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 님?" 이후, 잔느 공주가 당황하면서 묻자, 세나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저 자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주고 받을 필요가 있겠나요? 저 자에게는 공주님이 옳은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 상관 없어요, 그 자에게 공주님 같은 인간은 그저 사냥감에 불과할 뿐이에요, 사냥감이 자신의 궤변에 일일이 반응하는 모습을 즐기며 갖고 노는 것일 뿐이라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저 괴물은 계속해서 저에게 뭐라뭐라 외칠 텐데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응하려 하지 말아요! 비록 힘이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저런 괴물에 놀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해요!"
잔느 공주님, 공주님께서도 아실 거예요, 저 괴물은 예로부터 남의 피를 탐하며 재미로 인간들을 비롯한 생물들을 죽이는 것을 즐겨온 괴물이 만들어낸 개체예요. 남들은 물론,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할 대의를 내세우며, 인간들의 세상을 파괴하고, 공주님의 동료들을 학살한 악마의 뜻을 따라, 무너져 간 인간의 세상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을 학살하고 그 피와 살을 취한 괴물이라고요. 그런 괴물에게 결코 휘둘리셔서는 안 돼요.
저도 이번 일은 남의 일 같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제가 이 행성계에서 우연히 얻은 버려진 그림이 있어요, 환수들을 끌어들일 때마다 원래 모습을 되찾은 그림의 모습에는 어떤 가족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지요. 아마 오래 전에 '괴물' 이라 칭해진 기계 무리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겠지요, 사진을 볼 때마다 그들이 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 느끼고 있고, 그래서 그들을 무참히 희생시킨 원흉과 관련이 있을 저 괴물과의 싸움이 결코 남의 일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그 일은 저 자신의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공주님, 제가 있고, 카리나 씨가 있으며, 아르사나 씨가 있잖아요. 저 괴물이 뭐라 하든 간에, 괴물의 뜻은 반드시 저지될 거예요. 그러니, 저와 그 분들을 믿고, 지켜봐 주세요. 괴물에게서 영혼들을 구원할 문을 열어낼 테니까요. 늘 그러하듯, 아르사나 씨, 카리나 씨 등이 공주님을 지켜드릴 거예요.
그런 목소리를 전할 때는 하늘에서 검은 비행기들이 다리 역할을 하도록 하반신의 배기구들을 내리며 착륙하는 것을 환수의 창-검은 왼손에 쥐고 있었다-을 들고 창에서 광탄들을 발사하며 격추시키던 때였다. 그 무렵에 그런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 내가 세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공주님께 그런 말씀을 전해드릴 여유는 있었나 보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니까요." 그 말에 세나가 화답했다. 그런 세나의 당부가 효과가 있었는지, 잔느 공주는 괴물을 향해 뭐라 외치거나 하지는 않았으며, 애초에 잔느 공주에 대한 흥미를 잃었는지, 괴물 역시 그를 향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있었지만 물질들을 계속 소모하고, 내부에도 피해가 누적된 탓인지, 괴물의 형상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팔뚝, 어깨의 관절 쪽에 붉은 반점들이 생성되고 있었으며, 이런 반점들은 흉부와 머리 쪽에서도 보이고 있었다. 내상을 입은 흔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조금씩 붉은 반점들이 퍼져가고 있는 것 같아." 그 모습을 보며, 세니아가 나에게 말했고, 그 말을 듣고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던 나 역시 그러함을 느끼고 있었다. 반점이 퍼져나가는 쪽을 집중 타격하면 괴물체의 파괴를 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괴물 역시 가만히 있거나 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주먹을 쥐어 일행이 머무르는 바닥 일대를 내려친다던지, 아니면 입에서 빛 덩이 발사 공격을 이어가며, 일행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일행이 위치한 너머에서 함선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법 큰 함선으로 다수의 전투정을 거느리고 있는 전함이었다. 전함은 이후, 전투정들을 먼저 보내, 그들이 각각의 선수에 장착된 포신에서 광탄들을 연사, 이들이 광선의 형상을 이루어, 일행이 위치한 바닥 곳곳에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사당의 여러 곳에서 붉은 빛이 터지고 폭음과 함께 폭발이 곳곳에서 발생하였고, 그 이후로 폭발과 함께 광탄들이 흩뿌려지며, 일행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어떻게든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정의 수도 많았고, 전함 자체도 거대했기에 쉽게 몰아내기는 어려웠고, 그 동안 괴물의 본체를 건드릴 여유는 없어 보였다.
전투정의 광탄들을 피해가며, 전투정들을 공격 목표 삼아 이들을 격추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세니아도 가담했고,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 역시 전투정과 함선들을 직접 타격하는 데에 동참하려 하였다. 본체는 아직 여유가 있던 세나가 환수들을 이용해 해내기로 하였다.
폭발을 일으키며 격침되어 가는 전투정들 사이로 전투기들이 날아오고 있었으며, 각 전투기들이 날개 하단의 포신에서 광탄들을 발사하며, 위협을 가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보이고 있었다. 다만, 그들 대다수는 소형이었고 (그래서 숫자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크기가 작은 만큼, 내구성도 좋지 않아서 금방 격추되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 역시 공세에 가담하게 되면서 이전까지 피해야 했던 폭발 그리고 광탄들에 전투기들이 날려보내는 포탄들이 더해지면서 광탄들을 피하는 움직임을 보다 조심해야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럼에도 검은 개체들에 치열하게 여러 색의 빛을 발하는 개체들이 날아들면서 전투정들이 그로 인한 피해가 누적되면서 하나하나 파손되고, 폭파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한 척씩 전투정들이 폭음과 함께 열기와 폭풍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전투기 및 전투정들의 개체 수가 줄면서 공격은 이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전함에 집중되기 시작했으며, 전함의 여러 부분들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검은 몸체에 크고 작은 붉은 반점들이 명멸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 본체는 세나가 갑주형 환수를 제외한 여러 환수들을 소환해 그 환수들과 같이 공격해 나가고 있었다. 세나의 우측에는 독수리 크기만한 화염으로 이루어진 불새, 그리고 좌측에는 날개 폭만 1 메테르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하늘색 기운을 띠는 하얀 빛을 발하는 새가 자리잡고 있었으니, 이들이 각각의 입에서 화염 그리고 바람, 번개 줄기들을 발사해가며, 괴물의 흉부, 두부를 계속 타격하고 있었으며, 세나 역시 검으로 괴물의 본체에서 흘러나온 물질이 형성되어 생성된 인간형 병기들, 전차형 병기들을 검으로 파괴해가며, 환수들의 행동을 돕고 있었다.
괴물의 물질 사출은 본체를 직접 공격하려는 세나 근처에서만 있은 것은 아니었으며, 내가 있는 쪽에도 물질들이 마치 포탄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날았다가 결정 덩어리 등의 형태를 보이며, 상공에서 낙하하는 것으로 나를 비롯해 세나, 카리나의 뒤쪽에 있던 이들에게 위험을 주려 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면에 격돌할 때마다 유리가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깨진 이후에 푸른 빛을 띠는 증기로 승화하는 것으로 사라져 갔다.
괴물이 물질 사출을 4 차례 반복한 이후 시점에서는 전투정들이 모두 사라지고, 전투기들도 대부분 격추되면서 함선만 남아 나와 세니아,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 그리고 아잘리가 마법을 통해 방출하는 빛 줄기, 화염 줄기 등이 그 쪽으로 집중되기 시작했으며, 여러 색의 빛이 한데 모이면서 함체의 여러 부분들이 폭발해 함체의 모든 부분이 불길과 연기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세니아가 세나 등에게 말했다.
"저 배는 날 수 있는 이들이 직접 선교를 공격했으면 좋겠어. 그 역할을 누군가 맡았으면 하는데......."
"내가 할게, 세나는 카리나와 함께 녀석을 계속 맡고 있도록 하고, 내티가 이 쪽으로 오도록 해 봐."
그러자 내가 그런 세니아에게 요청을 했다. 내티가 갖고 있었을 글라이더 소환 두루마리를 이용하기 위함으로 그 두루마리를 갖고 글라이더를 소환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요청에 세니아가 응하여, 세니아가 나에티아나를 불러왔고, 이후, 나에티아나가 그 요청에 따라 내게로 오자마자 그에게 바로 이렇게 요청을 했다.
"소환 두루마리 하나만 줘. 그것을 사용할 필요가 생겼으니까."
"알았어요." 그러자 나에티아나가 바로 두루마리를 내게 건네었고, 이후, 두루마리가 글라이더를 소환하고, 이어서 내가 글라이더에 탑승하려 하는 동안 나에티아나가 두루마리를 회수한 이후, 다시 함선 쪽으로 날아가려 하면서 그런 나에게 물었다.
"함선은 세나 님께 맡겨도 되지 않나요? 굳이 아르사나 님께서 나서시는 것은......."
"카리나, 세나는 여기 있어야 해, 그러할만한 이유가 있어."
그러자 내가 바로 그렇게 화답하고서, 글라이더의 동력 장치를 작동시키며, 함선 쪽으로 날아가도록 하였고, 이후,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이 그런 나를 따라 불길에 휩싸인 함선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함선은 이미 지상에서 발사된 것들에 의해 입은 타격으로 몸체의 거의 대부분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 상태로 이제 함교 내부만 뚫으면 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내가 하기로 했다. 우선 내 스스로 빛의 기운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그러면서 나의 옆에 있던 빛에게도 최대한 자신의 기운을 끌어모으도록 한 이후에 어느 정도 빛이 나와 내 옆의 기운에 모이게 되자, 불길 사이에 보였던 함교를 목표로 정하고, 목표가 된 함교를 향해 그간 끌어모은 것들을 한 번에 방출하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함선들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함선을 호위하고 있던 전투정들 및 전투기들이 나와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이 있는 쪽으로 몰려오니, 나에티아나와 프라에미엘이 각자의 수단-빛 줄기들 그리고 빛 무리-으로 이들에 대항하기 시작하고, 그러는 동안 프라에미엘이 잠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서두르셔야 해요!" 그러자 나는 알았다고 화답하고서, 그간 끌어모은 빛의 기운이 결집된 구체의 형상을 오른손 위에 띄운 이후에 곧바로 그 손으로 공을 내리 꽂듯이 함교 쪽으로 날려 보냈고, 그와 함께 나와 함께 하고 있던 빛의 기운 역시 자신이 끌어모은 빛을 광선의 형태로 분출했다. 고속으로 함교 쪽으로 날아가며, 빛의 구체는 자기 자신 역시 수없이 많은 빛 줄기들을 발사, 이들이 곡선을 그리며, 함선의 여러 부분들이 닿아 폭발하도록 하였다.
먼저 구체가 함교에 격돌하고, 이어서 빛 줄기가 그 일대를 관통하니, 빛의 기운이 일시에 폭발해 함교와 그 주변 일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폭발의 반경이 아주 클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나는 나에티아나 그리고 프라에미엘에게 물러설 것을 요청하였고, 나 역시 그 근방 좌측으로 물러나 폭발의 위험을 피하려 하였다.
한편, 뒤따라 오던 함선들과 그들이 거느린 무리 역시 괴물이 위치한 사당 부근으로 거의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그래서 나에티아나 등이 다시 모일 때까지 그들의 개체 수를 어느 정도 줄여놓기로 하고, 두 번째로 다가오는 함선과 그 근처의 무리를 향해 다가갔다.
먼저 돌격해 오는 전투기들을 빛의 기운과 나 자신의 빛에서 분출된 곡선을 그리는 빛 줄기들로 우선 격추시킨 이후에 뒤따라 오는 인간형 병기들을 글라이더에 장착된 기관포들과 나 자신이 방출한 유리 칼날들로 격추시키고서 전투정들 사이로 끼어들어 화염 줄기, 빛 줄기, 기관포까지 이용해가며 격침시키려 하였다. 광탄들을 계속 피해가며, 전투정들의 선교를 노려 이들을 폭파시키는 것으로 각각의 폭발을 중심으로 선체에 폭발이 퍼져 그로 인해 완전히 폭파되는 것을 노렸다.
그 함선이 거느렸던 전투정은 대략 수십 척 가량으로 소형 병기들은 인간형 병기, 전투기들을 모두 합쳐, 그 6 배 즈음은 되어 보였다. 다만, 이들은 개체 크기도 작고, 장갑도 두텁지 않아서인지 금방 격추시킬 수 있어 어느 정도는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많은 수를 글라이더 1 기를 탑승해서는 금방 정리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때, 나선 이가 바로 아잘리 그리고 세니아로 각자의 글라이더에 탄 채로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 천사들에게 세나의 호위를 맡기고, 대신 왔다고 했다.
"괴물의 앞에는 세나와 카리나 그리고 두 천사들만 있어. 그 동안 괴물을 바깥에서 지원하고 있었던 이들은 저 바깥에서 온 이들이야. 지금까지는 사당에서 그들을 영격할 뿐이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저들을 공격해 나가도록 하자, 그게 카리나가 내린 결정이야. 여기서 저들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면 괴물 쪽으로 몰려오는 병기들의 수는 훨씬 적어지겠지."
나에게 접근하면서 세니아가 말했다. 그 이후, 세니아는 함선의 우현 쪽을 맡기로 했다. 나는 아잘리와 함께 좌현 쪽으로 갔다.
한편, 함선 근처에서는 계속 전투정들이 움직여, 나를 비롯한 일행의 글라이더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내가 있는 쪽, 세니아가 있는 쪽 모두에 비슷한 수의 전투정들이 몰려오고 있는 만큼, 각자 어떻게든 그들을 격파하기로 하고, 아잘리와 함께 전투정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아잘리가 글라이더를 고속으로 움직이며, 전투정들을 교란시키고, 그 틈을 노려 내가 내가 마법 그리고 글라이더의 기관포에서 발사되는 광탄들로 전투정에 본격적인 타격을 가하려 하였다. 아잘리가 글라이더를 가속한 이후에 비행을 개시하고, 전투정 사이를 오가면서 글라이더의 배기구에서 푸른 불꽃으로 곡선을 그리며 전투정들을 교란시키려 했다. 그런 움직임에 전투정들이 붉은 광탄, 광선들을 발사해가며 위협해 갔다.
'저러다가 맞을 수도 있을 텐데......' 그 광경을 보며 우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 광경을 본 자가 있다면 '저러다가 당하겠구나' 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번은 전투정의 선체를 회오리로 휘감는 듯이 비행한 적도 있고, 전투정과 전함 사이를 오가며,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는 모습도 보였다. 전투정 사이를 끼어들며, 그것들을 타격하려 한 내가 할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럼에도 우려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잘리는 그런 나더러 보란 듯이, 전투정들의 포격을 자신의 글라이더를 기민하게 움직여가며 피해내면서 전투정들을 향해 견제 사격을 가해갔다. 전투기들이 다수 격추되고, 전투정까지 격파되었으니, 나름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뭐하고 있어, 아르산! 빨리 따라오지 않고!!!"
"알았어!" 그러자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서 아잘리를 따라 전투정들을 오가며, 아잘리를 격추시키려 하느라, 경황이 없을 전투정들을 목표 삼아, 빛의 기운으로 새하얀 빛 줄기들과 더불어 새하얀 화염 줄기들을 방출하였다. 빛 줄기들은 곡선을 그리며,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화염 줄기들이 직선 상으로 빠르게 날아가며, 전투정의 선체들을 강타해 가니, 그렇게 전투정들은 선체, 선교, 기관부에 상처가 나면서 폭파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전투정들, 전투기들이 격추되면서 함선 주변에는 전력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인간형 병기들도 글라이더의 기관포 타격과 내가 가하는 검격에 하나씩 격추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있는 일대에 함선만 남게 되자, 나와 세니아 그리고 아잘리는 더 말할 것 없이 바로 함체에 본격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함선들에서 미사일들이 발사되고 함체의 장치들에서 광선들이 계속 발사되어 양현 부근의 글라이더들을 위협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그렇고 일행 모두의 글라이더들은 함체의 장치들을 계속 파괴해 함체가 불길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함선은 마지막으로 함교만 남기게 되었다.
그 무렵, 갑자기 어딘가에서 인간형 병기의 잔해 하나가 불길에 휩싸인 채로 세니아의 글라이더 근처로 날아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내가 뭔가 날아온다고 외쳤다. 세니아 역시 바로 알아차리고 글라이더를 잠깐 뒤로 움직여 피해냈다. 사람으로 치면 불길에 휩싸인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상태로 전락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의 인간형 병기는 이후, 흉악한 소리와 함께 함체의 함교 부근에 떨어졌으며, 이후, 함체에 충격을 가하는 것은 물론, 폭발까지 하면서 함체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방금 전에...... 아르산, 너도 봤지?"
"봤어." 이미 그 살아있는 시체 같은 모습의 병기가 함선에 부딪치는 광경을 이미 충분히 목도했던지라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후, 이미 폭파된 주포 자리와 불길에 휩싸인 함교에 접근하면서 그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말했다.
"우리 셋 잡겠다고 저런 짓을 한 거야, 자기들 전투기보다 살짝 작은 우리 셋 잡겠다고 저 큰 병기를 집어던진 것이라고."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아잘리에게 건네는 말에 세니아가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내가 함교에 접근해 본격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할 무렵, 왼팔의 팔찌에서 세니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거...... 그런 것 아냐? 자살 특공 같은 거 말야."
"카미카제 (Kamikaze) 말이지?"
어렸을 때, 들어본 기억이 있다. 먼 옛날, 인류의 대전쟁 당시에 인류사의 가장 큰 죄악 중 하나가 벌어졌다고 했다. 폭약을 가득 실은 전투기에 사람을 태우고 배를 향해 돌진, 격돌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이를 사람들은 심푸 (Scimpuh) 혹은 카미카제 (Kamikaze) 라 칭했다. 고귀한 사람들의 목숨은 물론, 전쟁에서 소중한 전력이 되어야 할 전투기들과 화약이 허망하게 산화되는 일이 반복되어 벌어졌다고 했다.
무의미한 희생과 부질없는 결과만 계속 나왔음에도 대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런 일은 되풀이되었다고 들었다. 그것에 대해 리사 선생님께서 높은 사람들이 자기들 안위를 지켜낼 수 있다면 자신들의 사람들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까지 전쟁에 끌어들여 죽음의 길로 몰아붙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말씀하신 바 있었다.
"승리를 위한 기도를 신에게 바친다면서 평범한 사람들을 징발해서 폭약을 가득 실은 전투기에 태워서 함선과 바다에 격돌하도록 했지, '신께 산 제물을 바치는 행위' 로서 말이야. 물론, 신을 위한 산 제물이란 것도 명목일 뿐이었을 것이고, 그 진의는 '우리를 위해 너희 목숨을 바쳐라' 였겠지."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들이 신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자신들의 목숨부터 먼저 바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저들도 그러고 있을 거야, 우리라는 '신' 을 위해 너희 자신을 바쳐라, 못 하겠다면 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너네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랬겠지." 그 때의 일을 떠올리는 나에게 아잘리가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했다.
"디 수무스 (Di sumus) 라, 참 멋지네." 비꼬는 느낌이 역력한 목소리가 아잘리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그 무렵에 내가 리사 선생님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하면, 왜 그들은 스스로를 바치려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느냐고 내게 그 때의 일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아잘리 역시 방금 전의 일을 두고 나와 같은 것을 떠올렸던 모양으로, 이후, 아잘리는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무엇이냐고 이어 물었다.
"내가 리사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야, 저들은 자신들이 신이고, 자신들이 있어야 자신들의 세상이 유지되기에 자신들은 죽으면 안 된다고."
"한 마디로 '에세 데베무스, 퀴아 수무스 디 (Esse debemus, kwia sumus diy, Esse debemus, quia sumus dii)', 우리는 신이고,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 이런 거네?"
이후, 아잘리가 묻자, 나는 그러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함교는 집중 타격을 받으며, 폭발하기 시작했고, 이후, 함체 전체가 폭발하려 하자, 나는 아잘리, 세니아에게 함선에서 멀어지라 청했다. 그 너머에서도 함선은 다가왔고, 함선의 움직임과 함께 전투정들이 앞장서 다가오고 있었다.
"세니아, 괜찮겠어?" 처음에는 나도 그렇고 깊이 걱정하지는 않고 있었겠지만, 두 번째로 이전과 같은 공세와 마주하게 되자, 슬슬 세니아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세니아는 괜찮다고 답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무리한다 싶으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하기는 했다.
그 이후로 다시 전투정들 그리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전투기들, 인간형 병기들과 맞서기 시작하고, 전투정들이 하나둘 격파되기 시작하면서 일행은 이전 때와 같이 함선의 좌현, 우현 근처에 도달하게 되었다. 다만, 그 무렵에도 전투기들, 기동 병기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함선을 향한 공격을 바로 이어가지는 못하지 않나 싶었다.
"잠깐! 저 너머에 뭔가 빛나는 것이 오고 있어!" 그 때, 아잘리가 나에게 건너편에서 뭔가 빛나는 것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하얗게 반짝이던 빛이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비행기의 형상을 보이더니, 이윽고 새의 그것과 같은 날개를 가진 하얀 비행기가 함선의 뒤를 따르던 전투기들, 인간형 병기들을 향해 돌진해 가기 시작했다.
"저 비행기, 이전에 언급했던 그 창 아니야?"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일행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던 비행체에 대해 언급하니, 그 목소리를 듣고 내가 그 모습을 자세히 보려 하면서 그것이 그간 나와 아잘리가 있던 곳, 그 먼 저편을 오가던 빛의 창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잘리가 그 경황 없는 와중에도 제대로 그 모습을 지켜본 것. 하지만 그 창이 비행체들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을 두고 그 창이 일행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기계 병기들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는 했지만, 일행 쪽을 마주보는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어서 일행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이전 때와 마찬가지로 포격들을 피해가며, 기계 병기들의 대열 사이를 글라이더로 날아가면서 직선 상으로 발사되는 하얀 화염탄들을 발사해 가며, 전투기들과 인간형 병기들을 우선 격추시켜 폭발하도록 하려 하는데, 건너편에서 동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뒤쪽 대열의 전투기들이 폭파되기 시작한 것으로 곡선을 그리는 빛 줄기와 함께 하얗게 빛나는 작살들이 비행체가 있는 쪽에서 날아와 인간형 병기들을 격추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비행체, 기계 병기들을 격추시키며 이 쪽으로 오고 있잖아."
그 때, 세니아가 나에게 비행체들이 기계 병기들의 대열을 흐트리고 있는 정황을 알렸다. 과연 그 정황대로 하얀 빛의 창이 날개를 펼친 채로 기계 병기들-주로 인간형 병기들이었으나, 전투정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을 폭파시키며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의 항로를 수없이 많은 기계 병기들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돌파하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곁에 있으려 하는 건가?' 그 모습을 보던 내가 말했다. 이후, 정말로 빛나는 창은 날갯짓을 하며, 방향을 선회, 나의 곁에 머무르며, 나와 같은 방향으로 비행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도 나와 속도를 맞춰 비행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까지 날렵하게 움직여 가던 모습과는 나름의 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함선 주변을 오가는 비행체들의 수가 적어지면서 나를 비롯한 일행 전체가 함선의 함체를 본격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비롯한 이들이 함체의 함포에서 발사되는 붉은 빛 줄기들, 광탄들을 피해 가면서 곡선을 그리는 빛이나 빠르게 날아가는 붉은 화염 줄기 등을 발사할 때, 빛의 창 역시 자신의 머리가 함선을 향하도록 하면서 날개에서 작살들을 발사해, 함체의 공격 장치들을 폭파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후, 이전의 함선처럼 함체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자, 빛의 창부터 함교 쪽으로 날아가려 하였고, 그 이후에 주포 사격을 통해 발사되는 빛 줄기 등을 피해가며, 함선의 함교 바로 앞에 있던 주포들을 타격하려 하다가, 이후, 나와 아잘리 그리고 세니아가 그 광경을 보고, 함교 쪽으로 다가가자, 그런 일행 주변을 맴돌면서 함교 쪽으로 날아오는 인간형 병기들, 전투정들을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하려 하였다.
함교에도 다수의 공격 장치들이 장착되어 있었고, 이들이 붉은 빛 줄기, 광탄들을 계속 발사해서 일행을 위협하고 있었지만 빛 줄기, 광탄들을 피해가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비행체들 사이를 계속 피해가며, 함교의 몸체에 피해를 가하려 하였다. 함교의 표면이 폭파되기 시작한 것은 함교를 공격하기 시작한 이후로 몇 분 즈음 지난 이후의 일이었다.
함교의 표면 곳곳이 부서지고 폭발이 부서진 단면마다 발생하며, 마치 화산처럼 불타오르는 잔해와 불덩어리들이 함교에서 분출되기 시작하자, 빛나는 창이 다시 날갯짓을 하며, 나를 비롯한 일행을 마주보려 하기 시작하였다. 빛나는 창의 창날 부근에 빛이 깜박이고 있었으니, 무언가 신호를 전하려 하였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나머지는 내가 맡을 테니, 물러가라는 뜻인 것 같아."
그 신호를 가만히 지켜보던 아잘리가 말했다. 그리고 사당 쪽에 남은 이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돌아갈 필요가 있을 텐데, 그 시기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나에게 일단은 돌아가자고 청했다.
"그래, 돌아가자." 그러자 나도 긍정적으로 답했으니, 사당 쪽에 남은 이들의 사정이 걱정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음이 그 이유였다. 함교가 불길에 휩싸이고 연기를 분출하면서 함선이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가 된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말했다.
"세니아, 이 쪽은 이제 저 비행체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은 사당 쪽으로 돌아가자, 그 쪽에서 해야할 일도 많아."
"그래야 하겠다." 그러자 세니아도 내게 동의하는 화답을 하더니, 먼저 글라이더의 기수를 돌려 사당 쪽을 향해 날아가려 하면서 먼저 가겠음을 알렸다. 이후, 아잘리 역시 사당 방향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먼저 갈게. 문제가 생기면 알려 줘야 해."
"알았어." 아잘리까지 떠난 이후에도 나는 주변 일대를 살피며, 사당 쪽으로 오는 이들이 있는지를 살피려 하였다. 하지만 당장에는 빛의 창이 병기들을 묶어두고 있어서 그러한지, 사당 쪽으로 오는 병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저래서는 한 동안 사당으로 오는 이들은 없을 것 같네.'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나는 사당 쪽으로 당분간은 병기들이 몰려올 것 같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을 내리고, 사당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애초에 나도 오랫동안 글라이더를 이끌고 사당에서 멀어질 수 없었던 것도 있어서 가능한 빨리 사당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내가 사당 쪽으로 돌아올 무렵, 사당의 괴물체는 본체가 이미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곳곳에 작게 보이기만 했던 붉은 반점이 온 몸 전체에 넓게 퍼져 있었으며, 몸의 곳곳이 부패, 부식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나, 카리나가 괴물체와 맞서고, 나에티아나와 프라에미엘이 공중에서 사격 및 마법 공격을 가하고 있었기에 그 영향도 있어서 계속 본체에 피해를 입고 있었을 것이기에 손상이 결코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이미 착지한 세니아, 아잘리의 뒤를 따라 글라이더의 소환을 해제하며, 사당의 바닥에 착지했다. 그 이후, 괴물체의 어깨에서 검푸른 액상 물질들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낙하했다. 낙하하는 동안 물질들은 푸른 결정으로 변하며, 바닥에 낙하했고, 그 이후, 결정들이 성장하면서 인간형 병기들의 모습으로 변했다. 머리 부분이 거대한 눈을 이루는 인간형 병기들은 깨어나자마자 오른손에 칼날을 생성하며, 사당에 머무르고 있던 이들을 공격해 가려 하였다.
검을 들어 그 인간형 병기들을 하나씩 베어내려 하였다. 인간형 병기들은 몇 번의 검격으로 깨어졌고, 이후에 증기로 승화하면서 사라져 갔다. 그렇게 내가 병기들을 제거해 가는 동안 아잘리가 나의 주변을 맴돌면서 나에게 날아오는 포탄들을 자신의 검 및 총포에서 발사되는 빛으로 막아내고, 검격 및 격투로 내가 있는 주변으로 다가오는 병기들을 타격해 파괴하며, 병기의 수를 줄여가고 있었다.
다른 쪽의 병기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세니아의 화염 줄기, 화염구에 의해 타격을 받고 깨어지거나 내가 있는 쪽을 지원하려 한 프라에미엘이 방출한 빛들에 의해 몸체가 녹아내리다가 증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으로 생성한 병기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물질 덩어리를 사출해 거인형 병기들을 생성하면서 공중에서 전투기 형태의 비행형 병기들을 생성해 공중에서 거체들을 지원하도록 하기도 하였으나, 전투기형 병기들과 그들이 발사한 결정탄 및 미사일들은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에 의해 금방 격추되어 사라져 지표면의 거체들을 바로 지원해 주지는 못했으며, 거체들 역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나와 아잘리 그리고 세니아와 나에티아나의 공격을 받아 조금씩 파괴되어 갔다. 세니아 등이 불꽃 그리고 빛의 힘으로 거체들을 공격해 가는 동안 거체들 역시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면서 몸체에서 결정탄들을 발사하고, 폭파시키기도 하였으나, 이들이 두 사람에게 큰 위험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 것 같다.
이후, 괴물체의 물질에서 생성된 결정형 병기들이 궤멸될 무렵, 괴물체가 오른팔을 높이 들어 바닥을 내리쳤다. 그 무렵부터 두 팔의 길이가 사당의 직경에 맞먹을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고, 그 때문인지 팔로 사당을 내리칠 때마다 사당 전체에 진동과 함께 충격파가 퍼졌다. 다만, 두 팔을 휘두를 즈음에 목도해 본 바에 의하면 사당을 덮고 있던 물질이 그 시점에서는 거의 없어져 있었으며, 하반신 역시 매우 가늘어져 괴물체가 공중에 뜬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과 하반신을 구성하던 물질을 두 팔에 집중시켰던 것 같다.
괴성을 내지르면서 처음에는 오른팔, 왼팔로 한 번씩 사당의 바닥을 내리쳤다가, 그 이후에 두 팔을 높이 들어 두 팔로 사당의 바닥을 쳤다. 끊임 없이 괴물체가 분노의 내리치기를 가하고, 그로 인해 사당의 바닥 전체에 충격파가 끊임 없이 퍼져가고 있었다.
뛰어오르는 것 이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였으나, 지상의 일행은 일단은 무사했다, 사당의 중심에 있던 카리나가 방패를 중심으로 보호막을 펼쳐, 그 보호막이 충격파를 상쇄하는 형태로 충격파를 견디었고, 세니아 등이 그 뒤에 오는 것으로 충격파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는 괴물의 모습을 관찰하느라 카리나가 알리는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고, 처음, 두 번째에 괴물이 가하는 충격파를 지표면에서 뛰어올랐다가 착지하는 형태로 피해내야만 했다.
그렇게 두 손으로 충격파를 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괴물은 다시 두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카리나는 다시 일행에게 보호막을 펼칠 테니, 뒤로 오라 하였다.
그 외침에 호응해 카리나의 방패 뒤로 오려 하였으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높이 들어올려진 괴물의 두 손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이전까지는 주먹을 쥐거나 손바닥을 펼치고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굽혀진 손가락을 앞세우고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손가락의 끝에 보랏빛 기운이 모이고 있었으니, 그 기운을 이용하려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아잘리, 보고 있지?"
"보고 있어." 내가 건네는 물음에 아잘리가 바로 응답했다. 이후, 손이 내려오려 하자, 나는 그에게 손에 깔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 이후, 두 손이 사당의 바닥으로 내려와 손가락들이 바닥에 닿으려 할 즈음, 뒤로 재빨리 움직이며 손가락들을 피한 다음에 나의 우측 곁에 이른 아잘리와 함께 손가락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에서 보라색 빛을 발하는 기운이 핏줄기처럼 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곁에 머무르던 아잘리에게 말했다.
"너도 보고 있다시피, 저 괴물은 바닥에 기운을 퍼뜨리고 있어, 지면에 스며드는 기운을 이용해 바닥을 뜯어낼 생각인가 봐. 하지만 기운 주입을 위해 손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느라, 다른 행동을 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어떡할 생각인데?" 이후, 아잘리가 묻자, 내가 답했다.
"잘 지켜 봐." 그리고 머리카락들 중 나의 오른편에 있던 몇 가닥을 마력으로 움직이면서 그것들이 꼬여 가는 밧줄의 형상을 이루도록 하면서 그 끝이 갈고리 형상을 이루도록 하였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생성한 갈고리가 빠른 속도로 괴물의 왼쪽 어깨에 박히도록 한 이후에 어깨에 박힌 갈고리를 축 삼아서 괴물의 왼쪽 어깨 위로 뛰어오르려 하였다.
괴물이 어깨를 움직이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괴물은 손가락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어깨를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그래서 어깨 위로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몸의 대부분이 유체로 이루어져 있어 착지나 매달리기 등이 어렵다고 여기어진 괴물이었으나, 어깨, 머리 등은 내부에 기계 장치가 있어 착지는 가능할 것이라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괴물의 왼쪽 어깨에 도달할 즈음이 되자 갈고리를 생성한 머리카락 가닥을 풀어 머리카락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도록 하면서 착지, 어깨를 비롯한 괴물의 몸을 구성하는 유체에 발이 빠지기는 했지만, 금속 덩어리 같은 것이 발에 닿음을 느끼며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 그 덩어리 물질은 독을 품거나 하는 특성은 없었다 (만약에 그런 특성을 있다면 갈고리를 형성하며 몸체에 박힌 머리카락이 그것을 감지했을 텐데, 그런 현상이 없었다). 다만, 지하에서 물질을 피해다닌 것은 그 물질 내에서 촉수를 비롯한 온갖 위험한 것들이 튀어나왔고, 끈적이는 특성을 갖고 있어 습격을 당하면 꼼짝도 못하고 당할 위험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끈적이는 특성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기에 바로 물질에 발이 빠지도록 하면서 어깨 위에 올라가려 한 것.
"어깨 내부의 장치에 충격을 주어 녀석의 행동을 저지할 거야. 나는 왼쪽 어깨에 있을 테니까, 너는 오른쪽 어깨의 위에 올라와!"
"아르산, 괜찮아? 물질에 독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
"그런 건 없어. 있다면 머리카락을 통해 알 수 있었겠지." 이후, 아잘리가 걱정스러워하며 건네는 물음에 그렇게 화답한 후에 물질이 끈적일 것임은 각오해야 한다고 말하고서, 어서 올라오라고 다시 청하니, 아잘리는 이후에 알았다고 답하고서 곧바로 자신의 왼손이 괴물의 오른쪽 어깨를 향하도록 하더니, 그 손의 손가락들마다 하나씩 초록색 빛 줄기가 생성되어 어깨에 닿도록 하더니, 어깨에 박힌 빛의 실에 의지해 그 어깨 위로 올라가려 하였다.
이후, 머지 않아 아잘리는 괴물의 오른쪽 어깨 위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에 손가락의 실들이 사라지도록 하면서 몸을 움직여 어깨 위에 착지하였다. 그 역시 유체에 발이 빠지기는 했지만, 내부 장치 위에 무사히 착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 말대로야, 아르산, 물질 안에는 독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
그리고, 나에게 안쪽에 금속성 물질이 밟히고 있다고 말하고서, 내부 골격의 일종 아니겠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러할 것이라 화답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가능한 빨리, 한 번에 큰 충격을 주어서 녀석이 더 행동을 못하게 해야 해!"
이후, 나는 어깨 뒤쪽을 노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뒤로 뛰어올랐다가 낙하하면서 어깨 뒤쪽이 나의 눈앞에 보일 때를 노리려 하면서 아잘리에게 내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알린 이후에 두 손에 빛의 기운을 가능한 끌어모으려 하였다.
두 손이 빛의 기운이 모이면서 격렬한 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바로 어깨 위에서 뛰어올라, 뒤공중돌기를 시도, 그 이후에 낙하하면서 두 팔을 괴물의 왼쪽 뒤쪽 어깨를 향해 뻗었고, 그러면서 두 손에 모인 빛의 기운을 한 번에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아잘리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두 손으로 잡은 총포를 격발, 포구에서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광탄을 발사했다. 총포 안에 빛의 기운을 최대한 끌어모은 다음에 한 번에 발사하려 하였을 것이다.
빛을 방출한 이후, 아잘리가 광탄을 발사하는 모습을 잠깐 목도한 이후에 다시 공중제비 자세를 취하며 낙하하려 하였다. 착지할 곳은 괴물의 뒤쪽 바닥이었고, 그래서 우선 빛의 기운으로 발판을 만들면서 낙법을 준비했다.
발판의 도움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충격이 완전히 완화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발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일어서면서 나는 고개를 우측으로 돌려, 아잘리 쪽을 보려 하였고, 그러면서 아잘리가 거의 나와 같은 때에 일어서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잘리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에게 이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고 청했다. 암만 그래도 카리나 등과 같이 있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고 여기었음이 그 이유.
한편, 뒤쪽 어깨에 충격을 받으면서 괴물은 바닥을 향하던 두 팔을 급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 듯이 몸을 고개를 뒤로 돌리며 몸을 뒤로 젖히더니, 다시 고개를 앞으로 향하여 나와 아잘리를 제외한 일행 쪽을 바라보려 하였다. 그 순간, 바닥을 뒤덮다가 몸체 안으로 빨려들어갔던 괴물의 푸른 물질이 다시 바닥의 한 가운데 부분을 뒤덮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후, 나의 곁에 이르는 아잘리에게 말했다.
"괴물의 몸에서 뭔가 나오는 거 봤어?"
그 광경을 보면서 그간 몸에 물질을 끌어모으고 있던 괴물이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서까지는 짐작하지는 못했지만, 이전처럼 바닥에서 병기를 소환하거나 하는 행동은 아닐 것임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 푸른 물질을 통해 괴물이 뭔가 이전과는 다른 짓을 벌이려 할 거야."
"그래서?" 이후, 아잘리가 물었지만 괴물의 행보에 대해 짐작되는 사항이 하나도 없었던지라 두루뭉실한 답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었다. 내 생각이 액상 물질을 괴물이 기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추측에 닿았고, 그와 더불어 물질을 바닥에 흡수시켜서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는 추측에도 이르렀던 것으로 그 생각은 이윽고, 바닥에 흐르는 혹은 바닥에 스며든 물질을 기화시킨 후, 폭파시키는 짓을 벌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일행 쪽으로 앞장서 뛰어가면서 나를 따라가는 아잘리에게 말했다.
"녀석이 물질을 흘러보내면서 그것을 기화시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 기화된 물질에 뭔가 작용을 가하는 것으로-"
"폭발을 일으킨다고?" 그러자 내 말을 자르며, 아잘리가 물었다, 기화될 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역시 폭발을 떠올렸던 모양. 그리고 당장에 폭발이 일어나면 사당 전체에 그 여파가 미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하고서 뛰어내려서라도 피해야 할 수도 있음을 알렸다. 그 무렵, 괴물의 몸체에 흘러내린 유체에서 푸른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번에 증기가 많이 피어올라, 괴물체를 둘러싸는 안개 같아 보였는데, 그 모습이 어떻게 보더라도 심상치 않았다.
'여기서 불꽃이라든가 열을 내는 뭔가를 떨어뜨리면 폭발한다는 거지?'
그 무렵, 내가 위치한 건너편 멀리서 거대한 새 모양, 익룡 모양의 검은 전투기들이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각 날개의 하단에는 나란히 포대, 미사일 등이 장착되어 있어서 접근하자마자 사당 쪽으로 투하할 것임을 바로 예상할 수 있었다.
"아잘리, 너는 먼저 가 있어, 내가 저기 있는 것들을 처치하고 갈 테니까!"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할 수 있잖아!"
하지만 아잘리는 도중에 멈추려 한 나의 곁에 머무르며 가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감을 느끼고, 내 곁에 있으려고 했던 것 같다.
다만, 아잘리는 이전에도 그렇고, 그렇게까지 나에게 의지하는 이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잘리는 자존심은 셌고, 남에게 함부로 도움을 청하거나 의지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그 때도 아잘리는 나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왜 내 곁에 굳이 머무르려 했는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다른 동료들 곁으로 가라고 해도, 어차피 가지 못할 것 같으니,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혼자 놓이느니 차라리 나와 같이 있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 것. 그런 판단을 내리면서 나 역시 그런 그에게 뭐라 하지는 않았다.
전투기들을 공격 목표로 삼을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곡선을 그리는 빛 줄기들을 내 곁에 머무르던 빛의 기운을 통해 발사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마력으로 검을 생성해 오른손에 쥐면서 내가 있는 근처로 적이 다가올 것을 대비하려 하였다.
먼저 다가온 전투기들은 물론, 그 이후에 다가온 개체들 역시 빛 줄기들에 의해 격추되고 있었지만 뒤따라 온 개체들 중 일부의 미사일들은 막아내지 못했다. 다만, 이들은 괴물의 증기에 접근하지 않고,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으니, 나를 비롯한 이들을 저지하는 그 이외의 목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미사일들은 다시 목표 설정을 하면서 격추시켰다.
그러나, 예상 외의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일행이 위치한 괴물체의 전방 쪽으로 입에서 몇 번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들을 발사하더니, 괴성을 지르면서 몸에서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동이 증기에 닿으면서 보랏빛 폭발이 일아나기 시작, 굉음과 함께 보랏빛 불꽃을 품은 폭풍과 보라색 빛을 발하는 파동이 사당의 변두리 쪽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퍼져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 카리나의 곁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당 변두리로 파동과 폭풍이 퍼져나갈 판이었다. 당장의 위험이라도 모면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일단 뛰어내리기로 하고, 사당의 변두리로 다가가서는 바로 뛰어내렸고, 파동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목도했을 아잘리 역시 그런 나의 우측 곁에서 나와 거의 동시에 뛰어내렸다. 서로 약속하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하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뛰어내렸고, 이후, 각자의 수단으로 사당의 외벽에 매달릴 때에도 거의 같은 때에 매달렸다.
아잘리는 각 손가락마다 보라색 실을 생성해서는 실가닥들이 서로 꼬이며 두 가닥의 밧줄이 되도록 해서 그 밧줄에 벽을 등지며, 나는 머리카락 가닥들을 꼬아, 그것을 밧줄 삼아서 벽에 매달렸다. 모두 벽을 등지고 있었고, 그래서 몸을 뒤집는 방식으로 바로 매달리게 되었다. 아잘리가 손에서 생성한 실에 의지해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각 손가락마다 감빛 마력으로 손톱 칼날들을 하나씩 생성해 벽에 손톱 칼날들이 박히도록 하고서, 머리카락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도록 하였다.
"네가 예상했던 대로네." 이후, 아잘리가 사당의 표면 쪽을 올려다 보며 내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괴물이 그 정도로 끝낼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이어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이게 끝은 분명 아닐 거야, 가능한 저런 짓을 반복해 갈 것 같다는 거야."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 그의 말에 나 역시 공감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이미 여러 공격 수단이 일행에 의해 저지당해 실패한 상태이다. 괴물이 끌어온 전투기들을 비롯한 병기들 대다수가 파괴되었고, 함대 하나까지 궤멸당한 상태에 신체까지 상해를 입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괴물은 가능한 모든 힘을 끌어들여 발악을 이어갈 것임이 분명했다. 이전의 파동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 시작이었을 것이었다.
"방금 전의 일은 그 시작에 해당 되겠지."
그리고, 파동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손톱을 절벽에 박으면서 사당으로 다시 올라가려 하였다. 그리고 아잘리에게 "어서 올라가자!" 라고 청한 다음에 가능한 빨리 일행에게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어 말하면서 사당의 가장자리 쪽을 향했다. 이후, 아잘리는 그런 나의 청에 따라 오른손의 실이 사라지도록 하고서, 오른손에서 다시 실을 생성했다. 그 빛의 실은 다시 괴물의 등을 향했다.
"아잘리, 위험하지 않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아잘리가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여기며, 물었으나, 아잘리는 그런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으려 하면서 오른손의 손가락들에서 뻗어나온 빛의 실이 괴물의 등에 닿도록 하였고, 이후, 그 실에 의지해 괴물의 등에 매달리려 하였다.
"녀석은 전방 쪽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뒤쪽에는 신경쓰지 못하고 있을 거야, 그 틈에 녀석에게 한 방 먹이려고."
그리고 나에게 자신을 따라오라 하고 있었다. 이후, 아잘리가 괴물의 등 한 가운데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한 이후에 괴물의 뒤쪽 방향으로 기어올라간 다음에 머리카락 몇 가닥을 꼬아서 길다란 밧줄이 달린 갈고리 형상을 하도록 한 이후에 그렇게 생성한 밧줄을 뻗어 괴물의 왼팔 뒤쪽에 갈고리가 박히도록 하였다.
이후, 길다란 실에 의지해 괴물의 등에 매달려 있던 아잘리가 왼손에 총포를 들어 포구에서 광탄들을 발사해 괴물의 뒤통수에 피해를 몇 번 가했다. 이후, 괴물이 고개를 뒤로 젖히자마자 실을 팽팽하게 늘린 아잘리가 그 실에 의지해 괴물의 몸체 건너편으로 뛰어넘어가고, 머리카락을 갈고리 삼아 괴물의 왼쪽 어깨 뒤쪽에 올라와서 그 모습을 보던 나 역시 괴물의 전방 쪽으로 뛰어내렸다. 그 후, 내가 착지했을 무렵에 아잘리 역시 사당의 바닥에 착지했으며, 이후에 가능한 빨리 카리나의 방패 쪽으로 뛰어갔다. 도중에 공뢰들이 떨어지며 앞길을 가로막았으나, 일부는 피해내고, 일부는 마법으로 격파해 가며, 정신 없이 방패 쪽으로 뛰었다.
한편, 맹렬한 공격을 받았을 카리나의 방패는 여전히 강렬한 빛을 내며 자신이 건재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세나의 환수가 들고 있는 방패 역시 강렬한 하얀 빛을 뿜어내며 굳건히 뒤쪽의 일행을 지켜내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방패의 바로 앞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세니아! 모두 무사해?" 일행에 다시 합류하자마자 나는 괴물의 공격을 막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을 카리나, 세나를 대신해 세니아에게 일행이 무사한지를 물었고, 그 물음에 우선 세니아가 무사하다고 답했다.
"모두 괜찮아, 방금 전에 카리나, 세나의 방패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다시 방패들의 기운이 회복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어서 나에티아나가 두 사람의 방패가 다시 원래의 힘을 되찾았음을 알렸다. 다만, 프라에미엘은 괴물이 이전과 같은 파동 발산 등을 이어가면 버티기 힘든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에 가깝게 목소리를 내었다.
프라에미엘이 경고를 남긴 그 때, 괴물이 다시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충격파를 일으켰다가, 입에서 보라색 에너지 덩어리를 계속 분출했고, 이어서 오른팔을 들어 손에서 에너지 구체들을 여러 방향으로 쏘아 보내니, 이들이 차례로 포물선 상의 궤적을 그리며 사당의 여러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이 날아가는 것 자체는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것들 중 하나가 일행이 위치한 그 일대로 떨어지는 것으로 카리나, 세나의 방패를 넘어서 낙하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너지체 중 하나가 카리나 님의 방패 등을 넘어 오고 있어요! 모두 피신하셔야 해요!!!"
"흩어져!!! 그렇지 않으면 모두 위험해!" 그 궤적이 목도된 이후, 우선 프라에미엘이 에너지 덩어리가 일행 쪽으로 날아오고 있음을 알렸고, 이어서 세니아가 모두 흩어져야 한다고 외치면서 일행 모두 흩어질 준비를 하였다. 카리나는 끝까지 괴물체의 공격을 막으려 하였으나, 보라색 덩어리가 일행이 있던 그 일대에 떨어지기 직전, 괴물체의 전방이 잠깐 빈 틈을 노려 괴물체 앞으로 뛰어가는 것으로 착탄지를 피해갈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뛰었는데, 또 뛰어야 하는 거야!?"
나와 아잘리는 사당의 좌측 구석-다리 건너편- 방향으로 가던 세니아의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게 되었다. 이전까지 치열하게 뛰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뛰게 생겼던지라 아잘리가 동행하던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그 말에 내가 화답했다. 다행히도 목표 지점이었던 다리 근처의 가장자리 부분에 이를 때까지 폭발이 날아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가장자리 부분에 이르자마자 내가 있는 쪽으로 에너지 덩어리가 날아왔고, 이를 피하느라 다급히 몸을 날려야만 했다. 다급히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폭발 이후에도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 그렇게 다급히 피해를 면하고 일어서려 하는 그 때, 일행이 건물 내부에서 사당으로 올라올 때, 활용했던 기둥이 파괴된 모습이 보였다. 기둥이 파괴되면서 그 잔해가 계단을 묻어버린 것. 괴물이 이런저런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는 그 와중에 파괴된 듯해 보였다.
일행을 구성하던 이들은 구체가 집결지에 떨어지기 전에 모두 흩어졌지만, 그 이후로도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하던 이들이 흩어졌음을 알아차렸는지 괴물은 여러 방향으로 보라색 에너지 덩어리들을 분출하려 하였고, 그 와중에 충격파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틈만 나면 구체가 날아오고 마력탄들이 흩뿌려지는데, 간간히 충격파까지 날아오니, 가만히 있을 여유가 없을 지경이었다.
괴물 쪽으로 뛰어가는 카리나의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의 몸을 지나쳐서는 다시 내가 있는 쪽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그가 무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괴물이 카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눈에서 보라색 광선을 뿜어냈으나, 카리나가 빛의 방패로 바로 반사해냈다. 처음에는 사당의 남쪽, 북쪽 방향으로 흩어졌으나, 이내, 괴물의 눈으로 반사되는 방향이 전환되어 괴물의 눈에 피해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차례 폭발이 일어난 이후, 괴물의 머리 형체가 녹아내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방 먹이기는 했지만, 이후의 일이 걱정되기는 해."
카리나가 말했다. 그런 말을 할 만도 했던 것이, 눈이 멀기는 했지만, 원래의 힘은 그대로 남아있었을 괴물이 그야말로 '눈 먼 포대' 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우려대로, 괴물은 특정한 누군가를 노리지는 못하게 됐지만, 에너지 덩어리를 마구잡이식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할 때마다 괴물은 눈 부분에서 고통을 느끼는 듯이 괴성을 내지르니, 그 소음으로 정신 없을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 때, 눈을 맞히지 않았어야 했나 싶어."
아잘리, 나와 함께 지표면에서 잇달아 터지는 에너지 덩어리들을 피해가며, 카리나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했던 일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어." 내가 화답했다. 그 이후, 얼굴 형체가 없어진 괴물이 자신의 두 팔을 상반신 쪽으로 흡수시켜, 상반신을 비대화시키더니-그렇게 해서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의 형태가 없어져버렸다-, 비대화된 상반신의 한 가운데에서 입을 생성했다. 그러면서 괴물은 상반신에서 결정 칼날들을 자신의 주변 여러 방향으로 흩뿌렸으니, 이들은 일정 거리로 날아가다가 폭발해서 충격파와 이전의 인간형 병기의 신장만한 직경의 보라색 빛을 분출하고 있었으며, 입의 주변에 생성된 구멍들에서 이전처럼 보라색 구체들이 난사되었다가 폭발하는 광경이 보이기도 하였다. 결정 칼날과 보라색 구체들의 폭발이 사당의 전역에 걸쳐 일어나며, 사당에 머무르는 이들 모두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기계 병기들의 함선이 여러 병기들을 이끌고 괴물을 향해 날아왔다. 괴물을 지원하기 위해 온 듯해 보였으나,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던 괴물은 그 병기들에도 결정 조각들을 흩뿌리고, 구체들을 발사하니, 그 폭발 공격에 앞서 접근해 오던 인간형 병기들이 파괴되고 있었다. 이후에도 함선은 전투기들을 괴물 쪽으로 보냈지만, 괴물의 난폭한 행동에 의해 전투기들은 괴물에 접근할 때마다 격추, 폭발당하고 있었다.
"저기 봐, 아르산! 기계 병기들 보라고!!!" 그 광경을 보았는지, 아잘리가 나에게 다급히 외쳤다. 나 역시 이미 보고 있었기에 그런 그의 외침에 "보고 있었어." 라고 답했다. 그리고 아잘리에게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
"인간의 형체를 잃어버리면서 이성도 같이 잃어버린 것 같아."
"그렇다면, 저렇게 인간도 아닌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은 괴물이 이성을 유지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거야? 그러면, 괴물이 인간의 모습을 되찾으면 이성을 되찾을 수 있는 거야?"
이후, 아잘리가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괴물이 이성을 되찾으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번 잃어버린 이성이 쉽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지도 않고, 괴물 본인도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괴물이 이성을 갖고 있을 때보다 지금이 우리에게 더 위험하잖아."
괴물의 폭주는 잠시 동안만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괴성은 끊이지 않았으며, 이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 괴물의 여러 구멍에서 계속 보라색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들이 여러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중 하나가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고, 그 모습을 본 카리나가 왼팔에 빛의 방패를 생성해서 그 구체를 막아냈다.
구체는 빛의 방패에 부딪치자마자 굉음을 일으키며 폭발, 전방의 넓은 일대로 폭풍과 함께 빛을 흩뿌렸다. 그 구체는 얼핏 봐도 크기부터 컸고, 격렬히 빛을 발하고 있어서 다급히 펼쳐낸 방패로는 막아내기 쉽지 않아 보였으며, 그런 예상대로, 굉음과 더불어 격렬한 폭풍이 터져 나오면서 카리나 역시 강한 충격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카리나는 어지간한 사람은 밀려나다 못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충격에서도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힘이 빠지면 밀려날 것만 같았으나, 그럼에도 어떻게든 견디려 하였다-이를 위해 두 팔과 두 다리에 마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마력의 영향으로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보였다-.
폭발은 격렬한 힘이 가해진 한 순간이 지나간 이후에는 더 이상 힘을 가하지 않았다. 카리나는 결국 무사히 폭발을 막아냈다. 마지막에 보라색 불꽃이 격렬히 터져 나왔지만, 그것마저 방패를 넓게 펼치는 것으로 막아냈다.
"이 정도 즈음은 아무것도 아니지." 폭발을 막아내며 카리나가 말했다. 그 이후, 그는 방패를 해제하지 않은 채로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세니아 등은 무사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간 적의 공격을 막는 데에 집중하느라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내가 알아볼게." 그러자 내가 바로 그렇게 청했다. 그리고 세니아 등이 뛰어갔던 다리가 있던 곳의 반대편 쪽으로 급히 뛰어가려 하였다. 괴물의 폭주에 의해 발생하는 구체를 피하려면 아무래도 빨리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겠어?" 그 때, 아잘리가 물었고, 그 물음에 내가 괜찮을 것이라 답했다. 그리고 따라올 것이냐고 묻자, 아잘리는 바로 따라오겠다고 답하면서 카리나의 곁을 떠나, 세니아가 머무르고 있을 법한 곳을 찾아 나서는 나를 따라 나서려 하였다.
처음에는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생각에 의해 생성된 예측이란 이름의 길에서는 늘 변수라는 이름의 맹수들이 눈을 이글거린다. 이번에는 불행하게도 그 맹수의 아가리 앞에 놓이고 말았다.
갑자기 아잘리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놀란 내가 바로 발걸음을 멈춰서 아잘리의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아잘리가 넘어진 것이었다. 다급히 나를 따라 뛰어가다가 돌부리 같은 것에 넘어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평소에는 잘 가다가 난데 없이 왜......' 라고 혼잣말을 하며, 아잘리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려 하는데, 그 때, 갑자기 나의 왼편이 보라색 빛으로 밝아지기 시작했고, 심상치 않은 예감에 보호막을 펼치면서 빛이 밝아진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후, 나의 눈앞으로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입에서 빛이 분출되려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전의 구체보다도 더욱 격렬한 빛이 눈앞에서 번쩍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이렇게 외치면서 나는 아잘리를 끌고 가능한 빨리 빛이 분출될 곳을 벗어나려 하였다. 이전보다도 더욱 격렬한 힘이 지속적으로 가해질 것임은 분명했고, 나의 보호막이 온전히 빛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막아내면서 가능한 아잘리를 끌고 빛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해 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빛 줄기가 분출되려 하는 순간, 나의 바로 앞으로 카리나가 몸을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좌측으로 몸을 날리면서도 그는 왼팔의 빛으로 생성한 방패가 자신의 앞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몸을 날린 여파로 넘어진 이후에 다시 일어서려 하면서도 방패의 방향만큼은 어떻게든 유지하려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보라색 빛 기둥이 괴물의 입에서 분출되었지만, 그 열기는 카리나가 생성한 방패에 의해 막혀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르사나! 어서 도망쳐!!!" 카리나가 외쳤다. 그러나 나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고, 그 대신 아잘리에게 어서 가라고 외쳤다. 그리고 주저하던 아잘리에게 나는 카리나의 곁에 계속 머무르며 그를 도와주겠다고 말하고서, 혼자서라도 가라고 했다.
그 무렵, 그간 보이지 않던 세니아가 멀리서 뛰어왔다. 빛 기둥이 사람들에게 발사되고, 그 빛 기둥이 여러 갈래의 빛으로 흩어지는 광경을 보고 급히 뛰어왔던 모양. 그리고 카리나가 방패로 안간힘을 다해 빛을 막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뒤로 돌아가서 공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뒤쪽에서도 열이 분출되고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시도해서는 안 돼."
내가 화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카리나가 방출한 빛의 방패는 계속해서 빛을 막아내고 있었다. 괴물의 빛 역시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둘 중에 먼저 지치는 쪽이 지는 싸움이 되었을 텐데, 정황 상, 신체적 한계가 분명했던 카리나가 먼저 지칠 것임은 너무도 분명했다.
아잘리가 세니아를 지나쳐서 뒤쪽으로 물러서는 모습을 잠깐 지켜본 이후, 다른 말 없이, 카리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검까지 내려놓고, 두 손으로 방패를 생성하고 있던 카리나의 모습을 잠깐 보고 있다가 그가 바닥에 떨어뜨린 검을 주워서는 세니아의 바로 앞으로, 마치 그더러 대신 잡도록 하라는 듯이 던졌다. 그리고 그의 뒤로 다가가서 그의 허리를 두 팔로 안고서 두 손에 빛의 기운을 일으켰다. 그 기운이 카리나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카리나의 마력만으로는 아무래도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판단을 내리고, 내가 가진 마력을 보태주기로 한 것이었다.
"당장에 출력을 너무 높이지 마." 그러면서 내가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마력을 보태주고 있음을 알아차렸는지, 괴물이 더욱 세게 빛을 분출하려 하였다-빛 기둥의 직경이 커지고 빛이 더욱 격렬해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빛 기둥이 마치 물 기둥처럼 유동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견딜 수 있을까, 이걸......!' 내가 마력을 보태주고, 카리나가 그 마력을 바탕으로 방패를 더욱 강화시켜 어떻게든 막아내려 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카리나와 함께 영역 이탈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전이 마법이 필요해 보였고, 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청하려 했다.
Saram'y mosîpk'azci bërisyëtnayo, izcen?
별안간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이후, 카리나가 있는 쪽으로 집중되던 빛의 화력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이미 카리나의 방패가 빛을 분산시키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괴물의 입 근처에서 이미 빛이 분산되어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방패에 큰 영향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카리나에게서 손을 떼고 방패의 우측 근처로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이후, 나의 눈앞으로 구체 하나가 빛 기둥을 막아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구체는 빛 기둥을 거의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었으며, 빛의 일부만이 사당 주변으로 흩어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자신에게 빛이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음을 인지하자마자 카리나 역시 방패를 잠시 해제하고 나의 왼편에 주저앉아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있었다.
"누구야?" 카리나가 물었다. 그리고 빛의 바로 앞에 빛의 구체가 자리잡은 모습을 알아차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잔느 공주님 아냐?"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이후, 카리나가 잔느 공주의 보호막은 위험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고 우선 답한 이후에 눈앞의 광경을 주시하며 이어 말했다.
"분명 그러할 텐데....... 괴물의 정신에 영향이 가해져 빛의 출력이 약해진 것 같아."
괴물에게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전까지는 이성을 잃고 마구 날뛰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잔느 공주와 맞닥뜨리자마자 이성이 돌아오기라도 했는지, 뭔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을 찾은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 목소리의 의미를 알아듣기 어려웠던 것은 마찬가지이긴 했다.
Zcumâk hana hwidurîl himdo âpnîn zcuzce-eh, âdisâ gamhiy!!!!!
분노 어린 괴물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잔느 공주가 갑자기 다가가고, 그의 보호막에 의해 자신의 공격이 막히는 모습을 보며, 어지간히 분노했던 것 같다. 그러더니, 잔느 공주를 감싸고 있던 무지개색의 보호막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Saram'y mosibira hätna? Hah!!!! Gîrân nayakan gât t'awi yimi baryâta! Saram'y maîm, yisâng t'awi, modu ßawm'y bãhäggëriyil p'un!
그리고 괴물은 이어서 말했다.
Murît ßawme yisânggwa zcihyeran ßilmoâpningât, Ozcik piryohangâßin him! girigo bonnîngida!!! Piwa zcâlgyuril burunîn ßawmîrl wihan bonnîngmarida!
Zcihyeni sîlgi gatt'n gâtdrin nayakan gâtdri zcascinîrl himsenzcadîrlobutâ bohohagiwihan g'omsu'e bulgwahazci. Gîrân zcomsîrapgo yakhäp'azcingâtdri zcinzcâng gangjadrîrl moranägo sesangîl zcibahanika!!! Sesangi gîrâkhedön'gâscida, Arlgetna?
Gîrân sänggakiro gîrâke saramdrîl zcugingasciâtgunyo, gîrâtco?
이후, 잔느 공주가 건네는 물음에 괴물은 이렇게 화답했다.
Nayakan yingyâdrîrl moranässil p'unida, mânyetnare yingani gîrätëngacârâm marida. Sesangenîn izce saramgatîngatdrîn âpsëyahä, dangyâni sântäkbadînzcadrîrl zcehago marizci. Yinganîl däscinhal zcadr'y scidäga yârlinîngëscida.
그 말이 끝날 무렵에 잔느 공주의 보호막이 마치 그것에 모종의 반응을 하는 듯이,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빛에 분노한 듯이 괴물이 입에서 구체를 향해 보라색 불길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Non dimettetur (용서받지 못하리라)
보호막을 이루는 구체가 불길에 더욱 격렬히 빛을 발하는 것과 함께, 어떤 목소리가 잔느 공주가 있는 쪽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잔느 공주와 비슷한 듯, 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괴물을 향해 울려 퍼졌다.
Simulac cognoscis qui sit ante oculos tuos, collapsus eris in aeternum. (네 눈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깨닫는 순간, 너는 영원히 무너지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괴물에게 말했다.
Nihil te salvet, memento, illi ante te non sunt tua praeda, sunt qui te puniunt! (그 누구도 너를 구원할 수 없으리라, 명심하라, 네 앞에 있는 이들은 너의 사냥감이 아니라, 너의 징벌자이니라!)
Wusupgun, zcingberlzcarago? Hah! Yâgisâ saranamîrlsu yißîlzcibutâ arabwayahagetgun!
괴물이 있는 쪽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서 괴물에게서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Nugudo yâgisâ saranamzci motarira!!!!!
이후, 괴물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보라색 빛 기둥이 분출되었다. 마치, 이전에 들려온 목소리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온 힘을 다해 보라색 빛을 분출하려 하였을 것이고, 그 때문인지 괴물의 입 쪽으로 전례 없는 격렬하고 거대한 빛이 나를 비롯한 일행을 덮치려 하였다.
"어떻게든 막아볼게! 그 틈에 모두 도망쳐!!!" 카리나가 외쳤다. 그 때, 내가 세니아에게 세나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으나, 세니아는 세나에 대해 나에티아나, 프라에미엘과 더불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오지 않도록 하라고 했음을 밝히고서, 당장에 오라고 해도, 카리나에게 바로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함께 있다가 몰살되는 것보다는 낫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지." 이후, 세니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서 나는 카리나의 곁에 남을 것이며, 만약의 경우가 생기면 자신이 신호를 보낼 테니, 그 때에 모두 흩어지라 당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잔느 공주님, 저렇게 괴물의 근처에 머무르셔도 괜찮은 거야?"
이후, 아잘리가 나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잔느 공주를 감싸고 있을 보호막이 괴물 근처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전 때처럼 보호막이 있는 한, 무사할 것 같기는 할 것이라 화답했다. 그러면서도 그 보호막이 언제나 그를 지켜주지는 못할 테니, 그를 불러오기는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이어 이렇게 세니아에게 당부했다.
"나에티아나 등에게 잔느 공주님께서 괴물이 있는 쪽에서 멀어지시도록 부탁을 드려 봐."
그 이후, 빛이 분출될 때, 카리나의 옆에는 나 혼자 남았다. 그리고 세니아는 아잘리를 이끌고 멀리서 카리나 그리고 나의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거대한 빛이 카리나의 방패에서 뿜어나오는 새하얀 빛과 마주했다. 빛은 모든 것을 사멸시킬 듯이 맹렬히 분출됐지만, 카리나의 방패는 이런 보라색 기운을 무사히 막아내고 있었다.
괴물에서 분출되어 일행 쪽을 향하는 빛은 점차 거대해지고 있었으며, 빛으로 형상화 된 괴물의 힘과 함께 몰려오는 폭풍도 더욱 거세게 카리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카리나의 방패 역시 더욱 게세게 하얀 빛을 발하며, 그 빛을 막아내려 하고 있었다.
내 눈 앞, 카리나가 서 있는 저편은 빛에 휩싸여 있어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공간의 일부를 제외하면 빛에 휩싸여 있었으니, 적어도 사당의 표면에서는 괴물의 빛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한 만큼, 사당의 가장자리에 있던 세니아 그리고 세나와 나에티아나 등도 내가 있는 근처로 와서 나와 함께 빛을 가로막고 있었을 카리나의 모습을 지켜보려 하였다.
괴물이 빛을 통해 가하는 힘은 가면 갈 수록 더욱 커지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카리나에게 가해지는 압박도 더욱 거세졌다, 내가 마력을 보태주고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버티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고, 그래서 그 힘에도 카리나가 버틸 수 있도록 마력을 보태주려 하였다.
그러던 도중, 날개에 의지해 공중에 머무르던 세나가 카리나의 우측에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도 나설게요! 카리나 씨 혼자서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이후, 세나는 갑주 형상의 환수를 소환해 환수가 방패를 생성해 카리나와 함께 빛을 막도록 하면서 자신 역시 그 반대편으로 다가가 자신의 마력으로 방패를 생성해 카리나를 도우려 하였다. 그 셋이 온 힘을 다해 막으니, 잠깐이나마 상황이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 괴물은 어떻게든 사당 위의 모든 이들을 없애버리려 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빛의 힘이 막히면 더욱 거세게 빛을 분출하려 할 것임이 너무도 분명했다.
"마치 작은 초신성 (Chatajevica) 이 작은 개체를 부수려 하는 것 같아 보여요!"
그 무렵, 나에티아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무언가를 소멸시키기 위해 초신성 같은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광경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후, 세니아로부터 나에티아나의 외침에 화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같은 작은 무리 하나 없애자고 저런 힘을 발휘한다는 거지?"
나에티아나의 외침에 세니아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당시 나는 카리나에게 마력을 거들어주면서 방어에 나름 적극 가담하는 입장이라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었으나, 슬쩍 들려온 세니아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그러나, 그 때문이었는지, 내가 카리나에게 가하는 마력이 불안정해졌고, 방패의 빛 역시 불안정하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세니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것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다가 정신 집중이 흔들렸는데, 그것이 마력의 불안정한 전이로 이어진 것 같았다. 빛이 더욱 게세게 카리나와 내가 있는 쪽으로 파고들려 하였다. 카리나는 더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으나, 가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가해가며, 빛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 때, 괴물이 몇 번 거듭해 강한 충격을 앞쪽으로 향했고, 카리나가 소환한 빛의 방패도 그 두께가 얇아지며 소멸하기 직전 상태에 놓이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 끌어오며, 최후의 수를 써 보기로 했다. 빛의 기운을 온 몸에서 끌어와 카리나를 통해 카리나의 방패로 전이시켜 그 방패에서 폭발이 일어나도록 하려고 한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나 카리나 모두 빛에 의해 소멸할 수 있었으나, 더 이상 있다가는 모두 다 함께 빛에 의해 소멸당할 처지였다. 그런 위기를 둘이 소멸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다면 차라리 그 쪽이 낫다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 할 수밖에 없다면.......!'
이후, 빛의 방패가 있는 쪽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려 하였고, 그 순간에 뒤쪽에 있을 이들에게 외쳤다.
"모두 사당에서 탈출해!!!!" 그리고 잠시 후,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려 하는 듯이 격렬한 폭풍이 분출하였고, 빛이 눈앞으로 퍼져나갔다. 눈앞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먼 저편으로 굉음이 터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나의 두 팔이 카리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폭풍에 휩쓸리며 내 몸이 뒤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눈앞으로 빛에 의해 하얀색만 보이는 것이 그 무렵의 기억에 남은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얗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
의식을 잃고, 눈을 감았을 텐데도 하얀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눈을 감은 후의 어둠을 하얀색이 대신한 것처럼.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뜰 수 있었다. 공간은 빛에 감싸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눈이 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일어섰다. 온전히 일어설 수 있었다. 사지는 물론, 입고 있던 옷도 무사했다. 바닥에 세게 떨어졌는지, 다소의 아픔이 느껴질 뿐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후, 옷가지를 잠시 털고서 눈앞에 보이는 이를 향해 다가갔다. 이전까지 내 곁에 있던 카리나, 세나에 비해 훨씬 작은 사람의 그림자였다.
그림자처럼 보이는 이에게 가까워지면서, 나는 그 모습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소리(Sori) 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이전과 같은 짤막한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에 하얀 밴드를 맨 이로 소매 없는 짤막한 셔츠와 짧은 치마 차림을 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사나, 이제 정신이 들었구나." 내가 다가오자마자 소리가 나에게 말했다.
"여기는 어디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를 향해 다가가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소리로부터 이런 대답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
"사나, 너는 어딘가로 전이된 것이 아냐, 너는 계속 이 곳에 있어, 사당을 떠난 것이 아니란 거지, 두 빛이 서로 부딪치면서 생긴 충격파가 사당 전체를 덮치면서 그 빛이 마치 여기가 빛의 세상이 된 것처럼 보이도록 한 거야."
"지금 내가 온전한 것은...... 그러면 어떻게 된 거지?"
이후, 내가 물었을 때, 소리는 한 동안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기보다는 대답을 할까, 하지 말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동안 팔짱을 낀 채로 고민에 잠겨 있었던 소리가 이후, 눈을 떴다.
"당장에 밝히고 싶지는 않은데 말야."
"밝히고 싶지 않다고?" 뭔가 말해주려고 해도, 당장에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건네는 말에 소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두 팔을 내린 이후에 앞장서서 걸어가려 하면서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전에 네가 봐야 할 것이 있어, 따라와 봐."
그는 조용히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소리가 말한 대로, 사당이라면 그는 분명 괴물 쪽으로 접근해 가고 있을 것이다. 아직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그에게는 위험할 것임이 분명했겠지만, 그것을 상관하는지, 그러하지 않는지, 소리는 그저 앞쪽으로 걸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이 쪽이야, 저기를 보면 돼." 한 동안 걸어가기만 하다가 한 지점에 이르자마자 소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때까지는 눈앞으로는 소리 이외에는 빛만 보였다가, 소리가 멈춰 선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니, 빛 사이로 어떤 광경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 역시 그 광경이 보였는지-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면, '저기를 봐라' 같은 말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 무렵, 소리에게 '카리나는 어디에 있지?', '괴물은 어떻게 된 거야?' 등이 있었지만, 소리는 그저 건너편에 보이는 광경에 시선을 향할 뿐, 소리로부터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당장에 대답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소리가 보고 있던 것, 그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일반적인 광경과는 거리가 있었다. 마치 종이에 펜으로 그려넣은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마치 빛을 종이 삼아 검은 물질이 움직이는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의 실체였다.
'움직이는 그림인가......?' 고문명 시대에는 그림을 움직이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다고 알고 있다. 이를 통해 인류는 하나의 실제로 있었던 일 같은 광경들을 표현하거나 할 수 있었다. 이런 기술은 아르데이스 등지에는 여전히 남았고, 고문명 시대처럼 적극적으로 활용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드벨파 족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활용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고문명사에서 알려진 것 같은 움직이는 그림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크로키 (Kroki, Croquis) 수준의 그림들이 이런저런 광경들을 만들고 그 광경들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빛에 그려진 그림은 처음에는 어떤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왼편에는 전투복 차림을 한 어떤 젊은 남성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비슷한 옷차림을 한 보다 나이 든 남성이 서 있었다. 인상으로 보아서는 오른편의 남성이 상급자였을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주고 받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이 움직이는 모습만 봐도 두 사람 사이에 격론이 펼쳐지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후, 내가 그 광경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조금씩 목소리가 커지면서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은 나에게는 그저 뭔가 말하는 듯한 소리의 모음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다만, 소리와 어조에 규칙이 있는 것으로 이들이 단순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뭔가 말을 주고 받음을 알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 소리의 집합은 사실, 이전에도 들은 바 있었으니, 잔느 공주 그리고 괴물의 대화에서 들려왔던 소리의 집합과 상당히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Musîn marlßmîl hascinîngâpnigka? gî gömurlnyâsâkdrlgwa dongmängiraniyo!? Dozcâhi ißîrlßuapnîn yripnida!!!
왼편의 젊은 남성에게서 우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항의하는 듯한 목소리로 우측의 연로한 남성에게서 부조리한 명령이 전달된 것 같아 보였다. 이후, 젊은 남성의 항의에 연로한 남성이 화답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Sîrâzcâganîn yi zciyâgîl wihan yirida.
그리고 이어서 남자가 말했다.
Âcapi yinaranîn myârlmanghäßâ. Yâgirîrl birotan zciyâk zcudun budädrldo yi scizcâmesânîn zcângbu'y dowumîl badîrlsu âpge döâtdan marida!
Sangbunîn murlon gî nugudo dowazcuzci motanînde sangdänîn apdozcâgida, Sarlgi wihäsânîn sântägîl häya hä!
이후, 젊은 남자로부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Gîdr'y noyero sarlanîn gësipnika? Gîrân myângryângtdawi zcinscimîro badadrhil nyâsëkdri yissîl ga'gaßîmnika?
Gîgesn ne sänggagil pbunizci, nâhy buha moduga nâcâram sänggakhalkga?
Bu..... budäzcangnim.....!
그 대화의 마지막 즈음에 연로한 남자의 어투가 이상했다. 마치 악에 타락한 것처럼 목소리를 내며, 젊은 남자를 위협, 도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연로한 남자는 젊은 남자의 상관으로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었을 텐데, 모종의 이유로 그런 위협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는 것 같네."
펜으로 그린 듯한 광경들이 잇달아 펼쳐지고, 그 광경 속에서 뭔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도중에 옆에 있던 소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소리가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응, 두 사람이 원래는 어떤 사이였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갈등을 벌이고 있다는 것 정도만."
소리가 건네는 말에 그렇게 화답했다. 이후, 나는 소리에게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소리는 그렇다고 화답한 이후에 저 고대의 말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소리가 밝힌 두 사람의 대화에서 들려온 말들의 의미는 이러하였다 :
연로한 군인은 젊은 군인의 상관으로 연로한 군인은 지역을 사수하는 어떤 부대의 부대장이었다. 부대장은 '괴물' 이라 칭해진 무리와 동맹을 맺으려 하니, 압도적인 상대에 의한 위협을 지역에서 없애기 위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 상대와 동맹을 맺으면 지역의 위협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라는 명분이었을 것이다.
젊은 군인은 괴물 무리와의 동맹은 있을 수 없으며, 부대의 누구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 항의하였고, 이에 부대장이 자신의 부하에게 모든 부하들이 그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품은 물음을 건네었다.
"여기서 부대장이란 작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목소리가 살벌하고 위협적이었지, 마치 자신의 부하에게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야. 아마도 사나, 너라면 저 부대장이란 작자가 모종의 이유로 타락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을 거야, 그렇지?"
소리가 물으면서 언급한 바대로였다. 그 대화를 들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부대장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며, 타락했을 것으로 짐작했었는데, 소리는 그 대화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기에, 부대장-연로한 군인-과 그 부하가-젊은 군인이- 지역을 사수하는 부대에 소속되어 있으며, 부대장이 지역과 사람을 위협하는 괴물의 힘에 이끌리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테니, 그 부대장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괴물이 무엇인지는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줄곧 언급되었던 지금의 지브로아 일대 아래에 있을 옛 세계의 도시에서 구 세계의 종말 무렵에 나타나, 파괴, 학살을 일삼았을 기계 병기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던 군인들 중 일부가 괴물이라 칭한 기계 무리에 복종해 기계들과 더불어 사람들을 사냥하고 다녔고, 이후, 인류 세계가 멸망하자, 이들은 가차 없이 숙청당하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 대화에서 목소리를 낸 부대장은 그렇게 복종했다나 숙청당한 군인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기계 무리에 복종한 군인들 중 한 명이었던 거네, 저 부대장이란 자는."
"그런 거지." 이후, 내가 말을 건네자 소리는 그 말 대로라는 의미의 답을 하였다. 그리고 두 팔을 들어 손을 머리 뒤로 옮기고서 말을 이어갔다.
"사나,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저와 같은 자가 구 세계에서는 한 둘이 아니었고, 그들은 부하들을 세뇌해서 기계에 복종한 자신의 노예로 삼아, 자신이 자행하려 하였을 기계에 충성하기 위한 학살에 동참하도록 했지, 물론, 인간으로 살아가려 했던 저 젊은 군인과 같은 자가 있어서 그들이 인류의 편으로서 그런 무리에 저항하기도 했어."
이후, 소리는 두 팔을 내리며 그 젊은 군인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저 젊은 군인도 엄연한 부대장이야, 그 부대장만큼 큰 부대의 부대장은 아니겠지만...... 계급은 카피텐 (Kapiten, Capitaine), 100 여 명의 장병들을 지휘할 수 있을 만큼의 권한을 가잔 자였어."
그 때, 이전까지 보이던 것들이 전부 종이에서 펜의 필적을 지워내듯이 지워지고, 이후에 또 다른 광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전투복 차림을 한 군인들이 식당으로 추정되는 어떤 장소의 길다란 탁자에 나란히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러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그 분위기는 그렇게 활발하거나 화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적막하다 못해, 오히려 침울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인 만큼, 사람들 간의 대화가 있을 것임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 중에서 상급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말을 걸었고, 그 이후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침묵을 지키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우측 한쪽 구석-나와 가까운 쪽-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던 청년 병사였다.
한창 대화를 이어가던 병사들 중 한 명, 그 청년 병사의 바로 왼쪽 근처에 앉은 병사가 청년 병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다른 동료들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건네었지만 이전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오른편 곁에 있던 소리는 그 대화의 의미를 알 수 있었는지,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눈 앞에 보이는 병사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 어떠한지 알겠어?"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소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있었다.
한편, 건너편의 광경에서 병사들이 하나둘씩 우측 구석의 젊은 병사에 시선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표정 변화 그리고 그 젊은 병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에서 동료 혹은 상급자들의 감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젊은 병사를 향한 동정, 걱정을 바로 드러낸 이들도 있었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해당 병사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청년 병사는 그 너머에 보이는 병사들 중에서도 최하급자였던 것으로 보이며, 입대 시기가 가장 늦은 만큼, 가장 어린 병사였을 것이다. 전투가 일상이 되어버리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갓 입대를 했을 테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상급자들이 그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법해 보였다.
"저 우측 구석에서 식사하는 병사의 모습을 보고 있지?"
"응, 보고 있어." 소리의 물음에 바로 답했다. 그리고 내 대답이 들리자마자 소리는 그 병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저기 보이는 이들은 모두 이전에 봤던 그 부대장 있지? 그 부대장이 지휘관으로 있던 부대 예하의 작은 부대의 병사들이야. 그 부대의 부대장은 이전에 봤던 그 젊은 군인 있지? 그 젊은 군인이 여기 보이는 병사들의 지휘관이었어."
그러더니, 우측 구석에서 말 없이 식사에 집중하던 병사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 병사는 당시 부대 내 소대 (Ploton) 에서 가장 늦게 입대한 병사이자, 최연소 병사였어. 당시 나이가 17 세였던가.......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군에 신병으로 들어와 있었지. 입대한 이유부터 시작해서 상급자들의 연민을 많이 샀었지."
"입대 사유부터?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괴물의 습격 때문에 가족들을 전부 잃었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가족 구성원이 꽤 많았는데...... 그런데 가족들 대다수가 괴물에 의해 죽고 말아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처지에 입대를 하게 됐다고 하더구나."
"가족들의 복수...... 같은 것은 웬지 아닐 것 같아." 이런 경우, 혹자는 가족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에 뛰어들어 병사로서 참전할 수 있겠지만, 그 병사의 경우에는 그런 사연으로 입대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표정부터 침울하고 소심해 보였고, 그래서 그 주변은 유난히 음울해 보였다. 만약 적극적으로 복수를 원했다면 식사를 위해서든,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든,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그 병사보다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맞아, 그런 이유 따위가 아니라, 그저 먹고 살 수 있어서 입대를 했지, 적어도 뭐든 믿고 먹을 만한 것을 주고, 잘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먹고 살려고 들어온 거야. 어딜 가더라도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싸우다 죽을 수 있는 군대에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리의 목소리가 침울해져 가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 들려왔던 병사들의 대화에 저런 내용들이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있었어. 내가 들려준 것은 그것들을 대충 정리해 본 거야."
이후, 소리가 말했다.
그러는 동안 눈앞으로 또 다시 어떤 풍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연설대 위에 어떤 군인이 서 있었고, 그 건너편에 수백은 훨씬 넘는 수의 병사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들은 한결 같이 총포와 장갑판 그리고 투구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투구를 눌러쓰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기는 했으나, 표정을 통해 이들이 긴장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긴장감은 그들 중에서 나라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는 비장한 결의는 아니었을 것으로, 그저 앞으로 닥쳐올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어떻게든 싸워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현이었을 것이 더욱 정확했을 것이다.
"저들이 정의의 군대라는 거지?" 눈앞에 보이는 중무장을 한 병사들을 바라보며 내가 짐짓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그렇지, 일단은." 그러자 소리가 답했다, 마치 설마 정말로 모르고 있었느냐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고 갑주를 걸치고 화기를 갖춘 병사들이 나란히 서 있는 그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면서 그들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이전에 보였던 그 군안의 병사들이야. 원래 소속의 병사들은 대략 100 여 정도. 여기에 괴물 혹은 기계 병기들의 노예를 자처한 자들, 그리고 그 노예의 손아귀를 벗어난 자들을 그 군인이 가능한 끌어들여 자신의 휘하에 들였지. 200 여 정도의 병사들을 끌어들인 것 같아."
"내 예상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네." 내가 말했다. 나는 300 여 명은 끌어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 비하면 조금 적기는 해도, 얼추 비슷하긴 했다. 이에 대해 소리는 이전의 그 군인에 대해 당장에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가능한 끌어들이는 것 외에는 방도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전차 같은 병기는 없었대?"
"......." 그리고 다시 물었을 때, 소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서 그 동작이 대답을 대신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병사 수도 적고, 지원 장비도 마땅치 않았음이 변절을 면한 '정의의 군대' 가 처한 실상이었던 것이다.
"그들 누구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믿지 않았어. 그저 살아남을 수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라 여기었지, 그들이 사실상 옛 인류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마지막 희망'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던 거야, 그들은."
"그럼에도 '나라를 위한 싸움' 이란 말은 있었겠지?"
"그랬지, 이후에 그 군인이 연설을 하면서 그런 말을 할 거야."
잠시 후, 연설대 위에 서 있던 젊은 군인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음은 여전했지만, 때로는 슬픔이 느껴질 정도로 어두운, 그리고 때로는 처절하게 외치는 듯한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느꼈을 절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그의 절박함이 어떠하였는지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너는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방금 전에 이런 말이 들렸어." 이후, 소리가 이전의 연설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고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이라 할 만한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죽었을까? 일주일 전에도, 며칠 전에도, 어제도 날마다 이 곳 부근,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서는 수십 명씩 인간이 죽어갔고, 죽어가고 있다. 아마 오늘도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어갈 것이다. 괴물의 힘은 인류가 투쟁을 거듭함에도 꺾이지 않는 와중에 괴물에 의지해 욕심을 채우려 하는 자들이 인류를 배반했고, 배반하고 있으며, 그들에 의해 인류의 소중한 힘이 그들에게 빼앗기고 있다! 여기서 나는 제군에게 말할 수 있다, 아니 말해야 하겠다!
희망은 '없다'.
괴물에 영합하는 자들까지 있는 마당에 희망을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상부에서는 우리에게 싸우라 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인간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라' 라는 외침이 고장난 시계의 울림소리처럼 되풀이 될 뿐이다. 돌아보면 온통 배신과 파멸 뿐인 이 세상에서 저들은 괴물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방법을 궁리하면서 우리에게 나라에 헌신하라는 헛구호만 남발하고 있다.
우리 목숨 살리기도 벅찬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괴물은 붙잡은 사람들을 무참히 잡아먹고, 그 살과 피를 탐낸다고도 했다. 너희들에게도 너희들이 지키고픈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에게 너희 자신과 너희에게 소중한 것들을 함부로 내 줄 수 있겠는가? 또한 괴물들의 편에 붙은 배신자들 중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이들은 없다고 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이제 세상의 그 무엇도 인류를 위하지 않게 되었다. 그 와중에 우리마저 힘을 쓰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마련하지 못했을 이들이 괴물에게 무력하게 잡아먹히는 꼴을 방관하겠다는 말인가? 적어도 여기의 제군은 그런 생각을 마다할 인간성 없는 이들은 아니리라 믿는다,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위해 절망 속에서도 죽을 각오로 싸울 수 있는 이들이라 믿고 있다.
이것이 내가 그 '빌어먹을 나라와 인류를 위해' 너희들과 함께 싸우려 하는 이유다!
"그야말로 '빌어먹을 나라를 위해 싸우려 한다' 고 외치고 있었구나."
소리가 알려주는 연설의 내용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가 소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남의 목숨 따위 아랑곳하지 않을 이들도 그 무리에 있지 않았을까, 라는 물음. 그 물음에 소리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생각을 가질 이들이라면 진즉에 모두 탈영해서 떠났겠지, 애초에 군법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세상일 텐데, 그 누군들 뭐라 하겠어."
그리고 풍경은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병사들이 아직 전장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군인이 연설하기 전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부대의 막사 건물 한 구석에서 어떤 병사가 뭔가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아무래도 과자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이전에 연설을 했던 그 젊은 군인이 병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병사는 화급히 놀라며 먹던 것을 그만 먹고 일어서서 경례를 했다.
이후, 군인은 병사가 먹던 것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그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냐고 묻고 있었던 모양이다.
배 많이 고프냐?
...... 아닙니다......
아니긴, 무슨....... 방금 전의 점심 때에는 병사들의 배식량이 적었어. 너라면 배고픔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앞으로는 이전 같은 배식은 기대할 수 없을 거야, 지금 같은 배식도 아마 힘들겠지, 비축된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거든.
그리고서, 군인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병사에게 건네고 있었다. 병사가 먹고 있던 것과 비슷한 유형의 과자였다. 그는 필경 병사보다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병사들과 거의 비슷한 식생활을 감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먹어라, 내 것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어. 게다가 이런 과자를 이 나이 되도록 먹는 것은 또 아니지 않나. 이후에 부대로 가서 이야기를 해 보겠다, 너 같이 배 많이 고픈 병사들을 위해 부식들을 가능한 많이 놓아두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한계는 있겠지만, 가능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손을 써 주마.
그 무렵, 누군가의 목소리가 당시의 대화를 재현하려 하는 듯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아니었고, 어떤 소녀가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잔느 공주의 목소리였다. 어딘가에서 잔느 공주가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음이 틀림 없었다. 그 무렵, 소리는 잔느 공주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처음 그 목소리를 들을 때에는 잠깐이나마 못 마땅한 듯, 정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그를 계속 지켜보며 그런 표정 변화가 보였다.
"그 병사는 이전에 언급된 신병보다도 늦게 입대한 신병이었어요, 그 당시 신병은 이미 일반 병사가 되어 있었고요. 고향은 당시 괴물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한 후방에 있었는데, 병력 보충을 위해 그 당시의 병사만큼 어린 18 세 나이에 조기 징집되어 괴물과의 싸움을 바로 마주할 수 있는 최전방에 위치한 부대에 배치된 사연이 있는, 그런 인물이었지요. 늘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남은 이들을 걱정하는 그런 사람이었대요."
그리고 이어서,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며, 그 병사에 대해 언급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 역시 신병으로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인성을 가진 청년이었다는 모양. 평범한 청년이었기에, 배고픔을 감내하지 못하고 몰래 뭔가를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그칠 무렵, 눈앞으로 또 다른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부대의 광장 한 구석에 있는 벤치에 두 명의 병사가 나란히 앉은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왼편에 앉은 병사는 다소 무뚝뚝한 인상의 청년이었으며, 그 옆에는 평범하고 다소 소심해 보이는 병사가 앉아 있었다.
너, 방금 전에 막사 뒤쪽에서 뭐 먹다가 부대장님께 걸렸다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 임마. 나도 배고파서 그랬는데 뭘.
.......
모두가 힘든 시대, 암울한 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잖냐, 우리가 동물도 아니고, 인간에겐 인간다운 뭔가가 있어야지. 이런 시대에도 너 같은 아직 나약한 애들을 챙겨줄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런 말이야.
.......
이거 먹어, 내가 조금 남겨 놓았어. 방금 전에 선임병들한테도 이야기가 들렸는데, 그래도 고향이 멀쩡한 네가 많이 먹고 집에 가서 가족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감사합니다.
잘 먹고, 이번 일은 다들 모르는 일로 해 주겠다고 했어. 다음에 배가 고프면 우리한테 얘기 해, 우리도 모자라기는 하지만, 가능한 이거저거 챙겨줄 테니까. 알았지?
"꽤나 상냥한 목소리네." 내가 말했다.
"그런 거지."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방금 전에 나왔던 신병은 가족들을 전부 잃었다고 하지 않았나? 대가족이 전부 괴물이라 칭해진 기계들에게 몰살당했다고 했잖아, 가족과 고향이 험한 꼴을 당했음을 그 당시 신병 주변의 사람들이 몰랐던 거야? 아니면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그 신병의 모습, 이전의 신병과는 많이 달랐을 텐데." 그러자 소리가 묻는 듯이 답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그 신병은 이전에 보았던 그 신병과는 다른 사람이라면서, 이전에 보였던 신병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알리려 하였다.
"우리가 이전에 봤던 신병은 뭔가를 몰래 먹던 신병이 아니라, 그에게 방금 전에 먹을 것을 줬던 병사야. 그 병사가 몇 달 동안 부대에 있으면서 정규 병사가 되어 신병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된 거지. 당시 계급은 '일병 (Soldat Simple de Premiere Classe)' 이었을 거야. 가족들을 모두 잃고 배고픔에 시달렸던 자신을 떠올리며, 자신처럼 주리고 있을 신병에게 자신에게 얼마 없던 먹을 것이나마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야."
...... 먹을 것이 없는 거 아닙니까?
됐어, 이런 구질구질한 것도 나눠 먹어야지. 그게 바로 사람이니까.
이후, 부대의 다른 구역으로 보이는 모습이 바뀌었고, 그 곳에서 이전의 그 젊은 군인이 한 무리의 노련한 군인들과 마주하는 모습이 이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젊은 군인에게 노련한 군인들이 뭐라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군인 그리고 병사들 사이에 할 말이 아주 많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그 모습을 보며 할 수 있었다.
신병들을 부대 밖으로 보낸다는 말씀입니까?
어쩌면 그 신병들의 도움이 절실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총기 사용만 할 수 있다면-
이의는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100 명이 싸우든 1000 명이 싸우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상대의 전력은 막강합니다, 전차에 전투기들은 물론, 함선까지 가진 놈들입니다, 저들과 정면에서 맞서게 된 순간, 우리의 패배는 기정된 사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은 인간은 물론, 생명체들까지 항복하든 말든 잔인하게 학살하고 잡아먹는다고 했습니다, 저들과 영합하거나 굴복한 자들이 어찌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이런 무지막지한 놈들에게 패배하는 것은 곧, 우리 모두의 죽음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어차피 뭘 하든 다 죽게 생겼다면, 어차피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신병들은 부대 밖으로 내보내 자유인으로서 삶을 보내도록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신병들은 훈련 상태가 아직 부족하기에 당장에는 유의미한 전력이 되거나 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남아 힘을 기를 수 있다면 후일을 도모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디를 가든, 지옥입니다, 전쟁을 피하든 말든 누구든 다 죽을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내보내려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에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밖으로 보내질 신병들 중에서는 이전에 몰래 뭔가를 허겁지겁 먹던 신병도 포함이었겠네?"
"그렇지." 이후, 내가 묻자,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소리가 답했다. 그리고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로 고개를 뒤로 돌려 내 앞의 풍경으로 시선을 향하려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 때가 아마 작전 이전에 연설을 하기 전날이었던가, 그러할 거야. 결국 그 군인들은 지휘관의 뜻을 들어주게 되었고, 부대에서 군인으로서 복무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정확히는 부대 배치 이후, 3 개월도 되지 않은 신병들은 부대 밖으로 보내기로 했어."
그리고 풍경은 다시 부대의 한 곳으로 다시 바뀌었다. 그 곳은 부대의 정문 부근으로 부대의 정문에는 한 대의 차량이 부대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며, 신병들이 지휘관인 젊은 군인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부근에서 멀찌감치 한 무리의 병사들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부대 정문의 멀리서 정문 쪽을 보는 병사들 중에는 신병도 있었다, 뭔가를 몰래 먹고 있던, 그 젊은 신병이었다. 그리고 신병 주변을 한 무리의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병사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신병 주변에는 그의 바로 옆에 있던 젊은 병사만 남았다. 이후, 젊은 병사가 신병에게 말을 걸었다. 정황 상, 직급이 신병보다 약간 높은 정도의 병사였던 것 같다. 그는 신병을 친근히 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신병 역시 그를 대하는 것만큼은 편했던 것 같았다.
이후, 풍경은 어둠 속에서 어떤 사람이 일기장을 몰래 보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전부터 부대장이라 칭해졌던 젊은 군인으로 그 군인이 어떤 병사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급하게 책장을 넘기다가 한 부분에서 멈추었고, 그 부분의 어구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그 때,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이번에도 선임병들에게 크게 질타를 받았다. 내가 능력이 부족하고, 내가 바보 같아서 그랬다. 처음에는 선임병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이제는 나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원망스럽다. 조금만 열심히 노력하면 선임병들만큼 할 줄 알았는데, 고향과 가족들을 지키고 싶었는데, 이러면 내 목숨 하나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나 어떡하지.' 라고."
"이전에 들려주었던 일기의 내용이 그러했지? 그 죽음의 기사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던 거네."
소리가 말했다. 그러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거야." 라고 화답하고서 몸도 영혼도 쇠락하면서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었겠지만, 그 신병에 대한 기억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냈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대요 : '지난 번에 소식이 들려왔다. 최근 선임병들 중 하나의 고향이 괴물들에 의해 유린당했다는 소식이다. 아마 그 가족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괴물의 먹이가 되어 사라졌겠지. 너무도 무서운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괴물들이 인간들을 잡아먹고 살을 찢어 내장과 피가 폐허 위를 흘러내린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그 놈들이 내 고향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발...... 놈들이 고향을 노리지 않았다면."
"...... 하지만 결국, 그 신병도 자신의 고향이 유린됐음을 끝내 알아차렸지?"
"맞아." 이후, 소리의 물음에 내가 조용히 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어둠에 잠긴 건물 내부, 병사들이 잠들어 있던 어느 방문을 열고 어둠 사이로 비추는 빛 너머로 한 그림자가 신병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후, 풍경은 다시 어둠 속의 부대 정문으로 바뀌었다. 정문 부근에는 이전의 것과 같은 차량 한 대가 불빛을 밝히고 있었으며, 불빛 사이로 한 무리의 군인들이 있었다. 이전에 부대장이라 칭해지던 그 젊은 군인도 있었다.
"...... 하지만 고향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던 신병의 의지는 이미 무너져 있었고, 신병은 탈출선의 선착장에 도착했지만, 탈출선에 타지 않았지. 그리고 절망의 분노 속에서 부대 인근의 산야를 오가게 되었다고 했어."
"카리나 씨가 간혹 산길을 뛰어다니는 꿈을 꾼 적이 있다고 했지?"
"응." 이후, 소리의 물음에 내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 기억이 잔재처럼 남아서 꿈으로 구현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 이후, 부대의 풍경이 지워지고, 그것을 대신해 어느 황무지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황무지가 그려진 이후, 황무지를 뛰어다니는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병사들 너머로 한 무리의 검은 그림자들이 보이고 있었다. 병사들보다 훨씬 큰 사람의 형상들이, 병사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형상들이 병사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으며, 하늘 위로 병사 크기만한 비행체들이 마치 그들과 그들 너머의 것들을 덮치려 하는 듯이 날아들고 있었다.
결코 낯선 모습들이 아니었던 것이 그들은 다름 아닌 이전부터 내가 숱하게 격추시키고, 격파해 갔던 기계 병기들, 인간형 병기들과 전투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인간형 병기들과 전투기, 전차들을 맞서는 병사들 사이로 그들을 지휘하는 군인이 있었다, 부대장으로 신병을 탈출시키려 했던 그 젊은 군인이었다. 그 주변으로는 한 명의 병사가 소총에 검을 장착한 채 뛰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신병과 친했던, 입대하기 전, 가족들을 모두 잃었던 그 병사였다.
지휘관을 비롯한 병사들은 다른 말 없이, 자신들을 향해 밀려오는 거대한 절망의 무리와 맞서 싸우려 하였다. 각자의 총포에서 광탄들을 발사하고 후방의 화력 지원대에서 포탄들이 발사되어 병기들을 향해 날아들어 폭발하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전력은 기계 병기들이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붉은 광탄, 광선 그리고 검은 미사일 무리에 비하면 화력부터 턱 없이 부족했다. 젊은 군인의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광선, 광탄에 의해 쓰러지거나, 붉은 열기의 폭발 속에서 사라져 갔다. 빛 기둥에 몸체의 일부 혹은 전체가 소멸당하는 병사들도 곳곳에 보였다.
살아남은 병사들의 수를 세어보라 젊은 군인이 외쳤다고 한다. 들린 목소리에 의하면 대략 수십 여 정도만 남은 것 같았다. 원래 있던 병력의 1/10 가량으로 그렇지 않아도 병사들의 수는 수백 정도에 불과했는데, 전투 중에 수십 명씩 계속 죽어갔을 테니, 어느 정도 전투가 진행됐을 무렵에는 그 정도만 남아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개전 이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지,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휘관인 젊은 군인 곁에는 일병이라 칭해진 병사 하나만 있는 것 같았다. 그 병사는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탓인지, 상급자, 하급자, 상관들을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었다. 하지만 젊은 군인과 그 병사의 치열한 전의에도 불구하고 전력은 한계가 명확했고, 이들의 최후는 정해진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한 명의 병사가 젊은 병사의 곁으로 달려왔다. 왼팔의 상태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았으나, 그럼에도 오른팔에 무기 하나를 들며 싸울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부대장 역시 부상병이 일부러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온 모습을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그 병사를 지켜본 심정이 어떠하였는지는 표정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눈앞으로 포탄과 광선이 닥쳐오는 마당에 감정 표현을 할 여유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후는 아니었을 것이다, 급격히 줄어가는 병사들 수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병사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던 젊은 군인은 그 시점에서는 홀로 싸우고 있었다. 명령을 내리는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총포로 포탄과 노란 광탄들을 발사하며 자신에게 닥쳐오는 붉은 눈의 괴물들-기계 병기들-을 격파해 가고 있었다. 전진 목표는 이미 상실했다. 사실 목표 자체가 불명확해서 사실상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젊은 군인은 그저 싸우기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주변은 마치 그가 거대한 무언가라도 된 듯한 기계 병기들의 폭격에 의해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기계 병기들은 마치 그가 서 있는 일대를 마치 갈아엎으려 하는 듯이 폭격을 가하고 있었고, 젊은 군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듯해 보였다.
이후, 전장의 광경들이 사라지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하나의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젊은 군인이 기계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는 검은 갑주 형상의 병기들이 총포를 두 손으로 든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그 뒤로 전차, 거대 인간형 병기들, 이동식 포대들이 서 있었다.
젊은 군인은 이미 두 팔을 다 잃은 상태였으며, 오른 다리 역시 절단당해 있었다. 왼 다리 하나에 의지해 겨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면서 병기들을 노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두 눈은 그의 바로 위에 떠 있던 함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후, 함선의 함수에 자리잡은 빛이 붉게 깜박이더니,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Comme tu le sais, tes hommes ont déjà été anéantis. La majorité d'entre eux fera partie de nous. Ce monde n'appartient plus à l'humanité, ta mission n'a plus de sens à présent. (너도 알고 있다시피, 너희 부하들은 이미 전멸했다. 대다수는 우리의 일부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 세계는 더 이상 인류의 것이 아니다, 너희 사명은 이제 의미가 없다)
기계에게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부대장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는지, 아니면 알아들을 수 있어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Néanmoins, ton courage et ta volonté sont louables. C'est pourquoi Je voudrais confier une mission spéciale à toi, qui t'attaches aux missions de toi-même. (그대의 무용, 그대의 의기는 그럼에도 칭찬할만하다. 그리하여 사명에 매달리는 것을 사명인 그대에게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고자 한다)
사명에 매달리는 것이 사명, 어떻게 보더라도 비꼬는 말임은 틀림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기계는 그를 쓸모 있는 존재로 여기고, 그를 다른 인간들과 다른 용도로 써먹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 기계에게 남자는 조용히 읊조렸다.
부대장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 이후로 눈에 보이던 그림 같은 광경들이 전부 지워지듯이 사라지고, 눈앞에는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소리가 나의 바로 앞에 서서 눈앞의 풍경을 향한 채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기계 녀석들, 그리고 그 수장은 그 젊은 군인의 의기와 용기를 높게 사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자신들에게 굴복한 다른 인간들에게도 주지 않았던 또 다른 '사명' 을 그에게 부여하려 했지. 자기들 딴에는 '아주 특별한 사명' 으로 여기었던 모양이야."
소리는 '아주 특별한 사명' 에 유난히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불량한 느낌까지 전해주고 있어서 실제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님을 강조하려 하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리는 기계 무리의 입장에서 그 대우가 정말 좋은 대우인 것은 맞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은 이들, 자신에게 굴복을 선택한 이들마저도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지. 너도 이미 여러 차례 들어서 알 거야, 기계 무리가 자신들이 사로잡은 인간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서 말야."
"산 채로 몸을 베고 찌르면서 피와 영혼을 전력으로 삼으려 했었지?" 내가 묻자, 소리는 긍정의 의미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광경들이 지나가면서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갔을 텐데. 내가 빛에 감싸이기 시작한 것은 카리나가 펼친 빛의 방패가 괴물의 보라색 빛 기둥을 무리하게 막아내다가 두 빛이 서로 폭발해 사당이 있는 일대를 휩쓸어버린 그 직후였다. 소리에 의하면 나는 다른 세계로 간 것도 아니라, 여전히 사당에 있었다고 했다.
"소리, 지금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은 카리나가 펼친 방패의 빛과 괴물의 빛이 폭발한 이후잖아. 그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런 상태가 계속 지속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소리는 그런 나의 의문에 바로 답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다면 나는 사실 기절해 있고, 꿈 속에 있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소리는 그것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뭔가 느껴진 바가 있었는지 다시 나의 앞쪽으로 돌아서더니, 나에게 이렇게 묻는 목소리를 내었다.
"뭐 느껴지는 것 없어?"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간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었기에 영혼의 감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소리에게는 뭔가 느껴진 것이 있기는 했었던 모양으로 계속 내가 위치한 그 너머를 응시하며 뭔가를 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뭐가 느껴지는데?" 내가 묻자, 소리가 그런 나에게 되물었다.
"방금 전의 광경에서 젊은 군인을 바라보며, 기계가 '특별한 사명의 부여' 를 그에게 행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 기억나지?"
그 무렵, 나의 눈앞으로 무언가 다른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두색 빛 같은 것이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점차 그 빛이 선명해지더니, 어느새 그 깜박임이 나의 눈앞에 보일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소리는 그 이전에도 그 존재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영혼일 것이라 자신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랬었지." 이후, 나는 소리의 물음에 기억난다는 의미의 답을 하였다. 방금 전에 보았던 것인데, 그것을 금방 잊어버리면 그것도 그것 나름 곤란하겠지. 그렇게 소리에게 답을 하면서, 아니, 그 전에 이미 젊은 군인에게 기계가 읊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한 바가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기계 괴물의 심장부에 그의 영혼이 있다는 거야?"
"그렇지. 거기까지 말해주려 했는데,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게 되었네."
그러자 소리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후, 소리는 다시 두 팔을 내리고, 초록색 빛을 발하며 깜박이는 빛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돌아서서 그 빛을 올려다 보며,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나에게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기계 병기는 그 젊은 군인의 영혼을 그의 육신에게 적출해 물질화한 후에 기계 장치 안에 봉입했어. 그리하여 그 기계 장치에 봉입된 채로, 그의 영혼은 당시에 괴물이라 칭해졌던 기계 병기군을 이끌었던 기욤에 의해 그가 개발한 거대 병기의 심장부에 이식되었을 거야, 그가 학살한 수없이 많은 이들의 영혼과 함께 말야."
"수현 파크에 의해 되살아난 기욤에 의해 개발, 제작된 병기에는 그가 학살한 사람들의 영혼들이 있다, 네가 해 준 이야기였잖아," 이후, 내가 물었고, 그 물음에 소리는 그러하다고 바로 화답한 이후에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의 영혼들이 기계 괴물 안에 갇혀버린 것은 아니야. 일부 의지가 강했던 인간들의 영혼은 괴물의 몸 속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어. 그렇게 기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인류의 세상이 멸망하면서 인류의 질서는 붕괴되었어, 인류의 구상에 의해 현실화된 모든 세계들도 붕괴를 피할 수 없었지. 사후 세계부터 신까지 모든 존재들이 소멸되어 버린 거야. 그리하여, 몸이 죽어버린 그들의 영혼은 다른 세상에서 안식할 수 없게 된 거야."
"그들이 바로 '죽음의 기사' 라 칭해진 이들인 거지?" 그리고서, 내가 건네는 물음에 소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죽음의 기사들에 대해서는 그간 듣고 배운 것이 많을 것 같아서 굳이 거론하거나 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카리나 씨가 이전에 자신이 어렸을 적에 죽음의 기사를 만났다고 했었지?"
이후, 소리의 물음에 나는 "그것도 그랬지." 라고 답했고, 그러자 소리는 내게 카리나가 그 죽음의 기사에 대해 언급할 때, 자신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어느 신병의 일지를 보았다면서 그 내용을 알려준 적이 있었을 것이라 말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죽음의 기사가 원래 누구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어?"
이전에 젊은 군인이 부대장으로 있던 부대에 있던 신병 그리고 신병이었던 젊은 병사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젊은 병사는 신병이 늘 가까이하던 사람이었으며, 신병이 부대를 떠나고, 부대의 병사들이 결전을 치를 때에도 부대장의 곁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비록 기계 군단에 의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였던 이였다.
"알 것 같아." 내가 답했다. 이미 카리나의 회고를 통해 그 죽음의 기사가 사실은 전생에는 어느 부대의 병사였을 것이란 짐작은 이미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어린 카리나와 만나면서 그의 모습에서 과거의 신병을 떠올리며, 그 신병의 환생일 것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는데, 소리 역시 비슷한 추측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소리는 카리나가 그 신병의 환생일 거라 믿는 거야?"
하지만 소리는 그 물음에는 확신에 찬 답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대답을 하기는 했었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어, 그 죽음의 기사 뿐만이 아니라, 저 괴물의 몸 속에 갇힌 그 젊은 군인의 영혼 역시 네 앞에 있는 카리나 씨를 신병의 환생일 것이라 믿고 있을 거야, 카리나가 정말 신병의 환생인지 여부는 상관 없이."
그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자기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보라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이제 말해 줄 수 있게 됐네." 라고 하더니, 나에게 나와 자기 주변을 감싸는 빛의 실체라든가, 카리나의 행방 등이 궁금하지 않았느냐고 묻고서, 그것에 대해 알려주겠음을 밝혔다.
"카리나 씨는 저 앞에 있어." 우선 소리는 카리나의 행방부터 언급하였다. 그러더니, 뒤쪽에 있던 다른 이들, 내가 피신시킨 이들 역시 모두 무사할 것임을 언급했다. 그리고, 카리나에 대해, 크게 당황하고 있을 것으로, 자신이 낼 수 있는 정도, 그 이상의 현상이 자신의 방패 앞에서 일어났음이 그 이유라 말하기도 했다.
"지금 여기를 감싸는 빛은 카리나 씨의 방패에서 생성됐지만, 카리나 씨의 힘에 의해 생성된 것이 아니야. 다른 외부 요인에 의해 빛이 생성되어, 괴물의 생성한 빛을 완전히 막아버렸어, 그러니까, 우리는 폭발이 아니라, 거대한 보호막 내부에 있는 셈이지."
그러더니, 소리는 나에게 다시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방금 전까지 연로한 군인과 대립하던 젊은 군인, 그리고 그가 지휘관으로 있던 부대 내부와 부대원들의 모습, 그리고 부대의 신병을 보여준 적이 있었지? 그 모든 이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어."
그리고, 이전에 비해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마치 소르나의 그것을 연상케하는 목소리로- 거대한 빛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너머에 있는 젊은 군인의 영혼을 비롯해 그와 함께 했던 이들, 그리고 기계 무리에 의해 희생된 영혼들이 카리나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는 거야, 방패의 빛에 자신들의 힘을 실어주고, 그것이 마치 거대한 빛의 보호막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낸 것이지."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하미시 인근의 고대 유적지에 도사리고 있던 기계 병기를 속박했던 영혼들, 세나가 소환했던 영혼들이 빛의 형상을 이루어 기계 병기의 핵인 검은 형상을 궤뚫어 하나의 거대한 빛을 형성했고, 그로 인해 검은 형상은 움직이지 못한 채, 경비대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었었다.
당시의 현상에 대해서는 그 때와 여러모로 비슷한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괴물의 몸에 속박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들은 자신들의 힘을 카리나에게 어떻게든 보낼 수 있었고, 그것이 카리나를 비롯한 일행을 보호하는 절대 방패가 되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카리나가 방패를 소환할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내가 묻자, 소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바로 답했다. 영혼 자체는 괴물의 몸에 속박되었고, 괴물의 의사가 몸의 주도권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겠지만, 어떻게든 자신은 물론, 동료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의지까지 밖으로 보내서 그 사념이 카리나의 힘이 되도록 하고 있을 것이라 하였다.
"부대장을 비롯한 동료들이 카리나를 신병의 환생이라 믿으니까, 가능했던 일일 거야."
이후, 나는 초록색 빛이 있는 곳을 쫓으며, 카리나가 있는 곳을 찾아가려 하였으나, 막상 소리는 그런 나를 따라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미안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 사실, 나는 지금 너와 아주 먼 곳에 있어서 그래, 그 먼 곳에서 너와 함께 싸우는 이들을 돕고 있어. 그러다가 이렇게 나와 닮은 모습을 한 형상을 보내, 그것에 내 의지를 보내서 너와 함께 있으려 한 거야."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이제 자신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리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이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당장은 안 되겠지만, 언젠가 또 만나."
이후, 빛이 눈앞으로 다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퍼져나가지 못한 만큼 퍼지려 하였던 모양인지, 그 퍼지는 속도가 이전에 비해 격렬할 정도로 빨랐다.
빛이 걷혔을 때, 눈앞으로 나의 바로 앞에 카리나가 왼팔에 펼친 방패를 전방에 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그런 카리나에게 내가 물음을 건넸다.
동시에 카리나가 방패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카리나는 이전 때와 비슷한 자세로 빛의 방패를 소환한 채, 서 있었다. 하지만 방패가 자리잡은 광경 자체는 이전에 보았던 것과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곡면체가 카리나의 방패를 덮고 그 너머로 뻗어서 소리가 언급한 바대로, 마치 거대한 보호막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카리나가 방패 소환을 해제하자마자 거대한 보호막을 이루던 빛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눈앞으로 괴물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괴물체는 이미 인간의 형상을 잃은 지 오래였으며, 그 빛을 생성하느라, 몸체를 구성하는 부분을 소모해 버렸는지, 몸을 구성하는 유체는 목과 어깨의 일부만 남아, 마치 꽃 비스무리한 괴물의 형상처럼 변했다. 유체의 두께도 얇아졌는지, 어깨, 흉부 내부의 기계 골조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카리나는 무사했다, 상처는 물론, 생채기 하나 없었다. 카리나와 내가 그랬으니, 뒤쪽에 있던 이들, 세니아, 아잘리, 세나, 나에티아나 등 역시 무사했을 것이다. 한편, 잔느 공주를 품고 있던 구체는 괴물의 우측 부근에 떠 있으면서 괴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런 잔느 공주의 곁에 프라에미엘이 머무르며, 빛을 구체 주변에 흩뿌리고 있었다, 그 빛으로 잔느 공주를 지켜주려 했었던 것 같다.
"아르사나, 무사했구나." 카리나가 뒤쪽에 있는 나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괴물 쪽으로 시선을 향하며 말을 이어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방금 전의 거대한 빛이 생성되어 있었어. 그 빛이 내가 생성한 방패를 덮으면서, 거대한 보호막을 이루어 괴물이 분출하는 빛을 막아냈던 모양이야.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방금 전의 그건 내 힘의 영역 밖에 있는 거야, 나도 그 전까지는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어."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너도 잘 모른다는 거지?" 내가 물었다.
"어, 나도 잘 모르는 일이야." 카리나가 답했다.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한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나에게 그것에 대한 추측이라도 알려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에 내가 그간 소리에게 들은 바를 그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해 주었다.
"그 죽음의 기사 있지? 그 동료들의 혼들이 저 몸 안에 갇혀 있나 봐, 그 영혼들이 너에게 힘을 보태주려 하고 있는 것 같아."
"하미시 고대 유적에서 세나의 부름에 영혼들이 응한 것처럼?"
카리나가 하미시 고대 유적에서 세나가 소환한 영혼들을 거론하니, 혹시나 싶어 그 현상에 대해 그리 설명하려 했다가, 설명의 필요가 없어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거지." 라고 화답한 이후에 이렇게 부연을 했다.
"이번에는 그 영혼들의 힘이 빛의 방패가 되어 괴물이 뿜어내는 어둠의 힘을 모두 막아내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방금 전의 빛이 모든 것을 파괴시켜 버릴 법한 그 빛을 완전히 막아낼 수 있었던 만큼, 그 힘이 너에게 닿는 한, 저 괴물 녀석이 불러오는 그 어떤 것도 카리나, 너의 방패를 결코 뚫을 수 없다, 라는 것이지."
"그래?" 이후, 카리나는 그 현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잠시 말 없이 서 있다가, 잠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 아무튼, 지금 이후로 이런 일이 또 생길까?"
"또 생길 수도 있겠지, 영혼들의 의지가 너에게 계속 전달될 수 있다면." 내가 답했다.
그러자, 문득 궁금해졌는지, 카리나가 이전에 사라지게 했던 방패를 다시 소환했다. 카리나가 그 때 불러온 빛의 방패는 여느 때의 방패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막상 그 이전의 주변 일대를 뒤덮을 정도의 크기와 모든 것을 막아낼 수 있을 만한 힘, 그리고 그 힘을 반영한 듯한 격렬했던 빛 모두를 재현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 역시 이전의 추측이 틀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실제로는 그 순간만큼만 힘이 보태진 것이었던가......?'
추측의 엇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그 현상에 대해 명확히 알거나 하지 못하고 있었고, 방금 전에 카리나에게 했던 말도 추측에 불과했다, 현상만 지켜보면서 그 실상이 어떠한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카린! 방금 전의 그 방패는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원리로 그렇게 된 거였어?"
"잘 모르겠어. 아르사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아."
그 때, 세니아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카리나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물었고, 카리나는 (당연하게도) 자신은 잘 모르는 일이고, 나 역시 정확히 알거나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세니아에게 화답했었다.
이후, 세니아가 카리나의 좌측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방패를 다시 소환한 그의 모습을 보더니, 그 우측 뒤쪽에 서 있던 나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나 역시 이전의 현상에 대해 명확히 설명을 하거나 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단서는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방금 전에 카리나가 아주 큰 방패를 소환했었잖아, 어떻게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해?"
카리나에게는 이전에 말해준 바 있었다, 하지만 카리나의 곁에서는 큰 소리로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그래서 뒤쪽에 있던 세니아 등에게는 잘 들리지는 않았던 모양. 그런 것도 있고, 나름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도 해서, 세니아에게 방패에 관해 알려주기로 했고, 그러면서 나에티아나, 세나도 불러오기로 했다. 그러면서 세니아가 서 있던 그 뒤쪽으로 돌아서려 할 때, 그런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세니아가 나에게 "애들 다 불러올게." 라고 말하더니, 뒤쪽으로 돌아서서 세나, 나에티아나 등을 부르려 하였다.
"세나, 내티, 이리 와 봐." 그러자 부름에 세나 그리고 나에티아나가 응해서 세니아가 있는 쪽으로 오려 하였고, 그런 움직임을 보고 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아잘리 역시 그들을 따라 나 그리고 카리나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려 하였다.
"무슨 일인 거예요?" 급히 자신의 곁으로 온 세나가 그에게 묻자, 세니아가 카리나의 방패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방패가 갑자기 큰 힘을 발휘한 것에 대해 내게 뭔가 짐작한 것이 있는 것 같다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써 알리려 하였다.
"아르사나의 추측이 반드시 정확하지는 않아도, 아주 틀린 것은 많이 없고, 그래서 세나, 내티도 알았으면 좋겠다, 싶었어, 그래서 일부러 불러 온 거야."
그리고서 세니아는 나에게 이제 말해 보라 청했고, 그 이후, 나에게 말해 보라하였다.
"그러니까 말야......."
"...... 하지만 방금 전에는 그 힘이 발휘되지 않았어. 그래서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카리나가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그 힘이 다시 발휘되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
"그래?" 이후, 나는 세니아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카리나가 만났던 '죽음의 기사' 는 아무래도 인류 시대 말기에 기계 무리로부터 인간들을 지키던 병사들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아, 한 명의 젊은 군인을 중심으로 집결한 병사들이 마지막 결전에 나섰지만, 결국 결전에 나선 이들은 모두 죽고 말았어, 카리나가 어린 시절에 만났다는 '죽음의 기사' 는 그 중에서 괴물의 몸에 먹히지 않은 병사의 영혼이었던 거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병사들을 이끌었던 젊은 군인의 혼이 있어서 그 혼이 사람들의 혼을 이끌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잠시 후,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괴물의 힘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카리나의 방패에 힘이 더해진 것은 괴물이 한창 힘을 발휘할 때였으니까, 그것보다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거야. 카리나가 어떻게든 괴물의 힘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깨달은 것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그렇다면, 카리나를 자신의 동료였던 이로-"
그 무렵, 그간 침묵하고 있던 괴물의 몸체가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내부 골격이 노출되면서 노출된 검은 골격 사이에 자리잡은 불빛이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그 몸체가 깨어남을 알리고 있었다.
Ißîrlsu âpnîn yirida, nä modîn gâsrl gërëßâ, zcâ tdawi yinganîn mararlgât âpgo, hängsâng, ani täyangmazcâ pokpascikirlsu ittan marida! Gi muâtdo magîlsu âpnîn himiâtnînde, zcârân ingantdawiga âtâke.......! Zcâdrîn burlsasciniran maringa!
음산한 기계음과 함께 흉부 상단의 장치에 한 쌍의 불빛이 빛나기 시작하니, 골격의 다른 불빛에 비해 강하게 번뜩이는 데다가, 마치 눈의 형상을 이루고 있어서 그것이 눈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계음은 명백히 경악에 찬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정도면 나약한 인간들 따위는 가볍게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소멸은 커녕, 사당에 있던 어떤 이들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그런 심정을 표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뭔가 생각할 수 있었는지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Gîrä, bunmyâng nyâsâkdîrlzcung hanaga bohomagîrl pyârlcigo ißâtta. Gîrânde, gî bohomagi zcârân himîrl nändago!? Gîgâsi gî zcângdo'y himîrl nänîn'gâsi ißîrlsu yitîn yiringa?
이후, 골격의 불빛 쪽에서 붉은 광선들이 발사되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을 포착한 카리나가 왼팔을 들어 왼팔에 빛의 방패를 펼쳤다. 이윽고 붉은 광선은 카리나가 펼친 방패에 막히면서 붉은 빛이 하얀 빛의 장막 근처에서 흩어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공격이 막혔음을 확인한 이후, 괴물은 흐트러져 있던 유체는 물론, 상공에서 기운 같은 것까지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 나름 유의미했는지, 골격이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벗겨진 유체가 어느 정도 형태를 되찾아 머리와 양 팔 그리고 꼬리가 십자 형태를 이루는 거대한 유령의 형상을 이루어내게 되었다. 머리 쪽에는 핏빛을 띠는 눈이 번뜩이고 있었는데, 그 눈은 하나라서 인간의 느낌을 전혀 주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름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Gî tdänîn wunzcoke musaharlsu ißâtgecciman, gîran hängwuni dubân dasci cazcaol ganînsângîn âpda, izce nâhidrîn kgîcida!
기계의 분노한 목소리와 함께 괴물의 흉부가 마치 괴물의 입처럼 열리더니, 이윽고 입 안쪽에서 보라색을 띠는 거대한 광탄들이 분출되어 카리나가 펼치는 빛의 방패를 향했다. 아예 그 방패를 노려서 방패를 파괴해 버릴 의도로 행한 공격인 것 같았다.
첫 공격이 카리나의 방패를 강타하면서 그 충격으로 카리나가 뒤쪽으로 약간 밀려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르사나, 그 때의 그 방패가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아!"
세니아가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카리나가 방패를 펼치려 하는 순간, 이전에 보았던 그 거대한 방패가 그의 방패 앞에서 다시 펼쳐지는 모습이 눈앞에 보였던 것이었다. 이전 때만큼 격렬한 새하얀 빛을 발하며 거대한 빛의 장막과도 같은 방패가 카리나의 방패를 부수려 하였던 광탄을 맞이하니, 새하얀 빛에 닿는 어둠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광탄은 앞쪽부터 점차 소멸해 가고 있었다. 이후에 괴물은 계속해서 광탄들을 토해냈으나, 그 때마다 카리나가 펼친 방패를 덮으면서 펼쳐진 거대 방패에 의해 막혀서 일행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이후, 거대한 빛의 방패는 일행의 눈앞에서 다시 사라지려 하였다.
Sârma hättaman, ibânedo gyârlguk.......!
괴물 쪽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이후에 기계적인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괴물 쪽에서 울리니, 그 때에는 이전보다 더욱 격앙된 감정을 표현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Bunmyâng nanîn zcâdrîrl zcinzcîge igâßëya hätta! Gîrânde yige âtâke? Unmyângirago? Däce nuga yirân unmyângîl mandrâttan marinya?
이후, 괴물의 등에서 보라색 광선들이 곡선을 그리며 카리나의 방패 좌, 우측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방패 뒤쪽을 우회해 공격하려 하였던 것 같았다. 10 여 줄기의 광선들이 나와 카리나를 비롯한 세 사람, 그 뒤쪽으로 뻗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보라색 빛 줄기들은 카리나의 양 옆쪽에 이르는 순간, 거대한 빛의 방패가 다시 드러나면서 그것에 의해 가로막혔으며, 그 자리마다 보라색 불꽃이 터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에도 괴물은 계속해서 보라색 광선들을 등 부분에서 방출해 일행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그 때마다 거대한 빛의 방패에 의해 막히며 일행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에 카리나가 다시 빛의 방패를 펼쳤을 때에는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때를 기점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추측했던 바대로, 괴물의 몸 속에 갇힌 영혼들, 괴물에게 육신이 먹힌 이후에 몸 속에 갇힌 혼들의 의지가 계속해서 카리나에게 힘을 전해주고 있다는 것, 수없이 많은 혼들의 의지가 누군가에 의해 카리나에게 힘을 보태주어 그가 일으키는 방패에 절대적인 힘을 가해주고 있는 것을.
'그렇다면, 그 혼들이 힘을 보태주려 하는 것일까, 카리나가 뭘 할 때마다?' 그러면서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괴물의 광선이 하나도 닿지 않고 있어." 세니아가 나, 카리나 등을 보면서 말했다. 가장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할 카리나 역시 방패에 적당히 힘을 가한 채로 자신의 방패에서 뻗어나온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거대한 빛의 방패가 괴물의 광탄들에 이어 광선들까지 막아내는 모습을 가만히 올려다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르사나, 저 빛이 괴물의 몸에 갇힌 영혼들의 힘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 했지?"
카리나가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카리나는 괴물의 몸에서 분출되는 빛 줄기와 광탄들이 빛의 방패에 막혀 불꽃으로 산화해 가는 모습을 올려다 보며, 이렇게 다시 물었다.
"그 혼들이...... 내가 만났던 그 기사의 옛 동료들이라, 했었지?"
그 물음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러자 카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도 들어가게 하겠다고 했었지?" 그 물음에도 나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카리나는 "잊지 않고 있었네." 라고 말하더니, 이미 그렇게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새삼스럽게 부탁을 해 보겠음을 알리고서 나에게 부탁의 말을 건네었다.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면, 나도 들어갈 수 있게 해 줘, 다시 한 번 부탁할게."
"갇혀있는 혼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렇지?" 그러자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 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네가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까, '그래, 같이 가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이렇게까지 괴물 녀석한테 억울하게 죽었다는 혼들이 나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다고 하니까, 그 혼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서, 카리나는 나에게 "너 말고, 잔느 공주님께서도 들어가겠다고 하셨었지?" 라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그랬지." 라고 답했다. 그리고,
"저 괴물 녀석이 지껄이는 목소리를 잔느 공주님께서 알아들으실 수 있으신 것 같았어. 그 녀석한테 뭐라 말씀도 하시고, 그 녀석의 목소리에 화답하시기도 하셨지. 분명 혼들과 만났을 때, 많은 도움이 되실 거야."
라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한편, 괴물은 계속해서 흉부 쪽에 있는 '입' 에서 광탄들을 뿜어내고, 등에서 광선들을 발사하면서 빛의 방패를 향해 집중적으로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 때도 그러하였지만, 그 어떤 포격도 빛의 방패를 약화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Hazciman! Unmyâng gatîngasîn âpda. Gîgâkdrîn bunmyâng zcâ bicîrl zcârldäzcâgin himira miggo iggezcciman, zcârldäzcâgin himîn âpda. Hangyerîrl coworhan himîro modîngâsîrl buswozcuma.
그리고 마치 분노한 듯이 괴성을 내지르며, 괴물은 몸에서 보라색 기운을 분출하면서 등의 장치들마다 수십 여 줄기씩 빛 줄기들을 분출해 일행 쪽으로 집중시키려 하였다. 장치들마다 막대한 수의 빛 줄기들이 다발처럼 발사되었으니, 모두 다 합치면 수백 여 줄기는 되었을 것이다. 그 어떤 빛 줄기의 다발도 어지간한 보호막 정도는 그냥 궤뚫어버릴 수 있을 위력을 냈을 법했고, 이런 빛 줄기 다발이 지속 분출된다면 카리나의 방패도 무사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즈음 되면 모두 예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빛 줄기 다발조차 거대한 빛의 장막과도 같은 빛의 방패를 궤뚫지 못한 채, 방패의 표면 앞에 보라색 불길만 일으키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것이, 그가 온 힘을 다해 가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 은 아니겠지?"
"그건 입 쪽에서 나갈 거야." 세니아가 묻자, 카리나가 답했다. 그리고서, 그가 말하기를, 그 모든 공격에 방패가 무적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지만, 어느 정도까지 빛의 방패가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이어 말했다. 그러면서 불안한 심정을 드러내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앞 일에 대한 우려가 그 목소리를 통해 표출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만약의 경우에는 내가 도와줄게." 이후, 내가 다시 나서겠음을 밝히고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저 보호막이 계속 저 괴물의 힘을 막아주고 있지만, 그것에 너무 의지하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것에 의지해서 '이것만 있으면 된다!' 이러면 어쩐지 그 힘이 약해져서 네가 당해버릴 테니 말이야."
나도 예감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카리나의 눈 앞에 나타난 빛의 방패가 막대한 힘을 발휘하며, 괴물이 가하는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는데, 카리나가 그것에 의지해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 하고, 그로 인해 의지력이 약해지면 그것에 맞춰 빛의 방패가 약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그 방패는 카리나의 어떻게든 나와 아잘리를 막아내겠다는 필사의 의지에 호응한 영혼들의 힘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기 때문으로, 그런 의지를 발휘하지 않을 경우에는 영혼들의 호응력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앞으로 괴물은 더욱 거세게 발악해 올 텐데, 막상 상기된 이유로 빛의 방패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앞으로 있을 괴물의 포격을 감당하지 못할 것임은 분명했다.
"네가 방만하면 저 빛의 방패도 분명 약해질 거야, 저 방패가 어떻게 생성됐는지 잘 생각해 봐. 만약, 저 빛의 방패가 힘을 못 쓰면 내가 힘을 보태줘도 어떻게 안 될 거야."
한편, 괴물은 계속해서 빛 줄기 다발들을 내보내고 있었지만, 모두 거대한 빛의 방패에 막혀 불길로 산화하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결국 부질 없는 시도의 반복이었음을 깨달았는지, 괴물 역시 등에서의 빛 줄기 분출을 그만두었다.
Yi zcângdorodo soyõi âpdan maringa!? Hazciman!!! Zcigîm zcîhmimyân gî himîro modu anscimhago yiggecci! Bãsimi ârlmana musâwunjirîrl boyâzcuma.
그리고 잠시 후, 괴물의 흉부에 있는 '입' 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고, 그 입 안쪽에서 보라색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포격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던 것으로 최후의 발악스럽게 가하는 포격이었을 것인 만큼, 거대한 빛의 방패가 생겨난 계기가 되었던 그 포격 이상의 위력이 발휘될 것임이 분명했고, 그 위력을 막아낼 만한 방패가 필요하겠지만, 이번에는 거대한 빛의 방패가 가하는 힘으로도 막아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포격을 막아낼 필요는 있었던 것이, 막아내지 못하면 모두 다 죽을 판이었고, 막아낼 수 있다면 괴물이 온 힘을 다해 가한 포격이 무위로 돌아가는 만큼, 더 이상 괴물이 힘을 쓰지 못해, 괴물의 몸을 찢고 내부 진입을 할 기회를 노릴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빛의 방패였다. 카리나의 방패가 유의미한 힘을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카리나에게 어떻게든 막아내어 괴물이 일행을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때 만큼, 카리나가 절실하게 힘을 낼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괴물에게서 괴성이 울려 퍼지고서, 입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였다. 빛을 품은 폭풍이 카리나가 펼치는 방패 쪽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딱 봐도 대충 막아내는 정도로는 금방 돌파당할 것임이 분명했던지라 카리나는 바로 빛의 방패를 펼쳤으며, 그 앞의 거대한 빛의 방패 역시 보라색 폭풍에 반응해 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대 빛의 방패가 격렬히 빛을 발하며 보라색 빛을 잘 막아내려 하고 있었지만 금방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거대 빛의 방패를 이루던 빛이 약해지면서 보라색 빛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괴물이 뿜어내는 보라색 빛이 빛의 방패를 돌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리나 역시 그간 자신을 비롯한 일행을 지켜주었던 거대한 방패가 소멸해 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마력을 최대한으로 들여 자신의 방패에 힘을 가해 거대한 빛의 방패 못지 않게 격렬한 빛을 발하면서 가능한 괴물의 힘을 막아내려 하였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뚫릴 줄이야." 카리나가 말했다. 그 때, 내가 다시 그의 허리를 두 팔로 안으면서 마력을 그에게 보태주려 하였고, 그 덕분인지 빛의 방패가 이전보다 더욱 격렬히 빛을 발하며, 방패의 막도 이전보다 더욱 두꺼워졌다. 하지만 거대 빛의 방패가 뚫릴 정도의 위력을 괴물이 내고 있었던 만큼, 카리나의 방패로도 무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대로는 무리일 것 같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생각해 보면, 그 방패 덕에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었잖아, 그게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 무렵, 뒤에서 세니아가 말했다. 그 말 대로였다, 그 때에도 나는 사후 세계에 있거나, 다른 세계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모종의 기적으로 괴물을 불리한 상황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만, 실은 그냥 시간 끌기였을 뿐이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을 정도였다.
"저기 저 괴물 안의 영혼들에게 도와달라고 해 봐!" 내가 외쳤다.
"그들만 믿은 게 잘못이야,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어." 카리나가 화답했다. 나도 실은, 그들에게 기원이 닿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냥 한 번 해 본 말에 불과했다. 그 이후, 카리나는 기합 소리를 내다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내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저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들에게 내가 만났던 이들에 대해 알리고 싶었는데.......!!!"
"그들을 구해주고 싶기도 했었지?" 이후, 내가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는 "그랬어......!" 라고 답했다. 그 때, 세니아가 카리나의 우측으로 다가가 카리나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에게 마력을 보태주려 한 것이었다.
"여기서 죽게 된다면, 나도 함께 할게, 기왕 그렇게 됐으니, 저 세상 가는 것도 같이 가자고."
이후, 아잘리가 나의 왼팔에 자신의 오른팔을 거는 모습을 보였으니, 자신도 어떻게든 힘을 가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후, 프라에미엘이 카리나의 바로 위쪽으로 날아와서는 그의 방패에 빛을 가했고, 세나가 갑주 형태의 소환수를 소환, 소환수를 카리나의 좌측 곁으로 보내, 카리나와 함께 왼팔의 방패로 보랏빛 폭풍을 막아내도록 하고 있었다. 두 방패에서 발하는 빛이 서로 모이면서 카리나의 방패에서 발하는 빛보다 훨씬 거대한 빛이 보랏빛 폭풍을 막아내려 하면서 괴물의 기운에 의해 밀어붙여지기 직전에 이르렀던 방패의 빛이 조금이나마 괴물의 기운을 밀어내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대로 끝날지는 몰라도, 제가 가능한 도움을 드려 볼게요!" 그 무렵에 세나가 외치는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 무렵, 괴물은 다시 한 번 격렬히 울부 짖었고, 그 시점에서 이전보다 더욱 강한 폭풍이 일행 쪽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하니, 두 존재가 가하는 빛의 힘이 점차 괴물의 기운에 밀리기 시작했다. 두 빛의 힘이 모이면서 간신히 맞춰진 힘의 균형이 다시 괴물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티! 너는 일단 물러서 있어, 그리고 엘베 족 분들이 근처에 계실 테니까, 만약 우리가 밀리면, 그 쪽으로 가, 알았지?"
이후, 뒤쪽에서 활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티아나에게 카리나가 외쳤다. 괴물의 발악을 이겨낼 가능성이 점차 없어지고 있었던 만큼, 괴물의 발악을 막는 데에 아직 동참하지 않은 나에티아나를 마지막 생존자로서 남기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서 그는 나에티아나에게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잔느 공주님께서 무사하시다면 그 분을 모시고 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잔느 공주님께서는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 영혼들을 만나셔야 해, 알았지!?"
나에티아나에게 잔느 공주를 맡기겠다는 말이었다. 잔느 공주는 괴물의 몸 속에서 영혼들과의 대화를 책임져야 할 이였던 만큼, 어떻게든 살아서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에는 그를 데려가지 못해도, 상황 종료 이후에 그를 찾을 수 있으면 찾아서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에티아나에게 뒷 일을 맡기면서 일행은 가능한 힘을 가해, 괴물의 발악을 막아내려 하였다. 이미 거대한 빛의 방패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일행의 힘으로 괴물의 힘을 막아내야 했었는데, 나에티아나를 제외한 모두가 나서고 있음에도 일행 쪽이 밀리고 있었던 만큼, 최후를 맞을 각오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괴물의 힘에 점차 일행의 빛이 밀려나려 하는 그 순간, 굉음 속에서 뭔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괴물이 있는 쪽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원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고, 그나마도 괴물과 빛의 방패에서 뿜어나오는 소리에 가려 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탓에 그 목소리의 실체를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대략 알 수는 있어 보였다, 잔느 공주의 목소리였다.
잔느 공주의 목소리는 이후로 한 동안 계속 울려 퍼졌다. 뭔가에 대한 기도를 하는 듯한 목소리, 뭔가를 향해 자신의 비원을 전하는 듯한 그 목소리는 빛의 방패가 괴물의 보라색 기운에 거의 뚫리기 직전에 이를 때까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더 들리지 않게 되고, 빛의 방패가 거의 뚫려갈 즈음, 보라색 폭풍 속에서 잔느 공주를 감싸고 있었을 빛의 구체가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잔느 공주님!?'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속으로 외칠 즈음, 상황은 다시 급변하기 시작했다.
잔느 공주의 구체가 위치한 그 중심으로 다시금 새하얀 빛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그 빛이 다시금 거대한 빛의 장막을 이루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구형 방패의 형상을 이루면서 장막은 급속도로 주변 일대로 확산되어 사당의 먼 곳까지 확산되어갔다. 빛이 퍼져나가는 것과 함께 잔느 공주의 구체가 위치한 일대를 중심으로 폭풍이 격렬히 분출되어갔다, 마치 그 주변 일대의 모든 어둠을 휩쓸어 사당 바깥으로 날려버리려 하는 듯이.
폭풍은 일행이 있는 쪽으로도 휘몰아쳤고, 그로 인해 일행은 어떻게든 폭풍을 막으려 했다. 그 때, 카리나가 방패를 크게 펼치고,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면서 "모두, 내 뒤로 와!!!" 라고 외쳤고, 이후, 나를 시작해서 일행이 빛의 방패 뒤로 모이자마자, 카리나는 다시 정면을 향하면서 방패의 빛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 직경이 사당 직경의 반에 이를 정도로 컸던지라, 그렇게 큰 방패를 형성하며, 카리나가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나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으며, 내가 가진 힘이 이후에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랬다지만, 그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행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과도한 마력 소모가 진정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었다.
"뭐지, 저것은?"
그렇게 폭풍이 휘몰아치는 도중에 빛 속에서 무언가 그려지는 듯한 모습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처음 보였던 것은 바닥에 주저앉은 젊은 군인이었다. 그리고 그 군인을 둘러싸는 기계 무리의 모습이 이어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의 빛 속에서 본 광경들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으나, 이들에게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여러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학교로 보이는 어떤 건물이 있는 곳을 향하는 모습, 어떤 공원 같은 곳에 나란히 앉은 젊은 남녀의 모습, 밤 중에 어느 강가에 나란히 선 남녀의 모습, 해당 남녀를 비롯한 청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 가족들과 헤어지는 청년들, 이전에 보였던 젊은 여성과 헤어지는 이전과는 달라진 외견을 보이던 젊은 남성의 모습, 학교 같은 곳에서 제복 차림을 하고 서 있던 청년들, 학교에 모인 아이들의 모습, 거리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등......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보인 것들은 이러하였다 : 첫 번째는 빛 속에서 함께 있는 젊은 남녀의 모습, 여성이 어딘가에 앉아있는 그 뒤에 남성이 서 있는 모습으로 두 사람 모두 웃고 있었다. 이전에도 보였던 남녀들의 모습과도 같았으며, 그들 중에서 남성은, 아니 여성도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남성은 소리와 함께 있었을 때 보았던 젊은 군인의 모습과 닮았으며, 여성은 사당에 처음 이르렀을 때에 목격하였던 괴물이 인간으로 위장한 모습과 닮았으며, 이후에 보인 괴물의 인간형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연인이었을 텐데......' 첫 번째의 젊은 남녀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보더라도 연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중 남성은 젊은 군인이었을 텐데, 아무래도 모종의 이유로 청년이 군인이 되면서 연인과 헤어진 이래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후, 정말 마지막으로 보였던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이전에도 보였던 그 젊은 여성이었다. 아름다운 인상을 가진 여성이 빛 속에서 활짝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나의 눈앞에 바로 보이고 있었다.
빛 속에서 보였던 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가르쳐 줄 수 있는 이가 있거나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보였던 것들이 전하려 한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젊은 군인의 기억이었구나.'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며, 다시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저 여인은 그 군인이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일 것이고.'
이후, 빛이 사라지면서 폭풍도 멎었고, 더 이상 빛의 방패에 무엇도 반응하지 않았기에 카리나 역시 빛의 방패 소환을 해제하였다. 빛이 사라지며 무엇이 보였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이러하였다 : 사당의 중앙에 있던 괴물의 형체는 유체의 형상을 간신히 유지한 채로 사당의 북쪽 건너편까지 밀려나 있었으며, 사당의 중앙 일대에 희미한 빛이 거대한 방패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방패는 이전에 보였던 것보다 훨씬 커서 그 직경이 사당의 크기만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 방패의 우측 근방에는 잔느 공주를 감싸고 있던 구체가 무지개색 빛을 발하며 자리잡고 있었다.
그 광경이 보인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패 역시 사라지고, 괴물의 형체가 더욱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유체의 형상 자체는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기는 했으나, 기계 골조가 상당히 많이 드러난 모습을 통해 힘이 많이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 빛을 분출할 때, 많은 힘을 소모한 것은 확실해 보이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 같았다. 이미 '입' 에서 빛을 분출할 때에 모든 것을 걸려 하였을 텐데, 그 필살의 일격이 실패한 것이었다.
C'est impossible. À ce rythme-là, on aurait dû les tuer, mais comment est-ce possible…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라면 저들을 사멸시켜 마땅했을 텐데, 이게 어떻게......!?)
괴물에게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치 고장 등으로 인해 고대의 말을 구사할 수 없게 되었는지, 더 이상 괴물은 정체 불명의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경악의 심정을 담은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끝이 다가왔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힘의 근원인 유체를 많이 소실한 모습을 보이던 괴물은 위협적이었던 힘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였는지, 중심에서 사당의 근처까지 밀려났음에도 중심으로 돌아올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못할 정도였으니, 파괴적인 힘을 쓰는 것 역시 가당치 못한 일이었던 것 같다.
몸의 많은 장치들을 소실하면서 고대의 언어는 사용하지 못하게 됐고 (다만, 이는 본성을 드러낸 것이라 볼 여지는 있었다), 빛 줄기들을 분출하던 장치들도 거의 파괴되어, 그나마 남은 '입' 부분을 통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입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 부분에서의 위협적인 포격이 계속 이루어졌던지라 마냥 안심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Je ne peux pas les battre comme ça !? C'est mon destin ? Impossible ! Mais il me reste encore quelque chose ! Ça ne fera que dépoussiérer ces choses faibles !
(내가 이대로 저들을 이길 수 없다고!? 그게 내 운명이라고!? 그럴리가......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남은 것이 있어! 그 정도면 저런 나약한 것들 따위는 먼지가 될 뿐이란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즈음, 괴물 쪽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목소리를 통해 괴물이 입을 통해 다시 공격해 올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전의 포격을 막아내기 위해 일행의 대다수가 달려들어 당장에 괴물을 강타할 마력은 모두 남아있지 않았지만, 아직 활약할 수 있는 이는 남아 있었다.
"내티는 이전에 나서지 않았었지?" 카리나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만약의 경우에 잔느 공주를 데리고 피신할 사람으로 지목했던 이였다. 일행의 대다수가 괴물의 포격을 막을 때에 미처 참여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만약의 경우에 그라도 피신하도록 한 바 있었다. 그로 인해 기력, 마력의 상태가 온전했던 것.
"제가 해 볼게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나에티아나는 일행이 모인 사당의 남쪽 일대를 지나쳐, 사당의 한 가운데의 상공까지 날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금색 빛을 발하는 활을 소환해 자신의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도 금색 빛을 일으켰다.
"저 포구 쪽으로 공격을 집중시키면 되겠지요?" 이후, 나에티아나가 묻자, 그의 오른편 곁으로 오면서 프라에미엘이 카리나 등을 대신해서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그러자 나에티아나는 알겠다고 답하고서, 우선 왼손을 통해 금색 빛을 흩뿌렸다. 그가 흩뿌렸던 금색 빛 무리가 두 곳에 모이더니, 모인 빛 무리들이 한 쌍의 공 크기만한 빛을 형성하였다. 그렇게 생성된 금색 광구들은 한 쌍의 금빛 날개를 형성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때를 같이하여 나에티아나가 다시 왼손에 빛을 모아서 자신의 팔 길이만한 화살을 생성했다. 우선 그 화살로 입을 쏘아맞히기부터 하려 했었던 것 같았다.
그 무렵, '입' 에서 다시 보라색 빛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것을 목격한 세니아가 나에티아나에게 빨리 쏘라고 외쳤고, 그 외침에 나에티아나가 바로 알겠다고 화답한 이후에 활이 괴물의 입 쪽을 향하도록 하고서 왼손의 화살을 먹이고 활 시위를 당겼다. 그가 두 팔에 힘을 주어 활 시위를 잡아당겼을 때, 그의 화살에 금색 빛이 모이기 시작하고, 그의 앞에 있던 구체들 역시 빛이 모이기 시작해서 후속 타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잘 할 수 있겠지?" 카리나가 묻자, 프라에미엘이 바로 답했다.
"아시잖아요, 나에티아나 언니는 뭐든 잘 맞힌다는 것. 저 정도면 그는 해낼 거예요."
화살촉으로 빛이 계속 모여서 마치 창의 날 같은 형상을 이루어내고, 괴물의 입에서도 무언가 분출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에티아나 역시 쏠 때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간 당기고 있던 활 시위를 드디어 놓았고, 활 시위를 놓자마자 활을 떠난 화살이 괴물의 입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빛이 모이면서 빛의 창처럼 변해 갔고, 그렇게 생성된 빛의 단창은 더욱 가속해서 보라색 빛이 모이려 하는 입 가까이 접근해 갔다.
화살이 발사된지 2 초 즈음 만에 빛의 창과 같은 형상으로 변해 간 화살이 입 한 가운데에 박히더니, 그간 모인 금색 빛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면서 괴물이 끌어모으던 보라색 빛과 상호 작용까지 일으키며, 하얀 빛을 퍼뜨리며 폭음을 일으켰다. 그렇게 한 번의 큰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나에티아나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각각의 손에서 금색 빛 줄기들을 발사하기 시작했으며, 그 때를 같이 해, 그의 앞에 있던 한 쌍의 구체들 역시 각각의 표면 앞쪽에서 짤막한 빛 줄기들을 연속 발사해 하나의 대열을 이루면서 괴물의 입 쪽으로 격돌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4 개의 직선 상을 이루는 빛의 대열들이 괴물의 입 쪽으로 집중되기 시작했으며, 4 개의 빛들이 모이면서 괴물이 자리잡은 그 주변 일대로 금색 빛이 퍼져 나가는 광경이 이어서 보이게 되었다. 각각의 빛이 얼마나 강했는지, 4 개의 빛들이 모인 지점을 중심으로 분출된 금색 빛 역시 격렬히 빛나면서 그로 인해 주변 일대가 어두워지기에 이르렀다.
- 여기에 그나마 여력이 남아 있었던 프라에미엘이 나에티아나에게 마력을 보태주면서 금색 빛이 더욱 강해지기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괴물의 입에 격돌하는 빛 역시 이전보다 더욱 밝아지기에 이르고 있었다.
포구 쪽으로 모이는 빛의 힘을 더 감당하지 못했는지, 결국 포구 쪽의 골격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그 균열을 금색 빛이 메우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사당의 중심 근처에 머무르고 있던 이들은 모두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빛의 분출을 멈추고서 나에티아나는 포구 쪽의 빛을 바라보며 왼손에 빛의 화살을 다시 생성하고서, 다시 오른손에 생성한 활에 화살을 먹이고, 활 시위를 당겼다. 이후, 금색 빛이 모여 이전과 같이 금색을 띠는 창의 모습처럼 변한 화살을 활 시위를 놓는 것으로 괴물의 포구에 모인 빛 쪽으로 쏘아 보내니, 금색 화살은 이후, 금색 빛을 발하는 혜성처럼 긴 꼬리를 그리며, 괴물의 포구 쪽으로 날아가, 포구에 생성된 빛의 구체, 그 한 가운데 쪽으로 파고들었다.
금색 빛의 화살이 빛의 구체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이후, 구체 안쪽에서 빛이 퍼지더니, 구체 내부에서 빛이 퍼져 나가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주변 일대에 대규모 붕괴가 일어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빛이 사당 전체로 퍼져가고, 그 빛이 잠시 동안이나마 주변 일대를 가리려 하였지만, 그 빛은 눈을 부시게 할 뿐, 어떤 피해도 가하지 않아 눈을 가리는 정도의 대응만 하면 괜찮았다.
그 이후로 빛 속에서 굉음이 다시 울려 퍼졌다. 크고 작은 굉음이 울려 퍼지며, 괴물의 몸체에서 계속 폭발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빛이 사라졌을 무렵, 괴물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사당의 건너편에 검은 괴물의 기계 골격이 그대로 노출된 모습이 드러났다. 괴물의 몸을 유지하고 있던 그나마 남은 유체마저 그 폭발에 의해 완전히 증발하면서 본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골격 위로 불길에 타올랐음을 알리는 듯한 검은 연기가 곳곳에 피어오르고 있었고, 이를 통해 폭발의 여파가 아주 컸음을 알 수 있었다.
흉부 위에 자리잡은 포구 장치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심부를 비롯한 여러 부분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애초에 목표가 된 것이 포구였을 뿐이기에,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골격이 드러나면서 복부에 위치하고 있던 거대한 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체 거대한 개체 (아마 온전한 인간형을 이룰 수 있었다면 270 메테르에 이르렀을 테니) 의 일부분이었던 만큼, 작은 부분이라고 해도 사람 기준으로는 매우 컸다.
-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대략 높이, 너비 모두 30 메테르 즈음에 이르렀던 것 같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내가 가진 힘으로 어떻게든 열어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첫 목표였던 만큼, 이를 위해 문을 열어젖히든, 찢어발기든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카리나가 방패의 소환을 해제하고, 그로 인해 이전까지 일행을 지켜주던 거대한 빛의 방패가 사라졌을 때, 내가 괴물의 몸체 쪽으로 접근하면서 말했다.
"내가 문을 열어 볼게." 그간 일행을 지키느라 기력을 많이 소모했을 카리나를 비롯한 이들과 달리, 카리나의 곁에서 마력을 보태주는 정도만 했던 나는 그 시점에서 마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것으로 여기며, 그 문을 내가 가진 능력으로 열어보겠음을 알렸다.
"아르사나, 할 수 있겠어?" 카리나가 다소 걱정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나 역시 마력, 기력을 많이 소모하긴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능력을 발휘하기에 아직 마력이 부족한 상태인 것은 아닌가, 하며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있든 말든, 내가 해 볼 거야, 안으로 들어갈 이들, 카리나, 세나 그리고 나 중에서는 내가 그나마 여력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래."
내가 답했다. 카리나, 세나는 일행을 지키느라 기력, 마력 소모가 컸고, 회복이 필요했기에, 그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려 하였던 것. 그 때, 아잘리가 나를 따르려 하면서 자신도 나서겠음을 알렸다. 생각 같아서는 가만히 있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오래 전부터 함께 했던 친구의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는 없어서 따라가게 했다.
사당의 북단에 이르고서, 건너편에 보이는 괴물의 복부을 바라보았다. 사당의 북단과 괴물의 복부는 서로 인접하지 않기에 건너뛰는 방식으로 도달해야 했겠지만, 그 거리가 예상 이상으로 멀어서 (사당 중심에서는 서로 인접한 것처럼 보였다), 건너뛰려 해도 가능한 멀리 뛰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르산, 너무 멀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의 왼편에 있던 아잘리가 걱정스러워하며 묻자, 내가 답했다.
"일단 해 봐야지." 그리고 사당의 북단에서 30 여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가-도움 닫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괴물을 바라보며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가능한 멀리 도약하기 위한 도움 닫기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사당의 북단에 이르자마자 왼발을 바닥에서 떼는 것을 시작으로 오른팔을 앞으로 향하고 왼팔을 뒤로 향하면서 몸을 괴물의 복부에 자리잡은 문 쪽으로 날렸다. 가능한 있는 힘을 다하는 것에 남은 마력까지 끌어들이며, 가속을 한 이후에 도약을 시도, 오른팔이 문에 닿도록 하려 하였다.
닿지 못할 가능성은 생각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든 문에 닿은 후에 문에 매달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오른팔을 앞으로 뻗어, 오른손이 문에 닿도록 하고 있었으며, 온 힘을 더하는 것에 더해 마력까지 끌어들였음에도 손이 문에 닿지 못할 것 같자, 오른손에 감빛의 기운을 끌어내 각각의 손끝에서 손톱을 길게 늘였다. 그 손톱이 문에 박히도록 하기 위한 일로 그런 식으로라도 문에 매달릴 수 있으면 그 뒤로는 문으로 건너뛰는 수준의 위험은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손톱을 칼날처럼 길게 뻗은 끝에 중지 그리고 검지의 날끝이 문에 닿았다. 검은 문의 표면에 닿은 어두운 색의 칼날들이 문틈 우측 부근의 표면을 뚫고 그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문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왼손의 손끝에도 칼날을 생성해 문틈 왼쪽 부근의 표면, 오른손이 박힌 그 부근의 표면에 칼날을 박아 넣으면서 온전히 문에 매달리려 하였다. 그렇게 두 손이 문에 박히자마자 나의 몸이 끌어내려져 나는 두 팔을 높이 뻗은 채로 문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오른손에 힘을 가해, 오른손이 감빛 기운에 감싸이며 빛나는 모습을 보이자마자, 오른손에 의지한 채 기합 소리를 내며, 몸을 끌어올려, 오른손이 가슴 높이에 이르도록 하고서, 감빛 기운에 감싸이고, 손끝에 칼날이 생성돼 갈고리 형상을 이루려 하는 왼손을 문틈에 걸었다. 왼팔의 힘으로 문의 오른쪽 부분을 왼쪽 방향으로 잡아당기려 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 이후, 머지 않아 오른손 역시 문틈 부근의 표면에서 빼내고서 문틈의 왼쪽 부분에 건 이후에 왼팔에 왼쪽 방향으로, 그리고 오른팔에 오른쪽 방향으로 힘을 가하려 하였다. 우선 그런 방식으로 문을 열어젖히려 하였던 것.
기합 소리를 내어 가며, 문을 열려 하였지만 원체 두께부터 보통이 아닌 물건이었던지라, 쉽게 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문을 열려 하는 동안 뒤쪽에서 아잘리가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을 열려 하지 말고, 차라리 부숴 버리라는 것, 그 쪽이 더 빠를 것이라 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문을 열어젖히는 것에 집착할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시도를 해 보다가 안 될 것 같으면 문을 부숴버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려 했었는데, 그 시점에서 아잘리가 그렇게 하라고 외친 것. 그 외침을 듣자마자 바로 힘을 주는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감빛의 기운을 대신해 하얀 빛의 기운을 두 손에 일으키려 하면서 손바닥에 빛의 구를 생성하려 하였던 것으로 문의 일부분을 손바닥에서 생성된 빛으로 파괴하려 하였던 것이다.
손에 힘이 가해지지 않는 것으로 인해 문의 표면에서 떨어질 수 있었던 만큼, 손을 대신할 것들을 내세울 필요가 생겼고, 그러면서 머리카락을 한 다발씩 꺼내, 좌측과 우측에 머리카락을 두 다발씩 내밀어 각각의 끝이 칼날의 형상을 이루도록 한 이후에 각각의 칼날들이 문의 표면에 박히도록 하였다. 문의 좌측 그리고 우측에 두 개씩 머리카락이 변화한 감빛 칼날들이 깊숙히 박히면서 그것들이 손을 대신해 내가 문에 매달리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리본에 묶였다가 빠져나온 머리카락 다발들이 변한 칼날들에 의지해 문에 매달린 채로 나는 문을 열기 위한 또 다른 시도를 행하게 되었다. 두 손바닥을 문틈 근처로 옮기고서, 손바닥마다 빛의 기운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내게 남은 마력을 빛의 기운으로 전환해 그 빛의 기운을 두 손바닥에 집중시키려 하였으니, 이를 통해 큰 폭발을 일으키려 하였던 것, 문의 장갑 두께를 생각하면 상당히 큰 폭발이 일어나야 일행이 본격적으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는 그 때, 문의 표면에 파란 실이 닿더니, 그 실을 따라 아잘리가 두 팔을 뻗으면서 문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실이 문의 표면에 닿도록 한 이후에 그 실에 의지해 내 곁으로 오려 한 것. 그렇게 내 곁에 도달하자마자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아잘리, 곧 폭발시킬 건데, 왜 내 곁으로 왔어!?"
"얼마나 크게 폭파시키려고?" 그러자 아잘리가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바로 화답했다.
"문 전체가 폭발할 수도 있어!" 이에 아잘리는 "거짓말이지?" 라 말했다가, 자신도 혹시나 싶었는지, 자리를 옮기려 하였다. 문의 표면에 매달린 채로 두 다리를 높이 들어올렸다가, 두 팔을 문의 위쪽으로 옮기고서, 발을 마력을 이용해 고정시킨 상태로 거꾸로 매달렸다. 그렇게 거꾸로 매달린 채, 그는 이후, 두 손으로 실을 생성해 문의 위쪽 표면으로 실이 뻗어나가도록 하더니, 두 발을 떼자마자, 바로 문의 위쪽에 자리잡은 실에 의지해 두 손부터 매달리는 위치를 문의 위쪽으로 옮기면서 매달리는 위치를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아잘리가 매달리는 위치를 바꾸려 하는 동안, 문 앞의 손바닥들에 모이는 빛도 어느새 커져서 축구공 크기만하게 변하니, 그 모습을 보자마자 두 손바닥을 문에 대려 하였다. 빛이 모인 구체들을 문 안으로 파고들게 하려는 것으로, 빛에 의해 문이 안쪽에서 폭발하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다.
빛은 문의 표면 안으로 바로 흡수되거나 하지 않았고, 그래서 빛의 기운을 양 구체에 더 가하는 것으로 구체의 크기를 늘리고, 그러면서 조금씩 문에서 뒤로 물러나려 하였다. 빛으로 이루어진 형체들이 점차 커져가면서 그와 더불어 손바닥 그리고 문에 눌리니, 구체에서 수직 부분이 길다란 타원체의 형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치 덩어리들을 찌부러트리려 하는 듯이 나는 두 팔을 뻗으면서 나 자신의 기운에서 유래된 빛의 형체들을 밀어붙였고, 그에 따라 빛 덩어리들은 반죽처럼 짓눌리면서 점차 그 형체가 커져가기 시작했다. 두 팔의 힘 그리고 금속판에 짓눌리면서 내부의 빛도 점차 격렬해져가기 시작, 순수한 흰색을 띠던 빛이 푸른색, 보라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빛 덩어리에 힘을 가하는 동안 금속의 마찰음이 울려 퍼져 갔다, 마치 금속 덩어리가 뭔가와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가 주변 일대로 퍼져 갔다.
- 그 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입장에서 귀가 많이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억지로 참아내야 했다. 두 손을 모두 쓰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빛 덩어리의 직경이 내 손의 3 배 즈음 되었을까, 문의 표면으로 보라색 빛을 품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금속판 내부로 빛이 스며들면서 그 과정에서 금속 표면이 갈라진 틈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빛 덩어리가 금속 표면에 흡수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빛 덩어리가 금속 표면 안으로 흡수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한 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빛 덩어리의 흡수는 점차 가속되고 있었다. 덩어리는 빠르게 금속 덩어리 안으로 파고들어 갔으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두꺼운 금속판 안쪽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금속판 표면에 빛의 원을 생성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두 빛 덩어리를 중심으로 균열이 생성되었고, 균열을 따라 빛이 스며들어 빛으로 나뭇가지 혹은 번개 모양의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두 빛 덩어리마다 하나씩 손바닥을 올리고, 손바닥에 감빛 기운을 가하기 시작했다. 빛 덩어리를 감빛 기운의 덩어리-어둠의 덩어리-로 변질시키기 위한 일로, 파괴적인 성질을 가진 빛의 기운을 문 틈에 밀어넣은 이후에 그것을 어둠의 힘을 가진 감빛 기운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일이었다. 덩어리를 구성하던 빛이 감빛 기운에 의해 밀려나면서 그 색이 변하기 시작, 잠시 후, 이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며 빛나는 어둠의 덩어리로 변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잘리는 내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짐작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실에 의지해 괴물의 오른쪽 어깨 위에 두 팔로 매달렸다가, 그 중 오른팔을 내린 것으로 탈출을 대비하려 한 것이었다. 나도 이후의 일을 떠올리며, 갈고리처럼 금속 표면에 박힌 머리카락이 변화한 칼날들을 기계의 몸에서 빼낼 준비를 하고서, 머리카락에 의지해 문과 약간의 거리를 두는 상공의 공간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감빛 기운에 의해 밀려난 빛의 기운을 다시 끌어모아 두 손에 머무르도록 하면서 두 손에 빛을 일으켰다.
빛의 기운으로 일으킬 수 있는 빛 줄기로 금속 표면을 뚫을 수는 있겠으나, 거대 병기의 갑판에 구멍을 내는 정도라 그 정도로는 병기를 격추시킬 수는 있어도, 병기를 폭파시키거나 할 수는 없다. 대형 병기가 폭발하는 것은 그 내부의 동력원에 열을 가해 폭파시켰기 때문으로, 이런 원리를 재현해 문을 폭파시키려 하였다.
문 자체에 동력원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고, 그러면서 빛의 덩어리를 구성하는 빛의 기운을 감빛 기운으로 밀어내려 한 것이었다. 빛의 기운과 감빛 기운이 서로 부딪치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면서 큰 폭발이 일어난다고 하였고, 실제로 그 사례를 본 적이 있기도 했는데, 그 사례를 응용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어둠의 힘을 품은 감빛 기운으로 가득찬 덩어리에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작은 빛 줄기 하나씩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두 팔을 다시 앞으로 향하면서 두 손으로 그간 끌어모은 기운을 두 손바닥 앞의 작은 지점 앞에 하나씩 집중시킨 이후에 두 손바닥 앞에 모인 하얀 빛에서 빛 줄기를 하나씩 금속판 안으로 파고든 감빛 기운 덩어리를 향해 쏘아 보냈다. 이후, 고속으로 발사된 빛 줄기들이 각자가 향하는 감빛 덩어리의 한 가운데 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금속 표면에 박힌 칼날들을 빼냈다. 폭발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금속 표면에서 빼내자마자 빛 줄기들이 감빛 덩어리의 가운데에 하나씩 박히더니, 그 이후에 하얀 빛과 함께 폭풍이 터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광경을 잠깐 보면서 나는 괴물의 금속 골격의 아래 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낙하하기 시작한 이래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더불어 폭발의 파동이 주변 일대로 퍼져갔다. 어찌나 폭발이 컸고, 파동이 컸는지 떨어지는 동안 그로 인해 공기가 격하게 진동하고 그로 인해 몸이 요동칠 정도였다.
낙하하면서 머리카락들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지 않았다, 그 머리카락들로 뭔가를 감거나 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잡으려 하였던 것은 기계 골격의 허벅지 즈음에 위치한 돌기 부분으로 쇠몽둥이 수준의 굵기 정도는 되었기에 잘만 감으면 거기에 매달릴 수 있어 보였다. 그러는 동안 머리 위로 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잇달아 폭발이 터지면서 그로 인해 터져나온 폭풍과 함께 빛이 퍼져나오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폭발은 내가 뭔가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폭발하는 흉부 쪽에서 떨어져, 허벅지 쪽의 돌기 부분 쪽에 매달릴 것만 기대하며, 떨어지고 있던 그 때, 위쪽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손을 잡아!!!!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보니, 정말로 아잘리의 오른손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손을 발견하자마자 달리 생각할 틈 없이 오른팔을 뒤로 뻗었다. 아잘리에게 손을 내밀기 위한 일로, 그 이후, 내 오른 손목이 뭔가에 잡히는 느낌을 받으면서, 아잘리가 손이 아니라 오른 손목을 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잘리가 나의 손목을 잡으면서 추락도 끝났다. 이후, 해수면 쪽을 향해 거꾸로 나아가던 내 몸이 뒤집혀 다시 하늘을 향하면서 아잘리에 의해 매달리게 되자마자, 나를 붙잡은 아잘리가 나의 몸을 거칠게 사당 쪽으로 움직이려 하였다.
아잘리는 파랗게 빛나는 마법의 실, 괴물의 오른쪽 어깨 부분의 골조에 고정된 그 실을 왼손으로 잡은 채로 실에 의지해 매달려 있으면서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그넺줄처럼 실을 흔들어 자기 자신과 나를 움직이고 있었으니, 건너편의 흉부에서 일어난 큰 폭발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실과 아잘리의 손에 의지한 채, 괴물의 골조 부분에서 일어난 폭발을 지켜보려 하였다. 빛은 이미 사라졌으나, 폭풍에 의해 발생한 연기가 흉부 쪽을 뒤덮고 있었다. 어찌나 연기가 크게 일어났는지 멀리서 보면 마치 구름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연기와 더불어 흉부 쪽에서 금속 파편들이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들 파편들은 어둠의 기운을 품은 탓인지 떨어지다가 검은 연기를 일으키며 타올라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넷줄처럼 흔들렸던 실은 다시 흉부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흉부의 폭발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겠으나, 연기나 파편 정도로는 실이 끊어질 리 없었고, 나와 아잘리는 괴물의 흉부 아래, 골반 쪽에 위치하게 되었던 만큼, 괴물의 골조에 도달하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르산, 어때? 내가 거기 있기를 잘 했지?"
실이 괴물의 골조에 도달하는 동안 아잘리가 내게 물었다. 그의 손에 매달린 처지라 그의 모습이 잘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보나마나, 씨익 웃으며 물었을 것이다.
"웃기지 마." 내가 답했다. 마치, '내가 있었으니까, 이렇게 큰 위험을 면할 수 있지 않았겠냐' 처럼 들렸던 질문에 '나도 나 나름의 방법이 있었고, 굳이 네 도움 따위 바란 것은 아니었어,' 라고 답하려 하였던 것. 아잘리가 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려 하는 듯이 괴물의 골조에 도달하려 하였던 것을 두고 무모한 짓거리라 여긴 바 있었는데, 그런 짓거리가 옳은 일이 되었음을 그런 말을 했던 나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나도 나 나름의 방법이 있긴 했지만, 그 방법대로 하는 게 잘 된다는 보장은 없었던 것이, 내가 떨어지는 방향이 괴물의 허벅지에서 어긋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무모하게 행동했던 친구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위험을 면했다.
그러는 동안 실은 괴물의 골조에 도달하고 있었고, 이후, 괴물의 상반신 부분에 닿게 되었다. 나와 아잘리는 예상대로, 괴물의 골반 부분에 닿았고, 금속 외벽에 부딪치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괜찮아?" 그 물음에 나는 괜찮다고 답하니, 아잘리가 놀리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뭐, 너는 많이 안 아플 거라 생각했어, 그간 여기저기서 쳐 맞은 거에 비하면 그 정도야......."
이에 나는 조용히 웃음만 지을 뿐, 달리 답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에 매달린 채로 사당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던 세나 그리고 카리나를 보려 하였다. 폭발이 워낙 거세기도 했을 것이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보니, 세나, 카리나 모두 절벽가를 향하고 있었으며, 세나는 이미 새를 소환해 준비하고 있기도 했었다.
"세나! 카리나! 흉부의 문이 뚫렸어! 빨리 이 쪽으로 와!!!"
내가 두 사람에게 그렇게 외쳤을 때, 아잘리가 실을 어깨 골조 쪽으로 끌어당겨 흉부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매달은 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흉부 근처로 도달하고 있었다. 이후, 아잘리는 실이 흉부 근처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고서, 실을 사당 쪽으로 세게 움직이려 하였다, 그 반동으로 실이 흉부 안쪽을 향해 그로 인해 실에 매달린 자신이 흉부의 폭발로 인해 생겼을 구멍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리고 잠시 후, 실은 사당 쪽을 거세게 움직인 그 반동으로 흉부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실의 일부가 흉부 쪽, 흉부의 폭발에 의해 생성되었을 구멍 쪽을 향해 빠르게 움직여 가게 되었다.
실이 흉부 쪽으로 다가갈 무렵, 연기가 걷히면서 괴물의 흉부 골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게 되었다. 폭발이 일어난 그 주변의 넓은 부분에 아주 큰 구멍이 뚫렸다. 구멍의 크기는 문 전체의 대부분에 이를 정도로, 이전에 문 전체가 폭발할 수도 있다고 거짓 장담을 했는데, 그 장담이 어느 정도는 사실로 들어맞은 셈이 되었다. 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아잘리를 매단 마법의 실이 구멍 쪽으로 가속해서 접근하고 있다 보니, 그것에 대해 잡담하거나 할 여유는 없었다.
결국 마법의 실, 그 일부분이 흉부의 상단 절단면에 걸쳐지고, 실의 그 아래 부분이 절단면 너머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실의 아래 부분에 매달린 나와 아잘리 모두 구멍 안쪽으로 날려가듯 들어서게 되었다. 일행 모두가 실에 의지한 채로 구멍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마자 나부터 우선 실을 놓았고, 이후로 아잘리가 뒤따라 실에서 손을 놓았다. 그렇게 차례로 마법의 실에서 손을 놓으면서 나부터 괴물의 기계 골조 안쪽의 차가운 금속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아잘리 역시 바닥에 떨어졌으며, 바닥에 이르는 모습은 나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서로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며, 서로를 비웃거나 하겠지만, 미지의 공간 안으로 들어선 탓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후, 나는 어두운 공간 주변을 둘러보다가 구멍 바깥 쪽을 가로막는 피막이 골조에서 생성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너머에서 환수에 올라타려 하는 세나 그리고 그 뒤에 탄 카리나를 바라보며 그들에게 바로 외쳤다.
"빨리 들어와!!!!" 그러는 동안에도 푸르스름한 피막이 절단면에서부터 계속 퍼져나가 구멍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절단면을 피막이 가로막으려 할 즈음, 두 사람을 태운 바람의 환수가 날갯짓을 시작하더니, 구멍 안쪽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나와 아잘리는 곧바로 구멍의 좌, 우측으로 물러섰다.
이후, 환수는 부리 부분에 기운을 일으킨 채로 구멍을 가로막은 피막에 격돌, 세나가 오른손에 검을 들고, 그 칼끝이 피막 쪽을 향하도록 하면서 뭐라 외치자마자 구멍을 가로막은 피막을 바로 찢어버리면서 구멍 안쪽으로 들어왔다. 구멍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환수는 돌진을 한참 더 이어가다가 일행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지점에 이르러서야 착지했고, 그 이후에 소환이 해제되었다. 바람의 환수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세나, 카리나 모두 바닥에서 착지했다.
- 환수가 착지할 무렵, 환수의 빛에 의해 그 너머의 벽 같은 것이 보였다. 마치 동굴의 내벽처럼 보인 그 벽은 환수의 바로 앞에 있었으니, 자칫 했으면 벽에 부딪칠 뻔했다.
동굴의 공간은 처음은 꽤 넓었다. 10 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세나, 카리나가 무사히 공간 내부로 진입한 것까지 확인한 이후, 나는 바로 하얀 빛의 기운을 일으켰다, 그 빛으로 시야를 밝히기 위함으로 빛의 기운을 일으키자마자 이전에 보였던 유체와 비슷한 푸르스름한 색을 띠는 내벽의 모습이 드러났다. 내벽은 색깔만 그러할 뿐, 바위처럼 보였고, 실제로 밟거나 만져 보았을 때, 돌을 밟거나 건드리는 느낌이 나서 특이한 물질이기는 해도, 바위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겠구나, 싶은 판단은 내릴 수 있었다.
이후, 일행은 처음에는 내가 일으킨 빛에 의지하다가, 이후에는 카리나가 앞장서기 시작하면서, 그가 일으킨 빛에 의지하면서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길은 두 갈래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모두 길의 폭은 같았다. 그 갈림길을 보자마자 카리나가 뭔가 떠오른 바가 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런 길목은 대개 그런 구조를 보이더라고, 한쪽 길로 들어서서 일대를 둘러보다 보면 반대편 길로 나오게 되어 있지."
그리고서 그는 대개는 오른쪽 길목을 택해 거기부터 가는 편이 좋다고 말하고서, 오른쪽 길목을 택해 그 길목을 따라 가기 시작하면서 "잘 따라 와." 라 말했고, 이에 내가 그 뒤를 따르면서 일행 모두 오른쪽 길목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길목 너머로 잠시 동안 곧은 길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로 이루어진 내벽으로 둘러싸인 곧은 길 너머로 갈림길이 하나 또 보였으니, 하나는 계속 앞으로 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왼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길의 폭은 세 사람이 나란히 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좁은 편이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좁지는 않았다.
- 빛에 의지할 수 있게 되면서 내부 벽면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푸르스름한 벽은 반 즈음 투명해서 그 내부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다만, 벽면 안에 비춰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두운 공간이나 검은 금속 내벽 정도였을 테니, 내부가 비춰지는 것에 큰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갈림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 때, 주변 일대를 둘러보던 도중, 나는 벽면에 무언가 보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벽면 안쪽에 하얀 빛 같은 것들이 깜박이는 모습을 벽면을 보는 도중에 잠깐이나마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어제부터였던가, 부대장님께서 신병들 중에 원하는 사람들은 부대 전역 후 귀가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리셨지? 그 지시에 의한 인원 수송 차량을 점검하고 있었대.
그런데, 자원하지 않은 이들도 꽤 있다면서?
그러게, 차라리 무기라도 갖출 수 있는 여기가 낫다면서 남은 녀석들이 다더라.
어찌하겠어, 부대장님께선 신병들이나마 전쟁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계시겠다만....... 어딜 가도 전쟁이고, 어딜 가도 사람이 죽어가나는 판에.......
그래도 도시는 낫지 않아? 남은 시설들도 많고. 그건 그렇고, 신병, 신병의 고향은 어때? 괜찮대?
.......
우리와 함께 있을 걸 강요하고 싶진 않아, 우리도 네가 나갔으면 좋겠어, 그네들도 우리가 딱히 원해서 그런 건 아니고, 차라리 싸우다 죽는 쪽을 택한 거니까.
부대장님께서도 너는 살아서 부대를 떠날 수 있으면 하는 눈치더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
누가 계시를 내렸느냐고 행정관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거기서도 딱히 답은 없었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