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전의 세찬 비 이후로 찬 바람이 하늘 위에 머무르기 시작하여, 날씨가 변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차가워지기 시작한 바람에 의해 계절 분위기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으면서 마을의 집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아스테르(Aster) 꽃밭과 미라빌리스(Mirabilis) 꽃밭도 그 분위기를 느끼려 하는 듯이 화창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으며, 나뭇잎들은 여전히 초록색 이파리들을 보이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 색이 노랗게 변할 듯 싶었다.
  "여기에도 가을이 오기는 왔네, 평생 오지 않을 것 같더니."
  북반구의 적도 지대와 상당히 가까운 곳인 페란타(Feranta). 열대에 가까운 기후 조건을 갖춘 곳으로서, 한 번 찾아온 여름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고 알려진 이 곳도 시간이 지나니 가을 분위기를 완연히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그 바람이 나뭇잎들을 연신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으며, 그 바람에 지나치게 흔들리기라도 했는지, 나무에 매달렸던 열매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가을이 왔음은 곧 추운 계절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추운 계절이 온다고 해도, 지상에서처럼 활동을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겨울철에 있는 대대적인 고기잡이에 대한 대비를 미리미리 해 놓고 있어야 했다. 짧으면 2 주에서 길면 한 달 간의 고기잡이 기간을 대비할 수 있는 식량 확보나 선박의 정비를 미리 해 놓고 있어야만 앞으로 있을 활동에 무리가 없다. 이 날부터 3 일까지는 그 가을 정비 기간이 오기 전에 잠시 동안 주어진 휴식기간인 셈이었다.
  마침 할 일도 없고 하니, 뱃놀이나 가자는 생각에 배를 하나 마련해 와서는 그 배에 타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바다의 수온이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는 때였지만, 아직까지는 심할 정도로 차가워지거나 하지는 않아 배가 좌초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바다의 상당히 깊은 곳까지 나아가면서 주변 일대의 무인도들을 한 번씩 둘러보고는 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혼자 배를 타고 다니면서 둘러보았던 곳들인지라 이제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들르게 된다. 아무래도 그 곳과 나름 정이 들기라도 했나 보다.

  그렇게 배를 잠시 몰고 오다가 그 배를 모래 사장 위에 올려놓은 이후에는 자주 가던 서쪽 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본의 아니게 본래와는 반대로 남서쪽에서 중앙 거리로 나아갔으나, 그래도 이상할 일은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어 새로 생겨날 것이 없어진 곳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거리의 모습은 이전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길의 어느 한 구역에 새로 건물을 짓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이 이전에 내가 거리를 걸었을 때와 비교해서 차이가 날 만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건물이 철거된 흔적만 보이더니, 한 주 더 지나자, 기반이 만들어지고, 더 지나자 목조 골격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벽돌로 구성된 전체적인 틀이 만들어져 가고 있었으니, 이대로 몇 주 즈음 더 시간이 지나게 되면 네모난 건물 하나가 그 곳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터였다.
  세워질 건축물은 암만 봐도 상점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 곳은 언덕길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길 위가 아닌 그 건너편에 새로운 한 층이 마련되니, 총 3 층의 상점 건축물이 세워질 터였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그 자리에 본래는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 떠올려 보려 하였다, 나 자신도 한 때는 그 구역을 자주 드나들고는 하였으니, 새로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 보였던 광경 역시 기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던 탓일까, 그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주택 건물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라는 명확하지 않은 기억 하나가 자리잡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일지, 새로 건축물이 세워지는 모습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전에 있던 건물이 무슨 사정에 의해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자리를 내 주었는가에 관한 의문과 이전에 지어졌던 건물을 자주 보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적어도 그 건물이 과거에는 무엇이었는지, 그것에 관한 기억을 할 수 있었더라면, 사라진 건물에 대한 안타까움의 마음이나마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새로운 건물에게 자리를 내 주는 건물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거리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다. 내가 본 광경도 전체의 모습이 가질 수 있는 자그마한 변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신은 하늘에 있고, 세상은 언제나 평화롭게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평화의 그림자 속에 있는 이들은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사라진 건물에 살고 있거나, 건물에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이들이 그러한 이들이리라. 이들에 대한 관심 역시 필요하며, 이들이 불편하게 잊혀지지 않을 수 있도록 이들에게 행복을 다시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약점을 돌아보지 않는 기계는 언젠가 큰 피해를 입게 되고, 그림자를 돌아보지 않는 세상은 언젠가 그로 인해 재앙을 겪게 된다. 진정한 평화는 그림자에 사람이 있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어느덧 나는 바다로 이어지는 수로의 바로 앞에 위치한 하얀 다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제 집과의 거리도 상당히 가까워진 편이라 칭할 수 있다. 이는 즉,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볼 수 있었던 여러 친숙한 광경들을 지나쳐 갔음을 의미하고 있다. 여러 생각을 이어가며, 거리의 광경을 바라보는 것인데,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앞으로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루마라(Lumara)' 와 만날 일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면서 다리를 건너가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