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라는 것이 금방 익숙해지지 않는다지만 새해가 시작되고, 두 번째 달이 끝맺을 무렵에는 적응의 여부를 떠나 누구나 새해가 왔음을 온전히 수긍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4 계의 시간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봄날을 맞이하고, 여름을 기다리며 새로이 다가온 한 해는 어느덧 현재의 한 해가 되는 것이다.
  이제 2 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날-장소에 따라 다르다, 특히 근래 들어 이 시기가 되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가 있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기에는 무리일 경우가 잦아졌다-이 오는 만큼, 이에 대비하는 일이 필요해졌다.
  뒤뜰에 심을 꽃씨를 구하기 위해 라이나 언니의 집을 찾아갔을 무렵, 라이나 언니도 자신의 거처 내부를 다시 꾸미고 있었다. 아니, 사실상 새단장을 하고 있었다. 집의 모든 기물들이 밖에 나와 있었으며, 한창 라이나 언니가 직접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는 집 내부는 거의 비어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라이나 언니는 '관찰자' 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마을과 그 주변 일대의 세상을 관찰하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이들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역할을 맡는 이였다. 그 대상은 마을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해 마을 일대의 수풀 전체의 나무와 식물들 그리고 숲에서 살아가는 새들과 곰을 비롯한 각종 동물들도 포함되며, 이들이 조금이라도 불안한 움직임을 보일 경우에는 바로 마을에 수상한 조짐이 있음을 알린다.
  식물이나 동물들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은 그 주변 지역 일대에 무언가 일이 일어날 조짐과 반드시 연관이 된다는 것이 라이나 언니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먼 옛날 대륙 동부의 어느 지역에서는 북방에서 침략자의 대군이 밀려올 때, 마을에 살던 학들이 떠나간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먹이를 찾는 등의 목적으로 멀리 나아간 이들이 그 방향에서부터 위험이 다가올 조짐을 느꼈는지, 아니면 다른 모종의 원리가 있어서 그 원리에 의해 감정이 움직이는 탓인지 그렇게 동물들이 유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면 꽤 높은 확률로 숲 일대에도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고는 한다. 지난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도 숲 일대를 거닐던 사슴들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었으며, 그 때 라이나 언니가 이 움직임을 포착, 땅의 지반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하였고, 이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대비를 바로 행하여 사람들만큼은 무사한 적도 있었다-다행히 지진 역시 강하지는 않아 대다수의 건물들 역시 무사했다-.
  원래 일은 이러하지만, 일이 없을 경우에는 주변 일대에 꽃씨를 흩뿌리고 꽃씨에서부터 태어난 화초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그 중에는 진귀한-바람의 정령들이 거주하는 구역인 엘젠 산맥 일대에서 발견되는 꽃도 있다- 꽃도 많이 있어 그로부터 꽃을 얻어오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이번에 꽃씨를 받을 생각이었다. 이후로는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가급적이면 빠른 시기 내로 꽃씨를 받아오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이나 언니가 그런 사정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바로 꽃씨를 받아오기는 힘들어 보였다.
  '뭐, 꽃씨는 이후에 받아와도 되니까.'
  그를 기다리는 일은 포기하려 하였다. 어차피 꽃씨를 심는 일은 3 월 중에 해도 되며, 3 월 초에는 당분간 바쁜 일이 없으니, 그 기간 도중에 씨앗을 얼마든지 받아올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라이나 언니의 거처에서 돌아가려 할 때, 등 뒤에서 라이나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르야사로구나, 꽃씨를 받으려고 온 거니?"
  "예!" 그리고 잠시 일을 멈추고 다가온 라이나 언니의 오른손에는 꽃씨가 안에 들어있을 법한 작은 천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꽃씨가 필요하다면 바로 찾아와서 부탁의 말이라도 전했어야지, 그 곳에서 가만히 있으면 되겠니?"
  이후, 언니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건넨 다음에 오늘 내가 자신에게 꽃씨를 받아오기 위해 찾아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음을 밝히고서 나에게 손에 놓여 있던 그 주머니를 건네었고, 이에 나는 두 손으로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다음부터는 언제라도 부탁하고 싶은 바가 있으면 찾아오렴, 일이 있어도 부탁만큼은 들어 줄 테니."
  이후, 그는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렇게 부탁의 말을 전한 다음에 차분히 서 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한 동안 떠나려 하지 않자, 바로 오른손을 위로 내밀더니, 조용히 흔들면서 작별 인사말을 건네었고, 그제서야 나는 떠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