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 6. 05 - Lily Lechra


  저의 이름은 릴리 레크라. '레흐라' 라 칭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저의 칭호는 '혼을 찾는 자' 로서, 주업 역시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헤매는 옛 혼들의 처소에서 혼들을 불러와 그들을 위로하고 대지에서 올려보내는 역할을 맡고 있지요. 이제 6 월이 되면서 원혼들의 움직임이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저의 일거리 역시 많아져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극심히 바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6 월 중순까지는 일이 바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요 며칠 전에 문제 사항에 관한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시기는 5 월 말, 한창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의 당시에 하나의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저의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답니다.
  들어온 일은 근방의 유적에서 하나의 헤매는 혼이 나타나 마을 인근에 저주를 가하고 있다는 소문에 관한 일로서, 그 혼을 정화하고 하늘로 올려보내는 것이 그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의뢰가 들어오면서 벌써부터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혼이 저주를 내린다는 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떠한 혼이기에 저주를 내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지 확인이나마 해 보기 위해 일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주어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 혼의 소재지가 자주 변동되고 있었기에 자주 다니는 곳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부터 큰일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곧 나는 그 혼이 다르시스의 숲, 그 서부 지역에 있는 어느 유적지를 헤매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유적지로 나아가게 되었답니다.
  마치 예전에는 허름한 집들이 모인 것처럼 보이는 유적, 그 유적의 어느 집 앞에는 하얀 천을 둘러쓰고 머리에 천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두건을 둘러써 얼굴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답니다. 그 모습이 희미해 그 형상이 영혼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지요.
  그 영혼의 두건이 드러내는 그림자 사이로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타오르고 있었어요. 뭔가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격렬한 증오심을 그 모습을 보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증오' 를 가지고 저주를 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작정 사악한 존재로 간주할 수는 없었어요. 무언가 자신이 부조리에 의해 피해를 입어서 그렇게 되었는데, 그를 처단한다면 원래는 선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악인으로 간주되어 심판을 받아 고통에 처하게 된다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압하는 일은 필요했어요. 그의 행동을 멈추어야 그를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문제는 그 일이 제 마음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있었지요. 그는 저의 그를 붙잡으려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잡히려 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결국 유적을 떠나 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 갔어요. 그 필사적인 모습이 마치 잡히면 억울하게 지옥으로 끌려가, 끝을 맞는다고 생각하는 듯해 보이는 면모를 보이고 있었답니다. 물론 저의 의도는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요.
  자세한 이야기를 적으려면 분량이 많아질 수 있고,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바도 있어서 곤란하지만,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그 원혼은 다르시스를 벗어나 그 남부 지역에 이르렀다가 그 곳의 유적지를 돌아다니고 있었을 어린 마녀를 납치하려 하였고, 이어서 원혼이 검은 기운의 형상으로 변해가며, 마녀의 몸 속으로 들어가려 하자, 몸 속에서 그 혼을 겨우 빼내면서 제압하였고, 이후, 저는 의뢰를 받으면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혼의 악한 기운을 녹일 수 있는 물을 영체에 뿌려 검은 기운이 그 물에 녹아 검은 액체의 형상으로 주변 일대로 흘러가도록 하면서 겨우 혼의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그 원혼은 놀랍게도 붕대로 감싸여져 있었으며 두 눈만이 노출되어 있었어요.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죽은 이후, 그 시신이 붕대에 감겨지고, 이어서 천에 감싸인 채, 매장되었다고 봐도 될까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누워있는 혼의 바로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고, 혼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한 이후에 다시 의식을 찾은 혼으로부터 원한을 품은 계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였지요.

  그의 고향은 본래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당시 그 일대를 통치하던 자들이 그 고향을 '지역의 정화' 를 명분으로 무참히 짓밟고 마을에 살던 사람들 역시 무참히 학살해 나아갔다고 합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병사들이 짓밟은 마을에 어느 귀족의 대저택이 건설될 계획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마을을 파멸시키고 그 자리에 한 개인의 저택을 세우려 한 일이 발단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 역시 저항하려 하였지만 갑주와 도검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힘을 이길 수 없었고, 결국 체포당했다가 마치 미라처럼 붕대에 감싸여지고 그 몸이 천으로 다시 한 번 감싸여진 채, 관 속에 가두어져 어느 도시의 공동 묘지에 매장되었고, 그로 인해 그 혼이 몸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 원한을 잊지 않은 데다가 학살당한 이들의 영혼이 지옥으로 갔다는 소문이 돌자 분노를 느끼며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탈주, 그 길목과 이어진 세니티아의 다르시스에 머무르게 된 일이 그가 다르시스에 머무르게 된 경위라 칭할 수 있어요.
  결국 일은 해결이 되었고, 그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음이 인정되어 하늘로 오를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지금도 제가 모르는 다른 곳에서는 억울한 혼들이 원망의 감정을 가지고 세상을 떠돌고, 또 원한에 의한 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답니다.

  저주를 가한다는 등의 악행이 있으면 심판으로써 대가를 받아야 함은 마땅하고, 또 그들이 명백한 악인일 경우에는 철저한 심판을 받아야 함은 또 분명하겠지만, 그들이 악인임이 명백하지 않을 경우라면, 왜 원한을 품고, 세상을 저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세상이 들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은 비록 사후에 저주라는 이름의 악행을 저질렀다지만 근본까지 악하지 않아요. 이런 이들에게 무작정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사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심판이 원한을 청산해 주지 못하고, 원한을 가진 이들의 행동과 그 결과만을 바라보려 한다면, 원한을 품은 혼들은 심판을 거부할 것이고, 그것에 대해 사후 세계가 응징으로만 일관하려 하면, 그런 사후 세계로의 진입을 거부한 혼들이 그들의 심정을 대변할 존재를 찾는 일이 계속 발생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런 이들을 '악마의 세계' 가 이용하여 정말 그들이 사악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비극으로 전개될 수 있겠지요.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어 도망의 길을 통해 떠돌거나 도적이 되는 길을 택하고, 도적이 된 이가 본성은 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리의 영향을 받아 심성 자체가 서서히 험악해져 간 이후에는 몇몇 사람들의 소유품-심지어는 목숨까지-을 빼앗고, 더 나아가서는 크나큰 무력 행사를 저질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약탈을 서슴지 않는 무리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는 원리가 그것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악마의 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망과 증오입니다. 즉, 악마들은 인격체가 가질 수 있는 원망과 증오를 이용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원망과 증오는 가급적이면 지상 세계에서 해결을 봐야 함이 옳겠지만 그러할 수 없다면 저승에서라도 청산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러한 공정함은 사후 세계에서 더욱 중요할 거예요, 인간의 세상에서는 다시 심판을 받을 수 있지만 사후 세계의 심판은 단 한 번만 이루어지며, 그 결과가 영혼의 앞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니까요. 특히 악마는 사람의 삶을 해치는 데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현상 세계에 도적이 나타나는 일을 줄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할 거예요.
  그와 더불어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낸 사악한 자에 대한 처단 역시 보다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며, 그 과정 역시 공정하게 이루어져 어떤 이의나 변명도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해야 할 필요도 당연히 있어요, 그래야 죽은 이후에도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겠지요.

  원한을 가진 혼들이 근래 들어 많아지는 것 같아, 저승에 바치는 공문 형식으로 써 봤다.
  그런데, 이 글을 저승에 바치면 저승의 관리자는 이 글을 읽어보려 할까? ......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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