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 도중에 잃었던 의식을 다시 되찾을 무렵, 마치 차갑고 딱딱한 무언가 위에 누워있는 것 같은 느낌이 바닥에서부터 나에게 파고들고 있었다. 하지만 몸서리 칠 만큼의 차가움이 아니었던 데다가 습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얼음은 분명 아니었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누워있는 곳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평평한 표면 위일 것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면, 의식을 위한 제단의 위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주변 일대는 분명 조용했고,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그 어떤 것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의식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인신 공양 의식 중에서 말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용히 눈을 뜨며 눈앞에 펼쳐진 하늘의 모습부터 바라보기 시작할 무렵, 그런 나의 눈앞으로 파란 하늘을 바탕 삼아 수많은 하얀 구름들이 수많은 무늬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의 왼편을 향해 돌아설 무렵, 그런 나의 눈앞으로 이번에는 여러 건축물들이 길 위에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서 있는 유리로 이루어진 기둥의 꼭대기 위에 달린 새하얀 등의 빛을 받고 있었다. 각 건축물들은 기둥과 마찬가지로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진 듯해 보였다.
  수정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일부인 것 같은 거리인 듯해 보이는 그 곳의 길을 비롯한 바닥 역시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건물들 사이의 곳곳마다 4 개에서 12 개까지 여러 수정들로 이루어진 결정들이 바닥 혹은 건축물 위에 마치 지면을 뿌리 삼아 자라난 식물처럼 생성되어 있었다. 그 수정들 중에는 거대한 기둥과 같은 모습을 이루는 것도 있었으며, 이들 중 새하얀 것은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마치 변광성처럼 깜박이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둘러보다가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으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의식이 없는 동안, 수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시의 한 곳에 이르렀던 것이다. 가로등이 길마다 자리잡으며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그 곳이 아직 도시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는 증거는 그 가로등 뿐, 거리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길 위를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날이 어둡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았다.
  그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사는 흔적을 찾으려 하였지만 사람이 사는 흔적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길 왼편에 위치한 표면 위에 수많은 수정의 결정들이 생성된 유리로 이루어진 집으로 나아가, 창가 너머의 모습을 보려 하였지만 창가에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탁자와 의자를 비롯한 가재 도구들만 보일 뿐, 안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집뿐만이 아니었다, 수정으로 이루어진 듯해 보이는 집을 계속 찾아 그 안을 들여다보아도, 사람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대문이 잠겨있지 않아 바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도시에 사람이 없기에 집 안에 머무르며 창고 안의 물건들 역시 꺼내 갈 수 있었다. 다만, 먹을 것이라고는 투명한 물 이외에는 없어 항시 그 도시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투명한 유리병이 투명한 액체로 채워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혹시 물과 비슷하한 모습을 보이지만 마실 수 없는 액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물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머무르며 물을 마셨던 그 집을 나서면서 그 집을 포함한 거리는 사실 옛 도시의 유적이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이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수정이 생성되어 있는 풍경을 인간이 만들어 낸다는 것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어떻게 인간이 수정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을 바로 지었음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건축물의 모습은 마치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더라도, 인간이 돌과 흙으로 지은 건축물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곧 즉,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의 모습이 수정으로 재구성되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거리를 이루는 집들의 크기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집의 크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듯해 보였다.
  '유리로 이런 건축물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텐데......'
  알고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의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의 근간은 돌과 나무 그리고 흙. 이들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이다. 문제는 유리, 이들은 수정이나 모래를 이용해 가공되는 것으로서 유리판을 만들기 위한 가공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 등의 요소가 있어서 유리로 만들어진 조소상이 있기는 하더라도 대형 조소상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물론,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겠지만, 유지, 관리의 문제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집, 더욱이 내부의 모습까지 재현된 모습이라도 그와 같을진대, 이런 유리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도시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의 의지로도 간단히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해도 건축물과 시가지의 모습을 재현하는 정도였다면 사람이 대를 이어 만들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위로 마치 식물이 태어나듯이 수정이 생성된 모습까지 사람이 재현하는 일이 마음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그러하니 그 모습을 보며 분명 다른 수단에 의해 수정 도시가 태어났으리라고 바로 짐작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수정 도시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수정으로 이루어진 거리의 곳곳을 돌아다니려 하였지만 단서에 해당될 만한 자료가 도시에서 발견되는 일은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애시당초 도시의 모습만 있는 곳에서 자료가 쉽게 발견될 리는 없었겠지만.

시각 미상 - 수정의 도시
  도중에 커다란 연못과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을 자그마한 탑을 발견하고, 그 근처에 이르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둥그런 연못가의 유리로 이루어진 표면 위에 이르러, 그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앉은 다음에 물을 마시기 위해 수면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수면 아래로 옮겼다, 두 손으로 적게나마 물을 퍼기 위한 일이었다-손바닥이 작다보니 물을 많이 퍼려 해도 컵 한 잔의 양조차 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물을 퍼기 위해 두 손을 수면 아래의 물 속으로 담그는 순간, 마치 차디찬 극지의 바다 속에 손을 담글 때와 같은 차가운 기운이 손을 통해 전신으로 전해져 왔다. 더욱이 오랫동안 도시에 머무르고 있으면서도 물은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깨끗하여 극지의 얼음이 녹아 생성된 순수한 물이 모인 듯한 면모가 있었다.
  두 손을 움켜 물을 퍼려 하는 동안 나의 눈앞에 드러나는 수저의 모습. 수저 역시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수중에는 어떤 물고기도 살지 않고 있었다, 어떤 수초도 자라나지 않고, 먹이가 될 만한 미생물조차 없는 물에 물고기가 살 수 있을 리는 없었으리라.
  그 수중의 모습을 본 이후, 두 손을 움키어 물을 퍼서 수면 위로 올렸고, 그 이후에 물을 모은 두 손이 나의 바로 앞에 드러났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 틈새로 잇달아 물방울이 떨어져 수면에 닿으며 계속 동그라미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바로 두 손으로 모은 물을 들이켜 목을 축이려 하였다. 때마침 목이 무척 말라서 마신 양이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아쉬움을 달랜 이후에는 더 큰 것을 바람이 사람의 마음이었던가, 그렇게 목의 갈증을 달랜 이후에는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일대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근처에 사람이 사는 집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거리 우측에 있는 집이 호수와 가까움을 확인하고서 그 집을 향해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원래 도시가 아무도 없는 곳이기도 하고, 그릇 자체는 유리로 만들어진 그릇과 크게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릇을 바로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유리로 이루어진 찬장 안에 있던 크고 오목한 그릇을 하나 들어-직경이 손바닥 크기의 2 배 정도에 이르고 있었다- 그것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채, 호수를 향해 급히 뛰었다.
  '이 정도 그릇이면 물을 한 번에 많이 마실 수 있겠지.'
  이후,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호수가에 자리를 잡고 두 손으로 든 그릇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앉았다가 곧바로 기분 좋게 그릇으로 물을 퍼올렸다. 그러는 동안 혹시 물을 퍼는 순간에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간 일에 대해 재앙이 가해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무심결에 물을 퍼올리고 다시 수면 위로 그릇을 가져오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비로소 물을 마셔도 나에게 자그마한 일 하나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판단을 내리며 안심하고 물을 마시려 하였다.
  그리고 목구멍으로 물이 들어가는 순간, 가슴부터 차가운 기운이 몸 전체로 퍼져갈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지며 다시 한 번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크고 움푹하게 파인 그릇을 통해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실 수 있었기에 물을 마시는 시원함의 느낌은 이전에 비해 더욱 크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몸에 일어나는 이상 징후는 그 무엇도 관찰되지 않았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까.'
  이에 나는 내심으로는 안도하면서 밝게 미소를 짓는 채, 다시 물을 마시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입가로 들어가지 않은 물이 새어나와 가슴과 배 그리고 무릎까지 적시면서 살갗에 차가운 기운을 전하고 있었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껏 나를 달아오르게 한 열기가 물로 인해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물을 마시다가 문득 몸을 씻기까지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론 목욕을 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왕 옷이 젖기까지 한 이상, 목욕까지는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러면서 그릇을 호수가에 놓아두고 목욕을 할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호수가 나에 의해 더러워질 일을 생각하며-호수로 신선한 물이 유입되는 지의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호수가에서 몸을 씻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보통의 도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아무도 없는 도시이고, 그 곳에 나 혼자 있다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일도 가능했던 것이다.
  우선 호수가에 치마부터 하나씩 벗은 후, 마지막으로 속옷까지 벗었을 때, 옷자락을 근처에 있는 조각상 위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신발만큼은 물 밖에 계속 머무르려 하였기에 벗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호수가에 자리를 잡고,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채로 물을 한 그릇씩 퍼서 머리부터 적시기 시작하여, 몇 번 퍼올리면서 마침내 몸의 모든 곳을 물로 적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물을 퍼서 몸을 적시도록 하는 동안 머리에 물이 올 때에는 눈을 감았다가 그렇지 않을 때에는 눈을 뜨고 있었으며, 가끔 몸의 물기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차가운 기운이 몸 전체로 고루 퍼지도록 하기도 하였다.
  목욕이라면 이미 여러 번 했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옷을 벗은 채, 몸을 씻는 일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그 일이 아무도 없음에도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마침 얇게 옷을 입고 있기도 하니, 옷을 입은 채, 몸을 적실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속옷은 한 번 젖으면 잘 마르지 않고, 또 속옷이 젖은 채 행동하면 꽤 많이 불편했기에 본의 아니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기소침하게 행동을 하였지만 계속 몸을 씻으면서 낯설지 않게 되니, 심기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찬 물을 계속 맞으면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계속 느꼈지만 그 때마다 물이 더럽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그 충동을 억누르려 하였다.

  그렇게 한 동안 몸을 씻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그만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되자 비로소 그릇을 호수가에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옷가지를 올려놓은 곳으로 다가갔다, 당연히 벗어놓은 옷가지를 다시 찾기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 몸이 마르지 않은 탓에 몸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고 옷가지가 놓여진 곳 근처에 몸을 기대어 앉은 채, 바람을 일으켜 물기가 바람에 의해 날아가도록 하였다. 물론 그러는 동안 바람이 물에 의해 증발되면서 생기는 한기에 의해 급격하게 차가움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달리 그것을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그러면서 두 다리를 굽히고 모으면서 발목 근처에 두 손을 깍지끼고 있으면서 앉아있을 무렵, 갑자기 나의 먼 앞 어딘가에서 고요한 도시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법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분명 유리를 구두 같은 것으로 밟는 소리,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외지인이 다가오는 소리임을 바로 알아차리고 그와 함께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떻게든 몸을 숨기려 하다가, 그 발소리가 점차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 몸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껏 숨겨놓고 있던 조치를 취하려 하였다.
  이후, 나는 나 자신의 몸을 투명한 회오리바람과 같은 형상으로 변이시키고서 옷가지 주변에 머무르며 상황을 지켜보려 하였다, 다행히도 옷가지는 바람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날아가지는 않고 있었다.

  이후, 도시를 향해 다가오는 하나의 형상.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을까, 하얀 색을 띠는 가벼운 셔츠와 푸른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허리에 검은 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갖춘 이로서 허리 아래까지 내려가는 감청색을 띠는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갖춘 얼굴색 흰 소녀. 그 소녀는 유리로 만들어진 등을 오른손에 쥐고 있으면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내가 위치한 곳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 소녀로부터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
  "이 부근이었던가, 계속 누군가가 물을 퍼서 몸을 씻는 소리 같은 게 들려왔는데......."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소녀가 나의 목욕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미 그는 이 도시에 이미 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그런 추측을 하며, 나는 내가 그 곳에서 목욕을 했다는 사실을 소녀가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소녀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고 나에게 직접 해를 가할 이유는 없었지만 행여 그가 나에 대한 부끄러운 사실을 알릴 것이 걱정이 된 탓이었다.
  그러다가 곧 그는 호수가로 나아가더니 호수가에 놓여진 그릇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오른손으로 들었다. 제법 무거웠는지 다소 천천히 들어올리는 소녀. 그러더니 그는 조용히 그릇을 살피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그릇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분명 이것은 누군가가 사용한 것일 텐데......."
  그리고 그런데 왜 사람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는 소녀. 그러다가 근처에 누군가 또 머무르고 있는지 자신이 다가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큰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려 하였다.
  "이리나(Iryna), 잠깐만 이리와 봐, 알아봐야 할 것이 있어~~."
  그리고 잠시 후, 그의 근처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이리나라는 이름을 가지는 한 명의 소녀, 이어서 하얀 드레스 차림을 한 얼굴색이 희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는 소녀가 그의 근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짤막한 소매와 무릎까지 내려가는 넓은 치맛단을 가지는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발을 하얀 신으로 감싸고 있는 소녀, 허리까지 내려가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모습이 앳되면서 아름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 소녀는 조용히 그를 향해 다가오더니 이전의 그 소녀보다 여린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물었다.
  "알아보고 싶다는 것으로 무엇이 있기에 그래?"
  "이 그릇이 어떻게 밖으로 나왔는지에 대해 알고 싶은 거야."
  그 물음에 그릇을 다시 호수가에 내려놓으면서 소녀의 물음에 답을 하는 이리나. 그러더니 잠시 시간이 지날 무렵, 그릇을 두 손으로 잡고 있는 채, 그것이 놓여져 있던 곳에 자리를 잡고, 그에 이어 자신이 자리를 잡은 곳에 두 무릎을 바닥에 대며 앉는 자세를 취하면서 자신의 왼편 곁에 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 옮기고 있었다.
  "이리나, 뭐 하려고? 연못에는 사람의 모습 하나 보이지 않는데."
  "혹시 모습을 감추어 물 속 같은 곳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어서 소녀가 그런 그를 말리려 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어 그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리려 하였으나, 이리나는 곧바로 그런 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어가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이리나는 두 무릎을 꿇으며 앉고서 호수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수면 아래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 그러면서 잠시 투명한 수면 아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호수가에서 물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앉는 자세를 바꾸어 수면 아래로 오른발부터 담그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런 이리나에 시선을 두지 않는 채, 호수가의 뒤쪽을 향해 돌아서고 있는 소녀. 그러다가 내가 옷을 벗어놓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형상으로 시선을 향하는 순간, 소녀는 형상의 근처에 놓여진 나의 옷가지를 발견하고서 그 옷가지를 향해 다급히 발걸음을 옮기더니 한 손으로 하나씩 옷가지를 들어, 왼손에는 상의, 그리고 오른손에는 치마와 속옷을 쥐고 있었다.
  이후, 왼손과 오른손에 쥐어진 옷자락의 모습을 한 동안 한 번씩 눈여겨보기를 반복하더니 허리를 굽혀, 옷자락들을 물체 위에 올려놓고서 그 주변 일대를 돌기 시작하면서 혼잣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분명 이 근처일 텐데, 사람이 옷을 벗어 놓으면 그 근처를 벗어나기 쉽지 않아."
  그리고 호수의 가장자리, 이리나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돌아서더니 크게 목소리를 내어 떨어진 옷가지를 발견했음을 알리며 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도록 하였으나, 곧 그는 이미 이리나가 물 속으로 옷을 입은 채, 들어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당혹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안절부절하는 채로 물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 이르자, 그 기운을 느낀 듯이 놀라는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어라? 이 구역에 이런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었나, 이 곳에는 바람 한 줄기 불어오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서 회오리바람의 근원을 찾아내려 하는지, 내가 위치한 곳 주변을 돌며 그 곳에 머무르려 하는 소녀. 그 때, 이리나가 옷이 물에 전부 젖어 물기를 가득히 머금은 채, 몸에 밀착되는 모습을 보이는 채로 수면 위로 다시 오르더니 배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이면서 소녀를 -라미샤(Lamisha)-라는 이름으로 칭하면서 그에게 왜 주변을 돌기만 하느냐고 물었다.
  "무언가 의심될 만한 것을 찾았어, 방금 전에."
  이에 의심될 만한 것을 찾았다고 바로 답을 하는 라미샤라는 이름을 가지는 소녀. 그 이후, 라미샤는 이리나에게 옷가지가 떨어진 곳 부근에 근원을 알 수 없는 회오리바람이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나의 형상을 발견한 일에 대한 설명을 하고서,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투명하면서도 주변 일대를 돌기만 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보통 바람 같지는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 바람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한 곳에 머무르기만 하는 회오리바람이라고?"
  그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그들이 곧 나의 존재를 감지하게 될 것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장에는 라미샤 그리고 이리나가 '회오리바람' 의 실체를 바로 파악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이 '영기를 품은 존재' 로서 옷의 근처에 있으니, 옷과도 분명 상관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 과연 라미샤가 수정으로 이루어진 형상의 근처에 머무르는 나의 형상이 일으키는 바람의 흐름을 느끼려 하며 자신의 우측 곁에 이른 이리나에게 그에 대해 알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래도 이 바람은 한 곳에 놓여진 옷가지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문득 그 바람이 어쩌면 옷을 놓아둔 사람이 변화한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이어서 할 수 있었음을 밝히는 라미샤. 그러면서 정령이나 영체에 의해 바람의 기운이 밀집되지 않는 한, 하나의 구역에 머무르는 회오리바람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러자 이리나는 라미샤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향한 채, 오른손의 둘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린 채,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바로 물음을 건네는 라미샤,
  "이리나, 저 회오리바람에 대해 무언가 생각이 떠오른 바 이어?"
  "물론." 그러자 그 물음에 곧바로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리나. 그리고 일단은 호수에서 멀어져 있자고 바로 제안의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라미샤의 이유를 알려달라는 물음에 회오리바람의 실체는 자신과 라미샤가 곁에 계속 있어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회오리바람에 대한 자신의 추측을 드러내고서 그에 이어, 자세한 이야기는 호수가를 떠나면서 알리겠음을 밝힌 다음에 자신이 먼저 호수가를 떠나며 어서 자신을 따라와 달라고 그에게 부탁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이후, 호수가 인근의 집을 향해 나아가는 이리나. 그 때, 라미샤가 그런 이리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도시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냐고 묻자, 그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한 이후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그에 이어지는 말을 건네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집에 숨어 있으면 우리가 자신이 머무르는 호수가에서 없어진 줄 알고, 회오리바람의 실체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
  그 말을 듣고서 라미샤가 이리나에게 밝게 목소리를 내어 물음을 건네자, 바로 그렇다는 답을 하는 이리나. 그러다가 집의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문득 자신이 잘못된 추측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집을 향한 발걸음을 갑자기 멈추려 하였고, 이에 라미샤가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왜 그러느냐고 묻는 모습을 보인다.
  "왜 그래, 집에 숨어 있으면 된다면서."
  "아냐, 역시 집에 숨으면 안 될 것 같아."
  그 물음에 자신이 내가 추측한 대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답으로써 드러내는 이리나. 그리고서 그는 줄곧 자신과 라미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회오리바람이 집에 숨어 있는다고 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모르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역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을 건넨 다음에 곧바로 그 왼편을 향해 돌아서서 그 방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이 도시에서 나가는 거야?"
  "그렇다기 보다는, 아주 갔다고 회오리바람이 생각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면 하겠지?"
  이후, 라미샤가 다시 물음을 건네자, 이리나는 그 답으로써 그렇게 화답을 하고서 눈에서 사라졌다고 판단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고 있다가, 5 분 즈음 지난 후에 다시 오자고 말을 건네면서 그 뒷모습이 나에게서 점차 작아지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 고프지 않아? 나는 이 도시로 오면서 배가 많이 고픈데."
  "점심 안 먹었어?" 그러는 동안, 이들은 화제를 바꾸어 식사를 못한 일에 대한 대화가 오가도록 하고 있었다. 그 물음에 라미샤가 그렇지는 않지만 많이 먹은 편도 아니라서 금방 배가 고파졌다고 화답을 한 이후에 무언가 요리를 하고 싶지 않느냐고 이리나에게 바로 묻는 목소리를 내었다.
  "요리라, 무슨 요리를 하고 싶은데?"
  "이전에 본 적이 있지 않아, 포도 식초 소스에 적셔진 완자 요리 말야, 그 모습을 보면서 이리나와 함께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때? 이번 저녁에 먹어 보자."
  "왠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당시, 나는 포도 식초 소스라는 것이 어떠한 물건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리나가 그 맛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호불호가 엇갈리는 종류의 음식일 것 같다는 추측을 바로 할 수 있었다. 아마, 이리나가 신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답을 했겠지.
  과즙 등을 바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는 세니티아에서 식초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다만, 라넬리스 인근의 마을 등지에 있는 술통에 저장된 액 중에 마시면 지독할 정도의 시큼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액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식초라는 액체가 아주 없다고 말할 수 없기는 하다.
  처음 식초라는 것이 발견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이를 '독' 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산' 이라는 것은 돌이나 금속을 녹이고 인체에 해악을 가하는 존재로 알려져 왔음이 그 이유로써 그 근원에는 '황산' 과 같은 강한 산들이 근거하고 있다. 물론 순수한 식초를 먹으면 위험한데다가, 식초가 저장되어 있다는 통은 본래 '술' 이 저장되어 있어야 할 통으로서, 너무 오래 저장하고 있다가 '부패했다' 고 여기어졌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하나의 낡은 인식이 하나의 계기로 인해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의 '용감한 시도'(1) 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식초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도 그런 시도에 의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떤 옛 선조 중 한 명이 자살을 하겠다고 '독' 이라 알려진 식초를 먹었다가 그것을 먹고도 죽지 않음을 확인하면서 먹을 수 있는 액체의 일종임을 알아차리고, 그러다가 그 신맛이 세상에 알려지며, 신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로 활용되었으리라.
  다만, 당시의 나는 그 식초를 이용해 소스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라미샤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혹시 서로 친해질 수 있는 입장이 되면 그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해 보겠다고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라미샤 그리고 이리나의 모습은 어느덧 나의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잠시 상황을 주시해 보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이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5 분 후에 다시 나타날 것임을 생각하며 얼른 행동을 취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들이 놓아둔 옷 근처에서 바람으로 변했던 나의 모습을 원래 상태로 다시 되돌리려 하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