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때가 그렇게 된 만큼, 낮의 길이도 어느새 많이 늘어나, 이제는 18 시를 넘어서야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지만 봄이 오기를 시기하는 겨울 기운의 막바지 기세가 드러나고 있는 탓에 날씨는 여전히 추운 편이다. 하지만 지난 1 월 말 즈음의 강풍과 대기의 차가움이 어우러진 추위는 아니고, 순수하게 바람에 의해서만 추위가 느껴지는지라 그 때에 비하면 많이 양호해진 편이다.
  "어디 보자, 온실 안의 묘목들은 잘 있으려나."
  찬 바람이 몰아칠 무렵, 마침 생각난 바가 있어서 바로 마을 인근의 온실에 접근, 그에 이어 온실의 대문을 열고, 그 안에서 따뜻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묘목들의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였다.
  북쪽에 위치한 다르시스 숲을 향하는 마을 인근에 위치한 유리막으로 만든 작은 온실로서, 항시 따뜻한 기운을 공급하고, 그 기운이 대기에 여느 봄 날씨에 근접한 수준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었기에 바깥 세상이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 다시 추워질 무렵에도 그 곳은 항시 따뜻한 봄날을 맞이한 듯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 좌측 한켠에는 내가 심어놓은 묘목들과 그 묘목의 뿌리를 덮고 있는 갈색 흙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온기와 양분을 한껏 받으며 묘목들은 어느새 내 키의 반 정도까지 자라나고 있었다. 이 상태로 나무를 심을 예정인 3 월 중순까지 놓아둔다면 분명 내 키의 2/3 정도까지는 자라날 수 있을 것임에 분명해 보였다.
  내가 심어 놓은 묘목은 모두 7 그루. 그 뜰의 흙 넓이라면 묘목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한, 30 그루까지는 심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드문드문 심어 놓어야 묘목의 더욱 충실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나무를 한 번에 많이 심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의 없이 대충 심었다는 생각을 불러오기에는 충분해 보이기는 했다.
  그 묘목의 바로 앞에 이르자마자 나는 바로 가운데의 묘목 바로 앞에 앉아, 좌우로 눈을 돌리며 묘목들의 상태를 한 번씩 둘러보았고, 그러면서 짧은 치마의 왼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작은 책자와 필기구를 들어 책자에 필기구로 상태를 기록하였다. 물론 온도와 날씨 그리고 나무 줄기의 길이 정도로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확인해 보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어떻게 성장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일로써 나름 의미는 있었다.

AR 492 년 2 월 19 일
날씨는 맑고 기온은 대략 8 도 가량.
1 번부터 7 번까지 나무들 대략 5 단위 정도 성장. 나름 무난히 자라나고 있다.

  "사르타, 묘목 상태를 보고 있는 거야?"
  "응, 지금까지 얼마나 자랐는지 한 번 봐야 할 필요는 있잖아?"
  잠시의 기록을 마친 후, 다시 묘목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 할 무렵에 누군가가 건네는 물음에 나는 물음을 건네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묘목들에 시선을 둔 채, 바로 답을 하였다. 그 때, 그런 나에 대한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물음을 건네었던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를 만나자고 이렇게 왔는데,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을 하면 어떡하니?"
  제법 큰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묘목에만 시선을 두고 있던 나 역시 바로 고개를 돌려 뒤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눈앞에 나타나는 한 사람의 모습. 긴 녹색 머리카락과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이로서, 그 옷차림은 길고 넓은 소매와 발목 부근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로 이루어진 하얀 옷과 상의 그리고 하의를 잇는 역할을 행하는 연두색 리본의 남은 부분이 치마 앞쪽의 우측 부분을 따라 늘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옷차림을 한 채, 소녀는 가만히 허리를 굽힌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묘목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있었던 거야?"
  마티아(Matia) 가 나를 내려다보며, 물음을 건네자, 나는 바로 그에게 시선을 향한 채, 그렇다고 화답을 하였다. 이후, 나의 귓가로 들려오는 마티아의 조소 섞인 목소리 :
  "너무 안 심었다, 30 그루 심을 수 있는 땅에 7 그루가 뭐니?"
  그리고 4 그루 분의 영양을 나무가 더 섭취할 수 있도록 내가 배려를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후, 마티아는 나에게 "일어나." 라고 말을 건넨 다음에 "같이 갈 곳이 있어." 라는 말을 건네어 더 큰 온실로 가자는 말을 건네었다.
  "나하고, 아미에라(Amiera) 언니 그리고 밀리아(Milia) 언니가 남쪽 인근의 화원을 꾸미기 위해 마련한 수정 조각들로 꾸민 구조물들 구경을 조금이라도 하자."
  그 무렵, 아미에라 언니 그리고 밀리아 언니는 마을 인근의 화원에서 가공하지 않은 형형색색의 수정 조각들을 다소 날카롭게 다듬어 여러 형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록색, 붉은색 수정들을 이들이 찾아내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로 인해 화려한 모습이 구성되었던 것 같다.
  길을 가는 동안 나는 왼편 옆에 있던 마티아에게 물어, 이들이 어떻게 형형색색의 순수한 수정 조각들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내려 하였다. 물론 이들도 나름 노력은 했겠지만, 이들 만으로 희귀한 수정 조각들을 찾아내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성계에서 '만능 재주꾼' 이라는 별칭을 가지며 나름 유명해진 '루마 카란다' 라는 이름을 가지는 사람. 그러면서 그 이름을 거론하며 바로 물음을 건네었으나, 마티아의 대답은 그런 나의 예상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요정의 나라에서 얻어온 수정들이래."
  그리고 밀리아 언니가 직접 요정들에게 요청해, 수정들을 요정들로 하여금 물들여 화원을 꾸밀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언급을 바로 나에게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