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Intermission 5 : 2


  세나가 만든 카페에 대한 품평도 나름 했었는데, 세나를 너무 극찬했던 에르모나의 의견을 제외하고 남은 이들이 평을 해 주었다. 여기서 카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던 나에티아나는 이번에도 평을 쓰지 않았다. -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찻집으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은 곳이었지만 나름 유명한 곳이어서 그러한지 하나둘씩 사람들이 찻집으로 왔고, 탁자에 모여 앉은 이들이 모여 앉아 서로를 위한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일행 역시 탁자에 모여 앉아서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당시 현관을 등지는 방향을 기준으로 나는 탁자의 오른쪽에, 세나는 나의 오른쪽 옆에, 루이즈는 나의 왼쪽 옆에 있었으며, 카리나, 세니아, 나에티아나는 나의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좌우 순서대로 카리나, 세니아, 나에티아나가 앉아 있었다.

  "우선은 가브릴리아의 북쪽 항구 도시인 지브로아(Jibroa) 에 가야 한다는 말이지?"
  "그래."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답하고 있었다.

  당시, 일행은 은화의 5 번째 문양을 채울 빛이 자리잡고 있다는 '빛의 등대' 가 자리잡은 곳인 하나엘리스 (Hanaelis) 산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마치고서, 그 이후에 가게 될 곳이라 할 수 있는 가브릴리아에 이르면 우선 가야할 곳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에 나는 가브릴리아의 북쪽 해안에 있는 지브로아의 서쪽 교외 산길 너머에 있는 기억의 절벽 (Rupes Memoriae, Rupes Memorie) 그리고 '기억의 사당 (Sedes Memoriae, Sedes Memorie)'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서 그 곳에 괴물이 출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일행에게 해 주고 있었으며, 이어서 일행에게 그 괴물을 물리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갈 빛의 등대가 위치하고 있을 가브릴리아의 해안 일대에 괴물이 나타나서, 언제, 어떻게 그 해안 일대의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일행 모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 모두 앞으로 찾아갈 곳의 사람들이 괴물로 인해 불안해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브릴리아로 가는 길에는 육로와 수로가 있다고 했었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때,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셀린이 나의 바로 뒤로 다가와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그 모습을 모른 척하고 있었으며, 건너편에서 듣고 있던 카리나 역시 그 모습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딱히 말을 건네거나 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려 하였다.
  "육로가 편하기는 해, 기차를 이용해서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 육로를 이용하면 안 돼."
  "육로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뭐 있겠어, 그간 기차를 잘 이용하고 다녔잖아."
  카리나가 말한 대로였다. 하나야스까지 일행은 기차를 통해 잘만 이동해 왔으며, 그래서 육로 이용에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제는 이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고서, 전날에 셀린, 에오르 자매에게 전날에 들은 바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기계 군단에 복종하여 그들의 뜻을 따르던 케레브 족의 교주와 그 세력이 궤멸당하고 그 과정에서 행성에 숨겨진 병기가 파괴되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어둠의 힘' 이라 칭해지는 기계 병기들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야. 그 어둠의 힘이 우리를 노릴 수 있을 텐데, 그 과정에 우리가 기차를 타고 있을 경우에는......."
  "민간인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나에티아나가 화들짝 놀라면서 물었다. 눈까지 크게 뜬 것을 보아 보통 크게 놀란 것은 틀림 없어 보였다. 이 물음에 나는 보다 진지해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주변에 있던 일행 모두가 심각해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둠의 힘은 대체로 기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 기계 병기의 파괴를 의식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지." 이후, 세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고서 그래서 육로가 아닌 수로를 이용하자고 청하는 것이라 말하고서 수로를 이용할 때에도 큰 배가 아닌 작이용하는 편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세나가 물었다.
  "큰 배는 피해를 입으면 여러모로 곤란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이 이유이겠지요?"
  "그렇지."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한 이후에 조용히 미소를 띠고서 수로를 이용하려면 하미르의 동부 구역에 있는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빌려 타야 할 텐데, 그 곳은 오래 전부터 예술가들의 거리(Arsayndrï Gil, La Vojo de Artistoj) 이라 칭해지는 명소라 하며, 명소 구경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부 구역에 대해서는 이전에 들은 이야기도 있고, 가 본 적도 있어요."
  그 때, 나에티아나가 하미르 동부 구역에 가 본 적이 있음을 밝히고서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에티아나가 했던 이야기는 내가 셀린, 에오르 자매 등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그 이야기들과 나름 비슷했다.
  "하미르 동부는 하나야스 지역이 정령에 의해 정화된 이후에도 수많은 건물들이 남아 그 건물들이 유지된 구역이래요, 그래서 실제와 달리 외견은 빈민가처럼 보인대요. 옛 문명이 고스란히 남은 곳들 중 하나로 원래는 빈민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네요."
  "그렇다면 하미르의 중심지와는 여러모로 다른 곳이겠네요."
  "서부, 중심지 구역과는 많이 다른 곳이겠지요." 이후, 세나가 건네는 말에 나에티아나가 그렇다는 의미의 답을 건네었다. 이후, 세니아가 나에티아나에게 그렇다면 앞으로의 일정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 것인지에 대해 묻고서, 하미르의 서부 구역으로 돌아간 다음에 바로 하미르의 동부 구역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이에 나에티아나도 동의하는 대답을 건네었다. 그러면서 나에티아나가 이후, 행성의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 '어둠의 힘' 이라 칭해지는 기계 병기들의 세력이 이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걱정스러워하는 듯이 물음을 건네니, 세니아가 그런 나에티아나에게 다소 진지해진 목소리로 답을 했다.
  "확실한 정황은 없지만...... 이번 일에 대해 대응을 한다고 하면, 꽤 시간이 소요될 것 같기는 해. 하지만 당장에 녀석이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아서 너무 다급해 할 필요는 없을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카리나가 그런 세니아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어쩌면 바로 움직이려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이번 일에 대해 바로 대응하기보다는 행성의 다른 곳에 숨은 이들을 준비시켜서 하미시의 지하에 숨어있던 병기를 파괴시킨 이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들이 다가오면 그 병기들로 응징을 하겠다, 그런 의미일까."
  그 물음에 세니아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며 답했다. 그리고서 자신들이 이전에 쓰러뜨린 존재와 같은 이들이겠거니, 싶은 이들에게 더욱 강한 공세를 내세워 그들을 당황시킨 후에 궤멸시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둠의 힘' 은 아직까지는 자신의 수하를 궤멸시킨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서 이어 말했다.
  "그래, 아직은 대형 병기를 파괴한 사례는 한 번 뿐이니까, 이번 사태에 대해 다소 여유로운 관점을 가지고 바라볼 수도 있겠지."
  그리고서 그렇다면 적어도 '어둠의 힘' 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들에게 일행이든 누구든 적대할 만한 이가 오면 그들을 기다리게 하거나, 그들이 올 때에 맞춰 일을 벌일 것 같다고 말하고서 너무 다급히 움직일 필요는 없겠다고 말한 이후에 조금은 여유롭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분들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그 세력이 알아차리면 그 쪽에서 그것을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 때, 일을 보고 있던 리 셀린이 일행이 모여 앉은 탁자로 다가가서 말했다, 오히려 육로에 위치한 철로와 기차를 병기들이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일행의 옆에 앉아있던 에오르 자매들 중 한 명이었던 린이 리 셀린에게 자신들이 그 쪽으로 가겠다고 말하고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리 셀린이 에오르 자매가 앉은 자리 쪽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글라이더에 그 대형 포도 장착하실 것이지요?"
  "당연하지!" 그러자 리아가 당연한 일이라고 답하고서 때로는 한 번 포격을 제대로 해서 기계 병기들을 크게 혼내 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리 셀린이 다시 일을 보기 시작할 무렵, 셀린이 에오르 자매에게 그들 역시 하미르의 동부 지역으로 갈 예정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그들이 동시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셀린은 그렇다면 하미르의 동부에 갈 때만큼은 근방의 탁자에 앉은 일행의 일정에 맞춰 일정을 갖자고 청했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는 만큼, 그것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린이 셀린에게 나를 비롯한 일행보다 일찍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늦게 움직일 것인지는 정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셀린이 이렇게 답했다.
  "적어도 한 나절 이상은 빨리 움직이도록 하는 편이 좋다고 여기었어요, 저 분들께서 가실 곳에 먼저 가서 이런저런 사항들을 저 분들께 알려드리는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을 거예요."
  "그 쪽에는 포레 느와흐 (Forêt Noire) 를 숙적으로 삼고 계신 분이 계실 테니까, 그 쪽이 아무래도 이번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하겠지요."
  이후, 린이 셀린의 제안에 대해 말을 건네고, 그 말에 "그런 것이지요." 라고 화답했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셀린 그리고 에오르 자매가 포레 느와흐에 대해 알아보면서 어머니 그리고 내가 그를 숙적으로 삼고 있다는 정보까지 알아차린 듯해 보이며, 그래서 나에게 많은 것을 맡기려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이후,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는지, 셀린이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미르의 동부 지역에서 갔다오기에 좋은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에오르 자매에게 하기 시작한 것으로 찻집이나 공원이라든지 거리 곳곳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가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선 그는 하미르 동부 지역의 중앙 154 번 구역에 있는 집에 고대 유물을 취급하는 가게가 하나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에오르 자매에게 전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자주 볼 수 있는 것들과는 다른 유물들이 그 가게에 다양하게 진열되고 있다고요?"
  "예, 저도 아직 그 가게에 직접 방문해 보지는 않았지만, 주변으로부터 특이한 유물들이 가게 내부에 다양하게 자리잡고 또 판매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또 안내서에도 그것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책장이 있었어요."
  이후, 셀린은 에오르 자매가 동시에 목소리를 내며 묻자,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대답을 했다. 이후, 동부 구역에 가면 그 가게를 한 번 정도는 들러보자고 청하기도 했다. 이에 린이 154 번 구역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고 묻자, 셀린이 책자의 삽화 (Anlustratia) 에 의하면 건물의 정면 좌측의 벽에 154 라 쓰여진 간판이 붙어있음을 밝히고서 그 간판을 찾으면 될 것이라 말한 이후에 그 일대에서는 건물들마다 하나씩 구역 번호를 알리는 간판이 붙어있기에 주변 건물들의 번호 간판을 통해 어렵지 않게 해당 건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 가게는 저도 한 번 들른 적이 있어요."
  그 때, 나에티아나가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셀린, 에오르 자매가 언급한 가게를 들른 적이 있음을 밝히고서 프라에미엘(Praemiel) 과 함께 가게에 갔었음을 밝혔다. 내부에 찻집이 있는 가게이며, 가게 주인이 애초에 이런저런 곳에서 수집한 다수의 물품들을 갖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난 어떤 골동품상의 조언을 통해 자신도 가게를 열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래서 그간 수집했던 고대 유물들 및 성유물들을 전시 및 판매하는 가게를 열게 됐다는 모양.
  "성유물이라면 세나가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성유물이 있다는 말에 세니아가 세나에게 시선을 향한 채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세나는 그런 와중에도 표정을 바꾸지 않는 채, 그간 마시지 않았던 카페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세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세니아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가만 보면 세나는 자신의 속 사정에 관해 말을 너무 많이 아끼는 것 같아. 분명 이런저런 사연이 많은 애일 것 같아 보이는데 말야, 그렇지 않아?"
  "그렇기는 해." 세니아의 물음에 나는 동의하는 뜻을 가지며 말했다. 늘 온화하고 착실한 소녀였지만 세나는 자신의 속 마음이라든가 자신의 속 사정에 대해서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었고, 그래서 천문대에서 동거하던 시절에도 그의 속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다만, 세니아가 세나를 자주 지켜보면서 마음 속에 수많은 것들을 품고 있을 것임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지금도 성유물이 있다는 말에 뭔가 생각이 들었겠지만,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
  이후, 세니아는 세나를 다시 지켜보면서 그에 대해 그렇게 말했는데,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세나는 "그렇지는 않아요." 라고 바로 반박했다. 이후, 세나가 화제를 돌리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서 끝을 맺었다.

  "여기서 나가고 나면 어디로 가실 거예요? 안드레아와 카를라, 두 분께서 운영하시는 곳으로 가 보실 것이지요?"
  "그렇지, 글라이더라든지, 그 분들께서 그간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글라이더들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보는 것 정도는 해야 하잖아."
  나는 앞으로 글라이더가 필요할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으며, 나에티아나가 추천한 곳이기도 한 것이 그 이유였다고 이어 말했다. 이후, 나에티아나가 나의 말에 이어 자신이 안드레아, 카를라가 운영하는 가게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은 하미시에서 글라이더를 제공 받기에 좋은 곳이 바로 그 곳이라 여기었기 때문으로 앞으로 일행이 글라이더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밝혔다. 그리고서 앞서 언급된 바대로 그들의 가게는 광장의 동쪽 구역에 있다고 말하고서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는 자신이 직접 가르쳐 주겠음을 밝혔다.
  글라이더가 필요한 상황이 있다는 것은 장차 일행이 공중에서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할 것이고, 나에티아나는 그것을 대비해 글라이더를 만들 것을 생각해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마냥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닌 것이, 이전에 고대 도시의 지하에 숨겨진 병기를 공략할 때에도 일행은 글라이더의 도움을 받아야 했었다. 이런 일이 앞으로 더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후, 카리나가 글라이더를 만들려면 몇 대가 필요할 것인지에 대해 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러니까....... 나, 카리나, 세니아에......"
  "루이즈 씨도 계시잖아." 그 때, 세니아가 루이즈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루이즈까지 지명할 수 있었다.
  "루이즈 씨까지 더해서...... 그리고 또......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레테사나 소르나의 것도 필요할지 모르니까 6 대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겠네. 내티나 미엘은 물론, 세나 역시 굳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고, 그 정도 있으면 되겠지."
  "소르나가 그런데, 우리 곁으로 와 줄까, 그간 우리 곁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잖아."
  "언젠가는 와 줄 거야, 분명." 레테사 그리고 소르나의 것도 필요할 것이라는 나의 말에 카리나가 바로 이의를 드러내며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들도 분명 와 줄 것이라 답했으며, 더 나아가 '어둠의 힘'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 소르나나 레테사도 주목하는 행성에 뿌리내린 '어둠' 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만큼, 그들 역시 이번의 일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번 일에 그들의 관여가 없을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이후, 카리나가 글라이더를 만들고 나면 한 번 운용해 보기도 해 보자고 말하고서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고, 나도 카리나처럼 글라이더를 실제로 다루어 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 그의 뜻에 동의하는 말을 건네었다. 이전에 글라이더를 타고 비행을 하면서 전투 상황이기는 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세니아가 나에티아나는 그 때에 어떻게 하도록 하면 될 지에 대해 묻자, 나에티아나는 자신은 거리의 한 곳에서 지켜보고 있겠다고 말하고서 그러면서 가 볼만한 곳들에 대해 마을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알아 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루이즈에게 시선을 향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글라이더를 만들어서 실제로 글라이더를 다루어 보도록 할 거예요, 어때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한 번 해 볼게요." 루이즈는 딱히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으나, 한 번 해 볼 것을 제안 받은 이상, 해 보겠다고 결심을 한 듯해 보였다. 그 때, 세니아가 그를 보더니, 글라이더를 타 보고 싶지 않다면 굳이 타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아니, 그래도 하겠어요, 웬지 이번 일이 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 같아서요."
  그리고 세상에는 원치 않아도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루이즈가 말하자마자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달리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원치 않아도 해야할 일을 하면서 살아오기만 했을 그가 그 때 했던 말에는 의미심장한 무게가 실려 있어서 그것에 대해 어찌 말을 건네거나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동안 이렇게 앉아 계시면서 지루하시지 않으신가요? 이제 나가도록 하지요."
  "그렇게 할까." 그 때, 세나가 분위기 전환 겸, 나갈 것을 일행에게 제안하였고, 이러한 제안에 카리나가 나에티아나에게 좋다고 답한 이후에 이어서 나와 세나 등을 둘러 보면서 나에티아나가 말한 대로 어서 나가도록 하자고 청하니, 때 마침 슬슬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여기던 내가 좋다고 답했고, 그리하여 나를 비롯한 일행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서 찻집을 나서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시는 거예요?" 그 때, 셀린이 가장 마지막으로 나가는 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한 이후에 바로 가야할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셀린 등은 하미르 동부 구역에서 갈 만한 곳을 알아보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줄 것임을 알리기도 했다.



  광장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324 번 구역의 건물, 안드레아 그리고 카를라의 공방이 있는 곳이었다. 본래는 하미르 동부에서 고물상으로 일하던 이들이었으나, 고물들을 취급하면서 얻은 고대 문명의 기술들을 익히며 하미시 동부에 가게를 차리고 공방을 열었다는 모양. 이후에 하미시의 경비대들이 사용할 글라이더들을 제조하면서 일대에서는 유명한 공방이 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광장의 동부 일대에서는 가장 큰 가게로 자리잡고 있었다.
  가게 앞에는 때 마침 이전에 만났던 알프레드 노인이 자신의 글라이더를 가지고 공방 앞에서 어떤 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녹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머리카락의 한 부분을 묶어 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얀 옷 위에 갈색을 띠는 멜빵 바지와 검은 부츠 차림을 한 이로서 손에 쇠로 만들어진 연장을 들고 있어서 그가 공방의 기계 공들 중 한 명임을 그 모습을 보며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그는 아마도 안드레아, 카를라, 둘 중 한 명이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엔진을 오래 사용하시면서 기능이 떨어진 곳으로 보이네요. 곧 엔진을 교체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알프레드 노인은 자신의 글라이더 엔진이 노후화하면서 작동에 이상이 생겨 수리를 의뢰했고, 이에 기계 공이 엔진 교체를 해 주겠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글라이더 제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여기면서 알프레드 노인의 글라이더가 수리되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였다.
  "아무래도 글라이더 제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그 동안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이들은 다른 곳에 있어도 괜찮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다른 곳으로 가기를 원하는 이들은 다른 곳으로 가도 좋다고 말했다, 정황 상 그 일은 아주 긴 시간을 들이지는 않겠지만, 가만히 서서 기다리기에는 다소 긴 시간이 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세나, 세니아, 카리나 등은 다른 곳을 찾아 나서려 하였지만 루이즈는 남았다. 그 시절의 글라이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모습을 더욱 자세히 보고 싶었음이 그 이유였다고. 이후, 나는 글라이더가 수리되는 모습을 가게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지켜보고 있던 알프레드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알프레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오오, 아르사나로구나, 또 보게 되는구먼." 그러자 나를 등지고 있던 알프레드 노인이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웃음을 지으며 인사말로 답했다. 그러더니, 지금 자신의 애기인 글라이더의 엔진에 이상이 생겨 교체를 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이것이 끝은 아니고, 엔진 교체를 마치고 나면 집으로 가져가서 외장을 자신이 직접 수리할 생각도 있음을 밝혔다.
  "외장은 내가 직접 수리를 하겠다고 말했지, 이전에도 글라이더를 고친 경험이 많아서 내 실력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다만, 이번 엔진 이상은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엔진 교체가 필요해 보여서 이렇게 공방에 의뢰를 했다네, 이 공방에 좋은 엔진을 취급하고 있다고 해서 말야."

  자신이 직접 탈 것, 아니 비단 탈 것만이 아니라 기계 류 제품들을 소유한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해당 제품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관리하는 것으로 때로는 이를 위해 제품을 수리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출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처음 타자 연습을 할 때에 들은 바 있었으니, 당시의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계를 구매, 소유했다면 그 기계를 소중한 사람과 같이 대하라' 라는 말이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듯한 책임 의식 없이는 기계 제품을 소유할 자격도 가질 수 없다는 말.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기계를 어떻게 사람처럼 대하냐고 납득하지 못했었지만 그 이후로 몇 번 기계 제품을 다루다가 고장도 내고, 수리 의뢰를 하면서 돈까지 내면서 그 말의 의미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됐다.
  기계 제품은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진 만큼, 강인해 보이지만 그와 더불어 기계 제품들은 참 민감한 녀석들이기도 하다, 정말 사소한 이유로 작동 이상을 일으키고, 고장으로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게 되며, 작은 고장 하나로 기계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하는데, 수리 능력이 없으면 이런 작은 고장 하나만으로 난감한 사태가 발생하는지라 기계 제품을 소유하는 것은 때로는 참 골치아픈 일이다. 지금도 주변 일대에는 기계 제품들이 다루어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고, 그 사람들은 무난하게 기계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의 내막을 살펴 보면 이러한 고장으로 인해 고충을 한 번도 겪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기계를 소중한 사람처럼 대하라는 말을 들은지도 이제 참 오래됐다. 하지만 그 말을 지금에 이르러서도 잘 실천한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튼, 안드레아 혹은 카를라로 추정되는 기계공은 공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엔진을 가져와서는 글라이더의 동체 좌측 부분의 앞에 엔진을 놓아두고, 그 곁에 앉아서는 주머니 안에서 공구들을 꺼내더니, 공구로 외장을 열고서 원래 장착된 엔진을 동체에서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능숙하게 새 엔진을 원래 엔진이 있던 자리에 끼우고서는 다시 글라이더를 원래 상태로 되돌렸다. 그렇게 엔진을 교체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략 10 여 분 정도였던 것 같다.
  "다 됐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기계공이 끝났음을 알렸고, 이에 알프레드 노인은 원래 상태로 돌아간 글라이더의 몸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너털 웃음을 지으면서,
  "고맙네~! 역시 소문대로 잘 하는 곳이로구먼!" 이라 외치고서 날개를 접고서 접힌 글라이더를 등에 짊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잘 사용하겠다고 말하고서 공방을 떠나려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우선 글라이더를 집에 넣어두고 오겠다고 말했다가 다시 나를 향해 잠시 돌아서서 물었다.
  "혹시 글라이더를 새로 장만하려고 왔나?"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서 나를 비롯한 동료들이 사용할 글라이더들 역시 장만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그렇구먼." 이라고 말하더니, 내게 몇 대가 필요하냐고 물었고, 내가 6 대가 필요하다고 답을 하자마자 바로 다시 공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따라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가지 실례되는 일을 좀 해야 하겠어, 방금 전에 내가 잘 알던 사람과 만났는데, 글라이더들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동료들의 것까지 포함해서 6 대를 원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말야, 그들을 대신해 돈을 지불해 주고 싶네. 6 대 값이면 600 G 정도는 되려나."
  그러자 이전에 엔진 교체를 했던 기계공이 알프레드 노인에게 글라이더가 필요한 사람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알프레드 노인은 내 이름을 바로 말했다, 나와 오랜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인 만큼,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내 이름을 바로 말할 수 있었던 것. 그러자 기계공이 바로 그에게 말했다.
  "아아! 그 분과 동료 분들의 글라이더들은 이미 만들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의뢰비도 지급 받았어요. 그래서 아까 전의 작업이 끝나고 나면 바로 만들려 했었는데."
  "그런가!?" 이에 나도 그렇고, 알프레드 노인 역시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금 나를 알아보고 나와 동료들을 위한 글라이더들을 만들려고 의뢰비까지 지불할만한 이가 있을 리 없었다고 여기었기 때문이었다. 알프레드 노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누가 돈을 대 주었느냐고 묻자, 그 물음에 기계공이 바로 답했다.
  "소르나 라지에스 (Sorna Razies) 라는 분께서 의뢰와 함께 의뢰비를 지급해 주셨어요."
  "소르나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소르나가 내가 하미시의 이 공방에 올 줄 미리 알고 돈을 지급해 줬음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소르나가 나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관찰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지만 이렇게 내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지를 예측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기계공이 알프레드 노인에게 했던 말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놀라고 있으면서도 나는 다른 말 없이 기계공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의 대화를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구먼.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고마운 일이 있나. 덕분에 실례 좀 보았네 그려."
  알프레드 노인은 소르나가 누구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나와 어느 정도 인연을 가진 이였지, 소르나와의 인연 같은 것은 없었을 테니. 하지만 누구인지 모르는 존재이기는 해도 그가 나와 친분이 있는 존재일 것임은 분명하다는 추측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잘 아는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사람일 것은 분명해 보이는구먼. 아무튼, 신세지게 되어 고마울 따름이고,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행여 만나게 되면 그에게 소소한 답례라도 해 주고 싶네."
  그리고서 혹시 그를 만나게 된다면 '하나야스의 알프레도' 라는 사람이 답례를 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정비공은 알겠다고 화답했다.

  "아르사나! 듣고 있었나!?" 이후, 공방을 나서려 하다가 공방 안에 자신을 따라 들어가 있던 나를 발견하더니, 놀라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무슨 대화가 이어지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있었다고 화답했다.
  "그렇구먼, 그렇다면 소르나라는 이가 돈을 대 주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겠구먼."
  이 물음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화답했다. 이후, 알프레드 노인은 나에게 소르나라는 이에 대해 혹시 알고 있느냐고 묻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마일 산 천문대에 있을 무렵부터 잘 알던 사이임을 밝히기도 했다.
  "가마일 산 천문대에 있을 때부터 잘 알던 사람이었어요. 워낙 비범한 사람이고 해서 자주 가까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친했던 사람이었음은 분명해요. 가마일 산 천문대를 떠난 이후에도 한 번씩 연락하며 지내요."
  "허허허! 그렇구먼!!!" 그 대답을 듣자마자 알프레드 노인은 너털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이렇게 인연을 맺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하고서 자신이 그와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라면 그를 만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 말하고서 이렇게 부탁을 했다.
  "만약에 말일세, 혹시 소르나라는 이를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전해 주게, 하나야스의 알프레도가 자금 지원 소식에 너무나 고마워 했다고 말이야."
  그리고서 그로부터 평소에 얼마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느냐고 묻자, 나는 그 이전까지는 없었다고 화답하고서 그 역시 늘 자금 지원을 일행에게 해 줄 수 있는 처지의 사람은 아니라고 그에 대해 언급을 하였다. 평소에 그가 소박하게 살았음을 감안해 보면 자금 지원을 잘 해 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음은 분명하고, 그 때의 자금 지원은 이번 일을 위해 그간 모아둔 돈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나의 행동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그간 모아둔 자금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말이로군."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그가 어떻게 내가 이 곳에 알고 미리 돈을 대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기는 하네요."
  이후, 알프레드 노인은 이제 자신의 일은 끝났다고 말하고서 글라이더를 등에 진 채로 공방을 다시 나섰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작별 인사를 하고서 도시 동쪽의 시가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의 곁을 떠나갔다.



  이후, 기계공은 글라이더를 제작하는 일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 걸릴 수 있으니, 2 시간 정도는 기다리고 있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 시간 동안 다른 곳에 있어 줄 것을 권하기도. 그러면서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고, 이에 나는 주변 일대를 둘러 보면서 '광장 동쪽 324 번 건물' 을 찾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기계공은 글라이더의 날개를 조립하면서 그러하다고 답했다.
  "실례지만 이름이 어찌되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나요?"
  이후, 나는 그로부터 기계공의 이름을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공방에 사는 기계공들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 머무르고 있던 기계공이 둘 중 누구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기계공에게 이름을 알려달라 하였고, 그로부터 바로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제 이름이요? 제 이름은 카를라 마리아 제나 (Carla Maria Giena) 혹은 카를라 마리아 히에나라고 해요. 이 공방 사람들 중 한 명이지요."
  방금 전까지 알프레드 노인의 글라이더를 수리해 주고, 이후에 나를 비롯한 일행의 글라이더를 제조하기 시작한 기계공이 공방의 주인들 중 한 명이었던 카를라였던 것이었다. 그의 동료인 안드레아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으니, 지난 날에 밤샘 작업을 하느라 많이 피곤했음을 토로했고, 그래서 낮에 오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글라이더들이 완성될 즈음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글라이더 제조에 전념하는 카를라의 모습을 보면서 그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가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단 그의 곁을 떠나 있기로 했다.

  한편, 내가 공방 안팎을 오가며 알프레드 노인 그리고 카를라와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루이즈는 말 없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공방을 떠나려 할 즈음에 루이즈가 다시 나를 따라 나서려 하였고, 그렇게 나는 루이즈를 대동하면서 광장 쪽으로 나아갔다. 세나, 나에티아나라면 광장에서 구기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 쪽으로 가서 세나, 나에티아나를 찾아가려 하였던 것.
  "아르사나 씨께서는 뭔가 만들어 보신 경험을 가진 적 있으세요?"
  내가 광장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무렵에 나의 왼편에서 발걸음을 맞춰 나아가면서 루이즈가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기계 쪽에는 재능이 없어서 기계 같은 것을 만들어 보거나 한 적은 없었다고 답하고서 기계 장치 수리는 카리나에게 자주 맡기고는 했다고 말하고서 그가 손 재주가 좋아서 나 이외에도 친구들이 카리나에게 수리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외에도 카리나가 자체적으로 만든 기계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루이즈 씨께서는 구기 운동 잘 하시는 편이었어요?"
  이후, 나는 루이즈에게 구기 운동을 잘 하는 편인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루이즈는 체육 활동을 하면서 발리볼 (Volleyball, Valibol) 이나 소프트볼 (Softball, Softbol) 이라는 구기 활동을 자주 했었음을 밝혔다.
  "발리볼하고 소프트볼이라...... 배구 (Volegong) 하고 약식 야구 (Vdrigong) 말함이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리고 되물었고, 이에 루이즈는 맞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해당 구기를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나는 해 봤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세나가 운동에 워낙 관심이 많고, 사냥이나 싸움을 이어가려면 체력 운동은 필수였던지라 운동 삼아 세나와 같이 해 주는 경우도 많았음을 밝혔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하면서 광장의 중앙 분수대 근처로 돌아올 무렵, 아니나 다를까, 분수대 근처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서 세나와 나에티아나가 배구에 열중하고 있었으며, 공이 보라색 빛을 발하고 있어서 마나로 공을 만들어서 다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세나, 나에티아나의 곁에는 마을 주민이었을 소녀들이 한 명씩 곁에서 같이 배구를 해 주고 있었다. 의외로 진지하게 하고 있었던지라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위험할 수 있었고, 루이즈 역시 진즉에 두려워졌는지 배구 대결의 현장에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세나의 공세가 워낙 강했고, 한 번씩 강하게 공을 상대방으로 내칠 때에는 상대가 위축되어서 점수를 내 주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었다. 루이즈 역시 경기를 관람하면서 한 번씩 세나가 보이는 위협적인 공세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세나 씨, 상당히 온화하신 분인 줄만 알았는데......."
  "원래는 온화한 애가 맞기는 해요. 그런데, 간혹 저런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본래 팔 힘도 엄청나게 세고. 그래서 그 애 한테는 어떤 경우에도 맞으면 안 된다는 말이 오간 적도 있었어요, 다행스럽게도 그 애 한테 맞은 사람들은 없었지만."
  세나는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 그러니까 무나일 사람들 사이에서는 화를 내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 팔 힘을 제대로 쓰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배구를 비롯한 구기 종목이나 체력 단련 등에서 팔 힘을 거침 없이 활용해서 주변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 적이 한 번 두 번이 아니기는 했고, 그래서 진짜로 화가 나면 무서울 것 같은 사람으로 세나를 꼽은 적이 많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세나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거나 한 적은 없었다. 화를 낼 일이 이후, 가브릴리아에 갈 때까지는 없었다고 해야 할 지.

  게다가 세나에 대해서는 뭔가 모종의 비밀 같은 것이 있는 듯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의 4 종 소환수와 관련이 있는 듯해 보였지만,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소환수의 비밀에 대해서는 세나 자신도 잘 모르기도 했고.

  아니나 다를까, 승부는 세나 측의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나는 루이즈가 배구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세나는 빠져 달라고 부탁했고, 그리하여 나에티아나와 루이즈 그리고 나에티아나, 세나와 함께 경기를 했던 소녀들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다시 펼치게 되었다. 루이즈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소녀들의 경험이 워낙 좋아서 이번에는 소녀들의 승리로 끝났다. 루이즈는 하미시에서는 처음 배구를 하는 것이었겠으나, 그럼에도 결과를 잘 받아들이고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그렇게 경기가 마무리 되고, 세나와 나에티아나는 그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나와 루이즈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공방에서 글라이더를 만드는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내가 이제 막 시작한 것 같다고 말하고서 끝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해 보인다고 해서 공방 주인인 카를라가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을 것을 부탁해서 친구들을 찾아 나서려 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세나와 나에티아나라면 광장에서 구기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바로 광장으로 갔음을 밝혔다.
  "그러다가 이렇게 저와 나에티아나 씨를 만나서 천만 다행이라 여기고 계셨겠네요, 그렇지 않나요?"
  "그런 것이지." 이후, 세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다른 이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고, 카리나, 세니아는 문화 광장의 북쪽 길목을 따라 간 것 같다고 말하고서, 아무래도 관광 명소와 가까운 구역인 만큼, 가 볼만한 식당이라든가 가게들이 많을 것이고, 그래서 나름 근사한 식당이나 가게들을 찾아보려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에 이어, 카리나의 취향 대로라면 길목에서 소리판 가게들을 주로 돌아보고 있을 것이라 그들의 행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알려 주었다.
  "그러고 보니, 붉은 바위 산맥, 샤하리아에서도 음악을 들려주는 집이나 찻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카리나 씨께서는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소리판들을 모은 집과 소리판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집은 내가 원해서 간 곳이기는 했지만 카리나도 나름 좋아했던 곳으로 카리나는 이전에도 음악을 틀어주는 곳에 있으면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했었던 기억이 있다.
  "음악을 틀어주는 찻집에 머무르려 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나에티아나의 추측에 나는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라 화답하고서 이전에 찻집에 있었는데, 또 찻집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그 대신 큰 가게들을 중심으로 소리판들을 취급하는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창문 구매 (Feneshalakhe, Window Shopping) 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창문 구매라면....... 그냥 구경하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에요?"
  "그렇지." 창문 구매라는 말에 세나가 웃으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나 역시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카리나가 해당 소리판들을 갖고 싶은 마음 자체는 있기는 했을 것이라 말하고서 하지만 돈이 없는데 어떻게 사겠느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사실, 소리판 가게들 중에는 귀중하고 값진 소리판들을 취급하는 곳들도 있고, 그런 곳들은 입장료를 받는 대신에 실제로 소리판을 구경하고 소리판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가게는 가게 (Felygos) 가 아니라 전시장 (Layavoinyeri) 이라 칭해지며, 물품 판매는 부가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카리나가 그런 곳에 있다면 문제는 의외로 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그런데, 그렇게 소리판의 모습을 감상하고 판에 수록된 음악을 듣게 해 주는 곳이 하미시에 있던가?"
  "하미르의 문화 거리에는 있다고 들었지만, 하미시에도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이에 나에티아나는 하미시에 내가 언급한 가게 혹은 전시장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하고서 아마 카리나 등은 가게들을 잠깐 들러보다가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후, 나에티아나는 자신이 비행을 해서 그들의 처소를 찾아 보겠다고 말했지만 그 말에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말하고서 점심 시간 즈음에 다 함께 돌아다니며 찾아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다음에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세나, 배구라도 같이 할까." 이후, 나는 세나에게 같이 배구라도 하자고 청했고, 이에 세나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할까요?" 라고 화답한 다음에 1:1 로 할 것을 청했다. 이전에 그러하였듯이 배구로 1:1 로 대결을 하자는 청을 받은 것이었다. 이에 나에티아나는 자신이 심판 역할을 할 것을 청했고, 그리하여 나와 세나가 광장의 분수대 한 곳에서 배구 대결을 하게 되었다.

  세나의 손 힘이 세다고 해서 공이 바닥에 부딪쳐서 바닥이 부서지기라도 했냐고 혹자가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고 답을 하고 싶다. 또, 진즉에 공이 부서졌으면 부서졌지, 바닥이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 게다가 암만 세나의 팔 힘이 보통이 아니라고 해도 바닥을 부술 정도로 세게 공을 던지려 했겠느냐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공을 주고 받으면서 세게 날아온 공에 손이 아프기도 했고, 세차게 날아오는 공에 위험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진짜 위험했던 적은 없었다.
  그간 얼마나 단련을 했었는지, 세나는 구기에 관심이 없었던 나보다 훨씬 잘 했고, 승부는 당연하게도 세나의 승리로 끝났다, 문제는 점수 차이인데, 한창 내가 배구를 하고 있을 즈음에는 그래도 4 ~ 5 점 차 정도만 낼 따름이었는데, 하도 오래 전에 경기를 했던 탓인지 8 점 차까지 났다. 그래도 그런 점수 차를 내며 졌다는 것에 굳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내가 그간 배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는데, 천문대를 떠난 이후에도 구기 단련에 나름 관심이 많았던 세나와의 실력 차이가 그 정도에 이르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기에.
  이후에도 나는 나에티아나 그리고 그들과 같이 운동을 하던 소녀들과 함께 테네자를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도중에 루이즈와 함께 테네자를 즐기기도 하고, 배구를 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루이즈는 그가 알던 방식과 다소 다르기는 해도, 그 자신이 알던 방식과 크게 차이가 없어서인지 일행이 하던 구기 운동에 무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덧 점심 시간이 가까워졌고, 나는 점심을 먹기 전에 다시 광장 동쪽의 공방으로 다시 가기로 했다, 모든 글라이더들이 완성될 때까지 몇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이르면 점심 시간 무렵이면 다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공방으로 가 보기로 한 것으로 이에 공방에서 나와 함께 있던 루이즈를 비롯해 나에티아나 그리고 세나도 나를 따라 공방으로 같이 가려 하였다, 세나, 나에티아나는 글라이더를 탈 필요가 없는 이였지만 글라이더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기에 나 그리고 루이즈와 동행하면서 공방으로 같이 가려 한 것이었다.

  "글라이더가 완성되면 한 번 시험 운행도 해 볼 생각을 갖고 있지?"
  "그렇게 해야지요." 이에 세나가 바로 그러하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잘 작동되면 글라이더를 타고 도시를 광장 일대를 한 바퀴 둘러보고 싶다고 말했고, 이에 나는 성능 시험도 해야 하겠다, 재미있을 것 같다면 잠깐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말하고서, 이어서 글라이더가 몇 대 완성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만약 두 대 이상 완성되었다면 루이즈 역시 글라이더에 타도록 하고서 글라이더 탑승법을 가르쳐 주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글라이더 탑승을 혹시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후, 나는 혹시 글라이더 류에 탑승해 본 적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루이즈에게 물으려 했다. 이 물음에 루이즈는 실제로 타 본 적은 없다고 답했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와 세나 모두 잠깐이나마 다소 긴장을 하기도 했었으니, 처음부터 탑승법을 가르쳐야 할 텐데, 그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는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다 보니, 여러모로 난감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다, 오랫동안 글라이더 탑승을 해 봤을 알프레드 노인을 상기하면서 그에게 가르침을 전수 받도록 할 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을 정도.
  "걱정 말아요, 정말 글라이더 탑승을 못 하실 것 같아도 방법이 없지는 않잖아요."
  이에 세나가 최악의 경우에도 나름 방법이 있다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소환하는 새에 자신과 같이 타도록 하려 했었던 것 같다. 루이즈 역시 글라이더를 타야 할 필요가 있음에 대해서는 다소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고대인들 중 대다수는 하늘 높은 곳에서 직접 활동을 해 보거나 하지 않았을 텐데, 평소에는 두려움이 없더라도 막상 높은 곳에 서면 높은 곳에 대한 극한의 두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루이즈의 모습을 보면서 그와 같은 경우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대화도 주고 받으면서 광장의 동쪽 324 번 집, 카를라의 공방으로 다시 돌아갔고, 나는 그 곳에서 카를라 그리고 이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어떤 이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카를라와 비슷한 연배 즈음 되어 보이는 여성으로서 카를라의 것과 비슷한 초록색 머리카락의 한 부분을 묶어서 길게 내리고 있었으며, 초록색 반 소매 셔츠 그리고 하얀 바지를 입은 옷차림 위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 역시 공구를 들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카를라의 동료인 안드레아임을 알 수 있었다.
  공방에 와 보니, 이미 4 대의 글라이더들이 만들어진 상태였으며, 작업하다가 쉬고 있던 카를라가 일행을 맞이하면서 글라이더들 중 4 대가 완성됐으며, 남은 2 대 역시 금방 완성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행이 전투를 수행하는 이들임을 알아봤는지, 글라이더의 날개 양 옆에 포신이 하나씩 장착된 형태의 글라이더들, 그 글라이더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카를라는 한 번 테스트를 해 볼 것을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권했다.
  "제가 한 번 해 볼 게요." 그러자 세나가 바로 자신이 나서서 글라이더 시운전을 해 보겠음을 밝혔고, 이후, 마법력에 의해 글라이더가 살짝 떠오르자 날개 아래에 장착된 탑승구에 몸을 눕혀 타고서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이후, 그는 왼쪽과 오른쪽 날개의 앞 부분, 그 아래에 자리잡은 조종 장치를 이용해 비행을 개시,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점차 가속해서 거리의 북쪽 방향을 향해 세나가 탔던 글라이더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한 번 비행을 해 볼까.' 생각보다 잘 날아가는 글라이더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 번 글라이더를 타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완성된 글라이더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전의 세나와 같은 방식으로 글라이더에 탑승을 하고서 조종 장치를 조작해서 세나와 같은 방향으로 비행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글라이더를 몰고 아예 광장의 주변을 맴돌려 하고 있었던 세나와 달리 나는 가게 주변을 글라이더를 몰고 돌아다니는 정도에 그치려 하면서 글라이더를 움직이려 하였다.
  다소 급조된 것 같아 보이는 글라이더였지만-아무래도 빨리 만들었을 테니-, 생각보다 구동이 훨씬 잘 가동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경비대원들을 위한 글라이더들을 제조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글라이더라서 그러한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잘 작동하고 있었고, 장시간 비행도 충분히 가능할 듯해 보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비행을 해 보자는 생각에 잠시 도시의 동부 구역과 북부 구역을 한 번씩 들러보기로 하였다.
  중앙 광장의 동쪽에는 이전에도 들은 바 있는 문화 광장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주변 일대에는 식당, 찻집이라든가 옷 가게, 소리판 가게를 비롯한 여러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안쪽에는 찻집이나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거기까지는 아직은 들르지 않기로 했다. 문화 광장의 북쪽 길 역시 큰 길이 펼쳐져 있었으며, 여러 가게들이 자리잡은 길목은 중앙 광장의 북쪽 길목 못지 않게 번화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문화 광장을 지나치고서 곧바로 그 너머의 먼 저편에 자리잡고 있었던 동부 경계 지대로 나아갔다. 문화 광장 너머의 주택 지대에 이르러서는 거리의 분위기가 차분해지고 있었으며, 그간 고대 도시에 자리잡은 케레브 족 그리고 고대 병기로 인해 시끄러웠던 북부 경계 지대와 달리 동부 경계 지대는 적의 침입 위협이 적은 곳이어서 그러하였는지, 배치된 사람들의 수도 북부 경계에 비하면 적었고, 분위기도 평온했다, 비교적 활발한 분위기의 광장 주변, 북부 지대에 비하면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하기는 했었지만.
  동부 구역을 들른 이후에는 문화 광장으로 돌아갔다가 곧바로 문화 광장의 북쪽 길목을 따라 비행을 이어가려 하였다. 북쪽 길목을 따라 북쪽 경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면서 시선이 지상을 향하도록 하고서, 길 주변에 자리잡은 가게들 그리고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려 하는 그 순간,
  "어? 카리나하고 세니아잖아."
  길의 왼편 한 구석에 카리나, 세니아가 함께 모여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들은 가게의 입구 바로 앞에서 무언가에 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있다가 내가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인 남쪽 방향인 문화 광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대체 무엇에 관해 그렇게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거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었지만 금방 돌아와서 그들을 만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북쪽 경계 방향으로 비행을 이어갔다. 그렇게 글라이더로 비행을 하는 동안 길목 위에서 한 번씩 사람들이 내가 타고 있던 글라이더를 올려다 보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려 하지는 않았다.
  한 동안 고대 도시와 케레브 족 그리고 고대 병기로 시끄러웠던 북쪽 경계 지대 일대는 이제 동쪽 경계 지대 못지 않게 조용해져 있었다. 아마도 한 동안은 별 다른 일 없이 조용한 시간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고대 도시로 가는 관광객들로 길 일대가 붐비고 있었다고 하는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그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잠시 북쪽 경계 지대를 둘러보고 난 이후,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문화 광장 쪽으로 글라이더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문화 광장의 한 가운데 즈음으로 나아갈 무렵, 문화 광장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석상의 바로 앞에서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다시 보였다. 세니아는 석상의 받침대에 기대어 서 있었으며, 카리나가 그의 오른편 옆에 서 있으면서 그런 그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얼핏 들은 대화 내용이 있었는데, 일행이 같이 갈 식당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아무래도 그들이 식당들을 둘러보면서 일행이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나선 것으로 보였다. 세니아가 그간 모아둔 돈으로 특정 식당에서 6 명의 일행이 이용할 수는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들려와서 앞으로 점심이든 저녁이든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음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일단 중앙 광장 동쪽으로 돌아가 글라이더를 내려놓기로 하고 그 광장 동쪽에 자리잡은 카를라, 안드레아의 공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공방 건물의 바로 앞에 글라이더를 내려놓고 카를라에게 돌아갔다. 그 동안 이미 카를라와 안드레아는 남은 글라이더들 역시 거의 완성해가고 있었으니, 5 대의 글라이더는 이미 완성되었고, 남은 한 대 역시 거의 완성되고 있어서 조만간 끝날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세나는 아직도 비행을 하고 있었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비행이 꽤 재미있나 보네, 글라이더도 잘 작동하고 있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게된 바에 의하면 이미 몇 차례 공방을 오갔다고 한다, 완성될 때마다 글라이더 성능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고. 이후, 나는 세나에 대해 알렸던 루이즈 그리고 나에티아나와 함께 세나를 기다리기로 하고 공방 부근에 계속 머무르려 하였다. 세나는 이후,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탔던 글라이더와 함께 돌아오고 있었다.

  "세나, 그 동안 어디에 가 있었어?"
  세나가 글라이더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내가 그를 맞이하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는 글라이더를 들고 착지하면서 도시 전역을 돌고 있다가 나중에는 북쪽 경계 너머의 고대 도시 유적지로까지 잠깐이나마 날아갔다고 답했다. 그리고 북쪽 성문 부근에 식당들이 많이 있고, 가 볼만한 곳들도 많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식당은 카리나하고 세니아가 알아보고 있었어. 그들이 우리에게 오면 그 곳이 어디인지 알려줄 거야."
  이후, 세나가 글라이더에서 내리고 카를라의 곁으로 오면서 북쪽 성문 인근에서 여러 식당들을 발견했다고 말하자, 내가 세니아, 카리나가 이미 괜찮은 식당을 알아본 것 같다고 화답하고서 그 곳에서 괜찮은 식사를 하면 될 것이라 말했다. 이후, 그러자 루이즈가 나에게 어떤 식당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느냐고 묻자, 나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 때 왼팔의 팔찌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팔찌의 빛을 보자마자 나는 이번에도 소르나가 통신을 시작한 것 같다고 여기면서 '소르나가 통신을 할 때는 아닐 텐데?' 라고 생각할 즈음, 팔찌에서부터 소르나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르사나, 지금 어디에 있어? 카를라 씨의 공방이야?"
  카리나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카리나는 알겠다고 말하고서 바로 그 쪽으로 가겠다고 말한 이후에 나에티아나도 데리고 오겠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 때, 세니아로부터 나에티아나 역시 여기저기 비행하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찾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통신이 끝났다.
  "방금 전에 누구였나요?" 이후, 세나가 내 곁으로 오자마자 누가 연락을 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에 나는 카리나가 연락을 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세니아, 나에티아나와 함께 공방이 있는 쪽으로 오겠다고 했었지만 나에티아나는 당시에 날개를 펼치고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어서 금방 찾기 힘들다는 말이 들려와서 공방으로 남은 이들이 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시간이 더욱 지나면서 카를라의 마지막 글라이더 역시 완성되었다. 제작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기에 성능에 대한 의심을 하기는 했었지만 세나가 글라이더들을 타고 다니면서 성능 테스트를 충분히 했고, 테스트에서 아무 이상이 없음을 거듭 확인했기에 카를라 그리고 안드레아의 실력을 믿기로 했다.
  "다 됐습니다, 이제 이 글라이더를 여러분께서 운용하시면 될 거예요."

  다만, 이름을 새기는 것은 본인들의 몫임을 밝히기는 했다, 아무래도 나를 비롯한 일행의 이름까지는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부터 글라이더 하나를 정해서 우측 날개 쪽에 내 이름을 마법을 이용해 검은 물을 불러와서 적었고, 세나는 동체에 빛을 발하는 칼날로 이름을 새겼다. 그 무렵, 세니아 그리고 카리나가 나에티아나까지 데리고 공방으로 데리고 오고 있었다. 이후, 세니아는 글라이더들을 향해 다가가서 나에게 "다 만들어진 거야?" 라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서 성능 테스트는 나와 세나가 이미 다 해 놓았다고 말한 이후에 이제 이름을 새기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큰 물건들을 항상 들고 다닐 수는 없잖아, 어떻게 하지?"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이후, 세나가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화답을 했고, 이후에 세나가 카를라 그리고 안드레아를 만나서 뭔가를 부탁하려 하였다. 이후, 카를라는 세나에게 각 글라이더의 주인이 정해지면 글라이더들에 대응되는 두루마리를 하나씩 주겠음을 밝혔다. 그 무렵, 세니아 그리고 카리나 역시 각 글라이더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으니, 세니아는 동체 왼편에 붉은 빛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카리나 역시 같은 방식을 활용하되 하얀 빛으로 이름을 새겼다. 마지막 2 대들 중 하나는 레테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르나의 것으로 정했는데, 그 이름은 내가 새겼다.
- 루이즈는 레테사의 것을 타기로 했다.
  글라이더에 이름이 모두 새겨진 이후, 세나는 두루마리 여섯 장을 받았고, 이후에 카리나에게 두루마리들을 맡긴 이후에 두루마리를 하나씩 들고 글라이더를 두루마리에 봉하는 마법을 활용해서 두루마리들을 봉인해 갔다. 두루마리들에 글라이더들이 모두 봉인되었을 무렵, 세니아가 자신이 매고 있던 짐에 두루마리들을 모두 넣어두겠다고 하였으며, 이후에 곧바로 자신의 짐을 바닥에 잠시 내려놓고서 카리나가 맡고 있던 두루마리들을 하나씩 자신의 배낭 안에 넣어 두었다.

  "여러분들께 이런 글라이더들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씀이 들려왔고, 그 요청에 의해 글라이더들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이런 글라이더들이 어떻게 쓰이게 될 것인지를 알고 싶네요."
  이후, 카를라가 일행에게 다가가서 글라이더들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건네자 내가 바로 답했다, 앞으로 글라이더들을 이용해 공중에서 싸움을 하게 될 텐데, 그 때에 자체적으로 글라이더들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이후, 나에티아나가 나의 대답에 부연되는 설명으로서 당장에는 공중전 같은 것은 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공중에서 싸우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고, 그 때를 위해 글라이더들을 준비해 두는 것이었음을 밝혔다.
  "아르사나 님, 그 은화를 보여 드리세요."
  그 후, 나에티아나는 나의 오른쪽 옆에서 나에게 내가 품고 있던 은화를 보여달라 청했고, 그리하여 나는 치마의 오른 주머니 안에 넣어두고 있던 작은 상자가 품은 은화를 꺼내서는 왼손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카를라에게 8 개의 문양이 새겨진 작은 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8 개 중에서 4 개의 문양은 나무, 탑의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던 은화, 그 은화를 보자마자 카를라는 그 은화를 바로 알아보면서 말했다.
  "이 은화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알프레드 할아버지께서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이후, 카를라는 공방 입구에서 일행과 카를라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안드레아를 향해 돌아서서 알프레드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카를라는 안드레아에게 그 노인이 '전설의 은화' 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으며, 그 물음에 안드레아는 그랬었다고 말하고서 당시에 알프레드 노인이 모조품을 보여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모양은 거의 똑같이 재현해 낸 물건이었지만 빛을 받거나 할 수는 없는 물건이었다고 했으며, 당시에 노인은 은화는 은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제 제품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음을 밝혔다.
  "아마 여러분들께서 이후에 갈 곳이 있을 테니, 간단하게만 말씀 드릴게요."
  이후, 카를라는 내가 알고 있는 바대로, 하나야스 (Khanayas) 에 있는 빛의 탑은 '빛의 등대' 로 칭해지며, 고대 유적 근처의 산길, 그 끝에 있다고 하였다. 북쪽 성문 너머의 길은 고대 유적을 향하는 길이 있고, 빛의 등대를 향하는 산길이 있는데, 그 중에서 빛의 등대를 향하는 길을 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고대 유적에 케레브 족 세력이 모습을 드러내어 폐쇄되었었는데, 이제 해당 세력이 일소되면서 다시 갈 수 있게 되었을 거예요, 의향이 생기면 바로 가시면 될 거예요."
  이후, 안드레아가 이제는 마음껏 산길을 오를 수 있을 테니, 원하는 시간 대에 가도 될 것이라고 말하고서 이어서 가능한 아침에 가도록 할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아침에 걸어가기 시작하면 오전 시간이 끝날 즈음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때에 산길 아래에서 구름과 함께 보이는 고대 유적의 모습이 볼 만하다고 해당 시간 대에 가면 좋은 이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좋은 이야기 같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카리나가 활짝 웃으면서 알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글라이더에 더 추가할 무장이 있거나 하지는 않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와 카리나, 세니아 등이 당장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말했고, 더 나아가 세니아가 모자란 화력은 마법으로 보충하면 되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행이네요." 그러자 카를라 그리고 어느새 그의 왼쪽 곁에 이른 안드레아가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후, 안드레아가 시간이 되면 자신의 공방을 찾아줄 것을 부탁하고서 그럴 듯한 좋은 물건을 만들어 주겠음을 일행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렇고, 6 개의 두루마리는 어떻게 관리하실 거예요?"
  이후, 카를라가 수많은 두루마리들을 관리하게 될 일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일행에게 묻자, 카리나가 작은 가방을 사 두겠다고 정한 상태이며, 시장 어디든 가방을 살 수 있는 곳이 있지 않겠느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공방을 나서자마자 일행은 곧바로 문화 광장으로 가서 곧바로 북쪽 길목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찾았다는 북쪽 성문 인근의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덧붙여서 세니아는 그 부근에 좋은 숙박할 곳도 마련해 두었다고 밝히자 내가 물었다.
  "이전의 거처는 어떻게 된 거야?"
  "원래는 하루 머물 곳이라서 새벽 예배를 보기 위해 나가면서 정리했어, 그러다가 새로 일행이 머물 곳을 식당을 찾자마자 겸사겸사해서 찾아간 것이지."
  그리고 그 물음에 세니아가 바로 답했다, 일행이 다음 날 아침에 빛의 등대를 찾으러 갈 것인 만큼, 산길과 가까운 북쪽 경계 부근에 있는 숙박할 곳들 중 하나를 찾아서 그 곳을 일행이 머무를 곳으로 정했다고.
  세니아가 거처의 주인에게 빛의 등대를 찾아가려 하고 있으니, 그 근처라 할 수 있는 북쪽 경계 지역 일대에서 가장 좋은 숙박처를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었고, 그 부탁에 주인으로부터 나름 좋은 곳을 추천 받았음을 밝혔다. 해당 거처의 숙박비는 카리나까지 끌어들여가며 저렴하게 내려 했다고. 편한 곳은 아니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북쪽 경계 너머 산길로 나아가기에는 좋은 곳일 테니, 기대하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조용히 쓴 웃음을 지었다. 어떤 처소를 마련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으니, 한 사람 지내기 좋은 방에 어차피 하룻밤 지내고 갈 곳인데,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6 명이서 지내도록 하라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니아도 돈을 아껴야 하는 처지였던지라 그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어 보였지만 숙박할 곳을 정하는 이는 세니아가 아닌 카리나였고, 또 이런 일이 한 번 두 번이 아니어야지.
  '찻집 같은 데에서 가능한 편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겠네.'
  카리나, 세니아의 늘 그러하듯 행하는 사람 우겨넣기식 숙박 처소 정하기에 기가 참을 느끼며 찻집에 있을 때 편함을 가능한 만끽해야 하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 때 마침, 카리나가 나의 왼편 옆으로 다가가서는 이렇게 나에게 물음을 건네려 했다.
  "찻집에도 가려고 하는데, 거기서 뭐할 거야?"
  "잘 거야!" 이에 나는 바로 자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카리나는 방에서 자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너무 기가 차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때, 세니아가 나에게 조용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에 카리나가 '듣고 있으면 어쩔 거야!?' 라고 귓속말하는 듯이 세니아에게 말했지만, 그런 말 할 것도 없이 다 듣고 있었다.
  "너희들 너무한다, 진짜." 그러면서 말했다.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일행은 북쪽의 식당가에 이르고 있었다. 도시의 북부 지역은 원체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보니,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찻집이나 식당 그리고 여인숙들이 많이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특유의 분주한 분위기가 중앙 광장이나 문화 광장 일대보다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싸움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산길이 다시 개방되었다는 소식이 금방 전해졌는지 어느새 북쪽 길목을 따라 산길로 가려 하는 듯한 이들이 거리에 다수 보이고 있었다.
  "네가 찾던 식당은 어디에 있어?"   "저기야." 이후, 내가 카리나에게 묻자, 카리나는 길의 왼편 한 곳을 가리켰다. 하얀색을 띠는 어떤 건물-64 라 쓰여진 간판이 현관문 왼편 옆에 붙어 있었다-의 2 층으로 내부를 바라보니, 시나 풍 (Shinasra) 의 요리들을 취급하는 식당인 듯해 보였다.
  "아르사나도 그렇고, 이런 요리를 먹어본 지는 오래 됐지?"
  "한참 됐지."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카리나가 이런 요리를 자주 먹어봤냐면 그렇지는 않았고, 그 역시 오랜만에 이런 식당을 발견했고, 그래서 반가움에 식당을 찾아가 보니, 식당에 있는 요리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것들이라 문제 없을 것 같아서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화풍 요리들 중에는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것들도 적지 않아서 일행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오가고는 했었는데, 모두가 마음에 들 만한 것들만 있다면 식당에서 취급하는 요리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알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어떤 요리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식당에서 일행이 주문한 것들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

  루이즈는 처음에는 튀김 요리를 원했지만, 저녁 식사를 못할 수도 있다는 세니아의 말에 그나마 식사가 된다고 해서 볶음 두부를 대신 주문했으며, 원래 세니아는 꽃빵 6 개를 후식으로 마련할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고기 류는 잘 취급하지 않는 것 같아, 그렇지?"
  "고기를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어야지." 식사를 하면서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가 즉답했다. 하기사, 고기를 구하려면 사냥을 하든, 기르든 해야 하는데, 어느 쪽이든 산악 지역에서는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닭이 아니고서야 고기를 거의 구하지 못했을 것임은 틀림 없었다.
  "이번 식사 후에 돈 얼마 남아?"
  이후에 내가 세니아에게 묻자, 세니아는 "3 일 정도 밖에서 지낼 정도는 남아." 라고 답했고, 이어서 저녁에는 잘 먹지 못할 수도 있으니, '지금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먹으라고 차분히 목소리를 내면서 말을 건네었다.   "아르사나 씨, 혹시 여기에 고추 소스 같은 것은 없나요?"
  "고추 소스요? 이런 식당에서는 없을 거예요, 아마." 볶음 두부를 먹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루이즈는 고추 소스가 식당에 있는지 여부를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가 나를 대신해서 중화풍 식당에서는 그런 요리를 대체로 잘 취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추 소스를 취급하는 곳이 있지 않아?"
  "이 지역의 전통 식당에서는 있어. 그 초록색 소스 있지? 그거야."
  하나야스에는 두 가지 대표적인 소스가 존재하고 있다. '붉은 맛 소스' 와 '녹색 맛 소스'. 이 중에서 '붉은 맛 소스' 는 토마토의 시큼한 특유의 맛이 강한 소스로서 기름진 음식에 어울리며, '녹색 맛 소스' 는 초록색 고추가 많이 들어간 아주 매콤한 소스라서 강한 맛을 추구하는 이들이 원하는 소스라고 알고 있다. 어쩌다가 초록색 소스를 그냥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상당히 매운 맛에 혼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 세니아 등에게 놀림을 당했었다.
  이런 두 가지 소스는 하나야스의 전통 방식 식당에서는 흔하지만 해당 식당은 시나 풍의 식당이고 이런 식당에서는 그런 소스들은 취급하지 않으며, 일행이 있던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루이즈도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고추 소스가 없다는 대답에 굳이 다시 요청을 하려 하지는 않았다.
  "루이즈 씨께서는 매운 맛을 좋아하시는가 봐요."
  이후, 세나가 루이즈에게 매운 맛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묻자, 루이즈는 조심스럽게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세나가 환하게 웃으며, 놀랐다고 말하고서 루이즈 같은 사람이면 차분한 맛의 음식을 좋아할 줄 알았다고 그에 대해 이어 말하기도 했다.
  "딱히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러자 루이즈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을 했다. 그러자 세니아가 세나에게 루이즈는 원래는 당시 일행에게 보였던 것 같은 공손하고 소심한 성격은 아니었을 것이라 말하고서 잔느 공주가 오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잔느 공주님, 어디서 뭐하시려나."
  "아직도 조사를 받고 계실지도." 잔느 공주가 언급되고 나니, 하루 정도의 만남 이후에 헤어진 잔느 공주가 문득 생각났고, 그러면서 잔느 공주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마나티엘 교수가 그를 보호하고 있다가 하미시 혹은 하미르에라도 오기를 새삼스레 바라기도 했었다. 루이즈 역시 잔느 공주와 다시 만나는 것을 계속 바라고 있기는 했겠지만 당장의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잔느 공주님께서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셨나요?"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에는 잘 먹었었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인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후, 내가 잔느 공주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 그 역시 매운 음식을 좋아했었느냐는 질문으로 그 질문에 루이즈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잘 먹었었다고 답했다. 그가 진정 매운 음식을 좋아했는지 여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에는 일단 잘 먹어서 딱히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고 여기고 있었던 모양.



  식사를 적당히 마치고 난 이후, 앞장서 나아가기 시작한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북쪽 길목을 따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서는 길목의 오른편 한 곳에 자리잡고 있던 찻집을 향해 나아갔다, 카리나가 식당에 이어 가겠다고 했던 찻집으로 나는 카리나, 세나와 함께 찻집에 가겠다고 했으며, 루이즈 역시 나를 따라 찻집으로 갔다. 세니아와 나에티아나는 일행이 거주할 처소, 북쪽 경계 근방의 128 번 건물을 찾아 나서면서 일행과 헤어졌다.

  샤하리아(Shaharia) 에서 본 것 같은 고풍스러운 찻집으로 찻집의 입구, 그 왼편에 자리잡은 계산대 안쪽, 그 한 곳에 소리판을 재생하는 재생기가 있어서 찻집의 주인이 소리판을 한 번씩 번갈아 교체하며 재생하고 있었기에 찻집 내부에서는 언제나 음악 소리가 공간 가득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계산대 안쪽에는 타자기도 있었는데, 찻집 주인이 자주 이용하거나 하지는 않는 듯해 보였다.
  일행은 비치된 탁상들 중에서 계산대 건너편에 자리잡은 것으로 갔다. 벽과 마주한 탁상의 벽 쪽 근방에는 소파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소파에는 세나와 루이즈가, 그리고 건너편의 의자에는 나와 그카리나가 앉았다. 나와 카리나는 우유 카페를 주문했으며, 세나, 루이즈는 순수한 카페를 주문했다. 그리고 카페를 주문하자마자 찻집 주인은 소리판을 갈아끼워서 새로운 음악이 공간 내부에 울려 퍼지도록 하였다.
  일행이 앉은 그 주변의 탁자들 중 몇에는 혼자 혹은 2, 3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카페 혹은 차를 마시고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게임판을 올려놓고 게임을 즐기고 있기도. 그래서 게임판을 갖고 게임을 즐겨도 되는 것 같아서 찻집 주인에게 게임판을 갖고 게임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찻집 주인은 이에 좋다고 화답을 했고, 게임판은 계산대 앞쪽의 서랍에 있음을 밝히고서 가져가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카페를 마시면서 탁상 위에 게임판을 올려놓고 게임을 잠시 즐겨 보았다. 당시에 나 그리고 카리나가 했던 게임은 모노폴리아(Monopolia) 라는 게임으로 세계 명소들을 돌아다니며 명소들을 가능한 모두 차지하고 상대방을 파산시키는 그런 게임이었다. 원래 이 게임은 아이들은 하면 안 되는 게임이지만 나도 그렇고, 카리나도 그렇고 이런 류의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알 것 다 아는 사람들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주사위로 운을 시험하고, 투자와 거래, 매각으로 지능을 시험하는 이런 게임에서 이긴 사람은 의외로 세나였다. 나와 카리나는 카리나와 나의 순서대로 당했는데, 카리나는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을 당해 웃음 거리가 되기도 했다. 다만, 나와 세나의 승부는 어느 쪽도 파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팽팽한 접전이 이루어졌다가 내가 한 번 세나의 영지를 밟아 큰 돈을 내게 되면서 거기서 승부를 냈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한 쪽이 상대방의 영지를 밟고 큰 돈을 낼 때까지 게임이 지속된 것.
  "세나가 이런 애인 줄 처음에는 몰랐겠지?"
  "그랬지, 은근 무서운 애라니까. 다음에는 체커 판 가져와 볼게, 너하고 세나하고 붙여 볼 거야."
  모노폴리아에서 승부가 난 이후, 나는 게임판을 정리해서 찻집의 계산대 앞으로 다시 가져가려 하면서 말했다. 이후, 나는 내가 이전에 말한 바대로 할마(Halma) 체커 판을 가져왔으며, 그 이후에 체커 판을 준비해서 카리나 그리고 세나가 서로 게임을 통해 맞서도록 했다.
  내가 가져온 것은 체스판과 원반들을 이용해서 하는 체커 게임이 아니라 육망성 모양의 게임판을 가지는 할마 체커 판으로 육망성의 한 영역에서 건너편으로 모든 말들을 보내는 게임으로 말은 어떤 말이든 뛰어넘을 수 있고-대신, 상대방 말을 잡거나 하지는 못한다-, 연속으로 뛰어넘을 수도 있어서 이를 잘 이용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게임판의 말은 8 종류로 색깔에 따라 빨간색(Farin), 파란색(Para), 노란색(Lora), 초록색(Suvy), 하늘색(Banal), 자주색(Pora) 그리고 흰색(=aya) 과 검은색(Gamz) 이 10 개씩 있었다.
  게임판을 준비하자마자 세나와 카리나가 각자의 취향에 맞는 말을 가져가려 했다. 세나는 파란색 그리고 카리나는 하늘색을 골랐다. - 원래는 카리나가 파란색 말을 고르려 했지만, 세나가 파란색 말을 선택하자 카리나가 양보해 주었다. 육망성의 한 부분에 세나가 파란 말들을 올려놓고, 그 옆의 부분에 카리나가 하늘색 말들을 올려 놓았는데, 이들 모두 자신과 가까운 쪽이 아니라 먼 쪽에서 가까운 쪽으로 말들을 이동시키려 했었다.
  "이렇게 해야 말 이동시키는 것이 편하거든." 카리나, 세나 모두 멀리서 가까운 쪽으로 말들을 움직이는 것을 편하게 여기었다. 그래서 할마 체커를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시작했는데, 카리나도 그러하였지만 세나 역시 게임판에서 게임을 즐길 때만큼은 아주 침착하게 말들을 움직여 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담하게 움직이는 편인 카리나와 달리 세나는 처음에는 차분히 했다가 기회가 되면 휘몰아치는 유형으로 말들을 움직여 갔는데, 그게 늘 카리나에게는 잘 먹혔고, 이번에도 카리나는 세나에게 크게 패했다.
  "너는 어떻게 세나와 게임으로 대결하면 늘 지냐?"
  그 광경을 보면서 나도 핀잔을 주는 듯이 카리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런 일이 몇 번 정도만 있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어떻게 대결을 하든 늘 당하는 것은 카리나였고, 성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서 카리나를 자연스레 한심하게 바라보게 되기도 했고, 이번에도 그러하였다.



  창가에서 노래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그 노래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다른 게임들로 대결하겠다는 카리나와 세나를 놓아두고 밖으로 나가 보았으며, 루이즈 역시 그런 나를 따라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밖으로 나가 보니, 찻집 건너편의 한 곳에 3 명의 가수들이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으며, 그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미시 일대에서는 나름 인기 있는 가수들이었던 모양으로 그 신나는 분위기를 타기 위해 그 관객들 틈 사이에 머무르려 했다.
  솜브레로(Sombrero) 모자를 쓰고 하얀 전통 의상을 입은 세 명의 소녀들이 각자의 악기-케나(Quena, Kena) 라는 이름의 피리와 차랑고(Charango, Caranggo) 라는 이름의 현악기, 그리고 삼포니아 (Zamponia, Thamponia 혹은 Sikuri) 라는 이름의 팬플룻-를 들고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노래는 차랑고를 연주하는 이만 하고 있었다- 이들의 평화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길을 지나가고 있었을 이들은 미소를 띠면서 차분히 지켜보고 있었다.
  "루이즈 씨, 이런 거리 공연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다니면서 구경해 본 기억이 있어요."
  그러자 루이즈로부터 바로 답이 나왔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들을 따라 거리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고. 루이즈는 당시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가수들의 노래를 부모들이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 당시의 로망스러웠던 분위기에 심취했던 아직 젊었던 부모들의 환하게 미소짓는 표정을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추억의 장소로는 이제 다시 갈 수 없겠지만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는 곳이라면 어렸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며 아련한 기분을 느낀다는 모양.
  "이후로는 그 공연을 직접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루이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물음을 건네었고, 그 물음에 루이즈는 조용히 없었다고 답했다. 중학교 (Yuniornofskola) 시절부터는 공부에 열중해야 했고, 고등학교 (Nofskola) 시절에는 아예 푸투로 (Futuro) 계획에 참가해 바깥 세상에서 나가지를 못했으니, 이런 거리 공연을 보거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학생 (Araskola) 이 되면 이런 거리 공연을 한 번 정도는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하는 루이즈의 목소리에서 씁쓸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살아온 시간은 그렇게 길거나 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 혹은 회한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모습을 고개를 돌리며 지켜보면서 나도 같이 씁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잔느 공주를 만나게 되면 그와 함께 같이 다니면서 이런 거리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세요."
  그러면서 나는 루이즈에게 잔느 공주를 만나게 되면 그와 함께 다니면서 함께 거리 공연을 비롯해 문화 회관이나 극장에서 하는 연주회, 연극 등도 보러 다니라고 말했고, 이에 루이즈는 옛 추억의 장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 곳으로 가 보고 싶다고 말하고서 잔느 공주를 비롯한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해 보겠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 곳에도 콘서트 홀 (Concert Hall, Konzertnyeri) 이나 오페라 하우스 (Opera House, Operatheatre) 같은 곳이 있나 보네요."
  "그렇지요." '콘서트 홀'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 그 말이 무엇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서 내 고향 부근에 있는 샤하르 (Shahar) 의 문화 회관 등이 그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서 이 곳에서는 '콘제릇녜리' 혹은 '오페라세아트레' 이라 칭하며, 간혹 '콘체르테요 (Koncertejo)', '오페레요 (Operejo)' 라 칭하거나 아니면 살라 콘체르티 (Sala Concerti), 테아트로 델로페라 (Teatro dell'Opera) 등으로 칭하니, 해당 명칭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냥, '콘제릇녜리', '오페라세아트레' 라고 말씀하시면 이 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 들어요."
  이후, 나는 두 개의 단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말하고서 다른 일행이 찻집을 나서고 나면 같이 서점으로 가자고 청하기도 했다. 난데 없이 서점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루이즈는 왜 그러느냐고 의문을 품을 법 했건만, 그런 나에게 달리 말을 건네거나 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에 내 옆에 있는 이가 카리나, 아니 심지어 세나였다고 하더라도 분명 뜬금 없이 서점으로 가자고 말하면 '왜?' 라고 의문을 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런 그의 면모가 나에게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시지 않으시네요."
  그 감정을 드러내며 그에게 물음을 건네자, 루이즈는 곧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답했다,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된지도 이미 오래되었다고 말하니, 내가 다시 놀라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그것이 마땅치 않아도 무조건 따르셨다는 거예요?"
  이후, 내가 다시 묻자, 루이즈는 그렇다고 다시 답하고서, 푸투로 계획 하에서의 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푸투로 계획 하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지도자들의 지시를 받으면서 상부의 지시에 의문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지시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상부의 지시에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반항하면 계획에서 쫓겨나게 되어 있었어요. 살기 위해서는 계획에 참가해야 했었기에 상부의 지시에 의문 하나 드러내지 않고 복종해야 했었지요."

  수많은 사람들을 통제 하에 두려면 그러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생각을 갖게 마련이고, 그 생각들을 거침 없이 드러내면 아무래도 조직적인 행동에는 문제가 따를 테니, 생각이나 감정의 통제는 어느 정도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시와 통제를 하는 이들이 늘 완벽하지는 않고, 그것이 때로는 달갑지 않음을 넘어 누군가에는 마땅치 않을 수도 있고, 지시자, 통제자들이 몰랐던 오류가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발견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항들을 반영할 수 있으면 반영해서 차후의 작업을 조정하는 것이 지시자, 통제자가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푸투로 계획을 주도하고, 계획에서 참가자들을 통제 및 감독했던 이들은 계획에 참여한 이들이 어리고 나약한 학생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이나 이의 사항들을 무작정 묵살하고 복종을 강요했다. 아니, 푸투로 계획의 실행을 주도한 이부터 이미 성품이 비틀어진 사람이라 계획에 참여한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대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법하기도 했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물론 그렇게 학생들을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어 놓고 나서는 관 속에 잠들게 하고, 일부러 장치를 고장내 대부분의 학생들을 얼어 죽을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겠지만.

  "그랬었군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아마 잔느 공주 역시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는 늘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기, 그리고 무언가를 시킬 때, 그 이유를 물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배웠었는데...... 의문도 이의도 없이 그저 복종만이 강요된, 마치 기계 인형과도 같은 삶을 살아갔을 루이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착잡함을 달래기 위해 잠시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 채로 가만히 흥겨운 공연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한 동안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하던 그 때, 입구 쪽에서 낯설지 않은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하시는데, 대체 몇 년을 일부러 져 주시는 거예요?"
  "아니, 그 때에는 일부러 져 줬다니까!"
  찻집에서 나오는 세나 그리고 카리나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카리나가 게임에서 계속 지면서 일부러 져 줬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었던 모양. 이후, 카리나 그리고 세나는 그렇게 찻집에서 나와서는 건너편을 바라보더니,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이라도 들었는지, 곧바로 그 무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다가 먼저 그 대열 속에 있던 나 그리고 루이즈의 곁에 이르렀다.
  "찻집 건너편에서 이런 공연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내 곁에 이르자마자 카리나가 나에게 말을 건네고서 그 동안 이런저런 게임으로 대결을 하느라고 몰랐다고 답했다. 이에 나는 카리나를 보면서 몇 번이나 졌냐고 물어봤지만 카리나는 선뜻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승패가 어떻게 됐는지 바로 짐작해낼 수 있었다, 한 번도 이기지 못했을 때에는 늘 그러하였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져 줬다고 말했지?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어?"
  이후, 나는 비웃는 듯이 목소리를 내면서 몇 번이나 일부러 져 준 것이냐고 말했냐고 물었지만 카리나는 그 질문에도 즉답은 피하고 있었고, 이에 나는 곧바로 그에게 놀리는 어조로 봐 줬다는 말을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이냐 했냐고 말했다.
  "천문대에 같이 살 때부터 지금까지...... 대체 몇 년 째야."
  "봐 준 것은 맞지, 더 잘 할 수도 있었지만 세나 기분 좋게 해 주려고-."
  "그 웃기는 소리 그만 하시고." 그 때 마침, 세니아의 목소리가 그런 카리나의 변명을 막아 버렸다. 나에티아나와 함께 일행이 머무를 곳을 정하기 위해 나섰다가 때마침 카리나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들었던 모양. 그래서 세나에게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웃기는 소리 그만하라고 다그쳤고, 이어서 대체 몇 년 째 그 말을 이어가냐고 묻는듯이 이어 핀잔을 가하고, 또 더 말해 봐야 이제는 택도 없다는 말까지 하면서 카리나의 변명을 이어가는 말문을 막아 버렸다.
  "세니아 씨, 그래서 128 번 건물은 여기서 얼마나 걸어가면 찾을 수 있어요?"
  "여기서 한 20 분 정도 걸어가면 보여, 길의 왼편에 있다." 이후, 세나가 세니아에게 북쪽 길목에 자리잡은 찻집에서 얼마나 더 나아가면 되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세니아는 20 분 정도 더 걸으면 된다고 말한 다음에 조금 더 빨리 걸으면 15 분 정도 걸어도 도착할 수 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거리 공연의 현장을 벗어나 일행이 다시 함께 길을 나란히 걷기 시작할 무렵, 세니아가 나에게 이제 달리 갈 곳이 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루이즈와 함께 서점에 가려고 한다고 말하고서 서점이 어디있는지 나에티아나에게 묻자, 이후 보이는 갈림길-북부 10 번가-에서 서쪽 길목을 따라 나아가면 바로 보인다고 답했다.
  "북부 10 번가에서 서쪽으로 가면 된다는 말이지?"
  이후, 나에티아나의 그렇다는 말에 나는 바로 잘 알겠다고 말하고서 이어서 나에티아나 그리고 세니아에게 북부 10 번가를 보면 알려달라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서점으로 가기 위해 걷는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곳인 북부 10 번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전방 일대를 관측하려 하였다. 그 때, 나의 우측 옆에 이르면서 세니아가 물었다.
  "그런데, 아르사나는 뜬금 없이 왜 서점에 가겠다고 하는 거야? 살 것 있어?"
  "세니티아어 기본 단어장 (Senitiamalßï Üha Fatalexikon). 실은 옛 영어 단어장 (Laribritaenamar Üha Fatalexikon) 으로 옛 영어 단어들에 대응되는 세니티아어 단어 및 어구들을 나열해 놓은 그 목록을 통해 옛 영어 단어에 맞는 세니티아어들을 배울 수 있을 거야."
  "루이즈 씨께 선물로 드리려 사는 것이지?" 단어장을 사려 한다는 나의 말에 세니아가 바로 루이즈에게 주려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강사가 있어서 말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하겠지만 당분간은 단어장을 통해 단어들을 공부하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두 권 살 거야. 하나는 루이즈 씨께, 다른 하나는 잔느 공주님께 드리려고."
  이어서 나는 두 권을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나중에 서점에서 언어 학습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더 사 줄 예정이 있다고 말하고서 그 이유에 대해 밝혔다. 나를 비롯한 일행이 언제라도 루이즈, 잔느 공주 등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늘 도와주거나 할 수 없고, 언젠가는 그들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의사 소통을 하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책을 사 주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언제나 나를 비롯한 이들이 잔느 공주님이나 루이즈를 도와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서 나는 루이즈에게 틈나는 대로 행성계에 쓰이는 말을 배워줄 것을 당부하고서 의사 소통에서 모든 이들이 잔느 공주와 루이즈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 만큼, 그 점을 감안해 줄 것을 당부하고서 잔느 공주에게도 그 점에 대해 명시를 하고 말을 잘 배우기는 어렵더라도 기본적인 의사 소통이 가능할 수는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 때, 세나 역시 서점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고, 이어서 시집을 사고 싶다고 말하자 바로 세니아가 핀잔을 주는 듯한 어조로 그런 세나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하고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기담 소설 사려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계속 시집 사러 간다고...... 그래서 말한 바대로 시집 몇 권을 사 줬더니만, 카페 받침대로 쓰고 있더라."
  "그래도 조금은 읽어보았을 것 같은데." 이에 카리나가 세니아에게 조금은 읽어보았을 것 같다고 말하자, 세니아가 바로 반박했다, 한 번이라도 읽어 봤다면 책을 펼쳐보기 위해 한 번씩은 책을 접을 텐데, 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세니아가 말한 대로, 책을 엮을 때마다 책의 한 부분에 접히는 부분을 만드는데, 책을 넓게 펼쳐 볼 경우, 그 부분이 접히게 된다. 그 흔적이 있으면 책을 한 번 이상은 봤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흔적이 없었다고 하니, 책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니아는 카페 받침대로 쓰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나는 또 다른 것도 봤지, 파스타 받침대로도 쓰고 있더라고."
  이후, 카리나는 자신이 세나의 집을 방문하면서 본 시집들의 상태에 관해 그렇게 말하고서 세나가 음식은 참 깔끔하게 먹어서 표지 등이 더럽혀지지는 않았다고 말한 다음에 그래서 본인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책을 팔았는데, 여기에 세나는 반박 하나 하지 못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러할만 했다고 생각했으니, 괜히 반발해 봐야 망신만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서 나는 곧바로 세나에게 자신이 선물 받은 시집들이 없어진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당사자인 세나는 그저 웃으면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기는 했다고 말하고서, 이어 이렇게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
  "시 읽고 쓰기를 좋아한다고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었어요."
  "그러면 왜 거짓말을 한 거야?" 이에 내가 세나에게 묻자, 그는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시 대답을 못 하다가 간신히 대답을 했는데, '문학을 좋아하는 정숙한 아가씨'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음이 그 이유였다고. 그 이유를 듣자마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어서 카리나가 비웃는 듯이 말했다.
  "시집하고 꽃 가져다 놓는다고 여성스러운 사람이 될 리가 없잖아."
  그리고서 그의 옆에서 같이 걸으면서 그에게 미소를 띠는 모습을 보이며, 그런 것 없어도 세나는 충분히 순정적이고 정숙하며 마음씨가 올바른 사람임을 모두 잘 알고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 역시 생긋 웃으면서 "그래요." 라고 화답했다.

  그렇게 서로 간의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북부 10 번가라 칭해지는 십자로 근처에 이르렀다. 십자로 근방에 이르자마자 교차로의 한 구석에 자리잡은 '10 번가 10zey Neygil)' 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나서 나는 이제 서쪽으로 간다고 말하고서 세니아, 카리나에게 어디로 가려 하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북부 경계 지대까지 걸어 다니며, 거리 구경을 해 보려고 한다고 말하고서 좋은 구경 거리들이 많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도 책 사러 갔다가 합류할게." 이에 나는 카리나, 세니아, 나에티아나에게 책을 사고 나면 바로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서 서쪽 길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루이즈 그리고 세나가 그런 나를 따라 서쪽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후, 서쪽 길목을 지나자마자 오른편에 큰 건물이 작은 건물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건물은 서점으로 입구 간판에 '서점' 이라 쓰여 있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서점에 손바닥 크기만한 단어장이 있거나 하지 않았나요?"
  "예전에는 그랬어. 주로 '암기 대장 (Syanafyhan)' 같은 이름을 가지는 작은 단어장들이 한 번씩 보이고는 했었어. 하지만 지금에도 그런 단어장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이후, 세나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한창 때에는 라테나 어를 소재로 한 작은 단어장들이 발매되기도 했지만 라테나 어는 단어 하나만 외운다고 해서 될 것이 아니었던 관계로 금방 없어졌음을 밝히기도 했다.
  "라테나 어는 명사나 동사 하나만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5 개 혹은 6 개 격에 대응되는 표현들도 알아야 하니까, 그랬겠지요?"
  "그렇지." 이후, 세나가 더 건네는 물음에 내가 서점의 현관문 안쪽으로 먼저 들어가면서 답했다. 이후, 나에티아나가 정말로 라테나 어 단어장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하자, 내가 이렇게 답했다 : 배우는 사람이 있으니까, 단어장이 나오는 것 아니겠냐는 대답이었다.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를 비롯한 일행의 발걸음은 어느새 학습서 구역 (Vayalibrasektia) 에 이르고 있었다. 이 구역은 내가 여태껏 들려왔던 서점들과 마찬가지로 책장 별로 책의 분야가 구분되도록 되어 있었던 모양으로 각 책장마다 특정 분야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모여 있었다. 어학에 관한 책장은 어학 (Malvaya) 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학습서 구역의 뒷쪽에 있어서 입구에서 바로 접근해 갈 수는 없었다.
  학습서 구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장들은 예술 학습서 (Arte Üha Vayalibra) 에 관한 것들로 악기 연주법, 그림을 그리는 기법 등을 비롯한 예술에 관한 여러 학습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운동 및 체육 (Fisikay Exercit, FE) 에 관한 책들도 일단은 예술 학습서들의 책장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세나가 해당 책장들에 꽂힌 체육 관련 서적들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이런 체육 관련 도서들에 세나 씨께서 유난히 관심을 많이 가지신 편이셨지요, 기억나시지요?"
  "기억 나." 체육, 운동 서적들을 하나씩 펼쳐 보면서 세나가 그 곁에 있던 나에게 묻자, 내가 바로 기억난다고 답했다. 확실히 세니아는 도서관에서 체육 관련 서적들을 유난히 자주 빌려본 편이었으며, 그 중 일부는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했었고, 본인도 해당 서적을 통해 체력 단련법을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세니아가 유난히 체육, 운동 서적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이유가 있었으니,
  "체조복이나 수영복에 관심이 많아서였었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도 조용히 피식 웃었다. 실제로 세니아는 체조복이나 수영복에 늘 관심이 많았고, 책에서 본 것들 중 일부는 실제로 자신이 구매해서 입어보기도 했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체조복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몸이 가늘고 늘씬해서인지 그가 마음에 들어했던 어떤 옷이든 매끈하게 잘 어울리고는 했고, 그래서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름답다고 한 번씩 칭찬의 말을 건네주고는 했다. 더 나아가 세니아는 나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자신이 입어봤던 옷들을 주로 나와 세니아에게 한 번씩 입어볼 것을 권해 보기도 했었지만 이러한 권유를 들어주는 경우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거의 없었다.
  "세나는 그런 옷을 입어보는 것을 유난히 부끄러워하는 편이었어, 그랬었지?"
  "그랬어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세나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작 세나는 그런 옷을 입어 보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는데, 그의 체격에 맞는 의상들이 세나의 체격-특히 흉부-에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옷들 중에 제가 입을만한 것도 있을까요?"
  이후, 나를 따르고 있던 루이즈가 나에게 물음을 건네자, 아마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어학 구역은 학습서 구역의 뒤쪽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다양한 학습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라테나 어 학습서를 비롯한 로만체 (Romance) 어 학습서들이 많았고, 엘베, 드벨파 어 학습서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찾은 것은 옛 브리태나 (Laribritaena) 어 학습에 관한 책들로 내가 샀던 책은 손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휴대용 단어장 2 권으로 루이즈, 잔느 공주에게 줄 것이었다. 우선은 기본적인 단어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책들을 루이즈, 잔느 공주에게 마련해 주려 한 것으로 기초 회화 서적은 이후에 구매하기로 했으며, 그렇게 구매한 단어장들은 이전에 얻은 글라이더들을 소환하기 위한 두루마리들과 함께 세니아가 갖고 있던 배낭에 넣어두기로 했다.
  "옛 브리태나 어도 루이즈 씨의 모어는 아닌 듯하지만, 그나마 옛 브리태나 어를 잘 하시는 편이니까...... 이런 책이 이 행성계를 살아가시는 데에 도움이 될 거예요."
  휴대용 단어장 2 권-루이즈의 몫 그리고 잔느 공주의 몫-을 구매하면서 내가 루이즈에게 말했다.

  이후, 일행의 발걸음은 세나를 따라 문학 (Literatura) 구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점에서 가장 큰 구역으로서 다양한 시가와 소설들이 진열된 수많은 책장들이 나열된 곳이었다. 문학 구역에 도달하자마자 세나는 구역의 진입로 부근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던 바로 시가, 희곡 서적들이 나열된 책장들을 기웃거리니,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말했다.
  "그 책들 사겠다고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이에 세나는 조용히 웃으면서 해당 책장들을 바로 지나쳐 가면서 그 너머에 자리잡은 소설들, 희곡들이 수록된 서적들이 다수 자리잡은 책장들 그리고 가판대의 앞에 이르렀다. 세나는 가판대 앞에 진열된 소설들에 눈을 두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하나씩 책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나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으로 한참을 책들을 잠깐씩 열람하며 고민하고 있던 세나는 그러다가 마침내 한 권의 책을 들었다. 근래 들어 옛 문명 시대의 추리에 관한 소설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해서 해당 소설을 구매하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으로 이전까지는 공상 과학 (Sciensfiktia, SF) 에 관한 책들을 자주 구매했고, 그 때에도 해당 책에 시선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추리 소설에 더욱 마음이 기울어져 결정을 그렇게 내린 것으로 보였다.
  "요즘에는 추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기지로 괴도를 잡아내거나 하는 모습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그래......"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유난히 설레는 듯한 세나의 뒷 모습을 지켜보며 답을 해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나도 탐정에 관한 소설을 본 적이 있었다-심지어 세나가 본 책이었지만, 세나 본인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해 보였다-, 수도원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한 책으로 사실 사건 본편보다는 수도원 수도사들의 생활 부분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그 소설은 하루 단위로 이야기가 구분되고 있었고, 1 일이 곧 하나의 장이었다, 예컨대 네 번째 장은 4 일차에 대응되는 식. 수도사들의 생활이 나름 구체적으로 묘사된 부분은 첫 장, 1 일 경의 저녁 식사 부분과 2 일 경의 새벽 기도 부분이었다. 일찍이 수도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였던 나는 그 소설의 첫 부분을 통해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고, 수도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참고가 되기도 했었다.
  추리 소설은 그 이후에는 본 적이 없다. 사실, 이전에 보았던 그 추리 소설도 수도원 생활에 대한 흥미 때문에 본 것이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딱히 볼 이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소설을 통해 나는 수도원 생활과 신과 가장 가깝다는 이들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악인과 위선이 무엇인지 역시.

   세나가 어렸을 때 본 소설은 추리 소설은 아니었지만, 탐정의 활약에 관한 소설이었다고 한다. 기지를 발휘해 보물을 훔치는 괴도와 그를 추적해 나아가는 탐정의 이야기로 진지한 탐정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유쾌한 괴도의 활약을 보여주는 이야기로서 어렸을 적, 세나는 악인의 탐욕으로 강탈당한 보물을 다시 훔쳐 그것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모습에 반했었다고 한다. 세나가 나의 모습에 이끌렸던 것은 어둠에 가까운 기운을 가진 존재로서 빛의 힘을 발휘하는 나의 모습에서 어렸을 때 자신이 동경했던 그 괴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모양. 세나의 기억에 의하면 내 모습이 자신이 보았던 소설에서 묘사된 괴도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고 했지만 사실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그렇게 원하는 책들을 하나씩 가지고 난 이후, 나는 책들을 계산대에 모아 책 값을 지불했다. 모든 책 값은 80 G 로 돈은 나와 세나가 나누어 지불했다. 내가 30 G, 세나가 50 G 를 내 주었다. 세나 역시 일행과의 여행을 하면서 돈이 많이 필요할 상황이 있을 것임을 알았고, 그래서 일부러 돈을 많이 찾아왔다고. 나보다 돈을 많이 내 준 세나를 보며, 내가 그의 돈 걱정을 하자, 세나는 조용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돈이야, 조금 더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세나의 돈 걱정은 크게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나를 포함한 천문대의 동료였던 이들은 각자 나름의 수단으로 어떻게든 돈 벌이를 하고 있었던 만큼, 그들의 사정에 대해 딱히 걱정을 하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후, 책들의 구매를 마치고 난 이후, 나와 세나는 각자가 구매한 책들을 가지고 서점을 나섰다. 세나는 책을 끌어안고 있었으며, 나는 책들을 오른팔에 끼고 있으면서 서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서점에서 나올 무렵, 나에티아나와 세니아가 서점 입구 앞에 나란히 서 있으면서 나와 세나 그리고 루이즈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지금 즈음이면 서점에서 나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어."
  서점에서 일행을 맞이하며 세니아가 말했다. 이후, 세니아는 자신이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일행이 구매했던 책들을 하나씩 건네 받아서는 배낭에 넣어두고 있었다. 두루마리가 들어있는 배낭 안에 아무렇게 책을 넣어두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나름의 방법으로 배낭 안에 책을 넣어두고 있었기에 두루마리 역시 무사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아무튼 책들을 배낭 안에 넣어두고서 세니아는 그 짐을 다시 등에 맸다.
  "세나는 여기서 무슨 책을 샀어? 이번에도 전기담이야?"
  "아니, 이번에는 추리 소설을 샀어. 요즘에 추리 소설에 꽂힌 모양이야."
  짐을 다시 등에 매면서 세니아가 나에게 묻자, 내가 바로 답했다. 이후, 세니아는 앞장서서 다시 십자로로 나아가면서 "그래?" 라고 말한 이후에 조용히 미소를 띠며, 숙소로 가면 세나에게 책을 보여달라고 청하고서 숙소에서 읽어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가던 나를 오른쪽 옆에서 동행하던 세나가 "굳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라고 말하자, 나와 세니아 모두 다른 말 없이 웃음만 터뜨렸다.
  "아무튼, 아르사나는 단어장 2 권을 사겠다고 했었지? 잘 샀어?"
  이후, 세니아가 나에게 묻자, 나는 잘 구매했음을 밝히고서 나중에 시간이 되면 루이즈에게 건네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작은 단어장을 건넨 이유에 대해 묻자, 내가 답했다. 언제라도 들고 다니면서 단어를 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그랬구나, 잘 했어." 그러자 세니아가 바로 화답했다. 이후, 세니아는 고개를 돌려 뒤쪽에서 다른 이들을 따라가던 루이즈에게 물었다.
  "루이즈 씨께서는 단어 암기 등이 필요할 때, 어떤 책을 이용하셨었나요?"
  "저는......" 그러자 루이즈가 답했다. 서점에서 보았던 단어장들과 같은 단어장들을 주로 이용하면서 단어들을 읽고 쓰고 말하는 과정을 통해 배웠다고 말하고서, 그리고 나를 비롯한 일행이 어떻게 외국 말을 배웠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자신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배우게 될 세니티아어 역시 그런 방식으로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내가 "그러할 거예요." 라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일행의 발걸음은 어느새 교차로를 거쳐 북쪽 길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일행이 숙박할 곳은 도시의 북쪽 경계 부근에 있는 128 번 건물로 길의 왼편에 있다고 했다. 세니아, 카리나의 무식한 방 정하기 방식에 의해 최대 2, 3 명 정도 머무를 수 있는 방에 6 명이 머무르게 생겼지만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을 노릇이었다. 아마도 침대는 많아야 2 명이 쓸 것이고, 쓸 사람은 정해져 있었던 만큼, 나머지는 바닥에서 자든지 해야 했다.
  "누가에 침대에서 잘 거야?" 세니아가 물었지만 대답을 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일행은 128 이라는 번호가 현관문 근처에 붙어있는 건물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유별나게 5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하얗게 칠해진 외벽을 드러내는 비교적 평범한 건물이었다. 그 건물의 현관문 앞에서 일행은 카리나와 마주하면서 일행은 그렇게 다시 모일 수 있었다. 이후, 카리나는 자신이 정해 놓은 방으로 오게 하겠다고 말하고서 자신이 먼저 현관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방을 예약하는 데에는 250 G 가 들었다고.
  "방은 3 층에 있어. 303 번 방이 우리가 머무를 곳이야."
  3 층으로 먼저 올라가면서 카리나가 말했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걷다가 우측의 3 번째 방에 이르자마자 그 문을 열면서 이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내가 먼저 카리나에 의해 열린 문 너머로 들어가 보았다. 문 너머, 방 내부의 모습은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구의 왼편에 욕실이 있었고, 현관문 너머의 방 왼편에는 두 사람이 잘 수 있는 침대와 옷장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오른편에 자그마한 탁자와 의자 그리고 소파가 하나씩 자리잡고 있었다. 침대에는 두 사람이 같이 잘 수 있었고, 소파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나머지는 바닥이든 어디든 누워서 자야 할 것 같았다.
  "소파에 누가 앉아서 잘까?" 방으로 들어서면서 내가 물었고, 그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오던 카리나 그리고 세니아가 자신들이 바닥에서 자겠다고 말했다. 그런 방을 예약한 것에 대한 나름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 그리하여 세나, 루이즈 그리고 세니아와 카리나를 제외한 나와 나에티아나가 소파에서 자게 되었다. 그렇게 잘 자리는 정해졌지만 6 명이 함께 머무르기에는 비좁은 곳이라 답답함은 어쩔 수 없을 듯해 보였다.
  "자고 있을 때 누군가 너희들을 밟을 수도 있어. 그 점은 감수해야 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 말을 들으니까, 섭섭하기는 하다." 이후, 나는 방을 나서면서 바닥에 잠들게 될 세니아, 카리나를 밟을 수 있다고 말하자, 카리나가 바로 섭섭하기는 하다고 바로 화답했다. 이후, 나는 곧바로 방을 나서려 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이들이 방으로 들어가려 하였기에 일단은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 이들을 위해 잠시 옆으로 비켜 주고 그들이 모두 들어가자마자 비로소 방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답답해서 나가는 거지?" 그 때 카리나의 목소리가 바로 나의 등 뒤를 때렸다. 즉답으로 내가 그렇다고 말했다, 딱히 그 뜻을 숨기거나 할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대놓고 "그렇다." 라고 답한 것. 그러자 카리나는 적어도 날이 저물 즈음에는 돌아오라고 당부했고,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카리나의 말에 내가 흠칫 놀란 채, 고개를 돌리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할 돈은 남아있는 것이냐고 묻자, 카리나가 답했다,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정도는 남았다고 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복도와 계단을 통해 1 층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관문을 통해 건물의 입구로 나갔다. 그리고 북쪽 경계와 128 번이라는 건물 간판 번호를 기억하면서 건물에서 벗어나 북쪽 길목의 상점들로 둘러싸인 길 위를 다시 걷기 시작했고, 이후,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찻집을 향했다. 본래는 시나 풍 (Shinasra) 건물이 자리잡은 64 번 건물 부근에 있는 찻집에 가려 했지만 문득 문화 광장에까지 이르고 싶어서 아예 길목을 더 나아가 하미시의 동부 문화 광장에까지 이르렀다.

  오후를 맞이한 광장의 한 가운데에는 어떤 악단의 행진이 이어지고, 주변에서는 행진을 구경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화려한 예장 의상-새하얀 드레스 위에 푸른 조끼를 갖추어 입은 모습으로 신발과 장갑도 하얀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을 갖춘 이들이 각자 손에 들고 있는 악기들을 연주하면서 광장을 따라 돌며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본래는 찻집에 갈 생각이었지만 악단의 화려한 행진을 보자마자 그것에 이끌려 광장의 서쪽 부근-사람들이 그나마 덜 모여 있었다-에 이르러 그 곳에서 악단의 행진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이전에 레르마임 (Lermaym) 에서 잠시 만났던 셀린 (Selin) 그리고 에오르 린 (Eor Lin) 과 리아 (Eor Lia) 자매가 함께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때 마침 내 앞에 작은 돌 기둥 하나가 있어서 그 돌 기둥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주변에서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있을 그 때, 나의 오른편에 어떤 사람이 나의 곁으로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색을 띠는 어깨 부근까지 내려가는 매우 짧은 소매 그리고 조끼와 치마 부분이 서로 이어진 푸른 옷으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푸른 옷의 치마 부분은 양 옆이 깊이 트여 있어서 검은 바지를 입은 다리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에는 접시 모양의 모자가 씌여 있었으며, 다소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자리잡은 푸른색을 띠는 두 눈은 한창 악단의 행진 공연이 이어지는 광장을 향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면서 가만히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여성은 아름다우면서도 온화하며 또 이지적이기도 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지적이기만 한 미녀는 아닌 듯해 보였던 것이 왼쪽 허리띠에 칼 자루 하나가 매여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보통의 업적을 가지거나 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와 직접 인연이 있거나 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고, 그래서 그의 모습을 잠깐 본 이후에는 기둥에 앉은 채, 그저 공연에 시선을 두려 하였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조용히 일어나서 찻집을 찾아가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어딘가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혹시 거기 계신 분, 아르사나 베르티 2 세 (Arsana Berti, Tuze) 아니신지요?"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는 듣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른편의 내가 방금 전에 보았던 여성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어떻게 나를 알아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모른척 해 보기로 하고 그에게 잘못 알아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여성은 근방에 이런 보라색 옷차림을 할 만한 사람은 나를 비롯한 베르티 (Berti) 일가의 사람들밖에 없다고 말하고서 내 옷차림을 보자마자 베르티 일가의 사람일 것임을 진작에 알아봤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말하고 나니, 결국 내가 그가 언급한 대로의 이름을 가진 사람임을 시인해야만 했다.
  "맞아요, 말씀하신대로예요." 그리고서 나는 오른편 옆에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그 여성을 바라보며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을 알 수 있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여성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서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기는 하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려 했다.
  "제 이름......" 이후, 그는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나는 잠시 그의 모습을 지켜보려 하였다. 확실히 언젠가, 정확히는 학교 수업 도중에 몇 번 본 듯한 모습으로 하얀 의상과 푸른 원피스 드레스 차림은 한 번 본 기억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름은 그 당시에는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학교의 강의실에서 그 이름을 보기는 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중요치는 않았다, 애초에 학교에 자주 오는 사람도 아니었다.
  "예나 셀레니아 다마나티엘 (Yena Selenia Damanatiel) 이 제 이름이에요, 예나 젤레니아 다마나티엘 (Jena Selenia Damanatiel) 이라고도 하지요. 그 쪽에서 다니셨던 학교에도 이름을 소개해서 한 번 정도 보신 적이 있을 텐데."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샤하르의 학교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 고문명의 문물 발굴 그리고 생명체 연구에 관심이 많고 조예도 깊은 이로 유명한 사람, 예나 셀레니아 다마나티엘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나를 보더니, 나를 무척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별하기로는 이 행성계에서 예나 다마나티엘이라는 이만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지라, 이러한 그의 면모에 대해서는 의아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노릇이었다.
  "그런데, 다마나티엘 선생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어찌하여......."
  "그러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아가씨."
  "아가씨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라니, 지체 높은 여성에게 어울리는 호칭 아니던가. 다마나티엘은 나에게 그런 호칭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 나는 곧바로 다마나티엘에게 나에게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 행성계를 구원하신 분의 따님이신데, 그런 사람이라면 제가 어떤 사람이 됐든, 그런 이들은 깍듯이 예우해 줘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받아들이려 했다. 무엇보다 행성계 내외에 걸쳐 명망이 높은 사람이 나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아무튼, 나에 대한 이야기는 그 즈음에서 정리하기로 하고 바로 다른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기로 했다. 다마나티엘에게 이렇게 물어보려 했다.
  "다마나티엘 선생님께서는 이 곳으로 어떤 이유로 오시게 된 거예요? 여행삼아 오신 것인가요?"
  "예, 그래요." 처음에 다마나티엘은 여행 삼아 왔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가 곧 "농담이에요." 라고 말하고서 이어서 자신이 하미시를 들른 진짜 이유를 말하려 하였다. 이전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어 나에게 자신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관찰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관찰 대상이 지금 하미시에 있어서 관찰할 겸, 하미시 여행을 위해 이렇게 찾아온 것이지요."
  하지만 무엇을 관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시점에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 그리고서 다마나티엘은 나에게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 한다고 말한 이후에 곧바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알려주려 하였다.
  "잔느라는 분과 지금 같이 있어요. 지금은 제 처소에 머무르시고 계실 텐데, 이후에 다른 장소, 그러니까 찻집 같은 데에서 면담을 하시면 그 분을 제가 오시도록 해 볼게요. 공주로 지칭되시던 분이시지만 스스로 하실 수 있는 일도 많으시고, 이래저래 저를 많이 도와주시고 계시기에 그 분의 많은 도움을 지금도 받고 있지요."
  이를 통해 나는 다마나티엘이 잔느 공주를 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샤르기스 시청에서의 샤르기스 유적 내부 조사 작업이 끝나고 난 이후에도 별도로 푸투로 계획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태고 문명 시대에서 살아가셨을 잔느 씨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잔느 씨와 계속 함께 다닌 것을 계기로 샤르기스 유적 내부 조사 활동을 마치고 나서도 계속 저와 함께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서 유적 조사 이전에 행여 위험한 병원균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잔느 공주에 대한 신체 검사를 나름 철저하게 진행했었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서 그 동안 잔느 공주가 나름 괴로움을 많이 겪었음을 밝혔다, 다행히도 병원균의 보유 사항 등은 없었고, 특별한 신체 이상도 없어서 그 결과를 보며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계획의 일원이었던 만큼, 관리자들이 건강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고 그의 몸 상태에 대한 추측을 말하기도 했다. -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우선 관리자들이 건강 상태에 유난히 신경을 쓰기도 했거니와, 그의 아버지가 계획의 중요 인사였던 만큼, 그의 딸이 몸 상태에 이상이 없도록 나름 많이 신경을 썼을 것이라 추측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예나의 잔느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그로부터 듣고 싶었던 잔느 공주에 대해 궁금하다고 여기어지는 사항이 또 하나 생기고 있었다, 세니티아어를 얼마나 배우고 있으며, 현재 배움의 상태는 어떠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물음에 다마나티엘이 바로 답했다.
  "잔느 씨께서는 세니티아어를 저에게 배우고 있어요. 아무래도 저와의 의사 소통이 필요하니까...... 의외로 적응력이 빠르셔서 이 행성계에 본격적으로 거주하시기 시작한 시간을 감안하면 잘 배우시고 계신 편이에요, 아직 많이 부족하시기는 해도."
  그리고서 자신과 본격적으로 만난지는 이제 며칠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언제 헤어질지 몰라서 자신이 같이 있는 한, 가능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속성으로 세니티아어를 가르치고 있고, 그래서 배움의 성과가 좋기를 그저 기대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다행히도 본인도 스스로 공부할 줄은 알아서 배움의 진도가 진척되고 있는 듯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제 헤어질 것인지에 대한 일정은 아직 없는 것이지요?"
  "예, 아직은 없어요." 내가 묻자 다마나티엘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그는 남은 이야기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항들이 가득해서 축제 분위기 속에서는 바로 이야기를 해 주기는 곤란할 것 같다고 말한 이후에 일단 행사가 끝나고 나면 그 때, 찻집으로 가자고 청하고서 자신이 맡아놓은 곳이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 한 시간 즈음 후에는 축제가 끝나는 만큼, 그 때 자신이 점지해 둔 곳으로 가면 될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마나티엘은 이후로 자신과 자주 만나게 될 것이라 말하고서 이제부터 자신을 다마나티엘이 아닌 이름인 예나로 칭해줄 것을 당부했다, 셀레니아라 칭해주면 더욱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광장에서의 축제는 다른 분위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악단이 전혀 다른 성격의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분수대 쪽에서 악단이 공연을 하는 동안 앞에서는 마치 공주들의 옷을 연상케하는 소매가 짧은 상의와 허벅지를 약간 드러낼 정도의 길이를 가지는 하의 부분으로 구성된 하얀 드레스 차림을 한 소녀들이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었다. 악단의 연주도 무척 아름다워서 광장에서 공연을 관림하는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공연을 좋아하시는가 봐요."
  "예, 이런 무대 공연하고 성가대 합창하고." 한참을 광장의 변두리에 서서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데, 나의 왼편 곁에 와서 예나가 말을 건네자 내가 그렇다고 답하고서 그와 더불어 성가대 공연도 좋아하는 편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예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성가대 합창은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었다고 답하고서 잠시 수도원 생활을 하게 된 계기로 수도원 등에서 수도사들이 노래하는 성가들을 동경한 것도 이유 중 하나임을 밝히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분위기 있는 합창을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나 보네요."
  "예, 이런 공연을 무척 좋아하고는 했었고, 그래서 어머니께서 일부러 샤하르의 문화 회관으로 저와 함께 간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한참 동안 공연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예나가 물었다, 잔느의 동료인 루이즈가 내 곁에 있다는 모처의 정보가 있었다는 말에 이어 그가 건네었던 루이즈는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 그 물음에 나는 숙소에 있다고 말하고서 나는 혼자 개인적으로 밖에 나가 있겠다면서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내가 밖으로 나온 것에 대해 밝히고서 루이즈는 무사하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가 아가씨와 함께 찻집에서 대면할 때, 루이즈 씨께서도 오셨으면 좋겠는데, 루이즈 씨를 따로 부르실 방법이 있나요?"
  "그것은 제가 알아서 해 볼게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러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잔느 공주와 루이즈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만큼, 어떻게든 오라고 하겠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 때, 그런 나를 보면서 예나가 나에게 잔느 공주에 대한 물음을 건네보려 하였다.
  "그런데, 아가씨께서는 잔느 씨를 왜 잔느 공주라 칭하시는 것인가요?"
  "예전부터 사람들이 샤르기스 근방의 유적에 공주가 잠들어 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잔느라는 이름을 몰랐을 때에는 공주라 칭했었어요. 그러다가 잔느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나서는 잔느 공주님이라 칭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랬었군요." 그러자 예나가 알겠다는 듯이 답을 하였다. 그리고 이유야 어쨌든 사람들이 공주라 칭하고 있으니, 자신도 잔느를 공주로 칭하겠음을 밝혔다. 그러는 동안 공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차례로 다양한 성격의 공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공연이 대충 마무리되어 가고 사람들이 문화 광장을 하나둘씩 떠나가고 있을 무렵, 예나 역시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하고서 이제 가자고 청했다. 그리고 루이즈를 불러줄 것을 나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내가 왼팔의 팔찌를 연락하기 위해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루이즈를 불러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어서 곧 잔느 공주를 만나러 가게 되었으며, 내가 만난 사람이 잔느 공주를 데리고 있음을 알렸다.
  "잔느 공주님을 어떤 분께서 데리고 계신대? 어떤 사람이야?"
  "다마나티엘 선생님이야." 그러자 내가 즉답했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숙소 쪽의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는 루이즈를 불러서 문화 광장 쪽으로 오라고 당부하고서 북쪽 길목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이어 알리면서 통신을 끝냈다. 그리고서 나는 예나에게 북쪽 길목 근처로 가자고 청했고, 그리하여 나는 예나를 이끌고 문화 광장의 북쪽 길목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태양은 나의 왼편, 서쪽 하늘의 언덕 아래를 향해 나아가며 하늘의 서쪽 가장자리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루이즈 씨를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하셨지요?"
  "예, 특별한 사항이 없다면 여기로 오실 거예요." 예나가 묻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맞이할 사람들이 나의 바로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미시의 전통 의상 차림을 한 루이즈만 올 것을 기대했었는데, 막상 때가 되니 루이즈를 비롯해 세나, 나에티아나 그리고 세니아에 더불어 셀린, 에오르 자매도 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예나라는 유명 인사 그리고 일행이 샤하리아에서 함께 머무르던 잔느 공주가 온다는 말에 내심 흥분해서 오게 되었던 모양.
  "웬일이야? 숙소에서 쉬고 있지."
  "잔느 공주하고 다마나티엘 선생님께서 같이 계신다고 하기에 올 수밖에 없더라."
  그러자 나의 곁으로 오며 세니아가 답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몇 명이 같이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동행인들의 숫자에 몇 명이 같이 가는지가 계산이 한 번에 되지 않았고, 그래서 몇 명씩 세어보기로 했다. 우선 일행 중에 온 사람, 4 명, 그리고 셀린 일행 3 명, 나와 예나로 2 명, 마지막으로 잔느 공주까지 10 명이 찻집에 있게 된 것이었다.
  "찻집들 중에 보면 대규모 인원들이 앉을 수 있는 대형 탁상이 있는 곳이 있지 않나?"
  "있지~."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나를 비롯한 10 명의 일행이 다시 문화 광장으로 가려 할 즈음, 내가 묻자, 세니아가 답했다. 그리고 그런 탁상이 있는 찻집을 예나/다마나티엘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예나/다마나티엘이 앞으로 일행과 자주 만나게 될 것이라 말하고서 그의 이름 두 개-예나, 셀레니아-를 언급하고서 그 이름으로 불러줄 것을 당시에 모여있던 이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예나가 가려 했던 곳은 문화 광장의 북서쪽 가장자리 인근에 있는 어느 큰 찻집으로 문화 광장 북서부 거리 12 번 건물로 찻집의 이름은 '루가르 데 파레하(Lugar De Pareja, Lugar de Pareha)' 로 '엘레데페 (LDP)' 라는 약칭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 예나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곳이 몇 더 있다는 모양. 예나가 하미시에 오면 자주 이용했던 곳으로 찻집 내부 공간에 큰 탁자들이 몇 개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한 번에 다 앉을 수 있다고 그 곳에 대해 말한 바 있었다. 일행은 그리하여 예나가 들른 바 있다는 그 곳으로 가게 되었다.

  루가르 데 파레하 (Lugar de Pareja).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찻집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해당 찻집에 대해 에오르 자매가 찻집을 들르면서 말했었다. 여타 찻집들보다도 더욱 큰 규모의 공간의 한 곳에는 정말로 10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나란히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큰 탁상 하나가 있었으니, 그 탁상에 모여 앉으면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은 몰랐는데......" 그 나무 탁자를 향해 다가가면서 예나가 말했다. 이에 그의 곁으로 다가온 에오르 리아가 예나에게 그 만큼, 그가 유명하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었고, 이에 예나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띠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커다란 탁자는 2 층 공간의 서쪽 창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탁자 주변의 의자에 모여 앉은 후, 예나는 카페 주문을 위해 나서겠음을 밝혔다. 다들 일반 카페나 우유 카페를 주문하고 있었으며, 에오르 자매는 차가운 일반 카페를 주문했었다. 그 당시의 주문 사항으로는 아래와 같았다 :


   잔느 공주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예나는 그를 위한 주문까지 해 주고 있었다. 아직 오지 않기는 했어도 금방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당시에 창가를 향하는 방향에 있는 의자들에는 나와 루이즈, 세나, 나에티아나, 세니아가 앉았고, 건너편 의자들에는 에오르 린, 리아 자매와 셀린, 예나가 앉았다. 루이즈의 건너편 자리는 비워 두었는데, 그 자리에 잔느 공주가 앉을 예정이었다고.
  "이렇게 서로 모여 앉아 보니, 모임 (Manan) 같지 않아?"
  "그래 보이기도 하네요." 그 무렵, 세니아가 찻집의 큰 탁자에서 4, 5 명씩 서로 마주보며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아는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웃으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 역시 활짝 웃으면서 답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을 그 때, 그간 듣지 못했던, 하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는 않았던 목소리가 나의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세니아가 나의 오른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
  "아르사나, 네 뒤쪽을 봐. 저기, 저 목소리, 잔느 공주님 목소리 아니야?"
  "정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놀라면서 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고, 그와 함께 하얀 블라우스와 보라색을 띠는 미니 스커트 그리고 허리에 두른, 몸의 뒷 부분을 감싸고 있는 보라색 천을 두르고 있는 채로 검은색을 띠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책들을 두 손으로 안은 채로 다급히 일행이 앉은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때, 예나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더니, 그에게 자리를 비워 두었으니, 어서 앉으라고 부탁을 하였고, 그리하여 여성은 루이즈와 에오르 린 사이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모습을 건너편 자리에서 보며 나는 그가 잔느 공주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리카락의 모양새가 이전과는 약간 달라지기는 했지만-머리 뒤쪽에 세니아처럼 보라색을 띠는 큰 리본이 달려 있었다-, 외모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루이즈, 오랜만이야." 그를 보자마자 잔느가 그를 '루이즈' 라 칭하면서 그에게 인사를 했고, 이에 루이즈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례를 했다. 그렇게 잔느 공주가 자리에 앉아서 책들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주어진 차를 받아들 무렵, 나 역시 카페를 들이키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잔느 씨께서 이렇게 무사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일부러 이 곳으로 오게 했어요."
  우선 예나는 잔느 공주가 무사히 잘 지내고 있음을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알리기 위해 일부러 그가 찾아오도록 했음을 밝히고서 앞으로 잔느 공주는 나를 비롯한 일행과 함께 행동하게 될 것임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서 예나는 루이즈에게 잔느가 일행에게 공주로 칭해지고 있음을 밝혔고, 이에 루이즈는 알고 있었음을 밝히고서 별 다른 이유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사람들이 공주로 칭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그를 공주로 여기고 있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예나 씨께서 찻집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실 것인지 짐작되는 바가 있어요?"
  이후, 나는 잔느 공주에게 예나가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잔느 공주가 바로 답했다. 잔느 공주에 대한 조사 작업 그리고 샤르기스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 그리고 그 곳에서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풀어 놓겠다고 혼잣말한 적이 있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푸투로 계획에 참여하게 된 이들이 캅쉴라 안에 잠들어 있었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예나는 그간 있었던 유적 발굴 작업 도중에 수많은 캅쉴라들이 발견되었으며, 그 안에 잠든 이들은 모두 푸투로 계획에 참여했던 이들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푸투로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동될 즈음에 이들 모두가 동면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음을 밝혔다.

  잔느, 루이즈 등은 푸투로 계획에 참가해 캅쉴라 안에 잠들어 있던 이들로서 아무래도 태고 문명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었던 만큼, 그들의 존재는 태고 문명 시대 유적의 조사에 필요하다고 여기어졌으며, 그래서 병원균 보유 여부 등을 알아보기 위한 신체 건강 조사를 마치고 난 이후에, 곧바로 잔느 공주는 태고 문명인으로서 샤르기스 유적 내부 조사 작업 때, 예나와 함께 조사 작업에 협조를 하게 되었다. 조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잔느 공주는 예나와 줄곧 동행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시청 측의 조사 작업이 끝난 이후에 자신이 독단적으로 했던 푸투로 계획 자료 수집 작업에도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잔느 공주님께서는 신체 검사 때에 가장 많이 힘들어 하셨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이후에 곧바로 저와 함께 유적 조사 작업에 참가를 했었는데, 그 동안에는 적어도 제 앞에서는 딱히 힘든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그 이후, 예나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와 같이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샤르기스 유적 내부 조사와 자신에 의해 진행된 푸투로 계획 관련 자료 수집 때에 자신과 함께 하고 있던 것을 계기로 잔느 공주가 자신과 계속 동행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 때 두 번째로 듣는 이야기였지만, 다른 이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 만큼, 가만히 예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신체 검사 때, 이상은 없었지요?"
  "예, 사실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예나는 아무래도 중요한 계획의 일원인 만큼, 관리자들이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보였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잔느 공주의 아버지가 푸투로 계획의 관계자였음을 알고 있던 세나, 세니아 등은 그러한 아버지의 배려 덕일 것이라 수근대고 있었다. 이에 내가 당황하면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말라 속삭였지만 다행히도 예나 등은 그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그 후, 자료 조사 및 수집 상황에 관해 세니아가 묻자, 예나는 아직 정리는 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하고서 푸투로 계획의 자료를 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연구를 마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

  "아마 잔느, 루이즈 씨께서는 이들의 동료들이었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동료들이었지만...... 늘 함께하지는 못했어요." 예나의 이야기 이후로 세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루이즈가 씁쓸해 하는 듯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려 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후, 예나가 캅쉴라 안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 잔느 공주 그리고 루이즈의 동료들이었을 그들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선 제가 동면 중인 사람들의 상태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 위루스 혹은 위험한 생명체에 감염되었는지의 여부였고, 그 결과가 잔느 씨께 매우 충격적일 수 있어서 위루스 등의 감염 여부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에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드릴지에 대한 걱정이 들기도 했었어요."
  예나가 샤르기스 유적 조사 중에 발견된 캅쉴라와 동면 중인 사람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 이전에 들은 바 그대로였다. 하지만 일행은 이미 실상을 알아차리고 있었고, 그래서 동면 중인 사람들의 위루스 감염 여부에 대해 진지한 고찰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동면 중이신 분들의 체내를 계속 조사해 보았지만 위협적인 위루스나 생명체의 체내 검출은 없었어요, 잔느 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의적인 위루스, 생명체 감염은 없었다고 볼 수 었었고, 그래서 잔느 씨께 동료들의 감염 여부를 말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예나의 잔느 공주의 동료들이 동면 중에 위루스 등에 감염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말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에 대해 크게 안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예나에게는 여전히 우려하고 있는 사항이 하나 남아 있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캅쉴라 내부에 있는 이들의 동면 상태가 시간이 지나도 해제되지를 않았다는 거예요. 그 캅쉴라들을 언제까지 샤르기스의 유적지 앞에 놓아두고 있을 수 없었기에, 그 캅쉴라들은 일단 제가 아는 특별한 곳으로 보냈어요. 몇 개씩 전송 마법을 이용해서 보냈었지요. 아마 지금 그 캅쉴라들은 제 조수가 관리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 있는 일행들은 물론, 잔느 공주와 루이즈마저 그 캅쉴라들의 운명이 어떠할 것인지는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미 푸투로 계획을 진행했던 이는 계획이 시동되기도 전에 타락해 있었으며, 그런 그의 사악한 의지에 의해 동면 장치가 고의적으로 고장이 나면서 캅쉴라들이 계속 동면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루이즈 등이 깨어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나 역시 발굴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런 내막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기에 그의 진심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곳이 예나 선생님의 임시 거처이겠지요, 그렇다면 그 곳으로 가면 푸투로 계획에 참여한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예요?"
  이후, 나에티아나가 천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예나에게 묻자, 그는 조용히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해당 장소는 일반인들에게는 비밀에 부쳐놓은 상태이며, 캅쉴라의 사람들이 깨어나면 전송 수단을 통해 적절한 곳에 갈 수 있도록 할 생각을 갖고 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 곳에서 캅쉴라들을 이용해서 무언가 이상한 음모를 꾸미거나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럴리가요." 이후, 세니아가 뭔가 의심을 하는 척을 하면서 묻자, 예나는 그저 환하게 미소를 띠며 그러할 생각은 없다고 화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캅쉴라들의 실체를 아는지에 대해 명확한 발언을 하고 있지 않았던 만큼, 그 대답에 어떠한 심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캅쉴라 안에 잠들고 있을 이들 중에 한 명이라도 무사히 깨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거예요. 잔느 공주, 루이즈 씨 같은 분도 계시기는 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깨어나서 새롭게 변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갖고 있어요."
  하지만 예나의 그 말 만큼은 진심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기는 했다. 비록 가망이 적기는 해도, 잔느 공주, 루이즈의 진짜 동료가 아닐지라도 가능한 많은 이들이 깨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은 아무 말하지 않고 있기는 했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미시 유적지에 모여든 악의 무리가 섬멸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대 유적지 내부 깊은 곳에 있는 고대 유물에 홀린 자들과 그에 의해 세뇌된 자들이 모종의 음모를 자행하고 있었다는데..... 아무튼, 금방 잘 해결 되어서 곧 유적지가 다시 개방된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이후, 예나는 하미시 유적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하미시 유적지의 사정이 금방 나아지게 될 것에 대해 다행스러운 일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행에게 다음 행선지는 가브릴리아 (Gabrilia) 이지 않겠느냐 물었고, 이 물음에 세나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가브릴리아 그리고 미하야 (Mikhaya) 는 섬들로 구성된 나라이고, 그러한 만큼, 한 번 즈음은 바다에서 수영도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이에 예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가브릴리아로 가게 되면 일행을 위한 수영복을 마련해 놓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행에 필요한 경비는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 돈이 필요하게 되면 얼마든지 상의해 달라 말하기도 했다.
  "얼마든지 돈을 지원해 주겠다, 그렇다면 나중에 갚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럴리가요." 이후, 세니아가 건네는 물음에 예나가 바로 그러할 리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대가가 세상의 위기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고서, 나를 비롯한 일행이 세상의 위기를 몰아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고서, 지난 고대 유적에서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를 비롯한 일행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음을 밝히고서 이런 사람들이 자금 문제에 시달리지 않도록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물심 양면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었다고 말하고서 다른 이들이 나서지 않으면 자신이라도 나서겠다고 이어 밝히기도 했다.
  "사실, 이전에 샤르기스 시청의 마리아 씨께도 연락을 드렸고, 또 이번 일에 관해 샤르기스 시청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었어요, 확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샤르기스 시청 측이 나를 비롯한 일행을 지원해 줄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이 바로 서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아니면 잘 모르는 일인데, 굳이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을지, 나 같아도 굳이 지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가브릴리아의 북부에 항구 도시인 지브로아 (Jibroa) 가 있다는 것은 모두 아시고 계시지요?"
  "그렇지요." 이후, 예나가 건네는 물음에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후, 세니아가 나에게서 지브로아라는 북쪽 마을에서 서쪽 교외에 있는 길을 거쳐 '기억의 절벽' 이라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음을 밝히고서 절벽 사이에 있는 '기억의 사당' 이 괴물이 출몰한다는 곳임을 밝혔다.
  "지브로아 서쪽 근교에 있는 기억의 절벽에 있는 '기억의 사당' 이라는 곳에 괴물이 있음을 말씀드리려 했는데, 이미 알고 계셨군요."
  그러자 예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자신이 가르치려 했던 사항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브로아를 통해서는 육로, 수로 및 해로를 통해 갈 수 있는데, 어느 길로 가는 것을 택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세니아가 수로를 택했다고 답했다.
  "육로의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고대 유적을 점거했던 케레브 족들을 조종했던 고대 기계 병기들이 속한 '어둠의 힘' 의 기계 병기들이 저희들을 습격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면서 하미르 동부에서 배를 타기로 했던 거예요."
  그러자 예나는 "그러셨군요." 라는 화답을 하고서 이어 말했다.
  "저도 육로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기계 병기들의 습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육로의 이용은 가능하면 자제할 것을 부탁드리려 했었는데, 그러할 필요는 없겠네요. 물론 수로, 바다에서도 병기들의 습격이 이어지겠지만 그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탈 것이 오가지는 않을 테니, 무고한 피해자는 나오지 않겠지요."
  그러면서도 예나는 '어둠의 힘' 이라 칭해진 세력이 역으로 일행이 가지 않는 육로를 습격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자신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철길을 따라 나아가면서 철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지키겠음을 밝히고서,
  "그 역할을 에오르 자매, 두 분께서 맡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에오르 린 그리고 리아가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예나에게 그의 '배' 는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예나는 북쪽 경계 근방에 놓아두었음을 밝히고서 일행이 하미르로 가게 되면 동쪽 근교에 놓아두었다가 일행이 배를 타고 하미르에서 출발하면 배를 띄워서 에오르 자매의 글라이더들과 함께 가브릴리아를 향하는 철로를 따라 나아가겠음을 이어 알렸다.
  "아가씨, 하미르에서는 어떤 배에 타시려 하시나요?"
  이후, 예나는 나에게 어떤 배를 탈 것인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가능한 작은 배에 타려 한다고 그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큰 배는 아무래도 기계 병기들의 눈에 잘 띄기도 하고, 또 큰 배가 피해를 입으면 그에 수반한 큰 대가를 치뤄야 할 수도 있어서 작은 배를 택하려 했다고 이어 말하고서, 아주 작은 배는 아니고, 고기잡이 배 정도에 탑승하게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예나는 곧바로 나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다.
  "제가 아주 큰 배는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여유로이 탈 수 있는 큰 낚싯배를 제공하도록 해 볼게요. 세상을 지키기 위해 나서시는 분들이 작은 배에서 너무 고생하시는 것은 조금 그러니까, 지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요. 이를 위해 제가 하미르 시청으로 가서 그것에 관한 요청을 해 보도록 할게요."
  그리고서 예나는 사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하미르 시청에서도 요청을 들어줄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음을 알리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배에 관해서는 어떠한 걱정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의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 세나가 예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기억의 사당에 자리잡고 있다는 괴물에 대해 혹시 아시는 바가 있나요, 다마나티엘 선생님께서는 아는 것이 워낙 많아서 괴물에 대해서도 분명 아시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셨군요." 그러자 예나는 세나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바가 없다고 말하고서 자신도 지브로아 인근에 자리잡은 괴물의 전승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본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어쩌면 세나 본인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나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이어 말했다.
  "저는 당분간은 여러분의 뒤에서 여러분을 지원하고 있을게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세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기억의 사당에 관해 뭔가 아는 것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세나는 그것에 대해 즉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언젠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갈 날이 있을 것이라 나에게 말을 건넬 따름이었다.

  이후, 화제는 그간 예나와 함께 있었을 잔느 공주로 옮겨졌다. 샤르기스의 유적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하미르, 하미시에서는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지라,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를 보호하고 있었을 예나가 잔느 공주를 잘 보살피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사전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예나는 잔느 공주를 잘 보살피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던 만큼, 예나를 향한 질문과 그의 대답, 그리고 잔느 공주와 루이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조사 작업 이후로 예나 씨께서 공주님을 잘 보살피시고 계셨어요?"
  "예, 예나 씨와 같이 있을 때에는 무난히 평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역 간 이동을 위해서는 그가 운용하고 있는 '우주선 (Kosmove)' 을 이용했었고, 우주선에 탈 때마다 마치 옛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예나가 그런 그의 모습을 잠깐 보다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운용하는 배를 잔느 공주님께서는 '우주선 (Spaceship)' 이라 칭하시더라고요. 이를 두고 제가 말했지요, 이런 배를 그 시대에는 그렇게 칭했었던 것 같다고. 그런 저의 말에 잔느 공주님께서는 그렇다고 말씀을 하셨었어요. 그러면서 옛 시대에 이런 '우주선' 들이 자주 하늘 위를 오갔다고 말씀하시고, 또 자신도 우주선에 탑승해 본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시기도 하셨었어요."
  예나는 잔느 공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 "이 시대에는 '우주선' 을 어떻게 칭하는가?", 이 질문에 예나는 '하늘 배 (Banalve, Skyship)' 그리고 '우주 배 (Kosmove, Kosmoship)' 이라 칭한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하늘에 수많은 우주선들이 떠 다니는 광경을 상상해 보려 했다고 말하고서 그 시대의 하늘 아래에 있었다면 잠시 동안이나마 하늘을 흥미로운 시선을 가지며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음식 등에 잘 적응을 하시지 못하시기도 하셨어요, 제가 워낙 요리를 잘 못하기도 했었지만."
  이후, 예나는 식생활 등에서 잔느 공주는 처음에는 잘 적응을 하지 못하기도 했음을 밝혔다. 요리를 워낙 못 하기도 해서, 그는 평소에 시장, 제과점 등지에서 산 식빵이나 야채 조각 등을 먹거나 콩을 물에 불려서는 갈아서 마시고는 하는데, 어느 것이든 처음에는 입에 잘 맞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다만, 제과점에서 사 온 카스테야 (Kasteya) 는 그럭저럭 잘 먹고 있어서 카스테야는 그에게 모두 양보해 주기도 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잔느, 그 말 다 사실이야?" 이러한 예나의 말에 루이즈가 의심을 하면서 잔느 공주에게 묻자, 잔느 공주는 사실이라 답했다. 그리고 예나도 사실은 단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가 잘 먹을 수 있는 것이 그것 외에는 없음을 알고 일부러 양보해 준 것 같다고 그에 대해 더 말하기도 했다.
  잔느 공주는 하미시에 이르는 동안 배는 자신이 직접 운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샤르기스에서 유적 탐사를 하기 전까지는 타히온 (Tachion, Takhion) 이라는 조수가 운전을 해 주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가 캅쉴라들 안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관계로 그의 곁에 올 수 없어 예나가 직접 배를 운전하게 되었다고. 다만, 예나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우주선이라면서 원래는 자신이 직접 운용을 했었지만 우주선에 있는 동안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우주선 운용을 할 수 있는 조수를 기용했고, 겸사겸사 이것저것 그에게 가르치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잔느 공주는 예나와 함께 하고 있으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라든지, 예나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 요청을 하기도 했고, 옛 시대의 기록 장치를 발견한 적이 있냐고 질문을 했었는데, 그것에 관해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어 놀라기도 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기록 장치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다, 다마나티엘 교수는 원래 그런 쪽으로 유명했던 사람이었으니-. 그 이후, 잔느 공주는 예나가 자신과 함께 하미시 교외에 이르렀을 무렵, 그에게 자신이 발굴했던 유물들을 비롯해 각지에서 발굴된 골동품들, 유물들을 모아서 박물관을 설립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 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발굴된 기록 장치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잔느 공주는 예나가 발굴했던 저장 장치들 중 일부는 내부 회로가 심각하게 파손되어 내부 신호 구조를 알기 어려웠다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예나가 일행이 알고 있던 바대로 전격 맥동파 (Zrimapuls, ZP) 라 칭해지는 전자파의 일종에 의해 파손된 것으로 이러한 파동은 병기에서 발사되기도 하지만 우주적 재해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하고서 어쨌든 전격 맥동파에 의한 장치의 파손이 있었다는 것은 그 장치가 있었던 곳에는 크나큰 재난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고 자신에게 설명한 바 있다고 하기도 했다. - 나중에 알게된 바에 의하면 예나는 자신의 강연에서 자신이 발굴했던 장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와 같은 견해를 드러냈었다고 한다.
  이후, 예나가 밝힌 바에 의하면 잔느 공주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잔느 공주는 그것을 '전자기 펄스 (EMP, 약어임이 확실했지만 잔느 공주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잊고 있었다, 약어 자체는 자주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 의미까지 자주 들어보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라 칭했으며, 전기로 구동되는 모든 장치들을 내부에서 파손시키는 힘의 일종이라 말했다고 했다. 잔느 공주에 의하면 인류 문명을 전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 수준으로 되돌려 버릴 정도로 위험한 힘이었다는 모양으로 전기, 기계 문명을 발전할 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놀랐었어요, 이런 전문적인 용어가 일반인들 사이에도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래서 옛 문명인들 중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문명 지식에 관해 해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이후, 예나가 말했다. 이런 전문가들이나 사용할 법한 용어가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은 옛 문명인들의 지식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고. 다만, 자신이라면 이런 용어들을 보다 일상적이고 쉬운 말로 전파하려 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예나는 잔느 공주에 대해 자신이 현재의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 요청한 적이 있음을 밝히고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면서 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달라 한 것이었다. 이에 예나는 혹시 현재 시대에는 옛 문명 시대보다 일자리 얻기가 쉽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르사나 님께서는 예전에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많이 있었지요,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인쇄공 일을 하기도 했었어요. 마을에서 짐 날라주는 일을 하기도 했고. 광산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적도 있었어요, 붉은 바위의 산에서. 광부 일은 저 같은 사람은 시키지 못한다고 했었어요."
  이후, 찻집 입구 근처의 벽에 기대어 서 있으면서 내가 오른쪽 옆에 서 있던 잔느 공주에게 내가 예전에 했던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다가 광부 일은 붉은 바위의 산 사람들이 나에게 하지 말라고 했었다는 말에 잔느 공주가 잠시 나의 허벅지, 양 팔 등을 가만히 바라보려 했었고, 이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신지는 알아요, 저도 마력을 통해 힘을 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받아주려고 하지는 않았지요. 그래서 대신 경비원으로 일했던 것이지요, 그간의 전투라든가 인명 구조 경험이 있었기에."
  이후, 잔느 공주가 나에게 또 다른 일로 무엇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건물 밖으로 나가면서 세니아가 나에게,
  "수도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잖아, 그 이야기는 왜 안 해?"
  라고 물었고, 이에 잔느 공주가 놀라면서 나를 바라보며 수도원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는 사무 직원으로서 일했다고 말하고서, 그럼에도 자신은 수도원에서 기거하는 수도사들에 준하는 생활을 했었다고 그 당시의 생활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늘 새벽 일찍 일어나서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22 시가 되면 잠이 들어야 했지요, 물론 그것은 명시된 원칙일 뿐이고, 그 시간 이후에도 자지 못 하는 사람들이야 많았지만. 경력이 어느 정도 되는 수도사 분들 중에서 밤 새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아요."
  "...... 저희 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하네요." 그러자 잔느 공주가 말했다. 그리고 학교든 직장이든 정해진 업무 종료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치고 집에 갈 수는 없었으며, 밤 늦게까지 직장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아예 집에서까지 밤을 새가며 학업에 열중하거나 일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저희가 사는 곳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평소에는 학교와 집 이외에는 달리 가는 곳이 없었고, 또 집에서도 늘 공부에 열중해야 했었지요. 그렇게 학교와 집 그리고 '인스티튜트 (Institute, Instityut)' 들만 오가다가 푸투로 계획이라는 것에 참가하면서는 아예 다른 곳에는 가지도 못하고 계속 공부만 하고......."
  잔느 공주가 말했다. 이어서 루이즈가 귓속말로 자신에게 말한 바가 있다고 하면서 그가 자신에게 자신과 또래 혹은 후배 즈음 되어 보이는 소녀들이 함께 모여 서로 해맑게 웃고 떠들면서 또, 여기저기 좋은 곳을 자유로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동안 그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나를 비롯한 일행을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다고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았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루이즈는 일행에 들어오고 나서는 나를 비롯한 일행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었다. 일행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 그저 배경처럼 말 없이 가만히 있는 듯해 보였지만, 그 때 잔느 공주가 밝힌 바에 의하면 실제로는 자기들만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을 일행을 지켜보며 일행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루이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서 잔느 공주는 처음 일행을 보았을 때,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꽤 진지하게 의문을 갖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르사나 님 등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알아내셨대요, 실제로는 100 년 넘게 사셨다면서요?"
  "...... 맞아요." 이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밝히고서 학교 생활은 사실 잔느 공주, 루이즈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으며, 게다가 자신은 집도 없어서 늘 기숙사와 학교를 오갔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는...... 이전에 말씀드린 대로, 여러 일들을 하고는 했었지요. 그러면서 경험도 쌓고, 지식도 쌓고, 그러다가 이렇게 모험도 하고..... 괴물 퇴치 일이라든가, 그런 일거리를 도맡기도 하면서, 그렇게 사는 거예요."
  이후, 잔느 공주는 마냥 편안하게만 사는 것은 아닐 줄은 알았다고 말하고서, 혹시 궁금한 사항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내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인스티튜트가 뭐예요?" 그러자 잔느 공주가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학생들이 학교 이외에 공부를 위해 가는 곳으로 학교에서와 비슷하게 강의실로 가서 수업을 받고, 또 과제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학교 과제 뿐만이 아니라 인스티튜트 내에서의 과제도 있어서 어느 쪽의 학습에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그저 놀랍고 당혹스럽기만 할 따름이었던 것이, 나에게 있어 학업을 위한 공부라 하면 학교와 집 그리고 독서실에서 하는 것으로 줄곧 알고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충격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충격 속에서 내가 잔느 공주에게 물었다.
  "...... 그런 수업은 학교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왜 그런 학습을 굳이 학교 밖에서까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나의 모습에 잔느 공주는 내가 건네는 질문에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기만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선뜻 답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아 보이기는 했다. 왜 자신이 그런 곳으로 가야 했는지, 왜 그런 곳에서 학습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 납득할만한 사유를 말하지 못하는 듯해 보였다.
  "모르겠다면 모르겠다고 말씀하세요, 모르겠다는데, 어떡하겠어요......"
  "예, 저도 확실히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자 그런 나의 말에 수긍하는 듯이 잔느 공주가 답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각해서 광장 쪽에서 대화를 더 이어가 보자고 청하고서 문화 광장으로 동행하기로 했다.
  찻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날이 저물었던지라 문화 광장으로 돌아갔을 즈음에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가로등이 금색 빛을 발하며 주변 일대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진 광장의 분수대 남쪽 인근의 벤치에 내가 잔느 공주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 찻집 앞에서의 대화를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런 곳에...... 원해서 가신 것은 아니지요?"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그렇다고 답을 하는데, 그 대답이 무척 씁쓸했다. 이전부터 짐작한 바 있었는데, 대답을 듣고 나니 더욱 확신이 왔다. 그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곳으로 가는 것을 종용했고, 그래서 그런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면서 내가 다시 물었다, 누가 그런 곳으로 가게 할 것을 종용했느냐고. 하지만 잔느 공주는 그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르사나 님께서는 평소에는 혼자 지내시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혼자 지내셨어요?"
  그 물음에 나는 바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면 잔느 공주, 루이즈 등은 필경 놀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정말 그 대답을 듣고 싶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잔느 공주는 이렇게 반문하는 나의 분위기를 잘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그 대답을 듣고 싶다고 답을 했고, 이에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여기면서 조용히 한 숨을 내쉬면서 알겠다고 말한 다음에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해 주기로 했다.
  "아주 어렸을 때예요. 어머니와 단 둘이서 슈라일 (Shrail) 이라는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이에 잔느 공주가 놀라며 어떻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느냐고 물었지만 어렸을 때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속 사정에 대해서는 지금껏 나에게 알려진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기에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지금도 잘 몰라요.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어린 나이에 샤하르 (Shahar) 라는 도시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 이후로 저는 샤하르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진학하면서 기숙사와 친구 집을 오가며 생활하게 된 것이지요."
  "어머니께서 어떤 분이셨는지는 아시고 계세요?"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갈구하셨던 분이셨던 것 같아요, 호숫가에서 저와 단 둘이서 살려 하시면서 집 앞의 뜰에 꽃을 심으시고, 텃밭도 꾸미시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려 하셨지요. 아마도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제 삶은 지금과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을 전부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와 함께 살게 된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만 말해 줄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적어도 나와 함께 있을 동안만큼은 너무도 좋은 사람, 좋은 어머니, 상냥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좋은 분으로 기억하시고 계셔서 천만 다행이에요."
  그러자 잔느 공주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어머니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천만 다행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잔느 공주에게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그러자 잔느 공주가 그런 나에게 이렇게 답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공부만 시키고, 인스티튜트 같은 곳에만 보내셔서 어머니께 서운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한 때는 아버지, 어머니를 너무도 많이 원망했었고, 어른이 되면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 어머니와는 절대로 같이 살지 않겠다고, 아버지, 어머니와 떨어져서 저만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을 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다가 아버지,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푸투로 계획에 참가하고, 동면 캡슐 (Kaepsyul, 캅쉴라) 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날에 비로소 도착한 어머니의 편지를 보고 난 이후였어요."

  잔느 공주의 어렸을 적 기억에서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잔느 공주의 어린 시절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바로 인스티튜트라는 곳으로 가고, 밤 늦게까지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또 아버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학습서를 펼치고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것 뿐이었다. 간혹 학교에서 보다 즐겁고 여유롭게 생활하는 학우들의 모습을 말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했었지만 내심 그들을 무척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보다는 너무나 자유로웠기에. 그래서 처음에는 디든 학업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다가 그것이 곧 학업에만 자신을 붙들려 하는 부모에게 옮겨진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언제부터 그런 생활을 하기 시작했느냐고 물었고, 그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가 학교와 인스티튜트들을 오가고, 집에서조차 학업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그는 처음에는 잘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겨우 기억해낸 듯이 답을 했는데, 무려 유치원 (=ayisri) 을 다닐 때부터였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딱 좋았다, 일행 중에 공부 벌레라 칭할 만한 이가 없기도 했겠지만-사실은 내가 공부 벌레로 칭해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다른 말 없이 책 읽기와 운동 등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행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학업에 매달린 이도 없었고, 그것을 강요받은 이들은 한 명도 없었기 떄문이었다. 카리나는 어릴 때에는 말썽쟁이였고, 세니아는 인형 놀이가 그렇게 좋은 소녀였던 이였다. 일행 중에 가장 얌전하고 바른 이로 보일 법한 세나는 연애 소설에 너무 빠져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 덤으로 세니아가 그런 세나를 뭐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책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형편이 좋지는 못 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놀 수 있을 때, 놀고 싶을 때에는 그래도 막 놀았다. 마법 수련이나 체력 단련을 하기도 했었지만, 모험을 즐기고 위험한 곳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랬으니, 잔느 공주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원치 않은 삶에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시간들을 바쳐야 했으니, 대체 누구를 위한 삶이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날 법 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기 바로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고등학교 (Nofskola) 에 진학하자마자 푸투로 계획 (Project Futuro) 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외부에서 지시를 받은 학교 측의 지시 사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된 것으로 애초에 자신이 진학한 학교가 푸투로 계획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었다고 했다. 그 푸투로 계획에 참여하고 다시는 (그리고 영원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이후에도 편지 연락 하나 되지 않았기에-휴대 전화기는 계획에 참가한 이후에는 기관에 제출되었으며, 이후 해당 물품은 집으로 전해졌다고 하며,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훗날 아버지, 어머니가 그의 전화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은 그 무렵에 극에 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동면을 마치고 다른 행성에 도착하게 되면 아버지, 어머니의 존재는 완전히 잊어버리겠다고 결심을 할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동면 직전에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의 가족으로부터 편지가 도달했는데, 그 때가 되어서야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었지요."
  편지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고, 그 이후에 바로 동면을 한 영향도 있어서 이제 편지의 내용은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고 잔느 공주는 말했지만 편지가 어떤 내용을 갖고 있었는지는 대략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 집에 제가 갖고 있던 휴대 전화기가 도착했대요.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휴대 전화기로 제가 사진기로 마련한 사진들, 문구 전송기를 통해 제가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어구들, 제가 전화기에 기록해 두었던 저의 일기를 보면서 그제서야 저의 진심을 알게 되셨대요."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옛 시대의 개인 물품은 남이 함부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보안 장치를 해 두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참가자들 중 일부는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자신의 흔적을 가족들, 친구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화기를 제출하면서 이런 보안 장치들을 해제했으며, 잔느 공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보내진 잔느 공주의 물품을 통해 그의 부모는 그의 진심을 엿보고 이후에 그에게 편지를 써 준 것이었다고 한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을 것이다, 잔느 공주의 증언을 토대로 내가 한 번 재현해 본 편지글이다 :

  딸아, 아버지는, 어머니는 그 동안 네가 뛰어난 영재가 되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었단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네가 사회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그래서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어. 그래서 지금껏 너를 학교에 다니게 하면서 인스티튜트들에도 다니도록 해야 했었지.
  아버지, 어머니 역시 너처럼 힘겨운 시절을 보내야 했어, 그래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네가 그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적도 있었어, 언제였던가, 4 월의 어느 봄날, 그것도 휴일이었던 어느 날에도 인스티튜트에 간다고 힘 없이 집을 나서는 네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모처럼의 쉬는 날에는 마음 편히 놀러 다니거나 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늘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너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참 안쓰러웠어. 이런 너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힘이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아버지, 어머니도 너를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구나.
  아버지, 어머니는 네가 친구들과 함께 머나먼 우주를 거쳐 어떤 행성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오래 전에 들었다, 우주선이 행성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100 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래서 너는 오늘이 지나면 동면 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들었어.
  딸아, 어쩌면 네가 이 편지를 받고 나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네가 어디에서 어떻게 깨어나든 그 곳의 아이들은 너처럼 어릴 때부터 치열한 삶을 강요받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너 역시 앞으로 네가 키울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으면 하고. 아버지, 어머니 마음에는 네가 그 세상의 아이들을 만나고 나면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너무도 아쉽구나. 그 세상의 아이들에 대해 네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면 꼭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후, 그리고 앞으로 네가 맞이할 새 세상에서의 나날들 동안 너에게 행운과 건강이 가득하기를 바라겠다. 늘 사랑하고, 기억할게.

  "그제서야 저는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를 저의 마음에서 용서를 했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기 그 전 날에."
  이외에도 자기 주변에는 자신의 옛 주변 사람들-주로 부모들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들은 대부분이 학생들이었고, 그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부모들이었을 테니-로부터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곳곳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예 슬픔에 겨워 서럽게 우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당시에 잔느 공주와 함께 있었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때는 늘 일상 속에 있었지만 이후로는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을 이들의 진심을 편지를 통해서나마 전해 받으면서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새삼스레 느꼈으리라, 그리고 그리운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없는 현실에 슬퍼하고, 누군가는 그들에 대한 미안함의 감정에 울부짖고, 누군가는 그들에 대한 이별의 감정으로 눈물 지었으리라.
  잔느 공주도 그 당시에 부모로부터 편지를 받고 깊은 슬픔에 빠져 들었지만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곧 관리자들이 다가와서 참가자들을 마구 다그쳐 더 이상 울지 못하게 윽박질렀다고 한다. 그 때 들려온 말은 이러하였다고 한다 :

  "운다고 그들이 와 줄 것 같냐!? 그런 과거에 미련을 남겨 봐야 너희들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알아!? 그러니까, 당장 닥치고 과거는 몽땅 잊어버려! 너희들에게 다가올 미래에 집중하란 말이야, 알았어!? 지금 이후로 한 번이라도 우는 것들이 있으면 그대로 캡슐 안에서 동사시켜 버릴 테니까, 그리 알아!"

  대체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듣다 보니, 심하게 짜증이 나 버렸다,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서러움을 다독이지는 못할 망정, 윽박지르고 입을 틀어막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그 관리자가 계획을 주도한 인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과거와의 결별을 그런 식으로 강요하는 관리자의 존재만으로도 그 계획이 근본부터 얼마나 틀어져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법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리 깨어나지 못한 참가자 대다수의 상태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짓거리를 저지른 이들의 수장이 지금 나의 적이 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잔느 공주님께서는 아버지, 어머니를 다시 보시고 싶은 생각을 지금도 갖고 계시나요?"
  하지만 잔느 공주는 이제 와서 부모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잠들어 있는 도중에 한 번씩 자신과 영영 헤어진 이들과 함께 하는 꿈을 꾸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들 그리고 자신과 인연을 가진 이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다른 이의 집에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 모습이 흐려지면서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고 했다.
  "꿈 속에 있을 때마다 생각해요, 언제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고,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 다행이고, 또 영영 헤어진 줄 알았던 이들과 다시 만나게 되어 그 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 기뻤다고.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나고 저와 인연이 없었을 이들의 모습을 보며 깨닫지요, 그것은 저의 공허한 바람일 뿐이었음을."
  잔느 공주는 꿈에서 간혹 긴 머리카락의 여인이 다가올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 세상 사람이라 생각지 않을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을 가진 너무도 아름다운 앳된 여성. 어느새 그는 꿈에서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여인이 다가오는 순간, 꿈은 사라져 버리기 떄문이었다고. 그러면서 나에게 물었다, 나에게는 그와 같은 꿈을 겪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몇 번 있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천문대의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어느새 그런 꿈은 저를 찾아오지 않더군요. 어렸을 때와 달리,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릴 새가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아니면 수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그 그리움이 무디어졌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 물음에 나는 조용히 답했다. 그 때까지 나는 오로지 잔느 공주에게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그래서 주변에 누가 찾아오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뒤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 보니, 그런 나의 등 뒤로 세나 그리고 예나가 나와 잔느 공주를 지켜보는 모습이 보였다.
  "다 듣고 있었어요." 세나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잔느 공주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루이즈 씨께도 말씀드렸어요, 지금도 늦지는 않았고,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면 될 거예요."
  "그렇겠지요?" 이에 잔느 공주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반문하듯이 답했다. 그리고 조용히 나와 세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나와 함께 광장의 북쪽 길목을 따라 나아가려 하는데, 그런 그에게서 이런 혼잣말이 들려왔다 :

"다른 사람들도 깨어나서 그렇게 자신들만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그 혼잣말을 하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쓸쓸했다.
  "잔느 공주님께서 설마 동료 분들의 상태를 알아차리신 것일까요?"
  그 모습을 보며 세나가 우려하는 듯이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어렴풋이 짐작한 바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또 동료들의 실상을 이미 알고 있었을 루이즈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고 대답을 통해 내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예나도 동면 중인 이들을 조사하며 이미 그들의 실상을 알아차리고 있었겠지만 그들이 해동되면 혹시 살아날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그들의 상태에 대해 단언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거리의 분위기가 한산해지면서 밖에 있던 일행은 숙소로 정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북쪽 경계 부근에 있는 128 번 건물로 방은 3 층의 303 호실이다. 본래는 일행과 더불어 루이즈가 함께 지내기로 했다가 여기에 잔느 공주가 그런 일행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보다 못한 예나가 방을 하나 더 마련해 주어 304 호실도 일행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는 잔느 공주, 루이즈를 비롯한 이들이 따로 쓰라고 예나가 마련해 준 곳이었는데, 실제로 들어가려 한 이는 카리나, 세니아였다. 잔느 공주, 루이즈 모두 303 호실을 고수하려 한 나와 함께 하려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 예나는 자신이 북쪽 경계 근방에 세워 둔 자신의 배로 돌아갔으며, 아침이 되면 찾아오겠음을 밝혔다. 본래는 루이즈, 잔느 공주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다른 일행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방에서 자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방이 2 개가 되어서 좋기는 한데......."
  "그런데 왜?" 두 개의 방을 일행이 사용하려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에 잠기고 있다가 혼잣말을 하던 나에게 세니아가 오른편 옆에서 다가와서 이유를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조용히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답을 하였다.
  "...... 꼭 이렇게 일행이 방을 여러 개 쓰면 이런 애들이 나오더라고. 다들 잠들고 있는 사이에 옆 방으로 몰래 쳐들어가서는 말야......."

  이런 경우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여러 방에서 잠들고 있다 보면 꼭 자신이 있는 옆 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이런저런 장난질을 치는 이들이 있다는 것으로 주로 잠든 틈을 타서 얼굴에 낙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 자는 데에 들어와서 자는 애들 위에서 앞구르기를 하는 엄청난 장난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방에 있는 이들끼리 베개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얼굴에 낙서하기, 베개 싸움하기는 어린 애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학교의 상급생들도 많이 했다.
  간혹 옷을 벗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잘 들키지 않을 수 있는 바지, 치마를 벗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물론 들키는 경우도 당연히 있었고, 들키면 베개로 얻어맞거나 심하면 발길질까지 당했기에 그야말로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새삼 놀랍기는 했지만 카리나, 세니아는 이 모든 장난을 다 해 봤다고 한다. 특히, 세니아는 애들 옷 몰래 벗기기를 한 번씩은 해 봤다고. 그래서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것만큼은 제대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세니아에 대해서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카리나로부터 세니아에 관한 그 증언을 들으며, 나는 핀잔을 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후, 카리나가 밝히길, 세니아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자신은 여자니까 같은 여자에게 엄한 장난을 치더라도 문제 없을 것 같아 거침 없이 장난을 쳤다는 모양으로 만약에 자신이 남자였다면 그렇게까지 장난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인기 투표도 했었지?" 이후, 내가 카리나에게 질문을 할 무렵, 나의 오른편 옆에 서 있던 카리나의 옆에 세니아가 벽에 기대어 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후, 카리나를 대신해 세니아가 그렇다고 답을 하자마자 카리나가 그런 세니아에게 물었다.
  "세니아가 학교 인기 투표에서 1 등한 적도 있었다면서?"
  이후, 세니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다, 그것도 꽤 자주 인기 투표에서 1 등을 했었다고. 카리나 역시 별로 믿을 수 없었다는 모양으로 바로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었다.
  "참 신기했었어, 너 같은 변태 자식이 어떻게......."
  "그런데, 나는 그러할만 했다고 생각했었어." 그러자 내가 카리나, 세니아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리본을 머리 뒤쪽에 매고 있는 세니아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예쁜 애가 세상에 그렇게 흔하지는 않잖아, 게다가 사고라도 일어나면 앞장서서 뛰쳐 나가고, 겁도 없어서 애들이 무서워하는 곳에 앞장서서 나서기도 하고......."
  "그랬기는 했지." 이에 카리나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인기 투표 그런 것은 없었느냐고 묻자, 나는 그런 것은 없었지만 학교에서 발간하는 잡지의 모델 역할을 한 적은 있음을 밝히고서, 간단히 이유를 말했다 :
  "돈 벌려고." 이에 세니아가 씁쓸히 목소리를 내며 "그랬었지, 돈 벌려고 모델 했었다고." 라고 말하고서, 자신도 모델 일을 했었다고 말한 다음에 순전히 인기 투표에서 1 등 했다가 교내에서 발간하는 잡지의 모델로 여러 차례 선정이 됐었음을 밝혔었다.
  "그 때, 너는 돈 못 받았잖아."
  "돈 달라는 소리도 못 했지. 돈 받으려고 자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물음에 세니아가 조용히 답했다. 그러다가 곧, 카리나는 세니아에게 핀잔하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넸다.
  "하여간...... 인기 투표를 할 때나 잡지 모델에서 그려진 네 모습을 보면서 애들은 몰랐을 거야, 너가 이렇게 변태라는 것 말야. 너 같이 꾸며진 애가 사람들이 옷을 벗는 모습을 보면서 실실 웃는다니, 보통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할 것 같아."
  이에 세니아가 발끈한 듯이 "내가 언제 그랬어!!!" 라고 반발을 했고, 이에 카리나가 실실 웃으며 304 호실로 들어가려 했고, 이에 세니아가 그런 카리나의 뒤를 따라 가다가 그를 왼쪽 다리로 걷어차려 하면서 그에게 이렇게 외쳤다.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정말!!!"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엄포를 놓았다. (물론 장난성 발언이었고, 다들 그렇게 알아듣고 있었다)
  "너희들, 자는 시간에 엉뚱한 짓 하다가 걸리면 죽는다, 지켜보고 있을 거야, 알았어? 그리고 303 호실에 잔느 공주님, 루이즈 씨 주무실 텐데, 그 분들께 엄한 짓하다 걸리면...... 너희들, 전부 여기를 떠나지 못할 줄 알아!"

  "아르사나 님, 303 호실에서 주무실 것이지요?"
  "그렇기는 한데......." 이후, 루이즈가 잔느 공주와 함께 내 곁으로 다가오면서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다소 떨떠름하는 듯이 답했다. 당장에 잘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이 어두워져도 그 날은 이상하게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전에도 사실상 주무시지 않으시지 않으셨나요?"
  이에 루이즈가 놀라면서 나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대충 자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자면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고 화답했다. 이에 루이즈는 그렇다면 자신도 같이 지새고 싶다고 말했고, 잔느 공주 역시 나를 따르겠다고 말했다.
  "아니, 공주님께서는 주무세요, 공주님이 어찌 감히 저를 따라......."
  하지만 잔느 공주는 자신이 나의 곁에 있겠다고 말하고서 이래저래 피곤했을 루이즈에게는 잠자리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사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 생겼다, 샤하리아, 슈라일 호수에서 만났던 사리 공주와 그 일행이 바로 그들. 나의 원수라 할 수 있는 포레 느와흐에게 끌려갔을 그들이 그 때만큼은 묘하게 계속 상기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 잔느 공주 그리고 사리 공주는 과연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바로 그 생각. 그리고 때가 되면 사리 공주에 대해 잔느 공주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아르사나 님, 많이 피곤하실 테니까, 밤에는 잠깐이라도 주무세요."
  "알았어요." 이후, 잔느 공주가 나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고, 이런 부탁에 나는 그의 부탁을 따라 303 호실로 들어가서 잠깐이나마 잠들기로 했다. 장난꾸러기들이 없는 방에는 세나, 나에티아나 그리고 잔느 공주와 루이즈가 있었는데, 이러하다보니, 303 호실에 있는 것이 참 민망했다.
  '내가 이 방에서 제일 성격 더럽네.'
  "아니, 너는 우리가 가는 어디에도 제일 성격 더러워!" 그 때, 그런 혼잣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옆 방에 있던 카리나가 놀리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루이즈가 당황하며 "정말이에요?" 라고 물었고, 이에 내가 씁쓸하게 목소리를 내며 그렇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내가 일행 중에서 가장 욕을 많이 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내가 이렇게 욕쟁이가 되고 성격 더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시고 계시면 많이 씁쓸해 하실 거예요."
  하지만 루이즈, 잔느 공주 모두 그런 나의 말을 선뜻 믿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때, 세나가 나를 보더니 나에게 잔느 공주, 루이즈 모두 나를 그럼에도 자신을 위한 기사로 생각하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아르사나 씨는 저희들과 가장 잘 어울리신 분 아닐까하기도 해요."
  "무슨 말이야?" 이에 내가 침대 건너편의 탁자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가 나의 바로 앞에 서 있으면서 답했다, 방 안에 있는 이들 모두 공주와 같은 대접을 받는 이들 아니냐는 것.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당황하면서 다시 한 번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자, 세나가 바로 이렇게 화답했다.
  "예나 씨께서 아르사나 씨를 아가씨라 칭하시던 모습을 봤어요."
  "나도 들었는데, 왜 그러하시는지 모르겠어, 내게 무슨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이에 나는 예나의 그런 행동에 대해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했고, 이어서 그런 칭호는 소르나 혹은 레테사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세나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세나는 그런 나의 질문에 그냥 조용히 미소를 짓기만 할 뿐, 달리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그 미소가 묘하게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런 그에게 무슨 의미를 가진 웃음이냐고 물어봐야 나라면 알고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임이 분명했기에 그에게 더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방이 하나 더 생기고, 일행이 분산되면서 자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침대에는 루이즈, 잔느 공주가 자도록 하게 되었으며, 소파에는 세나가 잠들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 자다가 일어날 것인 만큼, 일단은 탁자 근처의 의자에 앉아 잠들기로 했다. 마침 탁자 위에는 책들도 놓여 있어서 겸사겸사 책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티아나는 카리나, 세니아와 함께 304 호실로 가서 자게 했다. 잠자리를 비좁게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카리나, 세니아의 장난질을 감시하는 목적이 있기도 했다.
  "아르사나 님께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가만히 앉아서 딱히 할 일이 없다면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는 했으니까요."
  이후, 루이즈가 침대 위에 앉아서 물음을 건네자 내가 바로 그렇게 답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틈나는 대로 사 놓았던 책들을 읽고는 했다. 세나와 달리 소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역사서나 기행문 혹은 학문 관련 서적들을 자주 읽어보고는 했었고, 이것이 그 때까지 이어진 것-물론, 그것이 학업의 성적과 직접 연관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에는 경전이나 기행문을 보면서 그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 적도 있었지만 그 소망을 끝내 이루지는 못했다.
  "잔느, 예전부터 저런 애들 보면 샘나거나 하지 않았어?"
  그 무렵, 루이즈가 자신의 오른편에 나란히 앉아있던 잔느 공주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잔느 공주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틈만 나면 책을 보고 공부하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부모들이 각자의 자식들을 닥달하고는 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봤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냥 책만 읽어서는 안 되고, 문제 풀이를 많이 했어야 했었지, 책만 보면 책만 본다고 또 뭐라하시는 분들도 계셨어."
  "그러게......." 이후, 잔느 공주가 건네는 말에 루이즈가 공감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책만 보면 안 됐다고?' 라고 흠칫 놀라면서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책만 보면 안 되는 것이야 학업에서 당연하기는 했지만 매일 같이 문제 풀이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르사나 님께서는 공부가 재미있으실 때가 있었어요?"
  이후, 루이즈가 나에게 물었지만 그 물음에 나는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나에게 필요한 분야가 있어서 그것을 배우는 데에 전념했을 뿐이라 답했다. 이후, 나는 탁자에 놓인 책들을 한 권씩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들 중 가장 위에 놓인 책은 주사위 놀이의 역사에 관한 책이었고, 두 번째 책은 하미르 각지의 여행 가이드 북 (Gilyelibra) 이었다. 세 번째 책 역시 놀이에 관한 가이드 북인 듯해 보였으나, 대체 무슨 놀이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그냥 멍하니 책을 펼쳐 보기만 하다가 그냥 덮었다.
  그렇게 책들을 대충 열람하다가 탁상 위에 고개를 파묻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오래 자고 있었는지는 감히 잡히지 않았다. 다만, 깨어났을 때에는 방에 있던 모두가 잠들어 있었고, 바깥 세상은 이미 고요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가며 방을 나섰고, 그 이후에 곧바로 여관 건물을 나섰다.



  남쪽으로 나 있는 길목을 따라 나아가서 마주한 문화 광장은 분수대에 그간 뿜어져 나오던 물도 그치고, 건물들의 등불들도 모두 꺼져 있고, 길거리의 가로등들만이 환하게 주변 일대를 밝히고 있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잠들어 버린 고요하기 이를데 없는 밤이었다.
  그런 고요함 속의 광장에 이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광장의 분수대 앞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 보려 하였다. 그 순간 나의 눈앞으로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때 마침 어두워진 하늘 위로는 나무의 등불과 별들이 환하게 빛을 발하는 데, 어떤 이가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다.

  한밤중에 체조, 라는 말이 있다. 뜬금 없는 때에 뜬금 없는 짓을 한다는 핀잔성 어구로 해안가에 여행삼아 머무르고 있다가 날이 어두워질 무렵, 느닷 없이 어딘가에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찻집에서 창가를 내려다 보니, 인근 광장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을 음악 소리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보면서 문득 떠올렸던 말이 그 어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어구의 의미대로 그 무리에게 핀잔을 주고 놀리기 위해 그들이 있던 곳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사람들이 신나게 체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속에서 보이는 활기를 근처에서나마 느껴보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고요했던 그 날 밤의 광장에서 유일하게 신났던 순간으로 체조는 한 시간 즈음 지나서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광장과 주변의 거리는 순식간에 고요해지고 있었다.

  "그 때, 그 광장의 모습이 떠오르네."
  춤을 추는 누군가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자세히 보려 하면서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칠흑과도 같은 검은 드레스, 소매가 없고, 치맛단이 무척이나 짧았던, 그래서인지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던 드레스 차림을 한 여성은 팔과 다리를 뻗어가며 정숙하면서 한편으로는 역동적인 춤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광경에 시선을 두며, 그 쪽을 향해 다가가다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라고 혼잣말을 하며 분수대에 걸쳐 앉으려 하다가 그 여성의 머리에 검은 왕관이 씌워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내가 앉아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바로 앞에서 오른팔을 하늘 위로 뻗으니, 그와 함께 좌우에서 한 무리의 검은 드레스 차림을 한 여성들이 몰려와 그의 좌우에서 대열을 이루기 시작하고, 이어서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너무도 매혹적인 광경이었지만 '한밤중에 체조하기' 라는 핀잔성 어구가 나올 정도로 느닷없어 보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그들의 군무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얼핏 보더라도 순수하게 춤을 추고 싶어서 모인 이들 같지는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군무를 보이고 있던 이들은 각자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며 사라져 갔다.
  "대체 무슨 광경이었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야말로 '한밤중에 체조하기' 와 같았던 이상한 군무가 끝나고 무용수 여성들이 모습을 감출 무렵, 등 뒤쪽에서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고우면서도 어른스러운 느낌이 나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지금껏 여기에서 계속 보시고 계셨던 거예요?"
  "아니오." 일어나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서니, 나의 눈앞에 하얀 드레스 차림을 한 어떤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는 은빛 왕관을 쓴 검은 머리카락을 묶어 올린 여성. 그 외견을 처음 봤을 때에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얼굴 모습을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났는데, 그 때, 그로부터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알아보시지 못하시겠나요?"
  "설마......" 그 때, 나는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 모습은 슈라일 호수, 나와 어머니의 옛 집 부근에서 마주했던 사리 공주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내 앞에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 있던 여성에게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당신께서 사리 공주라 칭한 이가 바로 저예요."
  "사리 공주?"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그의 모습이 사리 공주의 모습이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사리 공주로 칭하는 목소리에 새삼스레 그가 사리 공주와 같은 모습을 가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이상했다, 사리 공주는 그와 같이 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이들과 늘 함께 하고 있었을 텐데, 그 때의 '사리 공주' 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혼자 나의 앞에, 카리나 등의 동료들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반가워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그러자 '사리 공주' 가 나를 보며, 무엇을 묻고 싶은지에 대해 물으려 했고, 이 물음에 내가 바로 이렇게 되물었다 : 왜 혼자 왔느냐고, 자신이 아는 사리 공주는 늘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있었고, 포레 느와흐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힘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 갔었다고 말하고서 그런 동료들은 지금 어디에 두고 혼자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사리 공주' 가 답했다, 그들은 무사히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다고, 그리고 자신은 나를 만나고 싶어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무릅쓰고 혼자 오게 되었다고.
  "...... 그렇다면 그 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그 말을 듣고 내가 다시 묻자, '사리 공주' 는 그렇게 믿지 못하겠다면 곧 그들을 나의 앞으로 데려오겠노라 다짐하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에 동료들을 데려오겠다고 다짐하는 듯이 하는 그의 말에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일단은 그의 말을 믿어주기로 했다, 아니 믿어주는 척이라도 하기로 했다. 동료 없이 혼자서 나를 찾아오고 나서 내가 자신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에 '사리 공주' 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저도 혹시나 싶어서 질문을 드려본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서 나를 만나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그에게 묻자, '사리 공주' 는 나에게 바로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이었다 : "함께 춤을 추고 싶어요!" 라는 답. 너무도 환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처음 같이 춤을 출 때처럼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거절의 의사를 드러냈다.
  "괜찮아요, 여기에는 저와 당신만 있는 걸요, 그래서 부끄러워 할 것도 없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함께 좋은 춤을 추도록 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이후, 거듭되는 '사리 공주' 의 요청에 나는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좋은 춤을 보여주는 편이 더 좋다고 말한 다음에 그 때의 나는 함께 춤을 추기에는 많이 모자란 만큼, 내가 개인적으로 많은 연습을 하겠음을 밝히고서 때가 되면 그에게 같이 춤을 출 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 제 근처에 있도록 하시지 않으시겠어요?"
  그리고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건네는 제안에 '사리 공주' 는 "좋아요!" 라고 답하고서 언제라도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그렇다면 자신이 춤을 추는 모습이라도 보아줄 것을 요청하고 지금 자신이 보이는 것이 앞으로 함께 추게 될 춤이니 잘 지켜보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후, 광장의 한 곳으로 걸어 나아간 '사리 공주' 는 내가 분수대 가장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진지하게 자세를 잡고, 오른 다리를 뒤로 뻗으면서 마치 눈앞에 있는 이의 손을 잡으려 하는 듯이 왼팔을 앞으로 내미는 것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후, 어딘가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음악에 맞춰 화려한 춤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사리 공주님께서 무용에 관한 학교에 다니신 적이 있다고 하셨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내가 했던 혼잣말이었다.

  처음에는 무도회의 춤과도 같이 우아하게 시작해서 격렬하게 이어지는 춤. 이러한 춤을 그와 함께 하려면 격렬한 몸 동작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용은 너무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을 한 이들의 아름다운 춤을 보고 있자면 마치 꽃이 흩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무용을 하려는 이들, 그래서 무용을 배우려 하는 이들은 이러한 아름다움에 반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게 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춤의 아름다움을 동경한 이들 중에서 그 아름다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들은 언제나 많지 않았다. 무용을 위해 샤하르의 학교에 들어오려 한 이들 중 다수는 운동 능력이 떨어져서 불합격했고, 그래서 무용과에 지원한 이들 중에 학교에 들어올 수 있는 이들은 수십 여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실습을 우연히 목도한 적이 있었다. 발끝에 의지한 채로, 그리고 다리를 높이 올린 채,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옷차림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넋을 놓은 적이 있었다. 너무도 곱디 고운 얼굴과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몸매가 그들이 입은 드레스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고, 이러한 모습에서 나는 도저히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실습실에 잠깐 들르다가 가야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그 때, 학생들이 그런 나의 모습에 시선을 두기 시작하더니, 뭐라 수군대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나는 다급히 실습실을 떠나야 했었다. 그 때, 할 일은 제쳐 두고, 그들의 모습을 마냥 보기만 했음에 그들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사리 공주는 예술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예술 학교에서 그가 어떤 재능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슈라일 호수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알 수 없었지만 그와 함께 무용을 했을 때에는 그저 그가 이끄는 대로 내 몸을 맡기고는 했었다. 몸이 아프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도 즐거웠고,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사리 공주' 는 그 모습은 확실히 그 때의 사리 공주가 맞았지만 전혀 그와 같다고 여기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이는 누구일까, 그는 필경 이전에 만났던 사리 공주를 따라한 누군가였을 것이고, 그의 존재 목적은 아마도 나를 속이는 것이었으며, 그는 필경 포레 느와흐와 관련된 존재였을 것이다.

아르사나! 위험해!!!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언니!!! 이제 그만 해요!!!

  그 무렵, 슈라일 호수가에서 들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마음 속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카리나, 에이샤의 다급한 외침, 사리 공주를 포레 느와흐의 손아귀에서 어떻게든 잡으려 했던 나를 향한 외침이었다. 그 외침을 떠올리며 나는 포레 느와흐가 나를 속이기 위해 사리 공주의 모습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포레 느와흐는 사리 공주의 모습을 이용해 나를 속이고 있을 거야, 자신의 곁으로 와 준 사리 공주를 보면서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이전까지 내가 사리 공주의 기사 노릇을 했던 것처럼.'
  그러면서 나는 다시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해 볼 테면, 해 보라지. 내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서 나는 진짜 사리 공주는 여전히 포레 느와흐에 의해 잡혀 있으며, 그가 마련해 둔 특정한 장소에 그의 동료들과 함께 구금되어 있을 텐데, 잘하면 그를 통해 그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짜로 추정되는 '사리 공주' 는 나의 앞에서 아름다운 춤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를 현혹하기 위한 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춤에 내 마음을 맡기거나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사리 공주' 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춤이 끝났다. 그리고 자세를 가다듬고서 분수대 가장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갔다. 뒷짐을 지고 허리를 숙인 채, 자리에 앉은 나와 시선을 맞추려 하면서 '사리 공주' 는 나에게 춤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아차, 박수 치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새벽 즈음에 나와서 잠깐 졸았나 봐요."
  그러자 나는 환하게 웃어 주면서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새벽에 나와서 멍하니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다가 졸음이 쏟아져서 깜박 박수 치는 것을 잊었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사리 공주' 는 바로 서려 하면서 나에게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서 많이 피로하지 않느냐고 나에게 이어서 묻기도 했다.
  "많이 피곤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잠이 잘 오지 않네요."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니, 무슨 말씀이시지요?" 그러자 '사리 공주' 가 곧바로 나에게 무슨 말인지에 대해 물으려 하였고, 이 물음에 내가 답했다, 새벽에 이상하게 나도 잘 모르는 무언가가 신경이 쓰여서 잠이 잘 오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나아질 테니, 너무 신경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내일 아침이 되면 이 곳을 떠나려 하시지요?"
  이후, '사리 공주' 는 나의 왼쪽 곁에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내일 아침에는 떠나려 하지 않느냐고 물음을 건네었다. 이러한 물음에 나는 "그렇지요." 라고 즉답하고서 아침이 되면 바로 짐을 싸서 하미르로 떠나갈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저를 따라가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기는 해요."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하미르로 떠나갈 것이라는 나의 말에 자신도 따라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나를 따라가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려줄 것을 부탁하고서, 그 부탁을 들어주면 나를 따라가는 것은 물론,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사리 공주' 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 동료 분들께서, 어디에 계신지를 말씀해 주세요."
  "동료들이라면...... 저와 함께 하던 이들을 말함이지요?"
  "물론이죠." 이후, '사리 공주' 의 되물음에 나는 당연하다고 답을 하고서 동료들과 늘 함께 있었던 그라면 그들이 있는 곳을 누구보다 더욱 잘 알 것이라 그에게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사리 공주' 는 곧바로 자신의 동료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었다.
  "그게...... 혹시 그 분들을 만나려 하신다면 다소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리 공주' 가 밝힌 바에 의하면 그의 동료들은 지금 미하일리스 (Mikhailis) 의 화산의 자드락 일대에 모여 있음을 밝히고서 포레 느와흐의 박해를 피해 일부러 위험한 곳에 모여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당장에는 포레 느와흐의 시선이 닿지 않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몰라 불안하다며 가급적이면 빠르게 그 일대로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사리 공주' 는 나에게 이전에 호수에서 만났던 동료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사리 공주의 곁에 나 뿐만이 아니라 카리나 등도 있었음을 의식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이에 나는 그는 지금 내 곁에 없다고 답하고서 자신의 일이 있어 다른 곳으로 갔다고 이어 밝혔다.
  "그래서 그 분께서 지금 곁에 없으신 것이로군요."
  "그런 것이지요." 그리고 '사리 공주' 의 말에 화답을 한 이후, 나는 '사리 공주' 에게 아침이 되면 광장에 나와 있을 테니, 기다려 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사리 공주' 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환하게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라고 말했다. 그 때 마침, 노랗게 빛나는 한 쌍의 날개가 내가 있는 일대를 맴돌기 시작했고, 이에 '사리 공주' 는 놀란 듯이 광장을 떠나려 하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그 한 마디 말과 함께 '사리 공주' 는 다급히 광장의 동쪽 방향으로 떠나가려 하였다. 이에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이미 '사리 공주' 는 내 곁을 떠나간 이후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주변 일대의 상공을 맴돌던 한 쌍의 날개는 그 이후로 한 동안 계속 내 주변을 맴돌기를 반복하다가 내가 있는 곳, 그 바로 앞에 착지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에티아나였다.
  "보고 있었구나." 그의 착지를 보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를 맞이하며 말했고, 이에 나에티아나는 "예, 보고 있었어요." 라고 화답한 다음에 그에게서 어둠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고 말하고서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나는 미처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진짜 사리 공주가 아님을 바로 알아차릴 수는 있었다고 말한 다음에 나에티아나에게 이렇게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지금 바로 숙소로 가, 그리고 동료들이 깨어나면 우선 카리나에게 사리 공주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줘, 지금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리 공주는 포레 느와흐의 수하가 꾸미고 있는 가짜라고 말야. 카리나라면 나와 함께 사리 공주를 직접 만나, 그 행보를 지켜봐 왔기에 내가 무슨 말을 전하려 하는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알겠어요, 바로 말씀 전하러 가 볼게요!" 그러자 나에티아나가 다급히 일행이 머무르는 건물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에티아나는 일단 내가 머무르는 그 곁을 떠나갔다.

  이후, 다시 홀로 광장의 분수대 근처에 서 있으면서 그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 그리고 그 앞에 보이는 길의 풍경,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그 때, 나의 왼편 근처에 어떤 인기척이 느껴져서 조용히 고개를 돌려 보니, 분수대의 가장자리에서 내가 서 있는 왼편, 그 근처의 한 부분에 어떤 이가 걸터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하얀색을 띠는 소매 없는 옷과 허벅지를 전부 드러낼 정도로 짤막한 길이의 하얀 바지, 그리고 허리에 두른 감색 띠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발에는 하얀 신을 신고 있었으며, 손은 하얀 장갑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 역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분수대의 가장자리에 걸터 앉은 채, 오른쪽 다리를 뻗은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어둠 속에서 우연히 바라본 이의 모습을 잘 알아보지 못해 일단 그가 누구인지 보기 위해 그의 곁으로 다가가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내가 서 있던 그 근방에 앉아있던 검은 긴 머리카락의 소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틀림 없어!' 그는 다름 아닌 이전까지 통신을 통해 나를 비롯한 일행과 연락을 하고 있었던 소르나 (Sorna) 였다. 일행이 모르는 뜻 밖의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랬던 이의 모습을 그 때, 내가 새벽에 조용히 나가 보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곳에 모종의 이유로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천문대를 떠난 이후, 소르나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일행이 모르는 곳을 다니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와 연락을 했던 것은 근래에 일행이 여행을 다니면서 통신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은 정도가 고작. 샤르기스에 있었을 때, 여관 주인이 소르나가 찾아와 예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여관 주인은 가짜였던 만큼, 그 이야기는 거짓이었을 것이고, 실제로 소르나가 샤르기스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락을 했던 소르나가 어쩌다가 여기에 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으며, 그와 더불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전의 가짜 사리 공주를 만난 일로 인하여 그 역시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서 나는 분수대에 걸터 앉은 이, 소르나처럼 보이는 이의 오른쪽 곁으로 다가가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음을 건네보려 하였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찾아 오셨나요?"
  그러자 소르나가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나의 모습을 알아본 듯해 보였으나, 그것에 대해 선뜻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나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런 나의 물음에 이렇게 답을 하려 하였다.
  "학업을 잠시 쉬고 있다가 여행 삼아 놀러 왔어요. 지금 때에는 휴양지로 이 곳만한 곳이 없어요."
  "학업 때문에......" 이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답을 하고서, 어디서 학업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소르나는 평소에는 베라티사 (Beratisa) 성계에 있다고 답하고서 그간 성계에서 일, 학업에 열중하느라 주변 사람들과 연락도 잘 하지 못 했음을 밝혔다.
  "그래요!?" 그 대답을 들으며, 나는 의아함을 느꼈던 것이, 그간 나는 소르나가 일행과 연락을 취하며 내는 목소리를 들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정작 소르나 본인은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최근에 지인 분과 연락을 취하거나 하지 않았었나요?"
  "연락이요? 그 동안 못 했었는데......." 그러자 소르나는 당황하면서 그런 나에게 답했다. 그리고서 그는 나를 보더니, 잘 아는 사람이 나와 원거리 통신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은 일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고 나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소르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하였다.
  "그 분은 실제로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어요, 당신을 해칠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요."
  "그러할까요?" 이에 내가 건네는 물음에 소르나는 그러하리라는 뜻으로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이후, 나는 잠시 곁에 앉아 있겠다고 말하고서 소르나의 곁에 앉았다. 그가 소르나임을 바로 알아보기는 했지만 차마 그를 알아보는 말을 하거나 하지는 못 했다.

  앉아 있으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간 나와 연락을 했던 '소르나' 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정체는 무엇일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보기도 했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려 하고 있었던 만큼, 그는 필경 나와 관계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소르나의 목소리를 재현하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려 하고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지, 이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나에게 있어 새로이 주어진 과제가 되었다.

  소르나 역시 나를 한 번씩 바라보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 역시 나를 알아보았음은 틀림 없어 보였지만-결코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으리라-, 내가 그를 알아보는 말을 하고,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나를 알아보는 말을 건네고,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조용히 앉아있기만 할까, 하는 생각에 그저 조용히 앉아있다가 눈이라도 붙이자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잠들려 하였다. 그 순간,
  "나 참, 여전하다니까, 모처럼 이렇게 만났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렇게 잠들려고만 하다니."
  이에 내가 놀라면서 고개를 드니, 그런 나의 눈앞으로 뒷짐을 진 채,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나를 바라보려 한 소르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졸음에서 겨우 벗어나 고개를 든 나의 모습을 미소를 띠는 채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고 인삿말이라도 해 줄 줄 알았는데."
  "소르나?" 이에 내가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이름을 말하는데, 그것에 대해 달리 이의를 말하거나 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내가 예상한 바대로 그는 소르나였다. 이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마주보려 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나를 알아보고 네가 인삿말을 건네줄 것이라 생각했었어."
  그리고서, 나는 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던 그를 보며,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라고 실소를 띠며 말했고, 이어서 그에게 "부끄럼쟁이 같으니." 라고 그를 지칭하는 말을 건네니, 이에 소르나가 그런 나에게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부끄럼쟁이라니,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야?"
  "너." 이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지칭하는 답을 했고, 그러자 소르나는 "너도 마찬가지야." 라고 화답했다.

  "그 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뭐하고 있었던 거야?"
  "학업 때문에 너무 바빠서...... 미안해, 그간 중요한 학업을 하고 있어서 동료들과도 연락을 못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어."
  이후, 나는 소르나에게 여행을 처음 시작하면서 '소르나' 와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소르나가 답했다, 아마도 그 목소리의 정체는 자신을 따라하려 한 누군가의 것이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가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려 했었던 만큼, 그는 나와 관계 있는 사람이거나 나에게 도움을 주려 한 누군가였을 것으로 여기면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렇게 여행하고 모험을 이어가고 있음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예나 씨께서 최근의 소식을 통해 알려 주셨어."
  그러자 소르나가 답했다. 그리고 베라티사에서 맺은 인연 중 하나임을 밝히고서 재능도 뛰어난 이가 성품도 좋아서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자신의 뜻을 알아주고 자신을 받아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그에 대해 생각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가 나를 비롯한 일행이 빛의 나무, 탑들을 둘러보는 순례 여행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와중에 여러 악의 세력과 맞서고 있다고 알려 주었고,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나를 찾아가려 했었음을 밝혔다.
  "내가 하미시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그것까지 예나 씨께서 알려주시지는 못하셨을 것 같은데."
  "맞아, 예나 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 해서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예나 씨로부터 듣지는 못했지만 너라면 지금 이 곳에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래?" 소르나는 하미시에서 최근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소식, 하미시의 고대 유적에 자리잡았던 어둠의 힘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지금 나라면 그 곳에 있을 것임을 확신했고, 그래서 베라티사에서 모성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하미르 (Hamir) 행 그리고 하미시 (Hamisy) 행 기차를 탔었다고 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없었지만 짙은 어둠의 기운을 흩뿌릴 정도로 규모가 큰 세력이 일소된 것에는 나 역시 관여하고 있었을 것임을 직감했던 것.
  "방금 전에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와 만나고 있었던 거야?"
  이후, 소르나는 곧바로 나에게 누구와 만나고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바로 '사리 공주' 라 칭해지는 이를 자처하는 이와 만났음을 밝히고서,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였다고 그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일행에게 '사리 공주' 를 자처하는 사람이 나를 비롯한 일행의 곁을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경계할 것을 일러주었다고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더 밝히기도 했다.
  "사리 공주라고?" 암만 많은 것을 아는 소르나라 하더라도 간만에 모성으로 찾아온 그가 사리 공주의 사정에 대해 곧바로 알 수 있을 리는 없었을 터. 그래서 그에게 사리 공주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떻게 그와 관련된 이가 되었는지에 대해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려 하였다.
  그는 본래 다른 세계의 무용 학원 소속의 학생들 중 하나로서, 학원의 교사들과 학생들을 실은 비행기가 통째로 그들에게는 다른 세상이라 할 수 있는 이 곳에 이르고, 포레 느와흐를 비롯한 어둠의 무리가 교사들 중에서 남자들, 나이든 이들을 죽여 버리고 젊은 여교사들과 여학생들만을 남긴 채,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새로 변이시키는 저주를 걸었으며, 그 이후로 한 번씩 그 무리가 샤하리아의 슈라일 호수 일대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고니로 변이당한 이들의 저주를 엉겅퀴 가시 옷을 자아내며 풀어내려 한 어떤 이의 이야기 등을 그에게 들려 주었고, 카리나를 통해서도 사리 공주와 무용수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한 이후에 그들의 모습을 나와 함께 지켜보았음이 그 이유임을 밝히기도 했다.
  "....... 사연이 나름 깊은 분들이시네." 그러자 소르나가 조용히 그들에 대해 알겠다는 의미의 말을 건네고서 예나로부터 '잔느 공주' 라 칭해지는 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을 밝힌 이후에 조용히 미소를 띠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주들과 인연을 맺는 것은 용사의 숙명이라고, 세나 씨께서 말씀하셨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조용히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어머니의 그림자를 밟고 싶지 않아 용사를 자처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거친 방식의 삶을 추구하기도 했었는데,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무용담, 연애담 등에 관심이 많았던 세나의 말을 인용하며 소르나가 나를 용사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으니, 어머니의 그림자를 밟지 않겠다는 나의 소망이 실은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면, 소르나는 내가 용사일 것이라 믿는 거야?"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소르나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띠기만 할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닌 광장 쪽으로 시선을 향하며, 공주들에게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니, 그 분들을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서 지켜드리는 것, 그 이상으로 그 분들의 삶에 간섭하고 싶지는 않아. 그 분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다면 내가 그 분들을 위해 더 무언가를 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서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그에게 "나에게는 너 밖에 없어." 라는 말에 이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어, 세상에서 너만큼 예쁜 아이는 없다고, 세상에 숱한 이들과 인연을 맺어왔지만 그 중에서 너라는 존재가 가장 아름답다고 늘 그렇게 믿어오고 있어. 사심이란 오직 너에게만 기울여야 하는 것, 나에게는 그런 거야."
  "거짓말하지 마." 이에 소르나는 내가 농담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화답했다.
  "그래...... 그냥 과장되게 말해 봤어. 너라면 이런 나의 말을 편하게 받아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니까, 이렇게 너에게만 말하는 거야."
  그러는 그 때, 북쪽 길목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발걸음이 딱 보아도 내가 있는 쪽을 향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그 외견이 일행 중 하나, 카리나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소르나 역시 카리나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그를 알아 보았고, 그러자마자 소르나는 곧바로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말했다.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아."
  나와 소르나가 이런 사이임을 카리나에게 들킬까봐 걱정이 들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것으로, 나 역시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행여 카리나가 나와 소르나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을까봐 심히 걱정이 되고 있었기에 그런 그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급히 소르나가 떠나간 이후, 카리나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분수대 근처에 서 있던 나에게 말을 걸려 하였다.
  "아르사나, 여기 있었구나, 잠을 못 잔다고 했는데, 그래서 밖에 있었던 거야?"
  "응." 이 물음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카리나에게 나는 곧 북쪽 성문 근처로 갈 테니, 혼자 숙소로 돌아갈 것을 청했다. 그러다가 내가 나에티아나로 하여금 카리나에게 사리 공주를 사칭하는 자가 있음을 알려달라 당부했었음을 상기하면서 카리나에게 물었다.
  "아 참, 내티가 너에게 알려준 바가 있었어?"
  "있었어." 그러자 카리나가 바로 나에게 즉답을 하고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도 그를 마주하면 그가 진짜 공주가 아님을 바로 직시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악마에게 공주가 끌려가는 모습을 목도한 이들 앞에서 너무 뻔뻔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사리 공주' 에 관해서는 나도 친구들에게 알리도록 할게, 그들은 사리 공주를 만난 적이 없잖아, 어쩌면 이를 이용해서 친구들 간의 이간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카리나가 우려한 바대로, 나 역시 그것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기는 했었다, 그래서 우선 사리 공주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카리나에게 당부를 했던 것이고.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친구들이 그 정도의 일로 서로 갈라서거나 하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약' 이라는 것이 있었던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었음은 분명했고, 그래서 가짜 사리 공주에 대해 이후, 다른 일행에게도 알리려 했었는데, 그 일을 카리나가 해 주겠다고 자처한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먼저 가 있을게, 날이 밝기 전에 북쪽 문 앞에 있어야 해, 알았지?"
  "알겠어~." 이후, 카리나가 먼저 북쪽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려 하였고, 이후, 나는 다시 혼자 분수대 근처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후, 내가 분수대 근처에서 벗어나 남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그 때, 갑자기 나의 발밑에 하얗게 빛을 발하는 원형 마법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마법진에서 생성된 하얀 빛이 하늘을 향해 치솟으며, 나의 눈앞을 빛으로 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지?' 라고 말할 틈도 없이 상황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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