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넬리스(Lanelis) 남서부 해안 지대에 위치한 마을 '파이세(Peisse)' 의 근교에는 차밭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은 도시의 이름을 빌린 '파이세 차밭' 으로서, 도시의 차밭을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시설이 마련된 유일한 차밭으로서,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곳이다.
  내가 처음 들른 곳은 그 부근에 위치한 '보차르(Bozzar)' 차밭으로서 조금 더 작은 규모의 차밭이 산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산길 들어서는 길목에는 여관이 있고, 여관을 중심으로 식당과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시기가 지난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져서 한산한 곳이 되어 있었다. 보차르 찻집은 개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는데, 정말 개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보였다.
  기차가 은근히 자주 들르는 편이기는 하였으나, 파이세를 향하는 기차가 서는 정거장을 바로 찾을 수 없는 관계로 우선 그 정거장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보차르 차밭 부근의 굴다리 건너편 길목에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고, 파이세로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을 찾았음에 안심하며 바로 보차르 차밭이 있는 산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보차르 차밭은 이미 시기가 지나서 그러한지는 몰라도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다시피한 곳이었다. 파이세의 차밭을 방문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에 비해 너무 한산하여 그 사실에 대한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홀로 차밭이 보이는 산길을 오르느라 외로움과 적막함을 느끼면서 파이세에 온 것에 대한 후회를 하기도 하였으나, 차밭의 초록빛과 맑은 푸른색을 띠는 하늘의 모습, 그리고 산길따라 펼쳐진 차밭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음은 좋았다.
  차나무들은 나무의 대열 사이로 펼쳐진 흙길을 통해 물결을 치는 듯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그 초록빛 물결은 산길 뿐만이 아니라 산길 아래의 산자락 그리고 산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산길에도 펼쳐져 있었다. 파이세에서 차밭은 파이세 차밭과 보차르 차밭 이외에는 없는 줄 알았던 나에게는 의외의 사실이었다. 하기사, 라넬리스의 찻잎 수요를 두 차밭이 크다고 해서,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적막함과 외로움을 풍경을 감상하면서도 달래기 어려워 산길을 내려와 파이세 차밭을 향하니 차밭을 향하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그래서 외로움을 나름 달래면서 즐겁게 차밭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 파이세로 간 것에 대한 후회의 생각을 떨쳐낼 수도 있었다.
  바람의 정령인 스카리아(Scaria) 를 만난 것도 그 당시의 일이었다. 스카리아는 파이세 차밭의 식당에서 나와 마주하자마자 어디에 가 있었느냐고 물었고, 이어서 보차르에 있었음을 밝히자마자 사람 많이 방문할 시기가 지나서, 그 곳에서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라고 말하고서 바로 파이세 차밭으로 오지 그랬냐고 말하기도 하였다.
  근교의 시설들을 지나, 산길을 따라 펼쳐진 차밭을 들어설 수 있었다. 더욱 큰 녹색 이파리들의 물결이 산길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산길 위에는 '바다 전망대' 라는 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차밭의 물결과도 같은 모습이 '녹색 바다' 와도 같아 보이는 곳이라 하여 '바다 전망대' 라 칭해졌던 것 같다.
  산길을 오르는 도중의 곳곳에 가지만 앙상히 남은 차나무들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그에 대해서는 잠시 스카리아와 대화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는데, 차잎을 골라 수확하는 도중에 차나무에 차잎이 남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한 모양이라고.
  바다 전망대로 가는 산길은 경사가 가파른 편이었으며, 그만큼 계단도 많았다. 그 계단을 다 오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는데, 스카리아는 날개가 있고, 날개를 굳이 이용하지 않더라도 도약력이 좋아서 몇 계단은 사뿐히 잘 건너뛰어 오르고는 했으며, 때로는 손을 내밀어 빨리 내가 올라오게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 때 마침, 바다 전망대를 향하는 산길을 따라 어느 가족이 오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먼저 전망대 위로 오른 이도 있었고, 올라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특히, 어떤 중년 여성은 아기를 안고 있어 올라오기가 힘들어 보였는데, 그래서 그 아기의 형들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어머니인 여성을 응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네라! 네가 빨리 올라오라고 응원하는 것 같은데!?"
  그 때, 스카리아가 그 목소리를 듣더니, 나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고 말하였다. 이에 그 목소리의 대상이 누구인지 대략 알아차리고 있던 나는 그러할 리 없다고 답하면서도 걸음을 재촉하였다, 혹시 그 목소리가 정말로 나 역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산 정상에 오르고 차밭을 내려다 보는 도중에 어딘가에서 새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근래 들어서 아데시아 산에서도 듣기 힘든 소리인데,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참 반가웠다.

  내려가는 도중에는 길을 잘못 들어 험난한 산길을 내려가게 되었고, 넘어지면 크게 다칠 위험이 있어서 조심해서 가야만 했다. 물론 스카리아는 사뿐히 뛰며 내려가기만 하면 그만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게다가 사람 없겠다, 드러내놓고 날개를 펼치기까지-. 그러면서 조심해서 내려가라 하는데, 은근히 약이 오르기도 했었다.
  내려온 이후에는 스카리아가 자기 돈을 들여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주었는데, 은근 달달한 맛이라서 좋았다. 그 동안 스카리아가 많이 미안했는지, 자기 몫은 사지 않았는데, 그래서 내가 그런 그를 보며 자기도 사 먹지라고 말하자, 스카리아는 그저 괜찮다고 답을 할 따름이었다.
  꽤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작 머무른 시간은 1 시간 40 분 정도. 조금 더 머무르다가 떠날 걸, 하는 생각이 드니, 뭔가 대단히 아쉬운 여행이었지만 차밭을 관람하는 느낌은 좋았다. 그나마 위안 거리가 있다면 차밭 자체는 넓지만 차밭 관람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해야 하는 것이고, 산 자체가 그리 높아 산길 오르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오래 머무를 일이 없었다는 것 정도였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