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아르나이(Arnej) 를 찾았다가 거리를 지나는 도중에 이전까지 줄곧 공사중이었던 건물이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건물의 터가 자리잡기 시작한 지 대략 3 개월 즈음 지난 시점에 이르면서 이제 새 건물은 건축물다운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줄곧 뼈대만 만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새 여기에 이르렀구나."
  이전에 무슨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옛 분위기가 나는 3 층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있었다는 기억 정도만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그에 비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 건축물은 다소 각진 모습에 표면이 반짝이는 돌로 이루어져 있어서 매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거리의 서부를 거친 끝에 아르나이 교외 인근의 호수가로 나와서는 아직 싸늘하기만 한 바람을 맞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한 번씩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밤이라서 그러한지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뭇가지마다 내 키의 2/3 정도 되는 높이를 가지는 나무들은 가지마다 초록빛 이파리들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근방의 나무들 역시 하얀 꽃봉오리를 드러내며 꽃을 피워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은 힘들겠지. 하지만 날이 보다 따뜻해지면 금방 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겨울의 기운은 은근히 끈질긴 데가 있어서 봄이 오고 날이 길어져, 이제 떠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처음 피는 꽃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런 끈질긴 겨울의 기운에 의해 발생하는 바람을 맞으면서 피어나야 함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꽃봉오리로서 여타 꽃들보다도 오래 머무르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남쪽 지역은 이미 꽃들이 다 피어났었지? 아직이라 생각했는데, 따뜻한 곳이라서 그런지 역시 시기가 빠르기는 빠른 것 같아."
  그러다가 문득 남쪽 지역에서는 이미 꽃이 피어날 때가 되었고, 그래서 꽃과 관련된 축제 준비가 한창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따뜻한 기운이 먼저 다가오면서 봄의 기운이 금방 찾아와 꽃을 피워주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봄의 기운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간 곳이 생겼음에 대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곳으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다시 생각이 나서 바로 발걸음을 옮기어 이전의 거의 완성되어 가던 그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저 건물의 터가 생성되기 시작한 때가 1 월이었지, 아마?"
  건물을 새로 짓기 시작한 시기는 겨울이 한창 진행될 즈음. 그러다가 3 개월이 지나고, 마침내 봄 기운이 겨울 기운의 빈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할 즈음에 건물은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되었다. 물론 건물의 완성은 짓는 이들의 의지에 따른다지만 봄 기운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즈음에 완성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 왠지 절묘하게 이들에게 접점이 생겨날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다시 아르나이의 중심 거리로 나아가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봄이 다가올 시점에서 완성되어 가는 건물의 모습을 보며, 이들을 통해 연상할 만한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겨울의 한 가운데에 해당되는 시점에서 건물을 짓기 시작해, 터를 구성하고 그 위에 주춧돌을 올려놓아 기반을 삼고, 그 기반 위에 뼈대를 구축한 이후에 외형을 조금씩 구성해 가다가, 봄이 될 무렵에 온전한 건축물의 형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물론 환경적인 요인 등의 원인이 있어서 도중에 쉴 때도 있었겠지만,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매주마다 조금씩 변화해 가는 건축물의 구성에 있어서 공백 기간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겨울에 짓기 시작한 건축물이 봄이 되었을 때에 완성을 볼 수 있었음은 곧, 이 건축물을 짓기 위한 노력이 봄이 되었을 때에 결실을 맺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 이 시점을 넘어 봄이 끝날 무렵이 되어도 건축물은 겨울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 중에서 그 일부인 만큼, 세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사람들이 모종의 원인에 의해 세상에 다가온 '겨울' 의 모습을 떠나 보내고, 세상을 '봄' 의 모습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세상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늘' 과 '대지' 그리고 '인간'. 이에 대해 나는 이 중에서 하늘은 기상 현상을 비롯한 하늘 그 자체요, 대지는 자연과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 그리고 인간은 하늘 그리고 대지와 함께 존재하는 스스로 사고하고 그 사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인격체들에 비유된다고 알고 있다.
  하늘과 대지의 사계는 정해진 기간마다 찾아오지만, 인간의 사계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겨울이 한 번 찾아오면 3 년, 5 년 심지어 10 년 이상 동안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인격체 세계의 겨울을 부르는 '겨울의 화신들' 은 인격체들이 노력을 가해야만 세상에서 쫓겨나 그 자리를 '봄의 화신들' 이 차지할 수 있다. 인격체들의 노력이 없으면 겨울의 사자들은 세상을 떠나가지 않는다, 이것이 하늘 및 대지에 자리잡는 겨울의 정령들 그리고 인격체들의 세상에 자리잡는 겨울의 사자들 사이의 차이점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봄과 여름의 화신들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의 봄, 여름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으며, 이 역시 인격체들이 얼마나 현명하게 사고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런 겨울의 화신들은 대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을 굳고 강한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지만, 겨울만 계속되는 세상에서는 어떠한 생명체도 살 수 없듯이, 겨울만 계속되는 세상은 언젠가는 피폐해지고, 결국에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겨울을 피하고, 봄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치에 의해 인격체들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겨울의 화신들을 쫓아내고 봄의 화신을 불러오기 위한 노력이 가해진 사례는 계속 나타났고, 또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에 대해 내가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겠지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
- 세상을 바꾸고 겨울의 사자들을 몰아낼 바람을 일으키는 일은 분명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고, 이치에 맞는 만큼 옳은 일이다. 이런 바람으로 인해 사람들이 괴로움을 호소하지 않도록 해 달라. 겨울을 몰아낼 바람이 고통을 불러올 바람이라면 그것이 겨울의 바람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옛말에 '괴물과 싸우려 할 때,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라'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것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일 따름이므로 무언가 잘못된 바가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놓고 나니, 어느새 나는 중앙 거리의 내가 자주 들르는 찻집에 이르고 있었다. 그 찻집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찬 바람이 부는 와중에 짧은 소매를 가진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려 하니, 따뜻한 음료가 고파져 그런 나의 마음이 발걸음을 찻집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홀로 탁자에 앉아 초록빛 음료를 즐긴다. 근래에 만들기 시작했다는 녹차에 우유를 섞어 만들었다는 음식. 생각 외로 달착지근한 맛이 나의 입맛에 맞는다. 달콤함과 씁쓸함의 조화, 왠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누군가로부터 받은 카카오 제품도 대략 그런 맛이 났는데, 꽤 맛 좋다고 생각을 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