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이 오기도 해서, 남방 인근의 섬에 놀러갔고, 그 섬의 해안 인근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실은 돌아갈 배를 마련하지 못해서 배를 요청했는데, 그 배가 다음날 아침이 도착한다고 하니-, 먹을 것 마련을 잘 한다는 루페리아(Ruferia) 도 같이. 다행히도 내가 마련한 근거지의 근방에 위치한 야자나무들마다 많은 야자 열매가 열려 있어서 다행이었다, 배가 고플 때에 그 야자 열매의 즙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 밤도 겨우 야자 열매를 구해서 이를 저녁거리로 먹을 수 있었는데, 수영은 누구보다도 잘하지만, 나무에 오르는 것에는 익숙치 못한 나와 루페리아를 위해 인근에 사는 어느 인간 아저씨 분께 도움을 받아서 먹는 일이 가능했다. 친절하게도 한 사람 당 열매 한 개씩 전해 주셨는데, 올라가는 솜씨가 야자 열매를 주로 먹는 섬의 유인원 못지 않았다, 아니 능가했다.
  열매를 까서 그 안의 즙을 마련하는 일은 내가 전담하였으며, 구한 두 개의 야자 열매를 직접 칼로 그 표면을 깎아내어 두꺼운 표면을 채우고 있는 투명한 과즙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였다. 열매의 즙은 마치 물처럼 투명했지만 희미하게나마 새콤달콤한 맛이 있어서 시원함을 채워주는 이상의 기분을 마시면서 느낄 수 있었다. 아래의 대화는 모닥불 아래에 야자 열매 즙을 마시면서 주고받은 대화 중 일부이다. :

나 : 그래도, 다행이다. 그 아저씨 분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했겠어, 야자나무 앞에 두고.
루페리아 : 어쩔 수 없지 않아, 열매를 앞에 두고 굶을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올라가야 함이 옳지.
나 : 그건 맞다, 나라도 어떻게든 올라가려 했었을 것 같아.
루페리아 : (열매 안의 즙을 잠깐 들이킨 후) 아무튼, 이런 곳에 오지 않으면 이런 맛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음에는 인근의 친구들도 불러와서 이 곳에 오게 하자.
나 : 재미있는 제안이야, 먹지 못했던 것도 먹고, 체험하지 못했던 것도 체험하고. 그런 일을 통해 경험을 늘리고, 수영 실력도 키우고.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루페리아 : 내일 아침이면 배가 온다니까, 하룻밤 지내고 나면 그 때 배 타고 가면 될 거야. (문득 생각이 난 듯이) 아, 그 전에 우리, 야자나무에 어떻게든 올라가서 열매들을 몇 개 따 가자. 친구들과 함께 하나씩 먹게.
나 : 올라갈 방법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겠지.
루페리아 : 그래, 그 일은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나 : 그 동안은 내가 뭐라도 잡아올게, 물고기라든가. (문득) 아, 맞다. 아저씨께서 밤에 야자나무 위로 올라가는 건 위험하다고 하던데.
루페리아 : 왜? 밤중에 뭔가라도 있는 거야?
나 : 밤중에 야자나무 위로 올라가 열매를 먹는 괴물이 산다고 해서....... 그 괴물에게 잘못 당하면 손가락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
루페리아 : (짜증스러워하며) 그런 괴물들이 이 섬에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 : 응, 이 섬에 여러마리가 있대, 그래서 밤중에 야자나무 숲을 지나다 보면 검은 이상한 괴물의 형상들이 곳곳에 보이는 광경을 보게 된대. 당연히 그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나무는 올라갈 수 없고.
루페리아 : 검은색을 띠고 있겠네? (가만있다가) 잠깐, 그 괴물을 잡아서 죽일 수는 없을까, 잡아서 죽이면 그 야자나무의 야자도 얻을 수 있고, 괴물도 잡아서 구워서 먹든가 할 수도 있잖아. (조용히 생각 중) 에리사, 그 괴물은 무엇과 가장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혹시 들은 적 있어?
나 : ....... 모양새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는데, 소라게와 닮은 것 같아 보이더라. 검은색을 띠고 소라게처럼 생긴 괴물을 보면 잡든지, 아니면 다른 야자나무를 찾든지 하면 될 것 같아.
루페리아 : 맛은 있을까?
나 : 모르겠어, 하지만 소라게의 일종이라면 그렇게 맛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 뭐, 야자 열매 먹기 전에 먹고, 야자 열매의 즙으로 입가심하면 되겠지.
루페리아 : ....... 무기는 들어야겠지?
나 : 당연하지, 손으로 어떻게 하려 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문득) 가만, 그 괴물은 육지에서만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대, 그 아저씨께서도.
루페리아 : 물에 들어가면 호흡을 못해 죽는다던가 그런 거 아냐?
나 : 그러하겠지, 육지에서만 돌아다닌다면. 소라게 중에는 그런 종류가 있으니까, 분명 그와 비슷한 무언가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루페리아 :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면 잡는 일은 어렵지 않겠네.
나 : 응?
루페리아 : 물 덩어리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 괴물을 가두어버리면 되는 거잖아. 우리들은 모두 물의 정령이잖아, 물 만드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나 : 그런가?
루페리아 : 덤으로 야자나무를 기어오르는 괴물을 잡았으니, 야자 열매도 얻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있다가 밤이 되면 그 괴물을 잡고, 후식으로 야자 열매까지 얻어가자, 어때?
나 : .......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할까.

  그 날, 괴물을 어떻게든 잡기는 잡았다. 그 괴물은 생각 외로 거대했으니, 그 크기는 대략 0.6 메타르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내가 여태까지 본 갑각 생물 중에서는 가장 컸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크기가 그러하니 체중도 어마어마해서, 먹을 수 있다면 두 사람이 다 먹고도 배를 채울 수 있어 보였다.

........ 그리고, 그 괴물을 잡는 도중,
나 그리고 루페리아 모두 본래 전사 혹은 사냥꾼 역할을 맡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그 때만큼은 잊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