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의 지표면에 거대한 마력에 의해 소환된 바위가 격돌, 그로 인해 지표면이 파괴되면서 요새의 지표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 지하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 우선 마르차와 율리아가 앞장서서 구멍 안으로 진입하고, 이어서 나와 아네샤가 그들을 따라 지표면 안쪽을 거쳐 그 너머에 자리잡은 지하 구역 내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표면 아래로 들어서면서 잠시 고개를 들어 구멍이 난 쪽을 바라보았다. 대낮 같은 때였으면 구멍 너머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텐데. 이미 밤이었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보랏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그 지하 공간은 마치 예전 옛 문명 시대에 관한 그림들을 수록한 화보에서 보았던 것 같은 거대한 공장의 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역시 천장 곳곳에 배열된 보랏빛 등으로 인해 온통 보라색으로 보였던 그 공간 사이로 하나의 통로가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의 두 갈림길을 비롯해 곳곳에 여러 갈림길이 있었던 거대한 금속제 통로로 좌우의 끝은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이전에 내가 들렀던 좌측의 지하 공간, 그리고 클라리스, 야누아 등이 들어선 우측의 지하 공간과 이어지는 듯했다.
거대한 통로는 요새의 좌측 그리고 우측 지하 공간에서 이어진 길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으로 하나로 모인 길은 사각의 나선 상을 이루며 지하 깊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니, 그 지하 깊은 곳에 중핵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요새의 지하 중추로 이어지고 있을 나선상 통로에 이르자마자 마르차, 율리아는 바로 통로 위에서 착지. 통로를 따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와 아네샤는 계속 날개를 펼친 채로 통로 사이의 공간을 따라 내려가려 하면서 통로를 따라 내려가려 하는 그들의 모습을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려 하고 있었다.
아래 층의 난간, 그 한 곳에 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마르차, 율리아처럼 길 위에 있었고, 두 사람은 나와 아네샤처럼 날개를 펼친 채로 공중에 떠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요새의 우측 지하 통로로 돌입해 들어갔던 클라리스와 미라 그리고 야누아, 마야였다. 요새 돌입 이후, 무사히 지하 중심부를 향하는 길 위에 이르렀던 것.
그 곳에서는 기계 병기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중추를 지켜야 할 병력까지 죄다 동원해 나를 비롯한 이들을 막다가 전부 궤멸당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병기들의 출몰을 경계하던 마르차, 율리아 모두 어느 정도 길을 걷는 동안 경계를 풀고 차분히 길을 따라 걸어 나아가고 있었다.
"마르차, 율리아. 무사했구나." 두 사람이 걸어 내려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야누아가 이들을 맞이하면서 말했다. 이에 마르차는 "말했잖아, 나는 언제나 별 일 없다고." 라고 화답하고서 그 아래에 요새의 심장 혹은 동력 장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야누아 역시 자신을 비롯한 지하로 들어간 이들은 물론, 요새로 들어서는 이들 모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하고서 심장부로 어서 갈 것을 마르차에게 청했다.
나와 아네샤는 이미 나처럼 비행을 이어가던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와 합류하고서 자매들을 데리고 걸어가던 야누아에게 먼저 내려가 있겠음을 알렸다. 이에 야누아는 활짝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먼저 가는 이들에 대해 딱히 걱정 같은 것은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앞 일은 모르는 것이니 조심해 줄 것을 말하고서, 이어서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심장부에는 분명 누군가가 자리잡고 있을 거예요. 그 심장부 앞에 이르러서는 제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셔야 해요."
"아무래도 야누아는 심장부에 하므자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에......."
그 부탁의 목소리를 내 곁에서 듣고 있던 미라가 말했다. 이후, 클라리스는 심장부에 있을 이가 사람이라면 일행을 기다려 줄 것인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미라는 그 사람이 하므자라면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서 아마 일행을 보며 질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답하고서,
"야누아나 마르차라면 아마 그렇게 믿고 있을 거야."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비행을 이어가면서 한 층씩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야누아를 비롯한 고양이 요정 4 자매도 뛰면서 내려가고 있었지만 층계를 따라가지 않고 곧바로 가장 깊은 곳을 비행하던 나를 비롯한 이들이 더욱 빠르기는 했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공간의 분위기가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공간을 밝히고, 공간의 분위기를 나타내던 보라색 조명은 하얀 조명으로 바뀌면서 금속성 내벽 역시 기괴한 공간의 내부를 연상케하는 감색 바탕에 피와 같은 붉은 무늬가 잔뜩 그려진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재질은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비금속성 물질인 듯했다. - 일단 생체 조직은 아니었다. 다만, 금속성 계단의 모습만큼은 색이 변질되었을지언정, 변함이 없었다.
공간의 내부 분위기가 변화되면서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형 인간형 병기들로 골렘 (Golem) 을 연상케하는 외견을 가진 이 무리들은 손에 길다란 총포를 들고 총포에서 화염탄을 발사하는 정도의 공격만 하고 있었다. 공격 방식은 단순했지만 내구력은 강해서 어지간히 번개 줄기로 타격하지 않고는 파괴할 수 없었다. 나와 아네샤의 번개, 바람 줄기는 물론, 클라리스의 빛나는 검들, 그리고 미라의 빛으로 생성한 칼날들을 잇달아 발사하며 하나씩 격추시켜 갔다.
그 무리들이 격파된 이후에는 소형 전투기들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들은 금방 격추되어 유의미한 공격을 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마법에 의한 공격도 필요 없어서 소정령들이 발사하는 개체들로 격멸시켜갔다.
한편, 인간형 병기들은 길을 걷고 있던 야누아 등에게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 크기의 병기들로 야누아 등을 습격하다가 오히려 크게 당해 격파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공뢰, 전투기 모양의 개체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야누아 등이 마법으로 소환해 발사하는 창, 칼날 등에 의해 격추되어 금방 불꽃이 터지는 모습을 보이며 사라져 갔다.
그 이후, 요새의 가장 깊은 바닥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즈음에 또 다시 한 무리의 인간형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람 크기보다 약간 더 큰 인간형 병기들로서 삿갓 형태의 모자를 쓰고 법의 형태를 모사한 듯한 외형을 갖춘 병기들로 손에는 하나씩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들이 발사하는 화염탄들을 발사하거나 모자 안쪽에 자리잡은 한 쌍의 눈에서 광선을 발사하면서 일행을 위협하려 했다.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3 개체의 경우에는 오른손의 손바닥에 장착된 장치에서 검은 기운을 생성해 빔처럼 전방을 향해 방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각자의 수단으로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고, 위협하려 했던 그들 역시 일행이 각자의 수단, 번개 줄기나 바람의 기운으로 일으킨 돌개바람, 빛 기둥 등에 의한 반격으로 하나둘씩 격추되어 파괴될 따름이었다.
"분명 저들은 친위대에 해당되는 이들일 거야. 클라리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미라가 건네는 물음에 클라리스가 바로 "응." 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이들은 야누아 등의 앞길을 가로막기도 했으나, 이들 역시 그들이 가하는 검격 등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보이는, 내 앞에 나타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요새의 가장 깊은 곳, 심장부에 해당되는 구역에 이르렀다. 감색을 띠는 바닥에는 용암 줄기와 같은 무늬가 드러난 어둠의 공간. 내벽 역시 감색을 띠는 바위 사이로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길의 가장자리에는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마치 악마의 발톱을 형상화한 듯한 장식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각 장식물의 끝에는 하나씩 노란 등을 밝히는 구체가 하나씩 자리잡고 있었다. 악마가 손에 쥐는 구슬을 형상화한 것이었을지.
그 이후에는 클라리스와 미라 역시 착지한 후에 날개를 감추고 발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나와 아네샤 역시 날개를 보이지 않게 하면서 바닥에 착지하고서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갔다.
길의 너머에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 개체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간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개체로서 그 크기는 어지간한 사람 크기의 10 배 가량은 되어 보였다. 거대한 원통과 같은 개체로서 그 주변에 여러 파이프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이들은 멀리 보이는 원통형 개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토카막이라 칭해지는 거대 플라즈마 반응로였다.
하나의 건물 크기만한 플라즈마 반응로와 길이 연결된 곳에는 문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그 문이 내부로의 출입을 행할 수 있는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은 틀림 없어 보였다. - 사실, 그 주변에도 통로는 있었고, 원래는 그 통로를 통해 그 너머의 공간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반응로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하나의 괴이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여러 비명이 뒤섞인 듯한 소리로 사람의 비명 뿐만이 아니라 개 (혹은 늑대), 고양이, 토끼 등의 비명 소리에 그 종류를 알 수 없을 법한 동물의 비명 소리까지 한 번에 뒤섞여 울리고 있었다. 여러 생물들의 단말마가 뒤섞이는 그 소리를 통해 반응로 내부에서 극한의 고통이 그들에게 가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당연할 것이다. 1 억 도 이상의 열이 그들에게 가해지고 있었을 테니. 여러 비명이 뒤섞인 소리는 반응로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더욱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시간이 지날 수록 비명은 더욱 격렬해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반응로에 다가가는 동안 야누아를 비롯한 고양이 요정 4 자매 역시 반응로를 향하는 길 위에 이르렀다. 이후, 그들은 그들처럼 지면을 걷기 시작한 클라리스, 미라의 대열에 합류하였고, 그 이후, 야누아와 마르차가 그들을 앞질러 반응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 역시 반응로 쪽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를 듣게 되었다. 비명 소리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고양이들의 처절한 울음 소리에 그들이 반응하고 있었다. 야누아, 마르차 뿐만이 아니라 마야, 율리아까지도 표정이 굳어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문이 있다면, 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지?"
"응." 마르차의 물음에 클라리스가 답했다. 그러면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하고서 그 내부는 주변 통로의 유리창을 통해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어느새 야누아, 마르차를 위시한 고양이 요정 4 자매가 앞장서 반응로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반응로 앞에서 야누아 자매는 왼쪽 길로, 클라리스와 미라는 오른쪽 길로 나아갔다. 길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으니, 어디로 가든 상관 없었다.
비명 소리가 격렬히 울려 퍼지는 통로 주변에 수많은 원통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플라즈마화되는 입자들이 보관되는 통으로 파이프를 통해 반응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클라리스에 의하면 그 보관소들은 입자들이 플라즈마 발전에 한참 쓰인 후에 주변의 용기들에 임시로 보관되며, 용기로 옮겨진 입자들은 잠시 보관되어 있다가 다시 반응로로 돌아가 플라즈마 발전에 쓰이게 된다고 했다.
"이전에도 설명했을 거야. 저들은 영혼에 단말마까지 물질화시켜 활용한다고. 그들의 내장과, 살 그리고 뼈를 원자재로 활용한 후에 피를 플라즈마 발전에 쓴 이후에도 기계 병기들은 희생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지. 몸의 모든 것들을 원자재로 쓴 이후에도 산 채로 몸을 해체하면서 끔찍한 고통에 직면한 영혼과 단말마까지 입자화해서 이렇게 플라즈마 발전의 재료에 쓰려 한 거야. 기계 병기들은 영혼들의 실체화, 입자화에 주목했었어. 피를 구성하는 물은 한 번 쓰면 없어지지만 영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질이 될 지언정, 없어지지는 않기에 지속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클라리스가 소정령 간 통신을 통해 야누아에게 알렸다. 워낙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기에 소정령 간 통신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어서 클라리스는 소정령 간 통신을 통해 야누아 자매에게 이렇게 알렸다 : 입자들이 임시로 보관된 통에 접근하면 반응로에서 플라즈마화되어 고통받고 있었을 영혼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비행을 통해 좌측 통로에 있는 금속제 원통 근처로 다가갔다. 통 표면의 유리창을 통해 그 내부가 보였으니, 단백석처럼 무지개색을 띠는 무늬가 뒤섞여 요동치는 모습이 통을 지나쳐 가는 나에게 보였다. 잠시 후, 그 원통들을 4 자매 중에서 앞서 지나가던 야누아가 지나쳐 가려 할 즈음, 그가 있던 곳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살려 줘......
너무...... 뜨거워......
아파.......
원통....... 하다.......!
내...... 몸이...... 아아.......
대부분은 이런 목소리나 내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괴로워하는 신음 소리였지만 그 와중에 이런 목소리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나, 어떻게 되는 거야?
머리가 안 돌아가...... 그런데, 나 머리가 어딘지 모르겠어...... 머리가 있긴 한 거야!?
너무 어지러워...... 머리부터...... 모든 게 빙글빙글이야.......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부흥군의 의미, 그리고 하므자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뭐가 부흥군이라는 거지!? 이번 전쟁으로 묘족이 부흥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부흥이란 없었어!
부흥이고 뭐고, 우리 마을부터 망하게 생겼어! 우리 마을 남자들이 모두 끌려왔단 말야! 이제 마을에는 남은 것들이 없어!
하므자는 거짓말쟁이야! 그 추종자들도 모두 거짓말쟁이야! 분명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겠다고 했어!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하므자, 그 놈 어디에 있지? 얼굴 보이기만 해 봐! 내가 그냥......!!!
그와 더불어 어떤 아이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었다.
하므자는 나는 묘족의 영웅이라고 했어! 위험에 처하면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됐을 때, 그는 나타나지 않았어! 그는 어디에 있지!?
"하므자가 아이들 앞에서도 연설로 선동했었잖아, 그렇지?"
"응." 율리아의 물음에 마르차가 그렇다고 답하고서 이어서 아이들이 모이는 데에 하므자가 직접, 혹은 추종자들을 불러서 아이들에게 용사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선동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선동되어 부흥군에 가담한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을 그 역시 보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했다.
"맞아. 그랬었어.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 때, 언니들은 왜 나를 말리려 했던 거야!?"
"이미 말려봐야 소용 없었기 때문이야. 또, 설득하려고 했다가는 마을의 어른들과 싸워야 했겠지. 의기 있게 나서는 아이들을 왜 말리려고 나서냐고, 고양이 모습도 아닌 주제에 묘족들에 대해 뭘 아냐고, 그런 비난 소리만 들었을 거야."
서운함 섞인 목소리를 내며 율리아가 묻자, 마야가 그런 율리아에게 답했다. 그리고서 이렇게 되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그렇게 선동되어 사지로 나아가려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이외에 자신을 비롯한 이들이 그들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음을 밝혔다.
그러는 그 때, 장치들 근처를 지나가려 하는 클라리스, 미라의 근처에서 그들을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에게 직접 질문을 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우리, 집에 갈 수 있나? 아무도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있어! 어서 대답해 주게!
하지만 그 목소리를 먼저 접했을 클라리스는 그저 고개를 흔들기만 할 뿐,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를 따르려 하던 미라가 뭔가 대답을 하려 했지만, 클라리스가 곧바로 저지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 주변에서는 사람들의 한 맺힌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머니께 보물을 잔뜩 가져다가 오겠다고 했었는데...... 어머니, 잘 계시려나.
마을에는 그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겠지.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꿈이 깨고 나면 분명 나는 계곡가의 집에 있을 거야. 그렇지?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미라에게는 어머니에 해당되는 존재가 있었다고 했었지?"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것은 내게는 상관 없어. 라니아 아줌마 같은 분과 같이 살 수 있으면 그보다 더 나을 것은 없을 것 같아."
마지막 목소리를 듣자마자 클라리스가 미라에게 물었다. 하지만 미라는 라니아라는 좋은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답했다. 아무래도 미라에게 있어서 라니아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우리도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이후, 아네샤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리고서 그에게 그런 것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후, 야누아가 반응로 좌측의 길을 지나, 그 우측을 향해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서면서 그 근처의 원기둥형 장치들 앞에 이르렀을 때, 그 장치가 있는 쪽에서 빛 방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야누아가 그 붉은 빛 방울을 왼손으로 주웠고, 그와 함께 빛 방울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묘족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목소리가 들려왔던 곳은 본래 요새 부근이나 아니면 요새의 지상 건물 내부였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제 저희들은 필요 없다니요!?
저희들이 필요 없다면, 저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그것만큼은 알려 주십시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 모든 더러움을 감수한 줄 아십니까? 이제 와서 물러서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첫 번째 성전 이후로 지금까지 온 몸을 마친 충신들입니다! 충신을 버리는 영웅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날 이후로, 당신과 저희들은 한 배를 탄 것이라고! 어떻게 찾아왔든, 이제 모든 영광과 영예를 누리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하므자 님을 섬긴 것인데...... 이렇게 우리를 버리시는 겁니까!?
"하므자라는 말이 들려왔어. 하므자의 추종자들인가 봐!"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율리아가 다급히 외쳤다. 그리고서 첫 번째 '성전' 에 대해 야누아, 마르차에게 그들이 죽을 뻔한 사건 아니었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마르차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이야기도 건네려 하지 않았지만 야누아, 마르차 모두 표정이 급격히 굳어가고 있었으며, 여기에 마르차는 분노의 감정을 담은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그 이후, 어떤 묘족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로 은연 중에 비열한 느낌이 섞여 있기도 한 그런 목소리였다.
Appliquez un ordre. (명령을 실행하라)
"야누 언니, 들었지? 이 목소리, 그 놈의 것 맞지 않아?"
"맞아, 틀림 없어. 그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네." 이후, 마르차가 야누아에게 묻자, 야누아가 바로 답했다. 답을 하는 야누아의 목소리에서 경멸의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로부터 이런 말이 나왔다.
"충신을 자처한 부역자 녀석들은 그에게 그저 도구였나 보네. 그리고 쓸모 없어지니, 그냥 처분했을 것이고. 뭐,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방금 전에 그가 말한 것, 프랑키나 (Frankina) 였지? 프랑키나라면 기계들의 통상 회화어일 텐데. 그 때, 라니아 아줌마께서 말씀하셨잖아. 공식적으로는 라테나 어를 사용하지만, 그들에게도 라테나 어는 어려워서 프랑키나 같은 언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고."
"맞아." 그 물음에 야누아가 답했다. 그리고서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렇게 말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야."
하므자! 그것, 뤼므 왕국의, 기계 놈들의 언어 아닌가!? 설마......!
이 망할 자식! 언제부터 쇳덩이 놈들과 한통속이었던 건가!? 뭘 위해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그러면 우리도...... 그들처럼...... 안 돼! 그럴 수 없어어어어어!!!!!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런 짓을 하는 거야아아아!?
이 사기꾼!!! 우리에게 영예와 권력을 준다는 네놈이 지금 할 짓인가!? 하므자, 이 X 같은 XX!!! 우리를 충신으로 추켜세울 때는 언제고, 이렇게 죽여버리는 네가 잘 될 거라 생각하나!?
기계들이 언제까지 네 편일 거라 생각하나, 하므자!? 이 쓰레기 XX!!! 우리가 너한테는 이제 쓸모없는 부역자겠지!? 너도 결국 부역자야! 그 놈들에게 있어서 언젠가는 버려질 부역자라고!!! 두고 보겠어! 당신도 결국 우리 같은 꼴을 맞이할 거다!!!!
우리도 결국 우리가 팔아먹은 동족들과 함께 살과 내장, 뼈가 갈리고 피와 함께 영혼이 발전기로 흘러갈 거야. 그 속에서 고통 받는다 해도, 우리는 너를 그 속에서 저주할 것이다! 너와 네가 거느리는 기계 놈들을 저주할 거란 말이다! 영원히!!!!
이 고양이 요정족 꼬마들이 탈출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네들이 어떤 애들인 줄 아나!? 너는 결국 그 꼬마들에게 목이 달아날 거다!!!
"그 꼬마들이라면, 야누아, 마르차를 말함이겠지?"
"맞아." 그 목소리는 하나로 만나는 통로에서 야누아와 마주하기 직전의 클라리스, 미라에게도 들렸고, 이후, 미라의 물음에 클라리스가 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양이 요정족 4 자매와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가 다시 만났다.
"마지막에 들려온 목소리, 하므자의 추종자들이 낸 목소리 맞지?"
이후, 미라가 건네는 물음에 야누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후, 클라리스와 미라 그리고 마야 등은 다른 말 없이, 야누아, 마르차가 앞장서 플라즈마 반응로 너머의 길을 나아가도록 했다. 길 너머에는 내벽이 있었고, 내벽 한 가운데에 통로와 맞닿은 대문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문 너머에 그들과 대결을 펼칠 누군가 (아마도 하므자) 가 있을 것임이 틀림 없었다. 그 통로 좌우에도 입자 보관을 위한 통들이 여럿 놓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인 거야, 여기서......"
"그러게." 그 무렵, 야누아, 마르차를 따라 나서는 클라리스와 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그렇게 야누아, 마르차가 앞장서 길을 나아갈 무렵, 통로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이들은 직접 야누아, 마르차에게 말을 걸려 하고 있었다.
"거기 아가씨들, 혹시 내 목소리 듣고 있나? 너희들은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군. 내 이름을 들으면 누군지 알 거야. 나야, 데니즈(Deniz)."
"데니즈라면...... 야누 언니, 그 때, 그 아저씨 이름 아냐?"
그러자 야누아는 맞다고 답하고서 다급히 그에게 기억난다고 답했다. 그러자 자신을 데니즈라 칭한 목소리는 "잘 기억하고 있군." 이라고 답하더니, 어느새 많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므자는 한 때, 나와 같은 마을 경비대에 소속되어 있던, 내 동료였지. 그러다가 경비대 복무를 마치면서 헤어진 이후로 잊고 살았어. 너희들이 하므자라는 용병 대장에게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가 그 하므자인가? 했을 정도야. 그러다가 하므자가 자기 부하들이랍시고 데려온 이들을 이끌고 연설을 하면서 그 모습을 보았고, 그 때, 그 모습을 처음 보았지. 그 때, 너희들의 모습을 떠올렸어야 했는데...... 옛 동료가 대성해서 하나의 군단을 이끄는 모습에 순간 감동했고, 그런 그가 묘족을 구원하겠다고 나서니, 그와 함께 하겠다면서 부흥군에 가담했었어.
하지만 그 이후로 하므자의 모습을 본 적은 없었지. 연설 이후에 갑자기 추종자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어. 그리고 나는 요새의 지하 통로로 들어가 그 곳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지. 그러다가 아르데이스에서 왔다는 어떤 대학생이 나와 같이 털까지 모두 잃은 알몸 상태로 포로가 된 우리들을 구원해 줄 거라 했었어. 그 때, 너희들이 생각난 거야. 그러면서 너희들 이야기를 좀 했었지.
그 목소리가 통로에서 들은 어떤 중년 묘족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요새의 지하 통로에서 아르데이스에서 왔다는 대학생이었다는 묘족 청년의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 말한 이후, 알바레스에서 왔다는 고양이 요정족 자매에 대해 언급했던 그 남자가 그 때에 들은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야누아 역시 그 목소리를 마야와 함께 들었지만 그 때에는 녹음된 목소리였을 뿐이었고, 언제라도 전투가 발생할 수 있었던 만큼, 그 목소리에 바로 반응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대학생이 그 때, 공간 너머의 통로로 빨려 들어가며 말했어. 자신이 신호를 보내주겠다고. 물론 신호는 오지 않았지. 그리고 우리도 그를 비롯한 먼저 들어간 이들의 뒤를 따랐어. 그리고 그 이후엔....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거라 더 이야기는 안 하겠어.
내가 이 꼴이 난 것에 나는 어떤 후회도, 원망도 하지 않아.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너희들이 구원하러 온다고 한들, 요새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수많은 기계 녀석들과 싸우고 있을 테고, 그 동안 우리는 그 꼴이 났을 것임은 변하지 않았겠지. 애초에 그런 선동에 넘어간 것이 잘못이었을 따름이야.
"아니에요, 아저씨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그러자 야누아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마르차가 말했다.
"아저씨 같은 순박한 사람이 뭔 잘못이 있겠어요. 전부, 하므자인가 뭔가하는 쥐새끼 만도 못한 쓰레기가 선동한 탓이잖아요. 아저씨도 그렇고, 모두 잘못이 없어요. 잘못이 있다면 그 자식이 다 잘못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애초에 그 당시의 우리들 같은 여자애들도 막 죽이려 했던 작자예요!"
"그렇구먼. 원래는 그렇게 나쁜 녀석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후, 한탄을 금치 못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야누아가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며, 이제는 타락해서 동족을 잔인하게 학살한 살인마 하므자가 있을 뿐이라 화답을 했다. 그리고서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 때의 그 대학생 역시...... 죽었겠죠?"
"그러할 게야......." 그러자 남자의 목소리가 답했다. 그리고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것 같다는 말에 이어 이러한 말을 그에게 남기려 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 심장이라 칭해지는 동력원 안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 전에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 하겠구나. 그래...... 그 때에는 너무 고마웠다. 그 때의 너희 같은 귀여운 애들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어. 거칠고 투박한 아이들 같았는데, 씻겨주니, 이보다 예쁜 애들도 없었고, 애교 부릴 줄도 알고 그랬었지. 그랬는데...... 실로 훌륭하게 잘 큰 것 같아서, 내가 다 대견스럽구나. 그래, 이런 꼴로 다시 만나게 해서 너무 미안했고...... 꼭, 그 자를 처치해 너희들의 비원을 이루도록 해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인 것 같구나."
이후, 마야 그리고 율리아가 야누아 곁으로 다가가려 하였으나, 이미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율리아 역시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 뭐라 말을 건네려 했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언니들은 이제 그들보다 강해요. 하므자 따위 박살내 버릴 수 있을 거예요."
그 무렵에 율리아가 그에게 했던 말이다.
이후,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전의 묘족 남성과 달리 이번에는 어린 묘족 소년의 목소리였다. 소년의 목소리는 애타게 길 위의 사람들을 부르려 하는 듯했다.
"언니들, 제 목소리 듣고 계시나요?"
"응, 들려." 그러자 율리아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하므자라는 못된 마왕을 처치하려고 나서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를 비롯해 하므자에게 죽은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줄 테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그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걱정 마, 우리가 그 악마를 처치하고 너희들이 풀려나도록 해 줄 테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악마는 기계 군단에 의지할 뿐인 바보거든. 우리가 저 기계 군단을 다 처치하고 여기까지 왔어! 이제 악마는 곧 죽게 될 거란 거야."
그리고서 다소, 아니 상당히 숙연해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너희 같은 아이들이 부흥군에 간다고 할 때, 말렸어야 했는데....... 못 했어. 언니들이 안 된다고 말렸지만,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아이들 몇이라도 구해낼 수 있었을 텐데, 구해내려 하지 않았어. 미안해......"
"못 하셨을 거예요. 이미 어른들이 하므자와 부하들의 말에 넘어갔고, 어른들의 말에 아이들도 전부 감화되어 있었어요. 그 때에는 모두 미쳐 있었어요. 전쟁에 승리해서 아테다르마를 벗어나 먀미아를 모두 정복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이런 광기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려 했다가는 당신도 위험했을 거예요. 언니들이 당신을 말렸다 하셨는데, 괜히 그렇게 하신 게 아닐 거예요."
"내 말이 맞지?" 그 때, 마야가 율리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그 때,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하므자가 가져다 준 헛된 희망에 미쳐 있었어. 광기가 모든 이들의 영혼을 감염시켜 버린 이후였지. 나도, 언니들도 아이들 정도는 그런 광기에 물들지 않을 줄 알았지만,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아이들마저 그런 상태였어."
이후, 마야를 대신해 야누아가 율리아에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그 때, 내가 말했을 거야, 이미 늦었다고. 그 와중에 아이들을 율리아 말대로 구출하려고 해도, 수많은 위험에 직면했을 거야, 마을 사람들을 죽여야 했을 수도 있고. 내가 너를 말렸던 것은, 아이들을 구출하려다가 마을 사람들을 죽이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었기 때문인 거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직접 마을 사람들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잖아."
그렇게 야누아가 이야기를 해 주니, 율리아는 그것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묘족 소년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하므자가 자신들을 죽였으며, 그가 기계 군단에게 묘족 사람들을 넘겼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모두 아실 거예요. 우리 모두...... 하므자에게 죽었어요. 우리 뿐만이 아니에요, 하므자가 용병단 시절에 단행했던 '첫 번째 성전' 부터 그의 부하로 들어온 묘족 용병들부터 그 이후에 그가 기용했던 묘족 용병들, 그리고 마지막 원정 때에 선동되어 나선 우리를 비롯한 마을의 수많은 묘족 사람들 모두가 죽었어요. 그들 모두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은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인 거예요."
그리고서 이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야누아 등은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하므자는 이미 기계 군단과 내통하고 있었어요. 묘족 제국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 그리고 묘족의 부흥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사람들을 끌어와서 그들을 기계 군단에게 바쳤어요. 그 뿐만이 아니라 요새 내에 도박장을 꾸며서 여러 세계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아 금으로 바꾸고, 그들의 몸마저 기계 군단에게 바쳤지요. 그들의 몸에서 살과 지방, 내장에 피와 뼈까지 전부 그들의 에너지원, 자원으로 활용하도록 한 거예요."
이후, 그는 야누아 자매가 들었을지 알 수 없을 어떤 이야기를 그들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하므자는 어딘가에 주기적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변질시킨 플라즈마를 바치고 있었어요. 아마 이 안쪽에 무언가 또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영혼들을 모아 결정들을 모으고 있었어요.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별 것 있겠어." 이에 마르차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어쩌면 야누아에게도) 하므자는 기계 군단들의 힘 아니면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할 어리석은 사람,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던 것. 그러면서 그가 하는 일도 별 것 없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하므자 본인만 알 거예요. 굉장히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니, 조심해 주세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이에 마르차가 화답했다. 그리고 자신과 야누아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벼르고 있었다고 말하고서 적어도 하므자는 확실하게 혼내주도록 하겠음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미 소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마르차, 야누아는 소년의 영혼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으리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대단하네, 아무도 하므자가 정말로 기계 병기들과 내통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야누아 씨의 추측이 정말로 옳았다니."
그 광경을 상공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 내가 감탄하며 말했고, 아네샤는 어떻게 알았을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하고서 야누아에게 직접 다가가서 그에게 어떻게 하므자가 기계 군단과 내통해 동족들의 운명을 그들에게 넘기려 한 악인임을 알아차리고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사실...... 저에게도 명확한 근거는 없었어요. 단지, 어린 여자아이들을 마구 죽이려 한 사람이니, 그는 악당일 것이고, 기계 군단과 내통하고 있을 것이라 무작정 믿고 있었을 뿐이에요. 시작은 의심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저와 같이 있던 용병들은 대장인 하므자를 제외하면 모두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하므자가 용병들을 모집하고 원정에 나섰다가 그 자신만 돌아오고 다른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런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간 거예요."
그러면서 라니아도 같은 생각을 한 바 있고, 바르차나 아샤란에 클라리스와 미라 역시 어쩌면 그가 그러한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미 추측은 했을 것임을 밝히고서 그러면서도 진상을 명확히 알거나 하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그러할 것이라 확언하지 못했을 뿐이라 언급했었다.
"그저 저희들만이 그러할 것이라 무작정 확신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와 상관 없이."
"맞아, 나도 하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 했었던 기억이 나. 하지만 무작정 그렇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어서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것에 대해 말을 아끼려 했을 뿐이야."
그 때, 클라리스가 야누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 확실한 근거가 생겼으니, 그가 악인이라고 확실히 단언할 수 있게 되었음을 밝혔다. 그 때, 그의 목소리를 뒤에서 듣고 있던 미라가 클라리스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고 있었다.
"이전의 그 랑슬로와 어찌 보면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랑슬로와는 조금, 아니 많이 달라." 그러자 클라리스가 바로 화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랑슬로, 그는 그래도 귀네베흐 (Guenevere) 라는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변호할 수 있어. 그리고, 애초에 절망 속에서 기계 군단에게 속아서 그런 행각들을 해 왔던 거야. 그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기계 군단의 희생자라 칭했음에는 그런 이유가 있어. 하지만 저 하므자는 달라. 순전히 자기 욕심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잖아."
"그렇다면, 랑슬로보다 더욱 악질이란 말이지?"
"응, 내가 한 때, 하므자가 진범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기계 군단에게 이용당한 랑슬로보다 더욱 사악한 인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지. 그래서 야누아나 마르차가 그가 진범일 것이라 줄곧 주장해 와도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
"그렇다면 대체 왜 그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는 짓을 한 거야?"
이후, 미라가 클라리스 뿐만이 아니라 야누아, 마르차 등에게 이렇게 물으려 했다. 도대체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짜증내는 목소리로 건네는 물음에 클라리스가 바로 답했다 : "모르겠어." 라고. 야누아, 마르차도 그런 그의 대답에 공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이 문 앞에 이르렀다. 마치 하얀 돌더미 사이로 붉게 빛나는 점막들이 곳곳에 박힌 형상을 드러내는 거대한 문, 좌우의 악마의 손톱 모양을 한 조각상들에 둘러싸인 그 거대한 문 앞의 광장 한 가운데에 야누아, 마르차가 도달하자마자 그 곳에서 또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구원자 분들께서 와 주실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묘족 소년의 목소리였다. 이전의 어린 소년이 아닌, 다소 성숙한 소년의 목소리로 정숙하고 고결한 느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적어도 귀족 자제 즈음은 되었을 그런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야누아가 누구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바로 이런 대답이 나왔다.
"저는...... 마지막으로 황궁을 지켰던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제 이름은 조항 (Johã) 으로 묘족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조항이면...... 먀미아 묘족 제국이 멸망할 즈음의 황제였지?" 이후, 율리아가 그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마야가 그렇다고 답했다.
"묘족 제국의 7 번째 혹은 10 번째 황제였어. 그의 즉위 대에 재상이었던 아기토노 니미츠 (Agitono Nimicu) 가 기계 제국과의 최종 결전에 나섰지만 하늘을 구름으로 가려 태양열을 내지 못하게 만들어 기계 군단의 힘을 잃게 만든다는 어리석은 전략으로 수도까지 함락되어 제국은 사실상 멸망했지. 이후, 조항은 뜻 있는 장군 크가노 히데오 (Kugano Hideo) 에게 자신의 동생 콘스탄치노 (Kostãcino) 를 맡기고, 콘스탄치노와 히데오 (Hideo), 므노르 (Munoru), 스그르 (Suguru) 등의 뜻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부흥시킬 것을 부탁하고 황궁에 남았어. 그리고 황궁을 폭파시켜 황궁에 침입한 기계들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었어."
"그랬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됐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조항이라 자신을 칭한 소년의 목소리는 아마도 야누아 자매에게 있어서는 뜻밖이라 할 만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이후, 문 앞에 도달한 야누아 등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와 황족들은 이미 황궁 내부에 폭탄을 설치했고, 제가 소지한 스위치를 누르면 폭파될 예정이었습니다. 허나, 폭탄은 폭파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든 장치들이 고장나 있었다고 하더군요. 기계 병기들이 황궁의 옥좌로 침입하기 전에 대신들을 학살하고 모선으로 끌고 가면서 폭탄에 연결된 장치까지 파괴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폭탄의 작동을 해내지 못한 저는 황족들과 함께 기계 병기들의 포로가 되어 그들의 모선으로 끌려갔지요. 그리고 모선 내부에서 저 포로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들의 살과 피 그리고 뼈까지 그들의 자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래놓고, 기계 병기들은 자신들의 함대를 이끌고 제 동생인 콘스탄치노와 히데오, 스그르가 이끄는 부흥군의 함대 앞에 도달하면서 저와 황족들은 자신들의 비호 아래에 잘 살고 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더군요.
그리고서, 조항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 압도적인 전력 앞에 콘스탄치노의 부흥군은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이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이 있고, 그 후손이 아테다르마 대계곡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서 히데오, 므노르 그리고 스그르 같은 이들이 나올 것임은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모진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부흥을 맞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 나름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그랬는데...... 그 후손들 중에 배반자가 있어, 기계 군단이 그 배반자를 이용해 남은 이들마저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니, 그저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여러분, 이제 저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어리석음으로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망쳤으며, 황족들의 운명까지 제 뜻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군주되어 나라와 백성을 지켜내지 못했으니, 이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제 탓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바라는 것을 말할 수 있겠나이까.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릴 바가 있다면, 이 곳에 속박된 모든 이들을 해방시켜 달라는 것, 그 뿐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보셨겠지만 에너지원인 플라즈마 반응로에는 저희 제국의 백성들과 기계 군단에게 속아 도박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그들에게 바친 영혼이 플라즈마화하여 지금도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 군단이 그렇게 생성된 플라즈마를 '요새의 악마' 에게 바치고 있지요. 그 '악마' 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저희 백성의 온전한 해방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배반자와 더불어 '악마' 의 처치도 부탁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외에도 여러 용사 분들께서도 같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라면 충분히 해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악마는 깨어나면 분명 요새를 파괴하려 할 것입니다. 동력원이 폭파되면 여기서, 그리고 반응로에서 고통받고 있을 영혼들 모두가 해방되어 하늘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저희들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만큼은 약속 드립니다. 저희 나라와 민족을 지키지 못한 황제 그리고 황족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 뿐이겠습니다만, 조금이나마 여러분께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저희들에게 있어서 영광일 것입니다.
"실례될 것 없습니다, 폐하." 이에 야누아가 화답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이러한 존재들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지금 이 곳에 사는 이들에게도 온전한 평화란 있을 수 없겠지요. 그런 이들을 처치하는 것은 저희에게 주어지는 명령이 아닌, 저희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인 것이에요. 폐하께서 도움이 되지 못하신다고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폐하의 도움을 위해 온 것이 아닌, 폐하 같은 분들을 구해주기 위해 온 것이니까요."
그 후, 율리아가 야누아의 왼편 곁에 이르러서 야누아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폐하께서는 충분히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 노력이 있었기에 여러 지사들이 폐하의 동생 분 아래에서 단결할 수 있었잖아요. 비록 그들은 부흥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기계 병기들을 먀미아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폐하의 노력 덕에 있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서 율리아는 다시 한 번 목소리의 주인이었다는 조항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의 뜻을 저버린 그 불충한 배반자는 반드시 처단될 거예요. 그리고 악마도 처단될 테니, 요새에서 해방되고 나면 꼭 지켜봐 주세요."
"우리가 아는 역사대로라면 그 때, 황제가 자폭을 해서 황궁 내로 들어온 기계 병기들이 모두 폭파됐다고 했을 텐데......."
"만약 황제의 목소리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이후, 마르차의 말에 야누아가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바가 있었는지 자신이 들었다는 '역사' 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 때 들은 말이 이것이었다.
"먀미아 묘족 제국의 역사는 사실 알려진 것이 없어. 이제는 변두리 지역인 산토 루이스에 있었던 제국이었고, 멸망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으니까. 그 아테다르마의 전설도 원래는 묘족 제국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어. 그랬던 묘족 제국의 역사가 알려지게 된 것이......."
"아테다르마 묘족의 존재가 밝혀진 이후. 그들로부터 구전을 통해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통해 먀미아 묘족 제국의 역사가 알려졌어."
이런 마야의 목소리 이후에 야누아가 "그 말 대로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황제 조항과 황족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그 당시에 알려줄 수 있을 사람은 그의 측근이었던 히데오와 동생이었던 콘스탄치노의 곁에 있던 사람들 뿐이었고, 그들이라면 모두 황제 조항의 최후에 관해 나쁘게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그게 아마 전승된 역사가 진실과 달라진 이유일 거야."
이후, 아테다르마의 전설이나 황제 조항에 관해서는 그 때에는 하므자를 처치하는 것이 우선시되었던 만큼, 이후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아마 모든 전투가 끝나고, 충분히 휴식을 취했을 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야누아가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이후, 야누아와 마르차가 먼저 문 앞에 이르렀다. 마치 바위 더미 사이로 붉은 점막들이 자리잡은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대문. 그리고 그 옆에는 악마의 손아귀 같은 조각들이 좌우에 하나씩 비치되어 있었다. 원래는 야누아와 마르차, 그리고 나만이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것도 두 사람을 지켜보는 역할로 들어갔던 것. 하므자에게 죽을 뻔한 이들로서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그의 숱한 이적 행위를 심판하는데에 그들만큼 좋은 이들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마야와 율리아는 대문의 좌우에 위치한 조각상 근처에 숨어 있으면서 문 너머의 상황을 지켜보려 하였다. 그들의 존재가 문 너머에 있을 이 (아마도 하므자) 가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면도 있었고, 유사 시에 문 너머의 공간으로 쳐들어갈 것을 의식하기도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건과 가장 멀었을 클라리스와 미라 그리고 아네샤는 문의 우측 근방에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야누아가 문에 다가가 문에 손을 대자마자 문이 열렸다. 정확히는 소멸하는 듯이 사라졌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문이 사라지듯 열리면서 야누아가 먼저 그 너머의 공간으로 들어서고, 마르차가 그 뒤를 따랐다. 이후, 나와 아네샤가 조용히 이들을 따라 들어갔고, 이어서 내가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후, 나는 아직 야누아, 마르차가 문 너머에 있을 이와 대치하기 전의 틈을 노려 천장 쪽으로 날갯짓을 하며 비행했고, 그 이후로 천장 쪽에서 야누아 등이 누구와 대치하고 있는지, 대치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려 하였다.
대문이 열리면서 드디어 드러난 공간. 이전까지는 마치 괴이한 공간이나 괴물의 몸 속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면, 그 곳은 마치 황궁의 옥좌가 있는 곳을 그대로 모사해 놓은 듯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들을 이어붙여 만든 공간으로 입구 너머의 끝자락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듯한 옥좌가 자리잡고 있었으니, 금으로 만들어진 몸체에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하게 장식된 옥좌는 등받이 높이가 사람 키의 4 배 정도는 되어 보였다. 입구와 옥좌 사이로 세 사람은 족히 나란히 걸어갈 수 있을만한 폭의 길고 큰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옥좌 너머에는 거대한 원형을 이루는 문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문 너머로 하얗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것이 공간의 어둠을 비추는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밝은 빛이 옥좌 뒤에 자리잡고 있었던 만큼, 조명을 위한 장치는 필요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어둠을 밝히기 위한 물품들은 일절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주제에 제법 구색을 갖춰 놓기는 했네." 그 모습을 보며, 마르차가 경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양탄자 위를 따라 걸으며, 야누아 그리고 마르차가 옥좌 앞에 이르는 동안 옥좌에 앉은 이의 모습이 그들의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옥좌에 앉은 이는 고양이 수인으로 검은 털과 흰 털이 무늬를 이루는 모습을 보이는 고양이 수인이었다. 얼핏 봐도 상당히 뚱뚱해 보였던 그는 하얀 셔츠와 검은 겉옷 그리고 바지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손에 검은색을 띠는 대검 하나를 들고 잡고 있었다. 자루가 금색을 띠며, 검의 가드 부분이 마치 손톱 비스무리하게 생겼던 검으로 가드의 한 가운데 부분이 붉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자루의 재질부터 가드의 보석에 검의 모습까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려 한 듯한 그런 물품이었다.
옥좌에 몸을 우측으로 기울이며 앉은, 거만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며 앉아있던 그는 야누아, 마르차가 자신의 바로 앞에 이른 이후에도 자신의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오른손으로 자루의 끝 부분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들을 맞이하는 목소리를 냈다.
"Enfin, j'ai des invités ici. Vous êtes plus tard que prévu. Mais, quoi qu'il en soit, je vous souhaite la bienvenue en ce lieu, au coeur de cette planète. (드디어 여기에도 손님이 왔군. 예상보다 늦은 것 같지만, 아무튼 이 행성계의 진정한 중핵인 이 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 목소리가 이전에 빛 방울을 통해 들었던 프랑키나 어로 말한 하므자의 그 목소리라 그 남자가 하므자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묘족의 말인 다른 말로 인사말을 건네는 그의 목소리에서 고상함이란 것을 흉내내고 있음이 느껴지고 있었고, 야누아, 마르차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런 그의 모습을 마치 같잖은 존재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C'est bon de te voir aussi. Cela fait longtemps qu'on ne s'est pas vu. (저도 반갑네요. 오랜만이에요)"
그러자 야누아가 바로 화답했다. 처음에는 차분했다가 두 번째 말 마디에서 약간은 비꼬는 듯한 어조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므자는 그런 그를 보더니, 그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고 있었다.
"Cela fait longtemps qu'on ne s'est pas vu? De quoi parlez-vous maintenant? (오랜만이라고?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Vatasyira zale dehari kotovo vasletarasyi. Dace, yimamade aputa monora taksã aruta takla, vatasyirafoi yitoravo hoboru kotoha jasila nari nairasyi. Sarali cimi vatasyira elri tato giveta. Tigari?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었나 봐. 하기는, 그 동안 만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우리 같은 사람들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았겠지. 게다가 죽었다고 믿었을 텐데, 아니야?)"
그러자 마르차가 야누아를 대신해 그런 그에게 되물었다. 프랑키나라는 말로 말을 걸어오는 하므자에게 마르차는 묘족의 말로 되묻고 있었다. 그를 시험하려는 의도였을까? 그런 그의 물음에 하므자는 이렇게 답을 하고 있었다.
"Je n'ai jamais appris une langue aussi vulgaire. (나는 그런 미천한 언어따위 배운 적이 없다)"
그 말을 들었던 야누아, 마르차의 표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럴 줄 알았다' 에 '어이 없다', '경멸스럽다' 에 '혐오스럽다', '저주스럽다' 가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그런 감정이 그들의 표정에서 나타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운 적이 없다고요? 방금 전의 그 말은 당신 동족의 말일 텐데. 정말로 배운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나선다면, 우리는 이것을 '나는 너네들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정도로 받아들이겠어. 우리야, 아쉬울 것 없지, 애초에 우리는 여기로 올 때까지 그 수많은 나날 동안 너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으니까."
야누아의 말에 이어 마르차가 그렇게 말을 건네고서 오른손에 쥐고 있던 소검을 앞으로 내밀며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이 죽어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는 줄 알아!?"
그 때, 야누아가 그런 마르차를 보면서 "일단 진정해." 라고 자그마하게 일렀고, 이에 마르차는 검을 든 손을 내리며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하므자에게 위협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우리가 왜 여기로 쳐들어왔는지는 알고 있겠지? 가능하면 우리와 대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좋을 거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면."
그 후, 야누아는 손에 광검의 자루를 쥐고 있는 채로 하므자의 바로 앞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면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이전보다 더욱 분노의 감정이 실려 있음이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당신께서 저희들이 누구인지 알고 모르고, 그런 것도 상관 없고, 당신께서 묘족의 말을 잊고 그런 것도 이제는 상관 없겠지요. 당신께서는 이미 동족을 져버린 사람이니까. 이제 와서 무의미하겠지만 한 번 여쭈어 볼게요. 왜 묘족을 배신했지요? 왜 묘족을 배신하고 묘족 사람들을 꼬드겨서, 그들과 더불어, 당신의 부하들까지 그 몸과 마음을 기계 군단의 에너지 자재로 넘겨버린 것이지요? 무슨 대가를 그러면서 요구한 거예요?"
그러더니,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잠깐 응시했다가 다시 그를 보며 물었다.
"보기 좋아 보이는 검이네요. 설마 저 검을 대가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아니겠지요?"
"배반? 나는 우리 종족을 배신한 적이 없다!" 그간 거만하게 앉아있던 하므자가 자세를 고쳐 잡아 앉으면서 말했다. 마치 '호의를 베풀어 너희들의 말로 대화를 해 주겠다' 라는 식으로 근엄한 목소리를 거만하게 내며 그렇게 말했던 것. 하지만 하므자는 수 없이 배반, 이적 행위를 거듭했을 텐데, 배신하지 않았다니, 실로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고,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야누아 역시 그저 비웃음만 보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므자에게 '어디 계속 이야기 해 봐라' 라는 식으로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인류는 위대한 문명의 번영을 이룩했고, 수많은 동물들의 영역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지. 허나, 그들은 너무도 나약했고, 터무니 없을 정도로 겁이 많았지. 털이 없어 추위 속에서 몸을 보전하지도 못하고, 꼬리가 없어 목소리 외에 소통할 방법이 전혀 없는 형편 없는 종족이었단 말이다! 그들에게는 크나큰 두뇌가 있었고, 그 두뇌로 수많은 것들을 생각해 내어 마침내 문명을 통해 자기들보다 우월했을 동물들을 그들의 영역에서 내쫓고 온 세상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었던 게야.
언젠가는 그런 그들에게도 파멸의 순간이 찾아올 것임은 분명했어. 그리고 그 때가 도래했지. 알바레스에 퍼진 전염병을 알고 있나? 그 병의 공포에 시달린 사람들은 끝내 그 공포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루마로 도망쳐 갔어. 그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냐고? 흠, 치사율 1% 정도가 대단한 전염병인가? 그 정도로 질겁을 하고 온 몸을 천으로 둘러싸는 광대짓을 인류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루마로 도망쳤던 것이고! 얼마나 그들이 나약하고 겁이 많은지 알겠나?
"혹시, 우리 종족이 시달렸던 파르보 병에 비하면 별 것 아니고, 그 역병 속에서도 살아남은 강인한 우리 종족에 비하면 인류는 형편 없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 이야기를 듣는 야누아에게서 기가 막힐 지경이라는 생각이 확연히 드러나는 아연한 표정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한 숨을 내쉬고서는 분노가 섞인 목소리를 내면서 하므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아이들 열에 아홉, 아니 스물에 열아홉은 죽게 만들고, 산토 루이스로 끌려간 아이들과 노묘들을 전멸시킬 뻔했던 그 무서운 역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호들갑이나 떠는 줄 안다고 인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오신 것이지요!?"
그리고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그런 것이 언제부터 긍지가 되었나요!? 그런 것조차 긍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그런 세상은 잘못되어 마땅한 거예요!"
이 무렵, 마야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언니들의 뒤쪽에서 멀찌감치 언니들의 목소리 그리고 하므자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는지 그 광경에 대해 조용히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역병은 이전부터 줄곧 묘족들을 괴롭혀 왔지만, 묘족들은 치료법을 마련하지 못했어. 그리고 바스타체의 제국이 멸망한 후, 산토 루이스의 황무지로 끌려간 노묘와 아이들은 그 역병이 돌기 시작하자 속절 없이 죽어갔지. 살아남은 이들은 열에 하나, 둘 정도. 이후, 간신히 먀미아의 묘족 제국이 수립됐지만, 그 여파는 끝까지 남았어. 알바레스 묘족 나라 시절, 그리고 바스타체 제국 시절의 인구를 먀미아 묘족 제국은 끝내 회복하지 못한 거야.
이런 역병의 재앙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에 대해 묘인들은 다른 어떤 병도 능히 견딜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은 결국 묘인들에게 병을 극복할 수 있는 학술적 수단이 전무했다는 것을 의미해. 치료 수단이 마땅치 않아 묘족들이 재앙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이러한 실태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랑거리로 여길 수 없겠지.
마야의 그런 혼잣말처럼 건네는 이야기에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기만 했던 하므자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우리 묘족이 인류를 대신해야 한다는 사명을 나는 줄곧 갖고 있었다. 왜냐? 인류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이 묘족에게는 있기 때문이지! 너희들도 아르데이스 (Ardeis) 성계의 엘베 족에게 큰 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게다. 인류에게서 진화되면서 기나긴 귀를 갖게 된 것이지. 그 귀를 움직이는 것으로 엘베 족은 말 없는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나? 그렇다, 우리 고양이들이 귀를 움직이며 소통하는 방식과 유사하지. 그 귀는 곧, 고양이의 귀와 같은 형태로 진화할 게다. 우리가 그들보다 얼마나 우월한지 알겠나?"
"큰 귀나 꼬리로 소통하는 뭐 그런 것을 말함이려나. 그런 것들이라면 토끼나 개, 늑대들도 갖고 있잖아, 용도도 비슷할 테고."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르차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하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기만 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기나긴 꼬리, 수염이 있다. 수염으로 수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고, 꼬리를 통한 말 없는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지. 또, 털이 있어서 옷을 입을 필요가 없으며, 자체적인 세수 방식을 갖고 있어 목욕탕은 물론, 물에 목욕할 필요도 없으며, 뛰어난 도약 능력과 신체 능력이 우리에게는 있다. 또한, 우리에게 내재된 사냥 본능은 우리를 늘 활동하게 만드는 힘이지. 그런 본능 없는 인류가 평화 속에서 얼마나 나태함에 빠졌는지 너희들은 알고 있지 않나?"
"누가 보면 참으로 대단한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줄 알겠다." 이에 마르차가 비꼬는 듯이 말했다. 야누아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런 '자랑스러운 동족' 들을 죽인 사람이 누군데? 하는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인류에 대해 말하더군. '인류는 의존하는 약자들' 이라고. 그러할 수밖에. 그들은 서로 함께 할 수밖에 없어! 그들은 아무런 힘도 내지 못하는 나약한 것들이니까! 하지만 묘족들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냥꾼들이다! '의존하는 약자들' 에 대비되는 '독립하는 강자들' 이지."
그 때, 마야가 말했다.
"묘족들도 사실은 외로움을 탈 수 있고, 누군가와 같이 있기를 원해. 홀로 떠도는 묘족 사람들의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어. 내색하지는 않았다해도, 그 공허한 표정이 표현하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끝내 그들은 감추지 못했지. 고양이들, 묘족이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음을 안다면, 하므자의 저 말이 얼마나 헛된 발언인지를 알 수 있을 거야."
인류는 자신들이 대단한 문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했겠지? 허나, 그들의 문명과 문명적인 사고 방식이란 것들은 하찮은 전염병 하나에도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는 '카드의 성' 같은 존재였다! 하찮은 전염병 하나에도 무너지고 홀로 서지도 못하는 나약한 인류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우리 독립적이고 강인한 묘류가 찬란한 문명을 계승해야 할 지니! 우주에 세워진 문명의 지혜와 그 유산은 묘류의 강인한 정신 그리고 힘과 하나 되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 찬란한 미래의 길을 열 것이다!
"...... 은빛의 여왕은 늘 이것을 강조했어, 사냥 본능의 절제와 협동심, 그리고 가족애. 서로 공존하지 못하면 나라를 세울 수 없고, 찬란한 문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서로 싸우기만 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고귀한 문명의 유산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하지만 본능적으로 묘족들은 인연이 없는 이들끼리 공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은빛의 여왕이 내세웠던 것이 가족애야. 서로 간의 가족 의식이 있으면 함부로 싸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리고, 이번에도 마야가 하므자의 목소리에 반박하는 듯이 말했다.
그와 반대로 바스타체는 사냥 본능의 활성화와 투쟁심을 늘 강조했지. 끝도 없는 싸움과 투쟁 그리고 사냥이 종족을 강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드벨파 족, 기계 인간들이 세운 문명을 바탕으로 나라를 세우고는 그들을 묘족이 사냥감으로 삼도록 해 버렸어. 사냥과 투쟁을 우선시하게 된 묘족이 문명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떄문이겠지. 그리고 사냥감, 장난감으로 삼은 이들의 동족들의 나라에서 그들의 복수를 위해 침공했을 때, 묘족들은 힘을 쓰지 못했어. 서로 간의 투쟁에 급급한 나머지, 단결하며 싸울 요령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리하여 안팎의 요인으로 인해 그 찬란했을 나라는 철저하게 멸망해 버리고 말았던 거야.
그 이후, 야누아가 그런 하므자의 말에 이렇게 되물으려 했다.
"그래, 당신 말이 모두 옳다고 생각해 보지요. 하지만, 그런 위대한 종족을, 당신은 어떻게 대했나요? 아테다르마에서 숱한 묘족 사람들을 잡아다가 기계 군단에게 넘기고, 기계들이 그들의 몸을 찢어발겨, 에너지 자원으로 만들도록 하지 않았나요?"
"그것은 오해다." 그러자 하므자가 바로 반박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적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며,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한 것이다! 그들의 새로운 육신이 탄생한 것이란 말이다! 그들의 살과 뼈는 그들의 장갑 재질의 일부가 되었고, 그들의 피는 동력원인 플라즈마 발전기의 에너지원이 되었으며, 그 새로운 몸은 그들이 가질 수 없었을 수많은 내장 무기들을 탑재하게 되었지. 그들의 뇌는 전자 두뇌의 일부가 되어 전자 두뇌의 치밀하고 강력한 연산 능력에 힘입어 더욱 발전된 사고 방식을 갖게 되었단 말이다!"
"이제 묘족, 아니 묘류는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복잡하기만 한 분자 구조의 강인하지 못한 생체 조직의 한계를 벗어나 강인한 금속의 몸을 얻어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일시적인 고통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고통은 더욱 강한 몸을 얻기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 그 이후에는 영원한 삶과 강인한 전투 능력으로 보다 강한 존재로 거듭 태어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단 말이다!"
그리고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이어서 이렇게 외치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내 소명은 이 새로운 기계 몸을 얻은 묘족들, 아니 기계 묘류가 기계 병기 군단의 힘을 통해 먀미아를 새롭게 정복하는 것! 그것이 나의 새로운 신으로부터 이어받은 숙명이자 의무이다! 은빛 여왕의 시대, 바스타체 여제의 시대, 그리고 마나브리미예 시대의 뒤를 이어, 나! 하므자가 새로운 묘류의 전성 시대를 열리라!!!"
그러자 야누아가 그런 그를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묘족의 시대가 오기를 원한다면, 왜 하므자, 당신은 기계화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지요? 당신의 부하들은 전부 기계의 에너지원이 되었는데, 왜 당신은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느냐는 말이에요!"
이에 하므자가 다시 한 번 목을 가다듬으며 답했다.
"우리 묘족은 새로운 기계 몸을 갖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허나, 새로운 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묘족이 어떤 모습을 갖고,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를 알릴 수 있는 산 증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 산 증인의 역할을 내가 해낼 것이다. 기계 군단이 가진 우수한 과학력을 통해 영원한 삶의 길을 열고, 그 영원한 삶의 길 위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 우주의 주인이 될 묘인들에게 옛 묘족, 묘류의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그러더니, 곧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세니티아 그리고 루마 성계권에도 이러한 인류의 자손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조하르 (Zohar) 성계의 샤하리아 (Shaharia) 라는 지방에 옛 인류의 후손이 살고 있었다고 했다. 옛 인류의 찬란한 역사와 그들의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이 남긴 것들을 정령들, 엘베 족, 드벨파 족 등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 허나, 인류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었고, 근근히 대를 이어가던 자손이 타락하고 죽으면서 인류의 마지막 자손의 대는 끊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세니티아에서 정령들을 보내, 옛 인류의 후예를 찾아다니고 있지 않던가?"
설마, 나를 비롯한 세니티아의 바람 정령들이 옛 세니티아 인들을 비롯한 인류의 후손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말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조하르에서 모종의 사건으로 샤하리아 내 슈라일 (Shurail) 지방에 근근히 대를 이어가던 마지막 인류의 후손이 사망했고, 그로 인해 인류의 대가 끊어지면서 인류의 이야기를 전해 줄 사람이 없어져 인류의 후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일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는 것이다. 그 하므자의 말은 슈라일에 있었던 인류의 후예는 물론이고, 그들을 대신할 인류의 자손을 찾아나서는 세니티아의 정령들까지 비웃고 능욕하려는 느낌이 들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순간 발끈함을 느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난자를 당하려고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굳이 저 야누아 자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파멸당할 것이 그의 운명 같았다. 세니티아에는 나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텐데, 조하르 성계의 그 사나운 것으로 악명 높은 샤하리아 사람들은 물론, 그런 세니티아의 정령들까지 도발하다니. 그런 것과 상관 없이 하므자의 망언은 이어졌다.
"이에 나는 영원한 삶의 길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자손을 남기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영원히 옛 역사의 산 증인으로 백, 천, 만 대의 자손들이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랑스러운 묘류의 역사를 온전히 가르칠 수 있으리라. 그 일을 나의 협력자, 기계 군단의 힘으로 해내리라!"
이제는 어이가 없어 웃음까지 나올 마당인데, 이 때, 야누아가 하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기계 기술로 기계 군단은 묘족들의 몸을 해체시켰어요. 그리고 그들의 몸을 병기들의 장갑에 활용했고, 핵심 병기의 반응로에 넣었고, 그들의 두뇌를 분석해 수치 자료로 집적 회로를 만들었지요. 그 모든 것들은 새로운 묘인을 만드는 데에 쓰이는 것이 아니었어요. 고양이가 아닌 인간 형상의, 비행기 모양의, 배 모양의 병기들에 소모되고 있어요. 그들의 영혼은 플라즈마 반응로에서 고통받으며 울부짖고 있어요. 이런 것이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묘류' 의 미래인가요?"
그리고, 분기를 목소리에 더하며 다시 물었다.
"요새에서 그렇게 고양이들의 피와 뼈로 에너지를 생산해서 그들이 만든 것은 비행기와 인간형 병기, 함선들이었고, 그것들에 들어가는 집적 회로는 고양이들의 뇌 성분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런 전투기, 인간형 전투 병기, 전함들이 묘류의 새로운 모습인가요? 제가 무슨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 것들을 인정하지 못할 뿐인가요? 요새에서 대량 생산한 그 로봇, 전투기들이 고양이들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고요!?"
이에 하므자가 그 말에 맞서려 하는 듯이 화답했다.
"그런 것이다! 편견은 타파하라고 있는 것! 고양이들의 몸, 그 일부가 들어갔으니, 그들 역시 묘족인 것이다! 너희들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묘족이라-"
"닥쳐, 이 미친 아가야." 그 때, 야누아에게서 나지막한, 그러면서도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동안 참아주고 그의 망언들을 들어주고 있었지만 이제는 참아주는 것의 한계를 넘어섰을 것이다. 아니, 더 이상 들어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그에 대한 본심을 드러낼 생각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듣자듣자하니까, 정말...... 내가, 여기 있는 애들이, 암만 인간처럼 생겼다고 해도, 다들 묘족이라고 인정을 해. 왜냐고? 그래도 여기, 이 머리 위의 귀 같은 고양이다운 특징은 어느 정도는 보이기 때문인 거야. 꼬리를 가진 애들도 있어. 나와 내 동생들은 이래저래 감추고 다니지만, 원래는 그런 특징 정도는 있다고. 그런 인간 같아 보이지도 않는 인간을 흉내낸 로봇을 보고 지금 고양이라고 말한 거야? 생물 같지 않게 생긴 전투기하고 전함을 고양이로 칭하고 있는 거냐고!?"
그러다가 곧, 더욱 격렬히 분노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하기는, 너 자신은 네가 말하는 묘족, 묘류에 대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겠지. 기계 군단에게 붙어, 네 동족을 피의 제물로 바치면서 그 대가로 빌어먹고 살다가 동족을 위한답시고, 내세우는 게 뭐? 전투기가 묘족? 전함이 묘족? 기계들로부터 제국을 끝까지 지켜낸 영웅들, 조항과 콘스탄치노 그리고 히데오, 므노르, 스그르 경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그러자 하므자가 곧바로 그런 그의 말에 반박을 했다.
"나는 그 분들의 위대한 뜻을 잘 기억하고 있다! 지금 내가 이행하는 것은 묘족의 자유를 위해 위대한 투쟁을 이어가신 그-"
"매족노만도 못한 더러운 게 어디 감히 그 분들의 이름을 올려!? 쳐 맞아 죽고 싶어? 이 애벌레 짜샤!"
그 때, 마르차가 그를 향해 뛰쳐 오더니, 격분하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야누아는 그런 마르차의 움직임을 저지하더니, 그를 바라보면서 광검을 든 오른손을 조용히 앞으로 내밀었다.
"더 이야기를 들어줄 이유도 없을 것 같아.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프고, 더 들어봐야 귀만 괴로울 뿐.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실제로 쓸 수 있는 무기 맞겠지? 네 생각이 옳다면, 그 칼날로 나한테 보여주기나 해. 되도 않는 헛소리 더 지껄일 생각 말고."
그와 함께 그가 든 광검의 날이 더욱 격렬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검을 들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나 보군."
그러자 하므자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지면에서 뽑아내며 말했다. 그리고서 검의 날끝을 바닥에 대면서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은 이 검이 얼마나 위대한 검인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이 신명왕의 심판검-L'Épée du Jugement du Nouveau Roi du Deutéronome-은 강인한 금속을 단련해 만든 최강의 검. 너희들은 이 검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무적의 대검-La Grande Épée de l'Invincibilité-에 특수한 재료들을 더해 만들어진 이 검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노라."
그리고 그 재료가 무엇인지를 말하니, 대략 이러하였다 :
- 무적의 대검.
- 묘족 성지의 유물 100 개.
- 암흑의 정수와 유황, 암흑미스릴 (Mythrill = Mitrilla) 이라는 이름의 광석으로 만드는 암흑 결정 10 개.
- 은, 금, 백금, 미스릴, 오리할콘 판금과 암흑미스릴 광석을 가공해 만든 암흑미스릴 판금 10 개.
- 은, 금, 백금 판금 : 은괴, 금괴, 백금괴와 철괴로 만드는 판금.
- 미스릴 판금 : 미스릴이라는 광석을 정제해 만든 미스릴 광석괴를 특수 처리 가공한 판금.
- 오리할콘 판금 : 오리할콘이라는 광석을 정제해 만든 오리할콘 광석괴를 특수 처리 가공한 판금.
- 암흑 광석을 정제해 만든 암흑 광석괴 50 개.
- 흑마법가루 500 병.
듣도 보도 못한 광석에 듣도 보도 못한 재료들이 검을 벼려내는 데에 활용된 것이었다. 이런 것을 마치 자랑스럽게 외는 하므자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는지, 마르차는 팔짱을 낀 채, 어이 없어해 하며, "참으로 자랑스럽겠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판금들이 검을 벼려내는 데에 활용된 거야?"
그 때, 율리아까지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마야에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마야는 그렇다고 그 사람이 직접 말했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왼손의 손바닥을 그에게 펼쳐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 판금이 이 정도 크기였으면 납득이 되겠지만...... 아니, 애초에 하므자는 직접 검을 제작하지는 않았을 거야, 기계 병기들에게 동족들을 넘기는 대가로 받았겠지. 그러면서 재료 명세를 그렇게 밝혔을 거야. 하지만 명세된 대로 재료가 들어갔는지 여부는 알 수 없어."
그 이후, 하므자는 야누아, 마르차 등에게 이렇게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족 영혼의 결정체 500 개가 검 안에 들어갔지. 그 영혼의 힘으로 이 검은 강하게 벼려진 것이란 말이다. 500 묘족 영혼의 힘을 너희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 이전에 들린 이야기에 따르면 하므자는 일정 개수의 영혼들을 결정화시켜 어딘가로 가져갔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검의 재료로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설명했던 검의 재료 명세가 거짓일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야누아, 마르차 역시 그 말이 사실이라 여기지 않고 있었던 모양으로 묘족 영혼의 힘이라는 언급에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묘족 영혼의 결정체 500 개를 언급하고서, 하므자는 검을 들고 일어선 다음에 옥좌에서 10 걸음 정도 앞에 있던 야누아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더니, 야누아는 갑자기 검의 날을 감추고 검을 다시 허리 왼쪽에 매어 놓았다. '갑자기 무슨 이유로?' 싶었으나, 야누아는 그 대신으로 양손에 파랗게 빛나는 마력의 기운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보 같은 것, 검으로 상대가 안 되니, 격투로 이길 생각을 하나,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리고 곧바로 두 손으로 검을 들고 야누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몸이 비대해진 탓인지 뛰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검을 휘두르는 속도도 힘이 안 되어서인지 상당히 느렸다. 검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야누아는 마치 줄넘기를 하듯, 검의 궤적을 재빨리 뛰어 넘었다. 그리고 착지하면서 앉았다가 그가 자신의 오른쪽으로 검을 휘두르려 하는 그 순간,
"흥우아아옹!!!!!" 야누아의 왼발 끝이 하므자의 배에 제대로 꽂혔다. 다리가 얼마나 길었는지, 온 힘에 마력까지 실어 가한 발차기로 꽂힌 발끝은 마치 칼날처럼 하므자의 배를 파고들고 있었다. 이후, 하므자의 몸이 경직되자마자 야누아는 재빨리 앉는 자세를 취했다가 일어나고서 몸이 굳어버린 하므자의 명치를 마력의 기운을 품은 주먹들로 오른쪽, 왼쪽 순으로 번갈아가며 두 차례씩 가격했다가 오른발로 그의 흉부를 강타했다.
파랗게 빛나는 불꽃 형상의 마력이 집중된 야누아의 오른 다리가 그의 흉부에 타격을 가하자마자 그 충격으로 하므자는 공중에 띄워 올려졌고, 이에 야누아는 오른손의 손톱마다 하나씩 파랗게 빛나는 칼날들을 생성해서는 떨어지는 하므자의 흉부를 그 손톱으로 움켜쥐었다. "히야아아오옹!!!!!" 하는 소리가 하므자에게서 울려 퍼졌다. 그 후, 야누아는 하므자를 오른손에 들어올린 채로 옥좌로 시선을 향하더니, 자신의 오른손에 박힌 하므자를 그 옥좌 쪽으로 내팽개치듯 집어던져 버렸다.
마력을 실은 채로 온 힘을 다해 하므자를 옥좌 쪽으로 집어던지니, 그렇게 하므자는 바로 옥좌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옥좌는 큰 힘에 실린 채 날아간 하므자와 격돌하면서 굉음과 금속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소리와 함께 그 즉시 부서졌고, 그 자리에는 내동댕이쳐진 하므자의 쓰러진 모습이 보이고 있을 다름이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그가 자랑했던 양손검은 야누아가 그를 들어올릴 때에도 그의 손에 있었으나, 야누아가 그를 집어던질 즈음, 그의 손을 떠나 그가 서 있던 그 왼편의 바닥에 쇳소리를 내며 내팽개쳐져, 한 동안 바닥을 굴렀다.
그 때, 마르차가 옥좌 왼편의 바닥 쪽으로 뛰어가더니, 곧바로 그 검의 날을 자신의 왼발로 밟았다. 하므자가 일어나서 그의 검을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 하므자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더니, 칼날에서 자신의 발을 떼서는 검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더니, 왼발로 검을 차서 들어올렸고, 이후, 그렇게 들어올려진 그 검의 자루를 자신의 오른손으로 잡았다. 어둠의 힘이 서린 검이라 했지만 실제로 그런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아니면 마르차에게는 별 의미 없었는지, 그 검은 마르차에게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야! 가져!" 그 후, 마르차는 검을 거꾸로 잡더니, 뒤쪽에 있던 마야를 향해 던졌고, 이후,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 양손검은 그 날아가는 모습을 목도한 마야가 앞으로 뻗은 왼팔에 있는 왼손에서 생성된 파란 칼날에 걸렸다. 이후, 마야는 왼손에서 칼날을 감추고 그 이후에 자신의 바로 앞에 떨어진 검을 자신의 검을 대신해 오른손으로 잡았다. 어둠의 힘이 서려 있다는 그 양손검은 마야에게도 해코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야에게도 검이 가진 어둠의 힘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옥좌를 잃고, 검까지 빼앗긴 하므자의 앞으로 야누아가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싸울 때에는 들지도 않았던 광검을 다시 오른손으로 잡고, 그 칼날을 다시 일으키니, 날을 이루는 빛의 기운이 이전보다도 더욱 격렬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하므자의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공포의 감정이 그의 표정에서 완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후, 하므자는 겁에 질린 목소리를 내며 야누아를 우러러 보면서 애원했다.
"제..... 제발 살려주게. 나, 나...... 아아, 우린 동족이잖아. 아하하하......."
"동족? 너 같은 것을 동족이라 생각한 적은 없어." 이에 야누아가 매정하게 목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이에 하므자는 그렇다면 자신이 뭐 같냐고 묻는 듯한 목소리를 내더니, 고양이 귀와 수염 그리고 꼬리까지 달렸는데, 왜 동족이 아니냐고 묻는 듯이 말하고서, 그에 이어 자신을 뭐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야누아는 그런 그에게 차갑게 쏘아 붙였다.
"사냥감, 그 뿐이야." 그러자 하므자는 사냥감이라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냐고 물었으나, 야누아는 답하지 않았다. 사실, 하므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른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더욱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때, 마르차가 야누아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가서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랜만인 것 같아, 하므자 씨. 이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을 텐데."
그리고 바닥에 앉은 모습을 보이던 하므자 앞에서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허리를 숙이며 하므자를 내려다 보는 모습을 보이며, "정말 모르겠어?" 라고 물었다. 이후, 그는 다시 바로 서서 옆에 있던 야누아에게 그 때의 목소리를 다시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야누아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바로 이렇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희들은 돈을 벌려고 여기로 왔어요.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묘족을 잔혹하게 짓밟은 기계 군단을 몰아내고, 묘족들에게 밝은 미래를 주기 위해 싸운다고 하셔서 저희들도 그 싸움에 조금이나마 그 힘을 보태기로 했어요! 잘 부탁해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하므자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듯해 보였다.
"우리가 그 때, 죽은 줄 알았겠지? 유감스럽게도, 너네 용병들이 서로 사소한 의견 하나로 엇갈리더니, 두 패거리로 나뉘어 싸우면서 감옥 사정은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탈출할 수 있었어. 그래,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더라. 그런 일도 없이 그 용병들과 함께 그 요새가 있다는 곳으로 갔으면 어찌됐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마르차가 분기에 찬 목소리로 하므자를 질타할 때에 하므자가 지은 표정은 그저 경악, 공포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마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의 그 어린 소녀들이 이렇게 커서 자신을 크게 위협하는 이들이 될 줄은 아마 몰랐던 모양이다.
"어렸을 때에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동생들보다 작은 사람이었네? 그 때에는 몰랐겠지, 우리가 너보다 이렇게 훨씬 커져서 네 앞에 칼을 들이댈 수 있게 되었을 줄은."
그리고서 마르차가 그간의 분노를 표출하는 듯이 하므자에게 계속해서 외쳤다.
"하므자, 이번 일이 끝이라면 얼마나 다행이겠어. 철 없는 아이들이 괜히 용병단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험한 꼴 당하고 도망쳐 나오는 것으로 끝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너는 그게 끝이 아니었어! 부하랍시고 모집했던 용병들을 죄다 기계들에게 팔아넘기고, 용병들을 소집해서 팔아넘기고, 소집하고, 팔아넘기고! 소집하고, 팔아넘기고!!! 그러다가 사람이 모자라니, 마을 사람들 전체를 기계에 갈아 넣으려 해!? 묘족들을 기계들의 재앙에서 구원하려 한 히데오, 므노르, 스그르 경께서 이 광경을 보신다면 얼마나 참담해 하실까, 너 같은 이적 행위자 때문에 자신들이 구원하려 한 묘족이 아주 결단나게 생겨 버렸으니까!!!"
그리고 묘족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자신과 야누아를 죽이려 한 것에 대해 "우수한 묘족을 선발한 것이 설마 우수한 자원 확보를 위한 것이었냐!?" 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에 하므자는 조용히 웃음을 지으면서 앉은 채로 뒤로 조금씩 물러나려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렸을 때의 일로 인한 감정이 없지는 않겠다만, 이번 일은 그 때에 죽을 뻔했던 나와 내 동생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야. 너 같은, 하찮은 들개들도 못할 짓을 한 녀석 때문에 그야말로 '개죽음' 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 아쉽게 된 일이야, 그런 야만적인 짓거리가 없었다면, 나의 개인적인 복수로 끝났을 텐데. 그렇지 않아?"
마르차에 이어 야누아가 하므자에게 분노 어린 목소리를 낼 무렵, 하므자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자 마르차가 그런 그를 보더니, "미안하게 됐네." 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그에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 검은 내 동생이 가져갔어. 오지 말라고 해도 언니들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왔더라고. 그래서 던져 줬지. 잘 된 일일지도 몰라, 그 검 입장에서는. 그 애가 너보다 훨씬 검을 다 잘 다룰 테니 말야."
이후, 야누아는 검의 날끝이 하므자를 향하도록 하면서 나지막히 그에게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네려 하였다.
"나와 내 동생을 죽이려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에는 몰랐겠지, 이렇게까지 참담하게 입장이 역전될 줄은. 그래, 운명이란 참 가혹하면서도 잔인한 것 같아, 자신이 죽이려 했던 아이들에게 죽게 되는 미래를 선사해 주기도 하니까, 그렇지?"
자신을 향한 위협적인 시선과 저주스러운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하므자는 그저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고픈 표정이나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그 어렸던 이들 앞에서 살려달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너무 공포에 질린 나머지,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두려워하고 있나? 그래 두렵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죽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거야. 아니, 그 이상이었지! 그들은 살아있는 채로 칼날 앞에 마주하자마자 곧바로 피부가 벗겨졌고, 살이 저미어졌으니까! 그 뿐만이 아니야, 그 이후에 살아서 살이 찢겨지는 고통을 느끼는 채로 피가 뽑히고, 내장이 적출당하기까지 했어! 살아있는 채로 말이야, 살이 깎이고 온 몸이 잘리고 부서지는 고통까지 기계 군단이 자신들의 자원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야."
한 동안 조용하던 야누아의 목소리가 하므자를 향해 나지막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말을 이어가면서 점차 분노가 더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런 그들의 두려움과 고통의 몫을 어떻게 이 세상에서 다 갚을 수 있겠어?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하든 불가능할 거야, 지금 이후로 내가 산 채로 너의 살을 저미고, 내장을 파헤치고, 심장을 짓밟아 터뜨리고!!! ...... 그리고 남은 뼈까지 부수고 갈아버린다고 해도, 네가 저지른 모든 업보를 다 갚을 수는 없을 거야."
한 동안 조용히 분노를 터뜨리던 야누아는 곧 다시 조용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분기는 이전에 비해 사그라진 듯해 보였지만, 그것을 대신해 조롱 섞인 비아냥이 분노를 대신해 목소리를 채우고 있었다.
"너 같은 살인 중독자, 학살 중독자라면 눈 앞에 칼이 들어와도 태연하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 사람이 칼끝이 목에 닿자마자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어찌할 바 모를 정도로 질려버리다니, 이러다가 그 자리에서 소변도 보겠는 걸. 길바닥의 들개들도 너 같지는 않겠더라. 그래, 참으로 애석한 일이야, 너도 너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분노 섞인 야누아의 비아냥 이후에 마르차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더라, '피의 바다 위에 강인한 제국을 건설하겠다' 는 독재자가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니,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더라, 라고. 너와 같은 사람의 껍질을 둘러쓴 오폐물에 관한 이야기겠지. 더러운 자식들...... 그런 녀석들은 들개가 먹으면 몸이 썩어서 죽을 테고, 어디에 묻어도 썩은 냄새 때문에 풀 한 포기 하나 자라나지 못할 거야. 물에 던지면 폐수가 번져서 그 자리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겠지.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아? 바로 너 같은 것들의 이야기야, 너!!!"
마르차의 분노 섞인 목소리 이후로, 야누아가 검으로 그를 본격적으로 벨 기세를 보이며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됐어.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네가 알고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을 상상해 보라, 그 하나 뿐. 하지만, 지금 이후로 네가 상상할 그 어떤 고통보다도 잔인한 고통이 너에게 가해지게 될 거야."
그리고서 그는 다시 한 번, 그리고 그를 향해 마지막으로 차갑게 쏘아 붙였다.
"이 모든 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야, 하므자. 그러니, 나와 내 동생을 원망하려 하지 마. 원망하려면, 너 자신을 원망하든가 해."
그렇게 하므자가 야누아의 칼날에 베일 것만 같았던 그 때, 옥좌 뒤에 있던 원형 문 너머에서 하얀 빛이 격렬히 밝아지기 시작했고, 이어서 문의 테두리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하므자는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아아......! 살았다! 이제 살았어, 도망갈 수 있다! 기계 군단이 나에게 탈출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셨어!"
마치 환희에 가까운 미소와 함께 외치는 기쁨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내며, 하므자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 때를 같이 해, 야누아는 하므자를 향한 공격을 멈추고 그가 문 쪽으로 다가가려 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려 했다.
"너네들은 내가 기계 군단에게 숙청당할 줄 알고 있나 본데, 아니야, 그 분께서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분께는 무한한 은혜를 제공하셔. 단 물 빨아먹고 버리는 너희 하찮은 묘족과는 차원이 다르단 말이야. 헤헤헤...... 이제 너희들은 끝났어. 군단의 주인님께서 이제 곧 깨어나실 때가 됐단 말이야. 주인님께서 깨어나셔서 여기 모두를 다 죽이실 거란 말이지. 그래, 너희들은 다 죽었어! 해해해 이히히 해하하하......"
하지만 야누아도, 마르차도 그를 굳이 잡으려 하지는 않았다. 마치 '그렇게 믿고 싶으면 믿어 보든가' 라는 식으로 냉소를 지으며, 하므자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때, 야누아로부터 이런 목소리가 나지막히 울려 퍼졌다.
"그래, 네 주인이 네 뜻대로 행동해 준다면 너를 위해 주겠지. 어디 한 번 그렇게 믿어 봐."
그 때, 공간 전체가 격렬히 진동하기 시작했고, 이에 마르차가 야누아에게 모두 탈출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야누아가 먼저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하니, 마르차 역시 바로 밖으로 뛰쳐 나가려 했다. 이미 마야와 율리아는 밖에 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그의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하고 그의 모습을 계속 관찰하려 했다.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문 안쪽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기류. 문 안쪽에 있는 무언가가 대기를 흡수하면서 생기는 기류였을 것이다. 그 강한 기류에 하므자는 겨우 바닥에 발을 붙인 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도검, '신명왕의 심판검' 이라 칭해진 대검을 찾으려 했지만, 그 대검은 이미 그의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마야가 자신의 대검을 대신해 손에 들고 있으면서 옥좌의 방을 빠져나갔으니, 하므자가 빨려들어가기 시작할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더욱 급격히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문을 넘어서려 할 즈음에 그의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IL ME FAIT DON D'UNE GRÂCE INFINIEEEEEEEEEEEEEEE!!!!!!
DONNEZ-LUI VOTRE FIDÉLITÉÉÉÉÉÉÉÉÉÉEEEEEEEEEEEE!!!!!
IL EST UN SEUL DIEUEEEEEEEEEEEEEE!
IL EST UN SEUL CRÉATEUREEEEEEEEEEE!
IL EST UNE SEULE TOUTE PUISSANCEEEEEEEEEEEEEEEEEEE!!!!
그 분께서는 무한한 은혜를 베푸신다아아아아아아아!!!!!
그 분께 충성을 바쳐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분이야말로 유일한 신!
그 분이야말로 유일한 창조자!
그 분이야말로 유일한 전능자이시니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가 문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 다시 한 번 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LA MACHINE EST FORTEEEEEEEEE!
LA MACHINE EST PARFAAAAAAAAAAAAAAAAAAAAAIT!
ET LA MACHINE EST L'UNIVERS MÊÊÊÊÊÊÊÊEEEEEMEEEEEEEEE!
TOUTES LES VIES! OBÉISSEZ À LA MACHIIIIIIIIIINEEEEEEEEEEEEEEEEEEEE!
기계는 강하다아아아아아아아!!!!
기계는 완벽하다아아아아아아아!!!!!
기계는 우주 그 자체다아아아아아아아!!!!!!
모든 생물들이여! 기계에 복종하라아아아아아아아!!!!!!
GASPILLEZ TOUS VOS CORPS FUTILES ET LOUEZ LA MACHINE DE L'OMNIPOTENCEEEEEEEEEEEEEEEEEEEEEEEE!!!!!!!
부질 없는 육신을 버리고, 전능하신 기계 님을 찬미하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후, 문이 자리잡은 일대의 천장이 무너지자 나 역시 다급히 옥좌가 위치한 문 너머로 빠져나갔고, 그와 함께 아네샤가 나를 맞이했다.
"라르나, 그 동안 뭐하고 있었어!? 못 나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잖아!" 그러더니, 아네샤는 요새 전체가 다 무너질 조짐이 있다고 말하고서 어서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좌의 방까지 왔던 그 반대 방향으로 아네샤가 다급히 앞장서 날아 올랐고, 그 뒤를 내가 따라 나섰다. 얼마나 다급히 날아가고 있었는지, 날개가 뒤로 완전히 젖혀져 있었다.
"다른 분들께서는 이미 나가셨어?"
"벌써 탈출하신 것 같아."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답했다. 그 때, 내가 날아가던 그 아래 쪽에서 이런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나긴 단말마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하므자의 단말마였던 모양으로 기계 병기 내부로 빨려들어간 이후에 그 내부 장치에 의해 몸이 찢겨지는 최후를 맞이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아네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 너머에 있던 것, 조항이 '요새의 악마' 라 칭했던 것 있잖아, 역시 기계 병기이겠지?"
"당연하지." 그 물음에 내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단말마의 메아리가 그칠 무렵, 요새 전체가 뒤흔들리며 그 내부 장치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내벽의 파편들이 낙하하고 있어서 요새 전체가 붕괴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러다가 탈출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 마, 내가 어떻게든 다 뚫고 밖으로 빠져나가 볼 테니까!"
이후, 우려의 마음이 생긴 아네샤에게 내가 지팡이에서 번개 기운을 생성할 준비를 하면서 답했다. 그리고 요새의 표면에 큰 구멍이 뚫렸으니, 그 구멍까지 접근해 갈 수 있으면 문제 없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구멍이 뚫린 곳까지 의외로 금방 도달했고, 그 이후 나는 요새 지하 부분의 구멍이 뚫린 부분을 통해 요새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이미 요새는 기반 채로 격렬히 진동하고 있었고, 뒤쪽 방벽을 구성하는 건물들의 탑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가고 있었다. 탑들이 무너지면서 벽을 구성하던 건물 전체가 붕괴되어 갔다. 후방의 건물은 좌우 주변 부분부터 차례로 붕괴되고, 마지막으로 중앙 부분이 앞으로 엎어지는 듯이 무너져 내렸다. 그 무너지는 중앙 부분은 요새 한 가운데의 구멍이 뚫린 부분으로 중앙 부분 내부의 반응로 채로 떨어지고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순간 아찔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미 밖에서는 요새 밖으로 먼저 나온 클라리스와 미라 그리고 야누아 4 자매와 더불어 밖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는 아샤란, 모린 그리고 바르차의 모습이 보였다. 요새의 정면 쪽에서 야누아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므자의 검이었던 '신명왕의 심판검' 을 두 손으로 안고 있던 마야의 모습이 보였다.
"무사하셨군요! 늦게 오셔서 걱정했었어요." 그 때, 야누아가 요새 밖으로 나오는 나와 아네샤를 맞이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는 곧 이 일대 전체가 위험해질 것이라 말하고서 어서 다른 곳으로 나아가며 피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나에게 알렸다.
"요새 내부에는 지하의 대형 플라즈마 반응로를 비롯한 4 개의 반응로가 있어. 그 중 하나는 지상의 소형 반응로로 후방의 건물 한 가운데에 있던 것이겠지. 그 모든 것들이 폭주, 폭발하면서 요새를 뒤덮고, 그 주변의 상당히 멀리까지 미치는 폭풍이 휘몰아칠 거야."
그 때, 마야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렸고, 이어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요새의 정문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다급히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요새의 뒤쪽 건물이 붕괴되면서 그 여파로 본관 역시 무너지고 있었으며, 건물들의 붕괴와 함께 폭발이 거듭 발생해 요새의 표면에는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불길이 보랏빛으로 가득했던 요새와 그 일대에 붉은 빛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행이 요새에서 멀어졌을 무렵, 계속 격렬히 진동하던 요새의 표면에서 하얀 빛 줄기들이 새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고, 더 나아가 요새의 하층 부분에서도 빛이 표출되기 시작하니, 두 눈과도 같은 지하의 통로 입구 부분에서 빛이 분출되고, 두 통로 사이의 한 부분이 갈라지고 폭발해 빛이 표출되는 광경이 마치 눈과 입에서 빛을 뿜어내는 광경 같았다, 온 몸에 폭주하는 마력이 주입되고 그로 인해 온 몸이 부서지기 전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그 무렵의 얼굴 모습이 저랬고, 그 이후에 얼굴을 비롯한 온 몸이 폭주하는 마력에 의해 부서져 버렸다. 그 요새 역시 그 때 보았던 그 온 몸이 부서진 사람처럼 부서져 버릴 것임이 틀림 없었다.
이후,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요새의 중심부, 구멍이 뚫린 부분에서 거대한 빛 기둥이 치솟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요새의 모든 부분이 파열되기 시작하더니, 한 차례의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열기가 별이 폭발할 때처럼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요새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폭발해 흩어지다가 더욱 급격히 분출하는 빛과 열기에 의해 사라져 가고 있었으며, 굉음이 터져 나오며 생긴 여파가 주변 일대의 대기를 격렬히 진동시키고 있었다.
열기는 요새가 있던 그 일대를 뒤덮어 버렸으며, 빛은 더욱 격렬히 퍼져 나아가 보랏빛으로 물들었을 주변 일대를 잠시나마 하얗게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아테다르마 계곡의 한 곳에 또아리를 틀고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해 죽음의 길로 내몰았던 기계 군단의 요새는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폭음이 이어지고 그 여파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그것이 끝이 아닐 것임은 분명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할 필요를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는 착각과 광기에 사로잡힌 채 어느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하므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단말마와 같은 비명 소리가 이어 떠올랐다. 분명 그 너머에 또 다른 존재가 있을 것임이 틀림 없어 보였고, 어쩌면 그것이 하므자가 신으로 받들고 있던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이라고? 동족의 원수인 기계 병기를 신으로 받들고 있었단 말이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네샤가 말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하므자가 '주인' 으로 받들고 있던 존재가 곧 깨어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나를 비롯한 모두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나와 아네샤도 대비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폭발의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 갔다. 여타 폭발과 달리 빛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고, 음파는 계속해서 번져가고 있었다. 그만큼 요새의 규모가 컸고, 또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원들이 내장되어 있었음을 의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에너지원으로 쓰인 플라즈마 반응로를 구동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고 그들의 피를 플라즈마로 만들었는지 역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클라리스, 미라 그리고 아샤란과 모린, 바르차는 상당히 멀리까지 나아갔으며, 폭발이 일어난 우측 방향의 한 곳에 모여 폭발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도 그 요새의 폭발이 완전한 끝이 아닐 것이리라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으며,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누아를 비롯한 고양이 요정 4 자매는 폭발이 일어난 지점에 모여 그 폭발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말 없이 현장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아직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은 듯해 보였으며, 여기에 야누아, 마르차의 경우에는 하므자라는 존재에 대한 사그라지지 않은 분노까지 느껴지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렇게 협곡의 일부분,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이는 일대를 지면부터 하늘까지 하얗게 물들인 폭발의 열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걷혀가고 있었다. 빛이 사라져 가면서 폭발에 의해 생성된 하얀 연기가 걷혀가고 있었으며, 빛과 구름이 사라져 가면서 하늘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던 구름 역시 사라지며, 감색을 띠는 밤하늘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랏빛 구름으로 뒤덮였다가 하얀 열기에 휩싸였던 하늘의 부분이 요새가 자리잡았던 중심부에서 마치 감색 물감이 퍼져가는 것처럼 본연의 밤하늘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열기가 걷히면서 요새가 자리잡았던 봉우리, 아니 요새의 일부였을 봉우리가 있었던 자리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폭발의 여파 때문인지 봉우리는 이미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보라색 빛을 발하는 웅덩이만 남아있었을 따름이었다. 플라즈마로 채워져 있었을 법한 웅덩이는 곧 파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웅덩이가 자리잡은 일대가 격렬히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아네샤로부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기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 같아!"
"알았어. 이제 조금 다가가 보자." 아네샤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화답하고서 요새가 폭발한 그 자리에 생성된 웅덩이로 접근해 가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이미 클라리스 일행은 각자의 무장을 들고 웅덩이에서 모습을 드러낼 이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야누아 등의 고양이 요정 자매들 역시 대결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진동하는 웅덩이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원통과도 같은 몸체를 가진 기계 병기로서 그 끝 부분에는 거대한 고리 하나가 자리잡고 있으면서 그 안쪽의 파랗게 빛나는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반대편 끝에는 여러 발사 장치들 및 포신들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또 양 옆 부분에는 모종의 장치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 장치들이 무엇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거대한 병기의 앞 부분을 가만히 살펴보는데, 앞쪽 끝에 자리잡은 고리와 그 내부의 모습이 마치 하므자가 마지막으로 끌려간 문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으며, 또한 테두리의 모습과 테두리에 새겨진 글자들 역시 닮아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야누아의 뒤에 있던 율리아가 야누아에게 이렇게 물었다.
"야누아 언니, 저것...... 인류 문명이 개발했다는 '인공 위성 (Yapay Uydu ; YU) = (Artificin Dalbiol ; AD)' 아니야?"
"맞아." 그러자 마르차가 야누아를 대신해 율리아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인류가 개발했던 것들 중에는 평화적인 용도의 위성들도 있었지만 저렇게 궤도 폭격 등을 위해 개발된 살인 위성도 있었는데, 그 공격용 위성의 변종인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거, 궤도 폭격용으로 기계 병기 군단에서 개발한 병기로 알고 있는데, 맞지?"
이어서 미라가 클라리스에게 위성처럼 생긴 거대한 기계 병기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클라리스가 바로 그러하다고 답한 이후에 그 병기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미라의 물음에 대한 추가 답으로써 그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알려주려 하였다.
"정식 명칭은 U 형 궤도 폭격용 광범위 초토화 위성, URL (위 에르 엘). (URL, Satellite de Bombardement Orbital pour la Dévastation Généralisée du Type-U) 여기서 URL 은 Universel a Ravagé Lendemain, 즉 '보편적인 파멸된 미래 (Ara-Zipëradyin Haje ; AZH)' 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