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추워진 것 같은 느낌이야."
북극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탓인지, 하늘은 어느새 밤을 맞이하고, 하얗게 보이기만 하던 하늘에 머무르는 정령들 역시 화사한 색을 띠는 본연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을이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성큼, 겨울의 날씨가 내가 머무르는 곳으로 찾아왔다. 아직 때가 아니었는지, 눈이 내리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으나 주변의 외투를 여미고 있는 모습은 누가 뭐라 해도, 겨울의 풍경 그 자체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침에 잡은 삼치를 냄비에 튀겨서 먹고 난 이후에 잠시 밖으로 나가, 하늘의 옷자락이 펼쳐져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과 마을이 위치한 대륙 서부의 해안을 등지는 방향으로 걸어, 그 인근의 공원에 이르니, 수많은 나무들이 이파리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조용히 서 있었다. 이 나무들은 밤 혹은 감이 열리는 나무들로서, 가을 늦게 찾아와 보면 언제나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된다. 늦가을 때가 되면 그 나무에는 열매가 아니라 신발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주로 저렴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들이 나무에 걸려 마치 열매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려 나름 장관을 이룬다.
올해도 지난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11 월도 이제 열흘 정도 지난 그 때, 나의 눈앞에서는 여러 신발들이 마치 늦게 열린 나무 열매처럼 매달린 광경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미 밤이나 감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난 달 즈음에 나무를 찾아왔을 마을의 아이들이 밤송이와 감 열매를 따기 위해 신발을 던지면서 그 충격으로 열매가 떨어졌고, 그래서 아이들이 신발을 놓아둔 채, 열매를 가지고 나무의 곁을 떠났을 것이다. 그 광경을 보니, 지난 어느 때, 내가 보았던 하나의 광경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한 2 년 전 즈음, 우연히 여행을 왔던 아버지와 아들이 신발들이 매달려 있는 광경을 보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그 광경에 대해 쓸쓸함의 감정을 바로 드러내는 표정을 지으며,
'이 아이에게 밤을 하나 주고 싶었는데.......'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서 곁에서 지켜보던 나에게 왜 밤이 아니라 신발들이 매달려 있는지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나쁜 사람들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전부 수거해 갔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허전하다 생각해서 자신이 마련해 온 신발들을 대량으로 매달아 놓은 것 같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나는 우연히 여행을 온 사람에게 흉한 모습이나 보여준 아이들에 대해 무척이나 야속하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기는 했다.
'이렇게 열매를 가져가고픈 사람이 있기도 한데.......'
그 두 사람이 떠나가서 내 곁에서 모습을 감춘 이후, 나는 조용히 그 신발들을 수거했다. 하지만 신발의 주인을 찾아갈 방법이 없었던지라 결국에는 이들을 금속 통 안에 넣어놓고 태워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면서 아마 그 아이들도 잃어버린 신발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못하리라 생각할 것이라고 그런 일을 나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신발을 찾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씁쓸한 추억이 깃든 그 나무들을 지나, 인근의 포도밭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 포도밭에 아직 포도들이 열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추위 속에서 마치 열린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는 그 포도들은 덩굴에 그대로 매달린 채, 바로 옆에 난 길을 지나는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포도들, 가져갈 수 있을까, 가져갈 수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즙을 짜 놓는 건데.'
과실들의 계절이 떠나가고, 과실들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시기가 오면서, 가끔씩 생과일을 씹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새콤함이 그리워지기도 하였고, 그래서 과일의 맛을 유사하게나마 느껴볼 심산으로 잼이나 마르멜라다(Marmelada)
(*) 를 만들어 저장해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열리는 열매가 그렇게 추위 속에서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름 탐이 나기는 했다.
그러면서 포도들을 덩굴에서 떼내려 하는 그 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로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 개는 포도들을 지키는 역할만 수행을 하는 모양인지 다행히도 한참 동안 뛰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개가 쫓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오랫동안 포도를 매달아 놓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던 거야.'
그렇게 겨우 개에게 쫓긴 이후에 죽다 살아났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그렇게 조용히 혼잣말을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였다. 그러면서 발걸음을 빨리 하며, 길을 걸으니 어느새 나의 발은 집의 바로 근처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 귤이나 오렌지 등을 설탕에 조려 만든 잼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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