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라는 라넬리스의 여타 도시들에 비해 그 영역이 넓고, 그 만큼 갈 수 있는 곳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을 이끄는 것은 해안가의 바다이며, 과거에는 두라무(Duramu) 라 칭해진 북부 지역과 갈사르(Galsar) 라 칭해진 서부 지역보다 동남부의 원래 라무라였던 구역을 사람들이 더 주목하는 편이다.
  내가 첫날 나아갔던 곳은 그 라무라 해안을 바다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데키소이(De-Kisoi)' 라 칭해진 해안 일대로서, 혹자는 이 해안 부근의 동백꽃이 아름답다 말하였으나, 정작 동백꽃은 해안 부근의 몇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을 뿐으로, 동백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아 보였다.
  해안의 절벽길 위로는 여러 소나무들이 서 있었으며, 험준한 바위 절벽 아래로는 비취색을 띠는 바닷물이 하얀 물보라로 물결 무늬를 그리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여러 상상을 펼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으나, 보다 먼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에 발걸음을 계속 옮기었다.
  데키소이에서 절벽 해안가의 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다 보면 다스타라(Das-Tara) 해안에 이르고, 그 사잇길에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길을 통해 '탄나이(Tan-Nai)' 라는 이름의 유적지에 들어설 수 있다. 데키소이에서 다스타라까지의 거리는 대략 3500 메타르 가량. 하지만 데키소이로부터 이어지는 길이 산길이고,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보니 실질적으로 그 길을 걷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무척 길었다.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날이 점차 어두워져 가고 있었고,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데키소이 등의 해안길에는 휴게소나 식당 등이 없었다, 식사를 하려면 인근의 도시에라도 가야할 필요가 있었다- 왔던 길을 따라 데키소이의 진입로를 거쳐 드라타(Dratta) 지구로 돌아와 그 곳에서 열차를 타서 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는 라무라 해안에 이르렀다.
  라무라 해안에는 작은 호텔이 하나 있어서 그 곳에 방을 마련하고, 하루 동안의 거처로 삼았다. 작고 소박한 방이었지만 혼자 머무르기에는 괜찮은 방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화려하거나 쓸쓸하지 않기도 했고. 그 방 안에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그 일들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시계를 보니 이미 시계가 4 시를 가리키고 있을 정도였다. 시계의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시각은 7.3 시 무렵. 그 임시 거처를 나선 때는 9 시 무렵으로 그 동안 거처 정리를 다 하고 거처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거처를 떠났다. 그 이후에 간 곳은 소도나르(Sodonar) 라는 곳으로서, 라무라 남방 중심과 남쪽으로 바로 이어진 곳으로서 라무라의 남방 중심 구역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나아간 소도나(Sodona) 해안 마을에서부터 시작해 해안 절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금속 구조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으로서 소도나르 해안에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데키소이 해안과 달리 소도나르는 절벽이 높아서 그러한지, 절벽 한 가운데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했고, 그 구조물이 해안의 다른 구역을 향하는 길을 이루고 있었다. 길 도중에는 흔들거리는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가 보통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끊어지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불안했으며, 그 이후로는 두 다리가 나무 다리의 흔들림에 영향을 받아 잠시 휘청이는 듯한 느낌도 받고는 했었다.
  데키소이도 그러하였지만 소도나르 역시 해안 너머로 펼쳐진 바다의 물결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다만, 소도나르의 물결을 보면서 묘한 상상을 하고는 했었는데, 그 물이 솟아올라 하나의 형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도중에 날씨가 점차 흐려지고 있었고, 북쪽에서는 눈이 온다는 소식도 들려왔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라무라의 다소 따스한 기후는 눈을 쉽게 허락해 주지는 않고 있었다. 눈 대신에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해안 산길에서 계속 맞기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도중에 산길에서 벗어나 기차를 통해 시가지로 내려왔다.

  그 이후에는 탄나이 유적으로 나아갔다. 유적의 외곽 한 곳에는 건너편 산에 위치한 유적의 중심부로 이어지는 긴 계단길을 거쳐, 오른 유적의 정상부에 각종 시설들이 있고, 그 부근에는 여러 공방들이 있어서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이들이 그 공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유적의 상층부에는 3 개의 특별한 집이 있었으며, 이들의 이름은 '바란 즈팡(Varan Zh-Fang)', '피치 즈팡(Fitzi Zh-Fang)' 그리고 '페이라 즈팡(Feirha Zh-Fang)' 이라 칭해지며, 각각의 이름은 고대어로 '바람의 방', '빛의 방' 그리고 '평화의 방' 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한다.
  바람의 방은 산 위에 부는 바람의 형상을 표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그 부근에 위치한 빛의 방은 여러 인형들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거울을 놓아 그 거울들이 인형들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도록 하고 있었다, 거울에 빛이 반사됨에 따라 그 빛에 의해 드러나는 형상의 다양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였다. 빛의 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서 화려한 빛을 기대했다가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다소 실망한 감이 있었으나, 거울과 형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에 대한 해석을 듣고나서 그에 대한 감탄을 한 바 있었다.
  세 번째로 본 평화의 방은 다소 투박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사실 그 방은 오래 전에 있었던 전화의 흔적을 형상화한 곳으로서 벽에는 달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밥그릇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그 의미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그 평화의 방이 사실은 탄나이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했다.
  탄나이 유적은 사실 오래 전에 있었던 전쟁 때에 지금의 라넬리스를 비롯한 각지에서 피난 온 이들이 모여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사람들이 없어지고 폐허가 되어가던 이 곳을 사람들이 꾸미고 꾸미기를 반복해 건물마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며놓기를 반복하면서 나름 화려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던 것. 그 역사를 알고 나니, 페이라 즈팡이라는 곳이 의미있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탄나이 유적 탐방을 끝으로 라무라에서의 여행은 마무리하였다. 화려한 인파의 모습보다는 바다 그리고 유적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그런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