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구나."
  세리사 꽃들이 하나둘씩 지고 있을 이 날, 조금이라도 꽃들의 모습을 더 보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다가, 잠깐 오늘의 시각이 어떠한지를 살피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점심을 먹은 후, 1 시간 정도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는데, 어느새 시각이 15 시를 지나 그 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간 거야? 시간 측정 장치가 고장난 것은 분명 아닐 텐데."
  너무도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런 시간 측정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항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이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여러 풍경을 감상하면서 그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겠지만, 극 지방에 거처를 둔 나는 이 풍경을 언제나 항상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지는 않으니까.
  "온실 같은 것이 있어서 그 곳을 통해 꽃을 항상 바라볼 수 있다면....... 그래도 역시 뭔가 아니야."
  하지만 흩날리는 세리사의 꽃잎 사이를 지나면서도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우울해 하고 있다 보니, 꽃이 아름답게 흩날려도 마음에 잘 남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화초들을 온실에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온실도 극 지방의 차가운 대기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인공적으로 마련한 환경에서 자연에서 보는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을 그대로 가질 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이런 나의 소망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었다-아니, 포기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길가에는 노란 포르세아 그리고 연분홍빛 세리사 꽃들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짙은 분홍색을 띠는 아잘렌(Azalen) 역시 길가에 꽃송이들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길다란 꽃봉오리들이 하나씩 흩어지며 마치 수정조각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곧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중에는 정말로 피어난 아잘렌 꽃들도 있었으며, 이 꽃들이 봄의 절정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꽃 앞에서 뭘 그렇게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즐길 때에는 즐기고, 고민될 사항이 있다면 당장에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돌아가면서 생각해 보든가 그래야지."
  그 때, 뒤에서 보라색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가 팔짱을 낀 채, 나에게 다가오며 그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는 하얀색을 띠는 긴 소매를 가진 옷과 보라색 긴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서 온화한 표정을 짓는 채,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란(Miran). 이번 여행에 같이 참여한 이로서, 봄꽃들의 모습을 한껏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내, 기어이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내가 일을 보는 동안 미란은 숙소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는데, 항시 집 안에만 머무르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봄꽃을 마음껏 볼 수 있으니까, 좋긴 좋았지?"
  이후, 미란이 좌측에서 나와 동행하기 시작할 무렵, 이렇게 나에게 물음을 건네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화답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 미란은 나에게 곧 생일이지 않느냐고 묻고서, 생일을 대비해 자신이 마을에 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빵부터 시작해서 여러 요리들을 만들어 놓아 달라고 마을 측에 부탁을 했음을 밝히고서 바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이어갔다.
  "3 일 후면 네 생일이잖아, 그 때를 대비해 달라고 부탁을 한 거야."
  그리고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 이후, 그는 바로 나를 이끌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꽃과 함께 뭐라도 즐겨 보자는 말을 건네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좌측에 커다란 꽃나무가 자리잡고 그 꽃나무 위로 수많은 아잘렌 꽃송이들이 피어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중에는 일찍 피어난 '언니들' 도 있었으며, 나무 크기가 큰 만큼, 그 수도 꽤 많았다.
  때로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 하루의 남은 시간이 너무 적어졌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 물론 하루의 남은 시간이 너무 적어져 날이 어두워졌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러하지 않다면, 특히 14, 15 시 즈음이라면 그렇게 적게 남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시간에서 밤이 될 때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3 시간에서 4 시간 가량. 그 사이에도 얼마든지 보람된다고 여길만한 일을 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미란과 함께 꽃 구경을 하면서 18 시까지 꽃 사이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꽃 구경을 하였으며, 그 와중에 풀밭에 피어난 꽃을 이용해 각종 장난감을 만들어 그 장난감들을 이용해 재미나게 놀았던 적도 있었다-이제 막 피어났을 꽃들에게는 무척 미안한 일이었지만-.

  본래 시간 보내기란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아잘렌은 지금껏 보아왔던 꽃들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축에 속하는 편인 그런 꽃이다. 항간에서는 마란(Maran) 이라는 대륙 동방의 분홍빛 꽃이 가장 아름다워 이를 '꽃의 왕' 이라 칭하는 경우도 있다하나, 내가 보기에는 그 꽃은 기대한 바를 미치지 못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