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있는 곳과 비교적 가까운 곳인 라넬리스 동남부에 위치한 도시, 루샤드(Luchad) 에 갈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대 루샤드의 황금 유물전이 개최되고, 유물전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황금 유물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유물전이 10 월 말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급하게 갈 필요 없겠다고 생각하고, 그 대신에 가을꽃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는 곳인 동부 지역의 작은 도시인 '바파스(Bapas)' 에 가기로 하고, 10 일에 출발하였다.

  처음에는 10 일 당일만 머무르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축제와 관련된 시장 거리 그리고 개울과 그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분홍빛 아스테르(Aster) 꽃밭이 넓기는 해도, 1 ? 2 시간 정도면 바로 둘러볼 수 있었던 탓에 굳이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음이 그 이유였다.
  다만, 하루의 마지막 열차가 떠날 시각이 20 시 즈음이었는데, 그 열차를 타기 위해 가야할 곳인 자스(Djas) 로 가는 전동 수레는 1 시간마나 하나씩 있다고 하고, 마지막 도착 시각이 18 시 30 분 즈음이라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스테르 꽃밭 부근의 언덕길을 올라 '파라비타(Paravita) 예술가 박물관' 을 들러 가을꽃을 소재로 한 시집을 마련하기도 했으며-그 시집이 있으면 어떤 구역도 소지한 것을 보이기만 하면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바파스 그리고 바파스가 속해있는 도시인 파라비타의 예술가들의 역사 및 그들의 유물을 관람하기도 하였다.
  마녀 시대 그리고 2 ? 3 세기의 유물들이라서 그러한지 옛 시대 양식의 책들 그리고 옛 시대의 필기 도구들이 박물관에 주로 진열되어 있어서, 그 도구들 그리고 책들의 모습을 인물의 역사보다 더 흥미롭게 바라보고는 했었다. 오죽했으면 그 기미를 느낀 자스 출신이었던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정도.
  "아가씨는 그 도구들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가 보다."
  그와 더불어 그 아주머니께서는 나에게 갖고 싶으냐고 물음을 건네시는 모습을 보였으나, 굳이 갖고 싶을 생각은 없어서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고 바로 답을 하였다.
  박물관의 한 곳에는 호밀, 메밀, 치자 등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음식의 예를 볼 수 있는 구역이 있었다. 메밀 국수와 두루마리 빵, 메밀 샐러드-메밀 반죽으로 만든 국수 조각들을 잔뜩 모아 과일, 야채와 함께 곁들인 샐러드-, 계란이 한 가운데에 놓인 호밀떡 등이 있어서 처음 음식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축제다보니 난장이 열리고, 곳곳에서 음식을 사먹다 보니-샤베트, 밀떡, 치즈구이-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은 편이어서 새로 보는 음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박물관 바깥에는 무지개색-빨강, 주황, 노랑, 초록, 하늘, 파랑, 보라-으로 물들인 7 장의 종이로 구성된 바람개비들이 있어서 바람을 맞아 회전하면서 무지개색 무늬를 그리는 모습을 보였으며, 그 너머로 고요한 산골의 정경이 보이기도 해서 잠시 그 모습을 보며,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래, 하루 더 있다가 오기로 하자.'
  그러다가 나는 하루 더 머무르다가 집에 가기로 하였다. 하루만에 여행을 마치다 집에 가려면 그 모든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없고, 다급히 둘러보다가 가야할 텐데, 그러면 여행이 과실의 겉만 만지작거리는 격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의한 일이었다. 풍경 감상도 하고, 길도 거닐어 보고 해야 하는데, 그러할 여유를 마련하지 못하는데, 무슨 여행이 보람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근방에 있는 가게에서 치즈 구이를 사먹고, 그 이후에 길 너머에 있다는 옛 예술가의 집과 그 터, 그리고 그 너머에 있다고 알려진 '예술의 숲' 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박물관과 예술의 숲 간의 거리는 대략 1700 메타르. 왕복으로 2 시간 가량 소요되는 길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술의 숲이라는 곳에 가고픈 생각에 먼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바파스 일대는 메밀 풀이 가득한 밭들이 곳곳에 있었고, 그래서 9 월 즈음, 즉 초가을 즈음이면 이 메밀 꽃들이 새하얀 풍경을 만들고는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극작가의 이야기 무대가 바파스의 옛 메밀 꽃밭이었다하여 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메밀이 없어졌던 바파스 일대에는 분홍빛, 하얀빛 그리고 진분홍빛 아스테르 꽃들이 가득했다. 길마다 아스테르 꽃들이 화사한 풍경을 만들고는 하였다.
  세 가지 색을 띠는 아스테르와 이름없는 들꽃들의 색이 꾸며내는 화사한 풍경들, 그리고 어느 집 뜰의 아직 피어있는 해바라기 꽃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풍경에는 눈을 돌릴 수 없었고, 길을 거닐면서 그 아름다움에 한껏 반하며 기분 좋게 길을 걷고는 하였다. 다음 달 초에 가기로 한 루샤드에도 드넓은 아스테르 밭이 있다고 하니, 그 풍경에 대한 기대감을 아스테르로 둘러싸인 길을 걸으며 하기도 하였다.

  그 화려한 길목을 걸으면서 도달한 '예술가의 숲' 은 관리인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던 모양으로 도착한 시각은 17 시 즈음이고, 폐장 시각은 18 시인데, 이미 거의 폐장 직전인 상태라서 들어갈 수 없었고, 그래서 다음날 가기로 하였으나, 막상 다음날 가려니 활발한 분위기의 바파스 시장과 축제장 일대의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어, 갈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다음날이 되니, 날이 흐려지기도 해서 간다고 해도 큰 보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곳은 날이 맑아야 갈 만 한데.
  화려한 가을꽃 풍경도 보고, 축제 분위기에 들뜬 시장 거리 구경도 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었다. 다만, 밤 풍경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막상 밤에 가을꽃 밭으로 가 보니, 여기저기에 있던 들뜬 분위기를 반영한 듯이 밝은 등불빛 때문인지 그 맑은 곳에서도 별 구경은 할 수 없었고, 그 점이 아쉽게 다가오기는 했다.

  아무튼, 둘째 날은 화창하지는 않았으나, 주말이 가까워 온 탓인지 그 분위기는 더욱 활기찼다. 요리 경연 대회 구경도 하고, 시장 거리 구경도 하는데, 한 곳에 그저 머무르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에 취하니 무척 좋았다. 5000 크로네를 지불하면서 숙박을 한 보람이 있었다. 하루 더 있었고, 그래서 더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이후, 나는 14 시 즈음에 활발함이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축제 거리를 뒤로 하고, 자스의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다음에 갈 곳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