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 9. 21 - Liera Morisel
알미차 남서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인 라코스(Lacos) 는 10 여년 즈음 전에 한 번 들른 경험이 있었다. 다만, 그 때에는 파브니드(Favnid) 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모래 열차를 이용해 방문했었는데, 모래 열차가 머무르는 곳은 라코스의 중심 구역이 아닌 동부의 변두리 구역인 탓에 별로 대단하다 할만한 것은 둘러보지 못하고, 더위 체험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우연히 라코스의 중심 구역이라 할 수 있는 서부 구역에 대해 알게 되고, 그 구역을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가, 며칠 즈음 전에 기회를 찾아, 라코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원래는 여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 가을이 깊어가게 된 이 시점에서는 다소 늦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하였지만 바다에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해안 일대는 주로 문화 시설들만 많은 만큼,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에 쓸쓸함에 대한 생각은 일치감치 내려놓고 여행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무작정 해안을 향해 나아가서 해안에 위치한 시설들을 둘러보기로 하였고, 그러면서 북쪽 길을 따라 걸으며 해안 지대에 당도, 북쪽에 위치한 만 일대에 자리잡은 항구 시설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항만 시설 근처에 자그마하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서, 공원에는 역사를 기념할 수 있을만한 물품과 조각상들이 여럿 자리잡고 있었다. 물품 중에는 실제 무기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오래된 것들이라 실제로 사용할 수는 없었으나,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으로서, 당시의 항만에 있었던 치열한 싸움을 상징하는 존재들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라코스 일대는 먼 옛날, 기원 전 29 세기 경에 뱔발한 '사도 전쟁' 당시에 '그리고리(Grigori)' 라 칭해진 타락한 사도들의 군세가 알미차 일대에 대대적인 침공을 가하고, 알미차 일대를 점령해 갔을 때, 그 저항의 거점 중 하나였던 곳이었다. 라코스의 항만인 알하라코스(Al Haracos) 는 가장 치열하게 무력 충돌이 일어났던 곳으로서, 이 알하라코스에서의 승리가 라코스를 넘어 알미차에서의 압도적으로 불리하였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된 만큼, 알하라코스의 전투는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큰 사건이라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알하라코스 역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큰 곳이라 칭할만 하다.
그 역사를 기리는 공원에 잠시 머무르면서 바다 그리고 그 바다에 정박된 수많은 배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은 무척 맑았고, 바다가 다소 탁해 보여도 그 푸른빛들을 훌륭하게 품어내고 있었다.
다소 산만하게 정박된 배들의 모습과 그 배와 육지를 잇는 부교의 모습이 다소 칙칙해 보이는 것이 선명한 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조금은 그래 보였고, 그래서 바다보다는 하늘의 모습으로 더 시선을 두거나, 먼 바다를 보려 노력했었다. 사실은 배가 산만히 들어선 모습과 칙칙한 부교의 모습이 진짜 항만 같아 보이고, 바다에 가면 이러한 모습에 더 눈을 들여야 하는 건데, 알록달록한 것에 여전히 눈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일까.
라코스는 이런저런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좋은 먹거리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우선 간 곳은 주로 둘러보는 곳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곳으로서, 라코스의 명물 중 하나로 알려진 '철판 밀떡' 을 내놓는 집이었다.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의외로 많이 멀었고, 그래서 그 곳까지 가는데 꽤 오랜 기간 동안 걸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1 시간 정도 걸어서 찾은 집에셔 직접 구워 내놓는 떡의 맛은 의외로 괜찮은 편이었다. 다소 밋밋해 보이기도 하였지만 갓 구워서 그러한지 따끈하였고, 졸깃한 식감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런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다소 손이 괴로워도 뜨거워야 할 필요가 있긴 있었고, 식으면 졸깃한 식감이 사라질 것임이 분명해 보였는데, 그러하면 밋밋한 맛을 느끼며 떡을 먹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구우면 괜찮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말도 나올 수 있겠지만 이러한 반죽은 다시 구우면 필경 딱딱해진다. 원래의 맛이 나올리 없다.
그 이후에는 과거 철길의 흔적이었던 곳에 들어선 마을에 둘러보았다. 철길을 따라 상점과 집들이 나란히 들어선 곳으로서, 낡은 건물들과 그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초록빛 화초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곳. 때마침 하늘도 무척 맑아 선명한 푸른색을 띠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좌우의 건물과 화초, 아래의 길, 위의 하늘이 어딘가를 향하는 듯한 인상적인 모습이 나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인상적인 풍경을 가능한 오래 즐겨야 하겠다는 생각에 그 곳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르고 있었다. 더욱이 그 곳에는 자연과 고풍이 공존하는 곳에서 나름 추억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나름 활발한 편이었기에 그 분위기로 인해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철길에 흔적이 남겨진 모습도 있었다, 다녀갔음을 알리는 연인 그리고 친구들의 글. 대개 6 월이나 7 월 중에 많이 새겨졌음을 확인하면서 역시 바다에 있으니, 여름에 어울리는 곳임은 틀림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아마 그 때 즈음이면 그 당시보다 더욱 활발했을 것이다.
이후, 항구와 바로 이어진 길목에 이르러, 과거 라코스에 살았던 이들의 옛 저택과 옛 행정 건물 그리고 역사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옛 저택 부근 거리에 이르렀다가 우연히 벽에 쓰여진 여러 시들을 보게 되었다. 개구리, 토끼, 뱀 그리고 소녀 등을 소재로 한 시들로서 차분, 다정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는 언어로 쓰여진 시구 그리고 시구에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귀여운 그림들 덕에 잠시 그 길목을 지나가며 미소를 띨 수 있었다. 한 동안 이러한 시구들을 보지 않다가 간만에 보게 된 것에 대한 반가움 역시 느껴졌었다.
다시 항만 부근의 거리로 돌아와서는 그 이후로는 빵이라든가 여러 먹거리를 접하기도 하고, 다시 항만에 이르러 그 항만을 보내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떠나기 직전, 저녁에 해가 지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서쪽 하늘 아래를 향하는 태양의 주황색 빛이 너무도 선명하여 한 동안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태양 일대만 바라보니, 하늘이 그 태양의 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었으니, 그 동안 숱하게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석양의 빛이 하늘을 주황색으로 가득히 물들이는 광경을 처음 보는 순간이 바로 그 때였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