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너희들, 벽면 봤어?" 이후, 나는 앞장서 가던 카리나를 비롯한 일행을 불러서 주목하게 하였다. 그 이후, 자신이 소환한 빛을 횃불 삼아 앞장서던 카리나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며 "뭘 본 거야?" 라고 묻자, 바로 벽 내부에 숨은 빛들을 가리켰다.
"이런 것들이 숨어 있더라고." 이후, 카리나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빛들이 천천히 깜박이는 모습을 카리나 등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괴물의 몸 속에 갇힌 영혼들이 저들인가 봐."
"그래?" 그러자 카리나는 바로 벽면 쪽으로 다가가서 희미하게 깜박이는 빛들을 보려 하였다. 아마 그 이후, 카리나는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창가 등에 다가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두 손을 유리에 갖다대고는 했었으며, 그 때에도 자기 버릇대로 반 즈음 투명한 통로의 내벽으로 두 손을 내밀더니, 그 두 손을 벽면에 대고, 고개를 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습관적인 행동이었음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런 그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뭔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리나의 두 손이 갑자기 하얗게 빛을 발하더니, 벽면 안쪽의 빛들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리나 씨, 일단 손을 떼지 말고 있어 봐요." 그 무렵, 카리나의 뒤에서 따라오던 세나가 그런 카리나의 모습을 보더니, 그에게 손을 떼지 말고 있어달라고 청했고, 이에 카리나는 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요청에 응해 손을 떼려다가 그만 두고 계속 손을 벽면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카리나의 손에서 일어나는 빛에 반응한 듯이 벽 내부의 빛들이 서서히 그의 손 쪽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뭔가 징조 같은데......." 암만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런 빛의 움직임을 두고 모종의 '현상' 같은 것이리라 짐작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리나 역시 그것을 모종의 '징조' 로 여기고 있었고, 그러면서 나에게 무슨 징조 같냐고 물어 보았지만, 나라도 딱히 짐작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카리나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답을 하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한편, 세나는 카리나의 좌측 곁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더니, 왼쪽 벽면을 향해 다가가서는 검을 잡고 있지 않던 자신의 왼손을 높이 들어 벽면의 높은 부분에 올렸다. 그 순간, 세나가 손을 올린 부분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 빛에 반응한 듯이, 벽면 내부의 빛들이 빛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빛을 보고 이끌리는 생물들 같아." 그 때, 내 곁에서 그 광경들을 지켜보던 아잘리가 그렇게 말했고, 이후, 나에게 벽면을 만져보거나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전에 네가 해 보지 그래?" 그러자, 나는 바로 그렇게 되물었고, 그 이후, 아잘리는 "그러하지, 뭐." 라고 답하더니, 곧바로 먼 저편으로 몇 걸음 뛰어 가더니, 오른쪽의 벽면에 자신의 왼손을 갖다 대었다. 하지만 아잘리의 손에 벽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거 봐." 아잘리가 말했다. 그러더니, "원래, 난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어." 라 이어 말했다. 그 모습을 그를 따라가서 지켜보며, 나는 벽면 안쪽의 빛들에 특별히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카리나, 세나는 그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아잘리 그리고 나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 카리나, 세나가 벽 속에 갇힌 과거의 영혼들과 모종의 인연이 있기에 (둘 모두 과거의 영혼들과 인연이 있을 법한 뭔가가 있었다) 그런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나는 아잘리에게 물러서 보라고 하고서, 아잘리가 손을 댔던 그 벽면에 그를 대신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벽면에 아잘리처럼 왼손을 올려 보았다. 나 역시 아잘리처럼 특별히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으며 벽면을 지켜보려 하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벽면의 내가 손을 대고 있는 부분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벽면 속의 빛들이 깜박이는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카리나, 세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서 내 손에 의해 나타난 푸른 빛에 다가가며 하얀 빛들이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으니, 마치 빛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손을 올린 부분에서 생성된 푸른 빛은 불꽃처럼 벽면 내부로 퍼져갔으며, 그 불꽃의 형상을 보며, 빛들은 마치 두려워하는 듯이 물러서고 있었다. 여기에 불꽃의 형상이 퍼져가면서 기괴한, 마치 울부짖는 듯한 괴악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하였다. 그 괴악한 소리는 사악한 웃음 소리 같다가도,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를 내기도 하니, 나 자신에게도 불안하게 들렸고, 결국 나 자신도 그 소리에 놀라며, 나도 모르게 손을 벽면에서 떼게 되었다.
"방금 전에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그 때, 카리나가 다급히 나의 곁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러자 나는 내가 벽면에 손을 대더니, 푸른 불꽃이 벽면 안쪽에서 일어나면서 괴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나름 사실대로 밝힌 후에 다시 오른손을 벽면 위에 올려 보았다. 그러자 이전 때처럼 벽 내부로 푸른 불꽃의 형상 같은 것이 퍼져갔고, 벽면 안쪽의 빛들이 그것에 반응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불꽃이 퍼지기 전에 손을 내렸다. 그 괴악한 소리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분명 카리나, 세나의 손에 의해 일어난 반응과는 많이 달라, 그렇지?"
이후, 나는 나의 곁으로 다가온 세나, 카리나에게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가 "그런 것 같네." 라고 답했다. 세나 등이 벽면에 손을 대자마자 벽면에 빛이 일어나면서 벽면 안쪽의 작은 빛이 그 빛에 이끌린 것과는 누가 보더라도 대조적이었고, 이는 뒤쪽에서 일행을 조용히 따라오던 잔느 공주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 확신했다.
"공주님, 잔느 공주님께서는 방금 전의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나가 나를 대신해 잔느 공주에게 물었고, 그러자 잔느 공주가 일행 사이에 이르더니, 내가 손을 대었던 벽면 근처로 다가갔다. 그는 잠시 벽면 안쪽의 빛들을 살펴 보더니, 그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하지 않고, 바로 이렇게 말했다.
"서로 상반된 감정을 드러냈고, 그래서 상반된 반응이 나온 것 같아요."
잔느 공주는 벽면 내부의 빛들을 보면서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일종일 것이라 믿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카리나, 세나가 손을 올렸을 때와 내가 손을 올렸을 때를 관찰하며, 각각의 현상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방금 전에 아르사나가 손을 대었을 때 푸른 불꽃 같은 게 벽 내부를 물들이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제가 손을 대었을 때에는 하얀 빛이 퍼지고 있었고요, 뭐가 다른 거예요?"
이후, 일행은 통로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중간 즈음에 위치한 잔느 공주와 동행하면서 카리나가 물었다. 그러자 잔느 공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혀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카리나가 그렇다고 답하자,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쉽게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나 님, 카리나 님의 경우에는 그 빛에서 자신에게 낯설지 않은 무언가를 찾은 것 같았어요. 그 빛의 밝음을 통해 자신에 대한 구원의 희망을 찾고, 그 빛을 향해 모여든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세나 님, 카리나 님에 대해서는 지금 생은 아닐지라도 이전 생애에 그들과 인연을 맺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아르사나의 경우에는......?"
"아르사나 님의 경우에는...... 그 빛에서 영혼들이 끔찍한 기억을 느낀 것 같았어요. 방금 전에 카리나 님께서 불꽃이 퍼져간다고 말씀드리셨고, 저도 그렇게 보았지만...... 그 불꽃처럼 보인 형상은 실은 불꽃이 아닌 다른 거예요."
"불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 것이지요?"
"피. 사람이 흘린 피예요. 아르사나 님의 영혼에서 피의 기운 같은 것이 나와, 벽면 내부로 스며들고, 그 기운을 감지한 영혼들이 끔찍한 기억을 느낀 거예요. 이전에 울려퍼진 흐느끼는 소리는 영혼들이 과거를 떠올리며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소리였던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에게 심각한 심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했지만, 불길한 기운이 내 몸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 좋게 들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잔느 공주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아르사나 님은 이런 피의 기운을 스스로 습득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이어받았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그 어머님께서는 아르사나 님의 할머님으로부터 그 피의 기운을 이어받으셨을 것이고...... 아르사나 님은 적극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다보니, 피의 기운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다면, 아르사나 씨의 그 기운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후, 세나가 묻자, 잔느 공주가 바로 답했다.
"그 힘이 사악한 것에만 쓰이는 것은 아닐 테니, 사악한 존재는 아니겠지요. 다만, 피의 기운인 만큼, 피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그 피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시는 것이지요?" 이후, 세나가 다시 물었을 때, 잔느 공주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다만, 벽면 안의 영혼들은 옛적 인간들의 영혼들일 것이고, 그들이 피의 기운을 보며 괴로워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피의 기운을 통해 괴로움이나 공포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괴로움과 공포의 기억은 괴물이라 칭해졌던 기계들에 의해 피를 흘리며 죽게 된 것에서 유래가 되었겠지요, 당시 사람들의 영혼들은 기계에 의해 죽어간 이후, 그 몸 속에 갇혀 이렇게 된 것이었으니까요."
"기계도 피를 흘리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는 아니겠지요."
세나가 말했다. 그 이후, 자신이 우연히 들은 바가 있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
옛 문명 시대, '인간들의 시대 (Era Hominum, Era Øominum)' 라 칭해졌던 그 먼 옛날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할 때가 종종 있었어요. 전쟁이라든지, 재난, 학살 같은 끔찍한 일들이 한 번씩 벌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땅에는 인간의 피가 많이 흘러서 스며들었고, 그 땅 깊숙한 곳에 피의 기운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 피의 기운 속에서 영체가 태어날 때가 있었대요. 피의 기운과 피를 흘린 기억이 더해지면서 거기서 영체들이 자연적으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 영체들은 피가 스며든 땅에 남은 피를 흘린 기억을 갖고 있어서 그것에 기반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여기서 태어난 피의 영체가 있다면, 이 행성 전역에 걸쳐 기계에 의해 학살당한 불행한 사람들이 남긴 피의 기운에서 태어났겠지요. 그리고 그 영체의 자손들 중 일부가 인격체가 되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손을 남겨, 그 자손이 세상에 흩어졌는데, 아르사나 씨의 일가 선조가 그 자손 중 하나라면......?"
"그렇다면, 그 피의 기운을 보며, 왜 영혼들이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것일까요?"
"그 기운에 서린 피의 기억을 느끼고, 자신이 피를 흘린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잔느 공주가 묻자, 그렇게 답했다. 이후, 세나가 언급하기를, 피의 기운이 마력에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했다. 내가 얻은 마력은 어머니 등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으로 내가 설령 그런 피의 기운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마력과는 관계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피의 기운을 이어받았다면, 이는 어머니께서도 같은 기운을 이어 받으셨음을 의미하겠지만, 어머니께서 강한 마력을 내세우거나 하신 적은 없으셨기에. 다만, 세나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기는 했다.
"아르사나 씨께서는 마력을 스스로 단련하셨을 것이고, 피의 기운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뭔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 피의 기운이 영혼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듯, 그 피의 기운에 서린 기억이 학살의 원흉에 대한 본능적인 무언가를 일깨울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아르사나는 그런 녀석들만 보면 용서하면 안 되니 뭐니, 자주 그랬었는데......."
그 때, 아잘리가 나를 따라가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나한테 내가 이전부터 '그런 막 나가는 것들이 세상에 다시 있으면 안 된다' 라고 자주 말하거나 하지 않았느냐고 어릴 적 일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녀석이 그런 말을 할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본능적인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요."
"예." 그러자 세나가 답했다. 그러더니, 그 피의 기운이 몸 속에 있다면 본능에 의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일행의 발걸음은 첫 모퉁이에 이르렀다. 왼쪽을 향하는 길목을 지나쳐, 벽면을 따라 걷고 있던 그 때, 벽 안쪽의 빛들이 조금씩 밝아지더니, 일행이 걸어오는 쪽으로 이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나지막히 울리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환청일 수도 있어서 정말 뭔가 소리가 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카리나, 세나가 앞장서고, 나는 아잘리와 함께 잔느 공주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카리나에게 이렇게 청해 보았다.
"카리나, 벽면에 손을 한 번 대 보지 않을래?"
"그래." 그러자 카리나는 바로 알았다고 화답하고서 발걸음을 멈추고 벽면의 오른쪽 한 곳에 자신의 왼손을 대어 보았다. 그러자 이전 때처럼 왼손으로 만진 부분 안쪽이 빛을 발하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벽면 안쪽의 영혼들이 밝게 빛을 발하며 이끌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잖아." 카리나가 말했다. 그러는 동안 영혼들은 빛의 형상으로 변해 가면서 카리나가 일으킨 빛에 점차 모여들고 있었으며, 그 동안 벽면 안쪽에서 뭔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커지고 있었으며, 환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이전 때와 달리, 아잘리에게도 분명히 들렸다.
카리나에 의해 일어난 빛은 점차 벽면 안쪽으로 퍼지고 있었으며, 그것에 따라, 영혼의 빛들을 제외하면 어둡기만 했던 벽면 내부가 점차 밝아져가니, 벽면에 빛이 퍼져가는 것에 벽면 속의 빛, 영혼들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영혼들이 빛에 이끌리는 것을 넘어 조금씩 그 형상이 밝아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카리나 님께서 발하시는 빛에 의해 영혼들이 희망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하겠지요." 이후, 내 곁에 있던 잔느 공주가 말하자, 나 역시 같은 생각임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는 동안 카리나는 검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을 벽면의 오른쪽에 대고 있으면서 앞쪽으로 걸어나가려 하였다. 빛의 궤적이 손을 따라 움직이면서 영혼들을 이끌고 있었다.
카리나가 벽면에 손을 대며, 벽면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가는 동안 카리나의 손에서 생성된 빛이 점차 벽면 안쪽 깊숙한 곳으로 계속 퍼져가고 있었으며, 벽 속의 빛처럼 보이던 벽 내부에 갇힌 영혼들도 그것에 힘을 얻어가는지, 점차 그 형상이 더욱 밝아져 가니, 이제는 영혼들이 뿜어내는 빛들 만으로도 앞길이 밝아져 내부의 통로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봐, 아르산, 저 빛들이 앞길을 인도하고 있잖아."
아잘리가 말했다. 그 말 대로, 빛들이 커지고 밝아지기 시작한 이래로 영혼들의 빛은 일부는 길을 따라 빛을 내고, 일부는 카리나를 비롯한 일행의 움직임을 따르면서 마치 일행을 인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인 빛이 얼마나 밝았는지, 방에 등불을 환히 밝히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커다란 등이 길마다 일정 간격으로 놓인 정도로 공간 내부가 밝아지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어둠의 존재가 기습을 하더라도 그 형상이 빛 속에서 훤히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카리나가 손을 대는 벽면 내부의 빛에 반응을 한 탓인지, 건너편이라 할 수 있는 왼쪽 벽 내부의 영혼들 역시 오른쪽 벽 내부의 영혼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빛을 발하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어떻게든 밝은 빛을 내려 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세나가 이전 때처럼 왼쪽 벽면에 왼손을 올렸고, 그러자 벽 안쪽에서 반응이 일어나 벽 안쪽에 빛이 생성되기 시작하였고, 그 빛은 카리나에 의해 생성된 빛보다 더욱 빠르게 확산되어 가면서 영혼들의 반응을 이끌어 갔다.
"이런 빛이 지속적으로 벽에 남거나 하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야?"
내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물었다. 만약의 경우, 싸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나, 카리나 모두 어떻게든 전투에 참여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나 아잘리가 있기는 하겠지만, 두 사람만으로는 한계는 명확했다. 우선 나도 그렇고, 누군가를 지킬 수 있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안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영혼의 기질에 벽 내부 그리고 벽 내부의 영혼들이 반응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에 두 사람을 대신할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존재를 내세울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보려 한 것이었다. 그 물음에 이런 대답이 나왔다.
"그런 것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손길의 영혼에서 퍼지는 기운에 반응하는 것이라서 그래요. 뭔가 빛을 스며들게 하는 것을 아르사나 씨라면 하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지금 보이는 것 같은 반응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세나의 대답이었다. 카리나 역시 그 대답을 듣자마자 그렇다면 영혼들의 지속적인 반응을 이끌려면 계속 손을 벽면에 대고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고, 세나가 그 대답으로 그런 것 같다고 답하였다.
그 이후, 세 갈래 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후, 나는 갈림길의 중심에 이르러서 처음에는 우측 방향에 보였던 길목 건너편을 바라보며 서려 하였다. 그 너머에는 문 혹은 동굴의 입구 같은 곳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 통로로 가야 할 것임을 바로 알리고 있었다.
"두 갈래 길이 하나가 되는 곳이 그 지점일 거야, 그 지점 너머에 문이 있으니, 그 문으로 들어가야 깊숙한 곳 혹은 중추로 들어갈 수 있겠지."
아잘리가 말했다. 그리고 문이 보이는 길목으로 어서 가자고 청하기도 했다.
한편, 벽면에 손을 대며 길을 걷던 카리나는 갈림길에 이르자마자 벽면에서 손을 떼고, 다급히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자신이 앞장서 가겠다고 말하고서, 바로 그 이유를 말하려 하였다.
"이제 중추에 이를 거 아냐, 분명 녀석의 힘을 가진 뭔가가 있을 거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무렵, 세나 역시 벽면에 손을 떼고 나와 아잘리 그리고 잔느 공주의 근처에 이르렀다. 이후, 잔느 공주가 벽면에 손을 대어 영혼들과 접촉하는 역할은 자신이 맡겠음을 알렸다. 그 역시 그 너머에는 싸움이 있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것에 대비하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잔느 공주 홀로 밖에 있게 될 판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잔느 공주가 그 안의 영혼들과도 접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같이 안으로 들여보내게 되었다.
"싸움은 세나, 카리나 둘이 맡았으면 좋겠어. 나와 아잘리는 잔느 공주님을 지킬 테니까.'
"너와 친구 분, 둘로 괜찮겠어?" 그러자 카리나가 물으니, 내가 답했다. "너부터 잘하면 돼."
"잔느 공주님, 이전 때처럼 보호막이 지켜주지 않겠지만, 제가 공주님을 어떻게든 지켜드릴게요."
아잘리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쓸데 없이 자신감은 컸던 아잘리는 그 때에도 잔느 공주에게 그런 포부를 드러냈던 것. 이후, 카리나가 앞장서서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세나가 그 뒤를 따랐으며, 잔느 공주를 호위하며, 나와 아잘리가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며 나는 벽면 쪽을 살펴보려 하였다, 영혼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려 하였던 것. 카리나, 세나의 영향이 없어진 만큼, 영혼의 빛이 약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 형태를 보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벽 안에 갇힌 영혼들의 기운은 약해지지 않고 있었다. 이전 때처럼 지속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문이 있는 쪽으로 일행을 인도하려 하고 있었다. 이미 문이 있는 쪽이 일행이 가야할 곳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인도가 있어서 그 쪽으로 갈 수 있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이제 깨달은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잔느 공주가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길을 느끼면서 두 사람이 자신의 편이며,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임을 직감하고, 자신이 가진 힘으로 두 사람을 인도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 너머에는 분명 위험한 무언가가 있을 텐데......."
"그 위험한 존재를 두 분이라면 없애줄 것이라 믿고 있을 거예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잔느 공주가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길을 따라 걷다가 문 앞에 도달할 무렵, 벽 안쪽에서 뭔가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가 사라졌고, 그 때문에 잠시 놀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내 곧, 아무래도 이런저런 환상들을 보다 보니, 헛것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진정하고 정신 차리자고 생각했었다.
"아르산, 왜 그래? 뭔가 안 좋아?"
"아니, 헛것을 본 것 같아서." 그 때, 내 곁에 있던 아잘리가 그런 나를 보더니, 그렇게 물었다, 이상 행동을 했다고 여기고,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나는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화답했고, 그러면서 먼저 들어선 카리나, 세나의 뒤를 따라 세 번째로 문을 넘어섰다.
- 이후, 아잘리가 잔느 공주를 이끌고 공간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후, 아잘리는 잔느 공주를 문 근처에 머무르도록 하면서 그의 곁에 머무르니, 잔느 공주를 지켜주는 역할을 자처한 것으로 보였다.
문 너머로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굴의 공간 같은 공간의 입구 건너편 끝에는 고목 줄기처럼 생긴 종유석 기둥 하나, 그 둘레만 하더라도 몇 아름은 되어 보일 법한 거대한 기둥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나무 뿌리 같은 돌이 돌출되어 있어서 고목 같은 느낌을 전해주려 하고 있었다. 나무 뿌리처럼 생긴 돌 내부로는 빛들이 불안하게 깜박이고 있으면서 나무 줄기 같은 돌기둥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으며, 그 흐름의 끝은 나무의 밑둥 즈음에 해당되는 돌기둥 하단의 한 지점으로 돌기둥 하단에는 붉은 빛을 발하는 핏덩어리 같은 것이 맥동하고 있었다.
돌기둥 안쪽의 덩어리는 처음 봤을 때에는 핏덩어리 같아 보였고, 그 이후로 자세히 보니, 인간의 심장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계속 박동하고 있으면서 자기 주변으로 붉은 빛을 확산시키고, 기둥 외부로 붉은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을 때, 벽 내부를 빛내고 있던 영혼들의 기운이 벽 바깥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돌기둥 쪽으로 접근해 가던 카리나 혹은 세나의 기운에 반응해서 영혼들이 기운이나마 표출시키려 했던 것 같다.
"아르산, 저길 봐."
"뭔데?" 그 때, 아잘리가 공간 우측의 벽면을 가리켰고, 그러자 내가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서 아잘리가 가리킨 쪽을 돌아보려 하였다. 그 순간, 나의 눈앞으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형상으로 성인 인간의 모습을 한 무언가였다.
'방금 전에 비슷한 모습을 본 것 같은 때가 있었는데.......'
그러자 나는 이전의 잠깐 헛것을 본 것 같았던 때를 떠올렸다.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잠깐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해서 내가 환각을 본 것 같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었는데, 그 때와 같은 형상이 다시 보인 것은 물론, 아잘리에게도 보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하나만 보였으나, 그 이후로 하나씩 그 형상이 추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하나가 아닌 둘, 셋, 한 무리씩 그 형상이 나타나면서 돌기둥 주변에 여러 희미한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희미한 형상들은 하나의 모습만을 하고 있지 않았고, 각자 다른 모습에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 영혼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형상들은 카리나 등에게도 보였는지, 카리나 역시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희미하게 빛나는 형상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Kiuj vi estas? (누구십니까?)" 오른손에 검을 쥔 카리나가 형상들에게 물었다. 어떤 말을 할 지 알 수 없다보니, 에스페란타 (Esperanta) 를 활용하려 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형상들은 어떤 답도 하지 않았고, 그 이후, 그의 오른편 곁에 있던 세나가 형상들에게 물으려 하였다.
"Who are ye? (누구신가요?)" 그 이후, 그는 갑주 형태의 환수를 소환해 자신의 우측 곁에 머무르도록 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형상들에서 목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울음 소리 혹은 한탄하는 소리 같은 것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어떤 목소리가 일행에게 말을 걸려 하였다.
Nunadrl, wri mosîbi boyscinayo?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다. 성별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목소리만으로 어린 아이의 성별을 감별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편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것을 두고, 처음에는 짧게 말한 것에 희미하게 들려서 그런가, 했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Who? (누구야?)" 이후, 아잘리가 말했다. 그에게도 뭔가 소리가 들렸던 모양으로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전하는 의미를 알 수 있는 이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마지막의 억양을 통해 목소리의 주인이 공간 내부로 들어선 이들,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Nunadrl, iri wa boseyo.
이후,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과 같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이전 때처럼 건네는 말의 의미를 알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나를 비롯한 이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전하는 억양이 평상시에 누군가를 부를 때의 그것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으로 '이 쪽으로 와 봐라'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으며, 앞 부분은 뭔가를 부를 때의 목소리로, 처음 들린 목소리와 같은 뭔가를 말하고 있어서 누구인지 몰라도 같은 이를 지칭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는 있었다.
두 번째 들린 아이의 목소리에 내가 바로 그렇게 되물었다. 에스페란타는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보였으나, 옛 브리태나는 알아들은 것 같아서 그 쪽 말로 대화를 시도해 보려 한 것. 그러면서 카리나와 함께 나무 안쪽의 심장처럼 보이는 것을 향해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다.
그 순간, 나의 눈앞으로 뭔가 하나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무 주변으로 여러 빛들이 떠오르더니, 그 중에서 나무 안쪽의 '심장' 바로 앞에 있던 빛이 점차 커지면서 하나의 희미하게 빛나는 형상을 이루기 시작한 것.
잠시 후, 그 형상은 자그마한 아이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짤막한 머리카락과 낡은 옷차림을 했을 법한 소년, 인간 나이로 치면 6 ~ 7 세 즈음 되었을 법해 보였던 소년의 형상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소년의 형상은 앞장서 가던 카리나의 바로 앞에 있었기에, 이를 두고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아닌 카리나의 움직임에 반응해 그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볼 수 있었다.
다소 희미하기는 했어도, 소년의 얼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그 곳이 괴물의 몸 속이며, 괴물의 육신이 자리잡은 사당에 이르기 전부터 어떻게 소년 같은 이들이 그 육신 내부에 있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기에, 그 표정이 밝을 리 없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르사나, 저기를 봐." 그 때, 카리나가 나를 불러서 주변을 보라는 의미의 말을 건넸고, 그 말에 나는 바로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나무와 '심장' 주변 일대의 빛들이 사람의 형태로 변화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 역시 어둡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그들 사이로 음울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Nunadrl, wrinîn yâgi-e gacyâißâsâyo, azcu oräzcânbutâ.
소년으로부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기는 했으나, 한 가지 떠오른 바가 있었다. 이전에 들려왔던 괴물과 잔느 공주의 대화가 우선 떠올랐고, 이어서 괴물의 빛과 카리나의 빛이 서로 부딪쳐서 빛이 퍼졌을 때에 떠오른 그림을 그리는 듯이 펼쳐졌던 환영, 그리고 그 환영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들이었다. 서로 다른 상황이기는 했지만, 어느 쪽이든, 비슷한 느낌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잔느 공주님이라면 그 말을 알아들으실 수 있을 거야.'
그 이후, 나는 잔느 공주가 자신도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한 것, 그리고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환영 속의 목소리를 통역해 준 것을 떠올리며, 나의 뒤쪽에 있던 잔느 공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잔느 공주가 그런 나의 왼편으로 다가가더니, 바로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저희들에게 이 쪽으로 와 보라 했어요,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이들에 대해 말했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갇혀 있었노라고."
그러더니, 나와 카리나가 있는 곳을 넘어, 나무 밑둥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소년의 영혼에게 자신이 직접 말을 걸려 하였다.
Oräzcânbutâramyân, ânzcebutâ gacyâißâdângâni?
Izcen, zcâdo zcarlmorgeßëyo. Narîrl senîngâdo yimi izcâbâryâco. Yâgi-tnîn dõan apîm gwa görowmi nâmu manaßëyo, âtâke narîrl serlsu itgeßëyo?
Gîrâkuna. Gîrâtamyân, yâgiro ogi zcânenîn sesãi âtätnînzci, marhä zcuzci angketni?
그러는 동안 먼저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선 나와 아잘리, 그리고 잔느 공주를 이끌고 온 세나, 카리나 모두 그의 뒤에서 조용히 그가 영혼과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그들 사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잠깐 카리나 그리고 그 왼편 곁에 있던 세나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다. 그 동안, 카리나는 세나와 함께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영혼과 대화를 이어가는 잔느 공주의 모습을 지켜보려 하고 있었다.
"카리나, 지금 들리고 있는 말이 무슨 종류의 말인지 알 것 같아?"
카리나의 우측 곁으로 다가간 이후에 그에게 물었다. 여러 지역을 전전하였을 카리나라면 혹시 아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달리 카리나에게는 긍정적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말이야."
카리나에 의하면, 알바레스 (Albares) 라 칭해진 비교적 멀리 있는 행성 등지에 거주하는 '고양이 요정족' 사람들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특이한 말을 익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고양이 요정족 사람을 만나, 해당 언어를 들어본 기억도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익히고 있던 그 특이한 말과는 비슷한 느낌은 없었다고 했다.
"비슷한 느낌 하나조차도 없다는 거지?" 이후, 그렇게 묻자, 카리나는 확신에 찬 듯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옛 브리태나는 알아듣는 것으로 보아, 말을 하는 이들은 옛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 말 역시 옛 인류의 말들 중 하나임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하고서,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옛 브리태나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니, 그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에는 옛 브리태나로 말을 걸기로 했다.
Zcarîn morîgeßëyo, gapzcagi sayreni urlryâtgo saramdri zcibîrl dagîphi tdwicânagago ißësëyo. Ayidrlbutë ârîndrlkgazci modu musâwâhanîn pyozcângiâßëyo. Gîräsâ, zcâdo musâwâßëyo, mwânga napbîn yri irânarlgâpman gataßëyo.
그 무렵에 소년의 영혼이 잔느 공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잔느 공주가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소년의 영혼에게 물었다.
Gîrâmyân...... tarlcurlîn...... harlsu ißëni?
Nyusrîrl bogo gazcokdri zcibîl nawa tdânaryâ häciman...... gîtdä gömurldri cyâdrâwaßëyo. Zcâdo apba, âmmawa hamkge tdwidaga...... bici bânzccagyâtgo....... kgä-âboni yâgiyâßëyo.
Gîrätguna.......
이후, 소년이 다시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 무렵의 목소리는 이전 때보다도 슬프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Nâmu manîn saramdri zcugâßëyo...... gömurldri saramdrîrl magu zcabamâggo burltäwugo ißësëyo. Urîmsori, bimyângsoriga yâgizcâgisâ drlryâßëyo.......
그 목소리가 다 들리고 나서야, 잔느 공주는 일행을 향해 돌아서더니, 바로 이렇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아이는 지금은 바닷속에 있을 도시에 살고 있던 인간들 중 한 명이었을 거예요. 도시에 살던 평범한 가족의 일원으로 당시의 평범한 소년들 중 한 명이었겠지요. 그러다가 재난 경보가 도시에 퍼지면서 그 경보를 알아듣고 가족들이 집을 나와 도시를 탈출하려 했지만, 이미 괴물이라 칭해진 기계 병기들이 도시를 습격했고, 병기들의 폭격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던 것 같아요.
아이는 병기들의 습격 도중에 병기들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빔이나 화기로 폭파시키고 태워서 죽이는 광경들을 계속 지켜봤었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비명, 절규, 통곡 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던 것 같아요. '괴물' 이라 칭해진 병기들의 재앙을 너무도 두려워 했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다른 영혼들처럼 기계 병기들이 일으킨 재앙의 희생자들 중 한 명으로 오랫동안 여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세나가 잔느 공주에게 그렇게 물었다.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크게 느낀 바가 있는 듯이, 심각해진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잔느 공주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고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폭발에 휘말려 그리 되었다는 것이었지요. 적어도, 기계 병기의 몸 속에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병기들의 몸 속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살갗부터 잔인하게 해체되는 일을 겪었을 테니까요, 그렇지요?"
그 이후, 세나가 묻자, 잔느 공주는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먼저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선 나와 아잘리, 그리고 잔느 공주를 이끌고 온 세나, 카리나 모두 그의 뒤에서 조용히 그가 영혼과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그들 사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잠깐 카리나 그리고 그 왼편 곁에 있던 세나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다. 그 동안, 카리나는 세나와 함께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영혼과 대화를 이어가는 잔느 공주의 모습을 지켜보려 하고 있었다.
"카리나, 지금 들리고 있는 말이 무슨 종류의 말인지 알 것 같아?"
카리나의 우측 곁으로 다가간 이후에 그에게 물었다. 여러 지역을 전전하였을 카리나라면 혹시 아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달리 카리나에게는 긍정적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말이야."
카리나에 의하면, 알바레스 (Albares) 라 칭해진 비교적 멀리 있는 행성 등지에 거주하는 '고양이 요정족' 사람들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특이한 말을 익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고양이 요정족 사람을 만나, 해당 언어를 들어본 기억도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익히고 있던 그 특이한 말과는 비슷한 느낌은 없었다고 했다.
"비슷한 느낌 하나조차도 없다는 거지?" 이후, 그렇게 묻자, 카리나는 확신에 찬 듯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옛 브리태나는 알아듣는 것으로 보아, 말을 하는 이들은 옛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 말 역시 옛 인류의 말들 중 하나임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하고서,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옛 브리태나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니, 그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에는 옛 브리태나로 말을 걸기로 했다.
Zcarîn morîgeßëyo, gapzcagi sayreni urlryâtgo saramdri zcibîrl dagîphi tdwicânagago ißësëyo. Ayidrlbutë ârîndrlkgazci modu musâwâhanîn pyozcângiâßëyo. Gîräsâ, zcâdo musâwâßëyo, mwânga napbîn yri irânarlgâpman gataßëyo.
그 무렵에 소년의 영혼이 잔느 공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잔느 공주가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소년의 영혼에게 물었다.
Gîrâmyân...... tarlcurlîn...... harlsu ißëni?
Nyusrîrl bogo gazcokdri zcibîl nawa tdânaryâ häciman...... gîtdä gömurldri cyâdrâwaßëyo. Zcâdo apba, âmmawa hamkge tdwidaga...... bici bânzccagyâtgo....... kgä-âboni yâgiyâßëyo.
Gîrätguna.......
이후, 소년이 다시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 무렵의 목소리는 이전 때보다도 슬프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Nâmu manîn saramdri zcugâßëyo...... gömurldri saramdrîrl magu zcabamâggo burltäwugo ißësëyo. Urîmsori, bimyângsoriga yâgizcâgisâ drlryâßëyo.......
그 목소리가 다 들리고 나서야, 잔느 공주는 일행을 향해 돌아서더니, 바로 이렇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다른 영혼들처럼 기계 병기들이 일으킨 재앙의 희생자들 중 한 명으로 오랫동안 여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세나가 잔느 공주에게 그렇게 물었다.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크게 느낀 바가 있는 듯이, 심각해진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잔느 공주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고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이후, 폭발에 휘말렸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이 곳에 있었대요."
"폭발에 휘말렸다면, 그 몸이 기계 병기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하였겠지만, 그 영혼이 기계의 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경우는 있었을 거예요, 이전에 루이즈와 함께 예나 님과 함께 있었을 때,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또, 이런 경우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경우지요?"
"폭발에 휩싸여 죽은 자의 시신이나 죽어가기 직전의 육신을 몸 속에 끌어들여, 그 살과 피를 취하는 행위를 말함이에요."
"...... 시체 훼손 아닌가요, 그거!?" 그러자 카리나가 잔느 공주에게 물었다. 물음을 건네는 그 표정에서 당혹감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카리나가 감정 표출을 잘 하는 편이기는 했으나, 그 때에는 감정 표출을 자제하려 애를 쓴 것 같았는데도, 그런 감정 표현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그런 카리나의 물음에 잔느 공주가 답했다.
"인간의 몸에서 뭐든 취하기 위해서는 산 자, 죽은 자를 가리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닐까요? 죽은 자라 하더라도 적어도 뼈는 취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뼈를 가공해서 보석이든, 뭐든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하겠지?"
잔느 공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가 카리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다만티아라 칭해지는 보석, 그 보석은 석탄과 동족이라 하였으며, 석탄 그리고 그 친척이라 할 수 있는 페트롤레온 (Petroleon) 은 죽은 생물이 변질된 것으로 생물과 석탄, 페트롤레온 그리고 아다만티아는 모두, 카르본 (Karbon) 이란 물질이 그 근원이라 하였다.
어딘가에서는 생물의 뼈를 가공해서 보석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거기서 만들어진 보석은 아다만티아로 뼈와 아다만티아는 카르본이란 같은 본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기계들도 인간의 뼈를 그렇게 가공해서 광학 병기 발사를 위한 보석을 만들려 했을 것이고, 그래서 시체라도 뼈는 취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인간의 시체, 유해마저 자신들의 몸 속으로 가져가려 했다면 말이다.
이후, 소년에게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잔느 공주는 그런 소년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려 하였다.
Yâgi i'nîn saramdrl, giyomi zcugyâßâyo.
Zcugyâtdago? Giyomi?
Ye, gömurira burlin gigyedri zcâhirîrl magu zcugyâßâyo, gidr'y däzcãi giyomi-eyo.
Gîra'khuna. gîrâmyân, giyomi âtân saraminzci ârlmana arlgo i'ni?
Saramdri marhäzuâßâyo.
"기욤이란 말이 들렸어." 그 무렵, 카리나가 내게 조용히 말을 걸었고, 그 말에 바로 "나도 들었어." 라고 답했다. 소년의 목소리, 그리고 잔느 공주의 목소리에서 '기요미 (Giyomi, giyomi)' 란 단어가 한 번씩 거론되었으니, 그것이 기욤 (Giyom, Guillaume) 과 관련되어 있을 것임이 확실해 보였다.
"기욤이란 이름의 격 변화 (Deklensia) 에 해당되려나." 이후, 아잘리가 내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특정 이름 역시 이러한 '격 변화' 를 통해 명칭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으며, 도중에 들려온 '기요미 (Giyomi)' 라든가, 후술할 '기요믄 (Giyomîn)'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으로 보았다.
이후로도 소년의 영혼 그리고 잔느 공주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으며, '기욤' 에 관한 단어들 역시 계속 들려왔다.
Giyomîn mân yetnarl, wurisegyega i'kgi zcâne sara'dën saramiëßëyo, luhmaranîn zcegug'y guniniëciyo. Yizcerîranîn dosciesâ banlanîrl zcinaphandago, saramdrîrl magu zcugyâ'däyo, gîrigo, saramdr'y sarîrl mâggo, pirîrl masciryâhä'däyo.
Gîgâ, scigin anini? Wä gîrân zcisîrl hä'nînzci marhahrlsu ißâ?
Giyomîn hîphyârlgwiga döryâhäßëyo, bämpaiyâ mari-eyo.
"도중에 뱀파이어 (Vampire, Væmpaiyâ) 란 말이 들린 것 같은데?"
대화 도중에 뭔가 익숙한 단어가 들렸는지, 카리나가 다소 심각해진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나도 그 단어는 확실히 들었고, 그래서 "나도 들었어." 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카리나에게 그 단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밤피르 (Vampir) 와 같은 말인 것은 알지?"
"당연하지." 카리나가 화답했다.
"그러고 보니, 밤피르에 대해서는 그 '괴물' 이 있는 곳에서 들은 바 있다고 했었지?"
이후, 카리나가 생각난 것이 하나 있다면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나는 '괴물' 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했을 때를 떠올리려 하였고, 그 이후에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There are demons here that have been called 'monsters'. They ate our blood and flesh, and wanted to trap the rest of our souls. (이 곳에는 '괴물' 이라 칭해진 악마들이 있어요. 그들은 우리들의 피와 살을 먹고, 남은 영혼들을 가두려 하였어요)
To do so, the demons trapped our souls in the thing they created. I'm one of those souls trapped in this place. (그렇게 하려고, 악마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에 우리들의 영혼을 가두었지요. 저도 그렇게 이 곳에 갇힌 영혼들 중 하나랍니다)
기욤은 예로부터 인간을 비롯한 짐승들은 자신보다 낮다고 여기어진 짐승들의 살과 피를 향유했으며, 그래서 더욱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한 자신은 인간의 피와 살을 향유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었대. 그리고 신들은 예로부터 인간의 피를 생명의 물로 여기었다는 생각을 서슴없이 드러내기도 했었지.
그렇다면, 기욤은 자신을 밤피르라 생각했던 거예요?
그랬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학살을 벌일 수 있겠니?
밤피르가 언급되자마자 이전에 내가 했던 말, 그리고 내가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모두 '기욤' 이란 인물의 행적과 관련된 말이었다. 소년의 영혼과 잔느 공주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해, 대화의 내용이 어떠한지 알 수 없기는 했지만, 기욤이 루마 제국이란 나라에서 벌인 만행 그리고 그가 환생한 이후에 벌인 행각, 나도 소리를 통해 들어서 알았던 것에 관해 어느 정도 이상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아이는 그런 것들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 곳에서는 저 아이처럼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많아, 그런 이들을 통해 잘 알 수 있었을 거야."
아잘리가 묻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주변 일대의 혼령들을 둘러보고 있던 잔느 공주에게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뭔가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였을 것이다.
Nuna, muâsîl ca'go gyescin gâyeyo?
Ani...... amugâ'do...... hoxi, yirân saram âpsë'ni, zcang hyânsurago.
Zcang hyânsu baxa marige'co? Gînîn yâgi-e âpsëßëyo. Gîbunkgesënîn dosci-esâ doragascizci anîscyâßëyo.
Gîrakhuna. Gîbunkgesâ doragascin gosedähäsânîn.......
Zcösonghäyo.
그 대화 이후, 나무처럼 보이는 구조물 안쪽의 '심장' 이라 칭해진 덩어리가 불안하게 깜박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카리나, 아잘리 모두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으며, 이어서 아잘리가 나에게 심장의 현상에 대해 뭔가 말을 해 볼 것을 청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 현상은 심상치 않아 보였고, 그래서 전투 준비를 해야할 필요를 느끼면서 그간 어둠을 비추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빛의 기운에게 빛의 힘을 일으키도록 하면서 아잘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
"안쪽의 심장 같은 것이 깨어나려 하는 것 같아."
그 한 마디 말을 듣고 난 이후, 아잘리는 바로 그간 허리에 꽂아두고 있던 총을 다시 꺼내고, 왼손에 기운을 일으켰다. 곧 전투가 발발할 것임을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카리나 역시 심장 앞으로 다가가면서 검을 들고 방패 소환을 준비했다, 공격을 막아내고 일행을 지킬 준비를 하려 하였던 것.
Nunadrl, nunadrldo ascige'zciman, izce gîgâsi kgä-ânarlgëyeyo,
Wrirîrl zcugin gömurdr'y däzcãîy scimzcãîro musâwun himîrl gazcigo ißëyo. Budi, zcoscimhä zcuseyo.
소년의 목소리 전반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마지막에 소년이 남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디 조심해 주세요.' 정도가 아니었을까. 나를 비롯한 눈앞에 보이는 이들이 전사로서, '심장' 과 싸우려 하는 이들임을 알아차린 소년의 목소리가 뭔가를 당부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자신을 위하려 하는 전사들에게 당부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소년의 목소리는 잔느 공주에게 뭔가 목소리를 내려 하였다, 중요한 발언 같았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당장에는 잔느 공주 한 사람 뿐이었으리라.
Nuna, scimzcanganenîn sarami gacyâißëyo. Scimzcãîy hime gacâisîmyânsâdo urirîrl zcikyâzcuscin gomawun buni-eyo.
Gîräsâ marlßîmdrirlkgeyo, gîbunîrl kgok guhäzcuseyo.
Araßâ, yâgiro oscin bundriramyân mwâdîn hänäscirltenikga, nâmu gâkzcâng marlgo zcikyâboazcwâ.
그리고 잔느 공주의 대답 이후, 심장이 한 차례 파동을 일으키면서 심장에서 괴물의 울음 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영혼들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영혼의 실체였던 빛들이 갑자기 심장 쪽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남성,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 젊은이, 노인의 울음 소리, 비명 소리가 혼령들이 자리잡았을 공간 전체에 울려퍼져갔다.
Nunadrl, budi...... zcukzcimarayo!!!!
이후, 소년에게서 그 말이 들려왔고, 이후로 소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한편, 빛을 깜박이며 맥동하기 시작한 심장은 소년을 비롯한 영혼들의 빛을 자신의 몸 속으로 빨아들이면서 더욱 격렬히 맥동하기 시작했으며, 맥동과 더불어 깜박이던 빛도 이전에 비해 더욱 격렬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이 있는 쪽에서 괴물의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깨어난 것이었다.
심장은 깨어나자마자 새하얗게 빛나고 있던 그 몸체의 중심에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을 생성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흑점 비스무리한 모습을 보이던 검은 부분이 점차 심장의 표면을 뒤덮기 시작해, 결국 심장 전체를 검게 물들였다. 그 표면에 검은 점이 생성되고 나서, 대략 20 초 정도 지난 이후였다.
이윽고 검은 덩어리에 의해 검게 물들어 버린 심장의 맥동이 격렬해지고, 검게 변한 심장의 표피에서 검은 연기가 분출하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한창 타오르는 불에서 연기가 분출되는 것만 같았다. 연기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나무 밑둥과 뿌리의 형상이 자리잡은 일대를 덮으려 하였으며, 연기에 노출된 부분들은 마치 유리가 갈라지듯, 균열이 발생하다가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그 바스라지는 모습이 유리 조각이 깨어지면서 가루가 되었다가 그 가루가 연기로 변해 흩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검은 연기에 의해 나무와 뿌리를 이루는 물질이 부식되고 부서지는 동안 공간 전체에서 유리가 갈라지고 바스라지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편, 검게 변한 심장에서 퍼져 나온 연기가 나무의 형상을 이루는 물질을 부식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연기가 퍼져가는 모습을 경계하려 하였으며, 그래서 뒤쪽으로 물러서면서 카리나에게 방패로 연기를 막아줄 것을 요청했다.
카리나 역시 연기가 퍼져가는 것을 좋지 못한 징조로 여기고 있기는 했었고, 그래서 내가 말을 건네기 전에 이미 왼손의 방패를 앞세우고 빛의 보호막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말을 건네자마자 바로 빛의 보호막을 펼치면서 검은 연기가 퍼지는 모습을 주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검은 연기는 나무의 밑둥과 뿌리를 뒤덮고 그 윗 부분까지 퍼져가려 하고 있었지만, 일행이 있는 쪽으로는 나아가지 않았다. 수직 방향으로도 높이 올라가려 하지도 않아서 마치, 나무의 밑둥과 뿌리에 머무르며, 해당 부분만을 부식시켜 부수려 하는 듯한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
"아랫 부분이 부식되고 윗 부분을 지탱하지 못하게 되면, 윗 부분이 자빠질 거 아냐, 검은 녀석은 분명 그걸 노리는 것 같아!"
그 광경을 목도하자마자 아잘리가 말했다. 그 형상이 공간의 천장에 닿을 정도였으니, 윗 부분이 쓰러지면 일행을 덮칠 것임은 너무도 분명했고, 그래서 카리나가 방패를 통해 보호막을 마련한 이후에도 내가 쓰러지는 형상을 격추, 파괴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고, 그것에 대한 대비를 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현상은 그런 우려와 다르게 진행되었으니, 나무의 밑둥, 뿌리에 해당되는 부분이 부식으로 인해 부서져 갈 때,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되어갈 것 같았던 나무의 가지 부분 역시 마치 스스로 그런 최후를 맞이하려는 듯이, 갈라지고 깨지며, 부서져 갔다. 유리가 갈라지고 깨지는 소리가 나뭇가지 부분이 부서지고 떨어지며, 깨져, 하얀 연기로 변해 심장의 형상을 가리는 동안 유리 바스라지는 소리를 대신해 울렸다. 그런 공간을 깨부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몇 차례 울려 퍼진 끝에 나무의 형상은 완전히 부서지고, 연기로 변해 소멸하게 되었다.
심장을 감싸고 있던, 나무 형상이 소멸하고, 연기가 걷히면서 검은 심장이 다시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심장은 이전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이전에도 갓 태어난 아기의 신장 정도는 될 정도로 거대했으나,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형상은 어지간한 어린 아이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나무 형상이 부서지고 깨어지는 것과 함께 검은 물질이 힘을 내면서 심장의 형상이 커져버린 것이었다.
형상이 커지면서 형상의 맥동도 더욱 급격해졌다. 맥동은 더 이상 빨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맥동의 정도는 이전에 비해 더욱 커졌다. 맥동에 따라 어린 아이만큼 커졌던 심장의 형상이 태아의 크기 정도로 축소되었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가기를 계속 반복해 갔다.
그러다 마침내 검게 물든 심장의 표면에서 붉은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나는 그 괴물체에서 에너지가 분출되고, 이를 통해 공격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할 것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후, 심장의 표면에서 붉은 광탄들이 흩뿌려지기 시작했고, 카리나가 이를 빛의 방패로 막아내는 동안, 내가 빛의 기운을 통해 곡선을 그리는 하얀 빛 줄기들을 발사, 심장에 닿도록 하였다. 그러는 동안 아잘리 역시 자신의 총포를 오른손으로 잡고, 총포에서 광탄들을 계속 발사, 광탄들이 심장에 닿아 폭발하도록 하고 있었다-왼손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일단 가만히 놓아두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세나 역시 불새 형상의 환수와 빛을 발하는 새 형상의 환수를 소환했으며, 불새는 입에서 불을 뿜도록 하고, 하얀 새는 깃털들을 쏘아 보내도록 하면서 심장을 집중 타격하도록 하니, 이렇게 잠시 동안 카리나가 방패로 심장에서 분출되는 힘을 막아내는 동안 뒤에 있던 이들이 집중 타격을 가하는 상황이 이어져 갔다.
한편, 잔느 공주는 어느새 무지갯빛 보호막에 의지한 채로 공중에 떠올라 검은 심장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보호막에 의지한 채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 줄 알았으나, 얼핏 보았을 때에 그렇게 보였을 뿐으로, 자세히 그 모습을 보려 하니, 고개를 자신의 왼편으로 돌리면서 뭔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쪽의 소리가 워낙 컸던 데다가, 원래 보호막 안쪽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지라 뭐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깨어나자마자 집중 타격을 받던 심장은 표면 안쪽의 붉게 빛나는 부분에서 붉은 광선들을 전방 쪽으로 방출하려 하였다. 붉은 광선들이 여러 방향으로 분출되고 있었기에, 카리나는 마력을 방패 쪽으로 집중시켜, 빛의 보호막이 반구의 표면을 이루도록 하면서 광선들을 막아내려 하였다.
같은 마력을 들이면서 보호막을 넓게 펼치고 있었던 만큼, 보호막의 방어력 자체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카리나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 여기었고, 실제로 빛 줄기는 얇게 펼쳐진 보호막에 의해 바로 막히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눈앞의 괴물 (심장) 이 더욱 큰 힘을 내려 할 것임이 틀림 없고, 심장이 더 큰 힘으로 광선을 발사하면 뚫릴 가능성이 높았기에, 힘을 내지 못하도록 가능한 빨리 심장의 표면을 제압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아잘리, 가자!" 판단을 내리자마자 나는 아잘리에게 가자고 청했다.
"어딜 가자고?" 이후, 아잘리가 묻자, 바로 심장의 근처로 가자고 말한 다음에 괴물의 공세를 뚫고 도달해야 하는 만큼, 각오는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자 아잘리는 잠시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나갈 준비를 하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가 한다는 게 이런 거지, 뭐겠냐?"
그리고서 그는 보호막의 우측 가장자리 쪽으로 뛰어간 이후에 광선이 분출되는 광경을 그 쪽 방향에서 바라보면서 내게 광선의 출력이 약해질 즈음에 가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물었고, 그러자 내가 바로 그런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녀석의 광선은 결코 약해지지 않을 거야, 저 공격이 막히고 있음을 알아차렸기에, 분명 출력을 높이려 하겠지, 보호막을 뚫으려고 말야. 녀석은 이미 판단을 내렸을 것이고, 곧 실행에 옮길 거야, 그 판단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녀석에 피해를 줄 필요가 있어."
이후, 나는 내가 먼저 갈 테니, 상황 변화가 올 것 같으면 그 때, 내가 그를 부르겠음을 알리고서, 먼저 보호막을 뚫고, 광선 돌파를 시도했다.
한편, 괴물은 여러 줄기의 붉은 광선으로 곡선을 그리고 있었으며, 각 곡선은 카리나가 소환한 빛의 보호막에 막혀서 열기를 내고 있었다. 곡선의 궤적은 일정했지만 짧은 주기로 궤적의 형태가 반복적으로 변했기에, 하나의 궤적을 보며, 궤적의 틈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었다.
하나의 곡선을 뛰어넘은 이후, 일어서려 할 즈음에 곡선의 궤적이 변화하려 하였고 (바로 앞에 보인 광선의 출력이 살짝 약해진 것이 보였다), 그 조짐을 느끼자마자 바로 엎드린 이후에 앞으로 미끄러져 가려 하였다. 다행히도 광선은 나의 바로 위를 지나쳐가고 있었으니, 그 때, 가만히 있었으면 광선에 허리가 절단났을 것이다.
괴물은 여러 방향으로 광선들, 광선 다발을 발사하고 있었지만,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면 쪽의 공격이 다소 부실했다는 것이 그 맹점으로 광선 궤적의 변화에 따라 정면이 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주기가 아주 짧긴 했어도, 공격이 비는 구간이 있었다. (다만, 정면 쪽은 광선 다발에 빛 기둥까지 분출되었기에 섣불리 다가갔다는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했다) 그 정면을 노리려 하였다.
괴물의 정면 근처에 도달하자마자 바로 정면의 표면을 찢으려 하였다, 안전 지대 혹은 사각 지대가 없었기에 (괴물이 광선을 발사하는 범위 내에서는 어느 곳이든 광선이 나아갈 때가 있었다), 바로 괴물의 정면 부분으로 접근하려 하였으며, 확실한 타격을 위해 빛의 기운으로 검을 생성해 오른손에 쥐었다.
광선이 정면 부분에서 방출되고 있을 동안에는 그 근처에 앉아서 기다렸다가 바닥에서 열기가 느껴질 즈음, 바로 괴물의 정면 쪽으로 달려들었다. 괴물의 정면 근처로 광선이 발사될 즈음에는 정면 쪽의 공격이 약해지다가, 결국 비게 되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것의 정면 근처에서 광선이 방출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바로 그 때를 노리고 타격을 가하려 한 것이었다.
괴물의 정면이 비게 되자마자 바로 그 정면을 향해 뛰어들어서는 두 손으로 빛의 칼날을 거꾸로 잡아 그 날의 끝으로 괴물의 표면을 궤뚫고서, 곧바로 왼쪽으로 한 번 베어낸 이후에 오른쪽으로 크게 베어내는 것으로 심장처럼 생긴 괴물의 표면을 도려내려 하였다. 이후, 괴물의 표피가 갈라지면서 표피가 네 방향으로 갈라졌다, 마치 검은 꽃잎이 펼쳐지면서 붉은 안쪽이 드러나는 것처럼.
그 때를 같이 해, 괴물에게서 고통을 느끼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고, 그와 함께 광선의 발사가 멈추니, 그 때를 같이 해, 아잘리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들려 하였다. 주변의 저항도 없었기에 금방 내 곁으로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표피가 찢겨지고 네 방향으로 갈라지면서 드러나는 괴물의 내부, 핏빛을 띠며 빛나는 안쪽 깊숙한 곳에 붉은 돌처럼 생긴 기관이 하나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괴물의 눈과 같은 기관이 무수히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눈앞에 보인 그 기관들이 광선 분출을 행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붉은 돌처럼 생긴 기관은 처음에는 보석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맥동하면서 투명한 피막을 가진 생물과 같은 모습도 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기관이 맥동하면서 그 내부에서 붉은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칼자루를 거꾸로 쥐고 칼날로 그 기관을 깊숙히 찌르려 하였고, 이에 아잘리 역시 나의 우측에서 총구에서 방출된 빛의 칼날로 괴물의 기관을 궤뚫었다. 두 방향에서 파고든 빛의 기운이 심장으로 파고들고, 그 이후로 기관의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려 하였다.
"이전에 빛의 보호막과 괴물의 빛이 충돌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일 거야."
아잘리가 말했다. 규모가 다르기는 하지만 괴물이 방출하는 에너지 그리고 빛의 에너지가 충돌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폭발이 발생하려 하고 있었음은 같았다. 이전 때처럼 누가 폭발의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거나 하지도 못했기에 폭발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멀어지려 하였고, 그래서 다급히 심장 형태의 괴물이 위치한 그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려 하였다.
원래는 아잘리의 손을 잡고 같이 뛰려 하였으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아잘리는 이미 세나, 카리나가 있는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시간을 다투는 촉박한 상황을 마주했다보니, 누군가를 의식할 여유가 없기는 했으리라.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 역시 아잘리를 따라 세나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 무렵, 카리나는 보호막을 거두고, 세나와 함께 심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심장에서의 공격이 멈추고, 나와 아잘리가 칼날을 심장에 꽂았음을 확인하면서 방어 및 공격 행동을 중단해도 괜찮다고 판단을 내린 듯했다.
그런 카리나, 세나의 곁으로 아잘리가 도달했을 무렵, 괴물 혹은 심장이 있는 방향에서 진동이 느껴졌고, 그 진동을 느끼자마자 바로 괴물이 위치한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괴물의 몸 속을 파고든 빛은 바깥으로 표출되려 하다가, 마침내 폭발하여 폭풍과 함께 공간 내부를 격렬히 진동시켰다. 폭풍이 얼마나 거셌는지, 그 폭발이 공간의 한쪽을 거의 뒤덮고, 진동이 공간 전체에 이르러 공간에 자리잡은 모두를 뒤흔들려 할 정도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폭발 이후에도 심장 형태의 괴물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폭발한 것은 심장의 앞 부분 그리고 내부의 기관일 뿐으로, 뒤쪽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검은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괴물의 남겨진 부분, 그 내부는 검은 기운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언제라도 전방 일대로 기운을 퍼뜨릴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 정도면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내부에서 분출된다고 하더라도, 보호막에서 방출되는 빛의 기운으로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어. 내가 앞장서서 방패에서 분출되는 빛으로 어둠의 기운을 밀어붙일 거야. 그러다 보면, 연기의 분출이 멈출 때가 있을 텐데, 그 때, 누구든 나서면 될 거야."
그리고서, 카리나는 내부에는 분명 핵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괴물의 남은 부분이 무력화되고 나면 핵을 바로 공격해 파괴시킬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제가 그 역할을 맡을게요." 카리나가 말을 마치자마자 세나가 자신이 나서겠음을 청했고, 카리나는 알았다고 화답했다. 이후, 카리나는 세나에게 이후의 일은 그에게 맡기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려 하였다.
"심장에 갇힌 영혼들과의 대화는 아무래도 나 아니면 세나가 맡아야 할 텐데, 나는 아무래도 아는 게 없다 보니, 나처럼 인간과 인연이 있으면서도 뭔가 아는 게 많은 세나, 네가 이후의 일에 적합할 테니까."
그리고서 카리나는 왼손에 방패를 소환하고 방패에서 빛을 방출, 그 빛으로 심장에서 분출되는 검은 연기를 막아내며, 심장의 바로 앞까지 접근해 가려 하였고, 세나가 그런 카리나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세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에 빛의 기운을 일으키니, 괴물의 핵을 찔러서 바로 핵을 파괴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 동안 괴물의 내부는 검은 기운을 연기처럼 일행 쪽으로 퍼뜨리고 있었으나, 검은 연기는 카리나가 소환한 빛의 보호막에 격렬한 빛의 반응을 일으키기만 할 뿐으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기운 분출은 멈추지 않고 있었으나, 숨을 계속 내쉴 수 없는 것처럼, 분출에도 한계점이 있을 것인 만큼, 그 때가 괴물의 마지막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카리나도 그것을 알고, 괴물이 무력화될 것임을 전제로 세나에게 핵을 파괴할 것을 지시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