로 카페 물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루이즈의 왼편 곁에 이르러서 그간 무리할 정도로 힘을 지속적으로 가해 아파왔던 팔을 쉬게 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힘들게 카페를 만들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몇 분을 힘들게 휘저어야 카페 물이 끈적일 정도이고, 거품은 일어나지 않는데, 그렇게 힘들게 카페를 만드는 것에 무슨 의의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루이즈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자신도 실은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이후에 이어서 말했다.
"풍성한 거품의 느낌을 카페를 맛 보면서 느낄 수 있다는 의의가 있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곧 그는 그런 거품을 맛 보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수단이 있다고 말하고서, 굳이 이런 힘든 공정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이와 같은 기법은 한 때에 유행했었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하니, 아무래도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었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법은 때마다 재조명되고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승되어 갔다는 모양.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카리나 역시 두 팔에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후, 카리나는 세니아에게 일을 맡겼고, 세니아는 이후에 세나에게 맡겼다. 이런저런 무거운 무기들도 자주 사용해 보았던 세나라면 어느 정도는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라 일행 모두 믿고 있었고, 그래서 세나가 거품기를 잔 안에서 휘젓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 했었다.
"이런 식으로 카페를 만드는 기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세나는 카페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고, 실제로 찻집에서 일해 본 경력도 갖고 있었다. 카페 가루를 어떻게 볶아서 빻고, 그 가루로 어떻게 카페 물을 생성하는지에 대해 카페 제조기를 직접 마련해 와서는 카페를 제조해 주면서 알려주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카페가 차(Teh) 의 일종이라고 알려주기도 했었어."
"원료에 물을 타서 가루를 걸러내는 것에서 차와 비슷하다고 말했었지."
세나가 카페에 관해 많이 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난 이후, 카리나가 그것이 차의 일종이라 세나가 말한 적이 있었음을 밝혔고, 이어서 세니아 역시 그것에 관해 말하기도 했었다. 그 이야기를 리 셀린의 선배 점원이 귀띔하고 있었는지, 세니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밝게 목소리를 내며 일행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후에 한 번 기계로 카페를 만들어 보도록 해 볼까요."
"찻집 일 그만둔지 오래됐잖아." 그 때, 세니아가 세나가 찻집 일을 그만둔지 오래됐다고 말했고, 그 말에 나에티아나가 다루는 법을 기억하고 있다면 충분히 다룰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카페 제조기는 크든 작든 기본 동작 원리는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고 이어 말했다. 이후, 그는 세나에게 카페 제조기를 다루는 것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한창 카페 물을 휘젓는 일을 하고 있었던지라 질문을 감히 건네거나 하지는 못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나는 기계를 한 번 다루어보라고 하자, 이 일은 아르사나에게 맡기고."
이에 세니아는 세나가 기계를 여전히 잘 다룰 수 있을지를 보자고 청하면서 나에게 다시 그 거품 카페 만드는 일을 다시 맡기려 하니, 세나가 일어난 자리에 내가 다시 앉았다. 이후, 세나는 선배 직원에게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직원은 좋다고 답하니, 세나는 계산대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거품 커피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세나가 카페를 만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였다. 우려와 달리, 세나는 의외로 처음부터 제대로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우선 볶아낸 카페 콩(Kafekon) 들을 분쇄기 (Fakhtrî) 의 호퍼 통 (Hopdevo) 에 넣고, 커다란 숟가락처럼 생긴 카페 필터기 (Gerytrî 혹은 Portagerytrî) 를 왼손으로 잡아서 카페 가루가 들어가는 카페 바구니 (Pagon) 가 분쇄기 바로 아래에 오도록 한 이후에 분쇄기를 작동시켜-해당 분쇄기는 측면 한 곳에 작동 버튼이 있어서 그 버튼을 누르면 작동했었다- 분쇄기에 콩이 갈려 그 가루가 체임버 통 (Chambradevo) 에 들어가면 통 아래의 손잡이 (Devojile) 를 조작해 곱게 갈린 가루가 필터기의 바구니 부분을 채우도록 한다.
카페 가루가 바구니를 채우면, 그 가루를 왕복해서 밀어서 그 표면을 고르게 하고서 오른손으로 템퍼의 손잡이를 잡고 베이스(Temprafata) 로 가루를 눌러 수평으로 맞춘다. 이후에 필터기를 추출기의 그룹 헤드 (Moydißokh) 에 손잡이가 7 시 방향으로 오도록 장착하고 자루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 필터기가 그룹 헤드에 고정시킨 후에 추출기에서 뜨거운 물이 그룹 헤드를 통해 흘러내려 카페 물이 추출되어 예열된 잔을 채우도록 한다. 추출되는 양은 작은 잔 하나 정도의 양이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 미상
필터기를 그룹 헤드에서 떼낸 후에는 그룹 헤드에 남은 카페 찌꺼기를 배출 (Valka) 해서 바닥에 떨어진 가루를 닦아낸 후에 필터기에 남은 가루 역시 필터기를 거꾸로 잡고 한 번 흔들면 가루가 분리되어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필터기의 카페 떡(Kafethok) 혹은 찌꺼기를 찌꺼기 통 안에 쏟아낸 이후에 마지막으로 카페 필터기를 깨끗이 닦아내어 그룹 헤드에 필터기를 장착하고 고정시킨다. 이상이 기계로 카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후에 뜨거운 우유를 넣고 싶으면 기계의 증기 발생기로 우유를 데워서 큰 잔에 카페를 담고 우유를 적당한 방법으로 부어서 잔을 채우면 된다.
내가 알아본 카페 기계로 카페를 제조하는 방법이다. 세나가 카페를 제조하는 방법을 직접 지켜본 기억을 토대로 작성을 했는데, 실제로 카페 기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온도 조절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섬세한 솜씨가 필요하기에 내가 적은 바대로 따라한다고 반드시 좋은 카페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이런 기계로 카페를 만들고 싶다면 부탁드리는 바, 어디서든 적절한 곳에서 충분한 연습을 해 두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공정을 모두 마치고 세나가 가져온 카페를 보면서 나는 모양만 보았지만, 그 모양새가 너무 그럴 듯해서 처음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 정도로 제대로 할 줄은 몰랐음이 그 이유. 맛은 세니아가 보았는데, 카페 맛에서 제대로 만들었음이 느껴진다고 말했을 정도. 놀라기는 선배 점원도 마찬가지여서 그 모습을 보면서 당황하면서 자신의 바로 뒤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서 있던 세나를 향해 돌아서며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전에 이 찻집에서 일하신 적이 있으세요?"
"이 곳은 아니지만 찻집에서 돈을 벌려고 일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 일도 어느새 그만두어서 해 본지는 오래 되었네요."
겸손한 대답을 들으면서 오히려 그 선배 점원은 더욱 큰 존경을 느낀 듯해 보였다. 세나가 카페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에 대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에게 과찬이 아니냐고 물었다.
"얘가 보통 재능을 가진 애는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찬이신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도 이렇게까지 만들어 본 적은 없어서....... 저도 그럼에도 셀린에게 카페를 만드는 법을 어떻게든 잘 전수하려 했었거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배 점원이라는 이도 찻집에서 일한 경력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1 달 정도의 차이는 있었기에, 자신과 셀린이 선배, 후배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세나는 내 기억 상으로는 5 년 정도는 일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관련된 일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경험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세나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하기는 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것치고는 너무 지나친 감이 있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부담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 이름이라도 듣고 싶네요."
"세나, 세나 엘 테린이라고 해요, 사는 곳은 무나일(Munayl) 마을이에요."
그러자 선배 점원은 자신의 이름이 에르모나 마리아 마르케스 (Hermona Maria Marquez, =ermona Maria Marketh) 임을 밝히고서, 이어서 오래 전부터 하미시에 살고 있는 이임을 밝혔다. 그리고서 그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부탁조의 말을 건네었다.
"이제부터 테린 씨를 선배님이라 칭해도 될까요."
이후, 이 카페는 내가 직접 두 손으로 정중하게 들어서 의뢰인이라 할 수 있었던 에르모나 마리아에게 직접 전해 주었다. 그간 찻집에서 카페 만드는 일만 해 왔을 에르모나는 다른 이가 만들어 준 카페가 자신의 품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너무 놀라워 하면서도 활짝 웃으며 카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서 손님에게 카페를, 그것도 자신보다도 오랜 경력을 가진 이에게 대접을 받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고 말하고서, 평생에 없을 행운일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고마워하는데,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 그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기만 할 뿐, 달리 답례를 하거나 하지 못했다. 이렇게 극히 고마워하는 모습에 어떻게 답례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래도 에르모나가 좋게 받아주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그렇게 세나의 실력을 내 눈으로 지켜본 이후, 나는 다시 내 할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있는 힘을 다해 거품 카페를 제조하는 일이었다. 좋은 광경을 한 동안 잘 지켜보았으니, 이제 최선을 다해 해야할 일을 하자는 것. 그간 잘 쉬고 있었던 만큼, 더욱 열심히 거품기를 휘두르려 하였고, 그것이 나름 성과가 있었는지, 액체가 끈적해지고, 거품이 피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오른팔이 다시 격통을 느끼려 할 즈음, 거품이 생성되며, 액체의 색깔이 엷어지기 시작했다.
"세나, 이제 곧 마지막일 것 같아, 마지막에는 네가 끝냈으면 좋겠어."
액체의 색깔이 엷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곧 마지막이 왔음을 자감하며, 나는 세나에게 마지막 공정은 카페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 세나가 직접 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됐고,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나에게 일을 맡겼다. 세나는 다른 말 없이 별 의미 없는, 괜히 해 보자고 한 것 같은, 어쩐지 마치고 나서도 후회할 것 같은 요상한 작업의 마무리를 맡기 위해 내가 비운 자리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거품기를 잡고 왼손으로 그릇을 잡은 이후에 거품기로 거품이 일어난 내용물을 휘젓기 시작했다.
"세게 휘둘러야 해, 그래야 거품이 크게 일어날 수 있어!"
이후, 내가 계속 세게 휘둘러야 함을 알리면서 그의 행동을 독려하였고, 이에 호응하는 듯이 세나가 거품기를 세차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과정이라 그러한지 팔이 아파왔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실제로 많이 아프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세나가 의외로 아픔을 잘 참는 성격이기도 했다-, 고개를 숙이고 거품이 일어나는 액체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마지막 작업에 열중하려 하였다. 그 부질 없어 보이는 카페 만들기를 세나는 끝까지 잘 해내려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 카페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다른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러는 동안 나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크레마(Krema) 형태의 카페를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고 있었다.
"다 된 것 같아요, 린 씨, 리아 씨, 이 정도면 어떠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후, 거품이 일어나 황갈색을 띠는 므랑게 혹은 크레마 비스무리한 카페가 만들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세나는 일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 이전에 세나가 안도 혹은 그간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듯이 한 숨을 내쉬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에게도 많이 힘든 일이기는 했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카페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했던 린, 리아 자매에게 카페를 보여주고서 세나는 만족하느냐고 물었고, 린, 리아 자매는 이에 제대로 만들어 주었다며 극찬을 하고서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찬사를 해 주었다. 실상 세나 혼자가 아닌 나를 비롯한 일행이 힘을 합쳐서 만들어 준 것이라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이후, 세나가 일어나서 그릇을 에르모나에게 가져다 주면서 이후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느냐고 묻자, 에르모나도 당황하면서 되물었다.
"이런 크레마 같은 카페는...... 저도 다루어보지 않아서 몰라요. 그래서 이것을 다루는 법을 아실만한 분께 이것에 대해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분께서 하실 수 있나요?"
그러자 루이즈가 바로 나섰다. 에르모나의 바로 앞에 다가가서 혹시 우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에르모나를 대신해 리 셀린이 냉동고에서 우유를 가져와 잔을 대충 채워서 가져왔고, 그 모습을 본 루이즈는 탁자 위에 올려놓은 우유 잔에 크레마와 같이 걸쭉해진 카페가 들어있는 큰 그릇을 우유 잔을 향해 기울였다. 이후, 큰 그릇에 들은 크레마는 기울어진 대로 우유 잔을 향해 흘러 갔고, 그 크레마는 우유의 표면 위에 달라붙는 듯이 떠올랐다.
"카페는 대개 우유에 섞이지 않아?"
"섞이지." 그 광경을 보고 당황하면서 카리나가 묻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크레마 안에 거품이 많이 내포되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유체가 가벼워져 우유의 표면 위에 떠오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나름의 고찰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카페를 만들어서 마시는 것에 정말 무슨 큰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것에 의미가 있었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당시의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정말로."
이후, 그간 옆 자리 근처에서 일이 일어나는 광경을 계속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셀린이 린, 리아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고, 린, 리아 자매 역시 자신도 그것에 대해서는 무척 궁금하다고 화답했고, 이어서 리아가 셀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 고대인들의 감각이란 간혹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니까."
이후, 루이즈가 카페를 천천히 우유와 섞어서 하나의 우유 카페처럼 만들어서 일행의 책상 한 가운데에 놓았고, 그 카페는 세나, 카리나, 나, 세니아가 나누어 마셔 보았다. 그러는 동안 에르모나와 리 셀린 그리고 린, 리아 자매와 셀린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일행이 맛 본 커피의 맛에 대한 평가는 이러했다 :
- 카페 가루가 많이 들어간 우유 카페 맛, 딱 그 정도, 보기는 좋은 것 같다, 보다 편하게 만들 수 있으면 나름 특별한 경험일 수도. - 세니아
- 보기는 달달해 보여도 실제로는 조금 많이 쓴 것 같다. 겉과 속이 다른 매력? 그런데, 과정은 조금 지나쳤던 것 같다. - 카리나
-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고생한 대가가 느껴지지 않는 맛이었습니다. 이런 카페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카페를 만들 수 있는 기법을 전수해 주고 싶어요. - 세나
- 고대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 아르사나 2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