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기간이 시작되면서 집에 마련해 두었던 조명 장치도 일부 거두어 창고 안에 넣어두었다. 앞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지지 않는 이상, 조명 역시 많이 필요할 리가 없을 테니. 날도 지난 때에 비하면 많이 온화해졌지만 지역의 특성이 특성이다보니 추위가 사라질 리는 없어서 남쪽 지역의 따뜻해지고 꽃이 새로 피어나는 소식을 듣다 보면 그것에 대해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웃집 건너편에 살고 있는 여자아이인 이렌테(Irente)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나의 집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를 찾아와서는 식탁에 앉은 나에게 특유의 앳된 목소리를 있는 대로 내며, 자기 자신을 남쪽 지역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잇달아 하고 있었다.
  "꽃구경을 가고 싶니?" 이에 내가 그렇게 묻자, 바로 솔직하게 꽃구경을 가고 싶다고 바로 답을 하는 이렌테. 그리고 최근에 꽃구경을 간지도 몇 년이 된 탓인지, 그는 정말 꽃이 보고 싶다고, 어린아이마냥 계속 나를 조르고 있었다-외양은 일단 어리긴 했다-. 그것도 온갖 애교를 부리면서 조르니 나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남쪽 지역에서도 꽃이 피려면 아직 이르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아직 남쪽의 지역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3 월 중순은 되어야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 때에 이렌테를 데리고 남쪽 나라로 가겠음을 알렸다. 내심으로는 나도 간만에 남쪽 지역의 꽃구경을 가고 싶었기에 그가 요청한 일을 계기로 나도 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다음 주에는 꼭 가자고 그를 달랬다.
  그 이후, 이렌테가 호수가로 놀러간 동안에 그가 이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봄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도록 종이로 봄의 풍경을 만들어 주기라도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러면서 근방에서 색이 칠해져 있으며 정사각형을 이루는 종이 몇 개를 구해와 그것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식탁 바로 앞의 의자에 앉았다.
  식탁에 앉은 후, 붉은 종이부터 칼로 4 등분한 이후에, 등분된 종이들을 다시 4 등분하였고, 이어서 그것들을 손으로 접어서 작은 꽃송이를 만들어 내었다. 그 이후, 나는 주황색 종이 역시 같은 방법으로 16 등분하고서 붉은 종이로 만든 것과는 다른 형태로 작은 꽃을 만들었고, 이어서 노란 종이와 분홍색 종이로도 꽃송이를 만들어 나의 바로 앞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풀과 줄기를 만든 다음에 그 위에 이 꽃들을 올려놓으면 되겠지?"
  그리고 초록색 종이들을 이용해 초목을 만들고, 그 위에 꽃을 하나씩 올려놓기 시작하였는데, 그 작업을 위해 많은 초록색 종이가 필요했기에 이전에 구입한 것 이외에 10 장의 종이를 추가로 구입해서 초목과 줄기를 만들기 위해 활용하며, 계속 종이를 접어 나아갔다. 이후에는 초록색 종이를 잘 구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일단 일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식탁 위에는 자그마한 풀밭이 조금씩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작고 뾰족해서 칼날처럼 보이는 풀잎, 길고 풍성한 풀잎과 같은 여러 형태를 보이는 풀잎들이 나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하나씩 풀밭의 일부가 되어갔으며 그러면서 자연의 풀밭과 전혀 비슷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풀밭의 모양새를 이루는 하나의 광경이 식탁 위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이어가다가 계속 정신을 집중하느라 부담이 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라도 잠시 작업을 중단하고서 식탁에 가만히 앉은 채, 식탁 위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정경으로 시선을 두기 시작하였다. 잠시 마음이 편해진 채로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식탁 위에 풀들이 자라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노력한 것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그 광경을 보며 바로 할 수 있었다.
  이후, 이렌테가 돌아올 때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풀들을 만들어가다가 어느 정도 풀들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꽃자루로서 미리 만들어놓은 자루 위에 꽃을 한 송이씩 달아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일을 마칠 무렵이 되자 식탁 위에 제법 훌륭한 꽃밭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됐다, 이 정도 만들어 놓으면 이렌테도 좋아하겠지? 봄 분위기를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만드는 것이 꽃이나 식물의 모습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꽃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써 북극권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을 법한 봄을 잠깐이나마 느끼고 싶어하는 이렌테가 그 모습을 통해, 봄의 느낌을 조금씩은 받으면서 앞으로 있을 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에 대한 전망을 하면서 그에 따라, 그 전망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며 식탁 위의 종이 꽃밭을 계속 꾸며 나아갔다. 물론 화초의 향취까지 재현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나의 사정 상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현관문을 통해 이렌테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식탁에 내가 만들어 놓은 꽃밭의 모습을 본 이후에 자신의 우측에 보이는 의자에 내가 앉은 모습을 보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여진 화초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는 채로 종이 꽃밭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꽃밭, 클란타 언니가 직접 만들어 낸 거야?"
  "응, 어서 봄을 느끼고 싶어하는 심정을 이렇게라도 달래보고 싶어서."
  그리고 "어때?" 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잘 만들었어." 라고 답을 하는 이렌테. 그 이후, 그는 밝게 미소를 짓는 채로 다른 집에 꽃에 관해 물어 보았는데, 아직은 꽃이 제대로 피어난 곳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서 이렌테는 꼭 꽃을 보고 싶었는데, 나의 식탁에서나마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나마 꽃구경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는 말에 이어 나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클란타 언니, 남쪽 나라로 내려가 꽃구경한지도 이제는 몇 년 됐지?"
  "응." 이에 그렇다고 답을 하는 나. 그리고 다음 주에는 꼭 남쪽 지역으로 가자는 말을 건네고서 다음 주까지 식탁에 놓여진 꽃이라도 바라보고 있으면서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이후, 지금껏 이렌테는 이따금씩 두 손을 볼 위에 올린 채, 식탁에 앉아 있으면서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한다, 그러면서 이미 몇 년 전의 일이 된 꽃구경을 다시 갈 일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말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지는 못하겠다.

  물론 북극권에 사는 사람으로서 꽃을 바라보며 봄을 항상 느끼는 일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 수 없고, 그것을 알고 있는 이렌테 역시 평소에는 꽃을 바라보는 것으로써 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 실천으로 잘 옮기지는 못한다. 하지만 북극권에 사는 사람이라고 항상 눈과 수풀 그리고 나무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이이고, 봄과 가을의 풍경이 어떠한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사계가 뚜렷한 곳에서의 체험을 해야 하겠지만 항시 그런 체험을 할 수 없다면, 봄이나 가을과 같은 계절이 올 시기에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해 보는 것은 어떠할까. 적어도 그 일이 기분이나마 그 계절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잊지 않을 수 있는 역할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도 한 번 더 시도해 볼 생각이다, 행여 이렌테가 봄의 풍경을 잊기라도 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