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나는 4 인이 요정과 함께 일을 거들게 되어 작업이 계속 진행되었다. 그가 아는 분야도 나처럼 많지는 않은 편이었고, 루시아, 파렐리아에 비해 나와 카스야가 하는 일의 분량이 많지 않아 작업에 큰 진전은 없었다. 하지만 게으르게 일하는 이는 없어서 누구도 그것에 대해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 역시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글이라면 같은 분야로 여길 정도로 나름 책들을 구분하는 기준을 갖게 되기도 했다. -그 분류 중에는 틀린 것도 있어 파렐리아가 고쳐준 것도 있기는 하다.-
  헤로토스를 놓아두고 진행된 그 작업. 그 작업은 시작된지 8 시간 30 분 즈음 지나서야 끝났다. 시간은 생각 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빨리 진행하면서 수많은 서류들을 확인하고 분야별로 정리하고, 또 이것을 가지런히 배치에 두어야 하는 탓에 많은 힘을 들여야만 했다. 더욱이 첫째 서고와 둘째 서고의 책들은 건물 안에 있었고, 나머지는 건물 밖에 있었기에 서고 별로 도서 정리를 하는 동안 건물 안팎을 오가야 할 필요도 생겨 그로 인해 기운이 더 드는 현상이 나에게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하다보니 정리를 모두 마치는 밤이 될 무렵, 거의 모든 일행은 기력을 너무 많이 들인 탓으로 지쳐 있게 되었다. 루시아, 파렐리아는 정리된 책들 사이에 힘없이 누워 있었으며, -루시아는 두 팔을 내린 채 누웠고, 파렐리아는 두 팔, 두 다리를 모두 약간씩 벌린 채 누웠다.- 카스야와 라피엔도 다리 부근에 웅크리고 앉은 채, 잠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카스야가 다리 부근에 앉고, 그 오른편 근처에 라피엔이 눕는 듯이 앉았다.-
  그 광경은 그들만의 광경은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나 역시 일이 반복되는 동안 몸도 많이 쓰고, 신경도 계속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가, 모든 일을 다 끝내면서 긴장이 풀려, 그와 함께 억눌러진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탓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물론, 당장에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약간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며, 그런 상태에서 이대로 누워버리면 다음 날까지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피곤함을 참으며 해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밤의 해안을 조금이나마 더 볼 수 있기 위함이었다.
  물이 이전에 비해 깊어졌기에 해안에 이를 때에는 치마의 양쪽을 두 손으로 잡고 치맛단을 올려 다리를 드러내면서 움직였다. 물은 상당히 차가웠다. 얼음 계곡의 물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그래서 나에게 전해졌다.
  그러면서 다시 해안에 이를 무렵, 감빛 하늘 위로 하얀 별들이 반짝이고 있으면서 수정 조각들과 함께 하늘을 꾸미고 있었으며, 해안의 수정 조각들이 빛을 내면서 어둠을 비추고는 하였다. 긴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서 나는 비로소 그 해안으로 돌아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해안에 가만히 누워있던 헤로토스가 나의 기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나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작업은 잘 진행됐나?" 이에 나는 그렇다고 화답하고서 12000 만 권이 넘는 책들을 정리하고 다시 분류하느라고 모두 지쳐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1 명 당 2400 권의 책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그에게 되묻기도 했다. 그러자 헤로토스가 밝은 목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투사도 아닌 것들이, 힘내도 있구만."
  이에 나는 기운 없이 그의 왼편 곁에 주저앉고서 가만히 별을 바라보는 그 남자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그리고 미소를 띠며 그에게 또 별을 세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 별 세는 일은 포기했어." 이에 그렇게 화답하는 헤로토스. 그리고서 그 때, 방해만 없었더라면 별의 숫자를 전부 셀 수도 있었는데, 아깝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것보다 공간의 크기를 알아내고 계산한다면 편할 텐데."
  "그렇기는 하지요. 여기에 단위 공간 당 몇 개의 별이 있는지 알아내면 더 좋고."
  이에 내가 그렇게 화답하고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려 하였다. 그 때, 헤로토스가 물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묻자, 내가 답으로써 물에 들어가기 적합하지 않은 옷인데 다가 가진 옷이 그것 하나 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헤로토스가 "안 됐다." 라고 화답하였다. 그 이후, 내가 무슨 상상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화답하고서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헤로토스가 나에게 바다로 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더니,
  "그 모습이 꽤 아름다워 보이더라고. 내가 살던 곳 근처에 오면 여신 같다는 말도 들을 텐데."
  "정말이에요?" 이에 내가 그렇게 물었으나, 헤로토스는 그러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하였고, 그 이후부터 나와 헤로토스는 다른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행동만 계속 취하였다.

  그 이후, 휴식 시간이 끝나고 밤이 깊었을 무렵, 루시아는 책을 옮기는 일을 하자는 말을 건네고서 사람 당 옮길 책의 양을 정하기 시작하였다. 건물 입구에 일행이 모이도록 하였다. 그 이후, 루시아와 크네흐트가 입구의 문에 선 이후, 루시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각자 옮길 책의 양이 어떠한지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옮길 책은...... 저와 파렐리아가 1 에서 3 서고까지의 책들과 서류들, 요피아 씨와 카스야 씨께서 각각 4, 5 서고의 책들. 이렇게 되네요."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해야 하는 건가."
  이에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 헤로토스. 그러자 루시아는 눈을 감고서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말하였다. 그 이후, 루시아는 분류는 자신이 서고 별로 해 두었고, 서책들이 들어갈 서고 구분의 표시와 서책이 들어갈 책장의 위치를 파렐리아가 표시해 두었으니 어디에 꽂아야 할지는 그 표시를 참고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힘들겠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이 마지막까지 다 수행한 이후에 하루 편안히 쉬도록 하지요."
  그 이후, 루시아는 다소 밝아진 목소리로 일행을 그렇게 격려하였고, 그 이후부터 나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와 카스야가 맡은 책들은 4 서고의 책들. 그 이후, 나는 4 서고의 책들이 4 라 쓰여진 종이가 놓여진 입구 왼편의 바닥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하고서 책들을 카스야와 함께 옮기기 시작하였고, 라피엔도 나를 따라 행동하면서 나의 일을 거들려 하였다.
  30000 권이나 되어 기본적으로 양이 많기는 하였으나, 입구 근처에서부터 한 책장씩 채워 나가면서 나는 왼편 곁에 카스야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일하는 이가 있음에 대해 다행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밝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죽을 뻔했지만, 그 대가는 확실히 얻은 듯 하네, 이렇게 함께 일할 수 있는 이가 생겼으니."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그런가 봐요." 이에 카스야가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화답한 다음에 두 사람이 함께 일하니 다른 이들보다는 빨리 끝날 것이라고 말하고서 마지막 작업이므로 힘내자고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라피엔은 나의 오른편에서 나의 일을 거드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그런 라피엔에게 온화한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계속 일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니?"
  "괜찮아요." 이에 라피엔이 그렇게 화답하고서 끝난 이후에 제대로 쉴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화답하였다. 그러자 나는 라피엔이 많이 힘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래, 같이 힘내자." 라고 말한 '다음에 더욱 기운을 내어 작업을 이전보다 더욱 빨리 수행하려 하였다. 하지만 신체적 한계로 인해 진행 속도에 진전은 별로 없었다.
  그 이후, 휴식 시간이 다가오자 일행은 입구의 쌓인 책들을 사이에 두고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려 하였다. 그 때, 헤로토스가 힘들게 일을 수행하면서 숨이 차기 시작했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모이는 일행을 향해 다가가더니 거칠게 주저앉고서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외쳤다.
  "에라이~ 힘들어 죽겠구만! 왜 내가 이런 곳으로 와서는 다른 이들보다 두 배나 많이 이런 짐 나르기와 책꽂이 책 꽂기를 해야 하느냐고!!!"
  이에 루시아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모두 어려운데 함께 힘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파렐리아가 그런 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요! 저희들은 두 사람이 거의 반이 되는 양의 책을 맡고 있잖아요, 게다가 서류 정리까지 다 해야할 판인데! 요피아, 카스야도 한 서고씩 맡았지만 불만 없이 잘 해내는데, 아저씨만 왜 그러세요?"
  그러자 헤로토스도 달리 반박을 못했는지 가만히 앉아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휴식이 끝나자, 모두 일에 나서기 시작, 각자 맡은 구역의 책 정리를 위해 각자의 서고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내가 맡은 서고에 위치한 20 개 책장 중 12 개 책장의 일을 마쳤을 때, 카스야를 불러 그와 함께 잠시나마 헤로토스를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고, 라피엔을 불러 함께 우측 내벽에 위치한 입구들 중 하나로 들어선 다음에 그 너머에서 일하고 있는 헤로토스를 만나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헤로토스는 서고 중간의 책장에 위치한 책들을 하나씩 꽂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라피엔 그리고 카스야가 근처에 이르는 모습을 보면서,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라고 말한 다음에 이래저래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고서 혹시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나는 그렇다고 말한 다음에 자신에게도 남은 양이 있지만, 헤로토스가 힘들어 할 까봐 먼저 도와주기로 마음먹고, 카스야도 불렀음을 밝혔다.
  "그래?" 이에 헤로토스는 그렇게 물은 다음에 곧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화답하고서 건너편의 책장에 위치한 책들을 꽂아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이후, 나는 알았다고 화답하고서 카스야에게 같이 책을 꽂도록 하자고 말한 다음에 책들을 순서에 맞게 책장에 올려놓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파렐리아도 그 서고로 오면서 "일로 인해 왔어요~." 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한 다음에 헤로토스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가 나와 카스야가 위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선 나에게 물었다.
  "그 아저씨를 도와드리려 온 거야?"
  "응."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답한 다음에 그 사람이 힘들어 할 까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남은 일을 마다하고 왔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파렐리아.
  "그렇게까지 남을 도와줄 필요는 없는 건데."
  그리고서 나의 곁에 이르러 책의 순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지를 보려 하면서 루시아가 서고의 모든 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지 보라고 부탁하여 오게 되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불만이 많으신 분이시긴 한데, 그래도 책 순서는 올바르게 잘 꽂아놓으셨네."
  그 이후, 그는 그 기세라면 5 시간 이내에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라피엔이 놀라면서 하루 종일 일하게 되는 셈이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파렐리아가 다소 우울해진 표정을 지으며 화답하였다.
  "그렇지, 그 모든 책을 5 사람이서 다 정리해야 하니."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정말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서 다음부터는 아즈리아에 정기적으로 머무르며 도서를 지키는 이가 몇 명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 어느덧 그의 서고에 위치한 책장들 중 15 개의 책장이 책으로 채워지게 되자, 나와 카스야 그리고 라피엔은 각자 맡은 서고로 돌아가 남은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내가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15 번째 책장을 다 채울 무렵, 라피엔이 책장에서 내려와 웅크려 앉아서 잠시 쉬려 하는 나에게 물었다.
  "지금 즈음, 하늘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요."
  "아직 새벽은 오지 않았기에, 어둡겠지. 그건 그렇고, 자는 일이 문제네, 지금 즈음이면 0 시는 이미 넘겼을 텐데, 잘 시간이 얼마나 되려나."
  그 물음에 나는 간단히 답한 다음에 앞으로 잘 일에 대해 일하면서 가지고 있던 걱정을 라피엔에게 드러내려 하였다. 그러자 라피엔은 깊이 생각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고서 나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번 밤에 이전보다 늦게까지 주무시면 되잖아요."
  "그래도 될까?" 이에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다음날이 되면 쉴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기에 그러하지 않겠느냐고 되묻고서 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이제 남은 책장은 5 개지요? 이번이 15 번째이니까."
  "그렇지." 이에 내가 그렇게 화답하고서 남은 것은 뒤쪽의 5 개 뿐이니, 조금 더 힘내자고 말한 다음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아직 기운이 덜 회복되었지만 이대로 누워 있다보면 결국 다음 날로 일이 미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의한 일이었다. 그 때, 걱정스러워 하는 목소리를 내며 라피엔이 물었다.
  "이대로 일을 계속 해도 괜찮으세요?"
  "괜찮을 거야, 아마도." 그 물음에 나는 그렇게 화답하였다. 그리고 다음 일을 시작하자고 밝은 목소리로 말한 다음에 라피엔에게 따라오라는 말을 건네면서 16 번째 서고에 위치할 책들을 옮기는 일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16 번째 책장에 위치할 책들을 전부 모은 다음에 책장의 아래쪽 부분부터 책으로 채우기 시작하였다.
  그런 식으로 일이 반복된 끝에 나는 4 번째 서고의 모든 책을 결국에는 옮겨내었다. 그 모든 일을 마칠 때까지 얼마나 소요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어둠 속의 책장을 벗어나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한 번 크게 펼쳤다.
  "아우~~~~~~~~~~~!!!"
  기지개를 펼치며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며 내가 다시 밖으로 나오고, 이어서 건물 밖까지 나오는 동안 다리를 건너 해안으로 이르는 카스야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상당히 기운 없이 걷고 있었는데 역시 일을 마치면서 상당히 지친 듯해 보였다.
  "정리는 다 마쳤니?" 그 이후, 내가 카스야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가서 묻자, 카스야는 "예." 라고 기운 없이 화답하고서 해안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해안 너머의 하늘색은 점차 밝아져 선명한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하였다.
  '이제 새벽이 다가오는 건가. 그러고 보니 새벽 하늘의 모습은 지금껏 보지 못했는데.'
  그 때, 카스야가 나에게 다 들릴 정도로 혼잣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서 새벽 하늘은 처음 보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이에 나는 정말 처음이라고 말하고서 새벽 하늘을 처음 보는 일은 기적의 징조가 아닐까, 라는 말을 그에게 건네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어느덧, 나는 해안의 모래밭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모래밭에 이르자마자 나는 그 해안의 모래밭에 쓰러지는 듯이 누웠고, 이어서 내가 그 오른편에 두 다리, 두 발을 뻗은 채, 자리에 누운 채, 나를 향해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려 하자, 카스야가 나에게 물었다.
  "라피엔은 뭐하고 있어요?"
  "서고에서 잠들었어. 깨우려 했는데,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다들 그러할 거예요, 그 많은 책들을 20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정리하면서 얼마나 지쳤겠어요? 게다가 바다가 눈앞인데, 대량의 작업을 계속 해야 하니, 정신적 괴로움이 다들 컸을 거예요."
  "그러하겠지."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하였다. 그 이후, 카스야가 하늘로 시선을 향하고 있으면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다에서의 사랑 같은 것은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할 수 있겠어?" 이에 내가 그렇게 되묻고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바람을 맞으면서 잠을 청하려 하였다. 그 때, 카스야가 나에게 아침인데 잠이 올 수 있겠냐고 묻자, 마지막으로 답하였다.
  "피곤하다면, 사람은 어느 때에도 잘 수 있는 법이잖아."

  얼마나 오래 자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와 그로 인해 의식이 완전히 억눌려 그 무엇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채, 그야말로 '정신 없이' 자고 있었다는 것. 내가 도서 정리를 위해 일했던 시간은 총 21 시간. 그 모든 시간이 불러온 피로감이 나의 의식을 압박해 왔을 것이고, 그래서 아마도 나는 그 당시에는 죽었다고 칭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에 놓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죽었다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의식이 빠져나가지는 못했으므로.

  그리고 겨우 깨어났을 무렵,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광경 속에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하얀색을 띠는 겉옷과 바지, 그리고 하얀 셔츠와 검은 넥타이로 이루어진 제복 차림을 하고 머리에 둥근 접시 모양의 모자를 쓴 이로서, 검고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구름과 태양의 빛에 의해 노랗게 물든 하늘 아래에, 쟈오링이 머무르고 있던 도시의 모습과 같이 2 ~ 3 층을 이루는 화려한 건물들과 붉은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늘어선 곳의 근처에 위치한 길가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오른편 옆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은빛 기둥이 꼭대기 부분에 하얀 빛을 발하면서 그런 나의 곁에 서 있으며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체형 역시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평범한 남성의 체형을 가지고 있었으며, 키도 이전의 나보다 약간 더 커져 있었다. 목소리 역시 전형적인 젊은 남성의 그것,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남자의 모습으로 변한 듯 싶었다.
  잠들었다가 깨어나면서 그 모습이 변화한 것일까. 원래 모습이 이런 지경으로 변화된 일은 앞으로 리아넬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이 도시에 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로등 옆에서 가만히 서 있을 무렵, 나를 향해 한 사람이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검은색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서, 붉은색을 띠며 좁고 긴 소매를 가진 것으로, 앞쪽이 약간 옷차림을 하고, 굽이 높은 붉은 구두를 신은 이. 그는 두 손으로 무언가를 품고 있으면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예량." 그리고 그가 나에게 다가오자마자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띠면서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써 답례를 행하려 하였다.
  "사오밍 씨." 온화한 목소리로 나의 부름에 답례를 하는 예량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 그 여인의 모습을 보며 사오밍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 는 그런 그에게 찾아오려 하였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예량은 다소 걱정스러워 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말하였다.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서 두 손으로 품은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붉은 천에 감싸인 작은 상자. 그 상자를 보여준 후, 예량은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으로서, 솜 안에 들어있던 반지들을 보인 다음에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위해 준비해 둔 결혼 반지에요. 결혼한 이후에 선물로 드리려 한 것인데......."
  "그 이후에 당신이 무슨 말을 할 지는 알고 있어."
  이에 나는 그렇게 화답하고서 미소를 띠며 주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리고서 나는 언젠가 돌아올 때가 있을 테니, 그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나로 인해 그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자신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남자를 만나도 좋다는 말을 그에게 건네기도 하였다. 그리고서 그에게,
  "나는 오직 당신의 행복이 우선이야. 당신의 불행을 야기하면서까지 당신이 나만 바라보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아."
  라고 말한 다음에 다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네었다.
  "그래도 기다려 준다면, 고맙게 생각할게." 그 이후,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그와 멀어지는 채, 북쪽의 어디론가로 떠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의 앞에서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나에게 일어나 달라고 크게 소리쳤고, 그러면서 나의 의식이 갑자기 흐트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의 눈앞으로 라피엔이 나를 바라보며 잠을 깨우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 라피엔은 내가 깨어났음을 확인한 후, 나의 오른편 곁으로 날아가려 하였다. 그 이후,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여행을 시작할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다행이다, 모든 것이 꿈이라서."
  그러면서도 꿈 속의 내가 예량이 사랑하던 사람인 '사오밍' 으로 칭해지며, 예량과 헤어지려 하였음에 대해서는 잠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신경을 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다음에,
  '그 세계에서 언급된 이름이 무의식 중에 떠올랐기 때문이겠지.'
  라고 그 현상에 대한 추측을 행하려 하였다. 그 이후, 나는 그에 대한 생각을 머리에서 날려버린 다음에 조용히 하늘로 시선을 향하려 하였다. 그러면서 나의 두 눈앞으로 전날, 내가 아즈리아를 찾아왔을 때처럼 새파란 하늘 위로 새하얗게 빛을 발하는 태양이 떠오르려 하는 광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아침을 맞이해 밝아진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본 이후, 나는 무거워진 몸을 겨우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려 하였다. 그 때, 날개를 파닥이며 라피엔이 그런 나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요피아 언니, 잘 주무셨어요?"
  "아....... 응."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화답한 다음에 다른 이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피엔은 다들 이제 일어났음을 밝히고서 모두 주변을 돌아다니며 세수를 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의 상황 설명을 해 주기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알았다고 말하고서 다시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그 이후에 라피엔에게 물었다.
  "여기서 목욕을 해도 볼 사람은 있을까?"
  이에 라피엔은 이 곳으로 다른 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화답하였다. 그리고 헤로토스가 있기는 하지만 그가 음흉한 행동을 보일 경우, 바로 다른 이들이 응징을 가할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화답한 다음에 루시아, 파렐리아는 이미 목욕을 위해 떠나갔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요피아 언니께서도 목욕을 위해 나가 보심은 어때요?"
  "그래, 그런데 그들은 어디에 있어?" 그 말을 듣고 알았다고 말하고서 루시아, 파렐리아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그에게 건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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