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iA - 6. The Flower of the Abyss : 2


  이어서 그가 말했다.
  "그렇게 남을 쉽게 이용하고 내버리기를 반복하는 자는 지금 섬기고 있는 존재들에게도 그렇게 하려 할 것이다, 지금 그는 세피라 로타를 숭앙하고 있다지만, 수틀리면 그 역시 내버리고 다른 의지할 대상을 찾아나서려 하겠지."
  그리고 그는 자신이 기거하고 있었을 검은 천막 쪽으로 걸어가려 하면서 말을 이어갔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그런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세피라 로타는 여전히 그와 올리비아를 신뢰하고 있지. 그에게는 많은 수하가 있기도 하고, 그의 동맹 세력으로 여기에 있는 '기계군 연합 (Alliance Machine Corps, AMC)', 그리고 화산지대의 드라코 (Draco, Drako) 역시 포레와 동맹 관계이니, 드라코라는 동맹을 위해서라도 포레와의 연은 끊지 않는 편이 좋겠지."
  이후, 그 남자는 천막 근처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절벽 너머에 있는 사당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외에 '가면의 전사들' 이라 칭해지는 집단이 있어, 세피라 로타의 직속 집단으로, 그가 오래 전부터 육성해 온 병기 집단이지.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동맹 세력이 알아서 해 주기를 원하고 있을 거야. 그 녀석들이 앞장서 나선다는 것은 동맹 세력이 절멸해 세피라 로타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임을 의미할 거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고서, 행성계에 암약하고 있었을 포레 느와흐의 동족 집단이 하나둘씩 몰락하고, 포레 느와흐 역시 그 뒤를 따를 것임이 명백하면서 세피라 로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음을 나타나고 있을 것이라 하였다.
  "여기에는 AMC (아엠세, 기계군 연합) 가 있다고 했지?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군사 집단이고, 드라코의 무리와 함께 가장 강한 집단일 거다. 실패만 거듭하는 무능한 종족의 수장으로 자신의 부하 관리도 못해먹는 포레와는 격이 다르지."
  "그렇다면, 당신은 그 AMC 의 일원인가요?"
  "아니야." 그러자 그가 답했다. 그에 의하면 그는 오랫동안 근방을 지키던 파수꾼으로 최근까지 '사당' 이라 칭해지던 곳 근처에 살다가 '사당' 에 괴물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괴물에 의해 폭풍우가 발생하면서 지역 일대가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자, 괴물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의 영향이 타 지역으로 퍼지지 않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AMC 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비록 세상의 적이라 칭해지는 기계 무리라고 하지만, 적의 적은 동지가 아니겠는가? 이 곳 주민들이 어느 정도 힘이 있다지만, 저 강대한 괴물을 물리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먼 곳과는 교류하며 가까운 곳을 친다는 말이 있지. 기계 무리가 세상의 위협이라 한다지만, 바로 앞에 있는 저 무리보다 가깝겠는가? 주민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일임은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자존심을 꺾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야. 그래서 강한 힘을 가진 그들을 찾아, 그들의 힘을 빌려달라는 거야. 이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하지, 그들이 굴종하라면 하고, 세상을 내어주라하면 내어줄 필요도 있어. 그런 약속을 받아내서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아 눈앞의 위협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야, 이후의 일은 그 때 생각하면 되겠지.

  "AMC 는 단순한 기계 병기들의 집단이 아니야. 그 집단은 전설적인 장수가 여러 병기 집단이 모여 이루어진 연합체를 강력하게 통솔하고 있지, 루마 제국의 명장, 장 오귀스틴 기욤 (Jean Augustine Gillaume) 이 바로 그 자다. 그 자의 지휘 아래에 AMC 와 이 행성계의 주민은 눈앞에 주어진 세상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이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절벽가의 다리 근처로 다가가며 물었다.
  "저 괴물을 물리쳐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어. 혹시, 이 행성의 구 세계 종말 즈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괴물에 의해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희생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물음에 나는 즉시 답을 했다. 이미 들을만큼 들은 이야기인지라, 잘 알고 있었던 것. 다만, 그 괴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잘 알고 있군." 이라 기뻐하는 듯이 말하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괴물이 잡아먹은 인간들의 혼은 애석하게도 괴물의 몸체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더구나. 괴물의 몸 속에서 끝없이 뒤섞이고 변질되며 고통받고 있지. 그 인간 세계의 종말 무렵에 나타난 괴물이 바로 저 사당 근처에 있는 저 괴물이다. 그 괴물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해, 오랜 세월 전에 자신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자신에게 희생될 자들을 기다리고 있지. 사람들은 그 괴물이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으로 믿고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그리고 폭풍우와 함께 주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세상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지. 이제 그 역사의 반복은 끝나야만 해.
  아마, 지금도 괴물의 몸 속에서는 인간들의 영혼이 구원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을 거다. 그 영혼들의 구원을 누군가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지.

  "아무튼, AMC 의 함대에 속한 함선들이 지금도 괴물을 바라보고 있다. 여차하면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지. 주민들은 괴물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주민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치, 어린아이가 혼자서는 재난을 다 막아낼 수 없듯이 말야. 어린아이가 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듯, 주민들이 괴물을 치기를 원한다면 AMC 그리고 그 수장인 기욤 장군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런 도움의 요청에 AMC 측도 마땅히 호응해 주리라 믿는다. 그런 AMC 의 의사를 누군가 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자네가 그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군."
  "그것을 바란다면, 당신께서 직접 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말에 내가 그 남자에게 묻자, 남자는 자신은 근래 들어 거동이 불편해져서 힘들다고 하면서 한 가지 더 알아줄 것을 부탁하니, 세피라 로타의 비밀문서에 언급된 인류 시대 종말기의 괴물이 AMC 의 전신이라는 주장 및 기욤이 구상했다는 행성 침공 계획은 사실과 전혀 다르며, 그것 역시 사람들에게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준 이후, 바로 남자의 곁을 떠나, 괴물이 있는 곳으로 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 남자가 그런 나를 보더니, 바로 나에게 왜 그런 곳으로 가냐고 물으니, 괴물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려 하는 것이라 답했다.
  "이 봐! 저 자는 우리의 적이야, 게다가 말도 안 통하고! 겉보기에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해! 그 자가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자네는 끝장이라 말할 수 있어! 괴물은 본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무섭게 입을 들이대며 자네를 삼키고 날카로운 이빨로 자네의 몸을 찢어버릴 것이라고!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야!"
  "되든 말든, 뭔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 내가 바로 그런 그에게 반문했고, 여차하면 바로 돌아가겠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말했다.
  "위험을 직감하면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말이야! 괴물의 힘은 자네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기왕 갈 생각이라면 AMC 의 일원들과 함께 가라! 내가 기욤 장군에게 잘 이야기를 해 보겠네!"
  남자는 나에게 괴물에게 접근하겠다면 기계 병기 무리가 나와 함께할 수 있도록 그 수장인 앙주 백작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전에 남자가 기욤 장군을 추켜 세울 때도 그렇고, 그는 늘 그 사람을 거론하며, 그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와 대단한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이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직접 그 점을 거론하며 말싸움을 할 입장은 아니었던 것이, 그 남자에게 괴물에 대해 간단히 알릴 생각이 있었다 보니, 일단은 참기로 했다.
  "정말 위험에 처하면 그 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기욤 장군께 부탁을 청해 보세요."
  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서, 기억의 사당 그리고 절벽가를 잇는 다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 보면, 소리가 소르나를 줄곧 언급할 때처럼, 그 남자 역시 기욤을 계속 언급하고 있었잖아.'
  다리 앞에 이르는 순간, 소리가 소르나를 한 번씩 언급할 때를 떠올렸다. 소리는 소르나를 언급하며, 자신의 친구라 알린 바 있었다. 앙주 백작 역시 그 남자의 친구인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밀접한 관련은 있을 것임이 확실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절벽가를 지나, 사당을 향하는 방향으로 다리의 표면을 밟기 시작했다.

  다리의 표면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이 세워져 다리를 받치고 있었다. 다리의 가장자리에는 돌로 만들어진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높이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고, 난간 건너편은 물과 더불어 바위들도 많이 보여서 함부로 뛰어들면 무척 위험해 보였다. 다리 자체는 튼튼해서 어떻게 걸어도 도중에 끊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난간이 높지 않은 등의 이유가 있어서 그래도 걸을 때에는 조심하려 했다. 걷는 도중에 다리 주변에서 계속 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을 계속 흔들었다. 꽤 시원한 바람이었다.

  다리의 중간 즈음에 이를 무렵부터 사당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이 조금씩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내가 다리를 거의 다 건넜을 무렵, 그 형상은 긴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여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내려가는 정도의 길이에 약간 곱슬거리는 흑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으로 노란 상의와 검은색의 무릎까지 내려가는 치마를 갖춰 입고, 노란 옷 위에는 갈색을 띠는 얇은 외투를 걸쳐 입고 있었다. 다리는 하얀색을 띠는 얇은 스타킹으로 감싸고, 검은색의 굽이 약간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갈색 눈동자를 품은 두 눈은 가늘었지만, 눈매 자체는 부드러웠으며, 왼쪽 눈가에 자그마한 검은 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표정은 평온해 보였지만,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띠고 있어서 인상이 선해 보였다.
  여인은 두 발을 모은 채,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듯이 사당의 건너편 너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그리워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는 충분해 보였다.

  나와 마주한 이후에도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내가 있는 쪽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보다 큰 키의 낡고 어두운 옷을 입고,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으며, 천 사이의 그림자 너머로 두 눈이 번뜩이는 음침한 모습을 보며,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 같건만, 여인은 그런 나의 모습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낯설지 않은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여인에게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던-어머니에게서도 들리지 않았던- 부드럽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시대보다 훨씬 전의 문명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었을 것이고, 그 시대의 말이 사라진 이상,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전하는 바의 의미를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목소리를 통해 그가 나를 적대하지는 않을 것임을 바로 직감할 수는 있었다.
  "Hello. (Helo, 안녕하세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말 (세니티아어) 을 해 봐야 알아듣지 못할 테니, 일단 고대 브리태나 어로 인사말을 건네었다. 고대 브리태나 어는 세계 전역에 걸쳐 두루 쓰였다고 하니, 그 정도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Hello." 여인에게서 답이 들려왔다. 다행히도 그 정도의 답례는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계속해서 소통을 시도해 보려 하였지만, 잔느 공주와는 다르게 (잔느 공주는 박사의 딸인 만큼, 자의든, 타의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고대 브리태나 어 정도는 무난히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외국어 활용 수준을 다른 이들에게 무턱대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아주 복잡한 표현까지는 힘들 것 같았고, 그래서 가능한 간단한 수준의 대화를 시도해 보려 하였다.

How are you today? (오늘은 좀 어떻습니까?)
Who...... are you? (누구...... 시지요?)
I am just a traveller. (여행자일 따름입니다)

  그의 표정은 나를 의심하는 듯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사당 건너편에는 자신을 적대하는 듯한 존재가 있고, 아마 그 여인은 다른 존재와 접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알프레드 노인도 그를 멀찌감치 지켜본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내가 보였던 행색은 자신을 적대하는 존재와 거의 비슷했을 테니, 그 존재의 수하 혹은 그 존재와 협력하고 있는 누군가로 간주했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I went on a hard trip avoiding the light from the outside. (바깥에서 빛을 피해가며 어렵게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Look, if I were his person, I would have something about it, but I don't have it, do I? (보십시오, 제가 그의 수하라면 그에 관한 뭔가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갖고 있지 않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그의 수하가 아님을 어떻게든 호소해 보려 하였다. 두 번째로 말할 때에는 아예 옷자락의 주머니를 (로 보이는 부분을) 전부 털어 아무것도 갖고 있는 것이 없음을 알리기도. 다행히도 그 호소가 통했는지, 여인은 바로 의심을 풀었다.

I'm sorry. I'm stupid...... (미안해요, 제가 어리석어서......)
That's okay, if you're about to have such a presence, you can't help it. (괜찮습니다, 그런 존재를 앞두고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이후, 광장의 한 가운데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How do you want to be in this place? It's a dangerous place. (어떻게 이런 곳에 머무르시려 하시는 건가요? 위험한 곳일 텐데)"
  물음을 건네고서, 나는 여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인은 곧바로 나의 물음에 답을 했다. 그런데, 답을 하면서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답으로 하고 있었다.

  "I'm the one who can't escape here. Everyone with me, too. (저는 이 곳을 떠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이들도)"
  "You can't escape here!?" (벗어날 수 없다고요!?) 이후, 나는 당황하면서 물었고, 여인은 다소 슬퍼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 곳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There are demons here that have been called 'monsters'. They ate our blood and flesh, and wanted to trap the rest of our souls. (이 곳에는 '괴물' 이라 칭해진 악마들이 있어요. 그들은 우리들의 피와 살을 먹고, 남은 영혼들을 가두려 하였어요)
  To do so, the demons trapped our souls in the thing they created. I'm one of those souls trapped in this place. (그렇게 하려고, 악마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에 우리들의 영혼을 가두었지요. 저도 그렇게 이 곳에 갇힌 영혼들 중 하나랍니다)

  여인의 정체는 '괴물' 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가 자신은 '괴물' 이라 칭해졌던 이들이 만든 것에 의해 갇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There's something called a 'monster' here, and it calls a storm. Then......!? (이 곳에는 '괴물' 이라 칭해지는 것이 있고, 그것이 폭풍을 부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영혼들을 가두기 위한 '그릇' 인 거지, 저기 있는 여자는 그 '그릇' 에 갇힌 이들 중 하나인 거고."
  그 때, 어딘가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여인이 서 있는 왼편 뒤쪽에 소리가 팔짱을 끼고, 오른 다리를 앞으로 내민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외견은 확실히 이전에 보았던 소리였지만, 복장은 평상시와는 전혀 달랐다.
  가슴을 두르는 검은 천과 허리에 걸치고 있는 짧은 치마 (치마의 양 옆 부분은 깊이 트여 있었다), 양팔을 감싸는 검은 장갑과 허벅지의 대부분과 종아리를 감싸고 있는 반즈음 투명한 검은 스타킹으로 이루어진 옷차림과 발을 감싸는 핏빛에 가까운 어두운 적색을 띠는 굽 높은 구두, 그것들이 당시, 그가 보였던 복장이었다. 목에는 핏빛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검은 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검은 띠의 양 옆에는 악마의 날개를 형상화한 듯한 검은 날개 장식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뭔가 악마의 옷차림을 형상화한 듯한 옷차림, 여태껏 보지 못했던 그 옷차림을 한 채로 소리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어두운 색을 띠는 낡은 천으로 몸을 감싼 이의 모습처럼 보였을 텐데, 그럼에도 소리는 나를 알아보고 있는 듯해 보였다.

  "이 곳에 있는 '괴물' 역시 원래는 기계 군단의 일원인 녀석이야. 기계로 이루어진 골격에 생체 조직들을 입혀서 만든 개체이지. 여기 있는 기계 군단의 우두머리가 기계들이 희생자들을 도륙내어 그 몸을 에너지원으로 써먹고 남은 영혼들을 에너지원 삼아 특별한 용도로 써먹으려고 만든 게 그 '괴물' 인 거야."

  소리에 의하면 그럼에도 '괴물' 의 주도권은 자주 영혼들의 의사에 넘어갔고, 수백 년에 한 번씩 '괴물' 이 소환되어 기억의 성전 일대에 모습을 드러내며, 폭풍우의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폭풍우의 근원이 되었던 괴물은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한 동안 기억의 사당 일대에 머무르고 있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물러갔다고 했다.
  "저 여자와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내용이야. 의외로 괴물은 여기에 출몰했을 때에 영혼들의 의사에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였어. 그러다가 모종의 이유로 물러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알아? 이에 대해서는 예나 교수, 리사 교수에게도 알렸어, 모두 적잖게 당황한 것 같더라."
  "대체 뭐지?" 내가 묻자, 소리는 눈을 날카롭게 뜨면서 조용히 답을 하였다.
  "그 무렵에 주도권이 그 괴물의 주인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었어. 진실은 조금 다른데, 그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끝낼 때 알려줄게."

  괴물에 갇힌 영혼들은 사실, 바깥 세상에 지적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로 바깥의 생명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하였어. 그 때에 갑자기 괴물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폭풍우가 닥쳐왔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괴물의 존재를 마땅치 않게 여기고, 괴물을 퇴치하려 하였어. 가브릴리아 지역, 그 중에서 특히 지브로아는 해상 교역이 중요한데, 폭풍우는 그 해상 교역을 막는 장애 요인이 되거든. 그 폭풍우가 장차 마을의 위협이 될 가능성 역시 얼마든지 있었지, 마을 사람들이 괜히 괴물이 나타날 때마다 괴물이 불러오는 폭풍우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야.
  물론, 영혼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겠지. 하지만, 자신들이 괴물의 주도권을 차지했다고 생각하고 바깥 세상에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그런 일이 일어났지. 이유는 놀랍게도 간단해. 괴물의 주인이라는 존재는 사실, 주도권을 놓지 않았었지. 도움을 다급히 요구하는 영혼들이 괴물의 주도권을 내주는 척하다가, 그들이 실제로 행동할 즈음에는 은연 중에 주도권을 다시 찾아서 갑자기 사라지는 기이한 행동을 벌였던 거야.

  "너희들이 뭘 하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도움을 청하려 해 봤자, 결국은 사람들에게 두렵고 불쾌한 존재가 될 뿐이다, 이런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겠지?"
  이후, 내가 묻자, 소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이후,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영혼들은 결국 포기했고, 그 이후로 한 동안 괴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이렇게 다시 나타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녀석은 괴물의 몸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 아마, 지금도 괴물의 상태를 계속 관찰하고 있겠지, 마치, 자신이 괴물의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실제로는 원격으로 괴물의 몸체 그리고 그 몸체에 갇혀버린 가엾은 이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사당의 '괴물' 에 대해 중대한 위협인 양 언급했던 그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남자는 기계 병기들의 집단인 AMC (아엠세) 가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 언급했지만, 소리의 언급에 의하면 '괴물' 과 AMC 는 실제로는 동족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간 알게 된 정황에 의하면 남자는 기계 군단의 일원일 것이다. 결국에는 '괴물' 에 갇힌 채,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을 보고 조소하는 이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게 '괴물' 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고서, 소리는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올려다 보며, 괴물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으려 하였다.
  "아무튼, 그 괴물을 만든 녀석은 괴물의 주인이기도 해. 그 만큼 녀석은 괴물을 소중히 아끼고 있지. 그 녀석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아?"
  그 물음에 나는 궁금하다고 답했다. 그 때, 나는 소리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부 들은 다음에 그 남자에게 돌아가서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려 하였다. 이후로는 친구로서 만날 일은 없을 테니, 가능한 많은 것을 떠들고 갈 셈이었다. 그러면서 소리에게 부탁했다.
  "그래! 전부 들려줘 봐."
  "알았어." 소리는 두 손을 머리 뒤에 올린 자세를 취하며 답한 다음에 두 팔을 내리더니, 사당의 절벽길 건너편 쪽 가장자리로 걸어가려 하였다. 그리고 이전과 같은 까부는 목소리가 아닌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여기로 오면서 장 오귀스틴 기욤 (Jean Augustine Gillaume) 이란 이름을 들어봤을 거야, AMC 의 수장이었겠지?"
  "응, 맞아. 그 남자가 유난히 기욤을 언급하고는 했었지."

  장 오귀스틴 기욤, 루마 (Luma) 라는 옛 인류의 나라 출신의 인물이었지. 본래 이름은 '인류 신성 제국' 이었던가. 다른 이름은 조반니 아구스티노 오르마네스코 (Giovanni Agustino Ormanesco) 였을 것이고. 이후에 훗날의 뤼므 왕국이 되는 서 루마 제국으로 넘어가서 앞서 언급한 이름을 쓰게 된 거야.
  그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본 것으로 알고 있어. 이제흐 (Iser, Izech) 학살 사건의 주범이었지? 서 루마 제국의 학정에 항거한 민중들을 기욤이 마구잡이로 학살한 사건이지. 그 학살로 인해 이제흐는 제국에 반감을 갖기 시작하다가, 결국 알레마니아 (Allemania) 의 일부가 되어 이절론 (Iserlohn, Izehlohn) 이 되었을 거야.
  아무튼, 이제흐의 학살 사건과 이 행성계의 과거에 있었던 지역에서 있었던 기계들의 인간들을 향한 학살에는 공통된 사항이 있어. 명분은 달랐지, 전자는 알레마니아에 전향한 이들의 일소, 그리고 후자는 인간 잔당의 박멸. 그런데 학살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거야.

  괴물들을 앞세운 군인들은 수호대에 속한 부대원들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구역에 있던 시민들을 잔인하게 끌어내 무참히 죽였지. '괴물' 그리고 군인들은 시민과 군인들을 잔인하게 살육했고, 살아남은 이들 역시 자신들의 거점으로 끌어내, 사브르 (Sabre) 로 하나씩 목을 쳐서 죽였다네. 땅에 묻은 채, 죽였다는 말도 있고, 사지를 절단했다는 말도 있다더군.
  마치 살육을 즐기는 듯했던 군인들과 짐승들은 그들의 시체를 어딘가로 가져가 버렸다고 하더구나.
- 알프레드 노인

  이제흐에서는 기욤과 그 수하들이 사람들을 마구 붙잡았어. 알레마니아 전향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이 있었지만, 기욤은 이제흐의 시민들 모두가 잠재적인 알레마니아 전향자임을 내세우고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을 이제흐의 시민 광장으로 끌어내 수하들에게 마치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그들을 죽이게 했고, 자신도 여기에 직접 동참했지. 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였어, 사지 절단과 참수는 기본에, 몸을 뭉개서 죽여버리기도 했었지. 더 나아가, 그렇게 죽인 사람들의 시신들을 마구 끌어모으기도 했었어.
  사실상 시민 전원을 알레마니아 전향자로 간주하면서 기욤은 이렇게 말했대 :

Les habitants d'Iser, attrapez un homme âgé de 100 ans et un nouveau-né, et déchiquetez son corps et ses membres pour verser le sang sur la terre maudite, et expient la chair en la laissant tomber sur le sol.
이제흐의 사람들은, 100 살 먹은 노인네와 갓난아이라도 모두 잡아라, 그리고 그 몸과 사지를 찢어발겨 그 피를 저주받은 대지에 쏟아붓고, 그 살이 흙바닥 위에 떨어지게 함으로 속죄하도록 하라.

  기욤이 내세운 명분은 이러하였어, 이제흐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레마니아에 전향하도록 세뇌된 자들로서, 이는 대지가 알레마니아의 저주를 받아 태어난 사람들이 알레마니아의 뜻을 따르도록 하였으니, 그들은 근본부터 알레마니아에 편향될 수밖에 없었다, 라는 것이었지. 이런 논리를 사람들이 얼마나 납득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 다만, 기욤의 수하들은 그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거야, 애초에 상관이기도 했고, 그의 성향 상, 그를 거역하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몰랐을 테니까.
  그렇게 기욤은 이제흐의 모든 사람들을, 아기까지 전부 죽이도록 했어, 피가 흘리도록 하는 채로. 그리고 선혈이 낭자한 시신을 모아서는 피는 모두 뽑아내 오크 통에 넣어서 자신의 저택에 있는 포도주 저장고에 보관했고, 몸뚱이에서 눈알은 파내 꿀단지에 넣어 보관했고, 살을 발라내 고기 저장고에 보관, 살에서 빼낸 지방은 가공해서 석유로, 그리고 내장은 갈아서 석탄으로 만들었지. 이후, 기욤은 틈만 나면 포도주 저장고에 자신이 담근 피의 술을 마시며, 고기 저장고에 보관해 둔 것들을 먹고는 했대.

  "기욤은 예로부터 인간을 비롯한 짐승들은 자신보다 낮다고 여기어진 짐승들의 살과 피를 향유했으며, 그래서 더욱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한 자신은 인간의 피와 살을 향유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었대. 그리고 신들은 예로부터 인간의 피를 생명의 물로 여기었다는 생각을 서슴없이 드러내기도 했었지."

  이후, 기욤은 자신이 부풀린 전공에 의해 제국군의 사령관이 되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이 맡게 된 루메아 (Lumea) 원정에서 자신의 무능한 실상이 드러나, 수없이 많은 제국 장병들을 죽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군의 고위 관계자들을 격노케 했지. 더 나아가, 이전에 있었던 이제흐 반란 진압 때에 벌인 만행으로 인해 제국을 증오하게 된 이제흐의 생존자들이 정말로 알레마니아에 전향해 정말로 알레마니아의 일부가 된 것까지 밝혀지면서 그 죄를 추궁당해 참수형에 처해졌으며, 그의 저택은 철저히 파괴되었어. 기욤은 자신의 비뚤어진 이상을 위해 제국의 장병, 영토에 심지어 자신의 목숨과 자산까지 전부 내버리고 말았던 거야.
  하지만 기욤의 추종자들과 그 후예는 여전히 제국에 암약하고 있으면서 제국의 암적 존재가 되었지. 그 그림자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은 고쳐쓰면 안 된다' 는 명분 하에 사람들을 무참히 잡아서 죽여 그 피를 동력원으로 활용하고, 어린이, 신생아들을 무참한 과정을 통해 페테이 (PTI) 로 만들었던 그 마도과학연구소의 소장과 그 일당들이야. 그들 역시 결국 그 실상이 드러나 소장은 결국 죽고, 그 일당들도 처단당해 기욤의 유산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듯 했어.

  그 괴물들의 학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너도 들어봐서 알 거야. 기계 군단에 전향한 군인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는 살아남은 이들은 기계 무리의 모함으로 집어넣어, 그들의 살은 코크스로, 피는 동력원을 위한 수분으로 써먹게 만들었어. 그 와중에 기계 군단에 전향한 군인들이 쾌락을 위한 살인을 무참히 저질렀다고 했었지. 그 군인들의 수장이 바로 기욤이었어. 수현 파크 (Suhyân Pahk) 가 '행성에게 수없이 많은 죄를 저지른 인간의 잔인한 업보' 와 '인간의 몸에 의해 구현되는 기계 구동' 을 완성하기 위해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서 루마 제국의 저주받은 존재를 기계 인간으로서 부활시켰기 때문이었지.
  기욤은 행성을 지키기 위해 나선 군인들을 교묘하게 설득하거나 세뇌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자신의 뜻을 계승한 기계 군단이 개발한 병기들과 군인들을 이끌고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어. 행성의 옛 시대 마지막에 있었던 재앙들 중 하나인 '괴물들의 재앙' 에 언급된 '괴물들' 은 기계 병기들임은 알고 있지? 그 기계 병기들이 바로 기욤의 수하였던 병기들이야. 그리고 기욤은 한 동안 숨어있다가 다시 이 행성계로 돌아와서 그 당시의 병기들을 다시 일으켰지, 그것이 바로 AMC 라 칭해지는 거야.

  AMC 라면 다리 건너편의 남자로부터 이미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다. 행성계의 모든 이들이 AMC 그리고 그 수장인 기욤 장군의 영향력 아래에 단결하여 괴물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던 것. 그런데, 기욤 장군과 그 수하들인 AMC 의 실상은 대략 저러하였던 것이다.
  "사나, 그 남자가 기욤 장군의 존재를 줄기차게 언급했었잖아.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후, 여인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 소리가 물었다. 달리 생각할 거리고 뭐고 없었다. 별 인연도 없어 보이는 기욤 장군을 마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양 언급하는 것, 그 시점에서 이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남자와 기욤 장군은 실제로는 서로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다. 그 앞에서는 드러낼 수 없었겠지만,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속으로는 그를 비웃고 있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야." 그리고 그렇게 답했다. 이에 소리는 "알고 있었던 거네." 라고 활짝 웃으며 말하더니, 다시 사당의 바다 쪽 가장자리로 가더니, 잠시 나와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나에게 이렇게 당부의 말을 건네었다.
  "이제 그 남자의 곁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그 시점에서 남자는 여기서 일어난 일을 수상히 여기고, '괴물' 의 본체를 움직이려 할 테니, 여기서 시간을 끌고 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러니까, 어서 그 쪽으로 가, 그 남자는 네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적당히 구슬릴 수 있을 테니, 그렇게 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겠지."
  그 이후, 소리는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며 사라졌다. 그렇게 소리가 사라진 이후, 나는 말이 없어진 여인의 앞으로 돌아와 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서 다시 다리를 건너, 남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꽤 늦었구먼."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낡은 옷차림의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어 그렇게 늦었느냐고 물었다.
  "자네, 뭘 하다가 그리 늦었는가? 설마 거기 있던 녀석하고 사귀기라도 했던가?"
  "사귀다니, 무슨 말입니까?" 그러자 나는 짐짓 핀잔을 주는 듯이 답을 하고서, '괴물' 그리고 그 협력자들의 생각을 듣고 왔다고 답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괴물의 의사를 듣고 떠나려 했다가, 이후에 협력자가 나타나서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고 있기에 다 들어주느라고 늦었다고 이어 말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그 괴물과 협력자가 뭐라고 하던가? 뭔 되도 않는 이야기를 떠들며 너를 꼬드겼던가?"
  "우선 괴물이 말했지요, 뭐라고 했던가...... 자기가 자기에게 갇혀 있다고 말하던데요."
  그 물음에 우선 괴물의 발언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했던 말을 약간 비틀어서 자기가 자기에게 갇혀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했다는 식으로 그 남자에게 알렸다. 남자는 그런 나의 말이 웃기기라도 했는지 조용히 웃음 소리를 내며 내가 밝히는 괴물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건 대체 무슨 말이라도 하는 거였나? 자기가 자기한테 갇혀 있다니, 자네, 정녕 그 말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괴물에게서 직접 듣고 왔다고 했습니다." 남자가 묻자, 나는 괴물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왔다면서 거짓일 리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괴물이 이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서 그 이야기에 대해 그에게 간략하게 알려주려 하였다.
  "괴물은 자신의 몸은 기욤 장군과 그의 추종자들이 개발한 것이고, 거기에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영혼이 갇혀 있어서 저항하려고 해도, 기욤 장군이 절묘하게 저지를 한 탓에 결국에는 저항 의지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깨어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하필이면 이 일대에 폭풍우가 일어나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던 것도 저항 의지를 꺾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했었지요."
  "자신을 사람들이 두려워한다는 것을 자신도 잘 아나 보군."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괴물이 저를 보며, 도움을 요청한 것은, 자신을 '해방' 시키는 것은 스스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외부인에게 자신을 도와달라 간청을 하고 있었을 게요. 제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거 참 안 됐구먼."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 협력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알려달라 부탁했고, 그 부탁에 대한 답으로 이번에는 '협력자' 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부근에 집결한 기계 무리의 수장은 바로 기욤 장군으로 그가 바로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이다, 라고 괴물의 협력자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욤 장군을 처치해야만 괴물을 해방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영혼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영혼들이라면....... 무엇을 말함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물음에 나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아무튼, 그 영혼들의 존재야말로 진정한 세상의 위협이지. 괴물과 함께하는 귀신이 아니던가. 기욤 장군에게 잘 이야기하도록 해 주게, 곧 괴물과 괴물 수하의 귀신들이 깨어날 것이며, 그것에 관한 음모가 이어질 것이니, 그것에 대한 방비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야."
  "그러고 보니, 외부에서 나쁜 소식들이 계속 들려오고 있어. 여기로 오는 길목마다 배치된 기계 병력들이 자꾸 실종된다고 하더군. 그것에 대해 아는 이야기는 없나?"
  이후, 남자는 방비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나의 발언을 의식한 듯한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바로 그 남자에게 물었다. 섬 주변의 어딘가에 있을 기욤 장군에 대한 질문이었다.
  "괴물이 저한테 자신의 몸, 그 원래 주인이 자기를 지켜본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그 주인을 기욤 장군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 전에 내가 질문을 하지 않았...... 내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는 건가."
  남자는 처음에는 내가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에 뭔가 질문을 하고 있음에 어리둥절하는 반응을 보이다가, 곧, 자신의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절벽가로 걸어가면서 나에게 반문하였다.
  "괴물이 자신의 몸뚱아리 주인이 기욤 장군이라 칭했단 말이지? 그것에 대해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터무니 없는 발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잠시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역시, 그러하군." 이라 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절벽가를 향해 돌아서더니, 나에게 나라면 그리 생각해 줄 것 같았음을 밝혔다.   "어쩌면 그 녀석에게 기욤 장군은 자신에게 해악을 끼칠 뿐인 사악한 악마일 뿐이고,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기욤 장군과 그 '머저리들' 정도에 불과하겠지. 애초에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기욤 장군 밖에 없을 테니. 그러면서 기욤 장군을 별 이유도 없이 증오할 따름일 거야, 바깥 세상의 모든 이들이 기욤 장군과 뜻을 함께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지."
  그러더니, 남자는 나에게 외부인들이 온다는 소식은 없느냐고 물었고, 그의 물음에 나는 바깥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답했다. 그리고 모두 괴물의 위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괴물을 격퇴하러 오고 있는 모양이라 이어 설명을 해 주었다.
  "잘 된 일이군." 남자는 나의 말에 즐거워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이제 괴물의 지배도 머지 않아 끝날 것 같다는 기대의 감정을 드러내는 말을 꺼내더니, 나를 향해 다시 돌아서고서, 나에게 뭔가 말을 건네려 하였다.
  "자네, 이제 내 편임은 틀림 없겠지? 지금까지의 발언을 봤을 때, 자네는 이미 내 편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을 하겠네, 여기로 오는 외부인들에게 기욤 장군 그리고 그 수하의 AMC 단이 반드시 도움을 줄 것임을 알려주게. 그들이 기욤 장군 그리고 AMC 에 의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지. 그리고,"
  이후, 그는 이전에 물어본 바에 관한 것이라며 한 가지 부탁의 말을 더 건네었다.
  "이전에 내가 물어보려 했지만, 자네가 답을 할 생각이 없어서 묻지 못한 게 하나 있어. 이전부터 여기에 파견되었던 기계 동료들과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아. 그 실태를 파악해 주게. 그 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심각한 우려 사항이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서 말야.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아, 누군가 이 부근으로 들어와 깽판을 쳤을 수도 있어. 그것에 관해 관찰을 하고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군."
  그러면서도 그는 나에게 위험이 크게 닥쳐올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가능하면 안전을 먼저 생각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로, 그리고 늦더라도 무사히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당부에 나는 이렇게 화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번 일은 꽤 중대한 사항이라 조금 늦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당부하신 바가 있는 만큼, 살아서 돌아오는 것을 염두하며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 주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이후, 나는 그간 지나왔던 길의 반대 방향, 사당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걸어갈 준비를 하다가 다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그에게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바가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게 뭔가?" 라는 남자의 질문에 바로 이렇게 되물으려 하였다.
  "흉흉한 소문이 하나 있습니다. 먼 옛날, 뤼므라는 나라에 기욤이라는 장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장군이 이제흐 (Iser) 라는 곳에서 무차별적 학살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흡혈귀인 것으로 착각하며 사람들의 피와 살을 탐하며 그들을 끔찍하게 도살했고, 그로 인해 이제흐가 그 나라를 배신하게 됐다는 그런 사건이지요. 그 사건의 원흉인 기욤이 바로 지금 AMC 를 이끄는 기욤 장군과 동일 인물이라는 소문입니다.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괴물에게서 들은 모양이로군." 내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남자는 바로 그렇게 말하더니, 이어서 나에게 목소리를 냈다.
  "자네도 알다시피 그 존재는 우리의 적이야, 적의 의사를 곧이 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네, 적대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말일 수 있거든. 그런 말 한 마디에 나약해지는 것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야. 그러하니, 그런 말은 잊어버리고, 네 할 일에 정신을 다시금 집중하게나."
  "알겠습니다." 그러자 나는 바로 간단히 화답했다. 대답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이전에는 없는 당혹감을 느꼈다. 평상시 같았다면 다급히 괴물에게서 들은 것 아니냐고 답할 이유도 없었고, 적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야 하겠냐고 바로 따지려 하지 않았을 것인 만큼, 당황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런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던 것. 그리고 절벽가의 길 쪽으로 걸어가려 하다가, 잠시 그를 향해 돌아서면서 마지막으로 알렸다.
  "외부인들이 우리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행여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기욤 장군에게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한 경우에는 제가 나름의 대비책을 강구해 그런 상황에 맞서도록 하겠습니다. 또 봅시다, 그러면 다시 만날 때까지."



  이후,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어둠의 변장을 풀지 않은 채로 그간 걸어온 길목을 따라 아잘리가 기다리고 있을 법한 곳까지 돌아가려 하였다. 하지만 내가 떠날 때와 달리, 아잘리가 있던 곳에는 그와는 전혀 다른 인상의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일행과 함께 나를 뒤따르고 있었을 세나였다. 그와 마주할 무렵, 나는 미처 변장을 풀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나는 나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바로 나를 알아본 듯, 나의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아르사나 씨, 여전히 변장을 유지하시고 계시네요."
  마력을 감지할 수 있으면 내 본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 그라면 내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세나는 어찌됐든 나를 알아볼 수 있었을 테고. 그리하여 나는 감빛 마력을 지웠다. 사실, 그간 감빛 마력의 영향 하에 있으면서 조금 갑갑했는데, 이제 그 갑갑함을 해소할 수 있어서 그로 인한 후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먼저 와 있었구나." 이후, 나는 세나에게 어떻게 먼저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세나는 바람의 환수로부터 도움을 받아, 내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가려 했음을 밝히고서, 다른 이들도 금방 올 테니, 기다리고 있다 보면 다른 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아잘리 씨로부터 들었어요, 저 앞에 있는 이 그리고 괴물과의 의사 소통을 위해 변장하고 가셨다고."
  그리고 아잘리에 대해 그는 일행을 이끌고 오고 있을 것이라 알렸다.

  이후, 세나는 사당을 앞두고 있는 절벽가의 한 곳에 서 있으면서 그런 자신의 우측 곁에 이른 나에게 알프레드 노인이 언급했던 절벽가의 남자를 만났느냐고 물었고, 이후,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하자, 세나는 그런 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사람이 아르사나 씨께, 무슨 말을 해 주던가요?"
  "저 건너편 사당에 있는 괴물 말야." 그러자 나는 사당 쪽을 가리키면서 세나에게 우선 그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남자가 천막 근처에서 사당 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광경을 잠시 보고 있다가 다시 세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괴물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 괴물은 이 근방 기계 무리의 수장인 기욤 장군과 그 수하들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했어. 그러하니, 그 몸체는 기욤 장군의 것이라 할 수 있겠지?"
  이후, 내가 세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

  기욤 장군은 먼 옛날, 루마 행성계에 있었던 서 루마 제국, 훗날의 뤼므 제국이 되는 나라의 군인이었어. 그의 본명은 장 오귀스트 기욤이고, 실은 라테노 사람이라 그 이름이 조반니 아구스티노 오르마네스코였다던가, 아무튼 그래.
  그의 행적은 서루마 제국에서 실시되었던 이제흐 반란 사건에서 처음 드러나. 이제흐에서 서루마 제국의 이웃 나라였던 알레마니아 국과 내통한 자에 의해 반란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이제흐에 진압군이 파견되기로 했었는데, 그 지휘관을 자처한 것이지. 암만 반란의 규모가 컸다고 해도, 급작스럽게 일어난 반란이 결국 나라에서 보내는 정규군의 체계적인 무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을 테니, 반란은 바로 진압되었겠지. 그런데 여기서 기욤 장군이 한 가지 큰 사건을 저지르게 돼.
  반란 진압 후, 기욤 장군은 도시에 속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였어. 기욤 장군은 이미 이제흐의 사람들은 알레마니아에 전향되도록 운명지워졌음을 내세우며, 이제흐 시민들을 모두 죽이려 했어, 알레마니아의 저주를 받아 태어난 사람들이 알레마니아의 뜻을 따르도록 하였으니, 그들은 근본부터 알레마니아에 편향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었겠지요?"
  "제국군의 권위를 내세워서 수하 병사들을 윽박질러 학살에 동참하도록 했겠지, 제국 신민들의 반대를 무산시킨 것은 물론."

  이제흐 시민 광장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남녀는 물론, 젊은이, 노인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끌어내어 시민 광장에서 잔인하게 죽여댔지. 사지 절단은 물론, 몸을 짓밟게 뭉개버리는 잔인한 행각도 서슴지 않았어. 죽일 때에는 꼭 날카로운 도검이나 철퇴 등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기욤 장군이 베이고 부서져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즐기려 했기 때문이었다는 거야. 이런 살육에는 기욤 본인도 참가했고, 사브르로 직접 시민들의 목을 베고 몸을 절단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광경을 즐기어 지켜봤다 이야기도 있어.
  이런 학살의 진의는 이랬어, 기욤은 예로부터 인간을 비롯한 짐승들은 자신보다 낮다고 여기어진 짐승들의 살과 피를 향유했으며, 그래서 더욱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한 자신은 인간의 피와 살을 향유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었기 때문이었다는 거야. 더 나아가, 기욤은 신들은 예로부터 인간의 피를 생명의 물로 여기었다는 생각을 서슴없이 드러냈는데, 그 학살 사건을 일으킨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기욤은 자신을 밤피르라 생각했던 거예요?"
  세나가 짐짓 놀라는 듯하며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고서,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학살을 벌일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듯이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런 학살을 벌인 이후, 기욤 장군은 학살을 전공으로 포장해서 제국에서 큰 공을 세운 지휘관이 됐고, 그 덕분에 동방 원정 사령관이 되었어. 하지만 루메아 원정에서 심각한 패전을 겪은 후에 그 책임을 물어 참수당해 세상을 떠났지. 더 나아가, 그 학살 사건 이후, 이제흐 사람들은 제국에 원한을 품고, 결국 알레마니아에 자신들의 영토를 바쳤지. 특정 지역의 알레마니아에 의한 반란을 막겠다고 벌인 행위가 결국 해당 지역을 알레마니아에 넘어가게 한 원인이 되고 말았던 거야.
  피의 신을 자처했을지도 모를 그 자를 되살아나게 한 이는 수현 파크라는 자야. 기계에 의한 인류의 심판을 위해 인류의 몸을 기계의 에너지 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의 원천이었다면서 그 자를 되살리려 했기 때문이지. 이후, 기욤은 자신을 죽인 인간에 대한 원한을 푸는 것은 물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의 피가 기계들의 에너지 원으로 활용되는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기 위해 '괴물' 이라 칭해진 기계들과 기계 무리와 한 패가 된 이들과 더불어 학살을 즐겼다고 할 수 있겠지.

  "그는 밤피르는 아니었어, 밤피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일 뿐이겠지. 하지만 수 천 년 전에 죽은 그의 유해를 수현 파크가 발견한 이후에는 아마 기계 몸으로의 개조를 거쳤을 것이고, 심장을 대신하는 플라즈마 발전기의 구동을 위한다고 인간의 피를 탐하면서 그야말로 전설 속의 밤피르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있었던 모든 학살은 기욤 장군에 의해 일어났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이전부터 들었던 인간들의 죽음, 카리나, 세니아 씨가 만났던 죽음의 기사들이라든가, 아니면 그 사진 속의 가족들이 겪은 죽음 역시 결국에는 그에 의해 일어났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세나의 두 차례에 걸친 질문들에 그렇다고 답을 하고서, 그 대답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그 이후에도 그는 그렇게 무참히 죽여댄 인간들의 영혼을 자신이 만든 기계에 가두어 놓고, 그 기계의 주도권을 놓고, 인간들이 가진 희망이라는 감정을 이용해 그들을 농락하는 유희를 즐겨왔겠지. 지금껏 있어왔던 지브로아 일대의 괴물 사태는 거기서 비롯됐을 거야. 괴물의 몸 속에 갇혀 그 몸을 차지하려 한 영혼들이나, 괴물의 출현에 당황해 괴물 퇴치를 위해 나선 사람들이나, 모두 기욤 장군의 꾀에 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군요." 그러한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세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그는 바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실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후, 나는 그 남자와 결별한 이후, 일행이 있던 곳으로 돌아오면서 마음 속으로 정리해 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간 듣고 알게 된 것들을 우선 알리려 하였다.

그 남자와 함께 있으면서, 그리고 '괴물' 의 변장한 모습일 법한 여인 그리고 소리와 함께 있으면서 알게 된 바는 아래와 같다 :

  "이랬었지. 남자는 바로 기욤이라 할 수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서로 인연도 없음직한 남자가 기욤을 유난히 목에 힘을 주면서까지 거론할 이유는 없겠지. 그리고 그 남자는 계속해서 괴물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어. 괴물은 사실 영혼들을 가두는 기계 병기이고, 남자는 기욤, 기계 병기 집단의 일원인 만큼, 그 남자의 목적은 괴물을 관찰하며, 괴물의 몸에 갇힌 이들과 바깥 세상을 희롱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 그런 목적으로 괴물의 몸을 관찰하는 이는 괴물의 주인이니까......"
  "그래서 괴물의 주인은 그 남자이고, 그 남자는 기욤이다, 라는 것이지요?"
  "그런 거지." 이후, 세나가 묻자,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추측일 뿐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남자가 하는 말보다는 보다 정직하겠지. 그러니까, 기욤은 기계 병기로서 부활한 후에 사람들을 학살하고, 자신의 몸에 가두어서 사람들을 죽여 피와 살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고, 영혼마저 노리개로 삼고 있다는 거야. 이제 알겠어?"
  "그러하군요." 그러자, 세나가 다시 그렇게 답했다. 답을 하는 그의 목소리와 더불어 깊은 한 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사당을 바라보는 그 표정이 점차 굳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세나에게 진정하라고 하고서, 그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아직 녀석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어. 그 때부터 그러면 안 되지, 그런 감정은 녀석이 온전히 정체를 드러낸 이후에 드러내야 할 거야."

  "이 봐, 아르사나, 거기서 뭐 해?"
  그 무렵, 등 뒤에서 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나는 곧바로 카리나를 향해 뛰어들듯이 다가가면서 벌써 따라온 것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그렇다고 답한 이후에 세니아를 비롯한 나머지도 곧 올 것이라 하였다.
  "잔느 공주님께서도 잘 따라오시지?"
  "물론! 그 동안 잘 지켜주었어. 원래는 뒤에서 동행하시는 알프레드 할아버지 곁에 있도록 하려고 했었는데, 어떻게든 우리와 같이 가겠다고 하시니, 어찌할 수 있겠니."
  이후, 나는 잔느 공주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배에서 동행한 알프레드 노인에 관한 이야기도 곁들여서 하였다. 더 나아가, 예나의 비행선에 있던 사라, 탐파 역시 비행선에서 예나의 도움을 받아가며 일행을 지켜보고 있으며, 그래서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사라, 탐파 그리고 루이즈가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예나의 발언도 있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세니아와 나에티아나, 잔느 공주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이 아잘리의 인도를 받아가며, 내가 위치한 그 근방의 길 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나는 카리나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 동안 세나에게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던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거야?"
  "네가 만났던 그 죽음의 기사에 관한 이야기야."
  나는 그 동안 이야기했던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카리나에게 그가 만났던 '죽음의 기사' 그리고 그 동료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사건의 원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바로 알렸다. 그리고 세나에게 했던 것처럼, 기계의 몸체는 인간의 영혼이 주인이 아닌, 인간들을 학살한 '밤피르' 가 되고자했던, 기계 병기로 다시 태어난 타락한 인간으로 그 학살당한 영혼들이 괴물의 몸체에 갇혀 고통받고 있는 것은 물론, 학살당한 영혼이 괴물의 몸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그 몸체를 조작해 재앙을 일으켜, 지브로아 일대의 사람들이 퇴치하도록 하는 것으로 괴물에 갇힌 영혼들은 물론, 지브로아 사람들까지 농락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래놓고, 이 행성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이 이끄는 기계 군단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퇴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었지. 사람들이 자신이 지배를 받으며, 자신의 먹이감, 사냥감이 되도록 하기 위한 행동일 거야."
  "그래.......?" 그러자 카리나 역시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 마치, '뭐 저런 XX 같은 녀석이 다 있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곧, 뭔가 결의에 찬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전보다 심각해진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선은 괴물을 제압한 후에 영혼들을 밖으로 보내야 하겠지?"
  "그래야 마땅하겠지." 그 물음에 나는 우선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생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계속 피해를 입다 보면, 기계 병기로서의 본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 괴물의 행동에 대한 대략적인 추측을 하기도 했다.
  "괴물의 제압 방법은 이번에도 부수는 것일 거야, 그렇지?"
  "......." 하지만 카리나의 그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할 거야. 물론, 괴물을 파괴하면 괴물에 갇혀있던 영혼들은 모두 해방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괴물의 몸체를 파괴해,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것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자 카리나가 바로 물었다. 악의 화신이 조종하는 병기임에도 바로 공격해 파괴해서는 안 된다면 대체 괴물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 괴물 안으로 들어가서 영혼들을 속박에서 풀어내려고."
  그 이후, 나는 괴물의 원본은 주포가 장착된 기계 병기일 것이며, 생체로 위장했을 때, 주포 부분은 '입' 으로 가장될 것이라 말한 후에, 그것에 이어, 그 입을 찢어서라도 열어 젖히고, 그 내부로 들어가면 될 것이라 진입 방법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아르사나는 괴물의 몸 속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 여부를 장담할 수도 없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 때,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는지, 나의 오른편 곁으로 세니아가 다가가서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그러하다고 답하고서, 괴물로 간주되었다면 분명 그 겉 모습 뿐만이 아니더라도 골조 역시 생명체의 모습을 표방하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생명체를 모사했는데, 입이라든가, 생명체의 구멍에 해당되는 부분이 없을 리가 없잖아."
  이후, 나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그들에게 그렇게 영혼들에게 접근해서 그들을 속박에서 풀어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리려 하였다. 굳이 파괴가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해방시켜야 할 정도로 그 영혼들이 특별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두 사람 모두 품고 있을 것이고, 그 의문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괴물체로 알려진 존재들, 기욤이 거느리고 있을 병기들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일 거야. 그런 이들이 오랫동안 기욤 장군이 소유한 병기의 몸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잖아. 그들을 직접 그 몸 속에서 구해내는 것으로 그들이 '괴물' 그리고 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기욤을 상대하는 우리의 큰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 이후, 이전의 그 말에 이어, 두 사람에게 다시 이렇게 말했다.
  "괴물에게 원한을 진 이는 그 영혼들이지, 우리가 아니야. 괴물의 처치에는 그들의 역할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아잘리, 잔느 공주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이 있는 길의 수풀 쪽 가장자리로 다가갔을 때, 알프레드 노인의 곁에 있던 잔느 공주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 이후, 잔느 공주는 나의 앞에 서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는 모습을 보이더니, 나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아르사나 님, 방금 전에 옛 시대의 영혼들을 해방시키겠다고 하셨지요."
  "예." 내가 답했다. 그리고 잔느 공주의 모습을 보니, 심히 우려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고 묻자, 그가 내게 답으로 말하기를, 통상의 말로는 설득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옛 브리태나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정도는 예전 인류는 거의 대부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니. 그리고, 여차하면 에스페란토 등을 끌어들일 생각도 하고 있어요. 모두 옛 인류가 통용하던 것이었다고 하니, 그 중 하나는 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내가 그 의문에 답했다. 그러나, 잔느 공주의 우려는 그 정도로 불식되거나 하지는 않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잔느 공주가 부탁을 하였다.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자신도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저도 괴물의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잔느 공주님!" 그 말을 듣자마자 놀라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닌 것이 아니라, 잔느 공주는 전투 능력이나 생존 능력이 많이 약해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었고, 애초에 그가 요청하지 않았다면 사라, 탐파 그리고 루이즈처럼 예나의 비행선에 있도록 했을 것이다. 위험 앞에서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자꾸 위험을 무릅쓰려 하는 그의 행동을 나는 전혀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알프레드 노인이 내게 다가오더니, 잔느 공주의 왼편 곁으로 와서 말했다.
  "고대의 존재와 소통하는 것이 그들과 동족이었을 자신의 역할이었던 만큼, 그 역할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에게 들은 말이 있다면서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옛 세계에는 옛 브리태나, 프랑키나, 에스페란토, 이스파냐 (Ispanya) 나 투르키야 (Turkiya) 등의 루마 제국의 주요 공용어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말들이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알프레드 노인은 과거에는 루마 제국의 주요 공용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하면서 그런 이들에게 그런 말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며, 그래서 고대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이인 자신이 영혼과의 소통을 위해 나서려 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네가 괴물의 몸에 갇힌 영혼을 설득해 그들을 속박에서 해방시키려 한다면, 잔느 공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게야. 힘들겠지만, 잘 지켜주도록 하게나."
  알프레드 노인까지 그렇게 부탁을 한 만큼,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고, 그래서 그에게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잔느 공주에게 말했다.
  "잔느 공주님, 앞으로 저희가 가게 될 곳은 전장이라는 곳이에요. 전장에 대해서는 물론 공주님께서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 닥쳐올 수 있어요. 물론 여기서는 기계, 괴물하고만 싸우게 되겠지만, 괴물이 그 동안 여러 사람들의 영혼들을 잡아먹고, 가두어 놓은 만큼, 상상 이상의 끔찍한 광경들이 펼쳐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에게 그것에 대한 각오는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때, 잔느 공주의 반응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예." 라고 한 마디 대답만 한 것이었다. 다만, 그 때에는 마음은 그러하더라도, 막상 예상했던 일이 눈 앞에 닥쳐오면 견디지 못할 수도 있을지는 직접 현장에 있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반응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 참, 할아버지, 리사 선생님을 보신 적 있나요?"
  "보지 못했다네." 이후, 내가 리사 선생님의 행방에 대해 알프레드 노인에게 물었으나, 그는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아잘리가 그가 그간 자신과 동행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해안가의 길을 걷고 있었을 텐데, 아잘리를 보내고 나서, 자신만의 길을 가려 한 것 같다는 추측을 밝혔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분명 있었을 게다, 그러하니, 그 곳으로 갔겠지.



  그리하여 나는 간만에 세니아, 카리나, 세나와 나에티아나 그리고 잔느 공주를 이끌고 기억의 사당 바로 앞까지 가게 되었다. 그 무렵, 나에티아나가 나의 곁으로 날아와서 곧, 프라에미엘이 일행 쪽으로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다가 이전에 마주했던 낡은 옷차림의 남자 그리고 그의 거처인 천막에 가까워졌을 무렵, 나는 카리나만 대동한 채, 앞장서 가려 하였다. 그 때, 잔느 공주가 그런 나를 보더니, 한 가지 묻고 싶은 바가 있다면서 나를 일행이 있는 우측 근방으로 불러 세웠다.
  "저 앞의 남자가 혹시 자신을 기욤이라 칭했던 자인가요?"
  "스스로를 기욤이라 칭하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저 남자가 기욤일 가능성은 상당히 커요."
  그리고 잔느 공주에게 어떻게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물으니, 세나가 자신에게 내가 그 앞에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학살자 기욤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그렇군요." 라고 우선 그에게 말하고서, 어떻게 그 남자를 기욤이라 추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밝혔다.
  "변장을 하고 잠입을 했을 때, 그 남자가 저한테 '기욤 장군' 을 줄기차게 언급했었어요. 그래서, 가깝게는 기욤의 직속 부하일 것이라 여길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기욤의 행보를 너무 자세히 아는 듯했고, 그러면서 그의 행동을 너무 강하게 지지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그렇게 그 자가 행동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구나, 했던 것이지요."
  이후, 나는 언젠가 모두 다 알게 되겠지만, 잔느 공주가 요청을 해서 그 남자에 대해 간략히 알려주는 것이라 말한 다음에 이제 정말 전장으로 가게 될 것임을 밝히고서, 마음 굳게 먹도록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잔느 공주의 부탁을 들어준 이후, 나는 그 이후에 카리나와 함께 앞장서서 남자의 거처를 방문하게 되었다.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남자의 거처를 지나쳐 갈 그 때,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나와 마주하더니, 바로 나에게 접근해 왔다. 그러더니, 나와 카리나더러,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온 이 세계 사람들의 대표 아니냐고 물음을 건네고 있었다. 다시 봐도 꽤나 험악하게 음침한 인상이었지만, 막상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은 나름 정중했다.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오신 이 세상 사람들의 대표되시는 분들 아니시오?"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다. 다만, 괴물의 소동으로 사람들이 고통받는다고 하기에 그것을 진정시키려 나선 사람들 중 일부라 할 수 있겠지요."
  그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남자는 내가 이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허름한 옷차림을 한 존재와 동일한 인물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괴물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남자는 바로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만행으로 인해 지역 사람들이 모두 고통받고 있사오나, 저 자신이 무력해 괴물을 어찌하지 못하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그는 나를 비롯한 이들이 용감히 나서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괴물의 힘은 너무도 강대해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큰 힘을 상대하는 데에는 큰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큰 힘이 필요하다고요?" 그러자 카리나가 나를 앞질러 남자에게 다가가서 물으니, 남자는 우선 "그렇습니다." 라는 답을 하였다.
  "저 너머에는 큰 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었지요 : '힘은 숫자이고, 큰 힘은 큰 힘으로 맞서라 (Le nombre est la force; Pour affronter le grand nombre, affronte le grand nombre)'. 그 말 대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여러분들께서는 높은 의기를 갖추시고 계시지만, 그 의기에 걸맞는 힘은 없습니다. 그 높은 의기에 걸맞는 힘을 갖추어야 괴물을 물리치고 이 일대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겠지요."
  그리고, 능청스러운 어조로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지금 이 곳에는 '알리앙스 마신 코흐 (Alliance Machine Corps)', 이하, '아엠세 (AMC)' 라는 군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군이지요. 위대한 용사이자 영웅이라 할 수 있는 기욤 장군이 이끄는 기계 군단이지요."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기계 군단이라 하니, 여러분들께서는 거부감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비단 여러분들만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요, 여태껏 괴물을 퇴치하겠다고 나섰던 이들 모두 한결 같이 기계 군단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여기었지요. 하지만 큰 힘의 도움을 마다하고, 마치 부모의 도움을 거부하고 철없이 험한 세상에 뛰어든 어린 아이들 같이 그들 스스로의 힘만 믿고 나선 이들은 제대로 괴물을 퇴치하지 못했지요. 그들이야 당연히 그들이 괴물을 퇴치해냈다고 믿고 있겠지만, 실은 괴물이 스스로 물러나서 그리 된 것일 뿐, 결국 그들은 괴물의 의지대로 휘둘렸을 뿐입니다. 이 일대에 도사리는 괴물을 온전히 몰아내지 못하고,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음은 그것에 기인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편견을 벗어나야 할 때란 말입니다. 언제까지 기계 군단을 세상에 위협을 가하는 악의 집단으로만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기욤 장군은 비록 그 행적이 온전히 깨끗한 사람은 아니지만, 기계의 힘을 얻고, 대오각성하여,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인생에서 어찌 마음에 드는 이들만 만나며 살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기분 나쁜 사람과도 함께 해야 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굽혀 큰 힘, 큰 뜻을 가진 자를 따라야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법입니다. 자존심을 굽히고, 높은 자를 섬기는 것,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도리입니다. 자존심을 굽힐 줄 모르는 것들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지요! 자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큰 힘과 큰 뜻을 가진 존재를 섬기며 큰 뜻을 이루시겠습니까? 아니면, 자기만 아는 삶을 좇아 옹졸한 뜻을 이루며,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시겠습니까?

  "괴물이 어떤 자인지, 일단 파악을 하고, 그 이후에 생각해 볼게요."
  그 때, 내가 카리나를 대신해 그의 말에 화답을 하고, 그를 지나치려 하였다. 그러자, 그 남자가 곧바로 나에게 이렇게 일렀다.
  "안 됩니다! 지금 바로 기욤 장군의 군단에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 괴물은 곧, 자신의 본성이 깨어날 단계에 돌입하고 있어요! 자칫하면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한 발짝 물러서시고, 저를 따라 기욤 장군의 뜻에 따르십시오!"
  "따르고, 따르지 않고는 우리들이 결정해요!" 이후, 카리나가 바로 쏘아 붙이려 하였으나, 내가 말리고서, 남자에게 괴물과 직접 정면에서 맞서겠다고, 일행이 이미 결정을 내렸음을 알린 후에 군단에게 요청을 받는 것은 일행의 상황이 안 좋아지고 나서 고려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서, 카리나와 함께 다리를 건너가려 하였다.
  "어서 따라 와!" 그 이후, 카리나가 세니아, 세나, 나에티아나 등에게 알려서 그들이 일행을 따라오도록 하였다.
  "아니, 잠깐만...... 지금껏 여기로 온 이들도 다들 똑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만 그러하신 것 아니에요! 그들도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며 다가갔다가 유의미한 성과 없이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결말을 맞이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 때, 남자가 나를 비롯한 일행을 계속 말리려 하였지만, 나도 그렇고, 일행 모두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그 정체가 무엇인지 모두 인지하고 있었기 떄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카리나가 앞장서고 내가 뒤따라 다리를 건너 기억의 사당에 이르렀다. 그 이후로, 세니아가 카리나를 따라 오고, 세나 그리고 아잘리가 잔느 공주를 이끌고 다리를 건넜다. 나에티아나는 세나, 아잘리가 잔느 공주와 함께 다리를 건널 즈음, 두 사람의 움직임과 맞춰 상공에서 비행을 이어가려 하였다.


  "그런데, 정말로 괴물을 처치, 저지하려고 사람들이 온 것은 맞아?"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해." 그러자 카리나가 답했다. 카리나는 나에티아나 일대를 실제로 자주 방문하기도 하고, 거주한 적도 있었으며, 그래서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한 번씩 듣고는 했었는데, 그 와중에 괴물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던 것.
  "그 폭풍우의 규모가 워낙 커서 그것이 한 번 마을을 덮치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테니까, 그것을 방비하기 위한 차원 하에서 괴물을 처치하려 원정대가 조직되곤 했지. 하지만 막상 원정대가 기억의 사당에 올 때마다 괴물은 갑자기 사라졌고, 그렇게 원정대의 일원으로 찾아온 사람들의 힘만 빼는 일이 반복되었지."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원정대 조직을 진지하게 하지 않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처음에는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브로아 사람들은 의외로 그런 쪽에서는 진지했어. 만의 하나라는 경우가 있기는 하니까. 원래 영토 방위라 함은 모든 경우의 수, 그 중에서도 최악을 대비하는 것이 당연함을 안다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거야."
  그렇게 나와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던 카리나는 그 이후, 기억의 사당과 사당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아. 어쩌면 지금이 괴물의 실체를 알아내고, 괴물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저기 보이는 여자가 본래 괴물이라는 거지?"
  이번에는 세니아가 나의 왼편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방금 전에 카리나가 했던 말, 들었지? 이번에는 공격성을 바로 드러낼 수 있으니까, 저런 모습을 보이더라도 무장을 놓지 않아야 해. 그리고, 괴물이라 칭해진 만큼, 본래는 거대한 개체일 수도 있고, 폭풍우와 관련된 존재인 만큼, 우리를 날려버리려 할 수도 있어.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야."
  "알았어." 말을 마치면서 내가 전하는 당부에 세니아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답했다. 그 이후로 카리나가 앞장 서고, 세니아가 뒤따르며, 내가 그런 세니아의 뒤에서 그들과 함께 먼저 기억의 사당 쪽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세나는 나에티아나와 함께 잔느 공주를 보호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기억의 사당으로 돌아올 무렵, 아잘리가 앞장서는 두 사람을 대신해 나의 오른편 곁으로 오려 하자, 내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너도 이번 일에 같이 끼어들려고?"
  "이번에는 너와 함께 하고 싶어서 말야." 아잘리가 바로 답했다.
  내가 다시 기억의 사당, 그 표면을 밟을 무렵, 여인은 다소곳이, 사당의 한 가운데에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인상도 이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표정도 이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의 상태에 특별히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에는 마법을 통해 변장을 해서 낡고 어두운 옷차림의 '죽음의 기사' 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 채로 다가갔기에, 본 모습으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목소리도 변조되었기에 목소리로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인의 모습을 보자마자 조심스럽게 그의 앞으로 다가가려 하였다.

  이전 때와 같은 노란 상의와 검은색의 무릎까지 내려가는 치마, 노란 옷 위의 갈색을 띠는 얇은 외투, 그리고 다리에 하얀색을 띠는 얇은 스타킹과 검은색의 굽이 약간 높은 구두, 그리고 이전 때와 같은 흑갈색의 등까지 내려가는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를 보이는 채로 젊은 여인이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자신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일 것이다.

Yâgironun âtënillo oscyâciyo?

  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물었다. 말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조를 통해 내가 그 때처럼 친절하게 나를 대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고대 언어의 일종이겠지." 그 때, 뒤따르고 있던 카리나가 물었고, 곧바로 세니아가 답했다. 아무래도 카리나, 세니아가 둘이서 서로 문답하고 있었던 것 같다.

  "We are here for sightseeing. (관광으로 온 거예요)"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친절하게 목소리를 냈고, 처음 보는 사람이었을 만큼,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에게 관광 삼아 왔다고, 옛 브리태나로 답했다. 옛 문명 사람들은 옛 브리태나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때처럼 옛 브리태나를 이용한 것이었다.

  "I see a lot of your people. (많은 분들이 보이네요)."
  여인이 말했다. 내가 옛 브리태나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언어가 아닌 옛 브리태나로 말을 걸려 하였던 것. 그러는 동안 여인의 표정은 감정의 동요 하나 없이 차분했으며, 목소리 역시 표정에서와 같이 떨림 없이 온화하고 평온했다.
  "저기 저 여자가 원래는 괴물이라는 거지?"
  "그런 것 같아." 그 때, 등 뒤에 있던 카리나가 옆에 있었을 세니아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세니아가 조용히 답했다. 이들의 대화는 꽤 조용했는데, 여인이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니아가 카리나의 물음에 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이 질문했다.

  "I think the world has gotten a lot rough, everyone is holding weapons for sightseeing. (세상이 많이 거칠어진 것 같아요, 관광을 위해 모두 무기를 들고 계시니)"
  "A monster appeared, so we have to do this. (괴물이 나타났다고 하니,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요)"
  그 질문에 내가 그렇게 답을 할 때였다. 그 광경을 세나, 나에티아나와 함께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잔느 공주가 나의 곁으로 다가오려 하였다. 그 때, 나의 바로 뒤에 있던 세니아가 그 광경을 보더니, 잔느 공주에게 작게 소리내어 말했다.
  "잔느 공주님! 대체 뭐하시는 거예요?"
  "제가 아는 사람 같아 보여서요, 한 번 그 모습을 보려고요."
  하지만 세니아가 말렸음에도 잔느 공주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바로 오른편 곁까지 다가왔다. 나도 그 소란 이후에 잠깐 고개를 돌려 그 광경을 보기는 했지만, 짐짓 모른 척하고, 여인과의 대화를 이어가려 하였다.
  "You've been here all this time. (계속 여기에 계셨나 보군요, 지금까지)"
  "Yes, There's a reason why I have to be here. (예, 이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요)"
  여인이 내 말에 대한 화답을 했다.

  "A reason why you have to be here? (이 곳에 있어야만 할 이유라고요?)"
  "Yes, you won't see it, but there are a lot of people here. (예, 여러분들께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 곳에는 많은 이들이 있어요)"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city of humans here, but as the human world fell......
(먼 옛날, 이 곳에는 인간들의 도시가 있었어요. 하지만 인간 세상이 멸망하면서.....)

  하지만, 그 말을 건네는 와중에 여인은 기어코 잔느 공주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차분하고 온화하기만 하던 여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기고, 정색하는 듯한 어투로 여인이 내게 물으려 하였다.
  "Who is that person? (저 사람은 누구인가요?)"
  "She was asleep in the underground ruins. Then she woke up and joined us, and she said she wanted to help me out, so she's staying with us up to this point. (지하 유적에 잠들어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깨어나서 저와 함께하고 있어요. 그리고,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해서 여기까지 저와 함께하고 있어요)"
  그 물음에는 그렇게 답을 했다. 에둘러 말한다고 해서 그가 모른 척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고, 어차피 일이 심상치 않게 된 이상, 거침 없이 답하기로 한 것. 하지만 여인이 한 번 잔느 공주에게 시선을 향하기 시작한 이래로 여인에게 내가 뭐라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여기서 탈출하셔야 할 것 같아요!" 잔느 공주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대로 하지는 않으려 하면서 이렇게 화답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탈출하려고 해도 위험해요. 정면에서 위험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 때, 그간 평온하기만 하던 여인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얼굴만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더 나아가, 갈색을 띠고 있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흰자위까지 붉게 물들며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Neganuguinzci-râhandago, Naegamorrlgâ'gattaßâ!?

  이전까지 옛 브리태나어로 어떻게든 대화하던 모습까지 걷어내고서, 여인은 잔느 공주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나긋나긋했던 젊은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기괴하고 사악한 여인의 목소리가 그것을 대신해 울려퍼지고 있었다.

  "Zceganuguinzci dangscik'esâ-tâkeascinayo!?"
  그러자 잔느 공주 역시 당황하면서 응수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고, 그것이 아마 그의 원래 모어였을 것이다. 잔느 공주는 여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러면서 모어로 외친 것을 보면 여인의 목소리로 들리는 말은 잔느 공주의 모어와 유사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Arlgâ'âpsâ!!!! ZcugâraaaaaaaaaAAAAAAAAAAAHHHHHHHHHH!!!!!!!

  그 이후, 여인은 격분의 감정을 실은 목소리를 내며, 검붉은, 핏빛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 이후, 여인이 두 팔을 양 어깨 너비로 벌리자마자 갑작스럽게 폭풍이 터져 나오며, 일행을 덮쳤다. 워낙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다보니,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여인이 일으킨 파동에 그저 그렇게 각자 흩어져 날아가게 되었다.



  폭풍은 내가 정신 없이 날아가던 와중에 그쳤고, 이후, 나는 사당의 외벽을 보자마자, 어떻게든 그 쪽으로 몸을 움직여, 그 방향으로 떨어지려 하였다. 그 이후, 나는 다리 우측 근처의 외벽 근처에 이르면서 감빛의 기운으로 왼손의 손가락 끝마다 하나씩 칼날을 생성, 그 감빛 칼날을 사당의 외벽에 찔러 넣으면서 그것에 의지해 매달려 위험을 면했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이후, 나는 주변 일대를 둘러 보면서 나를 따라온 카리나, 세니아 등의 행방부터 찾으려 하였다. 카리나, 세니아는 물에 빠진 후에 근처의 바위를 찾아 그 쪽으로 헤엄치고 있었으며, 아잘리는 나의 왼발에 매달려 있었다. 왼발에 유난히 센 무게감이 느껴져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아잘리가 매달리고 있었던 것. 세니아, 카리나는 물에 빠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다치거나 하지는 않아 보였다.
  세나는 바람의 환수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의 등을 타며 비행하고 있었고, 근본이 천사였던 나에티아나 역시 날개를 이용해 비행하면서 추락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잔느 공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잘리, 어쩌다가 내 발에 매달려 있는 거야?"
  "떨어지다가 네가 매달린 걸 보고 다리라고 붙잡으려고! 그건 그렇고, 잔느 공주는 어디로 간 거야?"
  아무래도 잔느 공주는 바다 멀리 날아가 버린 것 같았고, 그래서 일단 근방의 바위 위에 착지해서 그를 찾아보려 하였다. 그러면서 아잘리에게 "먼저 내려가! 이후에 나도 따라 내려갈 테니까!" 라고 외쳤고, 이에 아잘리는 별 수 없다는 듯이, 나의 다리에서 손을 놓고, 물 위에 떨어졌다. 나 역시 물 속으로 떨어지려 하였는데, 온 몸이 바닷물로 다 젖어버렸지만, 적어도 바위 위에 잘못 떨어졌다가 다치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이었다.



  물 속에 떨어진 이후, 아잘리와 함께-올라오기 전에 아잘리가 손을 내밀며, 자기 손을 잡고 올라오라 했지만, 굳이 도와줄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다시 근처의 바위 위로 올라왔을 무렵, 카리나와 세니아가 근방의 바위 위에 머무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후, 카리나가 바위 위에 앉고, 세니아가 그 곁에 서 있으려 하는 모습을 보았을 그 때, 세니아가 건너편 바위에 있었을 나에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사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저 쪽으로 가 볼 거야, 잔느 공주님을 찾으려고. 아무래도 저 오른편 멀리 날아가서 떨어진 것 같아서."
  그 목소리에 그렇게 응답하고서, 곧바로 내 오른쪽 너머를 향해 헤엄쳐 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눈앞으로 작은 배 몇 척이 보여서 그 배들을 어떻게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잔느 공주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그 기욤인지 뭔지가 보낸 배들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후, 내가 그 배들을 보며, 나를 따라오던 아잘리에게 배들에 대해 언급하자, 아잘리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나에게 묻고 있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며, 아잘리와 함께 사당의 해변 쪽으로 헤엄치는 동안 배와 더불어 날개의 하단에 큰 공격 장치를 달고 있으며, 동체 위로 프로펠러를 회전시키는 모습을 보이는 전투기들과 같은 병기들도 나타났으니, 그 배들은 기계 무리가 보낸 것임이 틀림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근방의 바위에 다다르려 하였다.
  그 때,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하단에 길다란 팔을 가진 구체 비스무리한 형태의 검은 비행체들로 몸체의 상단에 프로펠러를 회전시키면서 앞쪽 한 가운데의 '눈' 에서 붉은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몸체에서는 '눈' 을 중심으로 눈과 같은 색의 빛을 띠는 붉은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몸체에 새겨진 틈 사이로 빛이 노출되어 생긴 현상인 듯해 보였다. 그것들은 곤충의 그것 비스무리한 가는 팔에 새의 발과 같은 손을 가진 이로 손가락 끝마다 달린 손톱으로 머리 등을 찍어서 공격한다는 특징을 가진 듯해 보였다.
  이들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천천히 다가가며 각각의 손톱이 나를 향하도록 할 때, 내가 이들을 상대하기로 하고, 뒤따라 헤엄쳐 오던 아잘리에게 말했다.
  "내게 맡겨." 그리고 나를 향해 접근해 오는 병기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곧바로 왼손을 높이 들어 각 손가락에서 빛 줄기들을 분출해, 그 빛 줄기들이 이들의 몸체와 팔 사이의 관절들, 그리고 '눈' 을 향하도록 하니, 빛 줄기들은 곡선을 그리면서 그것들의 관절, '눈' 들을 궤뚫었고, 이후, 이들은 빛 줄기에 수차례 궤뚫리면서 관절이 파괴되어 팔이 떨어지고, '눈' 에서부터 폭염이 그 바깥으로 파열되어 폭발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었는지, 직경 1.5 메테르 즈음 되어 보였을 개체들이 폭발하면서 그 2 배 이상의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비행체들이 폭탄을 떨어뜨리며 위협해 왔지만, 이들 모두를 격추시키면서 근처의 바위 해안에 간신히 도달할 수 있었다.

  바위 해안에 도달한 이후, 곧바로 그 너머로 뛰어가면서 잔느 공주를 찾으려 하였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전에도 보았던 그 전투 비행체들이 계속 전방 일대를 맴돌다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오며 각자의 포구 및 공격 장치에서 탄두 부분이 붉게 빛나는 검은 미사일, 그리고 붉은 광선으로 위협해 오고 있었다. 해변에 머무르는 동안, 미사일들이 계속 주변 일대에서 폭발하고 빛 줄기들이 지면에 닿고 있었기에, 폭발 등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방호막으로 나 자신을 지키려 하였다. 아잘리도 방호막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하였으며, 나에게도 추가 방호막을 마련해서 앞장서 싸우려 하는 나를 도와주고 있기도 했다.
  이들 중에서 미사일들이 (다수가 발사되고 지면 등지에서 폭발을 일으키기에) 더욱 위협적이라 여기었고, 그래서 미사일 발사 장치들을 먼저 파괴하려 하였다.
  "미사일 발사 장치들을 먼저 제거해야 해!"
  "알았어!" 미사일들을 방출하는 대형 비행체들의 공격 장치들을 먼저 파괴한 후에 몸체를 이어 파괴하고서, 이어서 뒤따라 오던 광선들을 계속 발사하던 전투기들을 노려 이들을 격추시켰다.
  그 이후로 이전에도 보았을 배들을 발견하고, 이들의 함교 부근에 장착된 포탑에서 발사되는 광선, 포탄들을 피해가며, 우선 포탑들을 먼저 빛 줄기들로 폭파시키고, 이어서 선교를 타격해 폭파시키는 방법으로 이들을 격침시키려 하였다.
  이번에는 아잘리도 나의 우측에 위치하며, 나의 공격 행동에 가담, 오른손에 든 총에서는 광탄들을 발사하고, 왼손에서도 파란 기운을 일으켜, 그 기운으로 대상을 추적하는 특성을 가지는 파랗게 빛나는 구체들을 발사해서 병기들을 격추시키려 하였다. 아잘리가 발사하는 구체들이 마치, 혜성 혹은 유성처럼 긴 꼬리를 그리며, 병기들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공세를 거듭한 끝에, 배들이 하나씩 몸체가 폭파되어 분리되면서 가라앉다가 수면 위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잔느 공주를 위협할 만한 병기들을 파괴해 가며, 그를 찾으려 하였지만, 그의 모습은 해변의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지브로아 해안과 비교적 가까운 한 지점에 무지개색을 띠며 빛나는 구체 하나가 떠 있었을 따름.
  "저 공처럼 생긴 것 안에 잔느 공주가 있는 거 아냐?"
  "......." 그 구체를 발견했을 무렵, 아잘리가 나에게 물었다. 뭔가 짐작되는 바가 있었던 모양. 그런 그 물음에 나는 "속단하려 하지마." 라고 답했다. 물론, 나라고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아잘리 같은 추측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에 함부로 추측을 할 수는 없을 노릇이었으니, 아잘리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 구체가 있는 쪽으로 한 척의 함선이 다가오고, 그 배 주변으로 한 무리의 전투기들이 배와 함께 상공에서 기억의 사당이 위치한 해변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들을 발견하자마자, 혼자서 이들을 곧바로 몰아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면서도 가능한 이들에 타격을 가해 보자는 심산에 빛의 기운을 소환했다.
  "우리가 저들을 다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할 수 있는 만큼, 해 봐야지, 별 수 있겠어?" 아잘리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면서 나 자신도 양 손에 빛의 기운을 일으키면서 기계 무리를 영격할 준비를 했다. 이후, 다가오는 병기들을 향해 내가 먼저 타격을 개시, 나는 곡선을 그리는 수없이 많은 빛 줄기들을 나 자신 그리고 빛의 기운에서 생성해 비행체들을 격추시키도록 하고 있었으며, 아잘리 역시 추적하는 특성을 가지는 수없이 많은 작은 구체들을 생성해 그 구체들을 병기들을 향해 쏟아붓는 방식으로 공격에 나섰다.
  그에 맞서 병기들이 검붉은 미사일들, 철퇴 모양의 폭탄들 그리고 광선들을 발사해 가며, 나를 비롯한 해변에 있을 이들을 공격하려 하니, 폭탄들에 의한 폭풍을 비롯한 위험을 피해 가며, 병기들과 맞서려 하였다. 가능한 잘 피해 보려 애썼지만, 워낙 한 번에 발사되는 수가 많아, 폭발도 넓게 퍼졌고, 그래서 이들을 모두 잘 피해내기는 어려웠다, 방호막이 계속 반응을 일으키며, 조금씩 피해를 입는 모습을 보였음이 그 증거였다. 아잘리의 방호막 역시 점차 피해를 거듭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동안 병기들과 맞서고 있을 무렵, 세나가 내가 위치한 우측 상공에서 새를 타고, 오른손에 검을 든 채로 나타나서 새의 입에서 빛 줄기들을 흩뿌려, 이들이 전투기들 그리고 함선을 향하도록 하고 있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때, 세나에게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후, 세나는 지금까지 일행과 떨어져서 주변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가, 내가 있는 쪽으로 병기들이 몰려오는 정황을 목격하고 도와주기 위해 왔음을 알렸다.
  "지브로아와 하미시 사이에 자리잡은 거센 바람이 걷히면서 프라에미엘 씨도 온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가능한 빨리 이 쪽으로 오라고 부탁했었어요."
  "그래?" 사람 수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 시점에서 누군가 하나 더 도와주러 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임이 틀림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서, 그에게 곧바로 잔느 공주의 행방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혹시 잔느 공주님의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저도 못 봤어요." 그러자 세나가 답했다. 그 이후, 그는 지브로아 쪽에 떠 있는 구체를 가리키며, 그 구체와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후로 병기들의 공격이 계속 이어지는 탓에-세나가 있는 쪽으로 미사일들이 발사되었고, 세나가 환수가 발사하는 빛 줄기들로 미사일들을 격추시키고 있었다- 대화가 끊겨, 더 이상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한편, 카리나, 세니아는 사당의 해변으로 올라와 내가 위치한 먼 저편에서 상륙을 시도하는 인간형 병기들과 맞서고 있었다. 카리나가 빛의 방패를 생성해 병기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한 번씩 다트들을 발사해 인간형 병기들 사이에 끼어있는 소형 전투기들을 격추시키고, 세니아가 화염 줄기들을 발사해 인간형 병기들을 격추시키고, 또 상륙해 오는 병기들을 검으로 베어 파괴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는 함선과 전투정들도 있었는데, 전투정들 역시 격추되어 폭파되고 있었다.
  여기에 이전의 폭발 때에 날개를 펼치고 날아서 위험을 면했던 나에티아나가 세니아의 곁에 머무르며, 상공에서 노란 빛 줄기들을 쏘아가며, 금빛을 발하는 화살을 쏘며, 멀리서 다가오는 인간형 병기들과 전투기들, 그리고 전투정에 타격을 가하니, 그로 인해 멀리서 격추되어 폭파되는 전투기들, 인간형 병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 여기에 몇 명이 있지, 우리 포함해서?"
  "6 명." 해안 쪽으로 다가오는 병기들을 한참 격추시키고 있는 그 와중에 아잘리가 건넨 그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나, 아잘리, 세나, 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나에티아나로 6 명이었던 것. 그 대답을 하자마자 아잘리는 곧바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6 명을 때려 잡겠다고 저렇게 몰려오고 있다는 거지?" 그러자 내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리고, 오히려 때려 잡히고 있는 것이고?" 그 물음에도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아잘리는 나에게 6 명의 일행 말고도 기계 무리가 노리는 이들이 또 있지 않겠느냐고 묻고, 내가 바로 그러할 것이라고 답하자 (하미시와 가브릴리아를 잇는 육로 쪽에도 기계 병기 무리가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리사 선생님께서 이전에 기계 병기들과 맞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어서 이렇게 나에게 묻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허망하게 전력을 낭비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뭔가에 미치면 저러할 수도 있겠지." 그러자 내가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아잘리가 그 뭔가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을 했다 :
  "6 명이든, 3 명이든, 1 명이든, 거슬리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치워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에 미쳐서 저렇게 병기들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겠지, 뭐. 6 명 정도는 병기들을 계속 내보내다 보면 결국 처치될 것이라는 확신일 수도 있고. 그런 생각에 미쳐 있으니까, 상황이 잘 해결되지 않음에도 저렇게 깨진 항아리에 물 붓듯이 병기들을 보내고 있을 거야."
  그리고, 말을 마친 이후에 부연으로 "어쩌면 와인일 수도 있겠지." 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는 동안 큰 포탄 하나가 날아오고 있어서 그것을 피해야 했고, 마침 큰 바위 하나가 근처에 있어서 그 바위로 뛰어간 이후에 바위 아래로 엎드리니, 아잘리도 그런 나를 따라 엎드렸다. 이후, 포탄은 바위 근처에서 크게 폭발했는데, 서 있었으면 위험할 뻔했다.
  이후에도 대형 폭탄이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와서 다시 엎드려야 했고, 이후에도 철퇴의 추처럼 생긴 공뢰들이 함선 쪽에서 방출되어 흩뿌려지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고, 최대한 격추시키려 했다가 다 격추시키지 못함을 인지하고, 근처의 담장에 숨어 폭발을 피하려 하였다. 잠시 후, 공뢰들이 담장 근처에서 폭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폭발이 끝날 즈음, 다시 담장 밖으로 나와서 연기 속에서 해안 쪽으로 상륙한 인간형 병기들을 비롯한 병기들과 맞서게 되었다.
  우선 앞장 서서 오던 대형 병기들, 네 다리를 가진 내 키의 2 배 정도 되는 검은 병기와 마주한 이후, 다리 위의 기수 부분 한 가운데에 장착된 붉은 '눈' 부분의 빛에서부터 분출되는 번개 줄기와 그 줄기가 지면에 닿으면서 생성되는 불꽃을 피하면서 눈 쪽으로 뛰어오르고, 아잘리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후, 아잘리가 다리 사이의 몸체 하단 쪽으로 들어선 그 때, 나는 기수에 매달려서 눈 쪽으로 기어오른 이후에 빛의 기운으로 하여금, 하얀 수정 칼날들을 생성해 눈을 타격하도록 하고서, 병기의 눈 근처에 매달린 채로 병기 주변을 맴돌고 있을 상단에 프로펠러가 달린 병기들을 하얗게 빛나는 화구들을 소환해서 격추시켜 갔다.
  그러다, 결국 병기의 눈이 부서지면서 그 내부에서 불길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이어서 칼날들이 그 안쪽으로 파고들기를 반복한 끝에 동력원도 폭발했는지, 안쪽에서 폭발이 일어나, 표면까지 파열시키려 하자, 바로 그 몸체에서 뛰어내리고, 아잘리에게도 병기의 눈과 더불어 동력원까지 부서졌음을 알렸다.
  한편, 아잘리는 병기 하단의 몸체에 구멍을 뚫었고, 다리의 관절들 역시 파괴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다 내가 병기의 동력원이 파괴되었음을 알리자마자 바로 그 안쪽에서 빠져나와 담장 쪽으로 돌아가려 하는 그 때, 병기의 몸체가 뒤로 기울어지려 하였다. 관절들이 죄다 끊어진 탓에 병기의 몸체와 더불어 다리의 윗 부분들만 지면에 떨어져 폭파되니, 그 이후, 병기가 있던 자리에는 불과 연기의 기둥 그리고 기둥처럼 남은 네 다리의 잔해들만 남게 되었다.
  이후에도 똑같이 생긴 대형 병기들과 함께 인간형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니, 먼 저편에서의 상황을 정리하고 온 세니아, 카리나가 이들을 상대하는 틈을 노려, 아잘리가 인간형 병기들의 대열을 돌파해 대형 병기의 안쪽으로 파고들고, 나는 눈을 노리면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대형 병기 역시 쓰러뜨리고 폭파시켰다.
  한편, 세나는 몰려오는 전투정들을 새 형상을 한 바람의 소환수 뿐만이 아닌 자신이 소환할 수 있는 모든 소환수들을 끌어들이며, 상대하고 있었다. 갑주 형태의 소환수가 오른손에 도끼를 든 채, 인간형 병기들과 맞서는 동안, 세나는 바람의 환수를 움직여 공뢰, 미사일들을 피해 가면서 환수의 입에서 분출하는 광선, 번개 줄기들로 자신을 노리는 전투정들의 공격에 대한 반격을 가하는 형태로 그들과 맞서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간 잘 보이지 않던 불새 향상을 한 불의 소환수도 나서서 불의 깃털, 입에서 분출되는 불꽃으로 전투정들에 타격을 가하고 있었으니,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혼자서 수많은 병기들과 맞서려 하다 보니, 무리한 마력 소모를 감수하면서까지 다수의 환수들과 함께 싸우려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렇게 그에 대한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안 쪽으로 몰려온 병기들을 하나둘씩 폭파시켜 가다가, 병기들의 공세가 주춤해질 즈음, 왼팔의 팔찌가 붉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뭔가 신호가 왔고, 그것을 감지한 것. 이전 같았으면 신경을 쓰지 못했겠지만, 병기들의 공세가 그 시점에서 갑자기 멈추어서 팔찌를 작동시켜, 신호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였다. 그 때, 나의 귓가에서 이런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Des renforts? Vous avez besoin de troupes? Mais qu'avez-vous fait, il n'y a plus de troupes!?
(원군? 지원이 필요해!?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병력이 남아나질 않는 거야!?)
Vous ne pouvez pas maintenir les troupes? Au point que les troupes d'État d'AMC soient anéanties? Tais-toi! Silence!!! Peu importe si AMC est anéantie, et elle est très déracinée! Les écumes de parasites essaient de creuser dans mon corps! Vous savez?
(부대 유지가 안 될 정도? AMC 주 병력이 전멸할 정도라고? 시끄러! 닥쳐!!!! AMC 가 전멸하고, 아주 뿌리가 뽑히더라도 상관 없어! 그 기생충 새끼들이 내 몸을 파고들려 하고 있다고! 알아!?)

Tourne les troupes restantes d'AMC dans cette direction, OK?
(AMC 잔존 병력을 이 쪽으로 돌려, 알았어!?)

Quoi?! Le chevalier et les elfes sont là? Même l'avion de chasse du PTI!? Ça me rend fou!!!
(뭐라고!? 그 기사와 엘프들이 그 곳에 있다고? PTI 의 전투기까지!? 이거 참, 돌아버리겠군!!!)

  팔찌가 붉은 빛을 발하는 동안 사나운 남성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실, 이 곳 뿐만이 아니라, 근방에도 그 어두운 색 옷차림의 남자가 언급한 AMC 의 무리가 진주하고 있었을 터인데, 그들이 이전에 보았던 엘베 족 무리 (에오르 자매, 리 셀린), 셀린 등에 의해 위험에 처한 상태에서 (거의 궤멸 직전인 것으로 보였다) 구조 신호를 그 쪽으로 보냈지만, 이 쪽에서는 AMC 가 궤멸되든 말든, 계속 병력을 자기 쪽으로 보내라 하고 있었던 것. 그러다가, AMC 무리를 위험 지경까지 몰아붙인 이들의 실체를 알아차리고 경악했던 것 같다.

Donc, si vous concentrez toutes les troupes dans cette direction, elles arriveront par ici, et cette direction sera assiégée par tout le monde, n'est-ce pas?
(그러니까, 이 쪽으로 모든 병력을 집중시키면 그 녀석들도 이리로 오게 되어, 결국 이 쪽이 그 모두의 포위 맹공을 받게 된다, 그런 말인가?)

  병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기계 무리를 공략하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기 쪽으로 집중되어 자신이 도리어 큰 위험에 처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쪽에서 기계 무리를 공략하기 위해 온 이들을 흩어 놓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잘 됐다면서 모두를 끌어모아 화려한 전투를 치르겠다는 미친 생각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때, 팔찌에서부터 이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Très bien! Faitez comme vous voulez, je vous donnerai des renforts. C'est moi qui suis responsable de cela. Ce sera une tâche très pénible de consommer mon corps, mais je dois le faire. Avec mes propres forces, ces choses stupides seront exterminées.
(좋다! 그렇게 해라, 너희가 원하는 대로 지원 병력을 주겠다. 이 쪽은 내가 맡겠다. 내 몸을 소모시키는 매우 귀찮은 일이 되겠다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힘으로 저 어리석은 것들 따위 바로 말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Quoi qu'il arrive, il ne faut pas laisser ces longues oreilles marcher sur cette terre, compris?!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긴 귀 녀석들이 이 땅을 밟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알겠나?!)

  다른 무엇보다 엘베 족 전사들이 자신과 맞닥뜨리려 하는 것을 더욱 원치 않았던 모양으로, 그러면서 가능한 그들이 오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정말로 일행에 대한 공격 시도를 준비하던 함선들, 그리고 병기들이 동쪽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일행을 공격하던 함선 하나를 제외하고. 명령을 내리는 시점에서 그 함선은 이미 수차례 공격을 받고 있었기에 더 어찌할 도리는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버리는 쪽을 택한 것 같다.
  이후, 남아있던 병기들은 일행 쪽에 합세한 세니아, 나에티아나 등에 의해 격추되어 폭발하고, 주변의 전투정들 역시 함선을 지키던 두 척의 큰 배들까지 세나가 치열하게 공격을 가한 끝에 모두 격침되어 함선 주변에는 남은 것이 거의 없게 되었다.

  "녀석들이 물러나고 있어." 그 광경을 왼편 옆에서 나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아잘리가 말했고, 그 말에 내가 "그렇지." 라고 답했다. 그 이후, 아잘리가 말했다.
  "에오르 자매를 비롯한 엘베 족 용사들이 여기로 왔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막상 여기로 오니,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 쪽에 가 있었던 모양인가 봐. 아르사나, 그들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어?"
  "아직은." 말을 마치면서 아잘리가 묻자, 내가 바로 답했다. 이후, 해안 쪽이 잠잠해지면서 담장 밖으로 나오는 나와 아잘리의 왼편에서 세니아와 나에티아나 그리고 카리나가 나란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이 병기들이 모두 파괴되거나 물러나면서 해결되면서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어, 이 쪽으로 올 수 있었던 것. 바닷물에 빠져서 다들 옷도 몸도 젖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구르면서 돌, 먼지에 뒤덮혀 있었겠지만, 큰 상처는 없어서 다행이었다.
  "괜찮은 모양이네, 너하고, 그 친구 분하고." 세 사람 중에서 앞장서 오던 카리나가 나를 보더니, 미소를 띠며 그렇게 말했다. 나와 아잘리를 보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모양. 그러다가 그는 나를 지나쳐 가더니, 상공 쪽에 있는 세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 애는 또 혼자서 저러고 있네." 그러더니, 혼자서 전투정들과 맞서고 있는 세나를 바라보며 말하니, 내가 환수들도 같이 가고 있으니, 혼자는 아닐 것이라 답하고서, 이번에는 혼자서 많은 것들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무리를 해서라도 환수 여럿을 소환해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지켜보고 있어 봐, 곧 큰 일을 해넬 테니까." 그리고서,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상공에서 혼자 싸우고 있을 세나를 가만히 바라보려 하였다.

  한편, 세나는 자신과 맞서던 전투정들이 하나씩 격침되어 폭파되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함선 근처의 대형 전투정들 앞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이전부터 그의 곁에서 인간형 병기들과 맞서오던 갑주 형태의 소환수는 창을 들고, 불의 소환수는 불새의 형상으로 변해서 바람의 소환수에 올라탄 세나의 근처에서 그와 동행하며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대 전투정, 선수 부분이 거대한 머리와도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검은 전투정 한 척이 세나의 시선 앞으로 다가왔다. 전투정은 세나가 접근해 오자마자 기수와 몸체에 장착된 포대의 포신에서 붉은 광탄들을 발사하기 시작, 세나는 바람의 환수를 움직이며 광탄들을 피해내며, 전투정의 선수 위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다, 우측에서 인간형 병기들이 날아오는 것을 갑주형 환수가 발견하고, 투구 사이의 두 눈을 번뜩이며, 빛을 발하는 창을 들며 인간형 병기들과 맞설 때, 세나의 검을 물의 환수가 휘감아서 환수의 몸체가 검의 날을 이루니, 이에 세나는 자신이 타고 있던 바람의 환수에서 전투정을 향해 뛰어내렸다. 뛰어내릴 때, 그는 물의 환수에 휘감겨 환수의 입과 같은 형상을 하는 검의 끝을 전투정의 '정수리' 부분에 해당되는 선수의 부분을 향하고 있었으며, 선수에 접근할 무렵, 두 손으로 잡은 검으로 그 정수리를 내리찍으니, 그와 함께 불, 바람의 환수도 새의 형상을 이루며, 전투정의 선수 부분으로 돌격하면서 그와 함께 해당 부분에 타격을 가하려 하였다.
  그 이후로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세나는 전투정의 선수 부분이 폭발한 이후, 바다 쪽으로 낙하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바람의 환수가 낚아채니, 그로써 환수의 등에 다시 올라타고서, 전투정의 남은 부분을 타격해 폭파시키고, 함선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함선을 직접 공격하려 하였던 것 같다.
  "제가 도와드리러 갈게요!" 그 때, 나에티아나가 그런 세나를 보면서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혼자서 무작정 나서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 무렵에 함선 주변으로 계속 인간형 병기들과 전투기들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그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 보였으니, 그가 그렇게 나선다고 해서, 뭐라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카리나의 걱정에도 일단 지켜보자고 청했을 정도.

  그 쪽도 그 쪽이었지만, 잔느 공주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기계 병기들의 다수가 소탕된 이후의 바다 주변을 살피다가, 아잘리가 언급했던 그 무지개색 구체를 떠올리며, 그 쪽으로 가 보려 했다. 다른 쪽에 없다면, 그 무지개색 구체와 분명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다.
  "저 구체의 곁으로 가 볼게, 일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이후, 나는 카리나 그리고 아잘리에게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청한 다음에 바로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해변 근처를 표류하는 듯한 무지개색 구체로 접근하기 위한 일이었다.

  해변 쪽으로 천천히 접근해 가는 무지개색 구체를 향해 헤엄쳐 가는 동안 한 번씩 상공을 바라보며,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무작정 홀로 돌격한 이, 그리고 그런 그를 돕겠다고 무작정 나선 이의 싸움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자질도 상당했고, 경험도 많은 이들이라 무리와의 싸움도 나름 해내고 있었다. 세나와 환수들이 함선의 바로 앞에서 인간형 병기들과 맞서는 동안 나에티아나가 함선의 좌측면으로 날아가서는 화살, 광선으로 함선에 직접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함선의 측면은 함포들을 비롯한 공격 장치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함포에서 붉은 광선들이 발사되고, 공격 장치들이 미사일들을 발사했지만, 그 공격들을 계속 피해내며, 나에티아나는 함포, 공격 장치들부터 먼저 폭파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인간형 병기들, 전투기들이 한 번씩 무리지어 몰려오며 나에티아나를 위협했고, 그 때마다 그는 그 무리를 상대하느라, 함체 공격을 잠시 멈추고 있어, 함체를 향한 직접 타격의 성과 진전은 그렇게 빠를 수 없었던 것 같다.

  상공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그들을 한 번씩 지켜보며, 무지개색 구체의 바로 앞으로 수영을 통해 도달하려 하였다. 수영에 소질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구체에 닿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구체의 바로 앞에 도달하려 하는 그 순간, 상공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폭음이 거듭 울려 퍼졌고, 세나, 나에티아나가 위치하고 있었을 곳에서 울려퍼졌던 소리를 들으며, 무슨 일인가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보려 하였다.
  그 순간, 나의 눈앞으로 하얀색, 하늘색을 띠며 빛을 발하는 별빛의 무리가 함선 그리고 병기의 무리가 자리잡은 상공 일대로 비처럼 쏟아지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처럼 내리는 별빛의 무리는 함선 그리고 함선이 거느리고 있었을 병기들에 닿자마자 그 몸체에 박히면서 격렬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이후, 그 이후, 빛을 발하는 부분마다 폭음과 함께 파랗게 빛나는 열기가 빛과 함께 터져 나오며, 병기의 몸체를 파괴해 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세나, 나에티아나 역시 쏟아지는 별빛 무리 속에 있었으나, 그 별빛은 두 사람에게는 전혀 피해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세나, 나에티아나 모두 그것에 대해 크게 놀라지는 않았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빛의 유래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별빛은 잠시 동안 계속 흩뿌려지고 있다가, 거의 모든 병기들이 파괴되고, 함선이 푸른 불길에 휩싸일 즈음에 그쳤다.

  별빛이 얼마나 넓게 그리고 많이 흩뿌려지고 있었는지, 별빛의 낙하가 그친 이후, 함선에는 수없이 많은 별빛들이 박혀 함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격 시설들이 폭발과 함께 망가져, 함선은 망가지다 만 함체만 남게 되었다. 병기들은 거의 대부분 폭발에 의해 파괴되어 잔해들이 추락해 가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먼 곳의 병기들까지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잔해들만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보이고 있었으니, 얼마나 별빛이 넓게 흩뿌려졌는지를 이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잔해들이 검은 비처럼 하늘에서 바다로 낙하하고 있을 그 때, 그 잔해 무리 너머에서 잔해들 사이로 하늘색으로 빛나는 날개를 가진 이가 날갯짓을 거듭하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다급히 날아오고 있었는지, 날아오는 속도가 빨라 금방 그 온전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얀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푸른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에 밝은 하늘색을 띠며, 이마 쪽에 별이 박힌 머리띠를 두른 모습을 보이는 이로 밝은 하늘색 빛을 발하는 날개를 펼치고 있는 소녀로 그의 하얀 옷은 짙은 하늘색을 띠고,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긴 목의 테두리 부분, 그리고 손목을 덮을 정도로 길고, 가장자리 쪽은 나팔처럼 폭이 넓어지는 형태를 가지며, 하늘색 무늬를 그리는 소매 부분을 갖고 있었다. 그 윗옷과 치마 사이의 허리에는 하늘색을 띠는 띠를 두르고 있으며, 하얀 치마 안에는 무릎 높이까지 내려가며 테두리가 하늘색을 띠는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 치마의 몸체는 허벅지를 거의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했다.
  푸른 눈동자를 가진 밝은 색을 띠는 얼굴과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 위로는 하늘색 빛을 발하는 고리가 달려 있었으니, 이를 통해 그는 나에티아나와 마찬가지로 천사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의 두 손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고, 작은 빛들이 맴돌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이를 통해 병기들을 잔해들만 남긴 그 별빛들을 흩뿌린 이가 바로 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프라에미엘이 온다는 소식은 이전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일행의 위치를 파악한 이후에 일행과 합류하려고 기억의 사당으로 날아오려 하던 그 때 마침, 일행과 맞서는 한 무리의 기계 병기들을 발견했던 모양으로, 그런 이유로 프라에미엘이 병기들을 정리하려고 별빛 무리를 소환했고, 그래서 세나, 나에티아나가 위치한 상공 일대에 별빛들이 날아왔을 것이다. 아무튼 하나의 화려한 의식과 함께 프라에미엘이 나에티아나의 곁으로 와서 일행과 합류하게 되었다.

  "프라에미엘이로구나, 온다고 자주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왔네."
  그를 보자마자 나에티아나가 그를 바로 알아보고, 그를 향해 먼저 다가가서 그를 맞이했다. 그가 바로 이전부터 언급되었던 그 프라에미엘로 일행이 흔히 '프레미' 라 칭한 바 있는 이였다. 나에티아나와 함께 가마일 산 천문대에서 일했던 이로 가마일 산 천문대 모임이 해산된 이후에도 한 동안 나에티아나와 함께 활동했으며, 내가 여행을 떠날 무렵에는 나에티아나와 더불어 가브릴리아에 머무르고 있다가, 나에티아나가 일행과 합류하면서 홀로 가브릴리아에 남아서 가브릴리아 사람들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브로아에서 지브로아의 폭풍우 사건의 원흉과 일행이 맞서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달려왔다고 한다.
  어릴 적, 하늘 세계에 있을 때부터 나에티아나를 친 언니처럼 따랐으며, 지상 세계에서 활동할 때에도 앞장서서 나서는 나에티아나를 보조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고 한다. 다만, 빛의 힘 자체는 프라에미엘이 더욱 강했고, 그래서 지상 세계의 수호자 역할은 본래 프라에미엘이 맡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나에티아나는 그런 프라에미엘의 호위로서 그와 함께 했던 것.
  "늦어서 죄송해요. 진즉에 여러분께 와 드렸어야 했는데."
  프라에미엘은 자신을 맞이하러 오는 나에티아나를 보자마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행에 바로 합류하지 않고 있다가 늦게 왔다고 생각했던 모양. 그러자 나에티아나는 그런 프라에미엘과 동행해서 세나의 곁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화답했다.
  "괜찮아, 마침 잘 왔어. 덕분에 방금 전까지의 일이 잘 해결 됐어."
  그렇게 병기 무리가 동쪽 방향으로 물러나고, 남은 이들이 궤멸되자, 세나는 나에티아나를 이끌고 일행이 있는 해변 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하지만 프라에미엘은 무지개색 구체 쪽으로 시선을 향하더니, 그 쪽으로 날아가려 하였고, 그러하다 보니, 자연히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한편, 나는 무지개색 구체의 바로 앞까지 접근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구체 내부를 살피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무지개색 구체는 표면이 무지개색 빛을 발할 뿐, 구체 자체는 투명해서 그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아마 안쪽에서 바깥쪽을 들여다 보는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구체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보니, 안에 있는 이도 나를 보며, 바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다름 아닌 실종된 듯했던 잔느 공주였다.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무지개색 빛을 발하는 구체의 보호를 받으며, 물 위에 무사히 떠 있었다.
  "아르사나 님?"그는 자신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나를 보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왔는지를 알아차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내가 하려 하는 일이 무리한 일이라고 여기었던 것 같았다.
  "아르사나 님, 이것은 혼자서는 무리예요."
  "공주님을 들고 오려 한 것은 아니에요. 공주님을 찾다가, 구체에 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안을 살펴보려고 헤엄쳐 온 거예요."
  잔느 공주는 자신이 어떻게든 해변으로 보호막을 (구체를 잔느 공주가 그렇게 칭했다) 어떻게든 해변으로 끌고 갈 테니, 너무 무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나는 물 속에서 잔느 공주가 자리잡은 무지개색 구체의 뒤로 가서 구체를 밀려 하였다.
  "공주님 혼자서는 힘들 거예요, 제가 밀어드릴게요."

  그 이후, 프라에미엘이 나와 구체가 있는 쪽으로 왔다.
  "아르사나 님, 여기에 계셨군요, 해안 쪽에서는 안 계셔서 다른 어딘가에서 뭔가를 하시고 계시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깊은 바다로 들어오셨는데, 돌아오시는 것은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세나 님에게 부탁해서 환수를 이끌고 여기로 오도록 해 볼게요."
  "괜찮아." 그러자 내가 프라에미엘에게 답했다. 돌아오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이후, 그에게 한 자기 물어볼 것이 있음을 알리고서, 그의 모습을 올려다 보며, 이렇게 물었다.
  "잔느 공주님을 위한 보호막을 혹시 프레미, 네가 생성한 거니?"
  프라에미엘은 천상의 술법에 능한 이였고, 빛을 소환하는 능력 이외에도 빛으로 특정한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보호막 (방호막) 생성이었기에, 잔느 공주를 감싸는 구형의 보호막을 보면서 필시 프라에미엘과 관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잔느 공주를 보호하던 그 보호막의 무지개색은 프라에미엘의 술법에 의해 생성되는 일반적인 빛의 색과는 전혀 달랐다는 점이 신경 쓰이기는 했다. (그가 생성하는 빛의 색은 주로 하얀색이나 하늘색,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도, 프라에미엘이 보호막을 생성하면서 일반적인 빛과 다른 색의 빛을 생성했거나, 아니면 외부 영향에 의해 빛의 색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잔느 공주를 위해 보호막을 생성할만한 이는 그 이외에는 없었기에 물어보려 한 것이었다.
  "아니요." 프라에미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빛의 색이 일반적인 프라에미엘의 빛과 달랐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된 답변이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 대답은 당혹스럽기는 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보호막을 생성했냐는 의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기에.
  "그러면 누가 보호막을 공주님께.......!?"
  "......." 하지만 프라에미엘은 거기까지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어찌 대답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 보호막이란 것이 참으로 의문스러운 존재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잔느 공주를 지켜준 것이었음은 분명했고, 일단은 잔느 공주를 해안으로 보내고, 더 나아가, 사당을 점거하는 적과 맞서는 것이 급했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더 떠들지 않기로 했다. 구체 형상의 보호막을 밀어내려 하면서 그런 나를 따라가려 하는 프라에미엘에게 부탁했다.
  "세나에게 가서 알려 줘, 잔느 공주님께서 여기 계신다고 말야."
  그 때, 세나가 바람의 환수에 올라탄 채로 남은 환수들을 이끌고 내가 있는 쪽으로 왔고, 그러면서 수면 위에서 자신을 따르던 물의 환수에게 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물의 환수가 구체 쪽으로 다가오더니, 몸을 일으켜 잔느 공주를 감싸는 구체를 자신의 상반신 아래쪽으로 감싼 이후에 몸을 들어올리고서 구체를 감싸는 채로 해안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던 내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물었다.
  "환수가 저렇게 구체를 끌어안고 있어도 괜찮겠어?"
  "괜찮을 거예요." 세나가 답했다. 세나의 대답에도 걱정을 털어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런 걱정을 하고 있던 나 보란 듯이, 물의 환수는 잔느 공주를 감싸고 있던 구체 보호막을 조심스럽게 안으며, 해안 쪽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아르사나 씨도 어서 제 뒤에 타요!" 이후, 세나는 바람의 환수를 내가 있는 쪽으로 움직여서 물 속에 있던 내게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자신과 함께 환수에 타라는 것. 아무래도 계속 물 속에 있는 것보다는 물 밖에 있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할게." 그러자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의 왼손을 오른손으로 잡으며, 환수의 등 뒤에 올라타고, 이후에 그와 함께 해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실, 어차피 젖어버린 것, 왔던 그대로 헤엄쳐서 돌아갈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서기 전에 힘을 빼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어서 그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아르사나, 돌아왔구나, 그래, 잔느 공주님은 찾았어?"
  돌아오자마자 바로 카리나 그리고 아잘리가 나를 맞이했고, 이후, 착지하자마자 바로 두 사람의 곁으로 가서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리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세나는 바람의 환수에 계속 타고 있는 채로 주변 일대를 둘러보고, 물의 환수가 잔느 공주를 감싸고 있었을 보호막을 내려놓고, 그 보호막이 해안 쪽으로 밀려오도록 하고 있었다.
  "저기 저 무지개색 커다란 공, 보이지?" 이후, 내가 나의 오른편 곁으로 온 무지개색 구체를 가리키며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가 그렇다고 답하자, 그 구체에 대해 잔느 공주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서, 내부가 투명하기에 안쪽을 들여다 보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어 밝혔다.
  "진짜네...... 잔느 공주님, 괜찮아요?"
  내 말에 그 진의를 살피려 하면서 카리나는 구체 앞으로 다가갔고, 그러면서 정말 그 안에 잔느 공주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후, 카리나는 잔느 공주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잔느 공주는 괜찮다고 답했다.

  "폭발이 일어나고, 눈 앞에 빛이 번쩍이면서 잠시 의식이 없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다시 깨어난 이후에도 저는 물에 빠지지 않았기에, 이상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 구형 보호막이 저를 감싸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었어요."

  어떻게 보호막에 감싸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잔느 공주의 변은 이러하였다. 누가 어떻게 보호막을 생성했는지도 알 수 없었고, 보호막이 언제 없어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확실힌 것은 그 보호막이 금방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인데, 이 보호막, 한 동안 계속 남아있을 것 같아."
  카리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잔느 공주에게 보호막을 생성해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프라에미엘도 보호막을 생성할 수 있었지만, 이런 색도 아니었고, 특색도 상당히 달랐다) 확실한 것들이 있다면, 그 보호막이 강한 마력에 의해 생성된 일시적인 보호막은 아니었으리라는 것이 그 첫째였고, 잔느 공주의 의사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 그 둘째였다. 웬만한 상황에서 잔느 공주를 지켜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될 수 있을 법했다.
  "이 보호막이 있으면 적어도 잔느 공주님께서 싸움 도중에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긴 해.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저 보호막이 언제 없어질지 알 수 없기도 하고. 그러니, 잔느 공주님께서 함부로 싸움의 현장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시지 않으실 수 있도록 해야 할 거야."
  이후, 카리나는 내게 잔느 공주가 보호막을 너무 믿고, 싸움의 현장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도록 해 달라고 내게 당부를 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잔느 공주는 자신은 싸움에 있어서 외부자나 방관자가 아님을 굳게 확신하고 있으며, 이미 여러 차례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 영혼들을 만나겠다고 다짐을 한 바 있기에, 보호막에 의지해 어떻게든 싸움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려 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위험이 있을 수도 있었다. 카리나는 그것을 의식하며 내게 당부를 한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저도 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고 있으니까요."
  그 때, 그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었을 잔느 공주가 나와 카리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곳에서 지켜 보고 있겠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잔느 공주를 감싸는 보호막이 해안에서 천천히 떠올라, 일행이 위치한 일대의 상공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후로 그 구체는 일행이 갈 때마다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일행을 계속 따랐다.

  "그런데, 잔느 공주는 평소에도 이렇게 적극적이었어?"
  상황이 정리되고, 일행이 잠시의 평온 속에 있을 무렵, 나의 왼편 곁에 있던 아잘리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물었다. 싸움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할 법한 잔느 공주의 적극적인 행보를 보았을 아잘리가 나에게 의아함의 감정을 드러내며 물은 것. 이런 사람들은 대개 전투 상황에서는 소극적일 법도 한데,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잔느 공주를 보며, 예상 외라 여기었던 것 같다.
  "아니." 그러자 내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일행의 뒤를 따르기만 했고, 때로는 예나 교수의 보호를 받기도 하는 등, 일행을 조용히 따르는 입장이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기로 오면서 갑자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말이지?"
  이후, 아잘리가 묻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반대편의 해변, 사당의 문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오른편 곁에서 동행하던 아잘리에게 이렇게 알렸다.
  "이전부터 잔느 공주님께서는 자신이 구 세계의 인간으로서 살았다고 말씀하셨어. 여기에 동료였던 이가 있어서 그 역시 그의 친구였다고 하셨고. 잔느 공주님께서 인간으로서 살아가셨던 곳이 이 곳이고, 그것 때문에 유난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시는 것 같아."
  "잔느 공주님께서 원래 어디 사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 그 물음에 우선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어쩐지 바다 아래에 잔느 공주의 거주지였던 도시가 잠들어 있을 수 있으며, 적어도 잔느 공주는 그 일대가 자신의 옛 고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으리라 생각했음을 이어 밝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잔느 공주님께서 이 곳에서 유난한 감정을 보이시겠어."
  그렇게 떠드는 동안 어느덧, 사당의 문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만, 그 문 근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널 필요가 있었는데, 건너 뛰기에는 너무 폭이 넓어서 그냥 가려면 어떤 식으로든 물에  들어가야만 했다. 당시, 나와 아잘리는 해안의 동쪽, 카리나와 세니아는 서쪽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세나와 나에티아나 그리고 프라에미엘은 각자의 비행 수단을 통해 나를 비롯한 4 사람을 따라 가고 있었다.
  "아르사나, 들어가자." 내가 아잘리를 이끌고 길이 끊긴 지점에 도달할 무렵, 카리나, 세니아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아잘리가 보았고, 그 이후에 내게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바다에 몇 번씩 들어가서 젖은 몸이니, 또 들어간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래, 그러지 뭐." 그 요청에 나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하고서, 먼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이후에 아잘리도 그런 나를 따라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잠시 물 속을 헤엄쳐 가다가 마침내 일행이 있던 일대 건너편의 바위 해안에 도달하자마자 바로 해안 위로 기어올라왔고, 이후에 아잘리가 그런 나를 따라 물 밖으로 다시 기어올라오고, 이전에 이미 물 밖으로 나왔던 세니아 그리고 카리나와 마주할 무렵, 잠시 상공 일대를 둘러보며 공중에 떠 있을 이들의 상태를 보려 하였다.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 그리고 세나는 일행이 머무르는 상공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고, 잔느 공주를 보호하고 있었을 보호막 역시 프라에미엘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보호막을 잔느 공주가 움직일 수 있었을 테니, 잔느 공주가 프라에미엘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당 위의 상태는 어때? 본 사람 있어?"
  그 이후, 나를 비롯한 일행 4 인이 합류하자마자 카리나가 자신의 주변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물었다.
  "사당은 이미 빛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에 의해 차단되어 있어요." 대답을 한 이는 지표면에 서 있던 이들 주변의 상공에 머무르던 세나였다. 세나가 카리나에게 접근해서 대답을 해 준 것. 그렇게 우선 대답을 한 이후, 세나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환수를 통해 지표면을 공격했는데, 반응이 없었어요. 빛을 흡수하는 것 같은데, 보호막에 섣불리 접근하면 위험할 것 같아요."
  "그 폭발 이후에 괴물이 역장을 이용해 이리로 올라올 이들의 접근을 차단한 모양이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무슨 일인지에 대한 상황에 대해 말했다. 이전처럼 지표면으로의 접근은 힘들 것임은 분명했고, 그래서 다른 길로의 우회가 필요할 것임이 분명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해안 쪽에 문 하나가 있어서 그 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카리나가 묻는 것을 시작으로 나와 카리나가 서로 잠깐의 문답을 했다.

역장이 내부에까지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겠지?
녀석은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을 걸.
그 안으로 들어간다고 밖으로 나온다는 보장은 할 수 없지 않아?
그러할 리는 없을 거야.

  사당은 뭐가 어쨌든 건축물의 일종이고, 모든 건축물은 어떤 식으로든 옥상 구역을 갖추고,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함이 원칙이다. 비록 평상시에는 함부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비상시에는 옥상으로 올라가 도움을 받던지, 특정 수단-밧줄이라든지-을 이용해 내려갈 수 있도록 할 수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옥상으로 갈 수 있든, 없든 지금 이대로 사당으로 진입할 방법은 이것 외에는 없어. 그렇다면 저 보호막을 어떻게 뚫을 거야? 방법 있어?"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카리나는 뭐라 답을 하지 않고, 내 뜻대로 하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만약에 사당으로 올라갈 길이 없으면 어떡하겠냐고 묻자, 옥상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이르고서, 천장을 뚫어서라도 사당으로 올라가겠음을 선언하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굳게 닫힌 문의 바로 앞에 이르자마자 왼쪽 다리를 뒤로 뻗고, 오른쪽 허벅지를 허리 높이까지 들어올렸다가 그대로 종아리를 재빨리 뻗어 발로 그 문을 강하게 찼다.
  얼핏 보면 돌과 비스무리해 보였지만 문은 분명 금속 (아마도 철을 기반으로 한 합금?) 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문도 자물쇠로 잠겨 있었을 것이고, 문을 차면서 문에 채워진 자물쇠의 양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명이 몰락한 이래로 물과 공기 속에서 방치되어 있으면서 자물쇠의 재질인 합금은 부식될 대로 됐을 것이고, 그로 인해 강도 역시 약해졌을 것이다. 발로 문을 강타하고, 자물쇠의 양감이 느껴지는 것에 이어, 문 안쪽의 자물쇠가 부러지면서 그렇게 문이 열어 젖혀졌다. 얼마나 거칠게 열어 젖혀졌는지, 문이 부딪치고, 그 반동으로 다시 닫히려 할 정도였다. 그렇게 반동으로 문이 닫히려 하자, 다시 왼발로 문을 건드려 문을 밀어내는 것으로 사당 하부의 문을 완전히 열어 버렸다.

  "열렸어!!!" 이후, 나는 문이 열렸음을 알리고, 문이 열린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고, 그러면서 문으로 다가오는 카리나 등의 일행을 지켜보다가, 잔느 공주를 보호하는 보호막까지 프라에미엘을 따라 오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 프라에미엘에게 다가와 줄 것을 부탁하였다.
  "건물 내부에서도 적들과 맞설 일이 많겠지요?"
  "많이 있겠지." 이후, 프라에미엘의 물음에 답을 했다. 이후, 프라에미엘은 나에게 사당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건물 내부로 들어서서 그 내부에서 바깥인 사당 쪽으로 나가는 것 이외에는 정말로 없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잔느 공주님을 누군가는 모시고 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러더니, 나에게 그 역할을 자신이 맡도록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나는 앞장서는 것은 카리나, 세니아가 해도 괜찮으니, 내가 그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겠음을 밝히고서, 나와 더불어 아잘리가 그를 지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보겠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 이후, 나는 프라에미엘에게,
  "너는 세나와 함께 뒤에 있으면서 후방에서 습격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어."
  라 말했다. 이후, 나는 아잘리, 카리나에 이어, 세니아가 그의 곁으로 오자마자 그들에게 먼저 안으로 들어가 줄 것을 부탁했고, 나는 아잘리와 함께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을 알리고서, 잔느 공주를 일행의 한 가운데에서 지켜주는 역할을 맡기로 했음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 이후, 카리나가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서 그 내부를 살피더니, 나에게 공간이 넓어서 보호막 채로 머무를 수는 있어 보이지만, 보호막 직경이 문보다 좁아서 잔느 공주가 안으로 들어가려면 보호막을 해제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내부에 대해 알렸다.
  하지만 프라에미엘에 의하면 잔느 공주는 보호막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모르고, 그래서 보호막을 어떻게 해제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게 된 이상, 보호막에 감싸인 채로 잔느 공주를 내부로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공간 전이를 이용하면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기는 할 텐데......."
  그 이후, 세나와 나에티아나 그리고 잔느 공주까지 내가 위치한 그 부근에 이르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문 쪽으로 돌아서서는 조용히 혼잣말을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도 공간 전이 마법에 대해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익혀 보겠다고 마음 먹은 적은 없었고, 그래서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요령이 내게 있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리사 선생님께서 아잘리 등을 전이시킨 것을 떠올리며, 리사 선생님께서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당장 그 분이 그 곳으로 오실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카리나, 세니아 그리고 세나 등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한참 고심하다가, 아잘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아잘리, 너는 전이 마법을 익혀본 적 있어?"
  "나도 익히기는 했지만......." 그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아잘리가 답을 하려 할 즈음, 잔느 공주가 내게 다가오더니, 자신이 어떻게든 들어가 보겠음을 알렸다. 그리고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문으로 다가가는데, 갑자기 그를 감싸고 있던 무지갯빛 구체가 사라지면서 그가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잔느 공주님, 어떻게 된 거예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놀라면서 다급히 잔느 공주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으나, 잔느 공주는 그저 자신도 잘 모르겠고, 갑자기 보호막이 없어졌다고 답할 따름이었다. 어찌됐든, 보호막이 없어지면서 잔느 공주는 무리 없이 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고, 그리하여 다급히 문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언제 어떻게 보호막이 다시 생겨,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될 지 모른다고 하면서. 문 안 쪽은 보호막에 감싸인 잔느 공주가 무리 없이 돌아다닐 정도로 넓었기에,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잔느 공주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를 지키겠다고 했던 나와 아잘리 역시 그런 그를 따라 어두운 공간 내부로 들어섰다. 그 이후로 한 사람씩 세나,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이 들어서고 있었다.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에게는 날개가 있었지만, 비실체 날개라 문 너머 공간에 들어서는 것에 큰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고, 세나는 바람의 환수가 사라지도록 하면서 날개가 몸에서 사라지도록 하였기에 무리 없이 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건물 내부는 일반적인 거대한 건물의 내부와 비슷했다. 창들이 나란히 자리잡은 그 안쪽의 통로 너머로 본 공간이 있었으며, 본 공간은 내부를 가로지르는 복도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여러 방들이 위치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방들은 거의 전부가 내벽이 없어 내부가 개방된 공간들로, 처음부터 그렇게 개방된 공간이었을 것으로 여기어지는 것도 있는 듯했지만, 대부분은 처음부터 그렇게 개방된 공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류가 맞이했던 재앙 그리고 그로 인한 인류 멸망을 거치면서 그로 인해 공간의 외벽이 무너지고 부서져서 그리 되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통로와 공간을 구분 짓는 벽이 없어져 바닥의 모양 그리고 방과 복도를 구분 짓는 선을 통해 원래 그 곳이 방이었는지, 복도였는지를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위층과 이어진 계단은 예상보다 찾기 수월했으니, 출입문 너머에 위치한 본 공간의 한 가운데로, 출입문에서 바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출입문에서 계단으로 가려면 이런저런 시설들을 거쳐가는 미로 찾기를 해야 했겠지만, 시설들이 다 무너진 이상, 바로 길을 가로질러 가면 그만이었다.
  건물은 복도와 방이 존재하는 일반적인 건물 구조와 비슷했지만, 거대한 건물의 내부라 그러한지, 복도의 폭이 아주 넓었고, 방의 크기도 넓었다. 복도는 너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길목 수준, 그 이상이었고, 방 역시 작은 건물 이상으로 넓었다. 건물 내부에 있을 뿐이지, 하나의 작은 거리, 상가의 모습을 모사했다고 할 수 있었다. - 내가 상가라 표기하고 있음은 각각의 방들이 원래는 상점으로 활용되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건물 내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조명을 위한 장치들이 천장에 여럿 박혀 있기는 했지만, 내가 들어온 시점에서는 더 이상 의미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빛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공간 내부의 기둥에 밝은 빛이 자리잡고 있기까지하고 있어서 그 덕분에 내부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았다.
  내부는 어둡지 않았지만 공간 내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등불만 밝혀진 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의 내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고, 삭막하기도 하였다, 혹자들에게는 두려움의 감정을 일으킬 정도로.

  어떤 때에 카리나가 통로 쪽, 그리고 세니아가 공간 쪽 바닥을 밟고 있으면서 나란히 걷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 광경을 잠시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그것을 두고 카리나에게 이렇게 한 마디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벽으로 서로 막혀 있었을 텐데."
  "그래?" 이후, 세니아가 바닥을 살펴보다가 카리나 그리고 자신이 밟고 있던 바닥의 색이 다름을 알아차리다가 내게 고개를 돌리고서, 그렇다면, 원래 자신들이 밟고 있는 바닥이 벽으로 구분되어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으니, 내가 그렇다고 답했었다.

  "계단 앞에 이르면 녀석들이 몰려올 거야, 그렇겠지?" 카리나, 세니아의 뒤를 따르며, 공간 내부를 살피는 동안, 계단 쪽을 바라보던 아잘리가 물었다.
  "그러하겠지." 그리고 한 가지 전제 조건을 덧붙였다.
  "사당의 괴물이 이 곳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사당의 괴물은 사당을 점거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당이라 칭해지는 것은 건물의 표면이었던 만큼, 건물의 표면에 국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고 해도, 건물 내부의 존재를 알고, 그래서 내부 침입을 방지하고 있었다면 계단을 오르는 동안 병기들의 습격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부로의 침입을 의식하고 있다면 애초에 옥상으로의 진입을 차단할 방법을 궁리했을 것이다.
  "옥상, 그러니까 사당으로의 진입을 차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때 마침, 카리나가 물었다. 충분히 우려할 만한 사항이기는 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괴물에게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 괴물이 내부의 존재까지 의식하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세니아 역시 그러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하고서,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내부로의 침입 가능성까지 생각이 닿지는 않았을 것 같아."
  "그렇다면, 적어도 괴물과 관련된 기계 병기의 습격은 없겠네, 내부 침입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병기 배치를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겠지." 이후, 카리나의 물음에 세니아가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더 나아가, 당장에 다른 방향에서도 자신들의 적들이 습격해 오고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한 병력도 부족하다는 마당에 이 내부 공간에 할당할 병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거기까지는 말을 풀지는 않았다. 그 대신,
  "녀석의 병기들은 없을 거야. 하지만 이 곳도 인류 멸망 시기에 있었던 기계 병기의 습격에 분명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그 잔재들이 습격할 수도 있어. 올라갈 때, 그것만큼은 유의해야 해."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건물의 다른 올라가는 통로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을 하였다 :

  "당연히 있지. 그런 통로를 비상 통로라고 하잖아? 물론 그 통로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 쪽으로의 진입을 염두하고, 통로 안쪽에 병력을 잠복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통로는 대개 어둡고 좁은 만큼, 그런 곳에서 습격을 당하면 엄청나게 위험해. 애초에 잠복 병력이 있거나 하지 않고, 계단이 바로 위에 있으니, 굳이 그 곳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어."



  계단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근처에 있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뛰어서 간다면 금방 도달할 정도의 거리였다. 검은 계단들은 유리 본체에 손으로 잡는 부분이 검은 물질로 이루어진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니, 본래는 그 난간을 잡으며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계단 하나하나의 높이도 은근 높아서 걸어서 올라가려면 통상의 계단보다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일행의 발걸음이 계단에 가까워지면서 앞장서 가던 카리나, 세니아부터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카리나가 앞장서면서 방패를 생성한 후에 방패를 앞세워 걸어가려 하였고, 세니아가 그런 그의 뒤를 따르며, 주변을 살피려 하였다. 나 역시 그런 그들을 따라 나서며, 계단 위쪽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건물은 진입해 온 층의 위쪽부터 모든 층이 서로 교차하는 한 쌍의 계단이 자리잡은 일대를 중심으로 커다란 공동이 자리잡은 구조를 보이고 있었다. 공동은 층마다 같은 위치에 수직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으니, 이를 통해 계단에 있는 동안에는 계단 위쪽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주변 일대가 개방된 공간이었던 만큼, 사방에서 습격을 당할 수 있어 보였지만, 계단에 이르고, 앞장서 가는 카리나가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병기들이 몰려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그 광경을 보며, 카리나가 나에게 이렇게 일렀다.
  "정말 병기들이 이 내부는 잘 모르고 있나 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옥상으로의 통로가 막히지 않았을 거라고 했지?" 그러자, 나는 곧바로 카리나에게 이렇게 묻고서, 그 물음에 그가 그러하였다고 답하자, 바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초에 여기를 점령해서 침입자를 막으려 했다면, 옥상을 어떤 식으로든 막았겠지. 옥상이 바로 사당일 텐데, 그 옥상 진입을 막아야 사당 쪽으로 나가지 못할 거 아니겠어? 그 쪽이 막히지 않았다면 이 내부에 녀석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거야, 아니면 별 의미를 느끼지 못했거나."
  이후, 그간 마음 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내 생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바깥에서 리사 선생님이라든지, 예나 씨와 그 동료 분들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기계 무리를 공격하고 있고, 그들을 상대하기 위한 지원 병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잖아. 그렇게 외부와의 싸움에 투입할 전력도 모자랄 텐데, 여기에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있지도 않았을 거야."
  "중요한 것은 바깥인 사당이지, 내부는 아니라는 거지?" 이후, 세니아가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한편, 나의 바로 뒤에서는 내가 호위를 맡은 잔느 공주가 조용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으며, 그 뒤쪽에서는 후방을 맡은 세나와 나에티아나 그리고 프라에미엘이 따라오고 있었다. 보호 능력을 가진 환수를 소환할 수 있는 세나가 후방의 방어를 맡고,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이 공격 역할을 맡도록 되어있었던 것. 잔느 공주가 따라오고 있는 모습을 잠깐 보며, 내가 그에게 물었다.
  "잔느 공주님, 많이 무섭지요?"
  "무섭지는 않아요." 그러자 잔느 공주가 바로 답했다. 무섭다면 그 표정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지만, 잔느 공주에게는 그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섬뜩해하거나 두려워 할만한 광경에 대해 큰 두려움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아잘리가 이렇게 말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아르사나나 저에게 알려 주세요."
  계단은 방패를 생성한 카리나가 앞장서 올라가고, 그 뒤를 세니아가 따랐으며, 나는 아잘리와 함께 잔느 공주를 보호하며, 두 사람과 간격을 유지하며 그 뒤를 따랐다. 잔느 공주는 처음에는 계단에 뭔가 있는 듯이, 계단의 모습을 잠시 가만히 보더니, 그 이후에 나를 따라 올라가려 하였다. 마지막으로 세나가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과 함께 올라갔다.
  계단 너머의 윗층은 이전 층과 딱히 다르지 않은 듯했지만, 불빛이 많이 밝혀져 있지 않은 탓인지, 이전 층에 비해 어두웠다, 워낙 어두웠던 탓에 어둠 속에 뭔가 숨어 있어도 눈치채기는 쉽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전방에 대한 경계가 필요해 보였다.

  "저기를 봐, 뭔가 있어." 앞장서던 카리나가 계단 끝을 응시하며 알렸고,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 역시 계단 끝을 눈을 크게 뜨며 응시하려 하였다. 카리나가 말한 대로, 계단 위에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둘 서 있으면서 계단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 있어서 그러한지, 그 형상이 그림자처럼 보일 뿐, 자세히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적대하는 개체임은 확실해 보였고, 그래서 나 역시 대비하려 하였다.
  그러다 카리나가 두 그림자 쪽으로 접근해 가려 하자, 그림자들이 갑자기 높이 뛰어오르더니, 대열의 가운데 쪽으로 뛰어내리려 하였다. 오른손에 한 자루씩 단도를 쥐고 있는 그림자들이 노리는 것은 잔느 공주가 있는 쪽인 듯해 보였고, 그래서 아잘리에게 외쳤다.
  "아잘리, 잔느 공주님을 향하고 있어!!!" 그러자 아잘리는 다른 말 없이, 곧바로 총포를 두 손으로 잡아서 높이 뛰어오른 두 그림자를 향해 포구를 겨누자마자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포구에서 광탄들이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고, 그 이후, 곧바로 그림자의 두 흉부에 주먹 크기만한 구멍이 뚫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잘리, 잔느 공주를 데리고 뛰어!!! 세나는 일단 움직이지 마, 가만히 있어야 해!!!"
  이후, 앞 뒤로 나란히 걷던 카리나와 세니아가 계단 좌측으로 피하고, 아잘리가 나를 따라 잔느 공주를 이끌고 앞으로 뛰쳐 나가, 윗층까지 올라가려 하였다. 그렇게 급히 뛰어올라갈 즈음, 뒤쪽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에 광탄에 맞은 두 개체들이 떨어지면서 낸 소리인 듯해서 윗층의 바닥을 밟자마자 바로 뒤쪽으로 돌아서서 계단 쪽을 보려 하니, 과연 나의 눈앞으로 검은 개체들이 바닥에 떨어진 모습이 보였다. 각자 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놓친 채, 계단 표면에 떨어진 두 개체들은 몸에서 회색 연기를 뿜어내며, 검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몸이 녹다가 증발하며 사라지게 되는 것 같았다. 어찌됐든, 그 개체에 닿으면 위험할 수 있었기에, 세나부터 바람의 환수가 가진 힘으로 날개를 생성하고 비행하면서 두 개체가 떨어진 쪽을 벗어나 나와 잔느 공주, 아잘리가 위치한 바로 근처에 이르렀고, 애초에 날개를 갖고 있던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 역시 날아서 윗층 가까이 도달함으로 그 계단들을 피해 가려 하였다.

  계단의 끝, 그 왼편에는 또 다른 계단이 있었으며, 그 계단을 통해 위로 계속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위층에도, 위층의 위층에도 계단이 좌우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니, 이를 이용해 여러 층을 빨리 올라갈 수 있어 보였다.
  일행이 두 번째 층에서 합류하자마자 카리나에게 바로 계단을 오르자고 청했고, 이에 카리나부터 첫 계단의 끝에서 이전 계단의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세 번째 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세니아가 그 뒤를 따라갔으며, 나는 아잘리와 함께 잔느 공주를 이끌고 두 사람과 거리를 유지한 채, 계단을 따라 올라가려 하였다. 마지막은 이전과는 달랐으니, 세나는 바람의 환수가 가진 힘으로 비행을 개시했으며, 두 천사들 역시 세나를 따르며,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며, 일행을 따라 나서려 하였다.
  건물 내부가 여타 집과 같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건물 내부는 한 층이 보통 집의 3 층 높이는 될 정도로 높고 넓었다.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이전 때처럼 세 번째 층 바로 앞에 괴물 같은 것이 서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하려 하였지만, 그 때에는 계단 앞에 뭔가가 기다리고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공간 자체는 이전의 두 층보다도 더욱 어두워서 그 너머에 무엇이 보이는지는 계단에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까 전의 그 녀석들, 대체 누구였을까?"
  "과거의 잔재였을 거야, 아마도." 그렇게 계단을 따라 올라갈 동안, 앞장서 가던 카리나가 뒤따르던 세니아에게 물으니, 세니아가 바로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전보다 차분히 목소리를 내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기로 오기 전에 이야기 했을 거야, 우리가 만났던 '죽음의 기사들' 에 대해서 말야, 기억하고 있지?"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카리나가 답했다. 그 '죽음의 기사들' 이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같이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 시대의 인간이 변질되어 되살아난 것들로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기에, 늘 어둠 속에서만 살아야 했다는 그런 개체들이었다. 이들은 인류 멸망을 일으킬 정도의 재앙에 의한 피해자들이었고, 사념만을 품은 채, 떠도는 불행한 존재들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검은 색의 생물 같지만 생물이 아닌 듯한 개체들에 대한 이야기에 세니아가 그 '죽음의 기사들' 을 거론하고 있었으니,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카리나와 함께 앞서 계단을 올라가던 세니아의 목소리에 정신을 집중하려 하였다, 그 검은 개체들과 '죽음의 기사들' 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음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대개 어둠의 존재들일 뿐, 대체로 사악한 이들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렇겠지." 이후, 카리나가 건네는 말에 세니아가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얼핏 들어도, 그의 말에 대한 반박을 하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한 발언이었다. 그 이후, 세니아는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그들 모두가 선한 이들이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어. 그 말인 즉-"
  "나쁜 녀석들도 있다는 거지?" 그리고 카리나가 묻자, 세니아는 "응." 이라 간단히 답하는 것으로 그렇다는 의사를 드러내었다.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인간 세상에서 언제나 착한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나쁜 이들도 많았고, 그런 이들이 힘을 가지고 뭇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말야. 애초에 인간 세상에서 착한 이들만 있었다면, 그렇게 멸망해서 이런 유적만 남지는 않았겠지. 이 유적에 그런 악한 성향을 가진 망령들이 남아서 근처에 오는 이들을 습격할 수도 있다는 거야."
  "인류 시대 종말 무렵의 기계 무리에 협조한 이들 같은 것들 말야?"
  "그렇겠지." 이후, 카리나가 묻자, 세니아는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기계 무리에 협조한 인간들은 대부분 기계들에 의해 배신당했으며, 그들 중에서 기계에 의해 희생되지 않은 이들 역시 버림받아 망령이 되었을 것이라 이어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카리나, 세니아의 발길은 세 번째 층에 도달하였으며, 나와 아잘리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뒤를 이어 세 번째 층의 표면을 밟게 되었다. 한편, 이전의 사건 이후로 잔느 공주는 보호막에 감싸인 채로, 나와 아잘리가 있는 위쪽 상공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어찌하다보니,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서 보호막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전의 두 층보다도 어두운 세 번째 층에 이르는 순간, 전방 일대에서 누군가가 나를 비롯한 층에 도달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시선의 근원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전방 일대에서 느껴지고 있으며, 전방 너머의 어둠 속에 무언가 보이고 있음은 확실해 보였다.
  "뭔가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지 않아?" 이후, 아잘리에게 그렇게 물었고, 아잘리 역시 그런 느낌이 든다고 답했다. 여기에 내 곁에 떠 있던 잔느 공주의 보호막이 이전과는 다르게 전방 쪽이 빨갛게 물들고 있는 뭔가에 반응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저 너머에 분명 뭔가 있을 거야." 내가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동안 카리나 역시 방패를 앞세운 채로 계단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뒤쪽에 계단이 있었지만, 그 계단을 오르기 전에 습격을 당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세니아 역시 그런 카리나의 우측에 서 있으면서 오른손으로 검을 들고 왼손에 불의 기운을 일으키며, 전방에서 습격하는 이들을 영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먼저 가 있어, 우리는 나중에 갈 테니까." 이후, 카리나가 뒤따라 온 나 (그리고 아잘리) 에게 알렸고, 그리하여 나는 아잘리를 이끌고, 뒤쪽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려 하였다. 그 때, 아잘리가 전방 쪽을 가리키며 내게 외쳤다.
  "앞쪽에서 몰려오고 있어!"
  그 외침을 듣자마자, 곧바로 아잘리가 위치한 그 너머를 바라보려 하는데, 과연 전방 일대에서 한 무리의 검은 그림자들이 붉은색, 하얀색 눈빛을 번뜩이며 달려들고 있었다. 어림으로 세어도 대략 100 은 넘어 보이는 (수백은 될 것 같았다) 개체들이 층의 공간 곳곳에서 일행이 있는 쪽으로 마치 빛에 이끌린 벌레 무리처럼 달려들었던 것이다. 인간의 형상부터, 병기의 형상을 한 것들, 비행기처럼 생긴 것들까지 다양한 형상의 검은 무리들이 일행이 있는 쪽으로 돌진해 왔다.
  몇 안 되는 이들을 향해 그렇게 많은 개체들이 그렇게 몰려들고 있으니, 둘이서 다 막기는 힘들어 보였고, 그래서 나와 아잘리 역시 힘을 보태기로 하였으며, 여기에 뒤따라 올라온 세나, 나에티아나 등도 가세했다. 그 이후, 카리나가 방패에서 빛의 화살들을 이들을 향해 발사하고, 세니아가 뒤이어 수십 여의 불 줄기들을 방패 너머로 방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행 모두 각자의 수단으로 전방에서 끔찍한 괴성을 내지르며 몰려오는 수많은 무리들을 공격하려 하였다.
  나 역시 아잘리가 두 손에 든 총포로 광탄들을 계속 발사하는 동안 빛의 기운을 소환해 그 빛의 기운으로 가능한 많은 수의 빛 줄기들을 발사해, 이들이 내 앞으로 몰려오는 무리를 격멸하도록 하였다. 그러는 동안 불과 빛들이 모여 이루는 격렬한 불빛이 전방 일대에 생성되면서 불꽃, 빛, 빛의 화살 등에 의해 격멸되어 스러져가는 검은 무리의 모습이 눈앞에서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층계의 빛을 보다가, 잠시 층계 위쪽을 올려다 보면서 위쪽 층에 있는 무리가 몰려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누군가는 위로 올라가 상황을 봐야 한다고 다급히 알렸다. 계단 너머에 모두 시선이 집중된 이상-그 너머에서 몰려오는 개체의 수가 많다보니, 모두 그 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뒤쪽에서 누군가 습격해 오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게!" 그러자 나의 곁에 있던 아잘리가 자신이 맡겠음을 알리면서 자신이 위층을 관찰하고, 위에서 누가 온다 싶으면 알리겠다고 말하고서, 계단 위로 뛰쳐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프라에미엘이 그런 그를 따라 나서려 하였다.
  "저도 같이 갈게요." 그 이후에도 나를 비롯한 남은 이들은 몰려오는 검은 이들을 격멸하는 행동을 이어갔다. 도중에 큰 포물선을 그리며, 검은 덩어리들이 일행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기도 하였고, 그 때마다 검은 덩어리들을 격추시키기 위해 세니아나 내가 나서기도 하면서-카리나의 방패 그리고 세나의 환수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야만 했기에, 늘 같은 곳에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건물의 옥상, 혹은 사당의 표면을 점거하고 있을 괴물의 존재를 놓아두고, 언제까지 그 곳에서 몰려오는 검은 무리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몰려오는 그들의 기세를 피해 위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공세의 틈을 찾아 그 틈에 물러나야 할 텐데, 그 무리에게는 그런 틈이 당장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이 계속 몰려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록 그들은 인간으로서, 병기로서 가졌던 생명을 버리고, 사념에 의해 움직이는 이들이었겠지만, '죽음의 기사' 처럼 그들 역시 육신과 감정을 가진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앞서 온 이들이 계속 해서 몰살당하는 광경을 보며, 공포를 느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우리가 지치는 것을 노리든, 다른 이유가 있든, 공세가 주춤해질 때가 있을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기에, 그 때를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공중에서 검은 미사일 같은 것을 쏘며 돌진해 오는 비행기 같은 것들이 세니아의 화염탄들에 의해 미사일과 함께 격추되어 하나둘씩 폭발하던 그 때, 추락하던 비행기들 중 하나가 갑자기 검은 무리들을 향해 돌진했고, 한 차례 큰 폭발에 의해 검은 형체들 중 일부가 폭발에 휩싸여 사멸하는 모습을 보인 이래로 검은 형체들의 돌진이 멈추었다. 폭발에 의해 잠시 불빛이 발생하면서 보인 개체들의 모습을 보니, 앞서 온 이들이 몰살되면서 후방에 있던 무리가 노출되었지만, 그들이 아직 공격 행동에 나서려면 때가 이르렀고, 그것이 무리의 공세가 멈춘 요인이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여기에 개체 수가 확연히 줄기까지 했으니, 거기서 조금만 더 공격을 가하면, 그 무리를 확실히 궤멸시킬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 당장에 급한 것은 사당의 괴물에 접근하는 것이지, 그 무리를 궤멸시키는 것은 아니었기에 (남은 이들이 후환을 일으킬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이후에 내가 나서든, 아니면 다른 이들이 나서든 해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그들의 공세가 멈춘 틈을 타서 공격 행동을 멈추고 위쪽 층로 올라가기로 했다.
  "때가 됐어, 어서 올라가자,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
  이후, 나는 카리나 등을 그렇게 독려해 올라가도록 하고서, 우선, 일행의 뒤쪽에 보호막에 의지한 채, 머무르고 있던 잔느 공주를 이끌고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 위에 머무르고 있던 프라에미엘 그리고 아잘리를 보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아잘리, 위쪽에는 무슨 움직임 같은 것은 없었어?"
  "없기는 했어." 그러자 아잘리가 답했다. 다만, 그에 의하면 위층의 천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 젤리 상 물질에 뒤덮혀 있었고, 바닥의 곳곳에 촉수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것들을 돌파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고 했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은 막혀 있어?"
  "아니, 막혀있지는 않아 보였어." 이후, 혹시나 싶은 생각에 내가 다급히 물었으나, 아잘리는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자신도 자세히 보지는 않았기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그 젤리 상 물질이 천장 아래를 덮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문을 막을 정도는 아닐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위층에 대한 전망을 드러냈다.
  "잔느 공주는 무사하지?" 그리고 나를 따라 온 잔느 공주를 보면서 묻자,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계단 너머의 공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잘리가 말한 바대로, 바닥의 여러 곳에 푸르스름한 색의 젤리 상 물질로 이루어진 덩어리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중 일부에는 문어의 그것과 같은 촉수가 뻗어나 있기도 했다. 그리고 천장 역시 주변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부분이 바닥 곳곳에 보이는 것들과 같은 물질의 덩어리로 뒤덮혀 있었고, 그 천장 곳곳에도 촉수들이 보였다. 물질은 천장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었으나, 바닥은 그러하지 않았던 만큼, 천장을 뒤덮은 것들의 일부가 바닥에 흘러내려 바닥을 물들였을 것이다.
  층를 잇는 계단은 그 층에서 끝났고, 그래서 그 층을 통해서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가거나 할 수는 없었다, 옥상을 제외하면 그 층이 가장 높은 층이었던 만큼, 당연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가만히 둘러보니, 계단의 우측 먼 저편에 계단 하나가 있었으니, 그 계단이 옥상을 향하는 계단이었을 것이다. 사당에는 구멍 하나 뚫려있지 않았으니, 계단의 끝은 막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천장의 문을 열든, 천장을 뚫든 해서 길을 열어야 함은 확실해 보였다.
  천장이 기이한 물질로 덮혀 있었다고 해도, 층의 주변 일대까지 퍼지지는 않은 만큼, 층의 주변 부분이었던 옥상을 향하는 계단이 있는 쪽까지 닿지는 않았으니, 그것만큼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어 보였다.

  일행 중 마지막으로 층에 이른 카리나, 세니아가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앞에 이르러서는 푸르스름한 물질로 뒤덮힌 천장과 그 천장의 물질에서 비롯됐을 바닥의 물질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들 중 우측에 서 있던 세니아가 나를 향해 잠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 덩어리들, 분명 괴물의 몸에서 나왔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러하겠지." 그 물음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눈앞에 보이는 덩어리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그 위가 사당이고, 사당을 괴물이 차지한 만큼, 그리 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이후, 사당으로 올라온 일행이 마주하게 될 '괴물' 과의 싸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알리는 일종의 전조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저 계단으로 가면 되는 거지?" 이후, 카리나는 내가 일찍이 발견했던 우측 멀리 보이는 구석에 보이는 계단을 가리키며 물었고, 내가 그러하다고 답하자, 알겠다고 말을 건넨 이후에 나에게 자신이 앞장서 가도록 하겠음을 알렸다.
  "우리가 앞장설게, 잘 따라 와." 그리고, 늘 그러하던 대로, 자신이 방패를 앞세웠고, 나는 세니아, 아잘리와 함께 그 뒤를 따르며, 카리나를 안내해 갔다. 일행이 그렇게 길을 나아가기 시작할 무렵, 카리나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 계단으로 가면 사당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맞지?"
  그리고, 나에게 만약 길이 막혀있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듯이 말하고서,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 도중의 촉수들, 어른의 키 정도되는 그 촉수들은 갑자기 뻗어나와 사람의 몸을 휘감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물질에서 뻗어나온 촉수는 사람을 휘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 듯해 보였다. 다만, 접근해 올 때마다 조금 위쪽으로 뻗더니, 그 끝이 포구나 발광 장치의 형상으로 변화하도록 하고서 각각의 형상에서 광탄, 광선을 발사하고는 했다. 푸르스름한 물질에서 붉은 빛이 충전되더니, 붉은 광탄, 짤막한 붉은 광선들을 연사해 갔다.
  붉은 광탄, 광선들은 카리나가 빛의 방패로 막아냈고, 공격을 멈춘 틈을 노려, 세니아가 촉수를 베어냈다. 화염의 기운을 품은 칼날에 촉수가 베이면서 절단된 부분이 불에 지져진 듯, 검게 그을린 모습을 보였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촉수가 재생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촉수가 전방에 나타났을 때에는 주로 카리나가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고, 세니아가 검으로 베어서 처치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물리쳤으나, 카리나가 방패를 해제하고 빛을 발하는 검으로 촉수를 베어내 태워버리거나, 방패에서 발사되는 화살로 태워버리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기이한 물질 덩어리들이 곳곳에 자리잡은 공간 일대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던 만큼, 덩어리들에 포위될 일이 많았고, 그래서 카리나, 세니아만 촉수 공격에 나서지는 않았다. 측면에서 괴물의 형상을 형성해 돌진해 오는 덩어리들을 아잘리가 광탄들을 총포에서 쏘아내며 파괴한 적도 있고, 내가 천장의 덩어리에서 생성되는 괴물체들을 광선, 하얀 화염으로 태워버린 적도 있다. 이외에 후방을 맡은 세나, 나에티아나 등이 후방에서 되살아난 촉수, 괴물들의 광탄 발사 및 습격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각자의 수단을 활용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괴물체들을 물리치면서 한 번씩 보호막에 감싸인 잔느 공주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잔느 공주는 보호막 때문인지 천장에서 낙하하는 물질에도 무사했다. 보호막의 빛이 사악한 기운을 태우는 성질을 갖고 있었는지 물질이 보호막에 닿을 때마다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타오르다가 증발하는 모습이 보이고는 했다.

  "괴물이 저 위에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네." 천장을 푸른 물질이 뒤덮고 있는 데다가, 거기서 바닥으로 젤리 상 물질들이 떨어지(고 거기서 촉수가 뻗어나오)는 광경을 보며, 카리나가 말했다. 그러자 그를 뒤따르며 내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대화 도중에도 바닥으로 떨어진 덩어리들에서는 촉수가 뻗어나오고 있었으며, 그 때마다 카리나, 세니아가 검으로 이들을 베는 것으로 검의 열기, 빛에 의해 그것들이 타서 없어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촉수들을 제거해 가며, 앞길을 열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뒤쪽에서도 촉수들이 계속 생성되어 광탄, 번개 줄기 등을 계속 발사했기에 뒤쪽도 위험했고, 그래서 세나의 환수 등으로 이들을 막아내고, 세나 등이 이들을 격파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촉수나 물질이 생성한 괴물들을 태워 없애도록 하고 있었다. 일행이 물질 사이의 길을 돌파해 가다 마침내 옥상을 향하는 계단과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무렵에는 공중에서도 물질들이 날아다녀, 그것들에 대한 대응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전과 같은 검은 망령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그렇게 한참 괴물들을 물리치며, 푸르스름한 물질이 가득한 공간을 돌파하고 있을 즈음, 세니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가 말한 바대로, 그 층에서는 검은 망령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는 이전의 층에서처럼 검은 망령들이 무리지어 머무르고 있었겠지만, 괴물이 사당을 점거하고, 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이래로 생성된 물질이 이 층의 공간 내부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서 괴물의 공격에 의해 망령들이 사멸해 갔다면 망령들이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검은 무리는 괴물이나 기계 무리와는 관련이 없는 이들음은 분명하겠네, 그렇지?"
  "그런 거지." 이후, 카리나가 묻자, 내가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그 무렵, 일행은 어느덧, 옥상을 향하는 계단 바로 앞에 이르게 되었고, 그 너머에는 그간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으려 했던 그 푸르스름한 물질 덩어리들은 보이지 않았기에 바로 계단 쪽으로 뛰어갈 수 있었다.
  "계단 상태를 보고 올게, 천장이 막혀있을 텐데, 그러면 뚫어놓기도 할 거야."

  계단은 평범한 돌 계단이었으며, 천장 너머는 막혀있지 않았으나, 천장 너머, 각진 나선상을 그리는 계단의 끝은 돌 무더기로 인해 막혀 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막아둔 것은 아닐 것이고, 인류 문명이 멸망할 정도의 재앙에 휘말린 그 흔적이었을 것이다. 특별한 마력 장치 같은 것은 없었으니, 그 돌 무더기는 내가 분출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히 파괴할 수 있어 보였고, 곧바로 나를 둘러싸는 하얀 결정으로 이루어진 대형 구체들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생성한 구체들은 모두 넷. 본래는 나를 호위하기 위해 있는 것들이지만, 그 무렵에 행한 소환의 목적은 결정의 무게로 돌 무더기를 쳐서 무너뜨리기 위함에 있었기에, 곧바로 돌 무더기 쪽으로 던져버리려 하였다. 하나씩 구체들을 있는 힘을 다해 투척하고서, 마력을 통해 이들을 가속시켜, 돌 무더기에 가능한 빠른 속도로 격돌하도록 하였다. 결정 덩어리가 격돌한 이후에는 폭발을 일으켜, 하얀 폭풍이 일으키는 힘으로 돌 무더기에 다시 충격을 가하도록 하기도 했다.
  결정 덩어리가 한 번 부딪쳐 폭발하는 정도로는 돌 무더기가 바로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균열 같은 것이 생겨서 계속 부딪치다 보면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겠다는 전망을 하면서, 결정을 연속으로 날려 보냈다.
  전망한 바대로, 그 이후로 투척된 구체의 충돌과 폭발이 연속으로 거듭된 끝에 마지막 충돌과 폭발이 일어날 즈음에 구체의 폭발 이외의 또 다른 굉음이 울려퍼지며, 구체 이외의 무언가가 파괴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연기가 걷힌 그 너머로 돌 무더기가 무너지고, 그것이 가로막고 있었을 바깥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뚫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다급히 이전 층으로 뛰쳐 내려가려 하였다, 바깥을 향하는 길이 열렸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뚫렸어! 어서 올라갈 준비 해!" 그 이후, 나는 일행이 있는 그 근처로 다급히 돌아와서 카리나, 세니아에게 알렸고, 그 이후에 카리나가 나에게 정말로 뚫렸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한 이후에 카리나보다도 앞장서서 내가 뚫었던 그 돌 무더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 이후, 일행이 차례로 계단을 올라, 돌 무더기가 무너지고, 바깥이 드러난 그 앞에 이르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나를 뒤따라 온 카리나에게 "여기서 나가면 돼!" 라고 알리면서 먼저 밖으로 뛰쳐 나갔고, 이어서 카리나, 세니아의 순으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로 아잘리와 잔느 공주, 그리고 세나, 나에티아나 그리고 프라에미엘이 뒤따라 내가 뚫은 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사당으로 돌아왔네요."
  무너지다만 옛 건물의 옥상이자, 사당의 표면인 원형 공간에 다시 이르렀을 무렵, 세나가 나의 우측 곁에 이르면서 말을 건넸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라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카리나, 세니아가 나의 앞쪽으로 나아가서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하기 시작했고,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이 보호막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성된 모습을 보았을 잔느 공주를 이끌고 내가 서 있던 그 우측 상공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이어서 보였다. 아잘리는 나의 왼편에 서 있으면서 나의 곁에서 사당에서 보이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였다.



  괴물이 파동을 일으켜 그 여파로 일행이 사당에서 떨어진 이래로 다시 사당의 표면으로 돌아왔을 때, 사당의 한 가운데는 예의 푸르스름한 젤리 상 물질이 차지하고 있었다. 젤리 상 물질이 거대한 반 타원체 형 덩어리를 이루면서 마치 괴물의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크기는 사당 한 가운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 높이 솟아오를 때에 그 직경에 맞춰 깨어난다면 아주 큰 개체가 될 수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사당의 주변 부분을 감싸며, 사당 바깥에서 사당으로의 진입을 차단했던 보호막은 사라진 것 같았다. 그 보호막이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어서 그 내부로 들어왔다면 사당 주변의 풍경은 빛에 의해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만, 그 주변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그 보호막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의미했을 것이며, 그와 더불어 괴물체에게 더 이상 보호막이 필요하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당과 해안을 잇는 다리가 끊어졌어요!" 그렇게 사당의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놀라는 목소리에 바로 내가 서 있던 그 우측을 향해 고개를 돌려-우측에 절벽이 보였다-, 사당과 해안의 절벽을 잇는 다리를 찾으려 하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이전에 있던 다리가 사당 그리고 절벽 쪽에 흔적만 남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당에서 거리가 있는 절벽 쪽은 그나마 온전히 남은 부분이 있었지만-절단면 근처에 무너진 모습이 보였다-, 사당 쪽은 흔적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이전에 괴물이 파동을 일으킨 여파로 부서져 버린 것 같아."
  그 모습을 보며, 카리나가 말했다. 그 때, 세나가 괴물체의 형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면서 준비해야 함을 알렸고, 그러자 나는 알았다고 응답한 이후에 다시 괴물체를 향해 돌아섰고, 카리나, 세니아 역시 세나의 외침을 듣자마자 바로 괴물체의 바로 앞에 서서 각자의 수단을 내세우며, 괴물체의 공격에 대응하려 하였다.
  그 때, 거대한 반 타원체의 형상을 이루고 있을 뿐, 서서히 꿈틀거리기만 반복하고 있었던 괴물체가 이전에 비해 더욱 격렬히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꿈틀거림이 더욱 격렬해져 마치, 뭔가 일으키려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깨어났다!' 마침내 괴물체의 형상이 높이 솟아올라 하나의 거대한 기둥 (*2) 이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부드러운 물질이 높이 솟아올라 굳은 것처럼 보이는 그 기괴한 기둥은 이윽고, 격렬히 요동치며, 변이하기 시작, 좌우로 뻗어나가며, 마치 두 팔을 형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더 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윗 부분이 가늘어지며,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을 생성하려 하고 있었다. 형상은 물질들이 쏟아내리도록 하고, 그와 더불어 부풀어오르기도 하며, 변이를 거듭해 갔다. 두 팔과 머리에 이어, 허리, 흉부, 어깨가 차례로 형성되어 갔으며, 그 형상이 계속 다듬어지며, 점차 사람의 형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변이를 거듭하며, 한 인간 여인의 상반신과 같은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 괴물체는 마지막으로 머리의 변이를 이어가며, 사람의 얼굴 형상을 만들어 가더니, 머리 부분을 변형시켜 머리카락 부분을 생성하고, 머리카락 부분의 뒤쪽을 늘여 긴 머리카락을 만들더니, 두 눈에 해당되는 부분이 하얗게 빛나도록 하는 것으로 변이를 마쳤다.



  그렇게 변이를 마친 괴물체의 모습은 유체 상의 물질 위로 생성된 아름다운 여인의 상반신상과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다만, 머리카락은 온전한 인간의 머리카락을 재현할 수 없었을 머리카락 부분은 길다란 촉수들의 모임과 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었고, 두 팔은 하박 쪽으로 가면서 점차 나무의 뿌리처럼 굵어지더니, 두 손은 어른 한 사람을 움켜쥐어 으스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컸으며, 그 형상도 기괴한 악마의 두 손과 같았다. 손끝 부분이 칼날처럼 날카로웠으니, 각각의 손끝이 위협 수단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흉부의 가운데에서 약간 좌측의 내부, 인간의 심장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하얗게 빛나는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으니, 인간과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부분이 심장에 해당될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심장 안에 괴물 안에 갇힌 영혼들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변이를 마치고 여인의 모습이 된 이래로 괴물은 두 눈을 번뜩이며 일행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바로 앞에 있던 나와 아잘리의 뒤쪽에서 보호막에 감싸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잔느 공주를 응시하고 있었다고 봐야 무방할 것이다. 그의 모습을 발견한 이후, 괴물이 잔느 공주를 바라보며, 기괴한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acimnä, irëke mannagedönînguna. Oränmaniya, agassciy."


(*) 사당의 직경은 어림 잡아 보았을 때, 88 메테르 정도는 되어 보였다. 괴물은 그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듯해 보였으며, 직경은 50 메테르 즈음은 되어 보였다. #
(*2) 괴물체 덩어리가 차지한 부분의 직경과 거의 같은 높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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