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알고 싶어하였던 것이었군."
  내가 말을 마치고, 얼마 시간이 지났을 무렵, 노인은 우선 나에게 그렇게 나의 말에 화답을 하고서, 잠시 동안 가만히 길을 따라 걷기만 하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면서, 아래와 같이 나에게 일단 기다려 줄 것을 당부하는 말을 나지막히 목소리를 내며 건네었다.
  "그에 대해서는 지금껏 지내온 삶의 기억을 되짚어 봐야 할 필요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게."

수정 가도 -
  이후, 나는 노인과 함께 나란히 굽이치고 있는 수정 가도를 따라, 그 좌측 근방의 풀을 밟아가며 나를 오른쪽 방향에서부터 가로지르는 바람을 맞아가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오른편 근처에 머무르고 있던 노인은 생각해야 할 바가 많았는지, 다른 말없이 조용히 길을 걷기만 할 뿐, 나에게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런 노인의 모습을 가끔씩 바라보려 하면서 그가 나에게 말을 걸 때를 조용히 기다리려 하였다. 하지만 내가 3 회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동안에도 그는 나에게 한 마디 말조차 건네지 않고 있었다.
  "혹시 이전에 수정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모습을 본 적이 있나?"
  그리고 한 동안 말을 걸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그에게 시선을 두는 대신에 길 근처의 풀밭, 그 근방에 위치하고 있는 초록빛 숲과 그 위로 날아다니는 초록빛 새들-비둘기들로 추정된다-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려 하는데, 갑자기 그렇게 노인의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예, 이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어요."
  이에 나는 드디어 그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미소를 띠는 채로 그렇게 답을 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놀라는 감정의 감추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나는 행성에 관해 충분히 기억해 내었느냐고 그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이제 기억은 충분히 해내셨나 봐요."
  "그렇지." 이에 곧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그렇다고 답을 하는 노인. 그리고서 그는 그 대답에 이어지는 이야기로써 나에게 그 도시를 보면서 생겨난 감상에 관한 물음부터 건네려 하였다.
  "그 도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자세한 생각은 할 필요 없네, 그저 그 도시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가졌던 소소한 감상 같은 것만 말해주면 될 거다."
  "한 마디 간단한 말만 해도 되는 거예요, 정말로?"
  짧게라도 도시에서 느꼈던 바만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노인. 그런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그렇게 노인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물론 노인이 그렇게 감상을 말해 보라고 언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하려 하였으리라. 하지만 간단한 감상만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그가 이어갈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나는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부탁한 대로 내가 도시에서 느꼈던 감상을 내가 아는 대로 그대로 알려주기로 마음을 먹고, 그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나는 그에게 수정으로 만들어진 도시와 같아 보였으며, 그 크기나 정교함이 예사롭지 않아 한 두 사람이 건설할 수 있을 법한 도시 같지는 않아 보였다고 한 마디 말로써 도시에서 느꼈던 바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랬더란 말이지." 그렇게 도시를 바라보며 느낀 바에 관한 한 마디 말을 건네자마자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그렇게 화답을 하는 노인.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그런 나의 감상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라는 한 마디 말을 우선으로 건네고서, 그에 이어지는 말로써 그 도시에 관해 한 마디 말을 풀어놓으려 하였다.
  "그 도시의 형상은 먼 옛날에도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가 언급한 대로라면, 내가 보았던 그 수정으로 이루어진 도시는 원래부터 그런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으로써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말을 나는 선뜻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그러면서 그에게 다시 그 말에 관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 말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도시는 행성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수정으로 이루어진 모습을 보였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 이에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그렇지는 않다고 바로 답을 내놓더니, 그 이후, 그는 곧바로 자신이 언급한 바에 관한 자세한 언급을 행하겠음을 알리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하려 하였다.
  "그 도시는 현 시대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시대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건설과 유지 그리고 확장을 해 온 형상이기에 현 시대의 사람들은 분명 쉽게 따라할 수는 없을 거다."
  그리고 나에게 물음을 건네는 노인. 그 물음의 내용은 그 도시의 형상이 원래부터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믿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달리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추측을 해 보기는 했지만 정답이라 확신할만한 것은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답을 내놓기 모호한 모양이로군." 이에 나의 모습에 대해 그렇게 언급을 하는 노인. 그리고서 혹시나 추측한 바와 다르더라도 놀라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한 이후에 도시의 형성이 처음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그가 건넨 말 그대로, 나의 예상과는 다른 의외의 대답이 그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그 도시는 원래부터 수정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었다네."
  "예!?"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저 놀랄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라면 이미 하고 있기는 했지만 선뜻 그런 추측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장담 역시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놀라는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도시는 본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지요?"
  "물론이다." 이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는 노인. 그리고 자신이 젊었을 적만 하더라도 도시의 모습은 여느 도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내가 보았던 수정으로 이루어진 도시에 관한 소개를 행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잠시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고개를 약간 아래로 숙이고, 우울해진 표정을 지으면서 수정으로 이루어진 길 위를 걷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길 주변의 곳곳에는 수정들이 모인 형상들이 풀밭과 나무들 사이의 곳곳에 생성되어 빛을 받고 있었다.
  "도시의 호수 역시 지금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바닥 위에 생물이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물이 채워진 형상을 이루고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여느 호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 수면은 항시 청록빛을 띠고 있었고, 물은 항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 여러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광경이 호수에 항시 나타나고는 하였지. 그 주변으로 수많은 초목들이 자라나 있으면서 아름다운 광경을 꾸미기도 했어."
  그리고 자신의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늙어 가는 동안, 도시의 모습은 끊임없이 변화해 갔지만, 호수의 풍경만큼은 자신이 도시를 떠나 멀리 있을 동안까지의 기간 동안만큼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자신이 보았다는 과거의 호수에 관한 설명을 이어가는 노인. 그러다가 그에 이어지는 것으로써 다시 도시를 방문했을 때, 도시의 모습은 어느새 자신이 알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모습으로 변질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이어서 하였다.
  "그 변질된 모습이 현재의 수정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호수이겠군요."
  이후, 그에 이어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곧바로 건네는 말에 그렇다고 답을 하는 노인. 그와 더불어 노인이 도시의 풍경을 자세히 알고 있고, 또 도시를 오랜만에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그 노인이 실제로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옛 주민이 아니었을까, 에 관한 추측을 이어서 하기도 하고 있었다, 도시의 다른 사람들은 도시의 모습이 변화하는 동안 한 명씩 떠나가고, 그만 도시에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 도시는 한 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의 산물로서, 역사 상 가장 평화롭고, 또 가장 행복한 곳으로 명망이 높았던 적이 있었어, 물론 한 때의 일이기는 했지만."
  그 이후, 계속 들려오기 시작하는 노인의 이야기. 이윽고 그 이야기는 도시가 탄생하고 번영해 가는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어 갔는지를 나에게 알려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도시는 탄생하고 번영하였지만 쇠퇴하고 멸망하지는 않았음을 바로 밝히고 있었고, 그에 대해 나는 하나도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말이 옳다면 도시는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멸망했을 리는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는 계속 번영해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번영은 도시에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번영과 함께 수많은 이들이 부를 누렸지만, 더욱 많은 이들이 짙어져만 가는 번영의 그림자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만 했고, 그 숫자는 점차 늘어만 갔다. 그러나 도시를 다스리는 자들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겉으로 드러나는 번영의 화려함에만 신경을 쓸 뿐, 점차 어려운 삶을 살아가려 하는 민중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을 위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면 민중은 삶을 위해서라도 다른 곳으로 떠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은 그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에 한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민중이 달리 갈 곳이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도시는 당시, 모종의 연유로 인해 심각한 사막화가 이루어진 있던 행성의 표면에서 인류가 문명을 영위하며 살 수 있도록 인공적인 환경이 조성된 곳으로서 그런 도시는 행성의 표면 상에 몇 되지 않을 뿐더러, 다른 곳은 먹을 것을 충분히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척박했기에 도시의 인공적인 환경에 익숙한 일반 민중이 그런 환경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민중들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어려운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자신들이 궁지에 몰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렇다면 지배자들은 그런 현실을 이용해 민중을 위협하려 하였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당연히 그러할 수밖에 없겠지."
  무엇이 원인이 되어 민중의 삶이 점차 막다른 길목으로 내달리고, 번영 속에서 적은 사람들만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노인은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어쩌면 요인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그가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몇 차례, 도시의 지배자들을 향한 봉기가 있기는 하였다. 그것을 두고 어둠 속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횃불의 무리라 칭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불행하게도 그 횃불의 무리는 폭풍우 속에 있는 것과 같아 잠시 어둠을 밝힐 수만 있을 뿐, 결국 금방 꺼지는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다, 통치자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강화한 군의 힘 앞에 어려운 삶 속에서 무기를 쥘 수 있는 여력조차 없던 민중은 그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당대 통치자들은 민중이 일어서면 그저 짓밟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봉기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제압하는 데에 도시의 수호자들은 항상 열심이었다고 한다, 공적을 쌓아 통치자들의 영전에 오를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민중들은 봉기할 때마다 평화적인 방식을 사용했지만, 그 때마다 통치자들은 강력한 무력을 활용해 자신들의 도전을 철저히 억압해 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민중들은 점차 가혹해져 가는 삶과 지배자들의 그와 같은 억압을 견디지 못하며 하나둘씩 도시를 떠나가나, 달리 갈 곳이 없던 이들은 자살까지도 선택해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폐허가 된 땅을 비롯한 외지의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어, 어느새 인공 도시의 원주민이 아닌 외지인들이 민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즉, 상류층은 원주민, 하류층은 외지인이라는 도시 구조가 생겨난 것이었다.

  "나도 그 와중에 도시로 들어온 외지인들 중 한 명이었다. 황폐해진 땅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그 도시로 이주해 오게 된 사람이지. 처음에는 도시로 들어오는 여느 사람들처럼 도시에서의 삶을 통해 많은 돈을 벌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곧 나는 그것은 헛된 희망에 불과했음을 바로 깨닫게 되었지."

  도시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사라지면서, 도시의 상류층 중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던 도시의 통치자들은 거침없이 도시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도시에 거주하면서 나름 도시에 정신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그와 더불어 도시의 사정에도 상당히 밝은 편인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권리에 반하는 정책이 나타날 경우, 바로 반발적 행동을 취하며 통치자들을 '귀찮게' 하고는 하지만, 도시에 정신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일부터 큰일인 외지인들은 통치자들의 정책에 쉽사리 반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통치자들의 정책이 어떠할지는 후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만 했다.
  형식적으로나마 남아있던 도시의 복지 정책안의 대다수가 폐기되었고, 도시의 거주인을 원주민과 외지인으로 구분지어 노골적인 차별을 가하는 정책이 그것을 대체해 갔다. 또, 도시 내에 특수 행정 구역을 설치하여 그 행정 구역에서 살아가는 외지인들은 일반 행정 구역에 거주하는 이들에 비해 열등한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행정 구역은 특수한 노동자 거주 구역과 특수한 기술자 거주 구역이 있으며, 각 구역에는 격렬한 저항을 방지하기 위해 병사들을 배치하였다-특수 행정 구역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 사태 방지가 그 명분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외지인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외지인들은 통치자들의 그러할 듯한 명분에 대한 반박을 어찌하지 못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박하는 외지인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등의 행동만 취할 따름이었다-억울하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홍보단의 협박도 그런 행동의 경향에 이바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지인들은 거주 기반을 마련하는 일부터 급급하였기에 통치자들의 정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전에 들렀던 그 성계의 모습이 대략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 성계 역시 차별 받는 자들의 구역이 있어서 그 구역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아무튼, 이러한 도시 통치자들의 도시 관리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하나 안게 마련이다, 도시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도시를 위해 진심으로 나설 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가 바로 그것. 모든 민족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공동체 의식을 가진다면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와도 바로 단결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도시 공동체에 그러한 단결 의식이 나올 리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시의 멸망에 그런 문제 역시 관여하고 있으리라는 판단을 바로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시의 멸망이 일어나도, 그 도시를 위해 나설 이는 많지 않았겠네요."
  그 생각에 의거해 이후, 내가 그렇게 노인에게 물음을 건네자, 내 예상대로 노인은 그렇다고 화답을 하고서 도시의 멸망 전조가 나타날 무렵에 외지에서 살아가던 이들 중 대다수가 자신들의 모국으로 돌아갔음을 밝히고, 남은 이들의 대다수는 도시의 통치자들뿐이었지만 이미 사람들을 부려먹는 일에만 익숙했던 이들인지라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했던 탓에 멸망해 가는 도시와 함께 죽어 가는 일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는 언급을 이어서 행하였다.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도시였지만, 노인은 폐허 속의 고향에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도시 생활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이러한 도시의 문제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고단한 삶을 이어가며,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고향의 삶이 고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차별 정책 속에서의 병사들의 박대와 지배층의 억압과 같이 괴로움을 가할 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쉽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도시에서의 생활 기반을 마련해 나아가는 동안, 이미 그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황폐한 상태에 놓인 도시로 쉽게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간다 하더라도 삶이 가난하다 하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함에 대한 공허함에 쉽게 빠져 결국 도시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예전에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이야기 속 '저승의 열매' 와 비슷하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내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며 화답을 하는 노인.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노인 역시 내가 어렸을 적에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를 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이러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에르시아의 집에 있던 책장에 있던 책들을 꺼내 읽다가 확인하게 된 책. 그 책의 책장을 넘겨보다가 그야말로 우연히 본 안타까운 느낌을 주는 이야기 하나를 발견하고, 꽤 유심히 읽은 적이 있다.

  대지의 여신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고, 그 여신은 딸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림자와 함께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정원을 거닐고 있던 그 아름다운 딸을 발견하더니, 그를 끌어안고 그림자와 함께 그 모습을 감추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대지의 여신, 그 딸을 납치하였던 존재, 그 존재는 사실 저승의 신이라 칭해지는 자로서, 먼 과거로부터 사자의 세계를 다스리는 제왕으로 추대를 받고 있었다. 본시 그는 다른 가족 없이 홀로 저승의 왕궁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상 세계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문득 지상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검은 옷을 입고 조용히 외출을 하다가 우연히 대지의 여신이 머무르는 전당에서 그를 발견하고, 아름다움에 혹해 그를 '소유' 하겠다는 생각 하에 그런 행동을 취하였던 것이었다.
  여인을 데려온 이후, 저승의 신은 그를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하였다. 그는 여인의 모습에 진심으로 반하였고, 그러면서 그를 항시 자신의 곁에 두려 하였다. 물론 자신의 의지만으로 그를 데려온 것이었으며, 여인은 그것을 원치 않았으나, 저승의 신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저승에 두려 하였다.
  하지만 대지의 여신이 분노를 행하고, 그로 인해 대지에 축복을 가할 수 없게 되자, 대지는 끝없는 겨울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를 보다 못한 하늘의 신은 저승의 신을 방문하여 저승의 신에게 그가 차지한 그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분명히 알리고, 그를 돌려줄 것을 정중히 요구하였다 한다. 물론 저승의 신은 자신에게 다가온 '행운' 을 쉽게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처음에는 그 요구를 거절하려 하였으나, 하늘의 신이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저승에 해악을 가할 수도 있다고 위협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대지의 여신, 그 딸을 지상으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어떤 책의 경우, 그 대목에서 끝을 내어 행복한 결말처럼 꾸며놓는 경우가 있으나, 내가 본 책은 이야기의 모든 부분이 포함된 형태로서, 여느 책이 숨기고 있는 대목을 다루고 있었다. 그것은 대지의 여신, 그 딸이 저승에 있는 동안 저승에서만 자라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일. 그 열매는 얼핏 보면 지상의 과일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지상으로 돌아가 그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금단 현상이 생겨나 그 열매를 찾기 위해 지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열매로 인해 여인은 한 번 정도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 저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노인이 누렸을 문명의 이기는 저승으로 끌려갔던 여인이 먹었던 '저승의 열매' 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이 머무르게 된 곳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점만큼은 같다. 그런 저승의 열매와 같은 것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 채, 차별 속에서 도시에 머무르게 된 이는 비단 노인만 있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나를 위로하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였지, 그것이 바로 내가 항시 들르고는 하였던 그 호수다. 호수가의 아름다운 풍경과 잔잔한 물결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 속에서 느꼈던 괴로움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호수가 노인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온전히 알아낼 수 있었다, 삶의 괴로움 속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제공하는 작은 위로의 수단이 바로 초목과 화초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호수였던 것. 비록 인공적으로 조성된 풍경이었겠지만 노인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도시의 삭막한 일터에서의 일상 속에서 지쳐갔을 심신을 자연스러운 색과 풍경으로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노인은 족했을 것일진대, 풍경의 변질과 함께 자신이 항상 즐기고 있던 풍경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그에게는 무척 아쉬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는 비로소 끝이 나게 되었지만, 도시가 어떻게 수정으로 이루어진 모습으로 변화해 갔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조차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초원의 가도 -
  노인의 회상이 마무리 될 무렵, 노인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길 위를 조용히 걷고 있었으며, 나는 그 좌측 근처의 풀밭을 따라 걸으며 길의 주변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풀밭 일대로 바람이 좌측에서부터 우측 방향으로 조용히 불어오며 풀잎과 풀밭의 곳곳에 머무르고 있던 나무의 가지에 매달린 이파리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맑게 물이 흐르는 시냇가가 수정 가도를 가로지르고, 수정으로 이루어진 새하얀 다리가 냇물에 놓여져 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물을 건널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너머로는 높이만 하더라도 내 키의 3 배에 이르는 거대한 수정들이 모인 결정들의 무리가 빛을 받아 무지개색을 띠는 빛을 발산하고 있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었다.
  '수정으로 이루어진 모습으로 변화한 도시와 초원의 곳곳에 자리잡은 수정. 별개의 것처럼 보임에는 틀림 없기는 하겠지만, 이들은 분명 서로 관련이 있기는 할 것 같아.'
  그 광경을 바라보는 동안 그렇게 혼잣말을 이어가는 나. 하지만 그러하면서도 내가 보았던 두 가지 풍경이 어떻게 연관지어지는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났을 무렵, 나는 시냇가에 먼저 이르러 근방에 위치한 석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새하얗게 빛을 발하는 바위로 다가가, 그 바위 근처에서 쉬려 하였고, 그러면서 노인을 불러 그가 바위의 근처로 다가가도록 한 이후에 그와 함께 다시 그것을 향해 걸으며 말하였다.
  "잠시 동안이나마 이 바위에 앉아 계셔 주세요, 계속 걸으면서 발이 많이 아프실 텐데."
  하지만 그런 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바위의 바로 앞에 이르면서도 그 바위에 앉지 않으려 하는 노인. 그러면서 자신을 대신해 내가 앉으라고 권유의 말을 건네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 바위에 앉으셔야 할 분은........"
  이에 내가 당황하며 노인에게 말을 건네려 하자, 그 말을 자르며 "괜찮다." 라고 화답하더니 그에 이어 자신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좋다고 말하면서 바위의 왼편 인근의 시냇가에 조용히 서 있으려 하였다. 그러자 나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제가 앉을게요." 라고 내가 앉을 것임을 알린 이후에 곧바로 바위 위에 조용히 앉아 시냇가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 위로 나비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금색 날개를 펄럭이며 4 명의 작은 요정들이 일정하지 않은 대열을 이루면서 다리의 바로 위쪽 상공을 따라 날아가고 있는 광경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들은 무언가 즐거운 일을 겪고 있는지 서로 밝게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나의 왼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숲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숲의 요정들인가 보구나.' 이후, 나는 왼편 너머로 사라져 가는 요정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채, 미소를 띠며 그들에 대해 조용히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노인의 모습을 지켜보려 할 즈음에 갑자기 노인이 그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무엇을 위해 여행을 이어가고 있나?"
  그리고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지,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하고, 그러면서 행성에 이르게 되었느냐고 다시 한 번 묻는 노인.
  "꽃의 나라가 있다는 행성에 살던 요정을 도와주기 위함이에요."
  그 물음에 나는 꽃의 나라가 있는 행성의 요정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와 함께 행성에 위협을 가하는 사악한 세력과의 대결을 위해 여행을 행하고 있음을 밝히는 나. 그리고 그에 이어 행성을 찾으려 하지만 마음가는 대로 되지 않아 행성들을 헤매고 있음을 이어서 알리려 하였다.
  "그 나라의 사람은 분명 아닐 텐데...... 정의감이 꽤 강한 아이로군."
  이후, 노인은 나에 대해 그렇게 추측의 말을 건네고서 나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을 완연히 드러내려 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말을 이으려 하였다.
  "그 도시에 아가씨와 같은 이들이 100 명, 아니 10 명만 있었더라면, 인공 도시가 비극의 구역으로 간주되는 날이 빨리 끝났을지도 모르겠건만......."
  그 말의 의미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과 아무런 연고도, 심지어 인연조차도 없는 곳에서 타지인들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처럼 간주할 수 있는 사람이 도시에는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정의감은 대개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이는 잔잔한 물결 위에 돌이 떨어진 것 같이 작게나마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분연히 일어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노인이 살던 시대의 도시는 그러할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법 한데, 왜 없었던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한 번 알아봐야 할 문제일 것 같다.


다음 편에 계속