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lphid 4th - 3. La Tormenta Violeta : 8


  "야누아, 네가 여기로 오기 전에 잠깐 창가를 둘러보았는데, 웬 종이 상자가 움직이고 있더라."
  "예?" 루세르나의 이야기에 야누아는 바로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자가 움직이는 것은 보통 상황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루세르나에게 혹시 바람에 날려가며 움직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그런 그의 물음에 루세르나가 답하기를,
  "마치 수레가 움직이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어. 그러더니, 어느 골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며 사라졌었지."
  "누군가가 종이 상자를 쓰고 돌아다닌 거야." 그러자 마야가 바로 야누아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말했고, 이후, 야누아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루세르나에게 그 수레를 찾으러 가 봐야 하겠음을 알리며 밖으로 나가려 하였고, 이어서 마야가 그런 야누아를 따라 나서면서 그에게 "또 만나." 라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야누아의 인사와 달리 꽤 감정이 절제된 듯한 목소리가 그에게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클라리스, 미라 씨도 슬슬 여기서 떠나셔야지요,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요." 루세르나의 말에 클라리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리고 바닷가에 가 있겠음을 알리며,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이어서 미라가 그런 그를 따라 나서려 하면서 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언젠가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어~"

  그렇게 야누아, 마야 그리고 클라리스와 미라가 떠나갔지만 나는 아네샤와 함께 대장간에 남았다. 그 후, 대장간에서 작업을 위해 작업대로 걸어가면서 루세르나는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음을 밝히고서 나에게 이런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세니티아에서 오신 분들이시지요. 방금 전에 마야가 보여주던 그 4 개의 문양에 나름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혹시 여행의 목적과도 관련이 있나요?"
  "어느 정도는 있어요." 그러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세니티아에 살고 있던 인류의 행방 혹은 그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그 과제이며, '황금의 원반' 이라 칭해지는 그 원반이 인류의 흔적을 찾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에 기대를 하기 시작했음을 이어 알렸다.
  "그렇군요." 그러자 루세르나가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창가 아래의 자루에서 무언가를 꺼내 쇠막대기 안에 채워 넣고 있었다. 무엇을 쇠 막대기의 빈 공간 안에 채워넣고 있는지를 보니, 칼날 조각들이었다. 칼날 조각을 쇠 막대기 안에 봉입하고 쇠막대기 채로 가열해 새로운 강철로 단련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었던 것.
  "무슨 작업을 하시는지 이미 아시는 것 같네요." 그 광경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루세르나가 그런 나에 대해 말을 건네려 하였고, 이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에 대장간에서 그렇게 강철 칼날을 제작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음이 그 이유임을 밝혔다.
  "다마스카식 도검 (Damaskaßïin Nale) 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들었어요."
  다마스카식 강철 제조법. 순도 높은 강철을 만들어내기 위한 담금질 작업의 일종이라고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묘한 무늬가 칼날 등의 표면에 보이게 된다고 하며, 내가 대장간에서 본 것은 각종 금속 폐기물로 그러한 형태의 무늬가 그려진 도검을 제조하는 방법이었다. 그래봬도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이것저것 보신 것이 많군요." 그러자 루세르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말했고, 작업을 이어가면서 다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물으려 하였다. 인류의 행방을 찾아내려 하는 이유로 무엇이 있는지를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한 것이었다.
  "고향에 있는 아이가 인류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해서 그랬어요."
  그러자 내가 답했다. 그리고 책이나 연극 등을 통해서는 자주 보기는 했지만 그 실물을 어째서 볼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해 주지 않기에 그것에 대해 궁금해진 듯해 보인다고 말한 이후에 그래서 나를 비롯해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고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었다. 그리고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면 애초에 하고 있어서 예상대로 인류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음을 이어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군요." 그러자 루세르나는 작업을 이어가며 답했다. 그리고서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음을 밝히고서 그것에 대해 말하려 하였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런 전언을 들었어요. 몇 년 전 즈음인가, 그 무렵에 인류의 마지막 후예가 사라졌으며, 그래서 그를 대신해 인류의 기억을 설파할 존재가 필요해졌다는 것이었지요. 본래는 '인류의 마지막 일가 (=umanchaziy Mezein Famiye)' 가 있어서 그 일가를 통해 전승되고 있었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 마지막 후손이 사라진 것이 원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그를 대신할 존재를 찾아줄 용사를 필요로 한다고 하였는데......."
  "그러고 보니, 라르나, 우리가 인류의 행방을 찾으러 간다고 하니까, 그 마녀 분께서 우리와 연락을 하시기 시작하지 않았어?"
  그 때, 나의 우측 인근 상공에 떠 있던 아네샤가 나를 향해 다가가더니,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지속적으로 나를 비롯한 일행과 연락을 취하고 있던 '마녀' 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맞아, 그랬었지." 그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리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인류의 행방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듯해 보였다고 그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자 그 대화를 듣고 있었을 루세르나에게서 이렇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정체를 알지 못하신다면 그 마녀의 모습을 실제로 보시지는 않으신 것이네요."
  "그렇지요." 이후, 루세르나는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고, 신문의 사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드러냈는데, 자신이 그의 주장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신문을 통해서였다고 했다. 그리고서, 나, 아네샤와 연락을 주고 받는 그 사람이 자신이 언급했던 그 사람과 동일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류의 행방을 찾으러 간다고 하니까, 도와주겠다고 의사를 표명하신 것에서 그러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만, 루세르나 역시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실히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말투에서 조하르 (Zohar) 사람의 흔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서, 그래서 원래 고향은 조하르 성계의 어딘가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따름임을 이어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마녀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조하르 성계에도 가 봐야 하려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거야, 때가 되면 언젠가 그 마녀 분께서 정체를 밝히실 테니까."
  이후, 아네샤가 조하르 성계로 가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자, 나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답했고, 이어서 또 다른 주제에 관한 물음을 건네었다. 먀미아 성계의 아테다르마 협곡 서쪽 먼 길로 떠나갔다는 마법사에 대해 혹시 들은 바 있느냐는 것이었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예상한 대로이기는 했다. 루세르나는 그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이전에 아르데이스 성계로 마법사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을 밝히고서 뭔가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를 저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하기는 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언급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이후, 루세르나는 쇳덩이를 두들기고 담금질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루세르나는 더 이상 나와 아네샤 등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루세르나와 헤어지고서 곧바로 그의 공방을 나섰다. 다만, 일행이 공방을 나설 즈음, 루세르나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공방을 찾아줄 것을 부탁하고서 자신이 만들고 있는 물건의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이어 언급하였다.



  마냐하타의 북부 십자로의 동쪽 한 곳에 자리잡은 대장간, 그 옆에는 빵집이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여러 상자들이 있었다. 고양이들이 상자를 좋아하고 상자에 숨어있으려 하는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지라 수상하다고 여기었지만 기척 자체는 없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거나 하지는 않으려 하였고, 그러면서 빵집의 현관문 쪽으로 다가가려 하였다. 빵집 안쪽에는 몇몇 소녀들이 작업복 차림을 하고서 부지런히 빵을 굽고 있었다. 그렇게 갓 구워진 따뜻한 빵은 아침에 구할 수 있고, 아침 일찍 사람들이 빵집을 찾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빵집에 간 적 있었지?"
  "응." 내가 건네는 물음에 아네샤가 답했다. 아네샤는 아침 일찍 일어난 적이 많았고, 그 때마다 빵집으로 가곤 했었다고 한다, 갓 구운 빵의 냄새를 맡기 위한 것으로, 처음에는 빵을 굽는 과정을 보고 싶어 구경만 했다가 이내 빵을 사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빵집을 구경하다가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어 잠시 뒤를 돌아 보았다. 닫혀있던 상자의 뚜껑들 중 하나가 열려 있었는데, 왜 열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도중에 누가 열어본 것이 아닌가, 하고 여기는 정도로 상자에 대한 생각을 그치고 그 이후에 곧바로 빵집을 지나쳐 시가지를 걸으려 하였다. 그러는 그 때,
  "라르나, 위쪽을 조심해!" 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아네샤에게서 울려 퍼지고, 하늘 위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하늘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양갈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가 나를 향해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급히 주문을 영창해 바람을 일으켜서 소녀를 띄워 올렸고, 나를 향해 뛰어내리던 움직임은 그렇게 멈추었다. 이후, 내가 바람을 내리자마자 소녀는 돌바닥 위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착지했다. 일련의 소동 이후, 나는 뛰어내린 이가 누구인지 보려 하였다. 소매 없는 가벼운 하얀 옷과 붉은색을 띠는 짤막한 바지로 이루어진 가벼운 옷차림을 한 이로 머리 위에 한 쌍의 고양이 귀가 달려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야누아, 마야가 찾아다녔던 그 율리아였다.
  "갑자기 뛰어내리셔서 깜짝 놀랐잖아요!" 그 때의 일로 나보다 아네샤가 더욱 놀랐었는지, 사건 직후, 아네샤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율리아를 자책했다. 그 때, 율리아는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그런 율리아에게 곧바로 물었다.
  "왜 그런 짓을 벌인 거예요?" 이에 율리아는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두 분이라면 무사히 저를 받아내실 줄 알았거든요."
  율리아는 세니티아 등지에 살고 있는 바람의 정령 (Sylf, Sylfa) 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들은 하늘, 산지를 오가는 사냥꾼들로서 살아남기 위해, 모험을 위해 짐승, 괴물, 기계들을 사냥할 수 있는 이들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모름지기 사냥꾼이라면 이런 습격에 대비하는 것이 일상적이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면서 율리아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묻고 있었다. 그러자 아네샤는 "늘 그러하지는 못해요." 라고 말하고서, 그에게 야누아, 마르차에게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율리아는 어렸을 때 몇 번 해 보았지만 그 이후로는 안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더 이상 못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그들-특히 야누아-은 워낙 눈치가 날카로워 습격을 시도하면 발각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르차 언니에게는 몇 번 해 봤어요." 그리고서 마르차에게는 몇 번 성공했지만 그 이후로 반격을 거하게 당해서 그렇게 몇 번 당한 이후로는 안 하게 됐다고 한다. 야누아의 경우는 내가 예상한 바 그대로였으며, 마야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습격을 가하는 것도 연습의 일환이라 생각해요, 바깥에 나가면 괴물, 기계들이 이렇게 습격해 오거든요."
  그리고서 율리아는 습격을 가하는 것은 앞으로 있을 싸움을 위한 연습의 일종이라 여기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언니들 그리고 클라리스 등이 기습에 강한 것도 자신이 단련을 시켜줘서 그런 것이라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다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야누아, 클라리스 등이 오면 어쩌려고?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 생각을 바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키지 않을까, 하며 우려하기도 했었지만 율리아는 그런 나의 우려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클라리스, 미라 언니는 여기 오지 않은 것 같네요."
  그러더니, 본래는 클라리스, 미라를 덮칠 생각이었는데, 그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 버린 것 같다고 말하고서, 혹시 그들을 보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다급히 어딘가로 뛰어가려 하였는데, 그런 그를 겨우 붙잡아서는-빵집 근처를 지나 몇 구역을 더 지나서야 잡을 수 있었다. 얼마나 빠르던지- 그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었다.
  "급히 어디로 가시려 하시는 거예요?"
  "아시려 하면 안 돼요!" 그리고서 그는 해안쪽의 서쪽 골목 방향으로 뛰면서 "나중에 또 봐요!!!" 라고 외치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율리아가 사라진 골목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때, 아네샤가 그런 나의 왼편 곁으로 다가와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누아 씨 등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그러고 계실 거야."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는 건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후, 아네샤는 나에게 "어떻게 할까?" 라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나는 원하는 대로 하게 놓아두자고 답했다. 그리고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렇다고 그 이유를 말하기도.
  "자매들 중에 막내라 했지? 그래서인지, 앳되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그런 것 같아." 아네샤의 말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전투 중에는 매우 사납고, 폭언도 서슴지 않는 과격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지만 그 때에는 그런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마 그 당시에 내가 보았던 율리아의 모습이 그의 원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투 중에는 왜 그렇게 과격했던 것일는지."
  "상대가 하므자였을 테니까." 그러자 아네샤가 바로 나의 말에 화답했다. 그리고서 언니들을 죽일 뻔한 원수이자 자신을 고아로 만들 뻔한 이였고, 또 동족들을 숱하게 학살한 장본인이기까지 하니, 율리아는 그런 그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율리아와 헤어진 이후에는 남쪽으로 나아가며 광장 쪽으로 걸어가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미라와 마주한 마르차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르차는 두 팔을 머리 뒤로 올린 자세를 취하면서 미라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야누 언니하고 클라리 언니가 산토 루이스 쪽으로 간다고? 아샤란 등과 함께 말이지?"
  "그렇게 됐어. 산토 루이스 쪽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있었대."
  그러자 미라가 바로 답했다. 그러자 마르차는 "그 언니들도 참......." 이라 말했다. 그 후, 미라는 마르차에게 율리아는 아직 못 찾았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마르차는 때가 되면 알아서 자기 곁으로 올 것이라 말하고서 그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음을 밝혔다. 그 이후, 그는 해안 쪽으로 걸어가면서 거리 쪽은 당분간 재미 없을 것 같다면서 해안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라가 그런 그에게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해변으로 가 봐야 하는 것이라고는 공차기나 모래성 쌓기 정도밖에 없으면서."
  "그래도 거리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에 마르차가 바로 반박했다. 이전에 핀잔을 주듯이 마르차에게 말을 건네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마르차의 곁에 계속 있으려 하였으며, 미라의 말투에도 기분 나쁜 느낌은 없어서 그냥 재미삼아 던져 본 말이었던 것 같다.
  "두 분도 혹시 율리아를 찾고 있는 거예요?"
  "딱히, 그렇지는......" 이후, 마르차는 나와 아네샤를 보더니, 나에게 율리아를 찾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굳이 그렇게 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마르차는 조용히 웃으면서 "그렇군요." 라고 말하고서는 잠시 주변 일대를 둘러보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봐야 야누 언니나 클라리 언니 눈밖을 벗어나지는 못해요. 모르기는 해도, 금방 그들에게 잡혔겠죠."
  이후, 마르차는 미라와 함께 해변으로 가겠음을 나에게 알렸다. 그리고서 이것저것 재미난 것들을 해 보고 싶다고 말하고서는 미라와 함께 해변 쪽으로 뛰어갔다. 미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다른 말 없이 그를 따라 나서주었다.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렇게 그들을 떠나 보낸 후,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날갯짓을 하면서 다시 회관 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 때, 아네샤가 그런 나에게 아테다르마 서쪽, 야누아, 클라리스 등이 갔다는 산토 루이스 쪽이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 쪽 일은 그들이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 말하고서 크게 신경을 쓰려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신도 그 곳으로 가 보겠음을 알리기도. 그리고서 아네샤가 정말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하고서, 이렇게 이어 말했다 :
  "나도 그 곳에는 가 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진작에 갖고 있었어."

  내가 향한 곳은 마을의 회관 뒤쪽에 있는 사당이었다. 바르차가 평소에 머무른다는 사당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가는 것으로 그를 통해 알고 싶은 것이 있기도 하였기에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마을 회관 쪽으로 비행하는 동안 아네샤도 뒤쪽에서 그런 나를 따라 비행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소정령 간 통신이 시작되고 그에 이어 마녀가 비행을 하고 있는 나 그리고 아네샤에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마냐하타 마을에 계시지요?"
  "그래요." 마녀의 말에 내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마녀는 클라리스 그리고 야누아, 두 사람이 마법사가 발견됐다는 산토 루이스 쪽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고 말하자, 이번에도 나는 그렇다고 화답한 다음에 마법사에 관해 알아보고자 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것말고도 아마 다른 목적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목적이라고요?" 이에 아네샤가 마녀에게 물었고, 마녀는 그 물음에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는 동안, 나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대략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생각을 눈치챘는지, 마녀가 나에 대해 나는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르차 님께서는 아직 어리시기는 하지만 이 일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아시고 계세요. 사당에 가시면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후, 마녀는 바르차에 대해 마냐하타, 포화탄을 비롯한 먀미아 성계의 여러 지역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밝히고서-전부 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그러할 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먀미아 성계에 일행이 갔을 때, 우선 바르차를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저도 바르차 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구 인류에 대해서도 상당히 아시는 것이 많으신 분이세요."
  "정말일까요......" 그러한 마녀의 목소리에 아네샤가 바로 의문을 표시했지만 나는 도움될 곳을 찾을 수 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곳에서 이런 조언을 마다할 이유는 없음을 그에게 말하고서 마녀에게 한 번 가 보겠음을 알렸다.

  대화를 마칠 즈음, 일행은 이미 마을 회관을 지나 그 북쪽 너머에 있는 사당에 도달하고 있었다. 1 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진 사당 자체는 일반적인 예배당보다도 작은 건물이었으며, 일대에 사람들이 자주 오가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지만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도 느껴지고 있었다. 함부로 드나들려 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사당의 바로 앞에 이르자마자 일단 그 곳에서 착지를 하고서, 앞장서서 사당의 정문 쪽으로 나아갔다. 정문의 울타리를 지나치고서 작은 건물의 현관문 앞으로 다가가서 그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의 건너편에서 누구냐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에 내가 바로 답했다.
  "바르차 씨를 만나기 위해 왔어요~"
  "들어오세요~" 어린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을 열어주는 이 하나 없었던 것 같지만 일단 문은 열렸고, 그래서 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드러나는 공간의 내부는 마치 하나의 작은 사당의 본전 내부를 보는 듯해 보였다. 자그마한 방의 한 쪽 끝에 방석이 하나 놓여 있는데, 갈색을 띠고 허리에 삼색-빨강, 노랑, 파랑-을 띠는 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하단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갈 정도로 긴 옷을 입은 어린 소녀가 머리에 띠를 두른 모습을 보인 채 공손히 정좌하고 있었다 - 띠의 양 옆은 하나씩 초록색, 은색, 금색을 띠는 이파리들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아샤란의 것에 비해, 아니 마냐하타의 여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띠의 장식보다도 더욱 커서 그의 신분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어린 소녀였지만 정좌하고 있는 모습에서 나름의 기품이 느껴지고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공간의 내부와 함께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런 격식이 그렇게 내키지는 않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격식을 차리지는 않을 수는 없었고, 그래서 바르차의 바로 앞에 조용히 정좌하는 자세로 앉으니, 아네샤도 이윽고 나의 우측 곁에 같은 자세로 앉았다.
  "바르차 씨를 만나뵙고 싶어서 한 번 찾아와 보았어요."
  그의 바로 앞에 앉자마자 내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이유로 찾아왔느냐고 분명 바르차가 물어볼 텐데, 그 전에 그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의 거처를 찾아오고자 했던 이유를 바로 말했던 것. 그러자 바르차는 환하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나에게 말하더니, 이어서 나와 아네샤를 조용히 바라보며 한 가지 청을 했다.
  "방석을 하나씩 드릴 테니, 앉아요."
  그리고서 자리에 앉은 채로 알 수 없는 손짓을 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나와 아네샤의 바로 앞에 한 쌍의 방석이 연기와 함께 생겨났다. 아마도 방에 있던 것이 소환되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마법에 익숙했다고 자부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광경은 그런 나에게 있어서도 낯선 광경이었다, 자리에 앉은 채, 인근의 방에 있었을 방석을 마법으로 나의 바로 앞으로 소환하다니. 그와 동시에 집에 바르차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방의 오른편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르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석에 다시 앉으려 하는 나에게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그리고서 그는 모종의 손짓을 하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우측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인척이라고는 없었을 방 안에서 천천히 찻잔이 올려진 세 접시들이 바르차 그리고 일행이 앉은 곳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이후, 찻잔들 중 하나는 바르차의 앞에, 그리고 두 개는 나와 아네샤의 앞에 놓였다. 그렇게 찻잔이 놓인 접시들이 방의 바닥에 안착하자마자 바르차가 열린 문을 바라보며 무언가 손짓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다시 문이 닫혔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볼 때마다 사람들이 놀라고는 하지요."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리자마자 바르차는 그간 보이는 광경을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기만 했을 나와 아네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에 의하면 야누아를 비롯한 신디 자매도 이런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많이 놀랐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르차가 그간 보여왔던 광경이 어쩌면,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마법사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마법적인 삶 (Sorcasrain Sary)' 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마법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물의 존재 의의는 결국 사람의 삶을 조금은 보다 편리해지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으며, 더 나아가, 마법은 그런 방향에서 더욱 발전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간 사람들은 마법이 보일 수 있는 비일상적인 현상에 더욱 집중했으며, 재앙적인 힘에 더욱 이끌려왔던 것 같고, 아마 지금도 그러할 것 같다. 보다 지적인 면이 강한 땅, 불의 정령들도 그러할진대, 마법을 사냥을 비롯한 싸움을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고 있는 물, 바람의 정령들은 오죽할까. 바르차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시점에서 옛 인류의 문명도 과정이 어찌됐든, 일상적인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음을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또, 인류의 문명 수준을 재현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들에 못지 않은 이상을 추구해야 함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와 만나면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만.......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라면 지금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네요."
  "무슨 이야기인가요?" 이에 아네샤가 바로 의문을 품는 모습을 보이자, 바르차는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곧 알려주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뜨면서 무언가 한 마디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 여러분들의 여행 목적은 인류의 행방을 찾는 것. 그 행방을 직접 알 길이 없기에 어떤 분의 인도를 받고 계신 것이겠지요?"
  "맞아요." 바르차는 나와 아네샤가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미 짐작하고 있는 듯해 보였고, 그래서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문을 마법을 통해 저절로 열게 만들고, 찻잔을 원격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나와 아네샤가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하는지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음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면...... 그 행선지는 아마도 은하계의 중심 쪽이 될 것 같군요."
  "은하의 중심이라고요!?" 이후, 바르차는 일행의 행선지가 어디일 것인지를 말하였으나, 그 행선지가 얼핏 들으면 느닷없게 들릴 수 있어서 그 말을 처음 듣자마자 아네샤는 바로 놀라고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이에 바르차는 감정의 흔들림 하나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목소리를 이어 내었다.
  "믿겨지지 않으실 수도 있을 거예요. 인류는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은하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했고, 그래서 인류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은하의 중심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셨겠지요. 이는 여러분들 뿐만이 아닌 인류의 흔적을 찾으려 한 이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인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은하의 중심지인 것은 틀림 없어요.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분께서 도중에 여러 곳을 거치도록 하시겠습니다만, 결국 그 인도하는 길의 끝은 은하의 중심 구역에 있을 거예요."
  "....... 혹시 '황금의 원반' 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그 때, 아네샤가 바르차에게 물었다. 은하의 중심이 행선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네샤가 이전에 클라리스, 마야 등이 언급했던 '황금의 원반' 을 그에게 거론했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 때에는 바로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러할지도 모르지요." 바르차가 답했다. 그리고 황금의 원반이 남긴 흔적이 은하계 중심 일대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들려왔음을 이어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황금의 원반은 믿겨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여러 인류 세계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으므로 원반의 내용을 해석할 수 있다면 구 인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발견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겠지요?"
  이후, 내가 조심스럽게 바르차에게 묻자, 바르차는 바로 "그러하겠지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서 지금 세상의 사람들 중 대다수는 황금의 원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며, 아는 사람들조차도 황금의 원반이 온전한 상태일지 장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 이후, 그 존재를 아는 이들, 심지어 나와 아네샤 등을 인도하는 이 조차도 그 존재를 일행이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믿지는 않고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인류가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원반에는 없겠지요?"
  "없을 거예요." 이후, 내가 원반에 대해 추가로 묻자, 바르차는 그 물음에는 부정적으로 답했다. 답하면서 꽤 단호한 목소리로 답을 한 것으로 보아, 내가 말한 바는 원반에 수록되지 않았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어 보였다.

  "그 분께서는 여러분을 인류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계시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순수하게 인류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길일 것이라 여기어지지는 않네요."
  이후, 바르차는 나와 아네샤를 인도하는 이가 순수하게 일행이 인류의 흔적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고서, 일행의 행선지는 늘 '어둠의 세력', 기계 군단이라 칭해지는 기계 병기 무리가 도사리는 곳을 향하고 있음이 그 증거라 이어 말했다.
  "그 분께서는 여러분께서 여러 행성에 도사리는 기계 군단의 위협을 끝낼 수 있는 존재로 여기고 계신 듯해 보였어요. 공간의 여러 곳에 자리잡은 검은 먼지를 쓸어낼 수 있는 강풍, 그 분의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관점이란 그러하겠지요."
  이후, 바르차는 나와 아네샤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두 분께서는 그 분을 직접 만나보시지는 못하셨지요?"
  이 물음에 아네샤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이어지는 바르차의 거처가 어디인지도 모르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바르차는 조용히 "알겠어요." 라고 답했고, 이후, 아네샤가 불안해졌음을 나타내는 표정을 지으며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니냐고 묻자, 그 물음에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서 당분간은 그가 인도하는 대로의 길을 나아가며, 길을 가로막는 어둠을 걷어내 줄 것을 당부했다.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이의 실체를 알 수 있는 때는 반드시 와요, 지금은 아니더라도."
  라고 말을 이어가면서. 그 이후, 대화의 주제는 곧바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다음 주제는 아르데이스를 향해 나아갔다는 마법사에 관한 것이었다.
  "이후로는 아르데이스 성계로 나아간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해요."
  그리고서 바르차는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의 앞에 나란히 앉은 나와 아네샤에게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여러분들도 이미 들어보신 바 있으시겠지만, 그는 원래 엘베 족의 대마법사였고, 그와 더불어 아르데이스의 세계수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던 엘베 족의 수호자들 중 한 명이기도 한 사람이지요. 아니, 한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더 이상 수호자가 아님은 여러분들도 아시겠지요.
  상당히 오래 전,  지금으로부터 수백 여년 전 즈음의 일일 거예요. 지상에 일어난 재앙을 피한 인간들에 의해 세워진 지하 세계에서 '추방자' 로서 쫓겨나 보호 구역과 정령의 세계수에 간신히 의지하던 엘베 족의 영역으로 기계 군단이 침입해 왔어요. 아무래도 행성계의 지표면에 자리잡은 인간들의 영역을 발견하고서는 해당 영역 인근에 인간들의 지하 구역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 판단을 내린 것이겠지요. 엘베 족의 영역을 멸망시킨 후에는 곧바로 지하로 침입해 해당 구역 내의 사람들을 말살하려 하였을 것이니, 엘베 족의 영역은 규모도 작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들에게는 너무 손쉬운 사냥감이었던 만큼, 그들과의 싸움을 오래 지속하지 않으려 하였을 거예요.
  엘베 족의 거주지를 말살하기 위해 그들의 영역으로 기계 군단이 도착했을 때, 그들의 사악한 성향을 인지하고 그들과의 싸움을 주도한 이는 다름 아닌 수호자로 칭해졌던 그 대마법사였지요. 그는 뜻 있는 여러 엘베 족 사람들을 이끌고 기계 군단의 병기들과 맞서기 시작했지요. 당초 기계 군단은 엘베 족의 근거지 말살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군단에서 운용하는 배들을 직접 투입하지 않고, 선봉 함선의 전투 병기들을 내세울 정도였지요. 하지만 대마법사를 위시한 엘베 족의 저항은 그런 그들이 상정한 바 이상으로 거셌고, 그리하여 기계 군단은 예비하고 있던 결전 병기 '에를랑 (Erlang)' 을 끌어들이기까지 하였어요.

  E 형 세계 파괴 병기 장착형 특수 장갑 보병 '에를랑' 혹은 '에를랑고' (*). 거대한 날개를 가진 십자가 형태의 녹색 전투 병기로 팔에는 포구가 장착되어 있으며, 포구에서 강력한 빛 줄기를 발사해 대지의 곳곳에 크레이터를 낼 정도의 피해를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의 엘베 족이 가진 마법 기술은 현 시대에 비해서도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대마법사는 자신을 따르는 용사들과 함께 에를랑을 비롯한 기계 병기들이 자신들을 계속 주목하도록 하면서 근거지에서 점차 멀어지도록 하였고, 치열한 전투를 이어가며, 마침내 에를랑을 비롯한 병기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날 무렵, 대마법사를 따르던 수십 여명의 용사들 중에서 지속해서 싸울 수 있는 이들은 몇 남지 않았고, 대마법사 본인도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 결과로 에를랑을 따르던 병기들은 섬멸되었으며, 에를랑 역시 동력원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소멸시킬 정도로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병기들은 많이 남아있었어요. 기계 군단의 목적은 행성의 지표면에 있던 엘베 족의 세상이 아니라 인류의 직계 후예라 할 수 있는 드벨파 족이 구축한 지하 세계였던 만큼, 함대 규모의 군단을 대동하고 있었지요. 에를랑 급의 병기는 없을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병기들은 얼마든지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기계 군단을 막기 위해 나선 용사들의 여력은 더 남아있지 않았고, 대마법사 혼자서는 아직 남아있는 막대한 규모의 기계 군단을 저지하는 것은 무리였어요.

  바르차는 그래서 대마법사가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한다. 자신의 남은 마력에 에를랑의 동력원이자 인격을 품은 '심장' 이라 칭해진 검은 돌의 힘이 서로 소멸할 때의 에너지로 남은 병기들을 섬멸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대마법사가 행하려 했던 바가 바로 에를랑의 심장을 자신의 심장에 이식하려 했다는 것.

  에를랑의 심장이 자신의 심장에 이식되자마자 대마법사는 남은 용사들에게 자신의 곁에서 물러나 엘베 족의 근거지로 돌아갈 것을 지시했었어요. 에를랑의 심장이 자신의 심장부에 자리잡자마자, 자신의 마력과 에를랑의 심장이 가진 사악한 힘이 서로 만나 막대한 에너지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곧 자신의 몸이 폭발을 일으킬 것임을 직감했던 것이에요.   그리고 잠시 후, 그 일대에서는 막대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해요. 폭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엘베 족의 근거지에서도 제대로 보일 정도였으며, 너무도 격렬한 빛을 내어 그로 인해 주변 일대가 어두워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요. 마치 초신성의 폭발을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대마법사와 그를 둘러싸던 기계 병기들은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폭풍에 휩싸였고, 폭발에 의해 발생한 열기가 사라진 이후에는 대마법사도, 병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요. 그로 인해 엘베 족 사람들은 폭발에 의해 대마법사가 죽은 것으로 간주했어요. 이후, 사람들은 그 때에 대마법사는 에를랑의 심장 그리고 기계 군단의 남은 병기들과 함께 소멸하면서 세상을 떠났고, 그리하여 그 대마법사는 '세계의 구원자' 로서 사람들에게 기려지게 된 것이었어요. 특히,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에도 사망자는 대마법사 이외에는 한 명도 없었기에 대마법사는 더욱 위대한 사람으로 받들여질 수 있었던 거예요.

  "그 대마법사에게는 가족이 있었나요?"
  "예, 있었어요." 이후, 아네샤가 묻자, 바르차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쌍둥이 자매가 있었으며, 그가 기계 군단과의 결전을 위해 떠나기 직전, 그는 그 결전으로 자신의 생이 끝날 것임을 직감하고서 그 쌍둥이 자매를 남은 자신의 친구인 남자에게 맡겼고, 그러면서 그 쌍둥이 자매에게 그 남자를 아버지처럼 여기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서 그 쌍둥이 자매는 아르데이스에 있으니, 아르데이스로 간다면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바르차가 바로 답했다. 하지만 대마법사의 딸들이라고 하지만 마법사의 길은 걷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그들에 대해 언급했다. 다만, 부족의 수호자 역할은 어떻게든 행하고 있는 모습만큼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어 언급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 희생으로 폭발이 일어났고, 폭발로 인해 행성계를 침공한 기계 군단은 사라졌다지만, 그럼에도 마법사는 죽지 않았다는 거네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그러할 수도 있겠지요." 아네샤는 기계 군단이 소멸할 정도의 대폭발 이후에도 마법사는 죽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바르차는 그렇다고 사람들이 칭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답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죽지 않았다고 여기어질 수 있다......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죽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네요?"
  그러자 내가 물었다. 이에 바르차가 답하기를,
  "역시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관점의 차이예요. 사물을 바라볼 때, 한 쪽 방향에서 바라보면 매우 밝다고 여기어질 수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어둡게 보일 경우가 있지요. 그런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마법사에 대해 알려진 정황은 마치 그가 사악한 기운을 품고 있으며, 그 사악한 기운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이를 바르차는 원래의 영혼은 폭발 무렵에 육신을 떠났지만 육신은 소멸하지 않고 남았으며, 그 육신을 그의 심장에 이식된 병기의 인격이 차지했을 것이라 여기었던 모양이다. 그 마법사에 대해 바르차가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죽었다는 것은 이를 의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련의 사실에 대해 두 딸들은 알고 있던가요?"
  "....... 그것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후, 내가 대마법사의 두 딸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바르차는 언급을 피했다.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고, 실제로는 두 딸들이라 칭해진 이들이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에 대해 어떻게든 알고 있지만 말하려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나 싶다.
  "그 대마법사를 구원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겠지요?"
  "그 분을 구원하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이후, 아네샤가 묻자, 바르차는 그런 아네샤에게 대마법사를 구원할 생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후, 아네샤는 할 수 있다면 해 보고 싶다고 답을 하자, 바르차는 그런 그에게 이전에 그가 건네었던 물음에 대한 답을 하였다.
  "딱히 큰 기대를 걸고 계시지는 않고 계시군요. 이후로 그 분에 대한 기대는 계속 하지 않으시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게 되지도 않을 소리는 왜 해서......' 이를 두고 나는 그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다행히도 아네샤는 그 말을 전혀 듣지는 못한 듯했다. 이후, 바르차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목소리를 내며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지금 야누아 씨, 그리고 클라리스 씨 등께서 아테다르마 쪽으로 가시려 하시고 계십니다. 그 서쪽 너머, 지금은 에스토산토루이스 (Esto-Santo Luis) 라 칭해지는 지역에 위치한 옛 묘족 제국의 수도, 먀코의 유적지에 그가 남긴 흔적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서 그가 남긴 흔적을, 아테다르마 그리고 먀코 유적지에 남은 묘족의 흔적들을 찾을 겸, 그가 그 일대에서 무엇을 남겼는지 관찰하려 하는 것 같다고 그들의 행적에 대해 언급을 한 이후에 나에게 물었다.
  "그 곳으로 가 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나 역시 언젠가는 그 곳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마법사가 그냥 아르데이스로 갔을 리 없고, 분명 먀코 유적지에서 뭔가 행적을 남겼을 것이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대마법사의 육신 (혹은 그 잔재) 을 차지한 인격의 근원은 묘족 제국의 원수라 할 수 있는 기계 군단의 일원임은 분명하고, 그러한 만큼 (좋지 않은) 그의 행적이 먀코 유적지 내에 있을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의향이 있어요." 내가 답했다. 그러자 바르차는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곳에 가실 의향을 확실히 갖고 계시군요." 그리고서 그는 당장에 그 곳에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야누아, 클라리스 등과 마주하고 싶다면 가능한 빨리 가 봐야 할 것임을 알리고서, 그들과의 만남에서 여러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을 그 이유로 지목했다.
  "먀코 유적지로 가신다면 지금 바로 가시도록 하시지요. 가신다면 남은 이야기는 그 이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야누아 씨가 있다는 그 먀코 유적지인가 그 곳으로 가겠다는 것이지?"
  "응. 마을에서 아테다르마를 가로지르는 강줄기의 서쪽을 거쳐 세 줄기 강물이 만나는 곳에 있다고 하시더라."
  사당의 문 밖에 이르면서 나의 우측에 있던 아네샤가 묻자, 내가 답했다. 원래 바르차는 마법진을 마련해 줄 생각이었던 모양으로 아무래도 유적지에는 처음 가게 되는지라 길을 잘 모를 수도 있는 만큼, 마법진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 하였지만 여기서 나는 어떻게든 스스로 그 곳을 찾아보겠다고 하였기에 마법진 생성 제안을 거절했고, 그 대신으로 바르차로부터 어디에 유적지가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들은 것이다.
  "세 강 줄기가 만나는 곳이라고?"
  "응." 이후, 아네샤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고서 그 일대를 현재는 '산토 루이스 (Santo Luis)' 라 칭하고, 먀코 유적지가 있던 곳은 에스토 산토루이스 (Esto Santo Luis) 라 칭한다고 말한 이후에 풀에 묻힌 건물과 탑의 잔해들이 곳곳에 보인다면 바로 먀코 유적지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줄기 인근에 있는 만큼, 생각보다 찾기는 쉬울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야누 언니가 있다는 그 유적지로 가겠다는 것이지요?"
  이후, 나는 광장에 가서 야누아의 동생인 마르차에게 야누아가 있다는 유적지로 가겠음을 밝혔다. 그 무렵, 마르차가 앉아있던 근방에는 율리아가 그의 또래 즈음으로 보이는 소녀들이 공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역시 그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고 있다가 잠시 지쳐서 쉬고 있었다고.
  "율리아 씨, 그 동안 찾지 못하셨던 것 아니었어요?"
  "잡혔었어요." 그러자 마르차가 바로 답했다. 아닌 것이 아니라, 라세르나의 가게 인근에서 종이 상자를 뒤집어 쓴 채 움직이다가 때마침 그 가게에 들렀던 야누아, 마야에게 들킨 것 같다고 말하고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때, 라세르나의 그 가게에 여러분들도 계셨었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라세르나의 가게에서 차를 마시고 그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에 웬 종이 상자 하나가 가게 인근에서 움직이던 광경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 나는 그냥 바람에 날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딱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길 따름이었는데, 야누아, 마야는 그 종이 상자에 율리아가 숨었음을 바로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 종이 상자를 끝까지 뒤쫓다가 결국 잡아냈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마르차는 야누아, 마야가 결국 종이 상자가 달리는 광경을 보면서 종이 상자 안에 율리아가 숨었음을 확신하고서 종이 상자를 뒤쫓아서는 결국 잡아냈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율리아가 숨어 있었음을 그들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던 모양.
  "그리고 제가 있는 곳까지 율리아를 끌고 가서는 저에게 율리아를 맡겼지요."
  마르차는 야누아, 마야는 율리아를 자신이 있는 곳에 맡기면서 다급히 서쪽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는데, 아무래도 그 곳에서 긴히 알아봐야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고 그들에 대해 언급했다. 이후, 마르차는 나와 아네샤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야누 언니가 있는 곳을 찾아가시려고요?"
  "그렇게 되었네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답하자 마르차는 아무래도 그들은 서쪽으로 갔을 것이고, 서쪽이라면 산토 루이스나 아니면 먀코 유적지 같은 곳일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한 다음에 먀코 유적지로 먼저 가 볼 것을 권했다. 마르차는 율리아와 더불어 야누아 등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었을 텐데도, 그들이 서쪽으로 갔을 것임을 바로 알아차린 듯해 보였으니,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야누아 씨 등께서 어디로 가셨을지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듣지 않으셨을 텐데, 바로 알아 맞히셨네요."
  "뭔가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한 것 같아 보였어요." 그러자 마르차가 우선 야누아 그리고 마야의 당시 인상에 대한 언급을 하고서 유적지에서 뭔가 수상한 흔적이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것도 있어서, 그들이  먀코 유적지로 갔을 것 같다고 그들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이어 말했었다.
  "야누 언니나 마야는 그런 쪽에 민감한 면이 있는 이들이라 그 일에 바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후, 마르차는 자신은 이 곳에 남아 율리아를 돌보기로 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마야가 자신에게 율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네샤는 곧바로 마르차에게 이렇게 물었다.
  "눈을 돌리는 순간, 도망갈 수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아마도......" 그러자 마르차는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밝게 목소리를 내며, 율리아는 자신과 성격 면에서 잘 맞기 때문에 자신의 곁에서 도망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었다. 그리고서 이전까지는 자신과 함께 놀이를 즐겼었음을 알리면서 이후에도 그런 일을 만들어 볼 것이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녀들과 헤어지고서 율리아가 마르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려 하였고, 그 이후, 마르차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런 그를 향해 걸어가려 하였다. 이후, 율리아는 마르차의 앞에 서서 그를 맞이하며 밝게 목소리를 내려 하였다.
  "율리, 경기 하느라고 수고 많았어~"
  "언니,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그 때, 율리아는 마르차에게 어디로 갈 생각이냐고 물었고, 마르차는 그런 율리아에게 해변가로 가자고 청하고서 공놀이라도 같이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잠시 놀다가 점심 시간이 지나면 바로 수련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이어 알리기도 했다.
  "야누 언니하고 마야는 뭔가 중요한 일 때문에 나가 있을 텐데, 그 동안 우리가 여기서 놀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않아?"
  "그래?" 율리아는 이후,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곧바로 미소를 띠는 채로 마르차의 모습을 올려다 보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대련 중에 언니를 때려도 돼?"
  "해 보시든지. 언제는 안 된다고 한 적 있었니?"
  그러자 마르차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우선 해안 근처의 길을 따라 걸어보자고 말하고서 앞장서서 마을 근처의 해안을 따라 나 있는 길 쪽으로 가려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막내 애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려고 해요. 율리아가 아이들하고 같이 운동을 하느라고 조금 지친 것 같아서 잠시 쉬다가 그 이후에 다른 뭔가를 해 봐야죠. 점심 먹고 나서는 수련도 하려고 해요. 야누 언니가 나가 있는 동안 가만히 있거나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군요." 그러자 아네샤가 마르차에게 말했다. 그 이후, 아네샤는 율리아에게 마르차가 체력 단련 등을 하면서 자신을 험하게 대한 적이 있었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율리아는 마르차가 싸울 때에는 험하게 대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과 싸울 때에는 맹수 같았다고 말하기도.
  "......!" 이럴 때에는 일반적으로는 내가 언제 맹수 같았냐고 항변하겠지만, 마르차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는지,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율리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율리아는 언니들 앞에서는 꼭 얌전하고 연약한 소녀 같이 굴어요. 싸움터에서는 온갖 하악질에 고함 소리까지 별 짓을 다하면서."
  이에 율리아는 삐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마르차에게 뭐라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후, 율리아는 마르차를 따라 해안 쪽으로 가려 하면서 나에게 이제 가 보겠다고 말한 다음에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야누 언니가 있는 쪽으로 가 보셔야지요? 그 쪽으로 가려 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러자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화답했다. 그 이후, 마르차, 율리아가 작별 인사를 하면서 내 곁에서 멀어졌고, 이후, 나는 아네샤가 요청한 바에 따라 마을의 서쪽에서부터 출발해 이전에 기계 군단을 물리치기 위해 왔던 아테다르마를 거쳐, 그 서쪽 너머로 나아가기로 하였다. 아테다르마는 일단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서쪽 너머에 있다는 먀코 유적지 등은 그 무렵에 처음 가게 되었다. 하지만 강을 따라 나아가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고 했으니, 안심하고 그 방향을 따라 가기로 했다.



  서쪽 근교에 이르렀을 무렵, 나는 그 일대에서 서로 대화를 이어가던 아샤란 그리고 모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마을의 거리 서쪽 부근의 어느 가게 앞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서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뭔가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나를 보더니, 바로 나에게 말을 걸려 하고 있었다.
  "야누아, 마야 등이 갔던 곳으로 가려 하시는 것 같아요."
  모린이 묻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모린은 환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그러할 것 같았다고 말하였고, 야누아, 마야는 묘족이다보니, 묘족의 유적이나 산토 루이스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먀코 유적지, 묘족의 제국이 있었던 곳에 대한 관심도 지대할 것 같다고 말하고서, 이전에도 그 유적지를 그들이 방문한 전적이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 곳에서 뭔가 찾으려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야누아 등이 유적지에서 그들이 찾으려 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입이 워낙 무거워서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음을 알렸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흥미로울만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저에게도 이야기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보나마나 야누아나 마야는 이번에도 저희들에게 그 곳에서 발견한 것들, 목도했던 것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리하여 아네샤만을 대동하면서 서쪽 방향을 따라 아테다르마 계곡이 있는 곳으로 가려 하였다. 계곡은 바로 서쪽 먼 곳에 있으므로 서쪽 방향을 따라 날아가기만 하면 금방은 아니더라도 일단 도달할 수는 있어 보였다.
  "도시의 유적지가 세 줄기 강물이 모이는 그 근방에 그 곳이 있었다고 했지?"
  "응." 아네샤의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이어서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들 중 하나일 것이라 그 곳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이후, 나는 먀코 유적지는 '동쪽 (Sey)' 을 의미하는 단어 에스토(Esto) 가 붙은 곳인 '에스토 산토 루이스' 에 있다고 하니, 산토 루이스는 세 줄기 강물이 모이는 지점을 의미할 것이라 언급하고서 그 이름에 대해, 구 인류 문명 시대에 세 줄기 강물이 모이는 지점에 그와 같이 명명한 사례가 있었고,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참고했을 것이라 그에게 말을 하는 그 때, 소정령 간 통신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에스토 산토 루이스 지역으로 가시려 하시는군요."
  "예." 마녀가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에 그렇다고 답하고서 도시의 유적지를 살피려 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들과 만나서 그들로부터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고 있기도 하다고 대답에 이어서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군요. 먀코 유적지가 에스토 산토 루이스에 있었지요."
  그러자 마녀가 알겠다는 듯이 답했다. 그리고 일행이 마을 근교의 풀밭에 이르렀다가 날개를 펼치고 날갯짓을 하면서 상공을 따라 비행하기 시작한 이후, 서쪽 방향-아직 아침 시간대라 태양을 등지는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을 따라 날아가려 하던 그 때, 마녀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먀코 (Myako) 는 묘족의 언어로 직역하면 '궁성 (Mya, Palas) 의 '아이 (Ko, -ayi)' 를 의미하며, 그 뜻은 '도시 (Dorney)' 혹은 '수도 (Sëvr)' 이지요. 알바레스 그리고 이 행성계에 있었던 묘족의 나라, 그 중심 도시는 반드시 먀코로 명명되었다고 해요."

  그에 의하면 먀코라 명명된 도시는 둘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알바레스 성계의 대륙 동쪽, 일행이 방문했던 묘족, 요정족의 마을이 자리잡은 대륙의 서쪽 (그것도 가장자리 쪽이다), 그 반대편에 위치한 인류가 남긴 도시의 폐허에 세워졌던 도시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지금 일행이 찾아가려 했던 에스토 산토 루이스에 있었던 도시라고.
  두 장소 모두 원인은 서로 달랐다지만, 현 시점에서는 멸망한지 이미 오래된 곳이라 하였다. 그래도 알바레스 쪽은 묘족의 근원지라 해서 사람들이 신경을 써 주고 있어서 근교의 항구에 마을이 세워지기도 한다지만, 이 행성계의 먀코 유적지는 사람들의 주 거주지와 너무 동떨어져 있기도 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탓에 폐허인 채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 행성계의 먀코가 나중에 세워졌고, 정황 상, 나라가 재건국되면서 건설된 도시였던 것 같은데....... 결국에는 옛 먀코보다도 못한 곳이 되고 말았네요."
  아네샤가 통신을 통해 마녀에게 말을 건네자, 마녀는 그런 그의 말에 "그렇지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서 이후에 유적지에 온 이들을 통해 들을 수도 있겠지만, 기계 군단의 침공을 받아서 멸망했으며, 기계 군단이 철저하게 파괴 행각을 벌였기에 무사한 곳이 거의 없다고 그 곳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기계 군단이 쳐들어왔다면...... 기계 병기의 잔해도 그 곳에 있겠네요."
  이후, 내가 묻자, 마녀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언급하니, 먀코와 그 북방 일대에서는 묘족 군단이 거의 일방적으로 기계 군단에게 당하기만 했다는 것으로 기계 군단이 입은 피해는 전무했다고 한다. 기계 군단의 피해는 이후, 망명 정부의 저항군이 먀코 남서쪽에서 행한 저항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유적지로 가시는 분들 역시 기계 군단의 잔해를 찾으러 가시지는 않으실 거예요."
  이후, 마녀는 남은 이야기는 유적지에서 만나게 될 이들을 통해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 이후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연락하겠음을 알리고서 연락을 마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도가 공격당하는데 저항이 정말로 없지는 않았을 텐데...... 라르나, 너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후, 아네샤가 나에게 물었다. 수도가 공격당하고 나라의 국운이 걸렸는데, 아무리 기술력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나라의 모든 전력이 기계 군단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하지만 말이 될 수도 있지."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이전에도 들은 바 있을 거야, 하늘을 가리는 암흑 물질을 이용한 '검은 폭풍' 이라 칭해진 작전."

  그 무렵,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모처에서 본 어떤 책에 쓰여진 어떤 이야기로, 옛 인류 문명 시대에 쓰여진 이야기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는 그 이야기였다. 이야기에서는 기계의 반란에 직면한 인류가 기계의 에너지 원이 태양열일 줄 알고, 태양을 차단하면 기계가 무력화될 것으로 착각해 검은 구름으로 하늘을 뒤덮는 내용이 있었다. 물론 그 결말은 인류의 패배였다, 기계 군단의 진정한 에너지 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그 패인이었던 것이다.
  묘족 제국의 마지막 재상 아기토노 니미츠가 벌인 어리석은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그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나도 같이 본 기억이 나." 그러자 아네샤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에게 내가 보았던 그 책의 이야기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그 이야기에서의 인류는 그래도 기계에게 어느 정도 저항했다고 하는데........ 물론 본대에는 거의 대항하지 못했다지만. 전략 하나 때문에 기계 군단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못할 정도면, 당시 묘족 제국의 사람들은 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거야?"
  "적어도 아기토 등은 멍청했다는 그 이야기 속 인류보다 멍청했음은 확실해."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답했다.
  "어쩌면...... 유능한 사람들은 이미 수도가 경각에 처한 상태에서 이미 자신들의 나라가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음을 알아차리고, 부흥군을 조직해 떠났고, 그래서 수도 부근에는 그런 이들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그러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테다르마 계곡에 이를 때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행은 아침 일찍 깨어났고, 그 이후에 잠시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계곡을 향해 나아갔을 텐데, 그 시점에서는 해가 본격적으로 남쪽을 향하기 시작할 때였을 것이다.
  아직 생존자들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와 달리, 계곡 일대는 그야말로 고요했다. 아직 아침 때라 사람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산골 마을들 중 몇몇은 아침이나 저녁 늦을 즈음에 대략 이런 적적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한다-, 이 마을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 사유가 명백했고, 돌이킬 수 없어 보임이 확실해 보였다.
  고도를 낮춰 더욱 자세히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마을에 남아있던 집들은 거의 대부분이 현관문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폐가가 되어 있었고, 묘족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마을의 묘족 사람들이 아테다르마 요새로 끌려가 실종되었던 시점이 일행이 요새를 공략하기 전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시점에서 이미 남은 묘족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가면서 마을은 방치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그 시점에서는 온전한 가옥들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폐허로 남을 것임이 자명했다.
  "....... 여기가 그들의 마지막 근거지였을 텐데, 그렇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묘족 나라를 계승한 마지막 지역일 것임은 확실해 보여. 생존자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흩어졌을 것이고, 묘족 나라를 계승할 곳은 이제는 더 이상 없겠지."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답했다. 비록 작은 군락들의 집합체라고 해도, 아테다르마 계곡 일대는 묘족 국가의 마지막 일원들 중에 살아남은 이들과 그 후예들이 모여, 묘족 국가의 정체성을 계승해 왔고, 부흥군이라 칭해진 묘족 나라 마지막 일원의 원수를 갚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집단의 동량이 되어야 할 구성원들 중 대다수가 배반자에 의해 허망하게 사라져버렸고, 살아남은 소수는 각자 살 길을 찾아 흩어졌으니, 묘족 나라의 부흥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될 가능성이 컸다. 흩어진 이들 중에 씨족, 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집단들 중에서 묘족의 부흥을 일으킬 것에 대한 기대를 일으킬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로써, 묘족 나라의 모든 근거지가 폐허가 되어버린 거네. 우리 일은 아니기는 해도, 안타깝다."
  "그렇지." 아네샤가 건네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마을의 한 가운데 지점은 제법 도시다운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멸망한지 오래되지 않은 도시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텅 빈 거리로 거리의 한 가운데에는 광장 그리고 작은 분수대 역시 자리잡고 있었다. (당연하겠으나) 분수대는 이미 작동하지 않고 있었으니, 이미 작동하지 않게 된지 오래된 듯해 보였다. 물은 당연하게도 없었고, 분수대 안쪽은 흙먼지로 덮혀 있었다.
  "그 4 자매 분들께서 여기에서 하므자가 고양이들을 선동하는 광경을 보셨겠지?"
  "그러하셨을 거야." 아네샤가 묻자, 내가 다시 답했다. 그 이후, 주변 일대를 둘러보다가 야누아 등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두고, 그들에 대해 이미 마을을 떠나, 먀코 유적지로 간 것 같다고 언급하였다. 그 이후, 날갯짓을 하며 마을의 폐허를 떠나가는 나를 우측 근방에서 따라가면서 아네샤가 물었다.
  "야누아, 마야 씨 등께는 나름 감회가 새로울만한 곳일 텐데......."
  "아마 오래 지켜보고 싶지는 않으셨을 거야. 그 멸망해 버린 모습을 보면서 많이 괴로워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물음에 내가 답했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광경을 오래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 야누아, 마야 등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상공을 따라 가능한 빠르게 속력을 내어 비행하던 나는 계곡에 이르고, 과거에는 마을이 있었다는, 이제는 그 흔적들만 남은 계곡의 상공에 이르자마자 계곡으로 진입을 시도한 이후에 거리 일대를 떠 있으면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가는 길도 길이지만, 계곡에 자리잡았다는 마을 혹은 도시의 모습을 보다 자세히 보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분수대 근처에 이르고, 분수대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 본 이후, 그 분수대의 가장자리 쪽에 착지하고서, 곧바로 뛰어내려 그 근처의 바닥에 닿았고, 아네샤는 그런 나의 바로 앞쪽에 착지하고 있었다.

  중심가 거리였던 구역을 돌아보기만 하더라도 그 곳이 원래 계곡에 근근히 자리잡은 마을 정도가 아니었을 것임을 바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흔적 뿐만이라고 해도 구역에 자리잡은 길바닥부터 건물들까지 제법 정비되어 있었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건물의 수도 많았다. 근방의 길목에는 시장이 있었을 것임을 알리는 흔적들도 있었고, 선착장도 있어서 제법 번성한 곳이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길에는 가장자리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등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하나하나의 상태가 좋아서 그 배들을 타고 강물을 따라 나아갈 수도 있어 보였다. 조금만 정비해 주어도 마을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가능할 것만 같았다.
  "오래 전의 전쟁에서 잔존한 사람들이 겨우 일으킨 마을치고는 상당히 규모가 커.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야."
  "그렇지." 아네샤가 건네는 말에 내가 화답했다. 그리고 그 정도면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렇게 나름 번성했던 곳이 한 사람의 어리석은 선동에 의해 구성원을 대다수 잃고, 남은 이들이 떠나가면서 버려진 곳이 되고 말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이들은 마을을 유지할 수 없어 떠나간 것이겠지?"
  "그러할 거야." 분수대를 지나쳐 광장의 서쪽 방향으로 나아가던 도중에 아네샤가 앞장서 가던 나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길 위에 선 채, 아네샤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그 후, 아네샤는 나를 앞질러 가더니, 날개를 펼치면서 광장의 서쪽 근방에 자리잡은 건물들 중 하나의 지붕 위에 올라서려 하였다. 높은 곳에서 광장 일대를 둘러보기 위한 일이었다고.
  그 무렵, 나는 광장 일대를 더 둘러보려 하고 있었다. 묘족들의 마지막 근거지에서 묘족들이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 건물 그리고 광장의 모습을 보면서 짐작해 보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던 도중, 나의 눈앞으로 심상치 않은 흔적들이 길바닥에 자리잡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색을 띠는 무언가의 흔적. 어떻게 보아도 액체의 흔적 같은 것이 광장 서쪽 일대의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흔적은 광장의 서쪽 길목에 이르면서 더욱 많이 보이고 있었다. 액체 같은 것이 튀고 흩뿌려져 길바닥에 묻은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아네샤도 이런 흔적들을 보았으려나.' 이후, 나는 서쪽 거리에 이르렀을 아네샤도 그 흔적들을 보았을 것이라 여기면서 그가 갔을 서쪽 거리 일대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면서 우선 그에게 소정령 간 통신을 통해 연락을 취하려 하였다.
  "아네샤, 혹시 액체의 자국 같은 것들을 보았어?"
  "보았어, 아주 많이 있었어." 그러자 아네샤가 특유의 어조로 답했다. 그리고 서쪽 거리 일대에 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고 그 흔적들에 대해 언급하더니, 하므자의 선동에 넘어간 묘족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충돌이 있었을 것임을 알리기도 했다.
  "빛 방울 같은 것은 발견했었어?"
  이에 나는 이전에 들렀던 섬에서처럼 빛 방울들이 발견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네샤는 그런 것은 없었다고 말하고서, 야누아, 마야가 마을을 지나치면서 전부 회수해 간 것 같다고 빛 방울들이 발견되지 않는 사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야누아, 마야 씨를 만나뵈어야 알 수 있겠네."
  이후,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마을 구역의 서쪽 가장자리 쪽으로 가려 하였다.

  건물들로 둘러싸인 길의 모습이 보였다. 길의 왼편, 한 곳에는 무너지다 만 탑의 모습도 보였다. 이런 탑은 묘족 마을에서 은근 자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후에 들은 적이 있다. 원래는 거주 구역 혹은 상업 지구였을 그 거리는 길바닥과 건물의 벽면 곳곳에 액체가 묻은 흔적이 있었고, 액체가 흘러내린 듯한 흔적도 있었다. 그 광경은 뭔가 싸움이 있었음은 확실함을 알리고 있었고, 하므자가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서 떠나간 이후로는 더 이상 싸움이 있거나 할 여지는 없었을 테니, 분명 아네샤가 말한 바대로, 하므자에 선동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싸움이 그 일대에 있었음을 알리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거리의 서쪽 길목에 이르자마자 지붕 위를 걸어다니는 아네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교적 서쪽 길목으로 나아갈 때에는 비교적 활발했던 아네샤도 막상 그 일대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소정령 간 통신에서도 심각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아네샤는 예상도 하지 않은 채, 보았던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많이 놀랬던 것 같았다.
  그런 아네샤의 곁에 이르자마자 그와 발걸음을 맞추어 동행하면서 그런 그를 올려다 보며, 이렇게 말을 걸려 하였다.
  "하므자의 뜻에 저항한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자 아네샤도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답을 하였다.

  아닌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하므자의 원정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 여러 해 동안 몇 차례나 하므자는 기계 군단에 저항하기 위한 전쟁을 지속했지만, 기계 군단의 축출은 고사하고, 한 번의 전투에서도 승리하지도 못했고,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늘 그의 추종자들을 제외한 그의 뜻에 가담해 군단에 들어선 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 군단의 힘이 막강해서 어지간한 힘으로는 대항조차 하지 못할 것임을 아테다르마의 사람들은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아테다르마 묘족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옛적 제국의 마지막 저항군이 결국 기계 군단의 압도적인 전력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상들의 의지를 이어받아 기계 군단의 침공에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어도, 그것에 대한 실천을 감히 꺼낼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므자가 이끄는 저항군의 활약은 무력하기만 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을 일부 묘족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의 기계 군단에 감히 대항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모두 개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 번 두 번의 일이고, 늘 하므자는 실패만 반복했으니, 그를 이전부터 알았던 사람들은 진작에 그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하므자의 존재를 잘 몰랐고, 그저 기계 군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더 나아가 묘족의 세상을 만들자는 하므자가 내세우는 희망에 현혹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치 사고 정지라도 된 듯이 그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광분한 이들이 그의 뜻을 따르지 않거나, 그저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 무리한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참히 살육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아무도 그의 뜻을 말리지 못하고, 그렇게 하므자와 추종자들, 그리고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기계 군단의 근거지로 무작정 뛰어들었던 것이다.

  "...... 야누아 씨, 마야 씨 그리고 클라리스 씨, 미라 씨께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그 분들이라면 더 많은 것을 아실지도 모르지만...... 너와 대충 비슷하게 생각하시고 계실지도 몰라."
  내가 풀어 나아간 이야기에 대해 아네샤가 묻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그 이후, 폐허가 된 거리를 잠시 둘러보다가 다시 서쪽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위해 다시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아네샤에게 말했다.
  "서둘러 가자, 클라리스 씨, 야누아 씨를 비롯한 이들은 늦어도 점심 때까지는 그 유적지에 계실 것 같으니까."
  그 이후, 나는 마을의 폐허 서쪽 구역에서 다시 날개를 펼치고 비행을 개시, 아네샤를 이끌고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서쪽 방향으로 계속 비행해 갔다. 폐허의 풍경이 눈앞을 지나쳐 가고, 다시금 계곡 사이로 풀밭과 초목이 무성한 풍경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부근에는 기계 군단의 요새가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그 시점에서는 그 곳이 어디였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 부근에 기계 군단의 근거지가 있었잖아, 알고 있지?"
  "당연하지." 그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 이후, 아네샤가 어디였는지 알 것 같냐고 물었으나, 그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동안 비행을 이어가다가 계곡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눈앞으로 하늘을 뒤덮는 구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어서 엷은 회색, 은회색, 잿빛을 띠는 구름들로 뒤덮힌 하늘 아래로 세 줄기 강물이 서로 만나는 모습이 보이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 지점 부근에 수없이 많은 봉우리 같은 것들이 풀 위로 솟아나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을 보며, 그 곳이 묘족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의 유적지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초목이 무성히 자라난 바위 봉우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들이 건물의 유적임을 알 수 있다. 묘족들은 주로 탑 형태의 높은 건축물들을 주로 지었고, 그들 중에서 무너지다 만 잔해들 사이로 초목이 자라나 바위 봉우리처럼 보이는 것.
  유적지의 중심 구역으로 여기어지는 곳 (도시의 한 가운데 지점이었기 때문) 에 이를 즈음, 고도를 낮추고, 그 이후, 발이 바닥에 무사히 닿을 수 있을 지점에 이르자마자 날개를 접고 착지하면서 비행을 멈추었다. 그 이후, 아네샤도 거의 같은 자세를 취하며 비행을 멈추고, 나를 앞질러 가면서 주변 일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 줄기 강물이 모이는 이상적인 땅에 건설되었던 도시. 한 때에는 제국의 수도로 나름 영화를 누렸던 곳이었겠으나, 이제는 폐허만 남아 버린, 그것도 이 행성계의 중심 거주지가 된 동부 해안가보다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기까지 했던 봉우리처럼 생긴 구조물들로 둘러싸인 유적지가 되어버린 곳에 드디어 발을 디디게 된 것이었다.
  유적지에 발을 디디자마자 아네샤는 곧바로 봉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물들의 잔해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중 대다수는 심하게 파괴된 이후였지만, 초목들에 의해 점령되었을 지언정, 외형이나마 온전히 남은 건물들의 모습도 보였다. 어느 곳이든 간에 풀들이 무릎 높이 가까이 자라나 있었고, 나무들이 곳곳에 자라나 있었다. 중심가의 광장으로 추정되는 곳은 하나의 작은 초원이 되어 있었으며, 시가지 구역 중 일부에는 무너진 건물 사이로 웅덩이가 생성되고, 건물들의 잔해들이 그 웅덩이에 일부 잠긴 곳도 있었다. 어느 곳이든 초목들, 이끼에 뒤덮히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건물들의 외벽마다 각종 덩굴들이 벽 위로 솟아나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철저하게 파괴된 흔적을 자연이 뒤덮어버린, 인적 하나 없는 유적에서는 건물들 사이로 새들이 가끔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일 따름이었다. 구름으로 뒤덮혀 하얀색, 회색을 띠는 하늘과 그 아래로 보이는 초록빛 풀들이 뒤덮은 잿빛 건물들의 모습이 서로 어울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곳에 야누아 씨, 마야 씨께서 계신다고 했지?"
  그 광경을 둘러보면서 우선 클라리스, 미라 그리고 야누아, 마야를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그 때, 어느새 아네샤가 북서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었다. 아네샤가 왜 굳이 그런 곳으로 가려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가 그 너머에 보이는 광경을 보자마자 왜 그러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일대에 다른 곳들과의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다른 느낌을 주는 늪지대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늪지대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던 것. 이후, 아네샤는 늪지대의 한 가장자리에 이르러서야 뛰는 것을 멈추었다.

  초록빛 풀과 나무들 그리고 하늘색처럼 우중충한 웅덩이로 뒤덮인 여타 유적지와 달리, 늪지대는 청록빛을 띠는 수초들과 뒤엉킨 듯한 표면 위로 초록빛 풀들이 자라나 있는 기묘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곳들과는 얼핏 봐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듯한 그 늪지대를 날개를 잠깐 펼치고 위에서 내려다 보니, 그 모습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구덩이와도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날개를 접으며 천천히 착지하며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예상해 볼 수 있었다, 원래 이 곳은 모종의 계기로 인해 생겨난 거대한 구덩이가 있던 자리였을 것 같았다.
  "이 늪지대, 다른 곳들과 뭔가 다른 느낌이 들거나 하지 않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후, 아네샤에게 접근해 그의 오른편 곁에 이르자마자 아네샤가 늪지대의 풀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고, 이 물음에 나 역시 동감하는 답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늪지대의 근처에 있는 바위에 걸터 앉으려 하는 아네샤에게 왜 그 늪지대의 모습을 보려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왜 이런 늪지대의 모습을 보려고 한 거야?"
  "그냥...... 이 곳이 제일 색감이 예쁜 곳이니까, 다른 곳들은 회색과 초록색이 서로 뒤엉킨 것 같은데, 여기는 초록색과 청록색이 서로 뒤섞이며 만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잖아."
  "그래?"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되물었다. 그 이후, 아네샤는 나에게 야누아, 마야는 왜 그런 폐허에 이르려 하였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나라고 해서 딱히 마땅한 대답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라르나, 이 늪지대는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도시의 중심가 광장, 그 북서쪽 인근에 있었던 곳이라면 대강 짐작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 내가 예상한 바대로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때, 그런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뒤에서 답을 해 주고 있었다.
  "그 곳은 옛적, 이 일대에 고양이 제국이 있었을 때, 그 황궁이었던 곳이에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나와 아네샤가 있는 쪽으로 어떤 묘족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키가 큰 이로 반팔 셔츠와 양쪽에 길다란 틈-허리쪽에서부터 시작되는 틈이었다-이 나 있는,  발목 부근까지 내려가는 긴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감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야누아였다.
  "두 분께서 여기 오실 줄은 몰랐네요."
  이후, 야누아는 아네샤가 앉은 바로 그 왼편 곁에 서 있으면서 말했다. 이후, 야누아는 내가 무엇을 물어보려 하였는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클라리스, 미라와 함께, 그리고 마야를 데리고 가면서 유적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어요. 그 이전에는 아테다르마에도 들렀었고. 클라리스, 미라는 이 근처에서 천막을 치고, 기거하고 있으니, 때가 되면 제가 그 곳을 안내해 드릴게요."
  "그렇다면....... 혹시, 아테다르마에서 빛 방울들을 찾으셨던가요?"
  아테다르마를 들렀다는 야누아의 말에 아네샤가 다급히 그에게 물었고, 이 물음에 야누아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마야와 함께 들렀으며, 빛 방울은 마야가 전부 회수해 갔다고 했다. 자신도 빛 방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곁에서 들어주는 정도라 그 내용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빛 방울들은 주로 어디에 있었던가요?"
  그러자 야누아는 마을의 곳곳에 있었지만 마을 광장 그리고 서쪽 거리 일대에 유난히 노란색, 붉은색 빛 방울들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이들에게서 분노와 불안, 슬픔 그리고 공포의 감정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계속 울려퍼졌으며, 하므자가 언급되기도 했었음을 밝혔다. 다만, 붉은 빛 방울들 중 대다수는 그 대부분이 비명 소리인지라 큰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마야 씨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얼마 전까지는 저와 가까이 있었지만 어느새 제 곁에서 없어졌어요. 아무래도......."

  야누아가 밝히기를, 마야는 어렸을 적에 나무 위나 집 위로 기어 올라다니는 버릇이 있었으며, 높이 뛰어오르는 것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외견은 얌전해 보였고, 말 수가 적었지만 은근 장난이 심했고, 사람, 나무를 가리지 않고 올라타고 기어오르려 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지나갔고, 사람에 올라타거나 하지는 않게 됐지만, 그 이후에도 집이나 나무에 올라타서 기어오르는 모습은 계속 보였고, 뛰어오르는 능력을 통해 건물 사이를 오가려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도...... 이 부근의 건물들 중 하나의 외벽을 타고 건물 위에 올라갔을 거예요."
  "건물 위로 올라갔다고요?" 이후, 아네샤가 묻자, 야누아는 그러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한 이후에 그를 찾고 싶다면 건물 위에서 찾아보도록 해 줄 것을 부탁했다. 빛 방울에서 들려온 소리 역시 그가 전부 녹음해 두었으니, 그를 만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렇고....... 이 폐허에는 어쩌다가 가시게 된 거예요?"
  이후, 내가 물음을 건네자, 야누아는 폐허 더미에서 무언가 찾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찾고 싶은 것을 위해 이전에는 알바레스 성계의 옛 유적지에 들른 적도 있었음을 밝히고서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려 하였다.
  "혹시나 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만....... 혹시 '톡소플라즈마노 타사르 (Toksoplazmano Tasaru)', 그러니까 '톡소 플라즈마 계획 (Progetto Toxoplasma, Toxoplazmayafizeh)' 에 대해 아시는 것, 있으신가요?"
  "톡소플라즈마....... 계획이라고요?"
  "예." 이후, 내가 물음을 건네자, 야누아는 그렇다고 답했다.

  프로젯토 톡소플라즈마 (Progetto Toxoplasma) 혹은 인스티투툼 톡소플라즈메 (Institutum Toxoplasmae) 라 칭해지는 계획으로 알바레스에 존재했던 묘류 제국 그리고 먀미아의 묘족 제국의 묘족 사람들이 실행을 추진하려 했던 계획이에요. 묘류 제국에서는 기획 정도에 그쳤지만, 먀미아 묘족 제국에서는 어떻게든 실행에 옮기려 했었던 계획이었지요. 어찌되었든, 어느 쪽이든, 묘류 제국, 묘족 제국이 멸망하면서 없던 일이 되고 말았지만요.
  톡소플라즈마라는 이름은 인류 문명 시대에 발견되었다고 알려진, 고양이의 몸 속에 기생하고 있다는 포자충의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어요. 고양이를 종숙주로 삼고 있다는 포자충으로 고양이를 통해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었지요. 인류 문명 시대에 알려진 속설에 의하면 뇌에 기생해서 정신을 조종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인류 문명 시대에 그 포자충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들이 몇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고양이의 포자충 때문이라는 설은 정설로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인간의 두뇌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한 기능을 갖고 있고, 그 기능이 하나라도 잘못되면 정신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것이 꼭 포자충 때문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먼 옛날, 알바레스 성계에 있던 묘족 제국, 그 여황제를 참칭했던 바스타체 그리고 그 측근의 사람들은 이러한 포자충에 대한 속설에 주목했었어요. 인류에게 알려진 포자충의 특성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인류를 비롯한 여러 생명체들에 감염, 기생시키는 것으로 생명체들을 고양이들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힌 것이었지요. 물론 속설일 뿐으로 정설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묘류라 칭해지는 존재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에 관한 욕심에 사로잡힌 바스타체와 그 일당들에게는 그런 것 따위 중요치 않았지요."
  "그러다가 결국 나라가 망해지면서 계획도 없어지고 말았을 텐데....... 그 묘류 제국에서는 얼마나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던 거예요?"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속설만이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 제국에서는 기획 구상 단계에만 그쳤을 뿐, 실제로 기획에 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렇지요. 실제로 제국이 오래 가지 못한 이유도 있고요, 6 년 정도 버티고 끝났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한 것도 결국 묘류 제국의 묘족들이 벌인 일 때문이었지만. 우선 묘류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그 나라가 왜 6 년 정도밖에 가지 못했는지 알려드릴 필요도 있으니까."

  묘류 제국. 알바레스 성계의 동부 대륙에 건설된 제국으로 묘족들의 여황제를 자칭한 바스타체라는 암컷 고양이가 알바레스 동부 대륙에 실제로 있었던 고양이들, 묘인들의 거주지에 인류의 후예라 알려진 드벨파 족, 기계 인간들, 동물들을 끌어온 이후에 어느 정도 그들이 지역을 발전시키자마자 고양이들을 주 지배자로 삼는 제국으로서 건설한 나라예요.
  바스타체는 대륙 동부에서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묘족들을 구원한답시고, 여러 세상에서 타 종족들을 유인해서 그들이 지역을 발전시키게 하고서는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의 거주지를 빼앗으며, 사냥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묘족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었지요. 모든 요직들을 묘족들이 차지하고, 실무직도 동물들이 차지하도록 했으며, 그간 지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수인, 기계 인간들을 단순 노동 종사자, 인류의 후예인 드벨파 족 사람들을 묘족의 하인이라는 직업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했던 거예요.
  그렇게 요직을 차지하고 난 이후, 묘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싸우기를 반복했고, 높은 사람들은 고급 간식을 위해 나랏돈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적성 세력에게 무기들을 내다 팔았으며,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적성 세력에게 정보를 마구 팔아 넘겼지요. 적성 세력들 중에는 묘족의 지배에 저항하던 사람들과 그들의 동족인 주변 세력들이 있었는데, 묘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에게 무구들과 나라의 주요 정보들을 내다 팔아 넘긴 것이었어요.

  "주변 세력들도 강했다면, 저런 나라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게 맞을 텐데......."
  "말씀하신 바가 사실이면, 6 년도 오래 버틴 거야." 이후, 내가 경악의 심정을 담아 말하자, 아네샤가 그런 나에게 그렇게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아네샤는 야누아에게 6 년 후에 그 나라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때, 야누아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여러분들도 충분히 짐작하시고 계실 거예요. 힌트를 드리자면....... 침입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야누아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어떻게 그런 나라가 멸망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주변에는 강성 세력들이 자리잡고 있었을 테니, 그런 세력들이 마치 카드성을 무너뜨리는 듯이, 그런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톡소플라즈마 계획을 묘류 제국의 누가 기획했는지는, 어떻게 그런 기획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해도, 나라가 멸망하면서 전부 소실되어 알려질 수 없었겠지요. 바스타체가 이전에 자신을 알바레스 성계로 소개했던 고양이 박사로부터 톡소포자충에 대한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었다는 속설이 현재까지 알려진 관련된 이야기의 전부이지요.
  바스타체와 그 일당들은 톡소포자충에 대한 속설들을 꽤나 진지하게 믿으면서, 이를 잘 이용하면 고양이들이 인간을 비롯한 여러 지적 생명체들을 자신의 노예로 부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어요. 그러면서 해당 포자충의 특성을 상세히 연구하고, 그 특성을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정작 그 지시대로 계획을 이행할 수 있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어요. 바스타체의 측근들이나, 과학기술 관련 종사자들이나 모두 사냥과 투쟁에 집착하고 본업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은 데다가, 남은 종사자들조차 글자 쓰는 것이 겨우 가능했던 동물 종족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요.
  여황제가 지시를 내렸지만, 이행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 하에서 여황제마저 관련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가 나라가 멸망하면서 관련 자료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거예요, 그 정도면 기획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었어요.

  "먀미아 묘족 제국은 달랐어요, 나라가 100 년 가까이 지속된 것도 있지만, 묘인들의 지적 능력도 향상되고, 처음에는 묘족 조상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드벨파, 엘베 족과의 투쟁을 이어갔고, 그 이후로는 기계 세력과의 투쟁을 겪으면서, 그들과의 열세를 체감한 제국 측에서 '톡소포자충' 의 속설을 실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했었지요."

  이후, 야누아는 클라리스, 미라가 머무르는 곳으로 가겠음을 밝히고서 발걸음을 옮기어 호수 뒤쪽의 건물들 사이로 가려 하였다. 원래는 어느 큰 거리였던 듯하나, 건물들부터 시작해 길까지 모두 풀에 뒤덮혀 길은 아예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에 이른 곳이었다.

  "묘류 제국의 톡소플라즈마 계획의 방향은 이러하였다고 해요, 톡소플라즈마의 특성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상상에서나 가능할 법한 온갖 재앙을 현실화하는 것으로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어, 그들을 무력화시키고, 괴물들이 고양이들에 의해 사냥되도록 하는 것으로,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을 고양이 세력에 복속하게 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물론, 사냥감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그 목표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야누아가 이어서 설명의 말을 늘어놓으려 하였다.
  "계획의 내부에는 좀비 (Zomby) 라든가, 외계 괴물의 숙주가 된 인간 같은 변종 괴물을 실현화하는 계획도 있었고, 속설에 전해지는 악마에 조종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실현하는 나름 상세한 계획도 있었지요. 이를 위해 톡소포자충을 기반으로 온갖 위루스를 결합하는 방안이 채택되기도 했었어요."
  "뭔가 거창한 계획 같은데...... 막상 실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지요. 바스타체가 해당 계획안을 보면서 고양이의 세계 지배 실현을 기대하며 계획을 승인했겠지만, 해당 제국의 묘인들이 가진 능력으로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던 데다가, 실행할 수 있는 이가 없었던지라, 사실상 방치되고 잊혀졌다가 제국이 멸망하면서 아예 사라져 버렸지요. 그런 계획이 있었음을 알았던 이들이 제국 멸망 직전에도 거의 없었을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먀미아 묘족 제국 사람들은 어떻게든 제국에서 그런 계획을 고안한 바가 있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해요."
  "이전 묘류 제국이 고안하려 했던 톡소플라즈마의 특성을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던 것이겠네요."
  "그렇지요. 기존의 묘류 제국은 목표와 구체적이지 않은 방안들만 제시해 관련 자료를 복원한들, 그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고, 애초에 먀미아 묘족 제국 시절에는 엘베 족이나 기계 세력에게 점거되고 있어서 접근할 수도 없었겠지만, 그 이전에 비슷한 계획을 구상한 일이 있었음을 묘인들이 알게 된 것이었지요, 루마의 인류 제국에서 바스타체의 측근들이 톡소플라즈마 계획을 내세우기 전에 이미 비슷한 계획을 구상해 왔었음이 알려졌던 거예요."
  "루마의 인류 제국......?"
  "예, 묘족들이 톡소플라즈마 계획을 내세우기 전에, 그들 역시 전쟁 병기로서 인간, 기계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위루스 (Wirus) 의 특성을 가진 개체들의 개발 계획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해요. 그 토대가 고양이의 톡소포자충이었다는 것도 같았다고 해요."

  그에 의하면 '임페리움 루마로룸 (Imperium Lumarorum)', 즉, 루마 제국은 예전부터 인간의 정신을 조종해 자신들에게 대항하지 못하게 하고, 더 나아가, 황제와 황가의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게 만들 수 있는 물질의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고 하며, 이를 위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특성이 있다고 알려진 고양이의 톡소포자충에 주목했다고 한다. 실제 톡소포자충에 그런 특성이 있는지에 대해 제국 역시 확실히 아는 것은 없었겠으나, 그런 특성을 실현시킬 수 있다면 온 세상의 모든 존재를 사실상 제국의 신민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묘족과 딱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네요."
  "그런 것이지요."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말에 야누아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개체는 인간과 생물들을 비롯해 기계에도 적용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그래서 기계의 회로를 조작할 수 있는 소형 기계의 개발도 포함되어 있었다. 먀미아 묘족 제국의 묘인들은 루마 제국의 유적에 남은 이러한 기록에 주목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생물과 기계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개체의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가, 기계 군단의 위협이 거세어지기 시작하자, 점차 기계 군단의 회로를 조작할 수 있는 소형 기계의 개발에 더욱 중점을 두기 시작했었다고 해요."
  야누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에 의하면 연구 방안은 제국의 전성기인 '50 년 시대' 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엘베, 드벨파 족 그리고 기계 군단과의 전쟁과 원정 그리고 정쟁 속에서 연구가 평안히 이루어질 틈이 없었음이 그 이유라고. 기계 회로의 조작을 이용해 기계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는 소형 기계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는 그 이후, 아기토노 니미츠 (Agitono Nimicu) 가 독단적으로 멋대로 나라를 통치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니미츠가 자신에 거역하는 모든 이들-심지어 황족조차도!-을 철저히 배격하고 죽여버리는 포악한 통치로 강제로 제국을 안정시키면서 해당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니미츠라면 제국의 멸망에 어느 정도 관여했던 그 사람이지요?"
  "예, 묘족의 말로는 '므카독니노 바즈파 (Mukadoknino Vazpa)', 즉, 제국의 재앙이라 칭해졌던 사람이에요."
  야누아에 의하면 패전에 의해 판단력을 잃어버린 여황제 브리미예 (Vrimiye),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무능한 그리고 어린 황제들을 앞세우며, 자신의 뜻에 거역하는 이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학정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에 있었던 '태양열 차단으로 기계 병기들을 막을 수 있다' 라는 어리석은 판단 하에 실행된 검은 폭풍 작전을 말리는 이들이 없게 만든 요인이 되었던 거예요. 다만, 한 가지 잘 하려 했던 일이 있었으니, 바로 그 소형 기계 개발을 지원했던 것이지요. 기계의 조작을 행할 수 있는 소형 기계가 위루스처럼 기계 군단에 전파되면 기계 군단을 손쉽게 저지할 수 있을 뿐더러, 군단에 속한 병기들의 노획도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거예요."
  하지만, 그는 이런 연구는 결국 제국 북부의 도시 '크니노캴파 (Kninokyalpa)' 에서의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결국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유일하게 그들이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앞서 언급한 '검은 폭풍' 을 실현화한 소형 기계들 뿐이었으니, 이것을 그의 업적이라 칭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는 동안 야누아의 발걸음은 건물들 사이의 한 곳에 자리잡은 어느 작은 천막 앞에 이르고 있었다. 그 천막에는 야누아와 함께 떠나갔다는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야누아가 접근해 오자마자 바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그를 맞이하려 하였다.

(*) AME-01C-01 'Erlango 01', Armata di Distruzione Mondiale Montata Infantria Blindata Speciale di Tipo-E
AME-01C-01 'Erlang 01', Arme de Destruction Mondiale Montée Infanterie Blindée Spéciale de Type-E

Return



<- 3-7. Go to the Back 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