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꽃이 지는 날이 오더니 이제 이파리들이 곱게 피어나기 시작했네, 곧 여름이 오려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강해져 가는 태양의 힘을 받아 하늘이 점차 뜨거워지는 동안, 어느덧 꽃들도 전부 지고, 이파리들의 색이 완연한 초록색을 띠는 순간이 올해에도 찾아왔다. 올해는 유난히
추운 나날이 길게 이어져, 이런 날이 잘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참 다행이다.
그 때 마침 바람이 유난히 강하게 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바람이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를 식히고 그 대지 위에 서 있는 나에게 '시원함' 이라는 기분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그 바람을 맞으면서
꽃밭이었던 초원의 한 구역에 서 있던 나는 오른손을 오른쪽 머리 위에 올린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 머리카락을 바람이 뒤로 밀어내면서 내가 기른 머리카락이 뒤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고 있었다.
그 무렵, 루엘라(Luela) 언니가 풀밭의 한 곳에 자리잡은 돌담 위로 오른 담쟁이의 덩굴에 붙은 커다란 잎들이 이제 짙은 녹색을 띠는 광경으로 조용히 시선을 향하고 있으면서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을 잇고 있었다. 잎들에 대해 그들이 잘 자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암만 겨울이 길었어도, 설마 여기 있는 식물들이 여기까지 자라지 못했겠어?"
이에 뒷짐을 진 채, 루엘라 언니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내가 묻고서, 그에 이어 그의 우측 곁에 서 있으면서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잎이 새로 돋고, 그리고 해가 뜨거워지면 풀들이 무성히
자라게 되지 않느냐고 물은 다음에 겨울이 길었어도 시기가 조금 늦어질 뿐, 그 과정은 어김없이 진행된다는 말을 하였다.
"하기는 그렇지, 그것이 '세상의 이치' 이고, 그 이치는 특별한 과정이 없는 한 변하지 않는다니까. 인위적, 자연적으로 재앙이 일어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결국 겨울의 기운이 사라질 때가
되면 그 속에서 작은 민들레의 싹이 트고, 그 싹이 꽃을 피운다고 하잖아."
물론 루엘라 언니가 그런 세상의 이치를 모를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4 월까지 추위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길함을 항시 느끼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계속 숲 주변에
있는 화원 등지를 걱정 어린 마음을 가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라이사." 이후, 그는 조용히 돌담 왼편에 나 있는 길을 향해 나아가고, 그 길을 따라 숲 인근의 화원을 향해 걸어가려 하면서 동행하는 나를 부르려 하였고, 그러면서 물었다.
"지난 주까지 계속 피어있던 꽃들이 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어?"
그리고 꽃들이 계속 피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곧바로 나에게 물음을 건네는 루엘라 언니. 물론 어렸을 적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서 근래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기에 그저 환하게 웃을 뿐, 달리 말을 잇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꽃과 나무 등이 인격화되어 마치 사람들처럼 역사를 이끌어 가고, 그것이 왕가 본기와 인물 열전으로 이루어진 역사서의 형식으로 기록된 이야기로서,
'페샤나(Peshana)'
(1) 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전에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 꽃과 나무 등을 인격체로 형상화하여 마치 사람들처럼 역사를 만들어 가는 그런 이야기."
"나도 알고 있어, '꽃의 역사' 라 칭해지는 그 이야기, 맞지?"
이에 루엘라 언니는 곧바로 그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곧바로 내가 "응!" 이라고 화답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에 관한 설명을 그에게 이어서 하였다.
"그 이야기 속에서 마그나(Magna)
(2), 페샤나 그리고 레니아스(Lenias)
(3) 가 차례로 피어나 나라를 이룩했지만 결국 바람과 이파리 군단에 의해 무너졌다고
하잖아."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바람은 마귀, 그리고 이파리들은 그에 의해 움직이는 '녹림당' 이라 칭해지는 도적들로 칭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연에서 해마다 일어나는 현상이 '꽃들의 나라' 라는
가상의 국가가 가지는 일종의 사관에 의해 평가되어, 이파리와 바람이 '꽃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존재' 로 간주되었기에 사악한 존재로 여기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이야기에 관한 언급을 하였다.
"루엘라 언니도 그런 내 생각에 동의하지?"
"그래, 그 생각이 옳겠지." 이어서 내가 루엘라 언니에게 물음을 건네자 그는 그 말에 곧바로 동의한다는 뜻을 그렇게 드러낸 이후에 활짝 웃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대해 기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봄이 되면 수많은 꽃이 피고, 봄이 끝나면 피어났던 꽃들이 지면서 세찬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초록빛 이파리들이 무성히 자라나는 해마다
반드시 보게 되는 광경인데, 그 광경이 변해가는 모습을 마치 옛 사람들의 역사처럼 표현하는 발상은 확실히 그렇게 여기어질 만도 한데."
그 말대로였다, 꽃하면 대개 요정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아니면 꽃 자체의 모습에 관한 심상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에서 벗어나 계절이 변해가는 모습에 관한 심상을 떠올리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하기에 꽃의 모습을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모습으로, 그것도 옛 왕국의 왕과 신하의 모습으로 묘사한 발상에 관해 나와 루엘라 언니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이가 있었다, 그 이야기에서처럼 나무나 꽃의 모습을 국가를 구성하는 군주와 신하의 모습으로 묘사하려 하는 상상을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려 한 이가 바로 그. 외지
출신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꽃밭과 꽃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에 대한 비유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긴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체계도는 확실히 뒤떨어지기는 했지만, 발상 자체는 비슷했던 것 같다. 그 당시, 그 이야기를 했던 그 사람이 꽃의 역사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 무척 감탄하고 있을 진대, 지금 그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는지.
이후, 자신의 손등 위로 날아왔던 새들을 떠나보내는 루엘라 언니의 모습을 보며 내가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루엘라 언니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실제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이 있긴 있었구나." 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한 다음에 그런 발상을 가진 이는 현재의 세상에서는 드물기에 바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을 것 같다고 여기어진다는 추측을
하고서 나에게 그 사람 역시 그러하였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부터 그렇게 생각했기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저 평온하기만 한 푸른 하늘 아래로 한 무리의 작은 새들이 풀밭으로 날아오고, 그와 더불어 세차게 부는 바람에 의해 길 양 옆으로 펼쳐진 밭의 풀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며
초록빛 무늬를 그려내는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자연은 하나의 이치를 따라 여름이라는 계절의 시작에 나타날 수 있는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 - 목련
(2) - 모란
(3) -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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